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2-03-22 17:35:40
좋긴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초기 무성영화
<바이올렛 에버가든 오케스트라 콘서트 2021> REVIEW
필자가 영화지만 영화로 취급하기 싫은 영화가 몇가지 있다. 이 중에는 마블 영화, 에로 영화 등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뮤지컬 & 오케스트라 실황이다. 왜냐하면 본질을 따져보면, 단순히 기록의 성격이 컸던 1890~1910년대 무성영화들과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초기 무성영화가 현재에 와서도 가치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바로 당시의 기술력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기에, 현대 영화의 기틀이 되는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똑같이 카메라로 기차가 도착하는 것을 찍는다고, 1896년의 "열차의 도착"과 똑같은 평을 받을 수 있진 않을 것이다. 본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음악과 중간에 실제 성우가 출연해 작품을 훑어보는 듯한 연출도 오케스트라의 연출일 뿐, 본 영화의 연출은 아니다. 원론적으로 따져보면 단순히 열차가 역에 도착하는 것을 찍은 "열차의 도착"이랑 다를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단순히 필자가 노래방에서 노래부르는 것을 찍어 상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말 그대로 기록해서 트는 것 뿐이니! 여기에 소리와 컬러가 추가된 것일 뿐. 다만 그나마 나은 점은, 화질이 일부 노이즈가 존재하지만, 사운드는 잘 기록되어 기록 영상으로서의 가치는 있는 편이다. 이 영화의 최대 가치는 바로 "기록" 이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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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은 '굴러가지 않는 유모차'를 함께 드는 것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포스터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페셜 포스터 ⓒ 네이버 영화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고민은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박강아름과 정성만은 타이머를 맞춰두고 사진을 찍는다. "보리야 이리 와"라며 들뜬 목소리로 딸의 이름을 부르는 아름의 모습은 달달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들의 결혼은 아름의 표정처럼 달지 않았다. 가끔은 삼키기 힘들어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아름과 성만은 진보 정당 활동을 하다 만난 사이다. 당시 아름은 학교에서 영화 수업을 하며 영화감독의 길을 밟고 있었고 성만은 정당 활동가이자 식당 종업원이었다. 남는 시간 글을 쓰던 작가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랑했고 결혼했으며 프랑스에서 예술을 배우고 싶다는 아내 박강아름에 의해 프랑스로 떠났다. 아름은 성만에게 "나는 영화를 공부하고 당신은 요리를 공부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성만은 아름을 만나기 전까지 대한민국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던 '우물 안 개구리'였다. 아름과 달리 성만은 프랑스로 날아가서 이룰 꿈이라는 게 애당초 없었던 것. 타의로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으로 간 개구리는 마치 소중한 서식지를 잃어버린 존재처럼 시들어간다. 박강아름은 그런 성만이 신경 쓰이지만 출산과 학교 생활로 지쳐 본인 몸을 돌보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경제와 행정 담당 아내 박강아름과 집안일과 육아 담당 정성만의 현실적인 결ㅁ혼 생활을 담아낸다.
집밥으로 만나는 집 밖 사람들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아름은 우울증에 걸린 남편의 마음을 풀어주고자 '외길식당'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요리사였던 성만의 특기를 살려 주말에만 한국식 집밥을 파는 식당을 열게 된 것. 부부의 식탁은 어느새 유학생이나 교포들에게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는 공유 식탁이 되었다. 성만의 우울한 마음은 집밥으로 만난 집밖 사람들에 의해 어느 정도 치유가 되는 듯했지만 그들의 경제 사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성만은 좋은 재료로 건강한 요리를 내놓는 걸 좋아했고 집안의 경제를 맡고 있는 가장 박강아름은 그 모습이 아니꼬왔기 때문. 첫 번째 '외길식당' 프로젝트는 오래 가지 못해 마무리됐다.
박강아름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고립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외길식당' 프로젝트를 찍자고 제안했다. 영화의 초중반을 촬영하고 나서 성별의 역할이 바뀐 가부장제를 인식했다. 사실 매일 서포트를 받고 있는데도 영상 속에서 제가 '오늘은 나 서포트해줘야 돼'라고 말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아무리 덧칠하지 않으려 해도 어느 정도 본인의 시각이 가미됐을 카메라. 그 카메라가 자신의 가부장성을 담은 것이다.
아름은 가부장성을 인식한 이후에도 쉽게 본인의 태도를 바꾸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경제권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현재의 상황이 어떤지에 따라 사회적 성 역할이라는 게 바뀔 수 있음을 두 부부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주부우울증에 걸린 성만은 토마토 대신 체리토마토를 사왔다고 타박하는 아름의 말에 하루 동안 가사 파업에 들어간다. 흥청망청 돈을 쓰겠다고 다짐한 그는 겨우 3유로 커피 프라페를 마시며 마음을 달랜다.
또한 외관상 특별해보이는 그들마저 여느 부부처럼 끝없이 갈등한다. 아름은 결국 '외길식당'이 아니라 본인들의 결혼에 대해, 더 나아가 결혼의 의의에 대해 주제를 확장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외길식당>이 아니라 <박강아름 결혼하다>인 것. 박강아름 시각에서 장면들이 보이니 <박강아름과 정성만, 결혼하다>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정성만과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더욱 어렵다.
결혼, 그 막막함에 대하여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비혼주의자였던 성만과 달리 아름은 원래부터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도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임신 초기 아름은 나흘 연속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며 속을 게워냈다. 막달에는 한 달 내내 변비에 시달려 화장실에서 울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고통은 계속됐다. 그는 용변을 볼 때 성기가 흘러내릴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출산 후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몰라 내내 미역국과 쌀밥을 먹었다고 했다. 출산 직후 아기를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에 대한 책은 많았지만 출산 직후 여성을 위한 책은 없었다고 회의를 표했다. 꿈에서라도 가고 싶었던 암스테르담 영화제에 본인의 작품이 초정작으로 선정됐지만 그는 결국 가지 못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그 시각 아름은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결혼에 접근하기도 한 아름. 학교를 다녀야 하는 아름 대신 육아를 책임진 성만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다니던 어학원까지 잠시 휴학하고 아이를 돌봤다. 아름도 성만도 딸 보리를 사랑하지만 결혼과 마찬가지로 출산 또한 그들에게 유쾌하고 행복하기만 한 경험은 아닌 것이다.
지켜야 하는 생명부터 생활비, 챙겨야 할 서류까지 늘어났다. 아름은 끊임없이 결혼에 대해 고민한다. 두 번째 외길식당을 열고 다양한 커플들과 함께 그 답을 찾아보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결혼과 팍스(PACS, 시민연대협약)의 차이는 뭘까. 본인의 꿈 대신 사랑만 선택해 해외로 이주한, 소위 '결혼망명'도 행복할 수 있을까. 대화가 오갈수록 질문들은 더 많아진다. 아름은 다시 연 '외길식당' 프로젝트를 실패라고 표현했다. 목이 붓도록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보지만 궁금증은 당최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보며 고민해보는 것이다. 결혼 그 막막함에 대하여.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쉬이 굴러가지 않는 유모차를 함께 드는 것
이 영화의 끝부분, 아름-성만 부부와 반려견 슈슈, 딸 보리는 덩케르크 해변을 찾는다. 아름이 본인의 카메라에 그 바다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부서지는 햇살과 청량한 파도는 없다. 파도는 무겁게 오간다. 유모차는 모래 위에서 매끄럽게 밀리지도 않는다. 성만은 몸이 아프다며 투덜댄다. 아름은 그래도 이왕 온 것이니 비를 맞으면서라도 바다 가까이에 가보자고 우긴다. 결국 그들은 보리가 탄 검은색 유모차를 함께 들고 기어이 모래를 밟는다. 사진을 찍고 돌아온다.
영화 출연은 물론 촬영부터 편집까지 담당한 박강아름. 그가 이 부분을 영화의 엔딩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 터다. 그는 쉬이 굴러가지 않는 유모차를 함께 드는 것을 결혼이지 않을까 짐작했을 것이다. 부부가 들어야 되는 건 유모차가 아닐 수도 있다. 생활비일 수도, 챙겨야 할 서류일 수도, 서로의 꿈과 인생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그건 보기보다 무겁고 손이 저린 일이다. 한 명이 독박 운반하는 것보다야 덜하겠지만 두 명이라도 쉽지 않은 행위인 것. 심지어 그게 진정 의미있는 일인가는 더욱 어려운 질문이다. 상황에 따라 몇 번이고 대답이 달라질 터다.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아름-성만 부부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개인의 일기이자 결혼에 대한 묵직한 물음이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냈다. "박강아름이 이기적인 거 아니야?", "내가 결혼하고 해외로 떠나자 해도 나 잡을 거야?", "결혼은 확실히 연애랑은 다른 것 같아", "팍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의 재미와 만듦새에 대해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지만 그래도 박강아름은 성공했다. 그들도 박강아름처럼 결혼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해 더 고민하기 시작했으니까.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오늘(19일) 정식 개봉한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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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기록하는 역사에서 느끼는 역사로
7★/10★(클라우디아 폰 알레만 감독 작품, 1981년, 113분, 독일.)
플로라 트리스탕. 이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혹 트리스탕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도 그를 고갱의 외할머니 정도로만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의 가족’이라는 호칭은 중요한 업적을 남긴 여성을 모욕하고 삭제하는 가장 흔하고 쉬운 방법이다. 여성 인물의 생애를 논할 때 늘 남성의 이름으로 채워진 ○○를 걷어내고, 가족이라는 사회적 울타리를 경유해야만 하는 상황 자체가 기울어진 역사를 증거한다.
트리스탕은 탁월한 저술가였으며 걸출한 사회주의 활동가였다. 그녀는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자본주의 도시화가 야기한 계급 격차가 처참한 결과로 이어졌음을 고발한 기념비적인 저서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을 쓰기 4년 전에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런던 산책》을 썼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그 유명한 문구를, 노동자 스스로 쟁취하는 해방이라는 아이디어를 마르크스보다 먼저 썼고 제시하기도 했다. 그녀가 죽었을 때 1만 명이 운구에 참여할 정도로 노동자를 반자본주의 전선에 조직하는 데 탁월한 활동가이기도 했다. 동시에 자신의 여성 정체성을 해방의 전망에 반영한 탁월한 정치 감각도 갖고 있었다. 억압받는 남성일수록 아내를 더욱 강하게 억압한다는 그녀의 문장이 이를 증언한다. 요컨대 플로라 트리스탕은 정부와 경찰이 두려워하는 저술가‧활동가이자 남성 노동자의 젠더 기득권에도 반기를 든 선구적인 여성이었다. ‘죽어가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그녀의 결기가 서슬 퍼렇다.
그러나 이 중 그 무엇도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엘리자베트가 리옹으로 떠나는 건 이 때문이다. 〈리옹으로의 여정〉은 기억되지 못한 혁명가 플로라 트리스탕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젊은 여성 역사학도 엘리자베트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트리스탕이 리옹에 머물며 기록한 일기가 여정의 바탕이 된다.
영화의 템포에 주목해보자. 영화는 지극히 느린 속도로 리옹의 일상적 풍경과 트리스탕의 발자취를 좇으며 고뇌하는 엘리자베트의 모습을 오간다. 이는 트리스탕을 연구하는 엘리자베트의 방법론과 관련이 있다. 그녀의 지도교수는 자기를 삭제하고 남아 있는 기록과 주변인의 증언을 활용한 객관적 방법으로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엘리자베트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방법론은 트리스탕을 수동적 앎의 대상에 고정시킬 뿐이다. 엘리자베트는 트리스탕을 ‘느끼고’ 싶다. 그래서 그녀가 걷던 길을 걸으며, 그녀가 자주 향했던 강을 거닐며 그 소리를 녹음하고 이를 수시로 듣는다. 지금은 외국인과 노인만 남은 스산한 거리에서 트리스탕이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고 노동자 조직화에 투신했는지를 느끼려 한다.
트리스탕이 앎이 아닌 느낌의 대상이기에, 엘리자베트는 연구하는 동안 많이 ‘아프다’. 처음에는 가 닿을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지만, 어느덧 너무 깊게 들어온 트리스탕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뒤흔든다. 트리스탕이 점점 엘리자베트에게 스며들고 있다. 그 동질감이 그녀를 울렁거리게 하고 토하게 한다. 하지만 그 고통의 시간을 견뎌냄으로써 마침내 “내 걸음은 그녀의 것이 된다.”
객관적‧일반적 역사 연구가 아닌 동질감을 느끼는 엘리자베트의 연구 방법은 소수자 연구에서 특히 중요하다. 어떤 소수자의 역사든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상과 맞서 싸운 사람이 있다. 그들의 동기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들의 용기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결국 ‘느껴야’ 한다. 그러나 이 느낌은 늘 제대로 된 역사‧저항의 방법론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방법론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늘 ‘과몰입’했다는 손가락질, 너무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라는 비난에 직면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불가능한 싸움을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저항을 무마하려는 반동적 시도일 때가 많다. 트리스탕이 자본주의적 폭력과 남성 중심주의적 세계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을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용기였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 용기를 객관적 방법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어떤 연구방법론이든 독자를 설득하려면 어느 정도의 ‘선동’이 필요한 법이다. 이는 세계를 향한 ‘총체적‧객관적’ 전망을 필요로 하는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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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리언: 로물루스 | 클래식의 트렌디한 변주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142년, 웨이랜드 유타니 사가 경영하는 식민지 행성 '잭슨의 별'에서 살아가는 '레인'(케일리 스패니). 그녀는 남동생이나 다름없는 인조인간 '앤디'(데이비드 존슨)와 함께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한다. 마침내 주어진 작업 시간을 모두 채워서 꿈이 이뤄지려는 순간, 레인은 작업 시간이 다시 늘어났고 그녀는 평생 식민지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 '타일러'(아치 르노)가 접근한다. 버려진 우주 기지 '로물루스'에 있는 연료와 우주선을 활용하면 새로운 행성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 이에 레인은 목숨을 건 식민지 탈출 계획에 가담한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시작과 동시에 어긋난다. 의도치 않게 로물루스에 숨어 있던 에이리언을 깨워버린 것. 에이리언이 습격하는 가운데 레인과 앤디는 서로를 지키기 위한 사투에 나선다.
오마주와 혁신, 두 마리 토끼를 잡다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한 재화의 소비를 한 단위 변화시킬 때 체감하는 효용의 변화분을 한계 효용이라고 할 때, 그 효용의 증가분이 점점 줄어든다는 법칙이다.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장수 시리즈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잘 보여준다. 한 시리즈가 장수할 수 있는 힘은 첫 편의 임팩트에서 비롯한다. 액션, 볼거리, 스토리, 캐릭터 중 하나라도 관객의 눈을 붙잡으면, 그 매력이 곧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이 된다.
그런데 시리즈가 반복될수록 이 매력은 장애물이 된다. 한 번 자극에 익숙해진 관객은 더 이상 효용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고 변화를 주는 것도 쉽지는 않다. 오마주와 변화 사이에서 줄을 잘 타야 한다. 과하게 변주하면 기존 정체성을 사랑하는 팬들이 프랜차이즈를 떠날 테니까. 물론 변화를 주지 않으면 이름값만 남은 채 도태된다.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어깨도 같은 이유로 무거웠다. 본편 4개와 프리퀄 2개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관객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가던 시리즈도 되살려야 했다. <로물루스>는 영리하게 과제를 해냈다.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클래식한 매력을 선보이면서도 시대에 맞게 달라진 공포를 선보인다. 그 덕분에 <로물루스>는 다른 시리즈의 수많은 속편과는 달리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준수한 공포 영화
<로물루스>는 독립적인 공포 영화로서 준수하다. 중반부까지는 <에이리언> 1편을, 후반부는 2편을 오마주 하되 전편을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초반에는 폐쇄된 공간을 활용한 에이리언과의 추격전이 펼쳐진다. 페이스 허거가 사람의 체온과 소리에 반응한다는 점을 역이용해 복도를 지나가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장소만 우주선 내부로 바뀌었을 뿐, 마치 좀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서스펜스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억지스러운 전개가 없어서 더욱 인상적이다. 몇몇 공포 영화는 상황을 손쉽게 설정하려고 주인공들을 바보처럼 만드는 실수를 범한다. <로물루스>는 다르다. 여섯 캐릭터를 둘씩 짝지어서 남매 또는 커플이라는 관계성을 부여한다. 그 덕분에 자칫 답답할 수 있는 인간 주인공의 선택에는 최소한의 개연성이 생긴다.
각각의 쌍을 다른 공간에 던져두면서 다양한 상황을 유발하기도 한다. 한 쌍은 화물선에, 다른 한 쌍은 로물루스 기지에, 또 다른 한 쌍은 두 공간에 찢어서 배치하는 식이다. 그 결과 죽거나 도망치기만 하는 단조로운 구성을 벗어날 수 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여동생 '케이'(이사벨라 메르세드)가 죽는 모습을 바라만 보는 타일러, 그를 도우려는 레인과 그녀를 막는 앤디, 앤디를 원망하는 레인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후반부에는 나름 화끈한 총기 액션을 선보인다. 우주선 내부 중력 생성기와 제모노프의 산성 피라는 변수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쌓아 놓은 서스펜스를 일거에 해소하는 쾌감을 안겨준다. 각각의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구성은 마치 게임처럼 보이기에 신선하다. 반면에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는 외계 괴물의 끈질긴 생명력은 <에이리언> 시리즈다워서 반갑다.
공포의 속성이 달라졌다
하지만 <로물루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오마주가 아니다. 변화다. 구체적으로는 공포의 속성이 달라졌다. 1편이든, 2편이든 <에이리언> 시리즈는 같은 공포를 다뤘다. '미지의 존재로부터의 습격'이 원천이었다. 에이리언은 인류가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우주에 대한 공포감을 시각화한 캐릭터였다. 아무리 죽이고, 우주 공간으로 떨궈도 기어코 살아 돌아오는 이 괴물은 이해할 수 없어서 더욱 무서웠다.
특히 그들은 '인간다움'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존재였다. 에이리언은 탄생 과정에서부터 인간다움을 철저히 부정한다. 그들은 인간 숙주의 입을 통해 잉태되고,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난다. 태어날 때는 모체를 찢고 나온다. 이 과정은 인간답지 않아서 불편하고, 잔혹하게 느껴진다.
<로물루스>는 그와는 결이 다른 공포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범죄자나 인공지능처럼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위협'이라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공포심을 반영했다. 그래서인지 <로물루스>는 인간을 닮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그 중심에는 인조인간이 있다. 그들은 인간을 똑 닮았다. 인간과 똑같이 말한다. 심지어 앤디는 스스로를 인간과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레인을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 양식은 인간답지 않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희생한다. 과학장교 '룩'(이안 홈)은 웨이랜드 유타니 사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거리낌이 없다. '검은 액체'를 이용해 개량 인간을 만드는 실험을 지속하려고 정작 사람을 가차 없이 희생한다. 앤디도 잠시 포맷된 동안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인간을 빼닮았지만 전혀 인간답지 않은 행동은 에이리언과는 다른 두려움을 자아낸다.
인간다움을 잊은 세상
달라진 속성의 공포는 <로물루스>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영화는 '잭슨의 별'에서의 삶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24시간 내내 해가 뜨지 않는 곳을 벗어날 수 없다. 레인이 계약한 노동 시간을 다 채워서 이주 신청을 하자마자 노동 시간이 실시간으로 늘어났듯이. 즉, 인간이 더 풍요롭고 넓은 공간에서 살겠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식민지 개척은 오히려 인간들을 사지로 몰고 간다.
로물루스 기지 안에서도 비슷한 결의 사건이 반복된다. 인간을 더 완전하게 개량하겠다는 목적의 실험은 오히려 로물루스에 타고 있던 모든 인간을 해친다. 즉, 인간을 위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인간을 해치는 웨이랜드 유타니 사의 욕망은 인간 같지만 인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조인간의 행위와 같은 궤에 있는 셈이다.
이는 익숙한 형태의 에이리언 대신 '오프스프링'이 마지막 장애물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프스프링은 제모노프의 몸과 인간의 얼굴을 지녔다. 인간을 닮았고, 인간처럼 표정도 짓지만 결코 인간은 아닌 '불쾌한 골짜기'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충격을 선사한다. 이는 인간을 위하는 존재나 행위가 오히려 인간을 해치는 세태와 그 세태가 유발하는 두려움을 시각화한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시리즈의 새 출발
<로물루스>의 스토리텔링은 <에이리언> 시리즈에 일관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더욱 눈에 띈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리들리 스콧, 제임스 카메론, 데이비드 핀처, 장피에르 죄네가 각자 개성을 녹여낸 시리즈였다. 반대로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로 이어지는 프리퀄은 리들리 스콧만의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 본편과 프리퀄은 분위기가 상이하고, 설정도 미묘하게 달랐다. 특히 프리퀄은 기원이 분명하지 않았던 에이리언의 신비함을 벗겨내 시리즈 개성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로물루스>는 바로 이 괴리감을 채워준다. 기존 에이리언이 등장하는 장르 영화로서의 쾌감은 본편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면에 인조인간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은 현대 사회의 새로운 공포심을 자극하는 프리퀄과 궤를 같이 한다.
미술 디자인의 영역도 가교 중 하나다. 로물루스 기지를 비롯해 우주선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1편과 같이 투박한 기계미가 돋보인다. 반면에 검은 액체가 있는 실험실만은 <프로메테우스>에서 등장한 유려한 디자인으로 설계되어 있다. 프리퀄과 본편의 장점만을 더해 시리즈에 생명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를 공간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영화의 부제가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인 것도 시리즈의 새 출발을 알리는 듯 보인다.
방점은 찍지 못했다
다만 <로물루스>는 시리즈를 회생시키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뛰어난 연출과 편집, 스토리텔링으로 서스펜스를 끌어올려도 기존 시리즈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에이리언을 완전히 격퇴한 줄 알았지만 인간 몸에서 새로운 괴물이 튀어나온다거나, 어딘가에 숨어 있던 에이리언이 죽지 않고 등장하는 식이다. 다음 사건을 예상할 수 있다 보니 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캐릭터 구축도 아쉽다. 사실 남매애를 내세운 선택은 꽤 흥미롭다. 보통 상업영화에서는 이성애, 동성애, 우정, 형제애나 자매애를 감정적인 동력으로 자주 활용하기 때문. 그런데 정작 앤디와 레인을 제외하면 남매애를 보여주는 형태는 일차원적이다. 또 앤디와 레인의 남매애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한다. 레인이 특유의 개성을 보여주는 대신 '엘렌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2024년에 맞게 업데이트한 모습에 불과하기 때문.
결과적으로 <로물루스>는 시리즈의 연결고리, 혹은 새 출발 그 이상의 위치에 올라서지는 못한다.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기에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레인의 다음 이야기는 여전히 기대가 크다. <에이리언> 시리즈가 모처럼 명성에 맞게, 또 시대에 맞게 배출한 수작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Exceeds Expectations 기대이상
과거와 현재를 모범적으로 묶은 새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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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모두들 평안한 주말 보내셨나요?
오늘은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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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NEW)
마블 스튜디오의 올해 첫 개봉작인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주말 관객은 59만여명 정도에, 앞선 이틀간의 관객수까지 더해 누적 관객 수는 86만3천여 명을 기록했습니다. 통상적으로 마블 신작이 개봉 첫 주 100만명 이상을 동원했던 것에 비하며 부진한 성적으로, 지난해 11월 개봉한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첫 주말 79만여명을 모으는 데 그친 것보다 못한 기록입니다.
2. <더 퍼스트 슬램덩크> (⬇︎1)
앞서 3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켜온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결국 마블에게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떨어졌습니다. 주말 관객 26만 9천여명에 누적 관객 328만 2천여명으로, 순위는 하락했지만 관객 수는 지난 3주간의 주말 평균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3. <타이타닉: 25주년> (⬇︎1)
개봉 25주년을 기념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한 <타이타닉: 25주년> 역시 지난 주보다 순위가 하락하며 3위에 이름을 올리며 주말 관객 수 9만 8천여명, 누적 관객 수 83만 9천여명을 기록했습니다. 한편, 6위로 밀려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또다른 작품인 <아바타: 물의 길>은 글로벌 누적 흥행 수익 22억 4320만 달러를 돌파하며 <타이타닉>의 기존 흥행 수익을 뛰어넘고 글로벌 역대 박스오피스 톱3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40회 예측 이벤트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입니다.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60%, 여성 40%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비율을 보였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3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고, 그 다음으로 20대, 40대, 50대, 10대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13세 미만 여성과(581,733명)과 46세 이상 여성(602,327명)이었습니다. 또한,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1.2%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의 성비 및 나잇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 (NEW)
이번 주말 박스오피스의 4, 5위는 모두 애니메이션 영화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인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이 3만6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3위에 올랐는데요, <두다다쿵> 시리즈는 전 세계 40여 개국 이상에 수출되며 K-애니메이션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엄마를 찾아 후후섬으로 떠난 두다와 친구들의 좌충우돌 모험기를 다뤘다는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은 형형색색 다채로운 색감과 실감나는 캐릭터들이 눈길을 사로잡으며 화려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어린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5. <어메이징 모리스> (NEW)
5위도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 영화 <어메이징 모리스>입니다. 세계적인 판타지 소설 작가 테리 프래쳇의 '놀라운 모리스와 똑똑한 쥐 일당'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빌런 쥐 마왕에 맞선 사기력 만렙 말하는 고양이 모리스와 상극 친구들의 환상적인 팀플레이 어드벤처를 담은 작품입니다. 3만5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해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동시기 개봉작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에게 밀렸지만, 누적관객 5만1천여명을 기록하며 개봉 첫 주 애니메이션 박스오피스에서는 1위에 올랐습니다.
(2)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가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북미에서도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국내보다 2일 늦은 2월 17일 개봉하여 주말 매출액 1억 4백만 달러(한화 약 1352억 원)의 오프닝 흥행 수익을 냈으며, 전편인 <앤트맨>, <앤트맨과 와스프>를 뛰어넘는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2위에 이름을 올린 <아바타: 물의 길>은 누적 매출액 6억 570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22억 433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성공해 전세계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타이타닉>을 추월했습니다. 당초 2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됐던 손익분기점은 진작 넘어선 상황으로, 제임스 카메론의 작품 3편이 현재 글로벌 박스오피스 1위, 3위, 4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1위를 차지했던 <매직 마이크>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 <매직 마이크스 라스트 댄스>는 3위로 떨어졌고,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이 4위에, 지난주 순위 진입에 실패했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Knock at the Cabin(국내에서 <똑똑똑>으로 개봉 예정)이 다시 5위에 올랐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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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2월 셋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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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자본 순일까?
백 투 더 퓨처 2
줄거리미래에서 돌아와서 제니퍼와 감격의 포옹을 하는 순간, 갑작스레 마티를 찾아온 브라운 박사.
박사는 그들의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다며 빨리 미래로 가자고 한다.
왁자지껄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더니, 마티가 살던 세상이 변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1985년을 바로잡기 위해, 마티는 다시 위험한 모험을 시작하는데...
행복은 자본 순일까?
숨은 의미 찾기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는 마티를 보고 있노라면
혈압이오른다. 하지만 어쩌겠어, 주인공이니 참아야지. 네가 그렇게 사고를 쳐야 영화가 진행이 되는 거지, 그렇지? 활발히 사고를 치고 다니는 마티 덕분에(?) 영화는 예측불허로 흘러간다.1편이 타임머신으로 역사의 흐름을 유지해서 ‘미래의 존재를 보존’하는데 주력했다면, 2편은 타임머신이 만들어낸 오류를 잡아 ‘미래의 상황을 보존’하는데 주력한다. 어쨌든 꼬여버릴 뻔한 과거를 바로잡는다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 하긴 하지만 말이다.
특히 2편은 1편의 빌런이기도 했던 ‘비프’의 활약으로 뒤죽박죽이 된 미래를 보여준다. 악인의 손아귀에 들어간 타임머신은 어떻게 악용되는지, 브라운 박사가 우려했던 점을 제대로 짚어낸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방영된 ‘대탈출 4’에서도 타임머신 이야기가 나왔었다. 과학자의 탐구심과 호기심의 산물이 개인 이득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은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도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의 이야기가 2020년대에도 똑같이 활용된다는 것은, 어쩌면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타임머신으로 인류문명의 발전에 힘쓴다는 이야기는 재미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당신이라면 타임머신이 눈앞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로또 번호를 외운다느니, 테슬라 주식을 산다느니, 비트코인을 넣는다느니 하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내가 작품 속 악인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왕 살 거 부자로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당연한 것일 테니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 돈과 행복은 비례한 것인가.
물론 부유함이 빈곤함보다 낫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어쨌든 가난에 찌들어 사는 것보단 적당한 부가 사람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은 맞으니까. 때로 너무 많은 부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례를 보긴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런 이야기조차 사치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유하지 않음이 곧 불행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먹고 살만큼의 돈으로도 인생의 가치를 찾고 최선을 다해 행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이 말은 부자면 불행하고 가난해야 행복하다, 가난하면 불행하고 부자면 행복하다는 식의 극단적 비유가 아니다.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든, 내가 행복하고자 하면 얼마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는 소리다.
1편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바로 이것이었다. 마티가 과거로 가기 전, 마티의 가족은 가난했다. 가난한 가족은 화목함과 거리가 멀었다. 서로를 돌보지 않으며 각자의 비전조차 없는 마티의 가족은 암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티가 과거에 다녀와서 다시 구성된 가족은 조금 달랐다. 화목하기 그지없었고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게 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부유함이 꽤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부자인 가족만이 완벽하고 완성된 형태인 것일까.
이전 리뷰에도 말했지만 마티는 가난했던 자신의 가족도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굳이 자신이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애써 자신의 부모가 다시 만나도록 노력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이런 가족, 처음부터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2편 역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지만, 1편에서 느꼈던 씁쓸함을 더 크게 느끼도록 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나라고 비프의 상황에서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타임머신을 악용하는 것은, 부자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금의 나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나쁜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자가 아닌 당신을 부정해가면서 부자가 되려 하지는 마라.
그것이 백 투 더 퓨처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은 아닐까?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상상하던 2015년
감상평전에 한 번 보고 리뷰 직전에 또 봐도 여전히 질리지가 않는 영화.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볼만한 점은 그 시대에 상상했던 ‘2015년’의 모습. 하늘을 떠다니는 자동차와 바퀴 없는 스케이트보드, 말 한 마디면 척척 알아서 움직이는 가전제품,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커지는 음식, 버튼만 누르면 젖은 옷을 말려주는 기능까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과학 상상화 대회 같은 게 열리면 꼭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옛날 옛적 생각이 나면서 묘하게 그 시절의 향수를 느꼈달까. 우리가 상상하고 열광하고 설레며 미래를 기다리던 그 시절의 향수 말이다. 물론 2015년은커녕 2021년에도 이렇게나 불편하게 살 거라는 걸 과거의 인간들이 알면 어떨까 궁금하다. 당신들은 인간의 과학문명을 너무 과대평가했어.
아,그리고그런패션은영원히유행하지않아,유행해선안돼.따지고 보면 뻔하고 유치한 내용이다. 하지만 과거에 말했던 미래가 현재로 닥쳐오고 나니, 우리는 더 먼 미래를 꿈꾸고 상상한다. 2050년의 모습은 어떨까, 미래의 내가 과거에 써 두었던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는 것은 유치하거나 나쁜 게 아니다. 인간의 본능이자, 어쩔 수 없는 욕구다.
그래서 이 영화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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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얼리티를 이길 서사는 없다
이 다큐멘터리는 부국제에 갔다가 운좋게 보게 되었다. 뭐든 정보가 없어야 충격이 배가 되는 것일까. 영상물은 한 사람의 삶을 엿보는 것 조차 제작자의 입맛에 의해 편집될 수 있기에 그 입맛이 간파되는 순간 다큐는 매력이 반감될 때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신파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부국제에 갔을 당시 다큐가 시작하자 다소 실망하기도 했었다. 울음바다가 될 극 속에 날 밀어넣었구나 싶어서. 그런데 상황은 반전된다. 그 곳에서 나도 찔끔 눈물이 날 뻔했기 때문이다.
1. 서사의 8할은 기법이 아닌 메시지
이 다큐는 여러 가족의 탈북기를 그린다. 모든 사람들이 탈북에 성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성공한다고 해도 죽음을 무릅써야함을 굳이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나의 국경을 건너야 하는 일도 아닌데다가 중국의 공안들의 습격, 신분증이라도 검색하려고 하면 바로 걸릴 수 밖에 없으니 브로커를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브로커도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에 이들을 버리고 갈 여지도 있어 마냥 선인으로만 생각해서도 안된다.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세계임을 알 수 있다.
신파를 싫어하는 나도 탈북의 성공 여부에 따라 울컥하게 되더라. 이런 나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신파는 어쩌면 클래식과도 비슷한 말이지 않을까. 클래식한 소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지만 잘못 건드리면 감정 과잉으로 이어져 진부해지니 신파라는 멸칭으로 한순간에 변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다큐처럼 소재 자체로 눈물을 유발하는 내용인 경우 카메라는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찍어내야 하는 것 같다. 그저 카메라는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관객에게 알려야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빛나는 것 같다.
2. 모든 기법이 완벽하지 않아도
탈북이라는 단어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이 과정은 익히 알려져 있기에 이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는 걸까 싶을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다큐의 진가는 모든 촬영이 날 것 그대로라는 점이다. 탈북 과정에서 위험한 순간들은 밤이든 낮이든 언제든 들이닥칠 수 있고 장소도 불문이다. 그런 상황을 찍어내야 하기에 한 밤중의 밀림을 조명도 없이 찍고 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사람이 다치는 것도 눈이 아닌 소리로 캐치할 수 밖에 없다. 이 다큐의 시각적인 효과는 별게 없다. 어둡고 사람의 형체도 안보이는 것도 다반사이고 화질 그런 것은 별 소용이 없다. 하지만 시각적인 완벽함을 제외하니 소리가 들리고 더 상황에 몰입하게 된다
한 가족의 탈북기는 카메라로 직접 찍어내지는 않고 그저 북한에 있는 아들을 탈북시키려는 남한의 어머니와 브로커의 대화를 그저 듣는 형식이다. 그 가족의 경우 탈출 상황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황이라 상황이 잘못되는 순간 더 철렁하게 된다. 영화처럼 위기가 감지된다거나 하는 징조 전혀 없이 아침에 일어났더니 별안간 연락이 안되고 어디 잡혀간 것은 아닐까 더 노심초사하게 된다.
역시 인간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것은 특정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부 주지 않고 일정한 결핍을 제공할 때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총평
세상 모든 장르, 심지어 로맨스조차 현실에서 느낄 법한 사랑이야기여야 공감받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리얼리즘을 표방하더라도 리얼리티를 이길 내러티브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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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춘권의 고수 견자단 이번엔 핵주먹 타이슨과 대결 엽문3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엽문3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의 사용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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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리의 별빛 아래> 메인 예고편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만큼
수많은 이들이 홀로 어둠을 견디고 있단다"
홈리스와 난민 소년, 소외된 그들이 만든 파리의 기적!남모를 상처와 사연으로 홈리스의 삶을 살게 된 '크리스틴'
세상의 외면과 냉대 속에서 삶을 이어가던 크리스틴 앞에
머물 곳도 엄마도 잃은 아프리카 난민 소년 '술리'가 나타난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지만 크리스틴은 술리의 엄마를 찾기 위해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며 자신이 꾸려 온 모든 걸 던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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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너의 이름은.> 4K UHD 예고편
아직 만난 적 없는 너를, 찾고 있어
천년 만에 다가오는 혜성 기적이 시작된다.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시골에 사는 소녀 '미츠하'는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신기한 꿈을 꾼다.
낯선 가족, 낯선 친구들, 낯선 풍경들. .반복되는 꿈과 흘러가는 시간 속, 마침내 깨닫는다.
우리,서로 뒤바뀐거야?
절대 만날리 없는 두 사람 반드시 만나야 하는 운명이 되다.
서로에게 남긴 메모를 확인하며 점점 친구가 되어가는 '타키'와 '미츠하'
언제부턴가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자 자신들이 특별하게 이어져있었음을 깨달은 '타키'는 '미츠하'를 만나러 가는데...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잊으면 안되는 사람 너의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