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3-31 11:03:08
겨울 추위에는 살이 시리지만 봄 추위에는 뼈가 시리다.
달콤 씁쓸, 현실적인 로맨스 영화_국내 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거리에 만개한 벚꽃들 덕분에 마침내 봄이 왔음을 체감하는 요즘.
예쁘게 핀 꽃을 바라보면 마음이 붕 뜨다가도 여전히 매서운 칼바람에 몸이 움츠러들기도 하는데요,
부쩍 변덕스러워진 날씨지만 여러분 모두 건강 유의하시길 바랄게요.
그런데 혹시 '겨울 추위에는 살이 시리지만 봄 추위에는 뼈가 시리다'라는 속담을 아시나요?
봄에 찾아오는 꽃샘 추위도 겨울에 찾아오는 추위만큼이나 강력하단 뜻인데요,
씨네랩도 오늘은 마냥 따뜻하고 설레지만은 않은, 현실적인 국내 로맨스 영화를 추천해 드리려고 해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희대의 명대사를 남긴 <봄날은 간다>부터
아릿한 첫사랑 이야기의 정석과도 같은 <건축학개론>까지!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8편의 로맨스 영화를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연애의 온도(2013)
Very Ordinary Couple

감독: 노덕
출연: 이민기, 김민희, 최무성, 라미란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12분
애인과의 반복되는 싸움에 지쳐봤다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대사들의 향연.
3년의 비밀연애 끝네 헤어진 직장동료 '동희'와 '영'. 서로의 물건을 부숴 착불로 보내고, 커플 요금을 해지하기 전 인터넷 쇼핑으로 됴금 폭탄을 던지고. 심지어는 서로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는 말에 SNS 탐색부터 미행까지! 헤어지자고 말한 후에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사랑할 때보다 더 뜨거워진 두사람. 연애가 원래 이런 건가요?

너 그거 알아?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만날 확률이 82%래.
근데 그렇게 다시 만나도
그중에서 다시 잘 되는 사람들은 3%밖에 안된대.
나머지 97%는 다시 헤어지는 거야,
처음에 헤어졌던 거랑 똑같은 이유로.

헤어지자고 네가 하면 되지, 왜 나한테 시키는데?
야, 넌 뭐 변한 줄 알아? 너야말로 그대로야.
나 만나서 힘들고 지친다, 너 혼자 애쓴다,
너 지금 옛날에 하던 그 짓 똑같이 하고 있잖아.
너만 숨 막히고 피 말라?
나야말로 너랑 있으면 뭘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어!
나 다시 만난 거 네가 후회하고 있을까봐
나 너랑 있으면 같이...
나 숨도 제대로 못 쉬어.
근데도 결국에 이렇게 너는 네 생각밖에 안 하잖아.
너 서운한 거, 너 힘든 거,
너 혼자 노력하고 발버둥 치고 있는 거.
네 눈에는 너밖에 안 보여? 너만 힘들어?
연애 빠진 로맨스(2021)
Nothing Serious

감독: 정가영
출연: 전종서, 손석구 등
장르: 멜로/로맨스,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5분
요즘 애들 자.만.추 는 내가 아는 그 뜻이 아니라고?
일도 연애도 뜻대로 되지 않는 스물아홉 '자영'.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못 이겨 데이팅 어플로 상대를 검색화고, 19금 칼럼을 떠맡아 반강제로 데이팅 어플에 가입한 '우리'와 만난다. 서로에게 급속도로 빠져든 두 사람은 연애인 듯 아닌 듯 미묘한 관계 속에 누구 하나 쉽게 속마음을 터놓지 못하는데...

연애는 방구고,
결혼은 똥이야.
그냥 실컷 방꾸 뀌다가
똥 마려울 때 되면 결혼하는 거지, 뭐.

우리 센 척 작작하자.
여기 안 외로운 사람 있어?
사실 다들 외롭잖아.

야, 근데
우리가 하는 게 연애 아니야?
가장 보통의 연애(2019)
Crazy Romance

감독: 김한결
출연: 김래원, 공효진, 강기영, 정웅인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9분
지긋지긋한 인연들에게 날릴 사이다가 필요하다면,
남친과의 뒤끝 있는 이별 중인 ‘선영’. 새로운 회사로 출근한 첫날, 할 말 못 할 말 쏟아내며 남친과 헤어지던 현장에서 하필이면! 같은 직장의 ‘재훈’을 마주친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일보다 서로의 연애사를 더 잘 알게 된 두 사람. 하지만 미묘한 긴장과 어색함도 잠시, 사사건건 부딪히면서도 마음이 쓰이는 건 왜 그럴까?

남자랑 여자랑 같니?
- 같지 그럼! 너는 다르다고 배웠니?

나는 그냥 사랑에 환상 같은 게 없어요.
그냥 남잔 많이 만나볼수록 좋다.
그놈이 그놈이다.
몰랐어요?
여자 다 똑같아요, 남자 다 똑같은 것처럼.
그러니까 뭐 그냥 기대할 것도 실망할 필요도 없다 그런거지...
러브픽션(2012)
Love Fiction

감독: 전계수
출연: 하정우, 공효진, 지진희, 유인나 등
장르: 멜로/로맨스,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21분
하나만 물어보자. 도대체 내가 몇 번째야?
완벽한 여인을 찾아 헤매느라 31살 평생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한 '주월'. 그런 그의 앞에 모든 것이 완벽한 여인 '희진'이 나타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괴상한 취미, 남다른 식성, 인정하기 싫은 과거 등 완벽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희진의 단점이 하나둘씩 마음에 거슬리기 시작하는데...

잘못했어. 겨드랑이 털 같은 거 상관없어.
진짜야, 내가 털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는 모자도 털모자만 쓰고, 만두도 털보 만두만 먹고,
성격도 털털하다는 소리를 되게 많이 들어.
우리집 TV도 다 디지털이야.

우린 모두 연애라는 정글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가까스로 생존방식을 체득한 원숭이들일 뿐이야.
로맨틱 침팬지 말이야.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
My Love, My Bride

감독: 임찬상
출연: 조정석, 신민아, 윤정희, 배성우, 라미란 등
장르: 멜로/로맨스,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1분
결혼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
4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영민'과 '미영'.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달콤한 신혼생활도 잠시, 사소한 오해와 마찰들이 생기며 결혼의 꿈은 하나 둘씩 깨지기 시작하는데... 신민아와 조정석 주연으로 만든 90년대 레전드 로코영화 리메이크작.

여자한테 첫사랑은 하나가 아니래.
처음 만난 남자가 첫사랑이 아니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 첫사랑이래.

외롭다는 말이었어.
사람이 집에 혼자 있고 그런 게 외로운 게 아니야.
같이 있는데 진짜 외로운 게..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건축학개론(2012)
Architecture 101

감독: 이용주
출연: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8분
첫사랑은 왜 이루어질 수 없다고들 하나
서른다섯살의 건축가 '승민'의 앞에 15년 전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음대생 '서연'이 나타난다. 서연은 승민에게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해달라고 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으로 서연의 집을 짓게 된 승민은 옛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첫사랑이 원래 잘 안되라고 첫사랑이지.
잘되면 그게 첫사랑이니?
마지막 사랑이지.

손목 때리기는 보통 사이에선 하지 않지 않냐?
막 손 잡고 그래야 하는데.

너도 멀리 가 있어.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진 말고.
그 겨울, 나는(2022)
Through My Midwinter

감독: 오성호
출연: 권다함, 권소현, 오지혜, 계영호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0분
사랑이 가장 피곤했던 것 같아
스물아홉 동갑내기 커플 ‘경학’과 ‘혜진’은 내일을 위해 뜨겁게 공부하고, 오늘을 위해 열심히 사랑한다. 하지만 혜진이 먼저 취업을 하게 되자 점점 서로의 내일과 오늘이 변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경학이 엄마의 빚을 떠안으며 공부도 사랑도 위기를 맞게 되는데… 사랑조차 피곤했던 그 겨울,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솔직했을까?

사랑이라는 거,
그거 되게 간사한 감정이야.

나도 힘들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봄날은 간다(2001)
One Fine Spring Day

감독: 허진호
출연: 유지태, 이영애, 백성희, 박인환, 신신애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6분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는 어느 겨울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와 만나게 된다. 녹음 여행을 떠나며 자연스레 가까워진 두 사람은 곧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지만 봄을 지나 여름이 찾아오자 둘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사랑은 변하지 않아.
단지 사람의 마음이 변했을 뿐이지.
오늘 추천드릴 영화는 여기까지 인데요, 어떠셨나요?
즐겁고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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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늘한 미소 뒤에서 바라보는 심연에 관한 공포
'어두운 날들이여 안녕, 외로운 눈물이여 안녕, 이제는 행복해질 시간이라 생각해' 밴드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가 노래 가사를 부른다. 신나는 노래. 왠지 모르게 내 마음도 활짝 웃는 것 같다. 사실 어제 좀 늦게 잤다. 내가 좋아하는 맨유의 경기를 보다 늦게 잤다. 아니 사실 그 이전에 책을 한 권 읽고 잤다. 바로 <혐오의 과학>이라는 책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혐오범죄에 탐구했던 이 책. 45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이지만 거의 하루 꼬박 걸려서 다 읽었다. 엥? 이러지 않았는데? 나 그래도 책 일찍 읽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내용이 너무 어렵게 느껴 저서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
왜 이렇게 됐지? 생각해보면 그동안 책을 읽었다고 스스로 생각해왔기 때문이었다. 깊게 따져보면 그것은 책을 읽은 게 아니라 책을 '단지 본'것에 가깝다. 그것도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집중해서 본 게 아니다. 그냥 시선을 그쪽으로 옮긴 것뿐이다. 왜 그렇게 됐지? 즐거운 하루라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거리에 멈춰 서서 음악을 바꾼다. 바로 들리는 건 자우림의 <샤이닝>이다. 내가 기댈 곳은 어디인가.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던 카페가 갑자기 무거워진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갑자기 씁쓸해진다. 내가 견뎌온 삶의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 때문에 가끔 세상이 무서워질 때가 있다. <샤이닝>이 지났다. 바로 나오는 곡은 아이유의 <밤편지>다. 또 느닷없이 드는 생각. 이런 거 생각해서 뭐해? 그냥 그렇게 묻어두는 거지. 다시 컨디션이 좋지도 않지만 안 좋지도 않은 상태로 돌아간다.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쨌든 웃을 만한 순간을 주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 나와 우라를 위해 호러 영화 한 편이 등장했다. 관객을 불러들일 거면 좀 예쁜 웃음이 좋았을 걸, 이 사람들은 너무 기괴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스마일>이다.
기괴하게 웃는 사람들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 로즈 코터. 그녀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사회에 무언가를 기여한다는 생각은 로즈의 소중한 동기부여다. 쉬는 날도 없이 일하는 로즈.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진료를 보고 있었다. 그녀 앞으로 들어온 환자 한 명이 있었다. 환자의 이름은 로라. 로라는 남들은 볼 수 없지만 자기에게는 보이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의사의 관점에선 분명한 망상이다. 로라의 상태를 진단하는 로즈. 로라는 크게 화를 내며 난 미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로라가 목격했던 광경을 털어놓는다. 대학원생이었던 로라. 그녀의 담당 교수였던 무뇨즈가 로라를 호출했고, 금세 망치로 자기의 머리를 스스로 가격해서 죽었다고 한다. 죽으면서 건넸던 말은 유언이 아니라 기괴한 웃음뿐이었다고 전하는 로라. 무뇨스 교수의 자살 이후 로라의 눈에만 이상한 웃음이 보인다. 당황하는 로즈. 주치의로서 무언가 피드백을 건네주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로라가 발작을 일으켰다. 공황까지 오는 것 같다. 더 화들짝 놀라는 로즈. 로라는 발작을 일으키며 “그것이 오고 있어요!”라고 소리 지른다. 갑자기 이 발작을 멈추더니 로즈는 주변에 있는 깨진 조각을 줍는다. 기괴하게 웃는 로라. 곧 로라는 깨진 조각으로 스스로 목을 그어 목숨을 끊는다.
충격적인 상황. 정신과 주치의라고 해서 특별하게 멘탈이 강한 건 아니다.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로즈. 정신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 계속 찝찝하게 머리에 남는 건 로라가 죽기 전에 로즈에게 했던 말이다. “무뇨스 교수는 자살하기 전에 기괴하게 미소를 지었어요!”라는 말이 비단 자기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다음 날. 로즈는 지나가다가 환자 한 명이 이상하게 웃는 모습을 목격한다. 환자 칼에게 다가가는 로즈. 칼은 로즈에게 다가가자마자 “넌 죽게 될 거야!”라고 소리친다. 화들짝 놀라는 로즈. 정작 칼은 계속 수면 상태였다. 이때 겪은 일을 상관에게 말하는 로즈. 상관은 로즈에게 일주일 동안 잠깐 쉬고 오라고 말한다. 그 때만 해도 잘 몰랐다. 로즈는 큰 구멍을 파고 있었다는 걸.
호러 만세
영화의 톤은 흑백이었다. 주인공은 남자 둘. 남자 둘은 등대에서 일하고 있다. 두 남자는 따뜻한 성격을 가지지 않았다. 내내 까칠한 두 남자. 어떤 남자는 자기 이름도 거짓으로 둘러댔다. 나이 든 남자는 내내 젊은 남자에게 극언을 내뱉는다. 아무도 없는 등대와 해안가. 상사인 것처럼 구는 중년의 남자와 많은 일에 젊은 사람은 학을 떼고 있다. 이렇게 불안한 자의식이 점점 깊어질 때쯤 젊은 남자의 눈에 인어의 시체가 보인다. 분명히 과거에 전해 듣기로는 '인어의 시체를 목격하는 것은 그 광경을 본 자가 미쳐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었다. 미쳐가고 있는 것인가. 나를 침잠하는 바닷가와 서서히 조여 오는 사운드에 젊은 남자는 정신을 잃어간다. 앞에서 소재로 쓴 영화는 <라이트하우스>다.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잘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찾아보진 않았지만 분명히 신화에서도 레퍼런스가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끝까지 봐야 이해가 용이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를 깊게 파지 않은 분들이라면 도중에 하차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 그렇게 큰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지만 나는 이 <라이트하우스>가 또 하나의 마스터피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운드와 흑백 연출로 서서히 돌아버리는 인물의 처지를 깊게 잘 묘사했다. 러닝타임을 보면서 내내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 때문에 극의 끝까지 잘 볼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우리나라에 <곡성>이란 영화가 이미 있었다. 그렇지만 <라이트하우스> 역시 신선했다고 생각한다. <곡성>과 비슷하게 인물을 서서히 옥죄는 연출을 보다 새롭게 접근했다. '얼마나 끔찍할까'의 공포가 아닌 '내가 처한 상황이 답도 희망도 없다'라는 두려움을 영화 전반을 이끄는 정서로 선택한 것이다. <곡성>이 2016년이고 <라이트하우스>가 2019년이니 이 두 영화는 꽤나 신선했다고 볼 수 있다. <쏘우> 시리즈를 위시로 한 슬래셔 무비나 <살인 소설>에서 봤던 '갑툭튀' 형 점프 스퀘어를 넘어 두려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호러는 이렇게 점점 더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장르에서 조금씩 빈틀어서 더 새로운 결과물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이 <스마일>은 이런 관점에서 신선하다. 일단 우리는 배트맨의 호적수 '조커'를 알고 있다. 찢어진 입으로 기괴한 웃음을 내뱉는 조커. 히스 레저와 호아킨 피닉스의 명연기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임팩트를 한 방 먹였다. 또 어렸을 때 '빨간 마스크' 한번쯤 다들 들어봤잖아? 이렇게 웃는 모습으로 기괴함을 연출하는 방식은 잘 생각해보면 사실 몇 번 봤었다. 또 <트루스 오어 데어>라는 영화가 이미 개봉했었다고 한다. 이 영화가 신선한 이유가 단지 웃음 때문에? 아니다. 영화의 핵심 소재와 웃음이 갖는 관련성이 탁월하기 때문에 신선하다. 일단 이 웃음과 영화의 주요 소재는 끊임없이 대비된다. 극에서 웃는 얼굴의 모습이 '아예 고통이 없음'을 암시하는 장면도 있다. 이는 왜 이 스마일이라는 소재가 양면적인 측면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설명이 된다. 핵심 소재를 결국 넘어서야 '스마일'로 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면의 무언가를 담아내지 못하면 결국 불안한 자의식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현대사회의 그림자는 영화 전부를 관통하며 호러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마일'이라는 제목과 포스터를 보러 갔다가 더 깊숙한 내면의 심연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익숙한 맛으로
소재에 대한 접근은 신선했지만 다른 측면에서 기존 영화들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도 있다. 바로 이미지 사용법이다. 이 영화는 이미지 사용을 잘했다. 일단 포스터부터 볼 수 있는 기괴한 미소는 누구 아이디어인지 궁금하다. 세상에서 가장 께름칙한 미소를 가져다가 포스터에 박았다. 이 웃는 얼굴은 영화 끝까지 반복해서 나타난다. 관객들은 이 기괴한 미소에 1차적으로 적응한다. 으. 저거 기분 나쁘게 웃네. 그런데 여기다 기름을 붓는다. 바로 미술을 활용했던 방식이다. 극은 여러모로 잔인하게 소품을 잘 활용한다. 자기가 직접 날카로운 걸 갖고 목을 긋는 건 기본이다. 직접 자기 머리 가죽을 벗기기도 하고, 식칼 비슷한 걸로 사람 몸을 푹푹 찌르기도 한다. 또 중후반부쯤에 굉장히 잔인하게 피살당한 인물의 사진이 나온다. 이런 고어 묘사가 영화에서 가볍게 휙 쓰이지 않았다는 것은 이 작품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로라의 자살부터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엔딩 직전 시퀀스에서 해소시키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영화가 두렵다가도 주제와 맞닿아 있으니 경제적으로 잘 썼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 이 감독의 연출 방식은 사운드 구성에도 강점이 있다. 봤던 소재를 중반부까지 이끄는 건 음향의 힘이 다 했다. 사실 이런저런 영화를 봤던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이 영화의 초반부 전개가 익숙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쓴 <곡성> <유전> <라이트하우스>를 살짝 비튼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는 기존의 것들과 차이점을 부여하며 초장부터 빠른 템포로 관객을 시종일관 제압한다. 예를 들어 칼이 로즈에게 '넌 결국 죽게 될 거야!'라고 소리 지르는 신이 있다. 목소리 톤을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듯싶다. 살짝 얼빠진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것이 서늘한 경고가 될 때가 있다. 영화는 이 지점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서 표현한다. 또 지지징하는 효과음도 어느 장면에서 기괴해야 하고 그렇지 않아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한 채로 잘 들어갔다. 우리가 어떤 밴드의 음악을 듣는다고 가정해보자. 밴드 합주를 하는데 드럼이 압도적으로 못하면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다르다. 영화는 이야기에 딱 달라붙은 상태로 소리를 묘사한다. 작게 "로...즈"하는 속삭임도, 로즈의 눈에 타인의 기괴한 미소가 보일 때도 사운드에 변박을 주며 충분한 호러 분위기를 조성한다. 올해 <탑건 : 메버릭>이 거의 8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을 쳤다. 이 영화의 강점으로 많은 분들이 음향을 뽑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르릉하는 비행기 소리를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그렇게 쉬울 것 같진 않다. 영화는 이와 다른 측면에서 강점을 내비친다. 아마 이 영화의 음향 효과가 기억이 안 나실 수도 있다. 아마 이 영화의 음향이 관객을 내내 붙잡고 집중하게 만들 테니까.
별개로 영화에서 강점으로 작용했던 건 캐릭터 설정이다. 우선 영화에는 로즈의 전남친과 현남친이 나온다. 여기서 현남친 캐릭터 설정이 좋았다. 우선 <유전>을 이야기할 수 있다. <유전> 거의 단점이 없다시피 한 영화지만 의문점이 드는 부분이 있다. 바로 아내 애니가 그렇게 미쳐가고, 아들을 하대하고 있는데 남편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또 스콧 데릭슨의 <살인 소설>에서도 그냥 좀 조용히 신경 끄고 살지 왜 사서 고생을 만드는가? 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글쓴이가 호러에 식견이 그렇게 넓은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현남친 캐릭터는 확실히 클리셰를 벗어난 느낌이다. 앞의 두 영화 <유전> <살인 소설>과는 다르다.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친구라도 다 받아주는 건 너무 극적 장치라고 생각했다. 이를 비틀듯이 영화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인물을 묘사한다. 이 현남친 캐릭터와 비슷한 맥락을 하는 것이 상담사와 전남친 캐릭터다. 전자는 현남친과 비슷하게 적절하게 사용됐지만 후자는 엔딩부에서 살짝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두 인물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이야기가 좀 더 매끄럽게 물 흐르듯이 진행됐다. 이미지만큼이나 캐릭터를 잡았던 감독의 수가 돋보인다.
아쉬운 것도 있어
그렇게 연출가의 강점도 들어가고 주인공 소시 베이컨의 열연도 느껴지지만 단점은 당연히 있다. 바로 점프 스퀘어다. 이 연출 방식 전부가 무의미하게 들어가지는 않았다. 가령 예고에서도 나오는 분홍색 여자가 니트를 입고 창을 똑똑 두드리는 장면은 점프 스퀘어가 잘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끔찍한 이미지들과 함께 시너지를 부분도 군데군데 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예고에 나오는 부분이다) 주인공 로즈가 화들짝 놀라서 기절하는 곳이 굳이 유리여야 했는가? 에 대해서는 살짝 아쉽다. 비슷한 맥락에서 로즈가 헛것을 보는 장면이 여러 번 제시된다. 왜 헛것을 볼까? 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것의 원인 절반이 '집에 불을 켜지 않아서'로 귀결 지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그냥 단순히 관객을 깜짝 놀래키기 위해 점프 스퀘어가 소모적으로 사용됐던 건 많이 아쉽다. 이게 주요한 순간에 점프 스퀘어가 들어간 것이 아닌 비교적 덜 핵심인 장면에 들어가니까 이질감이 더 크다. 감독님이 자신이 없으셨나? 이미 충분히 영화 잘 만들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엔딩부의 전개는 좀 아쉽다. 일단 영화를 보면서 중후반부에 방향키를 트는 부분이 있다. 글쓴이는 이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도입부에 로라가 죽기 전에 했던 대사가 생각나면서, 오히려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 더 완성도가 높은 각본일 거라고 생각했다. 또 이 방향키를 틈으로서 새롭게 나타나는 인물은 극의 주제적인 측면과도 관련 있다. 이 메시지에 대한 통찰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이 인물의 등장이 소모성으로 휙 쓰이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오케이. 엔딩까지 가는 빌드업 좋았고. 터트려야 할 데에서 터트렸고. 클리셰 깨기까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극후반부 가장 마지막 시퀀스가 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조악하다고까지 느낀 부분이었다. 뻔한 호러에서 탈피하고 싶었나? 영화의 처음과 끝이 조응하고, 이 '웃는 것'의 속성과도 대응하는 방식은 1절만 하면 됐다. 그런데 굳이 그걸 그런 식으로 비틀었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 사람은 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걸까?
결국 지은 미소에 관하여
어느덧 20대 중반을 지나고 나서야 드는 생각이 있다. 바로 어떤 인생이든 나와 그렇게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같았던 내 유년시이었다. 이것도 충분히 비극적이지만 내가 어림잡지도 못할 정도로 뒤틀린 인생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또 우리의 삶에서 이 영화가 차용한 주요 소재가 왜 인간에게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지 이유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어야 하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다. 그것만큼이나 더 아픈 건 주위 사람들이 그런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사람에게 참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는 이 지점을 경제적으로 활용하며 폭주한다. 결국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가 필요하다. 행동과학에 '담아내기'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각자의 어린 시절에 크고 작게 다가오는 부침을 '별 것 아니다'라고 버텨주는 것이 '담아내기'의 뜻이다. 우리 모두 불완전하기에 이 '담아내기'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극은 이런 인간의 불완전성을 내세우며, 모두의 마음속에 진 응어리를 미소로 일깨운다. 내가 만든 세상을 일깨울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미소 지으며 정신승리한 채로 버틸 것인가? 감독은 굉장히 서늘하고 기괴한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던 필, 아리 애스터, 로버트 애거스가 현재 호러 영화 기대주 탑 3으로 언급되고 있다. 뒤틀린 판타지/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발상/호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각 감독들의 주요 특징이다. 이 셋 만큼은 아니더라도 '인간 내면에 관해 묻는다'라는 특징을 가진 신성이 등장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드린다.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함께 극장에서 볼 만한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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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과 귀를 열어야 '붉은 하늘'도 아름답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펠릭스'(랭스턴 위벨)와 함께 뜨겁고 건조한 여름 발트해 해변을 방문한 '레온'(토마스 슈베르트). 그러나 숲 속 별장에서 예상치 못한 손님 '나디아'(파울라 베어)와 '데비트'(엔노 트렙스)를 조우한 이후 그들의 여름 계획은 점차 꼬이기 시작한다. 레온은 사사건건 펠릭스와 충돌하고, 새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한 채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 반면에 펠릭스는 나디아, 데비트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이에 더해 휴가뿐만 아니라 일도 레온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막 완성한 소설 출판을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진 레온. 산불 소식이 들려오고 소방 헬기가 오가는 가운데 그의 마음속에서도 불길이 꿈뜰거린다. 나디아를 향한 욕망, 데비트를 향한 질투, 펠릭스를 향한 분노가 점점 치솟기 시작하고, 그렇게 네 청춘의 여름은 조금씩 파국을 향해간다.
<어파이어>, 페촐트다운 신작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이른바 ‘베를린 학파’(Berliner Schule)라 불리는 감독들 중 1세대로 불린다. 이들은 외국 도시나 휴양지 등을 무대 삼아 현재 독일인의 일상적인 삶을 관찰하는 작품을 주로 만들기로 유명하다. 페촐트는 비슷하다. <피닉스>, <운디네>와 같은 작품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다룬다. 다만 차이도 있다. 페촐트의 영화는 독일 근현대사를 배경 삼아 독일인의 혼란과 상실감에 주목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어파이어>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작만큼 무겁지는 않다는 인상은 분명하다. 여름휴가라는 시간적 배경, 바닷가 휴양지라는 공간적 배경이 큰 역할을 한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삼각, 혹은 사각 관계의 청춘 로맨스라는 소재 역시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진다. 산불이라는 위협이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이 마지막에 몰린 구성도 한 가지 이유다.
하지만 주인공 레온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파이어>는 평범한 청춘 로맨스가 아니다. 독일어 제목인 <Roter Himmel 붉은 하늘>의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레온과 다른 인물의 관계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현대인의 소통에 대한 고찰과 경계, 그리고 일말의 희망까지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한 대 치고 싶은 주인공
단언컨대, <어파이어>의 주인공 레온은 끔찍한 인물이다. 첫 등장부터 그렇다. 별장을 가는 차 안. 운전 중인 펠릭스는 차가 이상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은 레온은 친구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자기 생각에 갇혀 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차는 고장 나고, 펠릭스와 레온은 짐을 지고 별장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 짧은 장면만 봐도 레온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고, 폐쇄적인지 손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첫인상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준다. 숲이 우거진 지름길을 이용해 별장으로 가려는 레온과 펠릭스. 펠릭스가 길을 하기 위해 잠시 떠난 뒤 레온은 숲에 홀로 남는다. 그곳에서 레온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헬기 소리를 듣지만 하늘에서 헬기를 보지 못한다. 멧돼지 소리도 듣지만 멧돼지 꼬리도 보지 못한다. 차가 이상하다는 펠릭스의 말을 듣지 못한(혹은 않은) 것처럼, 레온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그의 한심한 성정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벽이나 문 뒤에 숨은 채 타인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데 특출 나다. 예술학교 입시를 준비 중인 펠릭스의 포트폴리오를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지적하며 기분을 상하게 한다. 나디아에게 첫눈에 반한 뒤에는 데비트에게 괜히 시비를 건다. 정확히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나디아와 데비트가 연인 관계라고 지레짐작한다. 호텔에서는 호텔 직원의 실수를 대놓고 조롱한다.
자기 손으로 파괴하는 청춘 로맨스
사실 주인공이 짜증 나면 좀처럼 영화에 몰입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파이어>는 예외다. 페촐트는 주인공의 비 호감도를 역이용해서 평범하지 않은 청춘물을 만들어냈다. 자기만의 좁은 세상과 아집에 갇힌 한 청년이 인생을 망치는 비극을 신랄하게 보여주며 예상에서 살짝 벗어난 쌉쌀함을 안겨준다.
우선 레온은 자기 손으로 로맨스를 파괴한다. 생체발광으로 빛나는 밤바다를 보러 가자며 나디아가 호감을 보여주는데도 소통을 거부하며 스스로 가능성을 없앤다. 자기가 집필한 소설 '클럽 샌드위치'를 나디아가 엉망이라고 평가하자, 고작 아이스크림 판매원의 비평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녀가 문학을 전공하고 박사 과정 중이라는 사실을 안 뒤에는 자괴감 때문인지 그녀에게 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즐거워야 할 휴가도 망친다. 펠릭스와의 대화는 철저히 일방향이다. 펠릭스는 계속해서 제안한다. 해변에 가자고, 같이 해수욕하자고, 저녁 식사를 하자고, 지붕을 같이 수리하자고. 하지만 레온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전부 거절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도 거절한다. 나디아, 펠릭스, 데비트가 잘 어울리는 가운데, 레온은 해수욕장 인명구조원인 데비트의 직업을 평가절하하며 선민의식을 드러낸다.
보고 듣지 못한 자의 비극
커리어도 엉망으로 만든다. 소설 피드백을 위해 별장을 방문한 출판사 사장 '헬무트'(마티아스 브란트)는 갑자기 몸이 아파 입원한다. 검사 후 신장에 문제가 생겨 일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헬무트. 이에 그는 레온에게 진심으로 충고한다. 능력 좋은 편집자를 붙여줄 테니 <클럽 샌드위치>를 포기하고 잠재력을 떨칠 수 있는 새 작품을 집필하라고.
하지만 레온은 복을 걷어찬다. 헬무트가 자기와 자기 소설을 무시했다고 분개한다. 나디아가 일갈하기 전까지는 헬무트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그의 진심을 전혀 보지 못한다. 붉게 물든 하늘만 보고 산불을 알지 못하듯이, 그는 자기 앞에 있는 대상을 제대로 보거나 듣지 못했다.
대가는 처참하다. 산불에 초토화된 숲처럼 비참한 현실이 레온을 덮친다. 안전하다고 믿은 해변까지 밀고 들어온 열기와 새하얀 잿가루를 목격한 순간에는 이미 늦었다. 레온이 걷어차 버린 가능성과 잠재력은 불 속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타 죽은 펠릭스와 데비트의 모습으로 그의 눈앞에 등장한다. <어파이어>가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이름값이 어색하지 않은, 쌉쌀한 청춘 영화인 이유다.
아닌 척하며 독일 사회를 꼬집다
다른 관점에서 보더라도 <어파이어>는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실제로 <어파이어>는 곱씹을수록 묵직한 영화다. 아무리 감독의 전작보다 가볍다고 하지만, 페촐트의 통찰력마저 없어지지는 않았다. 어두운 현실을 직접 그려내지는 않지만, 가벼운 스케치와 터치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레온이 데비트 이름을 듣고는 그가 동독 출신이냐고 되묻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순간 데비트를 향한 그의 멸시는 단순한 인간관계의 범주가 아니다. 동독 주민의 2등 국민(Deutscher zweiter Klasse) 정서가 스쳐 지나간다. 레온이 데비트의 직업을 무시하는 대목도 서독에 비해 동독 지역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소득 수준이 낮다는 현실을 환기시킨다.
하필이며 펠릭스와 데비트가 산불의 피해자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피부색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펠릭스는 일반적인 게르만족이 아닌 이주민이다. 펠릭스와 데비트는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사회적 소수자,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들만 목숨을 잃은 셈이다. 그들의 운명은 바다로부터 바람이 불기 때문에 산불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레온의 말과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따라서 <어파이어>를 독일 사회의 현실과 떼놓고 볼 수는 없다. 이민자, 난민, 동독 주민 등의 불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독일 축구 대표팀은 러시아 월드컵 전후로 메주트 외질 같은 터키 출신 선수와 관련해 논란을 겪은 바 있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은 지지율 2위를 기록하고 자치단체장을 배출하며 약진 중이다. 즉, <어파이어>는 레온과 같은 무관심, 멸시와 외면이 독일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하는 영화다. 가장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거대하면서도 중요한 담론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래도 붉은 하늘은 아름답다
<어파이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레온의 실패와 좌절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레온은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변화한다. 그는 나디야가 함께 보자고 했던 빛나는 밤바다를 목격한다. 소리만 들었던 헬기와 멧돼지도, 붉게 물든 하늘로만 접한 산불의 모습도 두 눈에 똑똑히 담는 데 성공한다.
결말에서 레온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그는 자기 세계에 갇힌 채로 쓴 '클럽 샌드위치'를 포기했다. 직접 겪은 비극적인 여름휴가를 가감 없이 글로 풀어내며 새 소설을 썼다. 암 투병 중인 헬무트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웃는다. 늘 그랬듯이 뒤에 숨는 대신, 앞으로 나서서 나디아를 마주한다. 그렇게 레온은 성장한다.
레온의 성장은 단순히 한 개인, 청년의 성장이 아니다. 한 사회를 구성한 공동체의 변화 가능성과 저력을 믿는 희망 찬가일지도 모른다. 이는 산불로 물든 붉은 하늘이 단순한 재난의 전조나 위협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산불이라는 위협을 알리는 붉은 하늘을 정확히 보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새 희망이기 때문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주인공이 짜증 나는 만큼 붉은 하늘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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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영화 명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대작 모아보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호러무비 명가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가 개막을했습니다!!
27회를 맞이한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는 21년부터 내건 슬로건'이상해도 괜찮아'를 유지하면서 비주류의 재능을 응원하는 장르영화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터 잭슨, 크리스토퍼 놀란, 대런 아로노프스키, 기예르모 델 토로, 장준환, 나홍진의 작품이 BIFAN을 통해 발견되고 소개되었습니다. 블루무비특별전을 비롯한 도발적인 특별전으로 검열에 대해 문제 제기했고, 쇼브라더스 무협영화와 볼리우드특별전으로 팬커뮤니티를 형성하였습니다. 권력의 교체에 따라 부침을 겪기도했지만 BIFAN의 쉼 없는 에너지는 26년 동안 새로운 감성과 풍부한 상상력, 개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관객과 국내외 게스트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 왔습니다. ‘이상해도 괜찮아’를 모토로 비주류의 감성에 환호하고 변방에 밀려난 재능을 발견하고 용기를 주는 영화제입니다
비주류는 곧 주류가 되기도 합니다. 다양한 시각의 작품들을 같이 만나보아요개요: 모험_개막작 | 미국
개봉: 2023.07.05
감독: 아리 에스터
출연: 호아킨 피닉스, 패티 루폰, 네이단 레인
프로그램 노트 [부천국제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네 가지의 독특한 챕터로 구성된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아리 에스터의 세 번째 장편영화로 충격적인 비주얼과 영리한 코미디가 균형 있게 갖춰진, 자기 발견에 대한 독창적인 이야기다. 영화는 모자관계에 대한 물음과 한 사람이 독립을 위한 몸부림치는 과정을 보여주고, 보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는 연이은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맞서 싸우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연기를 한다. 앞으로 수년간 논란의 여지가 있을 법한 충격적인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개요: 공포 | 영국
개봉: 미정
감독: 조 린치
출연: 헤더 그레이엄, 쥬다 루이스
프로그램 노트 [부천국제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H.P.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한 조 린치의 〈악의 육체〉는 각본가 데니스 파올리, 책임 프로듀서 브라이언 유즈나, 프로듀서이자 조연 배우인 바바라 크램톤을 포함한 많은 러브크래프트의 총아들을 모이게 했다. 하지만 이 매혹적이고 복잡한 영화는 모두 감독인 린치에 의해 모아지고 구성된다.
단단한 연출과 예측 불가능한 도착적인 톤의 사용이 잘 어우러져 있으며 엘리자베스 역의 헤더 그레이엄과 그의 어린 환자 역에 주다 루이스 등의 강렬한 캐스팅은 에로틱한 스릴러와 바디호러의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이코트로닉의 걸작을 만들었다.
개요: 공포 | 호주
개봉: -
감독: 조시아 앨런, 인디아나 벨
출연: 조던 카원, 엘레나 카라페티스, 브렌던 록
프로그램 노트 [부천국제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네버 파인드 미〉는 조시아 앨런과 인디아나 벨의 인상적인 장편영화 감독 데뷔작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두 주인공 사이의 불안과 불확실성이 관객을 몰입하게 한다. 여주인공 조던 코완과 노인 역의 브랜든 록이 훌륭히 연기해낸 서로를 의심하는 편집증은 점차 고조된다. 이는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결말로 치달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개요: 공포 | 일본
개봉: -
감독: 오에 타카마사
출연: 오치아이 모토키, 아노, 요코다 마유, 오니시 아야카
프로그램 노트 [부천국제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드라이브 마이 카> (2021)의 공동 시나리오 작가인 오에 타카마사의 <고래의 뼈>는 디지털 세계의 잔상에 불과한 존재를 추앙하고 목숨까지 내던질 정도로 빠져드는 대중심리를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펼쳐 보인다. “작은 생물들이 심해에 가라앉은 고래의 뼈에 붙어 영양을 흡수하며 밤거리의 등불처럼 빛을 점멸하다가, 다 먹어 치운 뒤에는 생물들도 빛도 사라진다.”는 서두의 말처럼, 추앙받는 자는 추앙하는 자들을 통해서만 빛나는 잔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개요: 공포_폐막작 | 일본
개봉: -
감독: 시미즈 다카시
출연: 호시 토모코
프로그램 노트 [부천국제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비밀스러운 마케팅으로 관객의 궁금증을 일으켜온 J-호러의 대명사 시미즈 타카시의 신작을 세계 최초로 공개한다. 사운드 호러와 아이돌을 소재로 엮어낸 시미즈 타카시의 <모두의 노래>는 스멀거리는 긴장감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만드는 시미즈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후크송”이 귀에 맴돌듯 나도 모르게 저주의 가락을 흥얼거리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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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버 스케이트> 러시아의 낭만과 현실이 담긴 로맨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세기를 바라보는 1899년 겨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꽁꽁 얼어붙은 운하 위로 '마트베이(표도르 페도토프)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스케이트를 신고 빵 배달을 하며 살아가던 중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분노에 가득 찬 그는 공산주의에 심취한 '알렉스(유리 보리소프)'가 이끄는 소매치기 무리에 합류한다. 한편 상류층 귀족 영애 '알리사(소냐 프리스)'는 매우 보수적인 가풍으로 인해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마음속으로만 간직한 채 마치 감옥에 갇힌 듯 답답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마트베이와 알리사는 우연한 만남을 갖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6월 1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러시아 영화 <실버 스케이트>의 내용은 언뜻 보기에 평이하다. 근대 유럽에서 펼쳐지는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와 그 멜로드라마 저변에 은은히 깔려 있는 여성 인권 신장 운동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이나 화제의 드라마였던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 더 나아가 셜록 홈즈의 여동생이 주인공인 <에놀라 홈즈>와 같은 영화를 자연히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실버 스케이트> 속 사랑은 손쉽게 예상할 수 있는 통속적이고 감정적인 로맨스와는 결이 다소 다르다. 그 중심에는 젠더 권력관계의 전환과 공간적 배경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가 있다.
앞서 예시로 언급한 작품 속 로맨스는 대체로 상류층 남성과 평민 여성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설령 남녀가 모두 귀족 집안의 자제라 하더라도 남성 측 가문이 혈통이나 전통, 권력의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상류층인 경우가 대다수다. <오만과 편견> 속 피츠윌리엄 다아시와 엘리자베스 베넷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브리저튼>에서도 나름 명문가라는 다프네의 가문이 자작 작위를 가진 것에 비해, 사이먼은 그보다 높은 공작과 백작 작위를 지니고 있다. 이때 여성이 남성의 신분이나 재력보다 그의 인품을 보고 결혼을 결심하는 전개는 결혼이 집안과 집안의 결합으로 여겨지던 당시 시대상과 뚜렷한 대립각을 이루며, 주도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부각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하지만 <실버 스케이트>는 이러한 관습적인 전개를 따르지 않는다. 남녀 주인공 간의 권력관계가 뒤집혀 있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인 마트베이는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배달일을 하며 입에 간신히 풀칠을 하는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 역시 거리 가로등 관리자에 불과하다. 반면에 알리사는 그녀의 아버지가 경찰청장 혹은 행정안전부 장관에 가까운 고위직을 맡을 만큼 최고위층 귀족 가문 영애다. 이처럼 남녀 간의 권력관계가 명백히 뒤 바뀌어 있다 보니 사랑의 결실을 맺기 위해 알리사가 내리는 결단은 단순히 여성 권익 향상의 범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젠더 권력 너머의 기득권과 비기득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회적 강자와 약자에 대한 담론으로 나아간다.
실제로 마트베이와 알리사는 서로에게 그간 알 수 없었던 각자의 세상을 보여주며 호감과 사랑이 될 동질감을 싹 틔운다. 대학에서 화학 공부를 하는 게 꿈이지만 보수적인 집안의 격렬한 반대에 시달리는 알리사. 그녀는 귀족 연회에서 도둑질 중이던 마트베이를 신고하지 않는 대신, 그를 남편으로 위장시켜 대학 입학 허가를 받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야심 찬 계획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마트베이는 마냥 강자로 보이던 귀족 중에서도 탄압받고 제약당하며 자유가 없는 약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편 마트베이는 운하 위에 열린 야시장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거리를 알리사에게 보여준다.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던 이들, 그러나 자신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고통받아 온 상인과 노동자, 농노의 삶과 그들의 민낯을 생애 처음으로 마주한다. 그들의 데이트는 단순한 불장난이 아니라 자신 외의 약자를 인지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마트베이와 알리사의 사랑, 그것의 씨앗이 되는 동질감이 다른 인물과의 관계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이 묘한 연대감과 동질감은 소매치기단의 리더인 알렉스와 그의 동료들에게까지 확장된다. 마트베이가 알리사를 데리고 시내 구경을 시켜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마트베이의 소매치기 동료들을 만나 술집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알리사는 알렉스와 공산주의에 대한 짧은 토론을 벌인후 그로부터 <자본론>을 선물로 받는다. 그 이후 마트베이의 동료들이 술집에서 자신에게 큰 무례를 범하고 마트베이와 주먹다짐까지 펼쳤는데도, 또 알렉스가 경찰의 추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인질로 붙잡았는데도 그녀는 <자본론>을 탐독함과 동시에 <자본론>을 자신의 과학책들과 함께 소중히 보관한다.
이는 당시 러시아에서 약자였던 이들이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이 있음을 서로 확인하고, 이러한 동질감을 토대로 연대할 기초가 만들어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악역인 듯 보이던 알렉스가 예상과 달리 끝내 마트베이를 동료로 인정하고 알리사를 살려준 것과 달리, 정작 알리사의 약혼자이자 러시아의 평범한 귀족 군인으로 기득권층의 핵심에 위치한 '아르카디(키릴 자이체프)'가 최종적인 악역으로 설정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마트베이와 알리사의 사랑 중 계급을 뛰어넘은 빙상장 위에서의 만남이 러시아의 낭만이라면 마트베이의 말에 담긴, 농노의 삶은 비참하고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는 기계처럼 다루어지는 사회상은 러시아 혁명이 발생한 이유이자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실버 스케이트>는 이러한 사회적 약자 간의 동료애와 연대감에 공간적 배경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를 더해 더욱 강조한다.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고 지금도 러시아 제2의 도시라 할 수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바로 그 약자들의 피와 뼈로 만들어진 도시이기에 가능한 연출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토르 대제의 명령으로 1703년부터 만들어진 신도시로, 강 하구 쪽 둑 위의 습지를 매립해 만든 도시였다. 매립 작업을 위해서 표토르 대제는 9년 간 연 4만 명가량 농노를 비롯해 전쟁 포로들을 강제 노동에 투입했고, 그 결과 1712년에 러시아 제국의 새로운 수도이자 일명 '뼈 위에 세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탄생할 수 있었다. 새하얀 눈이 덮인 러시아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과 마찬가지로 하얀 뼈들이 토대를 이룬 현실이 영화의 공간에 이미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운하의 도시로 유명한 암스테르담을 모델로 삼아 건설된 역사는 스케이트가 영화의 주 소재로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암스테르담 못지않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운하 덕분에 작중 대부분의 사건이 마트베이를 비롯해 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는 인물들로부터 발생하고, 피겨 스케이팅 기술을 적용시킨 듯 화려하고 독창적인 스케이트 액션신이 대거 등장하는 것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다. 특히 도시의 상징성은 운하 위 스케이트 액션신에 새로운 의미도 불어넣기도 한다. 운하가 있어야 할 정도로 습한 땅에 노동자들이 피땀으로 제국의 수도를 건설했다는 역사는 그 자체로 사회적 불만이 가득한 스케이터 소매치기들의 활동이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라 제국에 불만을 품은 정치적 테러로 인식될 개연성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운하 위를 수놓는 소매치기와 경찰 기동대 간의 치열하고 필사적인 추격전이 기대 이상의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영화는 단지 배경으로 남을 뻔했던 공간적 배경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면서 도시를 마치 한 명의 캐릭터처럼 활용한다.
이에 더해 <실버 스케이트>는 스토리 전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공간들의 전경, 부감을 군데군데 삽입하면서 분명 해피엔딩인 두 남녀의 로맨스를 일견 아련하고 가슴 먹먹하게 만든다. 특히 예카테리나 2세 시절 건설되어 현재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겨울 궁전이라든가, 겨울 궁전 바로 앞에 위치한 궁전 광장과 알렉산더 원기둥이 유독 눈에 띈다. 왜냐하면 겨울 궁전은 문화적으로도 유럽 열강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서유럽의 예술품 수집하던 러시아 제국의 노력이 깃든 장소이자, 러시아 혁명의 서막을 장식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결국 다소 불필요한 듯 보이는 이 장면들을 역사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1899년 겨울을 나는 인물들과 러시아의 모습에서는 그들의 씁쓸한 미래, 그 비극의 씨앗을 미리 맛볼 수 있다. 그렇기에 <실버 스케이트>는 단순한 로맨스 영화를 넘어서서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결코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는 러시아의 낭만과 현실을 모두 잡은, 러시아만의 아련함이 잔뜩 묻은 사랑 이야기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차갑게 뜨거운 낭만과 아파서 아름다운 현실을 모두 잡은 러시안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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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영화/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주말부터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요.
이 더위속 6월 셋째 주 주말 동안 극장가를 달군 영화들을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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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6월 셋째 주, 1위를 차지한 <범죄도시3>!
주말관객수 64만명, 누적관객 수 880만 명을 기록하였습니다.
<범죄도시 3>은 <범죄도시2>에 이어 곧 쌍천만을 앞두고있어 기대감을 한층 더 모으고 있습니다.14일 개봉한 <엘리멘탈>이 주말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였고 DC의 신작 <플래시>가 3위를 기록했습니다.
1. <범죄도시 3> (-)
여전히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범죄도시3>
하지만 <엘리멘탈>과 <플래시>가 개봉하면서 일일 관객수가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쌍천만’을 앞에 두고 있지만 이 속도라면 1000만까지 가는데에는 긴 시간이 소요될것으로 보입니다.
나란히 개봉한 <엘리멘탈>과 <플래시>가 좌석점유율 각각 20퍼센트 넘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2. <엘리멘탈> (NEW)
<엘리멘탈>은 주말동안 관객수 42만명을 동원하면서 2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지난 14일 개봉된 <엘리멘탈>은 <플래시>에 밀려 박스오피스 3위에서 2위로 올라섰습니다.
470만 관객을 동원했던 <주토피아>보다 높은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고 있으며 북미의 낮은 성적에 비해 한국에선 높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플래시> (NEW)
<플래시>는 주말 관객 수 29만명을 기록하며 <엘리멘탈> 뒤를 이은 3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동시개봉한 <플래시>와 <엘리멘탈>은 각축전을 벌일것으로 예상됩니다.
4. <트랜스포머 : 비스트의 서막> (-)
북미에서 개봉 첫 주 1위에 올라섰지만 한국 박스오피스에서는 점점 하락세를 보이는 <트랜스포머 : 비스트의 서막>이 4위로 전주보다 2위가 떨어졌습니다.
5.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5월 한국 극장가를 살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누적관객수 400만을 넘기면서 흥행에 성공했고
<포켓 몬스터 DP: 아르세우스 초극의 시공으로>가 6위, 21일 개봉할 <귀공자>가 시사회를 거치면서 7위에 올라섰습니다.
(2)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6월 셋째 주 주말 북미 박스오피스 <플래시>가 1위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감독인 제임스 건이 DC CEO가 되면서 첫 영화로 DC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같은날 개봉한 흥행 실패를 보이고 있는 <엘리멘탈>이 2위를 기록했습니다. <트랜스포머 : 비스트의 서막>, <인어공주>가 연이어 4,5위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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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6월 셋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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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배종인 인간의 존재의미를 묻는다
진화한 유인원(Ape)과 퇴화된 인간들이 살아가는 디스토피아 행성. 유인원은 세상의 지배종이 되었고 인간들은 사냥의 대상에 불과하다.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웨스 볼 감독이 연출하고, <아바타: 물의 길> 조쉬 프리드먼이 각본을 썼다. 제작비는 1억 6천만 달러, 한화로 약 2200억 원이다. 평균제작비 약 100억(홍보비 추가 총제작비는 약 125억)이 드는 한국 상업 영화를 20개 이상 만들 수 있는 대작이다.
혹성탈출 시리즈는 리부트(Reboot)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리부트 영화의 유행을 가져왔다. 놀런 감독은 오래되어 폐기 수준에 있던 배트맨의 캐릭터에 새롭게 스토리를 입혀 대박 흥행을 가져왔다. 이후 많은 리부트 영화 시리즈가 시도되었고 혹성탈출 시리즈도 그중 하나다.
혹성탈출 시리즈처럼 한국에서도 마동석의 <범죄도시> 성공으로 시리즈 영화에 관심이 많아졌다. 개별 독립된 영화는 유명감독의 대작 영화일지라도 흥행을 장담할 수 없다. 시리즈 영화의 장점은 예측가능성이다. 경험을 토대로 제작비 규모와 개봉 시기를 정하기가 쉽다.
캐릭터를 관객에게 설명하는 시간 등 영화 초반의 빌드업 과정을 과감하게 줄이고 바로 본론에 들어가 관객을 몰입하게 할 수 있다. 충성도 높은 팬덤이 형성되면 흥행의 강력한 엔진이 된다. 시리즈 영화는 스핀오프(번외 편)와 프리퀄(전사)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할 수 있어 확장성도 크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인간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망할 수 있는 지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태양계 행성의 지배종이 된 유한한 존재인 인간. 영화는 인간의 욕망과 교만으로 결국 문명을 잃어버리게 될 디스토피아 세상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화면 크기가 감동을 다르게 한다.’는 아내의 말에 동의한다. 영화를 방구석 1열이 아닌 극장에서 보는 주된 이유다. 우리는 용산 CGV 아이맥스 관에서 영화를 보았다. 마치 실제 유인원들이 영화에 출연한 듯 얼굴에 나타나는 섬세한 감정표현, 거대한 숲이 된 고층 빌딩, 프록시무스 군단의 거처인 폐기된 크루즈선 등을 큰 화면에서 실감 나는 영상으로 즐겼다.
러닝타임은 다소 긴 145분이다. 이 정도의 상영시간이라면 놀라운 영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야기(Story)와 서사(Narrative)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관객이 중간에 피로도를 느끼게 됨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굳이 옥에 티를 찾자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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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30] 스릴러로 돌아온 안젤리나 졸리의 추격극
영화 윈드리버의 타일러 쉐리던 감독이 신작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굉장히 건조하지만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가진 캐릭터를 등장시켜 일종의 복수극을 스릴러로 보여줬는데요.
이번 영화는 좀 더 스케일이 커지고 빨라졌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영화가 재미있습니다. 마음을 쫄깃하게 만드는 스릴러 영화에요.
시카리오 시리즈의 각본가로 유명한 타일러 쉐리던은 이제 연출을 시작하는 감독입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는 감독이네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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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블러드 레드 스카이> 공식 예고편
[2021년 7월 23일, 넷플릭스 공개]
의문의 병을 앓는 여자.
치료를 위해 어린 아들가 밤 비행기에 오른다.
이륙 후, 비행기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점령당하자 여인은 생존 싸움을 시작한다.
그간 힘겹게 숨겨온 어둠의 힘을 뿜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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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왕을 찾아서> 런칭 예고편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친구가 불시착했다!" 1980년 강원도, 특별한 존재가 마을에 찾아왔다! 2024년 최고의 화제작! '왕을 찾아서' 2024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