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12-16 11:52:10
또다른 SF 소설로 돌아오는 드니 빌뇌브
<라마와의 랑데부>
최근, 프랭크 허버트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SF 영화 <듄>을 통해 국내 역주행의 신화를 쓴 '드니 빌뇌브' 감독이 또 다른 SF 작품의 메가폰을 잡게 되었습니다.
<듄>이 코로나19의 여파 속에서도 전 세계 3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하였기에, 워너 브라더스사는 <듄 2>를 2023년 10월 20일에 개봉할 예정이라 밝힘과 동시에 '드니 빌뇌브' 감독이 후속편도 연출하게 될 것이라 전했는데요. 개봉까지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만큼,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전 인터뷰를 통해 2022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할 예정이라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듄>이 SF 대서사시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며, 이미 캐스팅 및 기타 다른 부분의 구상을 끝내놓은 상태이기에 다른 프로젝트에 대한 가능성을 내비쳤는데요.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또다시 좋은 소식을 알리며, 전 세계 영화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새로운 프로젝트는' 아서 C. 클라크'가 1973년 발표한 장편 SF 소설 [라마와의 랑데부]가 될 예정인데요. 앞서, 원작에 대한 판권을 '알콘 엔터테인먼트'가 따내며 영화화의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알콘 엔터테인먼트'는 <블레이드 러너>의 판권을 가진 제작사로 '드니 빌뇌브' 감독과 <블레이드 러너 2049>를 통해 호흡을 맞춘 이력이 있는 제작사인 만큼, 다음 영화에 대한 기대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라마와의 랑데부](원제: Rendezvous With Rama)는 1973년 처음 출판된 소설로, 2130년대를 배경으로, 태양계에 진입하는 초대형 외계 우주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라마'라고 이름 붙여진 우주선의 내부를 조사하는 인간 탐험가들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스토리는 세밀하고 장엄하며 경이롭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요. 출간 당시, 휴고상, 네뷸러상, 캠벨상, 로커스상을 비롯해, 주피터상, 영국과학소설협회상 등 SF 분야의 상을 휩쓴 최고의 고전이기도 합니다.
'아서 C. 클라크' 작가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연출한 SF 명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원작 작가로도 유명한데요. '드니 빌뇌브' 감독이 꾸준히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꼽아온 만큼, 아서 클라크의 도 다른 걸작의 연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부분입니다.
현재, 요 네스뵈의 소설 <아들>을 원작으로 한 HBO 시리즈 제작에 힘을 쏟고 있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새 영화를 기다리며,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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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죽도록 살고 싶었어요
한국 관객으로서 숱하게 봐온 봉준호 필모그래피의 장면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영화. <설국열차>로 이미 놀라움을 안긴 바 있지만 더 커다란 스케일, 행성 단위의 SF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에서는 순간 번뜩이는 장면 가운데서 봉준호 감독이 쌓아온 노하우의 정수가 돋보인다. 할리우드식 SF의 흥행 구도를 반영하는 플롯과 봉준호 감독의 개성이 섞여 ‘새로운 익숙함’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야심차게 시작했다가 망해버린 마카롱 가게, 이후 사채업자에게 당할 고문과 죽음이 두려워 지구를 떠나 개척지 ‘니플하임’ 행성으로 향한 미키. 그러나 번듯한 기술도 자격도 없는 그가 지원한 ‘익스펜더블’은 그가 두려워 도망친 죽음을 숱하게 반복하는 직업이었다.
뭐 어때, 다시 복제될 거잖아? 말 그대로 실험용 쥐가 되어 구르고 또 구르는 미키. 방사능, 유독 가스, 바이러스 실험에 이르기까지 복제인간이라는 명목 하나로 그는 죽고 또 죽는다. 니플하임 행성에서 단 한 명 있는 익스펜더블인 미키는 그 행성 가운데 유일하지만 누구보다 유일하지 않은 존재다.
삶이 고귀하고 살인이 금기시되는 이유는 누구나 한 번 꺼지면 되살릴 수 없는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삶의 연속성을 끊어버리는 살인 행위는 그 자체로 끔찍한 죄악이다. 그러나 죽음에서 벗어난 삶의 연속성을 가지는 자가 바로 익스펜더블이다. 그들은 고통을 느끼고 죽음을 맞이하지만 기억은 이어져 새로운 몸으로 프린트된다. 마치 인형을 찍어내는 공장처럼 프린트되는 미키. 그는 언제든 죽어도 상관없는 소모품이자 대체품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멀티플 사건은 반복되는 죽음에 나름 적응하며 체념하던 미키에게 다시금 살고자 하는 욕망을 일깨워준다. 죽은 목숨인 줄 알았으나 원주 생명체 ‘크리퍼’의 도움을 받아 생존한 미키. 그 사실을 모른 채 본부에서 18번째 미키가 복제되며 미키가 두 명이 되는 멀티플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또 다른 내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면서 미키는 ‘연속하는 나’가 아닌 ‘분리된 나’로서 변화된 속성을 띠게 된다. 즉 미키17 그 다음 미키18이 아닌, 미키17과 미키18이 된 것. 이들은 같은 기억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태도와 행동을 보인다. 그러자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대체품의 죽음이 아닌 고유한 한 사람으로서의 죽음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한다. 평소 같았다면 실험 약의 부작용 다음에는 그냥 죽여 달라고 했을 미키이지만, 숨을 헐떡이며 죽기 싫다고 외친다. 고유한 개체로서의 존엄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지도자 마샬은 누구보다도 그 대체품을 유용하게 소모하는 순혈주의자다. 그가 개척하고 싶어 하는 새로운 이상향은 과학 기술을 활용해 태어난 불량 식품 같은 인간이 아닌 순수한 ‘번식’을 통해 태어나는 인간이다. 저녁 식사에서 여성 캐릭터 카이를 향해 건강한 가임기 여성이라며 예찬하는 마샬 부부. 카이는 묻는다, 자신이 자궁으로 보이냐고.
결국 지도자 마샬 부부의 눈에 그들은 모두 먹음직스러운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한 번 음미한 후 먹어 치운 뒤 또다시 구매하면 그만일 뿐인 소스인 것이다. 익스펜더블의 목숨은 비싼 카페트보다 하찮고, 새로운 행성에서 인류의 정착을 위해 가임기 여성은 번식을 위해 힘써야 할 자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온갖 과학의 수혜는 누리면서도 그 과학으로 탄생한 복제인간은 혐오하고 순혈 인간을 유용한 장기로만 칭송하는 그들 지도자들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명백한 적대 세력이자 가장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드러난다.
반면 니플하임 행성에 거주하는 생명체 ‘크리퍼’는 작은 구성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로,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인간 공동체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집단이다. 극중 쉽게 쓰다 버려지는 미키와는 대조적으로 그들은 작은 베이비 크리퍼 하나를 위해 온 구성원 전체가 그를 구하기 위해 응답한다. 인간의 이기로 인해 인질로 잡힌 베이비 크리퍼, 그리고 그 울음 소리에 하나로 모여 응집하는 크리퍼 무리는 자연스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속 오무의 행진을 연상케 하며 외형 또한 흡사하다.
어떤 존재든 소모품으로 취급하며 짧은 생각으로 폭정을 일삼다 가장 하찮게 여기던 존재인 익스펜더블에게 죽임을 당하는 마샬, 그리고 작은 생명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고 구해낸 원주 생명체 크리퍼. 그들 집단의 대립과 결말은 명확하고 알기 쉽게 두 갈림길로 나뉜다.
씁쓸한 뒷맛을 남기던 기존 필모그래피의 결말을 기대했다면 다소 의외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모든 것이 내 탓이오 하고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사실은 죽기 싫다고, 살고 싶다고 말하는 미키가 행복해질 기회를 얻는 꽉 닫힌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인력과 자본이 투입된 할리우드 영화에서 불가피하게 고려해야 했을 신중한 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키의 악몽 속 경고의 메시지를 통해 이 영화의 결말은 비로소 완성된다. 악몽 속 미키18의 희생이 무색하게 새롭게 프린트되고 있는 마샬. 영화는 주인공의 행복한 결말과 함께 엄중한 경고를 들이민다. 과학 기술과 마비된 윤리의식 아래 마샬과 같은 지도자는 프린트로 찍어내듯 지금도, 그다음에도 동일한 모습으로 반복해 출현할지도 모른다고. 공교롭게 영화를 관람하면서도 현실의 많은 사회적 이슈가 오버랩되는 만큼, <미키17>이 SF적 상상력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휴머니즘이자 사회를 향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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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렸다, 이런 영화.
영화
하이파이브
판타지 / 대한민국 / 119분
-감독: 강형철
-배우: 이재인, 안재홍, 라미란, 김희원, 유아인, 오정세, 진영
예고편부터 얼마나 기다렸던가, 올라오는 짤들을 보면서 얼마나 눈을 흐리며 영화관 가기를 고대했는가!
영화관가서 보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신나고 재미있는 영화 정말 오랜만이었다.
갑자기 초능력을 얻은 한국형 서민 히어로물이 아니라 배우들의 차력쇼를 보았다. 아니, 조연마저도 연기 구멍이 없었다.한국형 신파? 쬐금 나오다가 말아서 그것조차도 좋았다. 딱 그정도가 나와서 좋았다고 할까나. 물론 CG가 어색하다는 말이 있지만 뭐 어때! 그런 영화인데!
강형철 감독님이 <써니> <과속스캔들>의 감독이라 그런 느낌이 난다고 했지만 오히려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님의 냄새가 났다. 영화 쪽 보다는 <닭강정>의 이병헌 감독님 같았다. 끝없는 말장난과 뇌절과 뇌절을 거듭하는 티키타카가 내 맘에 쏙 들었다.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배우가 되어버린 것 같은 유아인 배우와 안재홍 배우의 합이 매우 좋다.
일 터지기 전에 얼마나 일을 많이 해 놓은 건지 모르겠지만 이병헌 배우와 더불어 '연기로 보답할게요'의 표본이 될 수도... 유아인 배우가 최근에 좀 무거운 캐릭터를 많이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저런 깨방정 캐릭터를 정말 잘 하는 사람이었던 걸 잊고 있었다. 유아인 배우가 아니라면 저걸 누가 소화할 수 있었을까?
안재홍 배우야 이쪽 분야(!) 갑이니까! 아! 그래서 <닭강정>이 더 생각 났을지도!
언제 저렇게 컸는지 귀여운 이재인 배우의 연기는 딱 그 나이의 청소년이었다. 아빠랑 싸우기도 하고 장난도 치는. 김희원, 라미란, 오정세 배우야 뭐 이름만 들어도 보증수표니까.
그런데 박진영 배우. 아이돌 출신이라는 게 무색할 만큼 연기를 잘 한다. <악마판사>에서 보여줬던 눈빛들과 다르게 악역도 잘 한다. 신구 할아버지를 삼켰다는 숏츠들을 많이 봤는데 진짜 어떻게 그렇 몸짓을 할 수 있나 신기했다. 최근에 똑같이 아이돌 출신인 김준영 배우만큼 다작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소재가 '도교'라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서 본 것 같은 기증자가 누군지 매우 궁금하기도 하고 ㅎㅎ 최근에 괴물과 도교를 소재로 글을 쓰고 있어서 그런가 더 몰입이 되었다.
개봉하면서 <아라한 장풍대작전>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 이유도 그럴 것이다. 문신이 옮겨 가는 것이 비슷하기도 하니까 그렇겠지. 그 영화에서도 여러 캐릭터들이 깨방정이 맛나게 나온다. 안성기 배우도 살짝 합류하고 절정은 쿠키영상의 봉태규 배우라고 볼 수 있다. 두 영화에서 결이 비슷한 건 류승범 배우와 유아인 배우려나?
영화의 줄거리를 말 안하려니 배우들 이야기만 잔뜩했지만 아직 영화관에 있을 때 꼭 한 번 보기를 바란다. 누구는 뭐 이런 걸 영화관에서 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 꼭 '그런' 영화들만 개봉하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영화이고, 후속작이 만들어지려나 기대가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 물론 후속작이 안 만들어지는게 대문자 I에 가까운 서민 히어로들의 히어로 생활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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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승-전까지 전력질주, 결에서는 경보 '베테랑 2'
선하게 생긴 막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이다. 말 그대로 베테랑인 서도철. 오늘도 범죄자들 잡기에 여념이 없다. 팀은 그대로다. 상관은 오재평(오달수). 동료는 봉윤주(장윤주), 왕동현(오대환), 윤시영(김시후)다. 네 명의 팀원끼리 주부 도박단을 해치운 서도철의 팀. 어느 날 대학 교수가 살해됐다는 뉴스를 본다. 앵커는 살해당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 이 사람은 과거에 제자를 성폭행한 전력이 있지만 의심만 남겨둔 채 무혐의로 풀려났다. 제자는 충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분을 샀던 교수. 하지만 교수는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적절한 처벌을 받지 못한 범죄자가 살해당한 것이다. 연쇄살인이라는 직감이 문득 드는 서도철. 이미 과거에 처벌을 적게 받은 범죄자들이 연이어 살해당한 바 있기 때문에 연쇄살인마일 거라는 추측이 어렵지 않았다. 이 연쇄살인마 '해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려고 했던 어느 날. 경찰 내부에서 전석우(정만식)가 출소할 거라는 말이 들린다. 전석우는 과거에 어떤 여성을 밀쳐 죽게 한 혐의가 있었다. 혐의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감옥에 있지 않았던 전석우. 한국사회가 들끓는다. 1편에도 나왔던 박승환/정의부장(신승환)이라는 유튜버는 온 사회에 미움을 뿌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화가 난 여론에 불을 붙이는 소셜 미디어와 유튜버들. 온 세상이 범죄자들에게 응당한 처벌을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어수선한 강력범죄수사대에 막내 형사 박선우(정해인)가 합류한다. 과연 서도철과 동료들은 '해치'를 잡을 수 있을까?
<괴물>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봉준호의 <괴물>이다. 그 이유는 <괴물>이 한강 대로변에 튀어나온 괴물만을 보여주려 했던 건 아니듯 <베테랑 2>도 서도철이 범죄자들을 잡는 것만이 핵심인 영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두 영화는 '어떻게'의 측면에서 공통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들어간다. 위에서 쓴 바와 같이 글쓴이는 <괴물>처럼 <베테랑 2>가 세계의 구성요소를 그렸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바로 빌런 '해치'의 캐릭터 세팅과 미디어를 활용한 방식 때문이다.
이 영화의 메인빌런은 '해치'라는 연쇄살인마다. 해치는 쉽게 말해 자경단이다. 자경단의 뜻은 간단하다. 경찰이 아닌데도 타인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 내지는 치안유지를 위해 시민들이 결성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해치는 이 단어의 정의에 따라 움직인다. 한국사회에서 악하지만 올바른 처벌을 받지 않았던 사람만 골라 살해하는 것이다. 이 자경단 연쇄살인마와 베테랑 형사 서도철의 대립이면 사실 '범죄도시'랑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해치를 둘러싼 환경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 환경이 이 영화가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것 그 자체다. 이 영화를 이끄는 질문 두 가지는 '해치가 과연 누구일까?'와 '해치가 언제 잡힐까?'라는 서스펜스라고 생각한다. 후자는 영화가 메인빌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어렵지 않아 이해하기 쉬운데 전자를 놓치면 이 영화의 미덕을 잃기 쉽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가 해치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써 본다. 이 영화는 사실 거대한 속임수를 통해 해치를 묘사하고 있다. 이 영화의 모티브 중 하나는 자경단이 가진 딜레마인 판단이다. 판단이라는 게 뭘까? 어떤 인간이 타인 간의 사건에 대해 이거다!라고 의견을 내는 일이다. 우리 직업이 대법원장이 아닌 한 이건 실수하기 쉽다. '네가 뭔데 남을 판단해?'라는 말에는 '나 혹은 너의 판단이 매번 올바르지 않다'는 불확실성을 전제로 깔고 간다. 이 영화는 그 불확실성을 동력 삼아 질주한다. 어떤 인간이 나와서 누구를 판단한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른 사건이 영화의 플롯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 판단에 깔린 감정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본 작은 묘사 한다. 이렇게 <베테랑 2>가 영화 안에 빼곡한 정확한/부정확한 판단으로 구성된 것은 <괴물>이 당시 한국사회라는 괴물을 묘사한 것과 유사하다. 단순히 영화가 서도철의 추격극만 담은 것이 아니라 시대상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해치는 한 명이 아니다. 여러분도 눈 크게 뜨고 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영화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미디어를 표현한 방식도 흥미롭다. 정의부장이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정의부장이 이 영화에서 구사하고 있는 논리가 영화의 통일성을 살리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중략한다). 이것에 연장선상에서 영화 안의 정보가 어떤 도구로 통제되고 있는지가 흥미로웠다. 이게 1차원적으로 무작정 나쁘다는 식의 묘사가 있었다면 영화가 가진 깊이를 더 얕게 만드는 수가 됐을 텐데 이걸 경제적으로 활용한 덕에 논리적인 접근법에는 여지가 없다. 이 영화가 구사하는 게임 중 하나는 '이게 정의라고 생각해?'다. 이 말은 곧 '저거도 정의고 이거도 정의 같은데?'라는 양자택일의 딜레마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을 미디어를 통해 잘 살렸다. 영화가 기본적인 설계에 있어 성실했다는 의미다.
이질감이 크다고 생각할 것 같은
이 영화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캐릭터는 바로 주인공의 아들서우진(변홍준)이다. 해치의 자경단 활동을 막는 게 영화의 핵심인데, 아들 서우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인물 역시 영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는 타인이 타인에 대해 쉽게 가하는 폭력이고, 이것이 온라인상에서 쉽게 유통된다는 것이 그렇다. 영화는 이 쉽게 유통되는 폭력을 우진이가 겪게 만든다. 사실 아버지 서도철은 이 문제를 근작에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형사 서도철은 직업인으로서의 자신에 취해서 이 문제를 깊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중요하다. 이야기의 해결과정에 있어 꼭 필요하니까. 이게 단지 부자간의 관계만 1차원적으로 보이면 흔히 말하듯 '기능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적어도 류승완 감독이 진단한 한국사회의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 들여다볼까? 아예 아버지 서도철의 입에서 나오는 몇 대사와 아들 서우진이 보여주는 행동을 보면 그 근원이 설정되어 있다. 이 부분은 영화가 시대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어쩌면 이게 원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내면의 무언가를 이 영화에서 분명하게 강조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무리라는 측면에서도 아들 서우진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 영화가 뭘까? 이 한국사회를 가로지르고 있는 수많은 분노에 대해 해부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진 역시 마찬가지로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분노를 내면에 갖고 있다. 이 인물을 둘러싼 두 가치가 충돌한다. 사회가 미디어를 통해 만든 분노 vs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지는 것의 충돌이다. 영화가 전자를 지배적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에 후자가 좀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물론 후술 하겠지만 영화가 실제로도 후반부를 갑자기 마무리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것에 대해, 그러니까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진 분노에 대해 대비되는 가치로 서우진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온갖 오판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우리에게도 남아있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다.
충무로 액션 키드?
보통 류승완 감독하면 관객들이 바라는 건 액션 연출일 것이다. 우선 좋았던 것부터. 이 영화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박선우의 액션은 내내 호쾌했다. 이 인물은 이야기 전개상 액션이 굉장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사용하는 액션 장르(?)상 몸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면 유치해지기 쉽다. 정해인 배우는 합을 맞추기 이전에 동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하고 구사한다. 장면을 짧게 잘라서 빠른 템포로 이어 붙인 연출이 아니라 그 장면을 찍기 위해서 여기선 이렇게 움직이고 어떤 인물은 저 방향으로 빠지는 식의 동선을 잘 정립한 티가 났다. 대표적으로 박선우와 서우진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 몇 있는데 이 시퀀스는 인물의 카리스마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좋은 선택이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어떤 액션 장면은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여러분이 이 <베테랑 2>의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보면 눈에 띄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서도철과 박선우가 빗속에 있는 장면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생각나 류승완이라는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해 보면 잘 어울리는 장면인 듯하다. 물론 이 장면은 실제로 영화 안에서 처절하게 잘 구현됐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장면 역시 이 영화가 핵심으로 다루고 있는 딜레마를 정통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점은 영화가 통일성이 있다는 점에서 나름 류승완 감독이 공을 들인 티가 난다. 심지어 비가 누구한텐 안 내리고 또 특정인에겐 내리고 하는 게 아니잖아?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점에서 빗속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당위성도 가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 글쓴이는 액션의 핵심 중 하나가 전달력이라 생각한다. 누가 어떻게 뭘 때리고 받고 해야 액션의 박진감이 살아 숨 쉰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 영화에서 정해인, 황정민 두 배우가 보여주는 액션은 정말 온갖 고생 다 했다는 점에서 대단했지만 장르적인 특성을 잘 살린 선택이었는지는 미지수다. 화려해서 전달력이 좋은 것과 너절해서 복잡해 보이는 것이 한 영화에 다 들어가 있다.
경향성을 띈다고 봐도
언제부턴가 류승완 감독의 영화들이 올드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 <베테랑 2>는 류승완의 올드화(?)가 두드러지는 영화였다. 아마 많은 분들이 지적할 것 같은 오프닝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모르겠다. 이 영화는 엄연히 전작이 있는 시리즈물이다. '조태오'라는 단어가 영화 전면에 등장하고, '내가 죄짓고 살지 말랬지?'라는 말이 본작에도 등장한다. 그래서 오프닝이 시리즈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한 것 같다. 선의로 해석하면 이렇고 사실 영화를 보고 느낀 그대로 써보자면 이게 아니어도 시리즈의 연결성은 파악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또, 액션 장면이 들어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게다가 장면이 영화 후반부까지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더 나아가 오프닝이 자경단 부추기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단 조금도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건 봉윤주(장윤주)가 이상한 자세로 누워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어느새부턴가 류승완의 영화들이 후반부가 엉성해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정말 중요하다. 영화가 보여주려고 하는, '어떻게 악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에 집중한 연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상업영화다. '베테랑'이라는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다. 그렇다면 마무리에 있어 더 숙고했어야 했다. 사이다를 고르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더 정의의 의미에 탐구하고 싶었던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영화가 내적 논리를 지키기 위해 둔 선택이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후반부의 전개가 허점이 크다는 걸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그 단점을 가리지 못했다는 게 패착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렇게 해야만 해!'라는 판단이 느껴지기는 하나, 영화가 '이렇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데에는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군함도>에서 억지로 감정적인 울림을 유발했던 점이나 <밀수>에서 VFX가 엉성했던 것이 연상된다. 이 단점은 치명적이라 영화 전체적인 완성도에 태클이 들어올 수준이다. 영화가 내내 윤리 게임을 벌이다가 갑자기 대충 수습한 다음 '이거 보고 싶었지'하고 끝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 영화가 류승완 감독의 야심을 오롯이 담았다는 데에는 여지가 없다. 이 영화는 류승완 감독이 <부당거래>가 공권력의 그림자를 다루듯 전하고자 하는 바를 가감없이 표현한 영화이기도 하고, <짝패>에서 다룬 처절한 액션을 구현한 영화이기도 하다. 또 황정민이라는 베테랑의 역량이 발휘된 영화이자 정해인의 여러 얼굴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류승완이라는 예술가가 이젠 그의 거대한 천재성을 혼자서만 발휘하기는 어렵지 않나라는 우려가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문제만 해결하면 장땡이라는 것, 그러니까 자경단의 속성으로 한국사회를 들여다보겠다는 야심은 눈에 들어오나, 그걸 잘 마무리했나?라는 관점에선 아니오라는 답이 딸려오는 영화가 <베테랑 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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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속으로...스웨덴] 알렉산더의 네버랜드는 도피가 아니라 저항이다
피터팬의 환상 세계를 넘어선, 상상의 윤리와 저항의 힘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피터팬은 현실을 등지고 네버랜드로 떠납니다.
그곳은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꿈을 꾸는 환상의 섬이죠.
잉마르 베르만의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 (1982)》에도, 현실의 폭력과 권위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는 알렉산더. 어린 알렉산더 역시 피터팬처럼 환상의 세계를 원하지만, 그 목적은 사뭇 달랐습니다. 그의 상상은 단순한 도피나 동심이 아닌 현실과 맞서기 위한 ‘저항’이자,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가까웠죠. 그에게 상상은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연극의 목적은 세상에 거울을 비추는 것이다. 선은 선대로, 악은 악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비춰내며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다.”
— 『햄릿』 3막 2장 16~19행
『햄릿』에서 “연극의 목적은 세상에 거울을 비추는 예술”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영화 속 주교는 오롯이 진실만이 옳으며 거짓을 행하는 행위는 악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세계에서는 연극도, 상상도, 작은 거짓말 하나 용납되지 않았죠. 그러나 그가 말하는 ‘진실’은 정말 정당했을까요?
스웨덴, 느린 진보의 시간을 거쳐 평등한 국가가 되기까지
작은 세계로 벗어나 알렉산더가 마주한 현실 세계는 우리가 아는 평등한 스웨덴의 이미지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적 배경은 1900년대 초. 신분제가 폐지된 지 수십년이 흘렀지만 스웨덴 사회의 계급 구조는 여전히 견고했고, 사회 곳곳엔 그 잔재가 남아있었습니다.
당시 스웨덴의 국교였던 루터교는 절대적인 질서와 규율을 강조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교는 그 보이지 않는 질서의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자유롭고 예술적인 영혼을 지닌 에크달 가문의 사람들은 이러한 종교적 억압과 대조를 이루며, 영화 속 갈등의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켜 나갑니다.
에밀리와의 재혼을 앞둔 주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집과 가구, 옷, 보석, 귀중품, 친구, 습관, 생각… 모두 두고 오란 말이오.”
이 말은 그녀에게 단순히 결혼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당신의 자아를 내려놓으라”는 요구와도 같았죠. 그리고 알렉산더는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봅니다. 그의 눈에 비친 현실 세계는 잔혹했고, 주교가 말하는 질서는 곧 폭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에밀리는 주교와 재혼을 하게 되었을까요?
오마주, 그러나 달라진 여성 서사
《화니와 알렉산더 (1982)》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연출과 상징 곳곳에서 『햄릿』을 연상 시키면서도 베르만 감독은 독자적인 메시지를 섬세하게 투영합니다. 마치 “오마주를 한다면 이렇게 하라”는 모범적인 예시처럼 읽히는 대목이기도 해요. 그러나 여성 서사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햄릿』극 중 극 <쥐덫>의 왕비는 남편의 죽음 이후 어떤 상대와도 재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루시아너스(Lucianus)라는 남성과 재혼하게 됩니다. 강렬했던 왕비의 맹세는 보잘것 없이 흩어졌고, 이는 그녀의 선택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고 말죠.
반면 에밀리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을 겪지만, 두 아이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재혼을 선택합니다. 그녀의 선택은 약속의 배반이 아닌, 생존을 위한 강인한 결단입니다. 고전에서 파생된 서사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한, 베리만 감독의 섬세한 각색이 돋보이는 지점입니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알렉산더는 주교의 세계에서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힙니다. 주교는 그를 다락방에 가두고, 십계명 중 하나인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교리를 근거 삼아 가혹한 벌을 내립니다. 그러나 알렉산더에게 ‘거짓’이란 악의가 아닌, 상상력의 일부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예술적 자유와 창작이 숨 쉬는 에크달 가문에서 자란 알렉산더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상상과 이야기로 견뎌냈습니다. 하지만 주교는 그런 ‘거짓’조차 죄로 규정하며 아이를 단죄 하려 들었고, 결국 현실 세계의 권위적인 교주 앞에서 작은 세계의 어린이는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구원의 손길, 이방인의 등장과 주교의 파멸
다락방에 갇혀 있던 화니와 알렉산더를 구한 인물은,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한 이삭이었습니다. 유대인 상인으로, 스웨덴 사회에서 이방인처럼 존재하던 그는 어디선가 신비롭고 기묘한 골동품들을 수집하며 에크달 가문과도 교류를 이어온 인물입니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 병들어가던 화니와 알렉산더를 작은 세계로 돌려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을 감행합니다.
주교가 다락에서 마주한 아이들은 실체가 아닌, 그의 내면에 떠오른 환영이었습니다. 그 순간 주교는 처음, ‘작은 세계’ 안으로 발을 들입니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 전환은 꽤나 흥미롭습니다. 처음엔 비어 있는 다락방 바닥을 비추며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공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황급히 다락방을 뛰어 들어오는 주교의 시선을 따라 같은 공간을 다시 비출 때, 그곳엔 평온히 잠든 화니와 알렉산더가 누워 있습니다. 주교가 그들의 실체를 확인하려 손을 뻗는 찰나 에밀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건드리지 말아요!”
주교가 환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 틈을 타, 아이들이 무사히 도망치길 바라는 사람처럼 말이죠.
주교에게 환영은 단순히 경험했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진실만이 선하다’고 믿어온 그가, 악이라 여겨온 세계 — 즉 ‘거짓의 영역’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순간이기 때문이죠. 다락방 한가운데, 십자가 아래에서 그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한편 이삭 야코비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잠들지 못한 알렉산더는 이삭의 집 안을 누비다 기묘하고 오싹한 기운이 흐르는 방 한가운데에서 아버지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미 여러 차례 나타난 환영이었지만, 이번 공간에서의 만남은 특별합니다. 이승과 저승, 현실과 비현실을 잇는 통로 같은 곳에서 알렉산더는 아버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눕니다. 죽어서도 늘 곁에 있겠다는 아버지의 위로는 차갑고 섬뜩하지만, 동시에 따뜻하고 다정합니다. 알렉산더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주교를 진정한 ‘아버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일지도 모르죠.
마음의 어둠을 들여다보는 사람
알렉산더는 이삭의 집에서 이스마엘을 만납니다. 그는 영적으로 강인하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초월적인 능력을 지녔으나, 오히려 그 능력이 세상에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져 격리된 인물이었죠. 하지만 그런 이스마엘에게도 알렉산더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알렉산더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조심스럽지만 끈질기게 다가섭니다. 그리고 마침내, 알렉산더의 마음 속에 억눌려 있던 주교에 대한 증오를 발견하죠.
— 이스마엘은 알렉산더의 어둠을 건드려 끔찍한 환영을 보여줍니다.
불길에 휩싸인 숙모가 나타나, 고통으로 몸부림 치며 주교의 침실로 들어갑니다. 수면제를 먹고 깊이 잠든 주교는 불길 속에서 파멸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단순한 환상이라면 좋았겠지만— 다음 날, 주교는 실제로 죽음을 맞습니다.
이스마엘이 속삭이던 모든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재미만을 추구하지 말라(El blot til lyst)”
“재미만을 추구하지 말라(El blot til lyst).” — 첫 도입부에 등장하는 메세지
이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예술을 받아들이는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물음입니다.
알렉산더를 억압하던 주교의 파멸은 일시적인 통쾌함을 선사하지만, 곧 그 감정의 정당성에 대해서 곱씹게 되지요.
내가 느낀 이 통쾌함, 카타르시스는 과연 정당한가
남을 파멸시켜 얻는 해방은 진정한 해방일 수 있을까
영화는 유희와 감정적 해소에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의 진실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예술은 때로 모두를 위로하고 숨 쉴 틈이 되어주지만, 결국 우리는 현실 세계를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작은 세계를 품고 살아가되 그 안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 영화는 마지막 순간, 날카로운 현실의 감각을 일깨웁니다.
오늘의 크레마 리뷰 어떠셨나요? ☕
하나의 장면, 한 잔의 크레마처럼 잔잔하고 진한 여운을 담아 글을 씁니다.
📧 crema@maily.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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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이었던 내가 마블에 발을 들여놓다
마블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마블에 빠지게 만들어준 영화 <블랙위도우>. 캐릭터의 반이 죽어서야 마블에 입성한 사람으로써 눈물을 머금고 주행 중이다. 마블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봤다가 그 화려함에 반했고, 캐릭터에 반했던 작품이었다.
영화 <블랙위도우> 시놉시스"모든 것을 바꾼 그녀의 선택” 어벤져스의 운명을 바꾼 블랙 위도우, 그녀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벤져스의 히어로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는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레드룸의 거대한 음모와 실체를 깨닫게 된다.
상대의 능력을 복제하는 빌런 태스크마스터와 새로운 위도우들의 위협에 맞서 목숨을 건 반격을 시작하는 나타샤는 스파이로 활약했던 자신의 과거 뿐 아니라, 어벤져스가 되기 전 함께했던 동료들을 마주해야만 한다.
폭발하는 리얼 액션 카타르시스! MCU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할 첫 액션 블록버스터를 만끽하라!*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블랙위도우>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마블 입문용으로 괜찮은 작품이지 않을까?
마블 영화에 문외한인 사람으로서 이제까지 본 유일한 마블 영화는 <닥터스트레인지>였다. 베네딕트 컴버비치를 보기 위해서, 그가 나온 작품이 마블이었기에 본 것일 뿐이었다. 마블 영화에서 등장인물도 존재만 알고 도대체 그들이 뭘하고 돌아다니며 이 세계관이 어떠한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웅장한 bgm만 알았달까? 한마디로 말하면 천연기념물이었다. 안본눈, 안본뇌가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영화 <블랙위도우>를 다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마블 영화를 보고 싶다! 였다. 블랙위도우라는 캐릭터가 멋지게 다가왔고, 마지막 장면에서 한 가족을 지켰고, 다른 가족을 이제 구하러 가야된다고 말하며 끝이 난다. 그 다른 가족이 어벤저스를 말하고 있어서 그 시리즈를 안 본 나로써는 어벤저스와의 관계성을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영화 <블랙위도우>는 천연기념물과 같은 마블 입문자들에게 블랙위도우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내면서 다른 마블 캐릭터들에 대한 호기심과 그 세계관을 이해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액션신 짱이야!
개인적으로 영화 <블랙위도우>의 액션신은 굉장히 좋았다. 다른 분들은 블랙위도우의 액션신들이 기존 마블 캐릭터들의 작품보다 그 화려함이 덜했다고들 하시는데 뭐,,, 나는 비교 대상이 없으니,, 상관없다. 근데 보지 않았지만 초능력이 없는 블랙위도우의 액션, 이 정도면 굉장히 화려한 것이 아닌가 싶긴 하다.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거의 육탄전을 중심으로 액션신이 진행돼서 막 뭐 빔쏘고 천둥 내리치고 주먹 날라가고 그런것보다 정말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싸우는 블랙위도우의 액션신이 큰 타격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솔직히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서 그 강도가 떨어질 뿐이지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나지 않나. 빌딩에서 떨어지고 차에서 구르고, 그래도 살아나는 끈질긴 나타샤의 생명력!!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걷고 싶어서 합정에서 홍대까지 걸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가 발목이 나갔는데,,, 나타샤는 너무 강철이었다. 오토바이와 타체이싱, 그리고 위도우들끼리의 액션신까지 보는 내가 다 스트레스가 풀리고 왜 액션신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다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나올 수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솔직히 마음이 아프다. 이제야 마블에 입성햇는데 그리고 블랙위도우로 마블에 입성했기 때문에 최애 캐릭터인데!! 죽었다니!! 그럼 이제 스칼렉 요한슨의 나타샤는 못보는 것인가..? 블랙위도우 2,3, 안나옵니까아!! 나왔으면 좋겠다.
이러한 나타샤 팬들의 질척거림을 예상했는지 스칼렛 요한슨은 이 작품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향하는 작품이라 설명했다. 처음에는 왜!! 죽었자나!! 나는 나타샤 못보잖아!! 이랬다가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면 영화 <블랙위도우>는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는 그 중간다리의 역할을 굉장히 잘해준 작품이었다.
시기적으로 시빌워와 인피니티워 사이의 시기로 이미 앤드게임까지 나온 현재의 시점에서는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리고 나타샤의 과거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지만 새롭게 블랙위도우를 이을 옐레나를 등장시키면서 앞으로 마블의 주역으로 세계관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캐릭터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래서 과거의 이야기지만 미래의 이야기를 연결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를 잘 맞춰주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마블을 이해하지 못했던 내게 마블의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준 매력적인 작품 <블랙위도우>. 안 나올거 알지만 그래도 시즌2, 3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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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토대위의 완성형 오컬트,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기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출처 : 왓챠피디아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과 ‘봉길’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이 합류한다.
“전부 잘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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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2월, 오컬트를 좋아하는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던 영화가 개봉했다. 한 줌에 불과한 오컬트판에서 그저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던, 절대 기대할 수도 없었던 천만 관객이 나온 <파묘>이다. <파묘>는 시작부터 달랐다. 웰메이드 오컬트 작품을 찾아보기 힘든 나로서는 큰 감명을 받았던 <검은 사제들>을 연출하신 감독님께서 또 다시 같은 장르의 영화를 만드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오매불망 극장 개봉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메인 포스터와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단숨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도 그럴게, 예고편에 드러난 스토리가 기대했던 만큼 흥미로웠으며 포스터 디자인은 그러한 기대감을 최대한으로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출처 : CGV
각 등장인물의 시선이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었다. 수많은 디자인 요소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미니멀한 형태로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가 쉽지 않은데, <파묘>가 그걸 해낸 것이다. 한국 오컬트의 근간에 있는 '풍수지리'를 활용함은 등장인물 중 '풍수사'가 있었기에 예상할 수 있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동서남북의 개념을 메인 포스터에 적용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더욱 새롭게 다가왔던 거 같다. 보통 극의 전체적인 내용과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담으려고 하지, 디테일한 소재를 활용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점부터 나는 '아, 감독님께서 기초부터 꽉 잡고 가는구나' 싶어서 스토리에 대한 기대가 더더욱 커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처 : CGV
위 버전의 포스터 또한 너무 취향이었다. 가장 먼저 공개되었던 캐릭터 포스터처럼 미니멀한 구성임에도 여느 포스터보다도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경문이 써져 있는 얼굴을 클로즈업함으로써, 긴장된 표정과 눈빛이 강렬하게 다가오고, 스토리의 진행이 얼마나 긴박할지 은연중에 상상하게 되는 즐거움 또한 이끌어냈던 거 같다. 각 캐릭터의 얼굴 일부만을 배경으로 사용하여 영화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되, 여백을 살리는 디자인으로 타이틀 또한 각인되었기 때문에 '홍보' 포스터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고 감히 생각한다.
'파묘', 이토록 직관적인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한 것도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한국 오컬트 중에서도 특히나 '묘'와 관련된 속설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퍼져 있기 마련이다. 묫자리는 해가 잘 드는 곳으로 해야 한다, 묘가 있는 부근에서 무언가 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 등 예로부터 이어진 유교 사상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현상들을 위와 같은 미신들로 이미 인식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파묘>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공동체를 정확하게 건드렸다. 묘를 파헤쳤다고! 큰일났네, 대체 무슨 일이 생길까?
포인트1. 오컬트와 미스터리의 곁들임
오컬트는 곧 종교이자, (나에게) 종교는 곧 오컬트이다. 사람의 맹목적인 믿음과 순수한 신념은 아이러니하게도 괴기스러운 이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살린다. 장재현 감독의 연출작 중 <검은 사제들> 또한 이러한 공식을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서양 오컬트의 주요 소재인 '악마'와 '엑소시스트'를 거의 그대로 끌고 왔다는 점에서, 물론 연출은 독보적이고 완벽했지만, 여타 외국 작품들에서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를 떠나 이제는 조금 더 한국스러운 오컬트를 갈망하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파묘>가 이 부분을 완벽하게 간파한 것이다.
출처 : 왓챠피디아
한국식, 아니, 조금 더 넓게 가보자. 동양적인 오컬트란 뭘까? 개인적으로 동양의 오컬트 근간에는 '음양오행'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주의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어떠한 이상현상이나 초자연적인 일을 이해해보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바로 그 공식이다. '금, 수, 목, 화, 토'의 다섯 가지 원리에 따라 우주의 만물이 생성하고 또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보는 사주에는 수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퍼져 있는 '오행'은 스스로의 인생을 파악하기에 간단한 방법으로 일컬어진다. 예를 들어, 모 연예인의 사주에 '수'가 부족해 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승승장구했다거나 하는, 일반인들도 피해갈 수 없는 정설과도 같은 미신이다. 다른 예로 SNS에 밈처럼 퍼져 있는 일화를 보면, 문신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시선도 '사주에 ㅇㅇ이/가 부족해서 했어요'라고 하면 납득하게 된다는, 그런 우스갯소리로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출처 : 왓챠피디아
<파묘>는 한국의 무교와 연관되어 있는 여러 직업이 한 데 모인다. 직접 영가를 파악하고 굿을 진행하는 무당, 그 옆에서 경문을 외는 또 다른 무당, 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지관, 그 옆에서 마지막까지 예우를 다 하는 장의사. 어떻게 보면 모두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이들이 '묘'라는 하나의 소재로 모여 각자의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매우 매력적이다. 여러 개의 장으로 나누어질 만큼 복잡했던 <파묘>의 극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이들이 처음 묘를 보러 갈 때 끝없이 이어지는 산 속을 굽이굽이 들어간다.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를 자처하여 들어가는 모습과도 같다. 그리고 이들은 경로를 잘못 들어가게 된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초~중반부까지 이어지는 숨막히는 전개로 한 사건이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숨을 돌릴 시간도 주지 않고 후반부가 시작되며 위 나레이션이 나온다. 내비게이션 음성을 활용한 트랜지션은 정말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미스터리함을 가중시키는 데 한 몫 했다. 이대로 끝이기에는 아쉬운 타이밍이었고, 그런데 대체 일이 어떻게 꼬이려나 상상도 안 되던 시점에 '첩장'이 나온다. 그리고 이 문제상황을 발견한 인물은 다름아닌 상덕이다. 처음부터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피하고 싶어했던 상덕이 오히려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는 발걸음을 하게 된다. 수직으로 꽂혀 있는 거대한 무덤은 서양 오컬트의 '역십자가'를 떠올리게 했다. 순수한 믿음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거꾸로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죽은 자의 영원한 안녕을 바라는 무덤이 수직으로 서 있을 수는 없는 거다.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는 본능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알아챈다.
포인트2. 인상깊은 연출
출처 : 왓챠피디아
여러 등장인물 중 무당 조합이 <파묘>의 흥행을 이끌었다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현대적으로 풀어낸 무당의 모습만으로도 획기적인데, 생사가 오가는 오컬트 세계관에서 두 인물의 서사까지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병에 걸려 평범한 삶을 포기한 후배가, 선배와 같이 있기만 하면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완벽한 캐릭터 디자인은 감독의 투철한 자료 수집에서 기인했다.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무당에 관한 정보를 찾아 다니던 중, 신병을 겪고 무교에 발을 들이며 몸에 경문을 문신한 분을 뵐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봉길'의 삶은, 섬세한 고증을 통해 더욱 실감나게 구현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출처 : 왓챠피디아
이름 없는 묘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 또한 다시금 언급하고 싶다. 뱀의 움직임처럼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을 직부감으로 담아낸 쇼트와 긴장감을 더해주는 사운드가 나오다가, 한 순간 끊긴다. 적막이다. 무덤과 그 뒤쪽으로 이어지는 숲을 매우 넓게 잡은 롱 쇼트는 그러한 정적과 소름 돋게 잘 어울렸다. 광활한 풍경이 주는 압도감을 적절하게 활용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배경에서 이어지는 화림의 대살굿 씬은 컷 연결부터 사운드 디자인까지 정말 완벽했다. 새까만 재를 얼굴에 바르는 화림의 강렬한 눈빛과, 그 뒤를 받쳐주는 봉길의 기세 있는 목소리는 지금까지 접한 '굿'을 재현한 장면들 중 가장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서양의 엑소시스트와 동양의 굿은 어떻게 보면 일반인에게는 그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성립이 되는가, 하는 갑론을박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분야이기에 조금 동떨어진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파묘>의 굿 시퀀스는 매우 차별적이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온 힘을 다 해 지금의 행위에 임하고 있는지 화면 너머의 관객인 나조차도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출처 : 왓챠피디아
이외에도 정말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있는데, 첫 번째 관이 열리고 그 혼령이 여기저기 날뛸 때, 과연 전화를 하는 상덕이 진짜일까, 문 앞에서 말하고 있는 상덕이 진짜일까? 하는 나폴리탄 괴담식 공포가 그대로 매체에 드러난 경우는 처음이라 속으로 굉장히 반가웠다. 공포 장르에서도 다른 시각/청각적 요소 없이 텍스트로만 즐기는 나폴리탄 괴담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소소하게 즐기고 있던 소재가 이렇게 영화의 한 장면으로 활용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롭고 흥미로웠다.
출처 : 쇼박스
그리고 도깨비놀이! 오컬트 장르답게 생소한 옛 설화를 기반으로 호러스러운 장면을 구현한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사실 '도깨비놀이'는 정확하지 않은 출처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명확한 행위가 있긴 하지만, '대화'만으로 영가를 속여 불러온다는 방법 자체가 오컬트에서 바이블로 등장하는 분신사바/위자보드와 같은 기묘한 분위기 그 자체이기에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미스터리함에 적절한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전통적인 기괴함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이에 더해, 제한된 공간에서 어떠한 물리적 상호작용 없이 네 사람만의 대화 흐름에 맞추어 카메라가 움직이며 다이나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부분 또한 감탄스러웠다. 도깨비놀이 자체는 제주도에서 발현된 일종의 굿이지만, 모든 지역의 사투리가 활용되었다는 요소도 꽤 매력적이었다. 절대 한 데 존재할 수 없는 각자의 지역적 특징을 지닌 것들이 일상적이지 않은 목표로 모여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고 이 세상 것이 아닌 무언가를 부르고 있다, 는 모순적인 상황에 혼란한 심리가 완벽하게 작용되었다고 본다.
물론, 아쉬웠던 부분도 몇 가지 있다. 초반에 화림과 상덕의 나레이션을 통해 사건의 시작과 등장인물들의 특성을 설명했던 만큼, 이후에도 설명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이 있었다. 특히 두 번째 관이 열리고 오니가 처음 등장한 직후, 화림이 혼령과 정령의 차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상덕에게 이야기할 때, 앞으로 우리가 결말을 위해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알게 되는 중요한 장면인 거 같은데 그저 말로만 설명하는 전개가 조금 아쉬웠다. 짧은 몽타주로 구성되고 끝났던 화림의 일본 요괴에 대한 끔찍했던 일화를 조금만 더 자세히 다루었다면 훨씬 매력 있게 표현될 수 있었을 거 같아서 더욱 마음에 남았던 거 같다.
1장에서 간접적으로 다가왔던 공포 요소와 달리, 2장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오니의 모습으로 인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표했을 것이다. 현실적인 공포가 아닌 판타지물에 나올 법한 크리처의 느낌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크리처 소재를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나로서는 마음 속으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커다랗고 붉은 공으로 디자인된 <파묘>의 도깨비불은 평소에 '도깨비불'이라는 소재 자체에 큰 흥미를 가지고 어떤 장르에서 어떤 형태로 활용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던 나에게는 또 다시 실망스러운 부분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모든 이를 무력화시켰던 오니를 무찌르는 방법이 음양오행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인 '금과 목은 상극이다'였다는 게, 누구보다도 전문가인 지관 '상덕'이 마지막에서야 깨달았다는 설정까지 결정적인 단서라고 보기엔 부족했기 때문에 다소 아쉬웠다.
포인트3. 역사적 의의
출처 : 왓챠피디아
<파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탄탄한 역사적 소재의 기반 위에 오컬트를 잘 올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정기가 흐르는 산맥에 철심을 박아서 그 기운을 끊어버린다는 속설, 오랜 시간 동안 별 거 아닌 미신이라고 여겨졌으나 계속 회자되는 증거와 영화 개봉 당시 대중들의 반응으로 하여금 해당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할 필요성이 분명히 있었음을 입증했다고 본다. 당시 삼일절이 가까워지던 시기에 개봉했던 점과, 극중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이 독립운동가의 성함 그자체이며, 영화 구석구석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이스터에그를 심어 놓았다는 것이 결합되어 큰 시너지를 냈다고 판단된다.
올해로 제106주년 삼일절을 맞았지만, 일본의 만행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파묘>는 매우 직설적이고 명확한 연출로 일제강점기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의식하고 기억해야 할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독립운동과 광복을 넘어, 독재와 민주화운동까지. 말 그대로 피로 쓰여진 우리의 자유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여담으로, 명백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영화 <파묘>는 동물권에 대해 올바르지 않은 태도로 임한 사실이 있다. 제작사 측에서 피드백을 통해 자정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긴 했으나, 작품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 직접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는 부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배우가 먹어야 할 은어를 감쪽같이 젤리로 만들고 여우 또한 CG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을 뿐만 아니라 마케팅 요소로 활용했으면서, 오로지 촬영을 위해 살아 있는 은어를 대량으로 죽이고 실제 돼지의 사체를 폭력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작품을 소비해야 마땅하다고 판단된다. 이는 공포/오컬트 장르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관련 종사자와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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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30] 스릴러로 돌아온 안젤리나 졸리의 추격극
영화 윈드리버의 타일러 쉐리던 감독이 신작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굉장히 건조하지만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가진 캐릭터를 등장시켜 일종의 복수극을 스릴러로 보여줬는데요.
이번 영화는 좀 더 스케일이 커지고 빨라졌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영화가 재미있습니다. 마음을 쫄깃하게 만드는 스릴러 영화에요.
시카리오 시리즈의 각본가로 유명한 타일러 쉐리던은 이제 연출을 시작하는 감독입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는 감독이네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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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자산어보>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 호기심 많은 '정약전'은 그 곳에서 바다 생물에 매료되어 책을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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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질라 VS 콩>
세상의 운명을 놓고, 지구상 가장 거대한 신화적 존재들의 스펙터클한 대격돌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