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2-04-22 20:40:35
이야기의 결말을 찾기 위한 정글 어드벤처
영화 <로스트 시티> 리뷰
로스트 시티 (The Lost City, 2022)
“이야기의 결말을 찾기 위한 정글 어드벤처”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액션, 코미디, 멜로/로맨스, 모험
러닝타임 : 111분
감독 : 애덤 니, 아론 니
출연 : 산드라 블록, 채닝 테이텀, 다니엘 래드클리프, 브래드 피트
개인적인 평점 : 3/5
쿠키영상 : 1개 (엔딩 크레딧 초반)
로스트 시티 줄거리
전설의 트레저를 차지하기 위해 재벌 페어팩스(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유일한 단서를 알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로레타(산드라 블록)를 납치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비지니스 관계로 사라진 그녀를 찾아야만 하는 책 커버모델 앨런(채닝 테이텀)은 의문의 파트너(브래드 피트)와 함께 위험한 섬에서 그녀를 구하고 무사히 탈출해야만 하는데… 적과 자연의 위험이 도사리는 일촉즉발 화산섬 대환장 케미의 그들이 생존하여 섬을 탈출할 수 있을까?
의자에 묶인 반짝이 우주복을 입은 산드라 블록과 열심히 수레를 미는 채닝 테이텀, 이들 뒤로 터지는 불꽃과 광기 어린 눈의 다니엘 래드클리프. 그 옆으로 보이는 브래드 피트. 이 포스터 이미지 하나만으로도 “아 이건 재밌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 영화 <로스트 시티>
남편의 부재 후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 베스트셀러 작가 ‘로레타’와 책의 커버모델 ‘앨런’은 억지로 마무리 지은 모험 소설을 홍보하기 위해 북투어를 시작한다. 전설의 보물을 찾기 위해 눈이 돌아있던 재벌 ‘페어팩스’는 새로 나온 로레타의 소설에서 자신이 찾고 있던 보물의 단서를 발견하고 로레타를 납치해 섬으로 데려간다. 앨런은 로레타를 구하기 위해 의문의 파트너와 함께 섬으로 향하고, 두 사람은 페어팩스와 부하들의 손을 피해 섬을 탈출하기 위한 여정을 벌인다.
잃어버린 보물과 결말을 찾아서
<로스트 시티>의 주인공 로레타와 앨런은 목표를 찾아 달리다 나도 모르는 새 옆길로 빠져버린다. 그나마 앨런은 고민을 거쳐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길도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알고 열심히 커버 모델 일을 하지만, 로레타는 의무감에 밀려 억지로 소설을 마무리짓는다. 소설에 대한 작은 애정도 남지 않은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진 소설은 당연하게도 매가리가 없다. 무기력증에 빠진 로레타는 페어팩스의 손에 끌려온 섬에서 자신의 소설과 똑같은 전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고, 새로운 결말을 찾기 위해 페어팩스의 단서에 손을 댄다.
이 모험은 페어팩스가 말한 고대의 보물을 찾아가는 여정이자 로레타가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모험 소설의 진짜 결말과 잃어버린 열정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모험인 온갖 위험과 고난이 도사리고 있지만 두 사람은 함께 고난을 거치며 달달한 결말을 찾아간다.
아쉬웠던 정글 어드벤처
정글 어드벤처, 보물 찾기라는 컨셉을 보면 최근에 개봉했던 <언차티드>가 생각나기도 하고, 작년에 개봉했던 <정글 크루즈>가 생각나기도 한다. 보물 찾기는 <언차티드>와 모험 중에 피어나는 두 사람의 사랑은 <정글 크루즈>와 닮았다. 두 작품을 적절하게 섞은 듯,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로스트 시티>는 소재가 보장하는 기본 재미는 챙겼으나, 훌륭한 배우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아쉬운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제일 기대했던 캐릭터는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악역 페어팩스와 브래드 피트의 파트너 역할이었는데 페어팩스의 매력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고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의문의 파트너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오히려 그가 빠지는 순간 분위기가 팍 식어버리는 느낌이었달까.
주연을 맡은 산드라 블록은 여전히 아름답고, 채닝 테이텀은 푼수 같은 커버 모델 앨런을 귀엽게 소화했지만 이 캐릭터들만으론 채울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영화의 자막이다. 물론 번역이라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란 걸 알지만, 가끔은 물음표를 떠올리게 하는 애매한 줄임말 같은것들이 등장하는데, 그런 단어들 때문에 당장 웃음이 나야 할 장면에 웃음이 아닌 “이게 뭐야?”하는 말이 먼저 나왔다.
가볍게 보긴 좋지만, 꼭 극장에서 볼 이유는…
매력이 넘치는 배우들과 그들의 환장하는 케미를 중점으로 밀고 나가는 이 영화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ㅎㅎ..ㅎ” 이상의 큰 웃음을 유발하기엔 모자란 느낌이 있다. 그래도 초중반부까지는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재미가 있는데 중반부 이상을 넘어가면 어느 순간 결말이 그려지게 된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끝까지 본건 오로지 배우들과 분위기 덕분이었다. 가볍고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좋은 영화라서 정말 머리를 비우고,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으면서 관람했다.
비중이 많진 않았지만 영롱한 눈에 광기를 가득 담은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느끼한 캐릭터지만 묘하게 매력적이고 너무 잘생겨서 계속 쳐다보게되는 브래드 피트의 캐릭터만 봐도 한 번쯤은 아무 생각 없이 감상할만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다만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일까? 묻는다면 섣불리 답하기 어렵다. 잠시 등장하는 잃어버린 도시 외엔 큰 볼거리가 없기도 하고, 압도적인 음향/음악…이라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관객들의 눈도 높아지고, 영화 관람료가 너무 비싸져서… 이벤트나 할인 가격이 아닌 이상 정가 15,000원을 전부 다 내고 본다면, 관람료가 아깝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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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드라마, 액션
감독: 류승완
각본: 류승완
제작: 강혜정
출연: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김소진, 정만식, 구교환, 김재화, 박경혜 외
촬영: 최영환
조명: 이재혁
편집
미술
음악
의상
주제곡
촬영 기간: 2019년 11월 ~ 2020년 2월
제작사: 대한민국 외유내강, 덱스터 스튜디오, 필름케이
배급사: 대한민국 국기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대한민국 국기 2021년 7월
화면비
상영 시간: 121분
제작비: 240억 원#모가디슈 #모가디슈리뷰 #모가디슈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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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8일, 넷플릭스 공개]
모든 것을 가졌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다.
6월 18일, 라스 엔시나스에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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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쥬라기 월드 4 | 미래로의 쇄신 대신 전통의 되풀이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룡들이 '쥬라기 월드'를 탈출한 뒤 5년이 지나자, 공룡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빠르게 식는다. 달라진 환경과 공기로 인해 공룡들이 적도 인근에만 정착했기 때문. 그러나 '파커-제닉스 제약회사'는 여전히 공룡에게 주목한다. 육지, 하늘, 바다를 지배하는 가장 거대한 공룡들의 DNA를 이용하면 심장병을 치료할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이에 파커-제닉스 소속의 '마틴 크렙스'(루퍼트 프렌드)는 미 해병대 특수작전부대 출신 용병 ‘조라‘(스칼렛 요한슨)에게 공룡들이 남아있는 적도 인근의 세인트 휴버트 섬으로 가는 원정대를 이끌어달라고 부탁한다. 고민 끝에 제의를 수락한 조라는 옛 동료이자 선장인 '킨케이드'(마허샬라 알리), 고생물학자 ‘헨리 박사’(조나단 베일리) 등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 폐쇄된 쥬라기 공원의 연구소와 함께 그 섬에 감춰진 진실은 모르는 채로.
퇴보해 버린 새로운 시작
<쥬라기 공원> 삼부작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특히 <쥬라기 공원>이 보여준 충격적인 시각효과는 그 자체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눈만 즐거운 작품도 아니었다. 유전 공학과 생명 과학 기술의 가능성을 조명하면서도 자본주의와 결합한 비윤리적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시각효과로 구현해 내며 SF 영화의 정수를 보여줬다.
하지만 공룡들도 이제는 서서히 생명력을 잃고 있다. 후속 시리즈인 <쥬라기 월드> 삼부작만 해도 개봉할 때마다 흥행 성적이 3억 달러씩 우하향했다. "사람들이 더 이상 공룡에 열광하지 않는다"라는 대사가 영화 안팎을 모두 대변하는 셈이다. 더 화려한 블록버스터에 비해 매력을 잃은 공룡 영화는 결국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이하 <쥬라기 월드 3>)이 <쥬라기 공원>의 주역들을 복귀시켰듯이 과거의 영광에 의존해야 했다.
따라서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하 <쥬라기 월드 4>)은 부제에 걸맞게 시리즈가 앞으로도 존속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해야 했다. 이는 <고질라>(2014)로 할리우드 괴수물을 되살려냈던 가렛 에드워즈 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긴 이유이자, 기대한 바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지는 했다. 퇴보한 주제 의식과 편의적인 서사로 채워진 각본 앞에서는 백약이 무효하기 때문이다.
선지가 두 개뿐인 시험
유전공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거대 기업들에 대한 비판. 돈과 명예를 좇아 경쟁적으로 발전할 뿐 자기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대 과학에 대한 경고. 인간이 자연을 제어한다는 것은 카오스 효과에 의해 불가능하다는 통찰.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관통하는 이 모든 메시지는 결국 한 가지 딜레마로 귀결된다. “복원된 공룡은 하나의 생명인가, 아니면 거대 자본이 투입된 자산인가?”
<쥬라기 월드 4>도 마찬가지다.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한 조라 일행이 모사사우스를 눈앞에 둔 순간, 영화는 그들을 선택의 기로에 세운다. 대서양 횡단 중 배가 뒤집힌 '델가도 가족'의 조난 메시지가 세인트 휴버트 섬 정반대 방향에서 잡힌 것. 즉, 섬은 시험장이고, 조난한 가족은 출제 문제이며, 출제 의도는 조라 일행의 양심과 윤리관을 시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결정해야 한다. 돈과 생명 중 무엇을 먼저 챙길 것인가?
세 주인공은 제각기 답을 내놓는다. 그중 두 명의 입장은 확고하다. 헨리 박사는 사람을 먼저 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채취한 공룡 혈액도 파커-제닉스 제약회사에 넘길 게 아니라 연구 및 공익 목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고생물학자다운 선택이다. 크렙스도 망설이지 않고 답을 찍는다. 파커-제닉스 제약회사의 대리자인 그는 거액이 걸린 공룡 혈액을 채취하는 임무가 우선이니 다에 조난자들을 태워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시리즈의 전통을 잇는 정답
그에 반해 조라는 그 둘 사이에서 표류한다. 그녀의 본래 가치관은 크렙스와 비슷하다. 약속된 돈만 주면, 도덕과 법을 신경 쓰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용병답다. 그러나 새로운 임무 도중에 조라는 내적으로 깊이 갈등한다. 그녀는 돈만을 쫓다가 다른 가치를 수없이 놓쳤고, 그로 인해 PTSD에 시달리니까. 바로 직전 임무 도중에 동료를 눈앞에서 잃었고, 다른 작전에 투입된 사이에는 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장례식도 놓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라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쥬라기 월드 4>는 돈만을 쫓던 그녀가 어떤 이유로 생명 존중이라는 정답을 찾게 되는지 그 과정을 는 작품이나 다름없다. 그 중심에는 옛 동료 킨케이드와 헨리 박사가 있다. 돈을 아 용병 생활을 했지만, 아들도 잃고 아내와도 이혼한 킨케이드는 자기 경험을 살려 그녀에게 충고한다. 돈이 아닌 가치를 추구할 때 비로소 삶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헨리는 돈만으로 그녀의 트라우마를 고칠 수는 없다면서 아픔을 승화할 다른 길을 제시한다. 파커-제닉스 제약회사에 혈액 샘플을 넘기면 소수의 사람만 이득을 보는 고가의 치료제가 개발되겠지만, 그녀가 샘플을 오픈 소스로 공개하면 그녀의 어머니처럼 고통받던 더 많은 이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다고. 옛 동료와 새 동료의 조언과 설득 끝엔 조라는 <쥬라기 공원> 시리즈에서 기대하는 답, 돈보다 중요한 생명이라는 정답을 찍는다.
전통을 반복할 뿐인 정답
문제는 조라의 정답이 반복일 뿐, 쇄신은 될 수 없다는 것. 30여 년간 이어진 전통은 유지해도 시리즈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 주제 의식이나 소재, 방향성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편인 <쥬라기 월드 3>보다도 퇴보했기 때문이다. 그간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인간 중심적 관점을 견지했다. 다른 생명을 조작하고 생태계에 개입한 대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만의 몫이었다.
<쥬라기 월드 3>는 달랐다. 벨로시랩터 '블루'는 제약회사 바이오신에게 납치당한 새끼 '베타'를 구하기 위해 친구인 '오웬'(크리스 프랫)을 이용한다. 그는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베타를 되찾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블루에게 그러겠다고 약속한다. 이 장면은 공룡들이 전 세계에 퍼진 이상, 인간이 지구의 유일한 주체는 아니며 비인간 존재도 인간처럼 세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관점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쥬라기 월드 3>의 시도가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그 일환으로 등장시켰던 메뚜기의 존재감이 공룡을 압도한 나머지 '메뚜기 월드'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으니까. 그렇지만 <쥬라기 월드 3>라는 실험은 시리즈의 근본적 변화를 추동할 수도 있었다. 공룡을 공포의 존재나 테마파크의 볼거리로만 소비하지 않고, 공룡에게 인간과 동등한 지위를 선사하거나 그들을 이야기의 주체로 끌고 오는 식으로.
하지만 <쥬라기 월드 4>는 전작의 변화를 계승하거나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생태적으로 우월하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의 믿음을 비판하는 헨리 박사의 대사 몇 줄이 전부일 뿐이다. 그보다는 시리즈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선에서 만족한다. 이처럼 30여 년 전의 담론에만 의존하는 이상, <쥬라기 월드 4>로부터 시리즈의 활력이나 미래를 낙관할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편의적이고 얄팍한 도구의 향연
안정적이고 검증된 흥행 공식만 찾는 태도는 각본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쥬라기 월드 4>는 메시지와 볼거리를 구분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조라 일행이 전자를 맡는다면, 델가도 가족은 후자를 담당하는 식이다. 델가도 가족은 티라노사우루스나 뮤타돈 같은 공룡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조라 일행은 특정한 윤리적 입장과 가치를 평면적으로 대변하는 졸일 뿐이다.
그 결과 인상적인 캐릭터를 찾아보기 어렵다. 섬에 도착한 이후로 델가도 가족은 없어도 전개에 문제가 없고, 헨리 박사와 크렙스도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내적 갈등을 겪는 조라, 동료들을 하나씩 잃으며 애통해하는 킨케이드가 그나마 예외일 뿐이다. 공룡도 철저히 도구적으로 활용된다. 티라노사우스와 새로운 돌연변이 공룡 모두 블록버스터다운 스케일의 볼거리를 선사하는 역할만 맡고 퇴장한다.
공룡들로부터 메시지나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쥬라기 공원에 제공될 예정이었던 기괴한 모습의 돌연변이 공룡도 단지 '이중 교배 실험의 실패작'이라고만 언급될 뿐, 과학 기술 윤리와 관련된 담론으로 나아가는 계기는 되지 못한다. 이에 더해 공룡과 인간 주인공 간의 유대도 없고, 공룡들에게 특별히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전반적으로 휘발성이 강하다. 중간중간 놀라운 순간은 있다. 조라 일행이 티타노사우루스를 마주했을 때는 주인공도 관객도 모두 경탄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공룡들이 한순간의 볼거리로 소비되는 이상, 이 감정에는 말초적인 자극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자연히 이를 계기로 돈보다 공룡이나 생명의 가치를 더 무겁게 여기게 된 조라의 변화도 다소 얄팍해 보여서 이해는 하나 공감하기는 어려워진다.
눈은 즐겁다
한 번 허점을 노출한 각본은 연쇄적으로 문제를 드러낸다. 우선 작위적인 장면이 많다. 위기를 만들려고 등장인물들의 실수를 일부러 유도하기 때문이다. 굳이 디스토르투스 렉스의 실험실 출입구 앞에서 버려진 초코바 포장지가 연구소를 마비시키고, 그 틈에 공룡이 탈출하는 오프닝이 대표적이다. <쥬라기 월드>에서 사람들의 심리까지 역이용해서 우리에서 탈출한 인도미누스 렉스에 비하면 지나치게 허술해 보인다.
억지로 위기를 만들었다 해도 긴장감이 고조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구성 때문이다. 배우의 명성, 인물의 나이와 역할 등을 고려하면 생존 여부가 너무 명확하고, 실제로 영화는 예상으로부터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더 다양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상황도 살리지 못한다. 수심이 깊은 강이나 사람 키보다 수풀 속에서 공룡이나 다른 생명체를 갑자기 등장시키는 식의 기회가 있지만, 전혀 활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술적인 탁월함은 인상적이다. 특히 공룡들에게 쫓기다가 안전해졌다고 생각한 캐릭터가 한숨 쉬고 공룡에게 잡아먹히는 연출과 편집 덕분에 서스펜스는 비교적 꾸준히 유지된다. 그 덕분에 해변가에서는 스피노사우루스에게, 절벽에서는 케찰코아틀루스에게, 강가에서는 티라노사우스에게 습격당하는 장면 모두 상당한 긴장감과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묘사도 적나라해서 잡아먹히는 순간의 충격과 공포도 극대화된다.
다른 영화들을 오마주한 액션 장면도 인상적이다. 모사사우스의 신체 일부만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쌓다가 기습적으로 그 전모를 드러내는 연출은 <고질라>가 고질라의 전체 모습을 마지막 순간에야 보여주면서 시각적 충격을 극대화한 연출과 유사하다. <쥬라기 공원>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랩터와의 주방 추격전도 장소만 편의점으로 바꿔서 오마주 한다.
최소한의 블록버스터
그렇기에 <쥬라기 월드 4>는 최소한의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다. 각본의 짜임새는 실망스럽다. 매력적인 캐릭터도 없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공룡의 활약도 많지 않다. 그 와중에도 가렛 에드워즈는 관객들을 쫄깃하게 애태우면서 꼭 필요한 재미만큼은 가까스로 지켜냈다.
하지만 그렇기에 <쥬라기 월드 4>는 실패한 작품이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부제에 걸맞은 메시지도, 다음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는 비전도 보여주지 못했다. '쥬라기 월드'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4번째 작품인데도 길을 못 찾은 채 헤매고 전작으로부터도 퇴보하고 있으니, 문제가 더 크다.
그러다 보니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시리즈처럼 한순간 관객의 외면을 받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설령 당장의 흥행 성적은 기대 이상이더라도, 만듦새를 봤을 때 그 추세가 다음 시리즈에도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Acceptable 무난함
최소한의 재미로도 못 가리는 매캐한 진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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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다섯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금주에는 11월 문화의 날에 맞추어 온 가족이 다 같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 <모아나 2>가 극장에 찾아왔습니다. 디즈니가 8년 만에 가져온 <모아나>의 후속작인 만큼 많은 이들이 기다려왔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겨울과 맞지 않는 계절감과 1편 역시 국내에서는 총관객 수 약 230만 명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한 바 있어, 과연 후속편인 <모아나 2>는 현재 얼어붙은 극장가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와 걱정을 모으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명가 디즈니가 과연 이번 작품도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더불어, 모래판에 돌풍을 일으킨 여자 씨름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모래바람>도 11월 27일 개봉합니다.
여자 천하장사 타이틀 최다 보유 기록자이자 '여자 이만기'로 불리는 임수정 선수를 비롯한 송송화, 김다혜, 최희화, 양윤서 선수 등 여자 씨름 선수들의 모래 튀는 꿈과 우정을 극장에서 만나 보세요!
11월 넷째 주 개봉예정 PICK!
모아나 2
MOANA 2
개요: 애니메이션 | 미국, 캐나다 | 100분
감독: 데이브 데릭 주니어
주연: 아우리 크라발호, 드웨인 존슨
개봉: 2024.11.27.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줄거리
선조들로부터 예기치 못한 부름을 받은 ‘모아나’가 부족의 파괴를 막기 위해 전설 속 영웅 ‘마우이’와
새로운 선원들과 함께 숨겨진 고대 섬의 저주를 깨러 떠나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담은 스펙터클 오션 어드벤처!
모래바람
Sandstorm
개요: 다큐멘터리 | 대한민국 | 79분
감독: 박재민
주연: 임수정, 송송화, 양윤서, 김다혜, 최희화
개봉: 2024.11.27.
배급: ㈜영화특별시SMC
줄거리
“저는 모두의 꿈이었어요”
2009년 최초의 여자 천하장사 탄생 이후, 임수정과 송송화, 양윤서, 김다혜, 최희화는 씨름 실업팀 ‘콜핑’에서 만난다. 10여 년간 늘 정상을 지켜왔기에 더더욱 그 자리를 지키고 싶은 ‘임수정’. 20년간 여자 씨름만을 위해 인생을 바친 송송화. 그녀들을 롤모델로 천하장사를 향해 달려가는 양윤서, 김다혜, 최희화!
모래판 위에서는 라이벌이지만, 모래판 밖에서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최강의 동료애!
독보적인 천하장사로 군림한 임수정 선수와 그에게 도전하는 4명의 여자씨름 선수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만나다!
여름날의 레몬그라스
I Am the Secret in Your Heart
개요: 멜로/로맨스 | 대만 | 112분
감독: 라이 멩 치에
주연: 왕 샤오샤, 챙 이, 유자
개봉: 2024.11.27.
배급: ㈜제이에이와이이엔터테인먼트, ㈜더쿱디스트리뷰션
줄거리
함께라서 반짝이던 그 시절, 내 청춘은 온통 너였어.
‘샤오샤’와 ‘유즈’,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지겹게 붙어다닌 소꿉친구다. 서로 죽고 못 살면서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 두 사람을 친구들은 부부라며 놀리기도 하지만, 이성적인 감정은 전혀 없는 사이!
그러던 어느날, 전학생 ‘청이’가 등장하고 ‘샤오샤’는 그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 ‘청이’와 점점 가까워져 가는 ‘샤오샤’ 그리고 싱숭생숭한 ‘유즈’.
모든 게 서툴던 그 시절,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첫사랑이 시작된다!
에드워드 호퍼
Hopper - An American Love Story
개요: 다큐멘터리 | 영국 | 98분
감독: 필 그랍스키
주연: 에드워드 호퍼
개봉: 2024.11.27.
배급: ㈜영화사 빅
줄거리
예술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에드워드 호퍼의 숨겨진 이야기가 온다!
알프레드 히치콕부터 데이비드 린치, 심지어 마크 로스코, 뱅크시와 심슨가족까지. 그림, 사진, 영화, 음악 등 현대 문화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끼친 에드워드 호퍼. 하지만 예술가를 넘어 ‘인간’으로서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호퍼는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 고립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그의 생애와 예술 여정을 섬세하게 탐구하며, 그가 어떻게 이러한 감정을 표현했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호퍼의 예술 세계 뒤에 있는 그의 아내 조세핀 호퍼와의 복잡한 관계가 그의 작품에 미친 영향을 조명한다.
미국 미술의 아이콘이자, 현대 문화의 숨은 영웅 에드워드 호퍼. 그의 예술과 삶, 그리고 사랑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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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 오브 더 데드> 질서의 파괴가 아닌 충돌을 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군용 운송 차량이 불의의 사고로 전복되자, 그 안에 갇혀 있던 모체 좀비 '제우스'는 자유를 얻음과 동시에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제우스로부터 전염된 좀비들에게 도시가 속수무책으로 점령당하는 사이 '스콧(데이브 바티스타)'과 그의 딸 '케이트(엘라 퍼넬)', 친구인 '마리아(아나 데 라 레게라)'와 '반데로(오마리 하드윅)'는 격렬한 사투 끝에 도시가 봉쇄되기 직전 탈출에 성공하고 트라우마와 불안함 속에서 힘겹게 각자의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업가 '타나카(사나다 히로유키)'는 스콧에게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자신의 금고에 들어있는 거액의 현금을 꺼내 달라고 부탁하고, 비로소 삶의 목표를 찾은 그는 팀을 꾸려 다시금 좀비가 우글거리는 도시에 들어선다.
지금은 <저스티스 리그>, <맨 오브 스틸> 등의 히어로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잭 스나이더 감독. 사실 그는 히어로 영화를 맡기 전부터 혁명적인 좀비 영화 <새벽의 저주>(2004)로 이미 명성을 얻었다. 이는 <새벽의 저주>가 협소한 공간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수많은 좀비들이 조성하는 공포심 대신, 속도와 근력을 갖춘 좀비들이 사회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찰나의 순간과 혼란 속에 응축된 공포와 두려움을 묘사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스나이더 감독은 여기에 멈추지 않았다. 20여 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미 오브 더 데드>로 돌아온 그는 다시 한번 좀비 영화에 '사회 질서의 붕괴와 혼란' 대신 '서로 다른 사회 질서의 충돌과 긴장'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당장 <아미 오브 더 데드>는 시작부터 결이 다르다. <킹스맨>의 교회 액션 시퀀스를 연상시키는 잔인하나 흥겨운 오프닝은 군용 수송 차량에서 탈출한 모체 좀비, 제우스가 라스베이거스를 장악하는 아비규환을 간결하게 묘사한다. 5분가량 되는 이 시퀀스는 카지노에서 유흥을 즐기던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고, 도시는 공습으로 불타며, 라스베이거스가 컨테이너 벽으로 봉쇄되는 와중에 스콧을 비롯한 주인공 일행 중 일부만 간신히 도시 밖으로 빠져나오는 이야기를 함축한다. 좀비 영화 한 편을 만들기에도 충분한 내용을 <아미 오브 더 데드>는 가볍게 짚고 넘어간다. 이는 과거의 관습과 규칙에 갇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기존의 좀비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스콧 일행이 라스베이거스가 첫 발을 내딛는 장면에서 영화의 의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스콧 일행은 좀비들로 가득한 라스베이거스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난장판 일지 걱정한다. 하지만 이미 도시를 드나든 경험이 있는 '릴리(노라 아르네제더)'는 그들에게 좀비도 규칙이 있으며 그 규칙을 따르면 안전하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그 직후 영화는 규칙을 자세히 보여준다. 지능을 가진 이 좀비들은 인간을 봤다고 바로 달려들지 않는다. 그들은 도시에 발을 내디딘 사람들을 즉시 죽이는 대신 그들과 일종의 약속을 맺는다. 인간들이 좀비들의 왕, 제우스에게 바칠 희생양을 내놓으면 좀비들은 인간들이 자신들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무엇을 하든 관여하지 않는다. 이렇게 좀비들의 세계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아미 오브 더 데드>는 질서가 붕괴되는 과정, 무너진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투보다는 좀비의 사회와 인간의 사회가 어떻게 만나고 충돌하게 되는지에 주목한다.
이는 플롯이 상당히 유사한 연상호 감독의 <반도>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보이는 지점으로, 두 영화의 시간적 배경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어두운 밤 동안 대부분의 사건이 진행되는 <반도>에서 좀비들이 점령한 한반도는 그저 생존만이 목표인 아비규환이다. 하지만 작중 대부분 밝은 낮 동안 진행되는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사건들은 좀비들의 사회에도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작동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기에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새벽의 저주>의 속편이 아니다. 보여주려는 사회상이 다르고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또한 무질서함과 혼란 대신 안정적인 좀비들의 사회나 질서를 중점적으로 묘사하다 보니 자연히 영화의 중후반부까지 기대에 비해 액션도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이 충돌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영화는 좀비와 인간이라는 이질적인 존재 간의 사회가 이루는 대립항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하면서 좀비물 특유의 사회비판적 메시지, 더 나아가 인간 본성에 대한 사유를 담아낸다. 우선 스나이더 감독은 곳곳에 종교적, 신화적 상징물을 배치하면서 좀비와 인간 사회의 관계를 고대와 현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유비로 변환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제우스의 존재다. 그리스 신화 속 최고신의 이름을 쓰는 그는 신들의 궁전인 올림푸스의 이름을 딴 호텔을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등장 장면이 의미심장한데, 그는 자유의 여신상 위에서 태양을 등진 채 희생양을 바치는 스콧 일행을 내려다보면서 등장한다. 이러한 구도는 마치 산 위에서 신이 지상의 인간을 내려다보는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좀비에게 신화적인 치장을 덧입히는 연출 덕분에 좀비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좀비가 점령한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의 함의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작중 좀비와 인간의 관계는 신과 인간을 지속 가능한 선의의 관계로 여긴 고대인들의 믿음을 연상시킨다. <고대 이집트의 신전 Temples of Ancient Egypt>의 저자 브라이언 E. 샤퍼(Brian E. Shafer)에 따르면 고대 종교적, 신화적 질서란 신이 인간에게 대가를 전혀 바라지 않고 삶과 세상을 베풀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이후 인간은 신이 베푼 세상에 대한 감사함과 그 세상을 앞으로도 유지해줄 것에 대한 기대를 공물(희생양)에 담고, 인간의 선물을 받은 신은 다시 인간들에게 호의를 베푼다. 이러한 연쇄작용의 결과 신과 인간은 명령과 복종 혹은 단순한 가치의 교환이 아닌 호의의 증식 관계 안에 머문다.*
영화에서도 좀비들은 언제든 인간을 먼저 공격할 수 있었지만,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규칙을 따를지 말지 선택할 기회를 준다. 또한 희생양을 받은 후에는 인간이 자신들을 공격하기 전까지는 가능한 한 약속을 지키며, 바쳐진 제물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죽이는 대신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동일한 가치를 거래,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호의로써 약속을 맺고, 신뢰를 지킨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라스베이거스에서 형성되는 좀비와 인간의 관계와 그 중심에 위치한 희생제물의 존재는 고대적, 신화적 질서 및 공물과 유사한 측면이 있으며, 라스베이거스는 종교적, 신화적 공간이자 고대적 질서가 자리 잡은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반면에 작중 라스베이거스 외부의 공간은 철저히 현대 자본주의적 질서가 자리 잡은 곳으로 묘사된다. 자본주의 사회란 어떤 의미에서 모든 존재와 가치가 돈으로 치환될 수 있는 사회라고 볼 수 있는데, 영화는 좀비 영화에 하이스트 무비를 더하면서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돈'이다. 난민 캠프에서 케이트와 친구 '기타(후마 쿠레시)'는 돈만 있다면 캠프 관리자에게 위협과 성희롱을 당하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돈이 그 어떤 사회적 시스템보다도 우위에 서 있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다. 기타는 심지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좀비들이 가득한 라스베이거스에 잠입해 카지노에서 현금을 빼돌리려고 한다.
스콧이 팀원들을 모으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그는 모든 설득을 돈으로 행한다. 팀원들도 각기 어떤 삶을 살고 있든 간에 거액의 현금을 가져오면 된다는 말만 듣고 미션에 뛰어든다. 또 임무 중에도 각각의 수익을 배분하는 것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역할의 중요도에 따라 좀비의 공격으로부터 구해줄지 말지를 정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불가능한 미션을 맡기는 흑막 타나카의 목표도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돈인 것으로 드러난다. 상대방을 향한 호의나 신뢰 대신 철저한 계산과 교환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아미 오브 더 데드>는 이러한 좀비 대 인간의 구도를 고대 대 현대, 호의적 대 계산적, 신뢰 대 교환의 관계로 점진적으로 치환시킨다. 은연중에 전자를 '이타적이고 배려적인 삶의 태도'로, 후자를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삶의 방식'으로 정의하면서 전자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괜히 가장 황금만능주의적 이미지가 가장 강한 도시인 라스베이거스를 좀비에게 넘겨준 것이 아니다. 스콧의 팀원들이 언제 위험에 처하는지를 봐도 영화의 스탠스를 알 수 있다. 팀원 간의 기대를 저버리고 잘못된 정보를 줄 때 혹은 돈을 노리고 여왕을 공격해서 제우스의 아이를 죽였을 때 스콧의 팀은 좀비들의 공격을 유발하고 엄청난 재앙을 마주한다. 반대로 서로의 기대와 신뢰를 버리지 않고 좀비의 질서에 순종해 제우스와 여왕을 공격하지 않고, 팀워크를 발휘하자 그들은 금고의 문을 여는 데 성공한다.
특히 케이트는 이러한 주제의식을 가장 명확히 표현하는 캐릭터다.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관점에서 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자신보다 타인의 목숨을 먼저 챙기는 그녀의 독단은 어리석은 행위다. 그러나 호의가 호의를 낳는 새로운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녀의 행동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실제로 케이트가 기타를 구하려고 한 행동들은 스콧과 헬기 조종사 마리안, 유튜버 마이키와 릴리의 선의를 낳고, 그들의 선의가 모인 결과 그녀는 목숨을 구한다. 스콧이 '딸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라는 클리셰를 충실히 따르는데도 그의 행적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딸이 자살한 감독의 개인사도 영향이 있겠지만)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내러티브와 구도를 통해 좀비에게 신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연출이 좀비보다 우월한 인간의 관계를 역전시킨 결과, 인간의 존재와 가치가 무시되는 각박한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좀비 영화 다운 주제의식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 메시지, 주제의식과 감정선과는 별개로 <아미 오브 더 데드>에서 상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상징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한 화면 안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집어넣는 특유의 스타일은 필연적으로 충분한 상황 설명의 부재로 이어져 불친절한 영화로 인식될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특히 좀비 영화가 캐릭터에 따라 좀비로 변하는 속도가 달라지는 등 유달리 장르 고유의 문법이 두드러지는 장르이다 보니 설명의 부족은 설득력의 저하, 개연성과 핍진성의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주제의식을 온몸으로 품고 있는 케이트의 행동이 아무 맥락 없이 답답해 보인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미 오브 더 데드>는 분명 완성도에 문제가 있다. 화려한 액션이나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그 화법과 스타일이 호불호가 갈린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본인의 커리어 시작점으로 되돌아간 스나이더 감독의 초심과 변화가 동시에 느껴지는, 즉 본인이 제시했던 좀비물의 관습에 머무른 단순한 속편이 아니라는 측면에서는 주목해볼 가치가 있다. 좀비라는 소재로부터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과 세계관을 마음껏 펼쳐 보인다는 점에서 <아미 오브 더 데드>가 장르물의 영역을 한 발짝 더 넓힌 것 역시 분명하기 때문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지루한 팝콘무비 혹은 상징과 유비가 가득한 좀비 영화의 새 지평
*Byron E. Shafer et al, Temples of Ancient Egypt.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1997),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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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스 법사가 전하는 내전 경고장!
알렉스 가랜드 감독을 이제 법사라 칭해야 하나? 트럼프가 정권을 잡았다고 가정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듯한 <시빌 워 분열의 시대>가 이렇게 피부로 와닿을 줄은 몰랐다. 감독도 우리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작이야 어떻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작품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으며, 큰 의미로 다가오는 건 확실하다.
대통령의 폭정에 내전 상황에 놓인 미국의 근 미래.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가 손을 잡은 서부군은 연방군을 압박하고, 대통령은 백악관을 은신처 삼아 두문분출한다. 이런 상황에 종군기자 리(커스틴 던스트)는 동료 조엘(와그너 모라), 선배 기자 새미(스티븐 매킨리 핸더슨)와 함께 대통령의 목이 아닌 인터뷰를 따러 간다. 여기에 리처럼 멋진 종군기자를 꿈꾸는 제시(케일리 스패니)도 동행한다. 대통령이 있는 워싱턴 D.C까지 험난한 일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이들은 저마다 눈과 카메라로 이 상황을 기록한다.
| 약간의 상상력을 더한 내전, 분열의 시대
영화의 원제는 ‘시빌 워(Civil War)’다. 우리나라에서 ‘분열의 시대’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번 미 대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현재 미국은 양극화 현상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트럼프가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점점 미국은 균열이 생기고, 갈라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감독이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2020년 1월 6일, 워싱턴 의회 난입 사건은 영화 제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대선 결과 불복으로 트럼프를 지지한 이들이 의회에 난입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데, 이는 민주주의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미국의 내적 위험성이 크게 부각되는 사건이었다.
알렉스 가랜드는 이런 미국의 양극화 상황을 배경으로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를 펼친다. 폭정을 일삼는 대통령 때문에 분열이 일어나는 상황, 링컨 시대 때의 남북 전쟁과 맞먹는 내전이 미국에서 일어난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상상 실험은 그 자체로 호기심과 충격을 전한다. 그가 감독과 각색을 맡았던 <서던 리치: 소멸의 땅>만 봐도 세상이 뒤집힌 후 벌어지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감독의 재주는 SF가 아닌 전쟁을 소재로 또 한 번 펼쳐진다.| 뷰 파인더로 보이는 객관적 시각
영화의 주인공은 군인이 아니라 사진기자다. 이들은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게 아니라 거리를 두고 이 상황을 지켜보며, 기록한다. 사람이 총에 맞고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손을 내미는 게 아닌 연신 셔터를 눌러야 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평정심. 그리고 이 상황을 목도하며,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을 가감없 이 전달하는 일이다. 평가는 이 결과물을 보는 사람들이 하는 것.
연방군, 서부군 어느 곳을 지지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이들은 최대한 뷰파인더를 통해 지켜보고, 기록한다. 위험하지만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건 그를 잡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판단은 당연히 사람들이 하는 것이니 말이다.
감독은 객관성을 바탕으로, 네 인물의 눈과 사진을 통해 내전이 벌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소개한다. 어제는 친구였지만, 오늘은 적이 된 사람을 죽일지 말지 고민하는 주유소 직원, 전쟁 때문에 집을 잃은 사람들, 총격전에 목숨을 잃고, 아군이진 적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을 공격하기에 저격한다는 매복 군인, 중립을 지키는 마을 사람들, 미국인 아니면 무조건 사살하는 이들 등 평화로운 시대에는 꿈도 못 꿀 참혹함과 시대의 불안감은 그 자체로 공포다. 만약 내전이 일어나면 이런 이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날 거라고 예견하는 듯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는 일들은 객관성을 유지함에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카메라라는 무기를 든 이들의 사명감
영화의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사진 기자 특히 종군 기자의 사명감과 직업 윤리 의식의 갈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름을 날렸던 종군 기자 리 밀러의 이름을 가져온 듯한 리 스미스는 관찰자로서 자세를 유지하며 다양한 전쟁에 참여했다. 제시 또한 리를 존경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이 위험한 여정을 따르게 된 것. 그만큼 그녀는 종군기자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었지만, 반대로 그의 삶은 피폐해져간다. 텅 빈 눈빛으로 일관하는 무표정은 이를 잘 보여주는데, 마치 PTSD를 입은 군인처럼 정신적 고통이 수반된다. 그럼에도 내전이 심화되는 곳에 도착해 연신 셔터를 누른다.
도덕적 딜레마를 겪음에도 사명감으로 일하는 그녀와 기자들은 후반부 사진기를 무기 삼아 전장에 뛰어들고, 워싱턴 D.C에 도착한다. 후반부에는 그 다양한 내전 상황을 겪은 이들이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해야 하는 임무를 어떻게든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들은 군인들의 무기처럼 카메라를 무기로 삼는데, 특히 수동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제시는 총알을 장전하는 것처럼 필름을 감고, 총알을 발사하는 것처럼 셔터를 누른다. 총격을 피해 기록을 남기는 이들의 무모한 진격은 군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이 장면에서 잘 말해준다.| 전쟁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시빌 워: 불안의 시대>는 전쟁 블록버스터라고 말하긴 힘들다. 비견하자면 <람보> 시리즈보다는 <허트 로커>에 가깝다. 하지만 사실적인 내전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감독은 워싱턴 D.C 시가전부터 백악관 침투 작전에 이르기까지 멋진 전투 장면을 연출한다. 그동안 쟁여놓았던 건 액션 보따리를 푸는 것처럼 진짜 같은 전쟁 장면이 펼쳐진다. 빗발치는 총격이나 폭격 장면 등 비주얼만큼이나 음향에 공을 들인 모양새다.
후반부 전쟁 장면을 보기 위해 참아야 하는 시간이 긴 건 맞다. 앞에 앉은 고딩 관객이 연신 한숨을 쉬다가 후반부 전쟁 장면이 시작되면서 집중하는 뒤통수를 보여줬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 영화의 연출이 알렉스 가렌드이고, 제작이 A24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이끄는 연방군을 일망타진하는 이야기도 아니기에 초중반 지루함을 느끼는 건 관객들에게 아쉬운 부분인 건 맞다.
그럼에도 영화의 매력은 배우에 기인한다. 특히 커스틴 던스트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담은 연기를 보여준다. 공허하다 못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빛과 머리보다 몸이 더 빨리 움직이는 직업인의 모습,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카메오 격이지만 씬스틸러로서 압도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제시 플레먼스의 연기도 기억에 남는다. “당신들은 어느 쪽 미국인이지?”라는 대사만으로 공포를 안기는 그의 못습은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부부는 닮아가나 보다.(커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는 실제 부부다.)
“전장에서 살아남을 때마다 내가 조국에 경고를 보내는 거라 생각했어요. 전쟁을 하지 마라” 극 중 리가 뱉는 이 대사는 영화가 자국에 보내는 경고처럼 들린다. 하지만 극단적인 분열과 민주주의 문제점이 더 커지는 가운데, 트럼프가 재집권했다. 그리고 이에 질세라 우리나라도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봉착했다. 과연 우리는 분열의 시대를 목도하는 것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우리 각자의 셔터를 눌러 이 상황을 잊지 않고 기록하며, 후대에 전할 것인가!사진 제공: 마인드 마크
평점: 3.5 / 5.0
한줄평: 잘 기억해두자. 분열 되면 이렇게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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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몇년 전, 이 영화를 보고 꽤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리뷰를 쓰지 않고 지나갔다. 엊그제 '다스뵈이다'에서 김어준 총수가 이 영화를 다시 언급했고,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분명 낮게 평가된 영화라서,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의 진가를 알아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복남...'은 김기영 영화 세계의 영역에 속한다. 이 영화를 만든 장철수 감독이 김기영 사단에서 조연출로 오래 일했고, '김복남..'으로 장편 데뷔를 했으니, 장철수 감독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영화이면서, 그가 배운 김기영 영화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김복남...'은 여성주의 영화, 여성영화,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근본으로 보면 이 영화는 '스팔타쿠스'와 같다. 폭력과 억압, 차별에 저항하는 노예의 반란처럼, 억눌리고 고통당하는 자의 분노가 마침내 권력자 - 이 영화에서는 남성들, 시고모, 동네 할머니들 - 의 피를 부르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영화의 함의는 다양하다. 주인공 복남은 섬에서 태어나 평생을 섬에서 살아 온 여성이다. 반면 해원은 어려서 고향 섬을 떠나 서울로 이주해 세련된 도시 여성으로 성장한다. 두 여성은 어려서 가장 가까운 동무로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30년 넘게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이기도 하다. 물론 해원은 복남의 편지를 무시하고, 고향에 관한 기억도 그리 애틋하지 않지만, 자신의 처지가 곤란하게 되면서 복남의 호소에 응답한다.
해원은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처지지만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해원이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되는 상황은 한국노동자의 열악한 고용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자, 비정규직 노동자이면서 여성노동자로서의 해원이 곧바로 사회적 약자임을 드러낸다.
하지만, 해원이 해고당하는 원인이 되는 사건을 보면, 해원은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 냉정하고 모질게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해원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겸손함, 이해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것은 해원과 복남의 어린 시절 모습이 교차 편집되면서 보여주는 장면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어려서의 해원은 복남과 사이좋은 친구이고, 서로에게 따뜻한 동무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고 있는 성인 해원은 쌀쌀하고 냉정한 인물이다. 그는 전세금을 대출받으러 온 할머니 - 폐지 수레를 끌고 온 것으로 보아 혼자 가난하게 사는 할머니다 - 에게 3천만원이 아닌, 2천만원까지만 대출이 된다고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해원의 옆자리에 있던 후배가 할머니가 바라는대로 3천만원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해원은 자존심이 상한다. 여기에 화장실에서 누군가 문을 잠그고 나가서 해원은 몹시 고생하며 화장실을 탈출하는데, 해원은 후배의 뺨을 때리지만, 정작 범인은 청소부 아주머니였다. 해원이 같은 여성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건, 그녀 자신에게 문제가 있지만, 해원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가 도시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 없이 홀로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원은 여성이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운전하다 보게 되는데, 사건의 목격자로 경찰서에서 용의자를 지목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는 피해 여성이 남성 폭력배들에게 잔인하게 폭행당해 결국 살해당한 사진을 보면서도 끔찍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목격자로 지목된 것을 귀찮아 하고, 이런 사건에 엮이게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경찰의 잘못으로 해원은 범인들에게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고, 협박을 받게 되면서 불안은 더욱 커진다. 그런 점에서 해원도 피해자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해원은 복남이 바라는대로 고향을 방문한다. 회사에서 사고를 친(?) 것 때문에 강제로 휴직을 하게 되고, 폭력배들이 찾아와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기에, 한동안 서울을 떠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을 것이다. 해원의 고향인 '무도'는 작은 섬이다. 하루에 배가 한 번만 들어오는 곳이고, 섬에 사는 사람도 몇 명 되지 않는다. 섬 사람들은 대개 노인들이며 복남의 딸 연희가 유일한 어린이다.
무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배를 모는 선장도 알고 보니 해원의 어릴 때 친구였다. 해원과 복남의 고향이 '섬'이라는 건 그 자체로 상징이다. '섬'은 육지에서 떨어져 있고, 고립되어 있는 지리적 조건이며, 심리적, 정신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해원은 어려서 섬을 떠난 뒤, 처음 섬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으로 보면 약 20년 이상이 흐른 뒤로 보인다. 그럼에도 마을에 사는 노인 할머니들은 해원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섬에는 여섯 명 정도의 할머니와 복남, 복남의 딸 연희, 복남의 남편 만종, 시동생 철종, 노인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이고, 섬 사람들의 일상이지만, 이 섬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복남에게 지옥이다. 모든 사람들이 복남을 괴롭히고, 착취하며, 인간 이하의 존재로 여긴다. 복남의 남편은 만종이지만, 만종이 외출하면 시동생 철종이 복남을 성폭행하고, 육지에서 성매매 여성을 데려온 만종은 복남 앞에서 성관계를 하는 막장의 극단을 보여준다.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드러나는 복남의 과거는 더욱 잔혹하다. 복남은 10년 전에 섬의 남자들 몇 명에게 윤간을 당하고, 연희를 낳았다. 따라서 연희가 어떤 남자의 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복남의 남편 만종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복남이 매우 필요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척 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만종은 복남을 아내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노예이자 인간이 아닌 소유물로 생각한다. 만종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복남을 폭행하고, 욕설과 무시를 드러내놓고 한다. 게다가 딸 연희가 자기 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만종은 딸까지도 성추행을 하고, 복남은 이걸 알고는 연희와 함께 섬을 탈출할 결심을 굳힌다.
서울에서 온 해원도 남성들의 성적 대상이 된다. 복남의 시동생 철종은 끊임없이 해원을 강간하려 한다. 섬의 남자들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여성을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 보거나, 동등한 인간이 아닌, 2등 인간, 하인, 노예, 불가촉천민으로 대하며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이자 성적 욕구를 충족하는 대상으로만 상대한다.
복남은 딸 연희를 데리고 섬을 탈출하려 하지만, 배의 주인도 섬의 남자들과 한편이며, 과거 복남을 윤간한 남자 가운데 한 명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복남에게서 돈을 받고도 시간을 끌어 결국 복남이 만종에게 끌려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드려 맞고, 딸 연희는 만종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살해한다. 연희의 죽음을 두고도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경찰도 섬사람들과 친한 사람이고, 만종이 연희가 죽였다고 모함하면서 뇌물을 주고 사건을 수습한다.
복남은 사랑하는 딸 연희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걸 지켜봤고, 남편을 비롯해 섬의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며 복남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경찰은 그런 섬사람들에게 뇌물을 받고 사건을 무마하는 걸 지켜보면서, 거짓과 위선,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의 행위에 절망하고 치를 떤다.
영화 후반으로 가면서, 복남이 변하는 순간이 있다. 이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매우 훌륭하고 대단한 내용이 펼쳐진다. 뜨거운 한여름, 감자를 캐는 시기니까 '하지감자'라고 하면 6월 말에 해당한다. 햇볕이 뜨겁고, 온도도 높아서 그늘 없는 밭에서 일하다보면 탈진해서 쓰러질 지경인데, 마을 할머니들은 그늘에 앉아 쉬는데, 복남이는 혼자 감자를 부지런히 캔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새하얗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조선낫을 집어들고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다가간다. 복남은 '해를 바라봤는데, 해가 말을 한다'고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낫으로 할머니들을 찍어 살해한다. 복남이는 미친 것일까. 복남은 시고모를 벼랑으로 몰아 스스로 떨어져 죽게 만들고, 시동생 철종의 목을 잘라 나무에 얹어놓고, 육지에서 돌아온 만종과 배의 주인 득수를 차례로 살해한다. 해원은 겨우 육지로 탈출해 경찰을 찾아가는데, 복남이 배를 불러 육지로 해원을 따라온다. 흰색 원피스를 입고 화장까지 한 복남은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정신이 멀쩡하다. 복남이 해원을 끝까지 쫓아가 죽이려는 것은, 그렇게 믿었던 해원이 복남을 배신하고, 무시했으며, 섬사람들과 같은 입장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즉, 해원은 도시에서는 피해자였지만, 섬에서는 가해자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것도 한때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 복남조차도 이기적인 태도로 외면한 것이다.
복남은 섬에 찾아왔던 경찰을 살해하고, 경찰서에 있던 해원까지 죽이려 한다. 이 과정에서 복남은 정신을 차린 경찰이 쏜 총을 맞고, 해원과 몸싸움을 하다 부러진 리코더에 목이 찔려 죽는다. 리코더는 해원과 복남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물로, 어렸을 때 해원과 복남은 리코더를 불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해원이 리코더를 더 잘 불었다. 리코더가 부러진 것, 부러진 리코더가 무기가 되어 결국 복남이 죽는 것은, 해원과 복남의 우정과 운명이 엇갈리는 것을 상징한다.
해원도 마음 속에 늘 잊지 않고 있는 사건이 있는데, 복남이 여러 남자에게 윤간을 당하게 된 원인이 자기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 죄의식이 있었다. 해원과 복남이 섬에서 생활할 때,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몰려다니며 해원을 성추행하고, 복남이 해원을 지키려고 남자아이들과 싸우는 틈에 해원은 혼자 도망한다. 그리고 다시 복남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보게 되는 장면은, 남자아이들이 복남이를 건드리는 장면이었고, 이 사건 이후 해원은 서울로 떠나지만, 시간이 지나서 복남은 결국 그 남자아이들에게 윤간을 당하게 된 것이다.
복남은 단 한번도 해원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으며, 오직 자신이 섬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수십 통의 편지를 보내도 외면하고 무시했던 해원이었지만, 섬을 찾아온 해원을 반갑게 맞이한 복남은, 해원을 여전히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해원은 복남이와의 추억은 있지만, 복남처럼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릴적 친구가 죽이고 싶은 대상으로 바뀌고, 처절한 몸싸움 끝에 한 친구가 죽는 결말을 보면, 이 영화는 '여성영화'나 '페미니즘영화'로 보기는 어렵다.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은, 전형적인 스릴러의 서사를 보여주며, 주인공이 여성인 것은,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면서 남성에 비해 육체적으로도 약하기에 극에서 처절한 설정을 이끌어가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이 학대당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단지 '영화'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 정치적 범위로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며 그런 면에서 '여성영화'로 봐도 좋다.
영화는 극단으로 치닫지만, 우리 사회에서 '복남'은 어디에나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수많은 복남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가부장, 남성우월주의, 남성들의 폭력과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성적 대상화로 상처받다가 어느 날, 태양을 바라보고, 태양이 말을 하는 걸 듣게 되는 순간, 가해자 남성들은 시퍼런 낫에 목이 잘릴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 가까이 있는 '복남'이 고통당하고 있는지, 무엇때문에 괴로워하는지 눈여겨 찾아보고,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가 '복남'을 만들고, 결국 남성들 자신의 목을 따게 만드는 역겨운 제도라는 걸 눈치채고 바꿔야 한다. 이 영화는 젠더의 문제이자 권력의 문제를 다룬 영화로,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내재한 영화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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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도를 희생해 시리즈의 초석을 두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판도라 행성의 자원을 개발하려던 RDA의 공격을 물리친 '제이크 설리(샘 워딩턴)'와 '네이티리(조 샐다나)'. 그들은 '네테이얌(제이미 플래터스)', '로아크(브리튼 달튼)', '투크티리(트리니티 블리스)'를 낳고 '그레이스 박사(시고니 위버)'의 딸 '키리(시고니 위버)'와 인간 아이 '스파이더(잭 챔피언)'를 입양해 행복한 가족을 꾸려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크는 밤하늘에 낯선 불빛을 발견하고 RDA와 인간들이 판도라에 귀환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가진 무기와 자원을 총동원해 인간들을 공격하나, 도리어 아바타로 되살아난 '쿼리치 (스티븐 랭)' 대령의 기습에 가족을 잃을 뻔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에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위기를 피하고자 '로날(케이트 윈슬레)'과 '토노와리(클리프 커티스)'의 도움을 받아 온 가족을 데리고 바닷가에 사는 멧카이나 부족 사이로 피신한다. 그러나 포기를 모른 채 복수심에 불타는 쿼리치의 추격은 제이크의 가족에 새로운 시련을 선사한다.
<아바타: 물의 길>은 올해 개봉한 작품 중 가장 많은 기대를 받은 작품이었다. 이유는 많았다. 역대 월드와이드 흥행 1위 영화이자 3D 혁명을 일으킨 <아바타>의 속편이라는 점, 개봉일이 숱하게 연기되어 13년 만에 공개된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라는 점, 제임스 카메론 감독 본인이 가장 비경제적인 영화일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자된 작품이라는 점 빼놓을 수 없다. 전편의 주역인 샘 워딩턴과 조 샐다나는 물론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시고니 위버와 스티븐 랭이 복귀했고, 케이트 윈슬렛 등이 새로이 합류한 배우들의 면면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아바타: 물의 길>은 감독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에이리언 2>와 <터미네이터 2>로 속편의 대가임을 증명한 바 있는 제임스 카메론도 이번에는 자기 장기를 온전히 발휘하는 데 실패했다. 13년간의 준비 기간 때문이다. 카메론 감독은 5편까지 이어질 시리즈를 모두 계획하기 위해 13년이 필요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각본을 모두 완성하고, 모든 캐릭터와 생물을 미리 만들며, 제작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을 사전에 구축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이번 속편이 큰 그림의 일부라는 의미이며, 바로 이 대목이 양날의 검이다. 앞으로의 로드맵이 확실하다 보니 <아바타: 물의 길>이 암시하는 향후 시리즈의 내용이나 전편으로부터 더욱 발전한 주제 의식과 메시지는 화려한 영상미 못지않게 흥미롭다. 반면에 한 편의 독립된 영화로서 완성도는 현저히 떨어진다. 시리즈의 초석을 놓는 데 열중한 나머지 무엇 하나 온전히 완결 짓지 못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캐릭터 '로아크' & '키리'가 암시하는 시리즈의 길
우선 <아바타: 물의 길>은 새로운 캐릭터들을 차례대로 소개하면서 앞으로 <아바타> 시리즈가 나아갈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주력한다. 이는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로맨스가 가족 드라마로 확장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인물을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에 끼워 넣고 동시에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제격이므로. 실제로 영화의 내용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양육 방향을 둔 아버지와 어머니의 충돌, 형제자매 간의 다툼 등으로 가득하다. 특히 둘째 아들 로아크과 양녀 키리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들의 서사에 담긴 비유와 클리셰는 시리즈의 지향점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일단 로아크는 신약 성경 속 '돌아온 탕자'의 판도라 버전으로 보인다. 로아크는 나비족의 영웅이자 위대한 전사인 아버지처럼 되고 싶은 욕망에 들끓지만, 동시에 아바타의 특징이 강한 외모 때문에 소외감을 느낀다. 아버지처럼 강한 전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완벽한 아들이자 형인 네테이얌처럼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자격지심이 공존한다. 그 때문에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 몫만큼의 유산을 받아 집을 나선 '탕자'가 된다. 그는 만용을 부리다가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해 가족과 동료들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하고, 좀처럼 가족들과 융화되지 못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자신만의 여정을 겪는다.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한 단계 성숙해진다. 자신처럼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툴쿤 파야칸을 만나 안정을 찾고, 형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아버지를 위험으로부터 구해내면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온다'. 결국 <아바타: 물의 길>은 로아크가 물속은 물론 인생의 길까지 찾는 이야기인 셈이다.
미스터리로 가득한 신비한 캐릭터 키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아바타에서 태어난 아기이자, 그 누구도 아버지의 정체를 모르는 존재인 그녀는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유달리 에이와와 강하게 교감할 뿐만 아니라, 따로 훈련하지 않고도 물속에서 능숙하게 잠수할 줄 안다. 또 온갖 동식물과 소통하고 그들을 뜻대로 조종하기도 한다. 이러한 묘사는 그녀가 마치 판도라 버전의 예수와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인간과 나비족의 대립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구세주 메시아로 거듭날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본래 '아바타(avatar)'라는 단어가 지상에 내려온 신의 분신을 의미하는 만큼, 키리가 에이와의 아바타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로아크와 키리의 서사가 중심이 될 <아바타> 시리즈는 제임스 카메론이 써 내려가는 신약 성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시점 알려진 시리즈의 4편과 5편의 부제가 각각 <툴쿤의 기수(The Tulkun Rider)>와 <에이와를 찾아서(The Quest for Eywa)>이기에 더욱 그렇다.
전편으로부터 진일보한 생태학적 메시지
무분별한 환경 파괴와 개발에 반대하며 자연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도 더욱 깊어졌다. <아바타>는 인간과 다른 존재들의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판도라의 모든 생명체는 에이와의 자식으로서 동등한 존재다. 따라서 그들을 소유하고 이용하는 대신 그들과 소통하며 허락을 구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는 제이크가 이크란을 탈 때 그들과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어야 했던 이유였고, 또 사냥할 때마다 "당신을 봅니다(I see you)"라고 말하며 명복을 빌었던 이유였다. 판도라의 모든 나무가 마치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인간처럼 의사소통할 줄 안다는 언급도 같은 맥락에서 등장한 설정이었다. 다만 이러한 묘사에도 한계는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설정과 설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판도라의 신기한 생태계와 삶의 방식을 관찰할 뿐, 다른 생명과 존재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아바타: 물의 길>은 한발 더 나아간다. 지구의 고래를 닮은 생명체, 툴쿤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작중 툴쿤은 멧카이나 부족의 형제자매, 외관만 다른 부족의 일원으로 여겨진다. 멧카이나 부족과 툴쿤들이 재회하는 장면은 오랜 기간 보지 못했던 가족이나 친척들이 추석이나 설날에 만나 수다 꽃을 피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단지 멧카이나 부족이 일방적으로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툴쿤들도 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영화는 로아크와 파야칸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툴쿤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파야칸의 시점에서 로아크가 말을 걸고, 대화를 시도하고, 도움을 주고, 친분을 맺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 결과 동등한 두 주체가 진정으로 우정을 쌓아나가는 과정에는 설득력이 더해진다. 또 인간과 멧카이나 부족이 결국 전투를 벌이는 결정적인 계기도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체험할 수 있는 주제 의식
즉, 전편이 인간도 자연계의 구성원 중 하나로서 선순환하는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속편은 인간 이외의 주체를 강조하여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정동(affect)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자연과 물질도 인간처럼 세계의 변화에 반응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체이며, 인간처럼 의지와 목적을 가진 채 행동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들도 툴쿤 사냥선을 급습하는 파야칸처럼 인간 행위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능동적인 반응에 따라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특히 영화 초반부에 RDA의 목적이 망가진 지구를 대신해 판도라를 개척하고 이주를 도모하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이는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자연과의 공존을 더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한층 깊어진 주제 의식은 <아바타: 물의 길>이 선보이는 화려한 영상미가 빛을 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이 작품의 CG 효과는 전편 수준의 충격적인 영상미를 재현하지 못한다. 3D 효과도 익숙해졌고, 판도라 행성의 경관도 한 차례 맛을 봤기에 13년 전만큼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판도라를 체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마치 지구의 바다를 촬영하듯이 다른 세상에 있을법한 바다의 상세한 모습을 그래픽과 상상력으로 표현한 결과, 주인공들과 함께 판도라의 바다를 진짜로 경험하고 경이로움을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해양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본의 고래잡이를 비판하는 듯 보이는 툴쿤 사냥 시퀀스도 마냥 교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관객들은 해당 장면에 심정적으로 몰입하고, 영화의 메시지도 자연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한 편의 영화가 아닌 시리즈의 부속품에 가까워진 결과물
그러나 한 편의 독립된 영화로서 <아바타: 물의 길>은 전편에 비하기 어려운 완성도를 보여준다. 전반적인 스토리의 구성과 흐름, 캐릭터의 구축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전편과 달리 몰입도가 떨어진다. 1편은 인간과 아바타(나비족) 중 한 정체성을 골라야 하는 제이크의 고뇌를 그려냈다. 이러한 존재론적인 내적 갈등은 누구나 자신의 성장 경험과 사회적 위치를 떠올리며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반면에 이번 작품은 내적 갈등을 사회적인 이야기로 다양하게 확장한다. 일례로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아이들은 혼혈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심적으로도 괴로워하고 멧카니아 부족의 아이들과도 충돌한다. 이는 현실 속 인종 차별이나 다문화 청소년들이 겪는 집단 따돌림 등에 대한 비유처럼 보인다. 이는 수용자의 경험과 태도에 따라 공감의 수준이 달라질 수 있는 화제이고, 결국 그 때문에 직관적인 몰입도도 덜할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수많은 캐릭터의 활용법도 최선은 아닌 듯 보인다. 다음 세 편을 위한 준비 단계에 불과하다 보니 캐릭터들의 이야기도 간신히 시작될 뿐 진행되는 내용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제이크의 서사만 해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사전 작업에 머무르고 있다. 줄곧 인간을 피해 도망치던 그가 인간과의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만으로 3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스파이더의 활용도 애매하다. 인간과 나비 양쪽을 오가면서 비극적인 개인사와 가족사를 지닌 인물인 만큼 그는 분명히 향후 시리즈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정작 이 중요한 캐릭터가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주지 않는다. 그는 나비족의 습관과 정서를 이해하고 깊이 사랑하는 캐릭터에서, 말 몇 마디에 쿼리치의 제이크 추적을 돕는 등 소극적으로 협력하는 캐릭터로 변해 버린다. 이렇게 일관성 없이 플롯의 필요에 따라 캐릭터성이 달라지다 보니 그는 자연히 극의 흐름에 녹아들지 못한다.
갈등의 규모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얼핏 보기에는 전편보다 더욱 커진 전쟁을 그려내는 듯하다. RDA가 아예 실거주 목적으로 판도라 행성에 귀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다음 편을 위한 복선에 불과하다. 정작 종족의 생존을 두고 벌어지는 인간과 나비족의 결전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제이크, 네이티리, 그리고 쿼리치 대령 간의 오래된 악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쿼리치 대령은 개인적인 복수심을 이유로 제이크와 네이티리를 추격하며, 그저 도망치기에 급급하던 제이크와 네이티리 역시 아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쿼리치의 도발에 응수하기로 한다. 그 결과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전편에 비해 다소 맥 빠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액션의 스케일이나 전투 시퀀스의 규모도 줄어들었고, 싸움에 임하는 비장함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바타: 물의 길>을 보다 보면 생각나는 두 작품이 있다. 바로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와 <호빗: 뜻밖의 여정>다. <아바타>를 일종의 프롤로그였다고 친다면, <아바타: 물의 길>의 목표는 <반지 원정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시리즈의 세계관을 전반적으로 설명하고, 거대한 전쟁에 앞서 선악을 대표하는 인물들 간의 추격전을 그려낸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각각의 인물이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하고 편을 정한 후 본격적인 전쟁에 나서기로 하는 흐름도 유사하다.
그러나 목표와 달리 <아바타: 물의 길>은 정작 <호빗> 1편을 보는 듯한 인상을 남기고 만다. 시리즈의 진행에 필요한 복선을 깔아 두는 데 지나치게 열중할 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는 않으며, 많은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했지만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 인물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유사한 문제점을 공유하는 까닭이다. 내용의 부실함을 전편에 비해 화려해진 시각 효과로 벌충하는 것 역시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아바타: 물의 길>은 장단점이 명확히 갈리는 가운데 향후 시리즈의 향방에 따라 재평가의 여지를 남겨두는 작품인 셈이다. 대서사시를 위한 완벽한 가교이거나, 시리즈의 진행을 위해 소비되어 버린 평범한 속편이거나. 2년 내지는 3년 안에 나올 것이라 공언한 <아바타 3>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재평가는 속편들의 몫으로 남겨둔, 흠잡을 데 없는 시리즈의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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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미드나이트”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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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2021 여름)' 1차 예고편 확장판 분석
그리고 예매권 이벤트
*자세한 내용은 고정댓글 참조- 모가디슈 영화정보
장르: 드라마, 액션
감독: 류승완
각본: 류승완
제작: 강혜정
출연: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김소진, 정만식, 구교환, 김재화, 박경혜 외
촬영: 최영환
조명: 이재혁
편집
미술
음악
의상
주제곡
촬영 기간: 2019년 11월 ~ 2020년 2월
제작사: 대한민국 외유내강, 덱스터 스튜디오, 필름케이
배급사: 대한민국 국기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대한민국 국기 2021년 7월
화면비
상영 시간: 121분
제작비: 240억 원#모가디슈 #모가디슈리뷰 #모가디슈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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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쥬라기 월드 4 | 미래로의 쇄신 대신 전통의 되풀이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룡들이 '쥬라기 월드'를 탈출한 뒤 5년이 지나자, 공룡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빠르게 식는다. 달라진 환경과 공기로 인해 공룡들이 적도 인근에만 정착했기 때문. 그러나 '파커-제닉스 제약회사'는 여전히 공룡에게 주목한다. 육지, 하늘, 바다를 지배하는 가장 거대한 공룡들의 DNA를 이용하면 심장병을 치료할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이에 파커-제닉스 소속의 '마틴 크렙스'(루퍼트 프렌드)는 미 해병대 특수작전부대 출신 용병 ‘조라‘(스칼렛 요한슨)에게 공룡들이 남아있는 적도 인근의 세인트 휴버트 섬으로 가는 원정대를 이끌어달라고 부탁한다. 고민 끝에 제의를 수락한 조라는 옛 동료이자 선장인 '킨케이드'(마허샬라 알리), 고생물학자 ‘헨리 박사’(조나단 베일리) 등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 폐쇄된 쥬라기 공원의 연구소와 함께 그 섬에 감춰진 진실은 모르는 채로.
퇴보해 버린 새로운 시작
<쥬라기 공원> 삼부작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특히 <쥬라기 공원>이 보여준 충격적인 시각효과는 그 자체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눈만 즐거운 작품도 아니었다. 유전 공학과 생명 과학 기술의 가능성을 조명하면서도 자본주의와 결합한 비윤리적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시각효과로 구현해 내며 SF 영화의 정수를 보여줬다.
하지만 공룡들도 이제는 서서히 생명력을 잃고 있다. 후속 시리즈인 <쥬라기 월드> 삼부작만 해도 개봉할 때마다 흥행 성적이 3억 달러씩 우하향했다. "사람들이 더 이상 공룡에 열광하지 않는다"라는 대사가 영화 안팎을 모두 대변하는 셈이다. 더 화려한 블록버스터에 비해 매력을 잃은 공룡 영화는 결국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이하 <쥬라기 월드 3>)이 <쥬라기 공원>의 주역들을 복귀시켰듯이 과거의 영광에 의존해야 했다.
따라서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하 <쥬라기 월드 4>)은 부제에 걸맞게 시리즈가 앞으로도 존속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해야 했다. 이는 <고질라>(2014)로 할리우드 괴수물을 되살려냈던 가렛 에드워즈 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긴 이유이자, 기대한 바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지는 했다. 퇴보한 주제 의식과 편의적인 서사로 채워진 각본 앞에서는 백약이 무효하기 때문이다.
선지가 두 개뿐인 시험
유전공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거대 기업들에 대한 비판. 돈과 명예를 좇아 경쟁적으로 발전할 뿐 자기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대 과학에 대한 경고. 인간이 자연을 제어한다는 것은 카오스 효과에 의해 불가능하다는 통찰.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관통하는 이 모든 메시지는 결국 한 가지 딜레마로 귀결된다. “복원된 공룡은 하나의 생명인가, 아니면 거대 자본이 투입된 자산인가?”
<쥬라기 월드 4>도 마찬가지다.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한 조라 일행이 모사사우스를 눈앞에 둔 순간, 영화는 그들을 선택의 기로에 세운다. 대서양 횡단 중 배가 뒤집힌 '델가도 가족'의 조난 메시지가 세인트 휴버트 섬 정반대 방향에서 잡힌 것. 즉, 섬은 시험장이고, 조난한 가족은 출제 문제이며, 출제 의도는 조라 일행의 양심과 윤리관을 시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결정해야 한다. 돈과 생명 중 무엇을 먼저 챙길 것인가?
세 주인공은 제각기 답을 내놓는다. 그중 두 명의 입장은 확고하다. 헨리 박사는 사람을 먼저 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채취한 공룡 혈액도 파커-제닉스 제약회사에 넘길 게 아니라 연구 및 공익 목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고생물학자다운 선택이다. 크렙스도 망설이지 않고 답을 찍는다. 파커-제닉스 제약회사의 대리자인 그는 거액이 걸린 공룡 혈액을 채취하는 임무가 우선이니 다에 조난자들을 태워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시리즈의 전통을 잇는 정답
그에 반해 조라는 그 둘 사이에서 표류한다. 그녀의 본래 가치관은 크렙스와 비슷하다. 약속된 돈만 주면, 도덕과 법을 신경 쓰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용병답다. 그러나 새로운 임무 도중에 조라는 내적으로 깊이 갈등한다. 그녀는 돈만을 쫓다가 다른 가치를 수없이 놓쳤고, 그로 인해 PTSD에 시달리니까. 바로 직전 임무 도중에 동료를 눈앞에서 잃었고, 다른 작전에 투입된 사이에는 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장례식도 놓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라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쥬라기 월드 4>는 돈만을 쫓던 그녀가 어떤 이유로 생명 존중이라는 정답을 찾게 되는지 그 과정을 는 작품이나 다름없다. 그 중심에는 옛 동료 킨케이드와 헨리 박사가 있다. 돈을 아 용병 생활을 했지만, 아들도 잃고 아내와도 이혼한 킨케이드는 자기 경험을 살려 그녀에게 충고한다. 돈이 아닌 가치를 추구할 때 비로소 삶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헨리는 돈만으로 그녀의 트라우마를 고칠 수는 없다면서 아픔을 승화할 다른 길을 제시한다. 파커-제닉스 제약회사에 혈액 샘플을 넘기면 소수의 사람만 이득을 보는 고가의 치료제가 개발되겠지만, 그녀가 샘플을 오픈 소스로 공개하면 그녀의 어머니처럼 고통받던 더 많은 이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다고. 옛 동료와 새 동료의 조언과 설득 끝엔 조라는 <쥬라기 공원> 시리즈에서 기대하는 답, 돈보다 중요한 생명이라는 정답을 찍는다.
전통을 반복할 뿐인 정답
문제는 조라의 정답이 반복일 뿐, 쇄신은 될 수 없다는 것. 30여 년간 이어진 전통은 유지해도 시리즈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 주제 의식이나 소재, 방향성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편인 <쥬라기 월드 3>보다도 퇴보했기 때문이다. 그간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인간 중심적 관점을 견지했다. 다른 생명을 조작하고 생태계에 개입한 대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만의 몫이었다.
<쥬라기 월드 3>는 달랐다. 벨로시랩터 '블루'는 제약회사 바이오신에게 납치당한 새끼 '베타'를 구하기 위해 친구인 '오웬'(크리스 프랫)을 이용한다. 그는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베타를 되찾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블루에게 그러겠다고 약속한다. 이 장면은 공룡들이 전 세계에 퍼진 이상, 인간이 지구의 유일한 주체는 아니며 비인간 존재도 인간처럼 세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관점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쥬라기 월드 3>의 시도가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그 일환으로 등장시켰던 메뚜기의 존재감이 공룡을 압도한 나머지 '메뚜기 월드'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으니까. 그렇지만 <쥬라기 월드 3>라는 실험은 시리즈의 근본적 변화를 추동할 수도 있었다. 공룡을 공포의 존재나 테마파크의 볼거리로만 소비하지 않고, 공룡에게 인간과 동등한 지위를 선사하거나 그들을 이야기의 주체로 끌고 오는 식으로.
하지만 <쥬라기 월드 4>는 전작의 변화를 계승하거나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생태적으로 우월하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의 믿음을 비판하는 헨리 박사의 대사 몇 줄이 전부일 뿐이다. 그보다는 시리즈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선에서 만족한다. 이처럼 30여 년 전의 담론에만 의존하는 이상, <쥬라기 월드 4>로부터 시리즈의 활력이나 미래를 낙관할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편의적이고 얄팍한 도구의 향연
안정적이고 검증된 흥행 공식만 찾는 태도는 각본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쥬라기 월드 4>는 메시지와 볼거리를 구분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조라 일행이 전자를 맡는다면, 델가도 가족은 후자를 담당하는 식이다. 델가도 가족은 티라노사우루스나 뮤타돈 같은 공룡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조라 일행은 특정한 윤리적 입장과 가치를 평면적으로 대변하는 졸일 뿐이다.
그 결과 인상적인 캐릭터를 찾아보기 어렵다. 섬에 도착한 이후로 델가도 가족은 없어도 전개에 문제가 없고, 헨리 박사와 크렙스도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내적 갈등을 겪는 조라, 동료들을 하나씩 잃으며 애통해하는 킨케이드가 그나마 예외일 뿐이다. 공룡도 철저히 도구적으로 활용된다. 티라노사우스와 새로운 돌연변이 공룡 모두 블록버스터다운 스케일의 볼거리를 선사하는 역할만 맡고 퇴장한다.
공룡들로부터 메시지나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쥬라기 공원에 제공될 예정이었던 기괴한 모습의 돌연변이 공룡도 단지 '이중 교배 실험의 실패작'이라고만 언급될 뿐, 과학 기술 윤리와 관련된 담론으로 나아가는 계기는 되지 못한다. 이에 더해 공룡과 인간 주인공 간의 유대도 없고, 공룡들에게 특별히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전반적으로 휘발성이 강하다. 중간중간 놀라운 순간은 있다. 조라 일행이 티타노사우루스를 마주했을 때는 주인공도 관객도 모두 경탄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공룡들이 한순간의 볼거리로 소비되는 이상, 이 감정에는 말초적인 자극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자연히 이를 계기로 돈보다 공룡이나 생명의 가치를 더 무겁게 여기게 된 조라의 변화도 다소 얄팍해 보여서 이해는 하나 공감하기는 어려워진다.
눈은 즐겁다
한 번 허점을 노출한 각본은 연쇄적으로 문제를 드러낸다. 우선 작위적인 장면이 많다. 위기를 만들려고 등장인물들의 실수를 일부러 유도하기 때문이다. 굳이 디스토르투스 렉스의 실험실 출입구 앞에서 버려진 초코바 포장지가 연구소를 마비시키고, 그 틈에 공룡이 탈출하는 오프닝이 대표적이다. <쥬라기 월드>에서 사람들의 심리까지 역이용해서 우리에서 탈출한 인도미누스 렉스에 비하면 지나치게 허술해 보인다.
억지로 위기를 만들었다 해도 긴장감이 고조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구성 때문이다. 배우의 명성, 인물의 나이와 역할 등을 고려하면 생존 여부가 너무 명확하고, 실제로 영화는 예상으로부터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더 다양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상황도 살리지 못한다. 수심이 깊은 강이나 사람 키보다 수풀 속에서 공룡이나 다른 생명체를 갑자기 등장시키는 식의 기회가 있지만, 전혀 활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술적인 탁월함은 인상적이다. 특히 공룡들에게 쫓기다가 안전해졌다고 생각한 캐릭터가 한숨 쉬고 공룡에게 잡아먹히는 연출과 편집 덕분에 서스펜스는 비교적 꾸준히 유지된다. 그 덕분에 해변가에서는 스피노사우루스에게, 절벽에서는 케찰코아틀루스에게, 강가에서는 티라노사우스에게 습격당하는 장면 모두 상당한 긴장감과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묘사도 적나라해서 잡아먹히는 순간의 충격과 공포도 극대화된다.
다른 영화들을 오마주한 액션 장면도 인상적이다. 모사사우스의 신체 일부만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쌓다가 기습적으로 그 전모를 드러내는 연출은 <고질라>가 고질라의 전체 모습을 마지막 순간에야 보여주면서 시각적 충격을 극대화한 연출과 유사하다. <쥬라기 공원>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랩터와의 주방 추격전도 장소만 편의점으로 바꿔서 오마주 한다.
최소한의 블록버스터
그렇기에 <쥬라기 월드 4>는 최소한의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다. 각본의 짜임새는 실망스럽다. 매력적인 캐릭터도 없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공룡의 활약도 많지 않다. 그 와중에도 가렛 에드워즈는 관객들을 쫄깃하게 애태우면서 꼭 필요한 재미만큼은 가까스로 지켜냈다.
하지만 그렇기에 <쥬라기 월드 4>는 실패한 작품이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부제에 걸맞은 메시지도, 다음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는 비전도 보여주지 못했다. '쥬라기 월드'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4번째 작품인데도 길을 못 찾은 채 헤매고 전작으로부터도 퇴보하고 있으니, 문제가 더 크다.
그러다 보니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시리즈처럼 한순간 관객의 외면을 받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설령 당장의 흥행 성적은 기대 이상이더라도, 만듦새를 봤을 때 그 추세가 다음 시리즈에도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Acceptable 무난함
최소한의 재미로도 못 가리는 매캐한 진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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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다섯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금주에는 11월 문화의 날에 맞추어 온 가족이 다 같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 <모아나 2>가 극장에 찾아왔습니다. 디즈니가 8년 만에 가져온 <모아나>의 후속작인 만큼 많은 이들이 기다려왔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겨울과 맞지 않는 계절감과 1편 역시 국내에서는 총관객 수 약 230만 명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한 바 있어, 과연 후속편인 <모아나 2>는 현재 얼어붙은 극장가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와 걱정을 모으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명가 디즈니가 과연 이번 작품도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더불어, 모래판에 돌풍을 일으킨 여자 씨름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모래바람>도 11월 27일 개봉합니다.
여자 천하장사 타이틀 최다 보유 기록자이자 '여자 이만기'로 불리는 임수정 선수를 비롯한 송송화, 김다혜, 최희화, 양윤서 선수 등 여자 씨름 선수들의 모래 튀는 꿈과 우정을 극장에서 만나 보세요!
11월 넷째 주 개봉예정 PICK!
모아나 2
MOANA 2
개요: 애니메이션 | 미국, 캐나다 | 100분
감독: 데이브 데릭 주니어
주연: 아우리 크라발호, 드웨인 존슨
개봉: 2024.11.27.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줄거리
선조들로부터 예기치 못한 부름을 받은 ‘모아나’가 부족의 파괴를 막기 위해 전설 속 영웅 ‘마우이’와
새로운 선원들과 함께 숨겨진 고대 섬의 저주를 깨러 떠나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담은 스펙터클 오션 어드벤처!
모래바람
Sandstorm
개요: 다큐멘터리 | 대한민국 | 79분
감독: 박재민
주연: 임수정, 송송화, 양윤서, 김다혜, 최희화
개봉: 2024.11.27.
배급: ㈜영화특별시SMC
줄거리
“저는 모두의 꿈이었어요”
2009년 최초의 여자 천하장사 탄생 이후, 임수정과 송송화, 양윤서, 김다혜, 최희화는 씨름 실업팀 ‘콜핑’에서 만난다. 10여 년간 늘 정상을 지켜왔기에 더더욱 그 자리를 지키고 싶은 ‘임수정’. 20년간 여자 씨름만을 위해 인생을 바친 송송화. 그녀들을 롤모델로 천하장사를 향해 달려가는 양윤서, 김다혜, 최희화!
모래판 위에서는 라이벌이지만, 모래판 밖에서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최강의 동료애!
독보적인 천하장사로 군림한 임수정 선수와 그에게 도전하는 4명의 여자씨름 선수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만나다!
여름날의 레몬그라스
I Am the Secret in Your Heart
개요: 멜로/로맨스 | 대만 | 112분
감독: 라이 멩 치에
주연: 왕 샤오샤, 챙 이, 유자
개봉: 2024.11.27.
배급: ㈜제이에이와이이엔터테인먼트, ㈜더쿱디스트리뷰션
줄거리
함께라서 반짝이던 그 시절, 내 청춘은 온통 너였어.
‘샤오샤’와 ‘유즈’,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지겹게 붙어다닌 소꿉친구다. 서로 죽고 못 살면서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 두 사람을 친구들은 부부라며 놀리기도 하지만, 이성적인 감정은 전혀 없는 사이!
그러던 어느날, 전학생 ‘청이’가 등장하고 ‘샤오샤’는 그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 ‘청이’와 점점 가까워져 가는 ‘샤오샤’ 그리고 싱숭생숭한 ‘유즈’.
모든 게 서툴던 그 시절,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첫사랑이 시작된다!
에드워드 호퍼
Hopper - An American Love Story
개요: 다큐멘터리 | 영국 | 98분
감독: 필 그랍스키
주연: 에드워드 호퍼
개봉: 2024.11.27.
배급: ㈜영화사 빅
줄거리
예술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에드워드 호퍼의 숨겨진 이야기가 온다!
알프레드 히치콕부터 데이비드 린치, 심지어 마크 로스코, 뱅크시와 심슨가족까지. 그림, 사진, 영화, 음악 등 현대 문화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끼친 에드워드 호퍼. 하지만 예술가를 넘어 ‘인간’으로서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호퍼는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 고립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그의 생애와 예술 여정을 섬세하게 탐구하며, 그가 어떻게 이러한 감정을 표현했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호퍼의 예술 세계 뒤에 있는 그의 아내 조세핀 호퍼와의 복잡한 관계가 그의 작품에 미친 영향을 조명한다.
미국 미술의 아이콘이자, 현대 문화의 숨은 영웅 에드워드 호퍼. 그의 예술과 삶, 그리고 사랑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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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 오브 더 데드> 질서의 파괴가 아닌 충돌을 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군용 운송 차량이 불의의 사고로 전복되자, 그 안에 갇혀 있던 모체 좀비 '제우스'는 자유를 얻음과 동시에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제우스로부터 전염된 좀비들에게 도시가 속수무책으로 점령당하는 사이 '스콧(데이브 바티스타)'과 그의 딸 '케이트(엘라 퍼넬)', 친구인 '마리아(아나 데 라 레게라)'와 '반데로(오마리 하드윅)'는 격렬한 사투 끝에 도시가 봉쇄되기 직전 탈출에 성공하고 트라우마와 불안함 속에서 힘겹게 각자의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업가 '타나카(사나다 히로유키)'는 스콧에게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자신의 금고에 들어있는 거액의 현금을 꺼내 달라고 부탁하고, 비로소 삶의 목표를 찾은 그는 팀을 꾸려 다시금 좀비가 우글거리는 도시에 들어선다.
지금은 <저스티스 리그>, <맨 오브 스틸> 등의 히어로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잭 스나이더 감독. 사실 그는 히어로 영화를 맡기 전부터 혁명적인 좀비 영화 <새벽의 저주>(2004)로 이미 명성을 얻었다. 이는 <새벽의 저주>가 협소한 공간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수많은 좀비들이 조성하는 공포심 대신, 속도와 근력을 갖춘 좀비들이 사회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찰나의 순간과 혼란 속에 응축된 공포와 두려움을 묘사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스나이더 감독은 여기에 멈추지 않았다. 20여 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미 오브 더 데드>로 돌아온 그는 다시 한번 좀비 영화에 '사회 질서의 붕괴와 혼란' 대신 '서로 다른 사회 질서의 충돌과 긴장'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당장 <아미 오브 더 데드>는 시작부터 결이 다르다. <킹스맨>의 교회 액션 시퀀스를 연상시키는 잔인하나 흥겨운 오프닝은 군용 수송 차량에서 탈출한 모체 좀비, 제우스가 라스베이거스를 장악하는 아비규환을 간결하게 묘사한다. 5분가량 되는 이 시퀀스는 카지노에서 유흥을 즐기던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고, 도시는 공습으로 불타며, 라스베이거스가 컨테이너 벽으로 봉쇄되는 와중에 스콧을 비롯한 주인공 일행 중 일부만 간신히 도시 밖으로 빠져나오는 이야기를 함축한다. 좀비 영화 한 편을 만들기에도 충분한 내용을 <아미 오브 더 데드>는 가볍게 짚고 넘어간다. 이는 과거의 관습과 규칙에 갇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기존의 좀비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스콧 일행이 라스베이거스가 첫 발을 내딛는 장면에서 영화의 의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스콧 일행은 좀비들로 가득한 라스베이거스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난장판 일지 걱정한다. 하지만 이미 도시를 드나든 경험이 있는 '릴리(노라 아르네제더)'는 그들에게 좀비도 규칙이 있으며 그 규칙을 따르면 안전하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그 직후 영화는 규칙을 자세히 보여준다. 지능을 가진 이 좀비들은 인간을 봤다고 바로 달려들지 않는다. 그들은 도시에 발을 내디딘 사람들을 즉시 죽이는 대신 그들과 일종의 약속을 맺는다. 인간들이 좀비들의 왕, 제우스에게 바칠 희생양을 내놓으면 좀비들은 인간들이 자신들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무엇을 하든 관여하지 않는다. 이렇게 좀비들의 세계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아미 오브 더 데드>는 질서가 붕괴되는 과정, 무너진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투보다는 좀비의 사회와 인간의 사회가 어떻게 만나고 충돌하게 되는지에 주목한다.
이는 플롯이 상당히 유사한 연상호 감독의 <반도>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보이는 지점으로, 두 영화의 시간적 배경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어두운 밤 동안 대부분의 사건이 진행되는 <반도>에서 좀비들이 점령한 한반도는 그저 생존만이 목표인 아비규환이다. 하지만 작중 대부분 밝은 낮 동안 진행되는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사건들은 좀비들의 사회에도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작동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기에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새벽의 저주>의 속편이 아니다. 보여주려는 사회상이 다르고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또한 무질서함과 혼란 대신 안정적인 좀비들의 사회나 질서를 중점적으로 묘사하다 보니 자연히 영화의 중후반부까지 기대에 비해 액션도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이 충돌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영화는 좀비와 인간이라는 이질적인 존재 간의 사회가 이루는 대립항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하면서 좀비물 특유의 사회비판적 메시지, 더 나아가 인간 본성에 대한 사유를 담아낸다. 우선 스나이더 감독은 곳곳에 종교적, 신화적 상징물을 배치하면서 좀비와 인간 사회의 관계를 고대와 현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유비로 변환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제우스의 존재다. 그리스 신화 속 최고신의 이름을 쓰는 그는 신들의 궁전인 올림푸스의 이름을 딴 호텔을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등장 장면이 의미심장한데, 그는 자유의 여신상 위에서 태양을 등진 채 희생양을 바치는 스콧 일행을 내려다보면서 등장한다. 이러한 구도는 마치 산 위에서 신이 지상의 인간을 내려다보는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좀비에게 신화적인 치장을 덧입히는 연출 덕분에 좀비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좀비가 점령한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의 함의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작중 좀비와 인간의 관계는 신과 인간을 지속 가능한 선의의 관계로 여긴 고대인들의 믿음을 연상시킨다. <고대 이집트의 신전 Temples of Ancient Egypt>의 저자 브라이언 E. 샤퍼(Brian E. Shafer)에 따르면 고대 종교적, 신화적 질서란 신이 인간에게 대가를 전혀 바라지 않고 삶과 세상을 베풀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이후 인간은 신이 베푼 세상에 대한 감사함과 그 세상을 앞으로도 유지해줄 것에 대한 기대를 공물(희생양)에 담고, 인간의 선물을 받은 신은 다시 인간들에게 호의를 베푼다. 이러한 연쇄작용의 결과 신과 인간은 명령과 복종 혹은 단순한 가치의 교환이 아닌 호의의 증식 관계 안에 머문다.*
영화에서도 좀비들은 언제든 인간을 먼저 공격할 수 있었지만,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규칙을 따를지 말지 선택할 기회를 준다. 또한 희생양을 받은 후에는 인간이 자신들을 공격하기 전까지는 가능한 한 약속을 지키며, 바쳐진 제물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죽이는 대신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동일한 가치를 거래,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호의로써 약속을 맺고, 신뢰를 지킨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라스베이거스에서 형성되는 좀비와 인간의 관계와 그 중심에 위치한 희생제물의 존재는 고대적, 신화적 질서 및 공물과 유사한 측면이 있으며, 라스베이거스는 종교적, 신화적 공간이자 고대적 질서가 자리 잡은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반면에 작중 라스베이거스 외부의 공간은 철저히 현대 자본주의적 질서가 자리 잡은 곳으로 묘사된다. 자본주의 사회란 어떤 의미에서 모든 존재와 가치가 돈으로 치환될 수 있는 사회라고 볼 수 있는데, 영화는 좀비 영화에 하이스트 무비를 더하면서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돈'이다. 난민 캠프에서 케이트와 친구 '기타(후마 쿠레시)'는 돈만 있다면 캠프 관리자에게 위협과 성희롱을 당하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돈이 그 어떤 사회적 시스템보다도 우위에 서 있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다. 기타는 심지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좀비들이 가득한 라스베이거스에 잠입해 카지노에서 현금을 빼돌리려고 한다.
스콧이 팀원들을 모으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그는 모든 설득을 돈으로 행한다. 팀원들도 각기 어떤 삶을 살고 있든 간에 거액의 현금을 가져오면 된다는 말만 듣고 미션에 뛰어든다. 또 임무 중에도 각각의 수익을 배분하는 것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역할의 중요도에 따라 좀비의 공격으로부터 구해줄지 말지를 정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불가능한 미션을 맡기는 흑막 타나카의 목표도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돈인 것으로 드러난다. 상대방을 향한 호의나 신뢰 대신 철저한 계산과 교환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아미 오브 더 데드>는 이러한 좀비 대 인간의 구도를 고대 대 현대, 호의적 대 계산적, 신뢰 대 교환의 관계로 점진적으로 치환시킨다. 은연중에 전자를 '이타적이고 배려적인 삶의 태도'로, 후자를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삶의 방식'으로 정의하면서 전자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괜히 가장 황금만능주의적 이미지가 가장 강한 도시인 라스베이거스를 좀비에게 넘겨준 것이 아니다. 스콧의 팀원들이 언제 위험에 처하는지를 봐도 영화의 스탠스를 알 수 있다. 팀원 간의 기대를 저버리고 잘못된 정보를 줄 때 혹은 돈을 노리고 여왕을 공격해서 제우스의 아이를 죽였을 때 스콧의 팀은 좀비들의 공격을 유발하고 엄청난 재앙을 마주한다. 반대로 서로의 기대와 신뢰를 버리지 않고 좀비의 질서에 순종해 제우스와 여왕을 공격하지 않고, 팀워크를 발휘하자 그들은 금고의 문을 여는 데 성공한다.
특히 케이트는 이러한 주제의식을 가장 명확히 표현하는 캐릭터다.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관점에서 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자신보다 타인의 목숨을 먼저 챙기는 그녀의 독단은 어리석은 행위다. 그러나 호의가 호의를 낳는 새로운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녀의 행동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실제로 케이트가 기타를 구하려고 한 행동들은 스콧과 헬기 조종사 마리안, 유튜버 마이키와 릴리의 선의를 낳고, 그들의 선의가 모인 결과 그녀는 목숨을 구한다. 스콧이 '딸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라는 클리셰를 충실히 따르는데도 그의 행적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딸이 자살한 감독의 개인사도 영향이 있겠지만)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내러티브와 구도를 통해 좀비에게 신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연출이 좀비보다 우월한 인간의 관계를 역전시킨 결과, 인간의 존재와 가치가 무시되는 각박한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좀비 영화 다운 주제의식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 메시지, 주제의식과 감정선과는 별개로 <아미 오브 더 데드>에서 상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상징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한 화면 안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집어넣는 특유의 스타일은 필연적으로 충분한 상황 설명의 부재로 이어져 불친절한 영화로 인식될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특히 좀비 영화가 캐릭터에 따라 좀비로 변하는 속도가 달라지는 등 유달리 장르 고유의 문법이 두드러지는 장르이다 보니 설명의 부족은 설득력의 저하, 개연성과 핍진성의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주제의식을 온몸으로 품고 있는 케이트의 행동이 아무 맥락 없이 답답해 보인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미 오브 더 데드>는 분명 완성도에 문제가 있다. 화려한 액션이나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그 화법과 스타일이 호불호가 갈린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본인의 커리어 시작점으로 되돌아간 스나이더 감독의 초심과 변화가 동시에 느껴지는, 즉 본인이 제시했던 좀비물의 관습에 머무른 단순한 속편이 아니라는 측면에서는 주목해볼 가치가 있다. 좀비라는 소재로부터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과 세계관을 마음껏 펼쳐 보인다는 점에서 <아미 오브 더 데드>가 장르물의 영역을 한 발짝 더 넓힌 것 역시 분명하기 때문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지루한 팝콘무비 혹은 상징과 유비가 가득한 좀비 영화의 새 지평
*Byron E. Shafer et al, Temples of Ancient Egypt.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1997),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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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스 법사가 전하는 내전 경고장!
알렉스 가랜드 감독을 이제 법사라 칭해야 하나? 트럼프가 정권을 잡았다고 가정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듯한 <시빌 워 분열의 시대>가 이렇게 피부로 와닿을 줄은 몰랐다. 감독도 우리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작이야 어떻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작품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으며, 큰 의미로 다가오는 건 확실하다.
대통령의 폭정에 내전 상황에 놓인 미국의 근 미래.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가 손을 잡은 서부군은 연방군을 압박하고, 대통령은 백악관을 은신처 삼아 두문분출한다. 이런 상황에 종군기자 리(커스틴 던스트)는 동료 조엘(와그너 모라), 선배 기자 새미(스티븐 매킨리 핸더슨)와 함께 대통령의 목이 아닌 인터뷰를 따러 간다. 여기에 리처럼 멋진 종군기자를 꿈꾸는 제시(케일리 스패니)도 동행한다. 대통령이 있는 워싱턴 D.C까지 험난한 일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이들은 저마다 눈과 카메라로 이 상황을 기록한다.
| 약간의 상상력을 더한 내전, 분열의 시대
영화의 원제는 ‘시빌 워(Civil War)’다. 우리나라에서 ‘분열의 시대’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번 미 대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현재 미국은 양극화 현상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트럼프가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점점 미국은 균열이 생기고, 갈라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감독이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2020년 1월 6일, 워싱턴 의회 난입 사건은 영화 제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대선 결과 불복으로 트럼프를 지지한 이들이 의회에 난입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데, 이는 민주주의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미국의 내적 위험성이 크게 부각되는 사건이었다.
알렉스 가랜드는 이런 미국의 양극화 상황을 배경으로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를 펼친다. 폭정을 일삼는 대통령 때문에 분열이 일어나는 상황, 링컨 시대 때의 남북 전쟁과 맞먹는 내전이 미국에서 일어난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상상 실험은 그 자체로 호기심과 충격을 전한다. 그가 감독과 각색을 맡았던 <서던 리치: 소멸의 땅>만 봐도 세상이 뒤집힌 후 벌어지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감독의 재주는 SF가 아닌 전쟁을 소재로 또 한 번 펼쳐진다.| 뷰 파인더로 보이는 객관적 시각
영화의 주인공은 군인이 아니라 사진기자다. 이들은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게 아니라 거리를 두고 이 상황을 지켜보며, 기록한다. 사람이 총에 맞고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손을 내미는 게 아닌 연신 셔터를 눌러야 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평정심. 그리고 이 상황을 목도하며,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을 가감없 이 전달하는 일이다. 평가는 이 결과물을 보는 사람들이 하는 것.
연방군, 서부군 어느 곳을 지지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이들은 최대한 뷰파인더를 통해 지켜보고, 기록한다. 위험하지만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건 그를 잡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판단은 당연히 사람들이 하는 것이니 말이다.
감독은 객관성을 바탕으로, 네 인물의 눈과 사진을 통해 내전이 벌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소개한다. 어제는 친구였지만, 오늘은 적이 된 사람을 죽일지 말지 고민하는 주유소 직원, 전쟁 때문에 집을 잃은 사람들, 총격전에 목숨을 잃고, 아군이진 적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을 공격하기에 저격한다는 매복 군인, 중립을 지키는 마을 사람들, 미국인 아니면 무조건 사살하는 이들 등 평화로운 시대에는 꿈도 못 꿀 참혹함과 시대의 불안감은 그 자체로 공포다. 만약 내전이 일어나면 이런 이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날 거라고 예견하는 듯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는 일들은 객관성을 유지함에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카메라라는 무기를 든 이들의 사명감
영화의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사진 기자 특히 종군 기자의 사명감과 직업 윤리 의식의 갈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름을 날렸던 종군 기자 리 밀러의 이름을 가져온 듯한 리 스미스는 관찰자로서 자세를 유지하며 다양한 전쟁에 참여했다. 제시 또한 리를 존경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이 위험한 여정을 따르게 된 것. 그만큼 그녀는 종군기자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었지만, 반대로 그의 삶은 피폐해져간다. 텅 빈 눈빛으로 일관하는 무표정은 이를 잘 보여주는데, 마치 PTSD를 입은 군인처럼 정신적 고통이 수반된다. 그럼에도 내전이 심화되는 곳에 도착해 연신 셔터를 누른다.
도덕적 딜레마를 겪음에도 사명감으로 일하는 그녀와 기자들은 후반부 사진기를 무기 삼아 전장에 뛰어들고, 워싱턴 D.C에 도착한다. 후반부에는 그 다양한 내전 상황을 겪은 이들이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해야 하는 임무를 어떻게든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들은 군인들의 무기처럼 카메라를 무기로 삼는데, 특히 수동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제시는 총알을 장전하는 것처럼 필름을 감고, 총알을 발사하는 것처럼 셔터를 누른다. 총격을 피해 기록을 남기는 이들의 무모한 진격은 군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이 장면에서 잘 말해준다.| 전쟁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시빌 워: 불안의 시대>는 전쟁 블록버스터라고 말하긴 힘들다. 비견하자면 <람보> 시리즈보다는 <허트 로커>에 가깝다. 하지만 사실적인 내전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감독은 워싱턴 D.C 시가전부터 백악관 침투 작전에 이르기까지 멋진 전투 장면을 연출한다. 그동안 쟁여놓았던 건 액션 보따리를 푸는 것처럼 진짜 같은 전쟁 장면이 펼쳐진다. 빗발치는 총격이나 폭격 장면 등 비주얼만큼이나 음향에 공을 들인 모양새다.
후반부 전쟁 장면을 보기 위해 참아야 하는 시간이 긴 건 맞다. 앞에 앉은 고딩 관객이 연신 한숨을 쉬다가 후반부 전쟁 장면이 시작되면서 집중하는 뒤통수를 보여줬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 영화의 연출이 알렉스 가렌드이고, 제작이 A24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이끄는 연방군을 일망타진하는 이야기도 아니기에 초중반 지루함을 느끼는 건 관객들에게 아쉬운 부분인 건 맞다.
그럼에도 영화의 매력은 배우에 기인한다. 특히 커스틴 던스트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담은 연기를 보여준다. 공허하다 못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빛과 머리보다 몸이 더 빨리 움직이는 직업인의 모습,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카메오 격이지만 씬스틸러로서 압도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제시 플레먼스의 연기도 기억에 남는다. “당신들은 어느 쪽 미국인이지?”라는 대사만으로 공포를 안기는 그의 못습은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부부는 닮아가나 보다.(커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는 실제 부부다.)
“전장에서 살아남을 때마다 내가 조국에 경고를 보내는 거라 생각했어요. 전쟁을 하지 마라” 극 중 리가 뱉는 이 대사는 영화가 자국에 보내는 경고처럼 들린다. 하지만 극단적인 분열과 민주주의 문제점이 더 커지는 가운데, 트럼프가 재집권했다. 그리고 이에 질세라 우리나라도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봉착했다. 과연 우리는 분열의 시대를 목도하는 것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우리 각자의 셔터를 눌러 이 상황을 잊지 않고 기록하며, 후대에 전할 것인가!사진 제공: 마인드 마크
평점: 3.5 / 5.0
한줄평: 잘 기억해두자. 분열 되면 이렇게 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