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혁2022-12-11 12:33:44
재밌는 영화로 태어날 수 없다지만...
#탄생 / A Birth, 2022
제목만 봐선 손이 가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물며, "종교"와 관련된 영화는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판별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눈길이 가는 데에는 주인공 "김대건 신부"를 맡은 "윤시윤"분을 비롯한 화려한 이름들과 얼굴들이다.
"안성기 - 김강우 - 이문식 - 이경영" 외에도 "윤경호 - 정유미" 등의 출연은 '이 영화의 매력이 뭔지?'를 되려 궁금하게 만든다.
영화 <탄생>은 조선 최초 천주교 사제 "김대건 신부"의 전기 영화로 "어떻게, 사제가 되었는지?"부터 "순교"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1. 종교도 하나의 방식이었던...
해당 작품에서도 보이듯이 "왜, 천주교를 싫어할까?"에 대한 질문부터 해소되어야 영화 <탄생>이 좀 더 이해가 될 거다.
물론, 이에 있어 "모든 사람이 같다"라는 신분 제도가 무너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고대사부터 "종교"는 권력자들이 애용하는 통치 수단 중 하나이다.
흔히, "단군왕검"이라는 칭호부터 "제사장"과 "군주"를 합친 말이고 이후 "삼한"에서는 "천군(제사장)"이 다스리는 "소도"는 하나의 성역으로 작용했으니 '그 힘이 어느 정도였는지?'라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를 왕과 소수의 기득권층에게 적용했으니 이외의 종교를 가져온다는 건. "반역"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영화 <탄생>이 선택하고 집중했어야만 했다는 말이다.
2. 역시, 재밌게 만들기가...
먼저, 영화 <탄생>은 러닝 타임이 150분으로 일반 영화와 견주어도 상딩히, 많은 분량을 가졌다.
그럼에도, 쌓여지는 설명이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런 이유에는 주인공 "김대건 신부"의 외적으로 벗어나지 않고, 그에게만 시점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전기"인 만큼 당연하게 생각하겠지만, 150분 내내 보자니 했던 말 똑같이 반복해 서사를 빼앗긴 다른 캐릭터들은 무미건조하게 말라간다.
그래서, "왜?"라는 동기를 꺼내 관객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물론, "마음이 시켰다"라는 이유도 될 수 있지만 해당 종교인이 아닌 필자와 같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 말은 "그냥"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세도정치"로 인한 혼란한 '당시 조선의 상황과 맞물려 설명했다'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을 말해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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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아카데미를 뜨겁게 달군 <가여운 것들>과 <패스트라이브즈> 개봉소식!
가여운 것들
Poor Things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멜로/로맨스 | 영국, 미국 | 141분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엠마스톤, 마크러팔로, 윌렘 대포
개봉: 2024.03.06.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천재적이지만 특이한 과학자 갓윈 백스터에 의해 새롭게 되살아난 벨라 백스터. 갓윈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던 벨라는 날이 갈수록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 넘쳐난다.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놀라운 반전과 유머로 가득한 벨라의 여정이 이제 시작된다.
CINE PICK!
여자 프랑켄 슈타인을 맡은 엠마 스톤이 종잡을수 없는 캐릭터를 표현하며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등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싹쓸이했는데요. <더 랍스터> <킬링 디어>를 제작한 란티모스 감독 작품 특유의 괴이한 분위기와 판타지 같은 영상미로 벌써부터 영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멜로/로맨스 | 미국, 대한민국 | 105분
감독: 셀린 송
출연: 그레타 리, 유태오, 존 마가로
재개봉: 2024.03.06.
배급: CJ ENM
시놉시스
12살의 어느 날, '해성'의 인생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첫 사랑, '나영'. 12년 후, '나영'은 뉴욕에서 작가의 꿈을 안고 살아가다 SNS를 통해 우연히 어린시절 첫 사랑 '해성'이 자신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연의 끈을 붙잡기 위해 용기 내어 뉴욕을 찾은 '해성'. 우리는 서로에게 기억일까? 인연일까?
CINE PICK!
송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패스트 라이브즈>는 제 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골든 글로브 시상식, 베를린 국제 영화제,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이름을 올린 화제작입니다.
비트
Beat
ⓒ 네이버영화
개요: 액션, 드라마 | 한국 | 113분
감독: 김성수
출연: 정우성, 고소영, 유오성, 임창정
재개봉: 2024.03.06.
배급: 삼성영상사업단
시놉시스
타고난 파이터이며 아웃사이더인 민, 폭력 조직에서 성공하기를 꿈꾸는 태수, 미래에 대한 소박한 꿈을 버리지 않는 환규는 무차별적 싸움과 혼돈속에서 10대를 보낸다. 민과 환규는 방황하던 마음을 잡고 분식집을 개업하여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고 감옥에서 나온 태수는 전갈 조직의 중간 보스로 자리를 잡는데...
CINE PICK!
<비트>는 정우성을 스타덤에 올린 영화로 모터사이클을 타면서 눈을 감고 양 팔을 양 옆으로 활짝 펼치는 장면은 레전드급의 명장면. 정우성의 리즈시절을 엿볼 수 있으며 1997년 외환 위기속 일부 청소년들의 불안한 심리를 투영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대결! 애니메이션
ANIME SUPREMACY!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일본 | 129분
감독: 요시노 코헤이
출연: 요시오카 리호, 나카무라 토모야, 오노 마치코
개봉: 2024.03.06.
배급: ㈜블레이드이엔티
시놉시스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7년 만에 대망의 첫 작품인 애니메이션 <사운드백 카나데의 돌>로 꿈에 그리던 감독 데뷔를 하게 된 ‘히토미’. 업계에서 히트 제조기로 추앙받는 메인 프로듀서 ‘유키시로’와 내내 실랑이를 벌이며 그녀의 열정은 점차 시들해지고 제작 현장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진다! 한편, 토요일 오후 5시 황금시간대의 라이벌은 한때 ‘히토미’의 롤모델이었던 천재감독 ‘오우지’의 신작으로 결정되는데… 8년 만의 신작 발표를 앞두고 자취를 감춰버린 ‘오우지’로 인해 멘붕에 빠져버린 <운명전선 리델라이트>의 메인 프로듀서 베테랑 ‘아리시나’! 마침내 시작된 숙명의 애니메이션 대결. 흥행 전쟁의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CINE PICK!
일본의 인기 작가 츠지무라 미츠키의 소설 ‘패권 애니!’를 원작으로 하는 소설 원작 영화로,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테니스의 왕자> <하이큐>등을 제작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프로덕션 I.G’가 영화 속 작화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cine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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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스펙터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19년 4월 15일, 노트르담 대성당의 목재 지붕에 담배꽁초 하나가 떨어진다. 오래된 전선에서는 불꽃이 튀긴다. 불과 몇 시간 후, 860년 역사가 깃든 건물을 비롯해 가시면류관, 성 십자가, 십자가 못 등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성유물까지 모두 불탈 위기에 처한다. 이에 상황을 파악한 파리 소방대가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한다. 그러나 교통 체증을 비롯해 여러 이유로 화재 진압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불은 점점 더 커진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탔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뉴스는 충격적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텼던 웅장한 건물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그렇게 파리의 역사는 불탔다. 파리에서 약 9천 km 떨어진 곳에 사는 한국인도 이렇게 놀랐으니,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경악했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장 자크 루소 감독의 <노트르담 온 파이어>를 보면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화재 발생부터 종료 시점까지 훑으면서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의 의미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특히 루소 감독의 접근법이 흥미롭다. 화재 사고 당시에는 인명 피해가 없었다. 따라서 통상적인 재난 영화처럼 특정 인물의 시점을 따라가는 드라마틱한 전개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정면 승부를 건다. 사고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고 화재를 두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불을 끄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 이야기는 영화의 스펙터클과 장르적 쾌감을 맡는다. 노트르담 대성당 관계자와 파리 시민의 반응은 사고의 의미와 직결된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아쉽지만 두 마리 토끼 중 하나만 잡았다.
스펙터클은 잡았다
재난 영화의 재미를 볼거리에서 찾는다면 <노트르담 온 파이어>은 분명 성공적이다. 제48회 세자르 영화상 시각효과상 수상작다운 스펙터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상황 재현이 돋보인다. 소실된 성당의 상부 부분을 CG로 만들어 낸 결과 '혹시 성당이 불에 안 탔나?' 혹은 '벌써 복원이 다 됐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뉴스 자료나 SNS 화면 등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실성을 더했다.
특정 영웅을 치켜세우는 대신 사투를 펼친 소방대원들의 모습을 세심히 묘사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계단과 발걸음 수를 세면서 검은 연기와 유독 가스로 가득한 성당에 진입하는 소방관. 호스가 꼬이고 수도관이 터져서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유물을 구하기 위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성당 안에서 작업하는 소방관까지. 당시의 긴박감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적절한 강약 조절도 눈에 띈다. 파리의 악명 높은 교통 체증을 묘사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차가 움직일 줄 모르는 거리 상황 때문에 소방차는 제때 성당에 도착하기 못한다.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이는 화면을 분할해서 불타는 성당과 성당을 향해 달려가는 소방대의 모습을 교차하기에 더 효과적이다. 화재를 막지 못하는 결말을 알고 있는데도, 소방대원의 답답함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다.
노트르담, 파리, 그리고 프랑스
반면에 재난 영화의 다른 미덕에 주목할 경우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실패에 가깝다. 많은 재난 영화는 재난을 스펙터클로 활용하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스펙터클을 오락의 영역에 남겨두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신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로 활용한다. 가상의 재난을 스크린에 투사해 공동체가 겪은 실제 재난을 마주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공통의 아픔과 상실을 보듬는다. 실제 재난을 다룬 영화라면 두말할 필요 없다.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특히 파리 시민에게 노트르담 대성당이 갖는 의미를 바탕으로 재난의 사회적 의미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관광 가이드의 입을 빌려 노트르담 대성당과 관련된 설명을 들려준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잔 다르크의 명예 회복 재판이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황제 대관식 등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이다. 또 존재 자체로 파리의 중심이자 상징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의 시테 섬 동쪽에 위치해 있는데, 시떼 섬은 파리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장소이기 때문. 실제로 시테 섬은 옛 법원 청사이자 마리 앙투아네트가 투옥됐던 교도소인 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 생트 샤펠(Sainte Chapelle) 성당, 헌법 재판소(Palais de Justice)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로 가득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역사와 상징성은 화재 당시 프랑스 사회의 난맥상과 겹쳐진다. 당시 프랑스는 사회적 갈등이 극심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가운데 마크롱 대통령이 친기업 정책을 펼치자 프랑스 대다수 시민은 노란 조끼 시위에 참여해 반발했다. 실제로 초반부에는 시위 관련 뉴스가 삽입되어 있다.
영화는 이처럼 혼란스러운 프랑스 사회를 은연중에 불타는 노트르담 대성당에 빗댄다. 그러면서 화재 진압에 의미를 부여한다. 단순히 문화재를 지켜낸 것이 아니라 프랑스라는 공동체의 정신적 유산을 구했다고. 한 층 더 격정적인 이야기로 포장하면서 화재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의도는 좋았다
그런데 정작 영화는 이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초반부에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기는 하나 단편적이다. 종교적 맥락에 대한 설명은 부재하다. 그 결과 배경 지식이 풍부하거나 천주교 교리에 익숙한 경우가 아니라면 클라이맥스의 의미와 감흥을 온전히 이해하고 즐기기 어렵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파리 시민들이 노트르담 대성당 주변에 모여서 함께 성모송을 바치는 순간이다. 마지막 화재 진압 작전이 시도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때 파리 사람들이 하필이면 성모송을 외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본래 프랑스어로 노트르담(Notre-Dame)은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즉,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 자체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건축물이다. 또 승천한 성모 마리아는 프랑스의 수호성인 중 하나다.
따라서 파리 시민들이 성모송을 바치는 것은 간절함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늘에 있을 마리아가 도와주길,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신에게 기도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마지막 작전에 나선 소방관들이 감동에 가득 찬 표정을 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국 관객은 이 감정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어렵다. 작중 성모 마리아와 성당의 관계가 전혀 설명되지 않은 까닭이다.
그나마 있는 몇 안 되는 장면도 재난 영화의 클리셰에 가까워서 악효과를 낸다. 불을 끄기 위해 뿌린 물이 성모상에 떨어지자 그 물을 마치 성모의 눈물처럼 묘사한다. 또 어린아이가 성모상 앞에 바친 촛불이 끝내 꺼지지 않았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설명 없이 보면 그저 '신에게 기도하니 천운이 따랐다' 정도로 해석되기 충분한 대목이다.
극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이처럼 사실적인 스펙터클과 사회적 의미 사이에서 균형을 못 잡다 보니 부차적인 문제도 생긴다. 사건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은 나머지 인물이 소외된다. 스토리를 이끄는 몇몇 인물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풀리지는 않는다. 단지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을 투영할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처음 화재에 투입된 신참 소방관 둘의 썸,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빚다가도 마지막 작전에 함께 자원하는 소방대 중사와 중령의 신뢰도 볼 수 있다. 정치인과 언론, 화재 진압 작전을 각각 나눠 책임지는 소방대 소장과 중장의 우정도 엿보인다. 모두 드라마 한 편을 충분히 만들 재료지만, 끝내 스케치에 머무른다. 그 결과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철저한 예방 조치만이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평범한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따라서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반응이 갈릴 이유가 충분하다. 킬링 타임용 재난 블록버스터를 기대하면 나름대로 만족할 수도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사고의 다양한 비하인드를 현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재미도 있다. 반대로 사회성에 초점을 맞춘 진중한 재난 영화를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다만 어떤 의미에서든 장 자크 아노라는 이름값에 미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는 <색깔 속의 흑백>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불을 찾아서>로 세자르 영화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소 평범한 필모그래피를 이어가는 중이다.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그 필모에 한 줄을 추가하는 듯 보인다.
Poor 형편없음
실제 사건의 무게에 압도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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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에서 만나는 제75회 칸영화제 화제작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제75회 칸영화제 화제작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칸영화제는 매년 5월, 프랑스의 남부지방 칸에서 열리는 영화제로 국제 영화제의 메카라 불리는 영화제입니다.
제75회 칸영화제는 <헤어질 결심>, <브로커>, <헌트> 등 쟁쟁한 경쟁작들로 화제를 모았는데요.
제75회 칸영화제의 주요 부문을 수상한 수작 3편을 5월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어떤 영화들인지 한번 살펴볼까요?
클로즈
ⓒ 네이버 영화장르: 드라마
감독: 루카스 돈트
출연: 에덴 담브린, 구스타브 드 와엘 등
개봉: 2023년 5월 3일
러닝타임: 104분
CINE PICK!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클로즈>는 오스카, 골든글로브 등 전 세계 48관왕, 62회 노미네이션 되며 현재까지도 수상 기록을 꾸준히 경신하고 있습니다. <클로즈>는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며, 자신의 자전적 이이기에서 출발하여 진정성 넘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클로즈>는 5월 3일 개봉을 하였고, 개봉 당일에 독립·예술영화 동시기 개봉작 예매율 1위와 독립·예술영화 동시기 개봉작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루카스 돈트 감독은 자신과 같이 변화와 혼란의 시기를 거쳐왔을 모든 관객들을 위로하며 “한 시절 누군가의 다정한 친구였을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전하였습니다. Time Out에서는 <클로즈>를 '<400번의 구타> <보이후드>가 자리한 영화의 신전에 이 아름다운 영화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며 극찬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토리와 로키타
ⓒ 네이버 영화장르: 드라마
감독: 뤽 다르덴, 장 피에르 다르덴
출연: 파블로 실스, 졸리 음분두 등
개봉: 2023년 5월 10일
러닝타임: 89분
CINE PICK!
영화 <토리와 로키타>는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역사상 최초 75주년 특별기념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영화 <토리와 로키타>를 연출한 다르덴 형제 감독은 <로제타>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아들>, <더 차일드>, <로나의 침묵>, <자전거 탄 소년>, <소년 아메드>까지 다양한 작품들로 칸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칸이 사랑하는 거장 감독으로 우뚝 섰습니다. <토리와 로키타>는 칸영화제에서 상영 후 10분 간의 기립 박수와 더불어 해외 매체의 뜨거운 극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토리와 로키타>의 두 주연 파블로 실스와 졸리 음분두는 첫 스크린 데뷔작으로 수많은 오디션 참가자들 중에서 다르덴 형제 감독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으며 캐스팅되었다고 합니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이 토리와 로키타의 친구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목적은 영화에서 친구인 두 외국 아이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영화에서 메인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둘 사이의 우정이고, 빛이다. 모두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토리와 로키타를 친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습니다. 영화는 개봉 전 CGV 아트하우스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흥행 청신호를 밝히고 있습니다.
슬픔의 삼각형
ⓒ 네이버 영화장르: 코미디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
출연: 우디 해럴슨, 해리스 딕킨슨, 찰비 딘 크릭
개봉: 2023년 5월 17일
러닝타임: 147분
CINE PICK!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2023년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으며, 국내 영화제인 제10회 마리끌레르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슬픔의 삼각형>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2017년 <더 스퀘어>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후, 5년 뒤인 2022년, 다음 작품인 <슬픔의 삼각형>으로 연이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칸영화제 최고상을 2회 수상한 역대 9번째 감독이 되었습니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어른들을 위한 롤러코스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재밌고 도전적이면서, 영화관에서 꼭 봐야 하는 영화를 원했죠. 끝나고 나서 할 얘기가 있는 영화를요”라는 말을 전한 바 있습니다. 포보스 선정 '올해 가장 웃긴 영화.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라는 평이 공개되며 화제를 모은 <슬픔의 삼각형>은 국내 관객들로부터 '진짜 재미있다'는 열광적인 반응을 얻으며 17일 개봉을 앞두고 라스트 프리미어를 추가 확정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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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달처럼 두둥실
개막작 <소나타> 리뷰감독] 바르토즈 블라쉬케Bartosz Blaschke
출연] Michał Sikorski, Malgorzata Foremniak, Lukasz Simlat
시놉시스] 조산아로 태어나 자폐 진단을 받은 그제고즈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집안에 있는 오래되고 고장난 피아노를 두드리는 것뿐이다. 그가 15세가 되던 해 생일, 그는 자신의 고립이 사실 자폐증이 아니라 청각 장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카진스키 교수의 도움 덕에 인공 와우를 장착한 그제고즈는 말하기, 듣기 능력과 함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피아니스트가 되어 콘서트 홀에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연주할 수 있기를 꿈꾼다.***
영화제가 시작된다. 때마침 보름달에 가까운 날이다. 제천국제영화제 하면 휘영청 달 밝고 바람 맑은 밤을 떠올리게 된다. 밤하늘이라니. 사실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본 게 언제였나 가물가물하고, 장마 소식이 있으니 오늘 밤 달이 뜰지 여부도 알 수 없지만… 날씨가 어땠든 제천의 밤이 주는 들뜬 분위기가 향긋하게 마음에 남은 탓이다.
올해 제천의 첫 밤을 여는 영화는 SONATA라는 제목을 둥글고 단선적인 필체로 띄우며 시작할 것이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여서일까? 달을 닮은 글씨였다. 정직하고 투박하게, 오롯이 빛을 보내는.
달빛처럼 느린 걸음을 차분하게
영화 <소나타>는 얼마든지 뭉클하고 감동적인 톤으로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보다 훨씬 느린 걸음을,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곡조처럼 차분한 톤으로 옮기는 방법을 택했다. 귀여운 동요를 배우는 특수학급에 뚱하게 앉아 고립되어 있던 그제고즈가 본인의 문제가 청력 장애임을 알게 되고, 나아가 <월광 소나타>를 꿈꾸기까지… 그 길에 마법은 없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이 고립이 깨지긴 하는 걸까 싶은 지난한 걸음이다.
길이 쉽지 않은 대신, 영화가 메트로놈처럼 그제고즈의 속도에 관객을 맞추어 기어이 함께 걷게 만든다. 그제고즈의 ‘듣기’를 관객이 체험할 수 있게 계산된 사운드 덕분에, 그의 세상이 한 번씩 새로워질 때마다 생생하게 함께 느낄 수 있다. 어느새 정신 차려 보면 그 여정에 나란히 서 있다.
그제고즈의 여정은 묵묵히 혼자 달리는 마라톤보다는 이어달리기를 닮았다. 그제고즈의 교육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는 엄마와 아빠, 그제고즈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었던 선생님들, 우호적이지 않았던 이들의 존재까지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 바톤을 넘기듯 만나고 또 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순간 깨닫게 된다. 삶은 온전히 단단한 한 사람으로서 나아가는 게 아니라, 가끔 서투르기도 하고 쉽게 지치기도 하는 여러 사람에게 조금씩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임을.
선율 따라 기쁜 걸음을 다정하게
이어달리기 같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그제고즈는 조금씩 성장한다. 물론 오랫동안 세상과 다른 속도로 걸어온 그가 템포를 맞추는 일은, 메트로놈의 박자를 따라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같이 걷고 손을 내밀어주는 이들이 있다. 관심을 기울이고, 이름을 말해주고, 무엇보다도 정해져 있다고 믿었던 선 바깥으로 한 걸음 나아가도록 신뢰와 지지를 보내주는 이들. 아니라는 가정을 한 번만 해보자는 이들. 무언가 더 나은 세상을 열고자 한다면 미지의 걸음을 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 내가 알아온 세상이 모두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이들.
바로 이런 이들과 만날 때, 거칠게 비좁아져 있던 세상이 점차로 확장되어 간다. 그렇게 그제고즈는 성장하고, 그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동시에 그제고즈를 둘러싼 주변에도 성장에 뒤따르는 기쁨과 슬픔이 있다는 점까지 세심하게 포착한다. 만남은 일방적일 수 없으므로.
사람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제고즈에게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피아노와의 만남이다. 그동안 닿지 않았던 세상이 음악의 파동으로 열린다. 감지하지 못했던 파동을 처음 느낀 이후, 세상은 이전과 다른 곳이 되고, 청각 보조 기구에 대한 만남과도 맞닿는다. 어떤 조우는 세상을 바꾸어 놓는다. 그렇게 달라진 마음은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새로운 세상에서 만나
그제고즈의 피아노처럼 어떤 음악이, 어떤 영화가, 어떤 순간이, 우리에게 그러할 것이다. 가끔 새로운 음악을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황홀해지는 순간, 무심코 본 영화가 마음에 들어와서 나를 바꿔 놓고 마는 순간. 그래서 음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한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 다정하게 새로운 힘을 건네 주니까. 내가 보고 듣고 알았던 세상 바깥으로 나를 이어주는 힘, 선명하다 생각했던 경계를 지워내고 그 바깥으로 걸음을 뗄 수 있게 이끄는 힘을.
가슴이 두근거린다. 제천에서 당신은 어떤 음악을, 어떤 영화를, 어떤 순간을 조우하게 될까? 알 수 없지만 다만 그 순간이 그제고즈와 <월광 소나타>의 만남처럼 아름답게 빛난다면 참 좋겠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본 당신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기원인지 눈치챌 것이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이 짧은 만남이 어떤 흔적을 남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제천을 즐기는 당신의 마음에 새로운 힘이, 달처럼 두둥실 차오르기를.
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시간표
상영 시간
장소
CODE
2022-08-11 19:00
의림지무대
1
2022-08-14 17:00
CGV 제천 1관
324
2022-08-15 10:30
CGV 제천 1관
403
* 글 : 선이정
* 해당 글의 원글는 "선이정"님 브런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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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과 유년기에 관한 보편적 호소
온 동네 사람들이 친밀하게 엮인 정다운 마을에 폭동이 일어난다. 폭동을 주동한 자들은 개신교 민병대로, 그들은 마을에 있는 가톨릭교도들과 그들의 집을 마구잡이로 공격한다. 화염병, 자동차 폭발 등이 일어나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사람들은 겁에 질린다. 골목 입구에는 바리케이드가 생기고 총을 든 군인이 수시로 마을을 순찰한다. 이곳은 1969년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9살 소년 버디가 사는 마을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종교를 앞세워 갱단처럼 행패 부리는 사람들로부터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지만, 그 외에도 문제는 산적해 있다. 북아일랜드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실업률로 고생 중이고, 경제 위기의 여파는 벨파스트를 비껴가지 않았다. 세금 문제와 수입 감소로 골머리를 썩는 버디 부모님의 갈등이 잦아지는 이유다. 아빠는 미래를 위해 벨파스트를 떠나자 하지만, 엄마는 삶의 모든 것이었던 벨파스트를 떠나고 싶지 않다. 감당하기 벅찬 여러 문제를 동시에 마주한 버디네 가족은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 다르다.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를 구분할 줄 모르는 이들은 눈이 뒤집힌 채 폭력을 휘두르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조금은 무섭고 긴장도 되지만 늘 그랬듯이 친구들과 어울리고, 말썽을 부리는 일상을 이어간다. 버디는 따뜻한 말과 사랑을 주고받는 조부모님의 보살핌을 받고, 엉뚱한 방식으로 마음에 둔 여학생과 가까워지기도 한다. 버디는 벨파스트가 오래도록 쌓아온 아름다운 관계의 성취를 듬뿍 만끽하며 성장하는 중이다.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가 멀어질수록 영화의 긴장감은 커진다. 어른들의 혼란과 아이들의 천진함이 동시에 포개진 벨파스트라는 모순은 점점 첨예해지며, 따로 존재하는 게 좋았을 두 세계를 결국 부딪히게 하고 만다. 동네 친구와 비밀서클을 만들어 놀던 버디가 얼떨결에 가톨릭교도를 응징하러 가는 개신교도 무리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약탈하듯 상점을 헤집어놓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에게 선물할 세제를 챙긴다.
그러나 일은 버디의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버디의 엄마는 기뻐하기는커녕 크게 화를 내며 다그치고, 물건을 제자리에 놓자며 상점으로 버디를 데리고 간다. 그런데 문제는 점점 꼬여만 간다. 폭도들이 왜 가톨릭교도에 이로운 짓을 하냐며 버디 모자를 다그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개신교도임에도 평소 자신들에게 거리를 두던 버디 가족을 인질로 잡아 군인들과 인질극을 벌이기까지 한다. 엄마를 위한다는 순진한 동심이 어른들의 혼탁한 세계와 만나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다행히도 버디가 일으킨 소동은 파국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다만, 이 사건을 계기로 버디 가족은 오랫동안 망설였던 영국으로의 이주를 결정한다. 떠나는 버디네 가족을 보며 할머니가 당부하듯 혼잣말로 건네는 말을 들어보자. “가거라. 지금 가거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사랑한다(Go. Go now. Don’t look back. I love you so).” 할머니는 이제 벨파스트가 더 이상 자식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지가 아님을 안다.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인 남편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났기에 버디 가족마저 떠난다면 지독히 외로울 테지만, 자신의 외로움을 볼모로 자식들을 붙잡을 수 없는 그녀는 슬픔이 깃든 결연한 표정으로 벨파스트를 떠나는 자식들을 배웅한다.
이것이 〈벨파스트〉가 고향과 유년기를 그려내는 방식이다. 과잉 낭만으로 고향과 유년기를 그려내는 영화의 방식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벨파스트〉는 다소 성급하고 단조로운 방법으로나마 우리가 지나온 것에 대한 보편적 호소를 만들어낸다. 모든 고향과 유년기에는 고유한 색채가 있다. 지역, 시대, 성별 등에 따라 그 색채는 무한히 다양할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그 시기를 거쳐왔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다. 버디가 벨파스트를 폭력이 난무하던 곳으로 기억할지, 정情이 넘치는 따뜻한 곳으로 기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어떤 곳이었든 벨파스트가 그의 원점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사실로 남는다. 종교와 경제, 폭력과 온정이 들끓으며 뒤섞였던 1969년의 '벨파스트 출신 버디'가 자식들을 멀리 보내는 할머니의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마음과 연결되기를, 그가 언젠가 다시 벨파스트로 돌아와 할머니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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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머지 절반의 몫은 엉망진창 내 인생의 명장면을 향해
※영화 〈반쪽의 이야기〉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작은 마을 스쿼하미시에 사는 유일한 아시아인 여성 엘리는 다섯 살부터 살아온 이곳에서도 딱히 마음이 가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나마 자신의 문학성을 알아주는 선생님만이 친구 비슷한 존재다. 선생님은 엘리가 같은 반 아이들의 에세이를 대신 써 주고 돈을 받는다는 걸 알지만 오히려 능력을 썩히지 말고 촌구석을 떠나 대학에 가라고 조언해준다. 하지만 엘리는 그럴만한 처지가 안 된다. 하나뿐인 가족인 아버지는 전문 지식을 갖췄음에도 영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허름한 시골의 기차역장 자리만 주어질 뿐이다. 무기력한 아버지의 보필에 곤궁한 집안 형편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대학 입학은 먼 나라 이야기다. 그러던 중 풋볼 선수 폴이 찾아와 짝사랑하는 상대 애스터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써 달라고 제안한다. 말주변은 없고 글솜씨는 더더욱 없는 폴 대신 엘리는 애스터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생각보다 애스터와 취향과 성격이 잘 맞는 엘리는 사실 예전부터 애스터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감정을 숨긴 채 폴과 이어지도록 노력해본다. 대면이 필수인 데이트의 우여곡절 끝에 둘 사이에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엘리의 임무는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감정의 화살은 자유자재로 날아간다. 엘리와 폴이 애스터의 공감을 얻기 위한 사전 조사는 첩보 작전을 방불케 했고, 공통의 목표 달성을 위해 붙어다니며 서로의 내면과 고민을 털어놓던 두 사람의 관계는 어쩐지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출처: NETFILX
엘리의 단호한 내레이션은 일찌감치 이 영화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대필 편지 작가라는 오래된 레퍼런스를 변주한 이 로맨틱 코미디를 연애담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고등학생이 짝사랑하는 대상에게 러브레터를 쓴다는, 지금은 생경하지만 어딘가 마음이 간질거리는 상황을 사랑 없이 논하기는 어려울 터. 하지만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 이상으로 영화가 빛나는 지점이라면, 낡은 서사가 가진 익숙함에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을 추가하며 얹은 캐릭터와 이야기의 힘일 것이다. 2020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던 이 매력적인 틴에이지 성장 영화 〈반쪽의 이야기〉는 아직 낯선 세상으로 뛰어들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사랑하며 때로는 고민하고, 실패를 경험하고, 창피를 무릅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진부하지만 언제나 새로우며, 포기하지 않는 그럴듯한 답을 찾아가는 작품이다.
텍스트와 음성이 전하는 진심의 공명
엘리에게 사람이란 인파가 뜸한 기차역을 지나치는 기차와 같다. 늘 같은 시간에 지나가지만, 늘 칸칸이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지고 지나가는 신기한 그것. 하지만 엘리는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이란 낡은 부스 안에서 앉아 가끔 시간이 되면 의무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영화 속 기차역의 이별 장면에서 엘리는 그 작위적이고도 멍청해 보이는 사람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사람에게 상처 받고 싶지 않았던 엘리의 묘책은 다가오는 타인을 그냥 지나가게 두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는 최대한 자신 앞에 기차가 서지 않기를 바라며, 그의 잠을 깨우는 약한 진동조차 원하지 않는다. 영화의 첫 시퀀스는 엘리의 비평 능력이 폭발하는 머릿속을 애니메이션으로 묘사한 뒤 이 모든 것이 비좁은 부스 안에서 이뤄지는 대비를 보여준다. 엘리의 현실을 응축한 신이 지나고, 마음껏 재능을 선보이지 못한 채 용돈 벌이용으로 전락한 일상에 또 다시 기차가 찾아온다. 자신을 일으키는 미세한 떨림은 앞으로 다가올 삶의 변화를 암시한다. 어떤 이유든 엘리는 우연히, 혹은 때맞춰 다가오는 폴과 애스터를 지나치지 않기로 한다. 그 찰나의 선택이 가져온 파동은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던 진공의 삶에 정차한 절호의 기회다.
엘리는 시대의 고전 플라톤의 〈향연〉 속 사랑론을 구시대적 잔재라고 당당하게 외치지만, 사랑을 고백하는 구절은 떠올리기조차 고역이다. 엘리의 문학적 영감은 반작용에서 온다. 감정적 작용을 애써 침잠시킨 세월만큼 축적된 삶의 에너지는 자신의 말 대신 인용구와 영화 대사로 표출한다. 이는 엘리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명대사 몇 마디를 읊조리는 것으로 잠시나마 감정을 표현할 뿐이다. 아마 살아 있을 때는 집 안의 생기를 책임졌을 엘리의 어머니를 잃은 뒤에 터득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둘만 남은 부녀는 감정의 촉매이자 원천이 사라진 집에서 영화와 책으로 표현을 대신한다. 사실 엘리 가족 말고도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말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다. 진정한 사랑과 사람을 거부한 채 안으로 겉도는 엘리, 내면의 본모습을 감춘 채 남들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애스터, 누구보다 깊은 진심을 가졌으나 전달만 하려면 버벅대는 폴까지. 영화는 나를 드러내기 어려운 사람들, 어쩌면 우리 모두의 고질병인 진심을 표현하는 법을 말하고, 쓴다.
〈반쪽의 이야기〉는 주요 소재인 대필 편지라는 상황으로 엘리와 폴, 애스터의 텍스트가 음성이 되고, 음성이 현실이 되는 공명의 과정을 찬찬히 더듬어간다. 대필 편지와 문자 메시지가 주를 이루는 영화는 텍스트와 음성의 불일치가 가져오는 오해와 단절, 수신 불량의 이야기다. 폴이 엘리에게 자기 대신 편지를 부탁하면서부터 말과 글의 주체는 달라지고, 표현에 서투른 이들은 소통을 위해 알아들을 수 없는 진심을 전달하고자 남의 손을 빌려야 한다. 이는 영화 곳곳에서 뒤섞이고 변주한다. 대화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은 고해소부터 편지, 휴대전화까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모조리 동원하며 비대면 소통을 진행하고, 감독은 표현이 어색한 인물을 스크린 양 끝으로 보낸 채 대화를 이어간다. 폴과 애스터의 첫 데이트에서도 앞에 앉은 폴 대신 애스터의 눈은 엘리의 문자 메시지를 향한다. 폴의 모습에서 엘리의 이야기를 만나는 인식의 불일치는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시대와 문화의 제동으로 전면에 나설 수 없을뿐더러 그마저도 서툰 엘리의 진중함 앞에 관객은 사려 깊게 그의 진심을 눈여겨보게 된다. 나설 수 없기에 인용이 더 편했던 엘리는 짝사랑 상대였던 애스터로 결핍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점차 말문이 트이며 애스터에게 거의 진심에 근접한 말들을 털어놓기에 이른다. 플라톤부터 오스카 와일드, 빔 벤더스에 사르트르까지 인용하던 영화는 대망의 성당 삼자대면 장면에서 마침내 엘리 추의 목소리로 애스터에게 감정을 전한다.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엘리의 입으로 엘리의 말을 전한다. 드디어 영화는 엘리의 말을 인용하고, 그렇게 엘리의 공명은 또 하나의 걸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반쪽을 찾으려 하지 않는 이야기
엘리스 우는 전작 〈세이빙 페이스〉와 이번 〈반쪽의 이야기〉 두 편의 영화에 공히 고루한 세계에 외떨어진 인물을 등장시킨다.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에는 개인과 충돌하는 소규모 커뮤니티의 오랜 신념이 지배한다. 미국 속 아시아 문화를 간직한 이민자 집단과 백인 기독교 중심의 보수적인 시골 마을은, 어떤 이에게 따뜻한 온기를 간직한 공허한 독방과도 같다. 존재가 부정되고 일체성을 압박받는 공간은 엘리스 우가 떠올린 현실의 지옥이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줄 것만 같던 집단의 공고한 관습에 홀로 반기를 드러내는 것만큼 스스로를 상처 주는 일도 없으니 말이다. 〈반쪽의 이야기〉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비밀을 간직한 누군가에게 지옥으로 다가온다는 명제에 집중하며 수렁에서 빠져나올 비책을 알려준다.
〈닫힌 방〉의 관계성에 〈시라노〉의 서사를 입힌 엘리스 우는 〈반쪽의 이야기〉로 가족의 굴레에 생채기를 낼 용기와 깨달음을 말한다. 가족의 인정을 위안 삼지만 정작 마음 둘 공간이 아쉬운 인물들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진심을 글에 담는다. 애스터와 폴(을 대신하는 엘리)가 주고받는 편지 속 〈닫힌 방〉의 세 사람은 뒤틀린 관계 속에서 탈출을 거부하고, 방문이 열려있어도 나가지 못한다. 영화는 사르트르의 희곡을 레퍼런스 삼아 “타인이 지옥인” 세상의 다음 단계를 일러준다. 엘리와 애스터의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는 마치 천상계에서 진리의 정수를 발견하는 고전소설의 주인공 같다. 오직 둘 뿐인 신비로운 호숫가에서 서로의 속마음을 교감하는 형상은 그 옛날 〈향연〉에 적힌 고대의 인간처럼 두 개의 얼굴, 네 개의 팔다리다. 그렇게 엘리스 우는 반쪽을 찾으려 필사의 노력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삶이란 저 멀리 사라진 서로의 반쪽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옆에 있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나의 나머지 절반을 깨닫는 과정이다. 다시 사르트르의 방으로 돌아가자. 타인이 내 절반이 아님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알던 지옥은 더는 작은 방이 아니게 되고, 관계에 목매지 않는 결연한 나의 눈으로 곧 열린 문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반쪽을 찾지 않고 깨달을 뿐이다.
지옥을 자각하는 확신의 과정
우리가 타인을 깨달았다면 다음 단계는 이곳이 지옥임을 깨닫는 것이다. 노신부는 잊지 말라는 듯 반복된 성경 구절을 내뱉고, 성당에서는 사탄이 의심을 타고 우리에게 찾아온다고 되뇐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 편지 한 통으로 의심이 자란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스쿼하미시의 성에서 엘리와 폴, 애스터는 모두 불경한 죄인이다. 세 사람은 각자의 두려움에 갇혀 가면을 쓰고 거짓을 말한다.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숨기고, 미술의 꿈을 접은 채 가족의 뜻에 순종하고, 열등감에 주눅 들어 잠재된 능력조차 발휘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진실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엘리와 폴은 대필 편지를 쓰고 애스터는 거짓된 사랑을 이어간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인간은 ‘두려워하고 거짓말하고 의심하는 자들’을 쫓아낼 성을 지었고, 신을 의심하는 자들은 바깥의 지옥으로 떨어진다(계 21:8). 하지만 엘리스 우는 단호하게 말한다. 거짓은 헛되지 않았으며 황홀한 파국은 반드시 찾아온다고.
거짓을 말하는 죄 많은 백성은 오히려 의심을 열쇠로 내가 선 이곳이 지옥이었음을 깨닫는다. ‘일이 벌어지는 곳’ 스쿼하미시 (영화 초반의 안내 푯말 “It’s happening in SQUAHAMISH”)는 사실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일들은 아예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사라지는 곳이다. 스쿼하미시에서 마을 유일의 아시아인 가족이 받는 인종 차별과 성소수자의 정체성, 가족주의에 묻힌 개인의 꿈은 있지도 않았던 일로 치부한다. 따라서 주인공 세 명이 성당에서 서로의 진실을 털어놓는 장면은 더 묵인하지 않겠다는 고해성사이자 강박적인 안온함보다 위태로운 불안을 지지하겠다는 지옥으로부터의 선언이다. 내가 있는 공간이 곧 지옥임을 깨닫는 순간, 나를 감싸던 세계는 깨어진다. 이들 셋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말을 늘어놓는다. 이곳이 어디인지, 내 반쪽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아는 세 사람만이 상황을 이해할 뿐이다. 좋은 작품을 과감히 망가뜨려야 걸작을 만날 수 있듯, 나만의 소시지, 나만의 그림,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이들에게 지옥은 기꺼이 문을 활짝 열 준비를 끝마쳤다.
겉도는 와중에도 서로에 이끌리며 부딪쳤던 시절이 지나고, 엘리는 걸작을 그릴 대담한 선을 찾으러 스쿼하미시를 떠난다. 사랑의 반쪽이 만나고 헤어지는 그 뻔한 기차 장면처럼 절대 울지 않겠다 맹세했던 엘리는 달리는 기차 밖에서 뛰어오는 폴을 보며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하지만 엘리는 그 진부한 감정을 이제 이해할 수 있다. 엉망진창에 예측하는 대로 이뤄진 적이 없는 사랑의 기억은 가장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이고, 그렇기에 낡아 빠졌다는 것을. 엘리는 울음을 그치고 주변을 바라본다. 이 안의 사람들도 어쩌면 자신이 만든 인생 최고의 대사 한 구절쯤 품고 있을 것이라는 작은 깨달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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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사람, 나도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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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커닝> 메인 예고편
흑사병이 유행하던 20세기 초 유럽. 흑사병으로 남편을 잃은 그레이스는 전염병을 퍼뜨렸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마녀로 지목되며 마녀재판에 회부된다. 지하 어두운 감옥에 갇힌 그레이스는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진실만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레이스가 갇힌 감옥에는 너무나 끔찍하고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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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엘리트들 시즌 5> 공식 예고편
이번 시즌, 해방이 시작된다. 더 이상 잣대도, 규칙도 없다. 당신은 자유로워질 용기가 있는가? 《엘리트들》 시즌 5,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엘리트들넷플릭스 #ÉliteNetfl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