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tive contents
-
-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 / Resident Evil: Welcome to Raccoon City, 2021
우리에게는 "월드컵 4강"으로 익숙한 2002년, 극장에도 하나의 시리즈가 시작했습니다.
17년 개봉한 6편 <파멸의 날>을 마지막으로 <레지던트 이블>는 "밀라 요보비치 - "폴 W.S. 앤더슨"의 커리어에 있어 대표작을 넘어 부부의 연까지 맺어준 고마운 작품입니다.
이외에도 "게임 원작의 영화는 흥행이 안된다"라는 공공연한 징크스도 깨버린 작품으로 이대로 재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6편 <파멸의 날>의 흥행은 제작비의 7배를 벌어들이는 수익과 최고 성적까지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웠을 겁니다.
근데, 돈 때문에 다시 만들려고 하니 뭔가 명분이 없어 보이지 않았을까요?물론, 명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밀라 요보비치 - 폴 W.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는 "앨리스"라는 오리지널 캐릭터로 게임에는 없는 이야기로 원작 팬들의 마음을 사지는 못했거든요.
이를 염두에 둔 "요하네스 로버츠 감독, <47 미터> 시리즈"의 "원작에 충실하겠다"라는 말은 걱정도 되었지만, 기대도 샀습니다.
그렇게, 먼저 북미에서 개봉한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박스오피스 5위와 함께 1000만 달러 미만의 시작을 알렸고 지금은 속편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에 있어 전문가 26%와 관객 52%의 평가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제 두 눈으로 보는 게 확실하고 빠르겠죠?
'과연,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어떤 작품이었는지?' - 감상을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모기업 "엠브렐러"의 지원하에 번영했던 "라쿤시티".
지금은 기업의 철수로 폐허로 변했고, 그곳을 향해 "클레어"는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비 오는 거리를 달리는 차량은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을 받아치지만 시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의문도 잠시, 도시에 이상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며 살기 위해서라도 발길을 옮기는데...좀비처럼 살아날까?
1. 게임을 해봤다면, 재밌을 거다!
앞서 말했듯이 이번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기존 시리즈와는 다른 작품으로 시리즈를 챙겨보지 않아도 됩니다.
이만하면, 일부러 찾아보려는 관객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고마운 영화로 비춰질겠지만 이번 영화를 연출한 감독의 "원작에 충실하겠다"라는 말은 부메랑처럼 돌아옵니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양조 주택"과 "라쿤시티 경찰서"는 게임의 1편과 2편의 주요 배경이거든요.
그렇기에 아는 사람들은 알아서 재밌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몰라서 몸을 뒤척일 겁니다.게임을 했어야 말이지...
떼거리로 몰려드는 좀비에 총알이 빗발치고 하나둘씩 쓰러지는 물량 전부터 머리가 날아가는 화끈함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 영화는 이럴 겁니다.
"밀라 요보비치 - 폴 W.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 역시 이런 액션적인 성향이 짙었다만 이번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반대로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신경 쓴 작품입니다.
극 중 경찰서의 좁은 통로에 몰려드는 좀비들부터 총기에서 나오는 불꽃으로 간간이 보이는 좀비들의 모습까지 제법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초창기 게임을 즐겨본 팬들이라면, 익숙한 시점이라 반가웠을 테니 그 포부가 결코 공수표는 아님을 보여줍니다.2. 근데, 이거 맞긴 해?
이렇게 본다면, "원작 게임 팬들은 만족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들이 나오겠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원작"이 있다면 피해 갈 수 없는 문제 "실사화", 즉 "싱크로율"이 있습니다.
이에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연기한 "클레어"는 그대로 나왔으며, "크리스"와 "웨스커"는 일부 달라진 점이 있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더군요.
그러나 "레온"과 "질"은 원작 팬들이 예상했던 모습과는 꽤 거리가 멉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아예 인종이 다릅니다?홍길동이 언제부터 흑인이었지?
원작 게임에서 보이는 "레온"은 금발에 백인으로 나오는 인물입니다.
하지민 이번 <라쿤시티>에서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흑발로 나와 아예 다른 인물로 등장하는데요.
"질", 역시 이전 <레지던트 이블 2>에서 보여준 실사화가 있기에 이번 <라쿤시티>에서의 모습이 납득되지 않았고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말했듯이 '하얀색 민소매 나시와 청바지, 그리고 콧수염만 있다고 해서 누구나 "프레디 머큐리"가 아니듯이' 그저, 이름만으로는 해당 캐릭터들을 그들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을뿐더러 몰입하기도 어려웠습니다.3. 분위기는 무서웠는데...
이외에도 원작 게임 팬들이라면, 두 장소에서 나올법한 악당의 후보군으로 "타일런트"와 "네메시스"를 기대했을 겁니다.
마지막 전투신을 제외하고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고, 끝까지 주인공 캐릭터들을 쫓아가기에 무섭기도 무서운 캐릭터들입니다.
특히, 최근 리메이크에서는 "중절모"를 씀으로 "김두한"이라는 친숙한 별명까지 얻어낸 캐릭터인 만큼 이들의 출연을 더 기대했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라쿤시티>의 악당은 생각보다 아쉬움이 많았습니다.그들의 불발도 있겠지만...
원하는 출연이 없다는 것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쌓아온 서사가 없는 게 더 큽니다. 앞서 말했듯이 '마지막 전투신을 제외하고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고, 끝까지 주인공 캐릭터들을 쫓아가' 무적의 이미지들로 무서운 캐릭터입니다.
이번에 나온 "윌리엄 버킨", 역시 이와 동일하나 무적의 이미지로 만들기에는 중간에 빼먹은 변이도 많았고, 그만큼의 서사도 빠져있습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로켓 런처"의 등장이 뭔가 눈치 없이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시리즈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무기라서...)
107분이라는 러닝 타임이 기존 "밀라 요보비치 - 폴 W.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을 포함해도 가장 긴 분량의 작품인데,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다는 건 아쉬웠습니다.
분명히, 무서웠는데...※ 이번 영화는 "롯데시네마 단독 상영작"입니다.
※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 한 개의 쿠키가 있습니다. (이 역시, 원작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
- 인싸 되기 쉽지 않네요
캐리는 남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소녀이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자신이 SNS에 올린 게시물의 조회 수를 높이고자 최선을 다한다. 한편 우주에서 온 외계인들인 마스터와 그를 따르는 와쿠는 악당 스펙터의 부하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도망치고 있는 와중에 마스터는 캐리가 사는 집의 열려있는 창문에 몰래 들어가 귀여운 강아지 인형인 콜라의 몸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와쿠도 도망치면서 장사가 안되는 꽈배기 사장의 식당에 들어가 춤을 추는 풍선 간판의 모습으로 변한다. 마스터는 이 지구에 적응하기 위해 놀란캐리와 마주치고 자신이 외계인이며 수소 핵융합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말을 한다. 하필 마스터의 존재를 알아버린 캐리는 자신이 인싸가 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콜라의 몸에 들어간 마스터의 움직이는 사진을 찍어 SNS에 내보내는데...
인싸의 길을 멀고 험하다.
캐리는 자신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인싸가 되고 싶어 하며 콜라의 몸에 들어간 마스터를 이용해 찍은 사진들을 SNS에 올린다. 그 이후로 캐리는 진짜 인싸가 되었고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다. 하지만 악당스펙터가 마스터의 에너지를 이용해 블랙홀로 지구를 빨아드려 자신이 모은 행성 컬렉션에 넣는 대음모를 꾸미는 걸 알게 된 마스터와캐리 , 캐리의 친구들은 함께 힘을 합치게 되고 스펙터와 맞서 싸운다. 또한 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꽈배기 사장도 장사가 안되고 꽈배기를 너무 맛없게 만들어 손님들이 없자 와쿠가 밤에 우렁각시 역할을 하면서 몰래 가게 청소를 하고 깨끗한 기름을 준비해 꽈배기를 튀겨 놓는다. 그 이후로 장사가 너무 잘 된 꽈배기 사장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가게로 입소문이 퍼진다.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사람들의 인기를 얻는 건 쉽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SNS 중독자인 캐리도 장사가 잘 안됐던 꽈배기 사장도 한순간에 외계인들인 마스터와 와쿠의 도움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니 말이다. 역시 인싸의 길은 멀고도 험한 걸까? 정말 그런 것인지는 일단 아싸인 나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지나간 추억은 어떻게 사람을 살게 하는가? <로봇드림>
살다보면 차마 잊히지 않는 인연들이 있다. 지나가버린 세월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각별한 사람과 그와 공유했던 시간들은 우리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다. 추억 속에서 그들은 눈부시고, 우리는 때때로 '그'가 아니면 다시는 누리지 못할 행복을 가늠하곤 한다. 우리는 그때와 같은 경험을 다시는 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그게 우리를 아쉽게 한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우리는 어쨌거나 새 인연을 만나 새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나가 버린 추억은 무가치한 것인가? 그저 흘러가버린 인연은 우리 안에 무엇으로 남는가? 영화 <로봇 드림>은 우리가 흘려 보낸 수많은 인연과 삶의 단편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개'는 번화하지만 외로운 대도시에 사는 시민 중 하나다. 그는 외롭다. 그 많은 시민들 중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외로우신가요?'
어느날 텔레비전 광고는 그에게 묻는다. 그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가 반려 로봇을 들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연인은 조각한 피그말리온처럼 '개'는 반려 로봇을 조립한다. 로봇은 완벽하다. 그는 가장 순수한 눈으로 '개'를 바라보고, '개'가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보다 더 절묘한 파트너는 없을 것만 같고, 둘에게 찾아온 찰나같은 여름은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나 운명은 잔혹하고, 둘의 행복은 지속되지 못한다. 바다에서 논 것이 무언가 잘못된 걸까? 즐거운 물놀이 후 로봇은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개'는 고철로 된 친구를 해변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로봇을 되찾아오겠노라 다짐하지만, 여름철이 지난 해변은 입구를 걸어 잠갔고, '개'와 로봇은 단절되고 만다. 나중에 다시 여름이 오고, 해변이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로봇은 자취를 감춘 후다. 영원할 것만 같던 우정이 한순간에 스러지고 만 것이다. 이별은 예고없이 들이닥친다. 둘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운명이란 으레 그런 것이므로.
이별은 괴롭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지나도록 둘은 끝없이 서로를 그린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자꾸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것만 같다. 그럴수록 서로가 보고 싶다. 재회의 기쁨을 상상할수록, 오늘의 고독은 선명해진다. 다시는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도 싹튼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야속하게도 그렇다.
결국 새로운 인연은 오고 만다. 로봇은 그저 고철로 마감될 수 있었던 그의 삶을 구원한 새로운 가족을 만났고, 개는 새로운 반려 로봇을 들인다. 그러는 사이 둘은 참 많이 변했다. 이별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삶도 저마다의 길을 따라 나아가버린 탓이다. 다시 봄이 왔고, 로봇은 스쳐지나가는 옛 인연을 알아보지만, 그의 손을 잡는 대신 그를 떠나 보낸다. 그와 함께 들었던 노래 한 곡과, 그 언젠가 나누었던 진실한 감정을 되새기면서.
My thoughts are with you
Holding hands with your heart to see you
Only blue talk and love
Remember, how we knew love was here to stay
Now December found the love that we shared in September
Only blue talk and love
Remember, the true love we share today
난 늘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과 한 마음이 되어서.
진한 농담과 사랑 뿐이었지만
기억하세요, 사랑이 지속될 거라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이제 12월이 되었고 저는 우리가 9월에 나누었던 사랑을 찾았어요.
진한 농담과 사랑 뿐이었지만
기억하세요, 오늘 우리가 나누는 진정한 사랑을.
지나간 추억은 오즈의 마법과도 같다. 그것은 찬란하지만, 우리가 추억하는 방식 그대로 재현되지는 못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의 속성이 본디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나가버린 세월과 시간들은 무가치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던 그 향그러운 추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전보다 성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중 로봇과 개가 그랬듯, 우리는 그 찰나 같은 기쁨으로 말미암아 살아갔을 것이다. 그 기쁨을 알기에 우리는 그것을 나눌 줄도 알게 되었을테고, 그 지나간 인연과 함께 하며 저질렀던 몇몇 실수들은 우리를 더욱 조심스러워지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을 때, 그를 더 소중히 여길 줄도 알게 되었으리라. 그러니, 이미 지나가버린 옛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유의미하다. 로봇이 개를 더는 붙잡지 않고 그를 그저 떠나보낸 것은 그가 이러한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
이 이야기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경험과 정서를 생생하게 담음으로써 보편성을 가진다. '개'를 통해 드러나는 ;지독한 고독에 시달리며 나의 완벽한 이해자를 그리는 개인'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그리 낯설지 않다.
또 한편으로, 이것은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언젠가 매스컴을 타던 강아지 로봇 '아이보'를 떠올렸다. 부품이 절판되어 다시는 회생시킬 수 없어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는 그 반려 로봇들 말이다. 나는 또한 로봇과 개의 관계를 통해 우리 세계의 개와 인간의 모습을 연상했다.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개가 근원적인 고독을 이기지 못해 반려 로봇을 들인다는 설정은, 우리 인간이 개에게서 애정과 위안을 받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작중 반려 로봇들이 그 사회에서 받는 취급 역시 우리 사회의 '반려 동물'이 처한 현실과 닮아 보였다. 결코 우리 사회에 주류가 되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삶도.
작중 '개'는 250불짜리 연 대신 70퍼센트 할인되는 연을 사야하며, 싸구려 맥앤치즈로 끼니를 떼우고 단칸방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의 주머니 사정은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그는 또한 친구를 사귀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보통 사람들 사이에 쉽게 섞여들지 못하고 스스로 친구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의 평안과 행복은 스스로 만든 ' 갈라테이아'에 의해서만 영위된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사리 찾은 인연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단절되고 만다. 개가 아닌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로봇은 그저 고철에 불과하고, 로봇은 토끼, 악어 등의 타인에 의해 처절하게 이용당하고 만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들에서 수많은 현실적인 장벽에 의해 와해되고 무너져 내리는 성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비극으로 마감되지 않는다. 둘은 서로가 아닌 인연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새 사람은 온다. 흔치는 않지만, 어떤 사람은 온전히 고립된 또 다른 개인에게 기꺼이 손 내밀기도 한다. 그것은 가장 소박하지만 견고한 연대이자, 사랑이다.
사람은 참 외롭다. 오늘날처럼 개인과 개인의 삶이 단절된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어렵사리 만난 인연이 더 소중하고, 그래서 이미 지나쳐 버린 인연에 대한 미련도 쉽사리 버리지 못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런 외로운 삶은 끝없는 부침을 맞는다.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사이 우리는 때때로 행복하고, 때때로 비참하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삶의 속성이라는 것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제의 좋았던 날들에 너무 빠져들 것도 없고, 조금 전의 나쁜 일에 잠겨들 필요도 없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오늘과 내일은 온다. 우리는 우리가 맞이할 그 많은 순간들을 어떻게 하면 충실히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그만이다. 오늘 좀 덜 충실하면 어떤가? 내일 조금 더 충실하면 된다. 내일이 영 시원찮으면 모레에는 그보다 올라갈 길이 많으니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부침 속에서, 자꾸만 밀려드는 그 파도와 해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요트를 타고서 돛을 올릴 뿐이다. 요트가 없으면 뗏목이라도 타면 된다. 그게 없으면 헤엄이라도 치는 것이다. 그러다 힘들면 남의 배 좀 얻어 타고, 가끔 외딴 섬을 만나면 거기서 몸도 좀 말리고, 나처럼 외롭고 처량한 사람에게 기꺼이 손도 내밀고. 그런 좋은 추억과, 소박한 연대가 서로 엮이다보면 인연은 오고, 해는 떠오른다. 우리는 다시금 그 햇발 아래 살아가게 된다. '개'와 '로봇'이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처럼.
-
- 공조에 의한, 공조를 위한 공조.
공조 2: 인터내셔날을 보기 전에 1을 봤지만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막연함이 가득했다. 78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호평으로 가득했던 공조 1가 나에겐 그렇게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속편이 나온다고 해도 그보다 더 나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도 잠시 이번엔 1보다 더 커진 스케일로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에 공조 2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미국 FBI 잭은 마약 범죄 조직을 잡기 위해 긴 시간을 들인 끝에 장명준을 체포하게 된다. 하지만 갑자기 등장한 북한 형사 림 철령이 등장해 북한으로 자신이 호송하겠다며 눈앞에서 장명준을 빼앗긴다. 그렇게 공항으로 향하던 중에 탈출해버린 장명준, 그들은 장명준을 잡기 위해 대한민국으로 향하고 남한 형사 진태, 북한 형사 림 철령, 미국 FBI 잭의 믿을 수 없는 공조가 시작된다.
초반부터 크게 벌어지는 액션은 과한 슬로우 모션을 제외하면 볼거리가 넘친다.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의 전개에도 1과는 조금 다른 긴박함으로 인해 몰입감을 더한다. 그리고 영화의 전반부를 차지하는 그들의 삼각 공조는 입담과 외모를 가미한 액션이 돋보인다. 삼각 공조에 이어 삼각관계(?)까지 연상되는 의외의 로맨스가 모두의 박수를 일으킨다. 다만 새로운 등장인물의 입지가 그들 사이에 자리 잡기엔 애매해서 다소 아쉽다. 현재의 시대를 반영한 철령과 잭 싸움에 진태 등 터지는 순간들이 씁쓸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추석에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공조 2: 인터내셔날'이 쉴 새 없이 커진 액션과 코미디로 성큼 다가왔다. 1과 비슷하겠거니 하며 기대감이 0인 상태에서 영화를 봤는데, 영화관에서의 현장감을 제대로 느끼며 보아서 인지 객관적인 평가가 좀 어려웠다. 내 기준에서는 액션과 코미디가 적절하게 이루어진 영화였기에 굉장히 재미있게 봤었다. 진지하고 깊은 이야기를 다룬 예술 영화도 물론 좋은 영화지만 온 가족이 영화관에 가서 재미있게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영화도 좋은 영화에 속하지 않을까.
-
- We are just gonna wait and see.
<라라랜드>
" 음악이 흐르는 LA의 별이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빛나는가."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개봉일자에 맞춰 영화를 보지 않았다. 보고 온 사람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City of stars'를 흥얼거리는데 영화를 보지 않은 나로썬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난 뒤에 재개봉 한 극장에서 우연하게 마주치게 된 영화였는데 이렇게 외톨이로 살 순 없겠다 싶어서 즉흥적으로 영화를 표를 끊고 봤었다. 옛날에 같이 살았던 외국인 친구가 'LALA LAND'만큼 멋진 영화가 없다고, 자기가 살았던 동네라고 영화 제목 자체가 우습지 않냐고 'LALA LAND(LA를 의미함과 동시에 꿈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 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이유를 몰랐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왜 그렇게 흥분했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영화관이라는 게 아쉬울 만큼 환상적인 작품을 본 기분이 들었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외국인들에게 어떨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소재인 것 만큼은 틀림없다. 재즈 뮤지선, 그리고 배우 지망생의 꿈을 위한 도시 LA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로맨스 영화! 낭만적인 꿈을 찾아 헤메이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우습게 붙여놓은 촌스러운 타이틀 만으로도 이미 눈길을 끄는데 오프닝 시퀀스 부터 환상적인 연출이 시작된다. 고속도로 막힌 도로 위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이 'Another Day of Sun'으로 연결되는 순간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결정되는 듯 하다. 리드미컬한 음악과 춤추는 사람들, 음색이 돋보이는 음악과 색감으로 무장한 오프닝 시퀀스라니 '이걸 어떻게 원테이크로 찍었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시작부터 뮤지컬 영화임을 입증하듯 '음악에 집중하세요'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여담으로, 아침 출근길에 자주 이 노래를 듣는다. <라라랜드>의 주인공처럼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것 마냥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색을 참 잘 활용하지 않았나' 였다. 인물들의 드레스나 배경, 흘러가는 장치 등에 색깔을 눈에 띄게 사용함으로써 영화 속 스크린이 아닌 마치 연극의 무대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또한 인물들에게 특성 색깔을 부여함으로서 각 인물의 성격이나 환경을 쉽게 표현하기도 한다. 안정감을 주지만 답답한 느낌을 만드는 초록색,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의 열정과 정열 욕구 그 자체를 표현하는 빨간색, 동시에 세바스찬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어 원색적인 미아와의 대조되는 베이지 톤. 미아(엠마 스톤 분)의 우울감과 맞닥뜨린 현실감을 상징하는 파란색, 아침과 저녁의 경계선에 주인공 둘을 섞어놓은 듯한 보라색 등 원색적인 색깔을 활용함으로써 인물의 상황과 개성이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좋은 미장센의 요소였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눈에 띄도록 사용된 색깔들을 상황에 맞춰 해석해보는 것도 큰 재미요소 중 하나였다.
<라라랜드>가 인기있었던 가장 큰 이유 바로, 'City of Stars', 'mia & sebastian’s theme', 'Start A Fire' 한 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환상적인 OST들이 그 주인공이겠다. 음악감독인 저스틴 허위츠의 말처럼, 음악이 영상이나 대본만큼 스토리텔링을 하는 아주 큰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되었다. 덕분에 감정적으로 솔직하고도 다채로운 표현력을 가진 음악들이 영화 내내 폭죽처럼 터진다. 뮤지컬 영화의 생명을 결정하는 음악이 자연스럽게 삽입된다는 것 또한 <라라랜드>가 가진 가장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이다. 여타 뮤지컬 영화가 그렇듯 뜬금없는 전개로 시작되는 음악이 낯설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주인공들의 인위적인 연출과 개연성 없는 음악은 도리어 거부감을 부를 뿐이니까 말이다. 하나, <라라랜드>는 인물간의 대화에서 그리고 주요 장면에서 배경음악처럼 뮤지컬 요소를 활용한다. 메인 스토리의 구축 지점에서 주인공들이 직접 연출하는 배경음악은 뮤지컬 영화 특유의 몰입감을 한층 더하는 듯 하다. 만나게 되는 지점부터 이별을 맞는 지점, 그리고 후의 우연한 만남의 지점까지 현실감과 더불어 가슴 아프지 않은 이별을 만들어 내는 섬세한 연출력이란 ...
겨울을 시작으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계절을 따라 진행되는 내러티브 또한 탄탄하고도 감미롭다. 오프닝의 계절, 진정한 재즈 음악을 찾는 세바스찬과 배우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준비하는 미아의 시련이 마치 겨울 그 자체를 상징하는 듯 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봄으로 넘어온 둘은 석양이 지는 아름다운 야경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춤을 추게 된다.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우연의 연속으로 손을 잡고 키스를 나눈다.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열정적인 둘의 사랑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나 그들의 현실은 사랑보다 냉정하다. 현실과 타협할수록 꿈과 멀어지게 되는 세바스찬을 보며 미아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윽고 가을 되고, 꿈에 대한 논쟁으로 둘은 갈등을 맞게 되고 둘의 관계도 흔들리게 된다. 이윽고 마찰이 잦아진 그들은 사랑도 꿈도 완성시키지 못한 채 이별을 마주한다. 이윽고 5년이 지난 겨울, 둘은 그토록 원했던 꿈의 위치에 서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을 마추고 이윽고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계절은 지나 다시 돌아오긴 하되, 돌아갈 수 없는 날들 속에 서로를 추억하며 '만약'이라는 화법으로 연출한 엔딩까지 ... 익숙하고도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꿈과 사랑을 계절에 비유해 전개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낭만'으로 정의해두고 싶다. LA에 대한 이상을 갖게 만들고 우수에 찬 눈빛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낭만.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보는 동안 눈가 귀가 즐겁다 못해 발을 제멋대로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작품의 퀄리티를 높히는 작품성이 좋았던 만큼 대중성도 굉장히 잘 잡아낸 듯 하다.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장면들을 요구하는지 감독이 그대로 알아내 화면 속에 담아낸 것 처럼 보였다. 또한 라이런 고슬링과 엠마 스톤 두 배우 모두 이 영화에 찰떡같이 어울렸는데, 두 배우 모두 예술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과정이 아마 세바스찬과 미아 두 인물의 모습을 만들어내는데 큰 도움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본과 음악 외에도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초반부의 지루함이 있긴 하나, 극 설명을 위한 초반부를 넘어서면 눈을 사로잡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영화 메인 OST 'City of Stars'를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한 그리피스 천문대의 화려한 별들의 향연과, 로스앤젤레스 야경 속 보랏빛의 풍경, 90년대를 연상케 하는 재즈바와 할리우드 배경까지 ... 주인공 둘의 스탭을 따라가며 영화 중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스토리 외적으로도 볼거리가 넘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영화보다 한편의 무대처럼 보이는데, 이는 조명의 영향도 큰 듯하다.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지 않는 핀 조명을 극 중 전개에 자연스럽게 활용함으로써, 영화 속 연출임은 분명하나 마치 실제로 무대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게끔 시각화했다. <라라랜드>는 촬영도구나 연출적 요소 속에 디테일을 많이 숨겨놓은 영화인데 일일히 하나하나 설명이 어려울 만큼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영화를 빠르게 전개시키면서 이런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니 그저 신기할 다름이다.
낭만적인 LA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 로맨스인 만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이지만, 동시에 LA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 '꿈'에 대한 좌절과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 또한 좋은 메시지 중 하나였다. 사랑과 꿈 사이의 경계선에서 버거워하는 남녀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라라랜드> 제목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 하다. 로맨스 영화라는 점에 사랑이라는 초점이 메인인 것 만큼은 사실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이러한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에 더욱 초점을 맞춘 듯 하다. 남녀가 서로 만나 끌리는 동안 그들의 가진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를 조언하고 위로하는 과정은, 스스로 정립할 수 없던 꿈을 이야기 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장치를 이용하는 것 처럼 보인다. 두 인물 모두 꿈에 대한 본질적인 불안감과 그 꿈의 정체성에 관한 깊은 고뇌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드러내는 양상은 차이를 보인다. 꿈과 현실을 타협하기를 여러번,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진정으로 서로의 눈을 맞추는 순간은 아프면서도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영화'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환상적인 OST 음악이 될 수도 있고, 몽환적인 세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색감이 될 수도 있으며, 좋아하는 배우가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이 그 이유일수도 있다. <라라랜드>가 많은 이들의 인생영화로 꼽힐 만큼 그 요소들이 밸런스 있게 적절히 잘 조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뮤지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로맨스의 기본 단계들을 잘 지켜냈으며,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전개 또한 신선하고 뭉클했다.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도록 화려한 화면과 색감을 적절히 잘 사용했으며 주인공의 연기가 섬세했던 덕분에 관객의 감성을 잘 어루만질 수 있었다. 자칫 지루해질 지도 모르는 2시간의 타임라인 속에 감독이 하고싶었던 말들을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결말까지 '환상적인' 영화 한편을 만들어냈다. <라라랜드>의 감독 데이미언 셔젤은 사람의 감정을 분출해내고 터뜨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 듯 하다. 전작인 <위플래시>와 최근 작품인 <퍼스트맨>만 보아도, 인물 개개인의 가진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극찬하고 '황홀하다'라고 표현하는 영화 <라라랜드>, 최근까지도 여러 극장에서 재개봉을 하고 있는 추세이니 혹여 보지 못했다면 꼭 영화관에서 보길 추천한다.
사진 출처 : <LALA LAND> In Movie.
-
- 나의 작은 행동이 세상을 바꾸고 있어.
얼마전 일하는 엄마들과 밥을 먹다가 육아와 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보면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엄마들이 사회생활을 한참 하던 때, 그러니까 불과 10년전만 해도 육아휴직이라는게 일반적인 단어가 아니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디 여자애가 서울로 학교를 가냐는’ 외할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외할머니집에서 걸어서 10분거리의 대학교를 가야 했다. 불과 25년전이었는데 외할머니는 아들이 아닌 ‘가시나’를 대학에 보내는 것도 못마땅해 하셨다. 아주아주 보수적인 지역의 보수적인 어른이었지만, 엄마와 아빠가 강력히 주장해서 대학을 보낸 것이다.
‘여자도 전문직을 해야해.’ 결혼해서도 원가족인 외할머니의 투병생활을 돌보고, 남동생들을 케어하며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지만, 내 딸만은 그렇게 살게 하지 않겠다는 엄마의 결연한 의지 덕에 나는 외할머니가 그렇게 싫어 하셨던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는 직업인 PD가 될 수 있었다. 꽤나 진취적인 직업군에 속하지만, 그래도 여자 PD가 육아휴직을 하고 다시 복직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 된 것은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2000년 초에 결혼 한 여자선배들을 떠올려 보면 결혼과 출산으로 일을 그만 둔 선배가 더 많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쓰고 돌아온 선배가 나보다 한살 많은 선배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엄청난 변화 속에 놓여 있는 중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미국의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마지막 씬에 직접 출연한다 )1950년대 하버드 로스쿨엔 전체 학생의 2%에 해당하는 9명의 여학생 밖에 없었고, 심지어 여자 화장실도 없었다고 한다. 수석졸업을 하고 두아이 까지 키웠지만, 로펌에서는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고 (거절하는 이유도 가지 가지다. 애나 돌봐야지 일은 언제 할거냐. 이미 작년에 여자를 뽑았다. 회사의 다른 여자들이 질투할거다? 등등 )그녀는 로펌 대신 결국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게 된다. 그리고 1970년대에 남성보육자와 관련된 한 사건을 접하고 이것이 남성의 역차별 사건이며, 성차별의 근원을 무너뜨릴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할때. 긴즈버그는 남편과 딸의 지지에 힘입어, 성별을 근거로 한 (On The basis of Sex (원제)) 178건의 합법적 차별을 무너뜨릴 재판을 시작하게 된다.
“백 년 동안 계속 져 왔다고 해도 이기려고 노력하는 걸 멈출 이유는 없죠.”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에서 딸 제인이 엄마 루스에게 하는 말이다. 이 대사는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그러고 보면 인종차별만큼이나, 성별에 근거한 차별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 의의도 정당하고, 의뢰인도 정당하지만, 여성들을 한세기 넘게 같은 논쟁에서 져왔다는 루스에게 딸 제인이 하는 저 말이 이 영화를 다 말해주는 것 같았다.
둘이 함께 택시를 기다릴 때 성추행 발언을 하는 남자들을 향해
“엄마, 남자들이 여자에게 저런식으로 말하게 두면 안돼.” 라고 시원하게 욕을 하는 딸을 보며,
“넌 자유롭고 두려움을 모르는 젊은 여성이야. 20년 전엔 이렇게 행동하지도 못했어.시대가 이미 변했어.“ 하고 말하는 엄마 루스.
차별이 차별인 줄도 모르고 지나왔던 시대를 지나, 우리 자녀들의 열망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되는 조항을 다시 검토하여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 달라고 주장했던 법정씬에서는 여지 없이 또 울컥했다. 실패하고 절망하더라도 결국엔 변화한다는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영화.나는 어쩌면 이런 변화의 역사에 살아있는 증인일지도 모른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자라며 차별을 받았지만, 그걸 깨려는 엄마, 이모와 같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고, 이제 딸을 낳고 엄마가 되고 또 나의 일을 하는 이 시간 속에서, 내 딸을 위해 나 역시 매일 매일 크고 작은 싸움을 계속 해오고 있는 중이니까.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작은 행동이 모여 세상을 바꾼 다는 것을 이미 겪었으니까. 승리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나아가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
-
-
- 영화 <좀비크러쉬 : 헤이리> 티저 예고편
자고 일어나니 온 동네에 퍼진 좀비 바이러스!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진선(공민정), 현아(이민지), 가연(박소진) 삼총사는
우연히 숨겨진 비리를 알게 되고 마을을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데..
무더위 통쾌하게 날려버릴 NEW 코믹 액션 어드벤처가 온다!
-
- 웨이브 <인 트리트먼트> 공식 예고편
정신과 의사 폴과 그가 치료하는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