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2-08-14 21:33:03
그래! 이게 프레데터지!
-<프레이>(2022)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늘 인류의 마음속에 있었다. 원시부족 시절부터 시작해 현재까지도 그것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두려움은 우리 주변에 늘 자리하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은 안전한 곳에 있으려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두려운 것에 도전해왔다. 새로운 땅에 탐험을 하거나 주변의 맹수와 대결을 벌인다. 현대에는 지구 밖의 미지의 공간으로까지 탐험을 나간다. 이렇게 도전이 멈추지 않는 것은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노력이 어쩌면 인간이 가진 본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프레이>는 1700년대를 배경으로 코만치 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직 야생과 가깝게 생활하는 그들은 주변의 두려운 존재인 곰이나 사자 등이 나타나면 그것으로부터 부족을 보호하려고 팀이 꾸려진다. 하지만 그곳에 외계의 존재인 프레데터(데인 딜리에그로)가 나타나면서 코만치 부족이 하나둘씩 죽어가기 시작한다. 그에 대항하는 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녀 나루(엠버 미드썬더)다. 끈이 달린 작은 손도끼와 화살을 이용해 두려움에 맞선다.
1700년대에 찾아온 외계 헌터 프레데터
주변의 사람들은 나루를 전사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보호해야 할 존재로 대하고 실제로 맹수를 퇴치하다 기절한 나루를 집으로 옮겨 두기도 한다. 하지만 나루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다. 마치 인류가 계속 무언가에 도전해 나가는 것처럼 조금은 서투른 전투 실력으로도 자신 앞에 나타난 두려움과 맞선다. 영화 속 프레데터와 나루의 모습은 그 덩치에서부터 엄청난 차이가 난다. 또한 최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는 프레데터와 원초적인 무기를 가진 나루가 대결을 벌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영화는 그런 큰 차이를 통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부족에게 전투 능력을 무시당하는 나루는 외계 존재 프레데터에게조차 위협적인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다. 영화 초반 곰을 처치하던 프레데터는 나루의 존재를 보게 되지만 그에게 표시되는 화면에서 나루는 위협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전형적인 약육강식의 고정관념이 사냥 전문가인 프레데터에게도 영향을 준 것이다. 나루는 여러 가지 상황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으로 프레데터에게 반격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영화 <프레이>는 1987년에 개봉한 <프레데터>와 1990년에 개봉한 <프레데터 2>의 이야기와 맞닿아있는 후속 편이다. <에어리언> 시리즈와 함께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외계 존재인 프레데터는 2010년에 <프레데터스>, 2018년에 <더 프레데터>의 후속 편이 만들어지면서 이야기의 설정을 확장시키며 재등장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긴장감을 영화 안에 담지는 못했다. 원작의 1편과 2편이 미지의 존재로부터 오는 압도적인 위압감을 잘 표현하여 영상에 담아냈다면 그 이후의 후속 편에는 그런 위압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인기 있는 외계 존재인 에어리언과 프레데터를 함께 등장시킨 영화 <에어리언 vs. 프레데터>는 영화적 완성도보다는 캐릭터의 인기에 기댄 이벤트성 영화로 소비되어 버리고 만다.
프레데터라는 존재가 여전히 인기가 있는 건, 기술적인 우위와 괴상한 얼굴을 비롯해 우람한 몸집에서 오는 위압적인 느낌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전투 전문가로서 그가 여러 맹수들을 제압하는 모습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냥꾼으로 보인다. 영화 <프레이>는 그런 프레데터의 위압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 아직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시대에 나타난 프레데터는 아직 인간이 제압하기에는 어려운 존재다. 현대의 무기로도 제압하기 어려운 존재가 무기조차 열악한 시기에 등장하면서 전달되는 긴장감은 더욱 높아진다.
원작의 설정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인물을 이용해 만들어낸 위압감
무엇보다 주인공이 성인이 되지 않은 여성인 나루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은 원작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설정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나루가 프레데터와 대항하고 자신만의 전투 아이디어로 대등한 대결을 벌이는 모습은 꽤 흥미진진하다. 마치 자신이 부족을 지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다친 몸을 이끌고 혼자 숲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두려움에 계속 도전하는 인류의 모습과 닮아있다.
사실 과거 <프레데터> 시리즈에서 프레데터에 대항했던 인물들은 대부분 군인이거나 경찰 혹은 악독한 범죄자들이었다. 하지만 <프레이>에서는 전투전문가라고 할만한 인물이 없다. 짐승을 사냥하고 초기 소총을 쓰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프레데터에게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당하고 만다. 그래서 아직 전투가 서투른 나루가 프레데터와 대결을 벌이는 모습을 끝까지 볼 수밖에 없다. 기존의 프레데터가 가진 설정을 잘 유지하고 이해 가능한 범위의 전투 전략을 이용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꽤 훌륭한 <프레데터> 프리퀄을 완성해냈다.
영화를 연출한 댄 트라첸버그 감독은 과거 <클로버필드 10번지>를 통해 벙커에 갇히게 된 인물들이 겪게 되는 공포심을 잘 영상화한 바 있다. 많지 않은 등장인물이지만 잘 짜인 상황과 연출로 긴장감을 극대화시켰던 그는 이번 영화 <프레이>에서도 기존 시리즈의 설정을 잘 활용하면서도 한정된 등장인물을 이용해 위압적인 느낌을 잘 전달하고 있다. 주인공 루나 역을 맡은 배우 엠버 미드썬더도 조금은 여리게 보이지만 포기하지 않는 여전사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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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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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짱 두둑한 개미들이 코끼리에게 덤비다
게임스탑으로 따라와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 어딘가에 사는 애널리스트 키스 길(폴 다노)다. 그냥 직장 다니는 소시민인 키스 길.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 큰돈 만지기는 글렀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희망을 놓지 않는 키스 길. 부인(쉐일린 우들리) 캐럴라인과 ‘게임스탑’이라는 주식에 투자했고 대박을 노리고 있다. 이런 키스 길의 투자방식이 그냥 무작정 얻어걸려라는 아니다. 나름 치밀한 분석을 통해서 게임 스탑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모름지기 돈은 혼자 버는 게 맞긴 하나, 혼자서는 외롭다. 레딧 유저들과 함께 인터넷 방송을 하는 키스 길. 수많은 개미들이 키스 길에게 설득되고 이는 곧 코끼리 같은 부자들과 대립하는 결과와도 이어진다. 여러 사건들이 미국 경제들을 훑고 지나갔지만 개미들은 당하기만 했다. 과연 이번엔 개미들이 이길 수 있을까?
나름 친절해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장점 중 하나는 ‘경제(특히 주식) 용어를 잘 몰라도 이해하기가 쉽네!’라는 점이다. 어떤 이유에서? 바로 영화의 핵심을 드러내는 방식 때문이다. 감독은 이 핵심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캐릭터 개성 살리기’를 선택했다. 글쓴이가 상영관에서 나와 가장 먼저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한 것은 인물들이다. 주인공이 한 명만 있지 않다. 그 주인공들을 A팀과 B팀으로 나누는데, 인물들을 각기 다르게 설정했다. 이 인물들의 속사정은 다 다르다. 누구는 성소수자고, 누구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고, 누구는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다. 심지어 세 바운더리에서 직업도 다 다르다. 한 사람은 평범한 대학생인데 어떤 인물은 간호사고 또 다른 캐릭터는 그냥 게임스탑에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이다. 인물들의 속사정이 판이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각기 튀는 캐릭터들에 개성도 부여한다. 주인공 키스 길은 또 다르고, 게임스탑 아르바이트생은 또 어떻고, 간호사는 어떻고 하는 식이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반복을 통한 강조만 했을까? 아니다. 이 영화는 인물마다 다른 말 맛(?)을 부여하며 코미디까지 살렸다. 글쓴이가 이 글을 쓰면서 영화를 기억하다 보니 모든 캐릭터가 기억에 남는 이유가 인물마다 다른 웃음 포인트를 살렸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인물들을 A팀과 B팀으로 나뉘어 대비를 강조한다. 그 경계를 나누는 기준은 ‘게임스탑 주식 투자자’라는 점이다. 다른 인물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엮이면 그 정서가 절실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이 연출이, 그러니까 인물마다 개성을 살리는 방식이 영화에서 장점으로 발현된 것은 흥미롭다. 개미 투자자들이 똘똘 뭉치는 유대감을 캐릭터의 힘으로 살리면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뭉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지 유추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영화가 정말 비판하고 싶었던 대상의 속성과도 어울리는 감이 있다. 이 대상의 특성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그림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를 전복시키는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이야기의 구조로 형상화한 감독의 솜씨가 놀랍다. 또 직접적으로 대사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여기까지 가는 과정을 영화가 잘 짰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알면 좋은 것
이 영화를 이해할 때 ‘공매도’와 ‘게임스탑’, ‘레딧’과 ‘로빈후드’가 무엇인지는 알 필요가 있다.
정말 간단하게 설명하면 ‘레딧’은 외국인들의 인터넷 커뮤니티다. 특정한 소재가 있다. 가령 ‘아시안 컵 한국 대표팀’이라는 소재가 있다고 쳐보자. 그럼 그쪽에 관심 있는 유저들이 모여서 끼리끼리 대화를 나누는 곳인데, 인터넷 커뮤니티의 속성 상 저속한 표현이 많다. 특히 주식같이 금전적인 문제가 달려 있으면 더 그렇다. ‘게임스탑’과 ‘로빈후드’는 2021년 미국에 실존했던 기업체 이름이다. 게임스탑은 ‘스팀’의 오프라인 형태라고 보면 쉽다. 콘솔/PC게임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파는 곳이다. 중고 게임을 파는 경우도 몇 있다. ‘로빈후드’는 주식 거래 어플이다. ‘~증권’ 어플을 미국인들이 쓴다고 보면 된다.
사실 이런 업체 이름 말고 더 중요한 것은 ‘헤지펀드’와 ‘공매도’라는 개념이다. 헤지펀드는 개인 투자자들이 높은 목표수익률을 추구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 자본 그 자체를 말한다. 보통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며 큰 손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매도’는 돈을 빌려 매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격이 올라가는 걸 예상해 돈을 빌려 주식을 매입하고 그만큼 팔아 중간차익을 노리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헤지펀드’는 누구고 ‘공매도’를 이루거나 하는 행위가 누구에서 오는지를 본다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의 향기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팬데믹 묘사다. 이 전염병 사태를 거치며 여러 변화가 있었다. 어떤 점에서는 백신이라는 것이 유달리 중요했던 때가 있고, 오프라인 매장이 경제상황에 치명타를 가한 적도 있다. 영화는 이를 철저하게 묘사하며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강한 연대의식을 강조한다. 또 주인공 키스 길의 직업이나 ‘영상으로 기록이 남는다’는 점을 묘사하기 위해 무조건 들어가야 했다.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쓰는 언어의 모습이 바뀌기도 했는데, 이는 번역가의 힘이다. 가령 이 영화에서 인터넷 방송과 관련된 용어는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키스 길이 인터넷 방송을 운영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밈을 번역하는 입장에서 일일이 다 살리는 것이 단순히 언어를 저기서 이걸로 바꾸는 것 말고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연히 다 조사해야 그 맥락이 살기 때문이다. 황석희 씨의 열일이 영화의 입체감을 살리는 장점이 됐다.
정상적인 연기는 오랜만이야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폴 다노는 외유내강의 캐릭터를 깔끔하게 소화했다. 폴 다노가 <파벨만스>나 <루비 스팍스> 같은 역할도 곧잘 했지만 <더 배트맨>이나 <데어 윌 비 블러드> <프리즈너스> 같은 센 연기도 잘 소화했다. 이 <덤 머니>에서의 키스 길은 두 종류의 캐릭터에서 <파벨만스> 쪽에 가까운 연기를 한다. 이 인물은 유약한 그냥 직장인 같아 보이지만 마음 안에 굉장히 강한 구석이 있는데, 어떤 대사를 중심으로 이 내면을 형상화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캐릭터를 마냥 센 템포로 해석하지 않은 역량이 돋보였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인물의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에 키스 길의 감정선이 더 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보였다. 뭐 실존 인물이 이렇게 무덤덤한 인물(?)이라면 할 말 없지만.
순수 재미는 떨어질지도
이 영화에 대해 아쉽다고 느끼는 점은 장르적인 재미다. 이런 비슷한 소재와 주제로 <빅 쇼트>라는 걸출한 작품이 있어서? 아니다. 플롯에서 여러모로 긴장감이 느껴질 만한 장면이 많은데 왠지 모르게 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잔잔한 느낌? 영화 자막으로 센 수위의 밈들이 나오고 큰돈이 걸렸는데도 영화 전체적으로 플롯을 이끄는 방식이 조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폴 다노나 세스 로건, 쉐일린 우들리의 카리스마와 연기가 주는 감정이입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느낌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한 불호여론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임과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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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정말 사랑한 게 맞을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김광석의 노래 가사 중 일부다. 나의 어렸을 적 음악 취향은 김광석에 일부 있었다. 그것도 <사랑했지만>을 좋아했다. 왜 좋아했니?라고 물으면 팍 터지는 하이라이트 후렴부가 좋아서!라고 답할 것이다. 10대 때 '난 김광석이 좋아요'라고 말하곤 했었던 과거의 나. 이 말을 들은 많은 어른들은 '네가 김광석에 대해 뭘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면 김광석은 시간이 지나면서 느껴지는 게 많은 아티스트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슨 어린 친구가 나에게 '김광석이 좋아요'라고 했을 때 '네가 뭘 아느냐'식의 꼰대스러운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을 의미한다. 물론 안 그래야겠지. 16살 중학생이 나보다 더 철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는 것이 달라진다는 말은 부정하기 힘들다. 사람이 나이를 들면서 성장이라고 하는 게 있으니 생각이 달라지는 건 뭐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우리의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남의 떡이 더 맛있어 보인다는 말처럼 새로운 것은 사람의 시선을 강탈하기에 충분하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게 참 멋져 보인다는 건 잘 알면서도 끊기가 어려운 것 같다. 물질적인 것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책과 영화를 보는 이유도 새로운 재미를 찾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알면 알수록 이것에 점점 질려오지만 이걸 채우려고 난 참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이 영화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난 언제쯤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고 있던 즈음에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전달하는 영화가 나타났다. <우리도 사랑일까>다.
운명 같은 사랑이긴 한데
마고는 비행기를 탔다. 여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고의 눈에 어떤 남자가 눈에 띈다. 이름은 다니엘. 이 남자 어디에서 몇 번 본 것 같다. 어디에서 봤지? 여행을 하다 마주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 거기서 봤었지. 간통죄를 처벌하는 상황극에서 봤었다. 비행기에서 처음 대화를 하는 두 사람. 비행기도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다. 시답지 않은 헛소리만 늘어놓는데 유머감각이 있어서 웃기긴 하다. 금세 친구라도 된 듯 대화를 하는 두 사람. 마고는 공항이 두렵다고 말하며 '중간에 붕 떠있는 게 두렵다'라고 말한다. 장면이 전환되고 두 사람은 비행기에서 하차한다. 엥.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사는 곳도 비슷하다. 집이 같은 방향이니 만큼 같은 택시를 타고 온 두 사람. 마고는 남자에게 '나 결혼했어요'라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내가 유부녀라는 이유로, 잠깐 여행하다 만났다는 이유로 거리를 둘 수 있어 다행이다. 당연히 남편이 있으면 애인이 없어야 정상이잖아? 그런데, 이 막연한 바람은 의미가 없어졌다. 다니엘과 마고의 거주지가 단지 같은 방향이라 끝나는 수준이 아니다. 바로 옆 집에서 산다.
사실 살짝 비튼 각도에서 보면 운명적인 사랑이 맞다. 대화도 잘 통하고. 사는 곳도 비슷하고. 여행지에서 만날 정도로 취향도 비슷한 셈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다. 그냥 뭔가 다르다. 늘 같은 일상을 살던 마고에게 재미있는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재미가 있고 나발이고 간에 마고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선 안 된다. 나를 사랑하는 남편도 있고, 처가 식구들도 그렇게 나쁜 사람이 없다. 이런데도 마고는 새로운 무언가와 지금 갖고 있는 현재의 것들 사이에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새롭게 찾은 마고의 운명적인 사랑을 소재로 삼으며 '새로운 것과 예전 것의 차이점'에 대해 조명한다.
많은 경험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들
사랑의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닌가 싶다. 틀린 선택지를 한 번쯤 골라봐야 '어떤 것이 최선이었는가'를 답할 수 있으니까. 또 열렬하게 사랑해본 기억이 사람을 성장시켜 준 다는 것에는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것과 무관하게 우리는 마음의 구멍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 구멍 채우려고 바쁘게들 산다. 친구라는 이름도, 연인이라는 것도 그의 비슷한 맥락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신선한 재미를 안기게 해 준다. 가끔 우리는 이런 것들 덕에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다. 천만에. 어림없다. 새로운 건 늘 나이 들기 마련이다. 잠깐 느낀 신선함이야 말로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든다.
영화는 이 절묘한 틈을 파고든다. 새로운 것과 갖고 있는 것의 차이를 미묘하게 보여준다. 마고가 하고자 하는 일을 유심하게 보시라. 또, 다니엘의 취미에 집중하시라. 이 둘은 분명히 다르지만 '표현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는 무언가를 아내에게 계속 시도하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마고의 처지와 대비된다. 철저한 연출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극초 반부부터 제시하는 다니엘의 성격 특성을 집중해보자. 마고가 다니엘을 만나면 어떤 행동을 자주 하는지를 조명하면, 그와 현 남편 루와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단순하게 '새로운 것을 만나 그녀는 어떻게 변하는가'만 생각해봐도 영화의 깊이가 옅지 않다. 당연하지. 그게 소재인 영화인데. 그런데 그 새로운 것을 대면하며 반응하는 인물의 선택지가 '누구를 나쁜 인간으로 만드는가'를 잘 마무리지었다는 점에서 탁월했다고 본다.
꼼꼼한 연출
영화를 보면 잊히지 않는 장면이 몇 개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극초 반부에 마고가 요리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냥 요리하는 장면 아닌가?'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이 왜 나에게 임팩트가 있었는지는 끝까지 보신 분들은 이해할 것이다. 또 'video kill the radio star'라는 노래 가사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이 음악의 활용도 탁월했다. 그리고 중반부에 조명을 왔다 갔다 하는 신이 있다. 이 장면은 두 번 반복해서 나타나는데, 색감을 활용한 방식이나 미셸 윌리엄스의 연기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연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빠져선 안 되는 장면이 있다. 하이라이트 신이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이 정도로?'싶었지만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엔딩이었다는 것에는 여지가 없다. 영화를 보며 관객이 느꼈을 감정을 그 찰나에 모두 압축시킨 훌륭한 장면이었다. 아. 이들과는 별개로 영화 자체의 색감이 잘 빠진 편이라 보기 편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사랑 잘하는 데에 나이가 어디 있겠냐만은
뭐 나이 먹었다고 해서 똥차 만나지 말라는 법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말 인격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구린 사람 만나서 연애할 수도 있다. 그게 뭐 비단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명제들을 분명히 잘 알고 있지만 이 영화는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래야 하지 않았나'하는 미련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 그 사람과 헤어질 걸. 그 사람 잡았어야 했나.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런 아쉬움이 사람의 마음에 깊게 남아있다. 영화는 이 아쉬움을 갖고 있는 이들을 위한 큰 한방을 준비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왈츠 속에 산다 하더라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지금 내가 서 있기 위해 어떤 것이 소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다. 우리는 이 덕에 행복한데 이것을 잊고 살다 간 인생이 파는 같은 함정 속에서 놀아나는 꼴이 아닐까 싶다. 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러려니 잊어버린다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삶의 루틴 속에 미친놈마냥 나이 들다 가는 거겠지.
사랑일까? 묻지 마라. 삶은 그게 '사랑이 맞다'라고 진작에 답을 내렸다. 그리고 다 알고 한거잖아? 뭔가 새로울거라 생각해서.
#왓챠영화추천 #넷플릭스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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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5월 셋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오늘 최고 기온은 30도로 굉장히 무더운 날씨를 보인다고 합니다.오늘뿐만 아니라 이번 주부터 기온이 오르니 더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영화 <범죄도시2 >의 개봉 주 주말의 관객 수'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범죄도시2> (▲1)▶ 프리미어 유료 상영회만으로 2위를 차지했던<범죄도시2>가 5월 셋째 주에는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범죄도시2>는 <기생충> 이후 최단 흥행 기록을 경신하며 극장가 부활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주말 동안 (5월 20일~5월 22일) 관객 수 253만 4,131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55만 809명을 돌파하였습니다.2.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1)▶ 아직 개봉 전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였는데요.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닥터 스트레인지 속편이 <범죄도시2> 개봉과 동시에 한 단계 하락해 2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주말 동안 (5월 20일~5월 22일) 관객 수 32만 8,08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47만 2,095명을 돌파하였습니다.
3. <배드 가이즈> (-)▶ 개봉 4주차임에도 불구하고 박스오피스에서 순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배드 가이즈>!
주말 동안 (5월 20일~5월 22일) 관객 수 3만 5,94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7만 5,404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01회 예측 이벤트는 5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유저분들이 예측해주신 영화 <범죄도시2> 의 5월 20일, 5월 21일, 5월 22일의 관객 수 스코어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범죄도시2>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60%, 여성 40%로 남성이 더 높은 비율을 가진 걸 알 수 있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30대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20대가 아주 살짝 낮은 비율인 3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범죄도시2>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13세 미만 여성(2,100,000명)과 20대 초반 여성(1,171,469명)이었습니다.
또한 <범죄도시2>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0.5%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범죄도시2>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극장판 엉덩이 탐정: 수플레 섬의 비밀> (▲1)▶ <극장판 엉덩이 탐정: 수플레 섬의 비밀>는 4주 동안 박스오피스 순위권을 유지했는데요.
59분으로 짧은 러닝타임과 탄탄한 팬층을 보유했기에 긴 시간 박스오피스 순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말 동안 (5월 20일~5월 22일) 관객 수 8,00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4만 7,17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아치의 노래, 정태춘> (NEW)▶ 정태춘 데뷔 40주년을 맞아 정태춘의 데뷔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가 개봉했습니다.
고영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전 국민이 공감할 만한 영화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정태춘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주말 동안 (5월 20일~5월 22일) 관객 수 6,797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만 4,335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
10대 가수상, 가요 사전심의 철폐운동 그리고 음악시장을 홀연히 떠나기까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노랫말과 서정적인 음율로 시대와 함께한 뮤지션.
데뷔 40주년, 우리가 몰랐던 정태춘의 음악과 삶을 만나다!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3주 연속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가 차지했습니다.
셋째 주 주말에는 총 두 작품이 새롭게 등장했는데요. 바로 2위의 <Downton Abbey: A New Era>, 5위의 <Men>입니다.
<Men>은 올해 국내 개봉 예정이고, <Downton Abbey: A New Era>는 국내 개봉이 불확실합니다.
주말 동안(5월 20일~5월 22일)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의 매출액은 $31,600,000 (한화 약 402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총 누적 매출액은 $342,080,485 (한화 약 4,354억)을 기록했습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5월 6일 ~ 2022년 5월 8일)1.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3,160만 달러 (누적 3억 4,208만 달러)2. <다운튼 애비: 새로운 시대> 1,602만 달러 (누적 1602만 달러)3. <배드 가이즈> 609만 달러 (누적 7,436만 달러)4. <수퍼 소닉2> 394만 달러 (누적 1억 8,100만 달러)5. <멘> 329만 달러 (누적 329만 달러)...씨네픽의 5월 셋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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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 떠내보낸다는 것에 대하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사>는 떠나보내는 것과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렌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영화에선 소마이 신지 특유의 아이가 어른처럼 행동하고, 어른이 아이처럼 행동하며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해체하는 연출과 인물을 정적으로 두지 않고 표정을 찡그리거나, 갑자기 문워크를 하고, 늑대처럼 울고, 특정 언어를 반복시키는 등 묘한 움직임을 이용한 연출이 잘 담겨있다. 이런 연출들은 <이사> 속에서 렌에게 다가온 부모의 이혼이라는 사건을 마냥 비극으로만 보이게 하지 않도록 하는 힘을 가진다.
렌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조명의 바로 밑이자 화면의 가운데인 상석에 있다. 또한 양옆의 엄마와 아빠에게 식재료를 자신에게 이야기했으면 사 왔을 거라는 둥, 생선을 잘 발라 먹으라는 둥 핀잔을 준다. 렌은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아빠와 길에서 복싱 놀이를 하며 상황극을 하고, 옷장에 들어가려는 등 아이 같은 모습도 공존한다. 이는 렌에게만 한정된 모습이 아니다. 엄마는 렌과 외식을 나갔다가 술에 취해 돌아와 바닥을 구르거나, 아기자기하게 꾸민 계약서를 렌 앞에 들이밀며 밤새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빠도 본인의 이사 준비는커녕 렌과 같이 상황극을 하며 놀고, 옷장에 같이 들어가려 하기도 한다. 이렇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해체하는 소마이 신지의 연출은 렌을 부모와 아이가 아닌, 대등한 가족의 한 구성원처럼 받아들여지게 만든다. 렌이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 아이처럼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렌의 고민은 결혼이나 이혼을 고민하는 어른들의 고민과 같은 무게를 가진다. 그래서 렌은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먼저 결정해 버린 엄마와 아빠에게 화를 낸다.
렌의 혼란과 고민은 영화 속에서 주로 색으로 표현된다. 렌의 반 친구가 렌에게 이혼을 막기 위해 이런 일을 하라고 조언해 주는 장면, 렌의 반 친구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는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알파벳이 파랑, 빨강, 노랑, 초록으로 나타나 있다. 이 장면과 첫 장면을 연결해 엄마와 아빠가 각각 왼쪽, 오른쪽에 있었고 그 가운데에 렌이 위치해 있던 것을 티셔츠에 대입한다면 엄마와 빨강, 아빠와 파랑, 렌과 노랑, 초록이 연결된다. 이렇게 부여된 색은 렌의 혼란스러운 여정에 함께하며 렌의 감정을 보여주고, 성장을 함께한다.
첫 번째로 렌의 의상은 엄마와 아빠의 의상에 비해 변화가 잦고 비교적 차분한 색을 입고 등장하는 부모님과 달리 사용되는 색의 스펙트럼이나 무늬도 넓다. 처음의 쨍한 연두색에서 노랑, 빨강, 과일이 그려진 흰 원피스 등 색이 옅어지기도 하고, 무늬가 생기기도 하며 계속 달라진다. 이혼 소식을 듣고 계속 갈팡질팡하는 렌의 감정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다.
두 번째로는 불과 비이다. 아빠의 이사한 집에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태우고 있는 아빠를 돕던 렌은 가족사진이 타자 빨리 꺼내라며 아빠를 재촉하며 사진에 붙은 불을 끈다. 가족사진을 태우는 불처럼 이혼은 렌에게 가족을 태우는 불과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아빠가 필요없는 물건을 태웠던 것처럼 엄마와 아빠에겐 이미 필요 없는 것들을 태울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렌이 사진에 붙은 불을 두고 볼 수 없었듯 렌에게는 불태울 시간이 필요하다. 과학실 장면에서 이혼한 아이와 어울린 것으로 친구들에게 추궁을 당하던 렌은 알코올램프를 과학실 책상에 떨어뜨린다. 렌은 엄마와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불태워보려 하지만, 선생님이 불을 끄고 렌을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오며 제대로 불태우지 못한다. 그러던 렌은 부모님과 함께 호수로 여행을 가고, 축제에서 볏짚을 태우는 광경을 뚫어져라 보며 점점 그 불에 다가가려 하지만 축제를 진행하던 사람들에게 위험하다고 제지당한다.
영화에서 비가 오는 장면은 이삿짐이 가득한 캄캄한 방 안에서 의자에 앉아 비오는 바깥을 바라보는 아빠의 뒷모습이 나오는 장면과 잠에서 깬 렌이 비오는 밖을 바라보며 장마가 싫다고 말하는 장면이 첫 번째, 같은 반의 이혼한 친구와 장을 본 후 언덕길에서 짐을 나르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두 번째이다. 푸른 색채로 묘사된 비를 바라보는 아빠의 뒷모습과 비를 맞으며 자신의 아빠가 다른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는 이야기하는 친구의 장면을 볼 때 불이 이혼이라면 비는 그 후의 변화 정도로 연결된다 볼 수 있다. 불처럼 비 또한 렌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나, 렌은 장마가 싫다고 말하고, 친구를 두고 비를 피해 언덕길을 달려 내려간다.
렌의 여정은 부모님과 함께 떠난 호수 여행에서 종착점을 맞는다. 렌은 여행 내내 흰색의 옷을 입는다. 렌은 엄마와 아빠를 떠나 혼자 축제에서 볏짚을 태우는 걸 구경한다. 이때 불은 사진에 붙은 불과 알코올램프의 불보다 훨씬 거대한 불로, 렌의 흰옷을 불의 붉은 빛에 물들게 한다. 볏짚을 태우던 농가를 떠나 렌은 산으로 이동한다. 토리이 등을 거쳐 가며 산을 걷는 렌은 아빠의 색처럼 푸른 색채로 묘사된다. 렌이 계속 이동함에 따라 주변은 점점 초록빛으로 변하고, 렌은 마지막 장소인 물가에 도달한다. 물가에는 배를 태우는 축제를 하고 남은 천과 장식들이 쌓여있다. 이때 천과 장식의 색은 그간 렌이 거쳐왔던 빨강, 파랑, 초록, 흰색이 모두 담겨있다. 렌은 그곳에서 푸른 물 위에 뜬 불타는 배와 흰옷을 입고 물놀이를 하는 부모님과 자신을 본다. 불과 물이 합쳐진 채 뭍에서 멀어지고, 그 길을 엄마와 아빠도 함께 걷자 어디에 가냐고 물으며 불안해하는 자신을 렌은 육지에서 보게 된다. 렌은 물 안의 자신과 엄마, 아빠, 물을 떠다니는 불타는 배에게 모두 축하한다고 반복해 말하며 물로 들어간다. 렌은 비로소 이전까지의 가족을 떠나보내고 이혼을 축하하며 미래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이사>에는 롱테이크가 많이 쓰인다. 특히 마지막의 롱테이크는 영화의 모든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데, 마지막의 롱테이크에서 렌은 빨강, 파랑과 그 둘을 섞은 색인 보라색을 모두 입고 시작한다. 나무를 지나며 그 옷도 벗어 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렌은 어디로 가냐는 물음에 미래로 간다고 답한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혼란은 렌의 보라색 옷처럼 정리된 감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렌은 새 옷을 입고 과거의 기억들에 인사를 건넬 수 있다. 그리고 렌은 다시 나무를 지나며 그 기억도 떠나보내고 중학교 교복을 입은 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렌이 떠나보낸 것들은 렌의 안에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을 테지만, 밝게 인사했던 렌처럼 슬프게 추억할 필요도, 동시에 계속 떠올려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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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미와 함께하는 롱테이크, 그리고 전쟁의 부조리함
작은 소리에도 쉽게 놀라는 편이기에 전쟁영화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챙겨본다.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군데군데 재밌는 장면을 있으니 말이다. 영화 <1917>은 사람들이 다들 재밌다고, 편집이 너무 잘됐다고 칭찬에 칭찬을 하길래 보았지만, 그렇게까지 엄청난 작품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영화 <1917> 시놉시스
두 명의 병사, 하나의 미션! 그들이 싸워야 할 것은 적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7년. 독일군에 의해 모든 통신망이 파괴된 상황 속에서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에게 하나의 미션이 주어졌다.
함정에 빠진 영국군 부대의 수장 매켄지 중령에게 에린무어 장군의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하는 것! 둘은 1600명의 아군과 블레이크의 형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사투를 이어간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1917>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롱테이크는 나에게 멀미를 선사했지
단 두 번의 롱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한 것처럼 연출한 영화 <1917>. 물론 118분이라는 긴 시간 도안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원테이크로 촬영을 했을리 없겠지만 뭔가 홍보가 그런식으로 이뤄지다보니 어떤 식으로 롱테이크 기법을 구현했을까 궁금했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가 나무를 사이에 두고 지나가거나 큰 건물을 두고 끼고 돌아가거나 스코필드가 강을 빠질 때를 편집점으로 잡아서 한 번도 안 끊기고 촬영을 한 것처럼 굉장히 스무스하게 편집을 잘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블레이크와 스코필드가 적진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관찰자적 시점으로 따라가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근데 이 느낌이 좀 과하게 다가온 듯 싶다. 카메라가 두 인물을 따라가는 컨셉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카메라가 굉장히 많이 흔들렸다.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적합한 방법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영화에 집중을 하다보니 너무 흔들려서 눈이 피로했고, 멀미가 난 작품이었다.
감정 표현에 서툰 것이 캐릭터인가?
블레이크 역을 맡은 딘-찰스 채프먼은 감정 연기가 굉장히 다채로웠다. 삭막한 전쟁 속에서도 웃음을 선사하는 재치있는 유머를 던진다거나 혹은 형이 적의 유인책에 선발대로 갔다는 소식에 형을 살리고자 물불 가리지 않는 행위를 통해서 다양한 감정을 선보였고, 이를 통해 영화 분위기의 완급을 조절해줬다.
블레이크의 다양한 감정표현 덕분에 스코필드의 경직된듯한 태도가 훨씬 빛을 발했다. 하지만 블레이크가 죽고 나서 스코필드 혼자 적진으로 향하는 후반 부분에서는 감정이 크게 드러나는 부분이 없어서 집중도가 훅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 <1917>을 롱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한 이유는 해당 당사자들이 적진으로 넘어가는 과정과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따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캐릭터상 감정 표현을 덜하는 것이 특징인것인지 아니면 배우의 연기력이 문제인 것인지 뭐가 문제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캐릭터의 감정에 크게 공감을 할 수 없다보니 중반 이후부터는 영화를 보는 재미가 똑떨어졌다.
전쟁의 부조리함을 보여주다
영화 <1917>을 보면서 좋게 느꼈던 것은 전쟁의 부조리함이 이곳저곳에서 잘 느껴졌다는 것이다. 특히 비교가 됐던 작품은 영화 <고지전>이었다. <고지전> 역시 소모전의 양상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고지전>에서도 애록고지를 두고 땅 조금 더 가져오겠다고 정전협상 마지막까지 소모전을 강행하듯이 영화 <1917>에서도 땅 몇 평 더 가져가겠다며 소들을 다 죽이고 건물들을 다 태워버린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전쟁은 마지막 사람이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였다. 무언가의 이익을 얻었더라도 마지막 사람이 죽을 때까지 전쟁은 계속된다는 저 신념은 소모전의 폐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사였고, 전쟁의 참혹함과 부조리함을 한 번에 잘 드러낸 대사였다.
잔인하지 않은 전쟁영화라고 해서 개인적으로 기대한 작품이었지만 전쟁영화이기에 잔인함이 없지는 않았던 영화 <1917>. 교묘한 편집점으로 롱테이크를 잘 구현했지만 전체적으로 기대에는 충족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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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사회 현상으로서 비틀스와 나비
시놉시스
<오늘 우리가 했던 말>은 1965년 8월 비틀스가 셰이 스타디움 공연을 위해 뉴욕에 도착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영화의 제목은 현재의 순간이 되살릴 수도 없고, 잊혀지지도 않는 과거가 되는 때를 예견하는 비틀스의 동명의 곡에서 따왔다. 그러나 영화가 사용하는 레퍼런스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진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안드레이 우지커 Andrei UJICĂ
출연: Tommy MCCABE, Therese AZZARA, Shea GRANT, Sarah MCCLUSKEY
리뷰
영화 시작 전 상영되는 짧은 인터뷰에서 안드레이 우지커 감독은 60년대 미국 음악산업에 지대한 타격을 준 British Invasion을 오늘날 K-pop과 비교하며 <오늘 우리가 했던 말>은 비틀즈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비틀즈가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한 영화라고 말한다. 그 말을 반증이라도 하듯, 영화는 시종일관 비틀즈가 아니라 비틀즈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60년대 미국의 사회상을 훑는다. 뉴욕이 마비될 정도로 도로를 꽉 채운 사람들과 흥분을 이기지 못해 내지르는 고성들이 뒤섞인 호텔 앞은 가히 아수라라 불러도 좋을 정도다. 마치 소요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듯, 정제되지 않은 푸티지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유령처럼 언뜻 내비치는 인물화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프랑스 예술가, 얀 케비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10대 시절의 제프리(시인 제프리 오브라이언)와 주디(소설가 주디스 크리스틴)다.
영화는 제프리를 가이드 삼아 64년 비틀즈 방미 당시 뉴욕의 들뜬 분위기를 서술한다. 현실에 환상을 한 겹 덧씌운 영화 속 뉴욕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시원한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 공원에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해변에는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한가로히 햇볕에 취해있다. 그러나 관객은 곧 그러한 평화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 깨닫게 된다. 공원에서는 오직 (백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해변에는 수영복을 입은 (백인)들만 한가로히 햇볕에 취해있다. 감독은 이러한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모래 위에 빽빽하게 누워있는 백인들 사이로 수영하러 나온 흑인 모자를 비춤으로써 되묻는다. 뉴욕에 거주하는 수많은 유색인종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뒤로 이어지는 영상들-LA 흑인 폭동과 할렘의 거리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흑인 차별에 대해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프랑스, 어쩌면 알제리인의 인터뷰-은 관객 입장에서 다소 당황스러운 장면 전환이다. 이후로도 주디가 친구들과 부르는 비틀즈 팬송 외에 비틀즈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이거, 비틀즈에 관한 영화 아니었나? 팸플릿의 시놉시스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질 즈음, <오늘 우리가 했던 말>은 다시 비틀즈 공연장으로 향하는 제프리와 주디의 여정을 좇는다.
오프닝 시퀀스의 라디오 스테이션은 계속해서 지금이 1964년임을 알리고, 주디는 비틀즈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친구들과 뉴욕 세계박람회(64년도 세계박람회의 주제는 '평화를 통한 이해'였다)를 구경한다. 영화는 끝까지 이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1964년은 비틀즈가 미국 대중음악계 최초로 공연장의 인종 분리를 철폐한 해이다. 1964년 9월 비틀즈는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잭슨빌 게이터볼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앞두고 인종이 분리된 상태로는 절대 공연하지 않겠다며 인종분리 정책에 완강히 반대했고, 결국 유색인종과 백인이 분리되지 않은 최초의 공연이 시행되었다. 비틀즈는 이후로도 공식적으로 미국의 민권법을 지지하며 6-70년대를 지배한 히피-반문화를 촉발시켰다.
비틀즈뿐만 아니라 30년대 재즈부터 50년대 엘비스까지 음악은 언제나 사회적 장벽을 부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영화 초반에 삽입된 할렘 캬바레 장면은 대중문화가 지닌 사회적 힘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무대 위에서 미친 듯이 춤추는 흑인들 사이로 언뜻언뜻 백인들이 그들과 함께 춤과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통해 관객은 음악이 지닌 인류 보편의 환희와 즐거움을 체득한다. 제프리와 주디가 써내려 간 이야기에는 계속해서 나비가 등장한다. 변태하는 존재로서 나비는 새로운 시작과 변화를 상징한다. 우지커 감독은 "한쪽은 흰색의, 한쪽은 유색의 날개를 가진" 나비떼가 솟구쳐 오르는 이미지를 비틀즈의 공연장 영상에 접붙임으로써 음악을 통한 평화의 연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상영스케줄
2025.05.01(목) CGV 전주고사 1관 20:30 (상영코드:162)
2025.05.03(토) CGV 전주고사 2관 13:30 (상영코드:325)
2025.05.05(월) CGV 전주고사 2관 10:00 (상영코드:504)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2025.04.30~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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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백스피릿> 공식 예고편
"도수가 좀 높은데 괜찮으시겠어유?" 한국 최고의 셀럽들 X 백종원의 인생 한잔! 맛있는 대화에 취하는 순간 《백스피릿》,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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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경관의 피> 15초 예고편
출처불명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고 고급 빌라, 명품 수트, 외제차를 타며 범죄자들을 수사해온 광역수사대 반장 강윤의 팀에 어느 날 뼛속까지 원칙주의자인 신입경찰 민재가 투입된다. 강윤이 특별한 수사 방식을 오픈하며 점차 가까워진 두 사람이 함께 신종 마약 사건을 수사하던 중 강윤은 민재가 자신의 뒤를 파는 두더지, 즉 언더커버 경찰임을 알게 되고 민재는 강윤을 둘러싼 숨겨진 경찰 조직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