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24 17:27:56
시네마테크KOFA 발굴 복원전 라인업
한국영상자료원 주최!

시네마테크KOFA가 2008년 5월 8일 개관한 이래로 한국영상자료원이 발굴, 수집한 영화와
국내외에서 복원한 예술 영화들을 선보이는 '발굴 복원전'이 올해도 개최됩니다!
데이비드 린치, 발 킬머처럼 근래 작고한 영화인들을 기리는 ‘인 메모리엄’ 섹션,
벨기에 왕립 아카이브에서 복원한 해리 퀴멜 감독의 <말페르튀이>가 상영되는 ‘해외 복원’ 섹션 등
다채롭게 준비된 복원전을 만나보세요.
평소에 보기 어려운 영화들을 무료로 볼 수 있다니,
더욱 놓칠 수 없겠죠!
*article, image @koreanfilmarchive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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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되어가는 마블의 유통기한
일단, 전작 <블랙 팬서>의 약력부터 읊어보자!
2019년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주제가상 - 음향효과상 - 음향편집상"에 이름을 올렸고, "미술상 - 의상상 - 음악상"은 수상에 성공했다. - 이는 '슈퍼히어로 장르'로는 첫 작품상 지명이자 'MCU'로는 첫 수상작이다!
흥행 또한 <아바타, 2009>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2015> 다음으로 세 번째 북미 박스오피스 7억 달러를 기록했다! - 이후 <어벤져스: 엔드 게임, 2019>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2021>, 그리고 <탑건: 매버릭, 2022>이 달성했다.
이외에도 두 팔을 가슴에 엑스(X)자로 하는 특유의 포즈가 "BLM 운동"의 상징으로 작용했으니 안 나올 수가 있을까?근데, <블랙 팬서: 와칸타 포에버>는 시작부터 어려움에 직면한다!
주인공을 맡은 "채드윅 보스만"의 사망과 극 중. "슈리(최고의 과학자이다...)"를 맡은 "레티티아 라이트"가 음모론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 거부, 이외에도 현저하게 떨어진 관객들의 반응까지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 공교롭게도 영화는 위기에 빠진 와칸다를 구해야 한다.1. 홍철 없는 홍철 팀
일단, <블랙 팬서: 와칸타 포에버>에 직면한 문제는 "채드윅 보스만의 부재를 어떻게 채워나갈지?"이다.
단독 작품으로는 전작 <블랙 팬서, 2018>뿐이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2016>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2018 - 엔드 게임, 2019>까지 총 4편에 출연했을 만큼 그만큼 이미지와 서사적으로도 각인되었기에 단순하게, "슈트"를 입힌다고 해서 관객들이 "블랙 팬서"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 흰 나시와 콧수염만 있다 해서 "프레디 머큐리"가 아니다!
그렇기에 161분이라는 기나긴 분량을 할애했지만, 그마저도 "슈퍼히어로"라는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결국, "슈퍼히어로"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보는 장르로 가볍고 무엇보다 이해하기가 쉬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번 <와칸다 포에버>의 이야기를 본다면 어린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엔 어렵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국왕 "티찰라"의 죽음에 따른 "블랙 팬서"의 부재는 세계열강들과의 "비브라늄(자원)" 경쟁, 그리고 새로운 국가 "텔로칸"과 국왕 '네이머'의 등장은 "제국주의"라는 케케묵은 개념을 꺼내든다. - 엄마, 아빠 뭐야???2. 설명은 되지만, 공감은 안된다.
단적으로 "석유"만으로 한 국가의 행적이 떠오를 테지만, 영화는 좀 더 오래된 이야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남미 정벌 역사를 가져온다.
이 당시 유럽에는 "가격혁명"이 일어났을 만큼 금과 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원주민들은 "천연두"로 죽거나 살았아도 "노예"가 되었을 만큼 아픈 기록이 있다.
이는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는 "네이머"의 동기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설명되지만, 문제는 관객들의 감정적 공감에 끝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이런 부분들이 새로운 블랙 팬서로 거듭나는 "슈리"에게도 지적된다.
결국, "네이머"와의 대결 구도를 형성하는 데에 하나의 사건을 제시하고는 예상치 못한 인물을 등장시킨다.
전작을 보았다면, 해당 캐릭터의 사상이 이번 "슈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는 것에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행한 행동에 앞서 말한 문장으로 '설명은 되지만, 문제는 관객들의 감정적 공감을 이끄는 데에 시간이 부족하다'라고 반복하게 만든다.3. 이젠, 확답을 내려야 할 때!
이런 이유에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집중하지 못한 것이 크다!
속편의 입장이긴 하나 <와칸다 포에버>는 결국, 새로운 "블랙 팬서"의 탄생을 다룬 작품으로 그만한 동기에 힘을 실어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은 레퍼토리로 진행되는 탄생기는 관객들의 관심을 떨어트리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리리 윌리암스(aka. 아이언 하트)"의 등장시켰지만, 이야기의 큰 영향이 없을 만큼 "사족"으로 느껴져 "굳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무엇보다 "인피니티 사가"로 불리었던 "타노스"와 같은 공공의 적이 아직, 이번 페이즈에 코빼기도 나타나지 않았다.
실제로, <어벤져스, 2012>의 마지막 쿠키 영상에 나타난 "타노스"는 <아이언맨, 2008>을 시작으로 <퍼스트 어벤저, 2011>까지 총 5편의 영화에 그쳤던 것과 달리, 이번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속한 "페이즈 4"는 각각 7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소비될 만큼 변죽만 올리고 있다. - 이젠, 속 시원하게 말해야 할 때이다.· tmi. 1 - 쿠키 영상 1개가 곧장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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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은 호러지만 안은 따뜻한 겉바속촉형 호러
만약 과거로 돌아가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를 괴롭히던 부랑자들을 한두 대 두들겨 팰 수 있을까. 물론 폭력은 나쁘지만 아쉬움이 있다. 왜 날 괴롭히던 애들에게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었나?라는 아쉬움이다. 운동을 열심히 했으면 그렇게 무시당하지 않았을 텐데. 갑자기 성인이 되고 나서 겪었던 몇 흑역사가 여기에서 온 것 같아 또 과거의 나에게 화가 나기 시작한다. 시간을 돌린다면 내가 내 힘으로 나 자신을 지킬 것이다. 맘에 안 드는 놈에게 찍소리 못하며 당할 바에 운동 열심히 하는 게 나 자신을 지키는 좋은 방법인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년시절은 서로 이어져있다. 당당하지 못하면 맘에 드는 이성에게 말 한마디 걸기 어려울 수도 있다. 또 친해지고 싶은 상대와 오히려 안 좋은 관계로 이어지기 쉬웠다.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 결국 나를 만드는 일이란 걸 윗 문단을 쓰며, 또 이 문장을 만들여 다시 한번 느낀다. 극복은 사람 살면서 정말 어려운 난관 중 하나다. 어쩌면 10대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전가한 과제를 아직까지도 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뒤로 돌아갈 수 있다면 솔직히 나한테 까부는 놈 한 방 쳤을 것 같다. 살면서 누구의 얼굴에 주먹을 꽂은 적이 단 한 번 있었는데 그때 생각이 아직도 난다. 때리지만 않는다면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때의 객기가 살면서 중요하다는 걸 미리 알았을 텐데 말이다. 이 소년 피니는 글쓴이보다 더 한 두려움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다. 가면 쓴 남자가 관객과 소년을 납치했다. 탈출하는 방법은 이번 주 수요일에 극장에 가는 것이다. <블랙폰>이다.
연쇄 납치범
1978년 미국. 한 범죄자가 덴버라는 마을에 활개 치고 있었다. 죄목은 유아 납치. ‘더 그래버’라는 범죄자는 복면을 쓰고 덴버 마을 곳곳에서 아이들을 납치하고 있었다. 범죄 수법 공통점은 납치된 곳 근처에서 검은 풍선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공포에 떠는 마을. 그러나 남매 피니와 그웬에게 더 무서웠던 건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설명이 어려운 한 요인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버지 혼자만 남게 된 후 아이들은 점점 받는 상처가 늘어났다. 걸핏하면 맞는 아이들. 오빠 피니에겐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악몽 같은 10대를 보내고 있던 피니. 이런 피니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줬던 건 급우 로빈과 여동생 그웬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피니. 화장실에서 나쁜 놈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피니에게 폭언을 하고 있었다. 맘에 안 드는 놈 하나 패고 있던 로빈은 화장실로 따라 들어와 학교폭력 가해자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나쁜 놈들을 모두 쫓아낸 로빈과 피니. 로빈은 피니에게 “이제 너 스스로가 너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해”라고 말한다. 순수한 근력은 셌지만 자기를 지키는 방법을 몰랐던 피니. 그런데 더 악몽 같은 일이 일어났다. 자기를 지켜주던 친구 로빈이 납치됐다. 곧이어 악몽보다 더한 현실이 일어났다. 피니마저 그래버에게 납치됐다. 지하에 갇힌 피니. 탈출에 유용할 정보는 독방에 덩그러니 있는 고장 난 검은색 전화기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 검은색 전화에서 울리는 의문의 전화벨. 통화 상대는 그래버에게 피살당한 친구들이었다. 피니는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은 아이들과의 통화를 시작한다.
블룸하우스 발 호러영화?
블룸하우스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다들 한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맞다. 호러 영화에서 그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회사가 제작한 영화는 적은 비용으로도 높은 효율을 뽑는 작품들이 많았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인시디어스>, <겟 아웃>, <해피 데스 데이> , <23 아이덴티티>, <위플래쉬>까지 이 제작사는 감독의 역량이 중요한 호러/스릴러 영화에서 좋은 타율을 선보였다. 그중에서 내 기억 속에 세 번째로 기억에 남았던 게 뭐냐? <살인 소설>이었다(첫 번째는 <위플래쉬> 두 번째는 <겟 아웃>). 스콧 데릭슨이라는 이름이 사실 생소하긴 하다. 나중에 마블에 입덕 하고 나서 <닥터 스트레인지>를 맡은 감독이었다고 하나 개인적으로는 그 작품마저 그렇게 인상 깊진 않았기 때문에 그냥 흘려 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다시 <살인 소설>로 들어간다. 이 <살인 소설>은 글쓴이 개인적으로 저평가가 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 기준으로 호러영화의 대표 격하면 <컨저링>이나 <쏘우>가 나오곤 하는데 이 두 작품보다 <살인 소설>이 밀린다 곤 생각 않는다. <살인 소설>은 이미지와 사운드를 잘 활용한 영화다. 영화 중간중간마다 기괴한 이미지를 삽입하는데 이 장면이 끌고 가는 공포가 후반부까지 쭉 이어진다. 또 어딘가 익숙하지만 살짝 변용한 톤이 중간중간 기억에 굉장히 강하게 남는다. 또 사운드 연출이 잘돼서 점프 스퀘어가 비교적 덜 식상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는 이 스콧 데릭센의 장기가 잘 들어가 있다. <살인 소설>을 봤다면 느껴지는 장면 장면들이 곳곳에 보인다. 약간 예전 비디오 돌려보는 듯한 시퀀스가 주요 장면마다 배치가 됐다. 또 사운드 연출이 인상 깊을 수밖에 없다. 이 영화의 제목은 <블랙폰>이다. 당연히 전화기가 중요한 소재다. 띠리리링 하는 전화 효과음 설정이나 역시 비교적 덜 식상하게 만드는 사운드 연출까지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스콧 데릭슨이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또 영화의 연출 측면에서도 죽은 친구들과 피니가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장면마다 죽은 친구들을 묘사하면서 피니에게 어떤 힘을 주고 있는지도 어렵지 않게 잘 묘사했다. <헤어질 결심>에서 볼 수 있었던 방법이 조금 바뀌었다. 그리고 인물의 시점을 드러내는 방식을 효과적으로 잘 썼다. 이 턴에 이런 시점을 보여주면 영화가 박진감이 있고. 또 후술 할 에단 호크의 포스를 묘사하는데 효과적이고. 이런 디테일을 잘 살렸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강점은 감독의 이런 연출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확실한 틴에이저
아마도 확실하게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지점이다. 이 영화는 중반부에 갑자기 장르를 비튼다. 철저하게 호러 톤을 유지하던 영화는 10대 소년의 내면이 주요 소재가 된다. 영화에서 주요하게 작동하는 공포는 두 가지다. 학교와 집에서 겪는 공포다. 이 공포는 별개인 것 같지만 사실 공통점이 있다. '대안이 없어도 된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즉슨 피니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아도 주인공은 살 만하다. 아버지가 허구한 날 여동생 허리띠 때려도 피니는 외롭지 않다. 누구보다 든든한 여동생이 있으니까. 학교에서 미친놈들이 괴롭혀도 별 일 아니다. 로빈이 구해주면 되니까. 그러니까 피니는 괴롭긴 해도 자기 상황을 주도적으로 바꿀 필요도 이유도 못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데 맞닥뜨리는 공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그냥 이 상황이 익숙한 것이다.
극에서 제시되는 납치라는 설정은 이 익숙함을 광폭하게 비틀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이 두 공포가 병렬적으로 제시되며 피니를 괴롭힌다. 일단 여동생과 로빈이 없는 환경은 첫 번째 공통점을 가진다. 또 그래버가 피해자들에게 가하는 폭력이 영화의 어떤 장면과 오버랩되는 것은 절대 그냥 만든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피니가 겪고 있는 공포를 좀 더 색다르게 표현했다. 그래야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과 닿아있다. 또 이렇게 설정을 의도적으로 대치시켜야 인물이 두 공포 중 하나만 극복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엔딩에 인물들이 고르는 선택지에 탄력이 생기는 셈이다.
물론 이 후반부의 장르 변화가 아쉽다고 생각할 분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호러 분위기를 에단 호크의 카리스마와 점프 스퀘어가 어느 정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이게 뭐가 공포영화나?'라고 생각할 분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안 그래도 김새는데 엔딩은 거의 기름을 붓는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호러 장르이기 이전에 피니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여 주신다면 감상이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피니가 정말 겪어야 했던 공포는 자기 내면에 있다. 이렇게 찍어 누르는 세상 속에서 바꿀 생각을 않는 스스로의 자격지심이 이 영화에 작동하는 굉장히 큰 공포일 지도 모른다. 이 공포야말로 소년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극복해야 했던 처음 관문이다.
앉아있기만 해도 무서워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에단 호크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아저씨 연기 잘하는 거야 당연한 말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래버에 빙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그래버가 납치 수법을 관객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신이 있다. 이때 뭔가 엉거주춤하는 자세와 낮게 깐 목소리톤으로 관객들을 장악한다. 이 연기에는 살짝 페널티가 있다. 바로 얼굴이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눈빛과 표정연기로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시작한다. 가면을 잘 고른 감독의 공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에단 호크의 개인기가 빛난 부분이라 볼 수 있다.
이후 시퀀스는 그래버가 피니를 납치한 후가 중심이 된다. 이 그래버에게는 과제가 있다. 바로 극에서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그래버는 최소한의 동선으로 피니에게, 또 관객에게 공포감을 준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납치되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바로 먹는 문제가 걸릴 것이다. 이 음식 주는 장면도 에단 호크는 두렵게 소화한다. 굉장히 짧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살짝만 비틀어서 호러 분위기를 조성했던 섬세함이 돋보인다. 또 영화를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익숙한 방식으로 연기하는 것이 잘 느껴진다. 바로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다. 카메라 워킹부터 목소리 톤까지 살짝살짝 바꿔가며 극을 이끄는 카리스마가 압도적이다. 이 영화가 10대 소년의 극복기를 다룬 것만큼이나 '호러 무드'를 품고 있는 이유는 이 배우의 충격적인 연기가 뒷받침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인물의 연기를 구경하는 것은 영화의 주요한 재미가 될 것이다. 어찌 보면 <더 배트맨>의 리들러가, 또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의 그린 고블린이 연상이 되는 엄청난 연기였다. 앉아있고. 서있고. 뭘 들고 있고. 내려놓고 있고. 뛰고. 몸싸움을 하고 단어 한 글자만 나열해도 장르가 되는 퍼포먼스 하나 만으로도 비싼 티켓값의 2/3은 구성한다고 보는 쪽이다.
굳이 옛날이야기를
영화를 보고 나서 느껴지는 뜨거운 무언가는 좋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1970년대 이야기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의문은 멀지 않은 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은 밀폐된 공간 탈출하 기다. 바로 호러영화의 근본으로 이어진다. 호러영화의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아미타빌의 저주>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피비 랜 나는 복수극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귀신 씐 집이라는 소재 <엑소시스트>까지 미국 호러영화의 전성기는 197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쭉 이어졌다. <양들의 침묵> 한니발 렉터가 생각나는 빌런이나 특정 장르에 무언가 쓰였다는 점까지 아마 감독이 당시 호러영화에 대한 리스펙트를 표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점도 있어
그런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단점도 있다. 바로 여동생 캐릭터다. 여동생 캐릭터에 어떤 코드로 읽힐 수 있는 몇 가지 설정이 있다. 이 코드가 무엇인지 쓰면 스포일러가 된다. 그런데 극을 보고 나서 딱 알 수 있는 건 이 설정은 사실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곁다리로 스윽 지나가는 느낌이다. 뭐 검은색-흰색의 색채 대비나 그래버가 쓴 가면이 영화의 특정 코드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긴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굳이 여동생 서사에 그런 소재들을 넣어 집중을 깰 필요가 있었는가? 는 의문점이 든다.
또 피니의 설정이다. 피니 이야기 물론 좋았다. 관객들도 뿌듯할만한 충분한 이야기 구성이었다. 그런데 이 피니와 블랙폰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살짝 인과관계를 제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극에서 중요한 것이 다른 부분이기 때문에 생략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헐겁다면 충분히 헐겁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 여동생에게 부여한 설정 하나가 피니에게도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설명을 좀 더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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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편이 나올만한 재미였던가?
2020년, 아직 "코로나19"가 극장에 오지않았던 마지막 주간 국내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한 영화 <정직한 후보>는 총 153만명의 관객들을 불러모았다. - 이는 본 작품의 손익 분기점(150만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당 작품으로 '41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라미란 배우'는 소감 도중 <정직한 후보2>의 제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참고로, <정직한 후보>는 2014년과 18년에 개봉한 동명의 브라질 영화의 판권을 구입해 제작된 영화이다.
문제는 해당 브라질 영화가 1997년 "짐 캐리"주연의 <라이어 라이어>의 표절을 시인했다는 것이다.전작에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똑 떨어진 전직 3선 국회의원 "상숙"은 그 길로 고향에 들어온다.
늘 그렇듯이 정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고 싶지만 '거짓말을 못하는 솔직함'으로 이미,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쉽지않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뜻하지 않는 사고에 뛰어들어 공석이 된 "강원도지사"를 보궐선거로 당선되어 다시 부활을 꿈꾼다.
그러나, 재임을 앞둔 시점에 다시 한 번 '거짓말을 못하는 솔직함'이 재발되는데...1. 늘리고, 넓히는 속편의 규칙
최근 국내 극장가에 "후속편"이 많이 보이는데, 그 중 <정직한 후보>는 흥행도 흥행이지만 상징성이 있는 작품이다.
앞서 말했듯이 "코로나19"의 확산을 앞둔 마지막 국내 극장가에 개봉한 박스오피스 1위와 손익 분기점을 동시에 기록한 정통성이 또 어디있나?
아무튼, 적통을 이어받은 <정직한 후보2>는 1. 규모는 키우고, 2. 가짓수는 많아지는 여타 속편들이 해오던 규칙을 따라간다.전작을 넘어 시리즈의 정체성인 '거짓말을 못하는 솔직함'은 주인공 "상숙"외에도 그녀의 비서관 "희철"에게도 나타난다.
극 중. "북한"과 인접한 "강원도지사"라는 특수성에 맞는 몇몇 에피소드들도 "상숙"과 "희철"의 랠리로 점입가경으로 만드는데, 이런 얼어붙는 상황들이 관객들의 웃음을 더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이외에도 새로이 등장하는 캐릭터 시누이 "만순(aka. 포니)"을 맡은 "박진주"분의 웃음 타율도 꽤 높다!2. 야는 착혀, 착하기만 혀...
하지만, 문제는 해당 장면들의 웃음과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 아니, 못한다.
제목만 살펴보더라도, 본 작품이 '어떻게, 웃음을 만들어내는지?'는 눈에 빤히 보인다.
결국, 관건은 "후보"라는 타이틀롤에 맞는 특수성으로 여타 작품과의 차별화를 두어야만한다. -착하기만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짐 캐리"의 <라이어 라이어, 1997>가 단순히, "짐 캐리"의 코미디 영화라서 생각하나?<라이어 라이어, 1997>는 하루 아침에 거짓말을 못하게 되는 "변호사"의 해프닝을 다룬 작품으로 "승소"는 커녕 "패소"의 위기에 직면하나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변호사법 제26조(비밀유지의무)에는 '변호사 또는 변호사이었던 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항목이 있다.
결국, 하지 말아야하는 것이 명확한 기준으로 제시되어 어떻게든 하지 않으려 '난리블루스'를 피우는 상황에 처한 "짐 캐리"가 재밌다는 것이다!3. 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 - 무소불위 (無所不爲)
그런 점에서 해당 작품에 등장하는 "국회의원"과 "도지사"는 자유롭다.
"벌금형"으로 의원직을 상실되지 않는 이상.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으로 이를 해야한다는 여론이 있어도 국회에서 합의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무엇보다 해당 영화에 나오는 "정력"과 같은 말장난은 상당히, 순하다. - 2008년 당시.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말을 했다.
그렇기에 전작에선 "선거"라는 과정에서 "지지율"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다면, 이번 속편에서는 그런 모습조차 없다.결국, 흔하게 보였던 "정재계 커넥션"을 꺼내들어 반전으로 작용해야할 악당 캐릭터들을 "클리셰"에 갇히게 만든다.
주인공 또한 전작과 마찬가지로 또 한 번의 반성을 겪게 만드니 발전없는 모습만을 보여줘 아쉬운 한숨을 짓게 만든다.
물론, 바로 나오는 쿠키 영상과 함께 3편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나 높아진 영화 값만큼이나 한껏 올라간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엔 어렵지 않을까?· tmi. 1 - 결국, 희대의 명언(?)을 남긴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는 '자진 사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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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왜 아파트를 지키는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울을 뒤집어엎은 대지진이 발생한다.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한강까지 메마른 가운데 황궁 아파트 103동만은 굳건하다. '민성'(박서준)과 '명화'(박보영) 부부를 비롯한 수많은 아파트 주민들이 아파트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이, 소문을 들은 외부 생존자들도 하나 둘 황궁 아파트로 몰려든다.
하지만 늘어나는 외부인들을 보면서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아파트 주민들. 폭력 사태에 화재 사고까지 발생하자 그들은 결단을 내린다. 외부인들을 모두 내쫓기로. 새 주민 대표로 뽑힌 '영탁'(이병헌)을 외부인들의 아파트 출입을 금지하고, 새 규칙을 만들어 내부 결합을 다진다. 그러나 명화는 영탁에게 한 번 품은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아파트를 떠났던 주민 '혜원'(박지후)이 등장하면서 황궁 아파트에는 균열이 생겨난다.
뻔한 듯 뻔하지 않은 이유
원작을 보지 않은 입장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소재나 장르는 새롭지 않다. 디스토피아 영화라는 점은 <반도>와 닮았다. 부동산을 중점으로 다룬 재난 영화라는 측면에서는 <싱크홀>을 떠올릴 수 있다.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군상극은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부산행>을 연상시킨다.
주제 의식이나 메시지도 익숙하다.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다룬 작품은 많다. 언뜻 <기생충>도 보인다. 가볍게 웃기는 전반부, 블랙 코미디 성격을 드러내는 중반부, 긴장감을 고조하며 메시지를 명확히 전하는 후반부라는 구성과 전개가 유사하다.
그렇다고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아류작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레퍼런스가 될만한 영화가 뇌리를 스치지만, 그뿐이다. 영화에 몰입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철저히 소재에 집중한 덕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에 담긴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우직하게 펼쳐 놓으면서 관객을 세계관 안에 가둔다.
오프닝이라는 블랙홀
오프닝은 일종의 블랙홀이다. 이 몽타주는 대한민국 아파트의 역사를 훑는다. 그 순간 대부분의 관객은 영화의 관찰자가 아니라 영화의 일부가 된다.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남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은 아파트에 거주한다. 또 아파트 하나를 갖는 게 꿈인 세상을 살아왔고, 살아갈 예정이다. 즉, 한국 아파트의 역사는 관객 개개인의 개인사와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빠져나올 구멍도 없다. 오프닝 직후 등장하는 젊은 부부가 출구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민성과 명화는 큰 빚을 지고 간신히 아파트 하나를 장만하는 데 성공했다. 집이 생기고 나서야 자녀 계획도 세우면서 조금씩 가정을 꾸려 나가는 중이다. 이 부부는 누군가의 현재이자, 과거였고, 미래일 삶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러니 관객은 자연히 아파트에 대한 각각의 상황과 사정을 영화에 투영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오프닝 시퀀스와 그 이후 5분이 지나면 관객은 황궁 아파트 주민과 외부인 중 한 사람이 된다. 지진을 버티고 간신히 살아남은 아파트 한 동을 보는 순간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영화에 빨려 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오프닝은 리트머스 종이이기도 하다. 오프닝이 끝날 때 이 세계관에 몰입하지 못하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흠이 많은 재난물에 불과하다. 이후 이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는 과장된 풍자극에 가깝지, 재난물적 요소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누가 외부인을 만드는가
관객을 세계관에 가둔 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곧장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처음에는 피난 온 외부인을 막지 않던 황궁 아파트 주민들. 그러나 외부인과 다툼 끝에 화재가 발생하고 부상자가 나오자 생각을 바꾼다. 그들은 불을 끄는 데 몸을 아끼지 않은 영탁을 임시 동대표로 뽑고, 외부인들을 아파트 밖으로 몰아낸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며.
주민들의 행보는 시간이 흐를수록 과격해진다. 아파트 주변에 방벽을 세워서 아파트와 바깥세상을 분리한다. 몰래 외부인을 숨기고 보살피는 주민들도 인민재판에 넘긴다. 더 폭압적으로 변해가지만 내부의 문제제기나 비판은 허용하지 않는다. 밖에 나가서 자원을 탐색하는 작업이 약탈로 변질되는데도 이를 합리화한다. 왜곡된 사고와 집단적 폭력이 강해진다. 그 결과 유토피아는 점점 나치 독일 마냥 변해간다.
이 상황은 단지 디스토피아 속 판타지가 아니다. 현실이다. 최근 들어 아파트 단지은 문은 점점 높아진다. 택배 기사나 배달원이 들어가지 못하는 건 예삿일이다. 외부인 자체의 왕래를 막는 경우도 잦아졌다. 같은 아파트 단지라 해도 급을 나눈다. 임대 아파트에 사느냐 분양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차별받는 일도 심심찮게 보도된다.
과장된 화법은 이 불편한 현실을 관객에게 되돌려준다. 아파트 정비 사업을 보여 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외부인을 모두 내쫓은 뒤 주민들은 모두 순수하게 웃으며 그들의 유토피아를 즐긴다. 하지만 이 모습은 마냥 기쁘지 않다. 배경 음악 때문이다. 오페라 아리아 같은 클래식 음악은 분명 아름답지만, 형식이나 음정에서 묘한 불협화음을 내며 화면에 불쾌감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황궁 아파트 주민들이 추구하는 유토피아가 정녕 아름다운 사회상인지 묻는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선도 희미해진다. 더 이상 영화 안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취할지 묻지 않는다. 현실에서 어떻게 살고 행동할 것인지 묻는다. '당신이 아파트 주민이라면 임대 아파트 주민을, 외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고. 이 영화는 사실상 현실의 거울이다.
아파트를 지키는 이유
한국에서 유독 아파트가 중시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아파트가 사회적 계층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산이 비금융자산에 몰려 있고, 그중에는 부동산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즉, 아파트 소유 여부는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아파트를 갖으려고 노력하고, 입주민이 되면 자기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배타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작중 영탁의 존재감이 유독 두드러지는 이유다. 그는 이 모순된 열망이 의인화된 결과물이다. 급매로 황궁 아파트 103동 902호에 입주할 예정이었으나 사기를 당해 가족까지 잃은 그. 민성이 한국인이 대부분 거쳐야 하는 삶의 한 단계를 보여준다면, 영탁은 민성처럼 살고 싶은 열망을 가장 격렬하게 표출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 캐릭터는 누구보다도 강력한 흡입력을 자랑하고, 이병헌의 연기력도 돋보일 수 있다.
이 열망은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아파트에서 사는 삶에 대한 선망을 갖고 있다. 재난 속에서 선망은 선민의식이 된다. 꿈꾸던 삶을 손에 쥐었다가 놓칠 뻔했으니, 다시 찾아온 기회를 기어코 잡으려 한다. 실제로 그는 외부인을 내쫓고 생필품을 약탈할 때 그 누구보다도 주도적이다. 다만 한계도 명확하다. 자기가 꿈꾼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그 이상향에 내포된 모순을 간과했다.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가 결국 악역인 이유다.
그래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영탁도, 그에게 동조한 만성도 아닌 명화에게 마무리를 맡긴다. 그녀는 처음부터 외부인을 포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실천에 옮겼다. 유일하게 영탁을 의심한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녀의 손을 들어준다. 수직적인 황궁 아파트와 달리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세계를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이 대표적이다. 옆으로 무너진 대형 아파트가 누구에게나 삶의 터전이 되어주는 모습은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듯 보인다.
과장되거나 부자연스럽거나
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블랙 코미디는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크다. 각본의 필요에 따라 편의적으로 새로운 상황극으로 전개하기 때문이다. 지진의 원인이나 규모, 바깥 상황에 대해 의도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또 영화가 하고 싶은 얘기를 갑자기 끝내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도 있다.
과장된 연출로 미묘한 경계를 잘 감추기는 했다. 특히 음악과 화면의 불협화음을 활용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공익 광고를 패러디하거나 오페라를 보는 듯한 장면은 밝지만 으스스한 분위기를 살려내며 블랙 코미디의 몰입도를 높인다. 하지만 초반부에 몰입하지 못할 경우 감독과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바쁘다고 느껴질 수 있다. 이 경우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전체적으로 엉성하고, 과하고, 얕다.
캐릭터 활용도 아쉽다. 주제와 메시지에 직접적으로 맞닿은 영탁과 민성의 감정선이 강렬학 묘사된 반면, 몇몇 캐릭터는 도구적으로 느껴진다. 명화만 하더라도 군상극에 꼭 하나 정도 있어야 하는 이상적이고 원론적인 캐릭터의 전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작가의 바람과 희망을 품은 캐릭터라는 사실이 일찍이 드러나다 보니 중요도에 비해 서사가 밋밋하다. 문혜원 활용범도 문제다. 그녀는 반전을 주고 곧장 퇴장한다. 클라이맥스를 유도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소모되는 캐릭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볼거리가 부족하다. 작중 스펙터클이라면 지진 장면을 꼽을 수 있는데, 그에 대한 묘사가 많지 않다. 민성이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장면이 전부다. 액션씬도 적다. 후반부에 백화점에서 생필품을 챙겨 돌아오던 중 아파트 주민과 외부인이 벌이는 소규모 교전이 정점일 정도다. 여름 텐트폴 영화, 블록버스터 영화로 홍보한 점을 고려하면 이 단점은 꽤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개봉 첫 주 주말에 백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한국 영화 빅 4 중 두 번째 생존자가 됐다. 극장 수입만으로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2차 수익까지 고려하면 손익분기점(410만 명)은 달성할 수 있을 듯 보인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선전은 <밀수>의 흥행과는 다른 이유로 반갑다. 앤데믹 시장에서 영화 흥행은 확실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지식 재산권(IP)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관객은 '믿고 보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는 작품, 특히 시리즈물에 몰리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흥미로운 도전장을 던졌다. 이 영화는 2023년 여름을 겨냥한 단순한 텐트폴 영화가 아니다. 웹툰 <유쾌한 왕따>를 원작으로 한 '콘크리트 유니버스'의 시발점이다. 속편 제작도 많지 않았던 한국 영화계에서 꽤나 파격적인 시도다. 그래서인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흥행은 향후 프랜차이즈의 확장과 발전, 그로 인한 파급 효과를 더 기대케 한다.
Acceptable 무난함
'아파트' 세 글자의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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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로 모션만큼은 포기 못해!
파트2에서도 크게 나아진 점을 느끼진 못했다. 대신 이거 하나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슬로 모션 기법을 지독하게 사랑해 포기하지 못한다는 사실 말이다.
파트1이 공개된 지 4개월 만에 파트2를 내놓은 넷플릭스 영화 '레벨 문 파트2: 스카기버'는 코라(소피아 부텔라) 일행이 마더월드를 상대로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파트1에서 대패를 당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노블 제독(에드 스크레인)은 전함을 이끌고 벨트 공격에 나서며, 코라 일행은 벨트 주민들과 보금자리를 지키고자 방어 태세에 돌입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파트1의 단점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마더월드의 최종병기급으로 훌륭한 전투력을 지녔던 코라가 하루아침에 쫓기는 신세가 되는 서사나 네메시스(배두나)의 과거, 반란군 일행이 벨트 주민들과 유대를 쌓는 과정 등에 좀처럼 몰입할 틈을 주지 않고 빨리빨리 전달하기 바빠 보였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벨트 전쟁 또한 꽤나 색다르진 않았다. 지하, 실내, 공중, 함선 등 다양한 배경을 활용하면서 전투를 벌이는 노력은 느껴지긴 하나, 시도 때도 없는 슬로 모션이 속도감을 떨어뜨린다. 액션이 주는 쾌감은 1도 없으니 전투 신이 나오기까지 1시간가량 기다린 시청자들에겐 다소 힘 빠지게 만든다.
극 중 빌런들의 활용법 또한 한숨이 나올 따름이다. 절치부심하여 코라를 쫓아온 노블 제독은 전편에서 생존한 이유가 무엇일까 의문이 들 만큼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며, 최종 보스 격인 발리사리우스 섭정(프라 피)은 코라의 회상 신에만 등장했을 뿐이다.
네메시스 역으로 반란군의 한 축을 담당한 배두나를 향한 기대도 다소 허무하게 다가왔다. 특유의 분위기와 눈빛으로 존재감을 피력하긴 했으나, 정작 그를 활용한 액션이나 다른 감정 신 등 분량은 많지 않았다는 것.
탄탄한 플롯과 스토리라인 없이 무리하게 세계관을 만든 잭 스나이더의 과욕은 '아미 오브 데드'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그대로 답습했다. 파트2까지 기대치를 못 미치는 졸작을 보인 가운데, 아직 '레벨 문'이 파트3이 남았다는 점이다. '레벨 문' 세계관에 더 이상 기대할 만하거나 반전이 될 만한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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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하고, 더럽고, 수치스럽고, 아름다운 사랑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은 시사회에서 감상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내게 일은 이미 일어났다, 그것은 금지된 무엇이었다. 특별하고, 더럽고, 수치스럽고, 아름다운.”
헤르타 뮐러의 소설 <숨그네>에서 본 이 구절에 오랫동안 매료되었다. 특별하고 아름답다는 말이 더럽고 수치스럽다는 말과 만나 빚어진 독특한 매력이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지만 너무 좋았다는 감정은 확실했다. 소설에서 저 말은 레오폴트라는 소년이 동네의 남자들과 몰래 한 ‘랑데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세계대전이 뒤덮은 끔찍한 세상에서 소년에게 중요한 건 동성애라는 비밀이었다. 끔찍할 정도로 죄책감이 드는데도 ‘금지된 무엇’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소년의 마음이 저 한 문장에 완벽하게 담겨있다.
좋아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저 문장을 좋아하기만 했지, ‘특별하고, 더럽고, 수치스럽고, 아름다운’ 게 어떤 건지 제대로 이해한 적은 없었다. 어쩌면 나는 오히려 그 이해 불가능성 때문에 저 문장을 여태 좋아했을 것이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내 마음에 간직되던 문장은 최근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퀴어>를 보고 갑자기 막연하게 예쁜 문장에서 처절한 문장으로 달라졌다. <퀴어>를 보고 생각했다. 원래 사랑은 특별하고, 더럽고, 수치스럽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내가 빠져든 건 네 찬란함일까, 젊음일까” 1950년대 멕시코시티. 미국에서 도망친 뒤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작가 리.
함께할 수 있는 상대라면 누구든 상관없었던 리는 태양이 마지막 열기를 태워내며 타오르는 오후에 아름다운 청년 유진을 만나 첫눈에 빠져든다.
노골적인 관심과 구애 끝에 유진과 특별한 밤을 보낸 리. 하지만 마음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유진의 태도에 리는 점점 더 그를 갈망하며 집착하게 되는데…
루카 구아다니노가 빚어내는 사랑
<퀴어>의 줄거리 정보와 예고편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역시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대표작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일 것이다. 똑같이 두 남자의 사랑을 다뤘고, 뜨거운 여름을 배경으로 복고 감성의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인 점, 그리고 두 작품 모두 소설을 원작으로 다뤘다는 점이 그러하다. 나 역시 영화를 보기 전까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기대하고 있었다. 초반부는 예고편에서 느낀 감상과 비슷했지만, 비슷한 건 겉으로 드러나는 연출 분위기일 뿐 오히려 정반대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여름 한 철에 피어오른 불꽃 같은 사랑 이야기다. 아빠의 연구 작업에 따라간 엘리오와 엘리오의 아빠와 연구를 함께하는 올리버. 두 사람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사랑을 찾았고, 열병을 채 끝내기도 전에 이별을 맞이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만이 기록된 사진과 같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 영화의 여운을 즐기는 것도 찬란함만 남은 미완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퀴어>는 시작부터 다르다, 미국에서 도망쳐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주인공 '리'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남자를 찾느라 바쁘다. ‘예상치 못한 운명적 사랑’은 이 영화에서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리는 사춘기 소년 엘리오처럼 젊고 아름답지도 않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앤드루 숀 그리어의 소설 <레스>가 떠올랐는데, 두 작품 모두 중년 게이의 자기연민을 다루기 때문이었다(직업도 모두 작가다). <레스>에서는 그 이유가 명확하게 나온다. 자신보다 먼저 태어난 선배 게이들은 모두 일찍이 에이즈에 걸려 죽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어질 삶의 레퍼런스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리에게도 똑같은 불안을 느꼈다. 1950년대에 리의 롤모델이 되어줄 선배 게이가 나타날 리가 없다(아예 없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위험천만한 삶을 지탱한 건 젊음이었는데, 이를 잃어버린 삶은 끔찍할 정도로 불안하고 지루했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남자만 보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진’은 특별한 이끌림을 준다. 동성애자가 아닐 수도 있는 유진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것부터 리가 그를 한순간의 쾌락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 유진과 비로소 아름다운 사랑을 펼치나? 아니다. 오히려 리는 유진과 가까워질수록 자신과 달리 젊고 찬란한 그를 보며 불안하고 조급해진다. 가닿았다고 느끼면 발을 빼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유진은 존재 자체로 리를 초라하게 만든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물론이고 아들의 친구를 사랑한 <아이 엠 러브>, 식인종의 사랑을 다룬 <본즈 앤 올>, 테니스를 소재로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한 두 친구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보여준 <챌린저스>까지 그동안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빚어낸 사랑은 형태는 다양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이라는 것만은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퀴어>는 아니다. <퀴어>에서 유진은 철저히 타자화되고, 리의 감정만이 선명하게 전달된다.
유진을 사랑하고 난 뒤로 ‘방탕한 소설가’에 지나지 않았던 리는 한없이 찌질해지기도 하고 비굴해지기도 하고 불안해지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그에게 집착한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어떤 사랑을 했느냐’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리가 어떻게 변하느냐’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앞선 영화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감각적으로 묘사했다면, <퀴어>는 더 깊이 들어가 사랑이라는 게 뭔지, 사랑에 빠진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추잡해질 수 있는지,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는지 질문한다.
리와 함께 이 질문을 파고들던 나는 영화를 다 보고 느꼈다. 사랑은 원래 추잡하구나. 사랑은, 특별하고, 더럽고, 아름답고, 수치스러운 것이구나.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이유
<퀴어>는 제목 그대로 정말 기묘한 작품이다. 사랑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괴로운 것도 처음이었다. 영화를 볼 때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인데, 리는 매번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과 행동만 골라서 했다. 그가 중년 게이라서가 아니다. 사랑에 대한 태도가 나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난 사랑 앞에서 저렇게 처절해지고 싶지 않다.
멜로 영화는 대부분 사랑의 아름다운 점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는 내가 사랑을 기피하는 포인트를 알게 되었다. 나는 리가 마음을 알 수 없는 유진에게 집착할 때, 유진의 곁에서 약물 부작용으로 추한 모습을 보일 때 제발 그만하라고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사람은 무언가를 좋아할 때보다 싫어할 때 진심이 드러난다. 리의 특정 행동이 괴로울 때마다 영화가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확신할 수 없는 상대에게 애정을 쏟아붓는 게, 타인에게 내 밑바닥을 보이는 게 너무 괴로워서 사랑이 두려웠다. 나는 사랑 때문에 그 무엇도 감수하고 싶지 않다. 영화를 보는 내내 리에게 묻고 싶었다. 정말로 사람은 외로운 것보다 괴로운 게 나은 걸까?
나의 지나간 사랑을 생각하면 방어적으로 군 기억밖에 없다. 나 자신이 너무 싫으니까 상대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며 함부로 그 마음을 과소평가하고, 나의 결핍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숨기기에 급급했다. 괴로운 것보다 외로운 게 나은 나는 상대가 누가 되었든 내 결핍을 모를 수 있는, 안다고 해도 내가 개의치 않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해야만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유진과 함께할수록 오히려 더 처절해지고 외로워지는 리에게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 마음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사랑에 자신을 내던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반성했다거나 앞으로 열렬하게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하진 않았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고, 난 지금 내 삶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 다만, <퀴어>를 통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사랑의 심연을 확인하고, 저런 형태의 사랑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필모그래피 중에서 <퀴어>는 지난 작품에서의 사랑을 모두 종합해서 결론을 낸 느낌이 든다(물론 그는 이후로도 왕성하게 활동할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아이 엠 러브>의 위태로운 금기의 사랑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여름 한 철의 낭만적인 사랑, <본즈 앤 올>의 끔찍하고 절절한 사랑과 <챌린저스>의 자극적인 사랑을 지나 당도한 <퀴어>의 사랑이 내게 말한다.
사랑은 원래 특별하고, 더럽고, 수치스럽고, 아름답다고. 그건 너라는 존재도 마찬가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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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 와. 늘 먹던 걸로?
::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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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아나 데 아르마스' 완벽신상정리#007노타임투다이 #007본드걸 #007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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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야차> 공식 예고편
전 세계 스파이들의 최대 접전지에서 전쟁 같은 첩보 작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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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차> 4월 8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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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강력한 돌직구 매력이 온다! 티빙 오리지널 [유미의 세포들 시즌2] 6월 10일 TVING 단독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