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8-30 16:36:33
제2의 전성기, 40-50대 씬스틸러 여배우 특집
최근 #마스크걸 에서 김경자역의 염혜란 배우가 자식의 사랑을 넘어 광기로 변한 소름돋는 연기를 보여줬는데요 ! 이외에도 부드러움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배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씬스틸러 배우분들을 소개시켜 드리려합니다. 40-50 대의 전성기를 맞이한 배우분들의 앞으로 맡을 작품들과 배역들이 기대되지 않나요?
1994년 극단 목화에 입단한 단원이자 극단 목화의 간판배우로 1998년 <남자충동>으로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상과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2000년 <춘풍의 처>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여자연기상 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드라마, 영화 출연한 작품마다 좋은 성과를 거두는 씬스틸러 이정은 배우는 <기생충>의 국문광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휩쓸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데요. 처음 연극 조연출로 시작해서 영화, 드라마의 조,주연까지 올라온 배우입니다.
이미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잘하기로 정평이 난 김선영 배우
응답하라 1988에 출연하여 얼굴이 많이 알려지게되면서 이후 명품 조연으로 입지를 단단히 굳히며 수많은 여우조연상을 석권하였습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단역 ‘소현 엄마’로 영화 데뷔를 알린 염혜란 배우는 단역임에도 불구하고 봉준호 감독님이 단편영화를 본 후 직접 오디션을 제안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도깨비> 은탁의 이모이자 악역인 ‘지연숙’으로 대중들에게 가장 얼굴을 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학로 이영애라는 수식어가 붙을정도로 아름다운 미모와 더불어 정확한 발음과 비음이 섞인 청아한 목소리로 엄청난 연기력까지 보유한 배우입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수간호사 ‘박행자’ 역으로 인생 캐릭터를 탄생시키면서 믿고보는 배우로 자리잡았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한선영 역으로 널리 알려졌고, 이 외에도 <멜로가 체질> <안나>등 드라마 명품 조연을 섭렵하며 존재감을 톡톡히 알리고 있는 배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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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가디슈> 냉정함과 절제미로 써 내려간 생존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남북한의 치열한 외교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북한의 '림용수(허준호)' 대사가 '태준기(구교환)' 참사관을 통해 남한의 외교행낭을 탈취해 소말리아 대통령과 남한 대사 '한신성(김윤석)' 간의 면담을 방해하자, 안기부 출신인 '강대진(조인성)' 참사관은 북한이 소말리아 반군에 무기를 판매한다는 증거를 확보해 북측을 압박한다. 이처럼 남북한 로비가 절정에 이르던 때에 소말리아는 돌연 내전에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한 대사와 강 참사관은 통신마저 끊긴 그곳에 고립된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직원과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림 대사를 필두로 북한 대사관의 일행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남한 대사관의 문을 두드리고, 남북한의 외교관들은 오직 살아남기 위한 비공식적 협력에 나선다.
소말리아 내전 때문에 고립된 남한과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함께 수도 모가디슈를 탈출했던 사건을 영화화한 <모가디슈>는 보는 맛이 살아있는 블록버스터다. 우선 류승완 감독답게 호쾌한 액션신이 눈에 띈다. 빠른 리듬감에 짧은 쇼트를 더한 대인 격투 장면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와중에도 정확하게 타격감을 전달하며, 긴장감을 가득 끌어올리는 카 체이싱 장면은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소말리아 대신 모로코에서 이루어진 로케이션 촬영의 결과물은 시장이나 광장에서 수많은 군중 사이를 요리조리 뚫고 지나가는 동선과 카메라 워크, 그리고 수도인 모가디슈의 전경을 담은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블랙 팬서> 사운드트랙을 듣는 것 같은 아프리카 고유의 리듬이 극대화된 음악도 보는 맛을 더해준다.
다만 <모가디슈>의 진가가 드러나는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냉정하고 절제된, 동시에 깊이 있는 드라마의 힘이다. 실제로 클리셰 범벅이 될 수 있는 사건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캐치한 <모가디슈>의 드라마는 기존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와는 뚜렷이 구분된다. 영화는 소말리아를 사이에 두고 남북한이 펼치는 외교전과 외교관들의 필사적인 탈출기를 각각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다룬다. 여기까지만 보면 <모가디슈>는 <JSA 공동경비구역>부터 <의형제>, <고지전>, <공조> 등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숱하게 활용되었던 클리셰, 남북의 긴장관계를 상기시킨 후 동포의 이름으로 화해하고 협력하는 한국영화의 전형적인 전개를 따라간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모가디슈>는 '생존'이라는 테마를 강조하며 변주를 준다. 이번만큼은 동포애가 남북이 협력하는 계기가 되지 못한다. 혼란 속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남한 측에서 공관이 반군의 습격을 받은 북한 대사관 직원들과 가족들을 받아주기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들을 망명시켜서 실적을 올리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반대로 북측 역시 인도적 차원에서 보호를 호소하지만 동시에 여차하면 공관을 탈취하겠다는 생각을 품는다. 이 동상이몽은 양측이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의 생존을 확신할 수 없게 되자 비로소 깨진다.
또한 생존이라는 테마가 조성하는 상당히 현실적이고 절제된 분위기 안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전후반부는 매끄럽게 연결된다. 외교전이 펼쳐지는 전반부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생존, 구체적으로는 생존을 위한 남북한의 대립을 다룬다고 볼 수 있다. 남북한은 소말리아를 비롯해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신에게 UN 가입 찬성표를 던지게끔 치열하게 외교전을 벌였는데, 이는 국제사회에서 우월한 위치를 선점하고 체재 경쟁을 주도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러닝 타임 내내 남북한의 외교관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칠 뿐이다. 이처럼 동포애라는 감성 대신 자국의 이득과 생존이라는 현실을 위해 움직이는 남북의 모습은 한 대사가 림 대사에게 진심으로 '외교'를 하자고 말하는 대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의 이러한 현실주의적인 스탠스는 작중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자막의 존재에서도 엿볼 수 있다. <모가디슈>는 북한말이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자막을 삽입한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이는 감독의 전작인 <베를린>에서 북한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 전체적으로는 북한과의 관계에 섣불리 감정적으로 다가서지 않는, 선을 그어버리는 드라마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북한말을 일반적인 외국어처럼 자막으로 처리한 이상 영화 내에서 북한은 단지 말이 조금 더 쉽게 통하고 약간의 특수성이 있는 외국, 그 이상 그 이하의 존재도 아니다.
그래서 으레 기대할만한, 작중 남북한 인물이 동질성을 확인하는 장면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밤늦은 식사자리에서 남과 북의 직원들이 반찬을 나눠 먹고, 짧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이탈리아 대사관을 찾은 한 대사와 강 참사관이 '북한 측 인원을 왜 받았을까'하고 후회할 때 문득 튀어나올 뿐이다. 이처럼 철저히 냉정하고 국제 외교적 현실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엔딩까지 유지된다.
물론 이러한 선택이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기는 한다. 남북을 대변하는 한 대사, 강 참사관, 림 대사, 태 참사관 네 인물을 제외한 캐릭터들에게는 자유로이 움직일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이 도구적으로 소비되는 듯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고, 관객의 입장에서는 마음을 둘 만한 인물이 부족하다. 하지만 침착하고 냉정한 영화의 전개와 끝맺음은 분명 결과적으로 실보다 득이 많은 선택이다.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남북 인물들의 이야기에 남는 긴 여운은 그들의 이야기를 곱씹게 하고, 그 이후를 상상하게 만들며, 역으로 드라마를 더 애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없는 눈물도 쥐어 짜내려는 신파나 국뽕이라고 부르는 일방적인 애국심 주입을 피한 <모가디슈>의 드라마는 심지어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두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사관 건물 앞에서 시위대와 정부군이 충돌하는 가운데 한국 대사관은 '한국이 소말리아의 평화로운 친구이고, 서로의 이익을 언제든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음성 메시지를 전파한다. 또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던 남북한 인원들을 사이에 두고 소말리아 반군과 정부군, 그리고 이탈리아 대사관에 주둔하던 이탈리아군은 서로에게 총을 겨눈다.
이 장면들은 제국주의 지배국, 피지배국의 독재정권, 그 독재정권에 로비를 벌이던 외국 정부, 그리고 피지배국의 실질적 주권자인 국민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순간으로 "과연 이 사태의 책임이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부당거래>나 <베테랑> 등에서 악역의 행태를 개인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 전체적 맥락 안에서 바라보던 류승완 감독의 장기가 국내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적 맥락에서도 발휘된 결과다. 또한 이는 한국의 입장에서도 인상적인 질문이다. 남북 간의 특수 관계에서 벗어날 경우 제국주의 식민통치, 군사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경험하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 과연 외교적으로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 한 번쯤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모가디슈>가 명시적으로 소말리아의 근대사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와 영국의 식민통치와 프랑스의 아프리카 지배력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상황을 직접 언급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구체적인 설명 없이도 역사의 아이러니, 역사가 남긴 과제와 현실을 직시하고 느끼는 데는 문제가 없으며, 이는 <모가디슈>의 드라마가 시청각적 쾌감에 앞서 주목받아야 할 또 다른 이유다.
사실 <부당거래>와 <베를린>을 거쳐 천만 영화인 <베테랑>으로 최고치에 올랐던 류승완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하락세를 겪고 있었다. 스크린 독점부터 역사 고증 부실 및 식민 사관 문제에 이르는 여러 이슈들로 인해 <군함도>가 비평과 흥행 양 측면에서 모두 실패를 맛본 게 결정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가디슈>는 그의 변화와 반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자신의 장점에만 기대지 않았기에 이는 더욱 의미가 크다. 그간 류승완 감독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뛰어난 액션이라는 빛의 그림자에 다소 가려진 느낌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작품을 두고 소말리아를 배경으로 한 <블랙 호크 다운>과 같은 작품을 먼저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절제된 감정선을 살리고 실화의 긴장감을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옮긴 <모가디슈>는 마치 <베를린>과 벤 에플렉의 <아르고>를 더한 듯 예상치 못한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고, 류승완 감독의 재기도 멋지게 장식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새로운 결정구를 장착해 돌아온 류승완 감독의 재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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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혹하게 친절한 '플레이그라운드'
* 2022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레이그라운드 Playground, 2021
벨기에 / 드라마 / 72분
감독: 로라 완델
가혹하게 친절한, <플레이그라운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자기 자신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할 때, 우린 그 끝에서 말살된 인간성을 발견한다.
그 이후 우리가 경험하는 건, 지독한 폭력과 끝나지 않는 후유증의 활기.
과연 도구란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에게 도구란 무엇일까. 언제부터 우린 서로를 쓸모 있는 물건으로만 인식하게 되었을까. 도구화되어버린 인간은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없을까? 인간이 인간을 도구로 만들어버리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또 뭘까. 결국 우린 죽을 때까지 서로를 짓밟고 살아가지 않으면 살 수 없을까? 하나의 질문엔 답이 아닌 수백 개의 질문이 따라온다.
하지만, 우린 매번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는다.
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니 확신을 목도한 적이 있다.
바로 앞에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몇 번을 입으로 소리 내며 따라 했지만, 결코 믿기지 않은 대답.
동시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버린 대답.
'본능'.
살아남기 위한 본능, 존재의 증명을 위한 본능, 심장이 뛰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본능 같은, 모든 본능.
<플레이그라운드>는 인간이 가진 폭발적인 본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직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일곱 살 노라는 학교 정문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빠, 아벨은 불안해하는 동생에게 쉬는 시간마다 꼭 놀아주겠다 약속한다. 그러나 노라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계속 뒤를 바라보며 아빠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다시 날 데려가 달라는 간절한 신호를 보낸다.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노라의 불안한 눈빛. <플레이그라운드>는 어른을 대변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등교하는 딸을 조마조마하게, 한편으론 대견스럽게 보는 아빠의 얼굴 대신 아이의 패색 짙은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을 때부터, 영화는 가혹하게 친절하기로 마음먹는다.
중심에는 아이들의 세계가 있다.아이러니한 건 그들의 세상이 사실상 모든 어른이 겪었던 '과거'란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의 아이가 겪었던 현재가 나의 과거였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않으면서, '나는 그랬었다'란 과거의 향수를 들먹인다. "누구나 다 그런 시절이 있어."라고 말이다.
쉬는 시간, 전교생이 뛰어노는 운동장으로 노라가 첫 발을 뗀다. 운동장 구석에서 친구들과 있는 아벨을 찾지만, 오빠는 노라를 어떻게든 멀리 떨어트리려 애쓴다."여기 오지 마 전학생 패고 있어, 여기 있으면 너도 맞아."
툭- "점심 뭐 먹을래?" 같은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말하며 노라를 밀어내는 아벨. 하지만 노라는 이미 얼굴도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일진에게 목이 잡힌 채 고통스러워한다. 아벨은 자신의 동생이라며 일진을 말리지만, 포식자는 결코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 공간에서 왕은 자신이며, 따라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없음을 명확히 전달한다. 결국 아벨은 노라를 구하기 위해 일진에게 주먹을 휘두르다, 땅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일진은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자신이 사자인 게 당연하다는 듯, 약자는 강자의 먹이가 되는 게 순리라는 듯 아벨을 사냥감으로 설정한다.
감히 권력자의 업무를 방해한 죄로 아벨은 포식자의 무리에서 추방된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노라는 일진들의 새로운 타깃이 된 아벨을 어떻게든 구하려 애쓴다. 선생님께 일진들이 오빠를 괴롭힌다고 열심히 소리치지만, 아벨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낯선 환경 속에서 마음 편히 친구도 사귀지 못해서 속 시끄러운데, 거기에 오빠는 아빠에게 괜히 심각해진다며, 사실을 숨길 것을 주문한다. 노라는 오빠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고갤 말없이 끄덕인다. 침묵,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진실. 아벨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고, 노라는 아직 그 본능이 주는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오빠는 이미 자신이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아이들에게서 시작돼 끝난다는 현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일진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 일진의 유희를 위한 도구로 자신이 쓸모없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역할.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어떠한 방식으로도 효과적이지 않을 거란 확신. 그 확신을 본능적으로 느껴버린 자신의 직감.
아벨의 침묵인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반면 노라에게 학교는 새로운 세계다. 온전히 안정적이고 안전한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나와 처음 맞이하는 사회. 우린 사회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와는 다른 '타인'을 만난다. 타인의 언어와 행동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뿌듯함을 얻기도 한다.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온몸으로 받아낸 후엔 반드시 한 번은 사회적인 관점으로 가족을 의심한다. 전에는 늘 완벽하고 좋았던 나의 울타리가 어딘가 이상해 보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인간은 성장과 후퇴를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신발끈을 묶는 법을 모르고, 매일 엄마가 아닌 아빠가 학교 앞에 서 있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노라처럼 말이다.
변기에 머리가 처박혀 고통스러워하는 오빠를 무력하게 보고만 있어야 하는 노라. 아이는 잠깐의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파도에 힘들어한다.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끼는 아벨의 발버둥과 비웃는 친구들의 눈빛도 더는 견딜 수 없다. 결국 노라는 등교를 거부하는 오빠를 억지로 학교 안으로 밀어 넣는 아빠에게 오빠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진실을 고백한다. 나름 노라에겐 최선의 방법이었다.
아빠가 움직이면 지금까지 걱정했던 일들이 다 사라질 거라 믿는 아이의 순수한 맹목에서 나오는 마음.
그러나 집 안에서 느꼈던 당연한 것들은 집 밖을 나오는 순간 먼지로 사라져 버리는 법이다. 노라는 내 세상의 중심에 서서 고민들을 시원하게 해결해줬던 아빠가 더 이상 영웅이 아니란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아벨은 일진들을 자신을 앞에 세워놓고 사과를 강요하는 아빠의 대처에 얼어붙는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무섭게 소리치고, 따끔하게 혼을 내면 착한 아이가 되어 내 아들과 친구가 되진 못해도, 다신 괴롭히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아빠의 허망을 눈앞에서 봐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아들보다 더 순진하고 무능력한 아빠의 문제 해결 방식은 사건을 더 잔인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만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플레이그라운드> 속 어른들의 대처엔 전부 그러한 망상이 숨어있다. 어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자위하고, 앞으로의 일은 다 괜찮을 거라 착각한다. 울타리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정체도 알 수 없는 괴물에게 쫓기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원래 그래'란 태도를 고집할 수 있는 이유도 전부 여기에 있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란 얄팍한 믿음 아래 정작 자신의 아들은 오줌싸개와 쓰레기로, 딸은 더러운 오빠의 동생으로 또 함께 놀기 싫은 애가 된 것도 당연히 몰랐겠지.
어른이 되면, 진짜 문제를 모르는 척 등가죽에 숨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내 의지로 꺼내지 않으면 절대 어둠 속에서 고갤 내밀 일이 없는 그런, 본능, 심보."문제 해결했어, 또 그러면 말해."
"오빠한테 문제가 좀 생겼어, 하지만 아빠가 오셨으니 괜찮아."
"누구든 도움받고 싶은 대로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 같아."
"넷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하는 거지?"
"그럼 이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악수해."
"그 일을 막을 수 있었으면 막았을 거야."학교란 작은 공간이 세상을 배우는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라 해서 진짜 아이들의 세계를 모를까? 아니, 우린 다 알고 있다. 단지 마음가짐을 다르게 먹는 거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또 연마했기에 가능한 거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이 지점을 꼬집는다. 카메라의 시선이 노라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보호하고 도와줘야 할 어른들이 세상을 초월한 말을 내뱉을 때도 화면 속엔 항상 아이들의 불안한 낯빛뿐이다.
정말 좋게 생각한다고 좋아지는 비극이 있나? (솔직히 그런 비극은 한 번도 본 적 없으면서.)
처음부터 그들의 말이 가진,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을 이제 막 무리에 들어간 아이들이 어떻게 알까.
노라의 아빠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의 내성이란 말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들이 직접 겪어야 할 현재를 함께 해아 한다. 부단히 아프면서 또 후회하면서 세상을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 정작 아이였던 자신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었다는 걸 인정하면 더 좋고. 본래 인간이 인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감'이 필수다. 눈앞에 있는 벽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는 후배에게, 선배가 해야 할 가장 좋은 위로법이 "나도 그랬어, 아니 너보다 더 최악이었지."인 것처럼 말이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도 공감과 해결책을 받아보지 못한 노라는 모래사장에서 죽음을 생각한다.
재미있게 모래를 만지며 장난치는 친구들 사이에서 떠도는 괴소문에 몰입한다. 자신이 앉아있는 모래 아래에 얼마나 많은 시체가 잠들어 있을까. 운동장이 거대한 무덤이 되어버린 순간, 아이는 묘비 하나 없는 공동묘지에서 두려움보다 더한 공포를 느낀다. 뛰어놀기 좋고 떠들기 좋았던 광활한 땅엔 어떻게든 벗어날 수 없는 폐쇄성이 깃들여져 있었다. 오빠의 사건을 두고 "가끔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는 일도 있거든"라며 뻔한 변명을 반복하는 선생님처럼, 아벨보다 어린 노라에게 계속 오빠를 위해 전부 다 말해달라는 아빠처럼.노라는 결국 그토록 원했던 친구의 생일 파티에도 초대받지 못하자 꾹 참았던 감정을 오빠에게 터트린다. 친구의 초대장을 찢어버리면서 다시 외톨이가 되고, 친구들 앞에선 오빠를 옆에 두고 "내 오빠 아니야."라고 선언한다. 동생의 말 한마디에 아벨은 아무 말하지 못하고 고갤 숙인다. 죄인처럼, 다신 웃을 수 없는 형벌을 받은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라에게 주어진 선택은 아벨 밖에 없었다. 아벨이 자신과 유일하게 놀아준 친구(이스마엘)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그것은 애석하게도 본능이었다.
아이가 먼저 배운 게, 옆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이 아니라 인간을 도구화하는 방식이라니.
노라는 아벨에게 화를 내며 자신의 죄책감과 실망을 해소하려 하고, 아벨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나가기 위해 친구를 모래 구덩이에 넣는다. 일진이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기 위해 아벨을 괴롭혔듯, 아이들은 제각각의 본능을 무기 삼아 남을 옭아맨다. 누구도 나서서 알려주지 않았던 행동들을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두 발로 일어나 걷듯이 자연스럽게 혼자 습득한 것이다. 정작 어른들이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니었을 텐데.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아벨은 자신을 말리는 노라에게 날카롭게 묻는다. 다시 내가 맞는 게 좋냐고. 차라리 맞는 것보다 때리는 게 낮지 않냐고, 나의 폭력이 이 거지 같은 상황을 잊게 해 준다고, 나쁘고 좋고를 떠나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노라는 아벨의 변화가 전부 자기 탓인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린다. 단숨에 오빠를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만든 장본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왜 노라가 그런 프레임에 갇혀야 할까.
더구나 오빠는 이스마엘을 괴롭히면서 자신을 자해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이지.
마지막까지 어른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건, 일련의 사건들을 전부 지나갈 과거로 치부하는 그들의 행보다. 결국 아벨을 막아선 건 동생 노라였다. 아무도 관여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폭력 세계에 아이인, 노라가 선택한 건 두려움에 터져 나온 호소와 몸을 던진 애원이었다. 아벨은 이스마엘을 모래 구덩이 안으로 넣으려는 자신을 막는 노라를 밀어내려 하지만, 제발 이러지 말라는 동생의 외침에 마침내 멈춰 선다. 이윽고 자신을 꽉 안고 있는 노라를 안으며 억눌렀던, 참아야만 했던 참담한 슬픔을 토해낸다.
아벨 역시 이 현실이 노라만큼이나 버겁고 두려웠을 테니까. 돌고 도는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하고 휩쓸려가 버렸던 오빠의 손을 잡아끈 노라의 용기가 <플레이그라운드>의 정점을 찍는 동시에 마지막을 장식한다.<플레이그라운드> 메인 포스터
살아남기 위한 본능은 필요하다. 존재의 증명을 위한 것도, 내가 살아있게 하는 것도 당연히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완벽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을 실수로 포장하곤 한다.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본능을 당연한 특권으로 받아들인다.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고 버리고 또다시 이용하려 애쓰는 것을 자연현상처럼 여긴다. 자연재해로 얼렁뚱땅 넘겨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플레이그라운드>가 보여준 노라의 용기는 인간의 본능을 가치 있게 활용한 결과이다.
우리가 계속 추구하고 바라보고, 따라가야 하는 본능. 나를 위해 남을 도구화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란 걸 먼저 아는 본능. 그것은 습득이 가능하다. 그러니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지.
학교폭력에 무감각한 어른들의 모습도 영화가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겠지만, 인간으로서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곱씹게 만드는 것이 제일 귀중한 메시지가 아닐까.결말이 주는 씁쓸함은 폭력의 고리를 끊은 주체가 어른이 아닌 아이란 점이다.
다행스럽단 느낌은 결국 노라가 해줬단 마침표의 영향이다.
하지만 <플레이그라운드>가 끝까지 남긴 건 불편함이다. 우리가 조금의 희망을 발견했다며 안도하고 '그래 다 끝났다' 생각한 순간을 예상하고 기다렸기 때문이다.
가혹하게 친절한 건, 아벨의 침묵을 이해한 것처럼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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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성치 스타일을 이식받은 한국형 하찮은 히어로즈
오랜만에 웃었다. 일반시사회라고 할지라도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기란 쉽지 않다. 요즘 같이 영화 산업이 힘들 때는 더 그렇다. 그래서 더 놀랍다. 본의 아니게 4년 동안 창고에 갇혀 있던 <하이파이브>가 의외로 재미졌다. 물론, 각 잡고 보면 헛점이 보이고,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장르 영화로서 관객을 만족시키는 매력은 있다.
이식 하면 원래 다 이런 건 아니다. 심장 이식을 받은 태권 소녀 여학생 완서(이재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이 넘쳐난다. 발차기 한 번에 샌드백이 터지고, 오르막길도 단숨에 달린다. 날기도 한다. 스파이더맨이 된 피터 파커처럼 신기한 신체 경험(?)을 즐기던 완서는 어느날, 작가 지망생 지성(안재홍)을 만난다. 자신도 장기 이식 후 신기한 힘을 가졌다면서 자신들처럼 장기를 이식받은 기동(유아인), 선녀(라미란), 약선(김희원)을 찾아나선다.
특수 혈청을 맞아 힘을 가진 것도, 과학 천재라서 슈퍼 수트를 만든 것, 방사능에 노출되어 괴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냥 장기 이식을 받았을 뿐이다. 심장, 간, 폐, 신장, 각막을 이식받은 5인은 각각 괴력과 스피드, 치유력, 강풍, 초능력 분배, 전자파 제어의 힘을 갖는다. 평범하지 못해 루저의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 초능력은 어쩌면 그들의 비루한 일상의 전환점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괴력과 스피드를 가진 완서는 모든 걸 감시하는 아버지 울타리에 갇혀있고, 강풍 능력을 가진 지성은 세상을 비관하며 시간 날 때마다 비트코인 등락폭만 보고 있다. 기동은 손가락 하나로 도박장에서 돈을 긁어 모으지만, 백수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선녀는 과거의 삶에 묶인 채 열심히 야쿠르트를 판다. 약선 또한 피 땀 흘려 번 돈을 사이비 종교에 헌납한다.
영화의 코믹 유발 시작점은 5명의 초능력자들이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능력을 쓴다고 해도 너무 사소한 일에 사용하는 그 모습이다. 초능력이 있어도 하찮은 일에만 쓰고, 변함없이 한심하고 찌질하게 사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웃프다. 특히 강풍 능력이 있는 지성과 전자파 제어 힘을 가진 기동(유아인)은 견원지간을 방불케하는 자존심을 싸움을 벌이는데, 이는 극중 주요한 웃음 동력으로 작용한다. 중반부 둘의 오묘한 장면도 한 몫한다.
코믹함은 좋다. 주성치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B급 코미디와 강형철 감독 특유의 말맛으로 이뤄진 코미디가 균형을 이뤄가며 계속 진행되는데, 종종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관객의 웃음을 공략하는 적중률은 꽤 높다.
중요한 건 이 웃음들이 단순히 휘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써니><스윙키즈>의 주인공들의 성향을 이식한 것처럼, 이번 주인공들 또한 관계가 서툴다. 각자의 이유로 친구가 없는데, 초능력을 가졌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이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점점 막역한 친구가 되어간다. 이 과정 속에서 멤버들의 아픈 과거가 나오는데, 웃음 뒤 자리한 페이소스가 잘 배합되는 듯한 느낌이랄까. 오합지졸 모인 이들이 팀워크는 후반부 췌장 이식자인 사이비 교주(신구, 박진영)와의 대결 시 필살의 힘으로 작용하며 멋진 결말로 가는 길을 틔워준다.
단, 액션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강형철 감독은 주성치 영화 스타일을 이식해 B급 액션을 구현했는데, <소림축구> <쿵푸허슬>를 좋아한다면 괜찮지만, 반대라면 액션 디자인에 대한 물음표를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초반 완서의 달리기 장면이나 야쿠르트 카트 체이스 장면, 그리고 하이파이브 멤버들과 사이비교주의 대결 장면은 누군가에게는 희열을, 누군가에게는 완성도에 따른 의문을 가질 터. 초반 액션은 좀 튀어 보이지만, 주성치 느낌의 액션을 구현하기 위한 목적성을 이해한 이후에는 걸림돌이 사라지겠지만, 그 반대라면 끝날 때까지 눈에 가시처럼 보이긴 한다. 개인적으로는 주성치 영화는 물론, <품행제로> <아라한 장풍 대작전>의 액션을 봤을 때의 느낌이 들기도 했다.
취향 타는 액션의 빈 곳은 역시나 배우들이 메운다. 감독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배우들은 각 캐릭터와 너무 잘 붙는다. 이재인은 첫 주연이 맡나 싶을 정도로 캐릭터를 잘 소화한다. 액션 만큼 대사를 통한 코미디 연기가 참 좋았는데, 안재홍과 아버지로 등장하는 오정세와의 대화 장면은 끝내 웃음꽃을 피워낸다. 유아인, 라미란, 김희원 등 다수의 배우들도 각자가 맡은 캐릭터를 잘 연기하는데, 유아인은 <승부>에 이어 이번에도 호연을 펼친다. 그래서 안타까움이 두 배로 든다.<하이파이브>의 독특한 코믹 액션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다면, 일단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즐기자. 기자간담회에서 강형철 감독은 “정체성이 오락영화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고 초능력을 넘어서는 더 위대한 힘은 주변의 친구, 가족”이라고 영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감독의 말처럼 친구, 가족과 함께 한국형 하찮은 히어로즈의 성장을 웃으며 지켜보기 바란다.
덧붙이는 말: 강형철 감독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음악이다. Rick Astley의 'Never Gonna Give You Up'을 비롯해 추억의 팝이 등장하는데, 적지적소에 삽입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더한다. 극장 밖을 나가면 ost를 쭉 들어보기 바란다.사진출처: NEW
평점: 3.0 / 5.0
한줄평: 마음을 비우고 코믹에 몸을 맡기면 ‘하이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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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절망보다 푸른 나무처럼
DIRECTOR. 나지바 누리
CAST. 하와 누리
SYNOPSIS. 어린 시절 정략결혼을 한 지 40년이 지난 뒤, 하와는 마침내 독립적인 삶을 시작하며 글을 배운다. 그러나 탈레반이 다시 집권하고, 그녀와 그녀의 딸, 손녀의 꿈은 새로운 고난에 직면해 산산조각 난다.
구글에 "여성 교육이 금지된 나라"라고 검색해 보자. 딱 한 국가의 이야기만 줄줄이 뜬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2024년에도, 해가 바뀐 2025년에도, 지구상에 여성 교육이 금지된 유일한 국가는 아프가니스탄이다.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의 현재가 아닌 미래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는 정말 치명적이다. 게다가 더 끔찍한 점, 이 악몽은 지금이 아닌 아주 오래 전 싹을 틔웠으며, 이제 되돌아왔다는 점이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현대사에서 두 번 모습을 드러냈다. 소련 붕괴 (및 철수) 후 힘을 길러 1996년 카불을 장악해 2001년까지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하겠다는 명목으로 공포 사회를 조성했다. 여성은 공부도 일도 할 수 없이, 집 혹은 무덤에만 있어야 했다. 남성의 경우에는 조금 나았다지만 역시나 특정한 복장과 규율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공개 처형까지 서슴지 않았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은 다시 자취를 감추고 오사마 빈 라덴은 사망했지만, 미군과 나토군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2021년 철수를 결정했고 같은 해 8월, 카불은 다시 점령되었다.
지금도 유튜브 영상을 관리할 만큼 SNS나 국제 여론을 의식하고 있고, 집권 초기에도 여성을 존중하겠다는 (그러니 국제 사회는 말 얹지 말라는) 성명을 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영화를 만든 나지바 누리 감독 또한 여성 기자로서의 삶이 위험에 처했음을 직감하고 옷가지와 노트북, 카메라, 지금까지 만들던 영화의 풋티지 영상이 담긴 장치만 겨우 들고 곧바로 출국한다. 극영화보다 더 극적인 현실.
나지바는 그전까지 엄마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 이름은 하와. 어린 나이에 30살 많은 남자와 결혼해 자식 여섯을 낳았고, 이제는 남편의 치매 증세가 악화되는 상황을 보고 그의 시중을 들고 있는 사람. 동시에 너무나 아름다운 큰 나무 같은 사람. 영화를 보면서 하와가 얼마나 현명하고 용감하며 대담하고 또 넓은 사람인지 느꼈다.
하와는 남편과 함께 사그라드는 날들을 고요히 보내는 대신, 기꺼이 밖으로 나가 자수 천 파는 사업을 벌인다. 동업자를 찾아 역할 분담이나 흥정을 능숙하게 해낸다. 결혼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지라, 뒤늦게 글자도 배운다. 어린 손주들이 지적하고 고쳐주는 내용을 듣고 익힌다. 심지어 손주들은 "할머니가 어떻게 (글씨를) 써?" 라고 되물을 만큼, 할머니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너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도.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 그대로의 모습이다. 새로운 것 배우기를 포기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계속해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
이토록 현명하고 강인한 하와는 그 동안 '집 안의 사람'으로만 살았다. 뭐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들은 여성에게 불합리했다. 하와는 어린 나이에 수십 년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와의 조혼을 겪어야만 했으며, "부모가 자신을 위했다면 아이를 낳지 말라고 말했어야 했다", "이런 결혼으로 우리에게 상처만 남겼다"고 오랜 세월 후에도 그 상처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나지바의 언니는 이혼과 함께 두 살배기 딸의 양육권을 박탈당했다. 그 딸, 자흐라는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만 해도 돌아오는 매를 맞으며 유년기를 보냈고 끝내 쫓겨나 12년 만에 제 엄마를 찾아왔다. 나지바 언니의 새 남편은 다행히도 친절하고 합리적으로 자흐라를 대해 주지만, 부부 또한 현실의 벽을 넘어설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양육권 분쟁에 시달릴 마음도, 혹시나 자흐라의 친부가 새로 낳은 아들들과 새로운 삶에 손을 뻗쳐오게 둘 마음도 없다. 결국 손녀를 맡아 옷과 팔찌를 사주고 글자를 가르치는 것은 하와의 몫이다. 마치 이럴 줄 알고 배웠던 사람처럼, 하와가 쓰려고 산 화이트보드는 자흐라의 공부 터전이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재난은 언제나 약자를 치고, 어린 여자는 재난 상황에 약자 중의 약자이므로.
탈레반이 오면 14살 자흐라는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 신세가 된다. 결국 자흐라는 시골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어른들의 결론이 난다. 그 동안 자흐라는 내내 울고 있고, 하와가 똑같은 표정으로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 방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공포로 바라보는 사람은 그 둘이다. 하와가 탈레반의 치하에서 느끼는 공포와 불안의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가장 마음 아픈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계속 극영화 못지않게 극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그러나 내 마음은 자흐라와 하와의 표정에서 떠나지 못한다. 하와는 글을 배우기로 결심했을 때 몰랐을 것이다. 손녀에게 글을 가르칠 줄도, 딸이 멀리 떠나야만 해서 편지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될 줄도. 마치 이럴 줄 알고 배웠던 것처럼, 그토록 유용하다.
아니, 이 말은 틀렸다. 마치 이럴 줄 알고 배운 것처럼 배운 게 아니라, 글을 배운다는 건 그만큼이나 일상에 필수적인 것이다. 이렇게나 필수적인 기술을 배워야 하는 기회를, 소녀들은 박탈당하고 있다. 하와는 그 고통을 알고 있다. 이미 피부로 겪었기에.
"차라리 다 같이 몰려가서 우리를 다 죽이라고 하자. 몰살을 당하는 게 낫겠어. 그러면 애도도 하루만 하면 되잖아." 얼마나 절망하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닿을 수 없는 깊이의 절망을 스크린 너머 바라볼 수밖에 없다. 탈레반은 이미 여자들을 몰아냈다. 이미 공부하고 일하고 생각하고 "나대기" 시작한 여자들을 탈레반이 어찌 갑자기 가두겠나 했던 사람도 있을 텐데, 결국 그렇게 되고 있다. 이토록 생명력 넘치는, 푸른 나무 같은 여자들의 오늘과 내일을 탈레반이 뒤덮고 있다.
하지만 하와는 포기하지 않았다. 책과 자수 천을 곱게 챙겨 두었다. 언젠가 다시 펼쳐 옷을 만들어 팔고 사업 수완을 발휘할 날이 올 수 있길 바라며. 하와가 꾹꾹 눌러 쓰고 읽는 문장들을 자흐라와 다른 아이들도 계속 읽고 쓸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앞두고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전 세계가 모두 비슷해지는 시대에 다른 경험을 하는 것 자체가 저항입니다."라는 말로 관객을 전주에 초청했다. 어쩌면 이런 영화를 함께 본다는 자체로도, 우리가 지켜보고 있음을 명확히 하는 자체로도, 포기하지 않은 어떤 이들에게 가 닿을 수 있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보기 괴로워도 포기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 소식에 귀를 기울여 본다. 나무 같은 여자들의 자장이 더 넓게 드리우기를.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2025.04.30-05.09) 상영일정]
2025.05.01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상영코드 111)
2025.05.03 13:30 CGV전주고사 8관 (상영코드 330)
2025.05.06 17:30 메가박스 전주객사 5관 (상영코드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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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8년의 일본을 그리는 담담한 스케치, 십년(⼗年, 2018)
아시아의 신예 감독들이 모여 제작한 태국, 대만, 일본의 10년 후 이야기들. <십년> 프로젝트 중 일본의 2028년을 다룬 동명의 이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으로 잘 알려진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작 총괄을 담당했다. 쉽게 말하면 일본판 <블랙 미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와닿는 가까운 실감 나는 미래를 그려낸다. 총 5개의 옴니버스식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멀고도 가까운 흐름을 따라가 보자.
- 플랜 75 / 하야카와 치에 감독
“당신의 선택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후생성 인구관리국-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인구 고령화 문제를 날카롭게 짚어낸 작품이다. 플랜 75라는 제목은 인구관리국의 프로젝트 이름이다. 75세 이상부터 가능한 안락사 시스템인데, 붙이는 약을 목 옆에 붙이면 고통 없이 잠드는 방식이라고 소개한다. 말만 들으면 굉장히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예상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슬픈 비밀이 있다. 사실 이곳의 관리자들은 국가에서 많은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단기 체류자나 저소득층,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주요 타깃으로 설정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다시 말해 국가의 복지 예산을 줄이기 위해 사회에 이바지하지 않는 인력을 강제로 줄이는 것이다. 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잠이 들 수 있고, 100만 엔의 준비금을 지급한다는 사실에 이끌려 이 프로젝트를 자원한다. 결국 타의에 의한 자의인 셈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장모님이 치매에 걸려 주위 가족들이 영향을 받고, 스스로 신청서를 작성하게 되면서 주저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단편의 인상적인 점은 주된 소재는 노인 세대를 다루고 있지만, 카메라의 시선은 젊은 세대의 시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시작과 끝은 언제나 같이 존재함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하나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장모님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생략한 채 주인공은 또 새로 태어난 아이와 함께 그들의 삶을 계속 살아간다. 마치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순간인 것처럼 말이다. 그 순간에도 하얀 천이 둘러싸여 있는 병실은 가동됨을 보여주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장면은 노인을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일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이는 건 너무 근시안적인 판단이다. 특히 이 주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고령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또한 해당이 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계기가 충분한 것 같다.
- 장난꾸러기 동맹 / 카노시타 유스케 감독
인공지능 교육 시스템이 만약 학교에서 시행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이 단편은 생각보다 다정한 면모가 있다. IT혁신 특구인 한 학교는 ‘프로미스’라고 불리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이는 아이들의 관자놀이 부분에 연결된 통신장치와 동기화되어 아이들에게 학업 성취도와 직업과 같은 미래에 대한 조언을 한다. 미래 세대인 아이들은 학교에서 한정된 자원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며, 프로미스는 실수를 피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프로미스의 말에 세뇌되고, 정해진 규칙 속에 살 것이다. 인공지능은 심지어 교직원 회의에서도 의사결정을 내리고, 학생들의 얼굴을 인식해 그릇된 행동을 하는 학생에게는 경고음이 울리는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 평소에는 음성으로만 존재를 드러내던 프로미스는 극 중간마다 모습을 보인다. 마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인공지능 HAL 9000을 연상시키는, 정면을 응시하는 렌즈를 종종 화면에 등장시킨다.
우연한 사고로 잠깐 송신기에 오류가 생기고, 그러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기르는 말을 지키기 위해 갑작스러운 모험을 하게 되면서 점점 틀을 벗어나게 된다. 디지털화와는 상반되는 이미지를 가진, 말과 숲 그리고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들은 마치 판타지같이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 장면이 관객에게 선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탁 트인 공간에서의 자유가 아이들에겐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아이다움을 지켜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와닿게 한다. 잠깐 꺼졌던 프로미스 프로그램이 업데이트되고, 왠지 모를 불안감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런 사례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이렇게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선에서 유연한 대처를 한다면 앞으로의 모습이 더 기대된다. 피할 수 없는 디지털화라면, 긍정적인 면들을 잘 활용하여 인간과 공생하는 새로운 바람을 맞게 하자는 의도가 잘 담긴 영상.
- 데이터 / 츠노 메구미 감독
우리는 지금 빅데이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수없이 많은 정보와 함께 사적인 정보 유출의 위험에 처한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디지털 유산 카드’는 일종의 개인정보를 지키는 디지털 보험과 같은 특이한 구조를 가진다. 누군가가 죽고 난 후, 특정 권한을 가진 사람들(ex-배우자나 가족)만이 그동안 고인이 썼던 전자기기들의 영상, 사진, 쇼핑 정보, 문자 내용과 같은 정보를 열람해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딸이 죽은 엄마의 디지털 유산 카드를 열어보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리움과 의문의 발자취들을 따라서 걸어간다.
나와 닮은 점이 많은 엄마에서 숨기고 있던 비밀을 풀어내는 순간, 혼란스러운 엄마에 대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모습까지. 짧지만 빨리 전개되는 이 상황은 굉장히 실감 나는 묘사가 이루어진다. 사실 이런 점들이 정보의 빛과 그림자라는 생각이 든다. 알고 싶은 정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예상치 못한 정보를 맞이했을 경우 그 해석을 자신이 오롯이 한다는 점에서 극히 주관적인 판단이 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 걸음에서 발견한 건 아빠와 친구,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이다. 예상했던 줄거리보다 굉장히 서정적으로 다가온 결말이어서 의외였고, 알 권리와 사생활 침해의 사이에 놓여있는 윤리적인 문제까지 생각해보게 한다. 여러모로 보는 내내 따스한 색감과 분위기가 느껴지는 단편.
- 그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 후지무라 아키요 감독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이후의 나날들, 방사능이 공기에 퍼져있지만 보이지 않는 상황을 아이들의 눈빛으로 풀어낸다. 사고가 발생한 후 사람들은 지하 벙커에 모여 그들 나름의 규칙에 맞는 생활을 한다. 미즈키와 카에데라는 두 아이가 등장하는데, 미즈키는 과거엔 일상생활을 하다 아래 지하로 내려온 경우이고 카에데는 지하에서만 살아 하늘을 본 적이 없는 아이이다. 미즈키의 엄마는 자꾸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하는 카에데와 어울리지 말라고 하지만, 둘은 계속 우정을 이어간다.
비와 햇빛, 자연의 소리 같이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경험해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매번 얘기를 하던 둘은 어느덧 카에데가 떠나버리면서 급전환을 맞는다. 그에 이어 미즈키 또한 하늘과 햇빛을 맞이하기 위해 세상의 문을 열어본다. 푸른 하늘 사이로 오묘한 표정을 짓는 미즈키가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직접적으로 현실을 보여주지 않는 이런 열린 결말이 더 좋은 것 같다. 이 단편만의 매력은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풍경을 표현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귀여운 연출들이다.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연상하는 연출이 톡톡 튀면서 동심을 자극한다. 어두운 소재에 그렇지 않은 인물들의 등장으로 괜히 더 애틋해지는 효과가 있다.
- 아름다운 나라 / 이시카와 케이 감독
한때 일본에서 논란이 되어 꾸준히 말이 오고 갔던 ‘징병제’에 대한 스토리이다. 꽤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징병제를 홍보하는 포스터 시안이 거절당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다룬다. 전쟁과 맞닿아 있는 상처를 삼대에 걸쳐서 설명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언뜻 보기엔 회사원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지만, 곳곳에 과거, 현재의 전쟁역사가 묻어나온다. 마치 요즘 재난 문자 알림이 뜨는 것처럼 전쟁이 일상화된 곳에는 사이렌과 함께 미사일 발사 경보가 울리는 기묘한 상황이 발생한다. 노인 세대는 어쩌면 지나가 버린, ‘아름다웠을지도 모르는 나라’를 추억하며 이런 말을 한다. “젊은이들의 희생에 의해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나라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고. 마치 바통 터치를 하듯이 그 책임은 이제 온전히 젊은 세대에게 쥐어지고, 방위성의 소름 돋는 문구와 함께 화면은 암전된다. 전쟁에 대한 역사가 있는 일본이 또다시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발생할 세대 간의 대물림되는 아픔을 잘 보여준다. 과거와는 또 다른 전쟁의 형태, 이를 대비하는 징병제라는 제도에 의해 고통받는 젊은 세대들과 그들을 또 잇게 되는 다음 세대들. 그들에 대한 우려와 모순적인 사회에 대한 반발이 잘 드러난다.
이렇게 <십년>은 인물 간의 관계를 중요시하게 다루는 일본 작품답게 마냥 차가운 미래가 아닌, 따듯함이 돋보이는 이야기들이 많다. 유난히 인물을 줌인하고, 클로즈업 샷들이 많은 것 또한 현재의 우리들과 맞닿아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일까. 곧 다가올 미래,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지는 물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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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3주 최신 개봉영화!
12월 2주차에는 어떤 영화가 개봉을 하는지 한번 볼까요?
12월 2주 개봉영화 5편!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The King's Man , 2020
킹스맨이 돌아왔다!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수백만 명의 생명을 위협할 전쟁을 모의하는 역사상 최악의 폭군들과 범죄자들에 맞서,
이들을 막으려는 한 사람과 최초의 독립 정보기관 ‘킹스맨’의 기원을 그린 작품입니다.
100년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킹스맨’ 조직이 어떻게,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 기원을 다루는데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와 '킹스맨: 골든 서클'에 이어 ‘매튜 본’ 감독이 또 한 번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007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의 ‘랄프 파인즈’ 그리고 신예 해리스 딕킨슨 이 두 배우의 콤비가 탄생을 했는데요
각자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부자 사이에서 생기는 깊은 애정, 갈등, 화해 등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 극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최초의 킹스맨의 이야기
첫번째 추천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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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리저렉션 The Matrix Resurrections , 2021
18년만에 다시 돌아온 매트릭스 시리즈
매트릭스1은 1999년, 매트릭스2와 매트릭스3은 2003년에 개봉
그리고 18년만에 신작으로 다시 돌아온 매트릭스 영화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인류를 위해 운명처럼 다시 깨어난 구원자 네오가 더 진보된 가상현실에서 기계들과 펼치는 새로운 전쟁을 그리는데요
기억을 잃은 네오는 다시 빨간약과 파란약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이번 매트릭스에서는 인공지능 컴퓨터와 인간들이 대결을 펼치는 '매트릭스'만의 독보적인 드라마가 그려질 예정입니다.
18년이 지났지만 기존 출연진들이 이번 작품에도 출연합니다.
네오 역할은 키아누 리브스가 그대로 맡았고, 트리니티 역 역시 캐리 앤 모스가 그대로 맡았습니다.
다시 새롭게 돌아온 매트릭스!
두번째 추천영화 "매트릭스: 리저렉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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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ドライブ・マイ・カー , Drive My Car , 2021
일본의 젊은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죽은 아내에 대한 상처를 지닌 연출가 겸 배우 ‘가후쿠’가
그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와 만나 삶을 회복해 나가는 이야기 입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2021 시카고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관객상 2관왕 수상, 2021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드 최우수 작품상,
각본상 2관왕 수상, 2021 덴버국제영화제 외국어영화상 수상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2014년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2014년 8월 발간된 '여자 없는 남자들'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9년 만에 펴낸 단편소설집으로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 6주 1위를 차지하며 국내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칸, 베를린 그리고 전세계를 사로잡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걸작
세번째 추천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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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2: 마법에 걸린 왕자 Cinderella and the Spellbinder , 2021
신데렐라 이야기의 재해석
영화 '신데렐라2: 마법에 걸린 왕자'는 용감하고 당찬 공주 신데렐라가 마법에 걸린 왕자를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신비한 생명석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어드벤처 애니메이션입니다.
이번 작품은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신데렐라: 마법 반지의 비밀'의 후속작입니다.
'라이온킹', '알라딘', '뮬란2' 등 디즈니 출신 제작진이 만들어낸 전편의 환상적 비주얼의 장점들은 유지하면서
'겨울왕국', '라푼젤' 작업에 참여한 작화가에 의해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화가 더해져
전 편보다 더욱더 기대가 큰 애니메이션 입니다.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새롭게 재해석한
네번째 추천영화 "신데렐라2: 마법에 걸린 왕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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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까기인형 THE NUTCRACKER , 2021
이틀만 진행하는 호두까기 인형 공연실황
크리스마스이브, ‘마리’와 그녀의 온 가족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트리 주위에 모였고
‘마리’의 대부 ‘드로셀마이어'가 그녀에게 마법의 선물을 주게 되면서 이번 크리스마스이브는 그녀에게 예기치 않은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마리’의 새 인형이 살아나서 그녀를 돌풍 같은 모험의 세계로 빠트리는영화 "호두까기 인형"이 개봉을 하는데요
공연실황 영화입니다 25일과 27일 단 이틀만 개봉한다고 합니다.
특별한 날 영화관에서 공연을 보는 또 하나의 추억
다섯번째 추천영화 "호두까기 인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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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10] 각본가 맹키위츠가 바라본 그 시대의 위선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맹크가 넷플릭스에 공개 되었습니다.
고전 영화 시민 케인의 공동 각본가 맹키위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그가 시민 케인을 쓰게 된 이유나 쓰는 과정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영화사나 미국 당시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면 조금 흥미가 떨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에요.
마치 예전 흑백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이 드는데요. 흑백영화 특유의 화면 질감과 음향이 완벽히 재연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맹키위츠가 보고 들었던 그 당시의 할리우드 권력과 정치인들의 위선이 그대로 영화에 담겨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점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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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숏버스 이별행> 메인 예고편
웃음과 눈물이 번진 이별 기억...
위로가 필요한가요?
전남친의 집을 찾아간 ‘진아’
무대에서 폭발한 밴드 보컬 ‘혜승’
백수 남친과 아직도 못 끝낸 ‘혜수’
새로운 시작을 꿈꿨던 ‘미영’
네 편의 단편영화와 함께하는
이별 여행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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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암모나이트>
“긴 시간의 끝, 그곳에 네가 있었다”
1840년대 영국 남부 해변 마을,
생계를 위해 화석을 발굴하는 고생물학자 ‘메리’는
그곳으로 요양을 위해 내려온 상류층 부인 ‘샬럿’을 만난다.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거친 해안에서 화석을 찾으며, 그렇게 기적처럼 서로를 발견하고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당신의 마음에 각인될 강렬한 러브 스토리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