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1-13 11:16:12
<오징어 게임>, 미국배우조합상(SAG) 4개부문 후보
이정재, 정호연 배우 미국배우조합상 남여주연상 후보
2021년 전 세계의 흥행을 선두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미국 배우조합상(SAG)의
대상 격인 앙상블 최고 연기상 등 주요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미국배우조합상(SAG)은 그야말로 미국 배우 조합이 주최하는 시상식인데요.
1995년에 처음 시작되었고, 미국의 영화/드라마 배우 가맹으로 조합원 수는 약 12만명입니다.
아주 영향력있는 미국 배우들이 주최하고 동료 배우들이 인정하여 상을 시상하는만큼 영예롭고 권위있는 시상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제 28회 미국배우조합상 시상식 명단에서
TV 드라마 시리즈 앙상블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TV 드라마 스턴트 부문 앙상블상 등 4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SAG에서 비영어권 드라마가 앙상블상 후보에 지명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아울러 드라마 부문 남녀주연상에 아시아 국적 배우가 후보로 오른 것도 최초입니다.
드라마 부분에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 배우와 정호연 배우가 나란히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앙상블상은 한해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준 드라마 출연 배우 전체에게 주는 상으로 SAG 최고의 영예로 꼽히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 시너지(화합)을 중점적인 기준으로 심사하는 부문이죠!
앙상블상 후보로는 훌루의 <핸드메이즈 테일 (시녀 이야기)>, 애플TV+의 <모닝쇼>, HBO의 <석세션>,
파라마운트 네트워크의 <옐로스톤> 등 쟁쟁한 작품들이 선정됐습니다.
남우주연상 후보는 이정재 <오징어게임>, 제레미 스트롱, 키에라 컬킨, 브라이언 콕스 <석세션>, 빌리 크루덥<모닝쇼>등이 후보에 올라 경쟁을 펼칠 것 같습니다.
여우주연상에는 정호연 <오징어게임>, 제니퍼 애니스톤과 리즈 위더스푼 <모닝쇼>, 엘리자베스 모스 <핸드메이즈 테일(시녀이야기)>,
세라 스누크 <석세션>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후보에 올랐습니다.
스턴트 앙상블 후보로는 <오징어게임>, <코브라 카이>, <팔콘 앤드 윈터 솔져>, <로키>,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 등이 선정됐습니다.
<오징어게임>은 SAG 어워즈에서 비영어권 드라마 중 최초로 후보에 오르는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은 SAG 4개 부문 후보 지명과 관련해
버라이어티에 “감독으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며 “후보에 오른 배우들과 모든 출연진의 헌신과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한국의 K-콘텐츠는 명실상부 전 세계의 중심에 있습니다.
지난 2020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SAG의 앙상블상을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한국계 정이삭 감독이 연출한 미국 영화 <미나리>가 영화 부문 후보에 오른 바 있습니다.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는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죠.
다시 한번, <오징어 게임>의 SAG시상식 후보에 오른 점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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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씨네랩은 다음 주 더욱 더 유익하고 재밌는 콘텐츠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
씨네랩 에디터 Hezis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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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보다 별로라고? / 여전히 기발한 연출의 병맛 영화 / 웹툰 암살요원 준 시즌 2 / 권상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히트맨 2"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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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기에 있다 - 좋은 재료로 끓인 라면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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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4월 12일 개봉하는 작품
[나는 여기에 있다]의 개봉전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과거, 살인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칼에 폐를 찔린 후 장기 이식을 통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형사 ‘선두’(조한선)
수사 일선에 복귀한 그는 연쇄 살인범 ‘규종’(정진운)을 쫓던 중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아승’(노수산나)을 통해
‘규종’이 자신과 같은 공여자의 장기를 이식받은 것은 물론,
공여자가 과거 자신이 검거했던 살인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피 끓는 형사 VS 폭주하는 살인자
지독한 운명에 얽힌 두 남자의 극한 추격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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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허슬> 공식 티저 예고편
운이 다한 농구 스카우트(애덤 샌들러)가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엄청난 실력에 험난한 과거를 가진 선수를 외국에서 우연히 발견한다. 결국 그는 팀의 허락도 받지 않고 독단으로 이 천재 선수를 미국에 데려가는데. 두 사람은 난관을 무릅쓰고 NBA에서 성공할 자질을 갖췄음을 입증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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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킹덤: 아신전> 티저 예고편
[2021년 7월 23일, 넷플릭스 공개]
비극과 배신이 삶을 덮친다. 기이하고 불길한 뭔가를 발견한다.
한순간에 가족과 동족을 잃은 여인.
오직 복수를 꿈꾸며 살아온 그녀가 짙은 어둠을 마주한다.
≪킹덤≫의 스페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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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로의 여정 속에서 찾는 '나'라는 존재
과거로의 여정 속에서 찾는 '나'라는 존재
영화의 제목 "이다(Ida)"는 안나의 본명이다. 안나는 서원식 전에 자신에게 혈육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유일한 혈육인 이모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모에게 두 가지 사실을 듣게 된다. 자신의 실제 이름이 "이다(Ida)"라는 것과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 이모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이다. 쌀쌀맞은 이모의 태도와 그녀가 전하는 정보에 혼란스러우면서도 자신의 부모에 대해 알고 싶어진 안나는 이모와 함께 그 흔적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이 영화는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을 취한다. "이다"라는 한 이름의 제목이 주는 강렬한 인상과는 다르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 이다(안나)와 완다 두 명이라 할 수 있다. 안나는 부모에 대해 알아가며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진실들을 하나씩 마주한다. 그러나 안나가 부모에 대한 진실에 점점 다가갈수록 완다는 잊고 싶던 과거의 기억을 점차 떠올리며 그것에 잠식되어간다. 두 사람의 동행은 안나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임과 동시에 그녀의 이모 완다가 자신의 과거 기억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과정이다.
수녀원의 제한적인 정보와 환경 속에서 격리되다시피 살아오던 안나에게 바깥세상은 신기하기만 하다. 안나는 바깥세상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호기심을 가진다. 수녀원 측의 배려로 서원식을 앞두고 직접 완다를 찾아가지만 이모 완다는 그녀를 쌀쌀맞고 퉁명스럽게 대한다. 이모는 안나가 유대인이라는 것과 그녀의 실제 이름과 부모의 이름, 그리고 사진 한 장을 주고는 그녀를 수녀원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첫 만남부터 비밀로 싸여있던 완다는 안나가 수녀원에서 그녀에 대해 아무 정보도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알자 안나에 대한 경계를 늦춘다. 판사인 완다는 법정 재판 중에 생각이 잠기더니 이다를 데리러 버스터미널로 가고, 이때부터 그녀의 태도는 상반되게 온화해진다. 이다를 보고 마주하기 힘들던 과거를 떠올려서일 수도,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들에 대한 죄책감이나 후회 때문일 수도, 혹은 온전히 이다에게 뿌리를 알려주기 위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계기가 어떻든 간에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다시 만나 서로의 과거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안나 가족의 죽음은 1941년 독일의 폴란드 점령 당시 폴란드 민간인들이 유대인 수백여 명을 죽였던 예드바브네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추측해보건대 안나의 부모와 함께 죽은 어린 남자아이는 아마도 그녀의 아들일 것이다. 과거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죽은 가족들의 유골을 마주한다. 완다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스탈린 정부 하의 폴란드 공산당원이 되어 살아남았고, 안나는 갓난아이라 유대인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들 가족을 죽인 남자는 무덤을 판 구멍에 앉아 죄의식을 보이긴 하지만 끝까지 이들에게 사과를 하지는 않는다. 자신들을 더이상 괴롭히지 않고 집에서 계속 살게 되는 조건으로 유골이 묻힌 곳을 알려주는 거래를 했을 뿐이다. 완다는 아들의 유골을 소중히 끌어안는다. 그녀는 자신이 판사로서의 권력을 휘두르며 저질렀던 과거의 행보를 되돌아보면서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고, 결국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반면 이다의 선택은 어떠한가. 이 영화의 엔딩씬을 그녀의 선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엔딩씬은 무척 독특하다. 내내 정적이던 카메라는 엔딩씬에서 급작스럽게 흔들린다. 감독은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는 이다의 모습을 핸드헬드로 잡는다. 핸드헬드 자체가 특별한 연출기법은 아니다. 다만 앞선 모든 장면에서 감독이 유지해오던 연출 방식과는 상반되게 끝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엔딩씬은 특별해진다. <이다>는 여백을 통해 스토리텔링하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점은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연출 특징이기도 하다. 차기작 <콜드 워>에서도 이어지는 1.33:1의 풀 프레임 화면비와 흑백의 이미지, 헤드룸을 많이 남기며 전통적인 미장센을 깨는 과감한 시도까지 그의 영화는 형식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크고, 그는 형식을 통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화면의 중심이 아닌 사이드에 위치하고 카메라는 여백이 많이 보이도록 대상을 비춘다. 그럼으로써 영화 속 인물들은 어딘가 위태롭고 불안해 보인다. 마치 세상의 구석으로 내몰린 느낌까지도 든다. 이 점을 <이다>에서 <콜드 워>까지 이어지는 그의 영화 속 시대 배경과 연결 지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와 운명이 반기지 않는 가운데, 세상으로부터 내쳐지는 인물들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다시 엔딩씬으로 돌아와서, 내내 무표정하던 그녀의 표정이지만 그 순간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 의지의 분위기가 엔딩씬 전체를, 관객을 압도시킨다. 안나는 어쩌면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제대로 찾게 된 건지 모르겠다. 아니, 그 길을 비로소 시작하는 건지도. 지금까지 살아온 '안나'로서의 삶을 계속 살아가든, 새롭게 알게 된 '이다'로서의 삶을 살아가든 중요한 것은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가와 같은 사소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어딘가로 묵묵히 걸어 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그녀의 결연한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제 어떤 선택을 하든 그녀의 선택은 오로지 그녀의 의지와 발길에 달렸다. 이다는 자신의 길을 계속해서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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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이라는 노동의 세계
#디올 #오트쿠튀르 #라프시몬스
먼저 자기반성? 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패션에 관심이 있었지만 패션에 탐닉할 정도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란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은 가져야 하지만 그 정도가 명품에 대한 탐닉으로 이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해온 사람이었다. 그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사람을 천박한 허영심의 노예로 바라보게 된다고 믿어왔다. 결국 나는 명품 브랜드라는 존재에 대해서 하나쯤은 갖고 싶지만 사람의 허영을 자극하기도 하는 것으로 폄하하면서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디올 앤 아이,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명품 브랜드에 관한 상반된 감정 중에서 전자, 브랜드에 대한 동경 때문에 내면 속 허영심을 자극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낯선 인물이 등장한다. 라프 시몬스. 패알못은 주섬주섬 핸드폰을 들어 라프 시몬스를 검색한다. 오호, 질 샌더 디자이너였군. 그럼 질 샌더는 무슨 브랜드이지? 패션에 대해서는 정말 1도 모른다는 사실을 통감한 채 검색을 포기하고, 영화를 계속 본다. 보다보니 이 영화, 잘 골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 오트쿠튀르의 정신
Ready to wear, 남자 기성복만을 만들어온 라프 시몬스에게 디올 오뜨꾸뛰르는 정말 큰 도전이었다. Haute Couture, 고급 맞춤복을 만드는 컬렉션을 기성복을 만드는 과정과 결코 같을 수가 없다. 귀족, 부르주아 상류층을 위해 존재해왔던 오뜨꾸뛰르가 산업 혁명을 거쳐 일반인들을 위한 패션, 즉, 대량생산이 가능한 패션인 기성복 라인과는 옷을 만드는 목적과 방식이 다른 것이 당연하다. 라프 시몬스의 작업 방식은 영화 초반까지도 "For only one"을 위한 의상이 아니라 "For every people"이었기 때문에 수석 디자이너가 고객 때문에 파리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로 날아가는 상황을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의 개인에게 특별함을 부여해주는 오뜨꾸뛰르의 정신은 돈을 많이 써주는 고객에게 올인할 수 밖에 없는, 예술성을 추구하지만 수익을 포기할 수는 없는 아이러니를 포함하고 있다. 한 고객이 쓰는 어마어마한 돈에는 오뜨꾸뛰르가 제공하는 익스클루시브, 특별한 대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특별한 대우 속에는 '당신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오뜨꾸뛰르의 예술성을 누리기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일반인들을 왕따시키는 개념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인식 속에서 라프 시몬스가 해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2. 오뜨꾸뛰르의 원동력
영화 속에 등장하는 디올 하우스의 수많은 직원들은 진정 예술가로 인정받을 만하다. 모든 컬렉션을 총괄하고, 구상하는 역할은 라프 시몬스가 담당했지만 라프 시몬스가 구상한 옷을 물리적으로 표현해주는 사람들은 디올 하우스의 수많은 재봉사들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들이 2D의 그림을 3D의 현실로 구사해내는 과정을 보면, 신의 손은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컬렉션이 끝나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디자이너에게 쏠리게 되지만 실제적인 노고는 그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의문점이 들었던 것이, 그들은 자신만의 디자인을 표현해내고 싶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디올의 오뜨꾸뛰르 작품들은 라프 시몬스만의 디자인이 아니라 디올 하우스의 모든 직원들이 감성이 표현된 작품이라는 알게 된 이후부터는 그 궁금증이 사라지게 된다. 작업 과정 중에서 개개인의 감각이 녹아있는 옷 하나하나에 애정을 갖고 일하기 때문에 디올 하우스가 유지되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디올 하우스의 직원들이 디올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모습은 정말 존경할 만하다.
3. 크리스찬 디올과 라프 시몬스
이 영화 속에서 나레이션으로 크리스찬 디올의 자서전의 대목들은 라프 시몬스의 상황과 묘하게 일치한다. 하나의 컬렉션을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 총괄자로서 직원들을 채찍질해야 하는 라프 시몬스의 상황이 아주 오래전 크리스찬 디올이 느꼈던 감정과 일치하곤 한다. 이런 감정은 이 둘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모든 창작자들의 감정과도 동일시될 것이다. 크리스찬 디올은 자신의 "샴 쌍둥이"라고 표현한 내면적 자아와 사회적으로 드러나 있는 자아로 자신의 자아를 분리시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영화 속 라프 시몬스의 언론에 노출되기를 꺼려하는 내면적인 자아와 디올이라는 브랜드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교계 인사로 남아야만 하는 상황을 대비시키다 보면 이 상황은 결국 예술가들이 맞이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일반인들도 이런 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얼핏 보면 크리스찬 디올과 라프 시몬스 둘 만이 비슷한 고뇌를 공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내 진짜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우리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좀 더 특별한 직업을 가진 것일 뿐.
하지만 비싼 가방을 드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듯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이용한 마케팅의 노예가 되는 것은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명품 브랜드는 비싸다는 이유로 종교처럼 신봉하는 사람들이나 비싸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사람들 모두 하나의 옷을 만드는 데에 드는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느껴보라고 권유하는 의미에서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명품에는 사실 크게 관심없고, 저렴하고, 알뜰한 쇼핑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사실 이 영화 안 봐도 될 것 같다. 눈 호강하겠다는 의미로 본다면 또 모르겠는데, 눈 호강은 사실 막판 10분 정도가 전부라서 크게 재밌는 영화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샤넬, 디올, 루이비통 같은 명품 브랜드의 컬렉션이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은 마케팅을 탓해야지 디자이너를 비롯한 아뜰리에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그들만의 예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의 컬렉션 작품을 볼 때,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보듯 해석해보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듣는 예술, 보는 예술, 먹는 예술을 넘어 입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작품을 입는다는 생각을 하면, 하나의 옷을 만들기 위해서 드는 인건비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오뜨 꾸뛰르 아뜰리에에서 요구하는 비싼 가격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는 늘 생각해요. 디올 하우스에서 디자이너들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아뜰리에라고. 디올 하우스의 모든 보배가 모든 소중한 뿌리가 아뜰리에에 남아있죠. 40년 또는 44년 동안 여기서 일하신 재봉사들도 계십니다. 함께 어울리고 서로 소통하고 그렇게 풍요로워지는 거죠."
디올 앤 아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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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길은 에테르로 통한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나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끌어들이는 것은 너무나 피상적인 접근일까. 아닌 게 아니라,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는 두 영화를 은근히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있다. 우선 영화의 초반부, 유이치의 부모님이 보는 TV 뉴스에는 청소년들이 버스를 납치한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유레카>를 떠올리는 일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공교롭게도 <유레카>와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사이에 니시테츠 고속버스 탈취 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의 범인은 이지메로부터 비롯된 정신질환을 앓던 17세 청소년이다). 다음, 유이치가 호시노를 죽이는 장면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 샤오쓰가 밍을 죽이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물론 그것을 찍은 방식은 에드워드 양의 방식과는 정반대이지만 살인이 일어나는 맥락과 상황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꽤 유사하다. 사실 에드워드 양은 <릴리 슈슈의 모든 것>과 정말로 관련이 있는 감독이다. 에드워드 양이 1990년대에 관금붕과 함께 기획했던 ‘Y2K 프로젝트’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유레카>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떠올리는 것이 마냥 억지는 아닌 셈이다.
<유레카>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시대적 맥락 위에서 존립하는 영화들이다. <유레카>라는 영화가 놓인, 그리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배경으로 삼은 시대의 서사를 무시한다면 두 영화는 반쪽짜리다. 왜냐하면 두 영화에서 인물들의 서사는 그것이 놓인 시대의 서사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힘을 원동력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영화에서 서사적 힘의 방향은 시대에서 개인으로의 방향이다. <유레카>는 명백한 포스트 사린 테러 영화로서 초반부 버스 납치 사건 이후 생존자들의 삶을 다루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시대적, 정치적 카오스가 개인의 삶 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과정을 다룬다. 두 영화 속에서 언젠가 개인의 서사가 시대의 서사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에도 그 순환의 시작은 시대의 서사다. 개인의 일탈 행위가 시대의 어두움을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어떠한가? 개인과 시대의 서사라는 관점에서 이 영화는 <유레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계보 아래에 있는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그런 것에는 일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시대성과 거리를 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목적이 거기에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가 시대적 서사에 관심이 있었다면 초반 버스 납치 사건을 더 비중 있는 서브플롯으로 다뤘을 것이다. 혹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하나의 사회실험과 같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릴리 슈슈’라는 가상의 가수와 그 게시판 홈페이지를 만들고, 게시판의 글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한 뒤 그 소설을 원작 삼아 영화를 제작하였다는 유명한 제작 비화는 영화 속에 반영될 여지가 많았다. 이를테면 릴리 슈슈의 콘서트 시퀀스는 유이치와 호시노가 겪는 온라인 세계와 오프라인 공간 사이의 괴리를 사회적 문제로 확장할 수 있었던 장면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일본의 오타쿠 문화를 비판하거나 사회적 문제로서의 이지메를 조명하는 장면으로, 더 나아가서는 그 둘을 이으며 개인과 시대 간 비극의 순환을 묻는 장면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실제로 유이치가 스크린 속의 릴리 슈슈를 가만히 바라보는 장면, 릴리의 등장을 외친 이후 모인 수많은 인파 속에서 호시노를 죽이는 장면은 관객에 따라서 당시 일본 사회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도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와이 슌지는 그 장면 이전에도, 이후에도 시대적 서사에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언급한 장면에서 시대적 서사에 대한 함의가 느껴지는 것은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와이 슌지가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에테르’다. 좋게 말하면 어떻게 하면 에테르를 영화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인지, 나쁘게 말하면 어떻게 하면 영화적 겉멋을 에테르라는 단어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다. 어느 쪽이든 이 영화는 완전히 개인적인 영화다. 일단 그 전제에 동의하면 이 영화가 개인적인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을 윤리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다. 또 이 영화의 스타일에 대해 겉멋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개인적으로 이 비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자연광이나 풀밭을 담은 몇몇 장면과 릴리 슈슈의 음악이 경탄스러운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에테르의 비가시성을 인상주의 음악의 대표격인 드뷔시와 연결짓는 시도는 너무나도 얄팍하다). 그러나 그 비판을 받아들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 형식이 적어도 일관되게 나쁘다는 점이다. 이와이 슌지가 상정한 전제 아래서 고통의 근원을 시대적인 것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핑계대는 것이다. 왕가위와 비교하자면 둘은 스타일리쉬함을 공유하지만 시대적일수록 좋았던 왕가위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개인적일수록 좋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유레카>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끌어들이는 것은 피상적인 접근은 아닐지라도 조금은 현학적인 접근일 수도 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그 일관된 개인성이 더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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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중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탄생
우리는 매일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현재를 살면서 과거에 대한 생각도 떠올리지만 미래의 모습도 떠올린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며 현재 아직 벌어지지 않은 무수한 가능성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그 이미지 안에는 긍정적인 모습도 있고, 부정적인 모습도 있다. 그런 단편적인 미래에 대한 이미지들은 계속 머릿속에 수시로 떠오르며 미래로 걸어가는 길에 영향을 준다. 그렇게 무수한 생각을 하다 보면 그 이미지들은 무의식에 묻히고 때론 꿈의 형태로 형상화된다,
그 무의식, 깊은 곳에 저장된 미래의 모습은 조금씩 현실이 되어 간다. 실제로 자신이 꿈꾸던 미래의 모습과는 다를 수도 있고 또 같은 방향으로 실현될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자신의 생각 속에서 미래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고 해도 그것이 현재 실현이 되기까지는 그저 상상 속의 미래일 뿐이다. 사실 상상 속의 미래가 실현되기 전까지는 미래로 한 발짝 나아가기까지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한다. 미래의 모습이 현재가 되었을 때, 안도감을 느끼지만 한 편으로는 다시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여전히 존재한다.
미래에 대한 환영을 보고 고뇌하는 폴과 그 가문의 이야기, <듄>
영화 <듄>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고뇌하는 폴(티모시 샬라메)과 그가 속한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이야기를 담는다. 1960년대 후반에 프랭크 허버트가 출간한 소설 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듄>은 폴과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방대한 서사의 시작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영화의 초반은 폴이 꾸는 꿈으로 시작한다. 누군가의 독백으로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조금 난해한 부분이 있지만 그 이후의 전개를 보고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그 배경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폴은 매일 밤 꿈을 꾼다. 미래의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죽는 모습이나 누군가와 싸우는 모습이 계속 그를 괴롭힌다. 그의 어머니인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는 특별한 목소리로 상대방을 조정할 수 있는 베네 게세리트라는 조직의 사람이다. 그가 가진 능력은 아들인 폴에게까지 유전되어 전달되었고, 그것이 아직 완전히 발현되지는 않았지만 폴은 그 능력을 쓰는 방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가 꾸는 꿈은 어쩌면 제시카에게 물려받은 능력 때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환영은 베네 게세리트의 누구도 보지 못하는 것으로 그만이 보는 환영이다.
폴의 아버지인 레토 아트레이드(오스카 아이작)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잘 이끌면서 좋은 리더로서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우주 황제의 명에 잘 따르면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힘을 키워가고 있다. 그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하코넨 가문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어느 날 황제의 명령으로 하코넨이 통치하고 있던 아라키스라는 행성을 관리하게 된다. 우주여행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질인 스파이스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지역 특성상 광물로 인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요한 물질 스파이스 채집도 레토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된다. 대부분이 사막으로 이루어진 척박한 행성에 살고 있는 원주민 프레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황제의 명을 제대로 따라야 하는 레토의 임무는 꽤 어렵게만 느껴진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몰락과 그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폴
이번 <듄>에서 집중하는 건, 몰락해가는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그 상황을 견디며 앞으로 향하는 폴의 모습이다. 그가 보는 환영이나 꿈은 미래에 그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보는 이미지들이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폴이 환영을 볼 때 그의 모습은 두려움 속에 있다. 환영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고 특히 스파이스가 많은 지역에서 더욱 심해지는 환영을 폴은 극도로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영화 속에서 폴은 아라키스의 원주민들인 프레멘들에게 리산 알가입이라는 메시아로 인식된다. 하지만 프레멘 쪽 인물인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나 카인즈 박사(샤론 던컨-브루스터) 같은 인물들의 반응이나 말을 통해서 관객들은 프레멘들 사이에서도 폴이 진정한 메시아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폴 자신도 그가 메시아 같은 대단한 존재일 거라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즉 모든 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은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폴이 가진 능력은 대단하지 않아 보인다. 개인 전투 능력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군인인 거니(조슈 브롤린)나 던컨(제이슨 모모아)에 비해 떨어지고 상대방을 조정하는 목소리는 레이디 제시카에 비해서 떨어진다. 또한 정치적인 역량도 아버지인 레토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아직 폴은 어리다. 그래서 그가 가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데, 바꿔 말하면 그는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실패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영화 <듄>에서 중요한 건, 바로 폴이 가진 가능성이다.
폴이 가진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보면 별 볼 일 없어 보인다. 그가 보는 환영과 꿈에서도 그는 대단한 능력을 보지 않는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자신이 종교전쟁을 지휘하는 지도자로 등장하는 등, 부정적인 모습들이 꽤 포함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하코넨 남작(스텔란 스카스가드)의 공격을 받고 완전히 몰락의 길을 간다. 충분히 부정적인 방향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폴은 자신을 돕는 사람들과 함께 한 줄기 빛이 있는 희망을 찾기 위한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미지와 상황들이 겹쳐지지만 폴은 자신이 가는 길을 명확히 인지하고 자신 만의 결정을 해나간다.
두려움을 헤치고 미래로 한 발씩 걸어가는 폴
영화 중간중간 폴이 보았던 미래에 대한 환영과 이미지는 영화 후반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것도 있고 알고 있던 이미지와 다르게 이루어진 것도 있다. 결국 아무리 자신에게 미래의 환영들이 보였다고 하더라도 그 이미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영화는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이후의 모든 여정과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폴 스스로 경험하면서 결정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후반 등장하는 프레맨 챠니(젠다야 콜먼)는 폴의 환영 속의 존재이자 현재를 같이 만들어가야 할 운명의 동반자다. 이번 1편에서의 비중은 많지 않지만 영화의 후속 편이 이어진다면 꽤 중요한 캐릭터로 그려질 가능성이 크다.
영화에 등장하는 리더 레토의 모습은 굉장히 위엄 있고 결단력을 보이는 등 좋은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를 보좌하고 있는 던컨이나 거니가 보여주는 모습 속에서는 그들이 가진 리더에 대한 충성이 깊이 느껴진다. 이렇게 단단하고 신뢰로 가득한 조직이 다른 집단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은 스펙터클한 영상에 담겨 있지만 무자비한 공격으로 인한 상실감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좋은 아버지 이기도 한 레토의 최후 모습은 폴이 가지게 될 짐을 관객에게 전달하며 추후 이어질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복수를 기대하게 만든다. 또한 폴의 성장과 함께 그가 걸어가게 될 메시아로서의 길도 궁금하게 한다.
스파이스라는 귀중한 광물이 가득한 아라키스는 척박한 땅이다. 그곳의 원주민인 프레맨들은 원래 그들이 살던 땅을 외부 존재에게 착취당하는 집단이 되고 만다. 마치 아프리카가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화되었던 것처럼 외부 존재에 의해 그들의 땅의 귀중한 것을 빼앗기고 이용당한다. 그 땅에 묻힌 광물들을 현지인들을 이용해 캐나가고, 그것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망령을 이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 새롭게 들어가게된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최대한 그들을 존중하며 새롭게 관계를 형성하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더 깊숙이 감추고 만다.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메시아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통합으로 갈 수 있게 만드는 존재이겠지만 그들 앞에 아직 그 존재는 등장하지 않았다.
영화 <듄>은 원작 소설 1권의 반 정도를 화면으로 옮겼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원작을 영상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은 급하지 않게 천천히 하고 깊은 이야기를 다 풀어낸다. 무엇보다 아이맥스로 촬영된 화면과 한스 짐머가 만들어낸 웅장한 음악은 이 스페이스 오페라에 경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또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이야기 안으로 완전히 빠져들게 만든다. 거대한 우주함선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그리고 그 모래 속을 기어 다니는 거대한 모래 벌레는 그것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영상과 사운드가 좋은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다면 가능하면 좋은 시설의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꼭 극장에서 관람해야 할 장중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탄생
영화에서 폴 역을 연기하는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가 가장 눈에 띈다. 가문의 대를 이을 후계자이지만 아직 다 성숙하지 않은 그는 자신과 가문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 고뇌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여리여리한 몸이지만 점점 날카로워지는 폴은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로 더욱 실감 나게 담겼다. 이 영화가 가지게 된 신비하고 압도적인 감정은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또한 레토를 연기한 오스카 아이작, 레이디 제시카를 연기한 레베카 퍼거슨을 비롯하여 조쉬 브롤린, 제이슨 모모아, 하비에르 바르뎀, 스텔란 스카스가드 등의 여러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도 이 영화에 강력한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영화 <듄>의 흥행이 완전한 실패가 아니라면 현재 계획된 것과 같이 무난히 속편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한 편에 <듄>이 가진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황제의 음모, 베네 게세리트의 활동, 아라키스와 폴의 모습 등 아직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향후에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듄>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앞으로 만들어질 아라키스에서의 다음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게 될 것 같다. 훌륭하게 만들어진 이 스페이스 오페라의 후속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관객들은 기꺼이 아라키스의 한복판으로 몸을 던질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듄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QrUTKIa-P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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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에게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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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엄마라는 말을 들으면 눈물이 날까. 울 때는 엄마, 하고 울게 될까. 어쩌다 엄마라는 단어에 온갖가지의 감정이 붙어버렸을까.
우리 엄마는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었다. 초등학생일 때 학교에서 부모님이 편지를 써 오라는 이상한 숙제를 내주곤 했었는데,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엄마가 작가이시냐, 시인이시냐 하고 물었다. 정작 나는 "녹음이 짙은 계절이구나."로 시작하는 그 편지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던 초딩이었다.
엄마의 엄마는 일본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있는 집 귀한 딸이었다. 자수를 끝내주게 놓아서 온 마을 사람들이 엄마의 엄마에게 옷을 지어달라고 했다. 노래를 잘하고 춤도 잘추는, 요즘 말로 예체능으로는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글재주를 타고났나 보다.
나는 엄마의 비밀상자에서 엄마의 자매들과 나눈 편지를 읽은 적이 있다(자녀가 있다면 비밀상자를 꼭꼭 숨겨두길 바란다). 한 이모가 엄마에게 "언니.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야."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냈다. 엄마는 뭐라고 답장을 썼을까. 또 다른 누군가는 "바보에게." 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엄마한테 보냈다. 연애편지인 듯했다. 엄마는 뭐라고 답장을 썼을까.
내가 초등학생일 때 엄마는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제는 열 손가락에 관절염이 생겨 피아노는 물 건너갔다.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나와 동생이 중고등학생 때 보던 영단어장을 항상 거실에 두었는데, 몇 단어나 외웠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었을까. 나는 엄마가 엄마라는 것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엄마를 생각하면 슬퍼진다. 한 인간의 삶에서 '엄마'라는 단어를 빼고 모든 것이 지워졌으므로, 나는 엄마에 대해 알지 못한다. 엄마가 아닌 그 사람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엄마한테 남은 것이 자식뿐이라 화가 난다. 일생동안 손가락이 다 휘어지도록 일했는데 엄마한테는 아무런 지위도, 성취도 없다. 그냥 엄마다.
엄마로서의 삶과 주체로서의 삶
엄마는 엄마라는 이유로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 그러나 <로스트 도터>의 주인공 레다는 그러고 싶지 않다. 레다는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꾸리는 것보다, 연구가 더 중요하고 자신의 욕망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여름 휴가 역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게 아니라 혼자서 떠난다. 휴가에서도 할일이 많다. 논문도 읽어야 하고 수영도 해야 하고 선탠도 해야 한다.
그런 레다의 고요는 한 대가족에 의해 박살이 난다. 이들은 이모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 어린 아이까지 섞인 대가족이다. 레다는 어린 여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 니나에게 자꾸만 시선이 간다. 대가족, 특히 여자 아이와 아이의 엄마를 바라보는 레다의 표정이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니나의 모습과 니나 또래쯤 되었을 레다의 과거 회상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레다는 엄마로서의 삶보다는 자기만의 삶을 살고 싶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자기만의 방'이 필요했다. 하지만 집에는 남편이 있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두 딸이 있었다. 레다는 남편과 육아를 분담하면서, 자기의 몫이 아닐 때는 아이들이 울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그 사랑스러움만으로 자기 삶을 내팽겨칠 수가 없는 것이다.
비교문학 학자로서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세월을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했겠나. 그걸 이제와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버릴 수 있을까. 지금도 수도 없는 여자들이 경력단절을 경험한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취업하여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이 노력했고, 또 열심히 살았나. 그런데 단지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그 노력들이 물거품이 된다. 다시 돌아갈 자리는 없다.
대가족은 물놀이를 즐기느라 아이가 사라진 것도 모른다. 뒤늦게 아이를 잃어버린 걸 알아채고는 온 해변을 뒤지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레다는 별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숲속에서 혼자 놀고 있던 아이를 발견하고는 니나에게 데려다 준다. 니나는 레다에게 묻는다. 너무 힘들지만, 곧 지나가지 않겠냐고. 그러나 레다는 대답한다. 지나가지 않는다고.
결코 지나가지 않는 괴로움들
갈등은 아이가 가지고 놀던 인형이 사라지고부터 시작된다. 레다는 아이의 인형을 훔쳐가는데, 눈앞에서 아이가 울고불고, 어른들이 아무리 아이를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다. 레다는 별장으로 돌아가 훔친 인형을 꼭 안고 잔다. 인형 옷도 새로 사서 입힌다.
평화롭던 대가족은 사라진 인형 하나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정말 이 가족은 평화로웠을까? 삼대가 모여 즐겁게 휴가를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니나의 괴로움이 있다. 니나에게는 평화가 없다. 늘 자기를 따라다니는 어린 딸, 눈에 안 보이면 사라지고마는 딸,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남편, 그리고 내연남.
니나의 내연남은 해변에서 일을 하는 대학생 윌이다. 윌은 누구에게나 다정하다. 그게 윌의 일이기도 하다. 레다와도 한번 저녁을 같이 먹는데, 레다는 윌에게 쉽사리 마음을 터놓는다. 레다가 인형을 돌려주기로 결심하고 니나의 집을 찾아갔을 때, 니나와 윌이 내연관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레다도 그런 적이 있었다. 학회에서 교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몇 번의 그런 생활이 반복된 후,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는 집을 나가버린다. 여기서 혹자는 엄마의 책임감을 운운하겠고, 혹자는 바람난 유부녀의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하겠으나 분명한 건 레다가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두 딸이 너무 버거워서, 아이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다 뒤처질 것 같아서, 또는 그밖의 여러 이유로 레다는 우울해한다. 학회에 나가 혼자 있는 것(또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이 레다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이다. 가만 보면 엄마들에게는 탈출구가 많지 않다. 나는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문을 쾅 닫고 들어가 잠가버렸지만, 엄마는 쾅 닫고 들어가 잠글 방이 없었다. 엄마에게는 방이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레다는 3년간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3년이 지나고, 아이들이 보고싶어져(영화에서는 그렇게 말하지만 아마도 레다의 우울이 가시고 난 후가 아닐까) 집으로 돌아간다. 그때쯤은 아마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을 테고 엄마보다 친구를 찾았을 것이다.
레다는 인형을 돌려주지 않고, 마치 자식을 돌보듯이 인형을 돌본다. 아이는 어떤 인형을 사주어도 그 인형을 잊지 못한다. 니나 가정에는 작은 틈이 생겼고, 레다는 그 틈을 지켜본다. 니나는 괴로워한다. 인형을 잃어버린 아이는 엄마를 자꾸만 괴롭게 한다. 엄마가 괴롭지 않으려면 아이가 인형을 찾아야 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레다는 인형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저녁, 윌이 레다를 찾아와 방을 빌려달라고 한다. 무슨 그런 부탁이 다 있는지 모를 일이다. 윌은 예전의 저녁식사에서 레다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레다는 거절하지만 얼마 뒤 니나가 레다를 찾아온다. 레다는 기꺼이 방을 내어주겠다고 말하며, 인형을 돌려준다.
니나는 도대체 왜 그랬냐며 분노하지만, 레다는 그저 장난이었다고 말한다. 그저 장난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레다가 인형을 훔친 건 행복해 보이는 니나에게 '너도 한번 괴로워봐라' 하는 마음이었을까, 딸들을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레다는 시장에서 니나를 마주친 적이 있다. 니나가 쓴 커다란 모자가 자꾸 바람에 날리자, 모자에 뾰족한 핀을 꽂아 고정시켜준다. 이렇게 하면 바람에 날아가지 않는다고. 그 말은 팁 같으면서도 모종의 조언이나 충고 같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레다가 사는 집에 놀러가겠다고 했던 니나는 레다가 준 건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며 핀을 돌려준다. 핀은 마치 자식을 품을 자격도 없다는 듯이, 레다의 아랫배에 깊이 박힌다.
*
어떤 사랑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엄마의 사랑은 당연하다고 너무도 쉽게 오해하게 된다. 이 당연한 사랑을 받지 못해 병들고, 당연한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병든다.
엄마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거실이나 주방이 아닌, 엄마만의 방.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 또는 엄마 역할 말고 다른 일을 해야 할 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엄마의 방이 없다는 것은 엄마의 사랑만큼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레다는 니나와 아이를 보면서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을 끝없이 반추한다. 자식을 등지기로 결심했던 레다에게 그 시절은 어떻게 기억되었을까. 니나는 그 여름을 어떻게 기억할까. 어느 쪽으로나 썩 편치만은 않다.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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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도터(THE LOST DAUGHTER), 2021.
감독 : 메기 질렌할
주연 : 올리비아 콜맨, 다코타 존슨, 제시 버클리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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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운명처럼 찾은 제천
운명처럼 찾은 제천, 영화 '오늘의 장내' 이호현 감독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충청북도 출신 혹은 지역에서 활동 중인 제작자가 만든 제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 4편을 ‘메이드 인 제천’ 부문으로 선정하였다. ‘오늘의 장내’는 4편 중 유일한 장편영화로,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코믹하면서도 극적으로 담아내었다. 지난 8월 15일,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에서 ‘오늘의 장내’의 이호현 감독님을 만나 영화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메이드인제천’ 부문에선정었는데, 소감한말씀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전부터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게 영화 음악이 아니라서 출품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요. 이 작품을 제천에서 촬영하게 되고, 출품할 영화제를 찾아보던 중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메이드 인 제천’ 부문이 있음을 알게 되었죠.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한 생각입니다.
영화의 배경을 제천으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장소만이 가진 고유의 캐릭터가 있다고 생각해서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 어떤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설정하는데요. 예전에 제천에서 조수 생활을 하면서 머문 적이 있었어요. 너무나 깔끔하게 정돈된 수도권의 배경들이 아닌, 세월이 묻어나 있는 건물, 제천이 갖고 있는 역사가 이 영화와 맞는다고 생각해서 제천을 영화 배경으로 선택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상은이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을 연기하면서 시작해요.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인트로 장면을 쉽게 썼었어요. 하나와 전화 통화를 하며 버스를 내리는 장면으로 썼는데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게 들어간 거 같아 고민했죠. 상은이와 딱 맞는 장면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고민하던 중 ‘오디션’이라는 소재가 생각났어요. ‘상은이가 어떤 대본을 갖고 오디션을 볼까?’ 상은 역할의 지홍 배우와 함께 계속 고민하다가 8월의 크리스마스의 ‘정원’과 오늘의 장내 ‘상은’이가 닮아있다고 생각해 쓰게 되었습니다.
엔딩 크래딧에 나오는 ‘그곳’ 이라는 곡을 직접 작사하셨어요.
건방진 생각일 수 있는데, 저는 영화 음악이 들어가지 않고 이야기의 힘만으로도 관객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 음악을 아예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음악 감독님을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 엔딩곡만큼은 이 영화를 대변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작사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관통할 수 있는 가사를 며칠 동안 고민해서 보내드렸어요. 음악 감독님이 마음에 드셨는지 제 가사를 보고 5분 만에 데모를 보내주셨어요. (웃음) 남자 보컬의 목소리를 얹으니, 마치 상은이가 부르는 것 같더라고요.
등장인물이 상영, 상일, 상이, 상삼까지 있는데 왜 상은이만 ‘상은’일까요?
‘상은’이라는 이름은 제 영화에서 항상 나오는 이름이에요. 매번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은’이라는 캐릭터는 항상 등장하죠. 저만의 재미입니다. 상은이라는 이름을 먼저 정하고 나머지는 돌림자를 생각해서 이름을 지었어요. 상영, 상일, 상이, 상삼 친구들과 달리 상은은 조금 사람다웠으면 하는..? (웃음) 나머지 사촌들과 다른 캐릭터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상은’이라는 이름은 감독님의 이스터에그인거네요. (웃음) 그러면 마지막으로 짐프 관객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발리 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도 좋은 평을 많이 들었는데, 이번 제천에서 상영하며 한국 관객들은 어떤 반응일까 해서 긴장이 많이 되었어요. 너무 많은 분이 재밌게 봤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만약 이 영화를 보신다면 런닝 타임이 길지 않아 즐겁게 보실 수 있다고 확신해요. 제천 영화제에서 미처 못 보신 분들은 다른 영화제에서도 상영이 된다면 꼭 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죽음을 다룬 영화이지만 역설적으로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영화,’ 오늘의 장내’. 비 오는 날 제천에서 관람하면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덤으로 얻어갈 수 있다. 은근한 웃음과 파도치는 감동, 영화를 아름답게 매듭짓는 음악 ‘그곳’까지.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이제 막을 내리지만 ‘오늘의 장내’가 주는 감동은 계속될 것이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시은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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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보다 별로라고? / 여전히 기발한 연출의 병맛 영화 / 웹툰 암살요원 준 시즌 2 / 권상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히트맨 2"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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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기에 있다 - 좋은 재료로 끓인 라면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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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4월 12일 개봉하는 작품
[나는 여기에 있다]의 개봉전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과거, 살인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칼에 폐를 찔린 후 장기 이식을 통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형사 ‘선두’(조한선)
수사 일선에 복귀한 그는 연쇄 살인범 ‘규종’(정진운)을 쫓던 중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아승’(노수산나)을 통해
‘규종’이 자신과 같은 공여자의 장기를 이식받은 것은 물론,
공여자가 과거 자신이 검거했던 살인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피 끓는 형사 VS 폭주하는 살인자
지독한 운명에 얽힌 두 남자의 극한 추격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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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허슬> 공식 티저 예고편
운이 다한 농구 스카우트(애덤 샌들러)가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엄청난 실력에 험난한 과거를 가진 선수를 외국에서 우연히 발견한다. 결국 그는 팀의 허락도 받지 않고 독단으로 이 천재 선수를 미국에 데려가는데. 두 사람은 난관을 무릅쓰고 NBA에서 성공할 자질을 갖췄음을 입증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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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킹덤: 아신전> 티저 예고편
[2021년 7월 23일, 넷플릭스 공개]
비극과 배신이 삶을 덮친다. 기이하고 불길한 뭔가를 발견한다.
한순간에 가족과 동족을 잃은 여인.
오직 복수를 꿈꾸며 살아온 그녀가 짙은 어둠을 마주한다.
≪킹덤≫의 스페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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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로의 여정 속에서 찾는 '나'라는 존재
과거로의 여정 속에서 찾는 '나'라는 존재
영화의 제목 "이다(Ida)"는 안나의 본명이다. 안나는 서원식 전에 자신에게 혈육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유일한 혈육인 이모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모에게 두 가지 사실을 듣게 된다. 자신의 실제 이름이 "이다(Ida)"라는 것과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 이모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이다. 쌀쌀맞은 이모의 태도와 그녀가 전하는 정보에 혼란스러우면서도 자신의 부모에 대해 알고 싶어진 안나는 이모와 함께 그 흔적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이 영화는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을 취한다. "이다"라는 한 이름의 제목이 주는 강렬한 인상과는 다르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 이다(안나)와 완다 두 명이라 할 수 있다. 안나는 부모에 대해 알아가며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진실들을 하나씩 마주한다. 그러나 안나가 부모에 대한 진실에 점점 다가갈수록 완다는 잊고 싶던 과거의 기억을 점차 떠올리며 그것에 잠식되어간다. 두 사람의 동행은 안나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임과 동시에 그녀의 이모 완다가 자신의 과거 기억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과정이다.
수녀원의 제한적인 정보와 환경 속에서 격리되다시피 살아오던 안나에게 바깥세상은 신기하기만 하다. 안나는 바깥세상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호기심을 가진다. 수녀원 측의 배려로 서원식을 앞두고 직접 완다를 찾아가지만 이모 완다는 그녀를 쌀쌀맞고 퉁명스럽게 대한다. 이모는 안나가 유대인이라는 것과 그녀의 실제 이름과 부모의 이름, 그리고 사진 한 장을 주고는 그녀를 수녀원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첫 만남부터 비밀로 싸여있던 완다는 안나가 수녀원에서 그녀에 대해 아무 정보도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알자 안나에 대한 경계를 늦춘다. 판사인 완다는 법정 재판 중에 생각이 잠기더니 이다를 데리러 버스터미널로 가고, 이때부터 그녀의 태도는 상반되게 온화해진다. 이다를 보고 마주하기 힘들던 과거를 떠올려서일 수도,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들에 대한 죄책감이나 후회 때문일 수도, 혹은 온전히 이다에게 뿌리를 알려주기 위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계기가 어떻든 간에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다시 만나 서로의 과거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안나 가족의 죽음은 1941년 독일의 폴란드 점령 당시 폴란드 민간인들이 유대인 수백여 명을 죽였던 예드바브네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추측해보건대 안나의 부모와 함께 죽은 어린 남자아이는 아마도 그녀의 아들일 것이다. 과거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죽은 가족들의 유골을 마주한다. 완다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스탈린 정부 하의 폴란드 공산당원이 되어 살아남았고, 안나는 갓난아이라 유대인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들 가족을 죽인 남자는 무덤을 판 구멍에 앉아 죄의식을 보이긴 하지만 끝까지 이들에게 사과를 하지는 않는다. 자신들을 더이상 괴롭히지 않고 집에서 계속 살게 되는 조건으로 유골이 묻힌 곳을 알려주는 거래를 했을 뿐이다. 완다는 아들의 유골을 소중히 끌어안는다. 그녀는 자신이 판사로서의 권력을 휘두르며 저질렀던 과거의 행보를 되돌아보면서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고, 결국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반면 이다의 선택은 어떠한가. 이 영화의 엔딩씬을 그녀의 선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엔딩씬은 무척 독특하다. 내내 정적이던 카메라는 엔딩씬에서 급작스럽게 흔들린다. 감독은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는 이다의 모습을 핸드헬드로 잡는다. 핸드헬드 자체가 특별한 연출기법은 아니다. 다만 앞선 모든 장면에서 감독이 유지해오던 연출 방식과는 상반되게 끝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엔딩씬은 특별해진다. <이다>는 여백을 통해 스토리텔링하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점은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연출 특징이기도 하다. 차기작 <콜드 워>에서도 이어지는 1.33:1의 풀 프레임 화면비와 흑백의 이미지, 헤드룸을 많이 남기며 전통적인 미장센을 깨는 과감한 시도까지 그의 영화는 형식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크고, 그는 형식을 통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화면의 중심이 아닌 사이드에 위치하고 카메라는 여백이 많이 보이도록 대상을 비춘다. 그럼으로써 영화 속 인물들은 어딘가 위태롭고 불안해 보인다. 마치 세상의 구석으로 내몰린 느낌까지도 든다. 이 점을 <이다>에서 <콜드 워>까지 이어지는 그의 영화 속 시대 배경과 연결 지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와 운명이 반기지 않는 가운데, 세상으로부터 내쳐지는 인물들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다시 엔딩씬으로 돌아와서, 내내 무표정하던 그녀의 표정이지만 그 순간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 의지의 분위기가 엔딩씬 전체를, 관객을 압도시킨다. 안나는 어쩌면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제대로 찾게 된 건지 모르겠다. 아니, 그 길을 비로소 시작하는 건지도. 지금까지 살아온 '안나'로서의 삶을 계속 살아가든, 새롭게 알게 된 '이다'로서의 삶을 살아가든 중요한 것은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가와 같은 사소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어딘가로 묵묵히 걸어 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그녀의 결연한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제 어떤 선택을 하든 그녀의 선택은 오로지 그녀의 의지와 발길에 달렸다. 이다는 자신의 길을 계속해서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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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이라는 노동의 세계
#디올 #오트쿠튀르 #라프시몬스
먼저 자기반성? 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패션에 관심이 있었지만 패션에 탐닉할 정도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란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은 가져야 하지만 그 정도가 명품에 대한 탐닉으로 이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해온 사람이었다. 그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사람을 천박한 허영심의 노예로 바라보게 된다고 믿어왔다. 결국 나는 명품 브랜드라는 존재에 대해서 하나쯤은 갖고 싶지만 사람의 허영을 자극하기도 하는 것으로 폄하하면서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디올 앤 아이,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명품 브랜드에 관한 상반된 감정 중에서 전자, 브랜드에 대한 동경 때문에 내면 속 허영심을 자극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낯선 인물이 등장한다. 라프 시몬스. 패알못은 주섬주섬 핸드폰을 들어 라프 시몬스를 검색한다. 오호, 질 샌더 디자이너였군. 그럼 질 샌더는 무슨 브랜드이지? 패션에 대해서는 정말 1도 모른다는 사실을 통감한 채 검색을 포기하고, 영화를 계속 본다. 보다보니 이 영화, 잘 골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 오트쿠튀르의 정신
Ready to wear, 남자 기성복만을 만들어온 라프 시몬스에게 디올 오뜨꾸뛰르는 정말 큰 도전이었다. Haute Couture, 고급 맞춤복을 만드는 컬렉션을 기성복을 만드는 과정과 결코 같을 수가 없다. 귀족, 부르주아 상류층을 위해 존재해왔던 오뜨꾸뛰르가 산업 혁명을 거쳐 일반인들을 위한 패션, 즉, 대량생산이 가능한 패션인 기성복 라인과는 옷을 만드는 목적과 방식이 다른 것이 당연하다. 라프 시몬스의 작업 방식은 영화 초반까지도 "For only one"을 위한 의상이 아니라 "For every people"이었기 때문에 수석 디자이너가 고객 때문에 파리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로 날아가는 상황을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의 개인에게 특별함을 부여해주는 오뜨꾸뛰르의 정신은 돈을 많이 써주는 고객에게 올인할 수 밖에 없는, 예술성을 추구하지만 수익을 포기할 수는 없는 아이러니를 포함하고 있다. 한 고객이 쓰는 어마어마한 돈에는 오뜨꾸뛰르가 제공하는 익스클루시브, 특별한 대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특별한 대우 속에는 '당신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오뜨꾸뛰르의 예술성을 누리기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일반인들을 왕따시키는 개념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인식 속에서 라프 시몬스가 해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2. 오뜨꾸뛰르의 원동력
영화 속에 등장하는 디올 하우스의 수많은 직원들은 진정 예술가로 인정받을 만하다. 모든 컬렉션을 총괄하고, 구상하는 역할은 라프 시몬스가 담당했지만 라프 시몬스가 구상한 옷을 물리적으로 표현해주는 사람들은 디올 하우스의 수많은 재봉사들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들이 2D의 그림을 3D의 현실로 구사해내는 과정을 보면, 신의 손은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컬렉션이 끝나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디자이너에게 쏠리게 되지만 실제적인 노고는 그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의문점이 들었던 것이, 그들은 자신만의 디자인을 표현해내고 싶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디올의 오뜨꾸뛰르 작품들은 라프 시몬스만의 디자인이 아니라 디올 하우스의 모든 직원들이 감성이 표현된 작품이라는 알게 된 이후부터는 그 궁금증이 사라지게 된다. 작업 과정 중에서 개개인의 감각이 녹아있는 옷 하나하나에 애정을 갖고 일하기 때문에 디올 하우스가 유지되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디올 하우스의 직원들이 디올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모습은 정말 존경할 만하다.
3. 크리스찬 디올과 라프 시몬스
이 영화 속에서 나레이션으로 크리스찬 디올의 자서전의 대목들은 라프 시몬스의 상황과 묘하게 일치한다. 하나의 컬렉션을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 총괄자로서 직원들을 채찍질해야 하는 라프 시몬스의 상황이 아주 오래전 크리스찬 디올이 느꼈던 감정과 일치하곤 한다. 이런 감정은 이 둘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모든 창작자들의 감정과도 동일시될 것이다. 크리스찬 디올은 자신의 "샴 쌍둥이"라고 표현한 내면적 자아와 사회적으로 드러나 있는 자아로 자신의 자아를 분리시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영화 속 라프 시몬스의 언론에 노출되기를 꺼려하는 내면적인 자아와 디올이라는 브랜드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교계 인사로 남아야만 하는 상황을 대비시키다 보면 이 상황은 결국 예술가들이 맞이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일반인들도 이런 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얼핏 보면 크리스찬 디올과 라프 시몬스 둘 만이 비슷한 고뇌를 공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내 진짜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우리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좀 더 특별한 직업을 가진 것일 뿐.
하지만 비싼 가방을 드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듯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이용한 마케팅의 노예가 되는 것은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명품 브랜드는 비싸다는 이유로 종교처럼 신봉하는 사람들이나 비싸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사람들 모두 하나의 옷을 만드는 데에 드는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느껴보라고 권유하는 의미에서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명품에는 사실 크게 관심없고, 저렴하고, 알뜰한 쇼핑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사실 이 영화 안 봐도 될 것 같다. 눈 호강하겠다는 의미로 본다면 또 모르겠는데, 눈 호강은 사실 막판 10분 정도가 전부라서 크게 재밌는 영화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샤넬, 디올, 루이비통 같은 명품 브랜드의 컬렉션이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은 마케팅을 탓해야지 디자이너를 비롯한 아뜰리에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그들만의 예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의 컬렉션 작품을 볼 때,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보듯 해석해보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듣는 예술, 보는 예술, 먹는 예술을 넘어 입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작품을 입는다는 생각을 하면, 하나의 옷을 만들기 위해서 드는 인건비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오뜨 꾸뛰르 아뜰리에에서 요구하는 비싼 가격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는 늘 생각해요. 디올 하우스에서 디자이너들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아뜰리에라고. 디올 하우스의 모든 보배가 모든 소중한 뿌리가 아뜰리에에 남아있죠. 40년 또는 44년 동안 여기서 일하신 재봉사들도 계십니다. 함께 어울리고 서로 소통하고 그렇게 풍요로워지는 거죠."
디올 앤 아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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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길은 에테르로 통한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나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끌어들이는 것은 너무나 피상적인 접근일까. 아닌 게 아니라,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는 두 영화를 은근히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있다. 우선 영화의 초반부, 유이치의 부모님이 보는 TV 뉴스에는 청소년들이 버스를 납치한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유레카>를 떠올리는 일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공교롭게도 <유레카>와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사이에 니시테츠 고속버스 탈취 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의 범인은 이지메로부터 비롯된 정신질환을 앓던 17세 청소년이다). 다음, 유이치가 호시노를 죽이는 장면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 샤오쓰가 밍을 죽이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물론 그것을 찍은 방식은 에드워드 양의 방식과는 정반대이지만 살인이 일어나는 맥락과 상황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꽤 유사하다. 사실 에드워드 양은 <릴리 슈슈의 모든 것>과 정말로 관련이 있는 감독이다. 에드워드 양이 1990년대에 관금붕과 함께 기획했던 ‘Y2K 프로젝트’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유레카>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떠올리는 것이 마냥 억지는 아닌 셈이다.
<유레카>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시대적 맥락 위에서 존립하는 영화들이다. <유레카>라는 영화가 놓인, 그리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배경으로 삼은 시대의 서사를 무시한다면 두 영화는 반쪽짜리다. 왜냐하면 두 영화에서 인물들의 서사는 그것이 놓인 시대의 서사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힘을 원동력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영화에서 서사적 힘의 방향은 시대에서 개인으로의 방향이다. <유레카>는 명백한 포스트 사린 테러 영화로서 초반부 버스 납치 사건 이후 생존자들의 삶을 다루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시대적, 정치적 카오스가 개인의 삶 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과정을 다룬다. 두 영화 속에서 언젠가 개인의 서사가 시대의 서사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에도 그 순환의 시작은 시대의 서사다. 개인의 일탈 행위가 시대의 어두움을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어떠한가? 개인과 시대의 서사라는 관점에서 이 영화는 <유레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계보 아래에 있는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그런 것에는 일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시대성과 거리를 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목적이 거기에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가 시대적 서사에 관심이 있었다면 초반 버스 납치 사건을 더 비중 있는 서브플롯으로 다뤘을 것이다. 혹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하나의 사회실험과 같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릴리 슈슈’라는 가상의 가수와 그 게시판 홈페이지를 만들고, 게시판의 글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한 뒤 그 소설을 원작 삼아 영화를 제작하였다는 유명한 제작 비화는 영화 속에 반영될 여지가 많았다. 이를테면 릴리 슈슈의 콘서트 시퀀스는 유이치와 호시노가 겪는 온라인 세계와 오프라인 공간 사이의 괴리를 사회적 문제로 확장할 수 있었던 장면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일본의 오타쿠 문화를 비판하거나 사회적 문제로서의 이지메를 조명하는 장면으로, 더 나아가서는 그 둘을 이으며 개인과 시대 간 비극의 순환을 묻는 장면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실제로 유이치가 스크린 속의 릴리 슈슈를 가만히 바라보는 장면, 릴리의 등장을 외친 이후 모인 수많은 인파 속에서 호시노를 죽이는 장면은 관객에 따라서 당시 일본 사회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도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와이 슌지는 그 장면 이전에도, 이후에도 시대적 서사에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언급한 장면에서 시대적 서사에 대한 함의가 느껴지는 것은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와이 슌지가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에테르’다. 좋게 말하면 어떻게 하면 에테르를 영화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인지, 나쁘게 말하면 어떻게 하면 영화적 겉멋을 에테르라는 단어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다. 어느 쪽이든 이 영화는 완전히 개인적인 영화다. 일단 그 전제에 동의하면 이 영화가 개인적인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을 윤리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다. 또 이 영화의 스타일에 대해 겉멋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개인적으로 이 비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자연광이나 풀밭을 담은 몇몇 장면과 릴리 슈슈의 음악이 경탄스러운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에테르의 비가시성을 인상주의 음악의 대표격인 드뷔시와 연결짓는 시도는 너무나도 얄팍하다). 그러나 그 비판을 받아들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 형식이 적어도 일관되게 나쁘다는 점이다. 이와이 슌지가 상정한 전제 아래서 고통의 근원을 시대적인 것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핑계대는 것이다. 왕가위와 비교하자면 둘은 스타일리쉬함을 공유하지만 시대적일수록 좋았던 왕가위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개인적일수록 좋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유레카>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끌어들이는 것은 피상적인 접근은 아닐지라도 조금은 현학적인 접근일 수도 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그 일관된 개인성이 더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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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중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탄생
우리는 매일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현재를 살면서 과거에 대한 생각도 떠올리지만 미래의 모습도 떠올린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며 현재 아직 벌어지지 않은 무수한 가능성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그 이미지 안에는 긍정적인 모습도 있고, 부정적인 모습도 있다. 그런 단편적인 미래에 대한 이미지들은 계속 머릿속에 수시로 떠오르며 미래로 걸어가는 길에 영향을 준다. 그렇게 무수한 생각을 하다 보면 그 이미지들은 무의식에 묻히고 때론 꿈의 형태로 형상화된다,
그 무의식, 깊은 곳에 저장된 미래의 모습은 조금씩 현실이 되어 간다. 실제로 자신이 꿈꾸던 미래의 모습과는 다를 수도 있고 또 같은 방향으로 실현될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자신의 생각 속에서 미래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고 해도 그것이 현재 실현이 되기까지는 그저 상상 속의 미래일 뿐이다. 사실 상상 속의 미래가 실현되기 전까지는 미래로 한 발짝 나아가기까지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한다. 미래의 모습이 현재가 되었을 때, 안도감을 느끼지만 한 편으로는 다시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여전히 존재한다.
미래에 대한 환영을 보고 고뇌하는 폴과 그 가문의 이야기, <듄>
영화 <듄>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고뇌하는 폴(티모시 샬라메)과 그가 속한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이야기를 담는다. 1960년대 후반에 프랭크 허버트가 출간한 소설 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듄>은 폴과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방대한 서사의 시작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영화의 초반은 폴이 꾸는 꿈으로 시작한다. 누군가의 독백으로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조금 난해한 부분이 있지만 그 이후의 전개를 보고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그 배경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폴은 매일 밤 꿈을 꾼다. 미래의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죽는 모습이나 누군가와 싸우는 모습이 계속 그를 괴롭힌다. 그의 어머니인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는 특별한 목소리로 상대방을 조정할 수 있는 베네 게세리트라는 조직의 사람이다. 그가 가진 능력은 아들인 폴에게까지 유전되어 전달되었고, 그것이 아직 완전히 발현되지는 않았지만 폴은 그 능력을 쓰는 방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가 꾸는 꿈은 어쩌면 제시카에게 물려받은 능력 때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환영은 베네 게세리트의 누구도 보지 못하는 것으로 그만이 보는 환영이다.
폴의 아버지인 레토 아트레이드(오스카 아이작)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잘 이끌면서 좋은 리더로서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우주 황제의 명에 잘 따르면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힘을 키워가고 있다. 그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하코넨 가문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어느 날 황제의 명령으로 하코넨이 통치하고 있던 아라키스라는 행성을 관리하게 된다. 우주여행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질인 스파이스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지역 특성상 광물로 인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요한 물질 스파이스 채집도 레토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된다. 대부분이 사막으로 이루어진 척박한 행성에 살고 있는 원주민 프레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황제의 명을 제대로 따라야 하는 레토의 임무는 꽤 어렵게만 느껴진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몰락과 그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폴
이번 <듄>에서 집중하는 건, 몰락해가는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그 상황을 견디며 앞으로 향하는 폴의 모습이다. 그가 보는 환영이나 꿈은 미래에 그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보는 이미지들이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폴이 환영을 볼 때 그의 모습은 두려움 속에 있다. 환영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고 특히 스파이스가 많은 지역에서 더욱 심해지는 환영을 폴은 극도로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영화 속에서 폴은 아라키스의 원주민들인 프레멘들에게 리산 알가입이라는 메시아로 인식된다. 하지만 프레멘 쪽 인물인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나 카인즈 박사(샤론 던컨-브루스터) 같은 인물들의 반응이나 말을 통해서 관객들은 프레멘들 사이에서도 폴이 진정한 메시아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폴 자신도 그가 메시아 같은 대단한 존재일 거라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즉 모든 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은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폴이 가진 능력은 대단하지 않아 보인다. 개인 전투 능력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군인인 거니(조슈 브롤린)나 던컨(제이슨 모모아)에 비해 떨어지고 상대방을 조정하는 목소리는 레이디 제시카에 비해서 떨어진다. 또한 정치적인 역량도 아버지인 레토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아직 폴은 어리다. 그래서 그가 가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데, 바꿔 말하면 그는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실패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영화 <듄>에서 중요한 건, 바로 폴이 가진 가능성이다.
폴이 가진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보면 별 볼 일 없어 보인다. 그가 보는 환영과 꿈에서도 그는 대단한 능력을 보지 않는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자신이 종교전쟁을 지휘하는 지도자로 등장하는 등, 부정적인 모습들이 꽤 포함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하코넨 남작(스텔란 스카스가드)의 공격을 받고 완전히 몰락의 길을 간다. 충분히 부정적인 방향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폴은 자신을 돕는 사람들과 함께 한 줄기 빛이 있는 희망을 찾기 위한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미지와 상황들이 겹쳐지지만 폴은 자신이 가는 길을 명확히 인지하고 자신 만의 결정을 해나간다.
두려움을 헤치고 미래로 한 발씩 걸어가는 폴
영화 중간중간 폴이 보았던 미래에 대한 환영과 이미지는 영화 후반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것도 있고 알고 있던 이미지와 다르게 이루어진 것도 있다. 결국 아무리 자신에게 미래의 환영들이 보였다고 하더라도 그 이미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영화는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이후의 모든 여정과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폴 스스로 경험하면서 결정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후반 등장하는 프레맨 챠니(젠다야 콜먼)는 폴의 환영 속의 존재이자 현재를 같이 만들어가야 할 운명의 동반자다. 이번 1편에서의 비중은 많지 않지만 영화의 후속 편이 이어진다면 꽤 중요한 캐릭터로 그려질 가능성이 크다.
영화에 등장하는 리더 레토의 모습은 굉장히 위엄 있고 결단력을 보이는 등 좋은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를 보좌하고 있는 던컨이나 거니가 보여주는 모습 속에서는 그들이 가진 리더에 대한 충성이 깊이 느껴진다. 이렇게 단단하고 신뢰로 가득한 조직이 다른 집단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은 스펙터클한 영상에 담겨 있지만 무자비한 공격으로 인한 상실감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좋은 아버지 이기도 한 레토의 최후 모습은 폴이 가지게 될 짐을 관객에게 전달하며 추후 이어질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복수를 기대하게 만든다. 또한 폴의 성장과 함께 그가 걸어가게 될 메시아로서의 길도 궁금하게 한다.
스파이스라는 귀중한 광물이 가득한 아라키스는 척박한 땅이다. 그곳의 원주민인 프레맨들은 원래 그들이 살던 땅을 외부 존재에게 착취당하는 집단이 되고 만다. 마치 아프리카가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화되었던 것처럼 외부 존재에 의해 그들의 땅의 귀중한 것을 빼앗기고 이용당한다. 그 땅에 묻힌 광물들을 현지인들을 이용해 캐나가고, 그것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망령을 이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 새롭게 들어가게된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최대한 그들을 존중하며 새롭게 관계를 형성하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더 깊숙이 감추고 만다.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메시아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통합으로 갈 수 있게 만드는 존재이겠지만 그들 앞에 아직 그 존재는 등장하지 않았다.
영화 <듄>은 원작 소설 1권의 반 정도를 화면으로 옮겼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원작을 영상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은 급하지 않게 천천히 하고 깊은 이야기를 다 풀어낸다. 무엇보다 아이맥스로 촬영된 화면과 한스 짐머가 만들어낸 웅장한 음악은 이 스페이스 오페라에 경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또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이야기 안으로 완전히 빠져들게 만든다. 거대한 우주함선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그리고 그 모래 속을 기어 다니는 거대한 모래 벌레는 그것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영상과 사운드가 좋은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다면 가능하면 좋은 시설의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꼭 극장에서 관람해야 할 장중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탄생
영화에서 폴 역을 연기하는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가 가장 눈에 띈다. 가문의 대를 이을 후계자이지만 아직 다 성숙하지 않은 그는 자신과 가문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 고뇌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여리여리한 몸이지만 점점 날카로워지는 폴은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로 더욱 실감 나게 담겼다. 이 영화가 가지게 된 신비하고 압도적인 감정은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또한 레토를 연기한 오스카 아이작, 레이디 제시카를 연기한 레베카 퍼거슨을 비롯하여 조쉬 브롤린, 제이슨 모모아, 하비에르 바르뎀, 스텔란 스카스가드 등의 여러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도 이 영화에 강력한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영화 <듄>의 흥행이 완전한 실패가 아니라면 현재 계획된 것과 같이 무난히 속편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한 편에 <듄>이 가진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황제의 음모, 베네 게세리트의 활동, 아라키스와 폴의 모습 등 아직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향후에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듄>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앞으로 만들어질 아라키스에서의 다음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게 될 것 같다. 훌륭하게 만들어진 이 스페이스 오페라의 후속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관객들은 기꺼이 아라키스의 한복판으로 몸을 던질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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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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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QrUTKIa-PJ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