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하늘2023-10-13 17:22:01
[BIFF 데일리] 소통과 교류는 창조를 만들어 낸다.
28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영화의황제> 인터뷰

"소통과 교류를 통해서 창조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2023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화의 황제'
폐막작 기자회견에서 닝하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10월 13일 오전 부산 KNN 시어터 진행된 폐막작 기자회견에는 닝하오 감독과
영화의 황제에 출연한 다니엘 위, 리마 제이단 그리고 남동철 BlFF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이 함께 했다.

17년만에 부산국제영화제를 다시찾은 닝하오 감독은
"부산에 영화 관련 시설도 많아졌고,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며"
"이와 같은 영화제를 통해 영화인들이 교류와 소통이 어느때보다 필요하다."
고 설명했다.
영화 "영화의 황제"는 영화를 제작 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로
'영화의 황제'는 홍콩의 스타 유덕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면는 코믹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 가운데 감독은 중국의 영화와 홍콩의 영화 사이에 복잡하면서 미묘한 관계들을 다루고 있으며
영화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스텝들과 관계자들이 영화속에서 연기를 하며 진행되는 과정에서
리얼리티와 연출이 살아 있는 그런 이야기가 주목할만하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iff.kr/kor/html/schedule/date.asp?day1=4
Relative contents
-
- ? 4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극장판으로 개봉예정인 <유미의 세포들>
4월 1주차 개봉예정작 시작합니다!
댓글부대
Troll Factory
ⓒ 네이버영화
개요: 애니메이션 | 한국 | 93분
감독: 김다희
출연: -
개봉: 2024.04.03.
배급: CJ CGV, 롯데컬처웍스(주)롯데시네마
시놉시스
“사랑이의 마음이 나를 웃음 짓게 했고 불안이의 걱정이 나를 나아가게 했어” 오랜 꿈이던 작가가 되기 위해 퇴사 후 공모전을 준비하기로 결심한 유미. 완벽한 글쓰기 일정을 만드는 ‘스케줄 세포’부터 글감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는 ‘작가 세포’와 허리띠를 졸라매는 ‘자린고비 세포’까지 모두가 유미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유미의 ‘불안 세포’를 점점 자라나게 하고 바비와의 흔들리는 관계로 흑화한 ‘사랑 세포’까지 세포들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며 세포 마을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는데…
CINE PICK!
네이버 웹툰과 드라마로 인기를 끈 ‘유미의 세포들’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합니다. 원작의 드라마판의 애니메이션을 담당한 로커스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고, 당시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김다희 감독이 본작을 연출했습니다.
비키퍼
The Beekeeper
ⓒ 네이버영화
개요: 액션, 모험, SF | 스페인, 프랑스 | 115분
감독: 애덤 윈가드
출연: 댄 스티브슨스, 레베카 홀,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개봉: 2024.03.27.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시놉시스
법 위에 있는 비밀 기관 '비키퍼' 그곳의 전설로 남은 탑티어 에이전트 '애덤 클레이'는 기관의 눈을 피해 자취를 감추고 양봉가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 보이스 피싱 조직으로부터 유일한 친구 '엘로이즈'를 잃게 된 그는 피의 복수를 위해 잠재웠던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전 세계가 열광할 NEW 킬링 액션 유니버스가 시작된다!
CINE PICK!
<분노의 질주 시리즈> 각본, <수어사이드 스쿼드>, <퓨리>를 연출한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2024년 작품으로 전세계 박스오피스 7주 연속 1위를 석권하며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비밀기관 비키퍼 요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설정으로 ‘인간병기’의 모습을 선사하며 짜릿한 액션을 보여준다 합니다.
오멘: 저주의 시작
The First Omen
ⓒ 네이버영화
개요: 공포 | 미국, 이탈리아 | 119분
감독: 아르카샤 스티븐슨
출연: 넬 타이거프리, 타우픽 바롬, 소냐 브라가, 랄프 이네슨, 빌 나이 등
개봉: 2024.04.03.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수녀가 되기 위해 로마에 가게 된 ‘마거릿’(넬 타이거 프리).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그때, 믿음을 뒤흔드는 어둠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서서히 조여오는 끔찍한 공포가 마침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 6월 6일 6시 사탄의 아이가 태어나고, 믿음이 향하는 곳이 뒤바뀐다!
CINE PICK!
<오멘>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오멘: 저주의 시작>은 ‘666’이라는 숫자로 대표되는 악마의 자식, 데미안이 탄생한 과정을 다룰 예정이라고합니다. 미드 <왕좌의 게임>으로 주목을 받은 넬 타이거 프리와 영국의 명배우 빌 나이가 주연을 맡으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키메라
LA CHIMERA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이탈리아 | 132분
감독: 알리체 로르와커
출연: 조쉬 오코너, 알바 로르와처, 이사벨라 로셀리니, 캐롤 두아르테
개봉: 2024.04.03.
배급: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시놉시스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도굴꾼 이야기 도굴꾼 아르투에겐 땅속 유물을 감지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부의 꿈에 도취된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잃어버린 연인, 베니아미나를 찾아 헤맨다.
CINE PICK!
제 7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작품으로 <행복한 라짜로> 영화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감독은 이탈리아의 떠오르는 여성 감독으로 이탈리아 영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본인만의 창의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 감독입니다. .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cinepick/
-
- 사랑을 자각하기까지의 시간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 호감을 갖게 되고 서서히 물들어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사랑이라고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고 그 상대방을 관찰하게 된다.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게 멀리서 상대방을 보다 이내 가까운 위치로 가서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관계가 서로 마음을 나누는 연인관계가 반드시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보내는 신호를 상대방이 잘 받아서 그것을 다시 그 신호를 보냈던 사람에게 돌려보내는 과정을 거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이후에야 비로소 연인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동시에 그 감정이 시작되는 사랑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느 정도 그것을 알아내는데 시차가 있다. 한 사람이 호감으로 사랑을 시작하면 그걸 바라보는 상대방이 그것을 알아채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그 신호가 잘 전달되고 또 잘 맞을 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 자각의 시점이 맞지 않을 때면 서로 어긋나고 그 사랑은 이루어지는데 한참 걸리거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 결과는 아름답지 않지만 그 사랑의 확인 과정 속에는 꽤 아름답고 가슴 아픈 순간도 포함되어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차를 담은 영화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감정의 시차를 담은 영화다. 베테랑 형사인 해준(박해일)이 산에서 추락사한 남자를 수사하게 되면서 이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죽은 남자의 아내인 중국인 서래(탕웨이)가 용의자가 되면서 형사와 용의자 관계로 만난 해준과 서래는 처음 만나는 순간 묘한 감정을 느낀다. 영화는 특히 해준이 느끼는 사소한 행동들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해준이 먼저 느낀 감정은 바로 용의자로서의 의심이다. 상대방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했지만 아름다운 외모와 묘한 분위기를 가진 서래를 본 해준은 좋은 음식을 시켜주는 것처럼 최대한 예의를 다해 그를 대한다. 그때부터 해준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이 의심 때문인지 상대방에 대한 호감 때문인지를 혼란스러워한다.
중국인인 서래는 어렵게 한국으로 건너와 정착하기 위해 남편과 결혼을 택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배운 한국어가 조금은 서툴다.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나 문장이 아닌 조금은 특별해 보이는 단어를 선택해 이야기하면서 서래의 분위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런 묘한 분위기 때문에 해준이 더욱 서래를 의심하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호감으로 변해갔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해준과 서래는 조금씩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때 해준은 호감의 감정을 조금씩 전달했겠지만 그게 사랑이라는 진짜 감정이었다는 사실을 서래는 한참이나 지나서 깨닫는다. 그건 해준이 죽은 남편 사건에 대한 어떤 이야기 때문에 한 말이었지만 그건 서래에게 진짜 사랑으로 다가온다.
그 이후 영화는 몇 개월 후로 시점을 건너뛴다. 그리고 지방으로 발령받은 해준과 다른 남자와 다시 결혼하여 생활하고 있는 서래가 우연히 만난다. 그때 해준은 서래의 시선을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서래는 피하지 않는다. 이때 서래의 남편이 다시 죽음을 맞이하면서 해준의 의심은 커지고 그에 따른 분노도 커진다. 그러니까 해준의 의심이 커질수록 영화의 극적 긴장감은 높아지게 된다. 영화에서 서래의 진심은 거의 말미에나 드러난다. 그래서 서래가 진짜 범인인지, 그가 해준을 바라보는 감정이 무엇인지가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다. 그리고 영화 안에는 '사랑' 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적어도 두 등장인물들은 상대방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가 모호하게 보이기도 한다.
파도 앞의 서래, 파도 속의 서래
영화 중에 서래가 파도처럼 보이는 벽지 앞에 서있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서래는 실제 바다 모래사장 위에서 파도의 앞에 선다. 그 파도는 서서히 서래 쪽으로 스며들듯 다가온다. 해준의 사랑이 다가오면서 서래의 마음을 조금씩 적신 것처럼 그 사랑의 파도 역시 서서히 다가온다. 그리고 파도 벽지 앞에 서있던 서래의 모습처럼, 서래는 사랑의 파도 속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렇게 진짜 사랑의 감정을 시작한 그는 해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두 사람의 호감과 사랑은 두 가지의 시차가 있다. 일단 둘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한국어를 쓰지만 중국어를 모르는 해준은 서래가 하는 한국어도 조금 어색하게 느끼지만 서래가 하는 중국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영화 중반 서래는 보다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통역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 먼저 말을 하고, 그것이 번역된 한국어가 해준에게 들려진다. 적어도 서래가 중국어로 해준에게 말할 때는 둘 사이에 즉각적인 의사 전달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언어적인 시차가 둘 사이에는 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감정의 시차다. 해준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그가 시작한 사랑의 감정은 서래에게 단번에 전달되지는 못한다. 첫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은연중에 전달되지만 서래는 그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야 그 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래가 시작한 사람의 감정은 두 번째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은연중에 해준에게 전달되지만, 그것 역시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야 그 마음이 해준에게 전달된다. 정말 안타까운 건 그 마지막은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상대방을 지키기 위해 ‘헤어질 결심’을 하면서 수면 위로 확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돌출된 사랑은 상대방의 감정을 뒤흔든다.
아름다운 미장센과 카메라 시점 전환
영화 <헤어질 결심>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과거작들에서도 아름다운 미장센과 카메라 전환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영화에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을 담은 화면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화면 전환이 이번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영화의 초반 영화의 제목이 뜨는 화면에서 자연스럽게 수사가 이루어지는 산속으로 전환되는 화면부터 놀라움을 느끼게 한다. 영화 중반 해준이 서래의 집 앞에서 잠복하며 망원경으로 집 안을 보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자연스럽게 안과 밖을 넘나들며 해준이 느끼는 호기심과 감정을 한 번에 전달한다. 박찬욱 감독이 아니라면 그런 섬세하고 디테일한 연출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영화에는 다른 어떤 인물보다 서래라는 인물이 눈에 띈다. 영화에서 가장 늦게 진심을 드러내는 캐릭터이고, 가장 많이 의심당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을 텐데, 서래 역을 맡은 배우 탕웨이는 꼼꼼하게 그의 감정을 모두 표현해낸다. 그가 해준의 사랑을 확인하고 좋아하는 모습과 그 사랑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감정을 그의 연기에서 볼 수 있다. 해준 역을 맡은 배우 박해일은 의심스러운 용의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혼란스러워하고 그것에 다가갈 수도 없고 물러서지도 못하는 캐릭터를 잘 담아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아름다운 사랑 영화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은 줄었다. 대신에 천천히 두 인물이 가지게 되는 사랑의 감정을 담아낸다. 그들이 엇갈리는 과정과 느끼는 감정이 아름다운 화면에 표현되면서 과거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에 비해서는 조금은 더 이해하기 쉬운 영화로 보인다.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이 영화는 두 인물의 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겪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차가 무척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u-QsIoOJg
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헤어질 결심>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https://rabbitgumi.stibee.com/
-
- 우리의 종착지는 불행이 아니야
정해진 대로 사는 것이 과연 정말 ‘나’의 행복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네스트는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꿈인 음악가로 살기 위해 좋은 직업을 가진 부모와 집안을 뒤로한 채 고향인 샤라비를 떠난 것이다. 망가진 바이올린을 고치기 위해 다시 돌아간 샤라비는 여전히 법을 정확하게 지키며 어네스트로 인해 음악이 금지되어 오로지 ‘도’만 소리 낼 수 있는 곳으로 변해 있다. 음악이 금지된 이유 역시 쉬이 납득할 수 없는데, 판사가 되기로 했던 어네스트가 도망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샤라비에 거주하는 모든 곰들의 멜로디를 앗아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이라는 이유로 체제에 순응하는 곰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미파솔과 음악 부흥회는 사라진 멜로디를 되찾기 위해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악회를 통해 음악을 간직하고 있다. 법을 어기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법이,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계속해서 알리는 역할을 한다. 셀레스틴은 이러한 샤라비의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계속해서 어네스트의 바이올린을 고치고, 음악을 되찾아 주기 위해 노력한다. 미파솔 다음으로 샤라비에 균열을 가하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판사라는 직업은 이미 좋다고 평가된 대상이다. 어네스트의 아버지 역시 그렇게 믿어왔기에 어네스트에게 계속해서 판사라는 직업을 강요한다. 자신 역시 음악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샤라비에 거주하는 모든 곰들은 자신의 미래의 직업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법에 따라 직업이 ‘결정되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행복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정해진 대본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은 곧 자신을 잃어가는 것인데도 말이다.
모든 직업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사회가 정한 ‘좋은 직업’에서 이탈하면 불행해질 것이라는 위협을 받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어네스트 역시 판사라는 직업에서 이탈했기에 어네스트가 사랑하는 음악이 금지되어 모두가 불행해졌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마치 그 결과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그런 결과를 피하도록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나아가기 위해 현실을 거부하고 불합리한 체제에 불응하는 이러한 선회를 해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의 편협한 행복 대본에 아이들을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대본의 약속에서 벗어났기에 어네스트는 셀레스틴이라는 소중한 우정도 만날 수 있었다. 셀레스틴과 어네스트는 서로가 원하는 행복에 가까워지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어네스트는 셀레스틴에게 가족을 만들어 줬으며, 셀레스틴은 어네스트가 사랑하는 음악을 다시 되찾아 주었다. 이렇듯 사회가 정해 둔 약속에서 벗어나는 경험은 늘 우리를 어딘가로, 어쩌면 더 넓은 세상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인 것이다. 누군가가 정해 준 목표를 현실로 만드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목표를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음표라는 취향을 찾다 보면 결국 멜로디라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 틀림없기에.
<해당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것입니다.>
-
- 불편한 웃음도 웃음이다, <조용한 가족>
<조용한 가족> (김지운, 1998)의 포스터에는 ‘코믹잔혹극’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김지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그 문구와 참 잘 어울리는 잔혹한 블랙코미디 영화이다.
부모님과 삼촌, 3남매로 이루어진 여섯 명의 가족은 이장의 추천으로 산장을 싸게 매입하여 영업을 실시한다. 파리만 날리던 산장에 드디어 첫 손님이 찾아오지만, 그는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된다. ‘아버지(박인환 役)’는 산장의 영업에 지장이 갈 것을 우려하여 시체를 몰래 묻어 버리자고 한다. 그리고 이 첫 번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여러 가지 일들이 가족을 덮친다.
이 ‘조용한’ 가족은 죽음을 비밀로 묻어 버리기로 하고, 시체도 묻어 버린다. 그리고 일은 눈덩이가 눈밭을 굴러가듯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인물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자신들의 행위에 점점 과감해지고 익숙해지며 가벼운 태도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악행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땅에 묻었던 시체들은 비가 쏟아지면서 밖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땅을 파헤치는 도로 공사가 산장 주변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도 가족들은 여전히 검지를 입술에 댄 채 ‘쉿’ 하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관객들은 여전히 침묵을 요구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복잡한 심경으로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이 영화의 재미를 유발하는 가장 큰 요소는 블랙코미디 장르의 불편한 웃음이다.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씁쓸한 미소를 짓도록 유도한다.
영화는 인물들이 범죄 행위에 점점 익숙해지며, 범죄와 일상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영민(송강호 役)’은 바닥에 고인 피를 밟고 미끄러지고,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보고 시체를 발견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라던 처음과 달리, 이내 살인이나 매장을 농담삼아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을 정도로 악행에 무뎌지는 모습을 보인다. 영민의 삽질 실력은 점점 늘고, 와중에 다른 가족들은 영민의 실력을 칭찬하며 함께 웃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지점에서 주목해 볼 만한 점은 가족들이 내부인(가족 구성원)과 외부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이다. 처음 가족들이 죽음을 묻기로 한 것도 가족들의 생계와 직결된 산장 영업을 계속하기 위함이다. 영민은 동생 ‘미수(이윤성 役)’를 강간하려는 남성과 몸싸움을 하다 남성이 절벽에서 떨어지게 하고, ‘어머니(나문희 役)’는 시체를 묻고 귀가한 가족들에게 수고했다고 인사하면서 든든한 밥상을 차려 준다. 영화의 후반부, 산장에서 청부살인까지 발생(하려고)했을 때에도 시체 두 구를 본 가족들은 계단에 발이 걸려 넘어진 영민을 위해서만 의사를 부르고, 병원에 가는 영민을 걱정하며 자신들의 봉고차까지 끌고 나선다. 그리고 잠시 뒤, 같은 계단에서 이번에는 외부인이 떨어져 죽자 가족들은 한 번 더 죽음을 감춰 수습하려고 한다. 영화는 이렇듯 내부인과 외부인에 대한 가족들의 태도에 차이를 두면서 아이러니를 통한 웃음을 유발한다.
그리고 가족들의 웃음 또한 아이러니를 유발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가족들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웃는 장면은 이 영화에 꽤 자주 등장한다. 웃고 있는 가족의 모습, 그리고 그 인물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죽음을 맞는 외부인의 상황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또 가족들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무장 간첩’들의 모습을 보며 ‘생매장을 시켜 버려야 한다’는 식의 농담을 하면서 즐겁게 웃기도 한다. (이때의 ‘간첩’은 한국 사회의 외부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외부인의 죽음에 등을 돌린, 또는 익숙해진 인물들의 모습 또한 불편한 감정을 유발한다.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를 고르자면, 역시 배우들의 조합과 호연일 것이다. 박인환, 나문희, 최민식, 송강호 등 하나의 작품에서 뭉치기 힘든 배우들이 한 가족을 연기하며 만들어내는 호흡은 인상적이고 확실한 재미 요소가 되어 준다.
잘 만들어진 한국형 블랙코미디라는 말로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가족 중심 문화, 내부인-외부인의 관계(가족과 가족이 아닌 사람, 한국인과 한국인이 아닌 간첩 등) 등 한국 문화의 중요 코드를 과장하기도 하고 끼워 넣기도 하며 극적으로 활용한, 잘 빚어진 한국 영화라고 생각한다.
-
-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고전과 호러의 묘한 만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탐정 생활을 그만두고 베니스에서 은둔 중인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 어느 날, 오랜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리아드네 올리버'(티나 페이)가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건넨다. 유명 강령술사 '조이스 레이놀즈'(양자경)에 대해 취재하고 있으니 그녀의 교령회에 참석한 뒤 정체를 밝혀달라는 것.
이에 포와로는 고풍스러운 저택의 여주인인 '로웨나 드레이크'(켈리 라일리)의 초대를 받아 핼러윈 밤에 열린 레이놀즈의 교령회에 참석한다. 1년 전 사망한 로웨나의 딸을 되살리는 교령회를 지켜본 후 모든 대사와 행동이 조작이라고 판단한 포와로. 그는 본격적으로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괴한에게 습격당한 포와로는 정신을 잃고, 동시에 레이놀즈도 사고로 사망하면서 강령회의 진실은 미궁 속에 빠지고 만다.
에르큘 포와로와 호러의 묘한 만남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아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핼로윈 파티>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과 <나일 강의 죽음> 뒤를 잇는 세 번째 시리즈로,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과 주연을 맡았다.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모범적인 작법으로 고전을 풀어낸다. 익숙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맛을 제대로 살렸다. 사건 관련자를 모두 불러 모은 후에 탐정이 진상을 설명하는 결말이 대표적이다. 배경을 베니스로 바꾼 덕분에 클래식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한계가 명확하다. 고전미를 위해 클리셰에 파괴하지 않다 보니 흐름에 뒤떨어진다. 클리셰를 파괴하며 관객을 놀라게 하는 데 몰두하는 근래 추리 영화 추세를 역행한다.
케네스 브래너는 추리극에 호러를 더해 이 딜레마를 풀어내려 했다. 절반은 성공했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음산한 분위기는 분명 인상적이다. 그러나 절반은 실패했다. 내용물은 그대로고 포장지만 달라진 나머지 전체적인 결과물은 묘한 인상을 남긴다.
미장센으로 살려낸 호러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첫 장면부터 호러 분위기를 강조한다. 멜로드라마 요소가 짙었던 전작 <나일 강의 죽음>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다른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 베니스 풍경부터 그렇다. 대각선 구도로 건물을 촬영하고, 광각으로 왜곡되는 부분을 만들어 불안감을 키운다. 포와로가 깜짝 놀라 꿈에서 깨는 장면도 호러 영화 느낌이 강하다. 작은 방과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만나 명암 대조가 강렬한 화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소재 자체의 매력을 영리하게 살려낸 도입부도 인상적이다. 영화는 한 가지 괴담을 소개하며 분위기를 고조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고아원에 갇혀 죽은 아이들이 있다. 그들이 유령이 되어 자기들을 버리고 도망간 의사와 간호사에게 복수한다.' 이런 내용이다. 배경과도 잘 어우러진다. 핼러윈을 맞이한 베니스, 운하와 곤돌라, 가면무도회의 조합은 마치 <오페라의 유령>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관객의 감각을 일부러 건드는 연출도 눈에 띈다. 특히 청각적인 요소가 돋보인다. 갑작스레 휘몰아치는 바람, 새들의 날갯짓, 고택 어디에서든 울려 퍼지는 문소리와 시계 소리 등이 현장을 생생히 들려준다. 중간중간 삽입된 귀신 소리, 유령이 움직이는 소리, 컵이 깨지거나 칼에 찔리는 소리도 분위기를 환기하고 공포심을 심어주는 데 유용하다.
호러만으로는 버겁다
하지만 호러 요소를 이용해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의문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미장센을 즐기는 재미는 확실하나, 새로운 겉모습이 추리물의 본질적 한계까지 가리지는 못했기 때문. 원작 자체가 1969년에 출판된 만큼, 뻔한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추리 과정이나 범인을 숨겨 놓는 기법은 힘들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가장 범인이 아닌 것 같은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결말도 스테레오 타입이다.
몇 안 되는 근거를 보여주는 방법 역시 평이하다. 주로 클로즈업을 통해 결말을 예상케 하는데, 너무 티를 내다보니 복선이나 암시로서 역할을 해내는 데 실패한다. 구성도 익숙하다. 포와로는 모든 인물을 붙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증거를 추적하기보다는 인물의 사연과 관계를 파악한다. 그러니 속도가 붙질 않는다. 온도는 오르지만, 좀처럼 끓지 않는 물 같다.
각 캐릭터의 존재감도 문제다. 모든 인물에게 조금씩 분량을 분배하면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려면 각 캐릭터의 매력이 확실히 살아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개개인의 존재감이 부족하다 보니 관객의 눈길을 붙잡아 두기 어렵다. 결국 푸아로의 원맨쇼만 보일 뿐, 사연과 캐릭터, 추리는 흥미를 끌지 못한다.
이는 전편과 비교해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는 페넬로페 크루즈, 조니 뎁, 윌렘 데포, 주디 덴치, 미셸 파이퍼, 데이지 리들리가, <나일 강의 죽음>에는 갤 가돗, 아미 해머, 엠마 맥키, 레티티아 라이트가 출연했다. 그에 비하면 누구 하나 케네스 브래너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줄 배우가 없다. 코로나 기간에 개봉한 <나일 강의 죽음>이 흥행에 실패한 후폭풍이 드러나는 지점인 듯하다.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다
물론 작법이 고전적이라는 이유로 영화의 완성도가 항상 부족한 것은 아니다. 추리극, 특히 후더닛 장르에서는 훌륭한 반례가 있다. 라이언 존슨의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나이브스 아웃>은 아거사 크리스티의 추리극 작법을 충실히 따랐다. 동시에 블랙코미디 요소를 더해 여러 사회 문제를 영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1편은 미국 사회의 구성원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대거 등장시켜 나날이 폐쇄적으로 변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비판했다. 2편도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 사건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나날이 심화되는 부의 양극화와 자본에 중독된 사회상을 지적했다. 즉,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영화에 반영하면서 추리극 장르의 시대적 한계를 역으로 극복한 셈이다.
안타깝게도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에서는 이런 영리함이 없다. 현대 관객이 사건 속으로 자연스럽게 이입될 여지가 많지 않기 때문. 영국이 배경이었던 장소를 베니스로 바꿔도, 호러 장르를 적극 이용해도 고풍스럽다는 인상을 좀처럼 지울 수 없다. 원작과의 차별화에는 용이해도, 장르적 한계를 넘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그래도 우리가 고전을 찾는 이유
그럼에도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에는 남다른 매력 한 가지가 깃들어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 바탕을 둔 고전의 품격이 그것이다. 이 힘은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라와 감독 케네스 브래너 양쪽으로부터 나온다. 우선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에서 범죄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으로 인해 발생한다. 그렇기에 푸아로는 사건 해결뿐만 아니라 그 감정을 보듬는 일까지 도맡아야 한다.
이 특징은 케네스 브래너의 손길을 거치며 극대화된다. 그 결과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트라우마 극복기나 다름없다. 영화는 범인도, 또 다른 유발자도 제2차 세계 대전의 상흔 때문에 범죄에 빠진 사연을 보여준다. 강령술사가 마냥 사기꾼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유달리 영화 속 아이들에게 눈길이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쟁의 사망자와 피해자의 상처를 제때, 제대로 보듬어야 한다고 거듭 일깨운다. 배경을 굳이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의 베니스로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에르큘 포와로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다. 포와로는 번아웃으로 인한 슬럼프에 빠졌다. 모든 의뢰를 거부하고 은둔했다. 숨어버린 탐정이 권태기를 극복하는 모습은 영화 내용과 겹쳐 보인다. 또 케네스 브래너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전작 '벨파스트'에서 전쟁과 갈등으로 인한 유년의 아픔이 유독 오래 남는다는 깨달음과 경험을 보여준 바 있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특히나 심금을 울린다.
결국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추리극과 호러의 만남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관건이다. 원작과 전편으로부터 달라지기 위해 노력한 대목이 있고, 관객에게 어필할 만큼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 노력의 결과가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추리 영화'와 '시대를 따라가려는 노력이 더해진 고전 재해석'으로 갈릴 수밖에 없을 뿐.
마지막으로 한 가지 흠을 덧붙이자면, 개봉 시기가 의문이다. 소설 원작 제목부터 작품 분위기나 내용에 이르기까지 9월 한복판보다는 핼러윈 시즌이 개봉 시점으로 더 적절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시리즈 3편인데도 불구하고 개봉 후 반응이나 화제성이 미비하기에 남는 아쉬움이다. 소재, 장르가 겹치는 <잠>이 바로 한 주 전에 개봉해서 관객을 먼저 흡수한 상황도 악영향을 줬을 테지만.
Acceptable 무난함
올드함에 지치거나, 고전미를 음미하거나.
-
- 영화 <3000년의 기다림(2022)> 리뷰
이야기는 매혹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실체 없는 것이 이토록 오래 살아남을 수가 없다. 변형되고, 반복되며, 이따금 자신의 꼬리를 잃더라도 이야기는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과학이 없던 시절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발명되었던 신화이든, 자신의 지혜를 전할 방법이 없어 구전으로 이어져 온 민담이든 간에. 오죽하면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하지만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기록이고, 공동의 기억이자 역사라고. 기록할 수 없었던 자들이 해낼 수 있던 최후의 반향이자 상실에의 저항이라고 말이다.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로 유명한 조지 밀러 감독의 2022년 작품이다. <옥자(2017)>, <설국열차(2013)>로도 한국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자,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2005)>, <콘스탄틴(2005)> 등을 통해 20여 년 전부터 판타지에 자주 얼굴을 비친 바 있는 근사한 배우 틸다 스윈튼과 <어벤저스> 시리즈의 헤임달, BBC 드라마 <루터> 등을 통해 우아한 카리스마를 내비친 배우 이드리스 엘바가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A.S. 바이엇이 199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집 <나이팅게일의 눈 속의 정령>을 원작으로 삼는다. 생소한 제목이더라도 겁먹을 필요는 없다. ‘알라딘’에 등장하는 지니를 기억하고 있다면.
‘지니’에 대한 언급을 했으니, 3,000년 동안 자유를 갈망한 정령 진(이드리스 엘바)과 3,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면면히 흩어진 인류의 이야기를 채집하며 살아온 서사학자 알리테아(틸다 스윈튼)의 첫 만남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다. 알리테아는 유리병을 닦아내며 거대한 정령을 마주한다. 자유를 갈망하는 불의 정령 진. 그는 알리테아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알리테아는 열망하던 것을 손쉽게 이루고, 진은 오랜 세월 바라 마지않던 자유를 이룰 수 있으니 너무도 완벽한 윈윈의 거래일 게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하나 있다. 알리테아가 자신은 현재에 더없이 만족하여 바라는 것이 없다고 말한 까닭이다. 심지어 알리테아는 이렇게 지적하기까지 한다. 소원을 비는 이야기의 교훈은 언제나 경고로 끝난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진은 이러한 알리테아를 이해하지 못한다. 살아있음과 욕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진은, 열망하는 것이 없다는 관조적 자세는 개인의 본성 혹은 의지를 드러내지 않는 행위이며 삶에 대한 배반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그러나 우리는 알리테아가 특별한 추진력 없이 관성적인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가 학자로 살며 쌓아온 시간이 멈춰있었다고 말하는 건 틀림없이 실례일 터다. 다만 알리테아는 개인의 삶에서 일정 부분을 단념한 인물이라고 묘사된다. 아이를 잃은 이후 슬픔을 비롯한 그의 감정은 전반적으로 정지한 상태이다. 이런 모습에 대해 절제의 미덕(진은 어리석음이라 일갈하는)을 언급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의 초조함은 분명하게 표시된다. 그러하므로 진과 영화 내 카메라의 시선에 따르면, 알리테아가 마땅히 지녀야 하는 생(生)에의 원초적 욕구는 체념과 같은 그 어드매의 방향으로 휩쓸려 사라졌다고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알리테아는 빠르게 공감하지 못한다. 둘의 몰이해는 불에서 태어난 정령과 흙으로 빚어진 인간 사이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만, 어쨌든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좁히는 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단순한 두 인간 사이의 갈등이었다면 헤어지고 끝났을 텐데 3,000여 년의 구속에서 벗어나고픈 진은 절박하다. 그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알리테아의 허락을 구하고자 애쓴다. 자신이 갇히게 된 사연과 자신에게 소원을 빌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자신을 볼 수 있었으나 보지 못한 자, 단순히 소원을 들어주려는 만남이었으나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 어리석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기꺼이 풀어내는 이유는 그래서다.
이야기 속 이야기가 주요한 축인 영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진을 거쳐간 이들이 아무도 그에게 물질적 풍요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을 만났던 이들이 모두 특권 계층이어서 여유로운 삶이 가능했던 게 아니었음에도. 이 이야기의 원형일 『천일야화』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조차 우리는 결핍에서 비롯된 인간의 욕망을 찾아낼 수 있다. 끊이지 않는 파티, 무한할 것만 같은 부와 명예, 갖가지 음식과 사치품. 비현실적인 것을 넘어 때로는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장면이, 영화 <3000년의 기다림>에선 모조리 생략된다. 진에게 소원을 빈 여성들은 각기 다른 것을 원하는 듯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자신이 지닌 한계점을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필멸자가 바라는 초월에의 의지는 다양하게 나타나며 인물이 있던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노예로 살던 귈텐은 사랑을 통한 생명의 초월을 소망하여 아이를 임신했고, 여성으로서 사회적 진출에 한계를 절감했던 제페토는 지식을 끝없이 흡수하며 시공간을 초월한 명예와 공적을 원했다. 개인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없던 둘은 신분의 벽과 성별의 벽에 막혀 갇혀 있었으니 병 밖에 있더라도 병 안에 갇힌 진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신세였다. 그렇다면 현대를 사는 알리테아, 진실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그는 무얼 갈망하는가?
인간은 사회적으로 촘촘하게 이어진 존재이니 타자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개인이 바로 서도 사회가 그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탈취한다면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리테아는 이전의 여성들과 다른 세상에서 삶을 살고 있으니 그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개인의 삶이며 들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역사이다. 사회가 관심 없지만 자신만큼은 들었어야 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한다. 그러하므로 알리테아가 발견한 자신의 소망은 고독에의 초월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3000년은 언뜻 진의 시간처럼 보이지만 내겐 보다 알리테아의 것, 아니 알리테아로 대표되는 인간 여성 전체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진의 시간은 추후의 인간들이 발명한 시간에 따라 계산된 것이지 그가 타인과 교류하며 쌓아온 역사의 시간이 아니다. 그가 소비한 대부분의 시간은 신에게 자신의 자유를 갈구하며 기도했던 것으로, 홀로 있어 셈하기조차 어려웠던 공백 그 자체이다. (환상으로 구성되었고 타자의 계산으로 보충된 그의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과 심리적 시간 간의 간극을 생각한다면, 사실 진이 경험한 시간은 3,000년이 아니라 30,000년, 혹은 3억 년에 조응할지도 모른다.) 반면 그가 병 밖에서 만나던 여성들의 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사회와 시간은 3천여 년의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은 인간들의 삶 속에서 구르고 변화해 왔다.
알리테아와 진이라는 두 존재가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예정된 만남 –한 단어로 줄여야 한다면 운명-처럼 보인다. 끝내 죽음을 맞이할 운명인 인간, 종말이 예정된 인간이 욕망 없음의 상태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인간의 이야기가 끝을 맞이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인간의 존재, 역사, 이야기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정령의 종막을 뜻하기 때문이다. 고립과 고독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는 인간과 정령을 다시 잇는다. 신비를 지우고 합리에 의지해 지어진 현대사회다. 이곳에서 순식간에 멸종될 뻔한 정령은 이따금 나타나 개인의 감성과 마음을 쓰다듬는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갈 힘을 다시금 얻는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지혜이며 예술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이지 않을까. 그러한 점에서 <3000년의 기다림>은 현대인에게 필요한 우화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굳이 ‘초월’이라는 단어와 함께 읽어내고자 한 건, 여성 주안공과 사랑이라는 단어를 함께 붙이고 싶지 않았던 나의 고집 때문이다. 사실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영화를 읽는다면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매끄러울 것이다. 다만 알리테아의 서사가 아이를 잃은 여성에서 출발하여 진과의 사랑으로 맺어지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영화의 짜임새가 구시대적이라고 느끼게 될 수밖에 없고, 전체적인 이야기가 납작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2022년에 나온 영화를 2023년의 시청자가 독해하는 자세로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나는 어떠한 양가감정을 느낀다. 사랑이란 기실, 가장 값지고 쟁취하기 어려운 가치인데 그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영국 락밴드 퀸Queen이 자신들의 노래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에서 “사랑이란 구시대적 단어이기 때문에Because love's such an old-fashioned word”라고 노래했듯 나는 이 단어의 오용, 사랑 앞에서 수동적으로 변해버리는 여성의 태도를 반성 없이 관습적으로 찍어내는 미디어에 반대하기보단 그저 단어 자체를 거부하는, 더없이 손쉬운 방향을 선택해 버린 것은 아닐까 우려한다. 사랑을 대체하거나 다양하게 소화할 수 있는 단어를 발명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선함과 다정함의 가치를 잊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는 한 명의 작은 개인일 뿐이지만, 이런 고민을 가진 인간의 발버둥이 쌓인다면 3,000년 후의 사람들에겐 내 고민이 모조리 옛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망을 감히 가져 보겠다.
★★☆
-
- [대도시의 사랑법] 끝장리뷰 | 발(foot), 교회, 성경 상징 | 신발, 알비노 해석 | 가치판단의 딜레마
[대도시의 사랑법](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발(foot)과 교회
Chapter 2 가치판단의 딜레마
00:00 대도시의 사랑법
00:20 박상영 작가
02:36 발(foot)
05:15 성경, 기독교
07:36 가치판단의 딜레마
10:36 별점 및 한 줄 평
10:53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도시의사랑법 #대도시의사랑법리뷰 #대도시의사랑법해석 #대도시의사랑법영화 #영화대도시의사랑법 #김고은 #이언희감독 #노상현 #이상이 #LoveintheBigCity
-
-
- 영화 <탑건 : 매버릭> 메인 예고편
하늘에서 펼쳐지는 스펙타클 액션
톰 크루즈의 항공 액션 블록버스터 '탑건 : 매버릭' 5월 25일, 그장에서 고공 레이스에 합류하라!
-
- 영화 <십개월의 미래> 메인 예고편
만성 숙취를 의심하던 미래는 자신이 임신 10주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온 변수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가족과 연인, 국가는 각기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미래의 십개월은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