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8-18 10:32:00
[JIMFF 인터뷰] 성장통을 그리다
'낮은 목소리' 박영광 감독 인터뷰
성장통을 그리다, 영화 ‘낮은 목소리’의 박영광 감독 |
박영광 감독의 ‘낮은 목소리’는 어린이 합창반의 맑은 목소리와 아이의 불안이 대비되면서, 변화를 받아들이고 다음 페이지의 악장을 넘기는 아이의 성장통을 담은 영화다. 8월 15일,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에서 박영광 감독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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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낮은 목소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낮은 목소리’는 11살 동윤이라는 합창단 솔로이스트가 자신의 변성기와 가정의 붕괴가 함께 겹치면서 어떻게 보면 하나도 힘든 성장통을 동시에 두 개를 겪으면서 변화하는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고 거기에 저항하는 그런 내용을 담은 영화입니다.
‘낮은 목소리’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낮은 목소리’는 어린이 영화이면서 합창이라는 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영화인데요. 성장 영화이지만, 성장을 막연히 아름답게만 그리지는 않으려고 했어요.
제목을 ‘낮은 목소리’로 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이가 변성기를 겪으면서 목소리 음계가 낮아진다는 의미도 있고요. 또 ‘목소리가 크다’라는 표현을 하잖아요. 이를 층위에 대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이 아이가 ‘나는 이렇게 하고 싶어요’, 혹은 ‘우리 집이 이렇게 붕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라는 표현을 해도 힘이 없다는 의미에서 ‘낮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아역 배우의 연기와 합창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는데요, 혹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배우에게 특별히 요청하신 부분이 있으실까요? ‘무심함’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던 것 같아요. 우리 일상이 어떤 감정이나 표정으로 차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저는 오히려 그사이 빈 공간들에서 더 마음에 와닿는 순간들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게 이 영화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했어요. 무심하게 목적성을 갖지 않고 하는 반응과 표현을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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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동윤이라는 인물이 합창단 테스트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아이들이 하얀 옷을 입고 다 모인 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솔로이스트를 뺏기는 장면이에요. 물론 합창을 같이 만드는 모든 파트에 있는 아이들이 다 훌륭하고 좋지만, 동윤이에게 있어서 솔로이스트의 자리는 좀 남다르기 때문에 저는 그 장면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이의 성장기 중 변성기를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모두가 ‘변성기’ 같은 시기를 겪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변성기를 중요한 소재로 선택했고, 보시는 분들도 ‘내가 그때 그랬지’ 그리고 ‘그때의 그 일들로 지금의 내가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한 번씩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과거의 성장통이 지금은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무섭고 그게 굉장히 커다란 일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때를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고통을 끄집어내서 다시 고통을 느끼라는 것이 아니고, 그런 상황들을 기억하고 곱씹어 보는 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영화 ‘낮은 목소리’는 변화의 기점에 서 있는 이들에게 공감과 응원을 전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영광 감독은 머지않은 시간에 장편 영화를 찍고 싶다는 계획을 전했다. 앞으로 그가 그려나갈 또 다른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문숙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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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배트맨> 자기 자신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탐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알프레드(앤디 서키스)'의 조력을 받고 '제임스 고든 경위(제프리 라이트)'와 협력하며 어둠 속에서 고담시의 범법자들을 응징해 온 '배트맨/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 그는 고담 시장 선거를 앞두고 수수께끼 킬러 '리들러(폴 다노)'가 연쇄 살인을 벌이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리들러가 남긴 단서를 쫓아 '캣우먼(조 크라비츠)', '펭귄(콜린 파렐)', '카마인 팔코네(존 터투로)'를 차례대로 만나며 증거와 정황을 파악하던 배트맨. 그러나 수사를 계속할수록 그는 모든 증거가 자신과 자신의 부모님의 가려진 과거를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가운데, 배트맨은 개인적인 복수와 공적인 정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팀 버튼의 <배트맨>부터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또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관객들과 함께 한 배트맨. 이처럼 슈퍼 히어로의 대명사로 통하는 배트맨이지만, 사실 그의 역할은 일반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과는 달랐다. 그간 배트맨 영화는 배트맨/브루스 웨인만큼이나 그의 빌런들에게 적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쏟아 왔다. 실제로 펭귄과 베인, 라스 알 굴 같은 수많은 캐릭터들은 지금도 관객들의 뇌리에 남아 있으며, 특히 그의 숙적인 조커의 경우에는 단독 영화로도 흥행과 비평 양 측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전까지의 배트맨 영화가 하지 않았거나 미처 못했던 일을 대신하는 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은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조커>(2019)의 그림자가 진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다채롭게 장르를 바꾸어가며 영웅이기 이전에 한 인간인 2년 차 배트맨의 내면과 심리를 진득하게 풀어내는 <더 배트맨>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탐정 영화로서 <더 배트맨>
너무나도 익숙한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들여다보기 위해 <더 배트맨>이 선택한 방법은 간단하다. 배트맨 고유의 정체성, 곧 탐정이라는 정체성을 고찰하는 것이다. 애초에 DC 코믹스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디렉티브(탐정) 코믹스에서 배트맨 탐정으로 처음 등장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는 원형으로의 회귀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영화는 리들러의 범죄 현장으로부터 경찰들과 과학수사 요원들도 놓치는 여러 단서들을 침착하지만 신속하게 포착하고, 이를 토대로 리들러의 목적을 추리하는 배트맨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비춘다.
동시에 영화는 배트맨의 탐정 활동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그가 겪는 부작용과 피해도 공들여 묘사한다. 특히 작중 탐정 배트맨이 프로파일러에 가깝게 묘사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탐정 영화로 출발한 <더 배트맨>이 심리 스릴러를 거쳐 종국에는 히어로 영화로서 마무리될 수 있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비 내리는 날씨와 암부가 짙은 배경을 통해 살려낸 누아르적 분위기가 이 영화의 특장점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반부에 브루스 웨인은 자신이 그림자 속에 숨어 있을 거라는 범죄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이 바로 그림자라고 독백한다. 그 말대로 배트맨은 고담 시의 다른 경찰들과 달리 범죄자적 사고(thinking like a criminal)에 능하다. 그는 철저히 범죄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지식과 기술을 이해하고 이용하며, 범죄자들의 특정한 욕구, 경험, 그리고 관념을 쫓을 줄 안다. 이는 돈 미첼 시장의 집을 감시하는 리들러의 시점과 캣우먼을 관찰하는 배트맨의 시점이 연출된 방식이 동일한 이유다. 그래서 고든이 풀지 못하는 리들러의 수수께끼를 오직 배트맨만이 풀고, 그만이 리들러가 숨겨놓은 힌트를 찾아내고 해석할 수 있다.
심리 스릴러로서 <더 배트맨>
하지만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라는 <선악의 저편> 속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대로, 프로파일러인 배트맨은 악을 들여다보다 깊은 고통을 겪는다. 범죄자의 입장이 되어서 범죄자의 심리를 통해 사건을 해석할 때 프로파일러의 자아는 방향을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작중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 활동에 매진하느라 재벌이자 기업인으로서의 공적인 삶과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개인적 삶의 끈을 놓아버린다. 또 밤이 익숙해진 결과 낮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고, 또 자신의 정체가 밝혀질 까 봐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더 배트맨>은 배트맨과 다른 캐릭터 간의 '관계성'을 마치 거울처럼 활용해 탐정 영화에서 심리 스릴러로 자연스레 장르를 전환시킨다. 특히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 프로파일러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범죄자나 피해자에게 전이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영화가 브루스 웨인의 내적 갈등과 고통을 그가 쫓고 만나고 대화하는 주변인들에게 투영시켜 외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배트맨의 수많은 빌런과 조력자들이 한 영화 속에 빼곡히 등장해야 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진실을 사이에 둔 채 변화하는 브루스 웨인과 팔코네의 관계, 또 그와 알프레드의 갈등과 봉합은 액션신 없이도 강렬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배트맨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계기를 보여주는 배트맨과 리들러의 관계다. “나는 복수다”라고 되새기며 범죄자들을 제압하던 초반부의 배트맨. 그런 그 앞에 선 리들러와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에게 무관심했던 고담시를 향해 마치 '외로운 늑대(lone wolf)'처럼 그저 복수하는 것뿐이라고 대답한다. 그 순간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과 복수심을 범죄자들에게 쏟아내며 해소하던 배트맨은 자신의 모습이 그가 혐오하는 범죄자들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배트맨이 어떤 존재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앞에 선다. 이에 더해 그와 캣우먼과의 로맨스도 같은 맥락에 위치한다. 사적인 복수와 공적인 정의를 동일시하던 배트맨과 달리 그 둘이 완전히 항상 같지는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캣우먼 역시 배트맨으로 하여금 그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고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영웅 서사로 귀결되는 <더 배트맨>
이처럼 배트맨이 리들러의 수수께끼로부터 스스로에 대한 의심, 고민, 갈등을 마주한 순간, <더 배트맨>은 장르를 심리 스릴러에서 히어로 영화로 바꾼다. 그 질문과 고뇌에 대한 답, 곧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배트맨을 비추기 위함이다. 배트맨은 리들러와 그의 추종자들을 보면서, 또 캣우먼과 자신의 차이를 자각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다. 리들러의 수수께끼와 캣우먼의 인생사를 통해 자신의 사적 복수와 공적 정의가 같은 의미일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공포의 상징이었던 배트맨은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분노와 복수심을 떨쳐내고, 희망의 상징으로 변모하고 또 성장한다.
그래서 홍수가 고담시를 덮치고, 시민들이 위기에 빠진 절체절명의 순간에 배트맨은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스스로를 어둠과 복수에 동일시하며 그림자 속에 머물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림자 밖으로 나와 누구보다도 먼저 시민들을 구하러 나선다. 사람들에게 손을 건네고, 어둠 속에서 조명탄에 불을 붙여 길을 인도하고, 어둠에 갇힌 이들을 환한 빛이 비치는 바깥으로 이끌어 준다. 계속해서 누군가의 발자취만 쫓던 그가 다른 이들을 위해 먼저 발자취를 남겨주며, 공포의 화신이 아닌 영웅으로 자리매김한다.
배트맨의 영웅 서사는 앞뒤로 신화적 표상이 가득하기에 더욱 풍성하게 느껴진다. 리들러의 살인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함께 들려준다. 이 노래의 가사가 그리스도이자 메시아인 예수의 탄생을 마리아에게 알려주는 내용임을 생각해보면, 영화의 오프닝은 리들러의 악행으로부터 배트맨이라는 영웅이 만들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이는 <더 배트맨>의 묵시록적인 결말부와도 직결된다. 요한 묵시록은 일곱 번의 재앙이 일어난 후에 예수가 재림하고 신의 나라가 도래할 것을 약속한다. 그런데 마침 일곱 대의 차에서 일어난 폭발로 인해 고담시는 구약 성서의 내용과 노아를 연상케 하는 홍수에 휩싸여 버렸고, 그 순간 배트맨은 사람들을 구하며 영웅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영리한 수미상관을 보여주는 <더 배트맨> 속 영웅의 성장은 누아르 장르의 어둡고 진득한 분위기가 더해져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플롯을 빛내는 영리한 연출
한편, 맷 리브스 감독의 유려하면서도 직관적인 연출은 배트맨의 각성과 성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서는 인물의 시점이 상당히 중요하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리들러의 시점에서, 배트맨의 시점에서 대상을 관찰하고 지켜보는 장면들이 상당히 많다. 이때 배트맨의 시점에 주목해보면, 그의 시야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망원경이나 카메라 등의 도구를 이용해도 배트맨은 초점이 맞지 않거나 흐릿한 시야에 갇혀있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시야는 점점 뚜렷해지면서 넓어지며, 마지막 순간에 그는 가장 높고 탁 트인 공간에서 고담 시의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운 연출 방식이다. 우선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자기 자신도 고통에 빠트릴 정도로 범인을 쫓는 일만 집착하던 한 탐정이, 자신의 한계를 깨고 영웅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담아내기에 영리하다. 또한 배트맨이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해 알 수 없는 과거에 괴로워하던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확실한 과거를 알지 못해도 브루스 웨인이 집착과 미련을 내려놓고 순간 답답하던 시야가 넓게 트이는데, 이정면은 마치 진실을 확신하지 못해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때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또한 긴 러닝타임 때문에 느슨해지려는 찰나마다 등장하는 강렬한 액션신도 인상적이다. 특히 한 템포를 쉬고 본격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예열의 미학이 돋보인다. 관객을 순간적으로 작중 범죄자 혹은 빌런의 입장에 서게 만들면서 배트맨을 마주하는 그 두려움과 공포감을 온몸으로 함께 맛보게 하여 배트맨이 왜 공포의 상징인지를 단숨에 납득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다섯 개의 액션 시퀀스 중에서 전복된 펭귄의 시점에서 배트맨을 보여주는 펭귄과의 추격전이 유독 뇌리에 각인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더 배트맨>에 단점이 없지는 않다. 일단 전반적으로 최근 트렌드와는 동 떨어진 스타일의 영화인 점이 호불호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결정적인 단점이다. 단순히 절대적인 영화의 시간이 길거나 볼거리(액션)나 스토리의 강약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 몇몇 캐릭터들의 서사가 과연 적합한지 의문이 들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메인 빌런인 리들러의 경우 그의 범행 과정은 상당히 복잡한 데 비해 그의 동기는 상대적으로 평면적이라서 그 괴리감이 적지 않다. 배트맨의 성장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인 캣우먼의 활용법 역시 그녀의 존재감과는 별개로 아쉬움이 남는다. 배트맨의 이야기와 별도로 전개되는 개인적인 서사가 다소 과한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트릴로지의 시작을 알리는 <더 배트맨>이 지나칠 수 없는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배트맨 영화 중에서도 유달리 이질적이고, 세계관 연계에 집중하는 근래 많은 슈퍼 히어로 영화들과 달리 묵직하고 우직하게 히어로 본연의 의미를 탐구하고 성찰하는 신선함을 선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배트맨>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고 논쟁이 되기에 오히려 특별한, <로건>과 <조커>의 뒤를 잇는 모험적인 히어로 영화의 비장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새로운 배트맨 케이브로의 깊고 어둡고 진득한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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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근도 양심도 꽉꽉 찼네
이 글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좋아요와 댓글은 미천한 창작자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진출처:매일경제 TV
버젓이 방송에 나와 전세사기를 고백하는 것이 덤덤해진 시대가 와버렸다. 자신의 인생을 바쳐 모은 돈으로 계약을 했을 집이었기에. 피해자에게 주어질 보상금 정도로 그들의 다친 마음에 밴드 하나 못 붙여줄 것은 뻔하디 뻔하다. 잡혀야 할 사람들은 잡히지 않고. 피해자들은 이 모든 사태에 괴로워하며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생긴다. 그뿐인가. 인생으로는 모자라 영혼까지 끌어다 은행에 저당을 잡히고 들어왔을 집인데, 반드시 박혀 있어야만 했을 철근조차도 제대로 박혀있지 않단다. 어째서 피해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내 이야기는 아니고 뉴스에서 나오는 남의 이야기이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한숨을 몰래 내쉬어 보기도 한다.
영화는 정확히 이 시점에서 시작한다.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한국 사람이라면 폭발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온갖 미묘한 생각들과 서러움을 영리하게 이용하기까지 한다. 덕분에 영화 초반에 보여주는 아파트의 역사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동산의 가격이 폭주하는 것을 보여주는 불과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관객들은 자신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영화의 상황 속으로 순순히 빨려 들어간다.
덕분에 영화가 제대로 된 설명조차 없이 모든 아파트를 날려버리고, 덩그러니 황궁 아파트만을 중심에 남겼을 때도. 관객들은 당황하지 않는다. 이미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황궁아파트 속으로 들어가 문을 꽁꽁 걸어 잠근 뒤 이므로.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가 영리하다 못해 섬뜩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두 번째 지점은 바로 입주민회의다.
남은 주민들이 느끼고 있는 마음. 어떻게 보면 입 밖으로 꺼내 말하지 못했을 뿐, 위기 상황이라면 그런 생각을 가진다 해서 욕할 수 없는 마음속 이야기들을 입주민 회의라는 형식으로 빌어 귀로 전달한다. 모든 아파트가 무너지고 달랑 자신들의 집만 남은 상황이지만. 이 무심하면서도 일상에 착 달라붙어 있는 상황 덕에. 여태껏 드림팰리스 주민들에게 받아왔던 차별들에서 오는 서러움을 얘기하는 장면들 조차 낯설지 않다.
자신들이 받았던 차별들을 오롯이 돌려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서도. 입주민이 아닌 다른 이방인들을 바퀴벌레라고까지 부르며 소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올라오지 않는다. 영화는 너무도 정확히 한국 사회가 집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까발리고 있고. 또한 쓸데없이 정의로운 인물을 대놓고 앞장 세워 교훈질을 하지 않는다. 그저 관객들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경험들도 함께 끌어올려 저 말도 맞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렇게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바퀴벌레 소탕 작전을 시작한다. 본인들은 그것이 자정작용이라 믿었고 자신들은 이제 이곳에서 행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난리 법석 속에서도 꿋꿋하게 우뚝 서 있는 황궁 아파트만큼. 자신들도 그렇게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아파트와 자신의 존망(Johnna 망함 아님)을 동일시한다.
사진출처:다음
아파트 주민들의 은은한 광기에 팔에 돋은 소름이 겨우 가라앉을 때가 되어서야. 그들이 간과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게 한다. 바로 모든 닫힌 시스템은 부패한다는 것.
이대로만 가면 남들이 죽건 말건 영원히 안전할 것만 같던 황궁 아파트는 고인 물이 되기를 자처하더니 그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조금씩. 천천히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파트 단지를 커다란 고름주머니로 만드는 것도, 그러면서도 가장 지키려 애쓰는 사람도. 바로 영탁(이병헌)이다. 그는 황궁 주민의 DNA가 전혀 없으며, 극우뇌를 가진 사람도 아닌 일명 "바퀴벌레"에 불과했지만. 주민들의 집을 향한 열망에 올라타, 실컷 가짜이면서도 진짜인 행세를 한다. 그것도 꽤나 훌륭하고 성공적으로.
어리바리했던 영탁이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로 변화하기까지 겪는 아주 극단적인 감정의 변화를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정말 점진적으로. 하지만 이질감 하나 없이 절묘하게 이뤄낸다. 그 어떤 주민의 욕망보다도 강렬하면서 그 어떤 바퀴벌레보다도 맹렬하게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려 애쓰는 모든 모습을 보면서. 이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은 끝이 없겠구나. 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디스토피아적이지만 너무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들었던 영화 전체에 비해, 마지막 부분은 누가 보아도 희망이라는 게 있기는 하다.라고 말해준다는 점은 통상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뻔하게 헬기를 타고 온 구조대에 의한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나, 눈물파티를 하려는 시도조차 없다는 점은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모든 껍데기들은 황궁아파트와 함께 조용히 마지막을 맞이한다.
황궁 아파트는 망했지만(?) 영화 자체는 마치 황궁 아파트와 같았다. 건축물로 치자면 아낌없이 들어갔어야 할 철근들이 제자리에 굳건하게 박혀있고. 모든 것이 설계도대로 맞아떨어져서 자아내는 탄성도 영화 중간중간 가감 없이 흘러나올 만큼 훌륭했다. 모조리 쓰러진다 해도, 저 멀리서도 보일 만큼 듬직하게 제자리를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소한 이 영화만큼은, 철근도 양심도 꽉꽉 차 있는 셈이다.
[이 글의 TMI]
1.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아마도 시간이 된다면 한국영화 빅 4에 관한 이야기를 쓸 것 같다.
2. 다음 주부터 휴가 아아아악!!!!
3. 휴가비 받은 걸로 일단 책부터 사봅니다.
#콘크리트유토피아 #엄태화 #최신영화 #영화리뷰 #브런치작가 #이병헌 #박보영 #박서준 #김선영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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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나요?
아주 오래전 12월 첫눈이 오던 날, 첫눈에 반한 사람이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후광이 비치며, 슬로 모션으로 내 앞으로 걸어오던 사람, ‘아, 영화에서 저런 장면을 연출했던 것은 상상이 아니라 모두 사실에 기반한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사람.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얻고 싶어서, 어떻게든 말을 한번 걸어 보고 싶어서 낯선 모임, 낯선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온통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떻게 해야, 저 사람을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요령이 없어 눈에 띄게 호감을 표현하고만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와 단둘이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과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가 바로 ‘로맨틱 홀리데이’다. 둘 다 상영중인 영화는 대부분 관람했던 영화 마니아여서, 함께 볼 영화가 없을까 걱정했는데, 마침 그 주에 개봉한 영화가 로맨틱 영화라니. 이건 운명이라며 마음속으로는 우리 둘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100가지 이유 중 하나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
<로맨틱 홀리데이>는 미국에 사는 아만다와 영국에 사는 아이리스가 크리스마스 휴가에 집을 바꿔 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영화다. L.A에서 잘 나가는 영화예고편 제작회사 사장인 아만다(카메론 디아즈)는 돈도 아름다운 외모에 부유하며, 화려한 인맥을 가진 누가 봐도 성공한 여자지만, 연애는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남자친구는 회사의 어린 직원과 바람이 난다.
영국의 예쁜 오두막집에 살면서 인기 웨딩 칼럼을 연재하는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느순수하고 착한 심성을 지녔지만, 그녀가 짝사랑하던 사람은 그녀와 회사 사람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여자와의 약혼을 발표한다.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받은 그녀는 자신의 삶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6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두 여자는 온라인상에서 ‘홈 익스체인지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사이트를 발견하고 2주의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서로의 집을 바꿔 생활하기로 계획하고, 각각 L.A와 영국으로 날아간 아만다와 아이리스.
예쁜 오두막집에서 오직 혼자만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마음먹고 있던 아만다에게 아이리스의 매력적인 오빠 그레엄(주드 로)가 찾아오게 되고, 첫눈에 호감을 느낀 둘은 조심스럽게 데이트를 시작한다. 한편 L.A로 간 아이리스는 아만다의 친구이자 영화음악 작곡가인 마일스(잭 블랙)를 만난다. 푸근한 외모와 따뜻한 유머감각을 지닌 섬세한 감수성의 이 남자와 서로의 감성을 조금씩 이해하며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사실,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영화의 많은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연말분위기가 나는 따듯한 장면들, 그리고 함께 와인을 마시던 장면들이 어렴풋이 아름답게 남아 있을 뿐이다. 아마도 영화에 집중하기 보다는 내 옆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아만다와 그레엄의 조금 진한 장면이 나올 때는 얼굴이 달아 올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로맨틱 홀리데이>는 낯선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영화다. 그를 만나기 전에 나는 처음 본 날 가까워 지는 그런 사랑은 영화속에서나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첫눈에 반한 사람과 영화를 보러 간 나는, 내 옆에서 이영화를 함께 보고 있는 사람과 <로맨틱 홀리데이>의 결말처럼 해피엔딩이 되길 기대했다. 그리고 극장을 나서며 내가 먼저 말했다.
“우리 술 한잔 하러 갈래요?”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첫눈에 반한 사랑을 해피엔딩으로 만들었다. 그 날 이후 첫눈에 반한 사랑을 다룬 영화를 더이상 판타지가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올해 12월 16일에도 넷플릭스로 <로맨틱 홀리데이>를 보았다. 예전엔 미쳐 인지 하지 못했던 장면을 세세히 보면서, 다시 봐도 참 좋네…하고 혼자 감상에 빠져 들었다. 아 참, 이 이야기를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현남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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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광 감독님이 너무 크게 상처받지 않으셨으면
웅남이 탄생
빠라바라빰~ 안녕하세요! 말봉 티비입니다! 유튜버 말봉.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초 하이텐션으로 방송을 이끄는 말봉. 구독자는 열 명 밖에 없다. 그래도 돈 벌어야지. 방송 진행을 멈추지 않는다. 짜자잔-! 이번 게스트는 나 웅 남! 이 말을 하자마자 어류를 입에 물고 웅남이가 튀어나왔다. 웅남이에게 멘트를 거는 말봉. 웅남이가 지 맘대로 대답하는 탓에 방송을 갑자기 마무리했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 얼핏 보면 무슨 주종관계 같은 느낌이지만 둘은 아무래도 친구다.
웅남이는 좀 특별한 존재다. 웅남이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느 동굴에 있었는데, 곰 사이에 껴있는 아이를 가지고 왔다. 그래서 이름을 웅남이라고 정했다. 곰이 사람이 된 걸 아는 웅남이의 부모님. 곰이 사람이 됐기 때문에 갖는 특성이 몇 개 있다. 밥을 엄청나게 먹어야 한다. 그것만 있나? 겨울잠도 자야 한다. 근력을 비롯한 운동능력도 뛰어나다. 이런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경찰 일도 했던 웅남이. 곰이 사람이 됐기 때문에 경찰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별안간 사람 같지 않은 웅남이. 이 나웅남에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새로운 임무가 주어진다. 과연 웅남이는 흑막의 목표를 제지하고 임무를 달성할 수 있을까?
가장 어려운 시놉시스
영화는 기본적으로 시놉시스라는 것이 있다. 이 시놉시스는 관객을 어필할 수 있는 외모 같은 존재다(물론 포스터와 예고편도 '외모' 축에 속한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이 작품의 '시놉시스'를 쓸 수 있어야 이야기의 토대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는 거 아닐까 싶다. 이야기가 쭉 뻗는 직선 주로 가 아니었던 <타르>도 시놉시스를 쓸 수 있으니, 처음 두 문장으로 영화를 요약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야 영화의 기본적인 설득력이 임팩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요약이 좀 어렵다. 왜냐? 영화가 뚝뚝 끊기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안 웃기는 유머 때문은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깔끔하게 달라붙지 않는다는 것은 영화의 전체적인 퀄리티에 흠이 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글을 쓰는데 문장을 불필요하게 꼬아 쓰는 평론가들이 몇 있다. 아무리 영화 비평이라지만 글쓰기는 상대방과 소통하려고 하는 건데 이해하기 어렵다는 거는 뭘 위해 글을 쓰는지 의문점이 든다. 이 영화는 마치 꼬아 쓴 비평문처럼 시퀀스마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첨삭이 필요한 영화인 셈이다.
호평할 만한 구석도 있긴 해
뭐 영화 보면서 '여기에 힘을 줬네' 싶은 구석이 있다. 영화는 두 장르를 병치시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나웅남이 갖고 있는 가족 드라마와 이정학이 품고 있는 누아르다. 가족드라마적인 특성은 후에 설명하려고 하니 패스한다. 느와르의 장르 특성을 이끄는 데 있어 박성웅 배우는 장르 전문가답게 어떻게 해야 관객들이 이 작품을 이해할지 잘 끌고 간다. <신세계>의 이중구 역 이후 코미디 영화 많이 나오시는 것 같은데 이 분은 그냥 느와르 하려고 태어나신 분 같았다. 공허한 표정과 이정학의 무력을 묘사하는 액션연기까지 그동안 우리가 알던 박성웅의 카리스마는 여기 다 있다. 또 박성웅 배우와 함께 힘을 합쳤던 최민수 배우 역시 연기가 좋았다. 분명 더 광기 어려야 할 인물의 카리스마가 터지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것이 배우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최민수 배우는 극의 긴장감을 혼자 보여주는 연기로 끌고 갔다는 점에서 호평할 만하다.
또 영화 중반부 찍고 넘어가는 이야기 전개가 있다. 이 이야기 전개를 활용한 방식은 좋은 평을 내릴 수 있다. 큰 틀을 잘 짰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나웅남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긴 설명을 바탕으로 어렵지 않게 '어 그럼 그렇게 되는 것 아냐?' 싶다. 이 부분을 나름 딱딱 맞아떨어지게 회수하는 방식은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훌륭했다고 느낀 지점이다. 이 부분의 내적인 연결고리를, 사건 중심으로 영화를 재구성하면 알 수 있다는 점은 오랜 기간 동안 공들인 부분이 조금 느껴진다.
가학적인 캐릭터
영화를 보면서 캐릭터들에게 의문부호가 생겼던 지점이 굉장히 많았다. 우선 첫 번째. 웅남이의 친구 말봉이다. 말봉이는 유튜버다. 팔로워가 10명밖에 없지만 아무튼 유튜버다. 뭐 유튜브 크리에이터라고 직업의식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유튜버라는 직업적 특색에 너무 심취해 있다. 비밀 작전을 하고 있다고 치면, 당연히 카메라를 꺼두는 게 옳다. 아니 초등학생도 그건 다 안다. 영화는 이 유튜브라는 소재를 미친 듯이 쓰고 싶었던 듯이 흐름을 끊을 정도로 남발한다.
또 웅남이와 주변인들의 관계는 가족드라마적인 특성에서 영화의 핵심이 된다. 모르겠다. 웅남이를 바보로 만들면 웃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웅남이만 바보같이 행동하면 모르겠는데 말봉이가 웅남이를 대하는 방식은 불필요함과 동시에 가학적이라고 느꼈다. 웅남이와의 관계에서 뭔가 좀 이상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다. 어떤 인물은 후반부에 수미상관처럼 재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웅남이의 리액션이 이해 안 가는 건 둘째치고 신을 구성하는 대사가 조악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게 2003년이면 웃겼을 것이다. 사람을 사람취급 하지 않고 동물취급하는 게 이 사람의 인물세팅과 조응하지 않는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이렇게 후반부 웅남이의 선택이 설득력이 있게 다가오려면 인물 간의 유대감이 있어야 하는데 염혜란 배우가 밥 해주는 장면만 있으니 아쉬울 뿐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윤제문 배우가 맡은 캐릭터는 연출과 연기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윤제문 배우가 지난 세월 동안 한국영화에서 보여준 얼굴은 무궁무진했다. 괴랄한 작품도 몇 편 나오셨지만 <마더>나 <아수라> <한산 : 용의 출현> 등등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 그런 게 아무 의미가 없다. 배우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연출은 무작정 화만 내라고 한다.
또 영화의 주인공인 웅남이에 대한 연출은 가장 아쉬운 캐릭터 설정으로 뽑을 수 있다. 웅남이는 곰의 운동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멀리서 작은 글씨도 다 보이고 근력도 세며 달리기도 빠르다. 영화에서 제시되는 핵심 과제들이, 이 곰 같은 피지컬로 해결할 수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어떤 때는 능력이 발휘되고 어떤 때는 또 안 되는 불규칙함은 영화의 통일성과 설득력을 깬다.
사족(들)
영화 초반부는 웅남이의 능력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곰이 사람이 됐다. 그럼 운동능력이 비정상적이겠지? 이 부분을 묘사하는 것은 좋았다. 편의점에서 뭐 하고. 싸울 때 뭐 하고. 근력이 세고 어쩌고 등등 이 영화를 구성하는 핵심이 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부분에 너무 길게 할당했다. 초반부에서 스타트를 이상하게 끊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어차피 이럴 것 아닌가?' 정확히 그렇게 한다.
또 러닝타임 중반부에 웅남이가 작전을 위해 훈련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비중이 큰 코미디로 묘사된다. 여기에 들어갔던 인물들 대부분이 소모적이다. 우선 윤제문 배우를 위시로 한 경찰 쪽 캐릭터는 세 명이다. 여기서 윤제문 배우 옆에 있는 남자 경찰 캐릭터는 없어도 큰 문제가 없다. 뿐만 아니라 훈련하는 교관들은 '개그 콘서트'에서 재현 개그로 쓸법한 걸 그대로 영화로 갖고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훈련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그것도 아니다. 작전 실행에 있어 영화의 핵심이 되어야 할 부분이 웃기지도 않은 채로 표류하는 것이다.
위의 문단과 연장선상의 측면에서 영화의 카메오들은 난잡해 보이는 러닝타임을 더 산만하게 만든다. 영화에 개그맨들 세 분 나온다. 첫 번째 개그맨은 '배우 개그'를 하고 싶었던 듯 보인다. 그거 외에는 이 개그맨 분들이 인물 연출의 뒷심이 모자란 탓에 웃기지 않는다. 그냥 신인 배우 써서 맡았어도 이 캐릭터들을 소화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리고 쿠키영상 즈음에 등장하는 배우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솔직히 이 배우가 등장하는 모습도 의문점이 있으나, 필요한 섭외였나?라는 점도 아쉽게 느껴진다. 그 장면이 있어서 시리즈물을 기획할 것인가? 그것도 아닐 것이다. 도플갱어라는 소재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장면을 굳이 넣은 거는 박성광 감독이나 박성웅 배우가 인맥이 넓다는 거 말고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도전에 박수를
우리는 개그맨 박성광을 잘 알고 있다. '개그 콘서트'가 방영하던 당시 기라성 같은 동기, 선배, 후배들과 함께 개그계를 이끌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용감한 형제들'에도 나오지 않았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도 갖고 있다. 그래서 뭐 글쓴이 같은 20대들에게 박성광 감독의 인지도는 어느 정도 확보가 되는 셈이다. 이게 당연히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영화감독 법 이런 건 없지 않나? 개그맨 출신 영화감독 중 뛰어난 역량을 가진 분들은 많다. <놉>의 조던 필, <돈 룩 업>의 아담 맥케이, <소나티네>의 기타노 타케시가 그렇다. 박성광 감독이 영화 퀄리티로 비판받을 수는 있어도 개그맨이라는 이유로 노력이 폄하되어선 안되지 않나 생각한다. 이는 수많은 선배 영화인들이 필모그래피로 증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 영화는 비판받을 여지가 공-장히 많다. 그러나 박성광 감독이 더 절치부심하는 계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콧대를 짓밟아주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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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코미디 영화 추천 7
많은 분들께서 이용하시는 넷플릭스에도 재밌는 코미디 영화가 많이 있습니다
그중 제가 좋아하는 코미디 영화 10가지 리스트를 꼽아봤습니다
(추천 영화는 가나다순으로 작성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스파이는 없었다.
<스파이> (2015)
이전까지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단 헌트 (톰 크루즈) 같은 전형적인 남성 캐릭터 이미지가
첩보영화의 메인 캐릭터였습니다.
그런데 <스파이>는 CIA의 여성요원 수잔 쿠퍼 (멜리사 맥카시)가 현장에 가게 되며 펼쳐지는 코미디 첩보영화입니다. <분노의 질주>시리즈나 <익스펜더블>시리즈에서 최정예 액션 요원으로 주로 활약한 제이슨 스타뎀은 몸게그와 언어유희를 구사하고, 수잔 쿠퍼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돌격하는 장면마다 병맛 넘치는 상황이 발생해 큰 웃음을 줍니다.
* 마지막 쿠키영상까지 깨알같은 웃음을 주는 코미디 첩보 액션 영화입니다!
힐링 로맨틱 코미디
사랑 때문에 아픈 상처를 거침없이(?) 극복! 하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2010년대 <엑스맨>시리즈와 <헝거게임> 시리즈에서 빛나는 활약을 하는 제니퍼 로렌스
<행오버>와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너구리 로켓으로 친숙한 브래들리 쿠퍼가 커플로 나온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후 괴로워하는 팻 (브래들리 쿠퍼)
그리고 남편의 죽음 이후 회사의 모든 남자 직원과 관계를 가진 티파니 (제니퍼 로렌스)
한 성격하는 인물들이 동네 이웃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팻과 티파니가 티격태격하다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그런데 정말 어느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도 찾기 힘든 솔직하고 가식 없는 인물들이 사랑스럽습니다
특히 헐리우드의영화들도 개인의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인물들을 다룰 때 작위적인 감정선이 포함된 경우가 많은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도 솔직합니다
* 근 20년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중, 로맨틱 코미디 성격의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는 제니퍼 로렌스가
유일합니다. 그만큼 솔직하고 가식 없는 캐릭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찰떡같은 연기 보는 재미 쏠쏠
회사 생활하며 겪는 스트레스까지 공감 가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보그] 등 패션지 편집장으로 유명한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한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원작 영화입니다
회사 생활로 스트레스를 받는 많은 분들께서 공감하신 작품이지요?
직장 상사이지만 때때로 악마처럼 느껴지는 미란다로 열연한 메릴 스트립
사회초년생 앤드리아로 열연한 메릴 스트립의 연기 대결도 인상적이었던 작품입니다
'화려한 커리어'와 '나다운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앤드리아의 모습이 공감가는 영화인데요
배우들의 연기, 주제, 이야기, 유머도 좋은 작품이지만 특히 이 영화에서 다양한 옷을 찰떡같이 소화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영화의 명장면이 아니라 패션쇼 현장의 런웨이처럼 느껴졌습니다
* 특히 앤드리아의 출근길 장면, 다양한 옷을 멋지게 소화하는 장면을 잘 이어붙여서 편집한 장면, 적절한 영화음악은 빛났습니다
까칠한 이웃 아저씨의 사람 되기 프로젝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90년대 명화 중에는 코미디 영화의 웃음, 드라마 영화의 감동이 이상적으로 조화된 작품이 많았습니다
웃음과 감동을 주는 명화 중 대표작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강박증 있는 할아버지 유달 (잭 니콜슨)이
로맨티스트로 변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린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영화입니다.
유달을 로맨티스트로 만든 인물 식당의 웨이트리스 캐롤 (헬렌 헌트)도 아들이 아프고 이런저런 생활고에 억눌려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소중한 인간관계를 통해 발견하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집니다
주인공 할아버지 유달(잭 니콜슨)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입니다. 아무래도 창의적인 작업에 대한 강박 때문에 때때로 괴팍한
성격이 있는데 (귀엽지만 괴팍한! 성격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집니다) 인간관계를 통해 회복하는 과정이 감동적입니다.
10여분이 지나면 열리는 독특하고 판타스틱한 코미디, 영화의 세계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일본의 한 영화감독이 하나의 컷으로 구성된 논스톱 좀비 영화를 찍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1917>의 장면들처럼 쉼 없이 이어지는 듯한 좀비 영화를 찍고 싶었던 겁니다
(실제로 <1917>은 끊김이 없는 1개의 컷으로 구성된 영화처럼 촬영/편집한 영화이지만 1컷으로 구성된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가 시작한 10여 분, 촬영 중 사고, 갈등이 한바탕인 촬영장은 전쟁터 같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연출하고자 하는 감독님
제작자, 배우 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영화 촬영에 임했을까요?
하나의 테이크로 구성된 좀비 영화를 만들기 이전 열정이 넘치는 열혈 감독님, 소심한 제작자, 영화 본편 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듯한
배우들의 엉뚱한 모습이 엉뚱하고 사랑스럽게 그려진 코미디 영화입니다
병맛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에 빠지실 겁니다 (퐁~!)
인생영화로 꼽히는 코미디 영화
<트루먼 쇼>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사실은 방송국 작가가 짜 놓은 각본이라면,
살고 있는 집이 사실은 방송국 초대형 세트의 일부라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요?
영화 <트루먼 쇼>는 알고 보니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수십만의 국민이 보는 방송국 프로그램의 세계에 살고 있던 트루먼 (짐 캐리)의 이야기입니다
트루먼이 거주하는 세계가 실제 세계가 아니라 방송국 세트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들이 흥미롭고
트루먼이 인생에서 진실한 것은 무엇인지 깨닫고 새로운 세계로 걸어나가는 과정은 커다란 감동을 줍니다
여자로 변장한 흑인 형사들의 코미디
<화이트 칙스>
80년대 고전영화 중 더스틴 호프만이 여장을 하며 열연한 <투씨>라는 작품이 있지만
남자가 여장을 하는 소재의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FBI 흑인 형사 2명 마커스와 케빈이 범인 검거 작전을 실패한 이후 얼떨결에 한 파티의 경호를 맡게 됩니다
그러던 중 호텔 재벌 윌슨 자매를 경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는데, 마커스와 케빈 형사가 귀한 윌슨 자매의 얼굴에 상처를 냅니다
그래서 두 형사는 윌슨 자매로 여장을 하게 되는 코미디입니다
건장한 남자 형사가 여장을 하게 된 설정 때문에 다양한 몸게그와 유머를 활용하는 코미디영화입니다
- 이상으로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영화 7개 추천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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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축한 대지 위에 그려낸, 가장 건조한 장르의 로맨스
나는 주로 혼자 영화 보는 것을 즐기는 부류의 관람객이다. 하지만 종종 영화관을 나서며 타인의 존재가 간절해지는 때가 있다. 정리되지 못한 채 쏟아지는 서로의 언어를 갈구하게 하는 영화를 만나고 난 후, 상기된 얼굴로 나와 바깥의 차가운 공기와 마주할 때 더욱 그렇다. 영화 <퍼스트 카우(First Cow)>는 바로 그런 영화다.
<와이드 스크린에 끝도 없이 펼쳐진 황야. 그 거칠고 메마른 땅 위를 고독하게 걸어가는 카우보이의 뒷모습. 뿌연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내달리는 말에 올라탄 개척자들...> 이러한 영화적 풍광은 아마도 영화 장르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는 문구가 자연스럽게 상기시키는 관습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서부 개척사는 유럽 정착민들에게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미국사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미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웨스턴 장르는 따라서, 의도적으로 '개척되어야 마땅한 서부의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정당화한다. 웨스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馬)과 서부 영웅들의 존재감은 프런티어(frontier)를 확장하는 개척의 역사만을 포섭하는 주체의 의지를 드러낸다. 그 이면에 감춰진 '타자화된 개인들'의 역사가 흐려지는 지점이다. 켈리 라이가트(Kelly Reichardt)의 '축축한 웨스턴'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서술해나가기 시작한다.
"the bird a nest, the spider a web, man friendship"
(새에게는 둥지가, 거미에게는 거미줄이, 인간에게는 우정이)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에는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지옥의 격언(Proverbs of Hell) 속 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새둥지와 거미줄. 그곳의 정주자들은 스스로 몸 뉘일 곳을 부지런히 쌓아 올려 삶을 일궈낸다. 그리고 한 시인은 인간의 우정을 그에 견줄 만한 것이라고 보았다.
영화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주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킹 루(King-Lu)와 쿠키(Cookie) 이 두 사람의 우정을 통해 잊힌 서부 '정착사'의 토대를 그린다. 뒤집힌 채 배를 보이며 바둥거리는 도마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쿠키는 모피 사냥꾼들의 요리사다. 숲 속에서 버섯을 줍던 쿠키는 발가벗은 도망자 신세인 킹 루와 조우하고 그에게 덮을 것과 잠깐의 안식처를 제공한다. 이후 정착민 마을에서 재회하는 킹 루와 쿠키 두 사람은 술과 거주 공간을 그리고 서로의 꿈을 공유하며 우정을 쌓아 나간다.
Cookie : You speak good English.. for an Indian.(인디언치곤... 영어를 잘하는군요)
King-Lu : I'm not Indian.(난 인디언이 아닌데요.)
Cookie : Oh.
King-Lu: Chinese.(중국인이죠)
Cookie : I didn't know there were Chinese in these parts.(이쪽에 중국인들이 있는지는 몰랐네요)
King-Lu : Everyone is here. Everyone wants that soft gold. It's why you're here, isn't it?
(모두가 여기에 있죠. 모두가 모피를(혹은 노다지) 원하잖아요. 당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도 그 때문 아닌가요?)(Google search : First Cow script, 의역이라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의 첫 만남에서 오가는 대화는(위) 서로 다른 얼굴과 언어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서사가 진행되며 이들의 목소리는 구별되지 않고 함께 들려온다. 부족의 언어로 인디언 사공과 소통하는 킹 루의 모습도 이질적이지 않게 다가온다. 이는 마치 오프닝 시퀀스에 등장하는 두 구의 백골이 스스로 그들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출신지나 피부색, 언어가 지워진 채 땅 속에 묻혀 나란히 누워있을 뿐이다. 킹 루의 말대로 그곳에는 모두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 위로 그곳의 역사가 세워진 것이다.
(좌)<믹의 지름길(Meek's Cutoff)>(2019) (우)<퍼스트 카우(First Cow)>
영화적 발화자의 범위를 넓혀가는 라이카트 감독의 전작 <믹의 지름길(Meek's Cutoff)>의 첫 장면을 잠시 돌이켜보자.(위 그림, 좌) 감독은 '물'과 '소'의 이미지를 관객과 처음으로 소통하는 지점인 오프닝 시퀀스에 담기로 선택했다. 그의 웨스턴이 정주, 즉 '뿌리내림'이라는 우리의 근원적인 욕구를 품고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독은 캐스팅을 위해 펼쳐놓은 수많은 소들의 헤드샷(headshots)을 검토하는 중에 가장 큰 눈을 가진 소, Evie를 만났다고 한다. 영화에서 Evie는 흐르는 강의 물결을 따라 유유히 정착민들의 땅을 향해 다가온다.(위 그림, 우) 삶을 일구는 기본적인 조건인 물과 함께 흘러와 이 땅에 첫 발을 들이는 젖소의 모습은 경이롭게까지 느껴진다. 유목적 삶에서 벗어나 정착하기를 꿈꾸는 이들의 열망이 겹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경유해 장소의 정체성을 연구한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인간의 실존을 거주, 즉 '뿌리내림'에서 찾았다. 렐프에 의하면 장소란 우리 자신을 외부로 지향시키는 출발점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에게 '진정한 장소감'이란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내부에 속해있는 느낌이다. 렐프의 의견을 빌리자면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장소감은 정주함으로써 얻어진 공동체적 감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블레이크가 사랑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우정을 정주의 자리에 넣어놓은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인 1820년대 킹 루와 쿠키가 도착한 곳은 새로 이주한 이들에게 뿌리내림의 역사가 부재한 곳이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상업적 자본주의의 논리다. 무엇이든 교환 가능한 것이 곧 가치가 되는 이곳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꽤나 낭만적이다. 서로를 향해 비스듬히 기대어있다는 안도감이 그들만의 교환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유한 자본가의 소유인 젖소의 우유를 훔친다. 그들의 완전한 정주를 가능하게 할 빵을 만들어 팔기 위해서다. 한국인들에게 갓 지은 쌀밥의 모락모락 한 김에서 올라오는 달콤한 향이 '집'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듯, 유럽인들에게 우유를 넣어 갓 구운 빵 한 조각은 떠나온 그곳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쿠키가 구워낸 빵의 온기가 그들의 작은 거주공간을 가득 채우고, 허기진 이주민들의 마음을 채우는 동안 불안의 기운이 덮쳐온다. 그들은 과연 이 축축한 자투리 땅 위에서 계속해서 빵을 구워낼 수 있을까?
변용된 ‘스파게티 웨스턴’이 공간적 배경을 저 멀리 구대륙으로 옮겨 놓았다면, 라이카트의 <퍼스트 카우>는 프레임에서 내뿜는 분위기(atmosphre), 냄새까지 바꿔놓았다. <믹의 지름길>에서와 마찬가지로, 4:3 화면비율을 고집한 감독의 선택과 더불어 피사체와 카메라 간의 밀착된 거리는 다른 향을 뿜는 서부극을 빚어낸다. 그의 카메라가 포착하는 서부의 이미지가 양 옆으로 길게 뻗어 '점령하고 전복해야 할 황야'로 느껴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폐쇄적이고 빽빽한 감각이 프레임을 메운다. 그리고 그 안의 인물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깊이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서부의 메마른 모래먼지로 점철된, 가장 건조한 장르의 로맨스가 버섯이 피어나는 축축한 땅 위에 그려진다.
아직 역사가 기입되지 않은 그곳을 걸으며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History hasn't gotten here yet, "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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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5 아웃트로2020. 11. 11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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