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tto2025-07-29 19:06:57
새벽의 숲을 헤치고
<이사> 리뷰
<태풍 클럽>이 주었던 노스탤지어, 해방, 초현실적인 감각을 기억한다. 소마이 신지가 그리는 아이들의 세계는 눈물 나게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남자 아이들의 달리기와 가출한 소녀를 좇으면서 나와는 거리가 먼 성장통을 그리기도 한다. 그 주인공들보다 조금 더 어린 초등학생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이사>는 <태풍 클럽>의 이전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구 흔들리는 소녀를 자신의 방식대로 담아 내며, <이사>는 제목의 의미를 조금씩 바꾼다.
주인공 소녀가 부모의 이혼을 겪어내는 것이 <이사>가 다루는 큰 사건이다. 아빠가 집을 비우고 나자 그녀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감정을 마주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일을 ‘해결’해 보고자 애를 쓴다. 그리고 관객들은 알고 있다. 젊은 부부의 복잡한 관계가 해소될 리는 만무하고, 소녀는 이걸 겪어 내야만 한다. 그러나 <이사>는 관객들이 어둠 속에 앉아서 자신의 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성장담을 그린다. 내내 동네를 뛰어 다니는 힘찬 발걸음, 집 어딘가에 숨어 있던 오래된 물건을 집는 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녀는 혼란을 헤치고 미래로 가는 길에 도달한다.
후반부에 영화는 배경을 완전히 옮긴다. 마츠리를 보러 간 여행은 내달리는 소녀와 아이를 쫓으려는 추격전처럼 변하고, 홀로 축제를 즐기는 것 같던 그녀는 밤새 숲을 헤매고 바다에 들어가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는 기묘한 경험까지 하게 된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소녀는 어디 가니? 하는 질문에 책가방을 맨 채 ‘미래로 가요!’ 하고 힘차게 대답할 수 있게 된다. 아빠가 홀로 떠난 이사, 아빠 방으로 하는 이사, 그리고 미래로 가는 이사가 되는 것이다.
이미지를 통해서 좀처럼 읽어내기 어려운 아이의 감정을 따라 가는 <이사>는 아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른들끼리의 갈등을 묘사하면서 드라마를 만들고 꿈 속에서 겪은 판타지를 보여 주는 것만 같지만 아름다운 ‘하이틴’ 영화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전의 나, 그리고 미래로 갈 준비를 마친 현재의 내가 교차하는 여행이다.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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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계+인 1부 / Alienoid, 2022
<도둑들, 2012>과 <암살, 2015>의 연달은 천만에 관객들은 자연스레, "최동훈 감독"의 차기작에 관심이 쏠렸다. 그런 그가 무려, 7년 만에 선보이는 <외계+인>은 미래와 고려 시대의 만남만으로도 충분히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데에 충분했다.
하지만, 걱정도 있다. <범죄의 재구성, 2004>을 시작으로 <타짜, 2006>와 <도둑들, 2012>까지 일명, "케이퍼 무비"는 흥행과 평가 모두 챙긴 것과 달리, <전우치. 2009>와 <암살, 2015>같은 시대극은 평가들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 했는지, 회사 이름도 "케이퍼 필름"이다)영화는 2022년, 외계인 죄수를 지구의 인간 몸에 가두어 관리하는 "가드"는 어느 날, 서울 상공에 떠있는 우주선을 발견한다. 근데, 1391년 고려 말. 얼치기 도사 "무륵"과 번개를 쏘는 여인 "이안", 그리고 신선 ‘흑설’과 ‘청운’, "밀본"의 "자장"까지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부딪힌다.
630년을 거쳐 지난 두 시간대의 공통점을 찾자면, 그건 "신검"으로 과연 "신검"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1, 상당히, 단순한 영화
영화 <외계+인>의 제목 "1부"에도 보듯이 23년에 개봉할 2부와 동시 촬영한 기획된 작품으로 이야기가 늘어진다 해도, "1부"라는 부제에 관객들의 노한 마음은 한층 수그러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말선초"에 해당되는 고려 말과 2022년 현대의 이야기를 어떻게 소개하고, 접점을 가져갈지?'에 <외계+인>의 재미 또한 결정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영화 <외계+인 1부>의 전개는 상당히 정직하다. (다른 말로는 직선과 같다고 해야 할까?)분명히, 두 시간대의 이야기를 번갈아면서 보여줌에도 1부의 이야기 전달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게임으로 친다면, 같은 모양의 블록을 모아서 연쇄하는 "애니팡" 혹은 "뿌요뿌요"를 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 혹자는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가리키는 모양을 누를 수 있겠지만, 이를 무시하고 연쇄를 노리는 플레이도 할 수 있다.
이에 빗대어 본다면, 전자에 속하는 1부는 눈앞의 당근을 걸어둔 말과 같이 달려나간다.2, 시원했다가 끝내 답답해지는...
좋은 말로 한다면 답답함이 없다.
극 중. ‘흑설’과 ‘청운’의 콤비를 비롯하여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김우빈, 그리고 "무륵"을 맡은 "류준열"의 코미디로 가벼운 톤을 유지하기에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마저 전달된다.
하지만, 나쁜 말로 풀어보자면 그만큼 쌓이는 설명들이 없기에 후반부 전개에 고초를 겪는데 대표적인 구간으로 "가드"의 부성애, 번개를 쏘는 여인 "이안"이 신검을 가져야 하는 동기와 함께 "무륵"의 정체이다.흔히,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가장 염려하는 것은 지켜야 할 철칙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외계+인>은 요즘 유명한 '버스'를 태우며, 과거를 꼭 바꿔야 할 동기를 세게 쥐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대에 있어야 하는 정도?)
여기에 "무륵"의 정체에 있어서도 <해리 포터>시리즈의 "호크룩스"처럼 나름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만, 잦은 플래시백으로 그 쾌감이 오히려 덜해진다.
이외에도 "가드"와의 유사 부모 관계 또한 누적된 설명이 부족하니 "신파"로 느껴져 관객들의 불만을 사게 만든다.3. 아직, 2부가 남았으니 (하략)
이런 문제는 모든 캐릭터들이 똑같이 분량들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에 있다.
극 중. 중요한 배역을 맡은 "문도석"을 맡은 "소지섭"만 하더라도, 필요한 설정만을 배분한 채 시작한다.
철저히, 우연성에 기대니 이후 아우라를 뿜어내려 해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어 여타 캐릭터들과 동일하게 느껴지는 복·붙(복사 붙이기)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영화 <외계+인 1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에 추후 2부에 따라 느낌은 달라질 수 있다. - 다만, 1부만의 느낌으로는 굳이 이렇게까지 판을 벌렸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tmi. 1 - 쿠키 영상 1개가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배우 "이하늬"의 역할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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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첫 작품으로 '오스카' 후보에 오른 샐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
영화는 시상식의 작품상과 감독상의 후보에 올랐으며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두 남녀가 20여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재회하는 이야기로, 엇갈린 운명 속에 인연의 의미를 돌아보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감독은 영화에 관해 “인연’ 이라는 동양적인 개념이 나오는데, 이는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기적적으로 연결되고 사랑하게 되는것”이라고 설명했으며, 실제 송 감독은 <넘버 3>를 연출한 송능한 감독의 딸로 12살에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직접 각본을 썼다고 합니다.설 연휴 찾아오는 <도그데이즈> <데드맨> <소풍>
<소풍> <데드맨> <도그 데이즈>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한국영화들이 잇달아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캐릭터들이 특별한 단짝을 만나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스토리를 그린영화 <도그데이즈>, 이름 하나로 얽힌 사람들과 빼앗긴 인생을 되찾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범죄 추적극 <데드맨> 두 친구가 60년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는이야기를 담은 <소풍>까지 다양한 스토리로 다시한번 극장가의 활기를 불어일으킬 전망입니다.
예산 절반 삭감된 전주국제 영화제
올해 25회를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 금액이 지난해 8억 1천만원에서 4억원으로 절반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제 측은 기업후원금 유치 활동 등을 통해 부족한 재원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보이고 있습니다.
홍상수 감독 5년 연속 베를린영화제 초청
홍상수 감독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5년 연속 초청되었습니다. 2020년 <도망친 여자> 2021년 <인트로덕션> 2022년 <소설가의 영화> 지난해의 <물안에서>가 초청되었으며 올해는 <여행자의 필요>가 베를린 국제영화제를 통해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한국계 영화감독 셀린 송 <패스트 라이브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트
제 96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발표에서 <패스트 라이브즈>가 작품상과 각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경쟁작으로 <가여운 것들> <오펜하이머> <추락의 해부> <플라워 킬링 문> 등 쟁쟁한 작품들과 같이 이름을 올렸으며 대사의 절반 이상이 헌국어 대사일 정도로 한국어 비중이 높음에도 섬세한 감정선과 밀도 높은 스토리로 각본의 완성도를 인정받으며 각본상 부문에도 노미네이트 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정부, 극장 개봉한 한국 영화 ott에 6개월 뒤 공개하도록 규정
극장 개봉한 영화들이 OTT에 1개월 뒤에 올라오는걸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정부가 이 기간을 ‘6개월’로
규제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홀드백 규정은 영화가 IPTV, OTT 등으로 소비되기 전, 극장에서의 충분한 관람을 독려하기 위해 일종의 유예기간을 두는 영화산업 내의 관행을 일컫습니다. 기존에는 홀드백 기가에 기준이
없어 통상 10주였으나 OTT 등장과 팬데믹 이후 극장 관람 행태가 위축되면서
그 기간이 더욱 단축된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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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엘 하네케 - 히든
미카엘 하네케 - 히든
10년도 더 전에 이 영화를 보고 잊혀지지 않는 장면 두 개가 있었다. 그때는 감독이 누구인지 몰랐고, 다시 찾아보고 싶어도 영화제목도 몰라 찾지 못하고 있다가 엊그제 한 페친이 쓴 글을 보고 곧바로 찾아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마카엘 하네케 감독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의 작품은 이후에 만든 '퍼니게임'과 '아무르', '하얀리본'을 봤는데, 모든 영화가 다 관객의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기억에 또렷이 남은 두 장면은, 영화가 시작하면 보이는 길고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 응시 화면이다. 프랑스 어느 지역의 도시, 평범한 주택단지를 무심하게 비추고 있는 이 카메라는 영화가 시작하고, 타이틀이 올라가는 동안 마치 스틸 사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 사람이 지나가고, 자전거를 탄 사람, 자동차가 드물게 지나가지만, 카메라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프레임을 고정한다. 좁은 골목과 주차한 자동차, 정면으로 보이는 주택과 그 뒤의 아파트. 특별하다고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럼에도 이 고정되어 있는 장면은 왠지 기분 나쁜 느낌이다. 카메라에 보이는 대상-골목과 자동차와 정면의 주택과 아파트-을 관객인 내가 바라보고 있지만, 그 시선이 관객(나)이 아닌, 타인의 시선이라는 걸 관객(나)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관객(나)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시선을 강요당하고 있기 때문에 불쾌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화면은 곧 리와인드되면서, 관객이 보고 있는 장면이 비디오테이프로 녹화된 과거의 어느 시점에 촬영된 장면임을 알게 된다.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사람은 조르주와 안느 부부다. 자기 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촬영한 비디오테이프가 비닐봉투에 담겨 문앞에 놓여 있었고, 부부는 이상하게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도를 달리해 찍은 비슷한 비디오테이프가 계속 문앞에 놓이고, 조르주는 누군가 자신과 가족을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기억에 남는 두번째 장면은, 조르주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알게 된 어느 아파트, 가난한 사람들-주로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좁고 낡은 아파트의 주소로 찾아갔을 때, 그를 기다리던 마지드가 조르주 앞에서 칼을 꺼내 자신의 목을 긋고 죽는 장면이다. 이 장면 역시 카메라가 조금 멀리 떨어져 응시한다. 마지드는 조르주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자살하지만, 그의 죽음은 마치 등을 보이고 있는 조르주가 살해한 것처럼 보인다.
이 두 장면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까닭을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면서 알았다. 영화 제목이 '히든'이라는 건 마카엘 하네케 감독이 의외로 관객에게 친절하게 힌트를 준 것이다. 이 영화에서 '히든'은 여러 개가 존재한다.
조르주는 프랑스의 중산층으로, 텔레비전에서 문학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이다. 그의 아내 안느도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부부의 집은 중산층답게 부족한 것 없이 잘 꾸며져 있고, 특히 거실 겸 서재는 삼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문학, 출판과 관련한 일을 하는 부부답게 지성인이며, 책도 많이 읽고, 책장에 꽂힌 책은 장식용이 아닌, 그들의 삶을 반영하는 책들이다.
하지만, 조르주와 안느는 다른 사람을 속이는 위선자들이자,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고, 감추는 비열하고 타락한 지식인이다.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장면은 짧게 몇 번 나오지만, 그것만으로도 이 부부의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비디오테이프가 계속 문앞에 놓이고,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위협을 느끼자, 조르주는 범인이 누구일까 깊이 생각하다 가능성 있는 한 명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연일 수 없는 다음 비디오테이프에서 어떤 아파트가 보이고, 조르주는 그 아파트를 찾아가 그가 생각하고 있던 인물을 만난다. 생각은 했지만, 막상 만나게 되자, 조르주는 당황한다. 그것은 벌써 40년이 넘은, 오래된 기억을, 결코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소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르주는 마지드를 40년만에 만나지만, 곧바로 마지드를 협박한다. 자기에게 비디오테이프를 보내지 말라고. 하지만 마지드는 영문을 모른다. 40년만에 찾아와서 자신을 협박하는 조르주를 보면서, 마지드는 조르주가 어릴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40년 전, 조르주와 마지드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조르주의 부모는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꽤 부유하게 살고 있었다. 그때 조르주의 집에서 집안 일을 도와주며 함께 살던 사람이 마지드와 그의 부모였다. 마지드 가족은 알제리 사람으로, 알제리에서 프랑스로 이주했다. 조르주가 6살 때, 마지드가 닭을 잡는 장면을 기억하는데, 마지드는 작은 도끼로 닭의 목을 쳤고, 닭피가 튀어 마지드의 얼굴에 묻었다. 닭은 대가리가 잘렸어도 푸드덕거리며 뛰어다녔고, 마지드는 얼굴에 피를 묻힌 채,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조르주를 바라보고 있다.
그 사건 직전 또는 직후에 마지드의 부모는 사망한다. 영화에서는 아주 짧게, 조르주의 입에서 대충 얼버무리듯 나온 사건이 있었다. 조르주의 어머니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은 프랑스 파리 한복판, 생 미셀 다리에서 수백 명의 알제리인이 프랑스 경찰에 맞아죽고, 수십 명이 다리 아래로 뛰어내려 익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1961년, 10월 17일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 영화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바로 이 사건을 말하기 위해 만들었다. 아주 짧게 언급하지만, 주인공의 운명을 모두 바꾸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1961년 10월 17일, 알제리인 약 3만 명이 세느 강이 흐르는 생 미셀 다리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이곳에 모이기 전에 발생한 사건들은 당연히 알제리 식민지 해방투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제국주의 프랑스가 식민지로 만든 알제리의 해방투쟁과 직접 관련이 있고, 프랑스의 국가범죄를 고발하는 영화인 것이다.
1961년 8월부터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은 프랑스 경찰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그해 10월까지 프랑스 경찰 11명이 FLN의 폭탄 공격으로 사망했다. 그러자 파리 경찰국장 모리스 파퐁은 10월 5일 파리 전역에 걸쳐 야간통행 금지령을 발표한다. 저녁8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5시 30분까지. 단, 프랑스인은 예외였고, 오직 알제리 무슬림 노동자, 프랑스 무슬림, 알제리의 프랑스 무슬림만 해당하는 통행금지였다. 이 시기에 파리와 그 근교에 살고 있던 알제리 사람은 약 15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차별하는 프랑스 경찰의 통행금지 발표에 항의하기 위해 시위를 조직한 것이다. 그리고 10월 17일, 알제리인들이 생 미셀 다리를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프랑스 경찰과 공화국 보안기동대, 국가헌병대 등 국가폭력기관이 총동원되어 시위에 참여하는 알제리인, 모로코인, 튀니지인들을 체포했다. 그럼에도 이들 시위대가 끊임없이 몰려들자 마침내 발포를 시작하고, 총에 맞아 죽은 사람, 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 등 무려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프랑스의 공식 입장은 1998년에 사망자 32명, 1999년 프랑스 총리실에서 센강에 버려진 시체 48명, 1961년 알제리 독립운동과 관련해 사망한 사람 246명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FLN의 발표는 1961년 한해 프랑스에서 죽은 알제리인은 사망 200명, 실종 400명, 부상 2300명으로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처벌받은 프랑스 경찰은 한 명도 없었고, 프랑스는 이 사건 자체를 철저하게 은폐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프랑스 경찰국장인 모리스 파퐁이 나치 부역자였다는 것이다. 파퐁은 게슈타포와 협력해 유대인 1600명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공을 세웠다. 이 사실은 1997년이 되어서야 밝혀졌고, 모리스 파퐁은 1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마지드의 부모가 생 미셀 다리에서 뛰어내려-경찰에 의해 떠밀려 떨어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고, 마지드가 고아가 되자, 조르주의 부모는 마지드를 입양할 생각을 했다. 마지드를 입양했다면 이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르주의 부모가 마지드를 고아원으로 보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조르주의 거짓말이었다. 조르주는 마지드를 형이라고 부르며 따랐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지드의 입양을 반대했다. 그는 불과 6살 어린이였음에도, 마지드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거짓말을 부모에게 한 것이다.
조르주는 마지드를 만나고도 전화로는 아내 안느에게 아파트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거짓말 한다. 하지만 조르주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조르주와 마지드가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안느가 보고 있었고, 그것을 본 조르주는 마지 못해 사실을 털어놓는다. 조르주의 변명은, 안느가 걱정할까봐, 라는 것이지만, 그가 이미 여러번 아내에게 거짓말하는 걸 본 관객은 조르주를 믿지 않는다. 그는 비열한 인간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 아들 피에로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조르주와 안느는 아들이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것이라 생각하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마지드의 집을 찾아간다. 그곳에 아들은 없었고, 마지드와 그의 아들만 있었지만, 경찰은 두 사람을 체포한다. 다음 날, 아들 친구의 엄마가 집으로 데려다주면서 이 사건은 헤프닝으로 끝나고, 마지드와 그의 아들도 경찰에서 풀려나지만, 마지드는 조르주를 집으로 불러, 그가 보는 앞에서 칼로 목을 그어 자살한다.
아들이 왜 가출했는지 이유를 묻는 안느에게 피에로는 엄마 안느의 불륜을 의심한다. 안느는 직장 동료이자 가까운 친구인 피에르(이들 피에로와 이름이 비슷하다)와 친한 사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단지 가까운 동료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영화에서 안느와 피에르가 불륜 관계라고 단정할 만한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안느의 태도에서 피에르에게 감정적, 정서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피에로는 그걸 눈치 채지만, 안느의 남편 조르주는 눈치 채지 못한다. 그리고 안느는 아들에게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아들 피에로나 관객은 안느를 의심한다.
마지드의 자살로 조르주는 경찰의 조사를 받고, 결백하다는 인정을 받고 사건은 끝난다. 하지만 마지드의 아들은 조르주를 찾아와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조르주는 마지드의 자살이 자기 때문이 아니라고, 그건 마지드 본인의 문제라고 강변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처럼, 카메라가 피에로의 학교 입구를 고정해서 바라보고 있다. 학생들이 몰려나오고, 서로 웃고 떠들고,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장면들이 보인다. 그리고 피에로가 학교에서 나와 계단에 서 있을 때, 마지드의 아들이 다가와 인사하고, 두 사람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는 끝나지만, 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비디오테이프를 누가 촬영했고, 누가 보냈는가다. 감독이 아무런 단서를 보여주지 않고, 범인이 누구인가도 밝히지 않는다. 비디오테이프를 보낸 건 감독 자신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극(영화)에 개입해 극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외부의 의도적 관계-또는 권력-로 보여주는 방식인데, 이때 '외부'는 진실을 드러내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닉슨이 민주당 선거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도청한 사건을 두고 FBI의 수사를 방해한 것으로 드러나 사임하게 되는데, 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을 신문기자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 사람이 언론사의 입장에서는 '진실을 드러내려는 의지'였던 것이다.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는 사건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자신이 직접 개입해 극의 인물에게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즉, 비디오테이프의 존재가 없다면, 이 영화는 설립할 수 없게 되고, 진실은 드러나지 않게 된다.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기억을 은폐하고,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기억을 왜곡, 조작해 합리화하려는 가해자에게 진실을 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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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놈’과 노랠 부르며 마지막 춤을 출거야
베놈 업고 튀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도망자가 된 남자 에디 브룩(톰 하디)다. 카니지와의 결전 이후 오명을 쓰게 된 에디. 경찰 패트릭 멀리건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제 도망만 가면 된다. 하지만 느닷없이 우주의 힘에 이끌려 다른 우주로 끌려갔다. 끌려간 곳은 아이언맨과 타노스가 결전을 벌이고 있던 멀티버스였다. 바텐더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참 늘어놓던 에디. 그러던 도중 또 갑자기 원래 살고 있던 시간선으로 이동했다. 혼란스러운 에디와 브룩. 멕시코를 떠나 어디든 도망쳐야 한다는 건 에디나 베놈이나 같은 생각이었다. 본격적으로 도망갈 준비를 앞둔 에디와 베놈. 이런 에디와 베놈을 널(앤디 서키스)가 노린다.
MCU가 뭐죠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가장 큰 장점은 마블 세계관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마블과 관련된 슈퍼히어로 영화/드라마들이 가진 특징이 있다. 바로 세계관의 다음단계를 위한 발판이 됐다는 점이다.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가 가 그 예시였다. 전자 ‘앤트맨 3’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면 앤트맨이 뭔가 이 MCU에서 대단한 역할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 이 영화에서 앤트맨이 슈퍼히어로로서 다음 스태프로 넘어간다는 장치가 별로 없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에는 정복자 캉이 얼마나 강한지, 또 앤트맨의 딸 캐시가 ‘영 어벤저스’로 활약할 거라는 암시만 있다. 앤트맨이 아버지 역할로서 노력한다는 건 사실 ‘앤트맨’ 1,2편과 어벤저스 시리즈만 봐도 알 수 있는데 3편에서 굳이 동어반복이 이뤄졌다.
이 <베놈 : 라스트 댄스>는 다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파이더맨 세계관에 힌트를 굳이 얻지 않았다. 우선 첫 장면이 의미심장하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쿠키에서 시작한다. 피터 파커(톰 홀랜드)의 주문이 잘못되며 온 우주의 빌런들이 MCU의 세계관으로 모여든다. 이 힘에 이끌린 에디와 베놈. 어떤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바텐더와 타노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전작 <베놈 : 랫 데어 비 카니지>에서 ‘톰스파’와 관련된 장면이 있었기 때문에 이 쿠키영상과 연관 지으면 마블의 스파이더맨 세계관에 편승해 상업적으로 잘 팔릴만한 이야기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본작 <베놈 : 라스트 댄스>는 이 MCU의 멀티버스 세계관을 전적으로 거부하며 시작한다. 초장부터 이 영화는 마블의 연속극이 아닌 에디와 베놈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영화는 그 선언을 충실히 이행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에디가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딜레마에 영화가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고, 둘째는 베놈이 슈퍼히어로와 안티히어로 사이에서 인간다운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선택은 슈퍼히어로 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겐 아쉽게 느껴지겠지만 글쓴이는 나름 이 3부작의 마무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고른 선택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멀티버스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무의미했나? 글쓴이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 영화를 가로지르는 핵심 중 하나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포스터에 있는 문장이다)다. 영화 안에서 온갖 고생을 다 겪는 에디와 베놈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둘은 헤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영화 후반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드라마틱한 선택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역시 영화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에게 캐릭터의 당위성과 핍진성을 부여한다. 쉽게 말해서 이 인물은 멀티버스가 아니면 보여줄 수 있는 위력이 급감된다(심지어 원작 코믹스 상에서도 우주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스파이더맨과 시니스터 식스의 ㅅ자도 안 꺼내고 멀티버스와 에디-베놈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경제적인 선택이 된 것이다.
기대는 플롯
이 영화에서 가장 의아했던 점은 캐릭터다. 이 영화에는 한 가족이 나온다. 이 가족은 에디와 베놈의 사이드킥으로서 조력자가 된다. 슈퍼히어로에서 사이드킥이 등장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인물이 등장하고 퇴장하는 방식은 영화의 또 다른 사이드킥 심비오트와 판이하게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아쉽게 느껴진다. 우선 이 영화에서 심비오트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지극히 합리적이다. 근거를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도 찾을 수 있고 전작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 가족은 그냥 단지 우연처럼 만난다. 그리고 그 우연처럼 만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작위적으로 볼 수 있는 건더기가 굉장히 많은 편이다. 이 인물(들)은 목적을 진작에 이룰 수도 있었다. 내지는 목적을 이루지 않더라도 이르게 퇴장하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작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 선택지만 절묘하게 다 빠져나간다. 아니면 이 가족이 극후반부 엔딩까지 뭔가 유효했나? 그렇지도 못하다. 그냥 단지 영화 안에서 에디가 스스로 탈출할 수 없는 위기와 관련한 인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영화 안에서 에디의 내면을 강조하기 위해 템포가 늘어지는 발단이 되기도 하는데, 극 중에서 꼭 필요한 캐릭터 들인 건 사실이지만 감독의 연출력이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운 지점이다.
또 이 영화에서 수가 얕다고 느껴지는 장면이 크게 두 가지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카타르시스가 강하게 느껴지는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은 전적으로 슈퍼히어로물의 클리셰에 편승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이 인물이 후반부에서 감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에는 여지가 없다. 하지만 굳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사실 후반부에서 처지가 바뀌는 수많은 인물들처럼 묘사해도 영화 안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이 인물이 베놈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지도 못했다. 이 영화 3부작에서 베놈이 가진 핵심 테마는 ‘악인을 잡아먹는다’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 테마에 닿지 못하고 그냥 캐릭터가 각성하는 여지만 주고 끝난다. 이런 옅은 연출이라면 사실 굳이 ‘베놈’이 아니어도 된다. 캡틴 아메리카 혈청과 차이점이 없다. 이유와 계기를 생략하고 단지 옆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히어로물의 특성을 부여하려니 붕 뜨는 것이다.
섹시하지 못한 히어로
글쓴이가 생각했을 때 이 베놈의 가장 큰 장점은 기괴함이라고 생각한다. 기괴함이라고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일반적이지 않아야 도드라지는 시각적 특성이다. 심지어 베놈이 하는 짓도 기괴하다. 빌런의 ‘목을 잡아먹는다’가 핵심이다. 두 설정. 시각적으로 기괴하고 악인의 목을 잡아먹는다는 설정은 캐릭터의 비주얼과 표현 수위에 있어 잘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 그 시각적으로 강렬한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서 템포가 더 빠른다던가 괴이한 비주얼을 보여준다던가 하는 식의 연출이 필요하다(‘데드풀’처럼). 이 시리즈는 베놈의 기괴하고 난폭한 캐릭터성을 뒷받침할 시각적 연출을 보여주기는 한다. 대표적으로 예고에서도 나오는 장면이 있다. 에디와 베놈이 말을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다. 말의 질주와 검은색으로 색감을 묘사하며 마치 오토바이를 타는 것 같은 장면을 멋지게 표현했다. 후반부에서 빌런과 싸우는 캐릭터들의 모습도 베놈의 특성을 잘 살린 멋진 장면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심비오트가 히어로의 개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연출됐는지는 미지수다. 대표적으로 영화 후반부에서 심비오트들이 등장하는 방식을 보면 ‘엑스맨’ 시리즈의 뮤턴트들과 차이점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이 영화에서 베놈과 심비오트들이 왜 악하거나 왜 선한지에 대한 고찰이 없다. 남들이랑 다른 외계인이니까 사람들이 배척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베놈이 ‘악인의 목을 잡아먹는다’라는 자경단 설정도 그렇게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한다. 가령 ‘데어데블’을 보면 변호사 맷 머독과 슈퍼히어로 데어데블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듯한 연출이 자주 등장한다. 드라마의 톤도 전적으로 어두워서 폭력적인 내면과 선한 변호사라는 가치가 충돌한다는 점을 묘사하기에도 충분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베놈은 원초적으로 욕망에만 이끌리는 캐릭터다. 에디가 이 욕망을 핸들링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이 인물의 내면이 평범한 사람인 것만 두드러지고 나머지는 생략됐다는 점이 아쉽다.
영화 안에서 베놈을 둘러싼 세상도 깊이가 얕다는 점이 아쉽다. 물론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나름 현실감이 있다. 특히 위에서 쓴 가족들을 보면 캐릭터의 설정 자체는 아주 설득력 있게 디테일하다. 하지만 이 설득력이 이 영화의 개성을 살리는데 유효한 디테일이었는지는 미지수다. 왜? 영화가 지나치게 설명하려 하는 느낌이 강하니까. 이렇게 자경단을 다뤘던 드라마/영화들은 이 세계관을 깊게 설명하지 않는다. 메인빌런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 자기가 입으로 설명하는 멋없다. ‘데어데블’ 시리즈도 킹핀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구구절절 설명 안 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힘으로 캐릭터를 설명한다. 하다못해 올해 개봉한 <베테랑 2>도 해치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해치의 연쇄살인을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본작 <베놈 : 라스트 댄스>는 한껏 설명하기 바쁘다. 이 설명을 한 번 하면 몰라. 여러 번 반복한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친절한 영화의 태도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소니가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모비우스>가 어색한 캐릭터성으로 낡은 전개를 보여줬던 걸 생각하면 본 작의 단점 역시 이런 특징을 있는 듯 보인다.
예의를 갖추다
글쓴이의 총평은 ‘나름 예의를 갖춘 3부작 마무리’라는 점이다. 나름 에디와 베놈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며 그들도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베놈의 시각적인 특성을 활력 있게 묘사하면서 이야기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가 끊어내지 못했던 애매한 캐릭터 설정이 영화의 발목을 잡으며 플롯 전체와의 이질감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장단점과는 별개로 톰 하디가 감정적으로 관객을 끌고 당기는 박력이 대단하니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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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밤마다 다른 사람 같은 남편의 낯선 모습.
2023년 9월 6일에 개봉한 장편 영화<잠>는 유재선 감독의 데뷔작이다.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 제56회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토론토 미드나잇 매드니스 섹션, 판타스틱 페스트와 같은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 영화는 일상에서 가질 수 있는 공포를 극대화하여 차별화된 공포를 선보인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공포의 주체가 됐을 때의 상황 포착하여 더욱 몰입감 있게 다가온다. 과연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게 된다.
자다 깬 현수가 내뱉은 혼잣말은 정말 누군가가 들어온 것처럼 일상을 공포로 가득 메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들이 점차 크기를 키워 가기 시작하는데, 몽유병을 진단받으며 치료할 수 있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그런 결심도 무색하게 밤마다 낯선 사람이 된 것 같은 현수의 이상 행동은 점차 더 위험해진다. 심지어는 곧 태어날 아이까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두려워진다. 믿기 힘든 광경은 온갖 노력을 하는 수진에게 있어서 몽유병인지 현수 안에 깃든 초자연적인 존재인지 알 수 없어지게 만들기 시작한다. 과연 수진과 현수는 그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 폭력의 주체로 변해갈 때, 마주하는 공포를 포착한다. 그 대상이 결코 나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찾아오는 신뢰였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이상행동을 하는 현수보다 더 두렵게 다가오는 건 계속해서 이어지는 상황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수진이었다. 나아지지 않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초자연적인 힘을 빌리기까지 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인데, 그 과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굉장히 광기 어리다. 몽유병 당시 자기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현수와는 다르게 수진은 현수의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랬기 때문에 설명되지 않는 것을 증명하고 이전과 같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발버둥을 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봤던 현수가 수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준 것 또한 '함께' 상황을 견뎌줬던 수진 때문이었다. 정말 이 영화의 결말 뒤엔 극복한 두 사람이 서 있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잠'이 두려워진다. 편안한 공간에서 잠을 깊이 자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이 밤이 오지 않길 바라는 상황으로 이어져 더욱 두렵게 느껴졌다. 극 중 현수가 앓고 있는 몽유병은 수면장애이기 때문에 잠이 든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움직여 이상행동을 보이는 증상이다. 걸어 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을 공격하는 행동을 하므로 더욱 위험할 수 있다. 당사자가 기억을 못 한다는 사실과 주변 사람에게 남는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그 부분이 잘 드러났다. 잠과 관련된 영화가 많기 때문에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잠과 그 과정을 다뤄낸 이야기 전개 또한 예상을 뛰어넘는다. 가장 익숙하고 필수적인 '잠'을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낯설게 만드는 영화의 화법이 신선하면서도 또 색다르게 느껴졌다. 결말 부분은 상당수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는 영화였다. 무엇보다 정유미 배우와 이선균 배우의 연기가 너무 인상 깊게 남았다.
영화의 결말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쉽게 풀리지 않은 부분을 해석의 여지로 남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열린 결말에 3가지 가설을 세워봤다.
첫 번째, 수진의 망상이었다.
우선, 수진의 망상이라고 생각하게 된 부분은 몽유병을 앓는 현 수로 인해 잠 못 이루는 밤이 길어지며 받게 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본인 또한 수면에 상당한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있지 않았던 일을 착각하는 일도 상당해 병원에도 가게 된 것 같다. 현수는 노력하는 수진을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말에 따라줬고 그 끝에도 점점 심해져 가는 수진을 위해서 '연기'한 것이다. 실제로 오랜 기간 동안 잠들지 못해 눈이 새빨개지고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것을 보면 망상의 일부분처럼 여겨진다.
두 번째, 진짜 빙의된 상황이었다.
실제로 현수가 밑의 집 할아버지에 빙의됐다. '누가 들어왔어요'라는 말은 정말 빙의가 돼서 한 말이다. 또한, 할아버지 사망 후 귀신이 된 날짜와 현수의 몽유병 증상이 나타난 날짜가 동일하다. 또한 특히 '개', '아이'라는 말을 한 것을 보면 할아버지가 틀림없다. 부적을 붙이고 굿을 하는 행위를 통해서 악영향을 모두 막았고 수진의 모든 행위가 할아버지가 무사히 정각 전에 성불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특히 딸을 말을 듣고 현수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통해서 현수의 몸에 할아버지가 깃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 그저 몽유병이다.
현수는 심각한 수면장애인 몽유병을 앓고 있었다. 오래된 단역 배우 생활을 전전하며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누가 들어왔어요'라는 말은 드라마 대본의 대사였다. 치료를 받아 봤지만 어려움을 겪었고 마침내 치료에 성공하게 된다. 반면, 수진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설명되지 않는 것을 납득하기 쉬운 것을 믿게 되었다.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일들을 생각하고 행한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 수진을 통해 드러났다. 현수는 그런 수진을 위해 그녀가 믿고 싶은 현실을 '연기'한다. 의사가 말했듯 이상 행동이 늘 일어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미신과 관련된 행위는 우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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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레오와 레미는 친구들에게 관계를 의심받기 시작한다. 이후 낯선 시선이 두려워진 레오는 레미와 거리를 두고, 홀로 남겨진 레미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고 만다. 점차 균열이 깊어져 가던 어느 날, 레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클로즈> 줄거리
살갑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까지도 웃음을 짓게 만든다. 세상에 서로밖에 없는 듯 서로를 가장 위하고 형제같이 서로에게 의지한다. 이 아이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관계를 단정 지으려 했다면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관계에도 딱 맞춰진 틀은 없다.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사랑과 우정 사이에 딱 자른 선이 존재할 수 있겠나.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중학교에 들어서며 그들의 관계는 변화를 맞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다르듯 모든 관계와 감정의 형태는 다를 수밖에 없다. 레미와 레오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누가 뭐래도 가장 친한 친구이고 가장 가까운 형제이다. 그렇지만 사회는 규정된 틀을 만들어 놓고 있었고, 중학교에 가면서 사회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 이들에게 그 틀은 그들이 틀렸다며 멋대로 그들의 관계를 규정했고 이로 인해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어진다.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를 성장기라고 한다. 이 성장기는 사람이라면 다 거치고 갈 수밖에 없는 하나의 통과 과정이다. 사회에 한 발짝 더 다가선 레오와 레미 역시 이 성장기에 들어섰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야 한다. 그들의 모양은 모두 다르기 마련인데, 그들의 눈앞에 들이닥친 사회는 정해놓은 틀에 그들을 찍어 누르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영영 멀어지게 된다.
이들의 성장기는 혹독하다. 타인에 의해 둘의 정체성은 멋대로 재단되고 사회는 이것을 억지로 받아들이려는 자는 포용하고 저항하는 자는 떨어뜨리고 만다. 그렇게 다른 선택을 한 둘의 성장기는 이렇게 끝이 나는 듯하지만 레미의 또 다른 선택으로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전에는 성장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였다면 이후에는 누군가의 상실로 인한 상처와 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성장을 보여준다.
내가 생각한 레미의 선택에 레오가 느낀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레오는 그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해소하지 못한 감정만을 계속 쌓아간다. 마침내 자신의 팔이 다치고 직접적인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야 그는 감정을 쏟아낸다. 그리고 레미의 엄마, 소피에게 자신의 죄책감을 털어놓는 걸로 그 죄책감이란 감정 속에 숨어있던 또 하나의 감정이 튀어나온다. 바로 두려움이다. 덜덜 떠는 손으로 나무를 굳게 잡고 있는 레오의 모습은 누가 봐도 겁에 질린 아이의 것이다. 자신을 향한 미움을 받을 자신이 없는 아이는 다시 숨으려 하지만 소피는,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어른은 결국 그를 안아준다. 그렇게 자신을 향한 처음이나 다름없는 가시를 뚫고 나간 레오는 성장한다.
사회의 정해진 틀은 누가 만든 걸까. 그들의 성장기는 왜 이렇게 그들에게 모질었어야 했나. 상처를 입고 이를 치료해 나가고 종국엔 성장한 레오의 모습은 어딘가 애달팠다. 그렇게 생각했다. 혹독한 현실에 꺾일 것 같음에도 레오가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주변에 있던 어른들의 지지 덕분이라고. 그리고 결국 그를 안아줄 수밖에 없는 어른들의 사랑 덕분이라고.
영화는 그들의 성장기를 섬세하게 다룬다. 이 성장기가 단순히 우리 모두가 겪어가는 과정이기 때문만이 아닌 배우들의 세밀한 감정 연기와 연출 덕분에 더 마음에 남았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클로즈>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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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의 반전의 반전이 살아 있는 19금 스릴러 / 기생충 같은 집? / 생각보다 높은 수위 / 한 명만 다 나옴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히든페이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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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쟁이] 인피니티 워 NG 모음! & 춤영상까지?!
안녕하세요 마블쟁입니다!!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일단 손풀기로 아주 짧게 영상 하나를 올립니다.
영상 이제서야 올리는데 성의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곧 좋은 영상으로 다시 돌아올 테니 그냥 재미있게 영상 즐겨 주세요~
감사합니다!
2018. 00. 00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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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막스 마누스: 맨 오브 워> 예고편
제2차 세계대전, 역사가 기억하는 가장 위대한 레지스탕스
노르웨이 전쟁 영웅 막스 마누스의 일대기를 그린 위대한 전쟁 실화!막스 마누스는 친구들과 함께 레지스탕스 조직을 꾸려 저항 운동을 펼친다.
하지만, 소중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잡히거나 목숨을 잃자 막스는 혼자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사보타주 작전을 수행하기로 결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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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극장판 시그널> 메인 예고편
과거를 바꿔 현재를 구하라! 다시 한번 간절함이 보내온 신호! 김은희 작가 [시그널] 리메이크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