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1-10-29 16:35:35
서부극의 새로운 템포
영화 〈퍼스트 카우〉 리뷰

황량한 벌판, 결투, 피스톨, 말, 선술집 등등. 미국 개척시대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 장르 서부극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것들이다. 무엇보다 비장한 분위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사막 위에서 말과 권총에만 의지한 채 삶을 이어가는 서부극 주인공들의 모습은 ‘내던져진 삶’이라는 인간의 고독한 실존과 닮은 데가 있다. 대부분의 서부극이 쓸쓸한 비장함을 뿜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결의 서부극이 있다. 영화 〈퍼스트 카우〉는 누군가의 표적이 되어 쫓기는 중국인 남성 킹 루를 유대인인 쿠키가 구해 주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몇 년 후 정착촌에서 만나고, 돈을 벌 방법을 궁리하다가 마을의 유일한 젖소의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어 팔기로 한다. 그리 특별하지 않은 줄거리 임에도 왜 〈퍼스트 카우〉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았을까? 이 영화가 기존의 서부극과 다른 점을 두 가지 측면에서 짚어 보자.


우선, 두 주인공이 너무 ‘귀엽다.’ 귀엽다는 말처럼 서부극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두 주인공 쿠키와 킹 루는 너무 귀엽다. 두 성인 남성이 우악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세심하게 서로를 배려하며 우정을 쌓아 가는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몰래 우유를 짜는 와중에 젖소에게까지 다정하게 말 거는 쿠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서부극의 두 남성 주인공에게서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랍고 새로웠다(물론, 서부극이 아니라도 영화에서 이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정을 가진 남성 주인공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두 번째는 〈퍼스트 카우〉의 주제다. 대부분의 서부극은 개인의 강함과 탁월함으로 고난을 헤쳐 나가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여기서 우정의 자리는 없거나, 부차적이다. 주인공은 타인과 관계 맺는 대신 자기 내면에 침잠해 삶의 무게를 외로이 견딘다. 그러나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로 시작하는 〈퍼스트 카우〉는 인간이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온기의 공간으로 우정을 그려 낸다. 고뇌하는 얼굴 대신 서로에게 기댄 두 남자의 표정이 영화의 전면에 등장하는 이유다. 〈퍼스트 카우〉는 혼자 고뇌하며 답을 찾는 서부극의 유산 위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자고 말하는 용기 있는 영화다.

〈퍼스트 카우〉가 서부극의 전통을 비틀기 위해 사용한 건 템포의 변주다. 영화는 지독할 정도로 느리다. 빠르고 빈틈없는 장면의 연속으로 전개되는 영화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지루함의 순간을 견뎌 내고 쿠키와 킹 루의 미묘한 표정을 마주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때부터 내내 행복한 즐거움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집에 놀러 온 자신을 대접하기 위해 장작을 패는 킹 루를 보며,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바닥을 쓸고 나뭇가지로 친구의 집을 장식하는 쿠키의 표정은 〈퍼스트 카우〉가 지독히 느렸기에 포착할 수 있는 장면이다. 즉 영화는 느린 템포로 대상을 천천히 비춤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두 남자가 우정을 만들어 가는 긴 호흡에 동참케 한다. 〈퍼스트 카우〉의 느림은 섬세한 배려가 깃든 머뭇거림,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을 보여 주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해롭지 않은 남성성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질문에 회의적인 사람이라면 〈퍼스트 카우〉를 꼭 봤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저 해로운 남성성이 과잉 노출되어 필요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상에 살고 있을 뿐,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쿠키와 킹 루가 각각 유대인과 중국인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희망은 ‘중심’에서 떨어진 저 먼 곳으로부터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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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일강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이 글은 영화 [나일강의 죽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페르소나를 앞세우곤 한다.
팀 버튼에겐 조니 뎁이 있었고, 웨스 앤더슨에겐 빌 머레이가.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에겐 로버트 드 니로가 그 역할을 충실히 시행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표지판 같은 페르소나의 얼굴을 보며 손쉽게 감독의 작품이 주는 포인트나 느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도 자신이 쓰는 책의 사이를 겅중겅중 뛰어넘어 다녀줄 인물이 필요했다. 절대 소멸하지도, 그렇다고 한 작품으로 안녕을 고하지도 않으며, 작가의 작품마다 작가 대신 독자들에게 따스한 인사를 건네줄 인물들. 그렇게 셜록 홈스와 브라운 신부, 그리고 멋들어진 콧수염을 가진 에르퀼 푸아로(참고 1)가 탄생했다.
회색 뇌세포라는 애칭까지 가진 탐정 푸아로는 전작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도 자신의 특기인 추리로 열차가 달리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사건을 해결했고. 이번엔 나일강 위의 배 한 척에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1937년에서 오늘로의 큰 걸음을 선택했다.
영화 [나일강의 죽음]은 원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나일강과 이집트의 아름다움은 물론, 갤 가돗의 고전미 넘치는 모습도 함께 담고 있으니. 원작의 내용과 비교해 보며 영화를 보는 재미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원작과의 싱크로율;거의 제목만 같은 것 같은 이 기분.
사진 출처:다음 영화
원작이 있는 작품의 숙명은 참으로 가혹하다. 무엇을 살리고 어디까지 축소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제작 과정에서부터 해야 하며,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개봉을 하고 난 뒤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대표 역작 중 하나로 꼽히는 [나일강의 죽음]을 두고, 마치 [해리 포터]처럼 원작의 재림을 선택할지. 아니면 [나는 전설이다]처럼 완전히 다른 성격의 영화를 만들지. 제작진들의 고뇌는 매우 깊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그러나 [나일강의 죽음]은 대부분의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과 반대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푸아로의 활약을 줄이고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서사 하나씩을 고이 쥐여주는 방법 말이다.나일강을 가로지르는 배 위의 모든 용의자들은 원작에도 없는 자신의 사연을 푸아로 앞에서 털어내기 바쁘며, 이로 인해 추리 영화의 필수 요소인 "떡밥"의 관리가 소홀해져버린다. 교묘하게 연결되고 순서를 건너뛰어가며 진실의 문양을 서서히 띄어야 할 떡밥이 인물들의 하소연으로 인해 뚝뚝 끊어지고 생기를 잃는다. 그 결과 영화의 템포는 나일강의 길이만큼이나 늘어지고 따분해져 추리는 이미 저 멀리 밀려났음을 느낄 지경이 되어버린다.
영화의 말미에 들어서자 그제서야 추리가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버린 주인공의 의자는 다른 잡다한 것들이 엉덩이를 들이 민지 오래다.
카리스마를 되찾으려 목소리에 힘을 싣는 푸아로의 외침은, 마치 자신의 자리 외엔 어디라도 돌아다닐 수 있는 기세로 뛰어다니는 유치원생들의 귓등을 스치는 잔소리 정도의 위력 밖에는 지니지 않는다. 애처롭고, 외면받으며 사태를 진정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붉은색. 사랑, 그리고 생명.;사랑의 화신. 자클린.
사진 출처:다음 영화
영화 속 모든 사람들은 사랑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마치 이 배 위에 승선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승차표의 값으로 내야 했던 것처럼.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아주 조금씩의 위선과 비밀을 적당히 뒤집어쓰고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눈과 사회의 위치라는 감시망 덕에 적당히 숨겨진 채 마음속에서 선뜻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재클린(에마 매키)의 사랑은 다르다.
그녀에게 사랑은 생명과도 같고, 사랑이 끝나면 목숨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라 말하는 만큼 재클린의 태도는 열정적이다. 자신의 그 불타는 감정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음은 두말할 것 없다. 그녀는 사랑의 화신임과 동시에 순수함을 상징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사랑에 대한 태도는 리넷(겔 가돗)을 대하는 것에서도 차이가 난다. 다른 사람들 모두 리넷이 가진 돈에 관심을 보일 때. 재클린은 그런 의도 전혀 없이 리넷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리넷 또한 엇갈린 사랑으로 인해 재클린을 잃는 것이 마음 아팠던 것이다. 어쩌면 재클린은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조각의 순수였을 테니.
드레스만큼이나 붉은 그 열병을 유지하기 위해 죄 없는 세 명의 피를 제단에 바칠 때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제단 위에 기꺼이 자신의 순수함과 영혼마저도 올려놓고 나서야. 재클린은 깨달았다. 열정만으로 가득했던 사랑은 이미 이 배를 타기 전에 끝이 났다는 것을.
재클린의 죽음은 마치 그녀의 말에 대한 책임감처럼, 피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500일의 썸머 푸아로편;그의 성장기
사진 출처:다음 영화
추리 소설의 중심은 탐정이 되어야 한다.
그는 작가의 분신이며 사건의 중재자인 동시에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탐정의 정체가 회색 뇌세포를 가진 푸아로라면, 기꺼이 영화의 많은 지분을 할애했어야 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러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영화 초반에 암시하는 푸아로가 겪은 사랑의 상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쟁 중 자신의 사랑을 잃었고 이로 인해 마음마저 회색빛을 띤 채 영원히 자물쇠를 채운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로 인해 푸아로의 눈은 다른 인물들이 가진 사랑, 혹은 사랑의 상실에 더 많은 관심을 얹어 세상을 보고 있었다. 마치 이별 뒤에 들리는 모든 노래들이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노래로 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비록 수단과 방법은 잘못되었지만.
사랑에 대한 열정을 확실히 보여주고 숨을 거둔 재클린을 보며. 푸아로는 사랑의 상처를 안고도 살아가는 법에 대해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잠깐 보인다.
그는 마치 영화 [500일의 썸머]의 톰(조셉 고든 레빗)이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여름 정오의 햇빛 같던 썸머(Summer,조이 데샤넬)를 건너 드디어 오텀(Autumn)을 만날 준비가 된 것처럼. 자신의 상처임과 동시에 다음 사랑의 장애물 같기만 했던 멋들어진 콧수염을 자르고 살로메(소피 오코네도)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푸아로는 "탐정"이 아닌 "사람"으로의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중심인물이 가진 문제점이나 결핍은 늘 한 작품의 주제를 차지하고 뒤흔들기에, 이 작품은 추리 영화로서의 매력을 단 하나도 보여주지 못한다. 나일강을 여전히 표류하고 있는 배 마냥. 영화는 그렇게 그냥 물살에 흘러가 버리다 끝이 나 버린다.
마치면서
원작을 알고 보는 사람이라면 매우 아쉬운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많은 감정선들이 생략되었고 푸아로의 능력에 감탄해 문장 사이에 머물던 시선을 빨리 끌어당겨 책장을 넘기게 하던 긴장감을 영화에서 재현하지 못했다.
영화 자체가 푸아로 개인의 성장에 희생당한 느낌이 든다.
물론 탐정이라고 해서 매일 사건 속에 파묻혀야 하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이번 영화에서의 명탐정은 자신의 의무는 모두 내려놓은 채 제목과 원작에서 오는 모든 스포트라이트만큼은 다 챙기려 한다. 이 점이 원작의 영화화를 기대하던 모든 관객들에게도 아쉬움을 남길 것이다.
참고 1
많은 표기법이 있지만 정식 한국어판에서 쓴 이름으로 통일하기로 한다.
[이 글의 TMI]
1. 다이어트 중간보고:8킬로 감량.
2. 독일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살 빠졌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나일강의죽음 #영화추천 #최신영화 #에르큘포와로 #추리소설원작영화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영화리뷰 #케네스브래너 #갤가돗 #레티티아라이트 #애거사크리스티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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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독특한 감성의 한국식 멀티버스 영화가 궁금하다면
마블(Marvel) 사는 히어로 영화의 신대륙을 개척함과 동시에 수많은 관객에게 평행 세계와 다중우주(Multiverse)라는 개념을 알렸습니다. 저도 스파이더맨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닥터 스트레인지가 이 세계, 저 세계를 오가는 것을 보면서 평행 세계와 다중우주의 개념을 확실히 깨달았죠. 마블의 최근 행보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접근했다면 알기 힘들었을 어려운 개념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는 바로 이러한 다중우주 개념을 적용한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거대한 우주 속에 존재하는 여러 보통의 우주들의 이야기'라는 설정만으로도 산뜻하고 신선한 작품이었죠. 이 영화 속에서 찬란하게 빛난 보통의 우주들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
Stars in the Ordinary Universe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는 현실의 일면에 상상력을 더한 흥미로운 3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됩니다. '우월한 유전자' 이론을 접하고 자율학습 대신 열등한 인간의 존재 가치를 찾아 방황하는 여고생의 이야기(<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 크고 창대한 꿈을 가져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대통령의 꿈을 좇다가 결국 거지가 되고 마는 한 남자의 이야기(<거지의 왕>), 입에 지퍼를 잠가야 할 순간에도 눈치 없이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고충을 다룬 이야기(<진실을 아는 자>)까지. 같지만 다른 평행 세계 속 이야기답게, 등장인물들이 시공간을 오가며 이 이야기, 저 이야기에 출몰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중우주 속 세계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이야기들을 단순하게 연결한 작품은 아닙니다. 세 이야기는 분명한 하나의 공통된 주제, 삶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죠. <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에서는 자기 자신이 열등한 유전자라고 믿는 주인공이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고, <거지의 왕>에서는 대통령이라는 환상 같은 꿈만 뒤쫓다가 거지가 되어버린 주인공이 삶의 의미를 깨달아 가며, <진실을 아는 자>에서는 괴로움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진실을 이야기하고야 마는 주인공이 삶의 의미를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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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이야기 모두 비참한 현실을 가벼운 웃음으로 비트는 블랙 코미디 요소를 갖추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여기저기를 다니며 삶의 의미를 고민하던 주인공은 '우월한 유전자건 열등한 유전자건, 땡땡이 치면 숙제가 많이 밀린다'는 허무하면서도 당연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큰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대통령을 꿈꾸었던 주인공은 거지가 돼버린 후에도 크고 창대하게 '거지의 왕'이 되겠노라 선언하죠.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진실을 이야기해 온 주인공은 별안간 진실을 말하는 입이 우월한 유전자로서 선택받은 것이라고 믿게 되고요. 삶의 의미라는 심오한 주제를 떠안은 세 주인공 모두 조금은 황당하고 우스운 결론에 다다른 셈입니다. 상영 후 진행된 GV에서 김보원 감독은 “현실을 리얼리즘으로 직시해버리면 고통이 배가 되기에 끔찍한 고통과 감정을 웃어넘길 수 있는 블랙 코미디 장르를 사랑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장르에 대한 그의 열정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작품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겁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인 <진실을 아는 자>에는 실제론 아무 의미 없는 별들을 머나먼 지구에서는 찬란한 빛으로 보고 감탄한다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보통의 우주들도 참 별 볼 일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마찬가지죠.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지구는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보통의 지구도 멀리서는 찬란할 겁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아주 작은 점일지라도 말이죠. 모든 일엔 배울 점이 있듯이, 이렇듯 허무맹랑함으로 범벅된 듯한 이야기 속에도 진득한 깨우침이 녹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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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화면비에서도 다중우주라는 개념을 재미있게 활용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세 번째 에피소드로 이어지면서 4:3 비율이었던 화면은 점진적으로 1.66:1 비율까지 확장됩니다. 또 세 우주가 전환되는 장면은 가장 큰 1.85:1 비율의 화면비를 사용하죠. 감독은 “우주가 다르니까 당연히 화면비도 달라야 하며, 평행 세계의 지구들이 모두 존재하는 화면은 마땅히 가장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변태 같은 설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관객은 이런 변태 같은 설정에 감동하지요.
철학과 과학, 존재와 사유, 진실과 탈진실. 블랙 코미디와 다중우주라는 외양 안에서 다양한 논제를 다루고 있는 <보통의 우주는 찬란하게 빛나는가>.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마블 사의 다중우주 영화와는 또 다른, 독특한 한국식 다중우주 영화를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Summary
무한한 다중우주에서 펼쳐지는 보통 사람들의 세 가지 이야기. 우주 #1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알게 된 한 여고생.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기묘한 자율학습을 시작한다! 우주 #2 삶의 의미를 통달한 듯 보이는 거지. 험난한 여정 끝 얻게 된 진실한 행복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주 #3 진실은 계속해서 진실을 알린다.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왜 다들 떠나갈까.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김보원
출연: 박서윤, 심규호, 오동민 외
Schedule in JIFF
2023.04.28(금) 메가박스 전주객사 6관 20:30
2023.05.01(월) CGV전주고사 4관 17:00
2023.05.02(화) CGV전주고사 6관 10:30
2023.05.03(수) CGV전주고사 4관 16:3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4월 27일 -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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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감정들이 불타지 않고 사그러든다
디즈니의 대표적인 고전 애니메이션을 꼽을 때, <백설공주>를 빼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1937년에 만들어진 이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 관객들에게 ‘하얀 피부에 순수함을 지닌 공주’와 ‘거울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미모를 확인하는 여왕’이라는 대비를 각인시켰다. 이 이야기는 사실 독일의 그림 형제 동화를 기반으로 하며, 옛날부터 ‘권선징악’과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장치로 활용되어 왔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버전으로 재탄생된 <백설공주>는 디즈니 고유의 색채와 어우러져, 뮤지컬적 요소와 마법같은 판타지가 더해져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최근 디즈니가 과거 애니메이션들의 실사화를 적극 추진함에 따라, 이번에는 <백설공주>가 그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이미 다양한 논란이 있었듯, 원작과 달리 백인이 아닌 라틴계 배우(레이첼 지글러)가 백설공주 역을 맡았고, 마녀 여왕은 기존과는 다른 이미지의 갤 가돗으로 캐스팅되었다. 디즈니의 ‘새로운 시도’라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관객들은 “이 캐스팅이 과연 어울릴까?”라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무엇보다 <백설공주>라는 고전 서사가 가진 익숙함이 이미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이 실사화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감정을 전달하는지가 관건이 됐다.
[첫번째 감정] 여왕의 욕심
이번 영화에서 백설공주(레이첼 지글러)는 새로 등장한 여왕(갤 가돗)과 대립 구도를 이룬다. 그러나 과거 애니메이션에서 여왕이 가진 욕망이 ‘왕국을 넘어 더 큰 세상까지 지배하겠다’는 식으로 느껴졌다면, 이번 실사판에서 여왕의 욕심은 의외로 꽤나 좁게, 사적인 영역에 머무른다. 여왕은 왕에게 접근해 미모를 무기 삼아 결혼에 성공하고, 결국 왕을 죽음에 이르게하고 왕국을 쥐락펴락한다. 표면적으로는 “정말 사악한 인물”이란 인상을 주지만, 커다란 비전을 가지기보다는 지금 손에 쥔 왕국과 아름다움만을 지키려는 데 급급하다.
이 때문에 여왕의 행동은 치졸하고 쪼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백설공주가 조금 더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죽이려 든다든가, 성에서 내쫓는 장면은 ‘저게 전부인가?’ 싶은 의문을 남긴다. 물론 동화 속 원전 역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되고 싶은” 여왕의 욕망을 보여주지만, 영화 속에서 조금 더 깊은 내면이나 거대한 야망이 드러났다면 훨씬 설득력 있는 캐릭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갤 가돗처럼 강인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맡았기에, 여왕의 욕망을 좀 더 웅장하게 그려줄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전반에서 여왕은 끈질긴 악의를 유지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스케일이나 동기에 있어 확장성이 부족하다. 미모 유지에만 집착하고, 백설공주를 질투하는 모습은 너무 전형적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캐릭터성이 관객에게 통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하는 의문만 남기고 만다. 조금만 더 과감한 설정이나 다른 인물들과의 역학을 보여줬더라면, 여왕이 가진 욕심이 제대로 살아났을 텐데 말이다.
[두번째 감정] 조나단의 당당함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왕자가 백설공주를 구하는 존재로 그려진다면, 이번 실사판에서는 조금 다른 감정적 구도가 펼쳐진다. 백설공주의 호감을 얻는 인물은 조나단(앤드류 버냅)이라는, 다소 의외의 캐릭터다. 그는 기본적으로 두려움이 없는 인물로, 더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기 위해 여왕의 음식을 훔칠 정도로 소신 있고 선량하다. 용기와 선함을 겸비했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고 자신도 산 속에서 도적 생활을 하는 처지이다 보니, ‘진정한 리더’로 나아가기엔 장애가 많은 캐릭터다.
백설공주가 조나단에게 호감을 느끼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그의 ‘당당함’ 때문이다. 이는 기존 원작에 비해 변화된 지점이기도 하다. 원작 속 왕자는 다소 수동적으로 백설공주와 ‘운명적 사랑’을 맺었지만, 실사판의 조나단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필요한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줄 안다. 그래서 백설공주가 힘들어할 때도 말없이 곁에서 지탱해주며, 사실상 그가 ‘동화 속 왕자’의 역할을 대체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당당한 성격 덕분에 조나단은 백설공주가 힘겨운 상황에 처했을 때 결정적인 활약을 보인다. 여왕의 위협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태도는, 기존 ‘백마 탄 왕자’ 서사를 약간은 새롭게 변주해 낸다. 다만, 도적 신분이라는 설정 때문에 “과연 그가 왕이나 귀족에 비해 충분히 매력적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영화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당당함과 선함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새로운 ‘남성 캐릭터상’을 제시한다.
[세번째 감정] 백설공주의 배려심
이번 실사판의 핵심은 역시 백설공주라는 캐릭터다. 과거 작품들에서 백설공주는 순수하고 착한 인물로만 부각되었다면, 이번에는 주위 사람들을 기억하고 세심하게 배려한다는 점이 크게 강조된다. 일곱 난쟁이는 물론이고, 마을 주민들, 심지어 적대적인 존재에게도 “네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해볼게” 같은 시선을 보이니, 그 선함의 폭이 훨씬 확장된 셈이다. 사실상 백설공주가 지닌 가장 큰 무기는 ‘배려심’이며, 주변 인물들이 그녀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 후반부를 보면, 백설공주는 여왕과 대결 구도에 서게 된다. 다만 힘이나 마법으로 압도하기보다는, 그녀의 배려심과 공감 능력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 의외로 여왕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계기가 되는데, 이를 보고 있으면 “정말 이 정도로 끝나나?” 하는 허전함도 없지 않다. 그러나 동화적 감수성을 생각하면, 백설공주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선함이 “정의로운 벌” 못지않은 힘으로 여왕을 몰아붙인다는 설정을 납득할 수 있다.
문제는 배우 레이첼 지글러가 이 배역에 완전히 어울리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영화는 그녀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으로 비추며 감정선에 집중하려고 노력하지만, 워낙 백설공주의 ‘백인 이미지’가 우리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이 많을 듯하다. 레이첼 지글러가 나쁜 연기를 펼친 건 아니지만, 캐릭터 해석과 비주얼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인상을 준다. 이는 어디까지나 관객 개개인의 선입견과 기대치가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결국 애니메이션 원작을 완전히 뛰어넘진 못하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실사화도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번 <백설공주> 실사판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보여주려 했을까. 기본 줄거리는 애니메이션과 동일하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뻔한 전개를 다시 보게 된 느낌이 강하다. 그나마 다른 점이라면 캐릭터 설정이 조금 바뀌었고, 뮤지컬 영화라는 점에서 새로운 노래들이 추가되었다는 정도다. 하지만 디즈니가 의도한 혁신적 변화라고 하기엔, 이야기 자체가 이미 너무 익숙해 긴장감이나 신선함을 크게 찾기 어렵다.
이번 캐스팅에 대해 반감이 있는 사람들은 “백설공주가 왜 백인이 아니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일곱 난쟁이가 실사로 표현된 어색함까지 지적한다. 실제로 난쟁이들이 전부 ‘작은 키를 가진 배우들’로만 구성되지 않았고,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오가는 모습에서 몰입이 깨진다는 반응도 꽤 많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캐릭터 조합이 어색한 지점이 존재하는 건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연출을 맡은 마크 웹 감독은 과거 <500일의 썸머> 같은 작품에서 아름다운 화면과 섬세한 감정선을 잘 살려낸 바 있다. 이번에도 화사한 색감과 동화적 분위기를 적절히 배치해, 시각적으로는 꽤 매력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시각적 아름다움’에 머문다. 영화 전체의 매력을 완전히 끌어올리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고루하고, 캐릭터 간 호흡 역시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백설공주> 실사판은 디즈니가 최근 시도해온 실사화 프로젝트 중에서도 “성공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작을 사랑했던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흥을 주기엔 부족하고, 캐스팅 논란이나 난쟁이 표현 문제로 인해 호불호도 극명해질 듯하다. 물론 뮤지컬적 요소나 화려한 색채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겠지만, 굳이 추천하고 싶을 만큼 눈부신 성취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래된 감정들로 가득한 이 동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불타오르지 못하고 사그라져버린 느낌이 짙다.
따라서 이 작품을 보러 갈지 고민 중인 사람들에게, “거창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전한다. 디즈니의 과거 명작을 실사로 다시 만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혹은 백설공주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싶다면 시도해볼 만하겠지만, 그 이상의 특별한 놀라움은 찾기 힘들다. 일상의 무거움을 잠시 내려놓고, 화려한 색감과 노래가 있는 동화 한 편을 보고 싶을 때 정도에나 가볍게 즐기길 바란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통해 “오래된 감정들은 더는 뜨겁게 타오르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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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확한 방점 없이 계속되는 죽음의 쉼표들
죽음은 언제나 연구 대상이다. 여전히 죽는 것, 그리고 그 이후의 것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우리는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죽어서 하늘 위로 가는가, 땅 밑으로 꺼지는가. 사후세계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미지라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살아 숨 쉬고 움직인 대략 100년의 세월을 보내면 그 이후 억겁의 시간에서 우리가 무얼 하고, 무얼 생각할지 전혀 알 수도 없는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일 테다.
때론 사후를 생각하는 것은 너무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관점을 달리해 ‘현세'에 집중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잘 살아 후회를 남기지 말자는 뜻이다. 후회는 결국 꼬리를 물어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욕망을 만든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공포일 것이고, 삶과 죽음의 순환을 부정하는 질낮은 의지일 것이다. 결국 무엇이 되었든 간에, 우리는 삶을 쥔 순간부터 죽음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 죽음을 온전히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에서 비로소 그 삶의 완결성이 현현해진다.
영화 <숨>은 우리가 삶을 쥐게 되면서 자연스레 마주해야 하는 그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죽음에는 다양한 시간이 뒤섞여 뭉쳐진다. 죽음 그 자체를 마주하는 시간,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 살아있는 자들이 그 죽음을 정리하는 시간.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이 세상에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은 인간으로부터 이 세상에 나고, 다른 인간 덕에 이 세상을 떠나갈 수 있게 된다. 다른 인간들이 죽은 인간들의 시신을 처리하고 애도하는 그 유기적 과정 덕분이다.
그렇기에 <숨>이 죽음과 그 이후를 대하는 태도에 집중하게 된다. <숨>은 장례지도사, 노인, 유품정리사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서 ‘죽음'에 대한 정답 아닌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유재철 장례지도사와 윤재호 감독의 합이 눈에 띈다. 영화 구조만으로는 3명의 인터뷰와 이야기를 각각 챕터별로 나누어 감독의 논리를 전개하는 것으로 느껴지지만, 그 핵심에는 유재철 장례지도사가 있다. 많은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고 여러 번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바라보고 있을까. 어떠한 것을 지독히 원하면, 그것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경험이 짙은 사람을 찾아가 보라는 말이 있다. 윤재호 감독은 그 말을 충실하게 이행하고자 했던 것일까? 유 장례지도사를 찾아가 그 궁금증과 결론의 실마리를 좇아보려는 시도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 누가 죽음에는 순서가 있다고 했는가. 유재철 장례지도사가 ‘웰다잉'에 관해 고민하며 아내와 담화 나누는 장면들은 담백하고 사실적이다. 그렇지만 더 죽음의 문턱 가까이에 놓인 노인과의 인터뷰가 삽입되는 순간 그 모든 고민은 우스운 것이 된다. 잘 죽는 것은 중요하다. 잘 죽어야만 삶의 뒷맛이 씁쓸해지고 고약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는 이들이 공존한다. 그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는 모른다지만 좁은 방에서 혼자 그 끝을 준비하는 노인을 비추는 카메라는 다소 잔인하게 느껴진다.
그 잔혹함에 대못을 박는 장면들이 뒤를 이었다. 유품정리사는 ‘한때' 빛났지만 혼자 스러져 고독사를 마주해야만 했던 이의 자택을 정리한다. 부패물이 집 온 곳곳을 뒤덮었고, 좁은 집에 뒤엉킨 잡동사니들은 보는 관객의 마음마저 답답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유품정리사는 고독사한 이의 ‘빛나던 과거'를 들추지만, 공기 중으로 흩어져버릴 정도로 의미 없는 안타까움만을 표출해 낸다. 과연 그 고인이 성공하지 못했기에 고독사한 것인가. 한때 빛났던 과거를 들춘 이유는 그렇지 못했을 훗날의 모습이 오명처럼 느껴져야 하기 때문인 것인가. 그런 점에서 <숨>이 고독사를 다루는 모습은 다소 고리타분했고, 보는 이를 불편하게끔 했다.
모두에게 죽음은 두려운 일이다. 사실은 죽어서 어떻게 될지를 알게 된대도 죽음은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은 모든 일의 끝을 두려워하고, 아쉬워하고 끝내 부정하고 싶어 한다. 죽으면 시체가 된다는 것은 이미 저명하고, 심장은 멎고 피부는 창백해지며 나의 의식이 사라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사후세계의 유무보다도, 현세에서 마주해야 할 ‘죽음'은 이미 추하고 아름답지 못하며 구질구질한 형태를 보인다. 죽음에 대한 관점은 다양하게 존재할 일이지만, 그 다양한 관점 속에서 <숨>은 다소 진부하고 헛헛한 과제를 관객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죽음에 대해 바라보려고 했던 그 날개의 펼침은 눈부셨대도, 이야기를 풀어갈수록 흐릿해지고 칙칙해진 과정은 누가 해결할 것인가.
죽음을 경험하고서 그 경험을 말로 풀어 줄 사람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두기만 할 뿐, 다시 거둬들이지는 못한 채 일종의 ‘방기'하는 형태로 지저분하게 풀어진 것을 놔둬 버린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관객의 몫인가.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이 분명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그렇다더라', ‘그런 것 같더라.'라며 여지만을 남겨둬 버리는 것은 찝찝한 뒤처리처럼 느껴진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둬버리는 것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할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 의문만이 영화가 끝난 뒤의 상영관 공기를 가득 채워 맴돌았다.
* 이 비평은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를 다녀온 뒤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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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노래로 조국에 안녕을 고하다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노래로 조국에 안녕을 고하다
한국영화사는 음악영화사다 섹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리뷰
감독] 로버트 와이즈
출연] 줄리 앤드류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시놉시스] 음악을 사랑하는 말괄량이 견습 수녀 마리아는 원장 수녀의 권유로 해군 명문 집안 폰 트랩가의 가정교사가 된다. 마리아는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폰 트랩가의 일곱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며 점차 교감하게 되고, 엄격한 폰 트랩 대령 역시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는 자신이 폰 트랩 대령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아이들의 곁을 떠나 다시 수녀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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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e- a deer, a female deer, Ray- a drop of golden sun, Me- a name I call myself, Far- a long, long way to run …. 음악 시간에 모두가 한 번쯤 블러봤을 노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가 대령의 자식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며 부른 곡이다. 음악 영화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도레미 송 외에는 큰 줄거리가 제대로 생각나지 않아서 이번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그 이야기를 다시 만나보았다.
서툴다는 것을 인정하다
자신의 아내가 죽은 뒤 폰 트랩 대령은 자식들은 군인들을 통솔하듯이 아이들을 양육한다. 마리아가 처음 가정교사로 폰 트랩 가에 방문을 한 날 건네는 인사만 봐도 굉장히 훈련이 잘된 군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본 마리아는 이러한 교육 방식은 동의할 수 없다며 폰 트랩 대령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빈으로 가 있었던 기간 동안 자신만의 방식으로 7명의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어린아이들답게 자유롭게 뛰놀면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다양한 노래를 가르쳐 주면서 감성을 깨우치도록 만든다. 처음에는 막무가내에,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가정교사라고 생각하며 마리아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폰 트랩 대령은 연인인 남작 부인에게 아이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선물로 안겨주고, 꼭 통제라는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부드러움으로 아이들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마리아에게서 배워나간다.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외부 출장이 잦은 본인에게 최선은 아이들을 그저 통제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폰 트랩 대령은 자신의 서툰 점을 빠르게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자신 역시 노래를 부르며 새롭게 다가가고, 마리아에게 무례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는 이처럼 처음이기에 서툴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극에 다양하게 풀어놓고 있었다. 첫째 딸 리즐과 랄프의 첫사랑 이야기, 마리아가 폰 트랩 대령에게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 등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은 ‘처음’과 처음이기에 겪는 혼란 속에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이 모든 과정을 굉장히 따뜻하게 품어주고 있었고, 문제 상황에 똑바로 직면하고 맞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길 응원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를 향한 마지막 인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전쟁 중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는 사실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견습 수녀 마리아가 해군 대령의 가정교사로 들어가며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고, 결국 폰 트랩 대령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던 터라 그 시기가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던 시기를 다루고 있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다루고 있어서 놀랐고, 이와 대비되는 아름다운 넘버들에서 찬란하면서도 애잔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폰 트랩 대령은 마리아와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나치 독일의 해군 장교로 재부임을 하게 되는데, 폰 트랩 대령은 이에 반발하고 야반도주를 결심한다. 하지만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나치 독일의 군사들은 폰 트랩 저택에 매복해 있었고, 야반도주를 들키자 마리아와 폰 트랩 대령은 가족합창대회에 나가려고 길을 나서는 중이라는 변명을 한다. 그렇게 그들은 합창 무대에 올라 그동안 갈고 닦았던 아름다운 선율을 오스트리아 국민과 나치 독일 군인 앞에서 선보인다. 이때 폰 트랩 일가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칫 잘못하면 죽음의 위기에 내몰린 상황 속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참담하면서도 굉장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합창 점수 발표 집계를 위해 폰 트랩 일가는 마지막 인사라는 컨셉으로 모두에게 굿바이 송을 부른다. 집에서 있었던 파티 현장에서 불렀던 굿바이 송은 정말 즐거웠고, 이제 자러 간다는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곡이었다. 하지만 이 곡이 나의 땅이었고, 나의 조국이었던 오스트리아를 향한 마지막 인사로 변하면서 폰 트랩 일가의 생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곡이 되어버렸다는 점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같은 곡을 다른 상황에 넣어 그 감정의 간극을 크게 준 것이 시대의 아픔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그저 재밌고 귀여운 뮤지컬 영화라고 생각했던 ‘사운드 오브 뮤직’. 제천에서 다시 만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시대의 아픔과 그 속에서도 삶을 어떻게 영위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찬란한 노래로 울림을 선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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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시간표
2022-08-12 19:30
메가박스 제천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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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앞에서 인간의 태도를 묻는 영화
❣️[Cinelab Curation]❣️
아직 4월임에도 낮 기온이 20도가 훌쩍 넘어가는 요즘,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이번 여름은 얼마나 더울지 벌써 걱정입니다…🥲
어제는 지구의 날이었죠.
오프라인에서는 건물 소등 캠페인을 하고, 온라인에서는 메일 삭제 운동을 하는 등 지구의 날을 맞아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요!
그리고 이번에 내한한 콜드플레이 콘서트에서는 자이로밴드를 회수하고, 페트병에 담긴 물의 반입을 금지하는 등 친환경적인 공연을 위해 노력한다는 소식이 있었어요.
이렇듯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이 취해야 할 행동을 고민하고, 그 방법을 찾아나가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이번 큐레이션을 통해 자연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고민해 보면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건강한 미래를 그려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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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전에 1개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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