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몽실2021-12-22 12:39:29
약점이 아니야. 사랑이야.
영화 시사회 리뷰 <노웨어 스페셜>
<노웨어 스페셜>
개봉 2021.12.29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96분
감독 우베르토 파졸리니
출연 제임스 노튼, 다니엘 라몬트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마지막이 아닌, 시작을 선물하는 법
창문 청소부인 존(제임스 노튼)은 시한부이다. 존은 4살짜리 자기 아들인 마이클(다니엘 라몬트)이 혼자 남지 않게 가정위탁을 하고자 한다. 시한부 아빠와 홀로 남겨질 아들의 이야기. 줄거리만 보고는 영화를 보는 동안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 휴지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영화는 ‘너네 울어. 울어야 해’ 하지 않았다. 덤덤히 죽음과 남은 빈자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화 속에서 그 누구도 죽음이 두려워 오열하며 울지 않았고 제발 죽지 말라고 사정하는 장면도 없었다. 영화는 이미 수많은 울분과 체념을 반복했을 존의 초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고조되는 감정 없이 차분히 흘러간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이별을 준비하는 두 부자의 모습은 몇 번이나 울컥하게 했다.
마이클은 34살 아빠의 생일에 35번째 초를 건넨다. 컵에 주스를 따르지도 못할 만큼 쇠약해진 아빠에게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기도 한다. 입양이 뭔지, 죽음이 뭔지 모르지만 어쩌면 마이클은 다 직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내뱉는 짧은 말들이 다 뭉클했다. 특히 입양을 신청한 여자에게 “아줌마는 언제 죽어요?” 묻던 장면이 그랬다.
죽음은 한순간이지만 남은 빈자리는 평생 채워지지 않는다. 존이 어린 시절, 엄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 울었던 때를 고백했다. 그는 그게 자신의 약점이라 말했다. 자신처럼 가정위탁 가정에서 자라게 될 마이클은 죽음이 뭔지 모르고, 자신도 기억하지 못한 채 그저 다정한 가정에서 자라길 바란다. 하지만 고백을 들은 동네 할머니는 그건 약점이 아니라 사랑이라 말한다. 엄마를 향한 사랑.
남편을 떠나보낸 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얼마 전에야 남편의 칫솔을 버렸다는 할머니는 '죽었지만 그들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어. 우리 주위에 있어.' 라고 존에게 말해줬다. 할머니의 말에 존은 마이클에게 사랑을 남겨주고 싶어졌다.
존은 나중에 마이클이 자신을 기억할 수 있게 '기억상자'를 만든다. 그리고 마이클에게 자신의 죽음을 설명한다.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거란다. 네 주변의 공기 속에서, 널 따듯하게 감싸는 햇살 속에서"
"빗물에도?"
"그래, 널 적시는 빗속에도."
이른 아침, 아빠의 손을 붙잡고 씩씩하게 앞서 걸어가던 마이클이 멈춘 곳은 입양을 신청한 한 여자의 집이었다. 아이는 떼쓰지도 울지도 않았다. 이것이 아빠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줄 아는 듯 아이는 아빠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앞서 난 <부러움>이라는 글을 적었다. 존의 어린 시절처럼 나 역시 따듯한 가족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났다. 나도 이것이 나의 약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해줬다. 내가 흘린 눈물은 부러움과 나약함이 아니라 나에게도 있었던 그때의 가족을 사랑해서였다. 특히 '마지막이 아닌 시작을 선물하는 법' 은 영화를 완벽하게 설명한 문구라고 생각한다. 끝과 마지막만 떠오르는 시한부 이야기에 시작과 선물이라는 역설은 가슴 아픈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짓게하고 행복을 떠올리게 해줬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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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걸음 더 앞으로! 로드 무비 5선
어느덧 2024년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 여는데 ‘여행’만큼 적절한 것이 없죠.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내딜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로드 무비를 함께 보고 싶어 준비했습니다.
그럼 같이 떠나볼까요!
줄거리
‘라이프’ 잡지사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월터 미티.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상상’을 통해 특별한 순간을 꿈꾸는 그에게 폐간을 앞둔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찾아오는 미션이 생긴다.
평생 국내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월터는 문제의 사진을 찾아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등을 넘나들며 평소 자신의 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어드벤처를 시작한다.
누구보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월터, 그 누구도 겪은 적 없는 특별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줄거리
대학 강사인 가장 리차드(그렉 키니어)는 본인의 절대무패 9단계 이론을 팔려고 엄청나게 시도하고 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이런 남편을 경멸하는 엄마 쉐릴(토니 콜레트)은 이주째 닭날개 튀김을 저녁으로 내놓고 있어 할아버지의 화를 사고 있다.
헤로인 복용으로 최근에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앨런 아킨)는 15살 손자에게 섹스가 무조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전투 조종사가 될 때까지 가족과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아들 드웨인(폴 다노)은 9개월째 자신의 의사를 노트에 적어 전달한다. 이 콩가루 집안에 얹혀살게 된 외삼촌 프랭크(스티브 카렐)는 게이 애인한테 차인 후에 자살을 기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방금 퇴원한 프로스트 석학이다. 마지막으로 7살짜리 막내딸 올리브(애비게일 브레슬린)는 또래 아이보다 통통한(?) 몸매지만 유난히 미인대회에 집착하며 분주하다.
그러던 어느 날, 올리브에게 캘리포니아 주에서 열리는 쟁쟁한 어린이 미인 대회인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 출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리고 딸아이의 소원을 위해 온 가족이 낡은 고물 버스를 타고 1박2일 동안의 무모한 여행 길에 오르게 된다. 좁은 버스 안에서 후버 가족의 비밀과 갈등은 점점 더 커져만 가는데...
할아버지와 올리브가 열심히 준비한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의 마지막 무대는 가족 모두를 그들이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과연 후버 가족에겐 무슨 일이 생긴 것 일까?
줄거리
매일 같이 불행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만나는 런던의 정신과 의사 ‘헥터’, 과연 진정한 행복이란 뭘까 궁금해진 그는 모든 걸 제쳐두고 훌쩍 행복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돈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상하이의 은행가,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아프리카의 마약 밀매상,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난 말기암 환자, 그리고 가슴 속에 간직해둔 LA의 첫사랑까지 ‘헥터’는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을 통해 그는 리스트를 완성해 나간다.
설레고 흥겹고 즐거운 그리고 때로는 위험천만하기까지 한 여행의 순간들, 진정한 행복의 비밀을 찾아 떠난 정신과 의사의 버라이어티한 어드벤처가 시작된다!
줄거리
“때로는 초라한 진실보다 환상적인 거짓이 더 나을 수도 있단다. 더구나 그것이 사랑에 의한 것이라면!”
운명을 보는 마녀, 집채만 한 거인, 시간이 멈춘 유령마을까지… 믿을 수 없는 모험으로 가득한 에드워드 블룸의 이야기. 당신도 믿나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고향을 찾은 윌.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다 큰 아들에게 허풍 가득한 무용담을 늘어놓는 아버지. 그의 레퍼토리는 언제나 기상천외한 모험과 단 하나의 로맨스로 이어진다.
이제, 믿기 힘든 이야기 속에 가려진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는데…
줄거리
가난한 삶, 폭력적인 아빠,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했던 유년 시절을 지나 엄마와 함께 행복한 인생을 맞이하려는 찰나, 유일한 삶의 희망이자 온몸을 다해 의지했던 엄마가 갑작스럽게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엄마의 죽음 이후 인생을 포기한 셰릴 스트레이드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파괴해가고…
그녀는 지난날의 슬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수 천 킬로미터의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의 공간 PCT를 걷기로 결심한다. 엄마가 자랑스러워했던 딸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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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최고의 영화 TOP10
베니티 페어(Vanity Fair)는 미국의 연예정보 월간지로, 지난 2020년 1월 봉준호 감독이 커버를 장식하며 화제를 모은 잡지인데요. 1995년 이후, 세계적인 포토그래퍼인 애니 리버비츠 작가가 찍은 할리우드 스타들을 커버로 쓰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 잡지입니다.
베니티 페어에선 매년 말, '올해 최고의 영화 TOP10'을 발표해왔는데요. 해외 유력 매체인 만큼, 이 리스트는 오스카 시상과 비슷한 결을 보이기도 합니다. 일례로 2020년도 리스트에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과연, 올해는 어떤 작품들이 선정되었으며, 국내에는 언제 소개될 수 있을지 함께 확인해볼까요?
잇츠 CINE PICK!!
10. <베르히만 아일랜드> (Bergman Island)
멜로/로맨스 | 프랑스, 스웨덴, 벨기에, 독일 | 105분
감독 : 미아 한센-러브 | 출연 : 비키 크립스, 미아 와시코브스카, 팀 로스
? IMDb 6.7/10 ? Tomatometer 86%
? 제74회 칸 영화제(2021) 황금종려상 경쟁후보작
개봉 : 2022.01 예정
어떤 여름. 전설적인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이 거주하면서 수많은 걸작을 만들었던 스웨덴의 작은 섬 파뢰에 한 미국인 커플이 도착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감독인 크리스와 토니는 여름휴가 동안 이 평화로운 섬에서 각자 새 시나리오를 집필할 계획이다.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팬들에 따르면 <결혼의 풍경>(1973)의 영향으로 실제 많은 부부가 이혼을 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촬영지인 파뢰섬에서 부부가 함게 창작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야생의 풍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크리스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관객의 눈앞에 생생하게 재현되고, 현실과 허구의 인물이 뒤섞이면서 영화는 또 다른 차원으로 도약한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9. <그린 나이트> (The Green Knight)
모험, 드라마, 판타지 | 아일랜드, 캐나다, 미국, 영국 | 130분
감독 : 데이빗 로워리 | 출연 : 데브 파텔, 알리시아 비칸데르, 조엘 에저튼
? IMDb 6.6/10 ? Tomatometer 89%
? 2021년 한국 평론가 투표 1위
개봉 : 2021.08.05 (한국)
"녹색 기사의 목을 잘라 명예를 지켜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타난 녹색 기사,
"가장 용맹한 자, 나의 목을 내리치면 명예와 재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1년 후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똑같이 자신의 도끼날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고
마침내 1년후, 5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전설이 될 새로운 모험, 너의 목에 명예를 걸어라!
8. <매스> (Mass)
드라마 | 미국| 111분
감독 : 프란 크랜즈 | 출연 : 제이슨 아이삭스, 앤 도드, 마샤 플림튼, 리드 버니
? IMDb 8/10 ? Tomatometer 95%
?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2021) 플래시 포워드상 수상
총격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부모와 사건 가해자의 부모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만나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 그리고 화해까지, 그들의 짧지만 강렬한 대화를 통해 비극적인 과거를 가슴 아프게 그려낸 이 작품은 미국 배우 출신 프란 크랜즈의 데뷔작이다.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충격적인 주제와 배우들의 환상적인 연기로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특히 피해자와 가해자의 부모들을 연기한 네 배우 모두 아카데미 배우상 후보감으로 손색이 없다 할 정도로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든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올해의 화제작.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7. <더 휴먼스> (The Humans)
드라마 | 미국| 108분
감독 : 스티븐 카람 | 출연 : 스티븐 연, 비니 펠드스타인, 에이미 슈머
? IMDb 6.2/10 ? Tomatometer 92%
? 토니상 4관왕의 연극을 각색한 작품, A24 신작
전쟁 전, 맨하탄 시내의 복층 주택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영화는 블레이크 가족이 추수감사절을 기념하기 위해 모이는 저녁의 과정을 따라간다. 무너진 건물 바깥에 어둠이 내리자, 밤새 신비로운 것들이 부딪치기 시작하고 가족의 긴장감은 고조된다.
6. <수베니어 파트 II> The Souvenir Part II
드라마, 멜로/로맨스 | 영국| 107분
감독 : 조안나 호그 | 출연 : 오너 바이언, 로버트 패틴슨, 찰리 히턴, 틸다 스윈튼
? IMDb 7.8/10 ? Tomatometer 94%
? 영국 독립영화상 3관왕 수상, 칸영화제 감독주간 초청
불투명하기만 했던 앤소니와의 관계에서 헤어나지 못한 줄리는 그를 잊기 위해 다시 학교 프로젝트에 매진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경험했던 앤소니와의 과거를 토대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지만, 그 둘의 범상치 않았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스텝과 배우들 때문에 난항을 겪기 시작한다. 전작 <수베니어: 파트 I>이 앤소니와 줄리와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후속작인 <수베니어: 파트 II>에선 줄리의 험난한 제작과정에 비중을 둔다.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했던 한 젊은 여성의 삶을 솔직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전작 <수베니어: 파트 I>에 못지않은 찬사를 받았다. 줄리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틸다 스윈튼을 비롯해 모든 캐스트의 환상적인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5. <나의 집은 어디인가> (Flee)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가족 | 덴마크,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 90분
감독 :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 출연 : 라시드 아이투가노프, 베로즈 비그델리
? IMDb 8.2/10 ? Tomatometer 98%
?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심사위원대상
감독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은 10대 중반 아프간 난민 출신의 아민을 처음 만났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친구의 탈출 뒤에 숨겨진 진실을 듣고, 그가 고향을 떠나 덴마크에 홀로 정착하기까지의 여정을 아름다운 애니메이션과 아카이브 영상으로 재구성했다. 영화는 주인공이 자신과 가족을 부인하는 인고의 세월을 지나, 마침내 스스로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그린다. 특히 아민이 처음으로 클럽에 들어서는 순간은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커밍 홈' 장면이 될 것이다. 아리 폴만의 <바시르와 왈츠를>(2008)을 기억하고 있다면, 영화가 지닌 힐링의 힘을 믿고 싶다면, 혹은 그저 누군가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경험이 있었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수작이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박가언 프로그래머]
4. <컴온 컴온> (C'mon C'mon)
드라마 | 미국 | 108분
감독 : 마이크 밀스 | 출연 : 호아킨 피닉스, 가비 호프먼, 우디 노만
? IMDb 8.1/10 ? Tomatometer 96%
? 2021년 에너가카메리마쥬 시상식 2관왕. A24 신작
개봉 : 2022년 봄 예정
주인공의 여동생이 자신의 아들을 돌봐달라고 하자, 라디오 기자인 그는 그의 활기찬 조카에게 로스앤젤레스와는 다른 삶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대륙횡단 여행에 나선다.
3. <파워 오브 도그> (The Power of the Dog)
드라마, 멜로/로맨스, 서스펜스, 미스터리 | 영국,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 126분
감독 : 제인 캠피온 |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커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
? IMDb 7/10 ? Tomatometer 96%
? 아카데미 수상 제인 캠피언 신작, 넷플릭스 작품
개봉 : 2021.11.17 (한국)
1925년 미국 몬타나, 거대한 목장을 운영하는 필은 막대한 재력은 물론 위압적이고 묘한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공포와 경외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어느 날 그의 동생 조지가 로즈와 그의 아들을 가족으로 맞이하고, 동생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분노한 필은 로즈의 아들을 볼모로 삼아 그녀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2. <드라이브 마이 카> (Drive My Car)
드라마 | 일본 | 179분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 출연 :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코, 오카다 마사키, 박유림
? IMDb 7.9/10 ? Tomatometer 100%
? 제74회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
개봉 : 2021.12.23 (한국)
누가 봐도 아름다운 부부 가후쿠와 오토.
우연히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가후쿠는 이유는 묻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2년 후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되어 작품의 연출을 하게 된 가후쿠.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를 만나게 된다. 말없이 묵묵히 가후쿠의 차를 운전하는 미사키와 오래된 습관인 아내가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며 대사를 연습하는 가후쿠. 조용한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가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눈 덮인 홋카이도에서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서로의 슬픔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1.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멜로/로맨스 | 노르웨이,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 | 128분
감독 : 요아킴 트리에 | 출연 : 르나트 라인제브, 앤더스 다니엘슨 라이
? IMDb 8.1/10 ? Tomatometer 100%
? 제74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내일 모레면 서른이 되는 줄리는 옷을 갈아입듯이 직업과 애인을 바꾼다. 의학을 공부하는 모범생이었지만 '몸보다는 마음을 치료하고 싶어'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공부보다는 예술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아' 사진 찍기를 시작하고, 연애의 고충에 대해 쓴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얻자 이제는 작가에 도전해 볼까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줄리는 점점 초조해지고 임박한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중반 즈음, 세상이 멈춘 가운데 줄리 혼자서 오슬로의 길거리를 누비는 장면이 있다. 어른으로서의 책임감과 삶의 무게를 벗어 던진 그녀는 환하게 웃음 지으며 행복을 만끽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어른아이,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세상의 모든 줄리들을 위한 영화는 신예 레나테 라인스베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겼다.[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박가언 프로그래머]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되어 화제를 모은 작품들이 더러 보이네요.부디, 2022년엔 위 작품들을 볼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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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2023)
*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2023)
감독: 페이턴 리드
출연: 폴 러드, 에반젤린 릴리, 조나단 메이저스, 캐서린 뉴튼, 마이클 더글라스, 미셸 파이퍼
장르: SF, 액션
상영시간: 124분
개봉일: 2023.02.17
MCU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제외하고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페이즈4를 뒤로 하고, 어느덧 다섯 번째 페이즈에 돌입했다. 그 시작점은 어벤져스 멤버들 중 존재감이나 파워 면에서는 가장 약한 축에 속하지만 내용상의 전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해 왔던 <앤트맨> 시리즈가 이어받았다. <앤트맨>의 세 번째 시리즈인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는 '앤트맨'이라는 타이틀이 가진 인지도나 파급력에 비해서는 꽤나 막중한 임무를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페이즈5를 넘어 페이즈6까지 메인 빌런의 포지션을 소화할 '정복자 캉'의 첫 선을 보이는 무대임과 동시에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토르: 러브 앤 썬더>,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까지 굵직한 작품들이 연달아 혹평을 받은 상황에서 페이즈5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야 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앤트맨' 시리즈는 본디 가족영화적인 측면이 강했고, 다른 마블 솔로 무비들과 비교했을 때 광활한 우주 공간을 작중 배경으로 활용한다거나 강력한 히어로나 빌런들이 등장하는 스토리와도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캐릭터들의 상황과 세계관의 흐름이 급변했고, 멀티버스의 개념이 도입된 이상 '앤트맨'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를 끌고 나갈 수만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는 배경을 현실이 아닌 양자영역으로 옮겼고, 스토리의 95% 이상을 할애하였기 때문에 '앤트맨'만의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맛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MCU 작품에 제대로 등장한 건 처음인 양자영역이 문명과 생명체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그려져 신비로운 영상미와 독특한 외형의 캐릭터들로 시선을 끌었고, 비주얼 면에서도 스케일이 커지고 훨씬 화려해졌다. 하지만, 표현만 '양자영역'을 빌려 왔을 뿐 마블이 상상력을 통해 구현한 이 시공간은 <스타워즈>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등장할 법한 또다른 행성 정도로 비춰져서 시각 효과나 미술이 참신하고 압도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세기말 미국 가족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답답하게 구는 인물들,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초인적인 힘도 발휘할 수 있다는 끈끈한 가족애, 위기의 순간마다 구원해줄 누군가가 등장한다는 극적인 전개까지. 전형적이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조의 스토리이고, 캐릭터들의 입을 빌려 양자영역을 비롯한 과학 용어들이나 뒤죽박죽이 된 시간 개념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제아무리 MCU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할지라도 본작을 받아들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역시 '앤트맨'이 주인공이 되어 그의 서사를 주도적으로 풀어낸다기 보다는 새로운 빌런 '정복자 캉'의 데뷔전이라는 명목에 무게중심이 실리면서 마블은 또 한 번 페이즈4의 문제점을 답습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MCU 작품들이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이유 중 하나는 각 시리즈마다 주인공이 이끄는 굵직하고 독립적인 서사가 존재한다기 보다는 새로운 히어로나 빌런, 혹은 배경이나 세계관의 설정을 투입시키는데 인기 있는 히어로를 이용하는 모양새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앤트맨' 역시 이러한 흐름을 피할 수 없었는데, 갑자기 양자영역으로 빨려들어가게 된 '앤트맨'의 가족들이 '정복자 캉'에 대항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앤트맨'의 서사보다는 빌런을 소개하는데 좀 더 비중을 둔 결과물이 탄생했다.
이로 인해 가장 피해를 입은 인물은 '와스프(에반젤린 릴리)'인데, 과거 감독은 '와스프'는 '앤트맨'의 사이드킥으로서 존재하는 캐릭터가 결코 아니며 '앤트맨' 시리즈는 '앤트맨'과 '와스프'가 공동 주역이 되어 함께 이끌어가는 작품이라 언급한 바가 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는 타이틀에 이름이 들어간 주연이라는 게 무색하게 '와스프'의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심지어 '정복자 캉'과의 악연을 가진 '재닛 밴 다인(미셸 파이퍼)'과 비교하더라도 분량과 임팩트 면에서 모두 부진했다. 딸 '케이트'를 향한 '스콧 랭(폴 러드)'의 부성애가 강력한 주제의식으로 작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와스프'에게는 존재감을 발휘할 만한 신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실상 작품의 진주인공 포지션을 차지해버린 '정복자 캉(조나단 메이저스)'은 제역할을 다했을까. MCU는 본작에 '정복자 캉'이 등장할 것을 예고하면서 누구보다 위험하고, 강력한 빌런임을 암시했다. 이는 예비 관객의 기대감을 높일 수 있는 장치이기도 했지만, 어벤져스 내에서도 약자로 그려졌던 '앤트맨'이 그 대단한 빌런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긴다는 점에서 일종의 모순 같은 마케팅이었다. 애초에 다른 어벤져스 동료들도 없는 상황에 있는 '앤트맨'이 수많은 시공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어벤져스를 죽였다는 '정복자 캉'에 단독으로 대항한다는 것은 힘의 균형이 맞지 않은 싸움일테니.
'정복자 캉'의 카리스마나 위압감은 '조나단 메이저스'의 연기력으로 어느 정도 충족이 되었지만, 관객을 설득시킬만한 위력이나 무시무시함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특히 개미 군단과 'M.O.D.O.K'에 의해 리타이어 되는 결말은 그의 초라함만 부각시킬 뿐이다. 물론 그가 가진 위험적 요소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재닛'으로 인해 양자영역 탈출에 실패한 그가 몇 년만에 문명을 건설하고 잔혹한 통치자가 되어 군림하고 있었다는 것은 고작 한 사람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방증하는 장치들이다. 이는 스토리를 세세하게 짚어봐야 체감이 되는 부분이고, 기본적으로 전투신이나 지략적인 측면이 캐릭터들이 가진 힘의 크기를 가르는 통상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에 '정복자 캉'을 허술하게 연출했다는 비판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유머 타율도 빈약했고, 화려한 영상미도 이전 마블 시리즈들을 압도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정복자 캉'의 묘사나 '앤트맨'과 그 가족의 서사 모두 특색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 역시 페이즈4부터 지속되었던 혹평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앤트맨' 시리즈만의 가족적인 메시지를 꾸준히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관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와중에도 최대한 시리즈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한 노력이 엿보이기는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쿠키 영상을 통해 엄청난 떡밥을 투척하여 기대감을 높임으로써 골수팬들의 마음을 잡는데는 일부 성공했다고 본다. (두 번째 쿠키영상이 가장 재밌었다.)
두 번째 쿠키영상과 달리 첫 번째 쿠키영상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복자 캉'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 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장면이기는 했지만, 앞으로 그들로 인해 벌어질 사건들과 복잡할대로 복잡해진 이야기의 향방을 생각하면 머리가 절로 띵해진다. 특히 마지막을 장식한 수많은 '캉'들의 존재는...이제는 징그럽게 느껴질 정도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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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저는 단순히 영화는 영화, 내 삶은 내 삶이 아니라, 내 삶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크리에이터 '선이정'님 인터뷰
방자까님에 이어 오랜 시간 씨네랩과 함께 해온 크리에이터 선이정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세상 곳곳의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 애쓰는 선이정님의 일과 영화 그리고 글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볼까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네, 저는 씨네랩에서 ‘선이정’이라는 크리에이터명으로 글을 쓰고 있고, 본업은 NGO에서 해외 사업을 합니다. 시민분들께서 후원해주신 후원금으로 아프리카에 식수를 전달하거나, 학교를 짓거나, 여자아이들에게 생리대를 전달하는 등의 일이에요.
그동안 계속 궁금했었는데 크리에이터명을 ‘선이정’으로 짓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제 이름이 ‘선’으로 끝나요. 그래서 예전에 인도에 살 때 사람들이 저를 ‘Sunny’라고 불렀거든요. 그때 미국인 한 분이 잠깐 오셨었는데, 한글을 배우는 분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제 이름을 한글로 쓰면 ‘써니’라고 쓰는데, 이분은 항상 ‘선이’라고 쓰는 거예요. 그게 너무 귀여워서 사용하게 되었어요. 거기에 이제 성씨인 ‘정’을 더하면서, ‘선이정’이 된거죠.
NGO 단체에서 처음 일하게 되신 것도 인도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나요?
저는 원래 인도에 있을 때 NGO 파견 단원이었어요. 그래서 인도에서 귀국할 때 ‘NGO 일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어요. 싫었던 건 아니지만 할 만큼은 한 것 같아서 다른 일을 하려고 생각하며 한국에 왔고, 수험생활을 한 1년 정도 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하나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거예요. 제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라서, 저한테 그 친구의 존재가 너무 당연했더라고요. 저에게는 처음 겪어보는 상실이었어요.
그 일을 겪고 우울한 시기를 보냈는데, 도저히 온 힘 다해 공부할 힘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진로를 고민하다가 인도에 살 때 그곳의 아이들을 위해서 일할 때가 제일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슷한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공부를 할 때 매일 국제 뉴스를 봤거든요. 그때가 한창 시리아 내전이 심할 때라서 뉴스마다 시리아 아이들 사진이 나왔어요. 울고 있는 것도 아니고, 멍한 표정의, 아이들이 지을 수 없는 수준의 절망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이 마음에 많이 남았어요.
마음이 힘들었던 차에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진로를 정하게 됐죠.인도에서의 생활과 개인적인 경험 자연스럽게 현재의 일로 이끌었네요. 그래도 이 길을 걷고자 하신 지 꽤 시간이 지났어요. 그 사이에 다른 일을 해보고 싶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NGO 단체에서 일하게 되는 동력이 무엇인가요?
저도 일의 기쁨과 슬픔이 있기는 해요.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그래도 이 일을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다른 세상에 있는, 저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직업은 이야기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 손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또, 후원자와 후원아동,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일들도 즐거워요.
(선이정님 추천작, <목소리들>(2025))
하시는 일을 통해 경험하시는 일들이 영화의 취향이나 선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할 것 같아요.
네, 엄청이요. 저는 영화제를 처음 다니게 된 계기 자체가 인도 영화 보기 위해서 였어요. 3년을 살았기 때문인지 인도가 가끔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영화제에 가서 인도 영화를 한두 편씩 봤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리아 다큐멘터리처럼 본업과 연관된 작품도 보게 되고 하면서 영화제를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지금도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나 사람들이 잘 안 보는 영화, 그런 영화를 엄청 좋아해요. 제3세계 영화 있잖아요. 제작 국가에 국가 이름 5개 정도 들어 있는… 그런 영화 있죠? (웃음) 딱히 국가를 보고 고르는 건 아닌데 시놉시스를 읽고 고르면 국가가 그렇게 분포가 되어 있어요. (웃음) 또, 개봉 절대 안 할 것 같은 영화도 영화제에서 영화를 고르는 포인트 중 하나죠.(개봉하는 영화는 나중에 봐도 되니까요. 영화제에서는 특히 여기 아니면 절대 못 보겠다 싶은 영화들이 있죠.)
네, 특히 영화제때 보면 난민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영화가 많잖아요.
이것도 일종의 자해라고 느껴질 때도 있어요. (웃음) 왜냐하면 다큐는 특히나 푸티지 자체가 정제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보기 힘들기도 하고, 폭력 상황은 배경도 비슷하게 보이거든요. 미얀마나 홍콩이나… 흔들리고, 최루탄 터지고 이러면 비슷한 장면들을 계속 보다 보면 멀미도 나고 힘들거든요. 그래도 약간 의리를 지키는 느낌으로 보러 가죠.그렇게 일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 영화를 좋아하다 보면 피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일을 하다가 힘들어지는 부분을 오히려 영화를 보면서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동기부여를 얻기도,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 거죠.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있잖아요. 그 말에서 저는 희망을 얻어요.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외로울 때가 있거든요. 요즘 누가 후원해? 아프리카 아동이 중요해? 자기 삶이 중요하지! 그런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릴 때가 있어요.영화는 안 그렇죠. 각자도생을 주장하는 영화는 보통 별로 없잖아요. ‘영화’라는 매체 자체도 협업을 통해 완성되고, 영화에서 전하는 메시지도 대부분은 희망을 말하고 싶어하죠. 그렇게 영화 사이에 담긴 희망을 발견하면서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힘을 내게 돼요.
관련해서 영화를 보고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소셜 모임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처음에는 영화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기존에 있는 활성화된 일반 영화 사교 모임을 나가기엔 에너지가 없고,
진짜 조예가 깊은 영화인들 모임에 나가기엔 그곳에서 제가 할 말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갈 수 있는 영화 모임은 어디일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영화 얘기는 뭘까’ 고민 했죠.
몇 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시리아에서 탈출하여 난민이 되기 전까지의 과정들을 이야기로 담은 <전장의 피아니스트>(2022)라는 영화를 본 생각이 났어요.
그 영화를 보고 나와서 혼자 있는데, 너무너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영화가 개봉하고 동종업계 친구들 데려가서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눴죠.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영화를 매개로 소셜 이슈를 이야기하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어요.
근데 모든 영화가 난민 같은 이슈를 주제로 하고 있지는 않잖아요. 그런 얘기만 하다 보면 한계가 있어서, 현재는 넓은 범위의 소셜 이슈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플랜 75>(2024)를 보고 나서 ‘우리는 과연 불안 없이 노년이 된 우리를 상상할 수 있는가?’, ‘이런 법안이 시행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런 얘기를 함께 나누죠,하나의 영화를 보더라도, 함께하는 사람들 각자의 해결하고 싶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니까 전 방향으로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혼자였다면 생각하지 못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그럼 소셜 모임의 처음과 지금, 선이정님에게 변화를 가져온 것들이 있을까요?
저는 영화 얘기 같이 하고 싶어서 시작하긴 했지만 이 모임이 저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냥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좀 더 알게 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소셜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을 같이 하는 것. 또,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많아요.
거기에 영화가 진짜 좋은 매개체라는 걸 느끼죠. 정말 난생 처음 보는 사람끼리 이름도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데, 본인의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영화를 매개로 하다 보니 인물에, 스토리에 기대 예민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게 되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느끼게 되었어요.(선이정님 추천작, <되살아나는 목소리>(2024))
영화 질문으로 넘어가볼게요. 선이정님에게 삶의 이정표 같은 영화, 내가 흔들릴 때마다 보고 싶은 영화가 혹시 있을까요?
음, 삶의 이정표까지는 아닌데 저는 마음이 힘들 때 <아멜리에>(2001)를 봐요.
쭉 한 번에 보지도 않아요. 그냥 틀어 놓고 밥 먹으면서 오늘 여기까지 보고, 그 다음 날 청소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보고 하는 식으로 보죠.
<아멜리에>를 보면 행복해져요. 주인공도 그렇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가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거든요. 그리고 혼자 살다 보니까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지친 감각이 아멜리에가 처음에 도시에서 느끼는 외로움, 그리고 사랑을 찾아 나서는 마음과 공명이 되더라고요.
또, 색감이나 이런 것도 예쁘니까 그냥 보고 있으면 저한테는 약간 행복특효약 같아요. 어떤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틀어 놓으면 행복해지는 영화예요.그리고 제일 많이 본 영화는 <러브레터>(1995)예요.
<러브레터>는 영원히 사랑할 것 같아요. 작년에 오타루를 갔거든요. 홋카이도에서 오타루로 가는 기차에 올라 내리는 눈을 보며 OST를 듣는데, 진짜 첫사랑 만나러 가는 기분인 거예요. 진짜 첫사랑을 만나러 갈 때도 그렇게 설렌적이 없는데. (웃음) 내 첫사랑이 이 영화였구나 그 때 다시 한번 느꼈어요. (웃음)음, 영화를 볼 때 이 작품 명작인 건 알지만 나의 5점을 줄 수 있는 영화는 다르잖아요.
4.5점을 주는 영화와 5점을 주는 영화의 차이점을 만드는 기준이 있을까요?심장을 쳐야죠. 내 심장을 폭행했다. 그럼 5점이죠. 근데 그게 기준이 없어요.
그냥 얻어맞는 거예요. (웃음)((웃음) 어떤 영화에 심장을 때려 맞은 건가요.)
작년에 개봉한 <되살아나는 목소리>(2024)라는 독립 다큐가 있어요. 박수남, 박마의 감독님이라고, 모녀가 같이 만드신 작품이에요. 그걸 보고 저렇게 살고 싶다, 저렇게 혁명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최근에는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님 작품 중에 개봉 안 한 작품인데,
<천상의 육체>(2011)라는 작품이 있어요. 그게 또 제 심장을 치고 갔어요.그럼, 일반적으로 영화를 볼 때 가장 주목해서 보는 지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의외로 영화 속의 공간을 주의 깊게 보는 것 같아요.
사실 예산의 차이가 있으니까 예산이 작은 영화는 공간도 조금 어설플 수 있잖아요.
그래도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그 에너지가 저를 그 영화에 스미도록 만들면 좋다고 느껴요. 다큐 같은 경우는 공간을 고를 수 없으니까 조금 다르긴 하지만요.(제일 좋아하시는 영화 속 공간이 있을까요?)
지금 생각나는 건 <페인 앤 글로리>(2019)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워낙 원색 많이 쓰고 공간을 예쁘게 쓰잖아요.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 장면에 등장하는 공간이 따뜻해서 좋았어요. 진짜 ‘이거다!’ 싶은 공간은 지금 딱 기억이 안 나네요. (웃음)
아, 최근에 좋았던 영화는 <더 폴: 디렉터스 컷>(2024)이 생각나네요.
어렸을 때 봤을 때는 그 정서가 잔인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잔인하게 느껴졌는지 말을 못 했거든요. 장면만 놓고 보면 더 잔인한 영화들이 많은데, 나는 왜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해서요.
그런데 커서 다시 보니까 그 ‘왜’가 제 안에서 언어화가 되더라고요. 절망에 빠진 사람을 절망의 끝까지 밀어 넣는 과정이 잔인했던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에서 빠져나오려 싸우는 모습이 지금은 좋게 느껴지더라고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화죠.
저 주목하는 거 공간 아닌가 봐요. 그런 에너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웃음)
청춘 영화들도 왜, 그런 에너지 있잖아요.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그런 느낌의 에너지를 전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시작되는 영화들이요.
공간은 아닌 걸로, 그냥 허세의 답변이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공간도 좋고 에너지도 좋고 둘 다 중요한 것으로 하겠습니다.(웃음))
남들은 잘 모르지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영화도 있을까요?
아직 개봉 안 했어요. 아마 곧 개봉할 것 같은데 <호루몽>이라는 작품이에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다큐멘터리 작품인데, 자이니치로 살아가시는 분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헤이트 스피치와 싸우는 인물의 법정에서의 시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어>(2022), <카운터스>(2018) 하셨던 이일하 감독님 작품이예요.
저는 보면서 힘을 많이 얻었어요.구성적 측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결국은 그 주인공이 되는 인물을 사랑하면 그냥 사랑하게 되잖아요. 그분이 에너지가 넘치고, 또 혐오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굉장히 많은 힘을 얻게 된 영화예요.
글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처음에 영화로 긴 글의 리뷰를 쓰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단순히 좋아서 시작했어요. 제가 어떤 영화를 봤는데, 제 눈에 이런 것들이 보였다는 게 너무 좋아서 시작했죠. 제가 초반에 쓴 글은 거의 그냥 줄거리 요약이에요.
그저 신나가지고 써서 인터넷에 올려놓았는데, ‘진진’에서 개봉하는 영화 시사회를 초대해 주신거예요. 신기했죠. 그렇게 보고, 쓰고 것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쌓이고 쌓여서 여기까지 왔네요.글을 쓰다 보면은 감상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가 가끔 있죠. 요즘은 영화를 볼 때 쓰면서 보거든요.
시사회나 영화제 같은 경우에는 리뷰를 제한된 시간안에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일을 하니까 하루 종일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영화를 볼 때 꼭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노트에 필기를 하면서 보는 거죠. 그래서 감상이 잘 변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있기는 해요.
쓰다 보니 더 좋아지는, 그러니까 볼 때는 감정만 있었다면, 쓰면서 좀 더 명확해지는 때가 있어요.그런데 글로 기록하는 것의 장점은 영화를 만든 사람의 시간에 대해 내가 애정을 갖게 되는데에 있는 것 같아요. 자세히 뜯어보면서 글을 쓰다 보면 만든 사람의 의도를 알아채고, 이해하게 되는 거죠.
(선이정님 추천작, <말없는 소녀>(2022))
보니까 거의 150개의 리뷰를 올리셨어요. 꾸준함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어떻게 계속해서 지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나요?일단은 아직 좋아서 해요. 영화 보는 것도 좋고, 그걸 글로 쓰는 것도 좋아요. 게다가 씨네랩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계속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죠.
예전에는 제가 이걸 계속해도 될까 고민이 많았어요. 혼자 좋아서 하는데, 취미라기에는 들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거죠. 그쯤에 씨네랩를 만나서, 계속 새로운 기회들이 만나게 되었거든요. 이제 더이상 이걸 계속해도 될까 라는 질문은 하지 않아요.그럼, 안 써지는 글들을 쓰시는 노하우 같은 것도 있을까요?
없는데, 있으면 정말 배우고 싶네요. (웃음)
저는 만약 어떤 영화의 메시지가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면 왜 그랬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태풍 클럽>(1985)이 그런 작품이었거든요. 사람들이 이 영화에 감탄하는 이유는 알겠지만, 저에게는 너무 불편했어요. 아주 옛날 영화라서 중간에 폭력적인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저한테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이 영화가 전하는 대단함이 저는 유쾌하지 않았죠.이 감정에 대해 한참 생각을 하다가, 긍정적인 리뷰는 아니었지만 박경리 작가가 일본에 대해서 쓴 ⟪일본 산고⟫라는 책과 연결지어서 리뷰를 작성 했어요.
반대로 <서브스턴스>(2024) 같이 너무 좋은 감정에 압도되어서 정리가 안 돼서 못쓰는 경우들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도 다른 책과 연관 짓거나 해서 작성하죠.
결국 영화만으로 정리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경우에는 책과 같이 다른 인풋이 많아야 글도 잘 쓰게 되는 것 같아요.그리고 예전에 도움 많이 받은 말이 있어요. ‘정확하게 칭찬하는 글을 쓰고 싶다.’라는 신형철 평론가가 하신 말씀인데, 그 말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이 영화의 장점을 못 봐도, 이 영화의 장점이 분명히 있고, 그것들을 잘 찾아내고 싶다. 그저 단어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감정의 이유를 좀 더 정확하게 말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을 할 때 그 말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씨네랩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 주셨어요. 계속 함께해 주시는 마음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처음에는 멋 모르고 시작을 했어요. 계속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하이스트레인저 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죠. 그러면서 너무 이 영화 생태계에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영화 업계에 진짜 맑은 물 붓는 것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엔 긴장도 했죠. 그런데, 앞으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다짐하며 말씀해 주셨던 부분들, 시사회나, 영화제 프레스 같은 부분들과 같이 점점 뭐가 늘어나는 것을 눈으로 보이니까 더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그럼, 오랜 활동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두 번의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제천은 비도 많이 오고 처음 가본 곳이라 동선이나 시간을 정하는 데 미숙했다 보니 정말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요. 두 번째 제천은 정말 행복해서예요.
둘 다 다른 의미로 강렬해서 잊혀지지가 않아요. (웃음)
첫 번째 제천은 기자단 활동을 함께한 방자까님과 한동안 제천 얘기밖에 안했어요.그리고 그다음 제천에서는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이와이 슌지 감독님과 사진도 함께 찍고 해서, 제천이 강렬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때 인터뷰도 진행 하셨잖아요. 이번에 인터뷰 준비하면서 그 때 인터뷰를 진행해 주신 크리에이터분들의 대단함을 느꼈어요.
저는 직업상 종종 인터뷰를 할 때가 있어요.
현장에서 주민들이나 아동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할 때가 있는데, 사실 되게 힘들거든요.
인터뷰를 해본 적이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제가 원하는 답으로 유도하는 것처럼 될 수 있어서 질문을 잘 짜야 해요.
하지만 감독님들은 본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된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회사에서 영화 상영회 분기별로 진행해서 GV를 함께 하고 있거든요.
그것도 처음엔 정말 무서웠는데 세상에 완벽한 GV는 없다는 마음과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만 전달되게 하자고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그럼, 선이정님께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꼭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영화들이 있을까요?작년 8월에 개봉한 <이오 카피타노>(2023)라는 영화가 있어요.
사람들이 난민이 주인공인 영화를 생각하면 시리아같은 분쟁 지역을 생각하는데, <이오 카피타노>의 주인공 에드는 세네갈에서 왔어요. 거기에도 많은 문제가 있지만 분쟁이나 어떤 특정한 사건이 있는 곳은 아닌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세네갈을 나와서 유럽까지 가는 여정을 담았어요.이 영화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진짜 난민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세상에 내가 모르는 현실이 이렇게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영화예요. 국제개발협력 업계에 있는 제게도 너무 낯선 현실이었어요. ‘리비아 불법구금’이라고 흔히들 얘기하는 걸 들어만 봤거든요. 그냥 불법 구금 하나 보다 했는데, 그 불법 구금이 얼마나 끔찍한 형태인지를 이 영화로 처음 본 거죠.
그리고 또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2022)인데요. 누구나 어떤 상황에 처해 목소리를 내게 되는 일이 삶에 찾아올 수 있잖아요. 그들을 지켜줄 보호 장치가 없을 때 정말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죠. 그 상황에서 너무 아름다운 저항을 하는 영화였어요. 게다가 영화에서 보여준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통해 고민하게 만드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와 같은 영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이런 영화 리뷰를 쓰실 때 리뷰를 봐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쓰시기도 할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영화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영화의 숨어 있는 의미를 잘 찾는 사람도 아니예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영화가 촉발한 감정을 적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이 이제 제 일과 관련된 영화일 때는 그것에 대한 설명을 좀 더 서술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설령 본인이 이 영화에 대해 느낀 감정이 아니더라도, 제 글에서 묻어나는 감정을 읽고 ‘그래 이런 감정도 느낄 수 있지.’하고 공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업에 관련된 영화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친절하게 정리된다고 느꼈으면 좋겠고요.
예를 들어 <신성한 나무의 씨앗(2024) 리뷰 같은 경우에는 제가 이란의 상황을 같이 정리해서 올렸거든요. 이런 내용이 영화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인지 그것을 나누려는 마음은 또 어떤 마음인지 들어보면서 오늘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제가 살면서 겪어볼 수 있는 일의 총합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어떤 경우에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못할 때가 있잖아요. 힘든 일을 겪으면 힘들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 힘듦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이 보여지는 지 상상할 수 없죠.
영화는 살아본 적이 없는 삶을 간접적으로 상상하게 하고, 살게 하면서 내 안에 나도 몰랐던 나를 끄집어내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좀 더 풍성해지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힘이 더 좋아지는 거죠.
저는 단순히 영화는 영화, 내 삶은 내 삶이 아니라, 내 삶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이 저에게 있어 영화의 가장 큰 의미인 것 같아요.
사람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을 살피는 선이정님의 따듯함을 느끼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영화를 사랑하는 한 명으로서 큰 힘을 얻은 시간이었습니다.세상을 연결하고자 하는 선이정님의 마음이 더 많은 분들에게 닿아 세상에 필요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선이정님이 추천하는 '몰랐던 세상을 알게 만들어주는 영화' 3편!
🎬 <목소리들> / 지혜원 감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책을 아시나요? 그 책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입니다. 모든 분쟁과 재난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를 먼저 칩니다. 약자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취약한 자리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다시 말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기에 분쟁과 재난 앞에 더 민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주 4.3사건은 분쟁/재난이라기보다는 국가폭력사건이지만, 약자의 얼굴이 더 쉽게 지워진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김군> 볼 때도 느낀 건데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사건이라고 해서 상처도 과거의 문장이 된 건 아니라는 걸... 이 영화에서 덜덜 떠시는 한 분의 모습 앞에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 <되살아나는 목소리> / 박수남, 박마의 감독
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특히 이런 어마어마한 분의 다큐멘터리는 마음을 쉽게 떠나지 않아요. 기억은 기록이 되고, 기록은 또 다시 기억이 되고, 그 사이 감상과 해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박수남 감독님의 탁월한 기억과 기록을 보며 “저런 삶이 가능하구나! 너무 멋지다!” 하고 무릎을 쳤어요. 이 영화를 스무 살에 보았다면 아마 다짜고짜 일본에 가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무릎을 꿇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록하는 삶이 얼마나 힘있는지, 제게 그 경계를 폭발적으로 열어준 영화입니다.
🎬 <말없는 소녀> / 콤 베어리드 감독
클레어 키건 소설 <맡겨진 소녀>를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 원작 소설과 각색 영화가 결이 너무 일정해서 경이롭습니다. 클레어 키건을 좋아하신다면 꼭! 추천드려요.
제게 이 영화가 인상깊었던 이유는,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돌봄의 객체일 뿐 아니라 돌봄의 주체가 되기도 해야 하는구나 느껴서예요. 우리는 흔히 돌봄 받지 못하는 아동들을 생각하고, 의무감이나 선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기 쉽습니다. 그러나 돌봄은 받는 사람 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요즘 세상에 너무 쉬이 잊힌 마음이지만, 제가 일할 때마다 생각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나는 행복하였네라!“ (시 <행복>, 유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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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로봇이라고 꼭 인간이 되고 싶은 건 아니야
- SF 장르의 매력에 빠진 건 김초엽 작가의 소설 덕분이었습니다.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을 읽고, 근미래에 펼쳐질지도 모를 세상을 미리 엿보는 묘한 기분을 느꼈죠. 오직 과학적 상상력만이 써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 그전엔 몰랐습니다.그런데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마침 요즘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SF 장르라는 겁니다. 9일간의 영화제 일정 중 굳이 개막식 참석을 선택한 것도 이 작품을 전주 돔의 웅장한 대형 스크린으로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아니나 다를까, 저는 <애프터 양>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습니다.애프터 양After Yang<애프터 양>은 안드로이드 ‘양’과 함께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백인 남성, 흑인 여성, 동양인 아이, 그리고 동양인의 얼굴을 한 테크노 사피엔스로 구성된, 사회가 ‘정상성’을 부여하는 가족의 형태와는 거리가 먼 4인 가족이죠. 극 중에서는 ‘양’을 안드로이드 대신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부르기에, 앞으로는 저도 그를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지칭하겠습니다.‘다름’에서 시작한 이 가족은 ‘평범’을 추구하는 여느 가족보다 대단하고 멋집니다. 입양한 아이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도록 아시아계 테크노 사피엔스를 데려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양’이 작동을 멈춥니다. 원작(단편소설 <Saying Goodbye to Yang>)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실 이 작품의 더 정확한 줄거리는 ‘테크노 사피엔스 ‘양’과 이별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 ⊙‘양’을 고치려고 동분서주하던 아빠 ‘제이크’는 ‘양’이 다른 테크노 사피엔스와 달리 기억 저장 장치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테크노 사피엔스 전문가는 ‘제이크’에게 ‘양’의 기억을 확인한 다음, 연구 가치가 있는 ‘양’과 그의 기억을 넘겨달라고 부탁하죠. 판독기를 통해 ‘양’의 사적인 기억을 살피던 ‘제이크’는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딸 ‘미카’는 아빠에게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제이크’는 “Just a documentary.”라고 답하는데요. 맞습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양’의 시선에서 기록(document)된 일상일 뿐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차량의 블랙박스와도 같죠. 그럼 도대체 무엇이 ‘제이크’를 혼란스럽게 한 걸까요?그것은 바로 로봇답지 않은 ‘양’의 모습 때문입니다. 그의 기억 장치에는 마치 인간의 추억과 같은 것들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연인처럼 보이는 한 여인, 인상적인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옷, 그 여인과 함께 들었던 노래 같은 것들이었죠. ‘인간이 아닌 존재’인 테크노 사피엔스가 인간처럼 기억하고, 행동하고, 심지어는 사랑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말해 ‘양’의 인간다움이 그를 혼란스럽게 한 겁니다. ‘제이크’는 고민합니다. ‘양’은 인간이 되고 싶었던 걸까?⊙ ⊙ ⊙영화는 이 지점에서 관객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과연 ‘인간이 아닌 존재’는 모두 인간이 되고 싶어 할까? 정체성에 관한 물음은 이렇게 등장합니다.저는 그동안 깨닫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로봇의 이야기, 그런 로봇을 안쓰러워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었는지요. 인간과 로봇을 각각 다수자와 소수자에 빗대어 생각해보니,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성애자가 성소수자에게 “이성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슬프지?”라고 묻거나,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나처럼 살고 싶지?”라고 묻는 것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선을 넘는 질문이니까요.물론 ‘양’은 때때로 인간의 삶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양’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행복한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따뜻한 교감을 나누고, 입양 아동인 동생 ‘미카’의 뿌리를 찾아주기 위해 고민하며, 무가 있어야 유가 존재한다(There’s no something without nothing)는 꽤나 분명한 가치관까지 갖고 있죠. 그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고 물으면, ‘양’은 그저 이렇게 답합니다. “아마도 그렇게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닐까요?”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사회도 소수자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저 애초에 프로그래밍된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말이에요.⊙ ⊙ ⊙로봇과 인간으로 ‘다름’을 이야기하는 <애프터 양> 덕분에 인간 중심적 사고, 다수 중심적 사고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양’을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들을 호모 사피엔스와 같이 또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바라본 것이죠.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관객들은 아름답고 시적이며 따뜻한 SF 영화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집행부가 이 작품을 개막작으로 선정하는 데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은 이유를 너무나도 명백히 알 수 있었던 작품, <애프터 양>이었습니다.Summary진보한 기술이 일상에 스며든 가까운 미래, 제이크 가족 소유의 안드로이드 ‘양’은 아시아계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 입양한 딸 ‘미카’의 보호자 역할은 물론 그녀의 문화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형제인 셈이다. 어느 날 ‘양’이 갑작스레 작동을 멈춘다. ‘양’을 고치기 위해 여러 곳을 오가던 ‘제이크’는 양에게 기억을 저장하는 특별한 기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양’의 기억 데이터를 탐험하기 시작한 ‘제이크’는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안드로이드 ‘양’의 사적인 시간들을 발견하기 시작하는데…. ‘양’은 과연 인간이 되고 싶어 한 걸까? (출처: 전주국제영화제)Cast감독: 코고나다출연: 저스틴 H. 민, 콜린 패럴, 조디 터너스미스, 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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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교환의 무명 배우생활을 그대로 투영한 영화 : 왜 독립감독은 DVD를 주지 않는가?
영화리뷰에 앞서 스포를 주의해주세요!
영화를 만들다 변해버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명배우는 기환은 자신이 출연한 독립영화들의 CD를 구하러 다니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많은 영화했던 사람들을 만난다. 그는 아마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 여정을 시작했지 싶다. 하지만 그에게 세상은 냉혹했다. 그가 만난 독립감독들은 모두 변해있었다. 밤낮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는 자신에게 있어 숨이라고 했던 선배는 그에게 치약을 파느라 숨도 쉬지 못하고 홍보성의 말들을 늘어놓았고, 영화에 열정을 가지고 팀워크를 자랑하던 삼형제 감독은 어느새 한명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자 "다 각자의 같잖은 사연이 있었겠지 형은 진짜 사연이 있잖아" 라며 친구는 위로의 마디를 던졌다. 그렇게 다시 CD를 찾아 나서지만 각자의 사연으로 이미 모두 변해있는 독립감독들. 아직 영화판에 남아있는 기환이 보상받은 것은 각자의 추억과 노력이 담긴 CD들 뿐이었다. CD가방을 지하철에 잠시 잊어버린 기환. 다시 지하철에 돌아가지만 가방은 이미 쓰레기로 가득차 있었다. 아무도 그의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았고, 그는 그저 무명의 배우일 뿐인 것이었다.
느낀 점 : 정말 재미있지만 웃을 수 없는 작품. '웃프다'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같다. 학생으로써 나의 진로를 고민하게 하는 영화여서 좋았고, 다큰 어른의 입장으로 볼 때도 자신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 것 같은 영화라서 잘 만들었다고 느꼈다. 또한 거의 완전히 옆으로 기울여 찍은 샷이나, 좌우대칭을 맞게 한 샷 등을 이용해서 재미있는 볼거리를 주었고, 분위기를 너무 슬프지도, 너무 익사이팅 하지도 않게 적당한 무게감을 갖추었다. 구교환 감독만의 톤앤매너도 눈에 띄었다. 삭막한 세상에서 홀로 희망을 가지는 듯한 노란색CD가방이나, 과거와 현재를 섞어 보여주는 연출기법이 눈에 띄어 좋았다. 또한 이 영화는 누가봐도 배우 구교환이 자신의 삶을 투영해서 보여주는 배우 주인공의 영화라고 느꼈는데 그만큼 진정성 있는 이야기,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영화가 깊은 감성을 가지게 할 수 있었다고 보였다. 지금은 인기 드라마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과거에 비해서) 얻은 그는 이 영화를 어떻게 회상하고 있을 지 궁금했다. 제목또한 알맞았다. 왜 독립감독은 DVD를 주지 않을까? 생각하게 하며 여운을 남긴다.
파노라마_에디터 OREHF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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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의 반전의 반전이 살아 있는 19금 스릴러 / 기생충 같은 집? / 생각보다 높은 수위 / 한 명만 다 나옴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히든페이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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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강의 잠들어 있던 킬러 본능을 깨운자는 누구인가...! 짜릿한 액션 쾌감으로 7월 관객 취향을 저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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