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3-05-28 07:27:44
존엄사는 진정으로 '존엄'한 것인가
영화 <플랜 75> 리뷰
글로벌 프로젝트인 10년 프로젝트를 아는가?
2015년 홍콩에서 시작되어 대만, 태국, 일본에서 진행된 글로벌 제작 프로젝트이며 10년 후의 각자의 나라를 감독들이 단편으로 만들어 엮은 옴니버스 영화이다.
전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이 프로젝트 중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수입 및 개봉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플랜 75>는 이 중 동명의 단편을 동일한 감독이 장편화한 영화이다.
멀지않은 미래,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75세가 되면 국가에서 안락사를 권장 및 지원하는 "플랜 75"라는 제도가 생기게 된다.
플랜 75 제도를 활용해 안락사를 준비하는 노인들과 속에서 근무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안락사, 존엄사는 현재 일부 국가에서 불치병이나 말기 환자에 한해 실행되기도 하는 만큼 현실에 대입해 많은 고찰을 하게 만든다.
동시에 국가 체제에서 엄연한 죽음을 권장하고 지원하며, 그로 인해 무언으로 안락사를 떠미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야말로 공포영화 그 자체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존엄사가 진짜 존엄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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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톺아보기] 손예진 배우 출연작 파헤쳐 보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현재 방영 중인 '서른, 아홉'에서
차미조를 연기한 '손예진' 배우를 톺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배우 손예진은 데뷔와 동시에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오르며 충무로의 대표 배우가 됐습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배우 손예진을 "2000년대 한국 영화가 낳은 압도적 대형 톱스타"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배우 손예진은 데뷔 이후 거의 매년 작품을 찍으며 본업에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배우는 팬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이야기하며
팬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로맨스, 코믹, 스릴러 등 장르를 불문하고 뛰어난 소화력을 보여주는
배우 손예진!
그럼 지금부터 배우 손예진 #톺아보기 시작하겠습니다!
출처 | 가네시 인스타그램
이름 | 손예진 (孫藝珍)
출생 | 1982년 1월 11일
소속사 |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데뷔 | CF '꽃을 든 남자' (1999)
별명 | 소예진, 예진핸드, 존예진 등
배우 '손예진' 데뷔 과정
출처 | 가네시 인스타그램 , 네이버 영화배우 손예진은 연기를 통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중학교 때부터 배우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2001년 MBC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시청률이 30%가 넘으면서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손예진 배우의 빼놓을 수 없는 '포카리스웨트' 광고도 2001년에 찍었는데요.
역대 모델 중 최초로 2년 연속 재계약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 모두 꾸준한 연기 활동을 하면서
연기력도 인정받고, 다양한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배우 '손예진'의 대표작
클래식
지혜/주희 역
출처 | 네이버 영화우연히 엄마의 젊은 시절 편지와 일기장을 발견한 지혜.
엄마의 첫사랑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편지와 일기장을 보면서
지혜는 엄마의 클래식한 사랑을 조금씩 알게 된다.
손예진은 국회의원 딸인 주희, 그리고 주희의 딸인
대학생인 지혜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김수진 역
출처 | 네이버 영화건망증이 심한 수진은 그 건망증 덕에 운명처럼 철수를 만나 결혼한다.
철수는 날로 심해지는 수진의 건망증에 그녀와 병원에 가고,
그녀가 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손예진은 LG패션 남성복 팀장이자, 건망증 앓고 있는
'김수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아내가 결혼했다
김수진 역
출처 | 네이버 영화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이 없다는 인아를 독점하기 위해 덕훈은 그녀와 결혼하지만,
사랑하는 남자가 새로 생겼다는 그녀는 그 사람과도 결혼하겠다고 제안한다.
손예진은 '비독점적 다자연애'인 폴리아모리를 추구하는
'주인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여월 역
출처 | 네이버 영화옥새를 삼킨 고래를 사냥하러 조선의 도적들이 모였다.
누명을 쓴 도적, 바다는 처음인 산적, 그리고 건국의 위기에 봉착한 개국 세력 간의
웃지 못할 싸움이 벌어진다.
손예진은 아름다운 미모와 강인한 카리스마는 물론
화려한 검술 실력까지 겸비해 조선 바다를 제압한 해적단 여두목
'여월'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시즌
덕혜옹주
덕혜옹주 역
출처 | 네이버 영화고종황제의 외동딸 덕혜옹주는 일제에 의해
13세의 어린 나이에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 후, 고국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던 덕혜옹주에게 어린 시절 친구 장한이 나타난다.
손예진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시즌
지금 만나러 갑니다
수아 역
출처 | 네이버 영화수아는 우진에게 비가 오는 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1년 뒤 어느 여름날, 이전과 다름없는 모습의 수아가 나타난다.
하지만 수아는 우진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손예진은 기억을 잃은 채 다시 돌아온
'수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협상
하채윤 역
출처 | 네이버 영화국제 범죄조직의 무기 밀매업자 민태구는 태국에서 한국 경찰과
기자를 납치하고 협상가 채윤을 협상 상대로 지목한다.
남은 시간 12시간,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협상이 시작된다.
손예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는 최고의 협상가
'하채윤'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사랑의 불시착
윤세리 역
출처 | 티빙 홈페이지어느 날 돌풍과 함께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 상속녀 윤세리와
그녀를 숨기고 지키다 사랑하게 되는 특급 장교 리정혁의
절대 극비 러브스토리를 그린 드라마
손예진은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가 2남 1녀 중 막내딸이자
세리스 초이스의 대표,
'윤세리'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이상으로 배우 '손예진' #톺아보기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손예진 배우가 참여한 작품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현재 방영 중인 <서른, 아홉>에 주연 배우로 출연 중인데
이 드라마도 추천드립니다!
그럼 오늘도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며
다음 주에도 톺아보기 콘텐츠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안녕٩( ᐛ )و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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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 최초의 여성감독, 사라 고메스
다시, 주목할 만한 감독 칼럼은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이 없어 언급이 잘 안돼는 감독이나 한국에서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 감독을 다시 주목해보자는 취지로 적는 칼럼입니다.
본 칼럼 시리즈를 통해, 다시, 주목할 만한 감독들에 대해 알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사라 고메스 감독의 이름은 한국에서 비교적 생소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주류 영화계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쿠바 영화의 감독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영화를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비교적 다른 대륙에 비해 소개가 덜 되고 특히 한국에서 아프리카 영화가 소개되는 경우는 영화제에서도 드문 것이 사실이니.
그 뿐만이 아니라, 사라 고메스 감독은 장편이 딱 한편 밖에 없어 더욱 그렇다.
바로 급진적이며 혁신적인 다큐멘터리, <어떤 방법으로> 이다.
사라 고메스 감독은 쿠바 대중 문화의 중심지인 과나바코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직접적으로 성차별과 인종 차별을 겪었다.
그녀의 이런 어린 시절은 이후 감독이 되어 만든 작품들에서 크게 드러난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신문사에서 근무하며 여러 기사들을 투고하기도 했으며, 여러 감독들과 함께 설립한 쿠바 영화 예술 및 산업 연구소(ICAIC)를 설립하고 조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쿠바의 여러 사회 문제들을 다루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장편 영화를 위한 토대를 쌓아왔다.
이 과정을 통해 그녀는 쿠바 최초의 여성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인 <어떤 방법으로>는, 1974년 ICAIC에서 제작하였다.
이 영화는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쿠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재된 영화다.
영화는 쿠바 사회를 교사 욜란다와 공장 노동자 마리오의 로맨스와 갈등을 담음과 동시에, 단순히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교육과 아동복지, 노동자 인권으로도 담론의 폭을 넓힌다.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와 우월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 발전이라는 이상적 목표를 지향하는 다큐멘터리로서 모범적이라 평할 수 있으며,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연출이 선구적인 작품이다.
1977년 개봉 후, 인종과 젠더 갈등을 탐구한 최초의 영화라는 평과 함께 큰 주목을 받았다.
다만 사실, 이 작품은 사라 고메스 감독이 완전히 마무리 짓지 못한 영화다.
왜냐하면 영화 제작중이던 1974년, 천식 발작으로 인해 31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후반 작업 중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ICAIC에서 함께 근무하고 작업한 다른 스태프의 마무리로 1977년에야 개봉하게 된다.
이 작품이 공개되고 나서 이후로 많은 언급이 되지 못했는데, 이후 ICAIC의 조직 개편과 여전히 존재하던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 등 여러가지 이유로 그녀의 작품들이 검열되며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립 영화 연구소에서도 1989년에 그녀의 영화들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나서야 등재가 되었으며, 단편들은 2007년에야 디지털 리마스터링이 진행되어 ICAIC 아카이브에 묻혀 있던 영화들이 대중에게 다시 공개되었고, 어떤 방법으로는 바로 작년인 2021년이 되어서야 아스날 영화 및 비디오 아트 연구소에서 리마스터링 되었다.
사라 고메스 감독은 2011년까지 ICAIC에서 장편 영화를 감독한 유일한 쿠바 여성 감독으로 남았으며, 또한 현재까지 유일하게 본 기관에 소속된 흑인 여성이다.
그녀의 이런 사회적 활동과 영화 작품들의 시선은 당시 페미니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작품은 젠더 뿐만 아니라, 노동자, 아동 복지와 같은 사회 그 자체에 대한 수많은 문제들과 차별에 맞서 싸운 영화라 말할 수 있다.
현재 페미니즘의 주류가 급진적인 레디컬 페미니즘이고, 이러한 성향의 작품들은 대부분 특정 계층의 혐오와 우월을 내세운다는 비판점이 많다는 점에서 1970년대에 이러한 시도를 했다는 것은 정말 시대를 앞서갔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녀의 영화가 비록 영화사의 변방에 존재하는 작품임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시대를 앞서간 그녀의 시선은 지금도 여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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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목적인 믿음에 던지는 물음표 - 누구를 향한 믿음인가?
영화 <계시록>
실종 사건의 범인을 단죄하는 것이 신의 계시라 믿는 목사와,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실종 사건 담당 형사가 각자의 믿음을 쫓으며 벌어지는 이야기
1. 종교와 욕망, 누구를 위한 믿음인가?
눈에 보이는 것, 즉 실체로써 존재하는 것들은 '증명'이 가능하다. 무엇을 샀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와 같은 것들에 대한 증명. 그러나 '믿음'은, '종교적 믿음'은 증명할 수 없다. 하나님은 내 눈 앞에 실체로써 존재하지 않고, 신자들은 그를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믿고 있는 것이 아니며, 절대자인 신이 신자에게 내리는 '계시'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종교를 다루는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종교를 향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신은 존재하는가?'로 모인다. <계시록>의 민찬 또한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신에게 기도하고, 신과 신자들을 위해 찬송가를 부르고, '계시'를 받기를 기다린다. 신을 믿는 자들이 바라는 것은 결국 그들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고 있다. 제가 잘 되게 해 주세요, 제 아들이 취업을 잘하게 해 주세요, 저 사람보다 제가 성공하게 해 주세요. 결국 간절히 바라는 기도는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성취와 욕망 충족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은 이 지점에서 엿볼 수 있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지방의 작은 교회 목사를 맡고 있는 민찬은 동네에 대형 교회가 들어선단 사실을 알게 되고, 그 교회 목사가 자신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를 기도한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한다는 것은, 그리고 어떤 대상에게 기대어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믿는 신이라는 존재가 위안이 된다면, 그리고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면 설령 신이 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의 대상으로써 기능을 다한 것이므로.
그러나 <계시록>의 민찬은 자신의 욕망을, 그리고 충동을 '신의 계시'라고 스스로 세뇌하고 위안하는 인물이다. 이는 교회에 찾아왔던 낯선 남자, 양래가 성범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자신의 딸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부터 얽히는 사건들 사이에서 드러난다. 하원하는 딸을 데리고 오는 걸 깜빡한 사이, 웬 낯선 남자가 딸을 데리고 갔다는 소식을 들은 민찬은 자연스레 양래를 의심하고 만다. 양래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양래에게 '신은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건넨 것과는 달리, 일이 일어나자마자 자연스레 '그럴 것 같은' 인물로 양래를 떠올린 것이다.
딸을 찾기 위해 양래의 집 앞으로 간 민찬은 우연히 양래의 수상쩍은 행동을 보게 되고, 양래를 쫓아 산 중턱까지 갔다 양래와 몸싸움을 하고 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밀려 굴러 떨어진 양래는 정신을 잃고 만다. 돌에 머리를 부딪힌 채 쓰러져 있는 양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민찬에게 걸려오는 전화. 딸을 찾았다는 전화다. 양래는 딸의 실종과는 관련이 없었고, 이미 양래는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었다. 이제, 민찬은 어떻게 해야 할까.
2. 구도의 전복과 새로운 역할 부여, '신의 대리인'과 '범죄자' 사이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에서 민찬만이 엇나간 욕망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양래는 민찬의 딸을 유괴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그날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고, 민찬이 있는 교회에 다니던 여자아이, 아영을 유괴했다. 이 때문에 민찬이 범죄를 저지른 대상은 '완전무결한' 자도, '과거를 청산하고 지금은 전혀 문제가 없는' 상태도 아닌 채 서 있다. 경찰들은 양래에게 범죄를 저지른 대상을 쫓는 게 아닌,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양래를 쫓는다.
아영을 찾기 위해서는 양래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민찬은 경찰들이 양래를 찾도록 가만히 둘 수 없다. 양래를 찾게 되는 순간, 양래의 범죄와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될 자신의 범죄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순간 민찬의 내면에서 민찬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신의 계시를 받고 '범죄자를 단죄하는' 일을 하게 된, 신의 대리인이 된다. 그 순간부터 일을 수습하기 위해 민찬이 벌이는 일들은 꽤나 흥미롭다. 민찬이 불안함을 애써 지우기 위해 택한 방식은 '계시'다. 자신이 이런 일을 벌이게 된 것도, 다시 살아난 양래를 발견하게 되어 2차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도, 모든 것들이 신이 계시를 준 것이라는 뜻이다. 경찰 대신, 그리고 피해자 대신 신의 계시를 받은 자신이 양래를 단죄할 것이며, 그 단죄의 방식으로 양래를 죽일 수밖에 없다는 것.
범죄를 숨기느라 바쁜 민찬에게, SKY평안교회 담임목사인 국환은 동네에 들어설 교회의 목사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한다. 원래 내정자였던 국환의 아들이 신자와 연애를 했다는 사실이 공론화가 되면서, 새로운 담당 목사가 필요해진 것. 신을 향해 욕망을 내비치고,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믿어온 민찬에게 이는 확신을 주는 소식이 된다. 자신이 옳게 행동하고 있다는, 신이 자신에게 계시를 준 것이 맞다는 확신.
다시 발견한 양래가 '아영이 아직 살아 있다'며 자신을 죽이면 아영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한 순간부터 민찬의 욕망은 확실히 엇나간 모습을 보인다. 되레 양래가 '경찰을 부르라'고 말하며 민찬을 '미쳤다'고 비난하고, 민찬은 양래를 납치한 채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의 순간에 서 있다. 민찬과 양래의 피해자-범죄자 구도는 이때 완전히 전복된다. 사실상 민찬은 양래에 의해 피해를 본 게 없음에도(딸이 유괴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었으므로), 민찬의 오해에 의해 시작된, 뒤바뀐 범죄자-피해자 구도가 이 속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모두가 양래를 범죄자라고 가리키며 쫓고 있을 때, 민찬은 그 범죄자의 숨을 끊기 위해 쫓는다. 오직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서. 피해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으면서, '신의 계시'라는,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이라는 자기위안을 품은 채로.
3.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 우연성 짙은 사건의 마무리
계시록은 그 욕망 아래 벌어지는 사건들, 그리고 범죄자-피해자 구도의 전복을 눈여겨 보았을 때 흥미로운 작품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여성 인물들의 활용은 아쉽게 느껴진다. 민찬의 아내는 오직 '신을 믿지만 바람을 피운', 그래서 민찬이 속죄하도록 만드는 인물로만 소비된다. 연희는 과거 같은 성범죄자에게 피해를 입은 여동생의 환영을 보는 경찰로 등장하는데, 과거 얽혀 있는 서사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침착하며, 경력이나 활동 비중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우연히' 발견하는 것들이 많다.
민찬의 수상쩍은 낌새를 파악하는 것도 우연히 민찬의 흙 묻은 신발을 봐서, 양래를 찾게 되는 것도 혹시나 싶어 찾아간 교회 앞에서 우연히 민찬의 타이어에 묻은 오디를 발견해서 이루어진다. 우연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민찬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방식은 '계시'를 받은 것이 민찬이 아니라 연희라는 느낌이 들게 할 정도다. 자신이 구하지 못한 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경찰이 된 인물이 마지막 순간 극적으로 같은 입장에 놓여 있는 어린 피해자를 구하게 되는 구도까지도 그 느낌이 해소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인물 각자가 가진 욕망의 정도로만 비교했을 때 엇나간 욕망을 더욱 드러낼 수 있는 건 민찬이 아니라 연희다. 새 교회의 목사가 되고 싶다는,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민찬의 욕망에 비해 연희의 욕망은 긴 시간 끌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자살한 여동생의 환영을 보며 계속해서 죄책감에 시달리던 연희가, 양래가 잡힌 뒤 여동생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양래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그가 왜 그렇게 행동했을지를 알아보는 모습은 침착하다 못해 건조하게까지 느껴진다. 여동생과 관련된 서사는 '피해자 간의 연대'를 위해서만 쓰이고, 이외의 모든 순간에서 연희는 우연히 단서를 발견하는 경찰 히어로에 가깝게 등장한다는 점은 아쉽다.
4.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믿을 것인가?
다만 종교를 믿지 않는 입장에서 이렇게 신과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작품들은 그 작품들이 드러내는 인물들의 욕망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느끼도록 만든다. 민찬의 욕망을 쫓다 보면 민찬의 행동이 억지스럽다고 느낄 수 없고, 연희의 욕망을 쫓다 보면 연희가 과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이는 모두 그들 각자에게 부여된 서사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욕망 아래 발생한 사건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갈무리지을 것인지에 따라 그 욕망이 얼마나 힘을 쓸 수 있을지가 달라질 뿐이다.
한 대상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절대자인 신으로부터 온 답신, '계시'. 누구도 해석해줄 수 없고, 누구도 실체로써 존재하는 증거물을 내보일 수 없다. 그래서 이 계시와 답신은 더더욱 그 믿음과 해석에 의해 다르게 읽힌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는 신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우리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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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밀성 장인의 퀴어 외로움 탐구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친밀성‧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포착해 극적으로 만드는 데 가장 탁월한 재능을 가진 감독 중 하나다. 상류층 중년 여인의 마음에 불어닥친 고요한 폭풍을 펼쳐내는 〈아이 엠 러브〉(2011), 치정癡情이 치사致死 사건에 이르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비거 스플래쉬〉(2017),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 사회가 금지하는 사랑을 ‘식인’에 빗댄 충격적이고도 강렬한 러브 스토리 〈본즈 앤 올〉(2022) 등등. 야심 차게 도전한 공포영화 〈서스페리아〉(2019)는 영 호불호가 갈렸지만, 그는 〈챌린저스〉(2024)로 다시금 ‘자기 주제’로 돌아와 그를 추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윌리엄 버로스의 원작 〈퀴어〉의 연출을 그가 맡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린 이유였다.
오래전에 읽은 원작의 줄거리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퀴어》와 짝을 이루는 작품인 《정키》와 더불어, 우울하고 건조한 분위기만이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퀴어》는 어느 외로운 부자 게이가 젊고 아름다운 남성의 관심을 구걸하며 내내 괴로워한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줄거리가 없는 작품이니까.
퀴어 소설, 퀴어 영화에서 한물간 게이 남자들은 보통 주변부에서 조연 역할만 맡는다. 젊고 파릇한 주인공들이 눈앞의 사랑을 붙잡지 못했을 때 어떤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지 환기하는 부수적이지만 중요한 역할 말이다. 제임스 볼드윈의 퀴어 고전 소설 《조반니의 방》부터 몇 년 전 개봉해 호평받은 영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까지. 게이 텍스트에서 ‘제때’ 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물들은 늘 되고 싶지 않은 미래만을 표상했다.
〈퀴어〉의 특이점은 여기서 출발한다. 주인공 리는 처음부터 젊고 예쁜 남자를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남자랑 ‘둘만 있으면 자려고 드는’ 리의 평판은 바닥이고, 그런 리의 외로움을 알아보는 몇몇 멕시코 청년만이 리에게 몸을 허락한다. 그러던 와중 눈부신 청년 유진이 나타난다. 리는 유진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부터 그에게 ‘영혼이 이끌린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유진을 욕망하는 리 영혼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유진을 사랑스럽게 다듬는 영혼과는 달리 제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육체다. ‘차갑고 미끄러워서 잡기 어려운 물고기’와도 같은 유진의 곁에서, 리는 내내 전전긍긍하고, 안달복달하며, 처연할 정도로 애절하다. 일주일에 두 번만이라도 내게 다정하게 대해달라는 리의 간청은 자유롭게 유진을 애무할 수 있는 영혼과 달리 대체로 그를 냉정하게 대하는 유진 육체의 호소와도 같다.
‘대대로’ 퀴어의 피를 타고났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에 유진의 기분과 태도에 다라 삶의 모든 행복이 결정되는 또 다른 비참이 더해진 리의 가여운 외로움이야말로 이 영화가(그리고 원작이) 근본적으로 다루려 하는 것이다. 리가 공허함에 마약에 빠지고, 텔레파시를 가능케 해주고 심지어는 상대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게까지 해준다는 신비한 약초 ‘야헤’를 찾아 나서는 것은 모두 이 외로움 때문이다. 리가 유진과 함께 에콰도르의 어느 숲으로 들어가 야헤의 비밀을 탐험하는 부분은 전반부보다 몰입감이 현저히 떨어지고, 감독이 아직도 〈서스페리아〉에 미련이 남았나 싶은 불길한 짐작을 주기도 하지만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유진에게 절대적 타자일 수밖에 없는 리의 외로움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더불어 리는 야헤 경험을 통해 이성애와 동성애를 오가는 유진 역시 나름의 불안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래봐야 그 대상이 리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다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나이든 리가 수십 년 후에도 여전히 유진을 갈망하고 있다는 듯한 결말의 장면은 퀴어의 외로움을 너무 감상적으로 해석한 것만 같아 아쉽다. 늙고 한물간 게이인 리의 외로움은 비단 유진의 거부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이 외로움은 게이/퀴어 존재론의 핵심이다. 그러나 엔딩 장면은 이를 유진을 향하는 개별적인 마음으로 축소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장면에서, 문득 〈문라이트〉의 열린 결말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다시금 생각했다. 친밀성 장인의 퀴어 외로움에 대한 감각적인 이번 탐구는, 절반의 성공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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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적인 사랑 얘기에 웬즈데이를 끼얹은 느낌
난 영화를 보기 전에 로그라인을 잘 보진 않는다. 그냥 제목에 혹해서 보는게 대부분이다. 영화보고 글쓰는게 취미인 인간이 할소린가 싶겠지만 그래서 가끔 포스터 보고 혹했다 읭? 하는 경우가 있다. '눈물을 만드는 사람'이 내겐 그랬다.
1차 충격은 이 영화가 이탈리아 영화라는 점이었다. 영화라는 매체에 관심 갖다 보면 자연스레 프랑스 영화는 보게 되는 경우가 있긴 한데, 이탈리아 영화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낯선 이탈리아어가 들려서 감정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잘 캐치하기는 힘들었다. 그저 자막과 배우의 표정에만 집중해야 하니. 그런데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다크하고 주인공의 표정은 참 어둡다. 그래서 이게 로맨스인지 처음엔 감이 안잡힌다. 우선 나조차도 이 영화가 '웬즈데이'같은 오컬트스러운 영화라고 생각하고 봤던 건데 로맨스였던 것이었다. 다시 보니 누가 봐도 로맨스인데, '쟤 바보 아니냐'할 수 있지만 로그라인을 크게 신경안쓴 내탓이다.
2차 충격은 이 영화는 여러가지 동화적 설정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늑대 타령이다. 이 영화의 주된 설정이 남자주인공이 늑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건데, 성안에 갇힌 공주를 사랑하면서도 구할 수 없다고 자신을 가스라이팅하는 인물로 나온다. 뭔가 비련의 남주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내가 이런 느낌을 수용하기엔 너무 냉정한 인간인가 싶었다. 여주 또한 늑대임을 알면서도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을 보아 이들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고 싶었음을 알 수 있다. 보다보면, 남주는 그저 희생적인 남자인데, 극 초반을 보면 이런 사이코가 없다. 그런데 알고보니 '사랑해서 보호하기 위해 멀리한다'는 생각이었다니, 왜 난 이걸 보면서 세상 오글거렸을까. 나만 오글거린 게 아니었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본 로맨스가 가미된 유럽 영화는 꼭 한 명씩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가 등장하는데 이번 영화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저번에 리뷰한 '립세의 사계'에서도 '치명적인 이성은 어쩔 수 없이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관념을 보여주었는데, 이 영화는 약간 영화 속 인물들이 남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와 비슷해 보인다.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어 모두가 그를 선망하고 갖고 싶어하지만 여주에게만 까칠한 그런 인물. 여주도 이 남자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치명적인 매력에 어쩔 수 없이 빠질 수밖에 없다는 이 감성이 정녕 유럽의 기본적인 감성인 걸까.
이걸 보면 유럽은 아직도 치명적인 매력이란 존재한다고 믿나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하려고 해도 끌릴 수 밖에 없는 매력이란 존재한다고 믿으며, 사랑에 빠지는 행위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상한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코드가 유럽에서는 굉장히 잘 먹히는 코드인가 생각해 본다.
이 영화는 정말 시종일관 어둡다. 그리고 잘 모르는 두 남녀 배우가 참 비주얼적으로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 영화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웬즈데이' 같은 배경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려낸 영화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까. 아련하고 애절한 로맨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뭐 한 번 정도는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여자 주인공이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한 것이 이 영화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생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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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듀얼> 마지막 순간까지 신중히 찾아야 할 진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4세기 프랑스, 유서 깊은 카루주 가의 부인 ‘마르그리트(조디 코머)’는 남편 ‘장(맷 데이먼)’이 집을 비우자 불시에 들이닥친 장의 친구 ‘자크(아담 드라이버)’에게 강간당한다. 자신의 범죄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자크는 그녀에게 침묵을 강요하지만, 마르그리트는 감내해야 할 불명예를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그의 죄를 고발한다. 한때 자크와 친우이자 전우였지만 세금 징수, 영지 소유권, 호칭과 계급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던 장은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재판을 요구하며 그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관계가 된다. 그런데도 대영주 '피에르(벤 애플렉)'의 권력을 등에 업은 자크가 강력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자 마르그리트의 재판은 장과 자크 중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결투 재판으로 결정되고, 마르그리트는 장이 패배할 경우 함께 사형에 처해지는 운명에 놓인다.
2-3 년에 한 편씩 신작을 내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리들리 스콧 감독. 비주얼리스트로도 유명한 그는 <블레이드 러너>, <에일리언> 시리즈, <마션> 같은 SF 작품부터 전쟁 영화인 <블랙 호크 다운>, 여성 영화인 <델마와 루이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작을 만들었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엑소더스> 등으로 대표되는 시대극이다. 리들리 스콧의 사극은 과거의 사건과 시대상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항상 현재를 반추할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왔기 때문이다. 그가 선보이는 화려한 볼거리에는 늘 자유의 평등의 가치, 종교의 의미와 기능에 대한 성찰처럼 도발적일 수도 있는 사유가 깃들어 있었다. 이는 에릭 재거의 원작을 영상화한 <라스트 듀얼>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마지막 결투 재판을 섬세하게 다루며 하나로 답을 단정할 수 없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라스트 듀얼>에서 가장 눈에 먼저 띄는 특징이라면 역시 그 구성을 꼽을 수 있다. 장과 자크가 결투를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 영화는 이내 시점을 과거로 되돌렸다가 후반부에 다시 결투 장면으로 돌아온다. 이때 과거 시점에서는 한때 절친이었던 두 남자가 왜 결투 재판까지 펼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과정이 총 세 명의 시선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세 명의 주인공은 각자 경험한 진실을 말한다. 1장인 "장 드 카루주가 말하는 진실"은 장의 입장에서 자크와의 불화가 어떻게 마르그리트의 강간으로 이어졌는지를, 2장인 "자크 르 그리가 말하는 진실"은 강간을 저지른 것을 마음 한 켠으로는 인정하면서도 끝끝내 사랑의 표현이라고 합리화하는 자크의 입장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인 "마르그리트가 말하는 진실"은 피해자인 마르그리트의 시점에서 일련의 사건을 복기한다.
이때 영화는 마르그리트의 시점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듯한 연출을 선보인다. "마르그리트가 말하는 진실"이라는 부제목이 나온 후 글자가 사라지는 가운데 화면에는 "진실"만이 잠시 남는다. 이는 마르그리트가 말하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중 마르그리트가 영주의 부인이라는 신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직접 가축을 돌보거나 세금을 징수하는 등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여성으로 묘사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마르그리트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지 못하던 시대에 구조적 한계마저 극복하며 자신의 권리와 명예, 그 목소리까지도 마침내 되찾은 이상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경우 <라스트 듀얼>은 중세의 사건을 통해 근 몇 년간 주목받았고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이끌어 낸 미투 운동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투가 끝난 직후 마르그리트의 표정을 보면 그녀가 이 작품 속 진정한 승리자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맞이했데도 그녀는 창백하게 질린 데다가 허무하기까지 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째서일까? <라스트 듀얼>이 엄연히 사극이기 때문이다. <왕좌의 게임>에서 명예와 충성심을 고집하는 존 스노우의 언행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작중 중세적 세계관에서는 그 언행이 세력을 구축하는 기반이 될 수 있듯이,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인물들의 행동은 표면적인 의미와 다른 함의를 가질 수 있다. 현대적 관점에서는 부당해도 그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것이다. 따라서 마르그리트가 말하는 진실 역시 반드시 현실이 아닐 수 있고, 장과 자크처럼 자신이 경험한 진실로서 현실의 한 파편에 불과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그녀의 표정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마르그리트가 강간을 당한 직후 장이 "마지막으로 정을 통한 남자가 외간 남자이게 둘 순 없지"라고 말하며 잠자리를 강요한 것이 단적인 예시다. 현재 관점에서 볼 때 장의 행동은 명백한 강간이다. 하지만 중세시대에 장의 행동은 오히려 마르그리트를 보호하는 것이다. 만약 그날 밤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는데 마르그리트가 임신한다면, 장은 그녀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기사인 그는 마르그리트의 아이가 자크의 아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마르그리트와 잠자리를 가졌기에 그는 훗날 태어날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명예와 진실을 지킬 명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설령 그것이 보호할 의도였다고 해도, 본래 무뚝뚝한 성정인 것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강압적이었던 장의 잠자리 요구는 엄연히 강간이다. 설령 보호라 해도 당사자인 마르그리트를 상처 입힌다는 점에서는 중세의 시대적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한 셈이다. 이에 더해 재판을 열기 위해 일부러 강간과 관련해 소문을 내는 것 역시 현시점에서 보면 명백한 2차 가해지만, 봉건제가 유지되던 중세 프랑스에서는 최선이자 동시에 필요악에 가까운 선택이나 다름없다. 이는 부부가 그날 밤을 전혀 다르게 기억하는 이유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르그리트가 장의 영지를 돌보는 장면들도 "마르그리트가 말하는 진실"이 반드시 현실과 등치 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는 일견 장의 어설픈 영지 경영을 현명하고 유능한 마르그리트가 잘 챙겨주는 장면 같다. 하지만 중세 시대임을 고려하면 이 역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마르그리트는 씨암말의 씨를 가려 받으려는 장의 명을 어긴 하인에게 말들을 자유롭게 풀어줘도 된다는, 남편의 말과 반대되는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중세의 말이 품종, 용도에 따라 급격한 가격차이를 보이는 것을 고려하면, 정해진 용도에 따라 말을 키우려는 장의 선택을 무시한 마르그리트의 선택은 오히려 큰 손실을 초래할 위험한 행동이다. 전쟁에 나선 남편 대신 세금을 거두는 장면도 유사하게 이해할 수 있다. 장은 몇 달간 전쟁에 나가 금화 300닢을 받아오는데, 이는 작중 마르그리트가 살림을 가꾸어 늘린 재정을 상회하는 수치다.
영화는 이처럼 마르그리트의 진실이 현실과 어긋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마르그리트는 중세의 재판이 얼마나 끔찍한지 모른 채 고발에 나섰다. 자신의 재판이 자신과 남편의 목숨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결투로 이루어지는 것 외의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이는 마르그리트가 분명 영리하고 지혜롭지만, 그녀의 현실 역시 그녀의 주관대로 구성되었던 경우가 많았음을 암시한다. 마치 사건의 전말을 모두 담은 듯했던 "마르그리트가 말하는 진실"조차도 온전한 진실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3장의 도입부 연출은 마르그리트의 진실과 별개인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실이 따로 존재함을 보여준다. 또한 마지막 순간 그저 무기력할 뿐인 그녀의 표정은 그녀가 알고 있었던 진실과 알지 못했던 현실의 충돌로 인한 충격에 압도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피해받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자, 더 나아가 현실과 진실 사이의 괴리를 시대적 관점에서 조명한 작품이다. 시대적, 사회적, 구조적 한계를 마주한 여성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모든 사람의 진실은 왜곡될 수 있기에 사건의 전모가 쉽게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도 함께 전한다. 이는 세 주인공의 시선에 따라 작중 그 어떤 사건도 동일하게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두드러진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결투 재판 시퀀스는 이처럼 보다 폭넓은 해석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만약 <라스트 듀얼>이 첫 번째 해석대로만 이루어지는 작품이라면, 이 작품이 마지막 결투를 스펙터클로써 보여주는 태도는 꽤나 어색해 보인다. 물론 프랑스 왕의 태도에서도 보이듯 결투 재판이 당시 시대에 유희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 자체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의 용기를 지지하는 것만이 영화의 주제였다면, 결투를 펼치는 두 남자의 시선에서 현장감을 살리며 박진감 있게 연출하는 대신, 마르그리트의 시점을 중심으로 결투를 건조하게 다루는 것이 더 주제에 부합하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투 장면은 마르그리트의 관점뿐만 아니라 그 결투에 임하는 두 남성의 시선, 그중에서도 특히 장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이는 결투 재판의 처절함과 승리에 대한 의지를 충실히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오락적으로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지막까지 누구의 시선과 진실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은 채 세 주인공의 시선을 공존시킨다는 측면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라스트 듀얼>의 함의는 제작 비하인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화의 제작 및 각본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 외에도 맷 데이먼, 벤 에플랙, 그리고 여성 감독이자 각본가로도 활동 중인 니콜 홀로프세너가 참여했다. 맷 데이먼은 초기 단계에서부터 데이먼과 애플렉이 남성의 시선을, 홀로프세너는 마르그리트의 시선을 담당해 각본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사건을 둘러싼 당사자들의 시각과 관점, 심정과 그들의 변화를 다채롭게 녹여낼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직간접적으로 미투 운동과 성추문 관련 이슈를 경험했던 이들과의 협업이 큰 역할이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에 개봉했던 <라스트 듀얼>은 리들리 스콧이라는 이름값에 비해 초라한 흥행을 기록했었다. 이 작품이 지닌 품격과 가치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부당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극장에서의 흥행은 참패했지만, 다행히도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되었으니 OTT를 통해서라도 노장의 시선과 사유가 담긴 <라스트 듀얼>이 온전히 공유되고 평가받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시대를 넘나드는 거장의 통찰력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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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개봉 예정 독립, 예술 영화 Best 7 - ( #프렌치수프 #이소룡들 #니자리 #양치기 #다섯번째방 #생츄어리 #다우렌의결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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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영화등대 채널을 사랑해주시고 봐주시는 구독자 및 시청자 여러분들 모두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오랜만에 돌아온 영화등대 채널이 선정한 [6월 개봉예정 영화] 소개 영상을 준비해보았는데요. 해당 작품들은 상황에 따라 개봉 일정이 변경될수 있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정하였으니 작품성이나 별다른 기준이 없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또한 해당 작품들의 관계자나 투자 및 배급사의 어떠한 대가를 제공받고 제작된 영상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럼 바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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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마더> 메인 예고편
환불해드릴게요, 제발 돌려주세요?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적 충격! [더 마더] 메인 예고편 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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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후겟츠 웨슬리> 스페셜 예고편
허구한 날 티격태격하는 결혼 5년차 부부 올리브와 클레이는 고민 끝에 이혼을 결심하고 반려견 웨슬리에게 사실을 말한다.
깔끔하게 헤어지는 줄만 알았던 것도 잠시, 두 사람은 웨슬리의 양육권을 두고 법정 싸움을 하게 되고, 법원에서는 반려견 행동 심리학자를 지정해 두 달 후에 누가 최종 양육권을 가질지 판결하기로 한다.
하지만 웨슬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두 사람 앞에 반려견 행동 교정사 글렌이 나타나면서, 둘의 관계는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데..
과연 웨슬리는 누구의 품에 안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