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3-08-13 17:00:17
철근도 양심도 꽉꽉 찼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리뷰
이 글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좋아요와 댓글은 미천한 창작자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버젓이 방송에 나와 전세사기를 고백하는 것이 덤덤해진 시대가 와버렸다. 자신의 인생을 바쳐 모은 돈으로 계약을 했을 집이었기에. 피해자에게 주어질 보상금 정도로 그들의 다친 마음에 밴드 하나 못 붙여줄 것은 뻔하디 뻔하다. 잡혀야 할 사람들은 잡히지 않고. 피해자들은 이 모든 사태에 괴로워하며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생긴다. 그뿐인가. 인생으로는 모자라 영혼까지 끌어다 은행에 저당을 잡히고 들어왔을 집인데, 반드시 박혀 있어야만 했을 철근조차도 제대로 박혀있지 않단다. 어째서 피해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내 이야기는 아니고 뉴스에서 나오는 남의 이야기이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한숨을 몰래 내쉬어 보기도 한다.
영화는 정확히 이 시점에서 시작한다.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한국 사람이라면 폭발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온갖 미묘한 생각들과 서러움을 영리하게 이용하기까지 한다. 덕분에 영화 초반에 보여주는 아파트의 역사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동산의 가격이 폭주하는 것을 보여주는 불과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관객들은 자신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영화의 상황 속으로 순순히 빨려 들어간다.
덕분에 영화가 제대로 된 설명조차 없이 모든 아파트를 날려버리고, 덩그러니 황궁 아파트만을 중심에 남겼을 때도. 관객들은 당황하지 않는다. 이미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황궁아파트 속으로 들어가 문을 꽁꽁 걸어 잠근 뒤 이므로.

영화가 영리하다 못해 섬뜩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두 번째 지점은 바로 입주민회의다.
남은 주민들이 느끼고 있는 마음. 어떻게 보면 입 밖으로 꺼내 말하지 못했을 뿐, 위기 상황이라면 그런 생각을 가진다 해서 욕할 수 없는 마음속 이야기들을 입주민 회의라는 형식으로 빌어 귀로 전달한다. 모든 아파트가 무너지고 달랑 자신들의 집만 남은 상황이지만. 이 무심하면서도 일상에 착 달라붙어 있는 상황 덕에. 여태껏 드림팰리스 주민들에게 받아왔던 차별들에서 오는 서러움을 얘기하는 장면들 조차 낯설지 않다.
자신들이 받았던 차별들을 오롯이 돌려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서도. 입주민이 아닌 다른 이방인들을 바퀴벌레라고까지 부르며 소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올라오지 않는다. 영화는 너무도 정확히 한국 사회가 집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까발리고 있고. 또한 쓸데없이 정의로운 인물을 대놓고 앞장 세워 교훈질을 하지 않는다. 그저 관객들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경험들도 함께 끌어올려 저 말도 맞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렇게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바퀴벌레 소탕 작전을 시작한다. 본인들은 그것이 자정작용이라 믿었고 자신들은 이제 이곳에서 행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난리 법석 속에서도 꿋꿋하게 우뚝 서 있는 황궁 아파트만큼. 자신들도 그렇게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아파트와 자신의 존망(Johnna 망함 아님)을 동일시한다.

아파트 주민들의 은은한 광기에 팔에 돋은 소름이 겨우 가라앉을 때가 되어서야. 그들이 간과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게 한다. 바로 모든 닫힌 시스템은 부패한다는 것.
이대로만 가면 남들이 죽건 말건 영원히 안전할 것만 같던 황궁 아파트는 고인 물이 되기를 자처하더니 그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조금씩. 천천히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파트 단지를 커다란 고름주머니로 만드는 것도, 그러면서도 가장 지키려 애쓰는 사람도. 바로 영탁(이병헌)이다. 그는 황궁 주민의 DNA가 전혀 없으며, 극우뇌를 가진 사람도 아닌 일명 "바퀴벌레"에 불과했지만. 주민들의 집을 향한 열망에 올라타, 실컷 가짜이면서도 진짜인 행세를 한다. 그것도 꽤나 훌륭하고 성공적으로.
어리바리했던 영탁이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로 변화하기까지 겪는 아주 극단적인 감정의 변화를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정말 점진적으로. 하지만 이질감 하나 없이 절묘하게 이뤄낸다. 그 어떤 주민의 욕망보다도 강렬하면서 그 어떤 바퀴벌레보다도 맹렬하게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려 애쓰는 모든 모습을 보면서. 이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은 끝이 없겠구나. 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디스토피아적이지만 너무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들었던 영화 전체에 비해, 마지막 부분은 누가 보아도 희망이라는 게 있기는 하다.라고 말해준다는 점은 통상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뻔하게 헬기를 타고 온 구조대에 의한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나, 눈물파티를 하려는 시도조차 없다는 점은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모든 껍데기들은 황궁아파트와 함께 조용히 마지막을 맞이한다.
황궁 아파트는 망했지만(?) 영화 자체는 마치 황궁 아파트와 같았다. 건축물로 치자면 아낌없이 들어갔어야 할 철근들이 제자리에 굳건하게 박혀있고. 모든 것이 설계도대로 맞아떨어져서 자아내는 탄성도 영화 중간중간 가감 없이 흘러나올 만큼 훌륭했다. 모조리 쓰러진다 해도, 저 멀리서도 보일 만큼 듬직하게 제자리를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소한 이 영화만큼은, 철근도 양심도 꽉꽉 차 있는 셈이다.
[이 글의 TMI]
1.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아마도 시간이 된다면 한국영화 빅 4에 관한 이야기를 쓸 것 같다.
2. 다음 주부터 휴가 아아아악!!!!
3. 휴가비 받은 걸로 일단 책부터 사봅니다.
#콘크리트유토피아 #엄태화 #최신영화 #영화리뷰 #브런치작가 #이병헌 #박보영 #박서준 #김선영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리뷰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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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측에서 경쟁부문으로 초청했으나 스코세이지 감독이 다른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며 비경쟁 부문 초청을 요구한 작품 <플라워 킬링 문>이 개봉한다고 합니다. 세계 거장 마틴스콜세이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가 만나 엄청난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10월 3주차 개봉예정작 같이 알아보실까요?
플라워 킬링 문
Killers of the Flower Moon
ⓒ 네이버영화
개요: 범죄, 드라마 | 미국 | 206분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등
개봉: 202310.19.
배급: 롯데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플라워 킬링 문’은 진정한 사랑과 말할 수 없는 배신이 교차하는 서부 범죄극으로 ‘어니스트 버크하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몰리 카일리’(릴리 글래드스톤)의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맨스를 중심으로 오세이지족에게 벌어진 끔찍한 비극 실화를 그려낸다. 데이비드 그랜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아카데미를 수상한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으며, 에릭 로스가 각본에 함께 참여했다.
CINE PICK!
데이비드 그랜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920년대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실화 바탕 영화로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와 스콜세지의 만남으로 개봉전부터 제작단계에서부터 큰 관심을 받은 영화입니다.
엑소시스트: 믿는 자
The Exorcist: Believer
ⓒ 네이버영화
개요: 공포, 호러 | 미국 | 111분
감독: 데이빗 고든 그린
출연: 엘렌 버스틴, 레슬리 오덤 주니어, 앤 도드, 라파엘 스바지 등
개봉: 2023.10.18.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시놉시스
한날한시에 동시에 사라졌던 앤젤라와 캐서린. 기억이 전부 사라진 채 상처투성이 몸으로 돌아온 두 아이는 이상증세를 보이며 날이 갈수록 섬뜩하게 변해간다. 마침내 두 아이의 몸을 동시에 차지한 악마가 존재를 드러내고, 한 명을 살리면 한 명이 죽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는데… 신이 너한테 장난을 쳤네 극한의 공포와 대면할 자, 누구인가
CINE PICK!
공포영화의 명가 블룸하우스에서 제작한 <엑소시스트: 믿는자>는 엑소시스트 시리즈의 첫 번째 리부트 작품. 오리지널 1973년작에서 이어지는 50주년 속편이자 리부트작품입니다.
블루 자이언트
Blue Giant
ⓒ 네이버영화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120분
감독: 타치카와 유즈루
출연: 야마다 유키, 미마야쇼타로, 오카야마 아마네 등
개봉: 2023.10.18.
배급: 판씨네마㈜
시놉시스
“세계 최고가 될 거야, 반드시” 언제나 강가에서 홀로 색소폰을 불던 고등학생 ‘다이’는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에 도전하기 위해 도쿄로 향한다. “실력이 안 되면 같이 안 할 거니까” 우연히 재즈 클럽에서 엄청난 연주 실력을 뽐내는 천재 피아니스트 ‘유키노리’를 만나 밴드 결성을 제안하고, “나도 드럼을 칠 수 있을까?” ‘다이’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평범한 대학생이던 ‘슌지’가 열정 가득한 초보 드러머로 합류하면서 밴드 ‘JASS 재스’가 탄생한다. “전력을 다해 연주하자! 분명 전해질 거야” 목표는 최고의 재즈 클럽 ‘쏘 블루’! 10대의 마지막 챕터를 바친 JASS 재스의 격렬하고 치열한 연주가 지금,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CINE PICK!
이시즈카 신이치 작가가 내놓은 동명 만화 원작 <블루 자이언트>는 국내에서 많이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일본 현지에선 누적 판매 1100만부를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음악 총괄을 일본 최고 재즈 피아니스트 우에아라 히로미가 음악과 피아노 연주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
A Tour Guide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94분
감독: 곽은미
출연: 이설, 오경화, 박세현, 우정원, 이노아 등
재개봉: 2023.10.18.
배급: 찬란
시놉시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박한영입니다. 성의를 다해 가이드할 테니, 저를 믿으시고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서울에서, 안락한 정착을 꿈꾸는 20대 한영.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 후, 이제 정말 돈만 벌면 될 줄 알았는데... 중국 여행객을 상대로 한 가이드 업무는 마음 같지 않고, 심지어 유일하게 의지했던 친구 정미마저 서울살이 청산을 선언한다. 열심히 살아도 마음 같지 않은 서울살이, 이대로 끝…? 당신의 여행은 제가 가이드할게요, 그런데... 제 인생은 누가 가이드해 주죠?
CINE PICK!
곽은미 감독은”동시대 우리의 젊은 세대와 이야기를 탐구하고 알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라고 말하며 주인공 ‘한영’의 모습에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준의 모습을 많이 보고 참고하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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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왕을 둘러싼 궁중암투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정립된 캐릭터와 세계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고뇌를 담아내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만큼이나 불친절하다. 그러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설계한 작가주의적 세계를 선호한다면 여지없이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임은 명확하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정치적 합병 이후 대영제국의 첫 번째 군주가 된 앤 여왕이 재위하던 시기는 영국사 측면에서도 혼동의 시기였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중 승기를 잡은 영국은 유럽 열강들 사이에서 자국의 입지를 더욱 공고화하기 위해 전쟁을 지속한다. 하지만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영국은 전쟁을 지속시키는 대가로 막대한 전쟁 자금을 내놓아야 했다. 이에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한 양 당(휘그당과 토리당)간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감독은 당대 영국의 정치사적 배경을 발판삼아 앤여왕과 사라 그리고 애비게일의 관계성을 주요 플롯으로 재구성한다.
작가주의 영화는 사회적 모순이나 정치적 이슈에 대한 공동체 문제의식보다는 감독 개인의 철학적 고뇌를 담아낸다.
"장르영화" 중에서 배상준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장대한 역사 사건 중심의 전개보다 개인과 개인 간의 구도와 사건, 인물들의 심리에 치중한 작가주의 성향이 짙은 영화이다.여왕의 강력한 조력자 ‘사라’와 사촌 ‘애비게일’의 대립
영국이 막대한 전쟁 자금을 쏟아부으면서도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집권당이던 ‘휘그당’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사라 역시 전장에서 거듭 승리를 이끌며 전쟁 영웅이 된 남편 ‘존 처칠’과 자신의 입지를 공고화하기 위해 휘그당과 뜻을 같이했다. 이빨 빠진 호랑이와 다름 없는 군주의 옆자리를 꿰찼으니 ‘여왕의 여자’가 된 사라가 두려운 게 무어 있었을까. 휘그당은 물론이고, 야당인 토리당까지 그녀의 눈치를 살폈으니 사라는 실질적 일인자와 다름없었다. 적어도 사촌 동생 애비게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문의 번영과 안녕을 누려온 사촌 언니 사라와 달리 애비게일은 자신이 딛고 있던 기반이 무너져버린 경험을 일찍이 하게 된다. 귀족 가문 출신의 고결한 아가씨가 하녀라는 계급으로 곤두박질 치면서 맛봐야 했을 좌절, 치욕, 분노와 같은 감정들은 그녀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집안 내력인지 둘의 성미는 상이하면서도 비슷한데, '여왕의 여자' 자리를 두고 경쟁할 만큼 영리하나 대범한 타입의 캐릭터다. 다만 사라가 저돌적이고 직관적인 타입의 ‘여장부(女丈夫)’라면, 애비게일은 전략적이며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가진 ‘괴짜’에 가깝다. 특히나 이러 괴짜스러운 모습은 애비게일을 담아내는 촬영 방식에도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장면이 ‘어안 렌즈’로 애비게일을 촬영한 장면이다. 상황 자체를 심각하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희극적인 톤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자신의 처소에 무작정 쳐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나를 겁탈할건가요?”하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애비게일을 보라. 그녀의 상대는 단순히 하녀를 요깃거리 삼으려는 인물이 아니라, 왕의 강력한 조력자 사라이다.
애비게일은 강력한 입지에 오른 사라의 대척점에 서기 위해, 무엇보다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토리당과 정치적 결탁을 맺는다. 즉 정치적 결탁은 가진 것을 지키려는 자와 찬탈하려는 자의 파워게임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앤여왕은 두 사람의 대립을 가히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일찍이 남편과 아이들을 여읜 앤은 무엇보다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다. 여왕이 아닌 인간 ‘앤'으로서 정서적 결핍을 채우고자 사라를 곁에 뒀으나 국정을 돌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라와 그녀 사이에는 균열이 생긴다. 결국 이 균열을 비집고 파워게임을 승기를 잡은 건 에비게일이다.
“우린 게임의 목적이 전혀 달랐어"
사라와 앤여왕은 군신 관계이었으나 연인 관계를 바탕으로 비교적 동등한 위치에서 갈등을 겪는다. 사라는 자신이 대체될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 바탕에는 여왕이 아닌 '앤'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반면, 애비게일은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 여왕의 여자가 되기를 원했지, 정서적 결핍을 채우는 인간 '앤'의 여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어쩌면 앤여왕은 사라가 다른이로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차를 타고 왕실을 떠나는 사라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패자는 게임의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장막이 나눠진 세계, 여왕 ‘앤’과 인간 ‘앤’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4장 A Minor Hitch
앤여왕과 애비게일은 우연히 정원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단원들을 마주친다. 연주를 듣고 있던 앤은 갑자기 연주를 중단하라고 소리치며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창문 밖 빛만을 의지하며 위태롭게 걸어가는 앤의 모습을 통해, 안과 밖의 명암을 대비시켜 불안한 정서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가장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와 표정으로 복도에서 우연히 하녀의 아기를 마주친 여왕은 아기를 강탈하는 것처럼 안아든다. 이는 그녀의 자식에 대한 결핍과 강한 집착, 충동적인 성향을 단번에 드러내는 가장 직관적인 방식이다.그녀의 내면은 이미 공허와 상실감 그 사이에서 점차 자기파괴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17명의 자식을 잃은 앤여왕의 상실감은 실상 그 누구도 채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여왕은 그 결핍을 사람이 아닌 ‘토끼’로 채우고자 했다. 상실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하더라도 공허함을 채울 수는 있으니 말이다. 극 초반 애비게일이 앤여왕과 가까워지고자 던졌던 화두도 여왕이 기르던 토끼였다. 여왕의 침실에 토끼들을 풀어놓고 애비게일과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인간 ‘앤’이 가장 편안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오만을 거듭하던 애비게일은 결국 여왕의 분노를 산다.
사라의 자리를 차지한 애비게일은 귀족의 명예를 되찾고 왕실의 무법자가 된다. 애초 권력을 쥔 자가 품어야 할 잭임이나 겸손은 없었다. 그저 왕의 권한을 쥐고 흔든다는 오만한 착각을 할 뿐이다. 허나, 이러한 태도는 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여왕은 크게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하지만 결국 여왕의 화를 불러 일으킨 결정적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바로 애비게일이 토끼를 학대하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였다. 작고 여린 토끼의 몸을 구둣발로 짓밟는 행위.
그 순간 애비게일이 취한 오만은 단순히 외면할 수준이 아닌, 여왕의 인내를 넘어선 폭력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여왕의 분노는 철저히 같은 방식으로 그녀를 응징하는 기폭제가 된다.
여왕은 애비게일에게 하녀 시절처럼 무릎을 꿇고 자신의 다리를 문지르라고 명령한다. 여왕의 표정은 애비게일을 향한 분노로 일그러지고,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채며 강한 괘씸함을 드러낸다. 마치 '네가 내 토끼들을 괴롭히면, 너 역시 무사하지 못할 거야'라는 섬뜩한 경고와도 같다. 감독은 관객에게 다시 한 번 이 세계의 권력의 구조를 각인시키려는 듯, 카메라 앵글과 편집 기법을 활용해 극적인 구도를 더한다. 크로스 디졸브 기법은 '애비게일 - 토끼 - 앤' 사이의 얽히고설킨 짓밟고 짓밟히는 관계성을 부각시키고,익스트림 로우 앵글은 앤 여왕에게 위압감과 권력을 부여하는 도구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촬영과 편집 그리고 음울한 음악의 조화가 더해져, 엔딩을 위한 완벽한 삼박자를 이룬다.
‘앤’은 장막이 나누어진 세계에서 때로는 절대적인 여왕처럼 때로는 나약한 인간처럼 묘사되었다.
인간의 다면성을 상업 필름에서 온전히 담아내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영화는 각 장막을 통해 주제를 환기시키며, 그 순간마다 앤의 특정한 기질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영리한 방식을 취했다. 작가주의적 구성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독특한 ‘영상 필체’가 만나 세밀하고도 깊이 있는 세계를 구축해 낸 것이다.
작가주의 세계를 돋보이게 만드는 밀도있는 연기
영화의 주축 배우인 올리비아 콜맨, 엠마 스톤, 레이첼 바이스의 열연은 감독만의 독특한 세계 안으로 관객들을 단숨에 몰입시킨다. 특히나 올리비아 콜맨은 신체적 심리적 붕괴를 겪고 100kg의 거구가 된 ‘앤’여왕으로 열연하기 위해 15kg 증량했다고 한다. 외형적 동화뿐 아니라 다리를 절거나, 인물이 겪는 내면적 혼란, 쇠약 해져가는 얼굴을 표현할 때 올리비아 콜맨의 진가가 드러난다. 실제로 앤 여왕은 사라가 추방된 후 3년 만에 작고했으며, 사후에는 뇌졸중이 그 원인으로 꼽혔다. 영화 후반부, '애비게일'과 '앤'이 침실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 앤의 얼굴은 구안와사가 온 것 처럼 불편해 보이는데, 이는 뇌졸중의 대표적인 예고 증상으로 여겨진다.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올리비아 콜맨의 노련한 연기력 덕분에 관객은 끝까지 몰입감을 가져갈 수 있었고 결국 이듬해 오스카, 골든 글로브, 아카데미, 베니스 시상식을 휩쓸며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큰 결실을 맺는다.
흥미로운 점은, 앤 여왕을 연기하며 극찬받았던 올리비아 콜맨이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 시즌 3, 4에서 다시 한 번 여왕을 연기했다는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단단하고 침착하며 인내심 깊은 인물로, 성향적인 면에서 앤 여왕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다. 베테랑 배우인 올리비아 콜맨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경험하고 싶다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와 <더 크라운>을 모두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작가주의적 성향에 따른 호불호와 고증적 한계
감독부터 배우까지 모든 합이 조화로운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역사적 고증방식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실제로 앤여왕이 불안정한 정서와 히스테릭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는 하나, 토리당과 휘그당 사이에서 정치적 협상을 잘 이끌어간 성군으로서의 면모도 있었다. 양 당의 갈등을 해소하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신중함과 중립적 태도를 일관했다는 역사 기록들이 그녀의 노력을 뒷받침한다. 영화에서도 자신의 오랜 조력자였던 사라를 내쫓고 의회에서 군주의 목소리를 내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많은 시퀀스를 할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사극은 언제나 논픽션과 픽션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한다. 어떤 부분을 각색하고 다듬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포커스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적 군주인 ‘앤’을 기대하고 보면, 영화 속 앤 여왕은 다소 납작하게 묘사된 캐릭터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핵심 플롯이 "위태롭고 나약한 군주를 놓고 펼쳐지는 두 여성의 강력한 파워게임"인 만큼, 앤 여왕은 절대적 왕정의 자리에 있음에도 끊임없이 인간적인 측면이 타자화되는 캐릭터로 설계되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세계 안에서 세 인물 간의 관계성을 잘 구축하기 위해 캐릭터의 각색은 필연이었던 셈이다.
작가주의 영화는 그 특성상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점에서 도전적인 성격을 지닌다. 대중성은 일반적으로 이상적이고 명확한 엔딩, 기승전결 구조, 그리고 직관적인 메시지를 선호하는 반면, 작가주의 영화는 전형적인 장르적 구도에서 벗어나 복잡하고 다층적인 메타포를 사용해 관객의 해석을 요구한다. 이러한 특성은 대중에게 높은 장벽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상업적 성공을 담보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작업을 완수한 감독이 바로 요르고스 란티모스다. 예술성과 상업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그의 작품은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는 필자는 앞으로 더욱 거장이 되어 갈 감독의 행보에 뜨거운 지지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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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클리셰
이 심란한 마음을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나는 홍콩, 대만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영화관에 입장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SNS에 해시태그를 단 리뷰를 써서 당첨되면 대만 고량주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당연히 해 봐야지 생각했다. 이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지만, 굳이 한 마디 남긴다면 '일본 영화에서 본 난감한 캐릭터, 중국 영화에서 본 조잡한 CG, 한국 영화에서 본 불필요한 연출'이 마구 섞인, 동아시아 대통합 영화라고 하고 싶다.
영화를 안 봐도 알 수 있는 서사
영화의 시작은 나이 든 동네 아저씨들과 농구를 하던 '샤오룬'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갑자기 비가 오고,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고백하는데 또 갑자기 번개가 치고, 예상할 수 있듯이 번개에 맞아 죽는다. 그러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저승사자가 샤오룬을 데리고 저승으로 간다. <신과 함께>를 봤다면 대만 저승은 좀 만만하게 느껴질지도.
저승에 가면 몇십 년 된 컴퓨터로 갓 죽은 인간의 삶을 평가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굿플레이스>를 봤다면 저승도 기술발전 속도가 현저히 차이나는구나 싶을 거다. 생의 정보를 이마에 바코드를 대서 알아보는 시스템은 마치 애니메이션 <코코> 같다. 저승에 가면 누구나 염주를 하나씩 받게 되는데, 착하게 살았으면 흰색 염주알, 나쁘게 살았으면 검은 염주알이다. 검은 염주알로는 인간으로 환생할 수 없어 저승에서 일을 돕는다. 염주알이 흰색으로 바뀌어야 인간 환생 확정. 자, 또 떠오른다. 지구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배지를 모으는 <소울>의 아기 영혼들이. 왜 이렇게 비슷한 영화들을 끌어오냐 하면, 무엇하나 놀랍지 않았기 때문이다. 픽션은 상상의 산물일진대 '판타지 로맨스'를 표방하는 영화에서 판타지도, 로맨스도 놀라움을 안겨주지 않는다.
역시 예상할 수 있듯, 샤오룬은 죄가 많아 사람으로 환생할 수 없다. 그리고 옆방에는 죽음을 수용하지 못해서 억울해 미칠 지경인 여자 '핑키'가 있다. 이들은 갑자기 눈이 마주치고, 초면이면서 갑자기 서로를 비난한다. 둘이 욕하며 싸울 때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저 둘이 뭘 하겠구나.
그렇다. 그들은 죄를 갚기 위해 월노(月老), 우리나라에서는 월하노인이라 부르는 일을 같이 하게 된다. 두 사람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붉은 실로 맺어주는 인연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아주 임무가 막중한 역할이다. 핑키는 월노가 되기 전 악귀가 되지 않겠냐는 검은 유혹을 받는데, 잠시 자신을 죽인 자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혔다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샤오룬에 의해 저지당한다. 판타지임에도 저승이라는 배경이 광활하지도 아득하지도 않다.
캐릭터의 존재 이유
귀신도 되었겠다, 핑키는 자기를 죽인 남자를 찾아간다. 남자는 죄책감도 없이 핑키가 죽음으로써(어떻게 챙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챙긴 돈으로 호위호식하며 산다. 샤오룬은 복수를 해주겠다며 그 남자와 밖에 서 있던 오토바이를 묶고, 갑자기 남자는 오토바이와 사랑에 빠져 오토바이에 유사성행위를 한다. 이 영화, 12세 이상 관람가로 해도 될까.
핑키는 자기가 왜 죽어야 했는지도 모르고 죽었으면서, 그렇게 복수의 칼을 갈았으면서 고작 그 정도로 원한이 다 풀린다. 그리고 고작 그 정도로 샤오룬에게 반한다.
번개 맞아 이마에 상처가 생긴 샤오룬은 죽기 전의 삶을 기억할 수 없다. 파트너가 핑키와 샤오룬은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샤오룬이 원래 살았던 동네로 가게 된다. 왜 살았던 동네와 출신 고등학교를 알게 되었는지, 누가 알려줬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다 키우던 개가 샤오룬에게 달려가면서, 별안간 기억이 떠오른다. 세상에...
개를 찾으러 온 여자 '샤오미'를 보며 오열을 하는 샤오룬. 드디어 모든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쉽게 찾아질 기억이란 말인가. 허무하다.
그때부터 샤오룬은 샤오미 주변을 얼쩡거리는데, 저승의 임무를 맡은 귀신들이 너무 태만하다. 샤오룬에게 빠진 핑키는 샤오미와 다른 남자를 엮어주려고 하지만, 샤오미에게는 인연의 실이 묶이지 않는다. 왜겠나. 관객들은 다 알고 영화 속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도대체 핑키와 샤오미가 왜 존재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핑키는 한 남자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여성, 귀신이 된 후 샤오룬을 좋아하는 여성 이외에 아무런 서사가 없다.
샤오미 역시 '샤오룬이 좋아하는 여성' 외에는 특징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첫눈에 반한 여자, 샤오미가 모든 게 변한다는 걸 알아야 어른이 된다고 말할 때,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라고 말하게 하는 여자, 싫다고 싫다고 아무리 거절해도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고백하게 만드는 여자, 모든 기억이 사라졌을 때 갑자기 기억을 되돌려주는 여자, 귀신이 되어서도 지켜야 할 여자. 오직 샤오룬을 위해 존재하는 두 여자. 이들은 성격이라 할 것도, 배경이라 할 것도, 서사라 할 것도 없다.
두 여자주인공이 이런 마당에 남자주인공이라고 특별한 서사가 있겠나. 남자주인공 역시 '한 여자에게 사랑에 빠져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사랑하고, 죽고 나서도 한 사람만 사랑하는 동네 까불이'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따금 일본 로맨스 영화에 등장하는 당황스러운 캐릭터들을 모아둔 것만 같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에서의 당황스러움 같은.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주인공인 세 사람에 대한 묘사가 이 정도이다.
불필요한 연출
그러다 또 갑자기, 저승에서 원한을 풀지 못한 악귀가 이승에서 사람으로 환생한 과거 인연들을 죽인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박중헌쯤 된다. '파국이다'를 읊조려야 할 상황이 벌어지는데 저승에서는 손 놓고 구경만 한다.
이 악귀가 원한을 품은 것은 500년 전의 일 때문이다. 수많은 살생을 해 오던 도적떼 출신으로, 환생은 커녕 지옥에나 안 떨어지면 다행인 남자. 그런데 여기에서도 서사의 부재가 여실없이 드러난다. 이 도적떼는 왜 도적질을 하는가. 돈 때문인가? 아니다. 이들은 쫄쫄 굶는다. 의로움 때문인가? 전혀 아니다. 이들은 무고한 이들을 가차없이 죽인다. 나라에 대한 역모인가? 그것도 아니다. 설사 그렇다고 한들, 영화에서는 그 무엇도 말해주지 않는다. 악한 자들에게도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
원한을 품고 염라 밑에서 일하게 되지만, 자신을 배신한 자들이 줄줄이 환생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직접 찾아가 복수하기로 한다.
첫 번째 타자는 어린 아이다. 어린 아이에게 '너는 500년 전의 일을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억한다'며 양치하고 있는 아이를 공격하고, 이 아이는 또 수산물 파는 여자를 공격하고, 여자는 또 다른 남자를 공격하고, 남자는 샤오미를 공격한다. 가만히 있다가 샤오미가 공격당하자 그때서야 샤오룬과 기타 저승 인물들이 나서는데, 그 이유도 역시 알 수 없다.
문제는, 왜 보는 사람의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잔인함을 연출했는지이다. 목을 꺾고, 칼로 찌르고, 아기가 조개를 생으로 씹어 먹어서 피를 토해야 하는지 전혀 개연성이 없다. 악귀에게 씌인 이들은 죄다 좀비화된다. 좀비 영화, 좀비 드라마가 유행인 건 알겠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등장해야 했나?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도 있지만 복수심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나. 이 징그러운 복수극은 로맨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트랙으로 진행된다.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악'은 스릴감도 주지 않고, 공포심을 주는 것도 아닌, 징그러움뿐이다.
논외로, '인간의 추악한 본성' 어쩌고 하는 인터뷰들을 몇 편 읽어 보았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우리가 왜 영화로 봐야 하는지,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은 간접경험을 통한 외연의 확장에 있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은 당장 포털사이트를 켜서 아무 기사나 눌러 보면 경험 가능하다. 굳이 간접경험하지 않아도 직접경험이 가능한 영역이지만 우리는 법과 제도와 문명과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조심하며 살아간다. 욕망하지만 차마 입밖으로 꺼내면 욕먹을까 봐 속으로만 생각했던 추악함(약자를 타자화, 대상화하는 등)에 픽션이라는 핑계가 하나 생긴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인연'에 대해서만 말한다면
서양영화에서 'God bless you'를 말하는 상황에 이 영화는 '아미타불'을 말한다. 대체로 불교적 관점의 영화이다. 윤회와 환생, 극락과 지옥이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맨스와 복수극은 테마라고 보기도 어렵다. 감독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보여주었던 애틋하고 풋풋한 로맨스가 한 스푼 정도 들어가 있다.
왜 샤오룬이 샤오미를 그토록 쫓아다녔는지, 악귀가 왜 여러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는지, 초반에 뿌려놓은 떡밥들이 뒤에서 조금씩 회수가 되는데(물론 납득이 되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든 모든 생명에는 인연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메시지이다.
악귀는 매미였던 시절 자신을 살려주어서 고맙다는 샤오룬의 격한 감사 인사에 그만 마음이 스르르 풀려서 사라진다. 윤회고 극락이고 필요없다더니,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못 들어서 그랬던 건가 싶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하나 마음에 담아둘 것이 있다면 인연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 내가 함부로 죽인 개미도, 나쁘게 대한 사람도, 나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도 나 나의 인연이니 소중히 대하자. 그들은 어쩌면 전생에 내가 빚진 사람, 나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다.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인연이다. 너무 많이 미워하지도 말고, 너무 많이 사랑하지도 말고,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아끼지 말자. 언제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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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맛이 없었던 식당을 리뷰하지 않는다. 입맛이 달라서 그렇겠거니 생각하니까. 영화도 마찬가지로, 재미없었던 영화에 악평을 하지는 않는다. 십수년간 <매트릭스> 트릴로지의 열광적인 팬이었지만 <매트릭스4>에 대해서 함구한다.
하지만 시사회에 참석하여 이 영화에 대해 말할 의무가 생겼으니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도 안내할 필요가 있겠다.
관람 포인트1.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 대만영화 특유의 풋풋한 로맨스 감상 가능.
관람 포인트2.
인연, 사후세계 등의 요소들과 기괴한 장면들을 좋아한다면 재미있을 듯.
관람 포인트3.
떡밥이 하나하나 회수되는 걸 보는 즐거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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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한다는 이유로 다 용서해야만 하는가
어릴 적 봤던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의 집 앞에서 하루종일 기다리는 것을 낭만적으로 연출하는 경우가 종종 보고는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낭만적인 상황도 아니며 설렌다고 느껴서도 안된다. 사랑은 상호 의사소통이며 서로를 이해하는 행위인데 상대의 의사를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집착이다. 또한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았으며 거절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것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명백한 스토킹이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공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매체에서 이런 구애 행위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것을 보며 과거의 나는 왜 그것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매체의 힘은 상당히 강하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인 구애행위를 통해 끝끝내 상대방이 나의 사랑을 받아줬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이 과연 건강한 사랑, 건강한 의사소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만약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공포심을 느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영화 미저리에서는 폴에 대한 애니의 표현을 옳지 않은 방식, 왜곡된 사랑으로 표현했는데 나는 이처럼 미디어에서 스토킹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며 스토킹에 대해 알아보다가 현재 한국에서는 스토킹이 법적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스토킹 자체만으로는 범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연인과 같은 친밀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 살인과 같은 범죄가 스토킹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간 나는 이런 친밀한 사이, 혹은 일방적인 구애행위가 범죄로 이어지는 뉴스들을 접하면서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가해자의 이야기, 가해자의 목소리에 더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이런 범죄의 피해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쉽게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영화 미저리를 보면서 스토킹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행위인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성범죄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처럼 스토킹에 대한 교육, 건강한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루빨리 스토킹과 관련된 법을 제정하여 피해자를 보호하고 이것이 2차 범죄로 이어져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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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과 투쟁의 경계에서
일찍이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은 오직 공적인 영역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개별자로서의 인간 또한 소문자의 역사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그 역사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 구성된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 사태>는 낸 골딘이라는 한 사진 작가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중노년의 삶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진가이자, 사회 운동가로서 살아가는 낸 골딘. 작품은 낸 골딘을 오피오이드 사태를 비판하는 운동가로 비추며, 시작을 연다. 이후 비선형적으로 펼쳐지는 그녀의 삶의 편린들. 사적이디 사적인 그녀의 대표작 ‘성적 의존의 발라드’와 퀴어 커뮤니티에서 친구들과 함께 향락을 즐겼던 삶, 에이즈의 창궐로 인해 수많은 친구들을 잃어버리게 된 삶을 거쳐, 낸 골딘의 인생의 분기점이 된 그녀의 언니인 바바라의 죽음에 대한 기억에 도달한다.
부모가 자신의 존재를 끝없이 부정하는 시간 속에, 결국 죽음을 선택한 바바라는 상담사에 의해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를 볼 수 있었던 자로 재규정된다. 바바라는 세상을 너무나 예민하게, 어쩌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존재였기에, 세상에서도 가족에게도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살아온 삶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이 작품은 ‘낸 골딘’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소수자성으로 인해 살아내는 것이 투쟁이었던 낸 골딘의 삶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재구성된다. 그러나 낸 골딘의 삶에 있어, 바바라의 존재는 큰 축을 담당한다. 어릴 적 낸 골딘이 유일한 애착 관계를 가졌을 것으로 유추되는 바바라가 그런 고통에 의해 죽음을 선택했다면, 낸 골딘은 오히려 그 빚을 안고 살기로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바바라가 바랐을 삶을, 가장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
그 삶은 더없이 아름답게 빛났고, 실재의 유혈사태가 벌어지듯 바라지 않은 죽음 또한 가득했다. 그녀 에게 애도의 삶이란, 단순히 바바라를 애도하는 삶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의 무지와 배척, 멸시받던 질병으로 인해 그녀는 수많은 친구를 잃었다. 끝없는 절망과 애도 속에서도 그녀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더 많은 이들의 죽음을 이해하며, 다른 삶을 선택한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죄없이 떠난 이들의 가족 및 생존자들과 그녀는 연대한다. 결국 그녀의 과거와 현재는 끝없이 대화하고 만난다.
그녀의 과거를 다룬 이야기는 작품의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러나 중간에 끝없이 개입되는 현재의 삶들. 결국 우리 모두가 살아내는 삶은 그런 것이 아닐까. 나의 지금이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과거에 빚을 지고, 또 상흔을 안고 현재의 우리가 된 것이다. 감히 온전한 타자인 내가 그녀의 상처와 삶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보편화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순간들엔 분명한 공명을 느꼈다.
<Paris is burning>, <데이빗 스트리트의 창녀들> 등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특히 이토 시오리의 작품을 떠올리며,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상과 투쟁의 경계에 놓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나아가 그들이 지쳐 쓰러지지 않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고 싶다. 손을 잡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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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 루이스도 불완전한 사람이었어!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도 우리와 같은 불완전한 사람이었어!’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두 인물이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설전을 통해 밝혀지는 이들의 민낮에 집중한다. 지난한 삶과 사회적 편견, 그리고 죽음의 공포 앞에 너무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두 지성의 모습은 낯설음과 측은함을 오고가며 인간애를 느끼게 한다.
흡사 전쟁을 앞둔 이의 모습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9년 9월 3일, C. S. 루이스(매튜 구드)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프로이트(앤서니 홉킨스)의 초대로 런던에 위치한 그의 집을 방문한다. 도착 전 거리에서 만난 프로이트 딸 안나(리브 리사 프라이스)가 건투까지 빌 정도이니 세기의 대결이나 마찬가지. 무신론자인 프로이트와 유신론자인 C.S. 루이스는 만나자 마자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토론을 펼친다. 전혀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거리는 수면 아래에 있던 각자의 죽음이란 공포를 내보이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꿈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실화처럼 보이지만 실제 둘은 만난 적이 없다. 원작인 연극 <라스트 세션>을 집필한 희곡 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은 M. 니콜라이의 저서인 ‘루이스 vs. 프로이트(THE QUESTION OF GOD)’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했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이 작품의 특성상 극 중 설전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쳐내며 토론의 장보다는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C.S. 루이스를, C.S. 루이스의 관점에서 프로이트를 바라보고 탐구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프로이트는 C.S. 루이스를 환자처럼 대한다. C.S. 루이스가 앉은 의자가 환자들이 앉는 의자라고 하는 등 보기보다 복잡한 삶과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가 된 이유는 캐묻는다.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얻은 공포증은 물론, 전장에서 죽은 친구의 부탁으로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이유, 그리고 신을 믿고 성서를 연구하는 이유 등 무신론자인 프로이트를 통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를 만난다.
반대로 C.S. 루이스는 기독교 변증론자로서 인간의 본성과 신앙을 함께 연구하듯 ‘꿈의 해석’을 내놓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를 탐구한다. 과거 자신과 남동생을 돌봐 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존재, 모든 인간은 동성애적 관점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말하지만,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딸 안나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 신은 믿지 않지만, 온갖 신을 모시는 아이러니한 태도 등 학자의 관점에서 그의 이론의 시작점과 실제 삶의 오류를 발견하는 데 중점을 둔다.
감독은 이런 두 인물의 극 중 위치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들의 어둡고 다른 면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20세기 최고의 지성인이지만, 그들 또한 우리처럼 오류를 범하는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이들의 민낯을 더 견고하게 다지는 건 바로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죽음의 공포다. 신을 믿던 안 믿던 간에 죽음의 공포는 두 인물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프로이트는 나치를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고, 전쟁의 공포와 구강암의 고통은 날로 심각해진다. C.S. 루이스 또한 참전 당시 얻었던 공포와 전우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등 그에게 죽음은 먼 일이 아니다. 이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둘은 인간에게 고통과 악은 왜 존재하는지, 신이 있다면 전쟁 등 참혹한 세상을 방관하는지, 죄는 무엇이고, 사랑은 존재하는지 등 날이 선 대화를 통해 우리가 모르는 삶의 진리를 파헤친다.
서로 극단에 위치한 이들이 만나 설전을 벌이는 이야기는 안소니 홉킨스, 조나단 프라이스 주연의 <두 교황>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다. 이 영화 또한 신을 섬기는 이들임에도 실수를 하는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공감과 위로를 전했다.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또한 <두 교황>과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지만, (안소니 홉킨스가 나온다는 점 등) 생각보다 유쾌한 유머가 적다.
원작인 연극에서도 유머는 첨예한 대립과 논리 정연한 토론에 무거워진 공기를 환기시키는 작용으로서 큰 역할을 했는데,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약하다. 두 인물에 대한 관심도가 많지 않다면 이들이 나눈 내용 자체가 딱딱하게만 느껴지는데, 실없는 농담과 유머가 적어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창과 방패를 휘두르는 듯한 이들의 설전은 단순한 영상 구성에 의해 긴장감이 덜하다. 플래시백을 통해 두 인물의 심리와 전사를 보여주는 건 중요하지만, 토론이 고조되어 진검승부가 이뤄지는 찰나에 등장하기 때문에 몰입감을 저해한다.
그럼에도 이 110분의 토론을 계속해서 보게 되는 건 두 배우의 열연 덕분이다.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말이 필요 없다. 극의 심도를 조율하는 듯한 그는 연기 텐션을 통해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 특히 3주 후 운명을 달리하는 가운데에서도 지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프로이트의 열정적인 모습, 딸 안나의 성정체성에 흔들리는 그의 불안한 눈빛은 빛난다. 매튜 구드의 이에 지지 않는다. 그는 과거의 기억에 함몰되는 가운데에서도 신을 믿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심지 굳은 C.S. 루이스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우린 오류를 오가며 온전한 진실을 발견한다.” 극중 프로이트가 C.S. 루이스에게 남긴 말이다. 이 세상 완전한 것은 없다는 것처럼, 극 중에서 만난 두 지성은 불완전한 존재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와 다른 게 하나 있다. 바로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했다는 것. 온전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목적 아래 이들이 행한 마지막 행동(클래식 듣기, 컴컴한 밤 지켜보는 시선)을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사진제공: ㈜트리플픽쳐스
평점: 2.5 / 5.0
한줄평: 첨예한 구강 액션이 빠진 심심한 110분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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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와 일루미네이션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세계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애니메이션 영화를 선보입니다. 아론 호바스와 마이클 제레닉(틴 타이탄스 고! 및 동명 영화의 공동 작업자)이 감독을 맡고 매튜 포겔(레고 무비2, 미니언즈2)이 각본을 맡았습니다. 출연진은 마리오 역에 크리스 프랫, 피치공주 역에 안야 테일러 조이, 루이지 역에 찰리 데이, 쿠파 역에 잭 블랙, 키노피오 역에 키건 마이클 키, 동키콩 역에 세스 로건, 크랭키콩 역에 프레드 아미센, 마귀 역에 케빈 마이클 리차드슨, 블랭키 역에 세바스찬 매니스캘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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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칸 영화제측에서 경쟁부문으로 초청했으나 스코세이지 감독이 다른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며 비경쟁 부문 초청을 요구한 작품 <플라워 킬링 문>이 개봉한다고 합니다. 세계 거장 마틴스콜세이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가 만나 엄청난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10월 3주차 개봉예정작 같이 알아보실까요?
플라워 킬링 문
Killers of the Flower Moon
ⓒ 네이버영화
개요: 범죄, 드라마 | 미국 | 206분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등
개봉: 202310.19.
배급: 롯데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플라워 킬링 문’은 진정한 사랑과 말할 수 없는 배신이 교차하는 서부 범죄극으로 ‘어니스트 버크하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몰리 카일리’(릴리 글래드스톤)의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맨스를 중심으로 오세이지족에게 벌어진 끔찍한 비극 실화를 그려낸다. 데이비드 그랜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아카데미를 수상한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으며, 에릭 로스가 각본에 함께 참여했다.
CINE PICK!
데이비드 그랜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920년대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실화 바탕 영화로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와 스콜세지의 만남으로 개봉전부터 제작단계에서부터 큰 관심을 받은 영화입니다.
엑소시스트: 믿는 자
The Exorcist: Believer
ⓒ 네이버영화
개요: 공포, 호러 | 미국 | 111분
감독: 데이빗 고든 그린
출연: 엘렌 버스틴, 레슬리 오덤 주니어, 앤 도드, 라파엘 스바지 등
개봉: 2023.10.18.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시놉시스
한날한시에 동시에 사라졌던 앤젤라와 캐서린. 기억이 전부 사라진 채 상처투성이 몸으로 돌아온 두 아이는 이상증세를 보이며 날이 갈수록 섬뜩하게 변해간다. 마침내 두 아이의 몸을 동시에 차지한 악마가 존재를 드러내고, 한 명을 살리면 한 명이 죽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는데… 신이 너한테 장난을 쳤네 극한의 공포와 대면할 자, 누구인가
CINE PICK!
공포영화의 명가 블룸하우스에서 제작한 <엑소시스트: 믿는자>는 엑소시스트 시리즈의 첫 번째 리부트 작품. 오리지널 1973년작에서 이어지는 50주년 속편이자 리부트작품입니다.
블루 자이언트
Blue Giant
ⓒ 네이버영화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120분
감독: 타치카와 유즈루
출연: 야마다 유키, 미마야쇼타로, 오카야마 아마네 등
개봉: 2023.10.18.
배급: 판씨네마㈜
시놉시스
“세계 최고가 될 거야, 반드시” 언제나 강가에서 홀로 색소폰을 불던 고등학생 ‘다이’는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에 도전하기 위해 도쿄로 향한다. “실력이 안 되면 같이 안 할 거니까” 우연히 재즈 클럽에서 엄청난 연주 실력을 뽐내는 천재 피아니스트 ‘유키노리’를 만나 밴드 결성을 제안하고, “나도 드럼을 칠 수 있을까?” ‘다이’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평범한 대학생이던 ‘슌지’가 열정 가득한 초보 드러머로 합류하면서 밴드 ‘JASS 재스’가 탄생한다. “전력을 다해 연주하자! 분명 전해질 거야” 목표는 최고의 재즈 클럽 ‘쏘 블루’! 10대의 마지막 챕터를 바친 JASS 재스의 격렬하고 치열한 연주가 지금,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CINE PICK!
이시즈카 신이치 작가가 내놓은 동명 만화 원작 <블루 자이언트>는 국내에서 많이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일본 현지에선 누적 판매 1100만부를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음악 총괄을 일본 최고 재즈 피아니스트 우에아라 히로미가 음악과 피아노 연주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
A Tour Guide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94분
감독: 곽은미
출연: 이설, 오경화, 박세현, 우정원, 이노아 등
재개봉: 2023.10.18.
배급: 찬란
시놉시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박한영입니다. 성의를 다해 가이드할 테니, 저를 믿으시고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서울에서, 안락한 정착을 꿈꾸는 20대 한영.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 후, 이제 정말 돈만 벌면 될 줄 알았는데... 중국 여행객을 상대로 한 가이드 업무는 마음 같지 않고, 심지어 유일하게 의지했던 친구 정미마저 서울살이 청산을 선언한다. 열심히 살아도 마음 같지 않은 서울살이, 이대로 끝…? 당신의 여행은 제가 가이드할게요, 그런데... 제 인생은 누가 가이드해 주죠?
CINE PICK!
곽은미 감독은”동시대 우리의 젊은 세대와 이야기를 탐구하고 알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라고 말하며 주인공 ‘한영’의 모습에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준의 모습을 많이 보고 참고하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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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왕을 둘러싼 궁중암투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정립된 캐릭터와 세계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고뇌를 담아내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만큼이나 불친절하다. 그러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설계한 작가주의적 세계를 선호한다면 여지없이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임은 명확하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정치적 합병 이후 대영제국의 첫 번째 군주가 된 앤 여왕이 재위하던 시기는 영국사 측면에서도 혼동의 시기였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중 승기를 잡은 영국은 유럽 열강들 사이에서 자국의 입지를 더욱 공고화하기 위해 전쟁을 지속한다. 하지만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영국은 전쟁을 지속시키는 대가로 막대한 전쟁 자금을 내놓아야 했다. 이에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한 양 당(휘그당과 토리당)간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감독은 당대 영국의 정치사적 배경을 발판삼아 앤여왕과 사라 그리고 애비게일의 관계성을 주요 플롯으로 재구성한다.
작가주의 영화는 사회적 모순이나 정치적 이슈에 대한 공동체 문제의식보다는 감독 개인의 철학적 고뇌를 담아낸다.
"장르영화" 중에서 배상준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장대한 역사 사건 중심의 전개보다 개인과 개인 간의 구도와 사건, 인물들의 심리에 치중한 작가주의 성향이 짙은 영화이다.여왕의 강력한 조력자 ‘사라’와 사촌 ‘애비게일’의 대립
영국이 막대한 전쟁 자금을 쏟아부으면서도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집권당이던 ‘휘그당’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사라 역시 전장에서 거듭 승리를 이끌며 전쟁 영웅이 된 남편 ‘존 처칠’과 자신의 입지를 공고화하기 위해 휘그당과 뜻을 같이했다. 이빨 빠진 호랑이와 다름 없는 군주의 옆자리를 꿰찼으니 ‘여왕의 여자’가 된 사라가 두려운 게 무어 있었을까. 휘그당은 물론이고, 야당인 토리당까지 그녀의 눈치를 살폈으니 사라는 실질적 일인자와 다름없었다. 적어도 사촌 동생 애비게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문의 번영과 안녕을 누려온 사촌 언니 사라와 달리 애비게일은 자신이 딛고 있던 기반이 무너져버린 경험을 일찍이 하게 된다. 귀족 가문 출신의 고결한 아가씨가 하녀라는 계급으로 곤두박질 치면서 맛봐야 했을 좌절, 치욕, 분노와 같은 감정들은 그녀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집안 내력인지 둘의 성미는 상이하면서도 비슷한데, '여왕의 여자' 자리를 두고 경쟁할 만큼 영리하나 대범한 타입의 캐릭터다. 다만 사라가 저돌적이고 직관적인 타입의 ‘여장부(女丈夫)’라면, 애비게일은 전략적이며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가진 ‘괴짜’에 가깝다. 특히나 이러 괴짜스러운 모습은 애비게일을 담아내는 촬영 방식에도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장면이 ‘어안 렌즈’로 애비게일을 촬영한 장면이다. 상황 자체를 심각하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희극적인 톤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자신의 처소에 무작정 쳐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나를 겁탈할건가요?”하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애비게일을 보라. 그녀의 상대는 단순히 하녀를 요깃거리 삼으려는 인물이 아니라, 왕의 강력한 조력자 사라이다.
애비게일은 강력한 입지에 오른 사라의 대척점에 서기 위해, 무엇보다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토리당과 정치적 결탁을 맺는다. 즉 정치적 결탁은 가진 것을 지키려는 자와 찬탈하려는 자의 파워게임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앤여왕은 두 사람의 대립을 가히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일찍이 남편과 아이들을 여읜 앤은 무엇보다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다. 여왕이 아닌 인간 ‘앤'으로서 정서적 결핍을 채우고자 사라를 곁에 뒀으나 국정을 돌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라와 그녀 사이에는 균열이 생긴다. 결국 이 균열을 비집고 파워게임을 승기를 잡은 건 에비게일이다.
“우린 게임의 목적이 전혀 달랐어"
사라와 앤여왕은 군신 관계이었으나 연인 관계를 바탕으로 비교적 동등한 위치에서 갈등을 겪는다. 사라는 자신이 대체될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 바탕에는 여왕이 아닌 '앤'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반면, 애비게일은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 여왕의 여자가 되기를 원했지, 정서적 결핍을 채우는 인간 '앤'의 여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어쩌면 앤여왕은 사라가 다른이로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차를 타고 왕실을 떠나는 사라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패자는 게임의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장막이 나눠진 세계, 여왕 ‘앤’과 인간 ‘앤’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4장 A Minor Hitch
앤여왕과 애비게일은 우연히 정원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단원들을 마주친다. 연주를 듣고 있던 앤은 갑자기 연주를 중단하라고 소리치며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창문 밖 빛만을 의지하며 위태롭게 걸어가는 앤의 모습을 통해, 안과 밖의 명암을 대비시켜 불안한 정서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가장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와 표정으로 복도에서 우연히 하녀의 아기를 마주친 여왕은 아기를 강탈하는 것처럼 안아든다. 이는 그녀의 자식에 대한 결핍과 강한 집착, 충동적인 성향을 단번에 드러내는 가장 직관적인 방식이다.그녀의 내면은 이미 공허와 상실감 그 사이에서 점차 자기파괴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17명의 자식을 잃은 앤여왕의 상실감은 실상 그 누구도 채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여왕은 그 결핍을 사람이 아닌 ‘토끼’로 채우고자 했다. 상실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하더라도 공허함을 채울 수는 있으니 말이다. 극 초반 애비게일이 앤여왕과 가까워지고자 던졌던 화두도 여왕이 기르던 토끼였다. 여왕의 침실에 토끼들을 풀어놓고 애비게일과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인간 ‘앤’이 가장 편안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오만을 거듭하던 애비게일은 결국 여왕의 분노를 산다.
사라의 자리를 차지한 애비게일은 귀족의 명예를 되찾고 왕실의 무법자가 된다. 애초 권력을 쥔 자가 품어야 할 잭임이나 겸손은 없었다. 그저 왕의 권한을 쥐고 흔든다는 오만한 착각을 할 뿐이다. 허나, 이러한 태도는 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여왕은 크게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하지만 결국 여왕의 화를 불러 일으킨 결정적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바로 애비게일이 토끼를 학대하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였다. 작고 여린 토끼의 몸을 구둣발로 짓밟는 행위.
그 순간 애비게일이 취한 오만은 단순히 외면할 수준이 아닌, 여왕의 인내를 넘어선 폭력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여왕의 분노는 철저히 같은 방식으로 그녀를 응징하는 기폭제가 된다.
여왕은 애비게일에게 하녀 시절처럼 무릎을 꿇고 자신의 다리를 문지르라고 명령한다. 여왕의 표정은 애비게일을 향한 분노로 일그러지고,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채며 강한 괘씸함을 드러낸다. 마치 '네가 내 토끼들을 괴롭히면, 너 역시 무사하지 못할 거야'라는 섬뜩한 경고와도 같다. 감독은 관객에게 다시 한 번 이 세계의 권력의 구조를 각인시키려는 듯, 카메라 앵글과 편집 기법을 활용해 극적인 구도를 더한다. 크로스 디졸브 기법은 '애비게일 - 토끼 - 앤' 사이의 얽히고설킨 짓밟고 짓밟히는 관계성을 부각시키고,익스트림 로우 앵글은 앤 여왕에게 위압감과 권력을 부여하는 도구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촬영과 편집 그리고 음울한 음악의 조화가 더해져, 엔딩을 위한 완벽한 삼박자를 이룬다.
‘앤’은 장막이 나누어진 세계에서 때로는 절대적인 여왕처럼 때로는 나약한 인간처럼 묘사되었다.
인간의 다면성을 상업 필름에서 온전히 담아내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영화는 각 장막을 통해 주제를 환기시키며, 그 순간마다 앤의 특정한 기질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영리한 방식을 취했다. 작가주의적 구성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독특한 ‘영상 필체’가 만나 세밀하고도 깊이 있는 세계를 구축해 낸 것이다.
작가주의 세계를 돋보이게 만드는 밀도있는 연기
영화의 주축 배우인 올리비아 콜맨, 엠마 스톤, 레이첼 바이스의 열연은 감독만의 독특한 세계 안으로 관객들을 단숨에 몰입시킨다. 특히나 올리비아 콜맨은 신체적 심리적 붕괴를 겪고 100kg의 거구가 된 ‘앤’여왕으로 열연하기 위해 15kg 증량했다고 한다. 외형적 동화뿐 아니라 다리를 절거나, 인물이 겪는 내면적 혼란, 쇠약 해져가는 얼굴을 표현할 때 올리비아 콜맨의 진가가 드러난다. 실제로 앤 여왕은 사라가 추방된 후 3년 만에 작고했으며, 사후에는 뇌졸중이 그 원인으로 꼽혔다. 영화 후반부, '애비게일'과 '앤'이 침실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 앤의 얼굴은 구안와사가 온 것 처럼 불편해 보이는데, 이는 뇌졸중의 대표적인 예고 증상으로 여겨진다.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올리비아 콜맨의 노련한 연기력 덕분에 관객은 끝까지 몰입감을 가져갈 수 있었고 결국 이듬해 오스카, 골든 글로브, 아카데미, 베니스 시상식을 휩쓸며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큰 결실을 맺는다.
흥미로운 점은, 앤 여왕을 연기하며 극찬받았던 올리비아 콜맨이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 시즌 3, 4에서 다시 한 번 여왕을 연기했다는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단단하고 침착하며 인내심 깊은 인물로, 성향적인 면에서 앤 여왕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다. 베테랑 배우인 올리비아 콜맨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경험하고 싶다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와 <더 크라운>을 모두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작가주의적 성향에 따른 호불호와 고증적 한계
감독부터 배우까지 모든 합이 조화로운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역사적 고증방식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실제로 앤여왕이 불안정한 정서와 히스테릭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는 하나, 토리당과 휘그당 사이에서 정치적 협상을 잘 이끌어간 성군으로서의 면모도 있었다. 양 당의 갈등을 해소하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신중함과 중립적 태도를 일관했다는 역사 기록들이 그녀의 노력을 뒷받침한다. 영화에서도 자신의 오랜 조력자였던 사라를 내쫓고 의회에서 군주의 목소리를 내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많은 시퀀스를 할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사극은 언제나 논픽션과 픽션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한다. 어떤 부분을 각색하고 다듬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포커스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적 군주인 ‘앤’을 기대하고 보면, 영화 속 앤 여왕은 다소 납작하게 묘사된 캐릭터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핵심 플롯이 "위태롭고 나약한 군주를 놓고 펼쳐지는 두 여성의 강력한 파워게임"인 만큼, 앤 여왕은 절대적 왕정의 자리에 있음에도 끊임없이 인간적인 측면이 타자화되는 캐릭터로 설계되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세계 안에서 세 인물 간의 관계성을 잘 구축하기 위해 캐릭터의 각색은 필연이었던 셈이다.
작가주의 영화는 그 특성상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점에서 도전적인 성격을 지닌다. 대중성은 일반적으로 이상적이고 명확한 엔딩, 기승전결 구조, 그리고 직관적인 메시지를 선호하는 반면, 작가주의 영화는 전형적인 장르적 구도에서 벗어나 복잡하고 다층적인 메타포를 사용해 관객의 해석을 요구한다. 이러한 특성은 대중에게 높은 장벽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상업적 성공을 담보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작업을 완수한 감독이 바로 요르고스 란티모스다. 예술성과 상업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그의 작품은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는 필자는 앞으로 더욱 거장이 되어 갈 감독의 행보에 뜨거운 지지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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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클리셰
이 심란한 마음을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나는 홍콩, 대만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영화관에 입장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SNS에 해시태그를 단 리뷰를 써서 당첨되면 대만 고량주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당연히 해 봐야지 생각했다. 이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지만, 굳이 한 마디 남긴다면 '일본 영화에서 본 난감한 캐릭터, 중국 영화에서 본 조잡한 CG, 한국 영화에서 본 불필요한 연출'이 마구 섞인, 동아시아 대통합 영화라고 하고 싶다.
영화를 안 봐도 알 수 있는 서사
영화의 시작은 나이 든 동네 아저씨들과 농구를 하던 '샤오룬'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갑자기 비가 오고,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고백하는데 또 갑자기 번개가 치고, 예상할 수 있듯이 번개에 맞아 죽는다. 그러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저승사자가 샤오룬을 데리고 저승으로 간다. <신과 함께>를 봤다면 대만 저승은 좀 만만하게 느껴질지도.
저승에 가면 몇십 년 된 컴퓨터로 갓 죽은 인간의 삶을 평가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굿플레이스>를 봤다면 저승도 기술발전 속도가 현저히 차이나는구나 싶을 거다. 생의 정보를 이마에 바코드를 대서 알아보는 시스템은 마치 애니메이션 <코코> 같다. 저승에 가면 누구나 염주를 하나씩 받게 되는데, 착하게 살았으면 흰색 염주알, 나쁘게 살았으면 검은 염주알이다. 검은 염주알로는 인간으로 환생할 수 없어 저승에서 일을 돕는다. 염주알이 흰색으로 바뀌어야 인간 환생 확정. 자, 또 떠오른다. 지구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배지를 모으는 <소울>의 아기 영혼들이. 왜 이렇게 비슷한 영화들을 끌어오냐 하면, 무엇하나 놀랍지 않았기 때문이다. 픽션은 상상의 산물일진대 '판타지 로맨스'를 표방하는 영화에서 판타지도, 로맨스도 놀라움을 안겨주지 않는다.
역시 예상할 수 있듯, 샤오룬은 죄가 많아 사람으로 환생할 수 없다. 그리고 옆방에는 죽음을 수용하지 못해서 억울해 미칠 지경인 여자 '핑키'가 있다. 이들은 갑자기 눈이 마주치고, 초면이면서 갑자기 서로를 비난한다. 둘이 욕하며 싸울 때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저 둘이 뭘 하겠구나.
그렇다. 그들은 죄를 갚기 위해 월노(月老), 우리나라에서는 월하노인이라 부르는 일을 같이 하게 된다. 두 사람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붉은 실로 맺어주는 인연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아주 임무가 막중한 역할이다. 핑키는 월노가 되기 전 악귀가 되지 않겠냐는 검은 유혹을 받는데, 잠시 자신을 죽인 자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혔다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샤오룬에 의해 저지당한다. 판타지임에도 저승이라는 배경이 광활하지도 아득하지도 않다.
캐릭터의 존재 이유
귀신도 되었겠다, 핑키는 자기를 죽인 남자를 찾아간다. 남자는 죄책감도 없이 핑키가 죽음으로써(어떻게 챙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챙긴 돈으로 호위호식하며 산다. 샤오룬은 복수를 해주겠다며 그 남자와 밖에 서 있던 오토바이를 묶고, 갑자기 남자는 오토바이와 사랑에 빠져 오토바이에 유사성행위를 한다. 이 영화, 12세 이상 관람가로 해도 될까.
핑키는 자기가 왜 죽어야 했는지도 모르고 죽었으면서, 그렇게 복수의 칼을 갈았으면서 고작 그 정도로 원한이 다 풀린다. 그리고 고작 그 정도로 샤오룬에게 반한다.
번개 맞아 이마에 상처가 생긴 샤오룬은 죽기 전의 삶을 기억할 수 없다. 파트너가 핑키와 샤오룬은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샤오룬이 원래 살았던 동네로 가게 된다. 왜 살았던 동네와 출신 고등학교를 알게 되었는지, 누가 알려줬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다 키우던 개가 샤오룬에게 달려가면서, 별안간 기억이 떠오른다. 세상에...
개를 찾으러 온 여자 '샤오미'를 보며 오열을 하는 샤오룬. 드디어 모든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쉽게 찾아질 기억이란 말인가. 허무하다.
그때부터 샤오룬은 샤오미 주변을 얼쩡거리는데, 저승의 임무를 맡은 귀신들이 너무 태만하다. 샤오룬에게 빠진 핑키는 샤오미와 다른 남자를 엮어주려고 하지만, 샤오미에게는 인연의 실이 묶이지 않는다. 왜겠나. 관객들은 다 알고 영화 속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도대체 핑키와 샤오미가 왜 존재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핑키는 한 남자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여성, 귀신이 된 후 샤오룬을 좋아하는 여성 이외에 아무런 서사가 없다.
샤오미 역시 '샤오룬이 좋아하는 여성' 외에는 특징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첫눈에 반한 여자, 샤오미가 모든 게 변한다는 걸 알아야 어른이 된다고 말할 때,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라고 말하게 하는 여자, 싫다고 싫다고 아무리 거절해도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고백하게 만드는 여자, 모든 기억이 사라졌을 때 갑자기 기억을 되돌려주는 여자, 귀신이 되어서도 지켜야 할 여자. 오직 샤오룬을 위해 존재하는 두 여자. 이들은 성격이라 할 것도, 배경이라 할 것도, 서사라 할 것도 없다.
두 여자주인공이 이런 마당에 남자주인공이라고 특별한 서사가 있겠나. 남자주인공 역시 '한 여자에게 사랑에 빠져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사랑하고, 죽고 나서도 한 사람만 사랑하는 동네 까불이'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따금 일본 로맨스 영화에 등장하는 당황스러운 캐릭터들을 모아둔 것만 같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에서의 당황스러움 같은.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주인공인 세 사람에 대한 묘사가 이 정도이다.
불필요한 연출
그러다 또 갑자기, 저승에서 원한을 풀지 못한 악귀가 이승에서 사람으로 환생한 과거 인연들을 죽인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박중헌쯤 된다. '파국이다'를 읊조려야 할 상황이 벌어지는데 저승에서는 손 놓고 구경만 한다.
이 악귀가 원한을 품은 것은 500년 전의 일 때문이다. 수많은 살생을 해 오던 도적떼 출신으로, 환생은 커녕 지옥에나 안 떨어지면 다행인 남자. 그런데 여기에서도 서사의 부재가 여실없이 드러난다. 이 도적떼는 왜 도적질을 하는가. 돈 때문인가? 아니다. 이들은 쫄쫄 굶는다. 의로움 때문인가? 전혀 아니다. 이들은 무고한 이들을 가차없이 죽인다. 나라에 대한 역모인가? 그것도 아니다. 설사 그렇다고 한들, 영화에서는 그 무엇도 말해주지 않는다. 악한 자들에게도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
원한을 품고 염라 밑에서 일하게 되지만, 자신을 배신한 자들이 줄줄이 환생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직접 찾아가 복수하기로 한다.
첫 번째 타자는 어린 아이다. 어린 아이에게 '너는 500년 전의 일을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억한다'며 양치하고 있는 아이를 공격하고, 이 아이는 또 수산물 파는 여자를 공격하고, 여자는 또 다른 남자를 공격하고, 남자는 샤오미를 공격한다. 가만히 있다가 샤오미가 공격당하자 그때서야 샤오룬과 기타 저승 인물들이 나서는데, 그 이유도 역시 알 수 없다.
문제는, 왜 보는 사람의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잔인함을 연출했는지이다. 목을 꺾고, 칼로 찌르고, 아기가 조개를 생으로 씹어 먹어서 피를 토해야 하는지 전혀 개연성이 없다. 악귀에게 씌인 이들은 죄다 좀비화된다. 좀비 영화, 좀비 드라마가 유행인 건 알겠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등장해야 했나?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도 있지만 복수심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나. 이 징그러운 복수극은 로맨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트랙으로 진행된다.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악'은 스릴감도 주지 않고, 공포심을 주는 것도 아닌, 징그러움뿐이다.
논외로, '인간의 추악한 본성' 어쩌고 하는 인터뷰들을 몇 편 읽어 보았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우리가 왜 영화로 봐야 하는지,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은 간접경험을 통한 외연의 확장에 있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은 당장 포털사이트를 켜서 아무 기사나 눌러 보면 경험 가능하다. 굳이 간접경험하지 않아도 직접경험이 가능한 영역이지만 우리는 법과 제도와 문명과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조심하며 살아간다. 욕망하지만 차마 입밖으로 꺼내면 욕먹을까 봐 속으로만 생각했던 추악함(약자를 타자화, 대상화하는 등)에 픽션이라는 핑계가 하나 생긴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인연'에 대해서만 말한다면
서양영화에서 'God bless you'를 말하는 상황에 이 영화는 '아미타불'을 말한다. 대체로 불교적 관점의 영화이다. 윤회와 환생, 극락과 지옥이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맨스와 복수극은 테마라고 보기도 어렵다. 감독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보여주었던 애틋하고 풋풋한 로맨스가 한 스푼 정도 들어가 있다.
왜 샤오룬이 샤오미를 그토록 쫓아다녔는지, 악귀가 왜 여러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는지, 초반에 뿌려놓은 떡밥들이 뒤에서 조금씩 회수가 되는데(물론 납득이 되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든 모든 생명에는 인연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메시지이다.
악귀는 매미였던 시절 자신을 살려주어서 고맙다는 샤오룬의 격한 감사 인사에 그만 마음이 스르르 풀려서 사라진다. 윤회고 극락이고 필요없다더니,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못 들어서 그랬던 건가 싶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하나 마음에 담아둘 것이 있다면 인연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 내가 함부로 죽인 개미도, 나쁘게 대한 사람도, 나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도 나 나의 인연이니 소중히 대하자. 그들은 어쩌면 전생에 내가 빚진 사람, 나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다.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인연이다. 너무 많이 미워하지도 말고, 너무 많이 사랑하지도 말고,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아끼지 말자. 언제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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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맛이 없었던 식당을 리뷰하지 않는다. 입맛이 달라서 그렇겠거니 생각하니까. 영화도 마찬가지로, 재미없었던 영화에 악평을 하지는 않는다. 십수년간 <매트릭스> 트릴로지의 열광적인 팬이었지만 <매트릭스4>에 대해서 함구한다.
하지만 시사회에 참석하여 이 영화에 대해 말할 의무가 생겼으니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도 안내할 필요가 있겠다.
관람 포인트1.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 대만영화 특유의 풋풋한 로맨스 감상 가능.
관람 포인트2.
인연, 사후세계 등의 요소들과 기괴한 장면들을 좋아한다면 재미있을 듯.
관람 포인트3.
떡밥이 하나하나 회수되는 걸 보는 즐거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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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한다는 이유로 다 용서해야만 하는가
어릴 적 봤던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의 집 앞에서 하루종일 기다리는 것을 낭만적으로 연출하는 경우가 종종 보고는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낭만적인 상황도 아니며 설렌다고 느껴서도 안된다. 사랑은 상호 의사소통이며 서로를 이해하는 행위인데 상대의 의사를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집착이다. 또한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았으며 거절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것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명백한 스토킹이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공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매체에서 이런 구애 행위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것을 보며 과거의 나는 왜 그것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매체의 힘은 상당히 강하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인 구애행위를 통해 끝끝내 상대방이 나의 사랑을 받아줬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이 과연 건강한 사랑, 건강한 의사소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만약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공포심을 느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영화 미저리에서는 폴에 대한 애니의 표현을 옳지 않은 방식, 왜곡된 사랑으로 표현했는데 나는 이처럼 미디어에서 스토킹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며 스토킹에 대해 알아보다가 현재 한국에서는 스토킹이 법적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스토킹 자체만으로는 범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연인과 같은 친밀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 살인과 같은 범죄가 스토킹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간 나는 이런 친밀한 사이, 혹은 일방적인 구애행위가 범죄로 이어지는 뉴스들을 접하면서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가해자의 이야기, 가해자의 목소리에 더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이런 범죄의 피해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쉽게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영화 미저리를 보면서 스토킹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행위인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성범죄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처럼 스토킹에 대한 교육, 건강한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루빨리 스토킹과 관련된 법을 제정하여 피해자를 보호하고 이것이 2차 범죄로 이어져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