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2-08 17:41:21
주말에 몰아보기 좋은 로맨스 시리즈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비포 트릴로지>, <트와일라잇 시리즈> 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정신없이 지내오다 보니 어느덧 2월 중순에 접어들었네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해 기념하는 밸런타인 데이도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초콜릿보다 더~ 달콤한 로맨스 영화들을 추천해 드리려고 해요.
주말 동안 몰아보시라고 특별히 시리즈 영화들로 준비해 왔으니까요,
주말 계획 아직 세우지 않으신 분들 모두 집중!
혼자 봐도, 애인과 봐도, 친구들과 깔깔깔 웃으며 봐도 너~무 재미있는 로맨스 시리즈 영화 추천 시작합니다!
'브리짓 존스' 시리즈
1.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
2.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2004)
3.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2016)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는 헬렌 필딩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지극히 평범하고 때때로 엉뚱한 사고도 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을 내세워 많은 여성 관객들의 공감과 응원을 받은 작품입니다. 영국 고전 소설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모티브로 해 극 중 남자주인공 역을 맡은 콜린 퍼스 이름이 <오만과 편견>의 남자 주인공 이름과 같은 '마크 피츠윌리엄 다아시'입니다. 게다가 콜린 퍼스는 실제로 영국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 역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기도 했죠.

1편의 주된 줄거리는 여느 때처럼 홀로 새해를 맞은 서른두 살 ‘브리짓’이 운명처럼 찾아온 정반대의 매력을 가진 두 남자 '내 여자에게만 다정한 스윗남 마크(콜린 퍼스)'와 '사랑에 직진하는 바람둥이 다니엘(휴그랜트)'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을 하는 내용입니다. 여자 주인공 르네 젤위거의 통통 튀는 매력도 귀엽지만 콜린 퍼스와 휴 그랜트의 코믹하면서도 설레는 연기가 로코 팬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기 충분하답니다. 눈 내리는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엔딩 키스신도 명장면이죠!

2편에도 1편의 주역들이 모두 출연해 마크와의 순탄치 않은 연애를 시작한 브리짓, 그리고 그런 브리짓 앞에 나타나 이젠 믿음직한 남자가 되겠다며 그녀의 마음을 또 한번 뒤흔드는 다니엘의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2편이 개봉하고 나서 한참 뒤인 2016년에 공개된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늦은 나이에 임신했으나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몰라 고군분투하는 브리짓 존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작들에서 마크 역을 맡았던 콜린 퍼스가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해 반가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패트릭 뎀시가 새로운 남자 잭 퀀트로 등장해 신선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4편도 현재 제작 중이라는 소식이 있으니, <브리짓 존스> 시리즈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행복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겠네요!
'비포' 시리즈
1. 비포 선라이즈(1996)
2. 비포 선셋(2004)
3. 비포 미드나잇(2013)

<비포 선라이즈>는 비포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기차에서 만난 두 젊은 남녀 셀린과 제시가 오스트리아와 비엔나를 무대로 하루 동안 일어나는 사랑을 다룬 영화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생인 셀린(줄리 델피)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사는 할머니를 만나고, 가을 학기 개강에 맞춰 파리로 돌아가는 길에 옆자리의 독일인 부부가 시끄럽게 말다툼하는 소리를 피해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그곳에 서서 제시(에단 호크)라는 미국인 청년과 우연히 얘기를 나누게 됩니다. 둘은 서로가 통하는 면이 있음을 알고 좀 더 서로와 대화하며 알고자 기차에서 함께 내려 도시를 배회합니다.

여름 즈음 두 남녀가 기차에서 만나 비엔나 곳곳을 여행하며 낮부터 밤, 일출시간까지 벌어지는 일들을 실시간처럼 다뤄 해외여행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 싶다는 청춘 남녀들의 로망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인생철학부터 사랑, 성적 욕구, 죽음, 교육, 인간관계에 대한 서로 간의 대화가 인상적이며, 영화 시작부터 엔딩까지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 이어지는데, 이러한 구성은 두 후속작에도 이어집니다.
두 번째 작품인 <비포 선셋>은 <비포 선라이즈>로부터 9년 후, 제시와 셀린의 재회를 그린 영화입니다. 셀린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자전적 소설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시와 파리에 살며 환경운동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셀린의 만남을 보여주며, 제시가 타야 하는 비행기가 떠나기 전인 몇 시간 동안 두 사람이 파리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포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비포 미드나잇>은 <비포 선셋> 이후 함께 살고 있는 셀린과 제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공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제시가 작가들의 커뮤니티에 초청받아 그리스에서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게 되는 내용으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끊이지 않는 대화가 영화의 전반을 이루고 있습니다. 더 이상 풋풋한 커플은 아니게 되어버린 두 사람 사이의 갈등과 그럼에도 여전한 사랑의 존재를 담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세 편의 영화 중 가장인상 깊게본 작품이랍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
1. 트와일라잇(2008)
2. 뉴문(2009)
3. 이클립스(2010)
4. 브레이킹 던 Part 1(2011)
5. 브레이킹 던 Part 2(2012)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한때 할리우드에 유행했던 영 어덜트 소설 원작 영화들의 붐을 일으킨 작품이자 최고 흥행작입니다. 미국 소설가 스테퍼니 마이어(Stephenie Meyer)가 출판한 동명의 연작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각 시리즈의 제목은 주인공 벨라와 달을 의미하는 에드워드와 태양을 의미하는 제이콥, 세 사람의 상황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먼저 1편은 트와일라잇(Twilight)으로, 어둠이 시작되는 황혼 무렵을 뜻합니다. 에드워드(달)를 만나기 시작하는 벨라의 상황을 상징하며, 영화 속에서는 두 사람의 첫 만남과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2편인 <뉴 문>에서는 달빛이 사라지는 때, 즉 초승달을 뜻하며 에드워드(달)와 헤어지고 그리워하는 벨라의 상황을 상징합니다. 뱀파이어인 에드워드가 인간인 벨라가 자신 때문에 위험해지는 것을 우려해 그녀를 떠나고, 에드워드를 그리워하는 벨라가 무모한 행동을 벌이며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어지는 3편과 4편에서는 벨라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뱀파이어가 되며, 에드워드와 가정을 꾸려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전세계적으로 히트하며 OST가 유행하기도 하고, 주인공 벨라와 에드워드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로버트 패틴슨은 이 작품을 통해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이 실제로 연인 관계인 것이 알려지며 더욱 크게 인기를 끌기도 했었죠. 현재는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넘나들며 훌륭한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들입니다.
'키싱 부스' 시리즈
1. 키싱 부스(2018)
2. 키싱 부스 2(2020)
3. 키싱 부스 3(2021)

<키싱부스> 시리즈는 작가 베스 리클스의 동명의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트릴로지입니다. 첫 번째 작품의 시놉시스는 이러합니다. "첫 키스를 해버린 엘, 그것도 학교의 인기 넘버원하고! 하지만 그는 넘봐선 안 될 사람. 그와 사랑에 빠지면 평생의 단짝을 잃게 된다. 새가슴 엘의 선택은?" 주인공 '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단짝으로 함께 성장한 '리'가 있는데요, '엘'은 '리'의 형인 '노아'를 짝사랑하고, 그와 키스까지 하지만 절친과 절친의 형제는 절대 넘보면 안 된다는 두 사람 사이의 규칙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됩니다.

2편과 3편에서는 각각 대학에 진학해 '노아'와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된 '엘'의 이야기와, 대학 두 군데에 합격한 후 남자친구인 '노아'와 절친 '리' 중 누가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이기에 접근성이 좋고 러닝타임이 짧은 만큼 가볍게 즐기기 좋은 영화들입니다. 통통 튀는 하이틴 로맨스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려요!
'모든 남자들에게' 시리즈
1.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2018)
2. P.S. 여전히 널 사랑해(2020)
3.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2021)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제니 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라나 콘도어, 노아 센티네오 주연의 넷플릭스 하이틴 로맨스 영화입니다. 주인공 '라라 진'이 짝사랑했던 남자들에게 적었지만 부치지는 못했던 다섯 통의 편지가 그 주인들에게 전달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편지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남자 주인공 '피터'가 전 여자친구의 관심을 돌려놓기 위해 질투를 유발하고자 '라라 진'과 계약서를 쓰고 가짜 연애를 시작하며 도리어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트는 내용입니다.

2편과 3편 역시 두 사람의 사랑과 갈등, 성장을 담고 있으며, 주인공 '라라 진'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설정 덕분에 한국의 문화가 영화 여기저기에 등장해 국내 팬들 입장에서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특히 3편에서는 '라라 진'이 한국 여행을 하는 내용이 나와 한국을 배경으로 촬영된 장면이 많습니다. <키싱 부스>와 함께 넷플릭스 하이틴 로맨스 영화의 양대산맥으로 인기를 끌었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한번쯤 보시길 추천드려요 :)
마음을 간질이는 로맨스 영화가 필요하셨던 분들께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달달한 영화들과 함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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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이라는 공포
*해리 포터 시리즈에 대한 스포일러가 중간중간 노출됩니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프랜차이즈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한편 판타지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지나치게 어두운 색채로 아쉽다는 평을 듣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시리즈 중 박스오피스 성적이 가장 낮지만 나름의 매니아 층이 양산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금번 어린이날에는 지금까지 재개봉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순서를 거슬러 재재개봉되었다(현재 4편인 <해리 포터와 불의 잔>까지 4D 재개봉되었음). 영화 자체를 공포영화와 비슷하게 연출하기도 했지만 감독의 편을 들어준다면 원작 자체가 상당히 어두운 색채를 띠고 있기도 하다. 특히 사이빌 트릴로니 교수(엠마 톰슨 분)가 무언가에 빙의한 듯 예언을 하는 장면은 어린 시절 읽으면서 오싹한 느낌을 주었을 정도다. 사실 원작 시리즈 중에서는 특별하게 크게 평가받는 작품은 아니지만 다음 편인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성장통의 서막을 알리는 동시에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 분)의 유일한 가족인 대부 시리우스 블랙(게리 올드만 분)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건널목으로 기능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통해 해리는 때로는 모종의 이유로 진실이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세상이 생각보다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해리는 비록 숙적 볼드모트를 무찌르지는 못했지만 볼드모트에게 타격을 입히고 전교생의 이목을 끄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마법사의 돌을 파괴하고 퀴렐 교수가 죽음으로써 볼드모트의 회생 시도가 저지되며 덤블도어 교수는 해리에게 이젠 교내에서 그 사건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고 이야기해 준다. 심지어 그 사건으로 인해 해리와 해리의 친구들이 기숙사 점수를 무더기로 퍼받으며 그리핀도르 기숙사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기도 했다(때문에 웹상에서 덤블도어 교수의 그리핀도르 편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듬해 비밀의 방에 있던 톰 리들의 일기장을 파괴하고 지니를 구한 해리는 연회장에서 환영받고 한 학년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연회로 그 해를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이르러 해리는 부모님의 배신자에 대한 진실을 깨닫고 자신의 대부와 살아갈 날을 꿈꾸지만 피터 페티그루(티모시 스펄 분)의 탈주로 진실을 암흑 속에 묻는 신세가 된다. 외려 무고한 시리우스 블랙을 디멘터들로부터 간신히 탈출시키고도 교수를 공격한 학생이 되었을 뿐이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한 해가 끝난 것을 축하하는 호그와트의 화려한 연회로 끝맺지 못하고 시리우스가 이름조차 쓰지 못하고 보낸 파이어볼트에 올라탄 해리로 마무리한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서사 자체로 비극이 난무하기도 하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많은 장면을 공포영화에 가깝게 연출했다. 해리가 프리벳 가에서 가출해 처음 죽음의 개(정체는 모두들 아실듯)를 마주치는 장면이나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디멘터가 객실로 들어서는 장면 모두 상당히 공포스럽다. 이전 두 영화에서 호그와트로 가는 길은 언제나 햇살로 가득했던 것과는 반대로 이제 성장통의 길목에 들어선 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 호그와트로 진입하며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시절의 공포와 마주한다. 그리고 어떤 여자가 비명을 지르지 않았냐고 묻자 헤르미온느(엠마 왓슨 분)는 무섭게도(!)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이외에도 자신이 유일하게 자신있었던 퀴디치에서조차 비오는 날씨와 디멘터라는 벽에 부딪혀 첫 패배를 경험한 해리는 자신이 아끼던 빗자루 님부스 2000마저 잃고 만다.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에 관한 진실 아닌 진실을 듣게 된 해리는 성장기를 맞이한 대담한 청소년답게 시리우스 블랙이 찾아왔으면 하고 바란다. 앞으로도 해리는 수많은 비극을 맞이할 예정(..)이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그 서막을 알리는 종소리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은 이를 공포스럽게 연출함으로써 성장은 세상의 부조리를 깨닫는, 일종의 공포와도 같다고 선언한다.
돌이켜 보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언제나 성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인 <그래비티>는 라이언(산드라 블록 분)이 자신의 과거를 딛고 한발 나아가 재탄생하는 이야기였으며 마찬가지로 발 디딜 곳 없는 우주 공간에서의 공포를 놀랍도록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라이언은 성장 혹은 재탄생하기 위해 죽음에 이르는 극한의 공포를 겪어야만 했다. 역시나 세계적인 마니아층을 양산한 <칠드런 오브 맨>도 마찬가지로 죽음에 관한 비유(와 실제 죽음)로 넘쳐난다. 그리고 여러 작품을 거쳐 넷플릭스와의 협업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에서 꺼낸 <로마>는 대놓고 자신의 성장담이기도 했다. <로마> 또한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동시에 처연하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로마>라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본다면 어쩌면 쿠아론 감독은 자신의 성장기를 통해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공포가 동반되며, 때로는 죽음이 함께 하기도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달았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성장담 그 자체인 해리 포터 시리즈를 만났을 때, 그리고 시리즈 가운데 가장 어두운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만났을 때 그 스토리텔링 능력이 극대화된 것이 아닐까. 이후 스케줄 문제로 시리즈에서 하차했다고 하는데 크리스 콜럼버스가 떠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쿠아론 감독이 도맡았다면 이후 작품들은 어땠을지 궁금해진다(마이크 뉴웰, 데이빗 예이츠 감독은 솔직히 성에 안 찬다).
한편 쿠아론의 성장담이 비극으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다. 청소년 판타지 영화답게 서비스 장면도 쿠아론 감독은 잊지 않았다. 그리핀도르 남학생 기숙사에서 동물 젤리를 먹으며 장난치는 호그와트 학생들의 모습이나 호그스미드에서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네빌의 사탕을 훔치는 해리 등 곳곳에는 풋풋한 성장기 청소년들의 모습도 종종 보인다. 순간이지만 해리는 더즐리네를 벗어나 시리우스와 함께 사는 달콤한 상상을 하기도 하며, 아빠 제임스 포터가 자신을 구하러 와줬을 거라는 환상에 행복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구한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해리는 제임스를 만나지 못한 것에 슬퍼하는 대신 어려운 패트로누스 마법을 해냈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히포그리프 벅빅을 처음 만나 당황했던 해리는 용감하게 올라타 호그와트를 한바퀴 돌고는 빗자루를 타는 것과는 또 다른 짜릿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해가 마무리되었을 때, 비록 본인이 원했던 바로 그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빗자루인 파이어볼트에 올라탄 해리는 인생이라는 기나긴 비극에서 다시 한번 순간이나마 짧은 환희를 경험한다. 쿠아론 감독은 결국 해리에게 중요한 소품인 빗자루를 부러뜨리고 새로운 빗자루를 선사하면서 성장이란 이런 것이라고, 갖고 있던 것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는 동시에 새로운 것을 얻는 환희와도 같다고 말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해리 포터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장면은 영화마다 달랐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마지막 장면이 파이어볼트에 올라탄 해리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마무리에서 독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석연치 않은 감정을 느꼈다. 본의 아니게 악역을 도맡아온 슬리데린 기숙사에게 한방 먹이고 떨떠름한 스네이프 교수(알란 릭맨 분)의 표정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이전 시리즈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해리가 믿고 따랐던 루핀 교수(데이빗 튤리스 분)는 결국 어둠의 마법 방어술 자리를 사임했고 해리의 대부 시리우스는 여전히 누명을 벗지 못하고 숨어 살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해석했던 바와는 달랐지만 트릴로니 교수의 불길한 예언은 결국 현실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며 울적해하는 해리 앞에서 루핀 교수는 바뀐 게 없지 않다며 해리를 달랜다. 해리는 무고한 생명을 구했으며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궁극적으로는 거대한 악이 사라지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서 희생되는 수많은 선인에 대한 이야기도 결코 잊지 않는다. 원작자인 J.K.롤링이 위대한 이유는 이렇듯 독자들이 항상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은 않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양면성을 무섭도록 현실적으로 그려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은 해리에게 인간은 보이는 그대로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처음 맞닥뜨리게 하는 단계였다. 그리고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 이르러 해리는 생각보다 많은 악이 세상에 숨어 있으며, 그렇기에 자신이 바꾸려 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비현실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전세계의 청소년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낸 이야기는 많지 않다. 환상의 세계임에도 인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은 정의로운 곳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해리는 이제 비가 내리고 디멘터가 활보하는, 어두운 성장의 터널을 거치며 세상이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배운다. 쿠아론 감독은 이 과정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리는 와중에도 인생이라는 비극을 관통해나가며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극을 놓치지 않았다. 해리가 처음 패트로누스 마법을 성공시키는 순간 떠올린 기억은 그 자체로 온전히 행복한 기억이 아니며 해리 스스로 복잡하다고 표현하는 것도 쿠아론 감독의 인생관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과연 시리즈 가운데 가장 뛰어난 평가를 받는 작품이며, 이를 몇 번이고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건 그 자체로 인생의 행운이자 희극이 아닐까. 이런 관객의 기대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크레딧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 해리는 속삭인다. "마법의 장난 끝".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레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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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레의 차원을 넘어서라
인간은 몇 차원에 살고 있을까? 또한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는 얼만한 크기일까? 인간은 우주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SF소설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아시아 최초로 받은 류츠신의 <삼체>. 요새는 SF소재를 단순하게 미래에 대한 상상력, 혹은 판타지 수준에서 채용하는 소설과 영화들이 대부분이라면, <삼체>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영역, 차원을 계속해서 확장시켜 주고, 1,2,3부로 이어지면서 그 차원의 세계는 지수함수 그래프처럼 무한히 위로 올라가 버린다. 차원의 깊이가 우주만큼 깊고 넓어, 책을 다 읽고 다시 지구의 작은 집에 앉아있는 나를 인식하면 한없이 작아진 나를 느끼게 된다. <삼체>는 '삼체문제' 그 자체보다, 우주의 다차원을 다루며 차원과 차원사이에 일어나는 일, 고차원과 저차원의 인식, 차원끼리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삼체문제'는 그저 다차원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러면 <삼체>에서 보여주는 '삼체문제'란 무엇이며, 차원이란 무엇인가?
삼체문제
삼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세 물체를 말한다. '삼체문제'라는 것은 세 물체 간에 힘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그에 따라 세 물체는 어떤 궤도운동을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인간은 삼체문제를 그다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즉 이체에 가까운 세상인 지구에 살고 있다. 태양계는 태양이 압도적인 질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궤도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각각 행성의 위성들도 모성과 질량차이가 커서, 대부분 안정적으로 돌고 있다. 다만 지구의 위성인 달이 일반적인 위성보다 비정상적으로 커서 둘 궤도의 중심점이 지구 중심에서 좀 많이 비켜나 있기는 한데, 역시나 안정적이다. 태양계의 행성들은 평면적인 공전궤도면을 따라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사는 태양계의 태양이 하나가 아니라 비슷한 크기 두 개인 쌍태양이라면, 행성들의 움직임은 이보다 더 복잡한 면을 그리게 될 것이다. 심지어 태양이 쌍성이 아니라 세 개여서 삼체가 된다면, 그 세 태양의 움직임은 계산이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이 이체세상에 살고 있다면, 삼체세상은 어떤 의미로는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세상인 셈이다. 더군다나 4체, 5체, 다체로 가게 되면 아예 궤도를 알아내기가 불가능하다. 양성자와 전자 한 개로 이루어진 가장 기초적인 원자인 수소 말고, 전자가 하나 더 늘어난 그 이후 원자부터는 궤도모델을 만들 수 없는 것도 그 이유다.
<삼체>에 나오는 삼체인들의 항성은 지구에서 대략 4광년 떨어진, 가장 가까운 항성들인 센타우르스의 알파성을 모티브로 했다. 알파성은 하나의 별인 줄 알았지만 관측결과 2개의 항성으로 된 쌍성계이고, 조금 더 태양과 가까운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적색왜성이다. 이 세별은 서로 중력의 영향을 받는 삼연성계이다. 이 삼연성계에 생물이 사는 행성이 있다면, 거기에 사는 생명의 우주관은 우리와 아주 다를 것이다. 지구는 아주 오랫동안 일정하게 도는 달과 태양 때문에 하늘을 평면적인 둥근 천장이라고 생각하는 '천구'개념이 있었지만, 삼체운동을 하는 항성들이 하늘을 돌고 있다면 하늘을 처음부터 3차원 입체로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지구의 인간은 독특한 음양론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태양과 달의 크기가 우연히도 정확히 같아 보이기 때문에 생긴 철학이다. 이런 행성은 아마 삼체성계만큼 엄청나게 드물 것이다.
삼체의 궤도를 표현한 애니메이션. 너무 불규칙한 데다 항상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삼체문제가 아예 해가 없는 것은 아니고, 특수한 상황에서의 해는 밝혀졌다. 위는 동일한 질량, 각운동량이 없는 상황에서의 해 중 하나인 8자 모양의 해.
인식의 한계차원
1차원은 선, 2차원은 평면, 3차원은 입체. 우리는 흔히 인간은 3차원, 시간까지 더해서 4차원을 우리의 차원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건 인간이 우주에서 차지하고 있는 크기에 대한 제한적 차원이다. 우리는 인간세상이 입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주적인 위치에서 보면 거대한 지구라는 행성표면에 붙어살고 있는 2차원 생물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인간이 우주로 진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차원을 진정한 3차원으로 한 단계 높여주는 행위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지구를 넘어서서 태양계도 하나의 점처럼 보이는 거대한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점도 벗어나지 못하는 0차원의 존재인 셈이다.
인간보다 거대한 차원이 아니라 작은 차원은 어떨까? '그래핀'은 탄소원자 한 겹의 배열로 이루어진 2차원 물질이다. 인간이 볼 때 그것은 2차원이다. 하지만 더 미시적 차원으로 들어가 보면 원자 속 에는 양성자와 전자가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 그보다 더 작게 들어가면 초끈이론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11차원이라고 하고, 여분의 차원은 작게 말려있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우리보다 더 작은 차원들, 혹은 더 큰 차원들은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그저 우리는 지구 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일 뿐이다.
차원에 대한 소설은 1884년 에드윈 A. 애보트의 <플랫랜드>가 가장 유명하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인 2차원 정사각형이 1차원과 3차원으로 갈 때의 묘사가 훌륭하다. <플랫 랜드>에 나온 바에 의하면, 2차원 생물은 상대방을 위에서 볼 수 없기 때문에 원이든 사각형이든 삼각형이든 선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중간에 3차원 구가 나타나면, 선이 점점 커졌다가 작아지는 구의 단면만을 인식한다. 이 흥미로운 차원 간 세계의 설정은 <삼체> 전체에 깔려있다.
또한 인간이 지동설이 검증하는 과정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차원'에 대해 큰 교훈을 준다. 처음 지동설을 주장할 때, 교회에서는 무작정 천동설을 믿고 탄압한 게 아니다. 당시 신부들은 가장 머리가 좋은 엘리트 집단이었다. 지구가 태양의 궤도를 돈다면, 반대편에 있을 때 별들의 위치가 달라져서 연주시차가 나타나야 하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인간의 관측기술로는 연주시차를 측정할 수 없었고, 별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결국 지동설이 연주시차로 검증된 것은 19세기 들어서 망원경과 천체관측기구가 발달하고 나서다. 위에서 언급한 태양과 가장 가까운 항성계여서 연주시차가 가장 큰 센타우르스의 알파성 연주시차는 2/10000도이기 때문에, 맨눈으로는 전혀 관측할 수 없다.
최근 '인간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차원'에 대한 가장 큰 과학적 성과는 중력파의 검증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질량은 공간의 휘게 만드는데, 이것이 곧 중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질량에 변화가 생기면 그 시공간의 휘어짐이 빛의 속도로 파동처럼 전달되는데, 그것이 중력파다. 하지만 이 시공간의 휘어짐은 중력 변화에 비해 너무나도 작아서, 이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한 장치 LIGO를 만들기 전까지 측정한다는 것은 꿈의 과학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시로 중력파를 검출하고 있고, 소설 <삼체>에는 나중에 중력파를 통신기술로 이용하는 장면도 나온다. 중력파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우리가 우주를 보는 눈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 한 차원 높은 우주를 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우주에 대해서 너무나도 모른다. 우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대해 아는 바는 전혀 없으며, 인간이 관측한 100년 남짓한 데이터로 우주의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하긴 쉽지 않다.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과학들이 밑바닥부터 모두 허물어진다면, 우주의 별이 사실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스크린이어서 마음대로 깜빡일 수 있다면, 오늘부터 1+1이 2가 아니게 된다면, 인간은 벌레처럼 주저앉게 될 것이다. <삼체>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드라마 vs 소설
소설 <삼체>는 나왔을 때부터, 영상 매체로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다른 대하소설처럼 물량이 많고 이야기가 복잡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을 글로 풀어서 썼기 때문이다. 요즘 소설에 비하면 진행이 느리고 묘사가 많은 데다, 많은 부분을 이미 만들어진 클리셰를 거부하고 작가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미래 세계를 새로 구축해 나간다. 요즘 SF작법으로 비유하자면 글 쓸 때 하지 말라는 짓은 다한 소설이나 다름없다. 만들기 어려운 것은 둘째 치고, 이걸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재미가 있긴 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시즌1은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엿보인다. 일단 중국인 위주로 흘러가는 1,2,3권의 주인공들을 '옥스퍼드 동기 과학자들'로 모두 한 곳에 모아놨다. 그중에도 주요 인물들은 중국인으로 유지하고, 3권의 주요 캐릭터인 토마스 웨이드가 다른 캐릭터들과 합쳐진 모습으로 등장해 매력을 뽐낸다. 게다가 소설대로 진행했으면 조금 느리고 지루할 수 있는 흐름을, 1,2,3부의 내용을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빠른 전개를 보여줬다. 그리고 일반인에게 어려울 수 있는 과학은 많이 간략화했다. 드라마는 소설보다 더 쉽고, 전개가 빠르며, 거기에 '영국 이민자들의 서사'를 추가로 부여해 더 글로벌한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너무 축약해 버려서, 인류 전체가 하는 다양한 고민들이나 캐릭터의 서사들은 많이 없어졌다. 특히 소설 2권의 주인공인 '뤄지'를 대체한 사울은 나중에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인데, 그의 가벼운 캐릭터가 많이 아쉽다. 원래 사울의 역할은 우주 사회학 교수로 극단적인 회의주의자에 가까운 인물이고, 상상력과 내면이 굉장히 강한 사람인데 그런 서사가 시즌 1 동안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소설 3권의 주인공을 대체하는 진 청과 윌리엄 다우니의 서사만큼 쌓았으면 좋으련만.
드라마가 아직 시즌1 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개나 주제, 철학까지 다루기는 어렵다. 하지만 등장하는 몇 가지 과학기술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짚고 넘어갈 수는 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입자 가속기/카미오칸데
베라 예는 옥스퍼드 입자가속기에서 일하고 있다가, 멍한 표정으로 질문을 하고 뒤돌아 나가는데 금색 구슬이 가득 있는 거대한 구 모양의 공간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이건 여러모로 전혀 맞지 않는 연출인데, 베라 예가 떨어져 죽는 곳은 카미오칸데라고 하는 일본의 중성미자 검출장치이기 때문이다. 입자가속기는 입자를 고속으로 운동하게 만들어서 충돌시켜 중성미자 등 다양한 입자들을 검출해 연구하는 곳인데, 거대한 도넛처럼 생겼다. 카미오칸데는 일본에 있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장치다. 그냥 두 개가 같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중성미자를 만드는 장치와 우주에서 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장치가 같이 있는 건 사실 말이 안 된다. 그건 지하철 옆에 지진계를 설치한 것처럼 이상한 짓이다. 아마 제작진이 그냥 멋으로 넣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중에 유럽 입자물리연구소-세른이 나오는데 정문에 파괴의 신인 시바신 동상이 있는 것은 진짜다. 실제로는 선물 받은 것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 때문에 입자가속기가 블랙홀을 만들어 세상을 파괴할 것이라는 음모론이 돌기도 했다.
유럽의 강입자가속기 CERN에 있는 시바신
입자 가속기는 입자를 충돌시켜 연구하는 곳인데, 유럽의 CERN처럼 도시만 한 것도 있지만 정말 다양한 크기의 입자가속기가 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병원에도 사이클로트론이라는 원형 입자가속기가 한국 최초의 입자 가속기고, 거기에서 만들어진 입자로 PET촬영을 했었다. 입자가속기로 다양한 입자의 성질과 발견을 해왔고 쿼크나 힉스입자의 발견 등 아주 중요한 연구와 발견을 하는 장치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오는 실험결과가 누가 장난친 것처럼 모두 틀어진다면, 인간은 지금까지 헛된 것을 했다는 의미가 된다. 마치,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먹이를 주는 주인을 본 칠면조가 지금까지의 논리로 '이 시간에 먹이를 주러 오는 사람'이라는 합리적 추론을 했는데, 어느 날 먹이를 주는 줄 알았던 주인이 칠면조를 잡아 죽였고 그날은 추수감사절이라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지자(智子, Sophon)
위에서 언급했듯, 초끈이론-M이론에서는 세상이 11차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할 때 다른 차원들은 작게 말려있다. 그 차원을 2차원으로 모두 펼친 다음, 그곳을 컴퓨터로 만들어 넣고 다시 차원을 말아 넣어 양성자로 만든 것이 지자이다. 전자, 양성자와 같은 소립자가 지혜를 가졌다 해서 智(지혜 지) 자를 붙여 지자(智子)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영어이름인 sophon도 지혜를 뜻하는 sophia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고차원을 저차원에 펼치면 전개도가 되는데, 차원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 전개도의 모양도 아주 복잡해지며 펼쳤을 때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는 이론으로 만들어진 소립자 컴퓨터다. 이런 저차원 펼침, 고차원 말림, 차원과 차원이 만나는 것, 고차원이 저차원을 해부하고 들여다보는 것은 <삼체>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주요 소재다. 특히 지자가 가상현실에서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고 다시 펼쳐졌던 양성자를 축소시키는데 그건 칼라비-야우 다양체의 모습이다. 칼라비-야우 다양체란 M이론의 대가인 에드워드 위튼이 말한 여분의 6차원을 시각화 한 형상이다.
6차원을 말아서 구현한 칼라비-야우 다양체
또한 지자는 쌍으로 만들어져, 양자 얽힘을 이용해 거리에 관계없이 4광년이나 떨어진 삼체 본대와 소통할 수 있다고 나온다. 이 부분이 과학 매니아들에게서도 오해받는 부분인데,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양자 얽힘으로는 빛보다 빠른 통신을 할 수 없다. 얽혀있는 양자의 하나의 상태를 확인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얽힌 다른 양자의 상태가 반대로 나오는 것이 양자 얽힘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양자의 상태를 바꾼다고 해서 나머지가 변하는 건 아니다. 그저 관찰을 시작할 때의 상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미래에 양자 얽힘으로 무언가 통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진 작가의 상상력이다.
어떻게 이 지자는 사람의 눈에 카운트다운을 새기고, 별을 깜빡이게 만들고, 전 세계의 통신을 장악할 수 있을까? 지자는 양성자의 크기이므로 양자역학이 적용된다. 즉 어느 한 곳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는 게 가능하며 질량이 0에 가까우므로 광속에 가깝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러기에 순간적으로 인간의 망막에서 별빛을 사라지게 하는 게 가능하고, 카운트다운을 망막에 새기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과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지금까진 전기로 하는 통신장치(스피커)가 필요하다.
혹여나 양자역학이 현대 물리학을 깨는 게 아니냐고 오해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덧붙이면, 양자역학은 인간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뿐이지, 수학적으로는 너무도 명확한 현대물리학이다. 현대 과학은 이미 양자역학을 아주 잘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원자와 원자가 결합해 분자를 만들 때, 전자를 공유하는데 그것도 양자역학이다.
나노 섬유
나노 섬유는 나노미터 굵기의 섬유를 말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되어 온 분야로, 지금은 탄소나 아라미드, 금속 등 다양한 소재로 나노 섬유를 만들고 연구하고 있다. 나노미터가 얼마나 가는 것인가 하면, DNA가 3 나노미터의 굵기이고 탄소 나노튜브는 1 나노미터이다. 현재 개발된 탄소 나노튜브등은 철의 100배의 강도를 가졌지만, 원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무언가를 자르기보단 전기전달효율이 높고 작은 곳에 배치해 만들 수 있어서 초소형 회로나 가볍고 강한 섬유를 만드는데 주력하는 물질이다. 강도가 강하면 다이아몬드도 자를 수 있지만, 잘 휘어지지 않아 끊어지기가 쉽다. 또 드라마 <삼체>의 하이라이트인 '나노 섬유로 적들을 동강내기'에 나오는 것처럼 쉽지만은 않다. 배가 잘릴 것인지 섬유를 묶은 기둥이 먼저 잘릴 것인지도 여러 계산과 연구가 필요하다.
탄소 나노튜브는 2차원 물질인 그래핀을 말아서 만든다.
이 부분은 나노 섬유에 대한 과학도 과학이지만, 1차원 물질에 가까운 나노 섬유가 3차원 물질과 닿아서 파괴해 버리는 '차원의 맞닿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3차원 생물을 4차원의 생물이 들여다본다면, 3차원 생물이 2차원 생물을 위에서 바라본 것처럼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것이다. 지구인보다 고차원의 세상 - 삼체성계를 가진 곳에서 더 높은 차원의 과학을 가진 삼체인이 보기에, 비록 마음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벌레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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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삼체>는 소설의 긴 흐름을 흥미 있게 각색해 연출했지만, 그래도 시즌1이 다 가도록 외계인이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아 의아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직 지구가 멸망하려면 400년이나 남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삼체>의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다. 다른 여타 이야기가 인간끼리 벌이던 함대전쟁을 빗대어 '외계인과의 전쟁'을 묘사하는 게 대부분이라면, <삼체>는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의 차원으로 이야기가 뻗어나간다.
동양에서는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순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불교에서도 석가모니는 우주가 팽창했다 수축하는 것을 반복한다고 말한다. 예원제는 그저 모든 것을 끝장내려는 억하심정으로 삼체인을 부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류에게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또한, 삼체인 들은 자신들의 항성계를 떠나 지구에 살려고 오는 것이지만, 이들도 이들 나름대로의 절박한 사정이 있다. 악은 악이 아니고, 선은 선이 아니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다.
아직까지는 꽤나 잘 각색했다 생각하고, 스케일이 너무 작아지지 않게, 동양철학을 놓치지 않고 다음 시즌을 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왕좌의 게임> OST를 만들었던 라민 자와디의 <삼체> 메인 테마를 들으며 삼체인들을 기다려볼까. <삼체> 답게 3박자에 화음을 엇갈리게 넣어놔서 삼체성계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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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를 번역할 때, 영어로 3-body라고 하지 않고 중국어 발음인 Santi를 그대로 썼다. 단체를 만든 예원제가 중국인이라 그런 것이겠지만, 공교롭게도 Santi는 산타클로스의 애칭인 santy와 발음이 같다. <삼체> 드라마에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는 비유로 중간에 산타클로스가 등장한다.
*지자가 동양인에 사무라이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인 이유는 자신의 이름이 智子이기 때문이다. 智子는 토모코라는 일본 여자이름이기도 하다. (영어로도 Sophia는 여자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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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컬트는 외피일 뿐, 피할 수 없는 잔혹극!
올해는 유독 인상깊은 호러 영화가 관객을 찾고 있다. 상반기만 하더라도 <오멘: 저주의 시작> <악마와의 토크쇼>가 있었고, 하반기에는 <이매큘레이트>를 시작으로, 다수의 호러 영화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 중 한 편이 바로 아르헨티나에서 건너 온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다. 개봉 전 부터 화제를 모으며 평단과 장르팬 들이 무한 지지를 보낸 영화는 오컬트를 외피로 사용하면서 섬뜩하고도 피할 수 없는 잔혹극을 펼친다. 소리도 낼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수위는 가히 최상급. 하지만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수위보다 더 무서운 건 절망적인 아르헨티나의 현실이다.
외딴 마을 한 농장에서 참혹한 시신이 발견된다. 인간도 맹수의 짓도 아닌 것 같은 시신의 모습을 본 페드로(에세키엘 로드리게스)와 하이메(데미안 살로몬) 형제. 이후 사건의 실마리를 찾다가 마을 외딴 곳에 숨어 지내는 한 가족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악령에 빙의된 후 온 몸이 부패해가고 있는 한 남자가 누워 있다. 그의 엄마는 당국에 신고를 했지만, 방치했다는 이야기를 두 형제에게 말한다. 그 시각, 자신의 농장 지역에서 일어날 불길한 일을 빨리 해결하기 위해 농장주 루이스(루이스 지엠브로우스키)는 형제들과 함께 악령에 잠식된 남자를 트럭에 실어 멀리 치워버리기로 한다. 하지만 악령의 봉인이 풀려버리고, 두 형제는 황급히 이 마을을 떠나려고 한다.
최근 핫한 호러 영화 전문 제작 배급사 셔더(Shudder)가 만든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장르로 구분하자면 오컬트라고 할 수 있다. 악마 빙의 자체가 주는 섬뜩함, 그리고 인간이 가진 죄의식을 건들면서 나약해지게 만들고 무력감을 갖게 하는 악마의 모습은 <엑소시스트> 이후 제작되는 오컬트 영화와 그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가보면 영화는 보란듯이 경로이탈을 한다.
악마와 신부의 대결로 치닫는 다수의 오컬트 영화와 달리,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계속해서 확인시킨다. 어쩌면 <엑소시스트> 보다는 결로 따졌을 때는 <유전> <곡성>과 더 가까워 보인다.
연출을 맡은 데미안 루냐 감독의 영화를 보거나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을 제외하고, 이 작품을 마주한 이들이라면 생경하고도 거친 공포를 만끽할 수 있다. 영화제를 제외하고 아르헨티나에서 건너온 호러를 극장에서 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기존 할리우드 호러 작품과는 다른 느낌을 전하는데,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포스터에서 보이는 붉은 바탕에 도끼를 든 한 여성의 모호하면서도 위태로운 모습은 이를 잘 나타낸다.
영화의 차별화 포인트 중 하나가 언제나 곁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를 불러내지 않기 위한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등 사용을 금지할 것, 동물을 가까이 하지 말 것, 그것의 이름을 부르지 말 것, 절대 총으로 쏘지 말 것,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 것 등이 있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어길 시 인간은 악마의 먹이가 된다. 감독은 이런 금기 사항을 정해놓고, 하지 말라면 꼭 하고야 마는 인간 본성에 기대어 그들의 말로를 보여준다. 인물들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기심과 죄의식 때문에 일을 그르친다. 페드로 또한 가족에게 지은 죄를 안고 사는 인물인데, 악마는 계속해서 그의 약점을 집요하게 노리고, 괴롭히고, 시험에 들게 한다.
감독은 빛을 활용해 보이지 않는 공포도 선사한다. 첫 번째 규칙인 전등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을 따르기 위해 주인공들은 어둠속에서 최대한 빛을 사용하지 않는다. 종반부 페드로의 둘째 아들을 찾기 위해 하이메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에서 헤드라이트 on/off를 반복한다. 이 때 악마의 모습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착시 효과가 나오는데, 서서히 밀려오는 공포감과 높은 수위의 장면은 극강의 공포감을 전한다. 영화는 금기 규칙을 어길 때 보란듯이 파격적으로 선보이는 선정적 장면들로 공포 강도를 세게 가져가며 이들이 관통하는 지옥도를 보여준다.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테크닉적으로 관객에게 공포감을 확실히 전달하는 영화다. 스포일러라서 밝힐 수 없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가 가진 공포의 힘은 무한하게 커지는데, 그 동력은 현실 공포,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아르헨티나 사회를 겨냥한 현실이다.
어느 해외 영화제에서 제작 계기에 대한 질문을 받은 감독은 아르헨티나에서 농장 살충제가 광범위한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는 뉴스 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농민의 건강을 무시한 채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의 무관심과 잘못된 행태, 이런 마음이 만연된 상황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자유롭게 퍼질 수 있는 잠복한 악에 대해 풀어보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감독의 연출 계기를 들어보니 전주국제영화제 문석 프로그래머가 남긴 “장면에 대한 ‘묘사’보다 ‘설정’이 훨씬 더 공포스럽다”, 뉴욕타임즈가 전한 “공동체, 가족, 정부와 국민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을 가장 어둡고 시의적절하게 그려낸 우화”라는 한줄평이 더욱 와닿는다.
신고를 해도 마을의 이미지가 안 좋다는 이유만으로 무마한 경찰, 자신의 농장에 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지역에 옮겨다 놓는 농장주의 이기심, 자신이 버린 가족을 뒤늦게 지키고자 했지만, 도리어 가족을 위험에 빠뜨린 가장의 모습은 사회 전체의 균열이 심각해지는 아르헨티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 하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페드로가 지켜야 하는 가족은 자폐증을 가진 첫째 아들과, 나이 어린 둘째 아들, 노모로 사회적 약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인물 조합 자체가 감독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극 중 “악은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악을 사랑한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말처럼 아이들은 악마의 표적이 된다. 아이들은 무해하고 순수한 존재이면서도 무지한 존재로, 영화는 농장 살충제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기업의 손과 발이 되어 노동력만 제공하는 이들을 아이들로 표현한 듯하다. 표면적으로 악마의 먹잇감이 되는 아이들의 모습이 불안하고 섬뜩한데, 여기에 숨겨진 의도를 알게 되면 그 강도는 더 세집니다. 이런 점에서 후반부 끊임없이 몰아치는 공포와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소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내가 과연 무엇을 본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올 하반기를 멋지게 장식할 호러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호러 영화는 그 시대의 가장 두렵고 불안한 것을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본다. 아르헨티나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얼룩져가고 있는 세상과 그에 따른 공포를 이 영화로 만나보시라. 악의 어둠에 점점 먹혀들어가는 극강 호러를~~
덧붙이는 말: 수위가 정말 세다. 기존 할리우드 호러 영화에서 자주 접하지 못했던 극강의 수위가 펼쳐진다. 인륜을 저버리는 행동들이 나오는데, 이를 뒤에서 조장하는 악마의 모습이 섬뜩하다. 마치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운명 앞에 무릎꿇고야 마는 인간의 나약함이 더 좌절감을 안긴다. 멈추지 않는 사회 혼란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아르헨티나 인들의 현실을 상기시킨다.사진 제공: (주)팝엔터테인먼트
평점: 3.5 / 5.0
한줄평: 악마가 활개치는 현실 사회가 더 큰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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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의 불시착이 외로움을 품어주는 착륙의 순간으로.
“모든 시작은 불시착”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영화 ‘마카담 스토리’는 서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마주하지 않는 여섯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연한 만남과 인연이 한없이 이어지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비슷한 모양새로 흘러가 지루할 틈도 없이 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마카담 스토리의 원제가 ’Asphalte’ 인 것처럼 잿빛이 가득한 이 도시를 비춘다. 홀로 살아오던 이들이 가지고 있던 내면의 외로움을 우연한 만남으로 채워가는 이야기가 오래도록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을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상상력을 통해 더욱 극대화된다. 이들이 들은 정체불명의 소리는 울음 / 악령 / 호랑이라는 형체 없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공포였지만 정체가 밝혀지며 왠지 모를 허무함이 몰려온다. 다만 끝내 아무도 잠그지 않은 무관심 속의 물체의 정체를 알려줌으로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감독의 바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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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주민들이 모여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수리하기 위해 회의를 시작하고 스테른 코비츠는 엘리베이터 수리비 내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어느 날, 사고로 인해 엘리베이터가 아니면 이동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비극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한동안 절망에 빠져 있었지만, 주민들이 이용하지 않는 밤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근처 병원의 스낵 자판기로 가 끼니를 해결한다. 그곳에서 만난 간호사와 매일 밤 만나 담소를 나누며 잿빛 같은 그의 하루에 빛이 조금씩 새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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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담 아파트에 이사를 온 잔 메이어는 작동이 잘 안되는 엘리베이터에 곤란을 겪고 있었고 그를 본 샬 리가 집에서 나와 그를 도와준다. 하지만 감사 인사도 없이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마는 모습을 바라보는 샬리의 모습. 그리고 며칠 후, 자기 집 앞에서 들어가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잔에게 다가간다. 문을 여는 동안 나누는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잔의 직업은 샬리의 궁금증을 더하고 그들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샬레의 소통 부재, 잔의 아들과의 소통 부재라는 의외의 공통점을 찾고 그렇게 맞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서로의 부재를 채워주는 순간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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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 우주 비행사 존 매켄지는 아파트 옥상에 불시착하게 되고, 도움을 받기 위해 방문한 집에 ‘하미다’를 만난다. 불어를 모르는 존 매켄지와 영어를 모르는 하미다는 전혀 소통이 안 되는 불편함의 시간을 보낸다. 나사에서 존을 데리러 오기 전의 시간까지 ‘쿠스쿠스’를 비롯한 소통의 교감을 통해 가까워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소통이 안 되는 상황의 불편함에서 서로의 외로움을 채워가는 따스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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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 현실 속 총 천연색 꿈
이 글은 영화 [더 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샤흐리야르 왕의 마음이 이랬으리라.
불륜을 저지르는 왕비의 모습을 지켜만 보았을 왕의 마음이 로이(리 페이스)는 어쩐지 이해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지금 자신의 꼬라지를 본다면, 오히려 왕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찰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가련한 환자는 사랑에 배신당한 것도 모자라, 커리어 까지도 자신의 척추처럼 박살 나게 생길 위기였으니까. 이 기구한 운명을 꼼짝없이 견뎌야만 하는 답답함을 알아주는 누군가라도 등장해 주면 좋으련만. 지금 로이의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리 봐도 아직 숫자를 3까지 밖에 모르는 것만 같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운타루)의 존재가 전부였다.
그러나 오히려 기회일지도 몰랐다.
이 앞니 빠진 암살자(?)를 내 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자신이 결국 그렇게 넘고 싶어 하는 요단강(?)도, 쉽게 건널 방법이 생길 것만 같았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까지 내걸어 볼 심산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망치러 온 이 구원자의 손길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로이는 입을 열었다. 이 얕고 가는 자신의 목숨줄을 좌지우지하게 될지도 모르는 꼬마 샤흐리야르 왕 앞에서. 로이는 기꺼이 세헤라자데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이 암살자의 스턴트는 실로 대단했다.
로이가 수행할 수 없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스턴트 역할을 거리낌 없이 수행했다. 물론 이 초보 복면에게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3이 넘어가는 숫자에 기겁을 하기도 하고(!) 공범인 주제에 도덕적 잣대가 너무 높아 대역을 하지 않겠다며 생떼를 부리기도 했지만. 세헤라자데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황홀경에 빠져 망설임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미션 수행의 시간이나 방법도 치밀해져 갔다.
하지만 마지막 미션의 벽은 이 하룻강아지 대역에게는 여전히 조금은 높았다. 닿을 듯 닿지 않아 힘껏 까치발을 해야 할 것임을. 로이는 알 수 있었다. 로이는 반드시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싶었고. 그러려면 알렉산드리아에게 연료를 계속 불어넣어 까치발의 끝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이 간신히, 하지만 반드시 쥐어져야만 했다.
그는 환상의 이야기 속에서라도 스턴트를 이어가야만 했다. 오디어스를 찾아가는 여정은 더 험하고 어려워져 갔고. 그의 애달픈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마스크 밴디트는 충실하게 로이의 대역을 해냈다. 알렉산드리아의 눈이 여전히 처음처럼 빛나는 것을 보면서. 로이는 현실의 자신도. 자신의 대역인 밴디트로서도. 조금은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도, 삶도 조금씩 간절해지는 세헤라자데는 자꾸만 자신의 왕이자 대역인 알렉산드리아 앞에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로이는 다리에서 떨어지던 순간을 떠올렸다. 모두가 실패했다며 손가락질을 하던 그 순간을. 단 한 번의 낙하로 인해. 자신이 알던 사람들의 등 외에는 이제 기억할 수 있는 모습은 없을 것만 같았다. 로이는 고개를 들었다. 원래 서 있던 곳이 참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로이를 대신해 그 높은 곳에 안간힘을 써서 올라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낙하해 버린. 이 꼬마 스턴트역을 보며. 로이는 이제 정말 모든 것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로이의 작은 왕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라고 명령했지만. 세헤라자데는 이제 이 허무맹랑한 모험의 끝이 자신의 손으로 이뤄져야 함을 알고 있었다. 로이는 환상 속 모든 인물들을 추락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이 실패의 상징이었고, 동시에 죽음으로 가는 길이며 인물들의 마지막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추락은 마치 영화 [인셉션]의 킥(kick)과도 같아서. 두 세계에 모두 존재하는 사람들을 그저 한 세계에서 추방할 뿐. 그 어떤 의미의 실패도, 죽음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한 번의 추락으로 인해 겁에 질린 로이는 그 사실조차 쳐다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는 로이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 겁쟁이인 자신을 대신해 기꺼이 추락을 감행했고. 결국 그를 죽음이라는 망상에서 구해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는, 결국 세속적 욕심이 3까지 밖에 없는 무자비한 왕(?)에게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추락이자 실패라 여겼던 작품을 이 꼬마 대역에게 보여주겠다는 결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심의 끝에. 두 운명 공동체(?)는 겨우 웃어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쫓은 뒤 덩그러니 둘 만 남아버린 환상의 세계는 이제 끝에 다다랐지만. 여전히 몇 번이고 재생될 것만 같은 유일하고도 독특한 이야기가 되어. 두 벤디트의 뱃속에서 영원히 날갯짓을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추락은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힘차게 날아오르면서.
마치면서
정제 탄 수.. 단순당 최고!!
그들의 인생은 서로를 만나기 전 까지는 흑백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로를 만나는 순간부터 꾸게 된 모든 꿈들은 총천연색이었다. 차갑고 메말랐던 일상이 이렇게 질감과 색감으로 넘쳐나는 것으로 변화할 때까지의 지분은 거의 모두 알렉산드리아에게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영화를 보며 그저 잿빛에 지나지 않았던 회사원의 하루를 예쁘게 물들여 준. 같이 영화를 봐준 친구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만두 또 먹으러 가쟈!!!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추락, 스턴트, 그리고 세헤라자데의 모티브를 가지고 글을 써 보았습니다.
[이 글의 TMI]
1. 정말 물리적으로 시간이가 없다. 돌아버림
2. 환상 속 5인조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후레쉬맨 같아서 빵 터짐
3. 이런 뽀송한 질감의 영화 너무 좋다
[다음 리뷰 예고]
미키 17!!
원작이랑 얼마나 다를지(?) 기대된다. 근데 봉감독님 나빠.. 애를 원작보다 열 번이나 더 죽였어ㅠㅠ
#더폴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브런치작가 #네이버인플루언서 #munalo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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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희망이 더 무서웠던 두 남자
희망사항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상의 주인공 명안에 사는 소년 연규다. 어디론가 가는 연규. 손에는 돌 하나가 있다. 도착한 곳에 연규의 여동생 하얀이가 있다. 그리고 하얀이 옆에는 남자 일진 무리들이 있다. 이상한 일에 엮인 하얀. 하얀이가 위기에 몰렸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연규. 연규는 손에 있던 돌로 일진 무리 중 하나의 뒤통수를 때린다. 하얀이를 위기에서 꺼내는 데에는 성공한 연규. 하지만 감정적인 판단에 따른 뒤처리가 필요했다. 합의금이 필요한 연규.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연규는 지옥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 18살의 어린 나이엔 세상이 더럽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항상 돈이 필요한 연규. 엄마는 새로운 아버지와 재혼했다. 아버지는 무능력한 사람이라 돈을 벌지도 않고 맨날 술만 먹었다. 심지어 새아들인 자신(연규)을 때리기도 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연규의 일상에 도움이 되는 편은 아니다. 남편의 가정폭력에 무기력한 엄마. 연규의 일상에 즐거운 일이라곤 별로 없는 듯하다. 지옥 같은 하루. 300만 원이라는 돈을 다 갚기엔 솟아날 구멍이 없었다. 그렇게 다 정리하고 화란(네덜란드)으로 떠날 꿈을 꾸고 있을 때, 누군가가 연규를 찾아왔다. “형님이 300만 원 주라 신다. 그리고 나 찾아오지 말래.”
익숙한 것 안에 색다른 맛
영화 <화란>에는 익숙한 향이 첨가되어 있다. 이 영화에 삽입된 몇몇 설정은 기존의 한국 누아르물을 연상시킨다. 우선 첫째로 <똥파리>다. <똥파리>의 주인공 상훈은 아버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영화 안에서 여러 상황이 일어난다. 상훈은 기본적으로 입에 욕을 달고 산다. 이렇다 할 친구도 몇 없다. 그나마 친하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일수업체 사장은 만식이다. 이 만식에게도, 심지어 유일한 피붙이인 누나에게도 욕설이 입에 딱 달라붙었다.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서투른 상훈. 그걸 센 척으로 버틴다. 억지로 버티는 상훈의 일상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 위태롭다. 위태로움은 결국 상훈에게 그대로 돌아와 인물의 발목을 잡는다. <똥파리>의 후반부에 벌어지는 사건 역시 이 상훈의 사회성 때문에 일어났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이 <똥파리>는 영화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내면이 딱 달라붙는 것이다.
<화란>과 <똥파리>는 영화의 분위기에 공통점이 있다. 일단 주인공 연규는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같이 사는 아버지는 가정폭력을 일삼으며 매일 술만 먹는 인간이다. 어머니는 무기력하다. 네 명의 가족을 부양하기에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다. 하지만 명안시의 사람들은 연규를 괴롭힌다. 연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할 것들이 몇 있다. 이 ‘희생해야 할 것’의 딜레마가 영화의 분위기와 직결된다. 여러 인물의 상황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이야기의 박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몇몇 소재도 공통점이 있다. <똥파리>의 연희가 사는 집과 <화란>의 연규/하얀 가족이 사는 집이 비슷하다. 아버지가 무기력한 존재라는 점도 두 영화의 공통점이다. 어린 여학생과의 연대도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재의 공통점은 글쓴이가 보기엔 무의미한 감이 있다. 중반부의 분기점이 지나는 부분에서 두 영화의 이야기 전개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의 분위기가 유사하기 때문에 글쓴이는 영화 중반부까지 ‘이게 <똥파리>랑 어떤 차이점이 있지?’라고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두 영화의 차이점은 중후반부 전개에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이미지가 있다. 이 이미지는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여러 상황을 연결시켜서 반복을 통해 보여주는데, 구체적으로(스포일러가 없는 선에서) 써보자면 인물이 각자의 자유의지로 둔 수는 예상외의 방식으로 각각 캐릭터에게 돌아온다. <똥파리>가 후반부 강렬한 여운을 전달하려고 했단 점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똥파리>가 전해주려고 했던 것이 정서라고 한다면 <화란>은 인간사를 조명한 것이다.
끈적끈적한 피냄새
이 영화는 묘하게 끈적이는 분위기를 갖고 있다. 영화가 지옥도를 시각화 한 방식 때문이다. 영화는 공간에다가 특성을 부여해서 인물의 위치를 드러낸다. 우선 연규는 공간적으로 세 군데에 있다. 하나는 엄마, 하얀과 함께 살고 있는 집/연규가 일하는 곳(치건의 사무실, 중국집), 마지막으로 이동 중인 거리다. 연규가 살고 있는 집은 특별하다. 일단 공간이 좁다. 공간이 좁기 때문에 방과 방 사이는 밀착되어 있다. 특히 거실과 부엌이 하나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연규의 방은 이 두 공간에 비해 넓다. 이 두 특성은 영화에서 연규의 입장을 암시하는 듯하다. 연규 혼자서만 끊임없이 겉도는 인물의 내면 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연규의 내면보다 중요한 것은 ‘집 안 동선이 가깝기 때문에 벌어졌던 비극’이다. 이 영화가 밀도 높은 플롯으로 보는 사람의 입술을 마르게 하는 이유는 각본을 잘 썼기 때문이다. 각본이 장소에 부여하는 사실감은 이야기의 밀도를 높여 입술이 턱턱 마르게끔 한다.
영화가 지옥도를 구현한 두 번째 방식은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치건이라는 인물은 영화의 두 번째 지옥을 맡고 있다. 치건이라는 인물은 그 누구보다 든든한 연규의 직장 상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인물의 서사가 공개될 때 안타까운 한숨이 나온다. 이유는 이 치건 서사가 영화에서 사실상 두 번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건 서사가 전달되는 방식도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비극을 맞는 게 당연하다’는 형태를 따른다. 이는 이 영화 안에서 인물들이 맞이하는 비극이 당연한 운명처럼 느껴지게 하는 장치다. 이미 이 영화의 핵심과 비슷한 사례가 있어 ‘이 인물이 새로운 무언가를 꿈꾼다’는게 잘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정재광 배우가 맡은 승무와 김형서 배우가 맡은 하얀 이는 치건과는 반대로 역할한다. 사실 승무, 하얀의 역할이 러닝타임 내의 물리적 비중만큼 중요하지는 않아 보인다. 승무는 영화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모적으로 쓰이고 있고, 하얀 이는 수동적이다. 둘 다 어느 정도는 기능적인 측면이 있는 셈이다. 정재광, 김형서 배우가 아니면 심심하게 느껴질 이야기에 탄력이 붙은 건 배우 고유의 에너지가 가진 힘이 크다. 이 에너지를 바탕으로 두 인물은 후반부에서 각자 역할을 다한다. 두 인물이 가진 개성이 영화 후반부에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지를 주의 깊게 본다면 역시 흥미롭다.
매력적인 이야기
이 영화가 가진 단점은 인물들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이 영화에서 연규가 주체적으로 오롯이 서 있는 장면이 부족하다. 이 이유로 인물이 처해있는 상황이나 절박함은 느껴질지라도 그 이상의 무언가는 다가오지 않는다. 이야기’만’ 재미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등장인물 중 택시기사 아저씨와 관련된 부분이 그렇다. 이 인물과 관련된 연규의 서사는 영화의 핵심을 뒷받침하기 위해 생략된 곳이 많다. 연규가 좀 더 고민하는 장면이 있던가, 아니면 중간에 뭘 더 넣거나 바꿔서 주인공만의 판단을 내리는 과정이 있었다면 영화의 엔딩에 동의하기 쉬웠을 것이다. 안 그래도 강력한 송중기의 존재감 때문이 아니라 캐릭터의 서사에 생략된 곳이 많다.
이 영화의 다른 단점은 기존 누아르물과의 기시감이다. 이 영화에는 고유한 개성이 있다. 바로 사실적인 각본을 통한 끈적끈적한 감정선, 그리고 하나의 딜레마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의 충분한 장점이다. 반대로 이 개성을 위해 인물들이 틀에 박힌 것처럼 행동한다. 앞에서도 썼듯 영화에서 하얀이가 깔끔한 동선 하에 움직인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순히 폭력에 물들었다기엔 인물의 태도가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 몇 인물은 기존 한국 느와르물에서 등장했던 캐릭터가 겹쳐보인다. 대표적으로 송중기 배우가 맡은 치건 캐릭터가 그렇다. <똥파리>에서 변화구를 던지며 중후반부를 덮기 위해 이 인물은 사실상의 결말이 다 정해진 것처럼 행동한다(이 영화가 무엇인지를 적는다면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에 적기는 어렵다). 신선함을 기대하고 들어간 관객이라면 영화가 와닿지는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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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부터 결말까지 진짜 개지림 ㄷㄷㄷㄷㄷㄷ[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오픈 그레이브
이 영상은 원저작권자의 사용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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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 캡틴 / 레드 헐크와의 대결 /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 어벤져스 빌드 업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후기입니다.
*꼭 보아야 할 쿠키영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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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재키의 링> 공식 예고편
아카데미 수상 배우 할리 베리가 주연 및 감독을 맡은 스포츠 드라마로, 감동을 선사한다. 모두가 실패한 인생이라고 고개를 젓는 상황에서 파이터로서, 엄마로서 자신의 삶을 되찾는 인간 승리의 여정이 그려진다. 불명예를 안고 링을 떠나온 종합격투기 선수 재키 저스티스(할리 베리). 마지막 경기 이후 계속되는 불운과 사그라들지 않는 분노, 후회로 수년의 시간을 보낸 그녀가 매니저 겸 남자친구인 데시(아단 칸토)의 설득으로 냉혹한 언더그라운드 격투장의 링 위에 선다. 재키의 실력을 단숨에 알아본 격투 리그 프로모터(셔미어 앤더슨)는 그녀에게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돌려주리라 약속하고, 재키는 그렇게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핏덩이일 때 양육을 포기했던 아들 매니(대니 보이드 주니어)가 그녀를 찾아오면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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