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24 17:27:56
시네마테크KOFA 발굴 복원전 라인업
한국영상자료원 주최!

시네마테크KOFA가 2008년 5월 8일 개관한 이래로 한국영상자료원이 발굴, 수집한 영화와
국내외에서 복원한 예술 영화들을 선보이는 '발굴 복원전'이 올해도 개최됩니다!
데이비드 린치, 발 킬머처럼 근래 작고한 영화인들을 기리는 ‘인 메모리엄’ 섹션,
벨기에 왕립 아카이브에서 복원한 해리 퀴멜 감독의 <말페르튀이>가 상영되는 ‘해외 복원’ 섹션 등
다채롭게 준비된 복원전을 만나보세요.
평소에 보기 어려운 영화들을 무료로 볼 수 있다니,
더욱 놓칠 수 없겠죠!
*article, image @koreanfilmarchive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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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아주 오래 전에 이 영화를 비디오테이프로 봤을 때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오늘 넷플릭스에서 다시 집중해서 봤다. 기회가 되면 이 영화를 꼭 다시 볼 생각이었고, 마침 넷플릭스에 올라왔다.
이 작품을 만든 감독이 스티븐 소더버그라는 건 처음부터 알았지만, 그가 데뷔작인 이 영화로 곧바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건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스티븐 소더버그의 데뷔작인 이 영화를 비롯해 그의 작품을 꽤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전체 작품 가운데 30% 정도에 불과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작품들은 진지하거나 엄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영화도 아니다. 그는 대중성과 예술성, 사회성을 알맞게 버무려 관객이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만든다. 그의 작품으로 대중적인 영화는 '오션스' 시리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실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재미도 있으면서 사회문제까지 드러내는 작품으로 '에린 브로코비치', '컨테이전', '사이드 이펙트', '시크릿 세탁소' 같은 영화들이 있는데, 나는 '사이드 이펙트'를 세 번 봤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드라마에서 반전의 묘미가 어떤가를 교과서처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는 극적인 결말이나 반전의 묘미는 없거나 약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인공들의 대화, 그 자체가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따라서 관객은 네 명의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할 뿐 아니라, 대화가 갖는 함의가 무엇인가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관객을 괴롭히는 영화다.
앤은 심리치료 상담을 받는다. 그는 항공기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나, 쓰레기가 너무 많이 넘쳐흘러서 세상이 쓰레기로 뒤덮이면 어떡하나 고민한다. 자기의 의지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문제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앤은 섹스가 싫다고 말한다. 남편 존을 만진 것도 오래 전이었고, 부부이긴 해도 섹스 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앤이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그 시간에 남편 존은 앤의 여동생 신시아와 섹스를 한다. 두 사람은 앤을 속이고 있다. 존은 앤의 남편이지만,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신시아는 앤의 여동생이지만 언니에게 거짓말 한다. 거짓말은 모든 관계를 파탄내는 씨앗이자 결과이다.
존은 아직 젊은 변호사인데, 실력을 인정 받아 로펌에서 파트너로 승격할 단계에 있다. 그는 자기의 실력을 보여주어야 하고, 의뢰인에게 성실하고 유능한 변호사로 인정받아야 한다. 존은 새로 지은 주택에서 살며, 일하던 아내 앤에게 전업주부로 살도록 하고, 넉넉한 임금을 받으며, 전망 좋은 사무실을 배정받아 안정된 변호사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미국의 중산층으로, 마약도, 담배도 하지 않으며,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 건전한 시민이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존은 성공한 변호사이면서, 훌륭한 미국 시민이다. 하지만 존의 내면은 어떤가. 그는 허위의식에 찌들어 있으며, 자기의 사회적 성공을 정도 이상으로 부풀려 자부심을 갖는 인물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권위적이고,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반면 앤은 중산층의 삶을 살면서도 늘 불안하고 의기소침하다. 남편은 변호사로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고, 좋은 주택에서 먹고 사는 걱정 없이 잘 살고 있지만, 그런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불안이 그를 두렵게 만든다. 앤은 남편과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도 남편과 섹스를 하지 않고, 남편의 존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앤의 내면은 공허하고 쓸쓸하다.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신시아는 앤의 동생이지만 성격이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는 좋은 의미에서는 '외향적'이지만, 나쁜 말로는 '난잡한' 인물이다. 그녀는 언니의 남편(형부)과의 관계에서 도덕적, 윤리적 갈등을 겪지 않는다. 상식적 인물이라면 형부와 불륜의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런 이성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신시아는 존의 친구인 그레이엄이 9년만에 고향에 돌아와 집을 얻었다는 걸 알자, 언니 앤에게 그레이엄의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고, 직접 그레이엄을 찾아간다. 그레이엄이 누군지도 모르는 신시아였지만, 오로지 앤이 그레이엄이 이상한 사람이니 만나지 말라는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 앤에 대한 반발이자 호기심으로 그레이엄을 찾아간 것이다.
신시아는 능동적이고 즉물적 인간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적극 행동으로 움직인다. 남성과의 관계에서 주체적 인물이기 때문에 남성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신시아가 '난잡'해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반여성적 시각일 뿐이다.
오히려 앤의 태도는 수동적이고 타인, 특히 남성의 시각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앤은 남편 존과의 섹스에서 한번도 오르가즘을 느낀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데, 이런 단서를 통해 앤이 성적으로 몹시 억눌려 있는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존의 친구 그레이엄의 등장으로 세 사람 - 앤, 존, 신시아 - 사이의 관계에 균열이 발생하고, 그레이엄까지 네 명이 되면서 이들 사이에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현상으로, 수동적이고 자폐적이었던 앤이 그레이엄을 두번째 만난 날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앤은 그레이엄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먼저 섹스 이야기를 꺼내고, 그레이엄은 자신이 정서적 성불구라고 말한다.
그레이엄은 자신이 촬영한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을 보면서 성적 만족을 느끼는, 보통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레이엄이 녹화한 테이프에는 여러 명의 여성이 자기가 경험했던 섹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스스로 원해서 자위를 하는 장면도 있다. 그레이엄은 그런 여성의 자기 고백을 보면서 오르가즘을 느낀다.
그레이엄이 9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9년 전, 어떤 사람, 아마도 그레이엄이 사랑했던 여성이었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망쳤고, 그로 인한 고통으로 고향을 떠났으며, 외지를 떠돌다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고 돌아왔다고 말한다. 그레이엄이 관계를 망쳤다는 여성은 엘리자베스였고, 엘리자베스는 이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는, 맥거핀이다.
신시아는 존에게 그레이엄을 만났으며, 인터뷰를 했고, 자위도 했노라고 말한다. 존은 바보같은 짓을 했다고 화를 내지만, 신시아는 자신이 선택한 것이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신시아와 존은 처음부터 육체 관계를 목적으로 만난 사이였고, 두 사람은 실제 섹스를 하는 것으로 목적을 달성하지만, 정작 대화가 필요할 때는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이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섹스도 분명 '대화'의 한 갈래임에 틀림없지만, 섹스만으로는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두 사람의 관계도 마음을 터놓는 대화 없이 섹스로 충족하는 욕구는 한계가 있다는 걸 차츰 깨닫게 된다.
처음부터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앤은 존과 여동생 신시아의 관계를 어렴풋하게 의심하고 있었고, 한번은 진지하게 존에게 사실을 말하라고 추궁하지만, 아무런 증거 없이 추궁만으로 '자백'을 받아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존은 유능한 변호사였고, 세상에서 가장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은 변호사라는 그레이엄의 말을 떠올린다.
앤은 더 이상 존을 의심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자신의 불안과 공허도 극복하려 노력한다. 그가 집안 청소를 하다 진주귀고리를 발견하는데, 그건 명백히 신시아의 물건이었다. 확실한 증거를 찾은 앤은 존에게 이혼하자고 말하고, 그레이엄을 찾아가 존과 신시아가 불륜 관계라고 말한다. 그레이엄은 신시아의 인터뷰에서 그 말을 들었다고 확인해준다.
앤은 그레이엄에게 인터뷰를 하겠다고 말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섹스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터뷰는 앤의 일방 고백이 아니고, 앤이 그레이엄을 인터뷰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레이엄 역시 마음의 상처를 크게 가진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 두 사람은 서로가 가진 내면의 아픔, 고통,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한다.
앤이 자신의 불안과 공허함, 외로움, 소외감, 박탈감 같은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는 과정은 그레이엄과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진정한 오르가즘은 육체를 통한 섹스가 아니라, 서로의 내면을 드러내면서 나누는 대화라는 걸 소더버그 감독은 핍진한 장면을 통해 관객이 이해하도록 만든다.
앤이 그레이엄과 인터뷰를 했다는 말을 들은 존은 그레이엄을 찾아가 그를 때려눕히고, 앤이 찍힌 비디오를 본다. 그건 앤이 그레이엄과 섹스(육체적)를 했는가를 확인하려는 것이지만, 앤의 인터뷰를 다 본 존은 앤이 느끼고 있던 감정을 알게 되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존과 앤은 그동안 부부로 살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중산층의 안락한 삶의 이면에 각자 개인이 가진 어둡고 고통스러운 내면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존이 신시아와 저지른 불륜은 용서나 이해가 필요 없는 나쁜놈이고, 신시아는 자신의 욕망을 외면하지 않은 주체적 여성이었으며, 그레이엄은 마치 '파리, 텍사스'에서 트레비스가 자신의 잘못을 탓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억압하고, 고통을 감수하는 삶을 살아왔다.
앤 역시 자신의 욕망보다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 되고, 존과 이혼하며 그레이엄과 가까워진다. 앤의 이혼은 존이 여동생 신시아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앤은 존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고,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했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반면 앤과 그레이엄은 자신의 내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거의 어리석음과 상처를 깨닫고, 서로 믿음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아갈 자신감을 갖게 된다. 앤과 신시아는 자기의 내면을 인터뷰 형식을 통해 솔직하게 드러낸 반면, 존은 끝까지 인터뷰를 부정한다. 즉, 자기 자신의 내면을 다른 사람에게 또는 공개적으로 말하고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특히,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이 가장 내밀해야 하는 '섹스'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자칫 자극적 소재를 담고 있을 거라는 선입견을 주지만, 정작 영화에서 섹스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장면도 짧다. 섹스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정도로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실제 영화에서도 신시아나 앤은 그레이엄에게 자기의 섹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그레이엄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물론 친구, 연인 사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정직함이고, 자기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며, 상대방을 신뢰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말한다. 솔직하라, 자기와 남을 속이지 말라. 그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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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고, 달려라! '야없날'을 위한 야구 영화 9선
어느새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을 맞아, '야없날'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야구를 보지 못해 쓸쓸할 이들을 위해 야구 영화 9선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벌써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기분이지만,
영화를 보며 새로운 시즌을 함께 기다려보아요!
다시 개막하는 그날까지 잠시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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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과 돌봄 속 물의 이미지
<말없는 소녀>는 이미 돌봄의 감각을 잊은 관객의 몸과 마음마저 어루만진다.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각색한 영화 <말없는 소녀>는 무심한 부모 사이에서 방치된 아이가 애정과 돌봄의 손길로 다시 성장을 시작하는 어떤 여름을 그린다. 시골의 벌판에 코오트를 찾는 소리가 매섭게 울려 퍼진다. 카메라는 가만히 고개를 내려 웃자란 풀밭 사이에 모로 웅크려 그대로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비춘다.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에서 비틀거리는 위태로운 이 아이가 코오트(캐서린 클린치)다.
코오트는 사람들의 눈빛을 피해 눈을 돌리고 말을 삼키며 도망가는 것이 익숙하다. 코오트는 어른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해 의자에 튀어나온 솜, 귓가의 귀걸이, 버려진 담배꽁초 따위로 시선을 돌린다. 말수 적은 소녀를 대신한 시점숏은 코오트가 보고 느끼는 바를 충실히 전달한다. 가사와 육아에 지친 엄마는 여섯 번째 아이를 배에 품은 채 분주하다. 엄마의 지친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 역시 코오트다. 코오트는 타인의 시선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간다. 에이블린(캐리 크로울리)과의 첫 만남에서 코오트는 에이블린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돌아본다. <말없는 소녀>는 모든 대사가 사라져도 무방할 정도로 말보다 이미지가 중요한 영화다. 왜곡되고 범람하는 말 대신 시선과 침묵이 영화를 이끈다.
코오트의 언니들은 송아지와 아기의 탄생에 대해 말하다가 아빠 댄이 들어오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문다. 이 가족의 소리를 억누르는 힘은 댄에게 있다. 댄은 영어를, 엄마 메리와 아이들은 아일랜드어를 사용하며 코오트는 학교의 또래 친구보다 영어에 서투르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은 코오트의 집을 단절된 침묵의 공간으로 만든다. 킨셀라 부부 역시 조용하기는 마찬가지다. 에이블린이 영어로 흘러나오던 라디오를 꺼버리자 아침 식탁 위에는 식기들의 조용한 부딪침과 새의 지저귐만이 남는다. “아무 말 안 해도 돼. 언제나 그걸 기억하렴. 많은 사람이 침묵할 기회를 놓쳐서 많은 걸 잃었단다.” 침묵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존중하는 어른의 존재는 말 없는 소녀에게 침묵이 불행의 증거만은 아님을 일깨운다. 압박에 못이겨 짓눌린 침묵이 아닌 공기 사이에 따스하게 스며드는 침묵도 있음을 보여준다.
부실한 점심을 먹은 코오트는 다른 아이의 책상 위에 있던 우유를 몰래 따라 마시려 한다. 뛰어다니는 남자아이들에 의해 엎질러진 우유는 코오트의 치마를 적신다. 코오트의 옷이 젖는 일은 몇 번씩 일어난다. 첫 장면에서 코오트가 그토록 숨었던 이유는 침대에 소변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킨셀라 부부의 집에 간 첫날밤에도 코오트는 오줌으로 침대와 옷을 적신다. <말없는 소녀>에서 목을 축이고 몸을 적시는 행위는 내면과 외면의 결핍과 갈증을 드러낸다. 에이블린은 코오트를 손수 목욕시킨다. 아이의 몸은 따뜻한 물속에서 깨끗하게 씻겨진다. 몸에 비누칠 하는 소리와 살갗이 부드럽게 쓸리는 촉감은 어떤 대사보다도 따뜻한 환대의 표현이다. 경제적 궁핍과 내면의 척박함을 채워주는 물속에서 코오트는 시든 꽃이 물을 머금듯 생기를 찾아간다. 예컨대 션과 에이블린이 따라주는 모든 음료는 클로즈업으로 천천히 찍혀 있다. 우유 한 잔 마음껏 마시지 못하던 아이는 갈증을 해소해낸다. 킨셀라 부부의 집을 떠나기 전 코오트는 샘터에 홀로 가서 물을 떠 오려다 도리어 물에 빠지고만다. ‘양동이와 그 안의 물에 반사된 소녀의 모습’이라는 이미지에서 시작된 <맡겨진 소녀>에서 이 부분은 물속에서 코오트와 똑같은 손이 “물속으로 끌어당긴” 것으로 묘사된다. 온몸을 적신 샘물은 세례이자 양수로 코오트는 마침내 새로운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코오트가 떠나가는 킨셀라 부부의 차를 뒤쫓아 뛰어가는 동안 사랑이라 부를 만한 기억들이 불려 나와 화면을 채운다. 마침내 션의 품에 안긴 코오트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댄의 모습을 흐릿하게 본다. 청각보다는 시각과 촉각에 집중하는 <말없는 소녀>에서 가장 중요한 발화는 코오트의 목소리로 간결하게 전달된다. 두 번의 “아빠”는 댄이 걸어오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와 션과 에이블린의 사랑에 부응하는 의미로 각각 쓰인다. 침묵과 돌봄 속에서 다시 태어난 소녀는 명료한 목소리로 새로운 가족을 호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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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사랑하는 것 없는 삶이라도
세상 모든 새로움의 탄생은 유有에서 비롯되어서인가. 어떤 것을 보면 이전에 보았던 또 다른 것을 떠올리게 된다. 이번 영화가 그랬다. 작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떠올랐으므로.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 사실 그가 정처 없이 떠도는 이유는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가야 하는지.
비단 영화 속 주인공이 겪을 법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일평생 하는 고민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서 어느 하나를 잘 골라야 할 것 같은데, 착실하게 살아가는 남들처럼 반듯이 굴기엔 그럴 마음도, 그럴 자격도 없다고 느낀다. 평범한 게 가장 어렵다더니 정말인가. 평범의 축에도 못 끼는 나는, 그럼 뭘까.
물음표 딸린 질문이 이렇게나 많이 주어지는 게 인간의 삶이라니. 객관식으로 내줬으면 하나씩 소거라도 해볼 텐데 서술형이란다. 참고 자료는 넘쳐나는데 뭐가 맞고 틀린 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아니다. 알려준답시고 말해주는 이들은 죄다 말이 다르다. 기준도 융통성도 없는 시험 따위에 응시하고 싶지 않다.
그럼, 어디 한 번 최선을 다해 도망쳐 볼까?
Synopsis
스텔라는 올해 마지막 학년이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스텔라는 유명한 80년대 파리지앵 클럽과 그곳에서 펼쳐지는 열광적인 밤을 알게 된다. 스텔라의 친구들은 공부를 하고 있고, 스텔라의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빠져 있다. 이번 해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스텔라의 인생 전체가 결정될 것이다. 스텔라는 생각하지 않는 척한다.
*주요 내용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와중에 오늘을 무사히 지탱하기 위해 저마다 도피처를 뚝딱 만들었으니.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는 것으로, 땀을 시원하게 빼는 운동으로, 이불 안에서 그보다 더 작은 세계인 핸드폰 화면 속에 빠져드는 것으로. 아, 노래방에서 소리를 마구마구 지르고 온몸을 흔들며 괴로움을 떨쳐내기도 하겠다.
스텔라의 도피처는 제일 마지막과 비슷하다. 시끄러운 음악, 머리를 정신없이 헤집어놓는 알코올, 색색으로 뒤바뀌는 조명, 그리고 이 모든 게 한데 모인 공간, 클럽. 친구들과 이곳을 찾는 스텔라의 관심은 오로지 춤이다. 어째서 춤인가. 미성년과 성인을 가르는 기로에서 자신의 미래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오로지 스텔라인 것 같다.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기 어렵고, 생각하기도 싫다면, 현재에 가장 진득이 머무는 수밖에. 순간순간에 집중한 것을 몸으로 표현해 내는 행위인 춤을 그래서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클럽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앙드레에게 눈길이 간 건 이런 맥락에서 자연스럽다. 스텔라가 사랑하는 춤을 앙드레는 아주 자유로이 잘 추니까.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형체 없는 것을 사랑하고, 이것을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다가 문득 사랑을 깨닫는 것도 같다. 스텔라는 어찌 보면 진지한 관계를 원하진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가볍고 쉬운 관계 또한 목적이 아니었지만.
그에게 필요한 건 앎이었다.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알고, 진지하게 그걸 탐구해 가며 알아가고. 더불어 주변의 인정도 원했을 거다. 스텔라가 자라온 환경은 썩 우호적이지 않았으니까. 한 사람이 살아온 어떠한 사실들이 그 사람을 정의하는 데에 쓰인다는 건 다소 무익하다고 느끼기에 그의 엄마 아빠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그의 방황에 타당성을 부여한 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스텔라는 머릿속이 소란해지기 전에 물리적으로 가장 시끄러운 곳에 머물고 싶었을 뿐.
한참을 헤매다 방향성을 하나 정하고 나면 이제는 전보다 수월해지리란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 일을 그르쳤을 때 모든 게 무의미해진다. 남들이 졸업시험에 열을 올리든 사람들이 스텔라를 뭐라고 나무라든. 클럽을 찾는다 한들 전처럼 춤 혹은 춤을 형상화한 듯한 사람을 사랑하는지도 알 수 없고.
미래에 대해 그 무엇도 알 수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이미 주저앉은 상태라 여기서 더 바닥으로 내려갈 방법도 없는 듯한 느낌을 얻을 때. 생각지도 못하게 일이 꼬였듯 뜻밖에도 일은 어떻게든 풀어진다. 한 번에 하나씩, 지금 당장 할 수 있거나 해야 할 일을 처리하다 보면 말이다. 그 일들은 예상만큼 어렵거나 괴롭지도 않다.
그러니 관계든 일이든 상황이든 모든 게 어그러진 것 같다고 느끼는 시기가 오면 담담히 맞서보자.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과 독대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홀로 헤쳐나가며, 자신을 통과하는 시간들을 뼈에 새기듯 느껴보고,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온 열정을 바쳐 사랑할 대상이 없어도 괜찮다. 삶의 완결성은 특정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순간에 충실하기. 이거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Schedule
- 2023.04.28 / 10:30 CGV전주고사 8관
- 2023.05.01 / 13:00 CGV전주고사 1관
- 2023.05.05 / 11:00 메가박스 전주객사 4관
제24회 전국국제영화제 (JIFF)
- 2023.04.27(목) ~ 2023.05.06(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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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베스(2015년)
박제욱
1. 맥베스 서사
'서양 문학은 결국에는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다.' 라는 우스겟소리가 있다. 그만큼 그둘은 역사속에서 가장 강력하고 새로운 문학가들이었다. 그 중 셰익스피어는 여러 희곡들로 특히 4대 비극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아마 전세계 누구나 한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다. 내가 그 중 가장 매력적으로 끌리는 작품은 맥베스였다.
2015년에 저스틴 커젤 감독의 손에 의해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다시 한번 각색 되었다. 간단히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자비로운 왕 던컨 왕이 집권중인 스코틀랜드. 역적 맥도널드가 내란을 일으켜 던컨왕의 지위를 위협하게 된다. 글래미스의 영주 맥베스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나선다. 맥베스는 맥도널드를 처치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전쟁이 끝나고 맥베스와 그의 동료 영주 뱅코우는 세 마녀의 예언을 듣게 된다. "글래미스의 영주이자, 코더의 영주, 그리고 장차 위대한 왕이 될 맥베스"라는 예언과 뱅코우는 "맥베스보다는 못하나 자손 대대로 왕을 낳을 것이다."라는 예언을 듣느다. 그 예언에 의해 맥베스는 심한 고뇌에 빠지게 되고, 자신의 부인의 욕심에 못이겨 이내 던컨왕을 살해하게 된다. 왕이 된 이후에는 뱅코우의 아들에 대한 불안함과 심한 광기에 휩싸여 미쳐버리고 세 마녀를 다시 찾아가게 된다. "버넘 숲이 던시네인 언덕을 넘지 않는 이상 너는 몰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낳은 남자는 맥베스를 해칠 수 없다."라는 예언을 받는다. 그 말에 맥베스는 다시 광기를 다스리게 된다. 하지만 결국에는 버넘 숲이 던시네인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맥베스는 어미의 배를 찢고 나온 맥더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단순한 예언에 의해 정의롭고 용감했던 한 영주가 광기에 휩싸여 한 나라의 왕이 되고 그 이후에는 폭군이 되고 자신의 동료들에 의해 불명예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을 맞이한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왕의 검을 들고 있는 왕궁 속에서의 멜컴 왕자와 전장 속 맥베스의 시체 앞에 있는 뱅코우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무리 된다.2.미장센
영화 맥베스를 보게 되면 실제 스코틀랜드의 당시 시대가 이랬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고 셰익스피어의 각본이 실제 이야기라면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라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 만큼 감독이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도 여러 미장센과 연출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극대화 시키고 갈등 상황을 독특하게 표현했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번재 눈에 띄는 점은 불이다. 영화 초반 불의 이미지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갈등 및 감정을 아주 탁월하게 설명해 낸다. 불이라는 이미지는 여러가지 의미로 계속 반복 제시된다. 영화는 맨처음 맥베스는 자신의 딸을 화장하면서 시작한다. 여기서 불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 이후 영화 중반부에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던컨왕 살해를 두고 심각한 고뇌와 갈등을 겪게 된다. 맥베스가 처음 예언을 들었을 때는 자신의 충성심과 죄책감 때문에 불안함에 빠져 왕을 살해할 수 없다고 하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레이디 맥베스는 자신의 남편을 왕의 자리에 추대할 수 있다는 여왕이 될 수 있다는 탐욕에 빠지게 된다. 대립되는 두 인물의 대화 속에서 항상 레이디 맥베스쪽에 머무는 물체가 있다. 바로 빛, 불이다. 항상 레이디 맥베스의 등 뒤에는 횃불 또는 초 등이 비추고 있다. 왕위에 대한 도전과 그 의지가 그녀에게만 머물었지만 그 불이 맥베스 쪽으로 이동하는 순간 맥베스가 스스로 다짐하게 되고 던컨왕을 살해하게 된다. 영화 중반부 불은 곧 의지를 뜻한다. 극의 중.후반부 맥베스에게 반기를 든 맥더프의 가족 모두를 맥베스의 병사들이 잡아와 사형에 처하게 하는 장면이 있다. 어린 아이까지 화형을 하는 이 장면은 아마 의지를 뜻하기도 하면서 맥베스의 광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버넘숲이 던시네인을 넘어 오는 장면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는 맬컴 왕자와 맥더프 그리고 잉글랜드 군 1만명이 버넘숲의 나뭇가지로 위장을 하여 던시네인을 넘어오는 버넘숲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맥더프가 버넘 숲에 불을 지르고 그 불에 탄 버넘숲의 재가 던시네인을 넘어 맥베스의 성으로 향하면서 던시네인을 넘어서는 버넘숲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불은 맥베스의 최후를 뜻하는 종말이자 죽음이 될 것이다. 이렇듯 불은 영화 처음부터 죽음의 이미지를 담으면서 의지, 광기, 종말 및 죽음까지 이어졌다.3.등장인물
맥베스 원작 자체에서부터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서양 문학사 최고의 악녀라고 할 수 있는 레이디 맥베스를 탄생시키면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갈등을 볼 수 있다. 위에 첨부한 맥베스 포스터를 보게 되면 마치 마이클 패스벤더(맥베스역)의 머릿 속에 마리옹 꼬티야르(레이디 맥베스 역)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극중에서 둘의 관계가 이러하다.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로부터 예언을 듣게 된 후로 완전히 맥베스의 머릿속에 들어서 그의 욕망과 탐욕을 일 깨우는 것에 노력한다. 하지만 맥베스의 광기는 통제 하지 못한 그녀는 이내 질병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필자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인물관계는 맥베스와 뱅코우의 관계이다. 맥베스와 뱅코우는 세마녀에게 예언을 듣게 된다. 재밋는 점은 왕이 될 사람이라는 예언과 자손 대대로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맥베스와 뱅코우가 동시에 같이 듣는 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맥베스는 자신의 탐욕에 의해 왕이 되려고 노력을 할 것이고, 그 후 자신의 왕위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 뱅코우의 아들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뱅코우 역시 맥베스가 코더의 영주가 됬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이 예언이 진실일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되고 전우였던 맥베스를 멀리하고 아들과 함께 도망치려 할 것이다. 개개인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는 두 예언이 동시에 한 장소에서 들었다는 이유로 영화의 가장 큰 비극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되어준다.4. 무엇이 맥베스를 타락 시켰는가
맥베스는 본래 신분이 명예롭고 위대한 장수이자 영주였다. 그런 지위와 명성덕에 그의 몰락이 더 돋보이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타락 시켰을까. 첫째는 바로 스코틀랜드의 기후 혹은 풍경이라고 생각된다. 과거에 맥베스를 접할 때는 커젤 감독의 영화처럼 실제 스코틀랜드의 척박한 풍경을 보여준 작품은 없었다. 높은 산 하나 외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없는 황량한 토지, 그리고 괴물이나 나올 것 같이 어두침침한 나무들로 빽빽한 버넘숲을 영화는 잘 표현해주며 심지어 흐릿하기만 한 스코틀랜드의 날씨까지 영화에서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둡고 우울한 기후와 배경이 이 영화의 분위기를 비롯하여 맥베스의 감정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가장 맥베스를 타락시킨 것은 세마녀의 예언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말'일 것이다. 처음 맥베스를 혼동시킨 것은 예언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뱅코우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두가지 예언을 듣게 됨으로서 두 인물은 서로 대립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곤경을 치루게 된다. 레이디 맥베스의 탐욕에 빠진 속삭임도 맥베스 그를 타락하게 만든다. 그 이후에 새로 듣게 되는 세 마녀의 예언 또한 다시 한번 맥베스를 안심시키기도 하지만 곧바로 그가 몰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언이 될 수도 예언이 될 수도 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맥베스를 혹은 맥베스의 주변인물들의 운명을 타락시킨 비극의 근원일 수도 있다.5.대사
맥베스는 역설의 영화로도 보인다. 영화의 초반 세 마녀로부터 우리는 한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선한 것이 악한 것, 악한 것이 선한 것"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 속 전쟁이 끝난 전쟁터에서 빠져나오면서 맥베스가 이런 말을 한다. "이렇게 흉하고도 좋은 날은 처음이오." 이 두 대사는 사실 말이 안되는 서로 상반 되는 개념들을 늘어 놓는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일 된다는 느낌을 우리는 받을 수 있다. 나는 이 대사를 통해서 세 마녀의 예언이 사실은 예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말은 사실 맥베스 내면의 욕구였을 수도 있다. 다만 선한 것이 악한 것이고 악한 것이 선한 것이 듯이 맥베스 또는 우리는 매사에 갈림길에 놓이지만 그 갈림길이 무엇인지도 그리고 우리가 어떤 갈림길에 들어서게 됬는 지도 모른다. 어떠한 선택지가 있는 지 모른채 자신의 욕구와 의지에 따라 역사가 흐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치 스코틀랜드의 거대한 대자연 풍경처럼 인간 한사람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운명 그 운명에 거스르려고 한자의 비극을 맥베스라는 작품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6.고전이 주는 힘
고전이란 참 매력적인 존재이다. 예술가들은 예술을 할 때 아마 처음 이런 질문에 스스로 빠질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것인가 혹은 성공한 사례들을 모방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완벽한 창조물을 새롭게 만들어 보고 싶어 할 것이다. 나도 예술가라면 당연 그렇게 해야된다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수세기전 과거의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큰 호응을 끌어낸 작품들의 방식이 현대의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나는 이 질문의 답이 곧 고전의 가치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 그 자체의 본성을 건드리는 예술. 그것이 고전들의 장점이 아닐까. 그 고전들을 현대의 기술과 멋으로 새롭게 각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또한 예술가의 재능이라고 생각 된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계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B급이 되어버린 과거의 인기있던 장르들의 요소들을 섞어서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어낸 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이다. 또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명한 건축물인 두오모 대성당 역시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왜 로마시대에 가능했던 돔 형식의 건물(판테온)이 왜 지금은 불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건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이 장르를 막론하고 고전이 주는 힘은 예술에게 있어서 고귀한 가치이다. 그저 고리타분하다고 오래됬다고 밀어두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옛것을 바라보고 재창조하는 일도 예술의 긍정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커젤 감독의 영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틀을 거의 건드리지 않는 선택을 취하면서 그 속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여러 시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새롭게 맥베스를 각색했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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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직시해야 할 또 하나의 케이
- 1970년대 초, 길에서 우연히 발견된 미오카.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미오카는 가족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찾는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건 조작된 서류와 감춰진 기록. K-Number의 진실은 무엇이며, 사라진 서류는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 시간과 국경을 넘어, 숨겨진 진실이 풀리기 시작한다.
<케이 넘버> 줄거리
케이팝, 케이뷰티 등 'K-'를 붙여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기 이전, 이미 'K-'를 붙여 세계로 수출되던 것이 있었다. 바로 사람이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국가 허가 하에 홀트아동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등의 입양알선기관에서 해외로 입양 보낸 이들은 어떠한 규칙성이 있는 일련번호, K-넘버가 붙여져 해외 곳곳으로 흩어졌다. 이렇게 보내진 해외입양인들이 추산 20만 명을 넘는다고 하는데, 이 충격적인 숫자에 입을 다물 수 없다. 이 어마무시한 숫자와 이들의 입양에 돈이 오간 걸 연관시킨다면 입양을 '사업'으로 이용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 넘버>는 이런 한국의 잘못된 입양 시스템이 횡행하던 과거를 관통한다. 영화는 국가가 주도한 거대한 사업이 된 시작점을 다루며 이 시스템의 이면에 혼혈아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계산, 기부장제에서 미혼모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잘못됐다는 시선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낱낱이 들춰낸 사실들에 우리는 당연히 분노를 금치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끝낼 수 있지만, <케이 넘버>는 이 잔혹사의 가장 중심인 입양인들을 조명한다. 과거를 들추긴 하지만 영화의 중심은 언제나 현재에 있으며, 입양사업을 하던 시대에서 40-50년이 지난 지금을 살아가는 입양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따라간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오카 역시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인이다. 자신의 친생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만 4번째 방문 중인 그는 부정확한 자료와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하여 탐문을 이어나가야 한다. 국가도 입양기관도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입양인은 여정은 갑갑함과 분노를 일으킨다.
또한 사회가 조금의 책임도 없이 그들을 외면했기에 입양인들은 친생부모를 찾는 과정부터 찾은 이후, 그리고 그저 삶을 살아갈 때도 문제가 발생한다.
미오카는 자신이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자신을 입양한 미국인 부모가 입양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지 없이 입양 간 미국에서 평생을 살아왔음에도 불법 체류자가 될 위기에 처한다. 그는 다행히도 시민권을 얻었지만, 미오카는 말한다. 시민권을 취득하기 어려운 이들도 많다고. 이 문제 역시 국가와 입양기관이 그들 주도하에 아이들을 입양 보냈음에도 그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보내면 끝이었던 무책임한 행태는 끝내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추방된 한 입양인이 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송은 1심에서는 국가기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2심에서는 홀트의 책임 역시 인정하지 않으며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국가 주도하에 입양 보내진 아이들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 것에 과연 국가와 입양기관의 책임이 없다 말할 수 있을까.
입양인들이 입양된 가정에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국적취득 등의 서류상의 문제가 처리되지 않아 곤란을 겪고, 자신의 입양 정보를 보기도 어려우며, 부정확한 정보에 의해 친생부모를 찾지 못하거나 찾더라도 부모의 거절로 보지 못하는 것에 과연 국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밖의 많은 문제들에 국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케이 넘버>는 한국의 잘못된 입양 시스템이 잔혹했던 과거의 아픔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가해 행위임을 분명히 한다. 과거에 사후 대처 없이 무분별하게 입양 보낸 무책임한 과거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영화를 통해 입양인들을 약간이라도 알게 됐다면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도 직면해야 한다. 당신은 입양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가가 전 세계로 보낸 수십만 명의 입양인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들의 인생에 국가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전 세계로 퍼지는 우리 문화에 'K-'를 붙이며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다면 제일 처음 'K-'를 붙여 해외로 보낸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케이 넘버>를 통해 입양인들을 약간이라도 알게 됐다면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더 이상 비극을 이어나가지 않게 감시해야 할 것이다. 영화가 준 충격이 이 문제가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 글은 씨네랩에서 초청받아 참석한 <케이 넘버>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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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점 9.2 테크니컬한 액션연출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보게되는 영춘권의 대가 견자단 [엽문]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의 사용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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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만에 넷플릭스 전세계 1위 한국 드라마 지옥 정주행 하기(해석)
넷플릭스 오리지날 한국 드라마 지옥 1~3 편의 내용입니다.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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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컨스피러시>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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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실크 로드> 티저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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