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슬2021-11-25 20:56:06
영화의 핵심은 연기력이에요.
영화 <미스 슬로운>리뷰
다른 언어를 쓰는 배우에게 전율을 느끼기는 몇 배로 어렵다. 말과 글은 다르기 때문에 그 갭은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는 첫 장면부터 슬로운에게 압도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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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렇게 짜릿한 영화는 처음이다. 그냥 전부 다 짜릿했다.
스릴러보다 스릴넘치고 액션보다 짜릿하며 수사극보다 쫄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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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선언을 할 때도, 위기에 처하고 선을 넘고 팀원들과 분열이 일어나고 궁지에 몰릴 때조차 나는 시종일관 '슬로운이니까!' 하며 조마조마하긴 커녕 절대적으로 그를 신봉하고있었다. (장담컨데 내가 보아왔던 작 중 그 어떠한 인물보다 슬로운에 대한 신뢰만큼은 절대적으로 높았을 거다. 아마 저기에 내가 있었더라면 뭐가 됐던 미스 슬로운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장렬히 전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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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동안 슬로운은 내게 절대적인 리더였고 정신적 지주였다. 중간에 정말 '지진'이 일어 쓰나미가 덮쳤다 해도 나는 별 걱정없이 편안하게 슬로운의 행보를 관람했으리라.
영화의 명대사로 꼽히는 대사 중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이에요."라는 슬로운의 대사가 있다.
이 대사가 영화 '미스 슬로운'의 구심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엘리자베스 슬로운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로비의 핵심이 통찰력이라면,
제시카 차스테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영화의 핵심은 연기력이다.
사실 영화를 구성하고 작품성을 이끌어내는 요소는 무척이나 다양하고 작용하는 방법이 무수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연기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영화를 가장 잘 보았다고 생각할 때는, 그 영화를 가장 몰입해서 보았을 때인 것 같다.
그 몰입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인물들의 연기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몰입을 넘어 이입하게되면 사실상 이외의 요소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가장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역할을 200% 수행해주는 배우. 덕분에 캐릭터만큼은 정말 인상깊게 남을 듯 하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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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남자고, 페미니즘을 공부합니다
어젯밤. 밤 9시. 느지막이 아내가 딸을 데리고 들어왔다. 고된 몸을 말해주듯, 걸음걸이가 피곤해 보였다. 어제 아내는 5살 된 딸의 어린이집 친구네 다녀왔다. 밤늦게 도착한 아내는 겨우 아이를 씻기고, 기절한 듯 잠들어 버린다. 요즘 아내는 아침 6시에 기상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시간을 갖기 어렵다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준비하고, 아침을 만든다. 아이를 깨우고, 등원 준비를 한다. 부랴부랴 아침을 먹이고, 허겁지겁 어린이집 등원시킨다. 그리고 바로 일터로 나간다.
음악치료사로 일하는 아내는 때로 학교로, 센터로, 가정집으로 출근한다. 다양한 악기를 어깨에 짊어 메고 이곳저곳을 다닌다. 때로 끼니도 걸러가며 그렇게 일하고, 딸의 퇴원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 앞에 기다린다. 아이를 데리고 바로 집에 오는 법은 없다. 장을 보기도 하고 또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아주고 돌아온다. 그리고 저녁 준비를 하고, 밥을 먹인다.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씻기고, 놀아주며, 재우 기고 집을 정리한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양가의 경조사를 챙기고, 명절이면 양가에 올라가 일을 돕는다. 심지어 남편까지 챙기며 그렇게 살아간다.
코로나 백신으로 며칠간 누워있어다. 그 시간 속에 만난 책은 최승범 선생님의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영화는 <82년생 김지영>이다. 둘 다 여성에 대한 생각을 깊게 만들어주었고, 얀센 백신의 강력한 통증을 잊게 만들 정도로 흡입력과 몰입감, 그리고 공감대를 만들어줬다. 남자고등학교의 한 선생님이 써 내려간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는 페미니즘에 관한 나의 편견에 균열을 일어났다. 평생 세 남자와 함께 살아간 어머니.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며 버티고 견디는 아내, 앞으로 여자로 살아가야 할 딸의 모습이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그동안 페미니즘을 남성 혐오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편협한 시선의 환기가 일어났다. 한국의 페미니즘 교과서라 일컫는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정희진은 페미니즘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페미니즘은 저항 이론, 저항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에서..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대한민국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이 삶에 주인공이 되어가기에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하여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남동생과의 차별이 있었고, 성추행을 당해도 여자로서 조심하지 않아서였고, 직장에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승진과 재취업에 차별을 경험해야 했다. 영화의 모습 속에서 어머님이 살아온 모습, 아내와 살아가는 상황, 그리고 내 딸이 살아갈 앞으로의 시간이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페미니즘의 이해와 배움은 여성을 함께 살아가는 공존적 주체로 이해하는 측면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남자 역시 해방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남자가 눈물을 참지 않고, 시시콜콜하고 싶은 말을 다하며, 육아의 즐거움과 가사의 고단함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놀이방에서 남자아이가 인형을 만지고 남학생들이 여학생과 함께 축구와 고무줄놀이하는 공종의 삶. ‘여자라서’ ‘남 자라나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원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탐색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일(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101~102 인용)이 페미니즘의 이해를 통해 일어날 수 있다.
<당신의 엄마, 당신의 아내, 당신의 딸도 82년생 김지영일지 모른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다. 누가 뭐라 하든, 어떻게 바라보든 상관없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내 딸이 또 한 명의 지영이처럼 자책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직도 영화 속 지영이의 그 원망 서린 소리가 귓가에 울림을 가져다준다.
“저 벽을 돌아가면 출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벽이고,
그 벽을 돌아가도 다시 벽... 출구는 처음부터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건 제 잘못이잖아요. 남들은 출구를 다 찾는데 나만 못 찾으니까...”
영화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또 한 명의 지영이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배우고, 살아낼 것이다. 그래서 말해줄 것이다. 출구를 함께 찾아보자고, 니 잘못이 아닌 우리의 잘못이라고, 그리고 너의 삶에 주인공은 바로 너라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가리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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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칠일(三七日), 미신과 믿음 사이
- 감독: 박강
- 출연: 서현우, 류아벨, 심은우
- 장르: 드라마, 스릴러, 미스터리
- 국가: 대한민국
- 러닝타임: 102분
- 개봉: 2022년 11월 24일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보신 뒤에 읽어보세요!
삼칠일, 아이가 태어나고 스무하루째 되는 날이다. 이를 세이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기간 동안은 금줄을 쳐서 가족이나 이웃의 출입을 삼가게 하고, 특히 부정한 곳에 다녀온 사람은 출입을 절대 금한다고 한다. 우리집도 동생이 태어났을 때 금줄을 걸었고, 동네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당연히 하는 것이 금줄을 거는 것이었다. 물론 그 금줄이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나에게 미신을 믿느냐고 물으면 맹신하지는 않지만 믿는다. 불교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삼재가 있는 해에는 신중하고, 안 좋은 꿈을 꾸면 조심했다.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할아버지 장례가 있고 얼마 뒤에 있던 친구의 결혼식은 참석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깔려있었던 것은 당연했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작은 아이를 만나는 것에 신중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건 삼칠일 이런 문제가 아니라 장례식장에는 병균이나 아기들에게는 치명적인 세균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다녀와서는 안 만나는 게 좋기 때문에 생긴 이야기라고 알고 있었다. 어쨌든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종교가 어찌 되었던 간 이런 가벼운 미신, 혹은 징크스는 꼭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이게 심해지면 맹신이 되는 거고.
우진(서현우 배우)은 미신을 믿지 않지만 잘 믿는 아내와 장모님의 말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직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몸에 좋다는 한약을 지어서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도 팔기도 한다. 한의학이나 한약, 다린 약 등을 미신으로 보고 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어쩌면 우진의 모순된 모습을 보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고 삼칠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 전 여자 친구의 부고 문자를 받는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들지만 도의적으로 가려고 결정한다. 도의적일지 죄책감일지 알 수는 없지만 장례식장에서 우진은 전 여자 친구의 세영(류아벨 배우)의 쌍둥이 여동생인 예영을 만난다. 죽었다고 했는데 살아 돌아온 것 같은 똑같은 모습에 소름이 돋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6년이나 만났다면서 쌍둥이 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서 우진이 세영을 어떻게 대했는지 예상되기도 했다.
세영의 죽음은 자살이었다. 우진과의 사이에 아이도 있었지만 죽었다. 이게 원인이었다고 했다.
아이가 유산되었다고 했을 때 우진의 말이 잊히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예영이 전했다. 끝내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다행이다."이지 않았을까? 세영이 그렇게 무너진 이유로 타당하다. 더구나 예영이 왜 유산되었는지 알아봤다고 했다. 우진은 다른 사람들, 자신의 아내에게까지 줬던 아이와 산모에게 좋은 한약을 세영에게도 줬었다. 건강원에서 우진은 아이가 생기는 약, 아이가 없어지는 약이 있을 리가 없다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 약이 문제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우진이 준 약을 아무 의심 없이 먹은 세영은 아이를 잃었고, 우진은 좋아했다. 그리고 우진은 건강원에서 지어온 약들이 그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도 좋은 약이라고 하는 것을 아내, 더불어 처형에게까지 줬다. 우진은 그 약의 효과를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하기도 해야 했다. 자기는 잘못이 없어야 하니까.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며 아내가 양복 주머니에 넣은 액막이 팥을 버려버렸고, 문 앞의 소금은 뿌리지 않고 들어왔다. 그러자 자꾸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액땜을 하기 위한 다른 행동은 처형의 아이를 유산하게 만들었다. 아니, 정말 그 액땜으로 인해 생긴 문제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의심 가는 것은 그뿐이다. 이제 우진은 미신을 믿을 수밖에 없다. 죽은 세영이 자신과 자신의 아이에게 저주를 내린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의 장례식, 심지어 발인까지 함께 한다.
우진이 세영이 저주한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에는 '죄'가 있기 때문이다. 임신했던 세영에게 잘해주지 못했던 죄책감, 세영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만든 죄의식, 아이를 죽게 만든 죄악. 흔히 그런 말들이 한다. 잘못한 게 없으면 무섭지도 않다고.
우진은 금줄을 언제나 선뜻 뛰어넘지 못한다. 아내가 무서워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아내가 무서웠다면 장례식도 가지 말았어야 맞지만.
금줄은 '신성한 곳임을 표시하는 새끼줄'이다. 갓 세상에 태어나서 삼칠일도 되지 않은 아이, 그리고 그 어머니는 신성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런 금줄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만 거는 것이 아니다. 장을 담을 때, 잡병을 쫓고자 할 때, 성황당 같이 신성한 영역을 나타낼 때도 쓴다. 신성한 곳을 표시하는 것도 있지만 부정한 사람의 접근을 막으면 잡귀의 침범을 방어할 목적으로도 하고 있는 것이다. 악귀가 뛰어넘거나 다가가지 못하는 선이 금줄이다. 그 금줄을 우진은 아빠지만 건너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진은 장례식에서 세영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 세영의 장례식에 가면서 스스로가 악귀가 된 것이다. 어쩌면 세영의 아이를 죽였을 때 이미 악귀가 되었지만 잊고 있었던 것을 세영이 깨워줬을지도 모른다. 이제 괜찮아진 아이가 세영과 같은 버릇을 했을 때 우진의 선택이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최악을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진은 이미 금줄을 넘은 악귀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의문이었던 것은 우진의 아내(심은우 배우)는 어떻게 자유롭게 금줄을 드나들었냐는 것이었다. 당연히 엄마니까, 엄마는 아이를 지켜야 하는 존재니까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내도 우진과 같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세영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친구가 보낸 문자에 6년 사귄 여자 친구라는 문구를 보고 안 것이 아니었다. 세영의 이름을 보고 바로 알았고, 친구의 문자를 확인해 본 것은 우진이 또 장례식장 혹은 발인식에 갈 것인지를 확인해 본 것뿐이었으리라.
바로 '세영 씨 장례식장'이라고 한 것이 세영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을 알고 있는 대목이기도 했지만 아이가 아팠던 것에 대한 분노를 세영에게 하는 것 역시 우진과 세영 사이에 있었던 아이의 존재까지 알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더불어 세영의 장례식장에 가서 예영을 봤지만 별로 놀라지 않았던 것에 아마 예영의 존재까지 알고 있었을 것으로도 예상된다. 아니면 세영과 같은 얼굴을 한 예영 때문에 우진이 흔들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우진은 세영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했다. 친구들도 모를 정도로 빠르고, 비밀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냥 상상을 하자면 우진은 세영과 같이 살면서 현재의 아내와 바람을 피웠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내가 우진을 좋아해서 아이가 없어지는 약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 아내 역시 우진처럼 세영의 죽음, 세영의 장례식, 예영의 존재를 두려워한다. 아내가 미신에 빠진 것은 자신의 죄를 알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내는 이미 우진보다 먼저 금줄을 뛰어넘은 악귀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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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고, 생각보다 막 스릴 있거나 미스터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쁘지 않았다.
시사회가 끝나고, 질문도 생각하고 있었는데(아내가 언제부터 세영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가에 대한 것) 서현우 배우 얼굴 보고 다 까먹었다. 세상에, 배우님 대체 방송 카메라 빨을 왜 이렇게 안 받으시는 건가요? 너무 잘생기셔서 계속 배우님 얼굴만 구경했다. 그러고 넷플릭스로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나온 것까지 정주행하고 또 봤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다. 배우님 화면빨 진짜 안 받는다고. 하- 배우에게 좋은 말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실물 미남이다. 그걸 못 담는 카메라가 원망스러울 정도다.
※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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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부활한 코스믹 호러
세상에 태어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다. 우리는 부모의 DNA를 이어받아 작은 존재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한 길을 걷게 된다. 태어난 순간부터 먹고, 자라며, 배우고,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 과정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된다. 학자들은 이것을 종족 유지라는 학문적 개념으로 설명하지만, 사실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단지 살아가는 본능에 의해 우리는 존재하며, 계속해서 그 본능을 이어갈 뿐이다.
이러한 생명체의 본능적인 삶은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 더욱 극적으로 묘사된다. 이 영화는 단순한 SF 호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조인간, 그리고 에이리언이라는 세 가지 다른 존재가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명확한 본능을 지닌 존재는 바로 에이리언이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폭력적인 행동을 하며, 다른 이들을 해치고 자신을 지키려 한다. 이 점에서 그들의 삶은 극도로 본능적이며,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들이 그저 생존을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주인공은 10대 인간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식민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환경은 무척 열악하다. 부모들은 일하다 죽거나 병에 걸리며, 아이들은 희망 없는 삶 속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다. 그 중심에는 레인(케일리 스패니)이 있다. 레인은 부모를 잃고 나서, 이 우울한 행성에서 벗어나 태양이 떠오르는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기를 꿈꾼다. 이 여정에서 레인과 인조인간 동생 앤디(데이비드 존슨),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은 버려진 회사의 함선을 타고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함선에 숨어있던 에이리언들이 그들의 여정에 큰 위협으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변화한다.
[첫 번째 감정] 인간 레인의 희망
레인은 직접 태양이 떠오르고 지는걸 보고 싶어한다. 종일 비가 내리는 식민행성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장면이다. 부모의 죽음이후 열심히 일하는 시간을 채워 다른 행성 이주를 꿈꿨지만, 정부에서 그것조차 허가하지 않는다. 레인의 희망은 태양이다. 태양을 볼 수 있는 어딘가로 가는 것이 그에게 남아있는 작은 희망의 조각이다. 레인은 자신이 왜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하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왜 살아가야하는가.
그 의문이 레인을 움직이게 만든다. 레인 뿐 아니라 그녀의 친구들도 그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버려진 함선에 가려고 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태어난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드는 방법은 조금 위험한 일이라도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레인 역시 고민하지만 그 일을 해보려고 한다. 태양을 꿈꾸는 그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레인에겐 동생이 있다. 기능 오류로 버려져있었던 인조인간 앤디다. 레인에겐 정말 동생같이 챙겨줘야하는 존재이고, 레인이 힘들어보이면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며 레인에게 위로를 준다. 인조인간 앤디 역시 자신이 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에겐 명확한 목표가 있다. 바로 레인을 위한 선택과 행동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감정] 인조인간 앤디의 미안함
앤디는 스스로를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함을 자주 느낀다. 그의 몸이 고장나고, 움직이지 못할 때마다 레인이 그를 리부트해 주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이는 앤디가 자신의 한계에 대해 느끼는 미안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중반부에서 앤디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더 강력한 인조인간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감정은 점차 사라진다. 앤디는 점차 기계적인 존재로 변해가지만, 그의 본질적인 존재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레인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 목적이 그를 움직이게 만든다.
앤디의 이러한 존재는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등장했던 인조인간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의 철학적인 고민과도 닮아 있다. 데이빗은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인간과 인조인간의 경계가 어디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존재다. 앤디 역시 인간적인 감정과 기계적인 존재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를 탐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의 미안함과 혼란은 단지 기계적 오류를 넘어서, 그가 가지는 존재의 이유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앤디가 다시 원래의 고장난 앤디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적인 느낌 때문일 것이다. 마치 가족처럼 레인을 생각하고 챙기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존재가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난 그 자체가 바로 가족을 위해서라는 아주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비록 인조인간이지만, 이 영화 안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다.
[세 번째 감정] 에이리언의 본능
이 영화에서 가장 순수한 본능을 가진 존재는 에이리언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단지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다른 생명체를 공격하고,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싸운다. 에이리언들은 자신들이 왜 태어났는지,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단순하다. 살아남고, 더 많은 생명을 빼앗아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 그들은 극도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존재지만, 그것은 그들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이 에이리언들을 바라볼 때, 그들의 폭력성에 경악할 수 있지만, 사실 그들 역시 생명체로서 자신을 지키고, 생존하기 위해 싸우는 존재다. 이 점에서 에이리언들의 존재는 인간과도 일맥상통한다. 인간 역시 생존을 위해 싸우고,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이러한 본능적인 생존에 대해 인간과 에이리언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가 그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에이리언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지만, 그들이 가진 본능은 그 자체로 생존의 이유를 설명한다. 반면 인간은 그 존재를 넘어 더 위대한 존재가 되고자 하며,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역시 결국에는 에이리언의 본능과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진화하고자 하는 욕망, 더 강력한 존재가 되려는 욕구는 결국 더 큰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시도에 불과할 수 있다.
성공적으로 돌아온 코스믹 호러
영화를 연출한 페데 알바레즈는 <맨 인더 다크>와 같은 작품을 통해 관객의 심리를 자극하는 스릴러와 호러 장르에서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 감독이다.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도 그는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강렬한 비주얼로 에이리언 시리즈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알바레즈는 공포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며, 단순한 시각적 충격을 넘어 심리적인 공포를 강조하는 연출을 통해 관객을 몰입시킨다. 그의 연출 스타일은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공포 영화에서 벗어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깊이를 담고 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알바레즈가 기존의 에이리언 시리즈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 설정들을 재구성하면서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 점이 돋보인다. 그는 에이리언의 원초적인 공포를 유지하면서도, 우주적 공포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성공적으로 표현해냈다. 기존 시리즈의 코스믹 호러 요소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관객에게 새로움과 익숙함을 동시에 전달했다.
케일리 스패니가 연기한 레인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 자신의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녀의 연기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을 감성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이 그녀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도록 만든다. 인조인간 앤디를 연기한 데이비드 존슨 역시 기계적인 존재와 인간적인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며, 그의 캐릭터에 깊이를 더했다. 이들의 연기는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단순한 생존 영화가 아니다. 인간과 인조인간, 그리고 에이리언의 대립을 통해 생존의 본질과 그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인간이 결코 에이리언의 위협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극악의 존재로부터 오는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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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뷰] 원스 - 실현되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감독: 존 카니
출연: 글렌 핸사드, 마르게타 이글로바
개봉: 2007. 09. 20 / 2017. 11. 01 재개봉
줄거리
평범한 청소기 수리공인 '그'는 매일 저녁에 자작곡을 거리에서 부른다.
낮에 사람들은 아는 노래만 들을려고 하기 때문에, 밤에만 나와 부르는 ‘그'
어느 날,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그의 음악성을 본 그녀.
그녀 역시, 음악을 좋아하지만 가난한 형편 때문에, 피아노 가게에서 연주를 하는 것이 전부.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그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음악성을 확인한다.
그런 그들은 서로 작업을 도와주며, 가까워진다.
더블린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와 그녀.
서로 풍족하지 못하고, 늘 서툴던 서로.
닮은 부분이라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뿐인 그들.
그 둘의 부족함은 음악이 채워주고 둘의 이야기가 적힌 영화 속 스크린이 채워져간다.
Miluju tebe
감독&배우
이름 : 존 카니
필모그래피 : 원스,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 등
특징 :
매번 음악 영화를 만들며, 원스에선 투박함과 어색함, 거친 영상을 다루어 만들었지만, 그런 어색함이 주는 감성을 잘 살리고,
비긴 어게인에선 몰락한 프로듀서, 바람난 톱 가수, 버림받은 연인의 이야기를 잘 다루었지만 원스의 색채는 잃어버린 듯 했으며,
싱 스트리트 에선, 청춘들의 음악이야기를 잘 다루었다.
매번 음악의 사운드트랙은 CD로 구매하여 소장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정도이다.
이름 : 글랜 핸사드
역할 : 그
필모그래피 : 원스, 원스 어게인,커미트먼트 등
특징 :
긴박한 느낌을 잘 주는 노래 'falling slowly'를 특유의 부드러운 음색과 여유로운 감성을 주며 적당히 긴박한 느낌도 잘 주면서 불렀습니다.
실제 아일랜드의 인디밴드 'The Frames'의 보컬로 활동합니다.
노래에서는 특유의 감성이 잘 묻어나며, 여유로운 느낌을 받게 합니다.
이름 : 마르게타 이글로바
역할 : 그녀
필모그래피 : 원스, 원스 어게인
총 평
★★★★☆ 9.5/10.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으며, &표시가 있는 부분은 스포일러 주의 표시입니다.)
-짧은 평가-
'비긴 어게인'이 프로 가수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그 안에 생기는 갈등과 음악을 담았다면,
'원스'는 음악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입니다.
'존 카니' 감독의 초창기 작품으로 구조만 보면 정말 단순하고,
영화를 이끌어가는 갈등요소도 없으며, 사족이 하나도 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아무 소스도 없는 샐러드 같다는 느낌이 처음에는 강합니다.
하지만, 음악이 등장하면, 위에 발사믹 소스가 뿌려진 듯 합니다.
역경, 갈등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강가에서 멀어저 가는 나뭇잎과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 우리(관람객들)들이 그 나뭇잎처럼
잔잔히 흘러가며, 영화 원스라는 강의 한 가운대로 천천히 나도 모른체 가는 듯 합니다.
-더 현실적이라 여운이 남는 결말-
영화의 마지막을 달리다 보면, '그'와 '그녀'는 현실에 직면합니다.
그는 헤어진 전 애인을 잊지 못하였고, 그녀는 사실 이혼하여 아이가 딸린 엄마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그는 자신을 사랑하냐 묻고,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체코말로 대답합니다. '너를 사랑해'라고 하지만,
그는 무슨 뜻인지 모른체..
그는 아침식사를 제안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가까워지는 것은 둘 다에게 미련만 남고 돌아오지 못할 관계임을 직감하고,
그에게 내일 남편이 온다며 떠나고, 그는 그런 그녀에게 런던으로 작업을 하러 떠나기 전 피아노를 선물로 남겨주고 떠나며,
둘 다 자신의 바램과 서로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하였지만, 어느 한 편으론 둘다 실패했습니다.
분명 해피엔딩이지만,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과
항상 승승장구 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으면 잃는다는 일득일실의 느낌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다른 음악영화와의 차이점입니다.
그저 행복한 결말이 아닌 행복하지만, 현실적이며, 어딘가 쑤씨게 만드는 듯한 이 연출은 정말 일품이였습니다.
-10년 가까이 들어도 편안한 사운드트랙-
아마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본게, 초등학교 2학년 시절에 가족끼리 유럽 일주를 하며 유로스타 기차안에서 보았는데,
그 때는 다른 거는 잘 몰라도 음악은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부터 계속 이 음악은 제 DAP와 아이폰,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의 플레이리스트에 항상 빠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글랜 핸사드의 부드러우면서 귀에 딱딱 박히는 듯한 보이스와
영화 특유의 감성과 여유로우면서 긴박한 느낌을 정말 잘 주는 듯한 노래입니다.
그 외로도 전체적으로 사운드트랙이 준수합니다.
-다소 특이한 연출-
이 영화는 꽤나 특이합니다.
주연인 '글렌 핸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의 캐릭터의 이름이 묘사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영화들을 돌려보며, 이름에 대한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이름은 누군가, 나 혹은 다른 이들의 정체성과 존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유바바가 치히로의 이름을 빼았습니다.
하쿠는 이름을 잊으면 되돌아올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만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음악에 포커스를 더 두며, 둘의 애정은 음악을 더 돋보이게 만듭니다.
이름은 정체성과 존재라고 했는데, 둘이 서로 이름을 말하며 애정을 나누고 한다면,
이 영화에서 둘의 관계는 밋밋하다 느껴졌지만, 그 느낌이 없어지고 연인같다는 느낌을 줄거 같습니다.
저는 '연인같다는 느낌 = 존재감'을 없애기 위해 이름을 안 주었을 수도 있겠다. 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은유적으로 묘사된 부분이 많습니다.
남녀간의 사랑과 음악을 표현한 영화인데, 둘은 실질적으로 애정을 나누거나 한 과정이 없습니다.
그저 말 몇마디와 음악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와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둘의 관계를 대충 유추하는 듯한 느낌의 연출도 정말 일품이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뭔가 그냥 영상이 특이합니다
마치, 대학 동아리나 독립 영화나 다큐팀에서 찍은 듯 해서 현장감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소니의 6mm 캠코더로 촬영하여, 길거리 공연을 하며 사람들이 이에 호응하는 것이
작위적인 것이 아닌 진짜 호응하는 것이 담겨 더 좋았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전개방식-
우연히 그녀가 저녁에 지나가다 그가 자작곡을 부르는 걸 들었고,
우연히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그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렇게 둘은 서로 상부상조 하며 음악을 하며 사이가 가까워집니다.
그 후, 그녀와 작업을 하며 돈 문제와 프로듀싱 관련에서 서로 갈등이 없이 그냥 빠르게 해결됩니다.
다른 음악영화를 보면,
'비긴 어게인'에선 데이브가 그레타와 연인 관계지만, 음반회사의 직원과 바람을 피고, 둘은 헤어지게 되며, 그레타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댄은 원래는 그래미 상을 받을 정도로 유명하고 유능한 프로듀서이지만, 영화에선 퇴물로 묘사되며 회사지분도 넘기고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해고되게 되며, 그러다 그레타의 음악성을 보고 작업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른 영화에선 갈등요소가 있는데, 이 영화는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유심있게 볼 부분은, 두 남녀는 음악을 제외하곤 서로 접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국적도 아일랜드와 체코로 서로 다르며,
직업과 둘의 사회적 위치도 굳이 트러블이 생길 위치가 아닙니다.
그의 직업은 청소기 수리공이며, 그녀는 그저 직업이 묘사되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는 아일랜드 토박이이며, 그녀는 체코 이민자입니다.
서로는 접점이 없으며, 접점이 없다 = 닿는 부분이 없다 = 마찰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도출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로 닮은 부분도 비슷한 요소도 없는 둘이 친해지며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
음악 하나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게 더 이 영화의 매력을 극대화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다시 볼 때마다 느끼는 매번 다른 감정-
이상하게 이 영화를 매년 다시보면,
다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초등학생 저학년 시절 이 영화를 보면, 그저 심심하기 짝이 없었고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에 봤을 땐, 음악이 좋았다고 생각했고
중학생 시절엔 그저 사랑의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킨다고 생각했고
고등학교 1~2학년 시절엔 보다 더 현실연인이 헤어지는 듯 했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 뚜렷한 목표에 다다를수록 무언가 잃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와 그녀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는 뮤지션이 되러 런던에 가듯,
그녀는 가족이 다시 재결합 되듯,
여운이 계속 남게 되는 몇 안되는 음악영화 였습니다.
난 당신을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당신을 원해요
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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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 돈으로 엮일 때
극장에서 <멋진 하루>(2008)를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돈으로 엮이는 사랑 이야기가 많이 나오겠구나.’ 헤어진 남자 친구 병운(하정우)에게 떼인 350만 원을 받기 위해 그와 오롯이 하루를 함께 하는 희수(전도연)를 마주했을 때 (영화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현실 속 사랑은 그리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나는 희수의 해방을 보기는 했지만, 그 연결고리가 ‘돈’이라는 건 한편으로 씁쓸했다. <은빛살구>를 봤을 때, 17년 전 느꼈던 이유 모를 씁쓸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청약이 당첨되어도 걱정이다. 일생일대 결혼을 앞두고 최고의 행운을 얻은 정서(나애진)는 계약금 마련을 위해 엄마 미영(박현숙)을 찾아가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대신 미영은 과거 이혼한 아빠 영주(안석환)가 직접 쓴 차용증이 붙어 있는 색소폰을 건넨다. 하는 수 없이 떼인 돈을 받기 위해 고향 동해에 간 정서는 아빠와 아빠의 가족과 조우한다. 그곳에서 떼인 돈을 받기 위해 노력하던 중 이복동생 정해(김진영)와 유대하고, 예비 신랑인 봉성(박경현)을 동해로 불러들인다.
<은빛살구>는 보통의 가족영화와는 다르다. 콩가루 집안을 그리거나(<고령화 가족>) 누구나 알고 있지만, 외면했던 가족의 내홍을 들춰내거나(<장손>) 하는 다수의 가족 영화와 그 궤를 달리한다. 이 작품은 온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의 신세를 져야 하는 청년 세대의 현 상황을 소개하면서 혈연이 아닌 돈으로 엮인 가족이란 공동체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정서가 부모의 이혼 후 고향인 동해를 찾아간 건 오로지 아버지에게 떼인 돈을 받기 위해서다. 이 낯선 조우에 딸도 아빠도 그리고 아빠의 새 식구도 불편하기 짝이 없을 터. 오랜만에 딸을 본 아빠는 혈육임에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애증의 관계에 놓은 이들이라도 가족이라 하기엔 냉기가 철철 흐른다.딸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아버지는 그 돈을 맨 입으로 주지 않기 위해 본의 아니게 날을 세운다. 정서를 괴롭히는 건 아버지만이 아니다. 정해 또한 이복 언니인 정서를 통해 자신의 대학 등록금을 미리 받아내려 하고, 봉성도 청약 아파트를 얻기 위해 알게 모르게 정서를 압박한다. 정서의 엄마 또한 딸을 시켜 돈을 받아오게 시켰으니, 뭐 이 집안은 피가 아닌 돈으로 엮인 게 맞다.
물론, 정해와 친자매처럼 지내고, 봉성이 동해로 내려와 아버지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노력하고, 가까운 관광지로 가족 여행을 가는 등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을 겪는 정서는 잠시나마 아버지로 인해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과거의 순간을 잊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가족들의 안위보다 자신의 욕망에만 한없이 투명한 아버지의 냄새를 맡는다. 가까이하기도 싫은 그 냄새를 말이다.
극 중 떼인 돈 받아내기 프로젝트는 결국, 아버지, 가족 관계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고, 아직도 옭아매진 그 혈연이란 족쇄를 끊으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특히 이 부분에서 영화는 가족을 뛰어넘어 사회 제도로서 그 영역을 확장, 정서를 통해 돈과 평온한 삶을 위해 불온한 일을 넘길 것인지, 아니면 힘든 상황에 놓일지언정 떳떳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결단을 내린다. 매번 아버지(또는 가족)에게 흡혈 당한 정서가 도리어 흡혈하는 대상으로 역전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통쾌함과 시원함을 안긴다. 후반부 자신은 아버지처럼 냄새를 풍겨가며 안온한 삶을 살아가기 싫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정서의 모습은 임팩트 있게 다가온다.
가족이란 보편적인 주제를 ‘돈’이란 소재와 결부시켜 표현하려는 의도는 새로움을 전한다. 하지만 그 새로움이 도리어 영화를 낯설게 받아들이는 요인으로도 작용하는데, 특히 가족이나 사회에서 정해진 제도를 타파하는 것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상쇄하는 건 배우들의 힘이다. 극을 이끌어 가는 나애진은 불안함으로 점철된 정서를 입체감 있게 그려내는데, 아버지와 가족, 세상을 모두 못마땅하게 여기는 반골 기질과 서늘한 표정이 압권이다. 왜 이 작품으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배우상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이에 버금가는 안석환의 연기는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묘한 매력으로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호러 영화를 방불케 하는 싸늘한 시선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착하게 살면 맛이 없지. 건강해라” 정서와 기차역에서 헤어질 때 내뱉는 이 대사는 꼭 눈여겨보길 바란다.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첫 장편을 내놓은 장만민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서울에서 바쁘게 살아가던 정서가 우연히 꺼낸 가족사진에 묻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보는 마음에 대해 관객분들도 같이 상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영화를 설명했다. 사랑보다 돈으로 엮인 이 가족사, 그리고 이 관계를 타파해 가며 진정한 해방일지를 적어 내려간 정서를 보면서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길 바란다. 그 먼지의 맛이 볼품없어도.
사진 제공: ㈜마노엔터테인먼트
평점: 3.5 / 5.0
한줄평: 가족의 목덜미를 물어야 비로소 가능한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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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영화 시사회 후기 - 외톨이의 유일한 친구들이 떠나간다면?
사야카에게 유일한 친구는 강아지인 루뿐이다. 둘은 넓은 들판이 있는 곳인 비밀 장소에 자주 간다. 사야카가 루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과 똑같은 외톨이라는 공통점에서 의미를 찾아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사야카는 등에 있는 심각한 피부 질환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왕따였고 루는 주인에게 버려진 개였다. 하지만 루가 죽게 되자 사야카는 루를 잊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날 사야카는 루와 닮은 개인 루스를 보게 되고 따라가게 된다. 사야카가 도착한 곳은 레이디버드라는 선술집이었는데 루스의 주인이 후세라는 할아버지란 것을 알게 된다. 루스가 루와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야카와 후세는 친해진다. 사야카는 후세에게 기적과 하느님의 존재를 믿느냐라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후세의 아들인 고이치로가 죽었는지 물어보는데...
죽는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
만약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가 떠난다면?
하니엘의 철학적인 생각
어린아이에게 소중했던 존재들이 사라진다는 건 얼마나 큰 슬픔일까?
어린아이가 바라보는 죽음이란?
레이디버드라는 선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후세는 고이치로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야뇨증으로 죽었다. 후세는 자신의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죽은 아들에 대한 집착이 컸고 사야카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외톨이였던 사야카에게 유일한 친구란 루와 할아버지인 후세였다. 그러나 자신의 곁에 함께하던 소중한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사야카는 많이 슬퍼한다. 어린아이에게 소중했던 존재들이 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필자가 이 영화를 보기에는 내 곁을 아껴주는 사람들도 언젠가 모두 떠나간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기에 삶은 유한하다. 그리고 사야카가 떠나가 버린 후세와 루를 기억하지만 되돌아올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어린아이의 심정이란 게 얼마나 슬펐을지 공감이 된다. 마찬가지로 후세도 죽은 자신의 아들을 돌려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야카가 루를 잃었을 때처럼 큰 상실감을 갖는다. 그렇기에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사라지기 전에라도 소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열차도 잡을 수 없듯이 떠나간 사람도 붙잡을 수 없다. 그래서 사야카는 어린아이지만 자신의 유일한 친구들이었던 후세와 루가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을 일찍 안 것이다.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바라본 친구들의 죽음이 이렇게나 안타까운 건지 나는 알게 되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떠나갈 것이고 그때가 되면 나는 어린 나이에 소중한 친구들을 잃은 사야카의 기분을 알게 될 것 같다.
일찍 외톨이가 되어버린 사야카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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