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11-07 17:50:19
무너져 버린 사랑 뒤의 또 다른 사랑.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 리뷰
흔적도 없이, 실체도 없이 사라진 사랑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평생 '우리'라는 글자에 그 사랑은 더욱 큰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잃은 상실도 잠시 그 후에 맞이하는 사실이 그동안 믿어왔던 사랑과 헌신을 한순간에 무너지게 한다.
정착하지 못했던 그의 마음을 알면 알수록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며 메리의 표정과 사랑이 잔뜩 담긴 음성 메시지가 대비된다. 차오르는 감정과는 다르게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평온한 얼굴에서 절망이 더 짙게 나타나며 영화의 중심을 잡아간다. 남편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 여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메리는 남편이 사랑했던 여자를 찾아가게 된다. 자신의 정체를 알리지 않고 쥬느와 마주치고 하고 싶은 말을 삼킨다. 그의 집에서 일하게 된 메리는 쥬느의 주변을 관찰하고 어질러진 집 곳곳에서 자신이 알던 남편의 흔적을 찾는다. 끊임없이 파고드는 순간을 반복하며 왠지 모를 긴장감을 자아낸다. 메리에겐 그런 긴장감이 통하지 않는지 거울에 자신을 비추고 또 자신의 몸을 어루만진다. 그 외에 쥬느의 침대에 누워 이들이 나누었던 추억을 바라본 후에도 그의 사랑을 놓지 않으며 마음이 내려앉을 때마다 메시지를 곱씹는다.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느끼는 것일까. 같은 사람을 사랑했지만, 누군가는 외면했고 누군가는 직면한 진실로 인해 그들의 엉킨 마음이 풀린다. 갈라진 벽은 점점 더 틈새를 벌어지게 하고 흩뿌려진 먼지는 시야를 가린다. 자각하지 못한 것들 것 한 번에 덮쳐오며 만료된 메시지와 급속도로 올라오는 감정들이 흘러가는 상황의 범위 위에 있는 선택을 결정한다. 온통 금이 가고 균열이 간 벼랑이 아닌 견고한 벼랑 위에서 사랑 후에 남겨진 그 감정이 나눠지지 않은 오로지 각자의 몫이 되어 돌아온다. 사랑 후의 두 여자는 새로운 시작 끝에 같은 곳을 바라보며 새로움을 맞이한다. 그는 하지 못했던 견고함을 해내는 순간이 이 영화의 곳곳에서 이루어진다.

영화는 사랑을 ‘하는 중’의 이야기가 아닌 ‘한 후’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렇게 상실 이후에 배신이라는 사실까지 맞이한 여자와 사랑이라는 불확실성에 자신을 던지며 속여온 여자가 손을 맞잡으며 또 다른 감정의 시작을 알린다. 사랑의 반쪽이라고 할 수 있는 아메드라는 존재가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두 여자의 감정들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지만 평이한 이야기 구성으로 갈 수 있는 소재를 감정 중심의 이야기 진행으로 몰입을 높인다. 감정이 아쉽지만, 감정이 좋은 그런 영화라 오래토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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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과 경찰보다 기자가 중요한 스릴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레코드 아메리칸 신문의 기자 ‘로레타 매클로플린’(키이라 나이틀리). 생활부 소속으로 토스트기 리뷰나 쓰던 그녀는 어느 날 보스턴 일대에서 세 명의 여성이 목 졸려 살해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세 사건 간의 연관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범죄부 소속이라는 아니라는 이유로 '로레타'가 취재를 못하는 사이, 네 번째 희생자가 발견된다. 이에 '로레타'는 베테랑 기자인 '진 콜'(캐리 쿤)의 도움을 받아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 고군분투한 두 기자는 마침내 결정적 용의자 '앨버트 데살보' (데이빗 다스트말치안)를 발견해 낸다. 그 순간, 이들은 이 살인 사건이 더 중요한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목숨을 건 취재에 돌입한다.
범죄 사건의 영화화
영화가 범죄 사건을 다루는 시점은 다양하다. 가해자의 관점에서 범죄의 앞뒤 맥락을 살피거나, 범죄자를 쫓는 형사의 시점에서 사건을 파헤칠 수도 있다. 또 복수를 다짐하는 피해자의 시선으로 범죄의 잔악성을 고발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제각기 다양한 특성과 매력을 지닌 이들의 관점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자칫 잘못하면 작품이 과도하게 선정적이거나 감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범죄 사건의 당사자이거나 밀접하게 엮인 관계자의 시점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를 때, 형사나 경찰이 분노하거나 공명심에 사로잡혔을 때, 피해자의 고통을 강조할 때 언제든 선을 넘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디즈니플러스의 신작 <보스턴 교살자>는 흥미롭다. <보스턴 교살자>는 1960년대 보스턴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끔찍한 범죄 실화 사건을 다룬다. ‘보스턴 연쇄살인사건’은 <살인의 추억> 제작 당시 봉준호 감독이 참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연쇄살인범은 홀로 사는 여성을 교살하고, 기괴한 리본 모양의 시그니처를 남기고 사라지면서 엄청난 공포를 안겼다.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고 미제로 남은 이 사건은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이 형사의 시각으로 1968년에 <보스턴 교살자>라는 제목으로 한 차례 영상화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마션>, <에이리언: 커버넌트>,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를 연출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이번 영화는 동명의 이전 작품과는 다르다. 범죄자도, 경찰도 아닌 기자의 눈으로 살펴보기 때문이다. 영화의 포커스는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두 기자에게 철저히 맞춰져 있다.
안갯속 유일한 내비게이션, 기자
<보스턴 교살자>는 추적극이다. 실존인물인 '로레타'와 '진'은 화면상으로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 연쇄살인범을 치열하게 뒤쫓는다. 두 저널리스트가 넘어야 할 산은 살인범만이 아니다. 범죄부 소속 기자가 아니었던 '로레타'는 회사 내 차별을 극복해야 한다. 그들이 쓰는 기사에 불만을 품은 경찰의 비난도 거세다. 안전을 위협받는 가족의 원망 섞인 눈초리도 따갑다. 하지만 두 기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취재를 포기하지 않는다. 맷 러스킨 감독은 그 원동력을 저널리스트만의 특징에서 찾는다. 특히 영화는 복잡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정확하게 사건을 명명해야 하는 기자의 임무에 초점을 맞춘다. 관객이 기자와 함께 사건을 파악하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셈이다.
실제로 작중 사건의 실체는 안갯속에 빠져 있다. 일례로 살인범은 명확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 특징에 부합하는 용의자는 여럿이다. 집에 혼자 있는 여성을 노린다는 특징은 같지만, '폴 뎀프시'처럼 나이 든 여성만 노린 용의자도 있고, 젊은 여성만 노린 용의자도 있다. 성폭력을 저지른 전과가 있는 '데살보'도 살인범과 유사한 범행 수법을 지녔다. 그들 모두 아파트 정비공이나 모델 에이전트로 위장해 여성들의 집에 손쉽게 들어가 범죄를 저지른다. 또 '데살보'와 같은 정신 병원에 있었던 다른 용의자도 리본 모양 시그니처를 남기는 범행 패턴을 보여준다. 이 안개는 마지막 순간까지 걷히지 않는다. 영화는 '데살보'가 마지막 살인이자 13번째 살인의 범인으로 밝혀진 것 외에는 범인이 특정된 바 없다면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까지 범인을 헷갈리게 만든다. 실제 사건 기록을 참고한 세트 디자인, 의상 등을 통해 1960년대 보스턴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리얼리티도 큰 몫을 맡는다.
그렇기에 짙은 안개를 투시할 수 있는 기자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경찰도 좀처럼 실마리를 잡지 못할 때 '로레타'와 '진'은 명백한 사실에만 집중하며 조금씩 진실에 다가서는 길을 발견한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소피'의 이웃으로부터 확보한 증언을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 그들의 노력은 더욱 분명해진다. 살인범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던 그녀는 신뢰할 수 있고, 또 간과할 수 없는 목격자다. 그런데 경찰은 그녀의 증언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녀가 지목한 범인과 경찰이 지목한 용의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로레타'와 '진'은 다르다. 그들은 증언을 토대로 상황을 재검토한다. 다른 용의자가 있거나 단독 범행이 아닐 가능성까지 살피면서 진실에 더 가까워진다. 다른 장면에서도 이러한 태도를 볼 수 있다. 다수의 보스턴 지역 언론은 사건 초기에 범죄자를 '보스턴 유령(phantom)'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로레타'는 그를 '보스턴 교살자(strangler)'라고 명명한다. 그가 목을 졸라 살인을 저지른다는 사실만 건조하게 담는다.
살인범의 정체보다 중요한 것
더 나아가 영화는 연쇄살인범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기자의 역할을 묘사한다. 바로 감시자다. 경찰과 은연중에 협력해 범인을 추적하면서도, 경찰이 제대로 사건을 수사하는지 늘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중 경찰은 연쇄 살인 사건을 미연에 막지 못했다는 비난에 직면한다. 이에 경찰은 유력 용의자인 '데살보'의 자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침내 경찰에게 자백하기로 결심한 '데살보'. 그런데 그의 변호인은 한 가지 조건을 건다. 자백 내용을 법정에서 증거로 활용해서는 안된다는 것. 경찰은 어떻게든 연쇄 살인 사건을 종결하기 위해 변호인의 조건에 동의하고, 그를 살인이 아닌 다른 혐의로 기소하기로 결정한다.
'로레타'는 한 명의 용의자에게 모든 살인 혐의를 넘기고 사건을 종결하는 경찰의 조치에 분노한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데살보'는 갑작스럽게 스타 변호사를 고용한다. 변호인은 그의 자백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려 한다. '데살보'만큼이나 유력한 다른 용의자는 그와 같은 감방에서 모종의 회의를 연다. 이들은 마치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은폐하는 하나의 커넥션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로레타'는 사건을 덮으라는 편집장의 지시도 거부한 채 계속해서 취재를 이어나간다.
마침내 '데살보'의 자백 녹음을 구하는 데 성공한 '로레타'는 경찰의 구체적인 사건 조작 정황을 발견한다. 첫 번째 살인 사건을 묘사할 때 '데살보'가 횡설수설하자 경찰은 피해자의 집 구조와 사진을 보여준다. 그 순간 그의 자백은 오염됐고, 남은 자백 내용도 무의미해진다. 살인범의 기억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진위 여부를 알아내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보스턴 교살자>가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저 한 범인만 쫓는 게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한 사회적 문제를 찾아내는 것. 살인 사건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 살인 사건이 가능했던 경찰의 무능함과 구조적 오류를 세상에 보여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로레타'와 '진'이 함께한 작업의 진짜 가치라고 강조한다.
웰메이드 스릴러의 탄생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는 두 기자의 노력은 그들 본인도 구조적 차별의 희생양이었기에 더 인상적이다. 여성이 기자가 되는 게 매우 어려웠던 시절에, 그들은 언론사 안에서도 치열하게 투쟁했기 때문이다. 특히 극명하게 갈리는 두 주인공의 태도 덕분에 그들의 싸움은 더 흥미롭다. '로레타'는 사내에서 부조리하다고 느껴지는 지시가 있으면 편집인과 사주에게 직접 항의할 정도로 불같은 성격을 지졌다. 반면에 연차가 더 많이 쌓인 '진'은 회사 내에서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한다. 기사 밑에 기자 이름 대신 사진을 넣자는 상부의 제안에 '로레타'가 화를 내자 '진'은 회사도 신문을 더 팔아야 한다며 설득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 사진 때문에 '로레타'의 신상이 공개돼 그녀가 위협을 받자, '진'은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상사에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관계는 <이미테이션 게임>, <비긴어게인> 등에 출연한 ‘키이라 나이틀리’와 <나를 찾아줘> 등의 작품에서 호평받은 ‘캐리 쿤’의 열연 덕분에 인상적이다.
사실 <보스턴 교살자>가 다소 정적이고 건조하다고 느껴질 여지도 충분하다.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을 가급적 제외하면서 정확하게 사건을 묘사하려 노력하다 보니 다른 스릴러 영화와 다른 맛을 내기 때문이다. 범인이 한 노인을 살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욕조에 물을 받던 노인은 벨소리를 듣고는 손님을 보러 간다. 문을 열자마자 범인은 노인을 공격하고, 살해한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은 그저 소리만 들릴 뿐이다. 카메라는 노인이 만지던 수도꼭지를 계속해서 비춘다. 마침내 집안이 조용해지고, 범인의 손이 나타나 물을 더 세게 틀고 손을 닦으려 하자 그제야 사건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 이 장면은 영화가 범죄자의 시선이 아닌 기자의 시선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스턴 교살자>를 마냥 지루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묵직한 스토리텔링과 섬세한 디테일 덕분에 여전히 스릴러 장르다운 긴장감과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실화 사건을 저널리즘적 마인드로 풀어낸 대목에서는 의미와 재미를 모두 붙잡으며 극찬을 받은 톰 매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가 순간적으로 겹쳐 보이기까지 한다.
A(Acceptable, 무난함)
기자의 시선이 돋보이는 진중한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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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스러운 두 배우와 동력을 잃은 리메이크
내 맘은 이게 아닌데
위이잉. 회로가 굴러가고 있다. 어떤 회로? 행복회로와 연애회로. 95학번 한국대 기계공학과 복학생 김용은 현재 행복회로를 굴리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수업 들으러 가는 용. 친구 놈이 말을 건다. "야. 너 그거 들었냐? 우리 과에 똑똑한 여자 애 들어온다는 거." 사실 학과에 신입생으로 여학생이 들어온다는 것은 '내일 일어나서 밥을 먹는다'에 준하는 흔한 이야기다. 아니 들어 올 수도 있지. 그런데 이 여학생이 다른 사람이 아닌 '서한솔'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수수한 외모. 그렇게 꾸미지 않았는 데도 한솔이의 미모는 저 멀리 있는 용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혼란스러운 세기말 1999년. 많은 것들이 바뀌기 바로 직전이었다. 두근 반 세근 반 용이의 계절도 봄으로 바뀌기 직전이다. 그렇게 설레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신나는 대학 생활. 어느 날 용은 은성이가 갖고 있는 'HAM 무전기'를 발견한다. 야. 은성아. 나 이거 써봐도 돼? 뭐라도 있으면 좋잖아? 한솔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전기를 빌리는 용. 용은 그 무전기에서 의외의 상대와 대화한다.
내 맘은 이게 아닌데. 무늬에게 사랑은 너무 어렵다. 무늬의 오랜 '남사친' 영지. 무늬는 영지를 사랑하고 있다. 21학번 대학생인 무늬. 무늬에겐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과 수다 떨 때는 떡볶이를 먹으며 노닥거리고, 인스타그램을 끄적이며 일상을 공유한다. 별 다를 바 없는 무늬의 20대. 그러나 무늬의 짝사랑 영지는 뭔가 다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대학을 다니지 않았던 영지. 어느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하면서 보내고 있다. 난이도가 올라가는 무늬의 사랑. 영지가 다른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무늬에겐 용기가 없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영지. 불안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교양 과제를 위해 누군가를 인터뷰해야 하는 무늬. 집에 고물처럼 박혀있는 'HAM 무전기'의 수화기를 켠다. "씨큐. 씨큐. 혹시 들리시나요?" "네 들립니다. 제 이름은 김용이라고 합니다."
비주얼 합격
시놉시스를 4초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영화의 주인공은 용과 무늬다. 용은 여진구 배우가, 무늬는 조이현 배우가 맡았다. 드라마를 잘 안 보는 나. 여진구 배우의 대표작 하면 <화이>가 생각난다. 그래서 이 배우가 이렇게 좋은 배우였나? 싶었다. 일단 이 극에서 용(이)의 서사가 제일 중요하다. 전반부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찌질하면서도 풋풋한 양면성을 띄는 톤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연기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작위적인 무언가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여진구 배우가 보여준 연기는 연기가 아닌 것 같았다. 이 연기에는 굴곡이 있어야 한다. 사랑에 빠졌기에 달달하고 멋있는 듬직한 모습과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는 궁색맞음이 한 사람의 톤 안에 있어야 극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여진구 배우는 이를 이해한 듯 풍부한 감정연기를 선보인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조이현 배우의 화보집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말하는 분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진구 배우의 팬이라면 베테랑이 된 이 배우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이에 힘입은 배인혁, 김혜윤 배우도 그 시절 티가 나는 파릇파릇한 대학생을 잘 소화했다. 특히 김혜윤 배우는 96년생으로 한국 나이 27세다. 건국대학교를 다녔다고 검색하니 나온다. 아마 이때 15학번 신입생으로 들어온 많은 남학생들의 마음을 실제로 훔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대학생 연기가 아니라 진짜 대학생 같았다.
현대 시점으로 와서, 무늬 역을 맡은 조이현 배우는 극에서 가장 빛난다. 아마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라고 글쓴이에게 묻는다면 조이현 배우의 모든 것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나머지는 하이라이트 신에 삽입된 명곡이라고 답하고 싶다) 조이현 배우가 그렇게 장신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큰 화면으로 보면 조이현 배우의 비율이 더 뛰어나게 느껴진다. 또 조이현 배우가 무쌍 미녀의 대표 격 아닌가? 귀여운 외모와 더 귀여운 목소리 톤으로 사랑스러운 현대 시점의 이야기를 이 배우의 매력으로 끌고 간다. 연기도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역할로 잘 골랐다. 소심할 땐 소심하지만 인물이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씩씩한 내면을 잘 보여줬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볼 수 있던 남라 캐릭터의 강점을 어느 정도는 옮겨 온 듯하다. 후술하겠지만 영화에서 무늬의 감정선이 거의 이해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그러나 이 무늬에게 집중해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조이현 배우의 비주얼과 연기력 덕이다. 또 멜로드라마의 구성에서 과거 시점이 현재 시점보다 훨-씬 존재감이 세다. 대신 반대 측면에서 현재 시점이 영화가 정말 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서도 중요할 때 감정에 힘을 빡 주는 연기로 영화를 소화한다. 이 무늬를 지원 사격하는 영지 캐릭터, 그러니까 나인우 배우의 비주얼도 좋았다. 아니 대학생활하다 보면 꼭 저런 형이 여학생들한테 인기 많았다. 그 모습을 꼼꼼하게 묘사한 성실함이 돋보였다.
좀 갑작스럽네
그렇게 두 주인공의 비주얼을 예쁘게 뽑았다. 이런 로맨틱 코미디 장르나 청춘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이런 게 필수 아닌가?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이야기의 흐름이다. 일단 영화는 과거 시점과 현대 시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중요한 설정은 이 두 시점에서 두 인물이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22년 전 과거의 대상과 무전을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과거 시점이나 현재 시점이나 이 판타지적인 소재를 받아들이는 데 심리적인 장벽이 있어야 몰입이 쉬울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를 묘사하다가 말았다. 서로 '당신이 거짓말하고 있는 거 아냐?'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서로를 이해한다. 여기서 몰입이 어그러진다. 그럼 영화의 핵심으로 닿는 부분까지 감정 이입이 안된다는 단점이 있다.
또 이는 무늬라는 인물의 캐릭터성과도 이어진다. 무늬는 관찰자이면서도 능동적인 입장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관찰자로서는 용의 사랑을 모니터링하며 조언하는 역할을 아끼지 않는다. 이 관찰자의 관점에서 푸는 이야기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앞 문단에서 언급한 것의 연장선상에서, 용(이)에게 쏟는 감정선이 관객이 생각하는 것보다 깊게 느껴진다. 또 현재의 무늬가 갖고 있는 문제는 영지에게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 것인가? 에 대한 것이다. 이 이유가 단순히 용의 첫사랑에 같이 몰입해서 마음이 깊어졌다기엔 내면 묘사가 너무 안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이야기 비중을 좀 줄여서 무늬의 사랑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든다. 또 무늬가 HAM 무전기로 대화하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교양과목 발표다. 이 교양과목 발표가 너무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영화를 보는 분들 중에 분명 대학생 신분이 있을 것이다. 보다 보면 친구들은 발표를 잘하는데 무늬만 굉장히 평면적으로 발표한다. 이는 '우리 모두 다 사랑하고 있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와 '낭만'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것으로 보인다.
소소하지 않아
22년을 돌아온 리메이크다. 올해 후속작이 참 많았다. 그중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은 <탑건 : 메버릭>이다. 36년 전의 1편은 미국의 군인들에게 사기를 진작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2년의 이 <탑건 : 메버릭은>은 아날로그가 왜 사라져선 안 되는지에 대해 소리 한 방 크게 지르는 영화가 됐다. 이를 반영하는 호쾌한 액션으로 톰 크루즈의 대표작이 되었다. 36년이 걸린 이 영화. 두 영화는 차이점을 보여주며 왜 리메이크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이 <동감>은 22년을 걸린 리메이크의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구체적으로 굳이 영화의 시점을 2022년과 1999년으로 설정한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 뭐라고 적을 것도 없이 현대 젊은이들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없다. 또 과거라는 설정이 영화에서 엄청 중요했나? 그것도 아니다. 용과 한솔의 사랑이야기에서 터닝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시대상과 관련이 없다. 이런 소재와 메시지가 따로 노는 현상은 자잘 자잘한 것에서 더 신경 쓰인다. 가령 무늬가 2022년 봄에 아이폰 13을 쓰는 것이나 3월에 패딩을 안 입고 다니는 것이 그렇다. 섬세한 힘이 부족해 고증에 실수가 있는 것이다. 또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소재로 거북이와 달이 있다. 이 두 소재를 통해 연출가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얕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개기월식이라는 소재는 영화에서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 또 거북이라는 소재는 영화에서 연결고리를 위해 기능적으로 툭 던진 느낌이 강하다. 굳이 마음의 이동을 표현하기 위해서 거북이가 있어야 하나? 아니라고 본다. 또 수위 아저씨가 극후반부에 어떤 이미지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조이현, 여진구 두 배우의 극후반부 퍼포먼스로 아련한 느낌을 잘 살렸다. 그런데 나레이션에 이것까지 더해지니 계속 들었던 말을 두,세번 반복하는 느낌이 강하다.
사랑스럽기만 한
영화는 사랑스럽다. 조이현, 여진구 두 사람의 캐릭터성이 통통 튀기 때문에? 맞다. 나인우, 배인혁의 훈훈한 비주얼? 김혜윤의 미모? 맞다. 영화는 이 배우들의 매력을 중심으로 사랑스러운 느낌을 잘 풍긴다. 그러나 첫사랑의 달달함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이렇게 짝사랑과 첫사랑에 대해 다룬 영화라면 뭐랄까 나 혼자서 품고 있는 짝사랑의 상대에게 메시지라도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무언가 동기부여가 생기지 않았다. 그냥 조이현 배우 같은 여사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 정도였다. 이는 절대 관객들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닐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영화가 사랑스럽긴 한데 굳이 이걸 봐야만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영화 볼 거면 <건축학개론>을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니까. 더 사려 깊은 연출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아. 이 영화와 협업한 츄, 미노이의 리메이크 곡을 지금 글 쓰면서 듣고 있다. 이 <고백>과 <습관>이 아주 잘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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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SF영화
많은 기억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저장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기억들은 저장해 두고 시간이 될 때마다 그 기억을 꺼내 떠올린다. 마치 영상이 재생되듯이 그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에는 그때 느꼈던 감정, 촉감에 집중한다. 어떤 기억은 아주 행복하고 어떤 기억은 아주 고통스럽다. 이렇게 기억들은 상황에 따라 선별적으로 저장된다. 의식적으로 이 기억을 저장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순간들은 어느 순간 지나고 보면 잘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한다. 모든 경험 중 아주 특별한 기억들만 남아 오랜 시간 저장된다.
이렇게 저장된 기억들은 모여서 기억 속 과거가 된다. 종종 과거를 떠올리고 그 순간을 다시 돌아본다.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누구나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과거의 특정한 기억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기도 한다. 때론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좋은 길잡이가 되지만 현재의 삶을 방해하기도 한다. 특히나 과거의 행복한 순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순간부터 현재는 불행해지고 살아가야 할 동력이 줄어든다.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현재보다는 과거의 영광을 생각하며 현재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현재는 불행해지고, 과거에의 집착은 더욱 심해진다.
과거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 <레미니센스>
영화 <레미니센스>는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 속 레미니센스는 과거의 특정 기억을 떠올려 그때의 감정이나 촉감을 좀 더 디테일하게 느끼게 해주는 기계다. 일종의 과거로의 여행을 하게 도와주는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과거로의 여행을 돕는 인물은 닉(휴 잭맨)이다. 닉은 이 기계에 들어간 의뢰자들을 음성으로 안내하여 안전하게 과거를 느낄 수 있게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닉은 동료인 와츠(탠디 뉴튼)와 함께 그 가게를 운영하면서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그가 가게를 운영하며 만나는 고객들은 대부분 과거의 행복한 기억에 반복해서 머무르려 한다. 꽤 다양한 사람들이 그 과거에 접속하는 모습은 꽤 흥미롭게 느껴진다.
초반에 보이는 닉은 꽤 이성적이지만 공감능력이 있는 인물이다. 고객들이 과거에 너무 빠지는 것에 대해서 주의를 주거나 우려점을 충분히 전달해주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객이 있다면 어느 정도는 금전적인 할인도 해준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고객으로 등장하는 메이(레베카 퍼거슨)를 만난 이후 그는 새롭게 만난 메이와 많은 공감과 감정을 공유한다. 과거 행복한 기억이 별로 없는 듯 보였던 닉은 메이를 만난 이후 그만의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간다. 그가 그렇게 현재의 좋은 기억들을 과거로 쌓아둘 수 있었던 것은 과거보다는 현재에 좀 더 집중했기 때문이다. 현재 눈앞에 있는 메이라는 여인에게 집중하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는 과거에 함몰된 영화 초반의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메이가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중반 이후 닉도 점점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 메이와의 순간들을 다시 느끼기 위해 기계에 스스로 접속하고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자신의 연인이 떠나간 이유를 찾으려 애쓴다. 그래서 아주 이성적으로 보였던 닉은 점점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현재보다는 과거에 머무르며 그 행복한 순간들을 다시 경험한다. 다만 사라진 연인이 왜 말도 없이 떠났는지에 대한 미스터리를 찾는 것이 주요 목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있긴 하다.
이성적인 닉이 과거에 집착하게 되기까지
옆에서 그를 돕는 와츠 역시 과거에 접속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아예 자신의 과거를 차단하고 있는 인물이다.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와츠는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단절시킴으로써 현재를 억지로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가 살아가는 현재는 꽤 공허해 보이고, 그가 들이키는 술은 그 공허함을 달래는 도구로 보인다. 그는 과거의 미스터리를 푸는 닉을 돕지만 그가 다시 현재를 살아가길 설득한다. 하지만 과거를 단절한 본인의 현재가 공허함을 잘 알기 때문에 그 설득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실 영화가 풀어가는 메이의 미스터리는 꽤 흥미롭다. 닉과 같은 시선으로 메이를 바라봤던 관객들은 그가 왜 사라졌는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를 동일한 감정으로 따라가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발생하는 미스터리는 영화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영화는 메이에 대한 약간의 반전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어서 다소 맥이 풀리게 한다. 또한 영화의 말미에 닉이 선택하는 어떤 모습은 그가 현재를 살아가지 않고 과거에 머무르는 것인데, 이런 닉의 선택 또한 초반에 그가 보여준 모습과 반대되는 모습이어서 영화가 가진 전체적인 주제와도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며 걸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마지막 닉의 모습은 과거에만 함몰된 것처럼 보여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온전히 현재를 살아갈 기회를 얻은 인물은 와츠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부패한 경찰이나 재벌, 심지어 주인공 닉까지 모두 현재를 살아갈 기회를 얻지 못했거나 스스로 포기한다. 하지만 와츠는 단절했던 과거를 다시 회복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고, 그가 스스로 만든 현재에도 동료인 닉을 끝까지 보살핀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영화의 주제를 대변하는 인물은 닉 보다는 와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설정에 몇 가지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 영화의 배경은 미래의 플로리다다. 도시의 일부가 바닷속에 잠기면서 도심지의 건물들의 저층은 대부분 물속에 잠겨있고, 일부 잠기지 않은 길은 차가 다니지만 대부분은 작은 보트로 이동을 한다. 또한 해가 진 이후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낮과 밤이 바뀐 도시처럼 보인다. 도시 건물의 저층 대부분이 물에 잠겨있는 모습은 이전에 보아왔던 완전히 물에 잠긴 도시의 모습과는 차별화되고 그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며 시선을 끈다. 과거를 시각적으로 영상화하여 제삼자가 볼 수 있다는 점도 새로운 설정이다. 과거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기억을 화면으로 터치하여 보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레미니센스>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만들어진다. 과거의 모습이 3차원으로 구현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기억을 하고 있는 본인이다. 즉,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레미니센스라는 기계 안에 연결되어 있어야만 영상으로 구현과 저장이 가능하다.
신선한 세계관 속에 영화의 주제의식과 모순되는 캐릭터의 선택
영화 <레미니센스>는 꽤 신선한 설정과 세계 관위에 구축된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이미 많이 보아온 SF의 세계관을 살짝 비틀어 조금 색다른 배경을 보여주고 있고, 영화 안에서 보여주는 과거 구현 기술도 좀 더 디테일하게 파고들어 그 기술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담고 있다. 그러니까 SF 영화답게 미스터리와 액션, 시각적 화면 그리고 철학적인 주제가 복합적으로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담고 있는 마이애미의 모습은 꽤 아름답고 닉과 메이, 와츠 같은 주요 등장인물들도 꽤 매력적이다. 또한 영화의 주제를 담아낼 수 있는 인물로 만들기 위해 적절하게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보인다.
이렇게 잘 구현된 세계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시종일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다른 방향으로 캐릭터가 소비되면서 그 주제의식이 희미해지고 말았다. 이 영화의 세계관을 구상한 리사 조이 감독은 유명한 SF 드라마 <웨스트 월드>의 세계관을 매력적으로 구성한 경험이 있다. 그는 <웨스트 월드>의 감독, 각본까지 담당하면서 꽤 훌륭한 주제의식과 세계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었다. 이번 첫 장편 연출작인 <레미니센스>에서도 그가 가진 뛰어난 구상 능력을 확인할 수 있지만, 영화 주제를 이야기하는 측면에서의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리사 조이 감독은 앞으로 다양한 스튜디오들과 함께 더 많은 SF영화나 드라마를 연출할 예정이어서 그가 만들어갈 세계관으로 어떤 이야기를 보여 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 영화가 해피엔딩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닉은 메이에게 행복한 이야기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해피엔딩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더 슬프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 이야기에 메이는 그럼 중간까지만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어쩌면 닉은 메이의 부탁과 마찬가지로 그 중간까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끊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가 어떤 식으로 망가지는지를 계속 이야기했다. 그 주제 의식 아래서는 닉의 마지막 모습은 배드 엔딩일 것이다. 하지만 닉과 메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적어도 그들에게는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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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 불신의 문을 열어라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종교와 신앙심에는 언제나 호기심이 많습니다. 어쩌면 신앙이 없기 때문에 그 궁금증이 더 커지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를 향한 상상은 종종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커지곤 하니까요. <헤레틱>은 저처럼 종교와 신앙에 물음표가 있는 사람들에게 꽤 흥미롭게 다가갈 스릴러 영화입니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이 <러브 액츄얼리>의 휴 그랜트라면,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한 번쯤은 볼만한 이유가 되지요.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헤레틱>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헤레틱>은 2025년 4월 2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헤레틱
Heretic
Summary
외딴 집을 찾은 신앙심 깊은 두 소녀에게 집주인은 믿음을 뒤흔드는 이야기를 꺼낸다. 무언가 의심스럽다고 느끼는 순간, 두 소녀는 꼼짝없이 집안에 갇히게 된다. 친절했던 남자는 돌변하고, 그녀들은 살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출연: 휴 그랜트, 소피 대처, 클로이 이스트
믿음을 조롱하는 궤변의 이단자
모르몬교도 '반스'와 '팩스턴'은 방문 포교를 위해 '미스터 리드'의 집을 찾습니다. '미스터 리드'는 모르몬교에 호의적인 듯이 대화에 참여하다가, 자연스럽게 두 명의 여성을 집에 가두어 버리죠. 그러고는 이 세상에 참된 종교는 없다는 주장을 피력하며, 방문 포교를 할 정도로 신앙심이 투철한 두 소녀에게 '믿음'과 '불신'의 길 중 하나를 골라야만 이 집을 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미스터 리드'는 얼핏 참된 종교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종교 비평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자신의 손아귀 안에 있는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통제가 신앙심을 만든다'는 주장의 외연을 만들어 가는 소위 '또라이'일 뿐입니다.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들의 믿음을 뒤흔드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이자, 이상적인 신념을 향한 인도자인 척하는 비겁한 감금 행위자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소녀에게 '믿음'과 '불신'의 선택지를 꺼내 보이기까지 '미스터 리드'가 펼쳐 보인 궤변의 시퀀스는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일신 종교들이 수천 년간 껴안고 있던 논리적 빈틈들을 짚어가는 장면은, 묘한 설득력을 안기기까지 했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르몬교를 각각 다른 버전의 보드게임 '모노폴리'에 비유한 대사는 놀랄 만큼 참신했습니다.
실제로 재 보진 않았지만, 체감상 십 분 가까이 이어졌던 이 시퀀스는 말 그대로 휴 그랜트의 무대였습니다. 휴 그랜트 하면 언제나 <러브 액츄얼리> 속 영국 총리의 낭만적인 얼굴이 먼저 떠올랐기에, 그가 이런 장르와 잘 어울릴지 의문도 있었는데요. 그는 이 장르의 옷을 완벽하게 갖춰 입었습니다. 비겁하고 뒤틀린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해내는 휴 그랜트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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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이라는 영화적 장치
<헤레틱>의 핵심 설정은 '미스터 리드'의 집에 설치된 '믿음'과 '불신'의 문입니다. 어느 쪽 문을 선택해야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는 주인공 두 소녀와 관객 모두 알 수 없고, 그러한 불확실성이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죠. 하지만 그 두 개의 문은 모두 하나의 지하실로 연결되어 있었고, 어느 쪽을 택하든 두 소녀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두 개의 문을 활용한 서스펜스가 너무 빨리 끝나버린 점과 두 개의 문을 그 이상의 영화적 장치로서 활용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습니다. 중반 이후의 전개에서는 문이 하나였어도 이야기의 흐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겁니다. 이 장치를 더 유의미하게 사용하였더라면, 이야기 전개의 긴장감과 매력이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이 작품이 감각적이고 신선한 스릴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단순히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종교와 신앙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지요. '미스터 리드'가 주장하는 내용의 뼈대는 모르몬교의 '참된 교회' 교리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인상도 받았는데요. 기독교 사회에서 이단이라 불리는 모르몬교의 신자들과, 모든 종교를 부정하며 스스로 이단자가 된 사람의 대립. 이러한 구조는 믿음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는 시도로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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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리드'의 모습에서 종교와 신앙에 부정적인 감정과 깊은 의구심만을 가졌던 제 모습이 엿보여 괜히 께름칙해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무종교인이지만, 이제는 종교와 신앙을 있는 그대로 존중합니다. 아무리 신의 부재를 증명하고 종교를 부정해도, 그것을 뛰어넘는 신앙의 힘과 가치가 있음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신에게 기도한다고 해서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세상의 안위를 빌게 되는 그 행위에 기대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소녀 '팩스턴'의 대사처럼 말이지요.
One-Liner
이단자가 내뱉는 확신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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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에 가려진 현실을 들추는 로맨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화려한 패션으로 무장한 이 도시는 수많은 영화에서 로맨틱하고 사랑이 꽃피울 것만 같은 부드러운 인상으로 등장했다. 파리의 예술에 대한 판타지가 집약된 로맨스로 유명한 <미드나잇 인 파리>나 시즌 2까지 공개되어 큰 인기를 끈 <에밀리, 파리에 가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미국 그래픽 노블 작가의 단편 세 편을 각색한 자크 오다아르 감독의 <파리, 13구>는 다르다. 파리의 20개 행정구역 중 하나로 유럽에서 가장 큰 아시아 타운이 있는 파리 13구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파리는 그저 흑백 필름의 배경일뿐이다. 우연적인 만남은 있을지언정 그 만남은 드라마 같은 낭만적 사랑 이전에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 그렇게 영화는 절제된 도시의 느낌과 배경을 통해 청춘의 사랑, 자유, 방황, 불안정한 삶을 온전히 전해 준다.
오다아르 감독이 그려내는 파리는 첫 장면에서부터 알 수 있다. 텅 빈 도시의 밤거리를 비추던 카메라는 이내 불 켜진 창문들을 칸칸이 스쳐 지나간다. 네모난 칸 안에 분절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칸 안에서 비슷하게 또 다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채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 외로움은 서로 다른 캐릭터의 모습으로, 또 그들 간의 관계와 섹스 안에서 등장한다. 사랑을 갈구하는 '에밀리(루시 장)',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 채 쫓기만 한 '카미유(마키타 삼바)', 다른 이를 사랑하는 일이 두려운 '노라(노에미 메를랑)', 사랑이 값비싼 '앰버 스위트(제니 베스)'가 그들이다. 영화는 제각기 처한 상황과 사랑과 삶을 마주하는 태도가 다른 이들이 우연히 스치고 만나는 시간과 그 시간에 담긴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첫 만남은 에밀리와 카미유의 만남이다. 파리 정치 대학을 졸업하고도 OTT 멤버십 가입을 권유하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에밀리는 룸메이트를 구하다가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학교 선생일을 하는 카미유를 만난다. 첫 순간부터 카미유와 눈이 맞은 에밀리. 그녀는 함께 섹스를 할 때 비로소 자신을 옥죄는 가족을 잊고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그녀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고, 가장 자기 자신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에밀리만 카미유를 사랑한 일방향적 관계는 이내 틀어진다. 카미유와 다른 여자 친구인 스테파니를 집에 들인 것을 두고 갈등을 빚은 끝에 카미유가 집을 나가 버리고, 에밀리 본인도 성적인 뉘앙스로 고객 응대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다.
다음 만남은 노라와 엠버 스위트의 만남이다. 고향에서의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홀로 서기를 하기 위해 30대 초반에 법대생으로 파리에 온 노라. 그러나 그녀는 신입생들과 어울리기 위해 참석한 파티장에서 쓴 금발 가발 때문에 포르노 모델인 엠버 스위트와 동일 인물이라는 오해를 산다. 학교에서 야유를 당한 노라는 결국 신과 닮았다는 포르노 배우 엠버 스위트와 직접 유료 채팅을 시작한다. 엠버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노라. 포르노 사이트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본명을 쓰는 노라를 보면서 엠버도 자신의 본명을 알려주고, 둘은 개인 계정을 통해 화상 채팅을 이어가며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로 발전한다.
다음은 노라와 카미유다. 학교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던 노라는 휴학을 선택한 뒤, 고향에서 원래 종사했던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자 카미유가 친구 대신 운영하던 사무실에 취직한다. 에밀리와 몸을 섞으면서도 마음을 주지는 않았던 카미유지만, 그는 능력 있고 매력적인 노라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장벽이 있다. 노라는 카미유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분위기에 맞춰 자신의 감정과 몸의 반응을 연기한다. 이미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엠버에게 큰 위로를 받고 있던 노라에게 진실되지 않은 카미유와의 만남은 매력이 없다. 그런 노라를 보면서 카미유는 카미유대로 에밀리에 대한 생각을 지우지 못하며 그녀와 재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인 고객의 통역을 위해 부동산 사무실에 들른 에밀리를 보고, 노라는 카미유에게 자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이들의 만남은 항상 섹스와 쾌락이 우선하고, 그다음에 사랑과 관계에 대한 고뇌가 뒤따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그 고뇌가 단지 로맨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각 캐릭터의 삶에 관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처음 만난 날부터 즉각적인 육체관계를 갖는 에밀리와 카미유, 그저 대화를 원한다는 노라에게 망설이지 말고 원하는 서비스를 말해보라는 엠버, 각자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관계를 맺는 카미유와 노라. 이것이 세 여성과 한 남성이 만들어 낸 관계도다. 이 관계도는 통상적인 사랑과 쾌락의 관계가 뒤바뀐 듯하고, 무척이나 가볍지만 무시할 만한 무게는 아닌 감정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파리, 13구>는 인터넷으로 만난 관계는 진지할 수 없다는 통념을 조금씩 벗겨내는 감정, 희미한 호감이 있지만 적극적 구애로 전환하기는 애매한 감정이 빚어내는 현대적 사랑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때 영화는 단지 중심 없이 혼란스러우며, 두루뭉술한 사랑의 그림을 보여주는 데에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림 밑바탕에 있는 스케치의 모습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 스케치는 청년들이 확신에 찬 사랑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시대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그 핵심은 불안감이다.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사회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이에 사랑은 부차적인 이슈가 된다. 경제적 조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믿지 못하고, 그 불안감으로 인해 사랑을 잡을 날을 요원해진다.
에밀리, 카미유, 노라, 앰버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만남은 어느 로맨스 영화처럼 우연으로 시작되지만, 그 우연은 곧장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감정들은 사랑에 앞서 삶을 돌아보고 뒤바꾸는 기회가 되고, 그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기회가 된다. 에밀리는 직장과 집을 오가며 답답한 삶을 살았지만, 카미유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수입원이 사라지고, 가족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며,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에 이르기까지 언젠가 필요했을 변화의 순간을 초래한다. 노라에게 일어나는 변화도 다르지 않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가벼운 성욕 너머에 있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캐릭터들의 진짜 외로움이다. <파리, 13>가 '낭만의 도시’라 불리는 파리를 흑백으로 담아내어 전달하려는 건 이 혼란스러운 감정의 흐름이다. 그래서 영화는 현재의 사건과 대화를 인물들을 둘러싼 과거의 배경과 사연으로 눈으로 돌린다. 대만계인 에밀리의 가족을 통해, 카미유의 가족을 통해, 화상 채팅을 통해 그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왜 그들이 사랑에 집착하고 또 사랑을 알지 못하는지를 납득시킨다. 적나라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사랑의 감정은 카미유가 동생 에포닌과 오해를 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외적으로 닮았지만 전혀 다른 이들이 담담히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결과, 클라이맥스의 키스신은 덜 섹슈얼하더라도 그 어떤 장면보다도 농도가 높고, 외로운 청춘들의 욕망은 깊은 계곡을 넘어 낭만적 사랑으로 마무리된다.
네 주인공의 만남과 욕구, 사랑의 서사를 더욱 진하게 만드는 것은 감각적 요소, 특히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의 활요이다. 우선 영화는 흑백 촬영을 선택해, 파리에 기대하는 일반적인 이미지에 변화를 주었다. 화려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도시의 색을 없앴다. 그 덕분에 쾌락과 섹스처럼 즉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 너머에 있는 이야기들에 집중할 수 있다. 자칫 매우 자극적인 영상의 향연일 수 있었지만 파리라는 도시를 이루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성공한다. 이에 더해 제한적으로 등장하는 음악의 존재감은 네 주인공의 삶의 무게를 극대화한다. 내용이 전환될 때 들려오는 빠른 템포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와 대비를 이루며 이질적인 인상을 준다. 이는 마냥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속사정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청춘들의 이면을 음악으로 담아냈다고 할 수 있겠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에 따르면 “<파리, 13구>는 현시대를 보여주는 시대극이라 말할 수 있다.” “이 도시에 사는 등장인물이 성취감을 얻고, 성적인 면에서는 정체성을 깨닫고 쟁취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던 포부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리 13구역에서 성장통을 겪는 네 명의 캐릭터들은 다양한 배경과 문화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모든 젊은이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느껴진다. 그렇게 <파리, 13구>는 육체적 쾌락에서 시작해 낭만적 감성을 충족시키며 파리의 색다른, 또 색이 없는 사랑을 그려낸다.
A(Accepatble, 무난함)
낭만을 잠시 버린 파리의 색다르고 색 없는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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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은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미드 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오웬 윌슨 역 )은 낭만이 가득한 1920년대의 파리를 꿈꿨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피카소의 뮤즈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는 1920년에 만족하지 못했고. 그녀가 진정 원한 건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였다. ‘좋은 시대’라고 불리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해당하는 이 시기 파리는 전에 없던 풍요와 평화를 누렸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강렬한 색채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물랭루주와 레스토랑 맥심으로 아름답게 물든 이 시대 거리에는 우아한 복장의 신사 숙녀들이 넘쳤다. 문화가 꽃피우고 화려하기만 한 시절. 영화 <어느 하녀의 일기>가 번지르르한 가면 뒤에 숨어 있던 화려함의 비밀을 폭로한다.
오디에른 지방 출신의 하녀 셀레스틴(레아 세이두 역).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나 하녀 일로 삶을 이어나가는 그녀는 매혹적인 외모와 도도한 언행으로 여자들에게는 질투의 대상이 남자들에게는 욕망이 대상이 된다. 수많은 집을 거치며 사람에 대한 불신과 염증을 느낀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던 그녀의 새 일터는 노르망디 시골에 사는 부유한 랑레르 부부의 집.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랑레르 부인과 시도 때도 없이 추파를 던지는 랑레르 씨. 저를 반기지 않는 여자 요리사 마리안과 속을 알 수 없는 마부 조제프까지. 조용한 시골에 찾아온 발칙한 셀레스틴의 일상이 시작된다.
영화의 원작 소설 <어느 하녀의 일기>는 ‘벨 에포크’ 시대 소설 장르의 변화를 이끈 옥타브 미르보의 작품. 권력 비판과 사회 참여에 앞섰던 지식인 옥타브 미르보는 <쥘 신부>, <세바스티앵 로크> 등의 작품을 통해 금기시되었던 전쟁과 종교에 대한 내용을 담아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예술 비평가로도 활동하면서 로댕, 고흐, 모네 등의 예술가들을 세상에 알리고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에 맞서 싸워온 그의 대표작 <어느 하녀의 일기>는 당시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리 추악한 행위를 일삼았던 부르주아들의 실상을 하녀의 눈으로 드러냈다. 1946년에는 장 르느아르 감독을 통해, 1964년에는 루이스 브뉴엘 감독을 통해 이미 2번이나 리메이크되며 그 저력을 입증한 <어느 하녀의 일기>. 2015년 브누와 쟉꼬 감독의 손 끝에서 매력적인 레아 세이두로 다시 태어난 <어느 하녀의 일기>는 그들만의 색을 자랑한다.
기존 영화들이 보여주는 '하녀'의 이미지를 답습하는 <어느 하녀의 일기>. 어리고 예쁜 하녀와 그녀를 향한 성욕에 물든 부자 주인, 젊고 예쁜 하녀를 질투하는 안방마님까지 신선하지 않은 이미지들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배우의 힘 덕분이다. 이미 <페어웰, 마이 퀸>에서 브누와 쟉꼬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레아 세이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녀 역에 이어 이번에도 그녀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하녀로 거듭났다. 몸은 굽혀도 마음은 굽히지 않는 도도한 태도와 상대를 교묘하게 비꼬는 예리한 언행, 귀족들에게 지지 않는 세련된 패션 감각과 우아한 몸짓의 이 하녀는 그저 순종적인 다른 하녀들과 차원이 다른 마력을 내뿜으며 스크린 밖 관객들까지 유혹한다.
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원작 소설과 달리 영화는 그 어떤 내레이션도 없이 진행된다. 또한 원작 출판 당시 빈번한 플래시백과 과거 회상 형식으로 전통적 소설 장르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부분 역시 재현되고는 있지만 다소 짧고 빠른감이 있어 아쉬움을 안긴다. 대신 레아 세이두의 표정과 혼잣말, 몸짓이 그녀의 속마음을 완벽히 대변하고. 쉴 틈 없이 지나가는 셀레스틴의 일상 속에서는 그녀가 느끼는 피곤과 그녀 주위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일들에 대한 호기심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19세기 고증에 정성을 기울인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어느 하녀의 일기>. 그 시대의 화려한 옷과 장신구, 큰 저택과 안에 들어 있는 장식품들은 부유층이 누렸던 사치를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 가려진 추악함은 그 악취를 숨기지 못하고. 셀레스틴을 향한 마수들은 금욕적인 척하며 뒤로는 제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의 모습을 지적하는데. 또다시 찾아온 평화의 시대. 과거 그 어느 시절보다 부유하고 다양화된 21세기에는 진짜 하녀들부터 기업과 국가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눈부신 발전 속에 숨겨진 이면을 폭로할 수많은 하녀들의 이야기를 엿볼 날이 오길 기다린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지원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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