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0932023-01-03 21:01:18
영화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줄거리 결말은?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책 말고 영화 리뷰
제가 얼마 전에 영화를 보고 왔어요!!영화를 보면서 맛있는 팝콘도 먹으면서 즐거운 영화관람을 하고 왔는데
영화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라는정말 기이이이이인~~ 영화를 보고 왔어요 왜 아바타 안 보고 이거 봤어요?! 라고 물어본다면! 영화 시간이 이게 맞았어요... 하하?! 그래서 그냥 보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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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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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과 내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뜬다. 더 일찍 일어나고 싶었지만 12시에 일어나는 삶에 익숙해졌다. 아침에 아빠한테 ‘아빠, 오늘은 좋은 크리스마스예요’라고 다시 누운 기억만 난다. 그리고 동시에 백수 생활 6개월 차. 빈도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때 당시 속은 무진장 쓰렸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까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다시 어학부터 따야 뭐라도 하겠지? 그러나 하고 싶은 공부, 그러니까 인적성과 ncs만 파고 있으니 나도 변덕이 심한 편이다. 왜 필요할 때 필요한 걸 안 하는 걸까? 공부하는 일도 마음이 움직이는 것인데 말이다. 뭐든 재미를 붙였다는 것이 희망적이다. 확실히 난 내일이 기다려진다. 그 자그마한 성취감이 쌓이는 쾌감이 어마무시하다. 그전 날 내가 뭘 했던 뭐든 해나가는 과정이 좋았다.
나만 이런 건 아닐 것이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불안함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하다못해 유느님도 ‘말하는 대로’라는 음원을 낸 적 있는걸. 그리고 내가 봐왔던 수많은 영상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이 시기가 불안하다고 말했던 수많은 사람들. 내 주위의 누군가도 서류광탈은 아프다고 말한 적 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그냥 정해진 무언가가 있거니-하고? 그동안 많은 걸 깨왔다고 생각했지만 여기가 내 한계일까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하지만 이런 속상한 상황에도 뭔가 즐거운 건 있을 거라 믿는다. 아무튼 내일은 확실히 기다려진다고.
이런 나도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아무튼 크리스마스다. 전날 닭강정이 먹고 싶어 아무 데나 가서 결제했다. 하지만 정작 알맹이는 없고 오징어 맛 나는 과자만 양의 절반이었다. 적어도 6천 원 닭강정과 10500원어치가 양이 비슷하면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 도저히 그 오징어 맛을 참을 수가 없어서 엄마 몰래 쓰레기 봉지에다 갔다 놨다. 이 생각을 하다 갑자기 지금 내가 현재 있는 카페와 내 방 안이 생각난다. 카페는 깔끔한 반면 내 방안은 뭔가 물건이 많았다. 책상부터 시작해 거울, 옷까지 듬성듬성 삐져나온 물건들이 갑자기 보기 싫어진다. 아. 집 가면 방부터 치워야지. 새 해가 머지않았는데 새 마음 새 뜻으로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갑자기 할 일들이 뭉게뭉게 떠오른다. <노량> 쓴 것도 좀 고치자. 내일은 레이저 제모가 있다고. 아니야. 영어 단어부터 외울까? 하루라도 빨리 어학을 치워야 뭐라도 할 수 있다.
요즘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생각이다. 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걸까? 사실 먹고살기만 해도 큰 문제는 없다. 나는 기자인지 평론가인지 모를 영화 글을 쓰는 게 재미있다고. 그냥 기자로 살아도 힘든 판에 영화기자로 살면 일단 경쟁률에 못 이길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겸손하게 살기로 한다. 그리고 영화 글을 쓸 수 있는 온오프상의 지면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 브런치가 나에게 영예로운 무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수익으로 이어지기만 하면 참 좋을 텐데. 재미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도 있는 법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 내가 있는 이 카페의 사장님이 음료를 다시 채워주셨다. 한 3년쯤 된 것 같다. 자주 가던 카페가 영업을 종료하고, 젊은 여자 사장님이 운영하고 있는 곳은 오랜만이었다. 애정을 쏟는 곳에 자주 방문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다. 그리고 정들게 되면 상대도 나에게 정을 쌓는다. 그 쌓은 정은 이후 사람 하는 행동을 결정한다. 20대 초 자주 가던 카페가 영업을 종료하고 채울 것이 없어 이곳저곳 많이 다녔다. 나를 ‘아들!’이라 부른 카페 사장님도 있었지만 내가 활동하는 시간대(?)와 영업시간이 맞지 않아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완벽하게 빈자리를 채우는 걸 무의식 중에 바랬던 나. 조금 모자라보여도 마음 둘 곳을 원했다. 하지만 20대 초 추억이 서려있는 곳만큼의 무언가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대신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서 다행이다. 어릴 때 가던 곳은 사장님이 멋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 아는 사장님은 성격이 정말 좋으시지만 잘 알지는 못한다(물론 이 분도 멋있는 분일 것이다). 그래도 내 시간과 맞는 영업시간이 있다는 점에 만족해야겠지. 어릴 때 가던 곳이랑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이스티와 초코라테 맛집이라는 점이다. 초등학생 입맛인 나에게 적합한 곳이다. 아. 이런 내 입맛을 충족시키는 식당도 현재의 카페 근처에 있다. 지금이야 돈 없는 불쌍한 애다. 하지만 한 때 점심으로 ‘초리’ 가서 난반정식 먹고 여기서 공부하면서 카페로 딱 하루를 마무리하면 그 무엇이 부럽지 않았다. 이 식당도 생각해 보면 사장님과 나 사이의 3의 인물 덕에 알게 된 곳이다. 누군가에게 준 애정 덕에 새로운 장소를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맛있는 생각을 하다 문득 집에 갈 시간이 됐다는 걸 체감한다. 오늘은 12월 말. 연말이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쌓은 데이터베이스 중 하나는 ‘난 사람 구경을 재밌어한다는 점이다. 연말에 행복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 환하게 웃는 사람들. 카페 안에도 몇 커플이 보인다. 좋겠다! 나도 새로운 해에는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딱 체감되는 것이 있다. 바로 해가 바뀌며 소망이 달라진 것이다. 사랑을 찾으면 좋겠지만 딱히 없어도 뭐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진다면 문득 두려워질 것이다. 영화를 못 보고. 글을 못 쓰고. 가끔 책 못 읽고. 처음 가 본 서울독립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 영원히 갈 수 없다면 아득해진다. 언젠가 사랑을 찾을 거야!라는 희미해지는 희망도 나를 살게 하지만 지금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정말 특별한 경험을 했다. 올해 1월에 내가 쓴 글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는 분을 우연히 본 것이다. 내가 쓴 글을 네이버 검색에서 찾았다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런 반응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이 아직까지도 기쁘다. 이런 경험을 하니 다시 목표를 재조준하게 됐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게 내 가치를 보여주고 싶다.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의지하게 만든다면 더없이 행복할 거라는 바람이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내 사랑도 언젠가 찾을 것이다. 내 운명 같은 사랑을 찾고 싶어 하는 욕망이 약해지긴 했어도 내가 원하는 사랑은 아직까지 내 마음 안에 남아있다.
나에 대한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혼자 하다가 다시 내 시선에 집중한다. 하하 호호 웃는 사람들. 사람들은 각자 즐거운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내 뒤에 알콩달콩 다투는 커플이 있다. 두 사람은 같은 신발, 그러니까 컨버스를 신고 있었다. 셀카도 찍고 장난도 치면서 방긋 웃고 있다.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저 두 사람도 오늘을 추억하며 행복해할까? 부러운 마음에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린다. 바로 옆자리다. 두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둘은 친구인 것 같았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걸 보니 아마 여행 온 것 같다. 대놓고 쳐다보면 좀 그렇잖아? 에어팟을 빼고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또 흘깃 쳐다본다. 제주 사투리 억양 자체가 없다. 야. 여기 근처에 뭐가 있다는데?(그 ‘뭐’를 비롯한 여러 단어가 잘 들리지는 않았다) 여기 한 번 가보자. 야. 내일 우리 여기 가보는 건 어때? 나 여기에서 뭐 사서 가려고. 두 사람은 세상 즐거워 보였다. 제주 여행 좋지. 내가 서울 가서 느끼는 기분을 저 사람들은 느끼는 것 아냐? 그 여행을 서로 사랑하는 친구와 온다면 기쁨이 두 배가 될 것이다. 금세 잘 들리지 않았던 단어 몇 개를 상상한다. 두 친구 중 한 명은 근처 굿즈샵에 가서 선물을 사서 주변 사랑하는 이에게 주고 싶은 것 아닐까? 어릴 땐 몰랐지만 선물은 필시 주는 사람이 더 기쁜 일이다. 새삼 드는 생각. 여행은 이렇게 내일의 나를 기대하게 만든다. 동시에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힘은 굳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매일 있다. 나에겐 아직 그런 사랑이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이 사랑이 없는 삶이, 또 떠나간 나의 모습이 얼마나 텅 비었을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깊게 배웠던 것 중 하나. 상실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생기는 그 빈자리가 너무나도 싫었다. 왜 다들 울어야만 하고. 왜 다들 그렇게 사라져야 하는 걸까. 사라지지 않을 수는 없는 걸까. 닭강정의 맛. 같이 치킨 먹는 엄마. 언젠가 만날 내 운명 같은 사랑. 영화와 글쓰기.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와 김혜리의 필름클럽. 우상과 친구들. 이 카페 사장님. 하나하나 찍는 쿠폰들. 내 소망과 꿈까지. 나의 세상을 이루는 무언가가 사라진다면 이내 곧 나머지도 없어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예감하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님과 김혜리 기자님이 사라진다면 나의 영화와 글쓰기에 큰 공백이 생길 것이다. 영화와 글쓰기가 사라진다면 나의 감성적인 면모가 어느 정도는 텅 빌 것이다. 닭강정의 맛이 사라진다면 이 카페에서 마실 초코라테의 향을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언젠가 만날 사람들에게 ‘미안했어’라고 말할 일 자체가 사라진다면 언젠가 만날 새로운 사랑도 나의 어리숙함에 도망칠 것이다. 집 안에 혼자 남는 삶이야 뭐 두말할 필요 없다. 이렇게 나의 인생의 많은 것들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당연히 난 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다. 어느덧 싫어하는 것들에 별로 관심을 안 두기 때문인지 이제 생각을 어느 정도는 던 것 같다. 내 주위의 것들이 날 떠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심 이 머릿속을 맴돈다. 왜 다들 죽는 걸까. 죽지 않을 순 없는 걸까. 영원히 남아있을 수는 없을까.
<너와 나>는 존재와 상실에 관한 영화다. 세미(박혜수)는 머릿속에 걱정이 가득하다. 학교에서 자다가 꿈을 꿨다. 그 꿈속에서 둘도 없는 단짝친구 하은(김시은)이 죽었다. 뺨에 눈물이 흐른다. 눈물을 닦는 세미. 담임 선생님께 쪼르르 달려가서 조퇴를 신청한다. 될 턱이 없다. 호기롭게 자율학습을 째는 세미. 집에 잠깐 들른 후, 하은이가 있는 병원으로 향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세미와 하은. 사실 세미에겐 비밀이 있다. 하은이를 사랑하고 있던 것이다. 언젠가 세미는 하은이에게 널 정말 사랑한다고, 뭐든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려고 한다. 수학여행에 간다면 이 고백이 쉽겠지? 하지만 하은이에겐 사건이 있다. 바로 최근에 자전거에 치여 다리를 다친 데다 가정형편이 충분하지 않아 여행비를 댈 수 없던 것이다. 다급한 세미. 고백도 하고 싶고. 다른 친구들이랑도 지내고 싶고. 수학여행도 가고 싶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목표는 ‘너(하은)와 함께 행복하는 것’이었다.
이 <너와 나>는 이 세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존재와 상실에 대해 탐구한다. 네가 없는 세상, 그 나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세미가 없는 빈자리를 보여주거나 하은이가 없는 빈자리를 보여준다. 하은이가 먹던 사과를 세미가 바라본다던가, 주인 잃은 강아지를 이야기의 핵심으로 내보이는 것이 그렇다. 이 존재와 상실을 연이어 보여준 목적은 두 사람의 사랑에 빛을 비추기 위함이다. 두 사람은 서로가 없는 빈자리를 쫓아간다(특히 세미를 중심으로 하은이의 빈자리를 탐구한다). 동시에 세상과 충돌한다. 그리고 그 서로에 대한 절실함이 모아지는 지점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두 소녀가 서로의 빈자리를 체감하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 된 것이다.
이제까지 수도 없는 영화를 봤다. 영화 글을 쓰는 것이 삶의 재미 중 하나였던 나. 당연히 영화와 관련된 이런저런 추억이 있다. 2023년 상반기엔 <바빌론>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가보고 싶었던 서울독립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 방문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선명한 기억은 후반기에 있다. <너와 나>를 보고 운 기억이다. 난생 안 해본 굿즈 수집이라는 것도 해보고, 티켓을 6번이나 샀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와 관련된 장소에 가봤다. 수많은 ‘사랑해’를 보면서 먼저 떠나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누군가 있다 떠나간 자리가 이렇게 황량하고 외로운 것이라는 걸 느꼈다.
내가 뽑는 단연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다. <헤어질 결심>과 <소설가의 영화>, <기생충>과 <버닝>만큼의 뛰어난 터치가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누군가의 마음에 남기 충분하다. 지나치게 많은 빛의 양. 이기적인 세미.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하은.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간 것들을 기억하며 ‘사랑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밖의 많은 사람들도 2014년의 4월의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잊고 살았던 나. 내가 사랑을 찾아 헤매던 날이 참 더없이 소중했다는 걸 체감한다. 동시에 이 시간 동안 사랑할 일이 많았을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거구나. 내가 없는 세상. 그리고 당신이 없는 세상은 이렇게 우울한 것 투성이구나.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이거 정말 큰 의미였다. 이거 하나라도 없으면 이 세상이 무너진다는 의미였다.
난 이 글을 구성함과 동시에 읽어주는 많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이 없는 세상은 온갖 눈물로 가득 찰 것이다. 흐릿한 하늘로 변할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 못해 맴돌 것이다. 여러분 덕에 생긴 행복한 기억이 우울함으로 변할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어떤 것들이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당신이 줄 사랑이 사라질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떠나간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지금 있는 것들에 따뜻한 것들을 줘야 한다. 그래야 먼저 보낸 이들이 그렇게라도 살아 숨 쉬어 우리들의 마음을 듣고 있을 테니까. 기억공간을 나서면서 느꼈다. 이 기억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었다는 예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올 한 해, 아니 그전부터 이 사회를 떠나간 이들에게 기억하겠다는 말을 전할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이 <너와 나>를 만든 스태프들과 감독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리고 김시은, 박혜수 두 배우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각자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언젠가 당신들이 이 글을 읽어 내가 인정받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리고, 2014년 4월 우리 곁을 떠난 이들과 또 2023년 이 사회에 있다 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하겠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고생 많으셨다. 새로운 해가 왔다. 다들 힘내자. 사라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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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니엄의 환희와 청춘의 질감에 관한 인상적인 스케치
술 냄새가 난다. 담배 냄새가 난다. 땀 냄새가 난다. 정돈되지 않은 지저분한 집에서 날 법한 냄새가 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약 냄새가 난다. 제대로 닦아내지 않은 정액 냄새도 문득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것 같다. 시끄럽다. 클럽 음악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내내 쿵쾅거린다. 싸우는 소리가 난다. 불평하는 소리가 난다. 서로를 원망하는 소리가 난다. 홀로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가 난다. 물건을 집어 던지는 소리가 난다. 저주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난다. 청춘의 냄새, 청춘의 소리다. 이 지독한 냄새와 소리 속에서, 여성 청년 비키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다.
2001년의 대만, 고등학교를 중퇴한 비키는 남자친구 하오하오와 동거 중이다. 하오하오는 ‘예술적 퇴폐’를 지향하는 남성이 갖고 있는 쓰레기 같은 전형성을 고루 갖추었다. 돈을 벌지 않고 여성의 노동에 의존한다. 아버지의 롤렉스 시계를 훔쳐 경찰 조사를 받을지언정 결코 직접 노동하는 법은 없다. 하오하오는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집의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비키를 의심한다. 그녀가 바람을 피운다는 망상이다. 자신이 노동하면 비키가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상한’ 하오하오는 이런 가능성을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하오하오는 클럽 음악을 만들고 친구들과 술 마실 때만 생기가 돈다. 가끔 욕구가 일어 다짜고짜 비키에게 관계를 요구할 때만 다정해진다. 자기 신세의 비참함에 심취해 마약을 하고 이를 말리는 비키를 경멸한다. 그렇다. 하오하오는 자신의 자발적, 의도적 비루함을 예술가의 고난으로 오독한다. 비키의 몸과 돌봄, 노동에 극단적으로 기생하면서도 그녀에게 군림하려 든다. 치가 떨릴 만큼 익숙한 인물이다(이상의 〈날개〉를 떠올려보라).
소란 끝에 비키는 하오하오를 떨쳐낸다. 그러고는 클럽 관리자 격인 잭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잭은 책임감이 있고 점잖다. 하오하오가 갖추지 못한 것을 가졌다. 그는 비키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일본으로 떠난다. 비키는 그가 남긴 흔적을 쫓아 일본에 따라간다. 잭은 그녀를 위해 숙소를 잡아주었고, 편지를 남겼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비키는 끝내 잭의 비밀에 다가가지 못한 채 혼자 남는다. 잭에게는 비키와의 관계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음지의 일을 처리하고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두 남자가 떠나간 후, 비키는 그제야 홀로 선다.
비키를 비난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도대체 왜 저런 남자들이랑 붙어 있냐’라는 책망은 그 욕망의 소유자도 적당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물음이다. 우리 모두는 종종 알 수 없는 동기로 이해 못 할 선택을 내린다. 문제는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혼란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다. 욕망과 충동의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그 후과를 알맞게 갈무리하는 것이 성인의 자격이다.
불쾌한 냄새와 소음으로 가득 찬 비키의 2001년은 지극한 성장통의 시기였다. 하오하오는 비키가 자신을 떠나려 할 때마다 애원하며 그녀를 붙든다. 그는 자신이 쓰레기인 것을 안다. 만에 하나 ‘예술가’로 성공하면 미련 없이 비키를 버리겠지만, 그 희박한 가능성이 현실로 도래하기까지는 기생할 상대가 필요하다. 그런 자신을 품어줄 여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 하오하오는 그래서 비키에게 더더욱 매달린다. 비키는 이를 관계의 특별함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하오하오의 곁에 머물렀다. 잭은 상대적으로 비키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그녀와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비키는 잭에게 사랑의 대상이 아닌 친밀한 타자일 뿐이다.
세상의 떠들썩한 환호와 함께 맞이한 새로운 밀레니엄은 비키에게 지리멸렬한 현실의 연장에 불과했다. 오히려 모두가 희망적인 미래만을 말했기에 비키가 살아가는 현재의 형편없음이 더욱 극화되었다. 2001년 겨울, 비키는 하오하오와 잭을 거친 후에야 자신만의 뒤늦은 밀레니엄을 마주한다.
영화는 내내 명멸하듯 깜빡거리는 불빛과 뿌옇게 번진 빛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카메라에 담긴 대상의 경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많은 것을 뒤엉켜 보이게 하는 이 이미지들은 청춘의 열악한 삶을 환기하는 시청각적, 후각적 자극과 맞물려 비키가 살아가는 현실의 혼탁함을 구체화한다. 비키가 문제적 남성들을 떨쳐내고 하얗게 눈 덮인 일본의 한 마을에서 마침내 혼자가 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곳곳에 쌓인 하얀 눈은 어둡고 음습한 방의 뿌옇고 경계가 불분명한 혼탁한 이미지들을 단번에 무력하게 만든다. 일상적 장소에서의 이탈은 종종 시공간의 감각을 새로이 배열하여 기존의 감각을 성찰할 자원이 되어주고는 한다. 자기 자신의 욕망으로 두 남자에게 연루되어 고통받던 비키는 이 극명한 빛의 대비와 일상적 시공간에서의 이탈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할 계기를 마련한다. 두 남자로 상징되는 벗어날 수 없는 폭력적 수수께끼를 뒤로하고 밀레니엄의 환희에 뒤늦게나마 동참하는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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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배우’ 임현식의 포부, “언젠간 영화음악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더 영 맨 앤드 더 딥 씨’는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 경쟁 장편 상영작이다. 아이돌 그룹 비투비 멤버이자 솔로 아티스트인 임현식의 미니 2집 앨범의 제목이기도 하다. 개막식 다음 날인 6일, 예술의 전당에서 임현식 배우를 만났다. 그는 ‘배우’라는 호칭에 민망한 듯 웃었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진지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음악 여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었다. 바다를 닮아 깊고 푸른 그의 이야기는 내내 신중했지만 막힘이 없었다.
‘더 영 맨 앤드 더 딥 씨’가 영화제 예매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임현식 배우님 어머님도 티케팅이 실패하셨다고요. (웃음)
어제 개막식 참여해 레드카펫 밟았는데 낯설지만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개막식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제가 영화인의 길에 발을 내딛은 느낌이라 설레고 감사했습니다. 팬분들께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어머니는 개막식만 보시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셨습니다. (웃음)
가수로서 영화제 참석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출품할 때 비경쟁 부문이라도 선정되기를 바랐는데 작품을 좋게 봐주셨는지 경쟁 부문까지 선정해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차분하고 무뚝뚝한 편인데 감독님께 전화로 소식 듣고 오랜만에 ‘하이’한 상태가 될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믿기지가 않았어요. 출품 후 영화제 시작까지 굉장히 행복한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청년과 바다’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기절할 정도로 고생해 찍은 뮤직비디오, 모든 순간이 고비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에서 영감을 받아 앨범, 영화 제목을 지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노인과 바다’를 읽고 노인이 멋있다고 느꼈어요. (웃음)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하는 게 너무 대단해 보였고, 혼자서 묵묵히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꿈을 좇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저도 솔로 앨범을 준비하면서 더 빛나는 저를 위해, 한 단계 진보하기 위해 고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며 더 고독해지려고도 했고요. 그래서 헤밍웨이의 작품을 오마주해서 ‘청년과 바다’ ‘청년과 심해’의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관객분들이 영화에서 집중해서 봐줬으면 하는 장면이나 포인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분이 뮤직비디오를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고 CG도 많이 썼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런데 한 장면도 스튜디오에서 촬영하지 않았고 모든 수중 촬영을 바다에서 했어요. 이런 도전이 포인트인 것 같아요. 수중에서 촬영하다 보니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정말 많았거든요. 그런데 영화에서 보면 제가 너무 행복하게만 보이지 않나 싶기도 해요. 정말 그때 ‘내가 미쳐 있었나 보다’, ‘어떻게 했지’ 싶은 장면이 많을 정도로 고난도의 촬영을 했는데, 이 부분을 잘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뮤직비디오는 안 담겼는데, 영화에는 제가 정말 오래 숨을 참고 있는 장면이 나와요. 편집하면서 그 장면 볼 때 울컥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 영화를 메이킹 필름의 형태로 공개하지 않고 영화로 제작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음악을 직업으로 하고, 음악을 사랑하지만 저는 정말 다양한 예술을 사랑해요. 영화도 그중 하나고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 보는 거 좋아했고 작업할 때도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거든요. 언젠가 영화음악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같은 맥락에서 이 영화가 영화제까지 온 것도 하나의 도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 음악에도 도전하신다면 어떤 장르의 영화 작업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제가 엔니오 모리꼬네를 정말 좋아해요. 정말 다양한 장르의 영화음악을 하셨잖아요. 그중에서도 사랑스러운 곡들,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강조되는 곡을 좋아해요. 이번 앨범에는 제 이야기가 많이 담겼지만 언젠가는 두 연인의 로맨스를 담은 영화 음악도 해보고 싶어요.
배우님은 RESCUE 자격증이 있으실 정도로 다이빙을 즐기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장비 없이, 그것도 뮤직비디오 촬영을 바다에서 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요. 위험하니까 테스트를 정말 많이 했어요. 사전 답사 때 포인트들을 다녀봤지만 매일이 다르니까요. 몸이 뜨지 않기 위해 몸에 무게도 다양하게 달았고, 의상과 헤어도 쉽지 않았고, 표정도 그랬어요.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몇 시간 동안 계속 눈을 뜨니까 안 보이는 느낌이 들던 때였어요. 눈도 못 뜨겠고, 떠도 안 보이더라고요. 눈이 잘못됐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마지막 신이 물속에 가라앉는 신이었는데 몇 번 촬영하는 동안 코에도 물이 들어와서 뇌까지 바닷물이 차는 느낌이었어요. 앞은 안 보이고, 숨은 못 쉬겠고, 코로는 물에 들어가는 이러다가는 기절하겠구나 싶더라고요. 기절하면 누가 구해주겠지 하며 마지막 촬영을 했어요. (웃음)
영화를 보면, 날씨가 늘 변덕입니다. 예상보다 더 예쁜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많았을 것 같아요. 배우님이 ‘재난영화급 날씨’라고 말한 날도 있었잖아요.
사전답사에서 장소 헌팅을 하다가 너무 말도 안 되는 파도를 만났어요. 살면서 본 파도 중에 가장 무서운 파도였고요. 그래서 가려던 포인트는 결국 못 가고 장소를 변경해서 갔는데 그 바다에서 정말 큰 만타를 만났어요. 그때 만타를 처음 봤어요. 촬영 전에 행운을 주는 느낌이었어요. 날씨가 안 좋을 때마다 감독님과 우리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더 좋은 결과가 있으려고 이러나 보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바로 받아들이고 촬영에 임했죠. 오히려 덕분에 더 고독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팔라우가 참 아름다운 곳이지만 너무 화창하고 밝게만 나오면 덜 고독해 보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나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비투비 멤버,
제 음악으로 삶이 바뀌었다는 팬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
영화 속 비투비 멤버 인터뷰를 보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이인 만큼, 임현식 배우님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지향해온 사람인지 잘 알고 있고 이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멤버들을 초대해서 영화를 함께 볼 계획이에요. 영화관을 대관해서 멤버, 지인, 가족, 팬들을 초대하려고요. 저도 편집 과정에서 멤버 인터뷰를 봤는데 우리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잘 지내와서 멤버들이 나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구나 싶어 너무 감사했어요. 멤버들이 영화를 보고 더 놀라지 않을까 싶어요. 뮤직비디오만 보고도 ‘미친 놈’ 소리를 듣긴 했는데 영화를 보면 ‘내가 알던 현식이보다 더 미친 놈이구나’ 하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고독한 바다(La Mar)’ 뮤직비디오 공개 후 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제가 만든 음악을 듣고 그 음악에서 힘을 얻는 팬들의 반응이 제 삶의 원동력이에요. 제일 기분 좋은 말이에요. 힘든 일이 있었는데 음악을 듣고 힘을 얻었다는 반응을 들으면 큰 힘이 돼요. 팬분들이 저로 인해서 더 좋은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씀도 해주시는데, 너무 놀라워요.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음악에 진지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티스트이자 배우 임현식이 앞으로 걸어갈 길도 궁금합니다.
제 MBTI가 P이긴 한데요, (웃음) 장기적인 계획이 정말 많아요. 영화음악 작업도 해보고 싶고, 제가 팀으로서는 많은 곡을 발표했는데 솔로로서 임현식의 음악은 아직 못 보여드린 것 같아서 앨범도 내고 싶고요. 솔로에 대한 갈증이 커요. 당장 가까운 미래로는 정규 앨범을 내고 싶어요. 음악공부도 계속 하고 싶고요. 악기 레슨도 받고 있어요. 차근차근 쌓아가면서 영화음악까지 하게 된다면 좋겠네요. 계속 저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어요.
더 많은 분이 영화 볼 수 있도록 계획 중
언젠가는 영화음악에도 도전해보고 싶어
7일에 ‘원 썸머 나잇’ 공연도 예정되어 있는데요.
바다 주제 영화이다 보니 바다 관련 곡을 준비했어요. 기분이 좀 다를 거 같아요. 제가 출연한 영화가 출품된 영화제의 음악 무대에 선다는 게 상상만으로도 참 좋아요. 제가 제 입으로 배우라고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웃음) 가수이자 배우인 두 가지 모습을 가진 저로서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저는 고독해지려 했는데 결국 제가 빛나는 건 제 옆에서 저를 지지해주는 사람들로 인해서더라고요. 이번 앨범 작업에서 더 많이 느꼈어요.
영화제에서 관람하지 못한 분들을 위한 기회가 더 있을지 궁금합니다.
확정되진 않아서 말씀드리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많은 분이 봤으면 좋겠어서 준비를 하고 있고요. 영화관 대관 상영이나 OTT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어요. 팬분들뿐 아니라 다이버분들, 영화인들, 바다를 사랑하는 분들, 제임스 카메론 감독님처럼 수중 촬영에 관심 있는 분들도 영화를 많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추후 영화를 만날 관객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감사드린단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어요. 정말 죽을 각오로 촬영한 뮤직비디오고 영화이니까, 저의 진정성을 잘 봐주시고, 보시고 괜찮다 싶으시면 제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제를 통해서 저는 더 빛나는 사람이 됐는데, 고독해지고 성장하는 과정을 반복할 저의 모습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영화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늘 성장을 갈망한다는 임현식 배우는 노인이 되어서도 어떤 형태로든 예술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돌에서 솔로 아티스트, 배우로 자기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그가 만들어갈 예술의 행로의 빛깔은 다채로울 것이다. 언젠가 그가 영화음악 감독으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다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계와 경계를 넘나드는 아티스트 임현식이 만들어갈 길이 주목된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박해민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문숙, 김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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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스턴스 | 미치는 대신 미친 척하는 바디 호러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걸 정도로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스타 배우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하지만 현재 그녀는 한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프로그램에 임하던 그녀에게 갑작스러운 소식이 전해진다. 50살 생일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가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녀를 해고한 것.
충격에 빠진 엘리자베스는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 뒤 병원에 실려간다. 그곳에서 그녀의 인생은 180도 달라진다. 한 젊은 남성 간호사로부터 젊고 완벽한 신체를 만들 수 있다는 약물, '서브스턴스'를 소개받은 것. 7일이라는 기간만 잘 지키면 원래 몸과 젊은 몸 모두 부작용이 없다는 말에 엘리자베스는 기꺼이 약물을 주사한다. 그렇게 탄생한 '수'(마가렛 퀄리)는 엘리자베스를 대신해 두 번째 인생을 누리기 시작한다.
샹그릴라 신드롬과 엔디미온
샹그릴라 신드롬. 제임스 힐턴의 1933년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평생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는 가상의 지상낙원, '샹그릴라(Shangri-La)'의 이름을 본뜬 말이다.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늙지 않고 젊게 살고 싶은 욕구가 확산되는 사회적 현상을 의미한다. 이 신드롬은 21세기에도 유효하다. 인기 연예인의 관리 비법은 언제나 관심사다. 중장년의 전유물도 아니다. 최근에는 세대 막론하고 저속노화 열풍이 불고 있다.
젊음을 향한 열망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리스에서는 달의 여신 셀레네와 목동 엔디미온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셀레네는 절세의 미남 엔디미온에게 반한 나머지 그가 잠들었을 때마다 그와 그의 양들을 지켜주었다. 사랑이 더 커진 셀레네는 그의 미모가 영원하기를 바랐다. 그녀는 제우스에게 부탁하여 그가 영원히 변함없이 깨어나지 않는 잠을 선사했고, 잠든 그와 관계를 가져 '메나에'라고 불리는 50명의 딸을 낳았다.
그런데 엔디미온 이야기는 샹그릴라 신드롬에 경종을 울리는 비극이기도 하다. 엔디미온은 영원한 젊음도, 가족도 전혀 알지 못하는 고통 속에 빠진 채 평생을 살았다. 태어나서 성장을 했다가 노화하여 안식, 즉 죽음에 이르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벗어난 대가인 셈이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서브스턴스>는 이 오래된 경고를 재해석한다. 신선한 연출, 파격적인 이미지, 달라진 시대상황을 곁들여서.
탁월한 시작
<서브스턴스>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잘 나가는 할리우드 스타였던 엘리자베스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과정을 보여주는 시퀀스만 봐도 영화에 압도된다. 일반적인, 예측가능한 형태를 완전히 빗겨나가기 때문. 익숙한 형태는 다음과 같다. 엘리자베스가 화려한 시상식에 초청받고, 정신없는 파티를 즐기는 컷이 연달아 나온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출연 제의가 끊기고, 어두운 방에서 좌절하는 그녀를 카메라가 비춘다.
<서브스턴스>의 카메라는 전혀 다른 광경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배치된 엘리자베스의 별을 바로 위에서 비춘다. 별이 처음 제작된 후에는 그 주변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화려하게 터지고 여러 행사가 개최된다. 그녀의 별을 보러 온 팬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상황이 달라진다. 별 현판에는 금이 가고, 사람들은 마구 밟고 다닌다. 그녀의 이름을 아예 모르는 행인들이 늘어나고, 심지어 먹던 햄버거를 떨어져서 소스가 묻어도 치우는 시늉만 하고 지나간다. 이 짧은 컷들의 조합만으로도 정상에서 서서히 내려온 엘리자베스의 현재 상황, 감정, 욕망, 결핍이 모두 전달된다.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한 이 오프닝은 배우의 부재 덕분에 더욱 인상적이다.
놀라운 이미지의 향연
이미지 활용 능력도 탁월하다. 젊음과 탐욕이라는 두 키워드가 스크린에서 넘쳐흐르는 듯하다. 엘리자베스의 몸을 비집고 나온 수가 처음으로 자기 얼굴과 몸을 거울에 비춰보며 만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엘리자베스가 진행자였던 에어로빅 쇼의 새 출연자 오디션 장면도 마찬가지다. 수의 신체 곳곳을 비추는 대목은 마치 여성의 젊음과 육체미를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와 대비되는 음식의 이미지는 기괴한 만큼 소름 끼친다. 하비는 엘리자베스와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그녀의 해고 소식을 전한다. 더 젊고, 아름다운 신체를 지닌 진행자가 필요하다면서. 이 자리에서 하비는 새우를 게걸스럽게 까먹는다. 저작활동은 손과 입가가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엘리자베스의 심경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그의 욕망을 대신 보여주는 듯하다.
수가 유명해질수록 엘리자베스의 폭식증이 심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수가 음식을 광적으로 먹어치우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녀가 식사를 마친 후의 잔해가 더 눈에 띈다. 그녀가 먹어 치운 음식의 잔해는 앙상하고 피폐하다. 닭을 먹으면 기름이 흥건한 접시 위에 살점이 일부 붙은 뼈만 남긴다. 이 잔해더미는 수에게 생명력을 뺏긴 채 나날이 껍데기만 남고 생기를 잃어가는 엘리자베스의 모습과 같다.
개인이 아닌 시스템
독특한 오프닝과 이미지의 조합은 <서브스턴스>의 메시지가 극대화되는 환경을 마련해 준다. 겉보기에 <서브스턴스>의 메시지는 엔디미온과 셀레네의 사랑 이야기와 같다. 젊음을 욕망하다가 자기 인생을 파괴하는 주인공에 대한 비판이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애 과정을 부정하고 이를 벗어나려는 탐욕과 그 선택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서브스턴스>는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젊음을 욕망하고,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개개인의 노력을 탓하지 않는다. 개인의 욕구를 부추기는 시스템을 최종적으로 비판한다. 그 중심에는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쇼 비즈니스가 있다. 즉, 영화나 TV 같은 미디어가 젊어지고 싶고, 젊음만이 좋은 것이라는 욕망을 끊임없이 주입한다는 것. 젊음을 유지하지 못한 사람은 가치가 없는 인물로 매도하는 시스템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말이다.
수가 밤에 거대한 광고판을 보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자기 화보를 보던 그녀는 7일이 지났는데도 원래 몸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엘리자베스의 몸이 더 빨리 늙고 미라로 변해도, 젊은 몸을 유지하기로 결심한다. 그러지 않으면 수도 언제든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으니까. 엘리자베스가 하루아침에 에어로빅 쇼에서 해고됐듯이. 즉, 지금과 같은 시스템 하에서 개인은 젊어지지 않아도, 젊어지려고 해도 자기 자신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에어로빅쇼 스튜디오 복도의 모습도 흥미롭다. 좁고 긴 복도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야 할 것 같은 갑갑함을 조성한다. 실제로 엘리자베스가 해고당할 것이라는 소식도 듣고, 자기 물품과 무성의한 선물을 받는 공간도 모두 이 복도다. 즉, 이 복도는 TV 쇼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젊고 매력적이면 안 된다는 강박과 시스템의 원리를 시각화한 공간인 셈이다.
시스템을 향한 반란
클라이맥스는 충격적인 이미지로써 쇼 비즈니스 시스템의 내재적 문제를 직격한다. 엘리자베스의 몸이 뒤틀린 괴물의 생김새만 봐도 그렇다. 이 괴물은 코 대신 가슴이 얼굴에 달렸다. 여성 지원자들의 몸매를 품평하던 면접관들의 말 그대로다. 그들의 성희롱이 단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인 만큼, 엘리자베스라는 괴물은 영화가 지적한 모든 문제가 한 데 모여 형상화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극장 시퀀스도 호불호가 나뉠지언정 분명 의미심장하다. 괴물이 된 엘리자베스는 무대 위에 오른 뒤, 온몸으로 피를 내뿜는다. 무대와 관객석은 피바다로 변하고, 자리에 앉아 있던 관객들도 모두 피칠갑된다. 이는 호러라는 장르적 쾌감 못지않게 서사적으로도 중요한 갈무리다. 시스템의 피해자인 엘리자베스가 시스템에 종사한 모든 이들에게 복수하고, 그녀의 피에 그들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헝거게임>에서 캣니스가 화살을 날리는 장면을 연상할 수도 있다. 그녀는 매번 헝거게임이라는 시스템을 유지한 이들에게 활을 쐈다. 게임메이커에게, 스노우 대통령에게, 코인 대통령에게. 그렇게 그녀는 헝거게임 게임장을, 더 나아가서 판엠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전복했다. 캣니스에게 활과 화살이 있었다면, 엘리자베스에게는 피가 있었던 셈이다. 차이점이라면, 캣니스는 성공했고 엘리자베스는 실패했다는 것 뿐이다.
파격이 빠진 반란
그런데 엘리자베스의 반란은 보이는 것에 비해 감정적으로는 그다지 놀랍지 않다. 물론 그녀의 반란 자체는 인상적이다. 군더더기 없는 전개 덕분에 그녀의 이야기는 세련됐고, 깔끔하다. 약물을 만든 흑막에 대해서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엘리자베스와 수 외의 인물은 최소한의 역할만 하고 빠진다. 자연히 엘리자베스와 수의 관계, 그들의 욕망이 낳은 비극에만 몰입할 수 있다.
다만, 큰 틀에서 보면 충격적인 이미지나 기교에 비해 내용물이 예측가능하다. 더 젊은 '나'가 무절제한 삶을 누리고, 무분별하게 젊음에 취해 살다가 본래 자기 자신과 함께 파멸한다는 이야기는 여러 SF 영화 등에서 익숙하다. 즉, 오프닝 시퀀스나 식사 장면, 그리고 엘리자베스 몸에서 수가 빠져나오는 장면에서의 발칙한 상상력이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발휘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관통한 <서브스턴스>의 통찰은 중요성에 비해 충분히 날카롭지 않다. 시각적으로는 놀랍도록 기괴한 경험을 했지만, 이미지가 남긴 충격에 이야기의 메시지가 묻혀 버린다. 엘리자베스가 자기 별 현판 위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수미상관 결말이 오프닝만큼 뇌리에 각인되지는 않는 이유다. 결국 <서브스턴스>는 2%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 채 막을 내린다.
Acceptable 무난함
선 넘은 이미지를 빛바래게 한 선을 지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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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 단독 영화 1편 중에서 가장 최고
서론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집단 '텐 링즈'의 수장인 아버지 쑤웬우의 손에서 암살자로 자라난 쑤샹치. 그러나 끝내 암살자의 길을 벗어던지고 학창 시절 친구인 케이티와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던 샹치는 어느 날, 버스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암살자들과 맞닥뜨리게 되고, 곧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임을 직감한다. 그렇게 자신과 함께 가려는 케이티와 함께 웬우를 만난 샹치는 가족의 비밀을 알아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벌이지는 일들을 다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25번째 작품이다. 일단 꽤나 재미있게 보았다. 괜한 반중 감정 때문에 저평가 받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여러 면에서 만족스러운 수작이었다.
액션도 좋고 악역도 좋았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당연하게도 액션이다. 개인적으로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를 포함한 모든 마블 영화들 중에서 가장 좋았는데, 초반에 나오는 버스 액션신부터 시작해서 중반에 빌딩 액션신, 그리고 후반에 텐 링즈를 이용한 액션신까지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특히 초반에 볼 수 있는 버스 액션신은 역대급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게 잘 뽑혔고, 기가 막히는 OST를 적재적소에 깔아놓은 덕분에 쭉쭉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 액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텐 링즈라는 무기를 굉장히 임팩트 있게 연출한 것도 마음에 들었는데, 원작과는 달리 채찍과 비슷한 용도로 바뀐 것이 약간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화려하고 멋져서 눈 호강 하나만큼은 제대로 해준다. 그리고 양조위가 연기한 웬우라는 캐릭터는 마블 영화 역사상 최고의 악역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빌런이었다. 영화의 서사나 감정선이 샹치에게 향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조위의 연기가 하드캐리를 한 덕분에 웬우의 이야기에도 굉장히 몰입을 하면서 볼 수 있었다.
훌륭히 그려낸 '아버지 살해 신화'
그리고 이야기 또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기본적으로 필자가 '샹치' 류의 스토리, 그러니까 가족 간의 갈등을 다루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이 영화의 이야기 자체가 꽤나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의 기초이자 바탕이 되는 서사인 '아버지 살해 신화'를 단순히 답습하지 않고 뒤틀었다는 점에서 좋았는데, 주로 아버지 살해 신화는 자의적이나 운명적인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전개이다. 그러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이 틀을 부수고, 샹치와 웬우의 갈등을 지극히 '복수'라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묶어놓았다는 점이 재미있다. 먼저 샹치는 어머니가 죽은 후 아버지가 필요했던 자신을 그저 암살자로만 키운 동시에 어머니의 고향까지 쓸어버리려는 급진적인 행동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게 되었고, 웬우는 빌런이 된 것부터가 아이언 갱에 의해 아내를 잃고 아내를 내친 고향에 대한 복수심, 그리고 아내가 죽어갈 동안 방관만 하고 있던 자식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복수심이 이 영화 갈등의 중심이 된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대결을 단순한 선과 악으로 확실히 나누지 않았다는 것이 굉장히 좋았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개인적인 복수심을 가지고 행동했고, 이들의 행동을 쉽게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나눌 수 없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입체감과 무게감이 늘어났다고 본다.
따뜻한 메시지
그리고 이 점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 또한 매우 좋았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주먹을 쥐고 상대의 눈을 마주 보기를 거부했던 사람이 주먹을 펴고 눈을 마주 보게 되는 과정을 마블식으로 뭉클하게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샹치와 웬우 모두 복수심에 눈에 멀어 서로의 눈을 바라보기는커녕 오히려 주먹을 쥐고 덤비기만 했지만, 그랬던 두 인물이 과거의 아픔(아내, 어머니의 사망)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고, 아들을 구한 뒤 손을 펼쳐 텐 링즈를 줌으로써 부자간의 갈등을 해소했다. 그리고 영화는 이 부분을 통해서 이 영화는 서로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서로'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 영화들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비극 스토리를 가장 따뜻하게 풀어낸 '착한 영화'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의미 있는 세대교체
거기다 웬우가 '어둠의 드웰러'한테 죽은 것도 마음에 들었는데, 이 어둠의 드웰러는 과거의 아픔으로 인해 피어난 분노를 상징한다고 본다. 죽은 아내의 목소리를 하고 있고, 무차별적으로 온갖 영혼들을 앗아가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온갖 영혼들을 앗아갔다는 점이 웬우랑 꽤나 닮아있다. 웬우 역시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대며 영혼들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매번 과거의 아픔을 지니며 영혼을 빼앗아가던 웬우가 아내가 진짜 죽은 것이었다는 진실을 알아채게 되고, 그 뒤 자신의 눈을 막고 족쇄처럼 끌고 다녔던 과거의 분노 '드웰러'와 함께 다음 세대들에게 미래를 맡기며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드웰러가 수면 위에서 죽는 장면, 마지막 장례식 장면) 그리고 웬우가 과거에 짊어지고 다녔던 무기인 텐 링즈가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면서 이 영화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의미 있는 세대교체를 이루어낸다. 또 과거의 분노를 상징하는 어둠의 드웰러가 주먹이 아닌 주먹을 편 손에 의해 죽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오리엔탈리즘 없음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동양인의 스테레오 타입은 한 번도 묘사가 되지 않으며 ('데스 딜러'에 대한 묘사가 지적이 되던데, 닌자 가면이 아닌 중국의 경극 화장 가면이다.), 심지어 동양인에 대한 편견도 강하게 비판을 하고 있다. 영화 초반부에 샹치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애가 샹치에게 '헤이, 강남스타일!'이라고 하자 '나 한국인 아니야, 멍청아.'라는 말을 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는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거기다 영화 후반부에 볼 수 있는 다양한 동양 생명체들과 설정들, 동양 신화를 잘 담아낸 걸 보면 제작진들이 사전조사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구미호를 미국 영화에서 보게 될 줄은...) 다만 의외로 오리엔탈리즘 범벅이라는 혹평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의견은 존중할 수 있으나 도저히 동의는 못하겠다.^^;; 동양 신화를 다루면 그걸 다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머리라고 해서 다 전두환이 아니듯이, 동양 신화를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오리엔탈리즘이라 혹평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플래시백
더불어 플래시백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영화를 재미없게 본 사람들 중 대부분은 지속적으로 나오는 플래시백이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첫 번째 볼 때는 플래시백의 문제를 잘 느끼지 못했는데, 두 번째 봤을 때서야 몰입감이 약간씩 뚝뚝 끊긴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플래시백을 마냥 비판만 할 수는 없는 게,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의 플래시백은 단순히 전개의 편의성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닌, 샹치의 심리를 묘사하는 장치 중 하나로 사용된다. 이 영화에서 샹치는 이야기가 진행이 되면 될수록 어렸을 적의 기억들을 하나하나씩 되찾아간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걸 반영하여 중간중간 플래시백을 넣어 작품 자체가 샹치의 머릿속을 담은 것마냥 과거 스토리와 현재 스토리를 교차편집하며 진행된다.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철저히 개인에 몫이지만, 필자는 현재의 의문을 과거로 답해주는 형식 같기도 해서 꽤나 마음에 들었다.
부족한 개연성, 지루한 중반부
이렇게 액션, 비주얼, 이야기, 메시지 전부 다 좋았는데, 아쉬운 부분도 당연히 있었다. 일단 첫 번째로 개연성의 부족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텐 링즈라는 조직은 대체 어떻게 해서 비밀은 지켜왔는지 모르겠다. 무려 샹치의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반인인 케이티를 비밀조직인 텐 링즈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훤히 보여준다던가, 얼굴 없는 생명체인 '모리스'는 대체 어떻게 해서 지하 감옥까지 오게 된 건지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모리스가 사는 '탈로'에서부터 지하 감옥까지 거리가 엄청나게 멀다.), 동물인 모리스와 인간인 트레버는 어떻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지, 텐 링즈는 또 어디서 난 건지를 영화가 제대로 설명을 해주질 않는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엄연히 영화의 부재가 '텐 링즈의 전설'임에도 불구하고 속편을 위해서 기원조차 다루지 않았다는 게 참 별로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야기의 템포가 느려지는 탓에 지루해지는 중반부다. 초반만 하더라도 영화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덕분에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몰입한 채로 봤는데, 주인공 일행이 텐 링즈로 가는 순간부터 이야기의 템포가 지나칠 정도로 느려지는 게 작품에게 큰 독이 되고 말았다. 물론 샹치의 내적 갈등을 제대로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였겠지만, 결과적으로 지루해졌다는 점에서 뼈아픈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전형적으로 변한 마블 서사 구조
그리고, 어쩌면 요즘에 나오는 모든 마블 영화들에게 해당되는 문제점인데, 바로 영웅 서사의 구조가 다른 마블 영화들과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주인공의 평범한 삶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다가, 중반쯤에 가서는 사건이 터지며 오로지 주인공만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 내적 갈등이 나오고, 후반에 가서는 히어로가 각성하여 액션 한 방 터트려준 다음 해피엔딩으로 가는 구조가 이제는 너무나 지겨워졌다. 물론 누군가는 히어로 영화라면 이러한 구조는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불과 2018년에 이 구조를 탈피해낸 영화가 마블에서 나왔다. 바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인데, 25편이나 되는 시리즈에서 일반적인 틀을 깬 영화가 겨우 1편이라는 점이 참 아쉬울 따름이다. (다만 '인피니티 워'는 애초에 '엔드게임'을 위한 전편이기 때문에 배드 엔딩으로 가는 건 당연한 것이기는 했다.^^;;) 그리고 DC나 폭스로까지 나아가면 [다크 나이트]도 있고 [로건]도 있다. 거기다 심지어 [아쿠아맨]도 주인공을 시작부터 사기캐로 만들면서 이러한 서사 구조를 약간씩이나마 비틀었다. 물론 이러한 점에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도 돋보이는 면은 있다. 샹치라는 캐릭터의 능력치를 처음부터 최대치로 찍어놓은 덕분에 마블 1편에서 보기 힘든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초반부터 버스에서 무쌍을 찍는다거나, 3편에나 가서야 활용할법한 용이 나오는 등) 그러나 [아쿠아맨]을 통해서 이미 한번 본 탓에 큰 신선함은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 참 아쉽다. 부디 이번에 나올 [이터널스]가 이러한 구조를 깨는 또 하나의 마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결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반중 감정 때문에 저평가 받고 있는 게 참 아쉽지만, 간만에 제대로 나온 마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마블 단독 영화를 보고 만족한 적은 2018년 이후로 처음이라 개인적으로 더더욱 애정이 가고 기특해 보이는 작품이다.^^
평점: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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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헌 감독 축구 영화 '드림'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드림
(2023.04.26 개봉)
감독: 이병헌
출연: 박서준, 아이유 등
안녕하세요!
오늘은 극한직업, 스물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의 신작 축구 영화 '드림' 리뷰를 써 보려고 해요!
드림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축구 선수 홍대, 홈리스 풋볼 월드컵 감독으로 나서게 된다.
열정리스 PD 소민이 다큐 제작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운동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특별한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이들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드림> 줄거리
드림은 실화를 각색한 영화거든요!
실제로 2010년에 열린 홈리스 월드컵이 있었는데요
드림처럼 대회 참가에 필요한 돈이 부족해서 참가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대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 축구 협회 등에서 후원받은 돈으로 겨우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2019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었는데 2023년부터 다시 홈리스 월드컵이 열린다고 하니까요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병헌 감독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 뚜렷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스물의 치호와 멜로가 체질의 진주가 생각나는데요
겉으론 멀쩡하지만 어딘가 고장나 있는... 돌I 같은 생각을 하는 캐릭터들이죠
드림에서는 소민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멜로가 체질 영화판 같단 리뷰를 남기셨는데 저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그 이유가 모든 캐릭터들의 말투가 비슷해서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본 스물, 극한직업, 멜로가 체질, 드림만 놓고 봐도
캐릭터들이 다 높낮이 없는 일정한 톤으로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팩폭을 말하거든요
물론 그게 웃기긴 하지만 이제는 지겹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같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럼에도 드림이 재미를 놓치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효봉, 문수 등 새로운 캐릭터를 넣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많은 캐릭터들 각각의 사연을 풀어 주는 데 애썼기 때문이고요
모두가 소민 같은 말투를 구사하는 코믹 영화였다면
사실 2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많이 지루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동진 평론가님의 평을 보았습니다
영화보다 해설가가 해 주는 말이 더 많다였던가??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드림에서 우리가 감동받을 수 있는 부분은 한국팀이 1점이라도 따내는 경기 부분이잖아요?
근데 경기 씬 30분...? 정도를 외국인 해설가의 나레이션과 함께하게 되는데요
그렇다 보니 캐릭터들의 감정을 느끼진 못하겠더라고요
해설가가 말하는 상황 자체(지문)를 이해하고 있을 뿐
머리띠를 쓴 인수가 어떤 감정으로 임하고 있는가, 다리까지 다쳤던 환동이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등
캐릭터에 몰입이 안 되는 거예요...
저 진짜 BGM만 깔아 줘도 우는 애인데 그냥 재미있다~뿐이지 감동적이진 않았어요
저는 이병헌 감독님의 개그 코드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예고편을 보고 코믹을 기대했던 것도 있는데
아무래도 실화 기반 스포츠 영화다 보니까 완전히 웃음만으론 갈 수 없겠나 보더라고요...
웃긴 건 정말 예고편으로 보는 장면이 다였고 가끔씩,, 피식거릴뿐
박장대소할 정도로 웃긴 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렇다고 스포츠 영화로 최고였냐? 그건 또 아녜요
사실 스포츠 영화는 깊은 울림과 함께 여운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슬램덩크가 대표적인 예시겠죠?
저 강백호 빼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막판 1점에선 숨도 못 쉬고 진짜 눈물이 차올랐거든요
그 정도의 감동을 원하고 보는 게 스포츠 영화인데... 그렇게 보았을 땐 아쉬웠습니다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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