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3-05-28 07:27:44
존엄사는 진정으로 '존엄'한 것인가
영화 <플랜 75> 리뷰
글로벌 프로젝트인 10년 프로젝트를 아는가?
2015년 홍콩에서 시작되어 대만, 태국, 일본에서 진행된 글로벌 제작 프로젝트이며 10년 후의 각자의 나라를 감독들이 단편으로 만들어 엮은 옴니버스 영화이다.
전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이 프로젝트 중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수입 및 개봉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플랜 75>는 이 중 동명의 단편을 동일한 감독이 장편화한 영화이다.
멀지않은 미래,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75세가 되면 국가에서 안락사를 권장 및 지원하는 "플랜 75"라는 제도가 생기게 된다.
플랜 75 제도를 활용해 안락사를 준비하는 노인들과 속에서 근무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안락사, 존엄사는 현재 일부 국가에서 불치병이나 말기 환자에 한해 실행되기도 하는 만큼 현실에 대입해 많은 고찰을 하게 만든다.
동시에 국가 체제에서 엄연한 죽음을 권장하고 지원하며, 그로 인해 무언으로 안락사를 떠미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야말로 공포영화 그 자체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존엄사가 진짜 존엄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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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 나이트> 난해함에 가려진 현대적 고전의 진면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그린 나이트>는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J.R.R. 톨킨이 현대어로 정리한 영국의 두운시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사실 이 영화는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비록 아서 왕 전설에 속하지만 원작 자체가 아서와 엑스칼리버, 랜슬롯과 귀네비어의 사랑, 성배 찾기와 같은 굵직한 에피소드에 비해 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린 나이트>는 난해하다. 일반적인 판타지 작품에서 기대할 법한 화려한 액션은 없다. 대사도 많이 등장하지 않으며, 간간히 나오는 대사들마저 함축적이거나 중의적인 경우가 많다. 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목 베기 게임, 여인의 유혹, 획득물 교환 게임과 중간중간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미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이처럼 일반적인 화법을 따르지 않는 <그린 나이트>는 혼란스럽다.
하지만 마치 조개껍데기를 벗겨낼 때 숨어 있는 진주를 발견할 수 있듯이, 인상적인 영상미를 통해 혼란스러움과 불친절함도 하나의 감상 포인트로 받아들일 때 <그린 나이트>의 감상은 극적으로 달라진다. 이러한 느낌은 진정한 기사로 거듭나는 가웨인의 여정에 관객들이 스스로를 대입시키는 효과적인 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아서 왕(숀 해리스)'의 조카라는 이유로 원탁에 앉을 수 있었던 '가웨인(데브 파텔)'은 원탁의 다른 기사들처럼 위대하고 아름다운 무용담을 가지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런 그 앞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나타난 '녹색 기사(랄프 이네슨)'는 자신의 목을 내리치고, 그 대가로 1년 뒤 녹색 예배당으로 가서 녹색 기사에게 똑같이 목을 내리치는 도끼날을 맞는 게임을 제안한다. 가웨인은 이 '목 베기 게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진정한 기사로 거듭날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는 녹색 기사의 도끼로 그의 목을 내리치고 정확히 1년이 지난 후 녹색 예배당으로 향하는 여정에 나선다.
모험 중에 가웨인은 도적, 여인, '성주(조엘 에저튼)', 여우 등을 만나고, 그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기사도의 여러 덕목을 착실히 배워나간다. 이때 영화는 그가 관대함, 신의, 순결, 예의범절, 그리고 연민 등을 배우는 것보다 그 덕목 앞에서 자신의 끓어오르는 욕망과 삶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못한 채 갈등하는 모습에 주목한다. 원탁의 기사이자 영웅인 가웨인 이전에 자아를 사로잡은 혼란 때문에 괴로워하며 도망치려 하는 한 명의 연약한 인간을 그려내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에셀'과 '귀부인' 역을 동시에 맡은 이유이기도 하다. 가웨인의 연인인 에셀은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그로 하여금 가책을 느끼게 하고, 그를 유혹하는 귀부인은 그가 기사가 되기에 인간적 약점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한 명은 과연 그가 기사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다른 한 명은 그가 기사가 될 만한 재목인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그렇게 그녀들과의 만남과 이별은 가웨인이 녹색 기사와 재회하기 위한 여정을 지속할 것인지, 즉 기사로 거듭날 것인지를 결정하는 분기점이 된다. 이에 가웨인은 연인과의 사랑을 유지할 것인지, 그리고 유혹에 넘어갈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면서 고귀하고 진실한 인간이자 기사로 성장한다.
이처럼 기사도를 배우고 기사로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린 나이트>는 마치 기독교적 윤리로 가득한 작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실제로도 게르만 족이 잉글랜드 섬을 침략하자 브리톤 족이 이에 맞서 싸웠던 아서 왕 전설의 역사적 배경이 가웨인의 여정에 투영된 기독교적 흔적 영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당장 영화의 첫 대사부터가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어요"이고, 이 대사는 가웨인의 방탕함과 대조를 이루면서 영화가 가웨인의 속죄와 회개, 그리고 참회를 다루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서 왕의 왕관은 성화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성인들 뒤를 비추는 후광을 본뜨고 있으며, 이는 캐멀롯 왕궁의 상징인 원탁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기독교적 세계관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녹색 기사가 기독교의 상징인 캐멀롯 왕궁에 난데없이 나타나 게임을 제안하는 모습은 이교도 대 기독교도의 대결 구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녹색 예배당에서 가웨인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십자가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뉘우치는 그의 모습에서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와 사도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명백히 들리고 보이는 것과 달리 <그린 나이트>는 가웨인의 모험을 평면적이고 교훈적인 성장담으로 결론짓지 않는다. 영화는 상징이나 이미지에서 두드러지는 기독교적 배경에 비하면 자연과 이교도, 마법과 켈트족의 신화에 힘을 주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그들의 존재감을 노출한다. 가웨인이 녹색 기사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으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완결 짓지 않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가웨인의 어머니인 '모건 르 페이(사리타 초우드리)'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지만 언제나 그림자 속에서 가웨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도적떼와 붉은여우부터 거인과 눈을 가리고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노파에 이르기까지 가웨인을 유혹하거나, 낙담시키거나, 알 수 없는 조언을 건네는 이들의 정체도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그 결과 <그린 나이트>는 신의 말씀에 충실하고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자아를 성찰하고 새로운 삶의 기준을 찾는 입체적인 작품으로 거듭난다. 가웨인이 마주한 인물들이 그를 유혹하거나 방랑으로 이끈다 해도 영화는 그들의 존재가 악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기존의 전통과 관습 하에서 가웨인이 스스로 억압하던 정열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진정한 자아를 찾게 만드는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목 베기 게임, 여인의 유혹, 획득물 교환 게임을 통해 자신의 두려움과 갈망, 그리고 기사도의 덕목 중 갖춘 것과 갖추지 못한 것을 구분한다. 또한 부족함을 채우고 진실해지기 위해서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할지도 깨닫는다. 따라서 가웨인의 각성은 단지 그리스도교라는 기존의 사회적 전통에 충실한 기사로의 성장보다는,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과 진정한 자아 사이에서 마침내 중심을 찾아낸 한 젊은이의 성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그린 나이트>가 고대의 전설을 넘어 현대의 고전으로도 발돋움하는 이유다. "이야기의 뿌리인 자신의 자아를 찾아 나가는 한 청년과 관련된 기사도의 개념은 지금 시대에도 시의적절하다"는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기존의 삶의 방식을 따르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잃은 젊은 세대가 가웨인에게 이입하여 스스로 기사가 되어가는, 즉 자신만의 삶의 기준을 확립하는 과정을 경험할 장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는 가웨인에게 "훌륭한 전사가 되는 것에서 사회적인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는", 곧 완벽하지 않아도 완벽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투영할 뿐 그를 완전무결한 기독교적 영웅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이때 <그린 나이트>는 이 모든 이야기를 금색, 녹색, 적색, 회색이라는 색 안에 담아낸다. 가웨인이 입은 망토는 아서 왕의 왕관을 닮은 금색을 하고 있고, 이 망토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웨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자연을 뒤덮은 녹색의 이미지로부터 그를 지켜준다. 가웨인 대 녹색 기사, 카멜롯 대 녹색 예배당, 더 나아가 기독교 대 이교도의 대립이 두 색책의 대비에 담겨 있는 것이다. 적색은 숱한 피의 향연을 장식하면서 두 세계를 넘나드는 가웨인의 모험이 삶과 죽음 사이에 위치함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회색은 거인들을 만나는 대목처럼 매혹적이고 장엄하지만 동시에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모험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특히 회색풍의 색감은 영화 전반을 지배하며 녹색 기사의 도끼날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가웨인의 혼란스럽고 난해한 내면을 외면화하며, 마찬가지 입장인 관객들을 가웨인의 내면으로 자연스레 초대하기도 한다.
따라서 다채로운 영상미의 도움을 받아 난해함과 혼란이라는 껍데기를 열기만 한다면, <그린 나이트>가 품은 기독교적인 성장담, 기독교 세계에 가려졌던 켈트 족의 영웅과 마법을 조명하는 판타지, 더 나아가 가장 현대적인 고전이라는 다양한 진주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상이한 세계가 만날 때의 혼란, 충격, 경탄을 장중하게 담아낸 서사시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그린 나이트>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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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상실한 과거, 그리고 언젠가 도래할 미래
일본의 국립공원 중 하나인 오제는 네 개 현에 걸쳐 있는 광활한 습원이다. 희귀 동식물이 많아 습지 보호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에 차량 통행도 불가하다. 산장으로 짐을 운반하는 봇카가 필요한 이유다. 오제에는 여섯 명 안팎의 봇카가 있는데 이들은 4월부터 11월까지 매일 80킬로그램에 가까운 짐을 지고 오제를 가로지른다. 〈행복의 속도〉는 그중 이시타카와 이가라시 두 봇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건 오제의 풍경이다. 영화 중간중간 부감숏으로 나오는 오제의 풍경은 탄성을 자아낸다.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오제를 대하는 인간의 마음도 예쁘다. 드넓은 습원 중 인간이 발을 디딜 수 있는 건 통행을 위해 만든 좁은 나무판자길뿐이다. 관광객이 몰릴 때면 판자길 위에서 가만히 기다리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봇카의 모습은 빠르고, 효율적이며, 편리하지 않은 것도 가치 있는 태도임을 가르쳐 준다.
오제의 모습
이시타카와 이가라시는 각자 다른 태도로 등에 짐을 싣고 오제를 걷는다. 이시타카는 오제 밖에서 할 수 있는 봇카 일을 열심히 찾는다. 봇카 일은 겨울에는 할 수 없기에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 주지 않고, 건강 상태에 따라 당장에라도 일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는 불안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청년봇카대라는 단체를 꾸려 오제에서뿐만 아니라 여행, 등산을 가는 사람들의 짐을 대신 들어 주는 사업을 추진하며 도시로 나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이가라시 역시 이시타카와 같은 고민을 한다. 다만 고민을 해소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그는 오제의 변화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감각하는 사람이다. 아가라시는 그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도 마음을 끄는 풍경이 있으면 발걸음을 멈춰 이를 카메라에 담는다. 눈이 소복이 쌓인 오제에서도 능숙하게 길을 헤쳐나간다. 헬기가 산장으로 짐을 나르는 모습, 즉 자신들의 일자리가 곧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오랜 시간 오제와 조율해 온 호흡을 신뢰하며 묵묵히 제 일을 해낸다. 이가라시에게 오제는 돈을 버는 장소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 오제는 몸의 감각을 활짝 개방하여 적극적으로 서로를 주고받는 상호적 삶의 대상이다.
이가라시와 이시타카
이시타카와 아가라시 중 누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다만 방향이 다를 뿐이다. 영화도 누가 옳다는 식으로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구의 선택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지는 ‘취향’, ‘성향’의 차이일 것이다.
나는 이가라시의 방식이 더 좋았다. 아들과 함께 떠난 오제 트레킹에서 아들이 새가 자신을 피하지 않아 놀라자 그는 “오제와 사람은 서로 빼앗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가라시가 불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흐름과 속도, 태도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자신이 오제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지 않는 한 오제도 자신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가라시
이가라시는 시종일관 부드럽고도 단단한 태도로 그가 오제와 맺어 온 오랜 관계의 깊이를 증명하는데, 이를 보고 있자면 ‘봇카의 노동이 참 고되겠다’는 안타까움이 ‘나에겐 과연 이가라시와 오제처럼 서로를 존중하며 단단히 묶여 있는 무언가가 있는가’라는 부끄러움으로 바뀌게 된다. 나아가 저런 태도야말로 잔뜩 웅크린 채 주변의 모든 것을 나를 위협하는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 함께 호흡하며 서로를 보듬음으로써 형성하는 신뢰. 어쩌면 봇카는 우리가 상실한 과거, 그리고 언젠가 도래할 미래의 표상일런지도 모른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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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중심에 농촌을 들이다
8★/10★
거의 모든 영화의 배경은 도시다. 종종 농촌이 배경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농사 그 자체에 주목하는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대인의 대다수가 도시에 살고 이로 인해 농촌 문제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한 카를라 시몬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알카라스의 여름〉은 농촌 문제를 영화의 중심에 들인다. 스페인 카탈루냐의 조그만 시골 마을 알카라스에는 3대째 복숭아 농사를 이어오고 있는 가족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평범하던 이들의 일상에 청천벽력이 떨어진다. 가족이 농사짓는 복숭아 농장은 원래 지역 지주의 소유로, 전쟁 때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가족이 지주에게서 선물 받은 땅이다. 그런데 토지 증여가 구두로만 되었다는 게 문제의 발단이다. 윗세대에게는 굳이 서류로 만들어놓을 필요가 없었던 굳건한 약속이 오랫동안 서서히 희미해지면서 끝내 가족이 퇴거 통보를 받기에 이른 것이다.
가족이 쫓겨나지 않고 살던 곳에 계속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복숭아 농장을 갈아엎고 들어설 태양광 전지판을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면, 가족은 쫓겨나지 않아도 된다. 영화의 서사는 도시인들에게는 ‘합리적’으로 보일 이 결정을 단호히 거부하는 아버지의 결단에서부터 본격화된다. 아버지는 농부라는 직업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지금껏 복숭아 농사로 가족을 먹여 살렸고, 인근 농장의 동료들과 우정을 쌓았으며, 그를 탁월한 농민이게끔 하는 숙련도를 획득했다. 즉 복숭아 농사는 그에게 자부심의 원천이자 삶의 토대다.
그의 아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갈등하면서도 의지하는 아버지와 아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혼자 농장에 나가 입을 꾹 닫고 일을 한다. 안정감을 찾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도시에서 생계를 위해 노동하는 사람 중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기 생업에 몰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버지와 아들은 도시인들과 달리 자신의 일에서 소외되지 않는다. 즉 그들은 노동으로 자기 자신을 실현한다. 이들에게 복숭아 농사를 더는 짓지 못하는 것이 단순한 생계 문제가 아니란 소리다(물론 생계 문제가 ‘단순’하지는 않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이 농사에 느끼는 전통적 자부심은 억압적 남성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카를라 시몬 감독은 상처받고 훼손된 농촌 남성성을 섬세하게 보듬음과 동시에 이들의 상처가 또 다른 억압으로 발현되는 상황도 짚는다. 어머니는 마초적이고 농사밖에 모르는 남편의 곁을 늘 묵묵히 지키고, 딸은 사사건건 간섭하고 드는 아빠‧오빠의 통제와 자신의 욕망을 협상해내는 법을 배운다. 여기에 자신이 제대로 서류 계약을 하지 않아 자식에게 폐를 끼쳤다는 할아버지의 안쓰러운 자책, 어떻게든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니냐며 태양광 전지판 관리일을 받아들이자는 가족 구성원과 아버지의 갈등이 더해진다. 태양광 전지판 설치로 놀이터가 사라지고, 어른들의 갈등으로 함께 놀지 못하게 된 아이들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게 태양광 전지판이 복숭아 농장을 대체한 결과다. 알카라스의 한 복숭아 농장을 토대 삼아 여러 갈래로 펼쳐지던 복수의 삶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중단을 강요받는 것이다. 복숭아 값을 현실화하라는 농민들의 집단 시위는 과연 태양광 전지판이 대변하는 도시의 합리성‧경제성을 극복하고 가족의 삶에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전 세계의 영화 역량을 가늠하는 권위 있는 영화제 한가운데에 농촌 문제를 들여온 〈알카라스의 여름〉의 문제의식은 과연 제대로 응답받을 수 있을까? 인터넷에 ‘양곡관리법’을 검색하여 최근 기사를 살펴보자. 그리 녹록지만은 않아 보인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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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선으로 변한 위로, 그리고 불쾌함
<아노라>는 스트리퍼와 성매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인공 ‘아노라(마이키 메디슨)’가 클럽의 손님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과 결혼 후 끊임없는 반대에 휩쓸리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린 아노라는, 스트립 클럽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고 성매매가 불법인 한국에서도 강한 호불호를 보인다. ‘<서브스턴스>를 꺾은 제97회 칸영화제의 주인공답다’와 같은 긍정적이거나 ‘이게 왜 상을 받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부정적인 후기. 이 글에서는 후자의 부정적인 의견을 다루고자 한다.
4명의 노동자(아노라, 이고르, 토로스, 가닉)가 비노동자 ‘이반’을 찾으러 여정을 떠나는 표면적인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의 주제는 노동자이다. 그러나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감독 자신이 가진 남성적인 시선을 사용했다는 이 영화에서, 아노라는 노동자라기보단 지나치게 성적 대상화 되어 물건처럼 느껴진다. 이와 관련해서 <아노라>의 첫 장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영화는 팝 그룹 테이크 댓의 노래 ‘Greatest Day’와 함께 성매매하는 매춘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중 한 명인 아노라에게 다다르며 시작된다. 이때 스트립 클럽을 비추는 카메라의 무빙은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시킨다. 그 위에서 카메라를 향해 엉덩이를 들이밀고, 가슴을 강조하는 매춘부들은 소비해야 할 물건인 것이다. 성행위를 하는 아노라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면서 타이틀이 뜨는(아노라의 이름이 뜨는) 연출도 아노라가 상품이라는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의 시선으로 표현된 아노라의 단편적인 모습은 영화의 주제에도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 아노라가 4대 보험에 대해 언급하며 따지는 장면은 ‘성 노동자에게도 기본적인 보장이 필요하다’는 감독의 의도임에도 아무런 어필이 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외설적인 모습만 표현하기에 바빠 이를 이해시킬 서술 장치를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한 아노라의 모습은 당차다기보단 감독의 전작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모텔비가 오르자,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핼리’의 이기적인 모습과 오버랩되어 다가온다.
노동자 계급의 절망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션 베이커 감독 영화의 특징이 이번 영화에 잘 드러났는지는 의문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신데렐라 이야기의 현실적으로 바꾼 오마주를 다시 한번 가져온 듯한 <아노라>는 독창성은 물론 현실과도 멀리 떨어져 하나의 쇼로 남는다.
영화에서 보여준 감독 자신의 남성적인 시선은 ‘소비자의 시선’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는 변질되는 것이 당연히 예정되어 있었고, 처음의 위로는 위선이 되었다. 매춘굴에 관객을 강제로 앉히고 펼쳐지는 화려한 쇼, 그리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 이를 보게 되는 관객들의 불쾌함. 그리고 아노라 역의 마이키 메디슨 배우가 인터머시 코디네이터 없이 수위 높은 장면을 찍었다는 사실은 영화의 의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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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4주 차 개봉작,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이번 주 개봉, 또는 공개 예정인 작품들을 소개해 드리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로 주목받는 <파벨만스>부터
전종서의 할리우드 데뷔작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까지!
영화팬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개봉작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파벨만스
The Fabelmans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51분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미셸 윌리엄스, 폴 다노, 세스 로건, 가브리엘 라벨 등
개봉: 2023.03.22.
배급: CJ ENM
시놉시스
난생처음 극장에서 스크린을 마주한 순간부터 영화와 사랑에 빠진 소년 ‘새미’(가브리엘 라벨). 아빠 ‘버트’(폴 다노)의 8mm 카메라를 들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담기 위해 열중하던 새미는 우연히 필름에 포착된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고 충격에 휩싸인다. 진실을 비추는 필름의 힘을 실감한 새미에게 크고 작은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의 응원으로 영화를 향한 열정은 더욱 뜨거워져만 가는데…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 영화의 모든 순간과 사랑에 빠진다!
CINE PICK!
<파벨만스>는 수많은 명작들을 배출한 할리우드의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감독 본인이 "이 영화는 내가 가진 기억 그 자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성장 과정 속에 겪었던 에피소드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고 하는데요, 단순히 그의 영화제작 일대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이혼,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등 한 개인이 그의 삶을 통해 투영해 낼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녹여내 수많은 영화인들과 평론가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듄>, <컨택트> 등으로 유명한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 영화를 '기적'이라고 평가하며 시네마의 힘을 다룬 영화들 중 가장 위대한 영화라고 극찬했다고 합니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을 포함해 총 7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되기도 했었지요. 일평생 영화를 사랑했던 감독의 삶을 그린 영화다 보니, 영화와 관련한 레퍼런스가 많이 등장하고 시네마 자체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선물 같은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Mona Lisa and the Blood Moon
ⓒ 네이버 영화
개요: 판타지, 미스터리, 스릴러 | 미국 | 107분
감독: 애나 릴리 아미푸르
출연: 전종서, 케이트 허드슨, 크레이그 로빈슨 등
개봉: 2023.03.22.
배급: 판씨네마(주)
시놉시스
붉은 달이 뜨던 밤, 폐쇄병동에서 스스로 탈출한 '모나'(전종서)는 화려한 조명에 이끌려 도착한 낯선 도시에서 자신의 특별함을 알아챈 기묘한 사람들을 만난다. 모나의 능력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댄서 '보니'(케이트 허드슨), 모나한테 첫눈에 반한 로맨티시스트 DJ '퍼즈'(에드 스크레인), 모나에게 락 스피릿을 가르친 11살의 소울메이트 '찰리'(에반 휘튼), 그리고 모나를 뒤쫓는 언럭키한 경찰 '해롤드'(크레이그 로빈슨)까지. 완벽한 밤… 완전한 자유? 완성된 운명!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모나'의 모험이 펼쳐진다.
CINE PICK!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은 독보적인 분위기와 눈빛으로 <버닝>의 '해미', <콜>의 '영숙' 등 매번 전례 없는 개성을 지닌 캐릭터를 탄생시켜 온 배우 전종서의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폐쇄병동을 도망친 의문의 존재 '모나'가 낯선 도시에서 만난 이들과 완벽한 자유를 찾아 떠나는 미스터리 펑키 스릴러라고 합니다.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와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더 배드 배치>로 단 두 작품만에 전 세계에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애나 릴리 아미푸르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으며 <유전>, <미드소마> 등 다수의 작품들을 함께한 아리 애스터 사단의 촬영감독 파웰 포고젤스키가 합세해 화려하고 독창적인 영상미를 선보였다고 하는데요, 일찌감치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것을 시작으로 BFI런던국제영화제, 취리히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멜버른국제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작품성을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감각적인 영상과 더불어 EDM과 블루스, 하우스, 락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사운드트랙이 깔려 영화의 펑키하고 매혹적인 분위기를 한층 배가시켰다고 전해지며, 전종서 배우의 넘치는 에너지와 도발적인 연기가 시선을 사로잡는 독보적인 매력의 영화일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웅남이
Woong Nam
ⓒ 네이버 영화
개요: 코미디, 액션 | 대한민국 | 97분
감독: 박성광
출연: 박성웅, 이이경, 염혜란, 최민수, 오달수 등
개봉: 2023.03.22.
배급: CJ CGV
시놉시스
태초에 마늘과 쑥을 100일 동안 먹고, 곰에서 사람이 된 최초의 인물이 있었으니 그 이름 웅녀… 아니 웅남이??!!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얼마 남지 않은 곰의 수명을 우연히 알게 된 충격에 경찰을 그만두고 빈둥빈둥 곰생인생을 살게 된다. 하지만 자신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이 생긴 테러 조직의 2인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엄마의 소원인 경찰 복귀를 위해 형사, 구독자 10명의 유튜버, 동네 순경과 공조하여 국제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 공조 수사대에 합류하게 되는데…
CINE PICK!
<웅남이>는 개그맨 박성광이 감독한 네 번째 연출작이자 첫 장편 상업 영화로, 인간을 초월하는 짐승 같은 능력으로 국제 범죄 조직에 맞서는 '웅남이'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단군 신화를 모티프로 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쌍둥이 곰'이라는 참신한 설정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인데요, <신세계>, <내안의 그놈>, <젠틀맨> 등으로 느와르부터 액션, 코미디까지 폭넓은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박성웅이 전직 경찰이자 동네 백수인 '웅남이', 그리고 그와 180도 상반되는 모습의 국제 범죄 조직 2인자 '웅북이'를 동시에 연기해 화제가 되었는데요, 어떤 모습도 찰떡같이 잘 해내는 배우이기에 이번 영화에서도 그런 그의 매력이 여과 없이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코믹 대세 배우 이이경과 베테랑 배우 염혜란, 최민수의 출연으로 더욱 다양한 재미를 첨가해 침체된 한국 영화계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작품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틸
Till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31분
감독: 치노늬 추크우
출연: 다니엘 데드와일러, 제일린 홀, 헤일리 베넷 등
개봉: 2023.03.22.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시놉시스
1955년 시카고. 엄마 메이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14살 흑인 소년 에밋 틸은 미국 남부에 사촌을 만나러 갔다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다. 메이미는 에밋의 참혹한 모습을 세상에 공개해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로 결심하는데… 피부색으로 정의를 가리던 시대, 그녀의 용기 있는 외침이 시작된다.
CINE PICK!
영화 <틸>은 195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에밋 틸 피살 사건' 이후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려 남부 전역에 민권운동의 확산을 불러일으킨 엄마 '메이미'의 감동 실화를 담고 있습니다. 제76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 주연상 후보를 포함하여 전 세계 영화제 81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21개 부문에서 수상해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아들의 충격적인 죽음을 목도하게 된 엄마 메이미의 참담한 심경부터 아들을 잃은 비극에 침잠하지 않고, 스스로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강인한 엄마이자 여성의 모습을 단단하게 그려내 가슴 아픈 공감과 묵직한 감동을 안겨주는 영화입니다.
실제로 메이미의 행동은 지역 사회의 분노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북부와 남부의 흑인들이 연대하는 계기가 되어 수많은 투쟁 끝에 1964년 인종과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 국가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미국 연방 민권법이 제정되는 데 일조하였고, 나아가 2022년 3월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에밋 틸 안티 린칭 법안(The Emmett Till Antilynching Act)으로 이름을 붙인 반린치 법안에 서명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3년 2월 16일 백악관에서 <틸> 상영회를 개최하며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진실, 국가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조명하는 것. 그래서 이 영화가 중요하다. 우리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
The Brand New Testament
ⓒ 네이버 영화
개요: 코미디 |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 115분
감독: 자코 반 도마엘
출연: 브누와 뽀엘 부르드, 욜랜드 모로, 까뜨린느 드뇌브 등
개봉: 2015.12.24.
공개: 2023.03.24.(왓챠)
배급: (주)엣나인필름
시놉시스
유럽 브뤼셀의 수상한 아파트, 그곳에는 못된 심보의 괴짜 신이 살고 있다. 어엿한 가정까지 꾸리고 있지만 인간을 골탕 먹이기 좋아하고, 아내와 자식들에겐 소리 지르기 일쑤, ‘진상’ 그 자체가 바로 ‘신’이다! 심술궂은 아빠 ‘신’의 행동에 반발한 사춘기 딸 ‘에아’는 아빠의 컴퓨터를 해킹해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죽는 날짜를 문자로 전송하고, 세상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세상을 구원할 방법은 오로지 신약성서를 다시 쓰는 것뿐! 에아는 새로운 신약성서에 담을 6명의 사도를 찾아 나서는데 …
CINE PICK!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인간을 괴롭히기 좋아하며 아내와 자식들에겐 진상 짓을 서슴지 않는 고집불통 괴짜 신과 그로부터 세상을 구하려는 사춘기 딸 에아가 새로운 신약성서를 쓰기 위해 6명의 사도를 찾는다는 독특하고 위트 넘치는 설정의 이야기로, <토토의 천국>, <제8요일>, <미스터 노바디> 등을 연출하며 재치 있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유럽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으로 인정받는 자코 반 도마엘이 연출한 작품입니다. 다크한 블랙코미디 장르의 특성과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 표현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영화인데요, 지난 2월 28일 넷플릭스에서 서비스가 종료된 뒤 왓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이며 혹시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관람 시기를 놓친 분들이 계시다면 이번 기회에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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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OTT 신작 등 총 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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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추어 | 프로답지 않다는 개성 혹은 실망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CIA에서 데이터 분석관 겸 해커로 근무하는 '찰리'(라미 말레). 어느 날, 그에게 정보원 '인퀴린'(카이트리오나 발페)가 보낸 첩보 하나가 도착한다. CIA의 '무어'(홀트 맬컬러니) 본부장이 잘못된 작전의 경우 투입된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인명피해도 축소하는 식으로 작전 보고서를 조작해 오고 있었다는 것. 이에 더해 일부 테러리스트들과 손잡고 있었다는 의심까지도. 찰리는 이 첩보를 상부에 보고할지 말 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다음 날 찰리는 마음을 굳힌다. 런던 출장 중이던 아내 '사라'(레이첼 브로스나한)가 4명의 테러범에 의해 살해당한 가운데, 정작 CIA는 테러리스트를 추적하거나 사살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 이에 찰리는 기밀 정보를 무기 삼아 무어 본부장을 협박하고, 아내의 복수를 직접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설령 컴퓨터나 두들기고 사람 한 번 죽여 본 적 없는 ‘아마추어’라고 무시당하더라도.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아마추어와 프로를 나누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 돈이다. 프로는 돈을 받고 일한다. 아마추어는 업이 아니라 좋아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마추어(amateur)'라는 단어의 어원만 봐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어휘 'amator'다. 그 연장선상에서 아마추어는 실력을 평가하는 어휘로도 활용된다. 프로 축구 선수에게 아마추어 선수보다 능력이 없다는 혹평은 돈값을 하지 못한다는 모욕이다.
그런데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는 어떤 일을 하는 태도에 따라 갈리기도 한다. 프로 같다는 표현은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에게 붙는 경우가 많다. 냉철하게, 능률적으로 과업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 반면에 일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자주 동요하는 사람에게는 아마추어 같다는 표현이 활용된다. 돈이라는 대가와 목적보다 사랑과 열정이라는 동기에 충실한 사람이 아마추어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가르는 세 번째 기준은 흥미롭게도 첩보 영화에서 클리셰로 자주 활용된다. 처음 임무에 나서거나, 임무를 받는 요원에게는 꼭 사람이나 동물 등 생명을 죽이는 과제가 주어진다. 살인이라는 행위가 유발하는 혼란, 두려움, 망설임 같은 온갖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지, 즉 프로인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인 셈이다. 이는 <제이슨 본> 시리즈에서도, <킹스맨> 시리즈에서도 스파이가 되는 마지막 단계였다.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 어떤 첩보 영화보다도 아마추어 첩보원과 프로 스파이를 가르는 심리적 경계선에 주목한다. CIA 사무직인 찰리가 아내를 죽인 테러범에게 복수할 때 직접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지, 그의 심경 변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달리 말해 그가 아마추어로 남을지, 프로가 될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아마추어>를 차별화한다. 아마추어스러운 완성도가 그 묘미를 묻어 버리는 게 문제일 뿐이다.
복수에 성공한 아마추어 첩보원
<아마추어>는 본격적인 찰리의 복수극을 시작하기에 앞서 프로 스파이와 아마추어 첩보원의 차이를 명확히 짚는다. 무어 본부장을 협박해서 현장 요원 훈련을 받게 된 찰리. 그의 훈련이 끝날 때쯤 '헨더슨'(로렌스 피시번) 대령은 그에게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을 알려준다. 밤중에 찰리를 깨운 그는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라고 윽박지르고, 끝내 방아쇠를 못 당긴 찰리에게 결코 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일갈한다.
프로 첩보원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 순간에 아무 고뇌 없이, 기계처럼, 그저 훈련받은 대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어야 임무도 완수하고, 생존할 수 있으니까. 그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현장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는 여전히 아마추어다. 테러범 4인 중 처음으로 찾아낸 여성 테러리스트가 무방비로 등 뒤를 내주었는데도 찰리는 그녀에게 총을 쏘지 못한다.
하지만 찰리는 아마추어라는 한계를 깨지 못하면서도 목적을 착실히 달성한다. 상대방에게 직접 총알을 박아 넣지는 못하더라도 아마추어스럽게 아내의 복수를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꽃가루 알레르기를 이용해서 질식시키거나, 옥상 수영장을 붕괴시켜서 사고사로 가장하는 식이다. 테러범들을 하나씩 찾아 죽이면서 찰리는 아내를 직접 죽인 네 번째 테러범의 은신처에 대한 정보도 직접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찰리의 복수는 아마추어스럽다. 그는 마지막 테러범을 직접 죽이지 않는다. 경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한 불가피한 살인이었다고 프로답게 자신을 변호하는 그를 해커다운 방식으로 인터폴과 경찰에게 넘겨 버린다. 이처럼 아마추어의 경계선을 넘지 않는 찰리의 복수극은 특히 순정적으로 느껴진다. 아마추어 첩보원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아내의 복수를 하겠다는 진심이 유달리 강조되기 때문이다.
찰리의 내면을 열어볼 두 열쇠
<아마추어>는 찰리의 진심과 순정에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을 두 가지 열쇠로써 열어준다. 우선 찰리의 내적 서사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한다. 일례로 초반부는 부부 관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지 않은 찰리를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런던 출장 겸 여행을 같이 가자는 사라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일하느라 바쁘다면서 마지막 통화도 그냥 끊어버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찰리의 소극성은 그의 죄책감을 극대화한다. 사라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말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회한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강조하기 때문. 이는 아마추어 첩보원으로서 찰리의 정체성을 부각한다. 테러범 체포, 사살에 적극적이지 않은 조직에 환멸을 느낀 그의 첩보 활동은 누구보다도 아마추어적이다. 복수심도 열정의 일종이라면, 아내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열정만이 그의 원동력이 되어주니까.
또 다른 열쇠는 찰리의 주변 인물이다. 이스탄불에서 찰리에게 기밀 첩보를 제공하던 정보원 인퀴린 그가 아마추어라서 돕기로 결심한다. 그녀 역시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프로 스파이였던 남편과 사별한 후에 그를 잊지 못한 나머지 그의 코드네임을 이어받아서 첩보원으로서 활동한 그녀는 찰리에게서 자신을 본다. 돈이나 업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첩보원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반대로 중요한 역할처럼 보이던 현장요원 '곰'(존 번설)은 끝내 맥거핀으로 활용된다. 일반적인 첩보물이라면 성공적인 작전 수행 후에 그가 찰리를 어떻게 비밀리에 지원했는지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줬을지도 모른다. 찰리가 그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으니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그 길을 가지 않는다. 찰리의 아마추어스러운 복수극에 끼어들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프로페셔널한 스파이이기 때문이다.
구시대적 배경에 의존하다
문제는 이처럼 '아마추어'의 미덕에 충실한 첩보물을 너무나도 아마추어스럽게 구성했다는 것. 주인공이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 남은 이유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와는 별개로 영화의 완성도는 프로다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세 가지 부재가 문제다. 바로 신선함, 역경, 짜임새의 부재다. 우선 <아마추어>는 구시대적인 소재를 답습한 나머지 찰리의 서사를 더 깊이 느끼거나 들여다볼 유인을 제공하지 못한다.
정보기관이 일반 시민 개개인을 모두 감시하고 있고, 그 정보를 독점한 뒤 국익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위법적인 작전과 활동을 벌이면서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소재는 이미 여러 첩보 영화가 활용한 바 있다. 또 엇나가는 첩보 요원을 잡기 위해서 서로 다른 첩보 기관이 제각기 그를 쫓아 나서는 것.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과 암투. 이 부분 역시 뭐 새로운 것은 없다.
특히 <제이슨 본> 시리즈의 흥행과 스노든의 NSA 기밀자료 폭로사건 이후로는 위와 같은 소재를 반영하지 않은 첩보물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애초에 로버트 리텔의 소설 <아마추어>가 원작인데, 원작부터가 1981년작이라는 점이 반영된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더 이상 새롭거나 신선한 소재나 주제, 호기심이 아니라는 것. 극 중 활용되는 최첨단 감시 및 경비 장비들 덕분에 식상함이 더 두드러지기도 한다.
고난이 없는 아마추어
역경의 부재도 문제다. <아마추어>는 액션이 아닌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조성하려고 애쓴다. 천재적인 기술자라는 찰리의 두뇌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상술했듯이 다양한 작전으로 테러범들에게 복수를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찰리가 어떤 작전을 활용할지 지켜보는 재미만으로는 120분을 끌어가지 못한다. 그가 작전을 너무 잘 짜고 복수를 너무 잘해버리는 나머지 긴장감이 없기 때문이다.
찰리는 두 적과 싸워야 한다. 그가 죽이려는 테러범은 물론 그를 쫓는 CIA와도 맞서야 한다. 그런데 처음으로 현장에서 작전을 직접 입안하고 실행하는 찰리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테러리스트와 CIA 요원들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움직인다. 자연히 영화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전개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찰리의 기발한 아이디어보다는 영화의 허술함, 편의적인 전개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셈이다.
이는 '아마추어'라는 제목에 담긴 함의가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아마추어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극 중 찰리는 총을 잘 못 쏜다는 것만 빼면 너무 프로페셔널하게 할 일을 잘 해낸다. 그러다 보니 아마추어라는 어휘에 내포된 사랑과 열정이라는 의미를 먼저 떠올리지 않는 이상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아마추어'인지는 물음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라미 말렉만 돋보인다
더 나아가 전체적인 구성과 서순도 적절하지는 않은 듯하다. 영화는 부패한 CIA를 먼저 제시하면서 찰리 대 CIA, 개인 대 조직의 대립을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찰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조직을 농락하다 보니 조직에게 배신당하고 쫓기는 압박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테러범과 CIA의 접점을 마지막까지 숨기면서 알 수 없는 적과 싸우는 서스펜스를 강화했다면 첩보 영화의 장르적 쾌감이 극대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빌런 활용법도 아쉽다. 빌런과 찰리의 대립각이 날카로울수록 그의 복수가 남기는 쾌감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 빌런을 제외하면 게임 미션처럼 한 번 밟고 넘어가야 할 대상처럼 몰개성 하게 묘사되다 보니 복수의 끝은 다소 싱거운 감이 있다. 초반부에 찰리가 느낀 고통과 자책감에 비하면 빌런을 제거했을 때의 시원함이 부족한 것. 결과적으로 영화가 잘 짜여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결국 <아마추어>는 평범한 할리우드 첩보물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한다. 일정 수준의 재미는 갖췄지만, 그 이상의 특별함을 뽐내지는 못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을 활용한 스토리텔링도 온전히 꽃을 피우지는 못한 채로 흐지부지 끝난다. 구시대적인 주제의식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볼거리와 상충한다. 그저 아내를 잃은 남편이자 살인의 무게감을 견뎌내는 요원으로 변신한 라미 말렉의 연기력이 인상적일 따름이다.
Poor 형편없음
아무리 그래도 완성도는 프로페셔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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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스타일 리메이크 / 로코의 정석 /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 진영 다현 / 대만 원작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지만 엔드크레딧과 함께 사진들이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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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종」리뷰ㅣ쫄보기자들과 바이럴에 낚였습니다...ㅣ랑종 후기ㅣ
? "랑종" 리뷰(*스포없음)
- 랑종 정보
장르: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페이크 다큐멘터리, 오컬트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각본: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제작: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원안: 최차원, 나홍진
- 랑종 스토리 시놉시스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 낯선 시골 마을.
집 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이 곳의 사람들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은
조카 ‘밍’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날이 갈수록 이상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는 ‘밍’.
무당을 취재하기 위해 ‘님’과 동행했던 촬영팀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밍’과 ‘님’, 그리고 가족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
#랑종 #랑종리뷰 #랑종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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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블랙 백> 메인 예고편
"날 위해 누굴 죽일 수도 있어?" 서로를 속고 속이는 갓벽한 스파이 부부가 온다. [블랙 백] 메인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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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비상선언> 캐릭터 예고편
영화 #비상선언 캐릭터 예고편 대공개! ✈️ 사상 초유의 항공재난에 맞선 인물들의 긴박감과 절실함!? 개봉까지 무한 재생 안내 말씀?드리며 8월 3일, 극장에서 탑승을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