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4-04 11:41:20
4월 1주 차 개봉작, 공개 예정작 추천
<리바운드>, <에어>, <장기자랑> 외 2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이번 주 개봉, 또는 공개 예정인 작품들을 소개해 드리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고교농구부의 기적같은 실제 이야기를 담은 <리바운드>부터
스티븐 연 주연의 넷플릭스 블랙코미디 드라마 <성난 사람들>까지!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한 이번 주 개봉작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리바운드
Rebound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22분
감독: 장항준
출연: 안재홍, 이신영, 정진운, 김택 등
개봉: 2023.04.05.
배급: (주)바른손이앤에이
시놉시스
농구선수 출신 공익근무요원 ‘양현’은 해체 위기에 놓인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신임 코치로 발탁된다. 하지만 전국대회에서의 첫 경기 상대는 고교농구 최강자 용산고. 팀워크가 무너진 중앙고는 몰수패라는 치욕의 결과를 낳고 학교는 농구부 해체까지 논의하지만, ‘양현’은 MVP까지 올랐던 고교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선수들을 모은다. 주목받던 천재 선수였지만 슬럼프에 빠진 가드 ‘기범’ 부상으로 꿈을 접은 올라운더 스몰 포워드 ‘규혁’ 점프력만 좋은 축구선수 출신의 괴력 센터 ‘순규’ 길거리 농구만 해온 파워 포워드 ‘강호’ 농구 경력 7년 차지만 만년 벤치 식스맨 ‘재윤’ 농구 열정만 만렙인 자칭 마이클 조던 ‘진욱’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최약체 팀이었지만 신임 코치와 6명의 선수가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에서 써 내려간 8일간의 기적 모두가 불가능이라 말할 때, 우리는 ‘리바운드’라는 또 다른 기회를 잡는다.
CINE PICK!
장항준 감독의 신작 스포츠 영화 <리바운드>는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최약체 농구부의 신임 코치와 6명의 선수들이 이룬 8일간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공작’, ‘수리남’의 각본을 쓴 권성휘 작가와 ‘시그널’과 ‘킹덤’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가 각본에 참여했으며, '현실판 슬램덩크'로 불렸을 정도로 극적인 드라마를 쓴 부산중앙고등학교 농구부의 2012년 전국대회 당시 실화를 영화화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에어
AIR

개요: 드라마 | 미국 | 112분
감독: 벤 애플렉
출연: 맷 데이먼, 벤 애플렉, 제이슨 베이트먼 등
개봉: 2023.04.05.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시놉시스
1984년, 업계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이키는 브랜드의 간판이 되어 줄 새로운 모델을 찾는다. 나이키의 스카우터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는 NBA의 떠오르는 루키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미 시장을 장악한 컨버스와 아디다스가 그와의 계약을 노리는 상황 나이키 팀은 조던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데…. 누구에게나 점프하는 순간이 온다!
CINE PICK!
아마존 스튜디오가 제작, 배급에 참여했으며 벤 애플렉이 감독을 맡은 <에어>는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임원이었던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가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과 계약하는 1984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굿 윌 헌팅',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등 만났다 하면 명작을 탄생시키는 맷 데이먼과 멘 애플렉의 3번째 만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미국의 주간 잡지 버라이어티는 탁월한 연출과 등장 배우들의 연기를 호평하며 <에어>가 내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장기자랑
The Talent Show

개요: 다큐멘터리 | 대한민국 | 93분
감독: 이소현
출연: 김명임, 김도현, 김순덕, 박유신, 이미경 등
개봉: 2023.04.05.
배급: 영화사 진진
시놉시스
2014년 그날 이후, 집 밖으로 나서기 어려웠던 엄마들은 지나가듯 얘기한 ‘재밌겠다’ 한마디에 연극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연기’라는 뒤늦은 재능을 발견하고 열정을 불태운다 그러나 새로운 연극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엄마들 사이의 질투와 갈등은 깊어지고 급기야 몇몇은 극단을 나가버리는데… 일곱 엄마들의 좌충우돌 연극 도전기! 우리 잘 할 수 있을까?
CINE PICK!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일곱 명의 엄마들이 얼떨결에 연극을 시작하며 재능을 발견하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아이들을 향한 기억을 이어가는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할머니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데뷔작 <할머니의 먼 집>으로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거머쥐었던 이소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로,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 수상 및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슬프고 무거운 시선에서 벗어나 ‘주인공이 되겠다’는 일념 하에 열정을 불태우고 티격태격 갈등을 빚기도 하는 엄마들의 새로운 도전에 집중하며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며, ‘연극’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추모를 이어가는 엄마들의 모습을 통해 희생자들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와 연대를 환기시킵니다.
성난 사람들
BEEF

개요: 코미디, 드라마 | 미국 | 10부작
감독: 이성진
출연: 스티븐 연, 앨리 웡, 조셉 리 등
공개: 2023.04.06.
채널: 넷플릭스
시놉시스
복수는 날것이 제맛.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도급업자와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사업가. 두 사람 사이에서 난폭 운전 사건이 벌어지면서 내면의 어두운 분노를 자극하는 갈등이 촉발된다.
CINE PICK!
<성난 사람들>은 <데이브>, <실리콘 밸리> 등의 드라마를 작업한 이성진 감독이 제작 총책임자를 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코미디 드라마입니다. 감독이 실제로 겪었던 난폭운전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드라마라고 하는데요, <워킹데드> 시리즈와 영화 <미나리>, <버닝> 등으로 전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이 주연을 맡았으며 선공개 당시 많은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아 더욱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편, 스티븐 연과 이성진 감독은 마블 코믹스의 신작 영화인 <썬더볼트>에서 또 한번 협력하는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미끼 파트2
Decoy Part.2

개요: 범죄, 느와르, 스릴러 | 대한민국 | 6부작
감독: 김홍선
출연: 장근석, 허성태, 이엘리야 등
공개: 2023.04.07.
채널: 쿠팡플레이
시놉시스
유사 이래 최대 사기 사건의 범인이 사망한 지 8년 후, 그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이를 둘러싼 비밀을 추적하는 범죄 스릴러.
CINE PICK!
<미끼>는 지난 1월 27일 파트 1이 공개된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범죄스릴러 드라마로, 유사 이래 최대 사기 사건의 범인이 사망한 지 8년 후, 그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이를 둘러싼 비밀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5년만에 복귀한 배우 장근석이 주인공이자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 '구도한' 역할을 맡았으며, 배우 허성태가 사상 최악의 사기 범죄를 저지르고 죽음 뒤로 숨어버린 '노상천' 역할을 맡아 열연을 선보였습니다. 파트1이 공개된 이후 배우들의 명연기와 다이나믹한 전개로 호평을 받아 파트2에 대한 기대감도 높은 편입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OTT 신작 등 총 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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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 위에 서있는 우리의 인생, 그리고 선택
-한줄평 아닌 한줄평
두번의 대화, 두번의 다른 선택 앞에 놓여있는 한 사람.
영화는 시대를 반영하고 어떤 부분에서 앞서가기도 뒤처져 있기도 하다. '해탄적일천'은 대만의 1980년대를 중심으로 한 영화인만큼 시대는 뒤처져 있지만 담고 있는 생각만큼은 앞서나가 있다. 대만의 곳곳에 남아있는 일본 문화와 가부장제가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시대의 흐름을 통해 그의 중심을 바라볼 수 있었다.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탄웨이칭의 귀국은 린자리와의 재회를 암시하며 영화의 문을 연다. 린 자리의 오빠의 연인이었던 탄웨이칭은 그와의 만남에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지만 재회의 손을 내밀며 과거에 멈춰버렸던 그들의 관계가 13년 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안부에서 싹트기 시작한 이야기는 린자리의 현재와 과거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이상보다는 현실을, 미래보다는 현재를, 기대보다는 포기를 선택한 오빠는 아버지의 선택을 선택하며 불행해진다. 아버지의 선택은 오빠인 린 자썬에 이어 린 자리에게도 찾아온다. 오빠와는 다르게 고향을 떠나 연인인 청더웨이와 결혼하는 선택을 한다. 즐거웠던 처음과는달리 가정에 소홀한 청더웨이는 어떤 감정도 생각도 나누지 않는다.
어떤 문제도 자신이 직접 대면하지 않던 청더웨이가 갑작스레 사라지며 그때와 같은 상황이 닥쳐온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오빠와의 진지한 대화는 극 중 두 번의 선택을 앞두고 이루어진다. 상황은 다르지만 고민하는 바는 같았던 린자리에게 회피가 아닌 선택을 할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게 하는 말이 된다. 어떤 말이 어떤 순간에 닿냐에 따라 달라지는 전체의 삶이 자신의 파도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파도를 일으켰다.
자유만큼 자유로운 건 없지만 행복이 따라 줄지는 모르지만 어떤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회피가 아닌 선택이 주는 어떠한 감정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 누구도 알려주지도 않는 현재진행형은 커다란 파도를 만들어 낸다. 그 파도가 누구를 잡아, 삼켰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닷가의 그날'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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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 리뷰
※ 스포일러 주의
하늘길이 막혀 국가 간 여행이 막혔다. 주변 환경을 완벽하게 바꾸어 일상을 잊는 게 그 어느때보다 어렵다. 그렇다면 화려한 액션으로 가득 찬 영화를 봐야 하는 게 아닐까.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 하에서, 올해 개봉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25번째 장편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는 나쁘지 않은 오락 영화였다. 좋았으면 좋다고 하면 될 텐데 수식어가 괜히 길어진 까닭은, 이 영화에 대해 만듦새가 훌륭하다고 평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서사의 개연성이든, 연출면에서든. 하지만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 역시 적지 않고, 이번 리뷰에선 내가 주목한 점에 대해 간단히 적어볼 생각이다.
출처: 다음영화포토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포토웬우: 망가진 영웅
아마 신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웅 서사 구조의 원형을 분석한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이란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캠벨의 서사구조를 전형적으로 따랐다고 보긴 어려운데(보글러 모델을 따랐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꺼내온 것은 '빌런'으로 소개된 웬우(양조위)의 일대기가 캠벨의 서사 구조와 유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기원을 알 수 없는 데다가, 웬우는 텐 링즈라는 초자연적 아이템을 획득하여 영생을 누리는 자로, 평범한 인간이라기보단 신격화된 인물에 가깝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위대한 정복자로 자신만의 세계를 꾸린 후 잉리(진법랍)라는 신비스러운 여인과 결혼에 성공한다. 이 과정은 지극히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한 장면이다. 과업의 달성과 신비스러운 여인과의 혼인 말이다. 물론 이런 의문이 생길 순 있다. 그가 이러한 대접을 받을 만한 인물인가?
그러나 이러한 의문을 깊게 파고들기 어려운 까닭은, 스크린 묘사된 웬우라는 인물의 천 년 지배는 너무도 짧은 대사로만 지나갔기에 그의 모든 결정이 악하기만 했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밖에도 역사 속에서 우리는 정복자가 곧 영웅으로 떠받들여졌다는 것을, 정복의 과정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한들 치세가 안정적이었다면 역사서는 그를 위대한 전사로 서술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기에 파편화된 단서만으로 이 웬우라는 인물을 뼛속까지 사악한 악인으로 점찍는 것은 점차 어려워진다. 더군다나 결과론적으로 세상을 망가뜨리려 한 행동의 본질적 요소는 아내의 부활이자 가정의 회복이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주인공인 샹치(시무 리우)가 결국 아버지의 공과 과를 모두 물려받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웬우를 완전한 악인으로 묘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했겠지만.
그럼에도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웬우를 주인공인 샹치가 넘어서야만 하는 시련으로 규정한다. 이는 그저 웬우가 완전한 빌런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다만, 구시대에서 필요로 했던 타입의 영웅이었지 현대의 우리에게 어울리는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다. 웬우의 추락은 어찌 보면 운명적인 측면이 있다. 그는 천 년간 다양한 이름을 사용하며 분열된 정체성으로 시대를 부유하였음에도 늘 자신의 본명만큼은 잊지 않았고, 늘 자기 자신으로 회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잉리가 나타난다. 그는 웬우를 웬우로 호명하며, 흩어진 그의 다면적인 모습을 본연의 자아로 고정시켰다. 홀로 자신을 잊지 않는 것과, 타인이 자신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주며 세상에 고정시키는 것은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웬우라는 이름이 천 년의 고독 속에선 결코 획득할 수 없었던 정체성은 그러나 몇 년의 시간 후 사라진다. 결과는? 자아의 망각이다. 그는 잉리가 존재하기 전 자신이 규정했던 웬우로도, 잉리가 존재했던 시절의 웬우로도 완벽히 돌아갈 수 없다.
영웅과 비영웅의 차이는 삶을 통해 목도하는 운명적인 순간에서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웬우는 자신의 세계가 일그러졌을 때, 즉 잉리를 잃고 평화를 상실한 시련의 순간에 단독자로서 복수를 하겠다는 구시대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택했다. 새롭게 부여받은 아버지라는 정체성을 키워내지 못한 것, 그것이 그가 추락한 주요 원인이다. 영웅이 된다는 건 자신의 손에 누구도 넘보기 힘든 힘과 권위가 달려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마땅한 도덕의식을 흔들리지 않고 지닐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런 힘이 없더라도 가슴이 메일만큼 처참한 순간, 주변을 돌보며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지와 같은 요소조차 영웅의 조건일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거대한 신분과 거대한 힘이 지배하는 세계는 벌써 백 년도 전에 무너졌다. 소박하지만 지겹고 질곡 많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물음이자, 영웅이 답해야 하는 질문은 어쩌면 이런 것들일 것이다. '살아가야만 하는 그 순간을 어떻게 살아 나갈 것인가.'
출처: 다음 영화 포토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포토탈로: 완전하지 않은 별세계
웬우는 천 년을 산 인물이기에, 그는 그 자신이 스스로의 조상이자 고향인 하나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아내인 잉리의 고향 탈로는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개인,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각각의 타인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공동체가 거주하는 특별한 장소이다. 하지만 웬우가 숲과 동굴을 통해 탈로에 수평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알 수 있듯, 웬우와 탈로는 둘 사이에 위계가 존재하는 수직적인 세계가 아닌 평등한 세계관이다. 정복자라는 속성을 띈 웬우와 평화로운 별세계처럼 보이는 탈로는 색상을 비롯한 여러 테마에 있어서 지독히도 달라 보이나, 사실 비슷한 점 역시 무수히 많다. 탈로는 어둠의 드웰러를 봉인한 장소이자, 웬우라는 외부자를 철저히 배격하는(그의 변화 가능성을 믿지 않는) 폐쇄적이고 정체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이 진실로 평화롭기만 한 무릉도원이었다면 탈로에선 남녀가 평등하게 무술 훈련을 받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며, 잉리가 성인이 된 자신의 자녀를 위해 갑주를 예비할 이유도 없었으리라. 언뜻 선인의 세계처럼 보일지언정, 탈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을 품고 있는 아슬아슬한 세계다.
나는 위에서 웬우를 악인이라기보단 ‘비영웅’정도로 묘사했는데, 영화 내에서 파멸적인 악惡을 꼽아야 한다면 어둠의 드웰러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크리처 무리는 다른 생명의 영혼을 흡수하며 텐 링즈를 통해 아이템의 소유주를 홀릴 만큼의 지능과 마력을 지녔다. 언어 능력조차 없어 소통이 불가한 그들은 순수한 공포 그 자체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 내에서 가장 신화적인 장소에서 노골적으로 힘을 원하고, 사악한 크리처가 등장하였음에도 영화 내 인물들은 어둠의 드웰러를 맞서 싸워야 하는 상대로는 인식할지라도 증오나 원망 따위의 감정을 비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샹치와 샤링(장멍일), 케이티(아콰피나)는 외부인이라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탈로 주민들 역시 그들의 시간과 장소를 모두 묶은 역사가 존재함에도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일종의 ‘현상유지’다. 탈로가 간신히 모면한 평화 위에 세워진 세계일지언정 불안한 진동을 감내한다.
이때 도달하는 것이 바로 웬우라는 외부인, 혹은 외부 세계다. 그는 자신의 절반을 찾기 위해 봉인된 문을 깨부숴야 하는 인물이다. 설령 그것이 날 눈멀게 한 거짓이라 하여도.
비슷하면서도 달랐던 탈로와 웬우의 충돌은 탈로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영화가 탈로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역시나 그들이 무작정 옳거나 신령한 용과 함께 하는 이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탈로가 공동의 시간과 지혜로 다듬어진 협력의 가치를 인정하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탈로는 어둠의 드웰러들과 전쟁을 함으로써 조상 대대로 이어온 '봉인된 문의 수호'라는 목적성을 상실하였고, 이는 세계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릴 위기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탈로라는 세계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웬우처럼 단독자가 아니며, 거주민 개개인은 서로에게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샹치가 잉난(양자경)을 통해 쥐고 있던 손을 피게 되었듯, 탈로 세계의 인물들은 샹치 세계의 인물을 통해 문을 봉인과 위협에 시달릴 이유가 없어졌다. 그렇다, 끔찍한 사건이라 해도 오로지 나쁜 결과만 몰고 오진 않는다.
출처: 다음 영화 포토실패한 아버지조차 계승하는 영웅
유럽의 신화나 미국의 히어로 영화를 보다 보면 친부 살해 모티프나 주인공의 가족 관계가 단절된 설정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미국에서 제작된 히어로 영화임에도 빌런으로 묘사된 아버지 웬우와 차기 세대의 영웅인 샹치가 화해할 뻔한 장면이 있다. 샹치는 (영화 내에서 그가 다짐하기도 했지만) 기존의 다른 영웅들처럼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의 힘만을 취한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외친다. 우리에겐 당신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지 않으며, 영화 말미엔 직접적으로 그를 추모하기까지 한다(그러나 완전한 용서인지는 알기 어렵다). 나에겐 영화의 이 지점이 가장 눈에 띄었던 것 같다. 21세기에 영웅이 될 수 없었던 아버지를 계승하는 젊은 영웅의 미래는 기대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마 이 영화는 트릴로지의 첫 번째인 만큼, 샹치가 어떻게 텐 링즈를 물려받게 되었는지를 풀어나가는 일종의 프롤로그 부분에 해당할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즉, 샹치를 흔들어 놓을 진정한 모험이 시작된 순간은 아닐 것이라고.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모험을 통해 샹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는 케이티와 펍에서 술을 마시고, 웡과 노래방에 간다. 더 이상 호텔 직원은 아닐 수 있겠으나, 그저 그뿐이다. 특히 그가 지녔던 증오나 두려움은 일부 해소된 듯 보이나, 타의에 의해 제거된 것으로 완전한 극복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더더욱. 물론 샹치는 아버지의 텐 링즈를 물려받았고 어머니의 고향에서 용의 힘을 배웠다. 그러나 영웅이라는 정체성은 단순히 ‘힘’을 획득하여 악하게 쓰지 않거나,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대항하는 순간에 얻어지는 이름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발적인 책임 혹은 신념을 자각하는 각성의 순간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 펼쳐질 샹치 트릴로지에서 주인공은 션이 아닌 샹치라는 본래의 이름으로 회귀한 만큼 자신이 정녕 누구인지를 의식적으로 깨닫는 모습이 필요할 텐데, 이러한 서사를 기존 서구 영화 속 히어로와는 다른 결로 풀어나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는 열다섯에 달려 나오며 숨기고 잊었던 자신의 과거를 앞으로 결코 숨길 수 없을 것이며, 숨겨서도 안될 것이다. 한 인물의 공과를 우리는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 샹치는 잉리는 물론, 웬우까지 포함하여 다채로운 모습을 모두 포용하되 더 나은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자신만의 서사를 구축해나가야 한다. 다면적인 선과 악 사이에서, 서양과 동양이라는 이분법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을 넓은 스펙트럼의 세상에서.
출처: 다음 영화 포토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해 지금 왈가왈부하는 건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아직 트릴로지가 종료된 시점은 아니니까. 그리고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로 시작한 영화의 트릴로지가 혼자 올곧게 서고자 하여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넓은 세계에서 샹치는 여러 캐릭터들과 뒤엉키게 될 운명인지라, 이 캐릭터의 일관성이 과연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인간적이었으나 정의로운 이는 아니었던 아버지의 공과를 물려받은 이가, 어떻게 자신을 영웅으로 정의하고 성장할 지에 대해선 정말이지 기대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2021 여름이 저물었다는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양 무더위가 계속되는 요즈음이다. 하지만 타오르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시선을 바꾸어본다. 올 가을엔 여름의 발자국이 그 어느 때보다 짙게 남아있으리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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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명목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더 웨일>
오스카 시상식을 앞두고 남우주연상 유력후보로 거론되는 브렌든 프레이저의 <더 웨일>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연출은 공간이용과 동선이다. 여기서 눈에 띈다는 말은 연극이라 하면 자연스러운데 영화라고 보니 눈에 익숙하지 않았던 연출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알았지만 <더 웨일>은 동명의 연극을 기반으로 제작한 영화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어떻게 보여졌고,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었는지 얘기해보려 한다. 영화는 주 무대를 찰리의 집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 외라 하면 피자를 받으러 가는 현관 또는 현관에서 주차장을 바라보는 시선 정도가 될 수 있겠다. 이는 연극에서는 공간적 제약이었을지라도 영화에서는 앞서 말했듯 집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통제된 삶을 살고 있는 찰리의 답답함 또는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적합한 연출처럼 보여진다. 또한 이로 인해 찰리 외의 인물들은 모두 집 현관문을 왔다 갔다 하며 ‘찰리의 공간’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연출이 된다. 덕분에 인물들은 더욱 찰리의 공간에서 함께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다른 연극적 연출을 말하자면 인물의 동선이다. 거실과 (명확히 분리되지 않은) 주방을 오고 갈 때, 특히 찰리와 상대 인물이 움직이며 대화를 할 때, 기존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인물이 한 프레임의 중심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프레임의 반대를 향해 나간다던지 두 인물이 겹쳐지기보다는 겹쳐지지 않도록 보이는 동선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 또한 찰리와, 찰리의 어긋나는 사랑의 방향을 말한다면 이런 익숙하지 않은 동선은 찰리와 인물 간의 불편함을 보여주기에 적합했다고 볼 수 있다.
브렌든 프레이저가 오스카뿐만 아니라 다수의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으로 수상 또는 후보로 지명된 데에는 브렌든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영화계에서의 그의 삶 또한 조금의 영향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밖의 일은 차치하고, <더 웨일>에서 보여준 브렌든 프레이저의 연기는 ‘찰리'를 실존하는 인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옆의 눈물을 흘리는 관객 사이에서 나는 찰리에게 동의할 수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찰리는 계속해서 한 방향의 사랑을 한다. 사랑이 언제나 양방향은 아니다. 하지만 찰리의 경우, 문제는 한쪽 때문에 다른 한쪽이 상처받는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찰리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내와 딸 엘리를 떠난다. 영화에서의 현재 또한 찰리는 자신의 사랑인 엘리를 위해 자신을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불륜 또한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 자신의 사랑을 위해 자신을 향한 사랑을 신경 쓰지 않고 상처 주는 것이라고 해석하겠다. 전에 한 가수가 모든 사람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랑을 누구라도 사랑을 받거나 사랑을 하는 입장에 놓여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관객은 찰리의 입장을 이해할까? 찰리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입장에 이입할까?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떠나보내며 그 사람이 나를 떠난 만큼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인 적 있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 사람이 아프거나 불행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그만큼 더 미워졌던 경험이 있었기에 찰리보다는 엘리와 리즈에게 더 이입이 되었다. 그렇기에 찰리가 새에게 과일을 주기 위해 창가에 놓아둔 접시가 깨진 것을 보며 내가 엘리였다면 ‘저 새에게 줄 저 작은 사랑을 나에게 조금도 줄 수는 없었나'하며 접시를 깼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찰리는 좋은 에세이를 쓰는 방법에 대해 얘기한다. 시작장면에서는 카메라를 끝 채 영상수업에서 학생들을 향해 계속 다듬을수록 좋은 글이 된다고 말하지만 영화가 끝나갈 때쯤에는 졸업을 위한 에세이를 써야 하는 엘리를 향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는 것이 자신의 진짜 에세이'라고 말한다. 삶을 글로 풀어낸 것이 에세이라면 자신의 삶을 잘 사는 방법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라고 에세이에 비유해 넌지시 말하는 듯하다. 결국 찰리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의 삶을 응원할 수는 없었다. 결론적으로는 응원하고 싶지 않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영화였다. ‘응원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그 인물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공감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는 말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는 말은 브렌든 프레이저의 연기 덕에 분명 찰리는 존재하는 인물로 느껴졌다는 말이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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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샤를리즈 테론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차기작에 합류합니다. 2025년 초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인 이 작품은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젠데이아, 로버트 패터슨, 앤 해서웨이, 루피타 뇽오 등 걸출한 스타 배우들이 출연을 알려 화제가 되었습니다.
놀란은 지난 3월, <오펜하이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큰 성공을 거둔 직후 이 영화의 각본 작업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해당 작품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제작, 배급하며 2026년 7월 17일에 개봉 예정(북미 기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플TV+ <파친코>, 티빙에서 볼 수 있다
국내 OTT 플랫폼 티빙에서 ‘애플TV+ 브랜드관’을 출시를 알렸습니다. 오는 10일부터 티빙 프리미엄 요금제 가입자는 추가 비용 없이 애플TV+의 콘텐츠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애플TV+의 콘텐츠로는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던 <파친코>를 비롯하여 <테드 래소>, <세브란스: 단절>, <디킨슨> 등이 있습니다.
변요한 <타짜 4> 주인공 발탁
배우 변요한이 새로운 타짜 시리즈의 주인공 장태영 역으로 발탁됐습니다.
<타짜 4>는 싸이더스가 제작을 맡고,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국가부도의 날>을 연출한 최국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예정입니다.
한편,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타짜’ 시리즈는 각각 569만 명(타짜), 401만 명(타짜: 신의 손), 222만 명(타짜: 원 아이드 잭)의 관객을 동원하며 준수한 성적을 기록해 왔습니다.
<어느 가족> 릴리 프랭키,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연기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를 다룬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한 배우의 베일이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에서 호연을 펼친 릴리 프랭키가 그 주인공입니다.
우민호 감독은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였다. 그분이 흔쾌히 이 작품의 진정성을 알아주시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셨다.”라고 캐스팅 비하인드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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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한 연쇄살인범이 설계한 범죄 다큐
일본 스릴러 영화가 개봉하면 눈이 가기 마련이다. 스릴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29일 개봉한 <사형에 이르는 병>은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웰메이드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로, 감옥에 수감된 연쇄살인범과 그의 편지를 받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약 2시간 동안 이어지는 진실의 행방은 어느 순간 관객의 발목을 잡아끌고 비밀의 늪으로 데려간다.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영화 <사형에 이르는 병> 스틸 / 태양미디어그룹, 와이드릴리즈 제공
<사형에 이르는 병>은 연쇄살인범 야마토(아베 사다오)로부터 시작한다. 평범한 빵집 주인으로 지내며 7년에 걸쳐 24건의 살인을 저지른 연쇄 살인범 야마토. 그는 10대 후반 소년, 소녀만을 골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어느 날, 마사야(미즈카미 코시)는 야마토의 편지를 받는다. “마사야, 내가 저지른 일은 알고 있지? 다른 건 인정하지만, 마지막 살인만큼은 내가 한 짓이 아니야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지 않겠나?” 과거 야마토의 빵집에 자주 갔었던 마사야는 그 연으로 편지를 받은 것. 어렸을 적부터 우등생이었지만 삼류대학 법학과에 진학하며, 자신감도 삶의 목표도 상실된 채 살아간 마사야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달라는 편지를 확인한 후, 그 사건에 점점 빠져든다.
영화 <사형에 이르는 병> 스틸 / 태양미디어그룹, 와이드릴리즈 제공
콘셉트가 독특하다. 24건 중 단 1건의 살인을 부정한 연쇄살인범, 그리고 그를 대신해 진범을 찾아 나서는 한 대학생의 이야기는 구미를 당긴다. 진실에 다가서려고 했을 때 맞닥뜨리는 마사야의 숨겨진 가족 이야기, 그리고 살해된 이들의 공통점(공부를 잘하고, 똑똑하며, 매사에 뭐든 열심히 하는 18~9세의 고등학생)이 오히려 진실로 가는 길을 흐릿하게 하면서 장르적 쾌감이 한 층 더 살아난다.
야마토가 제기한 이 살인사건의 비밀은 진짜 다른 진범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야마토의 감언이설에 마사야가 휘둘리는 것인지, 아니면 마사야 집안이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인지 등등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한다. 특히 야마토가 왜 마사야를 찍어,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찾게 했는지 가장 궁금한데, 스포일러라 밝힐 수 없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영화 <사형에 이르는 병> 스틸 / 태양미디어그룹, 와이드릴리즈 제공
영화의 장르적 재미는 범죄 다큐를 보는 듯한 구성도 한몫한다. 마사야가 야마토의 범죄 사건을 파헤치면서 이어가는 구성은 야마토의 범행 동기와 살인 패턴 등 실제 범죄 사건을 방불케 하는 요소들이 연출되면서 그 매력을 살린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결핍’이란 약점을 교묘히 공격하며, 결국 자신의 성취물로 여기는 연쇄살인마의 특성이 강조된다. 진행될수록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이 부분은 영화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는 마사야를 통해 부각된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삼류 인생을 살아가는 마사야의 결핍은 아이러니하게도 야마토의 부탁과 고마움, 칭찬으로 메워진다. 사건에 집중할수록 마사야는 점점 야마토를 닮아가게 되고, 이 모습은 어쩌면 범죄라는 건 전염병처럼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차별과 멸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사는 누군가에게 쉽게 옮겨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건 배우의 힘. 특히 야마토 역을 맡은 아베 사다오다. <이름 없는 새>를 통해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는 선악이 공존하는 연쇄살인범의 연기를 소름 끼치게 연기한다. 동네 빵집 사장님처럼 푸근하고 선한 얼굴을 갖고 있다가도,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 광기에 어린 얼굴로 변하는 그는 영화에서 1인 2역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사형에 이르는 병> 스틸 / 태양미디어그룹, 와이드릴리즈 제공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건 배우의 힘. 특히 야마토 역을 맡은 아베 사다오다. <이름 없는 새>를 통해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는 선악이 공존하는 연쇄살인범의 연기를 소름 끼치게 연기한다. 동네 빵집 사장님처럼 푸근하고 선한 얼굴을 갖고 있다가도,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 광기에 어린 얼굴로 변하는 그는 영화에서 1인 2역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사형에 이르는 병> 스틸 / 태양미디어그룹, 와이드릴리즈 제공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마사야와 이야기를 나누는 면회실 장면. 유리막을 사이에 두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모르는 이야기를 하면서 마사야를 움직이게 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천사의 모습을 한 악마처럼 보인다. 특히 유리막에 비치는 그의 얼굴이 마사야의 얼굴과 겹칠 때의 공포스러운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마사야 역을 맡아 진실을 찾아 헤매는 미즈카미 코시, 마사야 엄마 역으로 비밀을 간직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나카야마 미호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연기를 보여준다.
물론, 소재는 특이하지만 장르 문법을 오롯이 따라가면서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 야마토의 플래시백을 통해 보여지는 살인 및 고문 장면의 수위가 다소 높다는 점은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친절한(?) 연쇄살인범이 설계한 범죄 다큐에 참여하는 건 관객의 몫. 편지는 이미 우리 앞에 도착했다.
평점: 3.0 /5.0
한 줄 평: 친절한 연쇄살인범이 설계한 범죄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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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디맨, 캔디맨, 캔디맨, 캔디맨… 캔디맨
1992년과 2021년의 〈캔디맨〉 포스터
*글에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한 구절이다. 명확한 형태를 지니지 못한 채 부유하던 ‘그’는 호명을 통해 꽃이라는 구체적 물질성을 부여받는다. 누군가의 이름을 공들여 불러주면 추상적인 것이 물질이 되고, “무엇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지닌 존재('그')의 욕망은 현실이 된다. 호명은 존재를 소환하는 정치적 행위다.
영화 〈캔디맨〉은 호명과 주체성의 문제에 흑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 폭력 문제를 결합한 미스터리‧공포 영화다. 1992년에 처음 개봉한 후 두 편의 후속작이 나왔고, 올해는 흑인 문제와 미스터리 장르를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자신만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 조던 필 감독(〈겟 아웃〉, 〈어스〉 연출)이 각본을 써 새로 만들어졌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캔디맨2〉, 〈캔디맨3〉은 제외하고, 1992년과 2021년에 같은 이름으로 개봉한 두 〈캔디맨〉의 궤적을 따라가 보자.
두 영화의 핵심 소재는 모두 도시 괴담이다. 거울을 보고 캔디맨의 이름을 다섯 번 부르면, 손목이 잘려 피가 뚝뚝 흐르는 팔에 갈고리를 꽂은 캔디맨이 나타나 이름 부른 자를 잔인하게 살해한다는 게 괴담의 내용이다. 흑인 빈민가였던 카브리니 그린이 재개발된 후에도, 캔디맨 괴담은 끊이지 않고 전승되었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처음에는 캔디맨 괴담을 믿지 않다가, 호명을 통해 캔디맨을 소환한 후, 하락 혹은 상승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여기에 윤리, 정치가 결합된다.
1992년 〈캔디맨〉의 주인공 헬렌 라일
먼저 1992년의 〈캔디맨〉이다. 도시 전설에 관한 논문을 쓰는 헬렌 라일은 캔디맨 괴담에 흥미를 느낀다. 그녀는 도시 전체가 일상적 공포를 전설적 존재 탓으로 돌리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갖는다. 때문에 캔디맨 괴담을 연구하면 사람들이 괴담을 믿는 구조적‧실제적 원인이 드러날 거라 생각한다.
헬렌은 캔디맨 괴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흑인 빈민가로 향한다. 그런데 그녀가 캔디맨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피가 낭자한 잔혹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는데, 현장에는 늘 정신을 잃은 헬렌이 있다. 헬렌을 걱정하던 사람들은 점차 그녀를 의심하고, 결국 그녀를 정신병원에 감금하기에 이른다.
헬렌이 사회와 멀어질수록, 캔디맨과는 더욱 가까워진다. 캔디맨은 수시로 나타나 자신과 함께 불멸의 존재가 되자고 속삭인다. 헬렌은 자신을 둘러싼 절망적 상황에 휩쓸려 캔디맨의 제안을 수락하지만, 그의 말이 거짓임을 깨달은 후에는 캔디맨이 희생물로 삼으려 납치한 어린아이 앤소니를 구하는 윤리적 선택을 내린다. 그러나 한순간이나마 캔디맨의 제안을 수락한 대가는 가혹했다. 앤소니를 구하는 과정에서 끔찍한 부상을 당한 헬렌은 억울함을 해소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캔디맨이 되어 도시를 부유한다.
어린 앤소니를 구하는 헬렌(1992)
이번엔 2021년의 〈캔디맨〉이다. 주인공은 앤소니다(헬렌이 캔디맨에게서 구한 그 앤소니가 맞다). 그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지 못해 힘든 시기를 보내는 남성 화가로 성장했다. 괴로워하던 앤소니는 캔디맨 괴담을 듣고 예술적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어 낸다. 작품의 이름은 〈Say my name〉이다. 사람들이 장난 삼아 캔디맨을 '호명'하라는 작품의 요청에 따르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파국이 시작된다. 앤소니는 무시받던 자신의 예술이 캔디맨의 부활과 더불어 화제가 되자 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런데 캔디맨이 활보할수록 앤소니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앤소니가 캔디맨과 연결된 존재임을 암시하는 증거가 점차 늘어만 간다. 혼란 끝에 앤소니는 자신이 캔디맨의 희생물이 될 운명이었음을, 미친 여자라는 오명으로만 남아 있는 헬렌 덕에 살아남았음을 알게 된다. 앤소니는 결국 캔디맨이 되어 예정된 운명에 굴복한다.
2021년 〈캔디맨〉의 주인공 앤소니
1992년의 헬렌은 앤소니를 캔디맨으로부터 구해줬다. 그러나 2021년의 앤소니는 이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캔디맨이 되었다. 왜 앤소니는 헬렌이 목숨을 걸고 그의 운명을 바꿔줬음에도 이를 되돌리려 하는 걸까? 캔디맨이 되는 것이 ‘윤리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앤소니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선 캔디맨 괴담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아야 한다. 1992년 영화에도 캔디맨이 어떻게 탄생했는지가 나온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캔디맨이 뿜는 공포를 극대화하는 자원으로만 활용한다. 하지만 2021년의 영화는 캔디맨의 탄생을 더 적극적으로 독해하여 영화의 주제로 가져온다. 1992년의 영화가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앤소니를 구해 내는 헬렌 개인의 윤리에 집중했다면, 2021년의 영화는 캔디맨을 흑인이 감당해 온 폭력의 계보에 맥락화시킴으로써 불합리한 인종 폭력을 고발한다.
최초의 캔디맨은 흑인 화가였다(앤소니의 직업도 화가다). 그는 지역의 저명한 백인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했는데, 그러다 한 유력 백인의 딸 ‘헬렌’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맡는다. ‘불행히도’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임신을 한다(1992년의 영화에서 캔디맨이 같은 이름을 가진 연구자 헬렌에게 집착하는 이유다). 헬렌의 아버지는 격분하여 흑인 화가에게 잔혹한 응징을 가했다. 그의 팔을 자른 후 갈고리를 박아 넣었고, 온몸에 꿀을 발라 벌에게 쏘이게 했으며, 괴로워하는 그를 불에 태웠다. 즉 최초의 캔디맨은 흑인 남성에 가해진 린치의 희생자였다.
캔디맨이 죽지 않은 건 흑인 린치가 중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캔디맨’이란 이름은 아이들에게 칼날이 든 사탕을 나눠준다는 누명으로 린치를 당한 흑인 남성의 사례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린치를 당한 흑인 남성들은 분노, 공포, 원한을 응집한 캔디맨으로 다시 태어나 무차별 복수를 감행한다. 캔디맨의 살인을 흑인 대상 린치에 '균형을 잡는 폭력’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헬렌을 협박‧유혹하는 캔디맨(1992)
1992년의 영화는 캔디맨이 형체 없이 소문, 꿈, 공포로만 존재한다고 말하며, 2021년의 영화 속 캔디맨은 거울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그런 캔디맨이 물리적 공간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건 사람들이 캔디맨을 믿고 그를 호명할 때, 즉 그의 추상성에 물질성을 부여할 때다. 사람들이 여전히 그의 이름을 잊지 않고 불러주기에 캔디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람들이 캔디맨을 잊지 못하는 건 여전히 흑인이 린치를 당하기 때문이다. 흑인의 생명값이 백인보다 낮게 매겨져 하찮게 여겨지는 한, 캔디맨은 영원히 죽지 않고 ‘호명’되어 ‘복수’를 이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내 얘기를 모두에게 전해”라는 2021년 캔디맨의 마지막 말은 흑인 린치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흑인 린치가 멈추지 않으면 캔디맨도 멈추지 않는다. 흉흉한 도시 괴담은 흑인을 향한 물리적 폭력이 중단될 때에야 사라질 수 있다.
폭력에 대항하는 원한적 주체로서의 캔디맨이라는 호명은 주류사회에 포섭되지 않은 소수자의 경험‧분노가 왜 미스터리‧공포의 영화 장르로 이어졌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해되지 못하는’ 소수자의 감정은 ‘이해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 우리 주변을 횡행한다. 소수자가 겪는 폭력이 이해 불가능한 미스터리로 남는 한 캔디맨은 불멸이다. 캔디맨을 향한 공포는 인종차별 사회의 자업자득이다.
캔디맨, 캔디맨, 캔디맨, 캔디맨… 캔디맨. 다섯 번의 호명 이후에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는 도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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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핸섬가이즈> 1차 예고편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재필’과 ‘상구’가 전원생활을 꿈꾸며 새집으로 이사 온 날, 지하실에 봉인됐던 비밀이 깨어나며 벌어지는 고자극 오싹 코미디 '핸섬가이즈' NEW는 영화, 음악, 드라마, 극장사업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의 분야를 아우르는 미디어 그룹입니다. NEW 영화사업부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고 NEW 영화 예고편, 미공개 독점 영상 등을 가장 먼저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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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킬러의 카운슬러> 예고편
루 판트는 히스테리와 치매가 있는 노모를 모시며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우연히 그녀의 롤 모델이자 라이프 코치인 당당한 여성 발 스톤을 만나 모든게 바뀌게 된다.
사실 살인 중독자인 발 스톤은 루를 자기의 후계자로 여기며 자기 개발을 위한 '살인자의 여행'에 동참시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