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1-26 13:19:47
콘스탄틴이 되고 싶었던 동은이
영화 [검은 수녀들] 리뷰
이 글은 영화 [검은 수녀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 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경고했다.
예전에 영화 파묘에 대해 리뷰를 썼다가 악플(?)에 시달린 적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개소리 중 하나는 살다 살다 오컬트 장르를 분석하는 인간을 다 본다.라는 뉘앙스를 담은 욕이었다.(보통 그런 사람은 브런치 계정만 있지 글이 없는 경우가 99.9%라서 그런 악플은 남겨둘 가치도 없어서 그냥 지움) 물론 그 말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 그러면서 하도 욕이 하찮아서 웃기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 오컬트 영화를 리뷰하는 날엔 그 사람이 반드시 내 리뷰를 보고 아 오컬트에 이런 매력이 있구나. 혹은 아 모든 장르마다 공식이 있다더니 오컬트도 예외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반드시 좋은 영화여야만 했다. 덜컥 상이라도 하나 받게 되는 영화라면 어쨌거나 작품성 면에서는 무시는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알량한 생각도 있었다. 대중적이라면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몰랐다. 천만명이 봤다고 반드시 괜찮은 영화는 아닐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다면 그래도 그 악플러에겐 대중적이라는 말로 밀어붙이기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나 그 ”다음 리뷰“가 하필 이 영화일 거라고는 나조차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순수하게(?) 영화에 대한 투덜거림만 늘어놓을 수 있게 되어 버렸다. 이쯤 되면 누가 악플러인지 나조차도 구분을 못 할 지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이 영화가 글러먹은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애초에 잘못된 것은 의도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감독은 10년 전 영화인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따르는 스핀오프 작품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누군가가 구마자가 되고 그런 사람을 퇴마 하는 신도들이라는 이야기의 구조는 [엑소시스트] 때부터 고유하게 내려온 오컬트 장르의 특성일 뿐. 세계관을 따른다는 말은 과하다 못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아마도 영화의 말미에 최부제(강동원)가 등장하기 때문에 검은 사제들과 연결되어 있다, 혹은 앞으로 그가 미카엘라(전여빈)와 함께 다음 편에서 고스트 버스터(?)를 할 거라는 예상을 하게 해서 스핀오프라는 말을 붙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모든 시도들은 뻔뻔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다.
또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반대인 등장인물들의 성별도 나를 화나게 한다. PC적인 의도는 아니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여성 서사 어쩌고를 언급하려는 의도도 아니었어야 할 것이다. 반드시 “표절”을 피하려는 의도였어야만 그래도 화가 덜 날 것이기 때문이다.
첫 등장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유니아(송혜교)를 본 순간 깨달았다. 감독은 이 캐릭터의 설정을 앞 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영화 [콘스탄틴]에서 따왔다는 것을. 이 한 장면으로 감독은 매우 많은 면을 설명하려 했을 것이고. 또한 매우 많은 시간을 절약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얄팍한 의도를 숨기려면 표절을 피하기 위해 성별을 남자가 아닌 여자 캐릭터로 반드시 바꾸어야 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매우 대차게 실패해 버렸다.
송혜교라는 배우가 전작인 글로리를 통해서 어느 정도 연기력을 인정받았음에는 이견이 없지만. 감독이 원했던 비딱하면서 종교와 교리, 그리고 이단의 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역할에는 완벽하게 스며들 만큼의 내공은 아직 없었다. 특히 욕설을 내뱉는 연기는 마치 영화 [아수라]에서 세상 어색하게 욕을 하던 정우성이 생각날 만큼 너무도 경건하고 타격이 하나도 없어서. 저걸 진짜 오케이를 준 컷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캐릭터 기용에 있어서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영화 자체를 통틀어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담당하고 있는 인물은 허준호 배우이다. 성직자의 몸에 깃든 악령이라니!! 그러나 영화는 구마자가 된 이후의 허준호를 그 어떤 설명이나 쓰임 없이 아주 간단하게 서사에서 아웃시켜버린다. 더 어이없는 것은 이진욱의 출연이다. 그다지 역할이 크지도 않고. 이성적인 역할, 혹은 여주인공들에게 반대하는 역할로서의 설득도 크게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의 장면까지도 야무지게 출연을 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구마(퇴마)라는 것을 진행하고 실행하기 위해 일어나는 수많은 반대들과 위험성에 대해 말하려 하는 의도는 알겠지만. 문제는 이 모든 캐릭터들을 데리고 그 어떤 설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와리가리만 하다 시간만 채우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초반부뿐만 아니라 후반부로 치닫는 이 모든 시간들에서 위험성은커녕 지금 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구마를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오컬트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도 있는 구마 의식 자체에 대한 문제가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영화가 나를 가장 화나게 한 부분도 그 부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두 주인공이 가진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합리적(이어야만 한다 진짜)인 의심을 할 수 밖엔 없지만. 타로카드 세 장 믿고 진행하는 템빨 크로스오버 굿판이라니. 그것도 수녀가.
진정한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하지만 이런 방법은 피했어야만 한다. 차라리 구마 의식 자체에 대해 반감이 있었던 미카엘라에 대해 좀 더 많이 설명했더라면 이런 이질감은 많이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시도와 의도들이 어긋나서 보는 내내 불쾌함을 감출 수 없는 영화였다.
[마치면서]
보통 좋은 영화든 안 좋은 영화든.
영화라는 것을 보고 나면 나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줄이고 또 줄여서 리뷰를 쓰는 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영화는 쓸 말조차 없어서 한참이고 빈 페이지를 띄운 채 다리를 달달 떨며 문장을 잡아내야 했다. 한동안은 오컬트 영화에 첫 출연하는 주연배우들의 덕을 보긴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다지 유쾌한 결과로 기억되지는 않을 영화라는 예상을 해본다.
[이 글의 TMI]
1.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표를 못 구해 강제로 연휴를 서울에서 보내게 된 1인
2. 그릭요거트 이제 지겹다. 아침으로 뭐 먹지.
3. 백오십 년 만에 우동 먹었는데 정제 탄수 최고!!!
4. 장갑 잃어버림
#영화리뷰 #검은수녀들 #오컬트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송혜교 #전여빈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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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오브 인터레스트 | 결코 남 일이 아닌 그들의 일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책임자로 일하는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와 그의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 그들은 귀여운 아들 둘, 예쁜 딸 둘과 함께 수용소 옆 관사에서 즐거운 일상을 보낸다. 주말이면 피크닉을 가고, 카누를 타며, 수영장 있는 정원을 즐기면서. 잡일은 유대인 하녀들에게 모두 맡겨둔 채로.
하지만 그들의 일상에는 균열이 생긴다. 아우슈비츠에 거대한 소각장을 들여놓은 후로 연신 흩날리는 잿가루가 회스 가족의 일상을 조금씩 방해하기 때문. 이에 더해 '최종 해결책' 시행을 앞두고 회스가 전근 명령을 받자 헤트비히는 이 일상과 관사를 떠나야 할까 두려움에 빠진다. 과연 회스와 헤트비히는 꿈이나 다름없이 행복한 그들의 삶을 지킬 수 있을까?
스크린 위에 펼쳐진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그리고 '악의 평범성'. 세계사나 철학 같은 인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 책, 개념이다. 사실 '악의 평범성'은 유명세만큼 오해하기 쉽다. 이 개념은 흔히 모든 사람 마음속에 아이히만 같은 악마적인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는 성악설 비슷하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아렌트는 모든 사람에게 악마가 있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악이 얼마나 단순하게 탄생하는지 꼬집는다. 모든 사람은 역지사지의 능력을 바탕으로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의 입장에서 사유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악의 평범성'은 바로 그들이 악행을 저지른다고 지적하는 말이다.
당장 아이히만도 상투적인 나치의 명령과 말에 안주했을 뿐이다. 그는 유대인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자기 행동이 어떻게 유대인의 대학살로 이어졌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즉, 타인의 현실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한 그의 무사유가 홀로코스트를 만들어낸 셈이다.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악의 평범성'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스크린 위에 펼쳐 보인다. 한 독일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사유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 챙겼는지를 꼬집는다. 이 비판은 직설적이지 않아서 되려 더 날카롭다. 익숙한 비판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결말은 심란하다. '과연 나는 저들과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일상을 반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의 일상이 메스꺼운 이유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남부러울 것 없고, 흠잡을 데 없는 회스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직장에서 수많은 부하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아버지.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종일 바쁘게 일하며 집과 가족을 챙기는 어머니. 아버지는 두 딸이 잠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줄 정도로 가정적이고, 그 덕분에 4남매는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낸다.
그들의 행복한 집도 감탄을 자아낸다. 큰 주택 옆에 딸린 숲과 강은 한적한 오후마다 피크닉을 즐기기에 최적이다. 집 앞 널찍한 마당에는 각이 딱 맞는 모습이 인상적인 수영장과 정원도 있다. 그래서인지 회스 가족의 일상은 <사운드 오브 뮤직> 속 트랩 대령 가족마저 부러워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주인공들이 노래만 부르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회스 가족의 일상은 보기 메스껍다. 그들의 일상을 지탱하는 퍼즐 조각이 하나씩 밝혀지기 때문. 그들의 옷, 화장품, 장난감은 모두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유대인의 유품이다. 저택은 아우슈비츠 바로 옆에 위치한 관사이고, 헤트비히를 돕는 충실한 하녀도 유대인이며, 정원에 뿌려지는 거름은 유대인 체를 태운 잿가루다. 회스가 몰두 중인 프로젝트마저 나치의 '최종 해결책'으로 밝혀진다.
무관심을 먹고 자란 일상
그런데 이 퍼즐 조각을 더 끔찍하게 만드는 주체는 따로 있다. 바로 회스 가족의 태도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헤트비히는 새로 받은 코트 주머니에서 립스틱을 꺼내더니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입술에 바른다. 그 주인이 바로 옆 수용소에서 어떤 일을 당하는지는 전혀 생각이 안 든다는 듯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첫째 아들은 무심하게 금이빨을 가지고 논다. 막내아들 '한스'는 처형 명령을 받은 유대인의 비명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는 그러지 마"라고 말한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정원을 가로막은 벽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을 신경 쓰지 않는다. 왜 거대한 굴뚝에서 낮에는 연기가, 밤에는 불길이 피어오르는 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회스 가족의 무관심은 음향 효과 덕분에 더욱 극대화된다.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영화는 유대인들의 아우성, 독일군의 명령, 발포음을 배경에 깔아 둔다. 하지만 회스 가족은 이 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다. 새 울음소리와 비명이 같이 나도 그들은 새소리만 듣는다. 귀가 멀지 않은 이상 그들도 소리는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무관심한 나머지, 그들은 그 소리에 대해 고민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다소 독특한 영화의 시작과 끝도 이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제목을 보여준 후에 약 2분 정도 기묘한 음악으로 가득한 검은 화면을 보여준다. 또 엔딩 크레디트는 배경에 깔려 있던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듯한 사운드로 가득하다. 이는 관객에게 보내는 신호이자, 신호를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하는 절차처럼 보인다. 회스 가족의 선택적 노이즈 캔슬링에 주목해 보라는 암시처럼 들리기 때문.
선택한 무관심
이에 더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회스 가족이 단순히 무관심한 게 아니라, 무관심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수용소 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회스가 유대인 여성을 성노예로 쓰고, 헤트비히가 하녀를 수용소 안으로 보내서 죽일 수도 있다며 기분풀이용으로 협박하는 모습이 그 방증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 일상을 누리고 지키려고 한다. 아렌트의 말마따나 현실의 모순에 대해서는 철저한 무사유로 일관한다. 회스가 전근 나갈 예정이라고 아내에게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헤트비히는 지금 집에서의 유복한 삶을 지속하지 못할까 봐 격렬히 화낸다. 이에 회스는 가족들을 관사 남겨두고 혼자 숙소로 떠난다. 그 집 옆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번에도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다른 인물과 대조하면 회스 가족의 문제점은 더 명확해진다. 바로 헤트비히의 친정 엄마 '리나'다. 딸을 만나기 위해 여행 온 그녀. 헤트비히는 하녀들을 동원해 가장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수영장과 정원에 핀 꽃을 자랑한다. 하지만 정작 리나의 시선은 다른 곳에 향한다. 그녀는 딸에게 묻는다. 정원을 막은 벽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고. 헤트비히는 그 질문을 무시한 채 자기 자랑을 이어가기 바쁘다.
이 차이는 모녀의 결별로 이어진다. 아빠랑 카누를 탄 아이들이 수용소 발(發) 잿가루를 뒤집어쓰자 헤트비히는 그들을 씻기기 바쁘다. 리나는 다르다. 밤새 굴뚝을 빛내는 불길과 떨어지는 잿가루를 목격한 그녀는 전날 오후 광경을 떠올린다. 해 지는 수영장을 청소하는 유대인 하녀들과 그 뒤에서 연기를 뿜는 굴뚝을. 아침이 되자 리나는 곧장 헤트비히의 집을 떠난다. 딸과 달리 그녀는 최소한 인간적으로 사유할 줄 아니까.
뺄셈의 미학으로 완성한 영화적 논박
더 나아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혹시 모를 변명까지도 철저히 논박해 버린다. 아이히만 같은 범죄자들은 다음 같이 변명하기도 한다. 그저 명령을 따른 직장인이었을 뿐이라고. 자기들도 또 다른 피해자라고. 하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 지극히 영화적인 방법으로 그들이 결코 나치의 전쟁 범죄로부터 윤리적으로 무관하거나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최종 해결책'을 입안한 회스는 작전에 자기 이름이 붙었다면서 기뻐한다. 그는 조직 내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뿐, 자기 작전의 파급력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는다. 물론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내심 깨닫는다. 축하 파티가 끝난 뒤 사무실에서 퇴근할 때 극심한 구역질에 시달리기 때문. 이때 영화는 박물관이 된 현재 시점의 아우슈비츠와 잔뜩 쌓여 있는 유대인 희생자들의 의복과 신발을 비춘다.
이 몽타주는 회스가 내심 자기 작전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폭압적인지 마음 한편에서는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분명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그는 전혀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계단을 다시 내려가며 마지막까지 철저히 무관심하기를 선택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대를 이어 붙인 편집은 뺄셈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는 유대인의 피, 땀, 눈물을 직접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쉬운 길을 가지 않고도 홀로코스트의 '평범했던' 뒷사정을 보여준다. 그 어떤 작품보다도 나치의 책임을 명확히 못 박는 데도 성공했다. 전쟁 영화 중에 <덩케르크>가 있다면, 홀로코스트 영화 중에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있는 셈이다.
우리의 일상은 다를까?
마지막으로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화살은 나치 부역자들이 아닌 관객에게 향한다. 아우슈비츠 박물관이 등장할 때, 영화는 직원들도 함께 보여준다. 그들은 매일 청소하고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 홀로코스트와 가장 맞닿은 곳에서 일하지만, 그들에게 홀로코스트는 그저 일상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니까.
흥미롭게도 그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영화를 본 뒤 우리가 돌아갈 일상도 마찬가지로 비극에 무감각하기 때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 등에서 자행된 비인간적 행위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한국군 내에서 사고가 터져도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라며 무관심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렇게 보면 비명을 무시하는 회스 가족과, 아우슈비츠를 청소하는 직원과, 비극을 접하고도 반응하지 않는 우리는 다를 바 없다.
그래서 극 중 사과를 놓는 소녀가 유독 인상적이다. 사실 그녀는 뜬금없는 인물이다. 다른 주인공과의 접점도 없고,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등장마다 열화상 카메라로 보여주는 연출도 독특하다. 하지만 그녀는 뜬금없기에 중요하다. 그녀는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들과도 아무 접점이 없다. 그 덕분에 그들이 집어갈 수 있도록 수용소 주변 곳곳에 사과를 두는 선의는 오히려 더 빛난다. 회스 가족의 무관심과 대척점에 서서.
이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진정으로 당부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와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일에, 내 관심사와 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비인간적인 일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한 반성과 성찰이 없다면 누구든 회스 가족이 될 수 있다고 거듭 일깨워주면서. 그 결과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분명 걸작이지만, 그 미학과 완성도에 그저 마음 편히 박수 보낼 수 있는 영화는 아닌 듯하다.
Outstanding 특출남
400 페이지짜리 필설을 담고도 남은 1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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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하이스트레인저가 선택한 영화들
2024년에 하이스트레인저가 투자•배급한 작품을 소개합니다.
그 중에서도 <밀레니엄 맘보>,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현재 절찬상영중이니 놓치지 마세요!
그럼 다가올 2025년의 하이스트레인저 PICK! 영화들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클레오의 세계
Ama Gloria
개요: 드라마 | 프랑스 | 84분
감독: 마리 아마슈켈리-바르사크
주연: 루이스 모루아-팡자니, 일사 모레노 제고
개봉: 2024.01.03.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줄거리
“신기해요, 난 글로리아랑 함께한 추억밖에 없는데”
여섯 살 클레오는 사랑하는 유모 글로리아의 고향에서 특별한 여름 방학을 보내기로 한다.
모든 게 낯선 그곳에서 글로리아가 전부였던 클레오의 세계에도 새로운 파도가 친다.
로봇 드림
Robot Dreams
개요: 애니메이션 | 스페인, 프랑스 | 103분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
개봉: 2024.03.13.
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뉴욕 맨해튼에서 홀로 외롭게 살던 ‘도그’는 TV를 보다 홀린 듯 반려 로봇을 주문하고 그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해수욕장에 놀러 간 ‘도그’와 ‘로봇’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휩쓸려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데···
“기다려, 내가 꼭 다시 데리러 올게!”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개요: 다큐멘터리 | 미국 | 122분
감독: 로라 포이트러스
주연: 낸 골딘
개봉: 2024.05.15.
배급: 찬란
줄거리
전설적인 사진작가 낸 골딘의 삶, 예술, 투쟁, 그리고 생존.
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사진은 나의 유일한 언어였다. 나는 생생하게 반짝이는 뉴욕에서 죽어가는 친구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포착했고, 있는 그대로의 내 얼굴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이제는 내 모든 명성을 걸고 거대 제약회사에 맞서 싸운다. 생존과 투쟁의 기록이 담긴 나의 일기장을 당신에게 펼쳐 보인다.
마거리트의 정리
Marguerite's Theorem
개요: 드라마 | 프랑스 | 113분
감독: 안나 노비온
주연: 엘라 룸프, 장 피에르 다루생, 줄리앙 프리종
개봉: 2024.06.27.
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명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가장 인정받는 수학 천재 ‘마거리트’는 세계 난제 ‘골드바흐의 추측’에 관한 연구를 증명하는 세미나에서 오류를 범하고 만다.
그날 이후 충격에 빠져 학교를 그만둔 ‘마거리트’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며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내가 증명하고 싶은 건 나일지도 몰라”
공드리의 솔루션북
The Book of Solutio
개요: 코미디 | 프랑스 | 103분
감독: 미셸 공드리
주연: 피에르 니네이, 블랑쉬 가르딘, 프랑수와 레브런, 프랭키 월러치, 카밀 루더포드
개봉: 2024.08.14.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줄거리
영화감독 마크는 자신의 새로운 걸작이 제작자들 때문에 망할 위기에 처하자 컴퓨터를 통째로 들고 숙모가 있는 마을로 탈출한다. 머릿속에 쏟아지는 아이디어들을 하나씩 실행하기 시작하는 마크.
세계가 인정한 천재 감독과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감독을 동시에 해내는 그는 영화의 완성이 늦어지자,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솔루션북’을 꺼낸다.
위국일기
Worlds Apart
개요: 드라마 | 일본 | 140분
감독: 세타 나츠키
주연: 아라가키 유이, 하야세 이코이, 카호, 세토 코지, 코미야마 리나, 쇼메타니 쇼타, 나카무라 유코
개봉: 2024.10.02.
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절연한 언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소설가 ‘마키오’는 홀로 남은 조카 ‘아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 ‘아사’를 향해 수군거리고 이를 참지 못한 ‘마키오’는 홧김에 ‘아사’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을까?
밀레니엄 맘보
Millennium Mambo개요: 드라마 | 대만, 프랑스 | 105분
감독: 허우 샤오시엔
주연: 서기, 고첩, 투안 춘하오, 첸 이수안, 타케우치 준
재개봉: 2024.12.31.
배급: ㈜에이유앤씨, (주) 하이스트레인저
줄거리
그녀는 하오하오와 헤어졌지만 그는 늘 그녀를 찾아냈다. 주술이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늘 돌아왔고 스스로 다짐했다. "은행에 있는 50만 대만달러를 전부 써 버리면 그를 영영 떠날 거야"
그녀는 클럽에서 잭을 만났다. 잭은 항상 그녀를 데리고 다녔고 그녀를 가장 친한 친구처럼 대해 줬다.
이 일은 10년 전인 2001년의 일이었다. 세계는 21세기를 맞이했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축하했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
Civil War개요: 액션 | 미국 | 109분
감독: 알렉스 가랜드
주연: 커스틴 던스트, 케일리 스패니, 와그너 모라, 스티븐 헨더슨, 제시 플레먼스, 닉 오퍼맨
재개봉: 2024.12.31.
배급: (주)마인드마크
줄거리
세상이 둘로 갈라졌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
극단적 분열로 역사상 최악의 내전이 벌어진 미국. 연방 정부의 무차별 폭격과 서로를 향한 총탄이 빗발치는 상황 속에서 기자 ‘리(커스틴 던스트)’와 ‘조엘(와그너 모라)’, ‘새미(스티븐 핸더슨)’, 그리고 ‘제시(케일리 스페니)’는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한다.
내 편이 아니라면 바로 적이 되는 숨 막히는 현실, 이들은 전쟁의 순간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마주하게 된다.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진짜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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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마면 여자, 바지면 남자? : 셀린 시아마의 <톰보이>
2021년 한국, 아무도 여자는 무조건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치마든 바지든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으면 된다고 말하고는 한다. 그러나 이 이분법이 정말로 없어진 것일까? 통계청은 2020년 한국의 혼인 건수가 21만 4000건이라고 발표했다. 식을 올린 결혼 중 여자가 드레스를 입고 남자가 턱시도를 입은 비율은 얼마나 될까? 혹은 여자와 남자 모두 정장 바지를 입은 결혼식은 몇 건이나 있었을까? 화장실 표지판은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픽토그램으로 구성되어있다. 흑백으로도 알아볼 수 있는 치마를 입은 사람과 바지를 입은 사람이다. 교복을 입는 중‧고등학생 중 바지 교복을 입는 여학생은 몇 퍼센트일까? 치마 교복을 입는 남학생은 얼마나 있을까?
<톰보이>의 주인공 로르는 두 자매 중 언니이며 머리가 짧고 바지를 즐겨 입는 소녀이다. 이사를 자주 다니던 로르의 가족은 파리의 한 지역에 정착한다. 로르와 마주친 소녀 리사가 이름을 묻자, 로르는 잠깐의 망설임 끝에 자신의 이름이 미카엘이라고 답한다. 또래 아이들이 로르의 외모를 보고 로르를 남자아이라고 오인했고 그 무리에서 리사가 여자라는 이유로 겉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동생 쟌을 돌보는 자상한 언니인 로르는 친구들과 노는 자리에 쟌을 데려가고, 쟌을 밀친 남자아이와 몸싸움을 한다. 이 때문에 화난 남자아이의 어머니가 집에 찾아와 로르가 남자아이 행세를 하고 다녔다는 것이 들통난다. 로르는 아버지에게 다시 이사를 가고 싶다고 울먹인다. 로르와 쟌은 어른들의 사정에 따라 정착하지 못하고 이사를 다녔지만, 셋째가 곧 태어날 로르의 가정은 아이의 사정을 위해 이사를 가지는 않는다. 대신 어머니는 벌을 주듯이 로르에게 파란 원피스를 입힌다. 로르가 여자아이라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서다. 리사의 집에서 틀었던 노래처럼 ‘언제나 로르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손에 강제로 끌려가 로르는 자기가 때린 남자아이의 집과 자기에게 키스한 여자아이의 집에 원피스를 입고 방문하는 굴욕을 겪는다.
숲에 원피스를 벗어 걸어둔 로르는 또래 무리로 돌아가지만, 친구라고 생각하고 어울렸던 아이들은 로르의 성기를 확인해야겠다며 로르를 사냥하듯 뒤쫓는다. 로르가 소녀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소년은 로르가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여자애라고 말하며 부정하고 싶다면 옷을 벗어보라고 요구한다. 앞서 축구를 하고 수영을 할 때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며 로르는 쉽게 상의를 벗어던지고 풀밭에서 오줌을 누는 등 거리낌없이 신체를 노출해왔지만, 여성임을 확인받기 위해 탈의할 것을 요구받는 순간 노출은 수치가 된다.
<톰보이>는 프랑스라는 구체적인 장소성을 가지고 있으나, 톰보이 로르의 이야기는 많은 나라와 사회에서 통용될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어째서 신체적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는 이른 나이부터 여자는 운동을 하다 상의를 벗을 수 있는 특권을, 아무데서나 소변을 볼 수 있는 권리를, 치마를 입지 않을 자유를 박탈당하는가? 아직까지 여자는 바지를 입을 수 있으나 치마를 벗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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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인생은 찾는 즐거움의 연속이니까요
<동네책방 폴란>의 주인 교스케씨가 말했듯, 인생은 찾는 즐거움의 연속이고, 이는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찾은 이 보물 같은 작품에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 전주국제영화제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받던 2021년 2월, 도쿄의 작은 서점 '폴란'(Polan) 역시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35년이라는 세월을 뒤로하고 '폐점'을 결심했다. 2021년 2월, 영업 종료를 한 달밖에 남겨두지 않은 않은 시점에서도 언제나처럼 '새' 중고책을 선반에 채워 넣던 주인 부부는, 35년이 넘는 세월 동안의 그들의 일상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낸 것이다.
ⓒ 전주국제영화제
처음 헌책방의 영업 등록을 하러 갔을 때, '교스케' 씨의 머릿속에 아버지가 자신에게 자주 하던 말이 떠올랐다고 한다. '챠란포란'(ちゃらんぽら). 이 헌책방은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하는 방식을 뜻하는 이 단어처럼 시작되었을지 몰라도, 35년간의 세월을 거치며 점차 '다양성'을 존중하는, 편중되지 않고 모든 걸 수용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에 따라 운영되어왔다. 심지어 폐점이라는 마지막 순간까지 '교스케' 씨는 팔다 남은 책만 두는 것 대신, 새로운 '헌책'으로 선반을 채워 넣으며 손님들에게 찾는 즐거움을 안겨 주었으니 말이다.
ⓒ 전주국제영화제주인 '교스케' 씨는 계산대 옆에 자리 잡은 고릴라 인형, 일명 고리쨩을 보러 매일 가게를 찾는 손님을 보며 '헌책방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말한다. 팬데믹이라는 재앙으로부터 자신의 '폴란'은 지키지 못했지만, 종이책은 지키고 싶다는 그에게 있어 '종이책'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전자책은 종이책을 대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종이책과의 대결에서 참패하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재앙 이후, 사람들은 OTT로 인해 극장에 가야 할 이유를 굳이 찾지 않고 있다. 많은 감독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작품은 '극장'에서 보아야 한다 설파하지만,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조차 관객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극장이 마주한 현실이다. VR 놀이기구가 대체할 수 없는 롤러코스터의 스릴, 전자책은 가질 수 없는 종이책의 질감. 영화도, 극장도 결국 "Cinema"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 전주국제영화제
"책은 돌고 돈다"라는 3부 제목처럼, 책방에서 주인 부부와 직원 '유키' 씨의 사랑을 듬뿍 받던 책들이 폐지 처리장에서 푸대접 받을 때, 이 책들은 더 이상 '책'으로써의 가치는 남아있지 않지만, 결국 다시 제 역할을 찾아갈 것이다. 마치, 직원 '유키'씨가 '폴란'의 폐점 이후 자신의 취향을 담은 '책방'을 연 것처럼 말이다.
화려하진 않아도 누군가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반추할 수 있는,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그리고 평양냉면보다 슴슴한 이 영화는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었으며, 최후의 보루로 '푸대접' 받던 이 작품을 전주에서 만났다니, 정말 인생은 찾는 즐거움의 연속이지 아니한가?
ⓒ 전주국제영화제
동네책방 폴란(Polan)
나카무라 코타
일본 | 2022 | 75min | DCP | Color/B&W | Documentary | G | International Premiere
시네마천국 - <동네책방 폴란> -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시간표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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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콥스키가 결코 떨쳐내지 못할 이름
6★/10★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여자가 음악원에 가는 것보다는 시집가는 게 남는 장사라고 말하는 남자다(그러나 이 말의 대상인 미래의 아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면, 그의 말은 틀렸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나이의 결혼할 여자에게 자신은 여자를 사랑한 적이 없으며, 결혼하더라도 형제 관계처럼 지내야 할 거라고 거듭 확인시키는 남자다. 결혼식 당일 성당 앞, 남루한 차림의 어느 ‘미친 여자’가 설레는 마음의 신부에게 절대 그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남자다. 또 다른 누군가 역시 신부에게 그에게서 도망치라고 조언하는 남자다. 남성에게만 다정하고 그들과만 시간을 보내는 남자다. 아내가 지참금으로 가져오기로 한 돈의 융통이 어려워지자 그 돈만 믿고 있었다며 윽박지르는 남자다. 음악가를 꿈꾸는 아내가 남편의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면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남자다. 독수공방에 지친 아내가 침대로 다가오자 경멸하는 표정을 짓더니 결국에는 목을 졸라버리는 남자다. 마침내는 너의 집착 때문에 더는 창작할 수 없다며 자신의 ‘재능 보존’을 위해 아내에게 떠나라고 말하는 남자다. 친구들을 앞세워 아내의 존재가 ‘신경 쇠약’의 원인이라고 공공연하게 선포하며 ‘태양’인 자신의 재능을 갉아먹지 말라고 말하는 남자다.그러나 그의 아내, 만만치 않다. 그녀는 남편의 재능을 추앙한다. 아니, 숭배한다. 적극적인 구애 편지로 처음 미래의 남편을 만난 자리에서 남자의 까다로운 요구를 모두 수용하고 자신의 지참금 규모를 어필한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적극적‧자발적으로 자신을 남자에게 상납한다. 그녀의 ‘과잉’은 구애 과정에서 그치지 않는다. 너 때문에 자기 재능이 좀먹고 있다고 모욕하며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녀는 남편이 자신의 외도가 이혼의 원인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문서를 보내왔는데도 단호하게 이혼 서류 서명을 거부한다. 자신만이 유일한 그의 아내이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그녀가 ‘정숙한 아내’였던 것도 아니다. 내내 남편에게 외면받고 별거하는 동안 육체적 관계만 나누던 남자를 따로 두었고, 그 남자의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아이는 모두 고아원으로 보내진 후 유년기에 사망했다. 남편이 보내주는 돈으로 근근이 연명하면서 아내라는 지위를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고 종국에는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당신은 나와 못 헤어져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남편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로 작정한 듯하다. 그녀는 자신의 집착이 증오, 경멸, 멸시 등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품을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감정의 총체로 되돌아오더라도 남편에게 두려움, 소름 끼침 등을 줄 수 있다면 어쨌든 남편과 함께하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녀는 남자가 결코 떨쳐내지 못할 이름이 되기로 결심했고 죽을 때까지 그 결심을 삶으로 살아냈다.남자의 이름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여자의 이름은 안토니나 밀류코바. 주지하다시피 전자는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 음악가로 지금껏 사랑받고 있고 후자는 종종 동성애자인 남편에게 과하게 집착한, 천재 남성 곁에 으레 존재하기 마련인 ‘악처’ 정도로 종종 회자된다. 안토니나가 ‘천재 남편’이 재능을 마음껏 펼치게 뒷받침하고 그의 ‘사생활’ 스캔들까지 두루 관리해준 ‘좋은 아내’가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차이콥스키를 향한 그녀의 열렬한 감정도 사랑보다는 집착에 훨씬 가까웠다. 여러 모로 안토니나는 동시대 관객에게 ‘교훈’을 줄 위치에 있는 인물은 확실히 아니다(실제로 영화는 왜 지금 다시 안토니나와 그녀가 차이콥스키와 맺은 관계를 다시 조명했는지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기괴한 관계에서 우리는 이중 위계를 거스르는 한 여인의 편집증적 의지를 엿볼 수 있고, 무언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안토니나는 음악가를 꿈꿨다. 그녀의 음악적 재능 유무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재능이 있었더라도 어차피 시대적 한계로 꽃피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차이콥스키에게는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남성이었기에 재능을 펼치는 데 제약도 없었다. 그저 동성애 ‘추문’을 방지해줄 아내만 있으면 그뿐이었다. 음악가가 되지 못하는 대신 ‘위대한 음악가의 아내’가 된 안토니나가 실패한 건 바로 이 역할이었다. 그녀는 아주 조금이나마 자신이 남편에게 바친 사랑을 돌려받고 싶어 했다. ‘태양’인 차이콥스키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바람이었다.
집착적 애착은 예술‧젠더의 위계를 거슬러 남편에게 자신을 각인하기 위해 안토니나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을 것이다. 영화에는 신혼 초의 안토니나가 빨간 산호 목걸이를 차고 차이콥스키와 함께 길을 걷는 장면이 나온다. 차이콥스키는 산호가 진짜냐고 묻는다. 안토니나는 부끄러운 듯 혹은 이 상황이 우스운 듯 가짜라고 말하면서도, 일부 진짜 산호가 섞여 있다고 답한다. 차이콥스키는 ‘내 아내가 가짜 산호 목걸이를 차다니!’라고 혀를 차며 마찬가지로 웃어넘긴다. (차이콥스키에게는 그저 ‘가짜’이기만 했지만) 진짜와 가짜가 섞인 안토니나의 산호 목걸이는 차이콥스키를 향한 그녀의 감정 역시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의 혼재임을 가늠케 한다. 그녀는 정말 차이콥스키를 사랑한 걸까 아니면 실현되지 못한 자신의 꿈을 대리 충족하는 수단으로 그의 아내 지위를 욕망한 걸까? 숱하게 손가락질받으면서도 ‘차이콥스키의 아내’라는 법적 지위를 끝까지 지킨 데서 정말 행복을 느꼈을까? 상대를 절망시키고 넌덜머리 나게 하는 집착을 정말 ‘사랑’이라 생각했을까? 아마 그녀 자신조차 명확히 답하지 못할 이 물음은 우리가 연인에게 속삭이는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를 뒤흔든다. 당신은 정말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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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을 독립영화로 만든다면
7★/10★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영화는 앳된 얼굴의 남녀와 갓난아기 한 명으로 구성된 가족이 모델하우스 안에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남루한 옷차림의 그들은 커다란 캐리어와 터질 듯이 싸맨 다회용 쇼핑백이 손에 한가득이다. 번듯하게 꾸민 모델하우스와 영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여기가 바로 영화 〈홈리스〉가 천착하는 지점이다. ‘인간’과 ‘공간’의 좁혀지지 않는 위계 말이다. 인간이 만들었으나 인간을 소외시키는 ‘집’이라는 공간이 집을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남기는 상흔의 궤적을 따라가 보자.
남편 한결은 배달 대행사에서 일하고, 아내 고운은 아기를 돌보며 틈틈이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열심히 모은 돈을 전세사기를 당한 후 찜질방을 전전하는 그들. 그러나 찜질방은 갓난아이를 키우기 적합한 곳이 아니다. ‘사소한’ 고난이 쌓일 때마다 한결과 고운의 얼굴에 묻어나는 표정은 가난과 ‘부동산 없음’이 야기한 일상적 체념의 정서를 훌륭히 대변한다.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던 중 한결이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가져온다. 자주 배달을 나가 친하게 지내던 혼자 사는 할머니가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한 달간 집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오래되고 투박한 주택이긴 하지만 한결과 고운에게는 지친 몸을 쉬이고 아이를 건강히 양육할 최적의 장소다.
그러나 드문드문 보이는 한결의 께름칙한 표정이 암시하듯, 할머니의 부탁은 애초에 없었다. 할머니의 사고사를 목격한 한결은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이를 집 문제를 해결할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이 사실을 안 고운 역시 처음에는 팔팔 뛰며 분노하지만 이내 자신들에게 다른 대안이 없음을 알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빈 집’을 욕망한다. 영원히 손에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집, 곰팡이 냄새가 풍기는 반지하가 아닌 집을 그들은 거부할 수가 없다.
결국 중요한 건 설득력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연상케 하는 이 기괴한 설정을 관객이 납득하려면 설득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홈리스〉는 ‘가난한 마음’이 서서히 ‘타락’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이를 훌륭히 해낸다. 한결은 떡볶이를 배달시킨 어린이가 음식값 1만 원 대신 5만 원을 내자 다시 그 집으로 찾아가 잔돈을 거슬러주는 사람이다. 즉 그는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양심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가난이 그 마음에 흠집을 낸다.
가난하다는 것은 돈이 없는 상태 그 이상이다. 한결과 고운이 보여주듯 가난은 자신의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없고, 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며, 삶의 매 순간마다 자본주의 사회에 막혀 튕겨 나오는 경험이 일상화된 상태다. 그리하여 한 번 미끄러지면 남들보다 힘겹게 지켜온 양심과 도덕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상태다. “오빠도 좀 훔쳐와!”라는 고운의 한이 어린 말, 자신을 믿고 돈을 빌려준 사장의 돈을 훔치는 한결, ‘빈 집’을 차지했다는 죄책감보다 평온함이 점차 커지는 젊은 부부의 마음이 이를 증명한다. 양심과 도덕은 계급적 조건이 갖춰져 있을 때에만 단단할 수 있다. 한결과 고운의 자리에 가 보지 않은 사람은 그들을 욕할 수 없다는 소리다.
“누가 우리한테 관심 있는데!” 적당한 때가 되면 할머니 집에서 나가자는 한결에게 고운이 소리친다. 가난이 야기한 분노의 응어리가 느껴진다. 한결과 고운이 괴로워하며 계속 미끄러지는 동안 아무도 이들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가난하고 집 없는 사람들은 철저히 방치되고 있다. ‘도둑질’은 살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선량한 부부는 할머니 제사를 지내주며 한결에게 친절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그녀를, 세 가족이 살아갈 집을 기묘한 방식으로 상속한 그녀를 추모한다. 결국 부부가 믿고 기댈 곳은 할머니가 전한/남긴 마음뿐이라는 듯. 집이라는 꿈에 배반당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홈리스〉는 투기 담론이 가린 곳을 밝게 비춘다. 투기에 중독된 우리는 과연 그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을까?
*그녀가 붙이는 전단지는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부동산 임대 사업 전단지다. 노동의 영역에서도 부동산은 하나의 상징이 되어 고운을 소외시킨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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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도시2의 베트남 형사, 배우 송요셉님과 함께 범죄도시2 비하인드를 풀어봤습니다! (이제 천만 배우!!)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영화 럭키부터 범죄도시2의 베트남 형사 트란까지!
감초연기 전문가 배우 송요셉님과 함께
범죄도시2 비하인드를 주물러봤습니다~
☑️ License of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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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eople Say - dy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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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Paradise - Ik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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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unny - Ik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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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Young love - LiQW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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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Summer - Julian Avila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julian_av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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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Need Someone - dy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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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Free - Ik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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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Palm Trees (feat. Joey Edwin) - Joakim Karud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joakimkar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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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Back To Summer - Nekzlo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nekz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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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Luvly - Joakim Karud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joakimkar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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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Day After Day - Joakim Karud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joakimkar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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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Blue Sky - Ikson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ikson
Music Playlist by http://reurl.kr/1992B2F2CW
13.
Bay - Vlad Gluschenko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vgl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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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Nu Island - DayFox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dayfox
Music Playlist by http://reurl.kr/1992B2F2CW
15.
Road Trip - Joakim Karud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joakimkar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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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Relax - Peyruis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peyru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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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Love Life - LiQWYD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liqw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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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Feel - LiQWYD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liqw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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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plore - LiQW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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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dawn - Vlad Gluschenko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vgl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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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영화 제 8일의 밤, 실망스러운 오컬트 영화
넷플릭스에 한국 공포영화 제8일의 밤이 공개되었어요.
예고편에서 오컬트 분위기를 한껏 뽐냈기 때문에 꽤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았을텐데요.
영화는 생각보다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불교의 세계관을 가지고와서 번뇌와 번민을 요괴화 하여 전개되는 이야기인데요.
생각보다 오컬트의 분위기도 약하고 그렇게 무섭지도 않아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이성민 배우가 열연하고 있지만 나머지 캐릭터들이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네요.
보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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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허리 고 라운드> 예고편
1998년 5월 2일, 향년 33세 히데 영원히 잠들다.
그로부터 20년, 히데의 묘비에 배우 야모토 유마가 찾아온다.
그를 사로 잡은 것은 묘비에 새겨진 히데의 마지막 곡인 'Hurry Go Round'.
그 가사에는 반복되는 삶에 대한 표현들이 담겨있었다. 히데는 어떻게 살아왔고, 어째서 죽은 것일까.
야모토는 히데가 죽기 전, 3개월 간의 흔적들을 따라가고,
모든 열쇠가 모여 수수께끼의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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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좋은 사람> 30초 예고편
고등학교 교사 '경석'의 반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같은 반 학생인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경석'은 '세익'을 불러 어떤 말을 해도 믿을 테니 진실을 말하라고 하지만,
세익은 무조건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날 밤, 학교에 데려왔던 ‘경석’의 딸 ‘윤희’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또 다시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되는데…
의심하는 순간 모든 것이 흔들렸다
의심과 믿음 그 사이에 좋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