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9-11 14:33:01
9월 2주차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유재선 감독의 입봉작 <잠> 개봉 첫주 1위,<오펜하이머>는 300만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북미박스오피스에선 더 잔인하고 무섭게 돌아온 <더 넌2>가 1위를차지했다고 합니다.
9월 2주차 주말 박스오피스 누적관객수와 분석까지 함께하실까요?✍�
[국내 박스오피스]
유재선 감독의 영화 <잠>이 개봉 첫 주 주말에 3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을 몰고 있는데요.누적 관객 수 53만 명으로 주말 관객 수 13만 명을 모은<오펜하이머>를 밀어내고 1위에 올라서는데 성공하였습니다.<오펜하이머>는 누적 관객 수 299만 명으로 3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 뒤로 <콘크리트 유토피아>와<달짝지근해: 7510>은 각각 3위와 4위에 올라섰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스크린 테스트 이후 추가 촬영으로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으로 바뀐 <더 넌2>이 매출액 3260만 달러를 기록하며 <이퀄라이저3>를 밀어내고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습니다. <컨저링3>를 연출한 마이클 차베즈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1956년 프랑스 한 성당에서 신부가 죽은 채 발견되고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아이린 수녀가 의문의 사건을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국내 개봉은 오는 27일에 공개됩니다.
Relative contents
-
- 시대의 불안을 넘어선 찬란한 10대의 시간
관객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그 진원지는 다름 아닌 <해피엔드>. 지진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은 물론, 저항심 가득한 10대의 마지막을 다루는 영화는 계속해서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청춘을 대변하는 반항과 자유의 에너지가 이곳저곳에서 뿜어지고, 이를 더 극대화하려는 듯 사회의 억업과 차별, 인권 침해 등의 강도를 세게 가져가는 이 작품은 마음을 흔드는 것도 모자라 테크노 사운드가 이끄는 비트로 계속해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그리고 향수 어린 씁쓸함, 그럼에도 피어나는 희망이란 여진을 잊지 않고 전하며 끝내 벅차오름을 전한다.
근미래지만 현재처럼 보이는 도쿄. 공부보다 음악이 좋은 유타(쿠니하라 하야토)와 불알친구 코우(히다카 유키토), 그리고 음악 동아리 친구들은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밤, 학교에 잠입한 이들은 일생일대의 장난을 친다. 교장이 애지중지하는 노란색 스포츠카를 세워 놓은 것. 이후 학교는 발칵 뒤집어지고, 범인을 잡고 싶어 안달 난 교장은 AI 감시 체제를 도입한다. 학생 인권이 무시된 이 일 이후, 유타와 친구들은 점점 그들이 원했던 자유와 멀어진다. 이 상황에서 재일한국인 4세인 코우는 비로소 불합리한 세상에 눈을 뜨고, 절친했던 유타와의 관계는 멀어진다.
| 붉은빛의 실체는?<해피엔드>의 중요 키워드는 균열이다. 극 중 지진으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관계가 갈라지는데, 중요한 건 이 균열이 잉태하는 것이다. 바로 불안. 내가 딛고 있는 이 땅과 그동안 맺어왔던 관계가 끊어진다는 그 불안은 시나브로 영혼을 잠식해 버린다. 영화는 이 과정은 물론, 이후 두 주인공이 개인과 사회의 불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이에 대한 힌트를 첫 장면에 배치한다.
영화의 시작은 붉은빛들의 일렁거림이다.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관객은 서서히 그 불빛의 근원지를 알게 된다. 바로 건물 옥상에 설치된 점멸등이다. 야간이나 안내, 비, 눈이 많이 오는 경우 비행 물체가 건물을 인지하도록 표시하는 빛인데, 이 장면에서는 위험 신호로 보인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불안 요소들이 즐비한 일본 사회가 더 큰 문제로 빠질 수 있다는 경고등인 셈. 억압과 혐오 등으로 점철된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리는 영화는 이를 방증한다.
또 하나는 두 10대 소년의 시선과 이들의 미래다. 아름다운 불빛이 건물의 점멸등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은 다양한 사건을 겪으며 더 넓어진 주인공들의 시선처럼 보인다. 그동안 아름답게만 보였던 세상(붉은빛)의 진실(건물의 점멸등)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20대가 되기 전인 10대의 마지막 시기에 두 소년의 변화하는 시선을 상징하는 듯한 이 장면은 영화가 끝난 후 재차 곱씹게 된다.| 흔들린다! 땅도, 사회도, 관계도
극 중 지진을 통한 균열은 땅은 물론, 사회와 관계를 뒤흔든다. 감독은 이 균열의 틈 사이로 비집고 올라오는 것들을 주목한다. 학교 내 지진이 발생한 이후 교장의 자동차가 크게 망가지는데, 이를 빌미로 교장은 AI 감시 시스템을 도입한다. 도에 지나친 장난일 수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게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벌점을 부여하는 시스템인 것은 너무 과한 처사다. 교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보금자리였던 음악 동아리방을 빼앗고, 일본인만 참여할 수 있는 자위대 관련 설명회를 열며 다른 나라 출신 학생들을 보란 듯이 차별한다.
영화는 학교라는 주요 공간을 일본 사회로 연결시켜,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불안을 미끼로 전체주의적 사고를 넓혀 이를 권력화하는 교장과 그를 추종하는 선생들의 모습은 마치 일본 내 우익 세력처럼 느껴진다.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행동의 당위성을 찾는 이들은 나라를 위해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과거 군국주의 일본 수뇌부들과 오버랩된다.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TV를 통해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총리의 모습, 이를 통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데모 현장을 그리며, 혼란스러운 일본 사회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환경 속에서 10대 끝자락에 놓인 주인공들의 관계는 흔들린다. 특히 코우와 유타는 서로 대척점에 서는데, 같은 나이, 같은 교복, 같은 취향을 가진 이들이지만, 그동안 이들이 인지하지 못했던 진실(국적 등)들이 올라오면서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위치에 놓인다. 다른 동아리 친구들도 각자의 길을 떠날 계획을 앞둔 상황. 이 사실이 가진 불안감에도 10대의 마지막까지 친구로 지내며 서로 웃고, 울며, 모든 에너지를 발산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리고 불안함 속에서도 진실을 향해 손을 뻗고 행동하며 성장하는 이들의 변화는 그 자체로 긍정성을 전한다.후반부 이 변화의 힘으로 교장과 충돌하고 불합리함을 바로잡는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누구나 관통했던 시기였지만,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을 사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아련함도 느껴지는데, 엔딩에서 유토와 코우가 헤어지는 뒷모습을 정지 화면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올해 최고의 엔딩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 네오 소라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해피엔드>의 원래 제목은 ‘지진’이었다. 너무 직접적인 제목이라 <해피엔드>로 바꿨다는 감독은 극중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보여주는 ‘엔드’와 이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우정을 쌓는 이들의 감정인 ‘해피’를 접목했다고. 이 이질적인 두 단어가 착붙하며 멋진 엔딩까지 보여주는 영화의 힘은 차세대 일본 감독인 네오 소라에게 기인한다.
姑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들인 네오 소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콘서트 필름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로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는 등 한창 주목 받는 감독이다. 일본보다 해외에서 더 오래 살며 제3자로서 본국을 바라보는 그의 객관적 시선은 영화를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더불어 자신의 경험은 물론, 일본 내 벌어지는 사회 문제를 극영화로 잘 담은 연출력은 첫 장편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등 일본 영화 산업에서 긍정적(?) 균열을 일으키는 장본인답다.
연출과 더불어 영화의 매력에 영향을 주는 건 음악이다. 지진의 진동처럼 인물들의 마음속 비트를 일깨우는 테크노 사운드는 물론, 클래식 영화 작곡부터 테크노, 엠비언트 뮤직 등 다방면의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이는 리아 우양 루슬리의 음악도 한몫한다. 그는 '젊음에 대한 향수'와 '언젠가는 세상의 억압과 마주해야만 한다는 느린 깨달음'을 OST의 주요 테마로 잡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맞춰 유토와 코우의 만남처럼 피아노 멜로디와 신시사이저 사운드의 절묘한 만남으로 탄생한 곡들은 영화의 매력을 살린다. 특히 오프닝, 클로징 테마는 무조건 강추다.영화의 제목처럼 유토와 코우의 작별은 ‘해피엔드’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작별 이후 이들은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시절을 관통한 각자에게 물어보면 다 알 것이다. 당시에는 죽고 못 살았던 친구들이 지금은 그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건 본인뿐만은 아닐 터. 하지만 그 순간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 균열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연히 과거의 친구를 만난다면 겨드랑이를 꼬집으며 말하고 싶다. 이게 우리의 해피엔드라고. 그리고 고맙다고.
사진제공: 영화사 진진
평점: 4.0 / 5.0
한줄평: 시대의 불안을 넘어서는 찬란한 10대의 시간
-
- 언제까지 피해자가 조심하면서 살아야 되는가
영화 ‘걸캅스’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직접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동의 없는 동영상 촬영은 물론이고 그 동영상을 보고, 공유한 사람들 모두 처벌 받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한때 리벤지 포르노로 불리던 디지털 성범죄의 역사는 우리 생각한 것보다 꽤 깊다. 그 오랜 시간 속에 피해자들은 도움을 요청하기를 어려워하고, 가해자가 처벌 받은 경우는 미미할뿐더러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생활한다.
나는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고 그 발달 속에서 많은 편의를 누리고 살았으나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이런 끔찍한 범죄로 인해 피해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으로 여기고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영화를 볼 때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은 그저 일상을 즐기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던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불법촬영물과 이것을 공유해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장면이었다. 만약 등장인물인 미영과 지혜, 그리고 다른 여성 경찰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피해자의 존재는 잊혀진채 가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를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다.
개인적인 공간인 화장실에서 조차 혹시 불법촬영물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상황이 아니라 편하게 볼 일을 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일상적인 부분조차 포르노로 소비되고 있는 사회에서 지켜져야 할 것은 이런 불법촬영물에 대한 규제를 더욱 명확히 해서 엄벌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규제가 없다면 가해자가 유포한 불법촬영물이 온라인 상에서 공유되는 동안 피해자는 불안에 떨며 살고 있을 것이고 이걸 본 누군가는 그런 행위를 모방하여 또 다른 범죄를 양산하게 되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죽어도 음란물은 죽지 않는다”는 이수정 교수님의 말처럼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으려면 이것을 처벌하고 예방할 수 있는 관련 법들을 만들어야 된다. 나는 이런 성과 관련된 범죄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온전히 존중 받고 보호 받아야 되는 '성'이라는 개념이 상품처럼 사고 파는 개념으로 인식 되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성범죄 문화를 근절할 수 있도록 죄를저지른 가해자가 그에 마땅한 벌을 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
- [SIWFF 데일리] 질타의 행방,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 그리고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연애편지 (1953)Love LetterSYNOPSIS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온 레이키치는 일본 여성들이 미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번역하는 일을 하며, 한편으로 잃어버린 옛 연인을 찾고 있다. 일본의 대배우 다나카 기누요의 연출 데뷔작으로,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여성의 시선으로 담고 있다.감독TANAKA Kinuyo(다나카 기누요)출연MORI Masayuki(모리 마사유키), KUGA Yoshiko(쿠가 요시코), MICHISAN Shigesan, UNO Jukichi(우노 쥬키치), KAGAWA Kyoko(카가와 쿄코), SEKI Chieko(세키 치에코)1:1 정방형의 프레임을 영화관에서 본 건 오랜만이었다. 첫 장면은 일본어가 수 놓인 종이와 한 송이의 꽃. 컷을 바꾸어가며 글자와 꽃의 위치가 오묘하게 바뀌다가 꽃은 점점 그림자로 변해갔다. 꼭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처럼. 컷이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 내내 흐르던 서정적인 멜로디가 사라지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스포일러 있습니다.번듯한 차림새의 남자. 바삐 어딘가로 향하는 발걸음이 익숙해 보였다. 아주 잘 아는 길을 습관처럼 걷는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 도착지는 집이었다. 번역가로 일하는 자신의 형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장 그의 손에 일감을 쥐어준다. 방 안에서 번역 일만 하느냐는 가벼운 타박에 멋쩍게 웃는 남자, 레이키치는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인다.그에겐 작은 방이 생활 반경 전부일 것 같았는데 곧, 변화가 생겼다. 친구의 제안으로 이제는 논문 같은 서적이 아니라 편지글 번역을 맡는다. 어디에서 어디로 부쳐지는 편지인가 하면, 미군과 사귀는 여성들의 재촉과 질타 따위를 영어로 보내는 일이다. 대개 양육비를 제때 내지 않는 등 벌인 일을 책임지지 않은 것에 화를 내는 편지였다.여기서 주목할 건 질타의 방향이다. 1953년 영화인만큼 시기상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 된 일본과 일본의 적국인 미국. 십 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니 오묘한 감정선을 타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의연하다. 편지 번역을 의뢰한 여성의 한숨 섞인 말에도 레이키치는 헤실대는 웃음이 전부였다. 전후의 분위기가 담기지 않은 걸까, 혹은 일이기 때문에 감정의 분리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사람이 의연한 걸까.약간의 의구심을 일으킨 채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바로 미치코.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치코의 목소리였다. 마유키는 곧장 밖으로 뛰쳐나가 미치코를 찾는다. 하지만 이미 그가 떠난 후였다. 온화한 미소와 점잖은 말씨, 그리고 묘하게 기품 있는 지적인 레이키치의 모습이 한 번 깨진 순간이다. 레이키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는 사람, 그것도 오래 기다려왔던 미치코라는 걸 알게 된다.미치코는 이혼 후 혼자 지내고 있는데 레이키치는 자신의 첫사랑인 미치코를 잊지 못해서 주변의 재촉과 물음에도 시종일관 웃음으로 대응하며 그를 기다려 온 것이다. 지극한 순애보라고만 볼 수 있을까. 이 모든 건 레이키치의 생각이자 바람이고, 자신이 타인에게 관철시키고 싶은 뜻일 뿐. 다만 지식인처럼 보이는 번듯한 겉모습에 그의 요상스러운 집착은 그럴싸하게 포장된다.두 사람은 결국 조우하고, 서로에게 조심스레 다가가면서 레이키치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레이키치는 그렇게 그리던 미치코를 단 한 번에 내팽개친다. 미군에게 편지를 보내려는 의뢰인으로 미치코가 나타난 것이다. 레이키치가 상대했던 여성 의뢰인들은 대개 미군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던 여성이었으므로 그가 꿈에 바라던 '순결한' 미치코는 영영 사라진 것이다.레이키치 마음 한 편에 있던 아이러니가 그제야 가시화된다. 미군에게 보내는 편지는 사실 책망과 불안이 뒤섞인 내용이어야 한다. 양육비는 결국 생활에 필요한 최소 비용의 일부이자 무엇보다 미군이 벌인 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므로. 회유나 설득으로 점철되어야 할 언어는 레이키치의 손을 거쳐 로맨틱한 것, 그러니까 '연애편지'로 왜곡된다.그 여성들이 바라는 건 다정한 말을 속삭이는 연애가 아니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경고이지. 그러나 와 편레이키치지의 수신인들에겐 상냥한 말씨로 다정히 말하는 '여인' 쯤으로 다가올 뿐이다. 승전국과 패전국 사이의 위계가 미군-일본 여성부터 일본 내 남성 지식인-하층 여성으로 확장되어, 영화에서는 개인의 모순으로 드러난다.미치코는 자신은 그들과 다르며, 미군과는 진지한 만남을 가진 것이지 몸을 판 게 아니라고 그의 오해를 풀고자 한다. 영화는 그의 말이 변명인지 해명인지 파헤치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듯 미치코의 진위여부는 조명하지 않는다. 대신 레이키치의 동생을 내세워 한쪽에서는 설득과 거절을 반복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상황 설명과 이해를 표하려 한다.끝으로 치닫은 영화는 다시금 우연을 활용한다. 미치코와 레이키치의 재회가 그랬던 것처럼. 미치코를 자신들과 동류라고 말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고, 힘겹게 그들을 뿌리쳐 낸 미치코와 레이키치의 동생. 미치코는 자신의 억울함을 표명한다. 동생은 이에 동조를 표하고, 레이키치는 미치코와 대화를 하고자 그의 집에 찾아간다. 그를 '용서'할 가능성을 생각하며.레이키치의 행태는 볼수록 아리송했다. 과연 이 남자가 느끼는 배신의 근원이 뭘까? 미치코가 '미군'과 얽혀있어서 그 자신의 애국심을 무한히 발휘한 것일까, 혹은 '순결함'을 잃었다는 생각에 분노를 느낀 것일까, 둘 다일까. 한 사람의 명확한 계기는 알 수 없으나, 분노의 감정이 치솟은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이, 그리고 사회가 규정한 올바르고 좋은 상태의 여성을 자신이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상정했고, 이를 타인에게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자신만의 판타지를 견고하게 만들었으며, 이를 현실로 소유하고자 했음을.이러한 꽉 막힌 시선에서 벗어나는 건 어째서 또 다른 고통뿐인지. 또 '우연한' 교통사고로 미치코는 레이키치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병원에 실려간다. 이윽고 전보를 받은 레이키치 또한 병원으로 향하는데, 차 안에서 그의 친구가 말했다.일본인 모두 전쟁에 책임이 있어.전쟁이 끝난 뒤 다들 힘들게 살고 있는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어?이야말로 영화 전체, 특히 레이키치를 꿰뚫은 말이다. 대체 누가 누구를, 무엇을 근거로 탓하는가? 레이키치 자신이 참전군인이라고 해서 자신의 기준대로 타인을 재단할 순 없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한 채 더 약해 보이는 존재에게 화풀이하는 꼴이다.전쟁은 끝났는데 왜 홀로 전쟁 속에 갇혀있는가.Schedule in SIWFF2022-08-27 | 20:30 - 22:05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1관2022-08-30 | 13:30 - 15:05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MX관서울국제영화제 SIWFF8/25(THU) ~ 9/1(THU)
-
- 극장에서 만나는 제75회 칸영화제 화제작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제75회 칸영화제 화제작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칸영화제는 매년 5월, 프랑스의 남부지방 칸에서 열리는 영화제로 국제 영화제의 메카라 불리는 영화제입니다.
제75회 칸영화제는 <헤어질 결심>, <브로커>, <헌트> 등 쟁쟁한 경쟁작들로 화제를 모았는데요.
제75회 칸영화제의 주요 부문을 수상한 수작 3편을 5월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어떤 영화들인지 한번 살펴볼까요?
클로즈
ⓒ 네이버 영화장르: 드라마
감독: 루카스 돈트
출연: 에덴 담브린, 구스타브 드 와엘 등
개봉: 2023년 5월 3일
러닝타임: 104분
CINE PICK!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클로즈>는 오스카, 골든글로브 등 전 세계 48관왕, 62회 노미네이션 되며 현재까지도 수상 기록을 꾸준히 경신하고 있습니다. <클로즈>는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며, 자신의 자전적 이이기에서 출발하여 진정성 넘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클로즈>는 5월 3일 개봉을 하였고, 개봉 당일에 독립·예술영화 동시기 개봉작 예매율 1위와 독립·예술영화 동시기 개봉작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루카스 돈트 감독은 자신과 같이 변화와 혼란의 시기를 거쳐왔을 모든 관객들을 위로하며 “한 시절 누군가의 다정한 친구였을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전하였습니다. Time Out에서는 <클로즈>를 '<400번의 구타> <보이후드>가 자리한 영화의 신전에 이 아름다운 영화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며 극찬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토리와 로키타
ⓒ 네이버 영화장르: 드라마
감독: 뤽 다르덴, 장 피에르 다르덴
출연: 파블로 실스, 졸리 음분두 등
개봉: 2023년 5월 10일
러닝타임: 89분
CINE PICK!
영화 <토리와 로키타>는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역사상 최초 75주년 특별기념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영화 <토리와 로키타>를 연출한 다르덴 형제 감독은 <로제타>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아들>, <더 차일드>, <로나의 침묵>, <자전거 탄 소년>, <소년 아메드>까지 다양한 작품들로 칸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칸이 사랑하는 거장 감독으로 우뚝 섰습니다. <토리와 로키타>는 칸영화제에서 상영 후 10분 간의 기립 박수와 더불어 해외 매체의 뜨거운 극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토리와 로키타>의 두 주연 파블로 실스와 졸리 음분두는 첫 스크린 데뷔작으로 수많은 오디션 참가자들 중에서 다르덴 형제 감독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으며 캐스팅되었다고 합니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이 토리와 로키타의 친구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목적은 영화에서 친구인 두 외국 아이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영화에서 메인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둘 사이의 우정이고, 빛이다. 모두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토리와 로키타를 친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습니다. 영화는 개봉 전 CGV 아트하우스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흥행 청신호를 밝히고 있습니다.
슬픔의 삼각형
ⓒ 네이버 영화장르: 코미디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
출연: 우디 해럴슨, 해리스 딕킨슨, 찰비 딘 크릭
개봉: 2023년 5월 17일
러닝타임: 147분
CINE PICK!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2023년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으며, 국내 영화제인 제10회 마리끌레르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슬픔의 삼각형>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2017년 <더 스퀘어>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후, 5년 뒤인 2022년, 다음 작품인 <슬픔의 삼각형>으로 연이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칸영화제 최고상을 2회 수상한 역대 9번째 감독이 되었습니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어른들을 위한 롤러코스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재밌고 도전적이면서, 영화관에서 꼭 봐야 하는 영화를 원했죠. 끝나고 나서 할 얘기가 있는 영화를요”라는 말을 전한 바 있습니다. 포보스 선정 '올해 가장 웃긴 영화.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라는 평이 공개되며 화제를 모은 <슬픔의 삼각형>은 국내 관객들로부터 '진짜 재미있다'는 열광적인 반응을 얻으며 17일 개봉을 앞두고 라스트 프리미어를 추가 확정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
- 차린 건 많지만 먹을 건 별로 없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이한별/나나/고현정). 그녀에게는 비밀이 있다.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성인 방송 BJ로 활동한다는 것. 그녀가 마스크를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외모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함이다. 외모 때문에 연예인이라는 어린 시절 꿈도 포기해야 했던 그녀. 짝사랑하는 직장 상사 '박기훈'(최다니엘)에게도 무시당하는 모미는 인터넷 방송에서 자기 몸매와 끼를 뽐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어느 날, 모미는 회사에서 박기훈과 막내 여직원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다. 이를 이용해 짝사랑을 이루고 질투심을 해소하려던 그녀. 하지만 그녀의 정체를 아는 동료 '주오남'(안재홍)과 엮이기 시작하면서 그녀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이에 그녀는 주오남과의 문제를 해결하고, 얼굴을 바꿔 새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주오남의 엄마 '김경자'(엄혜란)가 그녀를 추적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마스크걸>, 주객이 전도되다
한국 사회에서 외모지상주의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취업, 연애, 결혼 등 인생의 고비마다 외모가 발목을 잡는다는 경험담은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미디어 역시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의 외모지상주의를 고발하는 작품은 장르를 불문하고 꾸준히 제작됐다. 멀게는 <미녀는 괴로워>부터 가깝게는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여신강림>, 그리고 <기기괴괴 성형수>에 이르기까지.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영상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김용훈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 드라마는 한 여성의 비극을 통해 외모지상주의 폐해를 고발하려 한다. 하지만 <마스크걸>은 절반의 성공이다. 총 3부, 130회에 이르는 웹툰을 410분, 7화 분량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주객이 전도됐기 때문이다.
피카레스크 구성으로 일군 절반의 성공
시작은 인상적이다. 전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처럼 각 중심인물 별로 에피소드를 분배한 선택이 적중했다. 옴니버스 구성, 특히 피카레스크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낸 결과 캐릭터의 동기와 선택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특히 김모미와 주오남, 김경자 중심으로 펼쳐지는 1~3화의 몰입력은 강력하다. 사실 김모미나 주오남은 일반적인 인물이 아니다. 외모로 인한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 마스크걸을 향한 집착은 극단적인 설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가 두 인물의 시점에서 같은 사건을 보여준 덕분에 자칫 지나치게 만화적일 뻔한 캐릭터에게 공감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
이에 더해 사건의 발단을 맡은 주오남은 물론,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김모미와 김경자의 서사는 유기적으로 얽혀 진행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빠져나갈 수 없는 악연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 장점은 1~3화의 특징 덕분에 더 눈에 띈다. 뒷 에피소드와 달리 도입부는 세 인물의 갈등과 조합이 두드러진다. 같은 사건을 상이한 시점에서 보거나, 시간대가 곧장 이어지는 에피소드이므로.
무너지는 성공 방정식
하지만 중반부부터 <마스크걸>의 성공 방정식은 독이다. 옴니버스, 피카레스크 구성은 필연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형식은 한 가지 공통 주제나 소재를 중심으로 연관이 없을지도 모르는 여러 이야기를 엮는다. 각 에피소드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캐릭터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묘사한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서사의 연결성이 약해져서 전반적인 디테일이나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마스크걸>의 각색은 옴니버스 구성의 약점을 극대화해 버렸다. 드라마를 7부작으로 구성하면서 원작 내용은 다수 생략됐다. 특히 원작의 1부와 3부 내용에 비해 2부 분량이 대폭 줄었다. 여기에 옴니버스 구조의 특징이 더해졌다. 도입에서 결말로 넘어가는 중간 과정의 디테일이 부재하고, 모미의 행적이 매끄럽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네 번째 에피소드가 문제다. 김춘애에게 초점을 맞춘 부작용이 크다. 초반부 김모미와 후반부 김모미는 별개의 캐릭터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4화에서 처음 등장한 나나의 김모미는 둘의 가교여야 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드라마는 오히려 춘애의 과거사에 주목한다. 모미는 그녀의 인생에 잠시 끼어든 조연일 뿐이다. 춘애가 중요한 캐릭터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녀는 4화 이후 등장이 없다. 그러니 모미의 변화도, 후반부 그녀의 감정선도 부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그녀가 주오남의 아기를 낳겠다고 말하거나 경찰에 자수한 동기는 이해할 수 있지만, 유추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성형 수술 전과 비교했을 때 감옥 안에서 보이는 모미의 성격이나 행동이 크게 달라진 점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극 중에서는 잠적 후 술집에서 일하기 전까지 그녀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 또 작중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모미는 외견상 전혀 임산부로 보이지 않는다.
장르적 쾌감을 잃다
덩달아 다른 문제가 파생된다. 우선 원작의 장르적 쾌감이 약하다. 따져 보면 작중 등장인물은 누구 하나 정상이 없다. 주인공부터가 악인이다. 김모미는 외모지상주의와 파렴치한 인간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다. 하지만 동시에 명백한 살인범이고 살인미수범이다. 주오남도, 김경자도, 김미모도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이처럼 입체적인 인간이 서로를 비난하며 물고 뜯을 때 군상극, 곧 피카레스크의 재미는 극대화된다.
그런데 <마스크걸>은 장르적 재미를 스스로 포기한다. 일례로 원작에 없는 면죄부가 모미에게 매번 주어진다. 성폭행을 시도하던 핸섬스님은 주오남이 대신 죽인다. 강간범 살해는 자기 방어다. 탈옥은 딸을 구하기 위함이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그녀에게는 늘 정당한 이유가 생긴다. 그 결과 <마스크걸>은 피해자인 주인공이 인생 역경을 극복하는 흔한 감동 스토리로 귀결된다.
감독 전작을 고려하면 군상극을 포기한 결정은 의아하다. 마찬가지로 원작(소설)이 있는 군상극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는 악인들과 그들 사이에 낀 소시민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살렸기 때문. 영화는 등장인물을 '짐승'으로 비유했다. 악인들의 욕망과 비윤리적인 행동을 짐승에 빗대고, 동시에 오직 생존이 목적인 소시민들의 짐승적인 본능도 놓치지 않았다. 이를 보면 감독이 각색 능력이 없거나 극단적인 인물을 묘사하는 데 거부감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마스크걸>의 결과물에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차린 건 많은데 먹을 게 없는
군상극을 포기하자 <마스크걸>이 제시한 여러 사회적 주제도 평면적으로 소비되고 만다. 일단 작품의 핵심 주제여야 할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에는 힘이 안 실린다. 모미의 서사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성형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는 데 실패한 대가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주제의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모미의 성형 이유를 그녀가 겪은 차별에서 찾아야 했다. 그녀는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숱한 모욕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녀가 BJ 활동을 하다가 인생이 꼬인 근본적인 원인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정작 드라마는 그녀가 살인범으로 잡히지 않으려고 성형을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마스크걸'이라는 소재의 파급력도, 성형의 중요성도 약해진다. 고현정의 모미를 굳이 마스크걸이라고 지칭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데서 문제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다른 소재가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도 아니다. <마스크걸>에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 외에도 많은 사회적 이슈가 담겨 있다. 인터넷 방송, 스토커, 몰카, 가정환경의 중요성, 교도소 내 권력 문제... 선악이 공존하는 등장인물의 행동은 도덕적, 종교적 문제로 확장될 여지도 남긴다.
하지만 이 주제들은 극 전반적으로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한 에피소드 내에서의 양념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마스크걸>은 오히려 방향성을 잃는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애매하다. 차린 건 많지만 먹을 게 없는 셈이다.
용두사미로 끝나다
옴니버스 형식의 필연적인 약점. 무리한 축약으로 인한 장르적 재미 감소. 약해진 주제의식. 세 가지 문제가 결합된 결과 <마스크걸>은 용두사미로 끝나고 만다. 독특한 소재를 내세운 도입부와 달리 후반부는 평범하다. 도입부에서 캐릭터에게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 역시 차별점 있는 캐릭터가 없다는 단점으로 돌변한다.
실제로 후반부는 아들의 원한을 갚겠다는 엄마와 딸을 구하려는 엄마의 싸움이 펼쳐진다. 다른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익히 본 신파로 가득하다. 초반부의 기괴한 분위기와 후반부의 전개를 대조하면 이 결말은 더욱 전형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여러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와 다를 바 없는 행보다. 원작과 아이디어는 참신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지탱 못하고 무너진다. <택배기사>나 <종이의 집>,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
그래도 위안이라면 배우 한 명 한 명의 존재감을 뽐내는 데는 성공했다는 점이다. 배우의 연기력만 감상해도 결말까지 정주행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마스크걸>이 데뷔작인 이한별은 원작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며 초반부 눈길을 사로잡았다. 안재홍의 주오남은 괴기한 초반부 분위기를 단숨에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중후반부부터는 엄혜란이 시청자를 빨아들인다. 아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습은 <더 글로리>에 이어서 다시 한번 분위기를 주도하는 존재감을 뽐냈다. 나나와 고현정 역시 각본상 어느 정도 결함이 있는 캐릭터를 맡았지만, 한계선 내에서는 각자 역할을 충실히 다해냈다.
Poor 형편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를 보는 맛에 정주행 한다.
-
- [SICFF 데일리] 우리가 건넨 손길은 상처일까? 위로일까?
[SICFF 데일리] 우리가 건넨 손길은 상처일까? 위로일까?
영화 <손길> 리뷰
감독] 서준용
시놉시스] 다혜는 박차장이 자신을 성희롱 한 사실을 고발하려 한다. 한편, 아들 민찬이 어린이집에서 불미스러운 행동을 한 것을 알게 된다.
#스포일러 주의#동전의 앞뒷면 같은 우리의 기준
단편영화 <손길>은 박차장이 회사를 나오지 않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사건의 당사자인 다혜와 팀장님 뿐이다. 박차장은 사실 다혜를 성희롱하고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전까지 장기휴가에 들어간 상태였던 것이다. 회사에서는 다혜를 불러 참고인조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혹시 그동안 박차장이 회사를 위해 많은 공을 세웠는데 용서를 해줄 생각이 없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다혜를 회유하지만 다혜는 완고하다. 그런 다혜에게 갑작스럽게 박차장이 찾아와 자신의 가족을 생각해달라며 용서해달라고 빌지만, 그러한 모습에 더 치를 떨게된 다혜는 팀장님을 설득해 참고인 조사를 부탁한다.
그렇게 영화 내내 피해자일 줄 알았던 다혜는 자신의 아들 민찬이 어린이집에서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며 가해자의 엄마가 되어버린다. 아들 민찬이가 같은 반 여자친구의 몸을 만진 것이다. 여자로서 자신이 성희롱의 피해자인데,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성희롱의 가해자가 되어 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을까. 절대 동시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성적문제에서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다혜를 보면서 우리 모두 상황에 따라 모순적인 말들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성희롱의 피해자 다혜는 박차장의 징계에 대해 굉장히 단호한 편이었다. 징계위원회를 통해 박차장이 적절한 조치를 받길 바랐다. 하지만 가해자의 엄마로서 다혜는 민찬이가 배려와 이해를 받기를 바랐다. 박차장이 다해에게 했던 말처럼 말이다. 영화 <손길>은 이처럼 상황에 따라 인간은 그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판단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 <손길>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본능적으로 모순적인 선택과 발언을 할지라도 이성적으로 그 기준을 다시 지키려고 애쓰는 어른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피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받기 위해, 혹은 내 아들을 지키기 위해라는 개인적인 기준을 넘어서 사회적인 공공의 선을 생각하며 그 기준에 부합하는 결정과 판단으로 다시 수정하여 행동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그럼에도 이 사회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나쁜 손길, 선한 손길영화 <손길>은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의 중의적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의 손길은 성희롱과 같은 나쁜 의미의 손길이다. 박차장이 다혜에게, 그리고 아들 민찬이 친구에게 한 손길은 옳지 않은, 해서는 안되는 손길이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어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특히, 다혜의 직장 선배인 팀장님의 말이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가장 명확하게 담고 있었다. "우리 딸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라도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아들 민찬이가 만진 친구는 팀장님의 딸이었다. 팀장님의 개인적인 입장이었다면 회사에서 다혜가 피해자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가정에서는 다혜는 가해자의 엄마일 뿐이었다. 이를 알기에 다혜 역시 팀장님을 찾아가 징계위원회 일은 안하셔도 된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팀장님은 그런 다혜를 향해 이번에 다혜씨를 돕는 일이 앞으로 내 딸이 사회를 살아갈 때 좋은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면서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이렇게 시작된 선한 손길은 결국 징계위원회를 통해 박차장의 징계로 이어지고, 아들 민찬 역시 제대로 된 사과와 함께 어린이집을 나오면서 피해자가 더 피해를 받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너무나도 긍정적인 결말에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결말을 통해 우리 사회 역시 공공의 선을 생각하고 순간적으로는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지만 다시 그 선으로 돌아와서 마무리를 짓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흡족했던 마무리였다.
영화 <손길>은 중의적 의미를 통해 우리 사회와 개인의 기준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했던 작품이었다.
[상영시간표]
2023. 9. 15. 19:00 롯데시네마 은평 4관
2023. 9. 17. 12:30 롯데시네마 은평 3관
-
-
-
-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 30초 예고편
언제 죽을지 몰라도 뜨거운 사랑은 하고싶은 마르타.
데이트 앱을 켜 운명의 남자를 찾기 시작하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째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포기 직전의 마르타에게도 기적은 있었으니.. 이시대의 완벽남 아르투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마르타는 아찔한 흑역사를 생성하고,
그 대가로 단 한번의 저녁 식사 기회를 얻게 되는데..!
우리가 사랑에 빠질 확률 9.5%
마르타의 목숨을 건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
- 영화 <악마의 다이어리> 예고편
어느 날 밤 오우자 판자를 가지고 놀다가 악마의 공격을 받은 레베카 클락슨.
사람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일주일동안 자신의 웹캠에 비디오 일기 형식으로 그녀의 경험을 기록한다.
고조되는 일련의 사건들, 그림자처럼 보이는 인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점점 소름이 끼치기 시작한다.
초자연적인 움직임이 격렬해지고, 레베카는 마침내 악이 그녀의 몸을 점령할 때까지 악마적인 힘에 의해 반복적으로 공격을 받는다.
레베카는 악마를 물리치고 영혼을 보호할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