CINELAB2023-08-11 14:55:09
나는 스크린을 찢어. 차기작이 궁금해지는 배우 최현욱
[필모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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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무 이탈 체포조(D.P.) 준호와 호열이 여전히 변한 게 없는 현실과 부조리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벌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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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는 연약해 보이는 상위 1% 모범생 연시은이 타고난 두뇌와 분석력으로 학교 안팎의 폭력에 대항해가는 약한 소년의 강한 액션 성장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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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시대에게 꿈을 빼앗긴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청량 청춘 케미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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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사적 복수 대행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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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소년소녀들의 유기농 깨발랄 성장기
[차기작]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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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범 | 악의 마음을 읽는 대신 가리기 급급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7살 딸 '소현'(기소유)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 '영은'(곽선영). 수영 강사 일을 하며 혼자서라도 딸을 잘 키워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녀는 버겁기만 하다. 화가 나면 엄마도 칼로 베고, 유치원에서도 친구들을 물리적으로 괴롭히고, 왜 다른 생명을 죽이면 안 되냐고 묻는 소현의 기이한 행동이 좀처럼 끝나지 않기 때문. 엄마의 헌신과 정신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소현이 달라질 기미가 안 보이자, 영은은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다.
20년 후,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고 특수 청소 업체에서 일하는 '김민'(권유리). 그녀는 딸이 잃은 이후 자신을 딸처럼 '현경'(신동미)과 가족처럼 지낸다. 어느 날, 그들 앞에 해맑은 얼굴의 '박해영'(이설)이 나타난다. 가족도 없고, 과거 이력도 알 수 없는 해영이 조금씩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자 민은 그녀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민과 해영이 갈등이 정점에 달한 순간, 그들이 각자 숨기고 있던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악인의 서사를 거세한 스릴러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 잔혹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SNS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구호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애도나 연대보다 가해자의 사연, 수법 및 범죄 결과 등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미디어를 비판하는 구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외침에는 우려도 따른다. 이 구호에 내포된 사회적 악영향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악인의 서사는 때때로 유용하다. 가해자의 서사는 범죄 발생의 개인적, 구조적 원인이나 사회의 모순, 그리고 예방을 위해 필요한 대책까지도 말해줄 수 있다. 일례로 조현병 환자의 살인 사건은 범죄 예방 대책과 보건 복지 대책이 더 끈끈하게 연계되어야 할 필요성을 일러준다. 따라서 그들의 서사를 극단적으로 배제할 경우 동종의 범죄를 예방하고 잠재적인 피해자를 더 많이 구제할 기회를 놓칠 위험이 따른다.
악인이 아닌 사람까지도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경향성도 유발할 수 있다. 악인의 서사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도덕적 확신이 견고할수록 더 많은 서사를 무시할 수 있기 때문. 설령 악인이 아니어도 자신과는 다른 서사를 지닌 타인을 쉽게 배제하고, 악마화할 수 있으니까. 소설, 영화 등을 통해 악인의 이야기를 꾸준히 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게 일부 공감하는 자신을 보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힘을 잃지 않으려는 훈련인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침범>은 단편적이다. 영화는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라는 구호에 충실하다. 악인을 순수악으로 규정하고,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며, 악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어도 일부러 외면하면서 스릴러로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데에만 열중한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악인의 서사를 회피했을 때의 부작용으로 인해 전체적인 완성도에 균열이 생기고, 의도와 메시지에도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케빈에 대하여>와의 결정적 차이
<침범>은 1막과 2막으로 나뉜다. 그중 1막은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연상시킨다. 소재가 같기 때문. <케빈에 대하여>는 사이코패스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고, 그를 두려워하는 엄마 '에마'(틸다 스윈튼)를 보여줬다. <침범>의 1막도 마찬가지다. 엄마 은영은 딸 소현을 키우기가 버겁다. 그녀는 기본적인 사회성도, 선악의 구분도 없는 사이코패스 같은 딸이 무섭다.
그런데 두 작품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악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다. <케빈에 대하여>는 케빈을 타고난 악인으로 규정하는 대신 그의 서사를 보여준다. 원치 않았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처음부터 아들을 두려워하고 밀어내려 한 엄마. 그런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질까 무서워하며 불안정해지고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아들. 영화는 모자의 갈등과 충돌이 사이코패스 살인범 케빈을 낳는 과정을 차분히 훑는다.
<침범>은 정반대다. 소현을 순수한 악인으로 묘사한다. 반려견을 죽이고, 친구들을 공격하고, 엄마도 칼로 베는 그녀의 악행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그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부추긴다.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서사는 명시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소현의 아빠가 가족을 떠날 만큼 그녀의 타고난 기질이 잔인하고 남다르다고 언급하고, 단순한 질투심 정도를 공격적인 행동의 이유로 등장시킬 뿐이다.
반면에 영은의 모성애는 강조된다. 영은은 딸에게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설명하고, 그녀의 공격성을 해소하기 위해 시골 농장에서 닭도 잡는다. 그녀의 헌신은 악인과 그의 서사를 애초에 배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엄마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딸이 변할 기미가 없다 보니 배제의 논리에도 힘이 실리는 것. 이는 1막의 끝을 장식하는 수영장 시퀀스에서 영은이 딸과 함께 자살하려 하는 이유로 이어진다.
장르적으로 거부한 악인의 서사
2막도 다르지 않다. 2막에서도 소현이라는 악인의 서사는 선택적으로 다뤄진다. 그녀가 얼마나 잔혹하고 파렴치한 지를 장르적으로 풀어낼 때에만 포착하면서 영은의 선택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때 핵심은 <화차>를 연상시키는 미스터리다. 1막과 2막 사이에 존재하는 20년이라는 시간의 공백 덕분에 관객은 2막에 등장한 인물 중 누가 소현인지를 알 수 없다. 이 무지에서 비롯된 서스펜스가 2막의 원동력이 된다.
소현처럼 보이는 주인공은 두 명, 김민과 박해영이다. 김민에게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있다. 이 대목은 수영장에서의 자살 시도 후 영은은 입원하고, 소현은 이름을 바꾼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낸다. 한편 갑작스럽게 등장해 김민과 현경 사이에 끼어든 박해영은 과거사가 아예 묘사되지 않는다. 공백으로 남은 개인사는 20년의 공백과 이어지면서 해영을 소현으로 의심하는 근거가 된다.
다만 소현의 정체를 다룬 미스터리는 큰 효과가 없다. 해영의 반복된 악행을 김민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소현의 정체가 일찍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현의 정체를 숨기면 김민이 현경 몰래 가족 행세를 하는지, 아니면 해영이 김민과 현경의 관계에 침범하는지가 헷갈린다. 그러나 소현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 침범의 주체는 명확해지고, 미스터리도 단순 서프라이즈를 유발하는 데서 그친다.
그렇지만 <침범>은 스릴러다운 공포감과 긴장감만큼은 유지하면서 이름값을 해낸다. 타인의 사정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이코패스를 얼굴을 맞대고 마주하는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 특히 직장과 거처를 마련해 주는 호의를 가족을 침범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적의로 되갚는 해영, 곧 소현을 지켜보다 보면 왜 영은이 딸인데도 그녀를 제거하고자 했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읽는 대신 덮다
에필로그에서도 <침범>의 관점은 유지된다. 물가에서 영은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는 소현은 죄책감보다는 세상의 잘못을 토로한다. 엄마가 자기 말에 공감하지 않고, 도리어 수영장에서처럼 물속으로 들어가자고 하자 소현은 영은의 환영을 죽인다. 이렇게 <침범>은 마지막까지 소현의 서사를 단순한 변명으로 치부하고, 그녀를 '순수악'으로 규정하며, 어떤 가족과 사회도 침범할 수 없도록 배제해야 한다면서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러나 이러한 결말은 다소 편의적이고 무책임해 보인다. 소현이라는 악인의 서사를 편린이나마 보여줄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대비를 이루는 물과 불의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물과 불의 차이에 주목하면 순수악처럼 그려지는 소현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소현은 어려서부터 물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두려울 때 솔직해진다"라는 소현의 대사로부터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그녀는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교육받고, 본모습을 드러내면 늘 혼났다. 심지어 그녀의 본모습을 아는 아빠는 가족을 떠났고, 엄마는 자신을 버리려고 했다. 이처럼 솔직해져서는 안 되는 소현이 보기에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물은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감춰야 할 때면 물과 반대되는 불을 선택한다. 가출 후 보육원에서 지낼 때 할머니가 찾아오자 정체를 들킬까 봐 보육원에 불을 지른다. 김민이 자신의 과거를 알아채자 또 한 번 불을 지르고 자신을 숨기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에필로그도 의미가 달라진다. 엄마의 환영을 죽이는 장면에서는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으면서도 동시에 숨기고 싶은 모순된 욕망과 강박이 잔혹함 대신 느껴지기 때문이다.
배제와 회피의 대가
이처럼 극 중 흩어져 있는 파편으로부터 소현의 서사를 읽어내면 <침범>의 내용과 메시지가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녀가 불을 지르지 못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침범>은 소현을 '순수악'의 포지션에 가두면서 그 가능성 자체를 닫아 버린다. 같은 소재를 다루는 <케빈에 대하여>에 비하면 소재의 잠재성을 끄집어내고, 성장시킬 용기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소현의 서사를 일부러 무시한 선택도 역효과를 낸다. 그녀의 악행을 장르적으로 소비하는 과정에서 악인과 관련된 이들의 서사도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침범>은 악인의 서사에 관심이 없지만, 악인의 피해자도 그의 잔혹성을 과시하는 도구로만 활용한다. 즉, 악인의 서사를 무조건적으로 배제할 때 발생할 부작용을 <침범>의 회피적 태도가 보여주는 셈이다.
실제로 소현의 할머니는 은영이 죽은 후에도 소현이를 돌보다가 수 차례에 칼에 찔리고 베인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은 그저 소현의 악함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20년 간 할머니의 일상이 어떤 모습이었지는 다뤄지지 않기 때문. 김민과 해영의 플롯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야기는 20년 간 일관된 소현의 악행을 과시할 뿐이다. 소현이 도망친 후 피해자인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침범>은 장르적으로 즐길만한 스릴러 그 이상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매력적인 소재, 모성애와 사이코패스적 특성을 살려낸 배우들의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색깔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악인의 서사'에 대한 단편적이고, 선택적인 고찰의 부작용이라고 불 수도 있다. 같은 소재를 다룬 <케빈에 대하여>, 비슷한 장르와 구성을 취한 <화차>의 그림자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cceptable 무난함
탐구 대신 덮어두기를 선택한 회피형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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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카보다 달성하기 어렵다는 이것? EGOT!
작년 <기생충>에 이어,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한국 배우 최초로 연기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오스카 시상식은, 북미 할리우드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영화' 시상식으로 알려져 있죠. 사실, 할리우드는 영화뿐 아니라 방송, 음악, 연극과 뮤지컬까지 모든 대중문화 부문을 선도하는 만큼 이와 관련된 시상식 또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각 부문 시상식의 최고라 일컬어지는 Emmy (방송), Grammy (음악), Oscar (영화), 그리고 Tony (극예술), 이 네 시상식을 합쳐 EGOT 이라 합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작곡가인 '리차드 로저스'가 최초로 EGOT 수상을 달성한 이후, 단 15명만이 달성한 이 기록은 '음악' 부문 때문인지 '배우'로서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일례로, 얼마전 제 93회 오스카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수상 기록이 없어 EGOT을 이뤄내지 못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리포터 시리즈의 맥고나걸 교수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전설적인 연기자 '매기 스미스', 올해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로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여우주연상' 경쟁을 펼친 '비올라 데이비스', 갱스터-느와르 장르를 이끈 대배우 '알 파치노', 그리고 자국인 영국과 전 세계 모두에서 인정받는 배우 '헬렌 미렌' 등이 그래미상을 수상하지 못하여 EGOT 달성자 명단에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뮤지컬 및 연극 부문 시상식인 토니상을 수상하지 못하여 EGOT 달성에 실패한 사례가 많은데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이자 <메리 포핀스>인 '줄리 앤드류스', 오스카 7회 지명에 빛나는 <타이타닉>의 '케이트 윈슬렛', 20세기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최고의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 가장 위대한 작가주의 감독 중 하나인 '마틴 스콜세지', 그리고 <스타워즈>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를 비롯한 영화음악 작곡가 '존 윌리엄스'를 비롯한 여러 작곡가들이 있습니다.
각 분야의 최고라 여겨지는 시상식 한 곳에서의 수상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데, 하나도 둘도 셋도 아닌 넷씩이나 수상한 분들은 대체 어떤 분들일지! 한 번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오드리 헵번
Emmy (1993), Grammy (1994), Oscar (1953), Tony (1954)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영화 작품 뿐 아니라, 그녀 자체가 아이콘인 배우 '오드리 헵번'은 연극 <Ondine>로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직접 녹음한 동화로 그래미상을, 그리고 "Gardens of the World with Audrey Hepburn"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에미상을 수상하며 사후에 EGOT을 달성하였다.
우피 골드버그
Emmy (2002), Grammy (1985), Oscar (1990), Tony (2002)
<시스터 액트>로 90년대 초 최고의 인기를 누린 배우 '우피 골드버그'는 "Whoopi Goldberg: Direct from Broadway" 로 그래미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는 흑인 여성으로서 그래미상을 수상한 첫 사례라고 한다. 이후, 뮤지컬 <Thoroughly Modern Millie>의 제작자로서 토니상을 수상하며, EGOT을 달성한 첫 흑인 배우가 되었다.
존 레전드
Emmy (2018), Grammy (2006), Oscar (2015), Tony (2017)
2000년대 최고의 아티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는 '존 레전드'는 음악이 본업인 만큼, 한 번 수상도 힘든 그래미상을 12회나 수상하였는데, 이후 직접 음악 작업에 참여한 영화 <셀마>로 오스카상을, 연극 <지트니>로 토니상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TV 방송으로 에미상을 받아 EGOT을 달성하였다.
로버트 로페즈
Emmy (2008), Grammy (2012), Oscar (2014), Tony (2004)
EGOT을 최연소, 최단기로 달성한 작곡가 로버트 로페즈는 심지어 네 시상식에서 상을 두 번씩 수상하며 더블 EGOT을 달성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머펫 쇼인 <애비뉴 Q>로 토니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 <니모를 찾아서>, <곰돌이 푸>로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음악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2013년, 아내와 함께 <겨울왕국>의 스코어 작곡가가 되어,"Let It Go"로 전 세계를 홀림과 동시에 최연소 EGOT 달성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부부의 두 딸이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녹음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앨런 멩컨
Emmy (2008), Grammy (2012), Oscar (2014), Tony (2004)
오스카상 8회, 그래미상 11회 수상에 빛나는 영화음악의 거장 '앨런 멩컨'은 참여한 극의 특성상 <시네마 천국>의 엔니오 모리코네 혹은 <죠스>의 존 윌리엄스보다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듯싶지만, 곡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작곡가이다. 디즈니가 절정을 달리던 시절, <라이온 킹>, <뮬란>, <타잔>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 참여한 그는, "Under the Sea", "A Whole New World", "Beauty and the Beast" 등 '디즈니'의 대표곡들을 만들어내며 당당히 EGOT 달성자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가장 유력한 EGOT 달성자로 거론되고 있는 분은 바로! 에미상 3회, 골든글로브 3회, 토니상 3회 수상에 빛나는 배우 '글렌 클로즈'입니다. 올해 <힐빌리의 노래>로 윤여정 배우와 함께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그녀는 윤여정 배우가 수상소감에서 직접 영광이라 언급하기도 하여 화제가 되었죠. 이번 노미네이트로 오스카 수상 7전 8기에 실패한 글렌 클로즈는 모든 장르를 소화해내는 명배우이기에, 앞으로 그녀의 EGOT 달성을 조심스레 예측 (a.k.a 기대) 해보는 바입니다.
대중문화에 기여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전 세계 대중문화가 재도약할 그 날까지
영화로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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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레이니 - 그녀가 블루스
마 레이니 - 그녀가 블루스
소품 같은 영화였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영화다. 음악 영화인줄 알았더니, 사실은 흑인 음악가들이 등장하는 흑인의 역사 이야기가 본질인 영화다. 그럼에도 음악은 훌륭하고, 서사는 비극적이다. 미국 흑인들의 삶에 내재된 필연적 비극성이 잘 드러난 수작이다.
'블루스의 어머니' '마' 레이니가 활동하던 1920년대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때였다. '마' 레이니는 1886년 조지아주 콜럼버스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던 1880년대는 흑인이 노예에서 해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것이 1865년이고, 링컨이 이끄는 북부가 전쟁에 이기면서 자연스럽게 흑인은 노예에서 해방되었다. 이미 영국에서는 1833년에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미국 특히 남부에서 흑인 노예는 노동력의 절대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백인 농장주들이 노예제 폐지에 강력하게 반대했고, 이것이 결국 남북전쟁의 빌미가 된 것이다.
'마' 레이니는 1886년에 태어났는데, 흑인음악 블루스는 이때 서서히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블루스의 뿌리가 아프리카라는 건 흑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내용이다. 블루스는 흑인 노예들의 노동요이자 '저항 음악'으로 태어났으며, 흑인이 집단으로 거주한 남부에서 태어나 흑인들의 대이동을 통해 북부로 퍼져갔다.
노예에서 해방되었지만 흑인들은 딜레마에 놓인다. 남부는 농업-주로 면화-이 발달했고, 북부는 공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는데, 북부에서 공업이 가파르게 발전하면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반면 남부의 농업은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덜 필요하게 되고, 흑인들은 생존을 위해 남부에서 북부로 대이동을 한다. 이때 움직인 흑인이 대략 6백만 명이라고 한다.
흑인들은 북부로 이동해 노동자로 변신한다. 남부에서 노예로 살았던 것보다는 조금 나을지 모르지만 - 아니, 어쩌면 더 나쁜 상황에 놓였을 수 있다 - 북부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 역시 노예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북 전쟁이 일어난 원인을 두고 북부의 공업 자본가와 남부의 농업 자본가가 서로의 이권을 지키려는 다툼이라는 것이 정설인데, 북부의 공업 자본가가 승리함으로써 흑인은 노예에서 해방되었지만, 노동자가 되어 착취당하는 본질에서는 변함이 없게 된다.
마치 한국에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군사독재정권이 농업과 농민을 수탈하면서 농산물 가격을 묶어두고, 농민이 생존을 위해 도시로 올라와 공장노동자가 되는 것과 매우 비슷한 과정이 이때 이미 발생한 것이다. 흑인들도 대도시 변두리에 자리 잡으면서 도시빈민으로 전락한다.
1927년, '마' 레이니는 고향 조지아주 콜럼버스를 더나 북부 시카고로 향한다. 시카고에는 파라마운트 레코드사가 있고, 이곳에서 음반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하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초반에 잠깐 콜럼버스에서 공연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이들이 시카고로 와서 음반 녹음하는 작업 과정을 그리고 있다.
흑인 음악인 '블루스'는 '마' 레이니가 태어나던 1880년대 이후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마' 레이니가 시카고로 가서 음반을 녹음하게 되는 배경에는 남부 흑인들이 북부로 대이동해 공장노동자가 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흑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음악인 '블루스'를 듣고 싶어하고, 음반 회사 - 백인들이 운영하는 - 는 흑인 노동자들이 구입하는 음반을 만들어 판매해서 돈을 벌기 위해 당대 최고 유명한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를 초대한 것이다. 이때 음반 회사는 '블루스'를 '인종 음악'이라고 불렀다. 백인들은 여전히 흑인을 차별하고 멸시하고 있지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흑인 가수와 밴드를 존중해 주는 척 할 뿐이다. 극중에서 '마' 레이니의 태도가 매우 공격적이고 불손하게 보이는 것도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마' 레이니는 10대 때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하는데, 18살-1904년-에 결혼하면서 남편 윌리엄 '파' 레이니의 이름과 성을 붙여 거트루드 맬리사 닉스 레이니로 이름을 바꾼다. 남편의 이름에 '파(pa)'가 있어서 자신의 중간 이름에 '마(ma)'를 넣었다.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남부, 남서부 일대를 다니며 공연을 했고, 1920년 무렵에는 이미 전국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이때 그의 나이는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가 최초로 음반을 녹음한 때는 1923년으로, 파라마운트 음반회사와 계약한다. 하지만 그는 1928년에 마지막 음반을 내고, 1933년 그의 나이 47세에 은퇴하면서 더 이상 순회공연도, 음반 녹음도 하지 않는다.
'마' 레이니가 1933년에 은퇴하게 된 배경은 블루스 가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실력이 출중한 가수들이 많아지면서 여성 보컬의 인기가 줄어든 것도 한 원인이 된다. 또한 흑인 음악을 백인들이 가로채 연주하고, 음반을 내면서 흑인 가수들이 설 무대가 사라진 것도 한 원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흑인 음반 제작자가 나타나지만, 초기에는 백인들이 음반 제작자로 '인종 음악'을 만들어 흑인 예술가를 착취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마' 레이니가 음반을 녹음하는 것도 같은 이유고, 트럼펫을 불던 재능 있는 연주자 레비가 작곡한 음악을 단돈 5달러에 하는 백인 제작자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마' 레이니는 블루스 음악의 초기 가수이자 음반을 낸 가수로 '블루스의 어머니'로 일컬어진다. 이 영화는 '마' 레이니가 음반 녹음을 하러 와서 발생하는 반나절의 시간을 그리고 있는데,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무대연극 분위기가 강하게 드러난다. 이 영화의 원작이 희곡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원작은 어거스트 윌슨의 희곡이다. 윌슨은 희곡작가이면서 60년대 흑인 민권운동에 적극 참여한 인물이고, '흑인 행동주의자 극단'을 창설해 흑인운동의 일환으로 희곡을 쓰고, 연극을 발표한 실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1982년 작품 '지트니'로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진출했고, 이 영화의 원작인 '마 레이니의 검은 궁둥이'를 1984년에 발표하면서 뉴욕비평가상을 받는다. 이후 1987년, '펜스'로 퓰리처상, 뉴욕연극비평가상을 받으면서 유명 작가의 자리를 굳힌다.
연극으로 이미 크게 성공한 작품이고, 영화로도 잘 만들었다. 이 영화의 제작자로 덴젤 워싱턴이 참여했는데, 그도 '마' 레이니의 존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고 말한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마' 레이니와 그의 밴드가 시카고에 도착해 음반회사의 녹음실에서 음악을 녹음하고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이야기는 밴드 연습실에서 밴드 멤버들끼리 나누는 이야기에 있다.
'마' 레이니와 백인 음반 제작자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과 갈등은 영화에 긴장을 불어 넣는다. 아직 '세계대공황'이 닥치지 않은 때여서 거리는 약간의 여유가 보이는데, 스쳐가듯 보이는 시카고의 거리나 상점에서는 흑인과 백인의 구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이들이 함께 섞이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백인 음반제작자는 '마' 레이니의 까다로워 보이는 요구를 모두 수용하면서 음반 제작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음반을 만들기만 하면 흥행은 완전하게 보장되기 때문에, 음반회사의 제작자인 백인의 입장에서는 하찮은 흑인이라 해도 큰돈이 되기 때문에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밴드 연습실에서는 네 명의 흑인 연주자들이 연습한다. 트럼펫, 더블베이스, 트럼본, 피아노를 맡은 연주자들이다. 이들은 노인에서 청년까지 폭넓은 연령대를 보이며, 하루 일당 25달러를 받고 연주를 하는데, 그나마도 이들은 괜찮은 처지였다.
트럼펫을 부는 레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나이가 있다. 털리도, 커틀러, 슬로드래그는 밴드 활동을 오래 한 사람들이고, 자신의 직업에 비교적 만족하고 있다. 레비는 재능 있는 트럼펫 주자이면서 작곡도 하고, 자신의 밴드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큰 청년이다. 이들은 '마' 레이니의 노래에 맞는 밴드 연습을 하는데, 레비는 자신의 연주 방식을 고집한다. 연주하면서 애드립도 많고, 기존의 전통 형식의 블루스에서 보다 빠르고 경쾌한 인트로를 넣으려 한다. 이들이 겪는 음악적 갈등은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기도 하다.
레비를 제외한 세 명의 나이든 흑인은 백인이 지배하는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체념한 삶을 살아간다.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주어진 흑인의 삶에서나마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레비는 자신이 백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렸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레비의 아버지는 어렵게 돈을 모으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넓은 땅을 매입한다. 농사를 지어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꿈이었던 레비의 아버지가 며칠 외출할 일이 생겼고, 그 사이 백인들이 집으로 쳐들어와 레비의 어머니를 강간하고, 레비의 가슴을 칼로 찔러 죽을 뻔한 경험이 있었다.
집에 돌아온 레비의 아버지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렵게 마련한 땅을 그들 백인 - 아내를 강간한 백인 - 에게 팔고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다음, 레비의 아버지는 혼자 몰래 고향을 찾아가 네 명의 백인을 살해하고 잡힌다. 레비의 아버지는 산채로 화형을 당하면서도 백인을 향해 웃었노라고 레비는 말한다.
레비의 뒤를 이어 커틀러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흑인 목사가 기차역에 도착했지만,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이미 기차가 떠난 뒤여서 망연하게 있었는데, 건너편에서 백인들이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걸 알고 기차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는 목사여서 성경책을 들고 있었지만, 백인들은 흑인 목사를 '깜둥이'라고 불렀고, 성경을 뺐어 찢어버렸으며, 조롱한다. 이때 레비가 커틀러의 말을 가로막으며 흑인에게 '신'은 없다고 말한다. 불행한 처지에 놓인 흑인을 도와준 신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이 대목이다. 흑인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와 원하지 않는 삶을 강제당한 흑인의 처지와 백인에게 억압, 착취당하는 존재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강하게 들어 있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블루스'를 노래하는 '마' 레이니의 삶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살았던 당대의 흑인의 삶을 그린 것이다. 그들에게 블루스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사회에 저항하는 언어이기도 했다. '마' 레이니는 이렇게 말한다. "노래는 기분 좋으라고 하는게 아냐,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하는 거지." 블루스를 이해하면, 흑인의 삶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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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승완이 '밀수' 해온 바다 위의 한판승부
밀수를 시작하지
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 가상의 해안가 도시 군천이다. 주인공인 춘자와 진숙은 해녀 동료들과 함께 평화로운 삶을 보내고 있다. 두 사람은 친구들과 해녀 일을 하면서 바다생물을 채취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두 해녀의 삶에 위기가 들이닥친다. 군천 앞바다에 공장이 생긴다는 소식이었다. 공장이 들어서자 생계에 위협이 생기는 해녀들. 바다생물이 폐수로 인해 더러워졌기 때문에 제품으로 판매하는 것이 쉽지 않다. 위기에 직면한 군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오랫동안 진숙과 알고 지냈던 아저씨 한 명이 있다. 이 아저씨가 진숙 부녀에게 밀수업을 제안한 것이다. 솔깃한 춘자. 하지만 진숙 부녀는 썩 내키지 않는다. 그건 단지 부녀의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다. 군천이라는 마을 자체가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밀수업 제안을 수락한다.
돈을 갈퀴에 긁어모으고 있다. 지역사회에 돈이 돌고 있다. 이제 진숙 부녀에게 생계는 더 이상 큰 문제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문제가 아예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불안한 엄 선장. 언제 어디서 경찰이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늘 그만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는 딸 진숙에게도 마찬가지. 아버지를 항상 잘 따랐기 때문에 가족의 의중이 정말 중요했다. 동상이몽이라고, 친구 춘자는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밀수업으로 돈을 버는 게 그렇게 썩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내심 밀수업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녀. 정말 마지막이라는 말에 속상하지만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마지막 밀수를 위해 출항을 나섰다. 그런데 사고가 벌어졌다. 늘 느릿느릿 출동하던 세관이 갑자기 등장했고, 해녀들이 모두 잡혔다. 과연 해녀들을 세관 찌른 인물은 누구일까? 군천 해녀들의 한판승부가 벌어진다!
최동훈이 아니라 류승완
2년 만에 돌아온 류승완 감독의 신작 <밀수>는 감독의 향을 맘껏 결부시킨 액션/스릴러물이다. 류승완은 이미 한국영화에서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왔다.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시작해 ‘한국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 것 같은’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이 <밀수>는 기존에 류승완 월드를 그대로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류승완이 그대로 유지해 온 ‘류승완 월드’는 고급스럽지 않은 척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영화는 이 기본적인 류승완 월드의 틀을 그대로 가져온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박력 넘치는 캐릭터 세팅과 이야기 구성을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의 힘을 강하게 신뢰한다. 가상의 도시 군천은 물론이고 당시 시대상에 의한 ‘밀수’라는 소재가 ‘왜 이 이야기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준다. 류승완이 판을 합리적인 판을 깔아놓고 그 연계를 튼튼히 해 감독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렸다.
하지만 ‘단지 류승완 영화’라는 점은 영화의 장점이면서 단점으로도 작동한다. 우선 영화에서 장점으로 뽑을만한 것은 이야기다. 영화의 이야기 구성에 누수가 없다.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 내적인 논리가 큰 흐름에서 잘 맞아떨어진다. 인물의 사용이 기능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반대로 인물의 서사를 영화 내적으로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에 대해 류승완 감독이 춘자/진숙 쪽에 분량을 많이 주는 수를 뒀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굉장히 내밀하다고 볼 수 있는 지점까지 대사로 넣었다는 점은 ‘과연 류승완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하는 구조다. 이 구조는 다른 등장인물에게도 수혜로 작용한다. 권상사/고마담/장돌이/이 계장이 두 사람과 대응한다는 점에서 캐릭터의 개성이 생긴다. 두 사람의 내적 동기도 이해하니 이야기 몰입에 효과적인 것이다.
심심한 컴백
또한 이 영화의 이야기는 그동안 류승완이 견지해 온 이야기의 박력을 품고 있다. 감독의 전작인 <베테랑>의 이야기는 왠지 과잉의 에너지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특히 장윤주, 오달수 배우가 맡은 역할이 그렇다. 작중에서 조태오가 맡았던 역할만 봐도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담당 배우나 황정민 배우의 연기는 연극적이다. 이 연기 톤은 영화 내적으로 시너지가 있다. 영화 후반부까지 액션/스릴러물의 장르적인 동력으로 작동하며 관객에게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이는 연기 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짝패>나 <피도 눈물도 없이>는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액션신으로 가득 찼던 작품이다. 전자 <짝패>는 이야기를 교차해서 꼬는 것이 아니라 액션으로 가득 채운 영화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여성 인물의 처절한 액션을 너절한 대사와 함께 표현한다.
이 <밀수>는 류승완의 장점을 그대로 구현한 듯 보인다. 영화 중후반부에 분기점 찍고 이야기의 톤에 박력이 들어간다.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액션신은 과연 충무로 키드가 어디 안 갔다는 걸 다시 상기시켜 준다. 또 후반에 특정 장소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관객에 따라서 신선하다고 느낄 여지가 충분하다. 영화의 단점은 ‘오히려 류승완스럽다’라는 점에 있다. 사실 이 작품의 단점은 전작 <모가디슈>와 <군함도> <베를린>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올드하다. 이야기 모든 것이 다 적당하다는 점은 무난한 선에서만 끝나지 않았던 류승완의 드라마 제작 능력을 알기에 아쉽게 느껴진다.
모든 것에 단점이 있다지만
특히 류승완의 이야기에서 인공성이 느껴진다는 점이 이 작품에서 유달리 도드라졌다. 이야기에서 영화의 강점이 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고민시 배우가 맡은 고마담이다. 이 인물은 감독의 역량이 그대로 투영된 캐릭터로 보인다(<베테랑>에서 장윤주 배우가 맡았던 역할의 연장선상인 부분이 어느 정도 있다). 이 감독의 캐릭터 투사는 인물의작위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인물이 한 가지 장점에 의존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 또 이를 대사로 직접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이야기의 인공성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춘자-진숙이 케미를 보여주며 빌런들을 해치우는 것이 영화가 선택한 장르적인 특성 중 하나다. 이 특성과 이 인물의 설정이 맞지 않아 중반부가 넘어가면 좀 지루하다고도 느낄 여지가 있다. 패턴이 전형적인 것이다. 또 박정민 배우가 맡은 장도리 역에 대해서는 역시 장르적인 특성을 위해 디테일을 희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후반부 이 인물에 대한 부분은 스릴러물로, 또 한 클리셰를 비틀기 위해 인공적으로 전개된 부분이다. 이 장도리 캐릭터와 관련된 부분은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진주인공의 엄청난 퍼포먼스가 이 인물의 작위성을 어느 정도 가려준 감이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사건관계가 하이라이트를 위해 전시되기만 한 건 아닌지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야기의 후반부를 영화의 장점으로 뽑을 관객분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글쓴이는 그 중간에 변곡점 찍는 신의 액션에 비해, 이야기의 밀도를 쌓아 올리는 방식에 비해 단점으로 느껴진다. 물론 이곳이어야 하는 근거는 있다. 이 과정이 매끄러웠나? 에 대한 것은 의문이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이곳에서 벌어지는 액션이 매끄러웠나? 역시 의문이다. 류승완이 액션을 그동안 잘 만들어왔고 심지어 그전 장면에서 장소성을 잘 살렸다는 점에서 필모그래피 초반의 류승완의 기시감이 잘 안 느껴지는 지점이다. 전체적으로는 물론 이 시퀀스의 액션이 좋긴 했지만 딱 두 요소에서 영화의 단점으로 느껴지는 장면이 있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엔딩신은 너무 갑작스럽게 결론을 냈다. 이런 요소들이 오히려 이 이야기가 ‘류승완스럽다’라고 느껴지게 만드는 부분이다. <모가디슈>에서 느껴졌던 아저씨스러움과 <베테랑>의 과잉, <군함도>의 조급함이 ‘이거 류승완이 만들었던 전작을 그대로 담습 하는 것 같네’라는 아쉬움을 낳은 것이다.
재미있나요라고 물으면 네
영화 재미있다. 무난하게 뽑힌 액션/스릴러물이다. 영화의 장단점을 따질 필요 없이 작품 자체가 ‘순수한 오락영화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가 아는 한국 상업영화에서 ‘잘 만들었다’ 싶으면 들어가는 것들 다 있다. 오해, 액션, 생기발랄한 캐릭터, 빌런의 명연기, 톡톡 튀는 감초들에 무난한 이야기까지 이 작품이 관객을 많이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는 점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의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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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회가 연결해 준 두 남녀의 끝
삶은 늘 의도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방향으로 가려고 애쓰지만 그것은 조금씩 틀어져 어느 정도의 시점이 지나고 돌아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위치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다. 그때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써도 그 방향은 잘 틀어지지 않는다. 정말 운이 좋다면 방향을 틀어 조금 더 자신이 바라던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여러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그 자리에 머무르거나 혹은 더 안 좋은 일들을 경험하며 더욱 위축되게 된다. 이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의 한 모습이다.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삶의 방향을 바라보고 현재의 삶을 지탱해가지만 어떤 시점에서는 실패를 각오하면서 바라보는 방향을 바꿔야 하는 때가 온다.
그렇게 자신이 어떤 방향을 바라보는 그때, 옆에는 가족이 있다. 힘든 시기를 지날 때 가족은 그것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리고 그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본모습을 잃지 않게 해주는 것도 가족이다.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기운을 주는 그 가족 앞에서는 어려움을 감추고 웃는다. 그렇게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바라보는 삶의 방향이 비록 어려울지라도 나아갈 동력이 생긴다. 그래서 더욱 가족을 지키려 하고 자신이 하는 일과는 분리시키려 한다. 그렇게 삶과 일을 분리하면서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것이 어쩌면 가장 좋은 모습일지 모른다.
영화 <낙원의 밤>은 누아르 장르를 통해 삶의 방향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태구(엄태구)는 한 조직에서 꽤 오래 일을 해온 인물이다. 조직 내에서 중간 정도의 계급으로 보이는 그가 병원에서 누나(장영남)와 조카를 만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가족을 만나고 맞이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가족을 아끼는지 볼 수 있다.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을 치는 그는 퉁명스러운 누나의 태도도 잘 받아주면서 따뜻한 태도를 유지한다. 어떤 질병으로 인해 시한부 선고를 받은 누나에 대한 연민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가진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런 따뜻함을 불러왔을 것이다. 비로소 누나와 조카가 차를 타고 출발했을 때, 그의 얼굴은 어둡게 변한다. 그 표정이 바로 그가 일을 처리하고 대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이 얼마나 어두운 일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철저히 그의 일과 가족을 분리시키면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병원에서 집으로 가던 누나와 조카가 차량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그가 보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어져 버린다. 그렇게 그에게는 일만이 남았고 그것이 조직싸움 과정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가 보는 삶의 방향은 완전히 틀어져 버린다. 영화 속에서 태구가 가족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는 장면은 매우 건조하고 빠르게 연출되었다. 즉 이 영화가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복수를 한 이후 태구가 받는 여러 가지 리액션을 보는 것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태구가 속한 조직과 관련하여 양사장(박호산)은 태구가 지지하는 중간보스이며 그 대척점에 서있는 마이사(차승원)는 태구가 피해야 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복수가 마무리된 후, 태구는 제주도의 무기밀매상 쿠토(이기영)와 그의 조카 재연(전여빈)의 집에서 머무르게 되는데 태구의 목적은 이제 조직의 일에서 벗어나 한국을 떠나는 것이다. 쿠토의 집에서 만나게 되는 재연은 태구의 누나와 비슷하게 치료가 어려운 질병에 걸려 곧 죽음을 맞이하는 시한부 캐릭터다. 그는 태구를 환영하지는 않지만 아주 밀어내지도 않는 인물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제주도에서 도피생활을 하는 태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이제 자신이 바라보는 삶의 방향이 없는 듯 그저 공허한 눈빛으로 제주를 돌아다닌다. 시한부 소녀 재연과 태구가 대화를 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게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 같다. 재연과 그의 삼촌 쿠토는 서로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으로서 서로를 굉장히 의지한다. 무기밀매 일을 하고 있는 쿠토가 못마땅하지만 재연은 한 편으로는 삼촌을 잃을까 걱정을 하는 인물이다. 쿠토는 조카의 질병을 낫게 하려고 해외의 유명 병원에서 수술을 시키려 무던히 애쓴다. 이 가족에게 갑자기 나타난 태구는 어찌 보면 불청객이다. 반대로 태구가 재연을 볼 때는 누나와 조카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시한부였던 누나처럼 재연도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삼촌의 일은 싫어하지만 삼촌을 의지하는 재연의 모습에서 태구의 어린 조카가 떠오른다.
영화 <낙원의 밤>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건, 태구와 재연의 관계다. 전혀 연결점이 없을 것 같은 그들이 서로 만나 대화하면서 상대방에게 가족의 모습을 본다. 물회는 영화 안에서 꽤 의미 있는 음식이다. 삼촌과 함께 생활하면서 먹게 된 물회는 재연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며, 태구에게도 어릴 적 엄마가 해줬던 음식이어서 엄마의 맛이 담긴 음식이다. 그래서 그들은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물회 집에 가서 음식을 먹으며 가족의 맛을 느낀다. 그 맛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작은 연결고리가 생긴다. 어찌 보면 태구와 재연은 연인의 감정보다는 삼촌과 조카의 모습을 서로에게서 보는 것 같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연결된 감정은 더욱 강해지고 서로를 유사가족처럼 느끼고 서로에게 기대도록 만든다.
영화 전반적으로 밤에 벌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영화의 제목이 <낙원의 밤>인 것은 휴양지인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나쁜 일들을 담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우리가 아는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화면에 거의 비추지 않는다. 그저 바닷가 어딘가의 휴양지라는 느낌이 강하다. 태구와 재연은 가족의 맛이 나는 음식을 먹고 바닷가 옆의 휴양지에서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의 삶에 더 이상 밝은 낮은 없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 태구의 삶도, 재연의 삶도 더욱 어두운 밤으로 계속 빠져든다. 태구는 질병으로 인한 시한부는 아니지만 외적인 영향으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며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그의 눈빛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다소 어둡고 정적으로 촬영된 제주도의 풍경은 이런 두 주인공들의 비극을 느낄 수 있게 깨끗하고 조금은 건조하게 찍혔다.
영화 <낙원의 밤>은 범죄 조직에서 일하는 한 남자가 겪는 일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조직에서 발생한 범죄, 복수극을 기본적으로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초반 이후 태구와 재연의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비추고 있어 누아르 장르의 분위기가 많이 퇴색되었다. 또한 비극적인 상황에 두 사람을 넣어 감정적인 부분을 관객에게 전달하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과정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된다고 볼 수는 없다. 즉, 영화 속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의미 있는 관계가 되지만 관객에게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완전히 전달되지 않아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또한 범죄물과 복수 물이라는 긴장감 역시 잘 전달되지 않아 결말부에 다다를 때까지 영화가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모든 인물이 알고 보면 각자의 접점이 있어 연결되고, 영화의 말미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지만 그런 정리의 깔끔함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조직 내에서 태구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양사장이라기 보다는 마이사일 것이다. 마이사는 양사장의 계획 때문에 태구를 죽여야만 하는 그 상황에 대해 계속 투덜대는데, 정작 영화에는 양사장을 죽일 수 없는 이유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으면서 조직에서 큰 힘이 없는 태구를 희생시켜서 얻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마이사가 영화에 등장하는 중반부터 영화에 긴장감을 넣으려 애쓰지만 그것이 크게 효과적으로 발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 배우 차승원의 연기는 그동안 관객들이 많이 보아왔던 차승원의 농담 반 진담 반인 예능 캐릭터와 겹쳐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얄미운 역할을 맡은 배우 박호산의 연기가 더 악독하게 느껴진다.
주연을 맡은 배우 엄태구의 연기는 좋지만, 그가 가진 특유의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처럼 대사를 하는데, 이 대사가 너무 작아, 관객들에게 한 번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재연 역을 맡은 배우 전여빈은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 결국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마는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은 데뷔작 <신세계>로 앞으로가 기대되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VIP>, <대호>, <마녀> 등의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고, 이번 신작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상황이어서 향후 연출작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낙원의 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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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스턴스>는 그냥 툭 튀어나온 작품이 아니다.
‘REMEMBER YOU ARE ONE’
소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한 대스타였던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50살이 된 날 더 이상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며 에어로빅 TV 쇼에서마저 해고당한다. 차 사고로 실려간 병원, 수상하지만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권유받은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주입하고 젊고 아름다운 여성 수(마가렛 퀄리)의 몸이 탄생한다. 규칙은 단 하나, 7일 주기의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주제와 장르
‘서브스턴스’ 포스터 속 엘리자베스(데미 무어)의 척추를 타고 찢어진 등판에 대충 어떤 영화인지 감을 잡은 것 같겠지만,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서브스턴스’는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비판과 인간의 본질이라는 강력한 주제 의식과 더불어 강력한 컬트와 바디 호러의 장르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위 장르에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도전해 봐야 하는 영화이다.
연예계와 한물 간 스타라는 설정으로 외모지상주의에 지배된 세상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 ‘사랑과 영혼’의 대스타였던 데미 무어가 세월이 흘러 60세의 나이로 주연을 맡은 것도 영화에 몰입도를 더한다. 방송국 사장 하비(데니스 퀘이드)가 새우를 게걸스럽게 뜯어 먹으며 싱그러운 여성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이 듦을 인정하지 않는 타인에 거부감을 느낀다. 이후, ‘서브스턴스’ 약물로 수(마가렛 퀄리)가 태어난다. 'PUMP IT UP' 노래에 맞춰 춤을 출 때 탄탄하고 아름다운 몸을 노골적인 앵글로 담아 보여준다. 이걸 본 모두는 수(마가렛 퀄리)에게 매혹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엘리자베스(데미 무어)조차도 말이다. 7일간 늙고 섹시하지 못한 자신을 자학하며 피폐해져가는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그리고 7일 뒤 등장하는 어리고 섹시한 수(마가렛 퀄리)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관객 역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아름다운 외모를 추구하는 타인을 비판하다가도 스스로 늙은 몸을 배척하고 젊고 아름다운 몸을 탐하는 주인공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아이러니하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관객을 극단의 극단으로 몰고 간다.
<리얼리티+>, (2015, 코랄리 파르자)
단편 영화에서부터 감독의 강력한 주제 의식이 드러난다. 주인공 남자(빈센트 콜롬보)는 일 12시간만 활성화되는 프로그램 ‘리얼리티’를 몸에 심는다. 목덜미에 프로그램을 이식한 사람들끼리는 ‘리얼리티+’가 활성화되는 동안 자신이 설정한 매력적인 외형으로 보인다. 같은 칩을 심은 사람들 모두가 자신이 꿈꿔온 완벽한 외모로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남자는 ‘리얼리티+’를 활성화 중인 카페에서 일하는 여자(바네사 헤슬러)와 눈이 맞아 연애를 시작한다.
‘일주일이라는 완벽한 밸런스’
아름다워지기 위한 규칙은 이때부터 시작이다. 하루 12시간만 활성화되어 프로그램이 꺼지는 순간, 주인공은 자신감을 잃고 인파로부터 도망친다. 매력적인 외형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비활성화가 되는 순간, 서로에게서 도망치는 두 남녀. 데이트에 차질이 생기고, 집에서 자괴감에 빠져가던 남자는 테라스에서 옆집에 사는 여자(아우렐리아 포이리어)에게 매력을 느낀다. 주인공은 본래의 모습으로 옆집 여자와 즐거운 데이트를 시작한다.
영화의 결말, 남자가 여자(바네사 헤슬러)에게 전화를 걸자 옆집 여자(아우렐리아 포이리어)의 핸드폰이 울리고, 서로임을 알게 된다. 끌림에 외모는 중요치 않다는 것, 하지만 모두가 미를 추종한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리벤지> (2017, 코랄리 파르자)
이 영화에서부터 감독의 매운맛이 점점 드러난다. 바비인형의 외모를 가진 제니퍼(마틸다 안나 잉그리드 루츠)는 애인의 사냥 행사에 동행하다 아름다운 제니퍼에게 눈독을 들인 애인의 친구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사실을 알게 된 애인은 합의를 종용하다가 결국 친구들의 편에 서고 제니퍼를 죽인다. 독을 통해 부활하게 된 제니퍼는 복수를 시작한다.
관음, 방관하기만 하던 남자는 두 눈을 찔려 죽고,
욕구를 못 이기고 성폭행을 한 남자는 정확히 머리에 총을 맞아 죽고,
아름다운 제니퍼의 몸만을 탐하던 애인은 나체로 복부에 총에 맞아 죽는다.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코랄리 파르자 감독에겐 자비가 없다.
오마주
컬트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장면들이 다수 존재한다. 컬트 대가들에 대한 다양한 오마주로 스타일리스트 연출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겠다. 엘리자베스(데미 무어)와 수(마가렛 퀄리)가 세트장을 향하여 가는 붉고 긴 복도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을 연상시킨다.
수상한 젊은 남성 간호사가 건넨 ‘It’s changed my life.’ 명함 속 번호로 은밀하게 전화를 거는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하관을 클로즈업한 장면은 지난 17일 부고 소식이 들려온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로스트 하이웨이’를 연상시킨다.
포스터에서 가장 궁금증을 유발하던 척추를 타고 갈라진 엘리자베스의 피부, ‘서브스턴스’ 약물을 주입하자 척추 사이로 수(마가렛 퀄리)가 출산된다. 이는 세대를 풍미한 ‘에일리언’을 떠올린다. 감독의 전작 <리얼리티+>에서도 등장하는 이미지이다.
온 극장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아메리칸 뉴웨이브를 위시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캐리’를 연상시킨다. 이 장면을 위해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몇 톤의 붉은색 액체를 준비했다고 한다. 컬트와 호러 영화에 대한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존경과 찬사를 듬뿍 느낄 수 있다.
마무리
자기혐오로 똘똘 뭉쳐져 어긋나는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를 보며 우리는 극도의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하비(데니스 퀘이드) 사장 같은 속세적 타인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보다도 우리 자신에 대한 편견과 불안함, 더 나은 나를 원하는 자기혐오적 사고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어리고 섹시한 여성을 노골적으로 원하는 남성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엘리자베스(데미 무어)와 수(마가렛 퀄리)의 충돌을 고어라는 과격한 방식으로 표현하며 여성 개인의 내면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본다. 편견에 가득 찬 세상을 비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편견에 집착하는 개인을 비판하기에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다.
3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영화
엘리자베스, 수, 그리고 무엇일지 궁금하다면
141분이라는 러닝타임의 고어를 견딜 수 있다면 당장 체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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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레틱](2025)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긍정 or 부정 (1)
Chapter 2 긍정 or 부정 (2), 두 자아, 상승과 하강
00:00 A24와 헤레틱
00:41 종교와 영화
02:02 신앙 부정
06:15 눈과 나비
07:24 신앙 부정
08:34 두개의 자아
09:11 상승과 하강
10:08 별점 및 한 줄 평
10:26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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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메이의 새빨간 비밀> 티저 예고편
화났을 때 더 귀여운 [메이의 새빨간 비밀] 티저 예고편 공개!
메이 진정해! 아냐 진정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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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블랙핑크 더 무비> 공식 예고편
전 세계가 사랑하는 걸그룹 ‘블랙핑크’가 데뷔 5주년 기념 영화
‘블랙핑크 더 무비(BLACKPINK THE MOVIE)’를 통해 선물과도 같았던 지난 추억을 회상한다.
가장 블랙핑크다운 모습, 가장 빛나는 순간지수, 제니, 로제, 리사 4인 멤버로 구성된 블랙핑크는 2016년 8월 8일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후 팬덤 ‘블링크’와 함께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왔다.
숨 가쁘게 달려온 5년 동안, 지나온 시간만큼 차곡차곡 쌓인 추억들, 그리고 무대에서의 기쁨.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언제나 함께했던 팬들과 나누는 영화가 바로 ‘블랙핑크 더 무비(BLACKPINK THE MOVIE)’이다.
영화에는 데뷔 후 5년간의 추억을 함께 나누는 ‘기억의 방’, 개성이 뚜렷한 4인의 강렬한 이미지 컷이 담긴 ‘Beauty’, 팬들에게 전하는 ‘미공개 스페셜 인터뷰’ 등 오롯이 그녀들에게 집중된 이야기가 다양한 시퀀스에 담겨 펼쳐진다.
또한 국적과 성별을 초월해 뛰어난 퍼포먼스로 세계를 사로잡은 가장 ‘블랙핑크’다운 무대가 극대화된 현장감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극장 최적화로 재편집된 2021년 ‘THE SHOW’ 및 2018년 ‘IN YOUR AREA’ 공연 실황을 포함해 10여 곡이 넘는 블랙핑크의 히트곡 무대와 리허설 과정, 공연을 준비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담은 ‘블랙핑크 더 무비(BLACKPINK THE MOVIE)’는 전 세계의 ‘블링크’와 블랙핑크가 함께하는 ‘우리들의 파티’같은 시간을 선사할 단 하나의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