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1-13 16:14:28
씨네랩 홈시네마 추천작 3편 <맵 투 더 스타>,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유포리아>
씨네랩 홈시네마 추천작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2022년 1월 둘째 주 씨네랩이 추천하는 홈 시네마 추천작 3편을 선정하는 콘텐츠입니다.
오늘은 왓챠에서 서비스 되고있는 <맵 투 더 스타>와
레전드 미국 시트콤인 디즈니 플러스의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시리즈
그리고 웨이브의 <유포리아>입니다.
그럼 씨네랩이 각 작품을 선정 및 추천하는 이유와
간단한 작품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도 씨네랩이 추천하는 홈시네마작을 시청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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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왓챠 <맵 투 더 스타>
영화 - 미스터리ㅣ111분
- 콘텐츠 소개 : 어느 날 지도 한 장을 들고 홀연히 할리우드에 나타난 미스터리 소녀 ‘애거서’.
그녀가 여배우의 매니저 일을 하기 위해 할리우드에 나타난 후 모든 이들과 실타래처럼 엮이면서 그들의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번 배역만은 꼭 따내야 하는 위기의 여배우 ‘하바나’, 최고의 아역스타였지만 이제는 한물간 ‘벤지’와 그의 부모, 할리우드 스타를 꿈꾸는 렌트카 운전 기사 ‘제롬’.
그들과 ‘애거서’의 엉킨 이야기들이 하나씩 풀어지게 되는데…
- 선정 및 추천 이유 : 제47회 시체스영화제(오피셜 판타스틱 - 여우주연상)과 2014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줄리안 무어) 작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연출 색깔은 <폭력의 역사>를 보면 느낌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 본연의 폭력성과 야만성, 이 두가지가 가장 그의 색깔을 대변하는 특징이라고나 할까요!
<맵 투 더 스타>는 폭력성과 야만성을 필두로 더 나아가 그리스적 신화의 세계로 세계관이 더 커집니다.
다소 막장드라마처럼 보이는 혼란 속에서도 내재된 규칙과 정돈된 질서가 있는 느낌의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날 것의 좀 불편하고 비위가 상하지만 그래도 인간 본연의 특성으로 그냥 지나칠수만은 없는 내용의 영화.
배우 줄리안 무어의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인만큼 그녀의 엄청난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며,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로 익히 알려진 배우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독특하고 섬뜩한 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초기 하이틴 스타에서 연기파 배우의 과도기의 과정의 로버트 패틴슨의 모습 또한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를 끌만한 요소일 것 같습니다.
2. 디즈니 플러스 +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How I met your other)
미국 드라마 - 시트콤ㅣ총 24부작
- 콘텐츠 소개 : 진실한 사랑을 찾는 '테드'와 네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
- 선정 및 추천 이유 : 미국 CBS에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방영했던 전설적인 시트콤입니다.
미국의 시트톰하면 많은 분들이 떠올릴 대표적인 작품 <프렌즈>가 있죠.
감히 그에 못지 않은 재미있고 유쾌한, 한번 보면 정주행할 수 밖에 없는 마성의 시트콤입니다.
한 에피소드의 분량이 20분 정도 되는 에피소드로 간결하고 깔끔한 팝콘 콘텐츠로 딱!입니다. :)
테드를 필두로 각 캐릭터들의 개성이 너무 뚜렷하고 매력적입니다. 캐릭터들의 케미스트리가 너무 좋으며,
무엇보다 시트콤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재미'가 있는 시트콤입니다.
정말 재밌는 시트콤을 찾으면서도 유치하지 않고 작품의 완성도까지 고려하고 계신분들에게 정말 최적의 시트콤으로 추천드립니다.
P.S 미드를 보면서 영어공부를 하고 싶은분들에게도 유용한 미드영어 공부 콘텐츠로 추천드립니다! :)
3. 웨이브 <유포리아>
미국 - HBO 드라마 ㅣ 시즌1 총 8부작
- 콘텐츠 소개 : 약물과 성, 트라우마, 범죄 그리고 소셜 미디어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
- 선정 이유 : 많은 대중분들에겐 마블 <스파이더맨>시리즈의 배우로 알려져있는 '젠다이아 콜먼'의 주연작입니다.
젠다이아 콜먼에게 미국의 권위있는 드라마 시상식인 에미상의 최연소 수상을 가져단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2019년 최고의 화제작인만큼 국내 팬들의 관심도 컸는데요.
미국의 HBO 드라마인만큼 볼 수 있는 채널이 없었는데 국내 OTT플랫폼인 웨이브에서 방영하고 있습니다.
10대들의 하이틴 시리즈로 마약과 섹스, 폭력 등의 선정적인 소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일리쉬한 연출 스타일과 배우들의 연기, OST 등 어느 하나 빠질것 없는 완성도 있는 드라마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것! 쇼킹하지만 개성있고 완성도있는 하이틴 드라마 콘텐츠를 보고싶은 분들에게 강력 추천!드립니다. :)
씨네랩 에디터 Cammie
- 2022-01-19 17:16:18통밀빵
유포리아를 3화까지 보고 못봤었는데 웨이브에 있다니 다시 봐야겠어요! 최근 외국에서는 시즌2가 활발히 방영되고 있어서 시즌2도 얼른 웨이브에 들어왔으면 좋겠네요
- 2022-01-16 14:25:42반짝
스파이더맨으로 알게 된 '젠데이아' 배우라니! 한 번 봐봐야겠어요 !! 연기가 궁금해지네요 !
- 2022-01-14 22:29:39쿠앙
젠데이아에게 상을 안긴 드라마라니 ! 웨이브 바로 구독해야겠어요 ╰(✧∇✧)
- 2022-01-13 16:26:10왔다뤼영화
<맵 투더 스타> 재밌을 것 같아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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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공삼칠 리뷰 - 이름을 빼앗긴 소녀, 지옥에서 희망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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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영상은 홍보마케팅사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발견한 가장 빛나는 만남”
열아홉 윤영은 엄마와 단 둘이 살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친구들처럼 학교에 가고 싶기도 하지만, 얼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장에서 일하는 청각 장애가 있는 엄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
착한 마음과 성실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뜻밖의 사고는
윤영을 피해자에서 살인자로 돌변시켜 교도소에 몰아넣고
‘윤영’이라는 이름대신 ‘이.공.삼.칠.’이라는 수감번호로 불리게 만든다.
더 이상 절망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10호실 동료들은 윤영을 지켜주기 위해 희망의 손길을 내미는데…
반드시 돌려줄게 너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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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영화 후기 / 명불허전의 액션 블록버스터 / 한(성강)이 살아 돌아왔다!! / 이제는 우주로 나아갈 때?!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캐스팅 소개 후에 제대로 있습니다.
블록버스터답게 엔드크레딧이 제법 긴데, 엔드크레딧 후에는 쿠키가 없으니 편하게 나오셔도 될 듯합니다.#분노의질주, #빈디젤, #성강, #샤를리즈테론,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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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리스도 디 오리진> 메인 예고편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만나다! 폭력과 탄압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 시대 예수는 12제자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고통받던 사람들을 사랑으로 치유한다. 위기를 느낀 로마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다. 3일 후, 예수는 자신의 예언과 같이 부활하는데… 위대한 인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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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분노의 질주 : 라이드 오어 다이> 메인 예고편
- 아무리 빨리 달려도 과거를 앞지를 순 없다. 돔(빈 디젤)과 그의 패밀리 앞에 나타난 운명의 적 단테(제이슨 모모아). 과거의 그림자는 돔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달려온다. 단테에 의해 산산히 흩어진 패밀리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맞서야 하는 함정에 빠지고 마는데.. 달리거나 죽거나, 그들의 마지막 질주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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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와 삶의 관계에 대한 스필버그의 회고록
운명처럼 다가온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은 무섭다. 어린 새미. 엄마, 아빠랑 손 잡고 극장에 가기로 했다. 극장이 무섭다는 아들의 말에 엄마 미치와 아빠 버트는 아들을 달랜다. "상영관에 가면 막상 사람들이 거인처럼 보일 거야. 근데 그건 다 연기하는 거라고." 귀엽게 설명한다. 용기를 내는 새미. 손 꼭 잡고 극장으로 들어간다. 새미와 부모님이 보기로 했던 영화는 <지상 최대의 쇼>다. 러닝타임이 재생된다. 영화에 정신이 팔려 미친 듯이 빨려가는 새미. 특히 그 영화의 한 장면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장면은 기차가 추돌사고를 일으키는 신이었다. 대박! 어떻게 저렇게 만들지? 설마 진짜 기차를 부술리는 없을 테고. 금세 집으로 돌아가서 이 장면을 구현하고 싶어졌다.
집에 도착했다. 직접 그 장면을 만들어보는 새미. 아버지에게 핀잔도 듣지만 새미를 멈출 수는 없다. 꿈이 생기기 시작한 새미. 꿈을 영화감독으로 정했다. 현재 2023년의 누군가가 말해도 '정말?' 할 말을 1950년대에 했으니 오죽할까. 아버지는 이런 새미의 목표를 취미쯤으로 생각한다. 반면 어머니 미치는 생각이 다르다. 춤추는 걸 좋아했던 미치. 아들 새미가 영화감독으로서 잠재력을 펼치길 바라고 있다. 아무튼 새미 가족은 사이가 좋다. 카메라를 새미에게 사준 아버지 버트. 취미든 아니든 알 바 아니다. 이제 새미의 세상을 만들 때가 왔다. 꿈 앞에 나아가는 새미. 그런 세미 앞에 거친 인생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신이 된 남자
한 분야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것도 이 방대하게 넓은 영화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가 됐다면 그 공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죠스>로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스필버그. 영화적 상상력은 공간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발현됐다. 외계인들과의 첫 만남을 묘사했던 <미지와의 조우>가 생각난다. 사실 이 영화를 지금 2023년 본다고 하면 살짝 루즈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봐도 신선하다고 느낄 부분이 몇 있다. 스필버그의 상상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 모두 다 <E.T>라는 영화를 알고 있다. 골판지 돌돌 말아 만든 것 같은 비주얼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른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만들었던 스필버그. <미지와의 조우>가 스릴러/미스터리적인 특성을 띈 것과는 반대로 <E.T>는 동화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 분이 같은 장르 안에서 템포를 바꾸는 것에만 능한 게 아니다. 그냥 영화를 잘한다.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릴러 <마이너리티 리포트> 로맨스 <영혼은 그대 곁에> 등 장르와 시대를 가로질러 압도적인 능력치를 보여준 것이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나이가 들면 늘 하던 것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 사람에게 그런 건 없다. 물론 전체적으로 스필버그가 갖고 있는 영화적인 톤은 그대로지만 크고 작은 변화들은 지속해 왔다. 최근 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까지 스필버그는 뭐에 홀린 듯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 <파벨만스>는 스필버그가 홀렸던 ‘어떤 것’에 대한 영화다. 왜 영화를 사랑하게 됐는지를 러닝타임동안 옴니버스 형식으로 설명한다. 또한 두 번째로 영화를 만들 때 어떤 가치관을 바탕으로 만들게 됐는지도 보여준다. 또 가장 결정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청년 스필버그의 영화관에 영향을 줬는지도 보여준다. 엥? 그냥 전기영화 아니야? 이 영화는 뻔한 전기영화와는 다른 감이 있다. 바로 러닝타임 내내 이런 가치들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피소드 하나당 하나가 아니라 사실상 이런 가치들이 하나로 묶여있는 듯한 연출법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핵심과도 이어져있다. 예를 들어서 주인공의 부모님은 입체적인 캐릭터다. 아버지 버트는 아들의 꿈이 취미라고 생각하지만 카메라를 사 준다. 또 이 버트라는 캐릭터는 아버지로서 굉장히 훌륭한 사람인 것으로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어떤 문제가 있어서 영화의 핵심 사건에 원인을 제공한다. 또 어머니 미치는 아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이다. 또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들의 꿈을 후원한다. 이 영화를 좋아하고 예술가적 특성이 마음 안에 있는 그녀가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도 영화에서 재미있게 묘사된다.
무관은 정말 서운해
사실 아카데미를 그렇게까지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뭐 오스카에서 상 하나 못 받았다고 영화 가치가 떨어지나? 그런 건 없다. 글쓴이만 해도 작년 수상작인 <코다>보다 <드라이브 마이카>나 <파워 오브 도그>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건 좀 해도 너무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엄청난 작품이라는 것은 변함없지만 감독상 정도는 줄 만 했잖아?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독의 역량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느낄 수 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새미는 영화 안에서 몇 작품을 찍는다. 이 작품은 새미의 삶과 별개처럼 보이지만 사실 거의 그대로 현실을 담고 있다. 극 중 극이 품고 있는 서사 중 몇몇 장면이 현실의 어떤 지점에서 영화화되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정밀하고 섬세하게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현실과 영화와의 사이라는 지점은 영화의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과도 이어져있다. 그러니까 그 부분은 이 ‘현실과 영화사이의 교집합’은 곧 ‘새미의 예술관’, 즉 ‘스티븐 스필버그의 예술관’과도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토대가 단단해진 스필버그는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까? 아버지가 세계 2차 대전 참전 용사였다는 것(<라이언 일병 구하기>) 외로웠던 유년시절에 판타지적인 요소로 아로새긴 친구(<E.T>), 퇴색되어 버린 가족의 사랑(<A.I.>)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뮌헨>)까지 그의 실제 행보를 생각해 보면 이런 장면들이 작품을 보고 나서도 다른 감동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이 영화는 인물에 대한 판단이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우리가 만약에 한 60여 년 동안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그 60년의 세월 동안 쌓은 입지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 지나가다가 만난 아무 나도 '어려운 시기 이겨내서 지금 행복하게 잘 산다'류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떠들곤 한다.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이라면 이 드라마틱한 성장서사를 더 전하고 싶지 않을까? 영화는 냉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인물을 판단하지 않는다. 자기 연민에 대한 이야기? 없다. 영화를 위한 거룩한 희생? 감정적으로 들끓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이 사건들을 어떻게 영화화할 것인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감정적인 반응에 강점이 찍힌 건 작품 상영 후를 묘사하는 지점 쪽에 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가족들에 대해서 무작정 안 좋게 묘사한다던가, 영화에서 악역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들을 무조건 감싸준다던가 하는 일은 없다. 생각해 보면 이 역시 영화의 핵심 중 한 부분('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영화화한다는 것')과도 닿아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도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영화 촬영은 엔딩과도 관련이 있다. 엔딩에서 그렇게 연출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흐름이 깨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영화에서 두 사람의 촬영방식을 구현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새미가 찍는 극 중 영화, 스필버그가 기획한 장면 연출이다. 또 어떤 장면에서 빛을 활용한 촬영이 돋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영화에서 품기는 분위기를 더 매력 있게 만든다.
이 둘이 부부
사실 이 <파벨만스>를 글쓴이가 전부터 기대했던 이유는 두 주인공 때문이다. 바로 폴 다노와 미셸 윌리엄스다. 폴 다노는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선 굵은 연기를 한 것으로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다. 또 <더 배트맨>에서는 적은 노출로 어떻게 하면 광기를 폭발시킬 수 있는지를 연구한 티가 났다. 이렇게 테크닉 화려하게 때려 박는 연기를 잘하는 것 같지만 이 사람은 따뜻한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연기력으로 두드러지는 부분은 다른 배우들 쪽에 좀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테크닉이 다른 영화들처럼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폴 다노는 대체불가한 장점을 과시하며 안정적으로 극을 이끈다. <밀양>의 송강호 배우가 생각나는 연기였다.
미셸 윌리엄스는 연기의 정석을 그대로 옮긴 것 같았다. 폴 다노처럼 개성 있는 해석능력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미셸은 반대로 그 세계와 인물을 오롯이 이해하고 순간마다 서려있는 감정연기를 풍부하게 보여줬다. 이 마치를 가로지르는 캐릭터 특성은 호기심과 신선함이다. 뭔가 새로운 걸 찾아 나서는 성격인 미치. 이 신선함에 대한 강박은 인물을 후반부까지 이끄는 좋은 동력이 된다. 걸핏하면 몰입이 깨질 수도 있는 인물을 영화의 엔딩까지 적절하게 끌고 갔던 것은 이 미셸 윌리엄스의 덕이 크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양자경과 케이트 블란쳇이 유력했던 탓에 이 분이 엄청 언급된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 미셸 윌리엄스는 인물의 입체성을 이 세계가 품고 있는 질서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만한 가치가 충분했다고 느낀다.
모든 걸 포함하는 이야기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역시 엔딩이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에게도 가장 인상 깊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솔직히 처음 극장 문을 나올 때 '이걸?' 싶었다. 그런데 집에 가면서 다시 돌아보니 이 영화의 엔딩으로 이 장면만큼 깔끔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해가 어려운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의 첫 장면과 끝장면이 왜 그 부분으로 시작할까?를 생각해보신다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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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이야기, 존중 없는 사랑은 족쇄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아내를 꼽는 남편. 남편의 가능성을 믿고 영화판을 떠나 극단 무대를 택한 아내. 더없이 이상적인 관계로 보이는 이들은 어느 순간 차에 치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 부부 사이에 사랑은 있을지언정 존중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노아 바움백의 영화 <결혼이야기>는 존중 없는 사랑으로 파경을 맞는 부부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LA 출신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배우였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고 영화배우가 됐다. 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작품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다. 어쩌면 잘 나가는 할리우드 스타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뉴욕에 자리 잡은 극단 감독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찰리의 연극에 매료된다. 결국 니콜은 터전인 LA 대신 낯선 땅 뉴욕에서 삶을 꾸린다. 꿈과 기회를 포기하면서 사랑을 택한 것이다. 그 선택은 니콜을 한 사람의 아내, 극단의 평범한 배우로 전락시킨다. 사랑하는 아들 헨리도 니콜에게 '엄마'라는 이름의 또 다른 짐을 지운다.
같은 시기, 남편 찰리의 몸값은 높아져만 간다. 소위 천재들만 받는다고 알려진 맥아더 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찰리는 극단 사람들이 잘해준 덕분이라며 상금을 극단 유지에 사용하겠다고 말한다. 극단의 헌신적인 리더답다. 하지만 니콜이 잘해준 덕분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나 보다. 니콜은 자신의 유명세까지 이용하며 극단 홍보에 나서고, 극단의 실험극들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완성도 있게 만들어갔다. 니콜의 몫은 부부라는 이유로 어느 순간 당연한 게 되어버렸다.
니콜에게 오랜만에 영화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찰리의 성향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찰리는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아내 니콜을 꼽아놓고도 아내의 재기를 축하하지 못한다. 자신과 극단이 있는 뉴욕을 떠나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LA로 가야 했으니까. 찰리는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했지만 결국 니콜을 막지 못한다. 하지만 허락을 할 때조차 출연료를 극단 유지 비용으로 쓰자고 제안한다. 니콜은 자꾸만 몸이 극단에 잠식당하는 기분이 든다.
찰리와 니콜. 이들 부부가 감독과 배우의 관계인 건 대단히 상징적이다. 감독과 배우는 언뜻 대등한 파트너로 보인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감독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배우를 활용한다. 배우는 역할에 몰두하기 위해 본인을 지워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니콜이 이혼이라는 카드를 꺼내게 된 이유는 사랑이 식어서라기보다는 '부부의 세계'에 매몰된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함이다.
니콜은 대화 대신 소송을 택한다. 재산을 더 많이 가져갈 요량은 아니었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찰리와 대화로 상황을 풀 용기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 영화 '결혼 이야기'는 찰리와 니콜의 지리멸렬한 이혼 소송 과정을 그린다.
소송은 진흙탕 싸움이었다. 좋게 마무리하고 싶은 의뢰인의 진심은 변호사들에게 닿지 않는다. 변호사들은 소송에 들어갔을 때만 상대를 향해 분노한다. 상처를 받는 건 당연하게도 니콜과 찰리. 그들은 '나를 이렇게 창피하게 만드는' 서로에게 점점 실망한다. 부부의 사랑은 형태를 바꿔 간다. 애틋함에서 애끓는 증오로, 또 공허한 평화로. 다시 애틋함으로.
이혼 준비는 그 어느 때보다 결혼에 대해 많이 상기하는 시기였다. 헤어진 이후 서로의 진심을 알고 눈물을 삼키는 일도 있었지만 이들 부부는 부부로 돌아가지 않는다. 니콜과 찰리에게 결혼 생활은 '우리는 어긋나 있구나'라고 확신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영화 후반, 찰리의 품을 떠난 니콜은 배우상이 아니라 감독상 후보가 된다. 그것도 우수한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 수여하는 에미상이다. 이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찰리는 TV를 보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애초에 니콜의 세계를 존중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극단의 멋진 리더이자 헨리의 다정한 아빠였지만 니콜에게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족쇄였던 것.
TV 채널을 돌리다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이혼한 연예인 부부가 다시 만나 한 집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만들어 보는 관찰 예능이었다. 출연한 부부들의 재결합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마음에서 쓸쓸한 바람이 인다.
아내는 "이 사람은 여전히 내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남편은 자꾸만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는 아내가 불편하다. 이미 자신들의 '결혼이야기'라는 책을 써 내려간 관계다. 서로의 간극을 확인하고 이별을 감행한 상태인 것. 결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책 한 구석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제삼자들에게도 아프게 다가온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가사가 귓가를 맴돈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오마이뉴스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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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렇게 미쳤나요?
<해시태그 시그네>의 시그네를 지켜보는 것은 불편하다. 시그네의 행동이 때로는 혐오스럽고, 나 같아서 수치스럽다가도 ‘나는 저렇게까지는 안 하지’라며 안도한다. 그러다 때때로 일상의 어느 지점에서 난데없이 시그네를 떠올리곤 한다. 어느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아서, 인정받지 못해서, 나 빼고 다들 잘만 사는 것 같을 때 나는 스스로를 시그네와 동일시한다. 심지어 시그네의 기행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시그네를 설명하자면 어떤 자리에서든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함, 유머 감각은 형편없고, 예술가로 주목받는 남자친구를 질투하며, 남자친구에게 향하는 주목을 곧바로 자신에게 돌리고자 견과류 알레르기까지 지어내는 나르시시스트. 이쯤이면 귀엽게 봐줄 만도 하지만 시그네는 관심받기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위험까지 무릅쓴다. 피부병을 일으키는 불법 약물을 오남용해 주위의 걱정과 관심을 사려는 계획이다. 붉은 발진으로 얼굴이 뒤덮이고 괴사가 진행됐지만 시그네는 만족스럽다.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은 셀카를 찍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다.
이제 시그네는 새로운 관객을 찾는다. SNS에 셀카를 올리고, 기자인 친구 마르떼에게 원인 불명의 병에 걸렸다는 거짓말로 인터뷰 기회를 얻어낸다. 시그네는 가짜 불행을 극복한 서사를 통해 인플루언서가 되는 꿈에 부풀었다. 동시에 시그네는 평소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사람들을 단죄하는 상상을 한다. 그 대상은 이혼 이후로 줄곧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와 병문안을 오지 않았던 친구, 그리고 토마스다. 시그네의 상상 속에서 그들은 유명해진 시그네에게 거절당하고, 애원하고, 사과한다. 나는 시그네의 진짜 욕망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면 주변 사람들도 날 좀 다르게 쳐다봐 줄까? 내 고통에 귀 기울여줄까? 내 가치를 인정해 줄까? 나는 환대받을 수 있을까?
한편 여성 청년의 고립과 그 사회적 맥락을 살핀 책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의 저자는 기존의 ‘은둔’에만 한정되었던 고립 청년의 정의를 확장해 다양한 고립의 양상을 드러낸다. 현실의 고립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외출을 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살아도, 일을 하면서도 고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 고립뿐만 아니라 배제와 차별, 소외의 경험 또한 일상에서 겪는 고립이다. 시그네의 기행이 그저 미친 짓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시그네의 삶에서 고립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지만 일터에서 열정을 느끼지도 유의미한 관계를 맺지도 못한다. 성장 과정 내내 아버지는 무관심했고, 어머니와는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한다. 친구들에게는 공감을 받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토마스 또한 자기 커리어 띄우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토마스는 절도한 가구를 전시하는 행위 예술가로 주목받는데, 항상 시그네의 도움을 받아 절도를 했지만 영광은 혼자 차지하며 예술계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시그네를 여자 친구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토마스의 곁에서 그림자 같은 존재인 시그네가 인정에 목마른 것은 당연해 보인다. 어디서든 소외된 시그네가 관심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뿐이었다. 자기 자신을 아프게 만드는 것이 나쁜가, 타인을 도구처럼 이용하며 자신을 아티스트로 포장하는 토마스가 더 나쁜가. 물론 시그네 또한 거짓말을 반복하며 타인을 기만한다. 그러나 시그네의 주변인들 모두 정도만 다를 뿐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로 타인을 조금씩 이용하는 건 마찬가지다. 마르떼가 기자의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시그네를 인터뷰한 것은 화제성 있는 기사를 씀으로써 커리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고, 또 다른 고립 청년인 스티안이 시그네에게 불법 약물을 구해다 준은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시그네와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신체 다양성을 강조한 의류 브랜드는 시그네를 모델로 기용하는데, 이 역시 시그네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수준’의 질병과 외모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그들은 시그네가 가진 질병의 이미지만을 차용할 뿐이다.
시그네가 그렇게 미쳤나? 내가 나를 해하지 않은 것은 시그네보다 삶의 안전망을 아주 조금 더 가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을 보살펴주는 가족이나, 열정을 쏟을 만한 일, 건강한 식단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도 있다. 토마스의 경우처럼 (포장된 것일지라도) 우연히 가진 재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을 지탱해 주는 안전망은 누구에게나 가변적이다. 누구든 시그네보다 덜 미쳤다면 단지 시그네보다 운이 조금 더 좋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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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미국/200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미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
멜 깁슨이 배우라기보다 감독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된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는 극장개봉 전에 이미 유명해진 영화다. 반유대주의 영화라고 하여, 헐리웃을 점령한 유대인들로부터 미국의 엘리트 계층, 자본가 계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들에 이르기까지, 은근한 혹은 노골적인 반감이 표출되었다. 영화가 상영되고 난 후 그 유명세는 더 한층 상승되었다. gory 하다, 따라서 horror 장르로 분류해야 한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심지어 수위가 높은 잔인한 고문장면 때문에 약한 심장을 가졌던 관객은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더욱이 이제 멜 깁슨은 유대인들의 왕국인 헐리웃의 영화에 캐스팅되기는 글렀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오갔다. 아마 그 예측은 옳을 것이다.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와 동고동락했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가롯 사람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반과 당시 유대 종교 엘리트 계층인 바리새인들의 음모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한 후 예언대로 사흘만에 부활하기까지, 즉 구약의 예언이 완벽하게 성취되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다룬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기독교 구약과 신약성경의 텍스트에 매우 충실하다.
하나님이 창조한 첫 번째 인간 아담으로 인해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다. 하나님은 죄와 상관할 수가 없다. 그의 거룩함으로 말미암아 죄지은 자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죄 없고 흠 없는 외아들을 인간으로 세상에 보내 인간들이 당해야할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당하도록 '상관'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인류가 당할 모든 저주를 혼자 감당한 뒤 인간으로 죽었다. 그리고 역시 예언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 그리하여 인류구원을 위한 고난의 사역을 완전히 성취했다.
멜 깁슨이 가톨릭(구교) 신자여서 그랬겠지만 영화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한 경외심이 배어있다.
그러나 구교와 신교를 초월한 복음의 정수를 전달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는 고대 유대인들과 로마 군인들이 사용하던 그 언어로 영화를 제작했다는 것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기독교가 여러가지 종파로 나뉘기 전, 인간의 이데올로기가 섞이기 전의 예수 수난사건과 그의 부활이라는 복음의 핵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
그리고 멜 깁슨은 영화를 전 세계에 배급하면서 더빙이 가능한 원고가 아닌 자막용 원고만을 만들었다. 영화를 더빙하지 못하도록 M/E (Music and Effect) 트랙도 아예 만들지 않았다. 이쯤되면 그의 의도가 더욱 분명해진다.
이 영화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정관사 the와 함께 대문자로 시작하는 Passion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을 당하고 죽음'을 뜻함을 알았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신(하나님)과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온 신(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인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여 그들에게 스스로를 계시함으로써 그가 창조한 인간들과 교통하며 신의 뜻에 따라 통치되는 아름다운 국가를 세워 그 주변의 이방사람들에게 본을 보이고 모두 그 아름다운 국가를 따라 살기를, 즉 모든 인류가 신의 자녀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신의 계획안에서, 그것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래서 약속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신실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한 약속을 했다. 내가 메시아를 보내리라. 그가 너희들을 구원하리라... 그리고 내 뜻으로 통치되는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약성경의 핵심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을 지켰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약속대로 이 땅에 왔다. 그는 이스라엘 땅에 태어난 성육신(인간의 몸으로 온 신)이다. 예수는 구약성경 곳곳에 예언으로 주어진 말씀대로 메시아로서 감당해야할 모든 것을 빠짐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성취한다. 그는 말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고난을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당했다. 예언을 이루어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그것은 인류 역사에 다시없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며 순종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구약성경의 한 구절,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 (이사야서 53장 5절)는 메시아에 대한 대표적인 예언이자 이 영화의 주제이다.
이제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모두 구원을 얻게 되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한다면. 그가 인류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하였다는 것을, 그리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이루었다는 것을 믿기만 한다면.
영화에 그려진 인간들의 모습은 어떤가.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잘 아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고통으로 지켜본다. 그 곁에는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요한과 예수의 가르침을 좇았던 막달라 마리아가 늘 함께 있다. 그들은 아무 힘없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안타까움과 아픔으로 지켜보는 무력한 자들이었다.
예수와 함께 먹고 자며 전도하였던 제자 중 하나였던 유다는 물질이 탐이나 돈에 스승을 판다. 반역자다. 그리고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흥분한 사람들이 자신을 해칠까봐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한다. 그는 비겁했다.
당시 구약을 믿고 암송하며 가르쳤던 유대교 종교 엘리트이며 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천한 목수의 아들 예수가 가르치는 말씀의 권위와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는 그의 기적의 능력을 질투했으며,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공공연히 비판하는 예수를 두려워했다. 아니, 예수 때문에 그들의 인기와 권위가 실추될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거짓증거를 날조하여 신성모독으로 예수를 죽였다. 야비한 살인자였다.
그리고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로마의 군인 빌라도. 그는 예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유대인들 사이에 민란이 나면 로마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의 정치생명은 끝나고 말 것을 두려워한 비겁한 출세주의자였다.
그리고 그 무력함, 비겁함, 야비함, 두려움 등의 어두움은 모든 인간에게서, 나에게서 늘 찾아지는 것들이다.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되지 않는 한.
인간은 세상에서의 안락한 삶, 즉 세상을 사랑하고, 속이는 자 사탄은 세상의 재미로 인간을 미혹하며 죄를 짓게 함으로써 신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다.
그러나 신은 위대한 사랑이다. 인간은 늘 하나님을 배반하나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 인간에게 예수를 보냈다. 그리고 온갖 사탄의 책략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죽음, 즉 사탄을 이김으로써 다시 한 번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기회를 인간에게 주었다.
인간은 단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메시아이며 예수의 보혈로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죄의 종, 즉 사탄의 종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그 신분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며 이 영화의 요지이다((©2021. 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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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개봉 예정 일본 영화.zip
안녕하세요!
오늘은 국내 개봉 예정인 영화 중 '일본' 영화를 중심으로
기대가 되는 작품을 모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٩( ᐛ )و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네이버 영화
SYNOPSIS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리셋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여고생 ‘마오리’와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고 있는 평범한 남고생 ‘토루’의 풋풋하고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
CINE PICK
한국 누적 판매부수 40만 부를 돌파한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화제작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연출한 츠키카와 쇼 감독이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옥의 화원
ⓒ 네이버 영화
SYNOPSIS
압도적 격투 능력만 있다면 최강의 여직원으로 칭송 받는 세계,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나오코가
싸움에 휘말리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오피스 코믹 액션.
CINE PICK
일본의 천재 개그맨 바카리즈무가 각본을 쓰고, 슈퍼 루키 루키 나가노 메이, 히로세 아리스가
출연하여 화제를 모은 작품 <지옥의 화원>.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국내에서 첫
공개를 하며 폭발적인 호평을 받아 관객상에 해당하는 넷팩상을 수상하였다.
어웨이크
ⓒ 네이버 영화
SYNOPSIS
프로 장기 기사의 꿈을 포기한 청년이 AI 장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새롭게 도전하는 내용의
영화.
CINE PICK
인간과 인공지능의 장기 대국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실화를 재구성하여 만들었기에
사실적이며, 몰입감이 뛰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이슈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관심 갖고 관람할 것 같다.
스즈메의 문단속
ⓒ 네이버 영화
SYNOPSIS
일본 각지의 폐허를 무대로, 여고생 ‘스즈메’와 수수께끼 의자가 함께 재해의 원인이 되는 ‘문’을
닫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펼치는 초대형 어드벤처 게이트 로드 무비.
CINE PICK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를 연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이다. 일본 개봉 첫 주말에 133만 명 관객을 동원하며 신카이 감독 작품 역대 오프닝
스코어를 갱신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 네이버 영화
SYNOPSIS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꿈과 열정, 멈추지 않는 도전을 그린 영화
CINE PICK
누적 발행 부수 1억 2000만 부를 돌파한 명작 '슬램덩크'의 새로운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으며 화제를 모았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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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시간을 담아서 학교 배경 영화 -9-
❣️ [Cinelab Curation] ❣️
이번 주에는 새 학기를 맞아 학교 배경 영화들을 큐레이션 해보려고 해요!
새 학기는 언제나 설렘과 긴장으로 가득하죠.
어쩌면 익숙해진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 놓이는 일이 쉽지 않은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새로움에서 여러분만의 길을 찾기를, 즐겁고 빛나는 시간을 많이 쌓기를 바랍니다.
그럼, 씨네랩 큐레이션과 함게 첫 주 무사히 잘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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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공삼칠 리뷰 - 이름을 빼앗긴 소녀, 지옥에서 희망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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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영상은 홍보마케팅사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발견한 가장 빛나는 만남”
열아홉 윤영은 엄마와 단 둘이 살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친구들처럼 학교에 가고 싶기도 하지만, 얼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장에서 일하는 청각 장애가 있는 엄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
착한 마음과 성실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뜻밖의 사고는
윤영을 피해자에서 살인자로 돌변시켜 교도소에 몰아넣고
‘윤영’이라는 이름대신 ‘이.공.삼.칠.’이라는 수감번호로 불리게 만든다.
더 이상 절망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10호실 동료들은 윤영을 지켜주기 위해 희망의 손길을 내미는데…
반드시 돌려줄게 너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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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영화 후기 / 명불허전의 액션 블록버스터 / 한(성강)이 살아 돌아왔다!! / 이제는 우주로 나아갈 때?!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캐스팅 소개 후에 제대로 있습니다.
블록버스터답게 엔드크레딧이 제법 긴데, 엔드크레딧 후에는 쿠키가 없으니 편하게 나오셔도 될 듯합니다.#분노의질주, #빈디젤, #성강, #샤를리즈테론,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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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리스도 디 오리진> 메인 예고편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만나다! 폭력과 탄압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 시대 예수는 12제자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고통받던 사람들을 사랑으로 치유한다. 위기를 느낀 로마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다. 3일 후, 예수는 자신의 예언과 같이 부활하는데… 위대한 인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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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분노의 질주 : 라이드 오어 다이> 메인 예고편
- 아무리 빨리 달려도 과거를 앞지를 순 없다. 돔(빈 디젤)과 그의 패밀리 앞에 나타난 운명의 적 단테(제이슨 모모아). 과거의 그림자는 돔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달려온다. 단테에 의해 산산히 흩어진 패밀리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맞서야 하는 함정에 빠지고 마는데.. 달리거나 죽거나, 그들의 마지막 질주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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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와 삶의 관계에 대한 스필버그의 회고록
운명처럼 다가온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은 무섭다. 어린 새미. 엄마, 아빠랑 손 잡고 극장에 가기로 했다. 극장이 무섭다는 아들의 말에 엄마 미치와 아빠 버트는 아들을 달랜다. "상영관에 가면 막상 사람들이 거인처럼 보일 거야. 근데 그건 다 연기하는 거라고." 귀엽게 설명한다. 용기를 내는 새미. 손 꼭 잡고 극장으로 들어간다. 새미와 부모님이 보기로 했던 영화는 <지상 최대의 쇼>다. 러닝타임이 재생된다. 영화에 정신이 팔려 미친 듯이 빨려가는 새미. 특히 그 영화의 한 장면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장면은 기차가 추돌사고를 일으키는 신이었다. 대박! 어떻게 저렇게 만들지? 설마 진짜 기차를 부술리는 없을 테고. 금세 집으로 돌아가서 이 장면을 구현하고 싶어졌다.
집에 도착했다. 직접 그 장면을 만들어보는 새미. 아버지에게 핀잔도 듣지만 새미를 멈출 수는 없다. 꿈이 생기기 시작한 새미. 꿈을 영화감독으로 정했다. 현재 2023년의 누군가가 말해도 '정말?' 할 말을 1950년대에 했으니 오죽할까. 아버지는 이런 새미의 목표를 취미쯤으로 생각한다. 반면 어머니 미치는 생각이 다르다. 춤추는 걸 좋아했던 미치. 아들 새미가 영화감독으로서 잠재력을 펼치길 바라고 있다. 아무튼 새미 가족은 사이가 좋다. 카메라를 새미에게 사준 아버지 버트. 취미든 아니든 알 바 아니다. 이제 새미의 세상을 만들 때가 왔다. 꿈 앞에 나아가는 새미. 그런 세미 앞에 거친 인생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신이 된 남자
한 분야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것도 이 방대하게 넓은 영화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가 됐다면 그 공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죠스>로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스필버그. 영화적 상상력은 공간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발현됐다. 외계인들과의 첫 만남을 묘사했던 <미지와의 조우>가 생각난다. 사실 이 영화를 지금 2023년 본다고 하면 살짝 루즈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봐도 신선하다고 느낄 부분이 몇 있다. 스필버그의 상상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 모두 다 <E.T>라는 영화를 알고 있다. 골판지 돌돌 말아 만든 것 같은 비주얼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른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만들었던 스필버그. <미지와의 조우>가 스릴러/미스터리적인 특성을 띈 것과는 반대로 <E.T>는 동화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 분이 같은 장르 안에서 템포를 바꾸는 것에만 능한 게 아니다. 그냥 영화를 잘한다.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릴러 <마이너리티 리포트> 로맨스 <영혼은 그대 곁에> 등 장르와 시대를 가로질러 압도적인 능력치를 보여준 것이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나이가 들면 늘 하던 것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 사람에게 그런 건 없다. 물론 전체적으로 스필버그가 갖고 있는 영화적인 톤은 그대로지만 크고 작은 변화들은 지속해 왔다. 최근 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까지 스필버그는 뭐에 홀린 듯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 <파벨만스>는 스필버그가 홀렸던 ‘어떤 것’에 대한 영화다. 왜 영화를 사랑하게 됐는지를 러닝타임동안 옴니버스 형식으로 설명한다. 또한 두 번째로 영화를 만들 때 어떤 가치관을 바탕으로 만들게 됐는지도 보여준다. 또 가장 결정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청년 스필버그의 영화관에 영향을 줬는지도 보여준다. 엥? 그냥 전기영화 아니야? 이 영화는 뻔한 전기영화와는 다른 감이 있다. 바로 러닝타임 내내 이런 가치들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피소드 하나당 하나가 아니라 사실상 이런 가치들이 하나로 묶여있는 듯한 연출법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핵심과도 이어져있다. 예를 들어서 주인공의 부모님은 입체적인 캐릭터다. 아버지 버트는 아들의 꿈이 취미라고 생각하지만 카메라를 사 준다. 또 이 버트라는 캐릭터는 아버지로서 굉장히 훌륭한 사람인 것으로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어떤 문제가 있어서 영화의 핵심 사건에 원인을 제공한다. 또 어머니 미치는 아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이다. 또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들의 꿈을 후원한다. 이 영화를 좋아하고 예술가적 특성이 마음 안에 있는 그녀가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도 영화에서 재미있게 묘사된다.
무관은 정말 서운해
사실 아카데미를 그렇게까지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뭐 오스카에서 상 하나 못 받았다고 영화 가치가 떨어지나? 그런 건 없다. 글쓴이만 해도 작년 수상작인 <코다>보다 <드라이브 마이카>나 <파워 오브 도그>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건 좀 해도 너무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엄청난 작품이라는 것은 변함없지만 감독상 정도는 줄 만 했잖아?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독의 역량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느낄 수 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새미는 영화 안에서 몇 작품을 찍는다. 이 작품은 새미의 삶과 별개처럼 보이지만 사실 거의 그대로 현실을 담고 있다. 극 중 극이 품고 있는 서사 중 몇몇 장면이 현실의 어떤 지점에서 영화화되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정밀하고 섬세하게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현실과 영화와의 사이라는 지점은 영화의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과도 이어져있다. 그러니까 그 부분은 이 ‘현실과 영화사이의 교집합’은 곧 ‘새미의 예술관’, 즉 ‘스티븐 스필버그의 예술관’과도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토대가 단단해진 스필버그는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까? 아버지가 세계 2차 대전 참전 용사였다는 것(<라이언 일병 구하기>) 외로웠던 유년시절에 판타지적인 요소로 아로새긴 친구(<E.T>), 퇴색되어 버린 가족의 사랑(<A.I.>)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뮌헨>)까지 그의 실제 행보를 생각해 보면 이런 장면들이 작품을 보고 나서도 다른 감동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이 영화는 인물에 대한 판단이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우리가 만약에 한 60여 년 동안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그 60년의 세월 동안 쌓은 입지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 지나가다가 만난 아무 나도 '어려운 시기 이겨내서 지금 행복하게 잘 산다'류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떠들곤 한다.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이라면 이 드라마틱한 성장서사를 더 전하고 싶지 않을까? 영화는 냉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인물을 판단하지 않는다. 자기 연민에 대한 이야기? 없다. 영화를 위한 거룩한 희생? 감정적으로 들끓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이 사건들을 어떻게 영화화할 것인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감정적인 반응에 강점이 찍힌 건 작품 상영 후를 묘사하는 지점 쪽에 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가족들에 대해서 무작정 안 좋게 묘사한다던가, 영화에서 악역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들을 무조건 감싸준다던가 하는 일은 없다. 생각해 보면 이 역시 영화의 핵심 중 한 부분('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영화화한다는 것')과도 닿아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도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영화 촬영은 엔딩과도 관련이 있다. 엔딩에서 그렇게 연출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흐름이 깨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영화에서 두 사람의 촬영방식을 구현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새미가 찍는 극 중 영화, 스필버그가 기획한 장면 연출이다. 또 어떤 장면에서 빛을 활용한 촬영이 돋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영화에서 품기는 분위기를 더 매력 있게 만든다.
이 둘이 부부
사실 이 <파벨만스>를 글쓴이가 전부터 기대했던 이유는 두 주인공 때문이다. 바로 폴 다노와 미셸 윌리엄스다. 폴 다노는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선 굵은 연기를 한 것으로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다. 또 <더 배트맨>에서는 적은 노출로 어떻게 하면 광기를 폭발시킬 수 있는지를 연구한 티가 났다. 이렇게 테크닉 화려하게 때려 박는 연기를 잘하는 것 같지만 이 사람은 따뜻한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연기력으로 두드러지는 부분은 다른 배우들 쪽에 좀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테크닉이 다른 영화들처럼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폴 다노는 대체불가한 장점을 과시하며 안정적으로 극을 이끈다. <밀양>의 송강호 배우가 생각나는 연기였다.
미셸 윌리엄스는 연기의 정석을 그대로 옮긴 것 같았다. 폴 다노처럼 개성 있는 해석능력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미셸은 반대로 그 세계와 인물을 오롯이 이해하고 순간마다 서려있는 감정연기를 풍부하게 보여줬다. 이 마치를 가로지르는 캐릭터 특성은 호기심과 신선함이다. 뭔가 새로운 걸 찾아 나서는 성격인 미치. 이 신선함에 대한 강박은 인물을 후반부까지 이끄는 좋은 동력이 된다. 걸핏하면 몰입이 깨질 수도 있는 인물을 영화의 엔딩까지 적절하게 끌고 갔던 것은 이 미셸 윌리엄스의 덕이 크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양자경과 케이트 블란쳇이 유력했던 탓에 이 분이 엄청 언급된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 미셸 윌리엄스는 인물의 입체성을 이 세계가 품고 있는 질서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만한 가치가 충분했다고 느낀다.
모든 걸 포함하는 이야기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역시 엔딩이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에게도 가장 인상 깊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솔직히 처음 극장 문을 나올 때 '이걸?' 싶었다. 그런데 집에 가면서 다시 돌아보니 이 영화의 엔딩으로 이 장면만큼 깔끔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해가 어려운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의 첫 장면과 끝장면이 왜 그 부분으로 시작할까?를 생각해보신다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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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이야기, 존중 없는 사랑은 족쇄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아내를 꼽는 남편. 남편의 가능성을 믿고 영화판을 떠나 극단 무대를 택한 아내. 더없이 이상적인 관계로 보이는 이들은 어느 순간 차에 치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 부부 사이에 사랑은 있을지언정 존중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노아 바움백의 영화 <결혼이야기>는 존중 없는 사랑으로 파경을 맞는 부부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LA 출신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배우였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고 영화배우가 됐다. 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작품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다. 어쩌면 잘 나가는 할리우드 스타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뉴욕에 자리 잡은 극단 감독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찰리의 연극에 매료된다. 결국 니콜은 터전인 LA 대신 낯선 땅 뉴욕에서 삶을 꾸린다. 꿈과 기회를 포기하면서 사랑을 택한 것이다. 그 선택은 니콜을 한 사람의 아내, 극단의 평범한 배우로 전락시킨다. 사랑하는 아들 헨리도 니콜에게 '엄마'라는 이름의 또 다른 짐을 지운다.
같은 시기, 남편 찰리의 몸값은 높아져만 간다. 소위 천재들만 받는다고 알려진 맥아더 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찰리는 극단 사람들이 잘해준 덕분이라며 상금을 극단 유지에 사용하겠다고 말한다. 극단의 헌신적인 리더답다. 하지만 니콜이 잘해준 덕분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나 보다. 니콜은 자신의 유명세까지 이용하며 극단 홍보에 나서고, 극단의 실험극들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완성도 있게 만들어갔다. 니콜의 몫은 부부라는 이유로 어느 순간 당연한 게 되어버렸다.
니콜에게 오랜만에 영화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찰리의 성향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찰리는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아내 니콜을 꼽아놓고도 아내의 재기를 축하하지 못한다. 자신과 극단이 있는 뉴욕을 떠나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LA로 가야 했으니까. 찰리는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했지만 결국 니콜을 막지 못한다. 하지만 허락을 할 때조차 출연료를 극단 유지 비용으로 쓰자고 제안한다. 니콜은 자꾸만 몸이 극단에 잠식당하는 기분이 든다.
찰리와 니콜. 이들 부부가 감독과 배우의 관계인 건 대단히 상징적이다. 감독과 배우는 언뜻 대등한 파트너로 보인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감독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배우를 활용한다. 배우는 역할에 몰두하기 위해 본인을 지워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니콜이 이혼이라는 카드를 꺼내게 된 이유는 사랑이 식어서라기보다는 '부부의 세계'에 매몰된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함이다.
니콜은 대화 대신 소송을 택한다. 재산을 더 많이 가져갈 요량은 아니었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찰리와 대화로 상황을 풀 용기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 영화 '결혼 이야기'는 찰리와 니콜의 지리멸렬한 이혼 소송 과정을 그린다.
소송은 진흙탕 싸움이었다. 좋게 마무리하고 싶은 의뢰인의 진심은 변호사들에게 닿지 않는다. 변호사들은 소송에 들어갔을 때만 상대를 향해 분노한다. 상처를 받는 건 당연하게도 니콜과 찰리. 그들은 '나를 이렇게 창피하게 만드는' 서로에게 점점 실망한다. 부부의 사랑은 형태를 바꿔 간다. 애틋함에서 애끓는 증오로, 또 공허한 평화로. 다시 애틋함으로.
이혼 준비는 그 어느 때보다 결혼에 대해 많이 상기하는 시기였다. 헤어진 이후 서로의 진심을 알고 눈물을 삼키는 일도 있었지만 이들 부부는 부부로 돌아가지 않는다. 니콜과 찰리에게 결혼 생활은 '우리는 어긋나 있구나'라고 확신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영화 후반, 찰리의 품을 떠난 니콜은 배우상이 아니라 감독상 후보가 된다. 그것도 우수한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 수여하는 에미상이다. 이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찰리는 TV를 보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애초에 니콜의 세계를 존중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극단의 멋진 리더이자 헨리의 다정한 아빠였지만 니콜에게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족쇄였던 것.
TV 채널을 돌리다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이혼한 연예인 부부가 다시 만나 한 집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만들어 보는 관찰 예능이었다. 출연한 부부들의 재결합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마음에서 쓸쓸한 바람이 인다.
아내는 "이 사람은 여전히 내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남편은 자꾸만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는 아내가 불편하다. 이미 자신들의 '결혼이야기'라는 책을 써 내려간 관계다. 서로의 간극을 확인하고 이별을 감행한 상태인 것. 결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책 한 구석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제삼자들에게도 아프게 다가온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가사가 귓가를 맴돈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오마이뉴스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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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렇게 미쳤나요?
<해시태그 시그네>의 시그네를 지켜보는 것은 불편하다. 시그네의 행동이 때로는 혐오스럽고, 나 같아서 수치스럽다가도 ‘나는 저렇게까지는 안 하지’라며 안도한다. 그러다 때때로 일상의 어느 지점에서 난데없이 시그네를 떠올리곤 한다. 어느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아서, 인정받지 못해서, 나 빼고 다들 잘만 사는 것 같을 때 나는 스스로를 시그네와 동일시한다. 심지어 시그네의 기행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시그네를 설명하자면 어떤 자리에서든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함, 유머 감각은 형편없고, 예술가로 주목받는 남자친구를 질투하며, 남자친구에게 향하는 주목을 곧바로 자신에게 돌리고자 견과류 알레르기까지 지어내는 나르시시스트. 이쯤이면 귀엽게 봐줄 만도 하지만 시그네는 관심받기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위험까지 무릅쓴다. 피부병을 일으키는 불법 약물을 오남용해 주위의 걱정과 관심을 사려는 계획이다. 붉은 발진으로 얼굴이 뒤덮이고 괴사가 진행됐지만 시그네는 만족스럽다.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은 셀카를 찍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다.
이제 시그네는 새로운 관객을 찾는다. SNS에 셀카를 올리고, 기자인 친구 마르떼에게 원인 불명의 병에 걸렸다는 거짓말로 인터뷰 기회를 얻어낸다. 시그네는 가짜 불행을 극복한 서사를 통해 인플루언서가 되는 꿈에 부풀었다. 동시에 시그네는 평소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사람들을 단죄하는 상상을 한다. 그 대상은 이혼 이후로 줄곧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와 병문안을 오지 않았던 친구, 그리고 토마스다. 시그네의 상상 속에서 그들은 유명해진 시그네에게 거절당하고, 애원하고, 사과한다. 나는 시그네의 진짜 욕망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면 주변 사람들도 날 좀 다르게 쳐다봐 줄까? 내 고통에 귀 기울여줄까? 내 가치를 인정해 줄까? 나는 환대받을 수 있을까?
한편 여성 청년의 고립과 그 사회적 맥락을 살핀 책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의 저자는 기존의 ‘은둔’에만 한정되었던 고립 청년의 정의를 확장해 다양한 고립의 양상을 드러낸다. 현실의 고립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외출을 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살아도, 일을 하면서도 고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 고립뿐만 아니라 배제와 차별, 소외의 경험 또한 일상에서 겪는 고립이다. 시그네의 기행이 그저 미친 짓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시그네의 삶에서 고립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지만 일터에서 열정을 느끼지도 유의미한 관계를 맺지도 못한다. 성장 과정 내내 아버지는 무관심했고, 어머니와는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한다. 친구들에게는 공감을 받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토마스 또한 자기 커리어 띄우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토마스는 절도한 가구를 전시하는 행위 예술가로 주목받는데, 항상 시그네의 도움을 받아 절도를 했지만 영광은 혼자 차지하며 예술계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시그네를 여자 친구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토마스의 곁에서 그림자 같은 존재인 시그네가 인정에 목마른 것은 당연해 보인다. 어디서든 소외된 시그네가 관심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뿐이었다. 자기 자신을 아프게 만드는 것이 나쁜가, 타인을 도구처럼 이용하며 자신을 아티스트로 포장하는 토마스가 더 나쁜가. 물론 시그네 또한 거짓말을 반복하며 타인을 기만한다. 그러나 시그네의 주변인들 모두 정도만 다를 뿐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로 타인을 조금씩 이용하는 건 마찬가지다. 마르떼가 기자의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시그네를 인터뷰한 것은 화제성 있는 기사를 씀으로써 커리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고, 또 다른 고립 청년인 스티안이 시그네에게 불법 약물을 구해다 준은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시그네와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신체 다양성을 강조한 의류 브랜드는 시그네를 모델로 기용하는데, 이 역시 시그네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수준’의 질병과 외모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그들은 시그네가 가진 질병의 이미지만을 차용할 뿐이다.
시그네가 그렇게 미쳤나? 내가 나를 해하지 않은 것은 시그네보다 삶의 안전망을 아주 조금 더 가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을 보살펴주는 가족이나, 열정을 쏟을 만한 일, 건강한 식단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도 있다. 토마스의 경우처럼 (포장된 것일지라도) 우연히 가진 재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을 지탱해 주는 안전망은 누구에게나 가변적이다. 누구든 시그네보다 덜 미쳤다면 단지 시그네보다 운이 조금 더 좋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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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미국/200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미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
멜 깁슨이 배우라기보다 감독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된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는 극장개봉 전에 이미 유명해진 영화다. 반유대주의 영화라고 하여, 헐리웃을 점령한 유대인들로부터 미국의 엘리트 계층, 자본가 계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들에 이르기까지, 은근한 혹은 노골적인 반감이 표출되었다. 영화가 상영되고 난 후 그 유명세는 더 한층 상승되었다. gory 하다, 따라서 horror 장르로 분류해야 한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심지어 수위가 높은 잔인한 고문장면 때문에 약한 심장을 가졌던 관객은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더욱이 이제 멜 깁슨은 유대인들의 왕국인 헐리웃의 영화에 캐스팅되기는 글렀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오갔다. 아마 그 예측은 옳을 것이다.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와 동고동락했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가롯 사람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반과 당시 유대 종교 엘리트 계층인 바리새인들의 음모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한 후 예언대로 사흘만에 부활하기까지, 즉 구약의 예언이 완벽하게 성취되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다룬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기독교 구약과 신약성경의 텍스트에 매우 충실하다.
하나님이 창조한 첫 번째 인간 아담으로 인해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다. 하나님은 죄와 상관할 수가 없다. 그의 거룩함으로 말미암아 죄지은 자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죄 없고 흠 없는 외아들을 인간으로 세상에 보내 인간들이 당해야할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당하도록 '상관'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인류가 당할 모든 저주를 혼자 감당한 뒤 인간으로 죽었다. 그리고 역시 예언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 그리하여 인류구원을 위한 고난의 사역을 완전히 성취했다.
멜 깁슨이 가톨릭(구교) 신자여서 그랬겠지만 영화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한 경외심이 배어있다.
그러나 구교와 신교를 초월한 복음의 정수를 전달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는 고대 유대인들과 로마 군인들이 사용하던 그 언어로 영화를 제작했다는 것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기독교가 여러가지 종파로 나뉘기 전, 인간의 이데올로기가 섞이기 전의 예수 수난사건과 그의 부활이라는 복음의 핵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
그리고 멜 깁슨은 영화를 전 세계에 배급하면서 더빙이 가능한 원고가 아닌 자막용 원고만을 만들었다. 영화를 더빙하지 못하도록 M/E (Music and Effect) 트랙도 아예 만들지 않았다. 이쯤되면 그의 의도가 더욱 분명해진다.
이 영화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정관사 the와 함께 대문자로 시작하는 Passion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을 당하고 죽음'을 뜻함을 알았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신(하나님)과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온 신(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인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여 그들에게 스스로를 계시함으로써 그가 창조한 인간들과 교통하며 신의 뜻에 따라 통치되는 아름다운 국가를 세워 그 주변의 이방사람들에게 본을 보이고 모두 그 아름다운 국가를 따라 살기를, 즉 모든 인류가 신의 자녀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신의 계획안에서, 그것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래서 약속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신실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한 약속을 했다. 내가 메시아를 보내리라. 그가 너희들을 구원하리라... 그리고 내 뜻으로 통치되는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약성경의 핵심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을 지켰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약속대로 이 땅에 왔다. 그는 이스라엘 땅에 태어난 성육신(인간의 몸으로 온 신)이다. 예수는 구약성경 곳곳에 예언으로 주어진 말씀대로 메시아로서 감당해야할 모든 것을 빠짐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성취한다. 그는 말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고난을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당했다. 예언을 이루어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그것은 인류 역사에 다시없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며 순종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구약성경의 한 구절,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 (이사야서 53장 5절)는 메시아에 대한 대표적인 예언이자 이 영화의 주제이다.
이제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모두 구원을 얻게 되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한다면. 그가 인류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하였다는 것을, 그리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이루었다는 것을 믿기만 한다면.
영화에 그려진 인간들의 모습은 어떤가.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잘 아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고통으로 지켜본다. 그 곁에는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요한과 예수의 가르침을 좇았던 막달라 마리아가 늘 함께 있다. 그들은 아무 힘없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안타까움과 아픔으로 지켜보는 무력한 자들이었다.
예수와 함께 먹고 자며 전도하였던 제자 중 하나였던 유다는 물질이 탐이나 돈에 스승을 판다. 반역자다. 그리고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흥분한 사람들이 자신을 해칠까봐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한다. 그는 비겁했다.
당시 구약을 믿고 암송하며 가르쳤던 유대교 종교 엘리트이며 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천한 목수의 아들 예수가 가르치는 말씀의 권위와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는 그의 기적의 능력을 질투했으며,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공공연히 비판하는 예수를 두려워했다. 아니, 예수 때문에 그들의 인기와 권위가 실추될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거짓증거를 날조하여 신성모독으로 예수를 죽였다. 야비한 살인자였다.
그리고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로마의 군인 빌라도. 그는 예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유대인들 사이에 민란이 나면 로마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의 정치생명은 끝나고 말 것을 두려워한 비겁한 출세주의자였다.
그리고 그 무력함, 비겁함, 야비함, 두려움 등의 어두움은 모든 인간에게서, 나에게서 늘 찾아지는 것들이다.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되지 않는 한.
인간은 세상에서의 안락한 삶, 즉 세상을 사랑하고, 속이는 자 사탄은 세상의 재미로 인간을 미혹하며 죄를 짓게 함으로써 신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다.
그러나 신은 위대한 사랑이다. 인간은 늘 하나님을 배반하나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 인간에게 예수를 보냈다. 그리고 온갖 사탄의 책략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죽음, 즉 사탄을 이김으로써 다시 한 번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기회를 인간에게 주었다.
인간은 단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메시아이며 예수의 보혈로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죄의 종, 즉 사탄의 종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그 신분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며 이 영화의 요지이다((©2021. 최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