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1-12-20 00:18:18
믿기지 않지만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 돈 룩 업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듣지 않으면 진실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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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발견은 위기의 발견이 됩니다.
지구에 큰 위기가 닥쳤고 그것을 처음 알아챈 과학자들은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명문대의 과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선거에 지장이 갈까 걱정하기 바쁜 정부를 뒤로하고 세상에 알려보지만 정치와 자극적인 이미지로 뒤덮인 세상은 실체적 진실이 눈 앞에 있는데도 '돈 룩 업'이라고 외칠 뿐이었죠.
그렇게 묻혀버린 진실은 눈깜짝할새없이 현실로 다가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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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을 넘는 우리의 행동력은 소수에서 다수로 옮겨가기까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눈 앞의 이미지와 쇼의 즐거움만을 쫓고 지도자는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그런 세상이 영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여서 더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아마 다른 지구가 있다고 해도 여기서 생존한 인간들이 있는 한 같은 세상이지 않을까요.
적어도 우린 '룩 업' 했으면 좋겠네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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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7] 물회와 함께 펼쳐지는 남녀의 느와르- 낙원의 밤
신세계, 마녀의 박훈정 감독이 신작 낙원의 밤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엄태구와 전여빈, 차승원 배우와 함께 돌아왔는데요.
극장 개봉을 하지 않고 넷플릭스에서 단독 공개가 되었어요.
박훈정 감독의 신작을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았을텐데, 영화는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엄태구 배우나 전여빈 배우의 연기는 좋은데, 이야기를 보면서 관객들에게 주인공들의 감정들이 잘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고 중얼거리는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 불편했어요.
느와르 장르의 색깔은 들어가 있지만 일단 어색하게 만나서 연대의 끈이 생기는 남녀의 드라마가 중점적으로 이어집니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평은 영상을 참고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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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작은 아씨들]리뷰/해석:페미니즘을 넘어서는 고전해석
#작은아씨들#페미니즘#그레타거윅 감독 그레타거윅이 소설 작은아씨들을 정말 좋아한다고 합니다.
수차례 읽었다고 해요. 원작에 대한 뛰어난 이해력을 바탕으로 좋은 연출이 빚은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성하고 나니 새벽 4시네요... 수강신청에 한 과목을 날려버려서...
다시 해야하기도 하고 공부하는 시험도 있어서 바쁜 이유로 14일 오후에 코멘트 댓글을 달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고싶은 말은 많았는데 영상에서 축약된 말이 굉장히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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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가필드 더 무비> 티저 예고편
존재 자체가 커여운 가필드?? 집 나갔다 냥고생한 사연은?! 티저 예고편 보고 [가필드 더 무비] 5월 극장에서 직접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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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루엘라> 화려한 반격 영상
처음부터 난 알았어. 내가 특별하단 걸
그게 불편한 인간들도 있겠지만 모두의 비위를 맞출 수는 없잖아?
그러다 보니 결국, 학교를 계속 다닐 수가 없었지
우여곡절 런던에 오게 된 나, 에스텔라는 재스퍼와 호레이스를 운명처럼 만났고
나의 뛰어난 패션 감각을 이용해 완벽한 변장과 빠른 손놀림으로 런던 거리를 싹쓸이 했어
도둑질이 지겹게 느껴질 때쯤, 꿈에 그리던 리버티 백화점에 낙하산(?)으로 들어가게 됐어
거리를 떠돌았지만 패션을 향한 나의 열정만큼은 언제나 진심이었거든
근데 이게 뭐야, 옷에는 손도 못 대보고 하루 종일 바닥 청소라니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 런던 패션계를 꽉 쥐고 있는 남작 부인이 나타났어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난 남작 부인의 브랜드 디자이너로 들어가게 되었지
꿈을 이룰 것 같았던 순간도 잠시, 세상에 남작 부인이 ‘그런 사람’이었을 줄이야…
그래서 난 내가 누군지 보여주기로 했어
잘가, 에스텔라
난 이제 크루엘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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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평의 여정이 수직적인 세상에 가져올 변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거센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소영(이지은)'은 부산의 한 교회 베이비 박스 앞에 아기 '우성'을 내려놓고 떠난다. 때마침 베이비 박스 당직을 서던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소영이 남긴 쪽지에 아기의 이름이나 연락처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아기를 몰래 데려간다. 그러나 다음 날 빚에 시달리며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이 불법 입양 브로커로서 길을 나서려는 찰나에, 예상치 못하게 엄마 소영이 아기를 되찾기 위해 돌아온다. 아기가 사라진 것을 안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결국 자신들이 브로커임을 고백한 상현과 동수. 이에 소영은 우성이의 양부모를 찾는 여정에 동행하기로 한다. 한편 이 일련의 과정을 빠짐없이 관찰한 형사 '수진(배두나)'은 후배 ‘이형사(이주영)'와 함께 두 브로커를 현행범으로 잡기 위해 그들의 뒤를 쫓는다.
베이비 박스는 부모의 사정상 키울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가는 장소로, 한국에서는 2009년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처음 시작된 후 현재 3곳의 종교시설에서 운영되고 있다. 사실 베이비 박스는 선한 목적과는 별개로 논란의 대상이었다. 비판하는 쪽에서는 그 존재 자체가 아이를 유기하게 만든다고 말해왔고, 긍정하는 쪽에서는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미혼 부모처럼 아이를 양육할 능력이 부족한 이들의 현실과 이에 무관심한 한국 사회의 태도가 중첩된 결과 베이비 박스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양측 모두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촬영하고 연출하여 제75회 칸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브로커>가 베이비 박스 앞에서 시작되는 것은 놀랍지 않다. 이미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들은 가족이나 소외된 이들의 삶처럼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문제들을 스크린 위로 끄집어 올리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또 그의 작품은 서늘한 현실감을 유지한 채 해당 문제들을 파고들면서도, 섣불리 비판할 대상을 정하는 대신 그 문제를 겪는 당사자들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면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경우도 많다. <브로커>도 마찬가지다. 영아 납치와 인신매매를 자행하는 브로커의 여정을 포착한 이 로드무비는 악행과 선의 사이에서 피어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수직적인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순
그 아이러니는 울진의 한 수산물 시장에서 볼 수 있다. 우성이를 사려는 한 부부를 만난 소영, 동수, 상현. 부부는 우성이의 눈매나 눈썹을 살펴보면서 못생겼다며 외모를 품평하고, 친부의 직업이나 과거사를 따진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지 본래 약속보다 낮은 가격에 할부로 우성이를 구매하겠다는 제안하는 부부. 이에 당황한 상현과 동수는 어떻게든 거래를 이어가기 위해 흥정을 해보지만, 아기를 비하한 부부에게 분노한 소영 덕분에 흥정은 이내 끝이 난다. 이 장면은 수많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수산물 시장에서 생선 대신 아기가 거래 대상인 것이나, 아기를 파는 사람이 아기의 가치를 존중해 달라고 구매자의 부도덕함을 비난하는 것이나, 브로커에게 더 나은 구매자를 찾아달라는 소영의 모습은 무엇 하나 말이 되지 않는다. 아기를 팔려고 하는 순간 이미 도덕과 윤리와는 거리가 멀어진 듯 한데, 그 안에서 또 도덕을 따지는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이처럼 악행을 저지르는데 정작 그 안에서는 선의가 느껴지는 모순은 러닝타임 동안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타난다.
이때 작중 모순은 서로 다른 세상의 논리가 충돌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직적인 세상 안에서 수평적인 관계가 부딪힌 결과다. 우선 <브로커>의 세상은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 계급 우화"인 <기생충>처럼 수직적으로 묘사되며, 영화는 꾸준히 오르고 내린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는 날에 소영은 아기를 버리기 위해 골목길을 올라가고, 수진과 이 형사는 그런 소영을 내려다본다. 보육원에서 같이 자란 친구를 만나 꿈을 이룰 수 있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헛헛한 인생 이야기를 한 동수는 보육원으로 향하는 긴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동선과 시점에 더해 인간관계도 수직적이다. 조폭들에게 5,000만 원을 빚진 상현은 일원 중 하나인 태호 앞에서 쩔쩔매고, 후반부에는 그와 담판을 짓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내려간다. 영화의 배경마저도 수직적인데, 부산답게 걸어 올라가기조차 벅찬 계단들이 잊을 법하면 등장한다.
거듭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선, 시점, 관계는 세 인물이 사회적 시스템에서 가장 아래에 있고, 밀려난 이들이라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러 상자인 베이비 박스, 네모난 봉고차와 보육원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베이비 박스가 상현, 소영, 동수 개개인의 삶이라면, 자동차는 가족을 상징하며, 보육원은 가족보다 조금 더 큰 사회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보육원 밖에는 사회라는 가장 큰 상자가 있다. 이때 가장 큰 상자로부터 작은 상자로,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어려움은 결국 베이비 박스에 아이가 들어가게 만든다. 상현은 조폭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불법 브로커로 활동한다. 보육원을 떠났지만 이렇다 할 희망을 찾지 못한 동수는 상현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밀매한다. 가족을 이룰 수 있는 형편이 아닌 소영은 아기를 베이비 박스 앞에 내려놓는다. 이렇게 영화는 수직적인 세계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사연을 베이비 박스 안에 담는다.
수평의 동행이 만든 가족
그러나 <브로커>는 아픈 사연에만 집중하지는 않는다. 지상과 지하, 계단 위와 아래 사이에 냄새조차 넘어가서는 안 될 명확한 선이 있었던 <기생충>과는 달리 <브로커>는 비극으로 치닫지 않는다. 상승과 하강의 세계가 극한으로 향하기 전에 동행이라는 이름의 수평축을 새로이 끼워넣기 때문이다. 소영이 동수에게 자신이 꾸는 꿈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 수평적 동행이 갖는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꿈속에서 비를 맞고 깨끗해지는 꿈을 꾼다는 소영은 그 꿈이 그저 꿈일 뿐이라고 자조한다. 그러자 동수는 두 명이 쓸 수 있을 만큼 큰 우산이 있으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소영이 비를 맞으며 아이를 버렸던 것을 생각하면, 고물이 되어버린 봉고차 안에서 만난 이들과의 관계가 그 비를 피할 우산이 될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봉고차를 세차하던 중 다섯 일행이 비눗물을 뒤집어쓰고, 상현과 소영이 각자 쓰던 가명 대신 본명을 털어놓으며 깨끗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수직적인 세상과 대조되는 수평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수평선이 보이는 동해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봉고차의 여정과 인천으로 향하는 KTX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동행은 수직적인 세계에서 지친 이들, 특히 가족이 부재한 이들이 봉고차 안에서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서로를 어루만지며 치유하는 과정이라서 특별하다. 성매매 여성인 소영은 상현과 동수를 만나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소속된 느낌이 무엇인지를 새로이 깨닫는다. 보육원 출신인 동수는 소영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에게 되돌아오지 않은 엄마의 심정을 이해한다. 이혼 후 딸과 별거 중인 상현은 몰래 보육원을 빠져나와 봉고차에 탄 해진에게서 딸의 모습을 본다. 이는 오르내리는 대관람차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 유독 인상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 찬가로 이어지는 봉고차
이때 영화는 유대감과 치유의 이야기를 인간 내면의 순수함과 도덕성에 대한 믿음으로 확장한다. 사실 상현과 동수, 그리고 소영은 예기치 못하게 만났고 또 좋은 일로 만난 것도 아니었다. 아기를 유기하는 소영의 행동이나 그 아기를 교회에서 맡아 기르는 대신 팔아버린 상현과 동수의 행위는 누가 뭐라 해도 범죄였다. 그러나 영화는 악행 기저에 깔린 선의들의 만남에 주목한다. 아기를 베이비 박스에 두고 떠났지만 되돌아온 소영의 모성애, 아기를 잘 키워줄 적임자를 찾아주려 했다는 상현의 배려심, 버려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동수의 동병상련은 한 데 모여 치유의 드라마를 써 내려간다. 물론 자신들의 행적을 둘러대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부분적으로나마 진심인 선의가 만나 새 가족을 만들고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이 감동은 엄마이자 딸로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기로 결심한 소영이 모두에게 전하는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대사로 함축되어 있다. 달리 말해 이 대사에는 악행을 저지른 모든 이들의 내면에도 미처 꺼내지 못했을 선함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선함 덕분에 모두의 생명이 특별하다는 인간 찬가가 담겨있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의 끝에 다다르면 모두가 최선을 선택하며, 자신들이 마주해야 했던 인생과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모든 책임을 아이 엄마에게 묻는 대신 그녀의 마지막 선택에도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인간의 선의에 대한 희망은 <브로커>만의 따스함이 감도는 영상 덕분에 더욱 특별하다. 인위적인 설정 대신 햇빛과 같은 자연의 움직임을 기다리며, 있는 그대로 포착해 찍어낸 덕분이다. 상현과 소영의 진심이 튀어나오는 KTX 안에서의 대화 장면이 밝음과 어둠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처럼 수직의 세상에 피어난 선함이라는 주제는 송강호에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이 돌아간 이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도 소시민적으로 수직적인 세상을 사는 인물이면서도 수평적 여정의 끝에서 인간의 선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인 상현은 영화에 담긴 아이러니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흔들리는 편견과 고정관념
그렇다고 해서 <브로커>가 마냥 따뜻하고, 희망적이고, 밝은 태도만 견지하는 것은 아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답게 상현, 동수, 소영을 무조건 미화하거나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 영화는 이 아이러니를 관찰자의 시점에서, 즉 수진의 시점에서 따라가도록 권한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은 수진의 세계를 보여준다. 수진이 소영을 내려다보는 구도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소외된 이들을 보는 시점으로, "버릴 거면 낳지를 말라"는 수진의 태도가 잘 반영되어 있다. 또 아기를 실은 상현의 봉고차를 수진이 조용히 쫓는 장면에서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는 것도 관찰자이기에 관객이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그녀의 관점을 강조해준다.
그리고 수진의 관점과 태도가 뚜렷하기에 브로커 일행을 쫓는 그녀의 여정에는 더욱 깊은 드라마가 담긴다. 단순한 관찰자였던 그녀가 가족이 되어가는 이들의 동행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이면을 마주하고, 자기 내면에 찾아온 혼란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녀의 냉철한 신념과 태도는 "낳고 나서 죽이는 게, 낳기 전에 죽이는 것보다 죄가 더 가볍냐"는 소영의 반박에 꺾인다. 아이를 매매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그들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편견과 제도의 공백이 그녀를 흔든다. 또 멀쩡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만 비로소 우성이가 행복할 거라는 그녀의 고정관념은 "아이를 가장 팔고 싶은 건 나였나 봐"라는 대사를 통해 고발된다.
이렇게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가 필요 없는 세상을 원한다면 이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사람의 선의를 믿으며, 미리 단정 짓지 말자고 설득한다. 정당화될 수는 없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수직과 수평의 충돌 안에 담는다. 사회 제도에 대한 의문과 통념으로 자리 잡은 윤리적 판단에 대한 의심으로 악행과 선의의 딜레마를 장식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수진과 동일한 입장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결말을 마주한 순간 긴 여운 속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곱씹으며 자신을 성찰하는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된다.
다만 영화적 뚝심과는 별개로 <브로커>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크다. 다루려는 이야기가 너무 많은 나머지 짜임새가 부족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여정, 곧 소영과 우성이/브로커인 상현과 동수/브로커를 추적하는 수진과 이 형사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사실 영화의 메시지와 주제를 고려하면 이 많은 캐릭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이는 특히 최후반부에 얽히고설키는 상현, 소영, 동수, 수진의 선택에서 그들의 심경 변화가 한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보육원 시퀀스처럼 대사가 명확히 들리지 않는 기술적인 문제도 감상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물론 이러한 단점은 이지은의 연기가 눈부시게 빛나는 것과 같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캐릭터들의 사연을 하나로 묶는 접점도 소영이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것도 소영이기 때문에 자연히 그녀의 퍼포먼스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덕분에 언제나 수심 가득하던 얼굴에 슬며시 웃는 미소를 지나 당찬 의지가 담기고, 진한 스모키 화장이 지워지는 그녀의 변화만 따라가도 <브로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다만 완성도 때문에 영화의 온기와 따스함이 지닌 설득력이 약화되는 게 결국 문제다. 인신매매와 살인처럼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심각성을 지닌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소 낙관적이고 편의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 듯한 경향성이 살짝 엿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이상적이고 작위적인 화법 때문에 영화의 결말에 끝내 설득되지 않는다면, <브로커>는 그저 순진하게 풀어낸 인간 찬가로 기억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영화의 메시지와 주제가 갖는 중요성과 가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역량과 명망을 생각하면 이는 퍽 안타까운 결과다.
A(Acceptable, 무난함)
인간의 선함을 믿어보자는, 따뜻함과 나이브함 사이에 있는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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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5일 | 언론이 놓친 미덕을 비극으로부터 찾아내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을 현지 생중계 중이던 미국 ABC 방송국 스포츠팀. 어느 날 새벽, 올림픽 선수촌에 총성 여러 발이 울러 퍼진다.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대표팀 숙소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인 것. 사건의 심각성을 깨달은 ABC 스포츠 사장 '룬 알리지'(피터 사스가드)는 본사 국제부 대신 스포츠팀이 뉴스를 보도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스포츠 운영 총괄자 '마빈'(밴 채플린)은 타 방송국과 위성 시간대를 바꾸는 협상에 돌입하고, PD '제프리'(존 마가로)도 독일인 통역사 '마리안네'(레오니 베네쉬) 도움을 받아 인력과 카메라를 새로 배치한다. 갑자기 시작된 인질극 단독 생중계에는 시청자 9억 명이 몰리며 대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ABC 스포츠팀의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된 순간, 테러범들도 자신들의 방송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
피할 수 없는 비극을 파헤치다
1972년 9월 5일. 뮌헨 올림픽이 한창이던 때에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인 '검은 9월단'이 비밀리에 올림픽 선수촌에 난입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올림픽 대표팀 선수 5명, 심판 2명, 코칭스태프 4명, 총 11명을 인질로 잡고 이스라엘에 구금된 팔레스타인 포로 234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서독 경찰에 의해 범인들은 모두 사살 또는 체포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경찰 한 명과 인질 전원도 사망했다.
'뮌헨 올림픽 참사'의 원인으로는 여러 요소가 지목된다. 서독 경찰의 경우 대규모의 조직적 민간인 인질극을 예상하지 못한 나머지 테러 진압 작전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언론도 경찰 못지않게 비판받았다. 사건 당시 선수촌 상황이 TV로 생중계된 나머지 테러리스트들이 TV를 보면서 서독 경찰의 진압 작전을 실시간으로 파악한 후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
물론 언론 입장에서도 변명거리는 있다. 대규모 테러 인질극 보도는 전례가 없었기에 발생한 실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9월 5일: 위험한 특종> (이하 <9월 5일>)은 참사 당시 언론의 대응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며, 그보다는 언론 내부의 메커니즘이 필연적으로 만들어낸 오류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9월 5일>의 건조한 비판은 살이 아리듯 날카롭다. 반 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유효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내부만 들여다보다
<9월 5일>의 가장 큰 특징은 선택과 집중이다. 영화는 뮌헨 올림픽 참사를 다루고 있지만, 직접 묘사하지는 않는다. 테러리스트가 작전 계획을 짜고, 선수촌 내부로 진입하고, 인질을 사로잡고, 경찰과 대치하는 식의 이미지는 단 한 컷도 등장하지 않는다. 애초에 카메라는 ABC 올림픽 스튜디오 외부 광경 자체를 안 비춘다. 테러리스트와 인질이 탄 헬리콥터를 보기 위해 주인공들이 밖으로 나가는 장면 정도가 몇 안 되는 예외다.
그 대신 간접적인 수단을 활용해 상황을 연출한다. 선수촌에 몰래 잠입한 현장 기자들의 전화나 무전, 선수촌을 내려다보는 카메라에 잡힌 장면, 도청한 서독 경찰의 무전 및 경찰의 공식발표가 적힌 팩스 등. 이는 두 가지 효과를 가져다준다. 우선 등장인물도, 관객도 외부 상황을 알 수 없기에 매 순간 서스펜스가 극대화된다. 한편으로는 이미 유명한 사건보다는 사건을 다루는 언론에게만 집중하겠다는 선언처럼도 느껴진다.
흥미롭게도 <9월 5일>이 묘사하는 언론의 모습은 다른 영화에 등장한 언론과는 다르다. 언론을 다루는 영화는 대체로 기자 개개인의 취재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이 가톨릭 사제 아동 성추행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취재원과 접촉하고, 과거 자료를 분석하는 모습을 따라가는 구성을 취했다.
<9월 5일>은 다르다. 이 작품은 기자들이 어떻게 취재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 영화는 오로지 언론 내부의 의사결정 상황에 주목한다. 누가 선수촌으로 가고 앵커와 PD는 누가 맡을지, 경찰 소식은 어떻게 확인할 것이며, 스포츠팀이 테러 소식을 전할지 아니면 미국에 위치한 본사에서 이 뉴스를 담당할지 등. 뉴스 한 꼭지가 만들어지기까지 언론 내부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침착하게 따라간다.
신속함과 생생함이라는 허상
그 덕분에 <9월 5일>은 언론인을 혼란에 빠트리는 두 가지 딜레마를 포착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매번 선택을 내려야 하는 분기점마다 현장감과 윤리, 신속함과 정확성 사이에서 고뇌한다.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언론의 가치이지만, 양립하기는 어렵기 때문. 결국 그들은 윤리보다는 현장감, 정확성보다는 신속함을 우선순위로 두기로 결정한다.
이 선택은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일례로 제프리는 ABC 스튜디오가 선수촌 바로 옆에 위치했다는 이점을 살리기로 결정한다. 스튜디오 카메라 두 대를 밖으로 빼서 선수촌을 생중계하여 가장 생생한 그림을 시청자에게 보여주겠다는 것. 하지만 이는 상술했듯이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다. 경찰의 선수촌 진입 작전을 테러리스트에게 일러바치는 꼴이 됐기 때문. 현장감을 살리려다가 뉴스 당사자들을 고려하지 못한 우를 범한 셈이다.
정확성보다 신속함을 우선순위에 둔 결과물도 처참하다. 경찰이 공항에서 테러범을 모두 사살하고 인질을 구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프리는 이를 곧장 속보로 내보낸다. 다른 방송사나 언론사보다 늦을 경우 ABC의 신뢰성과 지위가 손상될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 그 결과 오보가 전 세계에 퍼져 나간다.
두 장면 모두 저널리즘의 본질적 약점을 보여준다. 다른 방송사, 언론사와의 경쟁 때문에 필연적으로 평가절하되는 가치와 우선시되는 가치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다른 방송사보다 신속하게 생생한 현장을 보여줘야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으니까. 마빈처럼 현장감에 앞서서 윤리를, 신속함보다는 정확성을 고려하자는 의견은 최초, 단독, 속보라는 타이틀이 가장 중시되는 언론 생태 내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의 미덕
이 지점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이 눈에 띈다. 바로 영화가 호흡을 고르는 컷들이다. <9월 5일>은 급박한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한 번씩 템포를 늦추면서 템포를 조절한다.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 선수와 코칭스태프 사진을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크기를 키우고, 생중계 화면에 자막을 삽입하기 위해 알파벳 모형을 재배치하며, 현장 기자가 찍은 영상 중 필요한 장면만 편집하는 모습을 비추는 식이다.
흥미롭게도 모든 작업은 아날로그로 이루어진다. 사진 크기를 키우려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재촬영한 뒤 인화해야 한다. 알파벳 모형도 담당자가 손으로 배치하고, 필요한 영상도 전체에서 직접 잘라내야 한다. 현재 방송사의 디지털화된 뉴스 제작 방식에 비하면 일견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이처럼 품을 들이는 과정 덕분에 제프리와 그의 팀은 시청자에게 정보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방법을 충분히 검토한 뒤 결정할 여유가 생긴다.
바로 이 지점에서 <9월 5일>의 의도는 명확해진다. 아무리 급박해도 언론은 한 템포 끊을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 실제로 룬과 마빈은 생중계 도중 인질이 살해당할 경우 뉴스를 끊어야 할지를 두고 대립한다. 하지만 그들이 뉴스 스튜디오 밖에서 한 박자 쉬어가자 제프리의 입에서 둘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절충안이 튀어나온다.
그와 반대로 단독과 속보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 제프리는 인질 구출 소식을 크로스체크해야 한다는 마빈의 의견을 묵살한다. 그 순간 ABC는 제프리가 한 템포만 끊고 현장에 나간 마리안네의 연락만 기다렸어도 막을 수 있었던 희대의 오보를 내보내고 만다. 이 두 장면의 대조는 한 번 쉬어갈 줄 아는 미덕과 여유의 중요성을 강조해 준다.
반 세기 전 사건을 다시 보는 이유
이는 1972년에 발생한 사건을 2025년에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요즘 언론에게 신속한 정보 전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언론이 다루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가 SNS에서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시대이기 때문.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의 뼈아픈 실수를 조명하는 <9월 5일>의 함의는 분명하다. 지금은 속보, 단독 경쟁이 아니라 한 호흡 쉬어가는 여유를 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보도 형태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과연 언론이 변화할지는 <9월 5일>도 명확히 답하지 못한다. 제프리는 자신이 오보를 책임지겠다며 자책한다. 하지만 룬은 다음 날을 위해 쉬라고 격려할 뿐 별다른 질책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풀 죽은 제프리가 룬의 사무실을 나설 때, 다른 동료는 잔뜩 흥분한 채로 룬에게 새로운 아이템을 제안한다. 총격전이 발생한 공항에 헬기를 비롯한 잔해가 남아 있을 테니 가장 먼저 그 현장을 찍어서 보여주자고.
그 순간 제프리의 자책에서는 언론의 변화를 바라는 소망이, 다른 동료의 아이디어에서는 이전 관습을 되풀이하려는 언론에 대한 회의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바로 이 장면 때문에 희망과 의구심이 순간적으로 교차되는 <9월 5일>의 결말은 특히 인상적이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선택권을 넘기면서 균형성과 공정성이라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손수 실천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
물론 <9월 5일>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캐릭터가 단순히 도구에 머무른다. 각 주인공의 개인사가 일절 언급되지 않다 보니 관객은 그들과 교감할 방법이 없다. 그들이 자기 결정에 대해 후회하고, 그 결과 때문에 좌절하더라도 감정적 동요가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차분하고 침착한 수준을 넘어서서 건조해진다.
이는 비슷한 결의 작품인 <스포트라이트>와의 결정적인 차이다.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교회와 연이 있는 기자들이 가톨릭 교회의 범죄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배신감, 회의감, 고뇌를 직간접적으로 녹여냈다. 이러한 감정선의 부재 때문에 <9월 5일> 마치 재연 다큐멘터리 같다. 언론 내부 사정에 관심이 없을 경우 급박한 상황 전개마저 지루하게 느껴질 가능성도 농후해진다. 역사가 곧 스포일러라서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세기의 차이를 뛰어 넘어서 언론의 본질, 가능성과 한계를 꿰뚫어 보는 <9월 5일>의 통찰력만큼은 충분히 인상적이다. 이 작품이 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제8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작품상, 제30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각본상, 편집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는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2025년의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을 본격적으로 즐길 시작점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반 세기가 지나도 여전한 한계와 반 세기가 지났기에 기대하는 가능성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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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가루 알레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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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레이디 버드'는 새크라멘토에 살고 있다. 지루한 고향을 벗어나 창의적인 도시로 대학을 가는 게 목표다. 고향에는 그녀가 싫어하는 것투성이다. 철로변에 있는 집과 수많은 규칙들. 그녀는 별다를 것 없는 인생을 만드는 건 이런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괜찮을 인생이 될 것만 같다. 이름은 나름대로 괜찮을 인생의 첫걸음이다. 남들과 같지 않을 무언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던 일상 속에 내가 정한 무언가였으니까. 이름 정도면 다른 특별한 무언가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그건 공짜니까. 끊임없이 그 이름을 주장하려는 노력은 기울여야 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엄마가 화날 때면 그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 또박또박 부르는 건 변함없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지은 이름만은 나의 영토니까.
레이디 버드는 자신이 정한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 사회의 규칙에 맞춰 살기 바쁜 나이에는 본인이 원하는 이름 하나 정하는 것 정도가 그나마 자력으로 얻을 수 있는 특별함이다.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없다는 건 자라는 내내 배워가지만 배운다고 납득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때때로 불합리한 일들은 논리와 관계없이 발생한다. 재난처럼 벌어지는 일은 그저 감당해야 한다. 몸에 익지 않은 불편한 감정들은 견디다 보면 조금씩 그 한계치가 늘어난다. 윤리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것과 별개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직접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깨우쳐간다.
어른의 길목에 선 이들이 겪는 희로애락은 몇 마디 말로 서술하기엔 역부족이다. 끝없는 우울감과 고민은 존재를 뒤흔든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0 아니면 1밖에 없었다. 보통은 제 성질에 못 이겨 감정을 터뜨리고 결과물은 어디 한 군데 깁스를 하거나 사건의 주역이 되는 식이다. 충동은 감정을 가속하고 내리막의 끝에 나오는 말들은 곱지 않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보고 싶은 마음은 종종 주변에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노력은 어렵지만, 주변을 낮춰보는 일은 훨씬 쉬우니까 쉬운 길을 택하게 된다. 나도 모를 내 마음을 남에게 전하는 건 번번이 엉뚱한 곳에 날아가 꽂힌다.
한 꺼풀 내 생각을 벗겨내면 타인의 의외성에 감화되는 순간이 온다. 진심으로 아끼고 속 깊은 조언을 해주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생각의 축이 움직인다. 영화에서 전하지 못한 진심을 뒤늦게 발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애틋하다. 쓰려다 말고, 다시 쓰려다 접어버린 편지에 진심이 있다. 진심은 못다 끝낸 문장 안에 있었다. 레이디 버드는 편지를 읽고 크리스틴으로 전화를 건다.
봄은 마냥 행복한 계절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겐 노란 꽃가루가 일렁이는 세계가 한참은 고통스럽기도 했다. 봄에 태어났는데 꽃가루 알레르기를 겪는 아이러니라니 거 참. 봄을 생각하는 시기, 사춘기도 꽃가루 알레르기 같다. 마음에서 뭐든 밀어내는 계절, 한철 왔다 가고 고통스러운 증상도 나타난다. 따지고 보면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로 묘사하기보다 ‘꽃가루 알레르기’로 부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격정을 인내했던 시절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를 지나쳐갔다. 마냥 고통스럽기만 했던 건 아니다. 생각보다 사춘기의 끝은 가까웠다. 여드름만 남기고 떠나진 않았다. 관계와 존재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어쩌면 저 시절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레이디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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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 보기 좋은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하나인 백로로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이죠!
그래서 가을의 분위기를 맘껏 느낄 수 있도록 가을에 보기 좋은 영화를 추천드리려고 합니다.
씨네랩이 추천하는 영화와 함께 가을의 분위기를 한껏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가을에 보기 좋은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ly..., 1989
ⓒ 네이버 영화
synopsis
대학 졸업 후 뉴욕행을 함께 하게 된 해리와 샐리.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명제로 두 사람은 설전을 벌이고,성격도 취향도 정반대인 서로를 별종이라 생각한다.
뉴욕에 도착한 두 사람은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헤어진다.
몇 년 뒤, 우연히 서점에서 재회한 두 사람.
샐리는 연인과 이별했고 해리는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 받았다.
두 사람은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비로소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어느 날 샐리는 헤어진 연인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되고 뒤늦은 이별의 아픔에 슬퍼한다.
해리는 그런 그녀를 말없이 안아주고 위로의 키스는 뜻밖의 하룻밤으로 이어지는데…
cine pick!
멕 라이언 배우를 로맨틱 코미디의 아이콘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이다. N차 관람한 사람이 많을 정도로 역대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로 손꼽히는 명작이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Little Forest: summer&autumn, 2014
ⓒ 네이버 영화
synopsis
도시에서 생활하다 쫓기듯 고향인 코모리로 돌아온 이치코.
시내로 나가려면 한시간 이상이 걸리는 작은 숲 속 같은 그 곳에서 자급자족하며 농촌 생활을 시작한다.
직접 농사지은 작물들과 채소, 그리고 제철마다 풍족하게 선물해주는 자연의 선물로 매일 정성껏 식사를 준비한다.
음식을 먹으며 음식과 얽힌 엄마와의 추억을 문득 떠올리는 이치코에게 낯익은 필체의 편지가 도착하는데..cine pick!
삼시세끼 제철 재료로 정성을 들여 요리하고, 먹는 일상적인 행위를 담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하며 색다르고 따뜻하다. 뜻밖의 위로가 되기도 하는 이 영화는 자신의 삶에 있어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추
Late Autumn, 2010
ⓒ 네이버 영화
synopsis
수인번호 2537번 애나. 7년 째 수감 중, 어머니의 부고로 3일 간의 휴가가 허락된다.
장례식에 가기 위해 탄 시애틀 행 버스, 쫓기듯 차에 탄 훈이 차비를 빌린다.
사랑이 필요한 여자들에게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는 그는,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다.
훈은 돈을 갚고 찾아가겠다며 억지로 시계를 채워주지만 애나는 무뚝뚝하게 돌아선다.
7년 만에 만난 가족도 시애틀의 거리도, 자기만 빼 놓고 모든 것이 변해 버린 것 같아 낯설기만 한 애나.
돌아가 버릴까? 발길을 돌린 터미널에서 훈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장난처럼 시작된 둘의 하루.
시애틀을 잘 아는 척 안내하는 훈과 함께, 애나는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이름도 몰랐던 애나와 훈. 호기심이던 훈의 눈빛이 진지해지고 표정 없던 애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를 때쯤,
누군가 훈을 찾아 오고 애나가 돌아가야 할 시간도 다가오는데...
cine pick!
1966년 영화 <만추>의 리메이크작으로 짧고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또한 <만추>로 탕웨이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최초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수상한 외국인 배우가 됐다.
원스
Once, 2006
ⓒ 네이버 영화
synopsis
이제 사랑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믿었던 ‘그’
삶을 위해 꿈을 포기했던 ‘그녀’
더블린의 밤거리에서 마법처럼 시작된 만남
마음까지 안아줄 감미로운 하모니가 다시, 바람처럼 밀려온다cine pick!
선댄스영화제에서 수상한 뮤직 로맨스 영화 <원스>!
관객부터 평단까지 연이은 호평으로 2007년 최고의 영화로 떠오르기도 했다.
진심이 가득 담긴 음악을 담아 감동을 전한다.
파 프롬 헤븐
Far From Heaven, 2002
ⓒ 네이버 영화
synopsis
‘캐시’는 누가 봐도 행복하고 완벽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늦게까지 야근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들고 사무실을 방문했다.
문을 연 순간…남편이 다른 남자와 키스하고 있다. 당황한 나는 곧바로 집에 돌어와, 불꺼진 침실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뒤늦게 들어온 남편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고백할 게 있어. 나, 예전부터…” 혼란스럽기만한 나에게 남편의 고백은 차라리 고마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남편은 바람핀 게 아니라 아픈 거라고. 고치면 나아질 수 있다고… 그날 이후 남편은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난 우리의 사랑을 위해 더욱 노력했다.
한 사람만을 향해있던 내 마음에 서서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이애미로 훌쩍 여행도 함께 떠나보지만, 남편의 우울증은 날로 심해져갔다. 그 무렵 새로 온 정원사 ‘레이몬드’는,친구에게조차 말할 수 없던 나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심없이 그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나면 지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곤 했다. 많은 것이 달랐지만, 함께 있으면 편하고 좋은 우린, 둘도 없는 친구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사랑을 고백해왔다. 한 사람만을 향해있던 내 사랑이 지금 흔.들.리.고.있.다.
cine pick!
잔잔하게 감성을 건들이는 차별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을 볼 수 있어 더더욱 가을 감성에 빠져들 수 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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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명의 '더 마블스'를 보고 싶어 억지로 기획한 듯
이 영화의 주인공은 캡틴 마블(캐럴 댄버스), 모니카 램보, 미즈마블(카밀라 칸)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미즈 마블>의 쿠키영상이다. 느닷없이 잡혀온 캡틴 마블. 난생처음 보는 집으로 끌려왔다. 하지만 캐럴이 위치한 이 방의 주인은 캡틴 마블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곳곳에 캡틴 마블의 사진이 걸려있고, 팬이 그린 그림도 붙어있다. 방 문을 나서는 캡틴 마블. 카밀라의 가족들이 모여있다. 머쓱하게 인사하는 캐럴. 하지만 이내 강한 힘에 이끌려 원래 있던 우주로 돌아간다. 캐럴에게 “무슨 일이냐”라고 묻는 닉 퓨리. 캐럴은 퓨리에게 내 위치가 갑자기 바뀌었다고 보고한다. 위치를 공유하는 것은 미즈 마블과 캡틴마블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캐럴에게 받은 큰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모니카도 이 둘과 위치를 공유하고 있었다. 덕후와 최애, 애증의 관계가 뒤섞인 3명의 ‘캡틴 마블’이 함께 힘을 합쳐 지구를 지켜야 한다.
<로키 2>의 마지막 회차가 공개되는 날 하루 전에 개봉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밀도는 <로키 2>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영화 안에 아이디어만 있고 그것에 이르는 과정이 전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이 영화가 연출로 보여주고자 했던 바는 분명해 보인다예를 들어 기존 마블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가 몇 있다. 영화 초반부에 들어가는 두 장면의 액션신은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저>와 <아이언맨 3>을 연상시킨다. 이 오마주는 미즈 마블이 캡틴 마블의 굉장한 팬이라는 콘셉트와 조응한다. 하지만 이 오마주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하늘을 나는 슈퍼히어로들의 모습이 어색하다. 이런 이물감은 세 슈퍼히어로가 힘을 합쳐 빌런의 힘을 막는 과정에도 마찬가지다. 동양계 슈퍼루키/백인 미녀/흑인 여배우가 힘을 합쳐 악당들을 물리친다는 문장은 근사하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이 힘을 합치는 액션신이 특별히 멋있었다고 보긴 어렵다. 대표적으로 영화 중반부즈음에 셋이 줄넘기와 저글링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당장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 세명의 스파이더맨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던 모습과는 다른 1차원적인 접근이다. 인물의 감정선이 깔끔하지도 못했다. 캐럴 댄버스가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만 이해한 채로 영화의 문제해결로 이어진다.
이 영화를 본 분들 중 적지 않은 관객들이 박서준 배우의 캐스팅에 대해 코멘트할 것 같다. 실제로 3분도 안 되는 분량이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으로는 쿠키영상이 있다. 마블의 팬이라면 익숙한 얼굴이 몇 등장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본 영화에서 흐물흐물한 이야기를 보여준 탓에 마블의 야심이 와닿지 않는다. 아쉬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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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대를 향유한다는 것은
※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제작사 더액티비스트
배급사 (주)시네마달
감독 유수연
출연 조영숙, 박수빈, 황지영
개봉 2025년 03월 19일
"낯설고도 새로운 역사를 만나다"
산마이, 니마이, 가다끼… 한국의 역사 속에 존재했지만 어쩐지 낯설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처음 듣는 단어들.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이다. 사실 필자는 공연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다. 1년에 한두 번쯤 좋아하는 밴드의 콘서트를 보러 가는 정도랄까.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공연 예술을 꾸준히 찾아다니는 마니아들도 있다. 특히 K-POP 산업이 성장하면서 아이돌 콘서트는 대중문화의 중심축이 되었다. 무대 위 반짝이는 스타, 객석을 가득 채운 함성. 서로가 주고받는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그 생생한 현장감은 사람들을 다시 공연장으로 이끈다. 그리고 과거에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아이돌처럼 강렬한 팬덤과 무대 위 마력으로 공연 예술계를 호령했던 이들이 있었다.
<왕자가 된 소녀들> 자료화면, <별하나>(1958) 김경수와 김진진,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54326, 2025-03-20.
“1948년, 국악원에서 여성들만이 떨어져 나와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해방 이후 전통적 규범에서 벗어난 새로운 공연 예술이 탄생했으니, 그것이 바로 여성국극이다. 여성국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남녀 모든 배역을 여성 배우들이 도맡았으며, 남자 주인공을 니마이(二枚), 희극적인 감초 조연을 산마이(三枚, さんまい), 악역을 가다끼(敵, がたき)라 불렀다고 한다. 해방 직후에도 국극 용어는 한글로 정제되지 못한 채 일본어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겼다.
준수한 외모에 노래와 춤은 물론이요 뛰어난 연기력까지. 여성국극단은 당대 최고의 올라운더들이 모인 집합소였다. 그중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단연 니마이(二枚)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연 예술이 대중성을 확보하려면 여성 팬층의 지지가 필수적인데, 여성국극은 니마이(二枚) 배우들의 인기를 기반으로 당대 공연 예술로서의 대중성과 입지를 굳혀 나갔다.
그러나 니마이 배우들의 인기는 단순한 외적 매력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당시 가부장적 남성상과는 결이 다른, 다정하면서도 책임감 있는 새로운 남성상을 제시하며 여성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성인 남성의 강직하고 무거운 이미지 대신, 섬세하면서도 강한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로 무대 위에 존재했다. 특히, 검무와 격투 장면에서 보여 주는 신체적 퍼포먼스는 강인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부각하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요소가 결합되면서 니마이 배우들은 단순한 스타를 넘어, 여성국극이 만들어 낸 독자적인 젠더적 판타지와 서사의 중심이 되었다.
여성국극과 티켓 파워: 과거와 현재
여성국극의 1세대 레전드로 불리는 조영숙 배우는 한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빠지면 공연장 바닥에는 팬들이 두고 간 선물들로 가득했다. 특히 스타킹 같은 생필품을 돈 주고 사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이는 오늘날의 조공 문화와 유사하다. 무대 위 빛나는 스타를 위해 아낌없이 마음을 표현하는 팬들, 그리고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 여성국극이 한때 현재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문화 예술계에서 여성 관객의 강력한 티켓 파워가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지난 2021년 인터파크 데이터에 따르면, 공연 예매자의 75%가 여성이었으며, 20~30대 여성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무대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여성 관객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공연 예술을 지탱하고 있었다.
여성 관객들이 공연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은 단순히 볼거리를 넘어서, 작품과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들은 감동적인 서사와 캐릭터에 몰입하며, 예술을 통해 감정을 확장하는 경험을 중시한다. 또한 작품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 단순한 오락보다는 의미 있는 작품에 강한 지지를 보낸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더 폴(The Fall): 디렉터스컷>의 흥행과도 맞닿아 있다. 여성 관객의 감수성은 문화적 유산처럼 계승된다고 볼 수도 있다. 여성국극이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전통과 예술을 지키는 사람들
여성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먹고 자란 여성국극의 전성기는 불꽃같았다. 1~2세대를 거치며 배우들의 헌신으로 찬란하게 타올랐지만, 그 불길은 너무나도 빠르게 꺼져버렸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여성국극이 급격히 쇠락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지만, 급변하는 사회 풍속과 보수적인 정책 기조 속에서 국가 지원에서 배제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로 인해 명맥은 단절의 위기를 맞았고, 한때 문전성시를 이뤘던 여성국극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국극을 되살리기 위해 사활을 걸고 계보를 잇는 이들이 있다.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살리려는 그들의 노력 속에서, 여성국극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남아 있다.
"누군가는 여성국극을 해야 하지 않겠어?"
여성국극의 찬란했던 전성기를 회고하는 것만큼, 그 현재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일도 필요하다. 다큐는 과거와 대조되는 여성국극이 직면한 현실을 조명한다. 소규모 지역 축제에서 공연을 올리는 배우들. 그러나 관객들은 흥미를 보이다가도 금세 등을 돌린다. 한때 여심을 뒤흔들었던 1~2세대 여성국극의 전성기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여성국극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누군가는 여성국극을 해야 하지 않겠어. 3년만 해보자.”
끊임없이 되묻는 질문들. 예인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라서, 작금의 배우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담보하여 고군분투한다. 생계와 예술 사이의 고민, 변하는 시대 속에서 여성국극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 그러나 이들이 그 시련을 견뎌내는 원동력 역시 ‘여성국극을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신념과 사랑이다. 그 절박함은 1세대, 2세대, 그리고 3세대를 잇는 ‘레전드 춘향전’을 탄생시켰고, “현재 여성국극제작소가 안산에 뿌리를 내리며 제도권 안에서 보호받을 기반을 마련했다.” 다큐 제작 기간 동안 3세대 배우 박수빈과 황지영이 주도적으로 이끌어낸 성과이기도 하다. 여성국극은 더 이상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새로운 2막을 위한 그 시작점에 다시 섰다.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단처럼, 한국의 여성국극도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아 새로운 전성기를 써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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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7] 물회와 함께 펼쳐지는 남녀의 느와르- 낙원의 밤
신세계, 마녀의 박훈정 감독이 신작 낙원의 밤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엄태구와 전여빈, 차승원 배우와 함께 돌아왔는데요.
극장 개봉을 하지 않고 넷플릭스에서 단독 공개가 되었어요.
박훈정 감독의 신작을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았을텐데, 영화는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엄태구 배우나 전여빈 배우의 연기는 좋은데, 이야기를 보면서 관객들에게 주인공들의 감정들이 잘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고 중얼거리는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 불편했어요.
느와르 장르의 색깔은 들어가 있지만 일단 어색하게 만나서 연대의 끈이 생기는 남녀의 드라마가 중점적으로 이어집니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평은 영상을 참고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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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작은 아씨들]리뷰/해석:페미니즘을 넘어서는 고전해석
#작은아씨들#페미니즘#그레타거윅 감독 그레타거윅이 소설 작은아씨들을 정말 좋아한다고 합니다.
수차례 읽었다고 해요. 원작에 대한 뛰어난 이해력을 바탕으로 좋은 연출이 빚은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성하고 나니 새벽 4시네요... 수강신청에 한 과목을 날려버려서...
다시 해야하기도 하고 공부하는 시험도 있어서 바쁜 이유로 14일 오후에 코멘트 댓글을 달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고싶은 말은 많았는데 영상에서 축약된 말이 굉장히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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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가필드 더 무비> 티저 예고편
존재 자체가 커여운 가필드?? 집 나갔다 냥고생한 사연은?! 티저 예고편 보고 [가필드 더 무비] 5월 극장에서 직접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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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루엘라> 화려한 반격 영상
처음부터 난 알았어. 내가 특별하단 걸
그게 불편한 인간들도 있겠지만 모두의 비위를 맞출 수는 없잖아?
그러다 보니 결국, 학교를 계속 다닐 수가 없었지
우여곡절 런던에 오게 된 나, 에스텔라는 재스퍼와 호레이스를 운명처럼 만났고
나의 뛰어난 패션 감각을 이용해 완벽한 변장과 빠른 손놀림으로 런던 거리를 싹쓸이 했어
도둑질이 지겹게 느껴질 때쯤, 꿈에 그리던 리버티 백화점에 낙하산(?)으로 들어가게 됐어
거리를 떠돌았지만 패션을 향한 나의 열정만큼은 언제나 진심이었거든
근데 이게 뭐야, 옷에는 손도 못 대보고 하루 종일 바닥 청소라니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 런던 패션계를 꽉 쥐고 있는 남작 부인이 나타났어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난 남작 부인의 브랜드 디자이너로 들어가게 되었지
꿈을 이룰 것 같았던 순간도 잠시, 세상에 남작 부인이 ‘그런 사람’이었을 줄이야…
그래서 난 내가 누군지 보여주기로 했어
잘가, 에스텔라
난 이제 크루엘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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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평의 여정이 수직적인 세상에 가져올 변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거센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소영(이지은)'은 부산의 한 교회 베이비 박스 앞에 아기 '우성'을 내려놓고 떠난다. 때마침 베이비 박스 당직을 서던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소영이 남긴 쪽지에 아기의 이름이나 연락처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아기를 몰래 데려간다. 그러나 다음 날 빚에 시달리며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이 불법 입양 브로커로서 길을 나서려는 찰나에, 예상치 못하게 엄마 소영이 아기를 되찾기 위해 돌아온다. 아기가 사라진 것을 안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결국 자신들이 브로커임을 고백한 상현과 동수. 이에 소영은 우성이의 양부모를 찾는 여정에 동행하기로 한다. 한편 이 일련의 과정을 빠짐없이 관찰한 형사 '수진(배두나)'은 후배 ‘이형사(이주영)'와 함께 두 브로커를 현행범으로 잡기 위해 그들의 뒤를 쫓는다.
베이비 박스는 부모의 사정상 키울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가는 장소로, 한국에서는 2009년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처음 시작된 후 현재 3곳의 종교시설에서 운영되고 있다. 사실 베이비 박스는 선한 목적과는 별개로 논란의 대상이었다. 비판하는 쪽에서는 그 존재 자체가 아이를 유기하게 만든다고 말해왔고, 긍정하는 쪽에서는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미혼 부모처럼 아이를 양육할 능력이 부족한 이들의 현실과 이에 무관심한 한국 사회의 태도가 중첩된 결과 베이비 박스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양측 모두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촬영하고 연출하여 제75회 칸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브로커>가 베이비 박스 앞에서 시작되는 것은 놀랍지 않다. 이미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들은 가족이나 소외된 이들의 삶처럼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문제들을 스크린 위로 끄집어 올리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또 그의 작품은 서늘한 현실감을 유지한 채 해당 문제들을 파고들면서도, 섣불리 비판할 대상을 정하는 대신 그 문제를 겪는 당사자들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면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경우도 많다. <브로커>도 마찬가지다. 영아 납치와 인신매매를 자행하는 브로커의 여정을 포착한 이 로드무비는 악행과 선의 사이에서 피어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수직적인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순
그 아이러니는 울진의 한 수산물 시장에서 볼 수 있다. 우성이를 사려는 한 부부를 만난 소영, 동수, 상현. 부부는 우성이의 눈매나 눈썹을 살펴보면서 못생겼다며 외모를 품평하고, 친부의 직업이나 과거사를 따진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지 본래 약속보다 낮은 가격에 할부로 우성이를 구매하겠다는 제안하는 부부. 이에 당황한 상현과 동수는 어떻게든 거래를 이어가기 위해 흥정을 해보지만, 아기를 비하한 부부에게 분노한 소영 덕분에 흥정은 이내 끝이 난다. 이 장면은 수많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수산물 시장에서 생선 대신 아기가 거래 대상인 것이나, 아기를 파는 사람이 아기의 가치를 존중해 달라고 구매자의 부도덕함을 비난하는 것이나, 브로커에게 더 나은 구매자를 찾아달라는 소영의 모습은 무엇 하나 말이 되지 않는다. 아기를 팔려고 하는 순간 이미 도덕과 윤리와는 거리가 멀어진 듯 한데, 그 안에서 또 도덕을 따지는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이처럼 악행을 저지르는데 정작 그 안에서는 선의가 느껴지는 모순은 러닝타임 동안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타난다.
이때 작중 모순은 서로 다른 세상의 논리가 충돌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직적인 세상 안에서 수평적인 관계가 부딪힌 결과다. 우선 <브로커>의 세상은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 계급 우화"인 <기생충>처럼 수직적으로 묘사되며, 영화는 꾸준히 오르고 내린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는 날에 소영은 아기를 버리기 위해 골목길을 올라가고, 수진과 이 형사는 그런 소영을 내려다본다. 보육원에서 같이 자란 친구를 만나 꿈을 이룰 수 있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헛헛한 인생 이야기를 한 동수는 보육원으로 향하는 긴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동선과 시점에 더해 인간관계도 수직적이다. 조폭들에게 5,000만 원을 빚진 상현은 일원 중 하나인 태호 앞에서 쩔쩔매고, 후반부에는 그와 담판을 짓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내려간다. 영화의 배경마저도 수직적인데, 부산답게 걸어 올라가기조차 벅찬 계단들이 잊을 법하면 등장한다.
거듭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선, 시점, 관계는 세 인물이 사회적 시스템에서 가장 아래에 있고, 밀려난 이들이라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러 상자인 베이비 박스, 네모난 봉고차와 보육원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베이비 박스가 상현, 소영, 동수 개개인의 삶이라면, 자동차는 가족을 상징하며, 보육원은 가족보다 조금 더 큰 사회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보육원 밖에는 사회라는 가장 큰 상자가 있다. 이때 가장 큰 상자로부터 작은 상자로,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어려움은 결국 베이비 박스에 아이가 들어가게 만든다. 상현은 조폭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불법 브로커로 활동한다. 보육원을 떠났지만 이렇다 할 희망을 찾지 못한 동수는 상현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밀매한다. 가족을 이룰 수 있는 형편이 아닌 소영은 아기를 베이비 박스 앞에 내려놓는다. 이렇게 영화는 수직적인 세계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사연을 베이비 박스 안에 담는다.
수평의 동행이 만든 가족
그러나 <브로커>는 아픈 사연에만 집중하지는 않는다. 지상과 지하, 계단 위와 아래 사이에 냄새조차 넘어가서는 안 될 명확한 선이 있었던 <기생충>과는 달리 <브로커>는 비극으로 치닫지 않는다. 상승과 하강의 세계가 극한으로 향하기 전에 동행이라는 이름의 수평축을 새로이 끼워넣기 때문이다. 소영이 동수에게 자신이 꾸는 꿈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 수평적 동행이 갖는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꿈속에서 비를 맞고 깨끗해지는 꿈을 꾼다는 소영은 그 꿈이 그저 꿈일 뿐이라고 자조한다. 그러자 동수는 두 명이 쓸 수 있을 만큼 큰 우산이 있으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소영이 비를 맞으며 아이를 버렸던 것을 생각하면, 고물이 되어버린 봉고차 안에서 만난 이들과의 관계가 그 비를 피할 우산이 될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봉고차를 세차하던 중 다섯 일행이 비눗물을 뒤집어쓰고, 상현과 소영이 각자 쓰던 가명 대신 본명을 털어놓으며 깨끗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수직적인 세상과 대조되는 수평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수평선이 보이는 동해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봉고차의 여정과 인천으로 향하는 KTX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동행은 수직적인 세계에서 지친 이들, 특히 가족이 부재한 이들이 봉고차 안에서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서로를 어루만지며 치유하는 과정이라서 특별하다. 성매매 여성인 소영은 상현과 동수를 만나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소속된 느낌이 무엇인지를 새로이 깨닫는다. 보육원 출신인 동수는 소영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에게 되돌아오지 않은 엄마의 심정을 이해한다. 이혼 후 딸과 별거 중인 상현은 몰래 보육원을 빠져나와 봉고차에 탄 해진에게서 딸의 모습을 본다. 이는 오르내리는 대관람차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 유독 인상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 찬가로 이어지는 봉고차
이때 영화는 유대감과 치유의 이야기를 인간 내면의 순수함과 도덕성에 대한 믿음으로 확장한다. 사실 상현과 동수, 그리고 소영은 예기치 못하게 만났고 또 좋은 일로 만난 것도 아니었다. 아기를 유기하는 소영의 행동이나 그 아기를 교회에서 맡아 기르는 대신 팔아버린 상현과 동수의 행위는 누가 뭐라 해도 범죄였다. 그러나 영화는 악행 기저에 깔린 선의들의 만남에 주목한다. 아기를 베이비 박스에 두고 떠났지만 되돌아온 소영의 모성애, 아기를 잘 키워줄 적임자를 찾아주려 했다는 상현의 배려심, 버려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동수의 동병상련은 한 데 모여 치유의 드라마를 써 내려간다. 물론 자신들의 행적을 둘러대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부분적으로나마 진심인 선의가 만나 새 가족을 만들고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이 감동은 엄마이자 딸로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기로 결심한 소영이 모두에게 전하는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대사로 함축되어 있다. 달리 말해 이 대사에는 악행을 저지른 모든 이들의 내면에도 미처 꺼내지 못했을 선함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선함 덕분에 모두의 생명이 특별하다는 인간 찬가가 담겨있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의 끝에 다다르면 모두가 최선을 선택하며, 자신들이 마주해야 했던 인생과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모든 책임을 아이 엄마에게 묻는 대신 그녀의 마지막 선택에도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인간의 선의에 대한 희망은 <브로커>만의 따스함이 감도는 영상 덕분에 더욱 특별하다. 인위적인 설정 대신 햇빛과 같은 자연의 움직임을 기다리며, 있는 그대로 포착해 찍어낸 덕분이다. 상현과 소영의 진심이 튀어나오는 KTX 안에서의 대화 장면이 밝음과 어둠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처럼 수직의 세상에 피어난 선함이라는 주제는 송강호에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이 돌아간 이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도 소시민적으로 수직적인 세상을 사는 인물이면서도 수평적 여정의 끝에서 인간의 선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인 상현은 영화에 담긴 아이러니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흔들리는 편견과 고정관념
그렇다고 해서 <브로커>가 마냥 따뜻하고, 희망적이고, 밝은 태도만 견지하는 것은 아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답게 상현, 동수, 소영을 무조건 미화하거나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 영화는 이 아이러니를 관찰자의 시점에서, 즉 수진의 시점에서 따라가도록 권한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은 수진의 세계를 보여준다. 수진이 소영을 내려다보는 구도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소외된 이들을 보는 시점으로, "버릴 거면 낳지를 말라"는 수진의 태도가 잘 반영되어 있다. 또 아기를 실은 상현의 봉고차를 수진이 조용히 쫓는 장면에서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는 것도 관찰자이기에 관객이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그녀의 관점을 강조해준다.
그리고 수진의 관점과 태도가 뚜렷하기에 브로커 일행을 쫓는 그녀의 여정에는 더욱 깊은 드라마가 담긴다. 단순한 관찰자였던 그녀가 가족이 되어가는 이들의 동행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이면을 마주하고, 자기 내면에 찾아온 혼란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녀의 냉철한 신념과 태도는 "낳고 나서 죽이는 게, 낳기 전에 죽이는 것보다 죄가 더 가볍냐"는 소영의 반박에 꺾인다. 아이를 매매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그들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편견과 제도의 공백이 그녀를 흔든다. 또 멀쩡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만 비로소 우성이가 행복할 거라는 그녀의 고정관념은 "아이를 가장 팔고 싶은 건 나였나 봐"라는 대사를 통해 고발된다.
이렇게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가 필요 없는 세상을 원한다면 이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사람의 선의를 믿으며, 미리 단정 짓지 말자고 설득한다. 정당화될 수는 없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수직과 수평의 충돌 안에 담는다. 사회 제도에 대한 의문과 통념으로 자리 잡은 윤리적 판단에 대한 의심으로 악행과 선의의 딜레마를 장식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수진과 동일한 입장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결말을 마주한 순간 긴 여운 속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곱씹으며 자신을 성찰하는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된다.
다만 영화적 뚝심과는 별개로 <브로커>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크다. 다루려는 이야기가 너무 많은 나머지 짜임새가 부족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여정, 곧 소영과 우성이/브로커인 상현과 동수/브로커를 추적하는 수진과 이 형사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사실 영화의 메시지와 주제를 고려하면 이 많은 캐릭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이는 특히 최후반부에 얽히고설키는 상현, 소영, 동수, 수진의 선택에서 그들의 심경 변화가 한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보육원 시퀀스처럼 대사가 명확히 들리지 않는 기술적인 문제도 감상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물론 이러한 단점은 이지은의 연기가 눈부시게 빛나는 것과 같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캐릭터들의 사연을 하나로 묶는 접점도 소영이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것도 소영이기 때문에 자연히 그녀의 퍼포먼스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덕분에 언제나 수심 가득하던 얼굴에 슬며시 웃는 미소를 지나 당찬 의지가 담기고, 진한 스모키 화장이 지워지는 그녀의 변화만 따라가도 <브로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다만 완성도 때문에 영화의 온기와 따스함이 지닌 설득력이 약화되는 게 결국 문제다. 인신매매와 살인처럼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심각성을 지닌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소 낙관적이고 편의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 듯한 경향성이 살짝 엿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이상적이고 작위적인 화법 때문에 영화의 결말에 끝내 설득되지 않는다면, <브로커>는 그저 순진하게 풀어낸 인간 찬가로 기억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영화의 메시지와 주제가 갖는 중요성과 가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역량과 명망을 생각하면 이는 퍽 안타까운 결과다.
A(Acceptable, 무난함)
인간의 선함을 믿어보자는, 따뜻함과 나이브함 사이에 있는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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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5일 | 언론이 놓친 미덕을 비극으로부터 찾아내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을 현지 생중계 중이던 미국 ABC 방송국 스포츠팀. 어느 날 새벽, 올림픽 선수촌에 총성 여러 발이 울러 퍼진다.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대표팀 숙소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인 것. 사건의 심각성을 깨달은 ABC 스포츠 사장 '룬 알리지'(피터 사스가드)는 본사 국제부 대신 스포츠팀이 뉴스를 보도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스포츠 운영 총괄자 '마빈'(밴 채플린)은 타 방송국과 위성 시간대를 바꾸는 협상에 돌입하고, PD '제프리'(존 마가로)도 독일인 통역사 '마리안네'(레오니 베네쉬) 도움을 받아 인력과 카메라를 새로 배치한다. 갑자기 시작된 인질극 단독 생중계에는 시청자 9억 명이 몰리며 대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ABC 스포츠팀의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된 순간, 테러범들도 자신들의 방송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
피할 수 없는 비극을 파헤치다
1972년 9월 5일. 뮌헨 올림픽이 한창이던 때에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인 '검은 9월단'이 비밀리에 올림픽 선수촌에 난입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올림픽 대표팀 선수 5명, 심판 2명, 코칭스태프 4명, 총 11명을 인질로 잡고 이스라엘에 구금된 팔레스타인 포로 234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서독 경찰에 의해 범인들은 모두 사살 또는 체포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경찰 한 명과 인질 전원도 사망했다.
'뮌헨 올림픽 참사'의 원인으로는 여러 요소가 지목된다. 서독 경찰의 경우 대규모의 조직적 민간인 인질극을 예상하지 못한 나머지 테러 진압 작전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언론도 경찰 못지않게 비판받았다. 사건 당시 선수촌 상황이 TV로 생중계된 나머지 테러리스트들이 TV를 보면서 서독 경찰의 진압 작전을 실시간으로 파악한 후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
물론 언론 입장에서도 변명거리는 있다. 대규모 테러 인질극 보도는 전례가 없었기에 발생한 실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9월 5일: 위험한 특종> (이하 <9월 5일>)은 참사 당시 언론의 대응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며, 그보다는 언론 내부의 메커니즘이 필연적으로 만들어낸 오류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9월 5일>의 건조한 비판은 살이 아리듯 날카롭다. 반 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유효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내부만 들여다보다
<9월 5일>의 가장 큰 특징은 선택과 집중이다. 영화는 뮌헨 올림픽 참사를 다루고 있지만, 직접 묘사하지는 않는다. 테러리스트가 작전 계획을 짜고, 선수촌 내부로 진입하고, 인질을 사로잡고, 경찰과 대치하는 식의 이미지는 단 한 컷도 등장하지 않는다. 애초에 카메라는 ABC 올림픽 스튜디오 외부 광경 자체를 안 비춘다. 테러리스트와 인질이 탄 헬리콥터를 보기 위해 주인공들이 밖으로 나가는 장면 정도가 몇 안 되는 예외다.
그 대신 간접적인 수단을 활용해 상황을 연출한다. 선수촌에 몰래 잠입한 현장 기자들의 전화나 무전, 선수촌을 내려다보는 카메라에 잡힌 장면, 도청한 서독 경찰의 무전 및 경찰의 공식발표가 적힌 팩스 등. 이는 두 가지 효과를 가져다준다. 우선 등장인물도, 관객도 외부 상황을 알 수 없기에 매 순간 서스펜스가 극대화된다. 한편으로는 이미 유명한 사건보다는 사건을 다루는 언론에게만 집중하겠다는 선언처럼도 느껴진다.
흥미롭게도 <9월 5일>이 묘사하는 언론의 모습은 다른 영화에 등장한 언론과는 다르다. 언론을 다루는 영화는 대체로 기자 개개인의 취재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이 가톨릭 사제 아동 성추행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취재원과 접촉하고, 과거 자료를 분석하는 모습을 따라가는 구성을 취했다.
<9월 5일>은 다르다. 이 작품은 기자들이 어떻게 취재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 영화는 오로지 언론 내부의 의사결정 상황에 주목한다. 누가 선수촌으로 가고 앵커와 PD는 누가 맡을지, 경찰 소식은 어떻게 확인할 것이며, 스포츠팀이 테러 소식을 전할지 아니면 미국에 위치한 본사에서 이 뉴스를 담당할지 등. 뉴스 한 꼭지가 만들어지기까지 언론 내부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침착하게 따라간다.
신속함과 생생함이라는 허상
그 덕분에 <9월 5일>은 언론인을 혼란에 빠트리는 두 가지 딜레마를 포착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매번 선택을 내려야 하는 분기점마다 현장감과 윤리, 신속함과 정확성 사이에서 고뇌한다.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언론의 가치이지만, 양립하기는 어렵기 때문. 결국 그들은 윤리보다는 현장감, 정확성보다는 신속함을 우선순위로 두기로 결정한다.
이 선택은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일례로 제프리는 ABC 스튜디오가 선수촌 바로 옆에 위치했다는 이점을 살리기로 결정한다. 스튜디오 카메라 두 대를 밖으로 빼서 선수촌을 생중계하여 가장 생생한 그림을 시청자에게 보여주겠다는 것. 하지만 이는 상술했듯이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다. 경찰의 선수촌 진입 작전을 테러리스트에게 일러바치는 꼴이 됐기 때문. 현장감을 살리려다가 뉴스 당사자들을 고려하지 못한 우를 범한 셈이다.
정확성보다 신속함을 우선순위에 둔 결과물도 처참하다. 경찰이 공항에서 테러범을 모두 사살하고 인질을 구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프리는 이를 곧장 속보로 내보낸다. 다른 방송사나 언론사보다 늦을 경우 ABC의 신뢰성과 지위가 손상될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 그 결과 오보가 전 세계에 퍼져 나간다.
두 장면 모두 저널리즘의 본질적 약점을 보여준다. 다른 방송사, 언론사와의 경쟁 때문에 필연적으로 평가절하되는 가치와 우선시되는 가치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다른 방송사보다 신속하게 생생한 현장을 보여줘야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으니까. 마빈처럼 현장감에 앞서서 윤리를, 신속함보다는 정확성을 고려하자는 의견은 최초, 단독, 속보라는 타이틀이 가장 중시되는 언론 생태 내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의 미덕
이 지점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이 눈에 띈다. 바로 영화가 호흡을 고르는 컷들이다. <9월 5일>은 급박한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한 번씩 템포를 늦추면서 템포를 조절한다.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 선수와 코칭스태프 사진을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크기를 키우고, 생중계 화면에 자막을 삽입하기 위해 알파벳 모형을 재배치하며, 현장 기자가 찍은 영상 중 필요한 장면만 편집하는 모습을 비추는 식이다.
흥미롭게도 모든 작업은 아날로그로 이루어진다. 사진 크기를 키우려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재촬영한 뒤 인화해야 한다. 알파벳 모형도 담당자가 손으로 배치하고, 필요한 영상도 전체에서 직접 잘라내야 한다. 현재 방송사의 디지털화된 뉴스 제작 방식에 비하면 일견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이처럼 품을 들이는 과정 덕분에 제프리와 그의 팀은 시청자에게 정보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방법을 충분히 검토한 뒤 결정할 여유가 생긴다.
바로 이 지점에서 <9월 5일>의 의도는 명확해진다. 아무리 급박해도 언론은 한 템포 끊을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 실제로 룬과 마빈은 생중계 도중 인질이 살해당할 경우 뉴스를 끊어야 할지를 두고 대립한다. 하지만 그들이 뉴스 스튜디오 밖에서 한 박자 쉬어가자 제프리의 입에서 둘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절충안이 튀어나온다.
그와 반대로 단독과 속보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 제프리는 인질 구출 소식을 크로스체크해야 한다는 마빈의 의견을 묵살한다. 그 순간 ABC는 제프리가 한 템포만 끊고 현장에 나간 마리안네의 연락만 기다렸어도 막을 수 있었던 희대의 오보를 내보내고 만다. 이 두 장면의 대조는 한 번 쉬어갈 줄 아는 미덕과 여유의 중요성을 강조해 준다.
반 세기 전 사건을 다시 보는 이유
이는 1972년에 발생한 사건을 2025년에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요즘 언론에게 신속한 정보 전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언론이 다루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가 SNS에서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시대이기 때문.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의 뼈아픈 실수를 조명하는 <9월 5일>의 함의는 분명하다. 지금은 속보, 단독 경쟁이 아니라 한 호흡 쉬어가는 여유를 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보도 형태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과연 언론이 변화할지는 <9월 5일>도 명확히 답하지 못한다. 제프리는 자신이 오보를 책임지겠다며 자책한다. 하지만 룬은 다음 날을 위해 쉬라고 격려할 뿐 별다른 질책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풀 죽은 제프리가 룬의 사무실을 나설 때, 다른 동료는 잔뜩 흥분한 채로 룬에게 새로운 아이템을 제안한다. 총격전이 발생한 공항에 헬기를 비롯한 잔해가 남아 있을 테니 가장 먼저 그 현장을 찍어서 보여주자고.
그 순간 제프리의 자책에서는 언론의 변화를 바라는 소망이, 다른 동료의 아이디어에서는 이전 관습을 되풀이하려는 언론에 대한 회의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바로 이 장면 때문에 희망과 의구심이 순간적으로 교차되는 <9월 5일>의 결말은 특히 인상적이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선택권을 넘기면서 균형성과 공정성이라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손수 실천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
물론 <9월 5일>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캐릭터가 단순히 도구에 머무른다. 각 주인공의 개인사가 일절 언급되지 않다 보니 관객은 그들과 교감할 방법이 없다. 그들이 자기 결정에 대해 후회하고, 그 결과 때문에 좌절하더라도 감정적 동요가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차분하고 침착한 수준을 넘어서서 건조해진다.
이는 비슷한 결의 작품인 <스포트라이트>와의 결정적인 차이다.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교회와 연이 있는 기자들이 가톨릭 교회의 범죄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배신감, 회의감, 고뇌를 직간접적으로 녹여냈다. 이러한 감정선의 부재 때문에 <9월 5일> 마치 재연 다큐멘터리 같다. 언론 내부 사정에 관심이 없을 경우 급박한 상황 전개마저 지루하게 느껴질 가능성도 농후해진다. 역사가 곧 스포일러라서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세기의 차이를 뛰어 넘어서 언론의 본질, 가능성과 한계를 꿰뚫어 보는 <9월 5일>의 통찰력만큼은 충분히 인상적이다. 이 작품이 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제8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작품상, 제30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각본상, 편집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는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2025년의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을 본격적으로 즐길 시작점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반 세기가 지나도 여전한 한계와 반 세기가 지났기에 기대하는 가능성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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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가루 알레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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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레이디 버드'는 새크라멘토에 살고 있다. 지루한 고향을 벗어나 창의적인 도시로 대학을 가는 게 목표다. 고향에는 그녀가 싫어하는 것투성이다. 철로변에 있는 집과 수많은 규칙들. 그녀는 별다를 것 없는 인생을 만드는 건 이런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괜찮을 인생이 될 것만 같다. 이름은 나름대로 괜찮을 인생의 첫걸음이다. 남들과 같지 않을 무언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던 일상 속에 내가 정한 무언가였으니까. 이름 정도면 다른 특별한 무언가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그건 공짜니까. 끊임없이 그 이름을 주장하려는 노력은 기울여야 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엄마가 화날 때면 그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 또박또박 부르는 건 변함없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지은 이름만은 나의 영토니까.
레이디 버드는 자신이 정한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 사회의 규칙에 맞춰 살기 바쁜 나이에는 본인이 원하는 이름 하나 정하는 것 정도가 그나마 자력으로 얻을 수 있는 특별함이다.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없다는 건 자라는 내내 배워가지만 배운다고 납득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때때로 불합리한 일들은 논리와 관계없이 발생한다. 재난처럼 벌어지는 일은 그저 감당해야 한다. 몸에 익지 않은 불편한 감정들은 견디다 보면 조금씩 그 한계치가 늘어난다. 윤리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것과 별개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직접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깨우쳐간다.
어른의 길목에 선 이들이 겪는 희로애락은 몇 마디 말로 서술하기엔 역부족이다. 끝없는 우울감과 고민은 존재를 뒤흔든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0 아니면 1밖에 없었다. 보통은 제 성질에 못 이겨 감정을 터뜨리고 결과물은 어디 한 군데 깁스를 하거나 사건의 주역이 되는 식이다. 충동은 감정을 가속하고 내리막의 끝에 나오는 말들은 곱지 않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보고 싶은 마음은 종종 주변에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노력은 어렵지만, 주변을 낮춰보는 일은 훨씬 쉬우니까 쉬운 길을 택하게 된다. 나도 모를 내 마음을 남에게 전하는 건 번번이 엉뚱한 곳에 날아가 꽂힌다.
한 꺼풀 내 생각을 벗겨내면 타인의 의외성에 감화되는 순간이 온다. 진심으로 아끼고 속 깊은 조언을 해주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생각의 축이 움직인다. 영화에서 전하지 못한 진심을 뒤늦게 발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애틋하다. 쓰려다 말고, 다시 쓰려다 접어버린 편지에 진심이 있다. 진심은 못다 끝낸 문장 안에 있었다. 레이디 버드는 편지를 읽고 크리스틴으로 전화를 건다.
봄은 마냥 행복한 계절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겐 노란 꽃가루가 일렁이는 세계가 한참은 고통스럽기도 했다. 봄에 태어났는데 꽃가루 알레르기를 겪는 아이러니라니 거 참. 봄을 생각하는 시기, 사춘기도 꽃가루 알레르기 같다. 마음에서 뭐든 밀어내는 계절, 한철 왔다 가고 고통스러운 증상도 나타난다. 따지고 보면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로 묘사하기보다 ‘꽃가루 알레르기’로 부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격정을 인내했던 시절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를 지나쳐갔다. 마냥 고통스럽기만 했던 건 아니다. 생각보다 사춘기의 끝은 가까웠다. 여드름만 남기고 떠나진 않았다. 관계와 존재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어쩌면 저 시절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레이디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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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 보기 좋은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하나인 백로로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이죠!
그래서 가을의 분위기를 맘껏 느낄 수 있도록 가을에 보기 좋은 영화를 추천드리려고 합니다.
씨네랩이 추천하는 영화와 함께 가을의 분위기를 한껏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가을에 보기 좋은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ly..., 1989
ⓒ 네이버 영화
synopsis
대학 졸업 후 뉴욕행을 함께 하게 된 해리와 샐리.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명제로 두 사람은 설전을 벌이고,성격도 취향도 정반대인 서로를 별종이라 생각한다.
뉴욕에 도착한 두 사람은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헤어진다.
몇 년 뒤, 우연히 서점에서 재회한 두 사람.
샐리는 연인과 이별했고 해리는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 받았다.
두 사람은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비로소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어느 날 샐리는 헤어진 연인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되고 뒤늦은 이별의 아픔에 슬퍼한다.
해리는 그런 그녀를 말없이 안아주고 위로의 키스는 뜻밖의 하룻밤으로 이어지는데…
cine pick!
멕 라이언 배우를 로맨틱 코미디의 아이콘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이다. N차 관람한 사람이 많을 정도로 역대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로 손꼽히는 명작이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Little Forest: summer&autumn, 2014
ⓒ 네이버 영화
synopsis
도시에서 생활하다 쫓기듯 고향인 코모리로 돌아온 이치코.
시내로 나가려면 한시간 이상이 걸리는 작은 숲 속 같은 그 곳에서 자급자족하며 농촌 생활을 시작한다.
직접 농사지은 작물들과 채소, 그리고 제철마다 풍족하게 선물해주는 자연의 선물로 매일 정성껏 식사를 준비한다.
음식을 먹으며 음식과 얽힌 엄마와의 추억을 문득 떠올리는 이치코에게 낯익은 필체의 편지가 도착하는데..cine pick!
삼시세끼 제철 재료로 정성을 들여 요리하고, 먹는 일상적인 행위를 담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하며 색다르고 따뜻하다. 뜻밖의 위로가 되기도 하는 이 영화는 자신의 삶에 있어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추
Late Autumn, 2010
ⓒ 네이버 영화
synopsis
수인번호 2537번 애나. 7년 째 수감 중, 어머니의 부고로 3일 간의 휴가가 허락된다.
장례식에 가기 위해 탄 시애틀 행 버스, 쫓기듯 차에 탄 훈이 차비를 빌린다.
사랑이 필요한 여자들에게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는 그는,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다.
훈은 돈을 갚고 찾아가겠다며 억지로 시계를 채워주지만 애나는 무뚝뚝하게 돌아선다.
7년 만에 만난 가족도 시애틀의 거리도, 자기만 빼 놓고 모든 것이 변해 버린 것 같아 낯설기만 한 애나.
돌아가 버릴까? 발길을 돌린 터미널에서 훈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장난처럼 시작된 둘의 하루.
시애틀을 잘 아는 척 안내하는 훈과 함께, 애나는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이름도 몰랐던 애나와 훈. 호기심이던 훈의 눈빛이 진지해지고 표정 없던 애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를 때쯤,
누군가 훈을 찾아 오고 애나가 돌아가야 할 시간도 다가오는데...
cine pick!
1966년 영화 <만추>의 리메이크작으로 짧고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또한 <만추>로 탕웨이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최초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수상한 외국인 배우가 됐다.
원스
Once, 2006
ⓒ 네이버 영화
synopsis
이제 사랑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믿었던 ‘그’
삶을 위해 꿈을 포기했던 ‘그녀’
더블린의 밤거리에서 마법처럼 시작된 만남
마음까지 안아줄 감미로운 하모니가 다시, 바람처럼 밀려온다cine pick!
선댄스영화제에서 수상한 뮤직 로맨스 영화 <원스>!
관객부터 평단까지 연이은 호평으로 2007년 최고의 영화로 떠오르기도 했다.
진심이 가득 담긴 음악을 담아 감동을 전한다.
파 프롬 헤븐
Far From Heaven, 2002
ⓒ 네이버 영화
synopsis
‘캐시’는 누가 봐도 행복하고 완벽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늦게까지 야근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들고 사무실을 방문했다.
문을 연 순간…남편이 다른 남자와 키스하고 있다. 당황한 나는 곧바로 집에 돌어와, 불꺼진 침실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뒤늦게 들어온 남편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고백할 게 있어. 나, 예전부터…” 혼란스럽기만한 나에게 남편의 고백은 차라리 고마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남편은 바람핀 게 아니라 아픈 거라고. 고치면 나아질 수 있다고… 그날 이후 남편은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난 우리의 사랑을 위해 더욱 노력했다.
한 사람만을 향해있던 내 마음에 서서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이애미로 훌쩍 여행도 함께 떠나보지만, 남편의 우울증은 날로 심해져갔다. 그 무렵 새로 온 정원사 ‘레이몬드’는,친구에게조차 말할 수 없던 나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심없이 그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나면 지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곤 했다. 많은 것이 달랐지만, 함께 있으면 편하고 좋은 우린, 둘도 없는 친구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사랑을 고백해왔다. 한 사람만을 향해있던 내 사랑이 지금 흔.들.리.고.있.다.
cine pick!
잔잔하게 감성을 건들이는 차별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을 볼 수 있어 더더욱 가을 감성에 빠져들 수 있다.
씨네랩 에디터 Hiz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