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3-31 11:03:08
겨울 추위에는 살이 시리지만 봄 추위에는 뼈가 시리다.
달콤 씁쓸, 현실적인 로맨스 영화_국내 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거리에 만개한 벚꽃들 덕분에 마침내 봄이 왔음을 체감하는 요즘.
예쁘게 핀 꽃을 바라보면 마음이 붕 뜨다가도 여전히 매서운 칼바람에 몸이 움츠러들기도 하는데요,
부쩍 변덕스러워진 날씨지만 여러분 모두 건강 유의하시길 바랄게요.
그런데 혹시 '겨울 추위에는 살이 시리지만 봄 추위에는 뼈가 시리다'라는 속담을 아시나요?
봄에 찾아오는 꽃샘 추위도 겨울에 찾아오는 추위만큼이나 강력하단 뜻인데요,
씨네랩도 오늘은 마냥 따뜻하고 설레지만은 않은, 현실적인 국내 로맨스 영화를 추천해 드리려고 해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희대의 명대사를 남긴 <봄날은 간다>부터
아릿한 첫사랑 이야기의 정석과도 같은 <건축학개론>까지!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8편의 로맨스 영화를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연애의 온도(2013)
Very Ordinary Couple

감독: 노덕
출연: 이민기, 김민희, 최무성, 라미란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12분
애인과의 반복되는 싸움에 지쳐봤다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대사들의 향연.
3년의 비밀연애 끝네 헤어진 직장동료 '동희'와 '영'. 서로의 물건을 부숴 착불로 보내고, 커플 요금을 해지하기 전 인터넷 쇼핑으로 됴금 폭탄을 던지고. 심지어는 서로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는 말에 SNS 탐색부터 미행까지! 헤어지자고 말한 후에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사랑할 때보다 더 뜨거워진 두사람. 연애가 원래 이런 건가요?

너 그거 알아?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만날 확률이 82%래.
근데 그렇게 다시 만나도
그중에서 다시 잘 되는 사람들은 3%밖에 안된대.
나머지 97%는 다시 헤어지는 거야,
처음에 헤어졌던 거랑 똑같은 이유로.

헤어지자고 네가 하면 되지, 왜 나한테 시키는데?
야, 넌 뭐 변한 줄 알아? 너야말로 그대로야.
나 만나서 힘들고 지친다, 너 혼자 애쓴다,
너 지금 옛날에 하던 그 짓 똑같이 하고 있잖아.
너만 숨 막히고 피 말라?
나야말로 너랑 있으면 뭘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어!
나 다시 만난 거 네가 후회하고 있을까봐
나 너랑 있으면 같이...
나 숨도 제대로 못 쉬어.
근데도 결국에 이렇게 너는 네 생각밖에 안 하잖아.
너 서운한 거, 너 힘든 거,
너 혼자 노력하고 발버둥 치고 있는 거.
네 눈에는 너밖에 안 보여? 너만 힘들어?
연애 빠진 로맨스(2021)
Nothing Serious

감독: 정가영
출연: 전종서, 손석구 등
장르: 멜로/로맨스,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5분
요즘 애들 자.만.추 는 내가 아는 그 뜻이 아니라고?
일도 연애도 뜻대로 되지 않는 스물아홉 '자영'.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못 이겨 데이팅 어플로 상대를 검색화고, 19금 칼럼을 떠맡아 반강제로 데이팅 어플에 가입한 '우리'와 만난다. 서로에게 급속도로 빠져든 두 사람은 연애인 듯 아닌 듯 미묘한 관계 속에 누구 하나 쉽게 속마음을 터놓지 못하는데...

연애는 방구고,
결혼은 똥이야.
그냥 실컷 방꾸 뀌다가
똥 마려울 때 되면 결혼하는 거지, 뭐.

우리 센 척 작작하자.
여기 안 외로운 사람 있어?
사실 다들 외롭잖아.

야, 근데
우리가 하는 게 연애 아니야?
가장 보통의 연애(2019)
Crazy Romance

감독: 김한결
출연: 김래원, 공효진, 강기영, 정웅인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9분
지긋지긋한 인연들에게 날릴 사이다가 필요하다면,
남친과의 뒤끝 있는 이별 중인 ‘선영’. 새로운 회사로 출근한 첫날, 할 말 못 할 말 쏟아내며 남친과 헤어지던 현장에서 하필이면! 같은 직장의 ‘재훈’을 마주친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일보다 서로의 연애사를 더 잘 알게 된 두 사람. 하지만 미묘한 긴장과 어색함도 잠시, 사사건건 부딪히면서도 마음이 쓰이는 건 왜 그럴까?

남자랑 여자랑 같니?
- 같지 그럼! 너는 다르다고 배웠니?

나는 그냥 사랑에 환상 같은 게 없어요.
그냥 남잔 많이 만나볼수록 좋다.
그놈이 그놈이다.
몰랐어요?
여자 다 똑같아요, 남자 다 똑같은 것처럼.
그러니까 뭐 그냥 기대할 것도 실망할 필요도 없다 그런거지...
러브픽션(2012)
Love Fiction

감독: 전계수
출연: 하정우, 공효진, 지진희, 유인나 등
장르: 멜로/로맨스,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21분
하나만 물어보자. 도대체 내가 몇 번째야?
완벽한 여인을 찾아 헤매느라 31살 평생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한 '주월'. 그런 그의 앞에 모든 것이 완벽한 여인 '희진'이 나타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괴상한 취미, 남다른 식성, 인정하기 싫은 과거 등 완벽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희진의 단점이 하나둘씩 마음에 거슬리기 시작하는데...

잘못했어. 겨드랑이 털 같은 거 상관없어.
진짜야, 내가 털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는 모자도 털모자만 쓰고, 만두도 털보 만두만 먹고,
성격도 털털하다는 소리를 되게 많이 들어.
우리집 TV도 다 디지털이야.

우린 모두 연애라는 정글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가까스로 생존방식을 체득한 원숭이들일 뿐이야.
로맨틱 침팬지 말이야.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
My Love, My Bride

감독: 임찬상
출연: 조정석, 신민아, 윤정희, 배성우, 라미란 등
장르: 멜로/로맨스, 코미디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1분
결혼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
4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영민'과 '미영'.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달콤한 신혼생활도 잠시, 사소한 오해와 마찰들이 생기며 결혼의 꿈은 하나 둘씩 깨지기 시작하는데... 신민아와 조정석 주연으로 만든 90년대 레전드 로코영화 리메이크작.

여자한테 첫사랑은 하나가 아니래.
처음 만난 남자가 첫사랑이 아니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 첫사랑이래.

외롭다는 말이었어.
사람이 집에 혼자 있고 그런 게 외로운 게 아니야.
같이 있는데 진짜 외로운 게..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건축학개론(2012)
Architecture 101

감독: 이용주
출연: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8분
첫사랑은 왜 이루어질 수 없다고들 하나
서른다섯살의 건축가 '승민'의 앞에 15년 전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음대생 '서연'이 나타난다. 서연은 승민에게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해달라고 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으로 서연의 집을 짓게 된 승민은 옛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첫사랑이 원래 잘 안되라고 첫사랑이지.
잘되면 그게 첫사랑이니?
마지막 사랑이지.

손목 때리기는 보통 사이에선 하지 않지 않냐?
막 손 잡고 그래야 하는데.

너도 멀리 가 있어.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진 말고.
그 겨울, 나는(2022)
Through My Midwinter

감독: 오성호
출연: 권다함, 권소현, 오지혜, 계영호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0분
사랑이 가장 피곤했던 것 같아
스물아홉 동갑내기 커플 ‘경학’과 ‘혜진’은 내일을 위해 뜨겁게 공부하고, 오늘을 위해 열심히 사랑한다. 하지만 혜진이 먼저 취업을 하게 되자 점점 서로의 내일과 오늘이 변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경학이 엄마의 빚을 떠안으며 공부도 사랑도 위기를 맞게 되는데… 사랑조차 피곤했던 그 겨울,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솔직했을까?

사랑이라는 거,
그거 되게 간사한 감정이야.

나도 힘들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봄날은 간다(2001)
One Fine Spring Day

감독: 허진호
출연: 유지태, 이영애, 백성희, 박인환, 신신애 등
장르: 멜로/로맨스,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6분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는 어느 겨울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와 만나게 된다. 녹음 여행을 떠나며 자연스레 가까워진 두 사람은 곧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지만 봄을 지나 여름이 찾아오자 둘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사랑은 변하지 않아.
단지 사람의 마음이 변했을 뿐이지.
오늘 추천드릴 영화는 여기까지 인데요, 어떠셨나요?
즐겁고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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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인함과 순수함, 그 모순적인 특징이 공존하다
2015년 영화라고는 생각되지 않을만큼 굉장히 잘 만든 스릴러 였던 영화 <널 기다리며>. 내용적인 부분은 솔직히 뻔한 작품이었지만 심은경 배우의 연기력이 너무나도 훌륭했고, 연출도 긴장감 유지를 꽤나 잘해서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널 기다리며> 시놉시스
15년의 기다림, 7일간의 추적
그 놈을 잡기 위한 강렬한 추적이 시작된다!
당신이 우리 아빠 죽였지? 15년 전, 내 눈 앞에서 아빠를 죽인 범인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15년을 기다린 이유는 단 하나! 아빠를 죽인 범인을 쫓는 소녀 ‘희주’ 앞에 유사 패턴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15년을 기다린 희주의 계획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널 기다리며>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플롯은 전형적인 클리셰가 많았던 작품
좋았던 작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쉬웠던 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플롯 자체는 굉장히 전형적인 스릴러 문법을 따르는 작품이었다. 심은경이 맡은 희주가 범인이고 나중에서 다 밝혀지리라는 점이 눈에 선했다. 그 점이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영화 <널 기다리며>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희주가 범인으로 드러나기까지 그 긴장감을 잘 유지시켰기 때문이다. 희주의 아빠를 죽인 기범을 쫓아다니며 언뜻언뜻 악마적인 본성을 보여주는 희주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존재같은 희주라는 선을 넘나들면서 그 긴장감을 잘 유지해서 뻔한 플롯이었지만 집중을 하면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심은경의 연기력이 이정도 였다니!
‘희주’라는 캐릭터를 구현하는데 있어서 연출이 그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카메라 워킹과 편집을 한 것은 맞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심은경 배우의 연기력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심은경 배우가 연기를 잘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스릴러 장르에서도 빛을 발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희주가 복수를 하고 싶어하는 ‘기범’이라는 대상을 15년 간 기다리면서 경찰 삼촌들에게는 그저 순수하면서도 희생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기범에게는 잔인한 살인마의 모습을 봉주는 그 이중적인 모습을 표현해낸 것에 정말 소름이 돋았다. 뭔가 그 캐릭터가 양분되어 있다기 보다는 순수성 속에서 잔인함을 엿볼 수 있어서 그 모순에 더욱 소름이 돋았던 것 같다.
희주는 싸이코패스일까? 아니면 복수심에 망가진 것일까?
그래서 희주의 캐릭터에 궁금한 지점이 생겼다. 영화를 보고 나서 과연 희주가 싸이코패스인 것인지 확실하게 단언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빠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15년 이라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차근차근 계획을 하다보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싸이코패스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그런 감정이 들었던 이유는 희주의 캐릭터다 순수함과 잔인함으로 양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함 속에서 잔인함이 함께 공존하기에 그냥 저 캐릭터는 싸이코패스라고 단언을 할 수가 없었었던 것 같다. 그저 희대의 살인마라고 규정짓기 보다 어렸을 적 아빠의 죽음으로 인한 복수심에 망가진 한 소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널 기다리며>는 순간순간 몰입도가 엄청났던, 심은경의 연기력을 재발견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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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도시, 똑같은 패턴은 이제 그만
많은 사람들이 권선징악을 원한다. 권선징악은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는, 꽤나 단순 명쾌한 의미다. 하지만 의미의 단순 명쾌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권선징악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법의 테두리를 교묘하게 벗어난 범죄자들이나 가벼운 심판을 받고 출소한 범죄자들이 다시 보복을 일삼는 일들은 그 사례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두 건의 사건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사회의 심판이 생각보다 통쾌하게 다가오지 않는 건, 그런 범죄자들에 대한 심판이 생각보다 시원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해외에서도 이런 심리가 있을 것이다. <이퀄라이저> 시리즈나, <존윅> 시리즈 같은 영화들이 계속 사랑받는 건, 조금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복수나 처벌들이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영화 속 주인공들의 처벌 방식은 굉장히 폭력적이고 무차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라는 틀을 빌려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마석도 형사의 재등장
영화 <범죄도시4>는 2017년에 개봉한 1편 이후 계속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가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마석도 형사(마동석)는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인물이다. 사실 마석도 형사에게 온전히 감정이입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조금은 무식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범죄자 체포나 처단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오히려 범죄자들에게 당하는 일반 사람들이나, 마석도 형사의 팀에 있는 조금 평범해 보이는 동료들에게 더 감정이입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마석도 형사에게 반가움을 느낀다. 어쨌든 관객들에게 악의 처단이라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 이 시리즈가 이어지게 하는 주요 동력이다.
이번 네 번째 영화에서는 온라인 불법 도박 관련 사건을 다룬다. 이번 편의 사건 역시 실제 경찰 수사가 이루 졌던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재구성했다. 영화의 빌런은 백창기(김무열)와 IT천재 장동철(이동휘)이다. 백창기는 엄청난 살기로 사람들을 마구 죽이면서 필리핀 현지에서 도박장을 관리한다. 반면 장동철은 사업가적인 기질과 프로그래머 능력을 활용해 기업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돈을 빨아들인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빌런은 백창기다. 그는 그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고 상대에게 일단 칼을 쑤셔 넣는다.
지난 시리즈들과 구도나 전개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엄청나게 악한 빌런을 초반에 등장시키면서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마석도 형사를 비롯한 그의 팀이 어떤 특정한 사건을 수사하다 빌런의 존재감을 알게 된다.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 누군가가 억울하게 다치거나 죽음으로써, 마석도 형사가 범인을 꼭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수사 중간중간 유머코드도 빼놓지 않는다. 이번 편에서는 조선족 장이수(박지환)를 다시 등장시켜 지루해질 타이밍에 유머를 끼워 넣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에 좁은 공간에서 최종 빌런과 마형사가 대결을 벌이는 장면을 넣는다.
빌런의 악랄함은 높이고 있지만, 아쉬움도 높아지고 있는 시리즈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면서 똑같은 구성과 전개를 보이지만, 달라지는 것이 있다. 바로 빌런이다. 이번 영화의 빌런도 꽤나 강력해 보이지만, 점점 그 강도가 약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범죄도시> 시리즈 최고의 빌런은 1편의 장첸(윤계상) 일 것이다. 가장 큰 무게감과 공포를 전달했던 그 빌런 이후, 다양한 배우가 연기한 악랄한 빌런이 등장했지만, 기억에 남는 빌런은 2편의 강해상(손석구) 정도다. 3편의 빌런은 이름조차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3편의 빌런은 부패경찰 주성철(이준혁)과 일본 조폭 리키(아오키 무네타카)도 강력했지만, 이름까지 기억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4편의 빌런 백창기 역시 강력함을 전달한다. 하지만 캐릭터를 연기한 김무열 배우의 조금은 선한 얼굴이 악랄한 느낌을 다소 희석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동안 김무열 배우는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양한 빌런을 연기한 경험이 있다. 그가 연기했던 다른 악한 캐릭터들과 겹쳐 보이는 것도 강렬함을 방해하는 요소다. 그래서인지 이번 4편은 이전 시리즈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카드를 하나 추가했다. 바로 음악감독을 바꾸는 것이다.
이번 <범죄도시4>의 음악감독은 작곡가 윤일상이 맡았다. 윤일상 음악감독은 김무열 배우에게 보이는 선함을 가리기 위해 그가 등장할 때 나오는 테마음악을 좀 더 강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빌런 백창기라는 캐릭터가 등장해 다양한 악행을 벌일 때, 관객은 음악과 상황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좀 더 무섭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음악 감독이 바뀐 영향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필리핀 카지노가 등장하는 장면에선 카지노의 분위기에 맞는 배경음악이 나오고, 액션이 벌어질 땐 좀 더 경쾌한 음악이 등장한다. 특히나 마지막 비행기 격투 장면에선 이 영화의 시그니처 음악이 흐르며, 통쾌함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관객들이 기대하는 건 유머일 것이다. 유머도 적절하게 영화 곳곳에 뿌려져 있는데, 이번 편에서는 장이수가 등장해 유머 파트를 담당한다. 많은 관객들에게 이미 사랑받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가 등장하는 순간 관객들은 좀 더 편안하게 그의 엉뚱한 행동을 기다리며 웃을 준비를 하게 된다. 마석도 형사의 유머도 간간히 등장하지만, 그의 말장난 유머는 생각보다 타율이 높지 않다.
1,2,3편의 종합판
<범죄도시4>는 어쩌면 1편, 2편, 3편의 종합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 시리즈에서 사랑받았던 요소들을 총망라하여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극악한 범죄자들이 마석도 형사의 주먹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통쾌함을 선사한다. 그 모습 자체는 무척 통쾌하고 시원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이야기가 그렇게 촘촘하지 않다 보니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것 같은 기시감을 준다는 것이 큰 문제다. 비슷한 전개 방식에 빌런만 바꿔 끼워 넣은 방식이기 때문에 더 이상 신선함을 주지 않는다.
이 시리즈는 앞으로 8편까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생각보다 적은 제작비를 이용해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마석도 형사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네 편의 영화가 보여준 방식을 그대로 반복한다면,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더라도 관객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만들지 않을까. 마석도 형사는 사실 시리즈 내내 폭력적인 방식으로 깡패나 범죄자들을 단죄해 왔다. 그가 벌인 난장의 뒤처리는 늘 동료 형사의 몫이었다.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한 고민도 담겨야 하지 않을까.
<범죄도시4>는 여전히 적정한 재미를 준다. 기존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던 관객이라면 비슷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관객들은 너무 똑같이 전개되는 이 영화의 느슨한 이야기에 실망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영화에 실망할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시리즈에서는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과 이야기 전개를 조금 더 촘촘히 해서 좀 더 관객들이 몰입하여 따라갈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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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펜서 (2021)
** 본 리뷰는 <스펜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스펜서 (2021)
감독: 파블로 라라인
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샐리 호킨스 등
장르: 드라마
개봉일: 2022.03.16
러닝타임: 111분
다이애나 스펜서의 지옥 같은 성탄절
영국 왕실의 크리스마스 기간을 함께하기 위해 '다이애나 스펜서(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홀로 차를 몰고 왕실 소유의 저택, 샌드링엄 하우스로 향한다. 이곳은 '스펜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국 왕가가 한자리에 모인 그곳엔 화려한 드레스, 방을 가득 채운 크리스마스 선물들, 그리고 수석 셰프 '대런(션 해리스)'가 고급 식재료들로 완성한 만찬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임에도 길을 잃고 지각을 한 다이애나에겐 불안과 스트레스가 가득하다. 저택에 들어선 순간부터 왕실을 모시는 '그레고리 소령(티모시 스폴)'은 왕실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몸무게를 재고, 3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입어야 할 드레스가 정해져 있어 그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미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는 중인 남편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왕실의 모든 수하인들은 허울 뿐인 왕실에 충성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옥죈다. 결국 다이애나의 울분은 인내심의 끝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그녀는 마침내 해방을 좇아 한없이 질주한다.
창살 없는 감옥, 자유를 향한 갈망
<스펜서>는 '다이애나 스펜서'의 비극적인 삶을 모티브로 상상을 가미하여 쓴 허구의 이야기다. '다이애나 스펜서'의 삶이라면 '이 정도의 사건쯤은 벌어질 수 있었겠지'라는 생각으로부터 발현된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보통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지만, <스펜서>는 오로지 왕실의 크리스마스 파티 기간인 단 3일의 시간만을 다룬다. 따라서 사건의 발생이나 줄거리의 기승전결보다는 오로지 '다이애나'의 심리적 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따라서 그 복합적인 심리를 선명하게 표현해야 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도입부에서 영국 왕실을 위한 식재료를 배달하는 차들이 지나가는 길 위에 죽은 꿩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이는 마치 자유를 좇아 영국 왕실을 벗어나는데 성공했지만, 끝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다이애나'를 상징한다. 시작부터 미장센을 통해 극에서 다이애나의 불행과 슬픔이 그려질 것을 예고하며 극의 분위기를 미리 예측할 수 있게끔 만든다. 극중 꿩들은 왕실 사람들의 사냥 연습을 위해 길러지는데, 마치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왕세자비의 역할에만 충실할 것을 요구받는 '다이애나'의 삶과 닮아있다. 영국 왕실은 다이애나에게 창살 없는 감옥과 같았으며 그녀는 사냥용 꿩들처럼 꼼짝없이 갇힌 채 자신의 역할과 자유를 향한 갈망 사이에서 끝없는 감정의 충동을 겪는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인생연기
<스펜서>는 오로지 '크리스틴 스튜어트'에 의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위한 작품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그의 뛰어난 연기력이 빛을 발한 영화다. 실제로 외모적인 싱크로율이 높기도 하지만, 극 중반부터는 배우가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실제 인물에 빙의했다고 보일 정도로 역할에 혼연일체 되어 소름돋는 연기를 펼친다.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해 온갖 신경이 곤두선 예민한 상태, 자신만큼이나 소중한 두 아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우울과 압박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왕실 사람들에 대한 분노 등 복잡한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특히나 주변의 모든 것이 다이애나를 옥죄어 올 때의 폭발하는 처절한 괴로움과 심리적인 압박은 관객에게 감정을 전이시킬 정도다.
특정 사건 전개가 아닌 다이애나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이기에 배우의 연기가 가진 파괴력이 핵심이 되는 작품인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대치를 넘어 몇 배로 훌륭한 연기를 펼친다. 과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 인생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스펜서의 불행을 극대화한 연출
<스펜서>는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작품 중 하나인 <재키>와 많은 면이 닮아 있다. 대칭 구도의 촬영 기법, 뿌연 화면의 질감과 부드러운 색감의 활용, 과거의 시대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그레인 필름, 그리고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던 상류층 여성의 삶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오래된 동화 같은 영상미와 다이애나의 파스텔톤 의상이 가진 러블리한 색감, 왕실의 온갖 화려한 장식들과 음식들은 다이애나의 시커먼 불행과 대비되어 그녀의 외로움과 답답한 심정을 극대화한다. 파티용 드레스를 입은 다이애나의 모습은 누구보다 아름다웠기에 드레스를 입은 채 자해를 시도하고, 화장실 변기를 붙잡으며 구토를 해야만 했던 현실이 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그토록 괴로움을 터뜨리는 그녀 곁에는 지원군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단순히 다이애나와 그의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파티 3일의 시간을 그렸을 뿐이다. 하지만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 마치 30년의 긴 세월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지옥 같은 하루하루는 끔찍하게 길었다. 공포스러운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현악기의 연주, 진주목걸이의 찰랑거리는 소리 등의 청각적 요소가 다이애나의 불안과 공포를 선명하게 대변한다. 매일 같이 이러한 상태를 겪었다고 가정하면, 이혼을 바라고 왕실을 뛰쳐나오는 게 당연한 결과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가 진정으로 바랐던 건
물론 픽션이겠지만, 결말부에 다이애나는 두 아들을 사냥장에서 구출해 차를 타고 맘껏 도로를 달리며 자유를 만끽한다. 수석 셰프가 만든 최고급 음식을 모두 토해낸 그녀가 찾아간 곳은 패스트푸드점 KFC였고, 드라이브 스루 주문을 하며 마침내 자신의 이름 '스펜서'를 당당히 외친다. 극 초반부터 고향집을 향해 마구 달려가고, 허수아비에 걸린 아버지의 낡은 자켓을 가져와 소중히 걸어두는 것을 보면 그는 영국 왕실이 다 앗아갈지도 모르는 자신의 뿌리이자 자신의 자아 그 자체를 지키려 했던 것 같다. 왕실은 자신에게 두 가지 역할을 요구했지만, 결국 그 중 하나인 '다이애나 스펜서'로서의 모습은 사라져만 갔고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에 불행의 늪에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국 왕실의 모두가 그녀의 품행을 비판했을지는 몰라도, 허울 뿐인 전통 속에 사로잡힌 왕가의 그 어떠한 사람들보다 그곳에서 자신을 해방시킨 스펜서의 삶이 가장 고귀하고, 혁명적이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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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펜서(2021)> 리뷰
- 현대 영국 왕실에 관심이 있는 인물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으니, 바로 다이애나 왕세자비다. 그는 귀족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유치원 보모와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다 왕세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랬기에 다이애나에겐 '현대판 신데렐라'라는 수식어가 심심치 않게 따라다녔고, 자연스레 가십의 대상이 되었다. 이 이야기가 아름답게 들리거나, 부러운가? 다이애나는 전 세계가 내연녀의 존재를 아는 왕세자의 부인으로 살았다. 제 마음을 추스르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텐데 그는 봉사를 지속하며 영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았다. 어떠한가, 왕세자가 내연녀를 결국 정리하고 다이애나에게 돌아왔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가? 안타깝지만 20세기 후반의 영국은 낭만으로 가득한 동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공간이었다. 그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 대신,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라는 마지막을 맞이한다.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비운의 왕세자비'라는 별칭까지 획득한 다이애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영감의 원천이 되어 창작물 속에서 영생을 획득했다.*스포일러주의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그렇다면 다이애나를 기억하는 창작물이 그토록 많은데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어째서 <스펜서>를 2020년대에 꺼냈을까. 감독의 전작 중 하나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 케네디를 주인공으로 삼은 <재키(2016)>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그가 다이애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지, 아니 어떻게 복원하고 싶은 지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관객에게 재클린 케네디가 '재키'라는 별칭을 가진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게끔 해준 전적이 있는 이 감독은 영화를 통해 다이애나에게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같은 왕실의 이름 대신 '스펜서'라는 가문의 이름을 돌려준다. 그가 조명하는 시점은 운명의 물살이 급격히 빨라졌던 결혼의 시작, 혹은 결혼의 끝이 아니다. 왕세자와의 별거가 시작되기 1년 전, 1991년의 12월 24일~26일, 단 사흘에 집중하며, 다이애나와 찰스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대신 다이애나가 겪었을 심리적 아픔을 세밀하게 묘사한다(그렇기에 이 영화는 한 개인의 전기적 영화라기보다는, 실제 비극을 기반으로 한 창작 심리극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결코 가볍지 않지만 끝내 다이애나에게 자유를 선물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영화는 원거리에서 출발한다. 밝지 않은 하늘 아래서 군용 수송 차량이 식재료를 옮기고, 요리사들조차 군인과 다를 바 없이 걷는다. 우울한 색감으로 가득 채우기까지 하여 심리적으로 관객과 영화의 차이를 급격하게 벌린 후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화면에 잡힌다. 그는 경호원 없이 홀로 운전하고 길을 잃은 상태다. 지도를 꺼내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샌드링엄 별장에 도착한 후에도 다이애나는 시종일관 지각하고, 지정된 옷을 잘못 입으며, 복도와 정원을 방황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이애나가 향하는/도착한 곳은 미래가 없는, '잘못된' 시공간이므로.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다이애나는 극 중에서 왕실에서의 삶은 '미래 시제'가 없는 삶이며, 과거와 현재엔 시제 상의 차이가 없는 삶이라고 말한다. 과거와 현재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은 곧 현재가 과거에 먹혔다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현재 없는 현재가 빚어내는 마찰은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어린아이들이 춥다고 불평한들 난방을 허락하지 않는 전통은 개선이라는 이름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고집스럽다. 총이 위험하다는 것을, 아이가 총을 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냥을 할 나이가 됐다는 말만 반복하는 찰스 왕세자(잭 파딩)의 교육 방침이나, 정부/내연녀가 있는 남성 왕족의 사생활을 모른 척 견뎌야 하는 귀부인으로서의 삶은 현대와 맞지 않는다.유령 같은 과거/전통에 대한 숭배는 개인에 대한 억압으로 귀결된다. 정해진 옷을 입지 않으면 보고가 올라가고, 휴가 기간 개인이 할 수 있는 활동은 정해진 스케줄 하에서만 허락된다. 크리스마스 담화를 통해 여왕은 영국은 자유주의 국가라고 연설하지만 정작 왕실 내부는 온갖 규율로 가득하다. 외부의 파파라치를 차단했다 한들 작은 속삭임조차 모두가 아는 소문으로 변질되고, 밤늦게 디저트를 먹는 것조차 감시당하는 등 숨 쉴 틈이 주어지지 않는다. 찰스 왕세자는 이러한 일상에 대해 최소한 두 개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명의 인생을 무수한 방향으로 조각내어 거부하고 싶은 시스템조차 몸이 기억하게끔 해야 하는 삶은, 진정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남편을 잃은 슬픔에 40여 년간 검은 상복만을 입었다는 빅토리아 여왕의 방을 사용하는 다이애나는, 커튼을 닫지 않고 옷을 갈아이은 다음 날 모든 커튼이 꿰매져 창 밖을 내다볼 수 없게 된 다이애나는 참을 수 없는 갑갑함을 느낀다. 그러하므로 다이애나에겐 가족과 함께하는 현재 이 순간의 별장보다 썩은 계단의 생가가 더욱 생생하다. 생쥐가 오가고 자칫하면 사고가 날 것만 같은 위험한 공간임에도 그곳엔 삶이, 삶이 존재했었던 흔적이 있으므로.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잘못된 시공간에 도착한 다이애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화 홍보를 위해 사용된 문구인 "다이애나, 당신의 무기는 당신 자신이에요."라는 말은 다이애나가 본 매기(샐리 호킨스)의 환상이 전한 말이다. 기실, 이 말은 다이애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미래 없는 거대한 과거를 상대하기에 한 개인은 너무도 작고 연약하다. 그저 아름답게 외면을 유지하며 인내하기만 하는 것이 과연 한 인간을 샬레 위에 올려두고 찢어발기는 세상에 대해 진정 올바른 대항법일지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의 무기는 당신 자신 뿐이라는 말은 다이애나의 외로운 처지를 부각하기만 한다. 거대한 세상에 편입되었음에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오로지 자신 뿐인, 왕족임에도 자신을 섬기는 드레서 한 명을 자유로이 부를 수 없어 허상에 매달려야만 하는 다이애나의 고립을.과거와 현재가 동일한 공간에 고여 있음으로써 그가 끊임없이 마주하게 되는 앤 불린(에이미 맨슨)의 환영은 마치 다이애나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 같다. 온갖 죄목을 뒤집어쓰고 단두대에서 처형된 헨리 8세의 두 번째 부인. 다이애나는 품위 있게 목숨을 내어놓을 수도 없는 운명이기에 계단 위에서 갈등한다. 그러나 깨닫는다. 그를 둘러싼 시제는 과거일지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은 16세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계단을 내려온다. 그리고 매기에게서 사랑스러운 고백을, 치유의 말을 듣는다. "전하께 필요한 건 사랑이에요."다이애나 스펜서가 도달했어야 하는 시공간은 아마 허상이 존재하지 않는 실재의 세계였을 것이다.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으로 남아야 한다는 의무감 없는 세계. 자신이 개척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자유가 존재하는 장소. 인간이 한 명의 독단자로서 숨 쉴 수 있는 곳. 사랑에 단서를 붙이는 결혼식이 없는, 그런 곳.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두 시간이 끝나갈 즈음, 다이애나는 자신의 옷을 허수아비에게 입히고 이름을 묻는 익명의 직원에게 스펜서라고 답함으로써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 그곳에서조차 다이애나라는 이름을 말할 수 없었던 까닭은 10년 전 왕실에 편입된 이의 아름다움만을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다이애나' 대신 '스펜서'를 입에 담는 다이애나가 안타깝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결혼으로 잃었던 성/가문/시간을 깨웠기 때문일 것이다.그렇다. 우리가 가십으로 소비하는 환상 이면엔 조개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생성한 진주조차 부수고 삼키려는 개인 또한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았던 것은 무엇이며, 복원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파블로 라라인은 영화를 통해 답한다.* 참고: 네이버 캐스트 '다이애나 스펜서',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59014&docId=3567750&categoryId=59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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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선지 위에 그려낸 실험정신
이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참석 및 관람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시험기간 도중에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시사회에 다녀왔다. 종강하고서야 쓰는 리뷰...!
<석양의 무법자>를 제외하면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맡은 영화를 많이 본 적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먼저 영화 시작하기 전에 영화사 진진 관계자분이 나오셔서 간략히 영화와 이벤트 설명해주시고 마지막으로 '오늘 밤 집에 돌아가시는 길에 귓가에 엔니오의 음악이 맴돌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해주신 게 정말 좋았다. 멘트 하고 가신 건데 뭔가 더 세심한 기획 같은 느낌을 받았다ㅎㅎ
앞서 쓴 것처럼 본 영화가 거의 없었고, 스코어나 클래식에 관한 지식도 정말 부족한데다가 시험기간에 바닥난 체력 + 다큐멘터리라는 점 때문에 집중하기 어려울까봐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러닝타임이 실제보다 짧게 느껴질 정도로 좋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먼저 엔니오 모리코네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이 보더라도 영화음악가로서의 엔니오, 그리고 영화음악으로써 마에스트로가 된 그에 대해 많은 걸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영화가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8-90년대의 스코어(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피아니스트의 전설>)들이 나오면서 엔니오의 음악이 할리우드 음악의 전형, 그리고 '영화를 보지 않아도 들어본 적은 있는' 아이코닉함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그가 '스타일'을 만들어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넬이나 디올이 새로운 '핏'을 만든 것처럼, 예술가로서 굉장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영화상으로는 후반부이기도 하고 나에겐 귀에 익은 음악들(그리고 그 당시 영화에 많이 나오는 형식들)이어서 무감해질 수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엔니오가 커리어의 정점에 다다라서 끝내 스타일이란 것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워 보일수록 그 사람이 일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그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예술, 정치적인 철학이나 특별한 대의보다는 자신의 원칙과 작업으로서 음악에 접근하고, 실험할 기회가 있다면 받아들이고 협업하는 과정이 그가 이미 영화 음악의 거장이 되었을 시점까지도 계속해서 드러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자연스레 다큐멘터리 또한 위인의 일대기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일하는 방식과 정체성에 대한 작품처럼 읽힌다. 엔니오가 가진 겸손함도 자연스레 영화에 묻어난다.
영화 초반부부터 편집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편집상을 벌써 하나 받았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잘 모르는 관객이 보더라도 영화음악가로서의 엔니오에 대해 많은 걸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영화로 거듭난 데에는 편집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이건 실제 엔니오의 인터뷰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인터뷰와 오케스트라 영상, 영화의 몽타주가 일정한 순서대로 배치되었고 엔니오가 인터뷰 도중에 흥얼거리면서 곡을 설명하는 장면을 영화 장면과 함께 사용하면서 그의 정체성(영화 음악가)을 강조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지알로부터 세르지오 레오네와의 작업, 8-90년대 할리우드 영화, 타란티노와의 협업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작업량을 매끄럽게 담아냈다는 인상을 받았다. 덧붙여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이러한 성공적인 편집은 적절하게 배치된 인터뷰와 에피소드로 완성되었다. 예컨대 스탠리 큐브릭 특유의 '아니면 말고!' 하는 반응 대문에 엔니오와의 작업이 불발된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는 관객인 내가 더 아쉬워질 지경이었다.
다만 영화의 극후반에 다다라서는 조금 더 깔끔하게 마무리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엔니오 모리코네에 대한 평가를 나열하는 식으로 여러 영화 및 음악인들의 인터뷰를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막을 내린다. 물론 엔니오를 기리고 훌륭한 예술가에 대한 찬사를 보내려는 것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앞부분에서 관객 스스로가 그의 예술적 성과를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고도 친절한 편집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칭찬 세례를 마지막에 전부 배치한 것이 영화의 막바지를 약간 느릿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실제 영화 푸티지를 극장에서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점, 개인적으로는 거장 예술가를 새로 알게 해준 친절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영화라는 점이 정말 만족스러웠던 시간이었다. 개봉하면 다시 극장을 찾아 관람하게 될 것 같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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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하는 아버지를 향한 집요한 물음
6★/10★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김창열 화백은 1971년부터 50여 년간 물방울만 그렸다. 한두 번이면 “구도”지만, 50년이면 “계획”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로 하여금 단 하나의 대상만 그리게 만들었을까?
다큐멘터리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김창열 화백이 물방울이라는 대상에 도달한 과정을 담았다. 화자는 아들이다. 아들은 늘 과묵한 아버지의 내면이 궁금했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추억, 일화뿐 아니라 그의 그림과 사회 활동을 고루 재료 삼아 그 중심에 가 닿고자 한다.
영화에 담긴 김창열 화백은 늘 느리게 움직이며 대부분 침묵한 상태다. ‘추상적이면서도 내밀하다’는 이유로 노자의 《도덕경》을 늘 가까이하고 깨달음을 향한 집요함을 보인 달마대사의 다소 섬뜩한 일화를 자주 인용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신비롭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는 김창열 화백이 관(官)이 기획한 행사, 즉 명예와 관련된 일을 거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도 보인다. 한 인터뷰에서 브리지트 부이오 감독과 영화를 공동 연출한 아들 김오안 감독은 아버지가 이 영화를 보지 못한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가 아버지를 안전한 공간에 모셔두고 성역화하는 대신, 설령 불경스럽더라도 아버지의 침묵을 해석하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했다는 소리다.
그리하여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도달한다. 북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던 김창열 화백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쓴 후 고향을 떠나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뉴욕으로 건너갔으나 팝아트와 소비문화가 만연한 거대 도시는 그에게 지독한 피곤함만 남겼다. 또 한 번의 이동. 그가 새로이 정착한 파리에서 김창열 화백은 마침내 물방울을 만났다.
김창열 화백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꽃, 여자의 나체, 풍경”을 그렸을 시대에 태어났으나 바로 눈앞에서 누군가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그는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가 ‘소명’ 때문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살아남았다는 '우연'을 '필연'으로 전환하기 위해 물방울에 천착한 것이다. 즉 그에게 물방울은 치유와 화해, 초탈을 위한 수단이자 과정 그리고 목적이었다. 김창열 화백이 작업한 수많은 물방울 그림에는 그가 오랜 시간 물방울을 그리며 품은 생각과 감정이 담겨 있다. 하나하나의 물방울에 이름과 설명을 덧붙이는 아들의 내레이션은 아들이 끝내 아버지의 침묵을 해석했음을, 마침내 아버지를 이해했음을 의미한다.
아버지의 남다른 침묵을 이해하기 위해 5년여의 시간 동안 영화를 만든 김오안 감독에게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품는 태도를 배운다. 한 사람은, 그가 품은 세계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좇을 만큼 거대하기도, 물방울 하나에 응축될 만큼 단순하기도 하다.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에는 조화롭게 공존하는 두 모순이 담겼다.
*김창열 화백은 2021년에 세상을 떠났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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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의 첫 아시안 영화, 샹치가 걱정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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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2021. 04. 21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
00:00 샹치 예고편 공개
00:43 익숙한 그림과 냄새들
02:24 다양한 성공&실패 예시들
04:18 기대와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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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그레이 맨> 공식 예고편
라이언 고슬링이 그레이 맨으로, 크리스 에반스가 사이코패스 기질의 적수로 출연하는 <그레이 맨> 넷플릭스 제작의 스릴러 영화로 앤서니 루소와 조루소가 연출을 맡았다. 7월 22일,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공개 예정. 그 외에도 아나 데 아르마스, 레게장 페이지, 다누시, 바그네르 모라, 알프리 우다드가 출연한다. 마크 그리니의 소설 <그레이맨>을 원작으로 하며, 조 루소와 크리스토퍼 마커스, 스티븐 맥필리가 각본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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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우리 함께 아웃백으로!> 공식 티저 예고편
깜찍한 줄만 알았더니 댄스도 죽여준다! 호주 야생동물 공원을 탈출한 치명적인 매력의 동물들. '프리티 보이'라는 유명 코알라와 함께 친구들이 아웃백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추격전이 시작된다! 아일라 피셔, 팀 민친, 에릭 바나, 가이 피어스, 미란다 탭슬, 앵거스 임리, 키스 어번, 아이슬린 데르베스, 재키 위버가 출연하는 가족 코미디 신작. 댄스 본능을 발휘할 준비는 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