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2023-03-31 15:40:03
뮤지컬 영화 Just the Two of Us 조이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가족애가 묻어나는 영화
영화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며 극이 진행되는 뮤지컬 영화는 보고 있노라면 흥겹고 즐거운데요.
마음 안에서 노래가 울려 퍼진지 오래된 이들에게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장르 중 하나일 수도 있겠어요.
그동안 뮤지컬 음악을 싫어한다고 여겨왔던 올리비아였지만, 최근 들어 '드림 걸즈'를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떠오르며 '사운드 오브 뮤직', '헤어 스프레이', '시카고', '레미제라블' 등을 재미있게 보았던 일들이 상기되었습니다.
오늘 포스팅 해드리는 '조이의 특별한 크리스마스'는 성탄절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으나, 배우들이 부르는 곡들은 크리스마스와는 무관한 노래들도 섞여 있답니다.
영화배우와 영화배우 겸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들은 영화 스토리를 대변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 조이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
개봉 - 2021년
국가 - 미국
관람등급 - 12세 이상
장르 - 코미디, 뮤지컬, 드라마, 판타지
러닝타임 - 99분
줄거리
어느 날 어떠한 사고로 인해 주인공 조이는 다른 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영화 '왓 위민 원트'에서는 상대방의 마음 자체를 텍스트처럼 읽을 수 있었다면, 조이에서는 노래로 표현됩니다.
그러한 능력은 조이에게 있어 상대방의 마음속 어려움과 고통까지도 알게 되어 독심술 같은 이 능력이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대부분은 조이가 듣고 있는 상대방의 마음이나 그녀의 마음을 음악으로 나타내기에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혹은 음악과 함께하는 연말연시 행사에 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녀는 작년에 하늘나라로 간 아버지를 대신해 늘 가족이 함께 해 오던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합니다.
좌충우돌 여러 어려움들은 있었지만, 더 이상 과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는 조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영화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했던 가족의 모든 크리스마스가 행복하고 마냥 좋기만 했던 것으로 추억하지만, 사실 그들은 서로 다투기도 하고 불완전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떠한 과거의 기억들은 늘 좋았던 것만 있었던 것 같지만, 막상 그때로 돌아가 보면 그 때 나름의 힘듦이 있었음을 깨닫곤 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공감이 되더군요.
'제인 레비'와 '알렉스 뉴웰' 배우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99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으로 몰입을 할 만큼의 작품성 있는 영화는 아니라 보아 지지만, 가족의 소중함과 어느 누구나 힘든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마치 오래된 친구가 내 곁에서 자신의 삶의 한 부분을 나눠주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합니다.
Just the Two of Us 단지 우리 둘만이
크리스마스 날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어 하는 조이에게 남자친구는 'Just the Two of Us'를 열창하며 그녀와 단둘이 보내고 싶다고 합니다. 영화 내에서 단연 돋보였던 음악 중 하나라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이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이 노래는 R&B 가수 '빌 위더스 (Bill Withers)' 씨가 1982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그는 가스펠과 퓨전 재즈에 기반을 둔 탁월한 음악성을 통해 많은 흑인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을 해소시켜 주었고, 소울풀한 창법은 백인계 팝팬들에게도 인기를 얻었습니다.
< 가사 >
수정 같은 빗줄기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네
그 아름다움은 태양이 그 빗방울들을 통해 투명하게 빛날 때이지
내 마음에 무지개를 띄우면서
때때로 너를 생각할 때면 나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네
단지 우리 둘만이
우리가 노력한다면 할 수 있다네
단지 우리 둘이서
단지 우리 둘이서
단지 우리 둘이서
하늘에다 성을 지을 수 있다네
단지 우리 둘이서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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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 알아서 함께,<강변의 무코리타>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변의 무코리타 Riverside Mukolitta, 2021
일본 / 드라마 / 121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각자 알아서 함께, <강변의 무코리타>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작은 어촌 마을에 있는 오징어 공장에 취직한 야마다의 목적은 오늘을 사는 것이다. 어제를 잊고 오늘을 무사히 넘겨 힘차게 내일을 맞이하고 싶단 희망적인 메시지로 읽을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오늘' 안에는 다음 날을 향한 기쁨이나 설렘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삶의 여유는 물론이고 이를 찾으려는 의지도 없다. 그저 하루를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인생을 알차고 즐겁게 살겠다는 다짐과는 아주 먼, 무기력하면서도 음울한 그의 억지다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야마다는 과거를 지우기 위해 도망쳤으나, 지울 수 없어 단순한 노동으로 몸을 혹사하지 않으면 정신이 미쳐버리는, 오늘 현재에 정체된 인물이다.
그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인물을 특이한 방식으로 소개하는 영화의 특성 덕분이다. <강변의 무코리타>는 모든 인물의 서사를 순간 포착한 사진(이미지)들로 설명한다. 사진 안에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 인물을 둘러싼 환경, 인물의 말과 행동, 인물이 겪을 사건과, 이미 겪었던 사건까지 어마어마한 수의 픽셀로 이루어졌다. 나아가 한 인물에 대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어, 보는 사람의 역량과 상관없이 누구나 영화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주인공 야마다로 예를 들자면, 누가 툭 치면 바로 쓰러질 것처럼 아무 의욕 없이 마을에 들어서는 그의 걸음걸이와 반가움에 건넨 사장의 악수를 받지 못하고 삐걱대며 주춤거리는 그의 옆모습이 대표적이다. 두 장의 이미지는 이야기 초반에 등장해 야마다의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그의 이전을 짐작하게 하며, 이후의 모습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특히 한없이 무력한 두 눈과 한껏 말린 어깨는 막 오징어 공장에 떨어진 그의 현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낸다.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공장 사장의 소개로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입주한 야마다에게 막무가내 이웃, 시마다가 찾아온다. 얇은 벽 탓에 목욕을 방금 마친 걸 알고 있다며 뻔뻔하게 자신도 욕실을 쓰게 해 달라는 시마다. 야마다는 난처함을 표하며 그를 내쫓는다. 찰나의 순간, 시마다는 야마다에게서 자신과 같은 구멍을 발견한다. 분명 나와 다르지만, 내가 가진 것과 같은 구멍. 주택에 사는 사람들도 당연하게 품고 있고, 인간이라면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것.
"안심하세요,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답니다."
인간의 죽음. 태어난 순간 당연하게 예정되는 마지막 순간. 영화는 인물들의 살아있음으로 우리의 끝을 이야기한다. 주택 입주민들의 감춰진 이야기는 야마다에게 도착한 연 끊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시작으로 한 명씩 밝혀진다. 시마다는 자식을 잃었고, 미나미는 남편을 암으로 떠나보냈다. 미조구치는 아들과 함께 묘석 방문 판매를 하지만 반년째 집세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강변의 노숙자들은 여름 태풍이 올 때마다 친구를 잃고 있었다. 모두가 생의 끝자락에서 가족을 잃은 상실과 나를 찾지 못한 슬픔, 가치관을 바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에겐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내일을 생각하며 하루를 산다. 이웃의 이야기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눈과 귀로 담아내며 타인의 아픔에 소리 없이 공감한다. 세상으로 나와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몰라 밤마다 구구단을 거꾸로 세며 삶의 공포에서 도망가려는 야마다에게, 입주민들만의 방식은 좋은 본보기로 작용한다.
야마다는 마음을 열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마침내 자신의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멈춰있던 그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과 이별, 상실을 품고 사는 그들만의 방식을 보고 들으면서 자신이 의도적으로 감췄던, 이미 커다랗게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숨은 상처받은 어린 나를 구출한다.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텃밭을 가꾸는 시마다는 소소함에서 행복을 찾는 자칭 미니멀리스트다. 그는 자신의 가난을 타인에게 숨기지 않는다. 자신만이 줄 수 있는 소소한 답례로 타인에게 도움과 배려를 당당히 요구한다. 야마다의 욕실과 밥통과 선풍기까지 마음대로 쓰면서, 건네는 건 텃밭에서 난 채소뿐이다. 야마다는 그의 무례함에 대응하지 않는다. 시마다가 건넨 채소는 그를 굶주림에서 구해줬고, 더 나아가 아버지의 끝처럼 고독사로 죽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 줬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시마다를 무례한 이웃이 아닌, 좋은 밥 친구로 인식한다. 밉상으로 전락하기 쉬운 옆집 사람이 무코리타 주택에선 친근하고도 마음 따듯한 이웃이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주택 주인 미나미도, 반년 만에 묘석을 팔아 집세를 내는 대신 소고기 전골을 사 먹는 미조구치도, 말없이 눈빛만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스님도, 골동품으로 쌓은 쓰레기 산 위에서 외계인의 연락을 기다리는 두 아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각자 자신만의 속도와 흐름으로 야마다를, 이웃을 살피고 자기 자신을 돕는다.
물론 그들도 자기가 만든 구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야마다와 다른 점은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함께 견디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옥죄는 고통을 아주 조금씩 일상에 녹여내며, 언제 다 녹여내고 뿌리 뽑을지 생각하지도 않는다. 초조함이나 조급함 없이 묵묵히 내일을 살아가려 시마다는 텃밭을 가꾸고, 미조구치는 아들과 함께 계속 고객의 문을 두드린다. 야마다도 오징어를 손질하듯 자신만의 속도로 아버지의 죽음을 아주 천천히 들여다보며 해체한다. 자기를 버렸던 엄마의 기억을 떠올리고, 계속 따라다니는 두려움과 분노의 실체를 입 밖으로 털어놓는다. 이미 뚫려버린 구멍을 메우기 위해선 그 깊이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누구든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는 법이야."
야마다의 사정을 알고 있던 공장 사장의 첫마디, 영화는 처음부터 친절했다. 야마다를 위해 준비된 위로와 사람들, 끝내 미소를 되찾는 그의 정해진 미래까지 무난하고 뻔한 전개 방식이지만, 이는 <강변의 무코리타>가 의도한 것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현실 속 우릴 대변하는 건 인물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가장 두렵게 하고 움츠리게 하는 건 무엇일까. 영화는 죽음이 그 시작이라 봤다. 야마다와 이웃들을 통해 '인간이 죽는 건 당연하다'는 말속에 담긴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 가는데, 단순히 죽음을 좋고 친숙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같은 선상에 있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마땅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강변의 무코리타>의 강점은 이를 위해 우리의 생을 가장 먼저 찬미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지만, 영화의 추는 늘 살아감에 위치해 있다. 반드시 찾을 수 있는 행복과 희망, 그리고 용기. 야마다는 몰랐던 것뿐이다. 갓 지은 밥을 코로 먼저 맛보고 목욕 뒤 맥주 대신 우유를 마시는 일이 사실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소소한 버팀목이었고, 민달팽이를 보며 어머니를 떠올리고, 과거에 발목 잡혀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은 ‘내’가 살아가고 있기에 겪는 과정이었단 진실을 말이다. 야마다는 이웃들과 똑같이 ‘종료되지 않는 치유 과정’에 들어가면서 생명의 전화를 거북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랬듯, 깊은 위로로 받아들인다.
출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다음)
<강변의 무코리타>가 세운 확실한 전제가 좋다. 연립주택에 사는 이들이 구멍을 없애려고 일부러 함께 모여 살고 계획적으로 이웃에게 관심을 주는 게 아니라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 나의 아픔을 헤아리면서 무작정 타인의 아픔을 위로하지 않는 것. 무엇보다 의도적이지 않은 관심과 크기를 재지 않는 진심, 실없이 터지는 무해한 웃음으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서로를 보살피는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위로와 힘을 주는 영화다웠다.
야마다 아버지의 유골함, 미니멀리스트 시마다의 거미줄 이야기, 허기진 배를 채우는 미조구치의 상상극, 생명의 전화와 하늘을 헤엄치는 금붕어, 연립주택 사장 미나미가 품은 남편의 뼛조각, 외계인의 연락을 받기 위해 쌓은 전화기 산, 강변 노숙자의 기타 연주… 다양한 형태와 질감 그 속에 똬리를 튼 생의 의미까지 <강변의 무코리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구멍을 파고 또 파면서 이미지를 순간 포착해 생산하고, 비로소 단 한 장의 사진(영화)을 찍어 낸다.
그들의 가족사진에서 하늘을 헤엄치는 금붕어가, 떠난 이들의 유영이 보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강변에 노을빛을 뿜어내는 무코리타가 온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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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무엇이 비극을 기적으로 바꿨나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72년 10월 13일. 우루과이 공군기 571편이 안데스 산맥에 충돌해 추락한다. 비행기 동체는 두 동강 나고, 안데스 설원에 불시착한 승객들은 꼼짝없이 구조만 기다린다. 그러나 영하 40도에 이르는 추위와 눈보라, 굶주림 때문에 생존자들은 하나 둘 죽어간다.
비행기 잔해에서 간신히 찾은 라디오를 틀어보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실종 후 10일이 지나 수색작업을 포기했다는 절망적인 뉴스뿐. 이에 '난도'(아구스틴 파델라)와 '안토니오'(아구스틴 델라 코르테), '로베르트(마티아스 레칼트)', '누마(엔조 보그린칙)'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고, 외부에 자기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입에 담기 힘든 일을 저지르면서까지.
같은 실화, 다른 영화
<더 임파서블>과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으로 이름을 알린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그가 넷플릭스와 손잡고 5년 만에 돌아왔다. 그의 신작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우루과이 공군 571편 추락사고를 다룬 파블로 비에르시의 논픽션 '눈의 사회'를 영상화했다. 1993년 <얼라이브> 개봉 이후 20년 만에 같은 실화를 다루는 작품이 공개됐다.
같은 사건을 다룬 작품이 있기 때문일까?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극적 요소가 두드러졌던 <얼라이브>와 달리 담백하고 사실적이다. 100시간이 넘는 생존자 인터뷰를 녹음하며 초기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 사진과 영상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이륙 전 비행장에서 웃는 사진, 조난당한 이들이 카메라로 추억을 남기는 장면, 극적인 구조 당시 영상 등은 안타까움과 환희를 극대화한다.
그러나 착실한 재현에서 그쳤다면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와 시상식이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을 초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의 특이점은 둘이다. 하나는 체험이다. 마치 안데스 설원 한가운데에서 같이 지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다른 하나는 도전이다. 생존물의 클리셰를 따르는 대신 비극을 기적으로 바꾼 원동력에 주목한다. 이 도전은 사실적인 체험 덕분에 더욱 빛난다.
안데스 설원의 늪에 함께 빠져들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의 초반부는 압도적이다. 추락하는 비행기 속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인력이 무시무시하다. 전적으로 바요나 감독의 역량 덕분이다. 그가 전작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에서 보여준 능력이 이번에도 가감 없이 발현됐다. <폴른 킹덤>에서는 '보는 재미'를 위한 반면,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에서는 '체감하는 재미'를 위해 활용됐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폴른 킹덤>에서 바요나 감독은 서스펜스를 조성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보여줬다. 인도미누스 렉스의 유해를 발굴하는 탐사정과 모사사우루스가 등장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 본편의 어두운 분위기를 완벽히 축약해 보여줬다. 주인공과 인도랩터의 숨바꼭질이 펼쳐지는 후반부는 마치 고전 호러 영화를 보는 듯한 극도의 긴장감을 뽐냈다. 많은 영화감독이 블록버스터에서 자기 색깔을 잃곤 하는데, 바요나는 달랐다.
그의 색깔은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추락 장면은 간결하나 충격적이다. 비행기 고도가 갑자기 낮아지자 통로에 서 있던 승객은 무중력 상태가 됐다가 바닥에 떨어진다. 카메라는 돌연 산에 충돌해 쪼개지는 기체를 비춘다. 그 순간 승객들은 일제히 앞으로 쏠리고, 다리가 꺾이고, 코에서 피가 난다. 이 일련의 과정은 묘한 리듬 속에서 톱니바퀴 같은 짧은 컷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비극과 기적 사이에서 긴장감을 유지하는 역량도 탁월하다. 기적을 한 방울씩 맛보게 하면서 절망감을 극대화한다.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고 흥분했다가 좌절하는 생존자들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오래간만에 웃고 떠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찰나 눈사태에 갇히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유달리 많은 얼굴 클로즈업 덕분에 그 간극은 더 극대화된다. 안데스 설원이 마치 생존자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하얀 늪처럼 보일 정도다.
비극이 기적이 되는 길
특히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에서는 늪에서 발버둥 치는 생존자들을 다루는 태도가 퍽 흥미롭다. '파리대왕'이나 <콘크리트 유토피아> 같은 일반적인 생존물과 전개가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고립된 생존자들은 작은 사회를 이룬다. 나름대로 경제, 사회 체계를 구축해 생존을 도모한다. 그 과정에서 생존자 사이에도 권력이 나눠지고, 계급이 생기고, 갈등이 터져 나온다. 잔인함, 이기심, 본능도 이성을 꺾는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다르다. 물론 상황은 비슷하다. 생존과 인간성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 자체는 생존물에서 뺄 수 없는 재료니까. 극 중 생존자들은 생존을 위해 식인을 해야 할지, 아니면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켜야 할지 딜레마에 빠진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보다 입체적으로 변한다. 그전까지는 그저 추위와 눈보라에 맞서는 이야기였다면, 이제부터는 삶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딜레마를 풀어가는 방식이 예상 외다. 극한의 대립은 없다. 마냥 이기적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주인공들은 존중과 배려를 실천에 옮긴다. 로베르트는 거부감을 느낄 모든 이들을 배려해 가장 먼저 칼을 집어든다. 끝내 인육을 거부한 누마도 식인을 한 사람들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영화는 주인공들 선택에 당위를 부여하고, 삶을 향한 의지도 입체적으로 부각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을 떠날 수 없는 죄책감도 드러낸다. 오랜만에 배가 불러 기분이 좋아진 생존자들. 그들 머리 위로 돌연 눈사태가 덮친다. 인간성을 포기한 이들에게 신이 형벌을 내린 게 아닌가 싶은 타이밍이다. 가장 먼저 탈출하는 사람이 하필이면 인육을 안 먹은 누마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장기 기증 서약처럼 자기 시신을 먹어도 된다는 의사를 밝히는 장면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복잡 미묘하다.
죽은 자가 말하는 이유
여기에 의외의 포인트가 하나 더 추가된다. 내레이션이다. 영화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화자는 깊은 곳에서 흔들리는 생존자들의 속내를 꺼내 놓는다. 서서히 웃음이 깃들며 평화를 누리는 생존자들 사이에서 엄습하는 비극을 암시하기도 한다. 특히 화자가 누마라는 점이 흥미롭다. 실화를 다룬 영화의 화자는 보통 생존자다. 그가 회고록을 쓰거나 인터뷰를 하는 식으로. 반면에 누마는 사망자 29명 중 마지막 사망자다.
그러면 자연히 궁금해진다. 왜 바요나 감독은 생존자가 아닌 죽은 자에게 발언권을 준 걸까? 그 답은 누마의 행적에서 엿볼 수 있다. 누마는 생존자 중에서도 비주류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인육을 거부한 인물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누마를 내레이션 화자로 삼은 것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바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펼치려는 선택이라 유추할 수 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사망자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보통 생존물에서 사망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다. 그들은 생존자의 무용담을 포장하는 양념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반면에 바요나 감독은 사망자들에게도 역할과 의지가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점점 죽어가는 와중에 누마가 자기 시신을 기증하며 친구들의 생환을 염원하듯이. 이렇게 영화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공동체 의식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전하려 한다.
그 덕분에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의 끝은 일반적인 궤를 따르지 않는다. 구조되는 순간까지는 환희로 가득했던 생존자들. 그러나 막상 집으로 돌아오자 그들은 먼저 죽어간 친구, 가족을 생각하며 밀려오는 착잡함에 빠져든다. 그렇게 영화는 생존자들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내어준 이들을 자연스럽게 상기시키며 끝난다. 극 중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그들의 이름과 나이를 자막으로 모두 표기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넷플릭스 공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 및 폐막작으로 공개됐고, 제38회 고야상에서는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지난 7일에 열린 제8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출품됐을 뿐만 아니라, 3월에 열릴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부문에 스페인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수상 여부를 미리 알 길은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에게 쏟아진 호평이 결코 과하지 않다는 것. 익숙하지는 않을 스페인어 영화라는 약간의 장벽만 넘어선다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펼치는 사투와 안데스 설원의 장대함에 눈과 마음을 뺏기지 않기는 어려워 보인다.
Exceed Expectations 기대 이상
같이 떨고, 함께 좌절하고, 어울려 기뻐하고, 끝내 숙연해지는 1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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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봄'이 담은 세 가지 감정
종종 우리와 잘 모르는 곳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고 배우지만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일반 사람의 입장에서 그 변화를 크게 체감하기는 어렵다. 당장 먹고살기 바쁜 일상에 정치나 경제 소식이 중요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게 된다. 그런 역사의 변동 한가운데 있던 사람들이나 그 일을 알고 적극적으로 반응했던 사람들은 분노와 절망감 같은 감정을 느낀다.
영화 <서울의 봄>은 한국 역사의 가장 역동적인 순간이 담겼다. 1979년 12월 12일에 벌어진 군사 반란을 모티브로 그날 9시간에 걸쳐 벌어진 일을 보여주는 영화에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다.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수장인 전두광(황정민)과 그의 동기 노태건(박해준)은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당한 그날 권력의 빈틈을 파고들어 나라의 통제권을 잡으려 한다. 그들은 참모총장인 정상호(이성민)에게 누명을 씌워 체포하려는 계획을 하면서 최대한 합법적인 절차를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합법적 절차에 꼭 필요한 대통령 재가가 늦어지면서 참모총장을 먼저 체포하게 되고 상황은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그날 밤에 벌어진 일들을 보여주며 여러 감정을 전달한다.
첫 번째 감정 - 전두광의 탐욕
이 영화 속 전두광은 욕심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자신이 모든 정보를 열람할 수 있고 자신만의 조직을 꾸리게 되면서 그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던 탐욕이 거침없이 드러난다. 하나회라는 군내의 사조직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자신의 집에서 불을 끄고 의심하는 사람들을 군사 반란의 방향으로 이끄는 장면은 그늘진 그의 얼굴이 주는 느낌처럼 서늘하게 느껴진다. 영화 내내 그의 행동엔 자신감이 넘친다. 자신이 하려는 모든 일에 안될 것이 없다는 식의 태도는 그가 얼마나 권력을 탐했는지를 완전히 드러낸다.
전두광은 10.26 박정희 시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권력의 공백을 눈치채고 그 틈을 하나회 일원들로 채워나간다. 참모총장을 체포하고 대통령 최한규(정동환)의 재가를 받는 행위를 통해 그 체포 정당성을 얻으려는 과정에서 전두광은 그 하루 밤에 세 번이나 대통령을 방문하게 된다. 그는 세 번째 방문 때에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군인들을 모두 데려가 이제 모든 것이 자신의 욕심대로 되어 갈 것임을 보여준다. 이야기가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가 가장 자신의 탐욕을 내세우는 장면이고, 심지어는 막 얻은 권력을 뽐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은 실제 전두환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긴 시간 분장을 하고 나서 연기를 했다. 이미지 자체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외모적인 부분을 비슷하게 하면서 실제 인물과 가까운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권력욕을 드러내며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연기에서는 그 악독함이 그대로 느껴지기도 한다. 황정민 특유의 악한연기가 실제 인물과 닮은 외모와 합쳐지면서 보는 관객들에게도 분노를 치밀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감정 - 이태신의 분노
영화에는 전두광의 반란에 대항하는 군인들이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수도경비사령관인 이태신(정우성)이다. 이 인물은 영화 속에서 특별한 권력욕이 없는 충직한 군인으로 그려진다. 이 인물의 성향은 참모총장인 정상호가 이태신에게 수도경비사령관을 맡기려 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여러 차례 참모총장이 해당 직위로 보직 변경하는 것을 제안하지만 이태신은 계속 거절한다. 수도경비사령관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자신이 맡기에는 너무 큰 보직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이런 이태신의 모습은 탐욕적인 전두광과 대비되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야기가 중반을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수도경비사령관을 맡게 된 이태신의 분노가 계속 표출된다. 전두광의 지시로 전방 병력까지 서울로 들어오려고 할 때, 유일하게 분노하며 막았던 이태신은 계속 자신을 지지해 주는 인물들을 하나둘씩 잃는다. 그렇게 쌓인 분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한다. 그는 전두광과 자신 사이의 장애물을 헤치면서 힘들게 전두광에게 다가가지만 큰 소리로 분노를 표하는 것뿐, 전두광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태신의 마지막 일갈은 시원하지만 공허한 느낌을 준다.
이태신을 연기한 정우성은 그가 가지고 있는 바른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있다. 그가 가진 욕심 없는 선한 이미지가 탐욕적인 전두광과 교차되면서 영화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을 더욱 크게 만든다. 그가 가진 그런 특성은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대비되어 이태신이라는 인물이 더욱 돋보여 보인다. 아마도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연기와 이미지의 장점이 이태신이라는 인물과 딱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그래서 그가 분노를 표출하는 순간에 많은 사람들이 같이 분노의 감정을 느끼며 지켜보게 만든다.
세 번째 감정 - 국민들의 허탈감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당시에 일어났던 일은 극장에서 제대로 확인하게 되었다. 과거에 여러 차례 라디오 드라마나 TV드라마로 제작된 적이 있지만 영화에서 12.12를 제대로 다룬 적은 없었다. 반란군과 진압군이 벌였던 하루 동안의 극적인 사건을 담은 영화는 현재 젊은 세대들에게도 그 당시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는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79년 겨울을 지나 1980년의 봄은 따뜻하지 않았다. 군사 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광은 그 이후 자신들 편에 섰던 인물들에게 자신의 힘을 나눠주었다. 영화 맨 마지막에 반란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이후 어떤 권력을 누렸는지를 자막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관객들의 허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 당시 그 모든 권력 이동을 지켜보던 국민들 역시 분노를 넘어선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무척 실감 나게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전두광, 현실의 전두환이 재판에서 심판을 받긴 했지만 우리는 그의 마지막을 기억한다. 그가 저지른 탐욕스러운 만행에 비해서 편안한 노년의 삶을 살다 저세상으로 간 그를 향한 분노는, 영화 <서울의 봄>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에 더욱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역사적 사건을 훌륭하게 극적으로 구성했다. 또한 복잡해지는 상황이 벌어지면 자막을 달아 모든 상황에 대한 이해가 용이하게 했다. 이런 훌륭한 연출은 영화 속에 담긴 감정을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하고 우리의 역사와 그 안에 있던 진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주는 허탈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전두환과 그의 세력들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분노와 마음의 심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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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 거장이 만든 영화 음악들이란 역시!
이 영화는 영화 음악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꼬네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어렸을 때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인해 음악 학원에 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트럼펫 연주자이며 엔니오 모리꼬네도 음악 학원에서 트럼펫을 배웠는데 자신은 평범한 소년이었으며 지금처럼 음악계의 거장으로 남을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또한 음악 학원에서 페트리시라는 유능한 선생님을 만나고 제자가 되는데 이때부터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곡가 인생이 시작된다.
돈을 벌기 위해 극장에서도 일하고 군에 입대하여 군악대로 생활하기도 했던 엔니오 모리꼬네가 어느 날 좋은 기회를 얻게 되는데 그건 바로 서부극 영화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다. 서부극에서 나오는 인물들과 풍경을 떠올리며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 넣는 그의 모습에 한스 짐머가 그를 왜 극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미국의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상을 받지 못하는 한이 있었다. 70년대와 80년대의 서부 영화 음악을 주름잡았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안타까운 흑역사이지만 훗날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는 쾌거도 이룬다.
쿠엔틴 티란티노 감독도 수상식에서 언급하길 엔니오 모리꼬네가 베토벤과 바흐와 모차르트와 견줄 만큼 위대한 작곡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칭찬에도 엔니오 모리꼬네는 200년 후에나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작곡한 영화 음악들이 미국의 팝,락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줬으며 리메이크해서 나온 곡도 꽤 있다고 들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천재적인 창작 센스는 아무나 나오는 게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고전적인 클래식과는 다르게 현대음악을 했으며 그래서 영향력이 크다고 유명한 음악가들이 말한다. 걸작을 만드는 엔니오 모리꼬네는 정말 마에스트로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음악인들의 존경 대상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며
영화 음악의 한 획을 그은 천재적인 작곡가인 엔니오 모리꼬네가 없었다면 지금의 영화 음악은 달랐을 것이라고 한다. 필자도 창작이란 게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러나 엔니오 모리꼬네의 열정을 보며 나도 참신한 창작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선지에 그려놓은 음표가
천재 거장을 만들다!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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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이렇게 재구성하다니
나는 마릴린 먼로를 좋아한다. 세상은 그녀를 백치로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녀의 백치 캐릭터는 일종의 마케팅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자신에 대한 편견에 그녀를 맞춘 영리한 여자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블론드는 좀 심각하게 그녀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찬 영화라고 생각한다. 남성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섹스 심볼로서의 그녀의 외면적 모습을 세간에 알려진 그녀의 가정사에 대한 소문, 스캔들에 대한 내용들을 버무린 하나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픽션이라고 해도 일말의 사실 조차 포함시키지 않고, 수많은 소문들만을 가지고 그녀에 대한 영화를 만든 건 인권유린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의 스토리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 걸까. 티비 속 모습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대중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걸까. 그녀의 죽음이 미스터리했기에, 진실은 저멀리에 있어 그녀에 대한 소문은 무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문의 주인공이 헐리우드의 섹스 심볼이라면,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인권이 유린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걸까. 마치 연예인의 열애 소식을 전하는 파파라치 컷이 국민의 알권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말이다. 그래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걸까 생각한다.
대중이란 존재는 개인의 작은 몰매함이 모여 당연시되기 쉬운 집단이다. 집단 사회에서 소문이란 위험하고 낯선 요소를 제외시켜 집단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한 개인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이 영화는 후자와 관련된 영화라고 본다.
다만, 배우의 연기는 인상적이었고, 그녀와의 싱크로율은 높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 속 그녀는 영리하기보다는 사랑에 목을 매는 어리버리한 백치 이미지에서 크게 차이가 없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것인가 싶은 장면도 많았다. 분명 자기 주장을 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남자를 홀리는 섹스 심볼로서의 그녀를 강조하며 남자에 목을 매는 그녀의 모습은 아버지의 부재를 채우기 위한 병적인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고착화된 이미지에 갇혀 캐릭터를 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짐작도 결국 소문에서 비롯되었기에 이 영화는 한 영화 배우의 인생을 보고싶은대로 보고 멋대로 재단한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가 픽션이라는 것은 이런 영화의 단점을 어떻게든 가려보려는 노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존 인물의 삶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면서 내용의 큰 줄기를 제외한 그녀의 삶 속 디테일들을 모두 픽션으로 채워넣은 것부터가 영화의 미흡한 점을 드러낸 것이다. 보통 실존 인물의 영화에서 픽션으로 처리할 때 실제 삶을 사료에 근거해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되, 미스터리로 남은 부분들을 일부 부분들을 픽션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대부분이 픽션이고 실제에 가까운 내용은 그녀의 영화 배우로서의 스코어밖에 없다. 그만큼 그녀의 인생이 미스터리로 가득하다는 뜻이겠지만 그 정도의 미스터리라면, 그녀의 얼굴을 앞세워 영화를 만들지 않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biography도 아니고 픽션으로만 봐주기에도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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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싱글 인 서울 결말 줄거리 등장인물 | 이동욱 임수정 이솜 주연
혼자가 좋으시나요?
연애하는 둘이 좋으시나요?!
여기, 혼자라서 지금의 삶이 너무 좋은
남자 이동욱과 혼자보단 둘이 더 좋은
여자 임수정이 책을 출한하면서 펼쳐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다룬 영화 싱글 인 서울
이제 곧 OTT로 풀리지 않을까 싶어
슬그머니 작성해 보는 영화 싱글 인 서울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로맨틱 코미디
감독 : 박범수
각본 : 이지민
출연진 : 이동욱, 임수정
개봉일 : 2023년 11월 29일
평점 : 7.64
기획 의도
"나한테 딱 맞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싱글이 답이다"를 외치는 영호(이동욱)
"사실 혼자인 사람은 없잖아요"
혼자가 싫은 현진(임수정)
싱글 라이프를 담은 에세이를 담으며
서로의 생활방식과 가치관도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펼쳐지는 로맨틱 코미디
혼자가 좋지만 연애는 하고 싶은
두 남녀의 싱글 인 서울 라이프가 시작된다.
등장인물
박영호 | 이동욱
논술 강사
"혼자여서 좋아! 자기를 사랑하는 게 현명해"
전하는 싱글 예찬의 포스트로
SNS 파워 인플루언서
주현진 | 임수정
출판사 편집장
일상과 연애에 대한 촉은 꽝이지만
혼자보단 둘이 좋은 책을 사랑하는 능력자
여담
영화 싱글 인 서울의 경우
번한 로맨틱 코미디보다는 담백한 연기와 연출과
더불어 서울의 풍경을 너무 잘 담고 있는 영화다.
영화는 큰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대체로 우호적인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비싼 가격 때문에 극장에서 즐기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곧 OTT로 나오는 싱글 인 서울을
많이 보면서 다시 한번 회자되지 않을까 싶다.
후기 및 결말
영화 싱글 인 서울 결말
'싱글 인 시티' 시리즈를 기획하기로 하게 되면서
영호(이동욱)과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현진(임수정)은 영호에게 첫사랑에 대해
적어보라고 하게 되면서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돼 살리며 작성하게 됩니다.
'싱글 인 서울'과 '싱글 인 바르셀로나' 시리지를
출간한 홍작가와 서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비슷하여 검증하던 차에 영호의 첫사랑이었던
주옥(이솜)과 재회하게 된다.
주옥과 영호는 서로 다른 첫사랑을 기억하며
둘은 쿨하게 화해하고 쿨하게 헤어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호는 새로 나온 쓴 책을
현진에게 건네주며, 맥주 한 잔을 마시자는
제안으로 영화는 끝이 나게 됩니다.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 싱글 인 서울은
서울의 풍경을 이렇게 예쁘게 담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정말 잘 담아냈다.
다만, 영화 후반부에 급하게 후다닥
넘어가지 않았나 약간의 아쉬움과
쿠키영상 하나쯤 있으면 하는 슬픔이 있어요
가볍게 킬링타임으로 보기 좋았던
영화 싱글 인 서울 곧 OTT로 풀리면
맥주 한잔하면서 보세요~
한줄평 : 혼자보단, 둘이 좋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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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반복 도르마무를 하고 있는 남자의 사연은?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8월 19일 개봉예정 영화 팜스프링스 시사회 관람 리뷰입니다. 100만번째 하루를 반복하고있는 남자의 사연은? 믿고 보는 타임루프물!! 솔직한 감상평과 함께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시사회 초대는 영화 전문 플랫폼 [씨네랩]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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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화란> 메인 예고편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옥이 되다 올가을 가장 깊고 강렬한 느와르 드라마? [화란] 메인 예고편 공개 10월 11일 극장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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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토토리! 우리 둘만의 여름> 티저 예고편
아름다운 대자연으로 캠핑 여행을 떠난 ‘베가’와 ‘빌리’.
5살 나이에 딱 걸맞게 모든 게 신나기만 한 ‘빌리’와 달리,
9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베가’는
병원에 있는 엄마의 특명을 받아 아빠와 동생 챙기기에 바쁘다.
그런데 아뿔싸! 아빠가 강가 바위 틈으로 추락했다!
아빠를 구하기 위해 왔던 길을 거슬러 가보지만,
곧 드넓은 숲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모든걸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떠오른 엄마의 한마디.
“포기할 거야? 아니면 슈퍼히어로가 될 거야?”
내 안의 슈퍼파워를 깨우는 마법의 주문!
다 함께 외쳐봐! 토~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