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2023-01-27 21:54:20
기억에 남아있는 감정
영화 애프터썬(2023)
<애프터썬>은 어릴적 아버지와 갔던 튀르키예 여행을 했던 기억이 담긴 비디오를 재생하며 시작한다. 엄마가 캠코더를 들고 나의 어린 시절을 담았던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그리고 내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이곳저곳을 찍으며 다녔던 영상이 남아있기도 하다. <애프터썬>을 보며 그런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좀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소피(딸)과 아빠는 사이가 좋다. 이건 튀르키예 여행을 내내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딘가 위태롭다. 소피는 이제 막 성인으로 가고자 하는 단계에 들어서 좀 더 성숙한 것들에 눈이 가기 시작했고, 이미 성인인 아빠는 어딘가 어두운 모습이다. 이들 부녀의 여행은 특별한 것 없이 평범한 여행이지만 그 안에서 나타나는 소피와 아빠의 감정은 너무나도 다르게 튀어나간다.
딸인 소피는 어리지만 이제는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으로 취급되고 싶어 하는 아이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과는 놀고 싶지 않고 좀 더 성숙해 보이는 사람들과 놀기를 바라는 11살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알 수 없는 춤을 추고 있는 아빠의 모습은 어째서인지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소피 앞에선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의 딸 앞에서는 자신의 어두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소피도 알고있다. 자신의 아빠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이렇게 교차되는 감정 속에서 아버지와 딸은 서로를 끌어안고 춤을 춘다. 어른이 되고 싶은 딸의 마음과 이미 어른이지만 혼란 속에 살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합쳐진 것이다.
어릴적 성인이 된다면 성숙해진다면 모든게 해결될 것만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그 어렸을 때보다 더 혼란스러웠다고 한다면 그 어릴적 내가 믿지도 않을 것이다. 소피와 아빠도 마찬가지다. 아직 어린 소피와 이미 어른이 된 아빠는 절대 서로의 고민과 힘듦을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아끼기에 끌어안고 춤을 춘 것처럼 각자의 고민을 그러안고 받아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그런지 이 장면이 가장 인상깊었다.
이 영화에서 아쉬웠던 점은 소피와 아빠의 여행과 그에 따라 흘러가는 감정에 같이 이입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튀르키예의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나는 그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지루함이 떠나가질 않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나는 아쉬웠지만 다르게 보면 이 영화만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성인이 된 소피가 튼 캠코더 영상을 보는 것이다. 소피가 기억하는 과거를 되짚어보는 것이다. 이것들을 따라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소피는 이제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상황이 됐다. 소피는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캠코더에 남겨진 추억을 되짚어보며 즐거웠던 과거를 기억하고 그때의 아빠를 공감할 것이다. 마지막에 나타난 소피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만큼 내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애프터썬>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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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훈이 형은 은퇴할 수 있을까?
이 글은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2]의 스포일러 및 전반적인 이 시리즈에 대한 제 개인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리뷰 1편을 읽고 오셔도 재밌습니다(??)
사진출처:한경 국제뉴
코스트코 회장은 한국 생각만 해도 좋아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고 했다. 당연하다. 사업가에게 매출이 잘 나오는 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넷플릭스 CEO가 오징어게임의 참가자가 입는 체육복을 기꺼이 입고 홍보영상에 나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단돈 300억으로(?) 1조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으니.
그뿐만이 아니다.
에미상에서 비영어권으로는 처음으로 수상 및 6관왕 달성. 누적 시청시간 16.5억 시간(역대 최고). 94개국에서 53일간 1위(자료출처:한경국제뉴스). dalgona를 비롯해 오징어 게임에 나온 한국의 전통문화(놀이)들에 대한 외국인들의 친밀감이 생긴 것은 물론, 이 작은 나라의 콘텐츠는 두유노 시리즈에도 당당히 합류했고. 출연진 모두를 글로벌 인기를 얻는 배우 반열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빨강머리 기훈이 다시 게임을 시작하려는 듯한 결연한 표정으로 공항에서 뒤돌아서는 그 순간부터. 글로벌 팬들은 이 시리즈의 후속 편을 기다려왔다.
사진출처:보그 코리아
그러나 이 시리즈에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 캐릭터의 소모적인 사용에 대한 목소리는 시즌2 캐스팅의 성비(性比)가 공개되면서 더더욱 심해졌다. 또한 한 출연자의 범법행위를 감싸는 듯한 반응에 시리즈의 후속 편을 기다리면서도 욕하게 되는 애증의 목소리를 키우기에 충분했다.
막상 공개된 시즌2는 전편에 비해 그다지 좋은 평을 듣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는 스스로가 세운 최초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며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딱지맨의 하드캐리가 시즌2의 포문을 열었다면. 영원히 전재준으로 불릴뻔했던 박성훈은 이제 현주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 (외국인들에겐) 새로운 전통놀이들은 이미 유튜브나 숏츠들에서 무한반복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남는다. 시즌2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자 그런 의문 혹은 찜찜함은 더 커진다. 시즌제 드라마, 혹은 (최근의) 마블 영화가 많이 들었던 혹평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바로 다음 편을 위한 발판 마련.이라는 평 말이다. 제작진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 길어져서 시즌을 나누었다고 하는데 이 말은 곧바로 내가 [더 글로리]와 [외계인]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출처:한국 경제시즌제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보통 시간적인 단절이 이뤄지거나 한 사건의 가장 극적인 부분에서 마무리가 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더 글로리]의 경우는 그다지 끊지 않아도 되는 시점에서 파트를 나누는 바람에, 후반부에서 시리즈 혹은 작가가 가진 단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후자인 [외계인]의 경우는 늘이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이야기를 두 편에 나눠 진행하며 제작비를 회수조차 하지 못하는 참패를 기록했다.
오징어 게임의 경우는 아직 모든 파트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쪽에 속할지 속단할 수는 없지만. 시즌2를 보며 느낀 점을 얘기하자면 외계인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관이 넓어지며 캐릭터가 많아지다 보니 이야기가 풍부해지는 것은 좋으나. 그와는 별개로 이미 기훈의 이야기는 시즌 1에서 다 해버렸기에 기훈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시간도. 각각의 캐릭터에 이입할 시간도 줄어든다.
결정적으로 죽고 사는 것이 각 게임마다 긴장감을 갖게 하는 요소인데. 어차피 시즌3에서 다 결판이 날 테니 시즌2는 상대적으로 밍숭밍숭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시즌3은 "당연히"기다릴 수밖에 없기는 하겠지만 시즌3이라고 해서 다음 시리즈의 발판이 되지 않으리라 속단할 수는 없게 되고. 결국 다이어트할 때 절대 찾아오지 않는 "내일"처럼 그저 질긴 생명만 유지하게 될 위험도 커질 것이다.
사진출처:한국 경제이런 현상은 내게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과연 오징어 게임은 시즌4 이상 나오게 될까?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의 시즌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즌3에서 만약 기발 씨훈이형이 죽는다면 당연히 시즌4에서는 새로운 인물을 찾아 메인에 내세워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시즌1의 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뉴비가 만약 이미 기훈처럼 시즌3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시즌2의 반복이 될 수밖에 없다.
성기훈이 죽지 않는다 해도 이야기는 똑같다. 애초에 오징어 게임을 주최하는 세력 자체가 척결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면서 게임이 다시 열린다 해도. 결국 움직여야 하는 것은 장기판의 말 같은 참가자들이므로. 위에서 말한 것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흐름으로 극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결국 글로벌한 인기를 불러일으킨 이 드라마는, 피곤하다 못해 아주 틀에 박혀버린 시즌제 드라마가 되어버릴 것이고. 이젠 당구마저 한국의 전통게임이라 우길 것이며, 기훈이 형은 영원히 은퇴하지 못한 채 "얼음"을 외치게 될 것이다.
사진출처:YTN
이럴 때마다 나는 사바하의 장재현감독을 떠올린다.
사바하 2편을 만들 것이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 혹은 마음은 있지만 지켜보겠다. 정도로 말했었다. 물론 후속 편이 나온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수요일 조조영화로 볼 사람에 속하는 나지만. 끝날 때. 혹은 맺음을 언제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남는 아쉬움을 쓰다듬을 줄 아는 것이 이젠 덕목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밀려드는 작품의 홍수와 거의 모든 드라마가 시즌제화 되고 있는 트렌드 앞에서. 이제는 한 편에 온전히 모든 것을 담던 예전 영화들이 그리워지기까지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이 화려한 문제작을 보면서도 머리 한편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피로감. 혹은 숙제로 남는 것만 같아 열심히 뛰어다니는 기훈이 형을 볼 때마다 안쓰러우면서도 덤덤해진다. 진심으로 기훈이 형이 은퇴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글의 TMI]
1. 감기 너무 독하다.
2. 입으로 숨 쉬니까 더 힘들다.
3.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ㅠ
4. 하지만 그러기엔 난 이미 너무 잘 먹지. 냠
#오징어게임 #OTT #넷플릭스 #이정재 #영화리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인플루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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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력은 증명했으나 감동은 이어가지 못하다
애니메이션을 정말 재밌게 봤기에 실사화된 작품 역시 기대하고 봤었던 영화 <라이온 킹>. 하지만 실사화된 작품에서는 그 묘미를 잘 살리지 못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실사화를 해서 되는 작품이 있고, 아닌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라이온 킹> 시놉시스
새로운 세상, 너의 시대가 올 것이다!
어린 사자 ‘심바’는 프라이드 랜드의 왕인 아버지 ‘무파사’를 야심과 욕망이 가득한 삼촌 ‘스카’의 음모로 잃고 왕국에서도 쫓겨난다.
기억해라! 네가 누군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심바’는 의욕 충만한 친구들 ‘품바’와 ‘티몬’의 도움으로 희망을 되찾는다. 어느 날 우연히 옛 친구 ‘날라’를 만난 ‘심바’는 과거를 마주할 용기를 얻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 위대하고도 험난한 도전을 떠나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라이온 킹>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
실사화 하나는 정말 끝내줬던 작품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던 디즈니의 CG. 우리의 기술력이 여기까지 발전했다!!를 대놓고 보여준 작품이었다. 정말 그럴만했다. 사자의 수염 하나, 새의 깃털 하나, 지나가는 벌레 하나, 정말 실제의 모습과 다름없이 있는 그대로 똑같이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약간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 2시간 가량의 영상을 랜더링 돌리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정말 대단하다 하는 경외심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실사화를 해서 독이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웠던 점은 그 대상이 잘못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라이온킹을 실사화 하다보니 동물들의 표정이 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라이온킹의 매력은 등장하는 동물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연기다. 하지만 실사화가 된 사자와 다른 동물들에게 인간의 표정을 대입하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면 실사화라는 개념은 실제 있는 동물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표정을 넣어버린다면 그것은 실사화와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이 안타까웠다. 그냥 입이 움직이면 대사가 흘러나오고 표정이 없다보니 딱히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답답하고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또 실사화를 기가막히게 잘해서 감탄을 하게 되고,,, 좋았다가 실망했다가 오락가락했던 작품이었다.
넘버의 가치를 담지 못하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넘버였다. 그 유명하다는 Circle of Life를 살리지 못할 줄은 몰랐다. 애니메이션 속 Circle of Life는 굉장히 짜릿했는데 실사로 보니까 그 감정이 덜해지는 바람에 보는 내내 당황스러웠다. 더불어 비욘세가 불렀다고 해서 엄청 기대했던 넘버 역시,,, 극 속에 녹아들었다기 보다는 순간적으로 콘서트장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것은 영화인가,, 콘서트장인가..? 이렇게 튀어도 되는 것인가..? 혼란했다.
애니메이션의 감동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영화 <라이온킹>. 디즈니의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실사화의 안 좋은 예로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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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틀린 세계에서 비로소 깨닫는, 사랑
'평행 세계'라는 소재는 잘 먹히는 요즘 영화 치트키 중 하나입니다. 어떠한 선택의 이면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가정은 상상만으로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죠. '이 선택을 한 나와 그 선택을 한 나, 어느 세계의 내가 더 행복할까?', '그 세계의 나는 어떤 삶을 살까?' 여러 생각들이 겹치면서 가슴 속에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두둥실 떠오르곤 합니다. 그러한 감정의 부유 상태를 즐겁게 누리곤 하는 저는, 평행 세계 소재의 영화를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니 이 영화 역시 객관적으로 바라보긴 어렵겠지요. 두 세계의 너와 나를 다룬 로맨스 영화,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입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2025년 5월 22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My Beloved Stranger
Summary
어느 날, 눈을 뜨자 우리가 사랑한 모든 시간이 사라졌다. 베스트셀러 작가 ‘리쿠’는 8년을 함께한 첫사랑 ‘미나미’와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린 낯선 세계에서 깨어난다. 잃고 싶지 않은 그녀를 되찾기 위해 시간을 넘어 여기, 다시 시작되는 우리의 평행 세계 로맨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미키 타카히로
출연: 나카지마 켄토, 미레이
익숙함에서 무심함, 다시 소중함으로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감독 미키 타카히로의 대표작은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입니다. 그는 뒤집고 연결하고 확장하고 축소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라는 개념을 주무릅니다. 감히 '세계' 전문 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가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에서 택한 방식은 우주에 존재하는 무한한 평행 세계입니다.
대학 시절, 글쟁이로 살며 데뷔를 꿈꾸던 '리쿠'는 현재 잘나가는 인기 소설가로 승승장구 중입니다. 그의 곁에는 오랜 연인에서 이제는 아내가 된 '미나미'가 있죠. 그러던 어느 날, '리쿠'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눈을 뜹니다. 일류 작가였던 자신은 일개 출판사 직원으로 전락하고, '미나미'는 가수로서 대성공을 거두어 스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명성과 사랑을 한 번에 잃어버린 '리쿠'는 자신의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미나미'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간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것을 마주하게 되죠.
솔직히 이야기의 틀은 익숙합니다. 설렘은 익숙함에 잠식되고, 익숙함은 곧 무심함으로 변하는 것은 로맨스 스토리에서 흔히 보는 진부한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것은 곧 현실의 로맨스이기도 합니다. 미묘한 애정과 뜨거운 열정 뒤에는 언제나 익숙함을 핑계 삼는 무심함과 뒤늦은 후회가 있습니다. '리쿠'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다가, 평행 세계를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로맨스를 다루기에 여러 종류의 세계가 존재하는 평행 세계만큼 적합한 배경 요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면'의 가정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자신이 어떤 그릇된 선택을 했는지 몸소 깨달을 수 있는 것이 평행 세계로의 차원 이동이니까요.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뻔한 설정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본래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의 심성을 한순간에 뒤바꾸려면, 세계 하나쯤은 뒤틀려줘야 하겠거니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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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서 내가 있어"
이 작품의 매력은 꼭 소설처럼 마음에 오래 남는 대사들이었습니다. 일본어라서 정확히 받아적지는 못했지만, "네가 있어서 내가 있어"라든지, "어느 세계에서든 그곳에서 가능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거야" 같은 대사들은 사람들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은 작은 소망을 어루만져주는 듯했습니다. 일본 영화에서는 이렇게 직접적이면서도 다정한 대사들이 여전히 유효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작동한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뻔하지만 풋풋하고, 그래서 더 따뜻한 사랑 이야기. 일본은 이런 종류의 영화를 참 끈질기게, 꾸준히 잘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소설 같은 대사들과 더불어서 음악도 기억에 남습니다. '미나미' 역을 연기한 가수이자 배우인 미레이의 목소리는 이 영화의 배경과 참 잘 어울렸습니다. 영화의 메인 OST이자 실제로 미레이의 음반으로 발매되기도 한 "I still"은 이야기의 맥락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죠. 영화가 끝나고 곧장 그의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해 다시 들었을 만큼 매력적인 J-POP이었습니다.
연기와 음색 모두 뚜렷한 인상을 남긴 미레이의 다음 행보가 벌써 기대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리쿠' 역의 나카지마 켄토와 함께, 영화 속 '창룡전기'의 주인공 같은 행색을 하고 제대로 된 SF물을 하나 찍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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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들른 서점에서 이 영화의 주제를 고스란히 관통하는 문단을 만나, 인용구로 이 글을 마칩니다.
우리는 언제나 타인의 선의를 놓치고 맙니다. 정확히 말해서 사랑은 그것이 사랑인 이상 발견하지도 눈치 채지도 못하도록 건네집니다. 사랑은 산타클로스의 선물처럼 정체를 숨긴 채 우리 곁으로 찾아옵니다. (지카우치 유타,『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One-Liner
세계를 이루는 건 너와 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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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기회라는 <엔칸토>의 마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마법이 가득한 마을 ‘엔칸토’에는 저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마드리갈 가족이 살고 있다. 그러나 ‘미라벨(스테파니 베아트리즈)’만큼은 엔칸토의 마법 덕분에 초인적 괴력이나 치유력 같은 힘을 지닌 가족과 달리 아무런 능력도 가지지 못한 채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미라벨은 엔칸토를 둘러싼 마법의 힘이 위험에 처한 것을 발견하지만, 할머니 '아부엘라(마리아 세실리아 보테로)'를 비롯한 가족들조차 자신의 말을 믿지 않자 평범한 자신이 오히려 가족과 엔칸토를 구할 마지막 희망일 것이라 생각하며 마법을 되살릴 방법을 찾아 나선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60번째 작품인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디즈니에게 기대할 수 있는 매력이 총망라된 영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답게 '가족'과 '성장'이라는 보편적 키워드가 여전히 중심을 잡는 가운데,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과 넷플릭스의 <틱, 틱.. 붐!> 등을 제작하며 가장 핫한 뮤지컬 음악가로 떠오른 린-마누엘 미란다의 라틴풍 음악은 마드리갈 가족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꾸며준다. 이에 더해 폴리네시아 문화를 녹여낸 <모아나>와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뒤를 이어 콜롬비아의 마을 엔칸토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보편적인 감성에 문화적 다양성을 더하려는 시도 역시 눈에 띈다.
그러나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그저 가족 간의 사랑과 우애를 재확인하고 평범한 주인공이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는 전형적인 동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주토피아>로 소수자와 약자의 정의와 진정한 역차별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겨울왕국 2>에서는 노르웨이의 '알타 분쟁'을 재해석해 서구 중심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비판했던 바이론 하워드 감독의 작품답게 <엔칸토>도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엔칸토> 속 마법은 뒤쳐질까 두려워하고 밀려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든 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의 상징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 <엔칸토>는 가족 중 본인만 능력이 없는 미라벨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녀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할머니 아부엘라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무시당하고 중요한 일에서 배제당하기 일쑤이며, 가족이 아닌 이들로부터는 동정과 위로를 산다. 무엇보다도 능력의 유무가 자신의 노력과 관계없이 선천적으로, 또 우연히 주어진 것이기에 미라벨의 아픔은 나날이 커져간다. 그래서 사촌동생인 안토니오가 능력을 받는 날 그녀는 실패로 끝났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동생을 온전히 축하하지 못한다. 동물과 소통하는 능력을 얻은 안토니오와 가족들이 사진을 찍을 때 함께 끼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고통과 트라우마는 절정에 달하고, 엔칸토의 마법에는 균열이 생긴다.
이때 미라벨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트리거로 사진기와 사진이 등장하는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이는 과거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에 사는 한 소녀와 2021년을 살아가는 관객이 같은 아픔을 공유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디테일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작중 사진기는 현실 속 인스타그램의 메타포처럼 보인다. 이전까지의 SNS와 달리 인스타그램은 텍스트가 아닌 사진과 짧은 영상을 통해 내용을 전달한다. 문제는 사진과 이미지에 가득 담긴 자랑거리나 화려함이 여과 없이 전달되다 보니, 절망이 보이지 않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사용자들이 열등감과 정신적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그 화려함이 마치 마드리갈 가족에게 주어진 능력처럼 우연 혹은 선천적인 이유로 가능한 것이라면, 인스타그램을 보는 이들은 미라벨처럼 더 크게 좌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접점은 결국 <엔칸토>가 미라벨을 통해 현대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미라벨의 깊은 좌절감을 보여준 후, 영화가 일반적인 전개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엔칸토>는 미라벨을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고 숨은 능력을 찾기 위한 여정에 떠나보내지 않는다. 대신 그녀를 매개로 다른 가족들이 마음속 깊이 숨겨둔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이를 통해 특출 난 능력을 지닌 이들도 능력이 없는 미라벨 못지않게 깊은 흉터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미라벨의 두 언니인 루이사와 이사벨라는 자신의 솔로곡을 통해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누구보다도 강한 괴력의 소유자인 루이사는 마을의 모든 사람을 돕고 다가오는 그 어떠한 위험도 자신이 막아야 한다는 기대에 지쳐가고 있으며, 자신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완벽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 이사벨라는 설령 원하지 않는 상대와 결혼한다 해도 항상 같은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자신의 본모습을 가로막고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든다고 토로한다.
영화는 미라벨의 입을 빌려 이러한 가족들의 상처가 엔칸토를 만든 마법을 지켜온 할머니로부터 비롯한다고 지적한다. 갑작스러운 침략자들의 공격으로 인해 살던 집을 잃고 남편인 페드로와 사별해야 했던 그녀는 항상 가족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능력을 받아야만 하고, 그 능력을 완전히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그러나 그녀의 신념이 낳은 기대와 의무감 때문에 능력을 받지 못한 이는 무시당하고, 능력이 있는 이들도 실패해해서는 안 되고 더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점점 피폐해진다고 미라벨은 말한다. 또 능력이 없는 자신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할머니에게 과도한 부담이 한 명 한 명의 개인을 억누르는 사이 공동체의 유대, 곧 마드리갈 가족의 유대와 가족을 감싸고 있던 마법의 힘이 무너진 것이라고도 항변한다.
사실 미라벨의 지적과 항변은 그저 영화 속 이야기로만 보이고 들리지는 않는다. 미라벨과 두 언니의 모습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 따르면 실패한 이들을 위한 마땅한 구제책이 없는 현대 사회에서 능력이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실패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불안증, 강박적 완벽주의, 취약한 자부심"에 시달린다. 한편 능력이 없다고 판단된 이들은 "극심한 사기 저하와 함께, '나는 실패자야'라는 굴욕감"에 시달린다. 전자가 미라벨의 두 언니라면 후자는 미라벨이라 볼 수 있고, 이 경우 세 자매가 속한 마드리갈 가족은 결국 현대 사회에 대한 비유나 다름없다. 즉, <엔칸토>는 신자유주의가 만든 경쟁 체제와 이를 지탱하는 담론인 능력주의, 그로부터 배제되어 분노한 이들과 그로 인해 피폐해진 이들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가득한 작품인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엔칸토>는 실패한 이들을 위한 재도전의 기회와 서로 다른 개인 간의 연대 의식과 책임이라는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중심에는 미라벨의 삼촌인 예언자 브루노가 있다. 불길한 예언을 하다 보니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심지어 가족의 미래를 잘못 보면서 할머니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했던 그는 가족과 마을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처럼 가족 내에서 이질적으로 여겨지는 미라벨을 만난 후 자신의 실패를 만회할 두 번째 기회를 잡기로 결정하고, 미라벨의 조력자가 되어 마법이 약해지는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외에도 영화는 두 번째 기회를 잡은 다른 이들의 모습도 비춘다. 미라벨에게 능력을 얻을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나,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다시금 위기에 처한 마드리갈 가족이 그간 도움을 주었던 마을 사람들로부터 역으로 도움을 받으며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모습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왜 <엔칸토>에서 미라벨이 집과 엔칸토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지, 왜 다른 디즈니 작품 속 주인공과 달리 여정을 떠나 성장하는 원형적인 영웅 서사를 따르지 않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미라벨의 할아버지가 침략자들에게 맞서다가 사망했을 때 할머니는 주어진 마법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으니, 엔칸토라는 마을과 그 마을을 만든 마법은 자체로 두 번째 기회다. 따라서 미라벨이 마주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모두 엔칸토 안에 있다. 그래서 엔칸토에 깃든 마법과 그 마법이 만들어낸 화려함은 단순한 시청각적 즐거움보다 더 깊고 큰 감흥과 통찰, 더 나아가 위로를 선사할 수 있다.
물론 <엔칸토>가 결점이 아예 없는 작품은 아니다. 마드리갈 가족에 속한 인물이 너무나도 많아서 각 능력의 조합이 보여주는 재미와는 별개로 전개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것, 뮤지컬 애니메이션인데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 넘버가 없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또 결국 마법이라는 환상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암시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디즈니스러운 결말이 내포한 근본적인 한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했거나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엔칸토: 마법의 세계>가 충분한, 어쩌면 충분함 이상의 위로를 건네는 디즈니다운 매력이 가득한 우화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A(Acceptable, 무난함)
배제당하거나 완벽해지는 것에 이골이 난 모두를 위한 두 번째 기회의 땅, 엔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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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전주에서 니시카와 아사코 PD를 만나다.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 기자로서 2024년 5월 2일,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인 <새벽의 모든> 프로듀서님인 니시카와 아사코 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아이는 귀족>, <아주 긴 변명>, <멋진 세계>, <더 피시 테일>등의 제작자로서 어떤 사람이든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영화를 제작해 오셨던 것만큼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했다. 정말 진지하고 세심하게 인터뷰해 주셨던 니시카와 아사코 프로듀서님과 나눈 대화를 전해보려 한다.
Q. 전주는 어떠셨나요? 영화제에 참여하시게 된 소감이 어떠신가요?
A. 인천에서 전주로 올 때 굉장히 멀었거든요. 정말 어느 정도의 시골까지 가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딱 와서 보니까 시골이 아니고 도심이어서 굉장히 놀랐고요. 지나가다 보면 영화제를 위해서 만들어진 여러 가지 포스터나 시설들이 굉장히 많아서 그런 걸 보며 영화제에 딱 최적화돼 있는 지역이구나 여기 있으면서 즐겨야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Q. PD님이 제작하신 영화들을 챙겨 봤는데,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평범한 일상을 찾고 싶어 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주로 영화를 제작하실 때,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하시는지요.
A. 사실은 제일 중점을 두는 것은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거나 장르물은 저와 안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일상이 얼마만큼 드라마틱한지 잘 알기 때문에, 평범함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게 굉장히 기적 같은 일이기 때문에 그 평범함을 그리는 것을 많이 다루고 싶습니다.
Q. 제작하신 영화 중, 가장 애정 가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A. 요코미치 요노스케라는 작품의 주인공이 가장 개성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의 원작은 요시다 슈이치의 <요노스케 이야기>라는 소설이거든요. 그 작품의 주인공이 가장 개성적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요노스케 이야기>
일본에서 어떤 한국 유학생이 누군가를 돕다가 사망한 사건이 있습니다. 근데 사실 뒷 배경에는 그 학생을 또 구하려고 했던 일본의 카메라맨이 있어요. 그 카메라맨에 대한 얘기인데 이 영화는 그 당시 그 사건 얘기가 아니라 어렸을 적 젊었을 때 어떤 인생을 보냈는지에 대해서 그렸어요. 그 캐릭터가 가장 지금 인상에 많이 남습니다. 두 분 다 죽었는데 이제 요코미치 요노스케라는 친구가 굉장히 평범한 대학생이고 청춘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친구들이 라디오나 뉴스로 그 사건을 듣게 됩니다. 내 친구인데, 그 친구가 죽었다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그리는 영화입니다.
*요코미치 요노스케 - 한국 제목으로는 요노스케 이야기.
*2001년 1월 26일 JR동일본 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 승객 추락사고
영화 <멋진 세계>
Q. 저는 멋진 세계의 주인공인 미카미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굉장히 이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그린 이유가 있을까요?
A. 사실은 그 미카미라는 주인공은 어떤 의미의 그런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그 시간으로, 그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생활을 원하고 있지만 자기가 이미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기 때문에 내가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가는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거죠. 그의 시선으로 그 살인자의 시선으로 보는 보통 사람들의 생활, 내가 가고 싶어도 손이 안 닿는 생활, 그러한 생활을 약간 이상적으로 나도 저기 가고 싶어라는 마음으로 그래서 그 주변 사람들을 아주 일상적인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영화 <그 아이는 귀족>
Q. 그 아이는 귀족이라는 작품에서는 막연한 동경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귀족이라고 그려지는 사람 또한 그 다른 일상을 원하는 동경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 후의 그들이 삶이 어떨지 또 궁금합니다.
A. 그 영화 이야기의 가장 큰 포인트는 솔직히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특히나 일본에서는 신분의 격차 이런 게 사실 없다고 저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잖아요. 우리 다 똑같은 사람인데라고 생각하는데 실질적으로 보면 각각 그 격차, '귀족이라는 계급이 있어서 귀족들이랑 교류를 못하고 이런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격차가 있어요'라는 것을 가시화하기 위한 영화가 그 영화의 가장 큰 포인트예요. 근데 영화에서 그래서 각자가 가진 숙명 같은 게 각각 다 있는데 그 숙명을 넘어서 어떤 삶을 원하는지 각자가 생각하는 거를 그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면서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 행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 경제적 회복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거를 꼭 실행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그거에 대해서 이제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을 건데 그 사람들이 각각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까지가 그 영화에 표현이 돼 있어요.
그래서 어쨌든 영화에는 하나코라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자기가 원하는 거를 계속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고 있고요. 또, 미키는 그 안에서 나는 이렇게 살아야지라고 하고 그대로 인생을 짓기 시작을 해요. 근데 그 안에 정말로 내가 생각대로 다 안 돼 어떻게 거지 하고 싶은데라고 하다가 포기를 하고 그냥 이대로 살자라고 하는 게 코이치로라는 주인공이에요. 이런 3인 3색을 그대로 그려냈던 영화입니다.
영화 <새벽의 모든>
Q. 이번 영화 새벽의 모든에서 이제 원작 소설을 좀 보셨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이 반영되기를 좀 바라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A. 일단은 소설을 읽고 가장 큰 것은 PMS와 공황장애 였습니다. 이 소재는 어떻게 해도 뺄 수가 없는 것이기에 그대로 살렸고요. 그다음에 두 사람의 이런 애매한 이런 관계성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그렸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드렸어요.
그리고 이제 원작에서는 구리타 금속이었어요. 구리타 금속이라는 회사인데 거기에 나오는 일하시는 아저씨들 원래 소설이 아마 우리 영화보다 조금 더 연세가 더 있는 설정이거든요. 근데 그분들도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그분들은 반드시 살려줬으면 좋겠다 이런 부분이 있었습니다.
Q. 이번 제작 과정에서 좀 힘드셨던 점과 좀 제일 인상 깊었던 그러니까 재미있는 에피소드 같은 게 있으신가요?
A. 일단 첫 번째로 이제 가장 힘들었던 게 이 기획이 이제 예를 들어서 이제 제작되기 2년 전부터 이제 이 기획이 나와서 사실은 소설을 보고 그 소설 내용이 있는 것만으로 먼저 캐스팅을 했거든요. 배우들이 캐스팅을 했는데 캐스팅을 하면서 감독님한테 별도로 또 의뢰를 드렸죠. 그리고 시나리오가 나중에 나오게 되잖아요. 그러다 근데 그 기간이 딱 코로나 기간이었어요. 그래서 만나지 못하는데 캐스팅해야 되고, 만나지 못하는데 시나리오를 제작해야 되니까 회의를 계속 연속해야 되고 하는 그런 약간 좀 확실하게 뭔가가 다가오는 게 없는 그런 상황이 힘들었어요.
촬영장에서도 코로나를 굉장히 조심해서 촬영을 해야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식사도 그렇고 촬영 시간도 그렇고 약간 굉장히 제한이 좀 많았거든요. 근데 그중에 또 코로나 걸린 사람이 또 나와요. 그러면 그 걸린 사람을 어떻게 해서 우리가 촬영을 진행해야 될지와 같은 대처가 가장 힘들었어요.
저희가 이제 촬영을 딱 시작했을 때, 출연하는 배우들이 일본에서 굉장히 핫한 배우들이거든요. 이 두 사람이 날이 굉장히 좋은 날 걸어가며 이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촬영을 하는 씬이 있었어요. 촬영하는데 주변에서 자꾸 사람들 한두 명 3명 보더니 사진을 찍고 이걸 SNS에 올리고 이러니까 이런 통제가 안 되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촬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촬영 전에 스텝 거의 전체를 다 모아서 약간 워크숍 같은 걸 했어요. 원래는 워크숍을 하지 않아서 1개월 동안 같이 일을 하는데도 그 스텝이 있는데도 이름도 잘 모르고 제대로 이렇게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하루 워크숍을 했어요. 워크숍을 했더니 그 효과가 정말 좋았어요. 예를 들어서 서로서로 옆에서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니까 이름도 알게 되고, 그 사람들의 개성도 각각 다 알게 되고, 서로가 어떤 사람들인 하루 만에 파악이 좀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현장을 시작을 했을 때 굉장히 편하게 현장을 시작을 했어요. 구리타 금속이라는 회사의 분위기처럼 똑같이 우리가 촬영을 할 수 있었구나라는 거를 촬영 현장에서 많은 스태프들이 얘기를 촬영하고 나서도 그런 얘기를 굉장히 많이 해요. 그래서 그 워크숍이 가장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Q.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약간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이뤄야 할 성취 같은 게 있잖아요. 그래서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뭐가 있을까요?
A. 일단 이게 굉장히 마음에 확 와닿는 질문인 게 사실은 지금 저 자체가 아마 일을 시작한 이 타이밍 일반사보다는 좀 늦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기 빈둥빈둥 대는 시기가 한 3년 정도 있어서 아마 같은 연배의 친구들이나 이 사람들에 비하면 차이가 좀 있는 편이에요.
그래서 저 자체가 좀 늦게 시작을 하다 보니 일을 딱 시작을 했을 때, 뭘 해도 주변이 나보다 어린 사람들 동기들이 다 어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근데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랑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조급해질 수밖에 없잖아요. 조금이라도 빨리 뭔가를 해야 되는데 그게 또 안 되는 경우도 있어서 굉장히 사람이 조급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저는 자기 페이스를 잘 잡고 그 타이밍을 잘 지켜서 천천히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게 어떤 불교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윤회로 다시 태어나는 게 12번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12번 그 인생을 다시 이제 시작을 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몇 번째 지금 태어난 걸까 몇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가라고 생각했을 때 나보다 훨씬 어린데 훨씬 모든 걸 엄청 많이 알고 잘하는 사람들이 주변에는 있을 수 있잖아요.
저 사람 10번 11번 어쩌면 12번일 수도 있어라는 생각을 하고 그럼 나는 뭐지 나는 첫 번째야 첫 번째니까 지금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내 페이스를 지키면서 천천히 나가자. 그러면 나도 결국에는 12번 산 사람처럼 저렇게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내 페이스를 지키자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은 경제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굉장히 큰 직책 이런 거를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아마 그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의 목표일 수도 있겠지만 과연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성공이란 무엇인가라고 생각을 했을 때 행복한 게 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 행복을 뭘로 채워야 될지를 생각하는 게 어떤 의미에 좋지 않을까 그래서 아까 처음에 질문에 성취가 늦다는 이 늦음이 사실은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남이랑 비교해서 내가 이것보다는 내가 그 행복을 어떤 걸로 채워나갈지라는 거를 생각하 가장 중요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영화도 각자의 행복 추구에 굉장히 많이 포인트를 두고 제작을 해 왔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좀 듭니다.
Q. 이때까지 영화를 제작하시면서 제일 케미가 좀 잘 맞았던 감독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다들 너무 좋으신 분들이라. 근데 이제 지금 미야케 감독님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이번에 처음 이제 일을 하죠. 일을 지금 했거든요. 근데 너무너무 이제 되게 훌륭하신 분이고 사실 10살 차이가 나요. 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배우는 부분이 많아가지고 너무 훌륭합니다. 누군지는 밝힐 수가 없네요 (웃음)
가장 길게 같이 일을 한 분은 니시카와 미와상이에요. 대학 졸업했을 때부터 이제 취직하고 나서도 계속 같이 이제 만났는데, 이제 서로서로 마음도 터놓는 그런 사이예요. 소설도 쓰면서 사람에 대한 관찰력 또한 굉장히 예리해요. 그러다 보니까 옆에 있으면 어떤 열등감을 굉장히 많이 느낀 지만 굉장히 그 사람이 이제 많은 거를 깊이 생각하고 그릇이 엄청 큰 사람입니다. 그래서 존경을 하는 분 중에 한 명이기도 하죠.
많은 감독님분들과 지금까지 작업을 해봤는데요. 지금 PD로서 내가 그분들한테 어떤 거를 제공할 수 있을지 항상 일 시작할 때 불안하기도 하고 하고 어떤 걸 또 드려야 될지 알 수 없는 그런 분들도 있잖아요. 근데 이제 항상 일을 같이 하고 싶을 때 내가 어떤 도움이 가능한지를 가장 먼저 생각을 하고 앞으로도 어떤 분이랑 일을 할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부 최대한 찾아서 그분이랑 맞춰나가면서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제작하시는 영화들이 한국에 개봉하지 않은 것도 있잖아요. 이제 조금씩 이제 개봉을 하고 있는데 한국과의 합작도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개봉을 못한 영화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래서 뭔가 기회가 된다면 한국분들이 봐줬으면 좋겠다는 게 좀 많거든요. 그런 기회를 꼭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고요. 사실 한국이랑은 예전부터 뭔가를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많이 했는데 이제 코 프로덕션이라고 해서 그 사전 작업에 일본이 예전에 인정을 하지 않았어요. 한 획으로 쫙 다 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지금 코 프로덕션을 지금 어느 정도 인정을 하는 분위기가 돼서 한국이랑 같이 협조를 해서 뭔가를 할 수 있게끔 합작을 할 수 있게끔 향후 그런 방향으로 좀 추구를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지금 현재 일본의 감독님들이 영어가 안 되는 부분이 좀 많아요. 그래서 어딘가 협업하자 나가자 같이 하자 이러면 굉장히 좀 주저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국내 제작에 이제 그쳐 있는 분들이 좀 많거든요. 근데 공유 가능한 부분이 있다면 한국뿐만이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랑 협업을 했으면 좋겠는 게 예를 들어서 이제 그 아이는 기존 같은 경우에도 사실은 여성에 대한 이런 생각들이 굉장히 공감 가능한 요소들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공감 가능한 부분들을 찾아서 같이 만들어서 같이 뭔가를 색깔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작업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Q. 제작자의 길로 들어서야겠다는 계기가 있으셨나요?
A. 학생 때 직접 이제 자주 영화, 독립 영화 같은 것을 좀 제작했었어요. 근데 그때도 사실은 난 디렉터가 돼야지라고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 계속 그때도 영화를 제작할 때 '이 많은 스태프들이 다 같이 제작을 했는데 이거를 어떻게 보여주지?' '우리의 이런 작업들을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앞으로 직업으로 영화 쪽에서 일을 하려고 했을 때 예를 들어서 만들어진 영화 또는 만드는 영화에서 내가 어떤 부분에서 이제 예를 들어서 공연이 가능하지 내가 뭐를 할 수 있을지를 계속 생각을 했어요. 어떤 의미의 이 디렉터 피드라는 입장이 관객이랑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내가 보고 싶은 거 또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거 어떻게 해서 제공을 하면 난 볼 것이다 이런 생각이 일반 관객들이랑 가장 가깝기 때문에 가장 일반인 가장 비전문가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포지션에서 일을 하는 게 나한테는 가장 맞지 않을까 그리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기 때문에 뭔가 계기로 이걸 돼야지라고 한 건 아니고 옛날부터 계속 생각을 해왔다는 게 정답일 것 같아요.
Q. 그럼 혹시 연출도 생각이 있으신가요?
(놀라며 손사레를 치셨다.)
연출은 전혀 생각이 없지만 대신에 아까부터 이제 예를 들어서 이렇게 만들어진 작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일단은 만들기 위한 기획이 필요하고 만들고 나서 배급 어떻게 보여드려서 어떻게 모두가 즐길 수 있는지 많은 분들이 봐줄 수 있어 생각을 하잖아요. 이게 큰 틀에서의 연출이라고 만약에 생각을 한다면 우리 PD들도 연출을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어쨌든 우리가 이거를 만들어서 누구한테 보여주는 이 단계에서의 그 많은 분들한테 보여줄 거를 생각을 하는 요 일만 하는 거지 내가 뭔가 디렉션을 해가지고 연출을 해서 뭔가를 만들고자 이런 생각은 전혀 없고 연출의 일부를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은데요. <새벽의 모든>을 기다리는 한국 관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A. 일단 그전에 좀 여쭤보고 싶은 게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예를 들어서 PMS나 영화 속의 공황장애와 같은 증상이 있을 때, 회사를 쉴 수 있다거나 또는 남녀 관계없이 저 그래가지고 좀 그래요.라는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요?
Q 그러니까 할 수 있다고 대외적으로는 되어 있지만 사회적으로 눈치를 좀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날 쉬는 날에 이제 직장 동료들이 이제 나의 업무를 이제 떠맡아야 되다 보니 암묵적으로 안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A. 베를린이나 프랑스와 같은 곳을 가면 아니 저 당연한 거를 왜 영화까지 해서 이렇게 얘기를 해야 되지 이런 국가들도 있긴 있더라고요. 그래서 만약에 한국이 일본이랑 같이 그런 상황이라면 남녀 누구든 다 이 영화를 봐 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게 어떤 문제를 이제 그들이 갖고 있는지를 서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서 적어도 저런 문제가 있구나라는 걸 적어도 인지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좀 들었습니다.
그게 이제 공황장애를 앓는 분들도 마찬가지거든요.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데 굉장히 힘들어하는 사람이 어쩌면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같이 호흡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것을 느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만약에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줄 수 있는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여러 가지 생각하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PMS도 그렇고 공황장애도 그렇고 그 외에 다른 증상들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또,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그런 영화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미야케 쇼 감독님이 만든 영화, 영화로서의 즐거움도 같이 즐겨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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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함의 이름으로 내리는 형벌
* <더 메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더 메뉴 (2022)
감독: 마크 미로드
출연: 랄프 파인즈, 안야 테일러 조이, 니콜라스 홀트
장르: 스릴러
상영시간: 107분
개봉일: 2022.12.07
순수함의 이름으로 내리는 형벌
참가비만 1250달러, 하루에 오직 12명의 고객만을 대접하는 외딴 섬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호손’. 그곳을이끄는 셰프 ‘슬로윅(랄프 파인스)’을 동경하던 미식가 ‘타일러(니콜라스 홀트)’는 연인 ‘마고(안야 테일러 조이)’와 함께 은밀하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초대받게 된다. ‘슬로윅’이 유명해지는데 일조한 음식 평론가, 레스토랑에는 크게 관심 없어 보이는 유명 배우, 호손의 단골손님과 사업가 친구 무리들 등 공통분모라고는 상류층이라는 것 밖에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특별한 코스 요리를 즐기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외딴 섬에서 함께 합숙하며 새벽부터 출근해서 밤까지 일하는 직원들은 ‘슬로윅’에게 충성을 바친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슬로윅’은 까탈스러운 고객들이 기대했던 음식들을 그만의 스토리와 함께 차례로 대접한다. 각자의 방식대로 음식을 즐기던 찰나 마치 하나의 쇼처럼 진행되는 코스 요리에는 섬뜩하거나 기이한 일들이 하나둘씩 동반되고, 레스토랑과 ‘슬로윅’ 셰프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순식간에 모두를 공포에 빠드린다.
시종일관 음침하고, 꺼림칙하며 극의 중반부부터는 소름이 돋는 순간의 연속이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천재 셰프라는 소재만으로 불쾌한 장면들과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생생하게 연출할 줄이야. 아무리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유능한 셰프가 아니라면 맛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지 보다는 어떻게 요리하는 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영화 자체적으로도 증명해주는 듯하다. 외딴 섬의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마치 ‘미드 소마’ 같은 광기 어린 스릴러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은 퍽 신선했다. 하지만 맛이 궁금할 정도로 화려함을 수놓은 요리들과 호손 레스토랑의 셰프와 직원들이 조성하는 서스펜스는 극에 내포된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기도 했다.
호손 레스토랑의 음습한 코스 요리는 내면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감독과 ‘슬로윅’의 날카로운 일침과도 같다. 셰프는 자신의 음식을 맛보며 즐거워할 고객들을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요리하지만,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셰프로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는 소수의 상류층 고객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춰야 하고 평론가들에게 깎이지 않기 위한 압박감을 견뎌야 한다. 그리고 성공한 셰프의 요리를 맛보러 온 돈 많은 고객들은 계급상의 특별함에 한껏 취해 권력을 뽐내려 하고, 음식의 흠을 찾기 위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씹고 뜯으며 요리를 분석하려 든다. 일명 음식 평론가라는 사람은 자신의 글 몇 자에 문을 닫은 레스토랑이 수 십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셰프는 어느덧 요리하는 걸 순수하게 사랑했던 과거의 자신을 잊어버렸다.
‘슬로윅’은 자신의 순수성을 무너뜨린 사람들에게 날릴 마지막 일갈을 준비했다. 자신이 공들여 만든 요리가 무엇인지도 기억도 못하면서 열 번도 넘게 방문한 단골 손님, 요리라고는 할 줄도 모르면서 음식을 분석하는데 혈안이 된 남자, 권세에 취해 있는 음식 평론가와 같은 사람들은 그에게 있어 충분히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최대한으로 만족할 만한, 그리고 과오를 뼈저리게 느낄 만한 최후의 만찬을 준비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맛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반면 완벽한 코스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죽임까지도 불사하는 ‘슬로윅’의 요리는 하나의 예술을 감상하는 듯하며 계급론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은 그가 단지 그럴싸한 비주얼로 포장할 줄만 아는 스타 셰프가 아님을 뒷받침한다. 그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빈민들의 주식이었던 빵을 ‘보통(Common)’ 사람들이 아닌 손님들에겐 대접할 수 없다며 ‘빵 없는 곁들임’을 내놓고, 그 마저도 예술이라며 떠받드는 고객들의 태도는 실소를 불러일으킬 정도다.
하지만 완벽한 계획에도 언제나 변수가 발생하듯 ‘슬로윅’이 촘촘하게 짜 놓은 판에도 제멋대로 굴러가는 장기 말 하나가 상황을 뒤흔들어 놓는다. ‘타일러’가 데려온 ‘마고’는 원래 초대 받지 않았던 손님이고, 그에 대한 정보가 없던 ‘슬로윅’은 이 정체불명의 여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잠깐 곤혹스러워 한다. 확실히 ‘마고’는 식당에 초대받은 상류층 사람들과는 다른 부류의 인물이다. 편하게 식사해야 할 공간을 긴장감과 섬뜩함으로 채우는 ‘슬로윅’에게 당당하게 불쾌함을 표출하고, 무지성으로 그를 추앙하는 ‘타일러’와 달리 원치 않는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이런 ‘마고’의 독단적인 행동을 보며 ‘슬로윅’은 그가 남들처럼 추악함으로 뒤덮인 인간이 아님을 곧바로 알아본다. 초대 받은 손님들의 운명은 이미 바뀔 수 없도록 정해져 있지만, 마치 생존게임 속 깍두기와도 같은 ‘마고’만큼은 유일하게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키를 쥐고 있었다. ‘슬로윅’의 집에 몰래 잠입해 그의 과거를 들여다 본 ‘마고’는 영리하게도 정통 치즈버거를 주문하며 그의 상실된 순수성을 일깨운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법한 주문에 잠시 당황했던 ‘슬로윅’도 치즈버거를 만드는 동안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며 과거 순수하게 음식을 사랑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듯 하다. 고급진 코스 요리에 시종일관 인상을 찌푸렸던 ‘마고’는 그제서야 허기짐을 달랠 수 있었고, 패스트푸드라 할지라도 음식을 순수하게 즐길 줄 아는 그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 때문일까. 온갖 산해진미를 내놓았던 그 어떤 고급 코스 요리보다도 ‘마고’가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던 치즈버거가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음식을 즐길 줄 모르고, 평가하고 분석하는데 꽂혀 있는 사람들을 향한 풍자는 곧 예술을 순수하게 즐기려 들지를 않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단지 가벼운 오락의 목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을 뿐인데, 눈에 불을 켜고 흠집을 찾아내고 구조를 해체하여 분석하는데 열중하는 시네필들은 언제나 순수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태도로 작품을 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각자가 돈을 내고 소비를 한 것이기 때문에 음식이건 영화이건 평가를 하는 것도 그들의 자유다. 다만 분명 비평하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고, 영화를 볼 줄 안다는 혹은 비싼 요리를 즐기며 서슴없이 유명 셰프의 음식을 평가할 수 있다는 일종의 과시 욕구를 누리고자 한다. 예술가들의 언저리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는 것도 이들이지만, 동시에 예술가들에게 가장 해로운 것 또한 그들이라는 모순적인 생태계를 거침 없이 돌려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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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영화 시민 케인의 공동 각본가 맹키위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그가 시민 케인을 쓰게 된 이유나 쓰는 과정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영화사나 미국 당시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면 조금 흥미가 떨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에요.
마치 예전 흑백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이 드는데요. 흑백영화 특유의 화면 질감과 음향이 완벽히 재연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맹키위츠가 보고 들었던 그 당시의 할리우드 권력과 정치인들의 위선이 그대로 영화에 담겨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점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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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만남으로 이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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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 완전 범죄를 완성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