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1-26 13:19:47
콘스탄틴이 되고 싶었던 동은이
영화 [검은 수녀들] 리뷰
이 글은 영화 [검은 수녀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 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경고했다.
예전에 영화 파묘에 대해 리뷰를 썼다가 악플(?)에 시달린 적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개소리 중 하나는 살다 살다 오컬트 장르를 분석하는 인간을 다 본다.라는 뉘앙스를 담은 욕이었다.(보통 그런 사람은 브런치 계정만 있지 글이 없는 경우가 99.9%라서 그런 악플은 남겨둘 가치도 없어서 그냥 지움) 물론 그 말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 그러면서 하도 욕이 하찮아서 웃기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 오컬트 영화를 리뷰하는 날엔 그 사람이 반드시 내 리뷰를 보고 아 오컬트에 이런 매력이 있구나. 혹은 아 모든 장르마다 공식이 있다더니 오컬트도 예외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반드시 좋은 영화여야만 했다. 덜컥 상이라도 하나 받게 되는 영화라면 어쨌거나 작품성 면에서는 무시는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알량한 생각도 있었다. 대중적이라면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몰랐다. 천만명이 봤다고 반드시 괜찮은 영화는 아닐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다면 그래도 그 악플러에겐 대중적이라는 말로 밀어붙이기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나 그 ”다음 리뷰“가 하필 이 영화일 거라고는 나조차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순수하게(?) 영화에 대한 투덜거림만 늘어놓을 수 있게 되어 버렸다. 이쯤 되면 누가 악플러인지 나조차도 구분을 못 할 지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이 영화가 글러먹은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애초에 잘못된 것은 의도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감독은 10년 전 영화인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따르는 스핀오프 작품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누군가가 구마자가 되고 그런 사람을 퇴마 하는 신도들이라는 이야기의 구조는 [엑소시스트] 때부터 고유하게 내려온 오컬트 장르의 특성일 뿐. 세계관을 따른다는 말은 과하다 못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아마도 영화의 말미에 최부제(강동원)가 등장하기 때문에 검은 사제들과 연결되어 있다, 혹은 앞으로 그가 미카엘라(전여빈)와 함께 다음 편에서 고스트 버스터(?)를 할 거라는 예상을 하게 해서 스핀오프라는 말을 붙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모든 시도들은 뻔뻔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다.
또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반대인 등장인물들의 성별도 나를 화나게 한다. PC적인 의도는 아니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여성 서사 어쩌고를 언급하려는 의도도 아니었어야 할 것이다. 반드시 “표절”을 피하려는 의도였어야만 그래도 화가 덜 날 것이기 때문이다.
첫 등장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유니아(송혜교)를 본 순간 깨달았다. 감독은 이 캐릭터의 설정을 앞 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영화 [콘스탄틴]에서 따왔다는 것을. 이 한 장면으로 감독은 매우 많은 면을 설명하려 했을 것이고. 또한 매우 많은 시간을 절약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얄팍한 의도를 숨기려면 표절을 피하기 위해 성별을 남자가 아닌 여자 캐릭터로 반드시 바꾸어야 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매우 대차게 실패해 버렸다.
송혜교라는 배우가 전작인 글로리를 통해서 어느 정도 연기력을 인정받았음에는 이견이 없지만. 감독이 원했던 비딱하면서 종교와 교리, 그리고 이단의 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역할에는 완벽하게 스며들 만큼의 내공은 아직 없었다. 특히 욕설을 내뱉는 연기는 마치 영화 [아수라]에서 세상 어색하게 욕을 하던 정우성이 생각날 만큼 너무도 경건하고 타격이 하나도 없어서. 저걸 진짜 오케이를 준 컷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캐릭터 기용에 있어서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영화 자체를 통틀어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담당하고 있는 인물은 허준호 배우이다. 성직자의 몸에 깃든 악령이라니!! 그러나 영화는 구마자가 된 이후의 허준호를 그 어떤 설명이나 쓰임 없이 아주 간단하게 서사에서 아웃시켜버린다. 더 어이없는 것은 이진욱의 출연이다. 그다지 역할이 크지도 않고. 이성적인 역할, 혹은 여주인공들에게 반대하는 역할로서의 설득도 크게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의 장면까지도 야무지게 출연을 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구마(퇴마)라는 것을 진행하고 실행하기 위해 일어나는 수많은 반대들과 위험성에 대해 말하려 하는 의도는 알겠지만. 문제는 이 모든 캐릭터들을 데리고 그 어떤 설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와리가리만 하다 시간만 채우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초반부뿐만 아니라 후반부로 치닫는 이 모든 시간들에서 위험성은커녕 지금 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구마를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오컬트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도 있는 구마 의식 자체에 대한 문제가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영화가 나를 가장 화나게 한 부분도 그 부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두 주인공이 가진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합리적(이어야만 한다 진짜)인 의심을 할 수 밖엔 없지만. 타로카드 세 장 믿고 진행하는 템빨 크로스오버 굿판이라니. 그것도 수녀가.
진정한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하지만 이런 방법은 피했어야만 한다. 차라리 구마 의식 자체에 대해 반감이 있었던 미카엘라에 대해 좀 더 많이 설명했더라면 이런 이질감은 많이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시도와 의도들이 어긋나서 보는 내내 불쾌함을 감출 수 없는 영화였다.
[마치면서]
보통 좋은 영화든 안 좋은 영화든.
영화라는 것을 보고 나면 나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줄이고 또 줄여서 리뷰를 쓰는 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영화는 쓸 말조차 없어서 한참이고 빈 페이지를 띄운 채 다리를 달달 떨며 문장을 잡아내야 했다. 한동안은 오컬트 영화에 첫 출연하는 주연배우들의 덕을 보긴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다지 유쾌한 결과로 기억되지는 않을 영화라는 예상을 해본다.
[이 글의 TMI]
1.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표를 못 구해 강제로 연휴를 서울에서 보내게 된 1인
2. 그릭요거트 이제 지겹다. 아침으로 뭐 먹지.
3. 백오십 년 만에 우동 먹었는데 정제 탄수 최고!!!
4. 장갑 잃어버림
#영화리뷰 #검은수녀들 #오컬트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송혜교 #전여빈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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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제31회 부일영화상 수상작 정리!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바로 어제였던 10월 6일, 현존하는 국내 영화상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부일영화상이 부산에서 열렸는데요.
과연 어떤 작품들이 수상을 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우수작품상 - <헤어질 결심>
ⓒ 네이버 영화
제31회 부일영화상에서는 <헤어질 결심>이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국내 개봉 전부터 박해일 배우와 탕웨이 배우의 만남으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으며,
개봉 이후에도 많은 이들을 N차 관람하게 만드는 매력으로 누적관객수 180만 명을 돌파한 작품입니다.
국제영화제 중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최우수감독상 - 김한민(한산: 용의 출현)
ⓒ 네이버 영화
올해 최우수감독상은 <한산: 용의 출현>의 김한민 감독이 수상하였습니다. <명량> 이후 8년 만에
<한산: 용의 출현>으로 돌아와 전작보다 담백하고 더욱더 박진감이 넘치는 극적인 연출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코로나를 겪고 부일영화상과 부산국제영화제가 다시 살아난 이 장소 이 시기에 상을 받게 돼서 영광스럽게 생각
한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남우주연상 - 박해일 (헤어질 결심)
ⓒ 네이버 영화
올해 남우주연상은 <헤어질 결심>의 박해일 배우가 수상하였습니다. 박해일 배우는 <헤어질 결심>에서
예의 바르고 청결한 '해준' 역을 맡아, 단단한 내공과 세밀한 연기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냈습니다.
박해일 배우는 이번이 부일영화상에서 첫 수상이었으며, "부일영화상은 배우로서 첫 수상이다. 감사하다"라며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여우주연상 - 탕웨이 (헤어질 결심)
ⓒ 네이버 영화
올해 여우주연상은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 배우가 수상하였습니다. 탕웨이 배우는 <헤어질 결심>에서
변사 사건 사망자의 아내 '서래' 역으로 비밀스럽고 매 순간 궁금증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탕웨이 배우는 "이번 영화에 참여하게 해주신 박찬욱 감독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대본을 써주신 정서경 작가님에게도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남우조연상 - 임시완 (비상선언)
ⓒ 네이버 영화
올해 남우조연상은 <비상선언>의 임시완 배우가 수상을 했는데요. <비상선언>에서
그동안 보여준 적 없는 새로운 캐릭터로 임팩트를 주며,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임시완 배우는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여우조연상 - 이수경 (기적)
ⓒ 네이버 영화
올해 여우조연상은 <기적>의 이수경 배우가 수상을 했습니다. 츤데레 누나 '보경' 역을 맡았으며,
극의 전개를 반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수경 배우는 "보경이라는 예쁜 캐릭터 만드시고
맡겨주신 이장훈 감독님께 최고로 감사한다"는 말과 함께 "제 인생에 기적이라는 영화가 한 줄 적히게 되어
너무 영광이고 행복하다.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남자인기스타상 - 변요한 (한산: 용의 출현)
ⓒ 네이버 영화
올해 남자인기스타상은 <한산: 용의 출현>의 변요한 배우가 수상을 했습니다. 변요한 배우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강렬한 캐릭터였던 왜군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을 맡으며, 묵직한 장군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해냈습니다.
변요한 배우는 김한민 감독과 더불어 출연한 배우들을 언급하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여자인기스타상 - 이지은 (브로커)
ⓒ 네이버 영화
올해 여자인기스타상은 <브로커>의 이지은 배우가 수상했습니다.
<브로커>에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소영'역을 맡으며,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던 이지은 배우는
"첫 장편 데뷔작으로 <브로커>에 참가하면서 존경하는 감독님, 선배님, 스태프와 좋은 추억, 배움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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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 보여주기, 더 보여주기. 실화의 <노웨어 스페셜>
***스포일러 없습니다.
전작 <스틸 라이프>로 베니스 영화제 4관왕에 오른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새로운 작품 <노웨어 스페셜>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사실상 첫 데뷔작인 다니엘 라몬트와 차기 제임스 본드의 유력 후보로 화제를 모으며 <작은 아씨들>, <미스터 존스>에서 이미 연기력을 입증한 제임스 노튼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만큼 많은 매력 요소들을 가진 이 영화를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관전 포인트를 몇 가지 나눠보고싶다.우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시작은 신문이었다. 신문을 보던 감독 우베르토 파솔리가 한 아버지가 불치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의 어린 아들과 함께할 새로운 가족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보고 영감을 받아 영화제작으로 이어진 것이다.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는 침착한 성격의 창문청소부 ‘존’과 그와 닮은듯한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은 과연 새로운 가족을 찾을 수 있을까. 새로운 가족을 찾는다는 것엔 어떤 부모를 만날 것인가, 가족의 형태는 어떠해야하는가, 입양이라는 문제까지 확장시켜 질문을 던진다.
매번 각기 다른 형태의 창문을 닦는 존의 시야에는 창문 너머의 세상과 창문에 비춰지는 세상이 담긴다. 때로는 푸른 하늘 가운데 몽실한 구름, 창문 너머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람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평범함조차 존에게는 투명한 벽과 같이 닿을 수 없는 존재로 느껴진다.
네 살짜리 아이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존의 모습에는 단순한 가르침 이상의 감정들이 담겨있다. 많은 대사들로 감정을 표현하고 관객들의 감정을 흔들어 놓는 영화가 아니다. 죽음을 앞둔 부자의 침묵 속에 이들의 진정성은 깊어진다. 영화는 죽음으로 시작을 하여 아들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것부터 시작해 새로운 관계맺음과 부자 간의 관계의 작은 감정선까지 섬세하게 풀어낸다.죽음으로 시작해 부자 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노웨어 스페셜>은 오는 12월 29일에 개봉한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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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속에서 끝없는 노래로 재생되는 순간들
화양연화: 인생에서 꽃과 같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이 영화를 본지 몇 달이나 지나 벌써 2023년 2월이 되었지만 다시 글을 쓸 생각을 못 하고 있다가, 이대로 살면 큰일날 것 같아서 글쓰기를 포함해 놓고 살던 것들을 다시 잡기로 했다. 이터널 선샤인 이후에 굉장히 다른 느낌의 사랑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이터널 선샤인을 볼 때는 화창한 겨울 눈밭같은 느낌을 받았고 이 영화를 볼 때는 내내 장마 속에서 양말까지 젖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실제 영화 속 장면들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신문사 기자로 일하고 있는 주모운 부부와 비서로 일하고 있는 소려진 부부는 같은 날 같은 건물의 옆 방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저녁 시간마다 반복되는 배우자들의 부재로 인해 둘은 불륜의 낌새를 느끼고, 심지어 서로의 배우자들끼리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동병상련을 느낀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게 되고, 저녁 시간에 점점 더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시장에서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마저 소중해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 집주인 손 부인은 소려진의 잦은 저녁 외출에 대해 경고하고, 둘은 자주 만나지 못해 오히려 마음이 깊어지는 상태에 이른다. 박수 받을 수 없는 사랑을 끝내기 위해 주모운은 싱가포르로 떠날 결심을 하고, 둘은 마지막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헤어지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 소려진은 주모운을 찾아가고 주모운은 소려진을 찾아가지면 결국 둘은 마주치지 못한다. 주모운이 앙코르와트의 수많은 구멍 중 하나에 무언가 속삭인 뒤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를 보고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것은 주모운과 소려진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다. 해당 장면들에는 대사가 하나도 없고 똑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며 장면이 느리게 재생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사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해당 효과가 너무 자주 사용되는 느낌을 받아서 살짝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현재까지 남은 알 수 없는 여운의 힘은 해당 장면들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가 말 한마디 없이 눈인사를 하고 지나갔던 그 짧은 순간들은, 주모운과 소려진의 머리 속에서 평생 그 음악과 함께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되고 있을 것이다. 그 기억들은 몇 월 몇 일 몇 시로 기억되지도 않고, 어느 시장의 어느 골목이었는지로 기억되지도 않지만, 마주침의 순간마다 심장이 연주했던 하나의 노래로 뭉쳐져 아스라이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머리 속에 맴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감독이 "나 이거 찍으려고 영화 만든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강조 되었고, 그만큼 내 머리 속에도 남았다.
마지막 장면을 보았을 때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처음 각자 배우자의 불륜을 알게 된 뒤 분노했지만 결국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어버린 두 사람처럼, 이 세상에는 그렇게 완성되지 못한 수많은 감정들이 마치 앙코르와트의 구멍 개수만큼 존재한다는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분노했던 대상의 감정을 그대로 느껴버린 그들을 비난하거나 조소할 수는 있겠지만 이 영화를 끝까지 본 우리는 그들이 절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불륜 영화이지만 불륜이라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점, 결국 서로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마음 속에 남았다는 점에서 헤어질 결심을 한국의 화양연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나는 둘 다 너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기에 위의 시각도 재밌다고 생각한다.
둘의 사랑이 쓸쓸하게 끝나며 영화도 끝이 나지만, 주모운과 소려진은 다른 어딘가에서 더 아름답고 찬란한 사랑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시기가 화양연화일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우리의 기억, 특히나 이루지 못한 애틋한 것에 대한 기억은 더욱 아름답게 포장되는 것 같다. 이루었으면 금방 식어버렸을 수도 있는 둘의 사랑이지만, 이루지 못했기에 오히려 가장 뜨거웠던 순간으로 마음 속에 남아 화양연화가 되었다. 다만 이렇게 미화된 기억은 현실의 장면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덧칠해 미술관에 걸어 둔 일종의 작품으로 분류해야 맞을 것이고, 따라서 현실을 사는 우리는 과거의 미술관에 매몰되지는 말아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화양연화는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이 나는가. 또 인생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기억이 몇 개나 생길 수 있을까.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모두 소중한 기억들이며 저마다의 노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머리 속에서 이따금 노래로서 끝없이 재생되는 그 순간. 그 순간이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 인생의 화양연화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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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뱀파이어 영화 <씨너스: 죄인들>이 지난주에 이어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난 주말 동안 오프닝 4,800만 달러 대비 고작 6% 하락한 수치인 약 4,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안정적인 흥행세를 기대케 하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2위는 개봉 20주년을 맞아 극장가를 다시 찾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가 차지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누적 수익 약 2,5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스타워즈 팬덤의 건재함을 증명했습니다.
3위에는 벤 애플렉 주연의 액션 영화 <어카운턴트2>가 안착하며,
1편의 오프닝 스코어를 소폭 넘어선 약 2,45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역시 왕좌의 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유해진, 강하늘, 박해준 등 유수의 배우들이 등장하는 한국 영화 <야당>이 개봉 2주 차에도 1위에 올랐습니다.
누적 관객 수 160만 명을 넘긴 <야당>이 마동석 주연의 오컬트 액션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마블의 새로운 히어로 영화 <썬더볼츠*> 등 대형 영화들이 대거 개봉하는 5월 1주 차에도 1위를 지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2위는 누적 관객 수 30만 명의 <마인크래프트 무비>가 차지했으나,
북미 관객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았던 것과 비교해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3위에는 누적 관객 수 200만 명 돌파에 성공한 <승부>가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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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리지 않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다, 영화 <코다>
지인의 적극적인 추천을 본 영화 <코다>. 라라랜드 감독 작품이라고 해서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솔직히 영화 <라라랜드>는 그렇게까지 나에게 엄청난 인상을 준 작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코다>는 내 기준으로 영화 <라라랜드>보다 훨씬 잘 만든 작품이었다.
영화 <코다> 시놉시스음악의 마법에 빠질 시간!
가장 조용한 세상에서 시작된 여름의 노래!
24/7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 루비는 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간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기쁨과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다. 합창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일스와의 듀엣 콘서트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까지 얻지만 자신 없이는 어려움을 겪게 될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루비는 망설인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코다>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코다의 의미를 알다사실 코다의 의미를 몰랐다. Children Of Deaf Audlt.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들을 이르는 말이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코다가 뭘까? 주인공 이름이 코다인가? 아닌데,,, 하며 세상 무지함을 뽐내며 영화를 봤다. 주변에 청각장애인이 없어서 그들의 삶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 청각장애인의 삶과 그들을 부모로 둔 비장애인의 삶이 어떠한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게 되어서 정말 좋았다.
특히, 나는 비장애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비장애인인 루비에게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루비에게 너는 우리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부담을 주는 엄마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고, 어떻게 자식에게 저렇게 부담을 안길까 솔직히 불편했는데 영화 후반부에서 청각장애인의 입장에서 그리고 엄마의 입장에서 비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잘 표현해주고 있어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조화와 공존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나름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전해주고 있어서 좋았다.
음향연출이 너무 좋았던 순간
사실 청각장애와 음악영화 이 모순적인 조합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의아스러웠다. 음악의 지배적인 감각이 바로 청각이기 때문인다. 물론 음악을 소화하는 이는 비장애인인 루비이긴 햇지만 그 소재를 청각장애인 가족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 요소 때문에 그리고 오히려 청각을 활용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감동이 몰려왔다. 바로 루비의 합창 발표회에서 듀엣으로 부르는 노래를 연출한 장면이었다.
초반부 노래를 들려주다 어느 순간 정적이 찾아온다. 관객 역시 청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상태로 그저 행복하게 공연하는 루비와 그런 루비의 목소리에 감동한 듯 쳐다보는 관객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잠깐이나마 모든 이가 듣지만 나는 들을 수 없는 상황이 마련되면서 음악영화지만 멜로디 하나 없이 감동을 줄 수 있는 연출을 한 그 짧은 순간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영화 <코다>의 주제는 자립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였다. 사실 비장애인인 루비가 태어나기 전까지 엄마와 아빠, 오빠는 청각장애인이었지만 나름대로 세상에서 자신의 일을 하며 잘 살아왔다. 하지만 비장애인인 루비가 태어나면서 세상과 더 활발한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며 루비에 대한 의존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루비 역시 가족에게 얽메이면서 스스로도 가족없이는 결정을 내려본적이 없는 양쪽 다 서로에게 의존적으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루비가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대학이라는 꿈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그간 가족간에서 의존해왔던 자신의 모습과 가족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글렇게 영화 속에서는 의존적이었던 가족간의 관계에서 ‘의지’를 할 수 있는 관계로 점차 변화한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청각장애인인 가족들이 그동안 겉돌다 어떻게 사람들과 화합하기 시작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그려주고 있지는 않다. 다만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수화를 배우게 하고 먼저 다가가는 등의 노력을 했다 정보만 보여줄 뿐이다. 혹자는 그 과정을 너무 아름답게 편집했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장애인인 자신들끼리만 있기보다 세상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함으로써 의존적이지 않고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한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영화 <코다>는 음악영화답게 감미로운 노래들과 드라마,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조화, 마지막으로 존재의 자립이라는 주제까지 적절하게 버무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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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타니안>믿음과 신념으로 지켜내는 정의
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는 프로 보노(pro bono,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는 개인 혹은 단체에 대해 보수를 받지 않고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활동의 일환으로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모리타니아 출신 '슬라히(타하르 라힘)'의 변호를 맡는다.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라는 혐의를 받은 그는 기소와 재판 없이 6년 간 관타나모에서 수감생활을 이어 왔다. 그를 접견한 후 그의 무죄를 주장하기로 결정한 낸시는 동료 '테리(쉐일린 우들리)'와 그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아 나서지만, 진실을 가로막은 국가 기밀이라는 벽을 넘어서지 못한다. 한편 그의 유죄를 확신하던 군 검찰관 ‘코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 중령은 재판 준비를 하면 할수록 아무리 봐도 부족한 증거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쿠바에 위치한 관타나모 수용소는 알 카에다와 탈레반과 같은 테러리스트는 물론 단지 테러와 연관되어 있다는 '혐의'를 받은 민간인들까지 납치, 감금한 후 고문을 행한 것으로 악명 높다.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을 자랑으로 삼는 미국의 수치이기도 하다. 이 장소가 논란이 된 근본적인 이유는 변호인 선임권, 묵비권, 재판받을 권리 및 신체 자유와 같은 개인권의 말살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에서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믿어졌던 원칙이 복수심과 원한 앞에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흑역사인 것이다. 이곳에 무고하게 갇힌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모리타니안>은 이 흑역사를 두 가지 관점에서 날카롭게 들여다본다.
영화는 크게 두 개의 플롯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하나는 살라히의 과거와 낸시, 코우치 중령의 현재를 연결시키며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 상황에서 정의가 바로 서는 과정을 조명한다. 다른 하나는 낸시와 코우치 중령이 펼치는 법정 공방을 각각 공적 맥락과 사적 맥락에서 비추며 정의의 양면성을 논한다.
이때 전자는 한 개인의 세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로 그들의 종교성을 선택한다. 살라히는 신에게 모든 것을 위탁한다. 유일하게 마음 편히 말을 섞을 수 있었던 옆방 수감자가 죽자 서아프리카의 독실한 이슬람 국가 모리타니아에서 온 슬라히는 신에게 매달린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정당한 삶을 달라고, 관타나모에서 억울하게 죽은 수감자들에게 평화를 달라고 기도한다. 반면에 낸시는 철저히 변호사의 윤리와 원칙에 스스로를 의탁한다. 그녀는 살라히가 고문으로 인해 허위 자백서를 작성한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며 변호를 포기한 동료 테리와 달리, 그녀는 자신이 믿는 원칙과 신념을 다시 한번 붙잡는다. 낸시는 모든 사람에게 사법 정의는 적용되어야 한다면서 다시 한번 슬라히를 접견하고 그에게 진실을 말할, 정의를 바로잡을 기회를 준다.
코우치 중령은 두 사람의 사이에 위치해 있다. 달리 말해 살라히의 신에 대한 믿음과 낸시의 사법 정신에 대한 신념의 접점이다. 그는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의 남쪽 타워를 들이받은 비행기에 타고 있던 친구를 잃었다. 그래서 그는 살라히를 기소해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관타나모의 실상을 깨달은 후 깊은 고뇌에 빠진다. 그러던 그는 끝내 교회를 찾은 후에 마음을 정한다. 정의를 추구하고, 무고한 이들을 도우라는 신의 말씀에 응답한다. 그는 법조인으로서, 동시에 개신교인으로서 슬라히를 기소할 수 없다고 결단을 내린 뒤, 군복을 벗는다. 이렇게 개인의 믿음과 신념은 비록 그 대상과 방식은 다를지언정 정의를 바로잡는 초석이 된다.
이처럼 개인의 종교적 믿음과 신념을 전면에 내세운 스토리텔링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에 감정적인 면을 북돋아 준다. 특히 신에게 호소하는 슬라히, 미국의 법과 헌법을 굳게 믿는 낸시, 신의 가르침과 헌법 정신의 공통점을 실천하기로 결심한 코치 중령의 모습이 한 데 응축된 것이나 다름없는 후반부의 법정 장면이 백미다. 8년 만에 서게 된 재판장에서 살라히는 그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의 일은 큰 충격이었지만 미국이 저지른 범죄를 자신이 용서했기에 자신은 자유라고 주장한다. 신의 가르침대로 아랍어로 자유와 용서는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또 법정과 판사의 결정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미국의 법정은 공포와 두려움이 아닌 법의 정의를 실현할 것이기 때문에, 법정에서의 선고는 그에게 신의 뜻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살라히가 무고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근본적인 원인을 고찰할 기회도 준다는 점에서 더욱 호소력이 짙다고 볼 수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를 탄생시킨 테러와의 전쟁 및 미국과 중동 지역의 외교적 분쟁은 역사적, 정치외교적 뇌관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폭탄임이 분명하다. 영국의 식민통치, 유대인의 이주, 4번의 중동전쟁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테러단체의 활동,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미국의 대외 정책과 그로 인한 반미 감정이 한 데 어우러진 결과다. 이러한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는 흔히 이슬람교와 기독교라는 두 세계 종교의 충돌이라는 피상적인 그림 밑에 숨어있었다. 그러나 두 종교의 신이 알려준 가르침과 미국 법정의 정신이 다르지 않다는 <모리타니안>의 메시지는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이 종교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두꺼운 물감에 가려진 밑그림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한편 영화의 두 플롯 중 나머지 하나는 낸시와 코우치 중령을 대조시키며 신에 대한 믿음, 그에 못지않은 법에 대한 신념을 의심하고 필요한 경우 과감히 꺾을 줄 아는 용기를 이야기한다. 낸시는 철저히 공적인 가치와 원칙에 입각해서 재판을 준비한다. 애초에 슬라히의 재판을 맡기로 한 것도 프로보노 활동의 일환이었던 만큼, 그녀에게 이 사건은 단지 무너진 법치주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에 불과했다. 그래서 낸시는 어머니에게 전화해달라는 슬라히의 요청을 연민과 동정심을 자아내려는 피고인의 전략으로 취급할 정도로 슬라히에게 인간적이고 사적인 교류를 일절 하지 않는다.
반면에 코우치 중령에게 슬라히 사건은 일, 업무, 국가적 차원의 사건이기 이전에 개인적인 복수를 위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이번 사건은 무죄 추정의 원칙과는 별개로 절대 틀릴 수 없는 사건이다. 실제로 슬라히의 재판에 투입된 직후 그는 가장 먼저 죽은 친구의 아내를 찾아가 범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낸시와 코우치가 관타나모 수용소 휴게소에서 만난 장면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코우치 중령은 그녀가 미국의 적을 옹호한다고 비꼬며 이길 수 없는 재판을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에 낸시는 자신이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변호사라고 비난받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슬라히는 아직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면서 미국의 사법 제도가 허점이 존재했다면 어떡할 것인가라고 되묻는다.
이처럼 사적인 분노와 적개심과 공적 가치에 입각한 질문과 대답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사건에 인위적이면서도 강력한 서스펜스를 부여한다. 동시에 상당히 인상적인 연출을 통해 그들의 신념과 원칙을 한 번에 무너뜨리면서 그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도 한다. 작중 과거와 현재 장면은 각각 1.33:1과 2.35:1의 다른 화면비율로 표현되는데, 두 주인공이 관타나모의 진상을 알게 되는 상황에서는 두 화면이 겹쳐져서 나타나며 그들이 받은 충격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이는 둘이 슬라히의 사건을 대하는 자세가 180도로 달라지는 것에 대해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제 낸시는 살라히가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온갖 수모와 고통을 한 인간으로서 보듬어주려고 하고, 반대로 코우치 중령은 모든 개인적인 원한을 뒤로한 채 공적인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이렇게 <모리타니안>은 상황에 따라 추구하는 정의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꺾을 때 비로소 정의가 실현되는 아이러니를 두 사람의 대비를 통해 제시하며 인권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다만 사건의 진상과 해결 과정에 이르기까지 모범생처럼 훑고 지나가는 정공법을 취해서인지 영화는 간과하기 어려운 결정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 안에서 어떠한 일들이 자행되었는지가 세상에 알려진 지도 오래된 상황에서 과연 잔혹한 고문 기법을 그리 세세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영화는 물고문과 성고문을 비롯해 시청각을 괴롭혀 잠을 못 자게 하고, 슬라히의 어머니를 납치한 후 강간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말로만 들어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만한 고문을 연달아 보여준다.
이는 고문 장면이 그렇게까지 세세하지 않아도 진상을 깨달은 낸시와 코우치 중령의 충격, 슬라히가 겪어온 고통을 충분히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연출로 보인다. 슬라히를 둘러싼 법정 공방의 이야기가 잊힐 정도로 분량이나 비중 배분에 있어서도 아쉬움을 남기며, 상당히 긴 시간 동안 해당 장면이 지속되다 보니 피로감이 누적되어 그 충격이 갈수록 약해지는 역효과도 낳는다. 그 결과 <모리타니안>은 배우들의 연기, 작품의 메시지, 연출과 편집 등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진 강렬한 임팩트를 스스로 깎아내리며,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작품, 영국 작품, 각색, 남우주연, 촬영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 아쉬운 완성도로 관객을 마주한다.
A(Acceptable, 무난함)
때때로 불편하지만 성공적으로 진중하게 재현된 인권 탄압과 정의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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