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캔두2021-09-14 09:41:52
좀 비켜주실 수 있나요?
넷플릭스 <더 체어>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내가 보지 않을 수 없는 신작을 내놓았다.
바로 미국 어느 명문대 영문학과의 최초 여성 학과장이 된 '김지윤 박사'(산드라 오)가 겪는 좌충우돌과 고군분투를 그린 <더 체어>
주인공 이름이 '지윤'이라는데 안 볼 수가 있나. 이지윤 아니고 김지윤이라 아쉬울 뿐.
1편에 30분씩 6편이라, 재미있어서인지 진짜 짧아서인지는 몰라도 금방 볼 수 있다. 짧게 끝난 게 아쉬웠던 걸 보니 재미있었던 걸로. <더 체어>는 180분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인종차별,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 세대갈등, 언론과 SNS, 입양가족의 어려움 등 정말 많은 것들을 다룬다. (온갖 PC란 PC는 다 나온다고 보면 됨)
동양인 여성이 학과장을, 그것도 영문학과 학과장이라니. 내 편견 탓인지 몰라도 산드라 오가 영문학을 강의하는 모습은 꽤나 낯설았다. 그러나 그래서 더 멋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훌륭한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지윤'은 영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했기에 결혼하고 계약직 시간강사가 되기보다는 결혼을 포기하더라도 학교에 계속 남을 수 있는 길을 택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딸(주희)을 입양했는데 입양기관에서 매칭해 준 딸은 멕시코인이다. 아이는 세상을 떠난 친엄마처럼 엄마가 떠나버릴까 봐 무섭고, '지윤'은 남편도 없는 자신이 너무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무섭다. 일이 많은 '지윤'을 대신해 외할아버지가 주희를 키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국과 멕시코의 문화를 보여주는데 둘 다 너무 반가웠다. 민지's birthday party(돌잔치ㅋㅋ)에서는 심지어 고개 돌리고 소주 마시는 장면까지 나온다.
문학사에서 걸출한 업적을 남기긴 했지만 40년째 학교를 떠나지 않고 '고인 물'이 된 노교수들도 내가 학교 다닐 때 만난 몇몇 교수님들이 떠올라 흥미로웠다. 40년째 똑같은 강의를 하면서 '뭘 모르는 요즘 것들'이 수강신청을 안 해서 폐강 위기에 처할 정도인데도 기존 방식만을 고집하는 꼰대들을 보며 인생에서 만난 라떼를 외치던 많은 꼰대들도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교수는 학문적 연구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가르치는 것도 함께 해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기에 그들은 교수법(가르치는 방법)도 연구해야 하지 않겠나.
세대갈등 문제의 원인 중 하나가 늘어난 수명으로 인해 기존의 윗사람들이 나가지 않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자리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었구나 싶다. 물론 다들 인문학보다는 코딩에 관심 있는 것도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었음.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선배들은 대리 정도는 정말 큰 하자가 없으면 다들 어렵지 않게 진급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리되기도 힘들어졌다. 아직도 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체된다. 비단 어느 사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얼마 전에 뉴스 보니 국회도 고령화는 마찬가지. 50대 이상이 70%가량인 조직에서 청년을 위한 정책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미친 짓처럼 느껴진다.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졌다. 민감한 이슈들을 다루긴 하지만 웃긴 장면들도 많이 나와 부담 없이 볼 수 있는데, 아래 대사가 인상 깊었다.
지윤이 수강생 5명이라 학교에서 내쫓길 위기에 놓인 엘리엇(고령의 백인 남성, 40년 전 학과장, 종신)에게 인기강사인 야즈(젊은 흑인 여성, 계약직, 종신 아님)는 트위터 팔로어도 8,000명이라 얘기하니 엘리엇 왈"예수는 제자가 12명이었는데 그럼 예수도 루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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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백이 아냐 떠난 적 없으니까
둘리가 돌아왔다.
아기공룡 둘리의 유일한 극장판,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이 4K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마음에 떠올랐던 문장이다. 그러나 정작 극장에서 둘리를 만난 순간, 마음속 문장을 수정했다. 컴백이 아냐 떠난 적 없으니까! 하는 블랙핑크의 노래 가사로.
다시 보니 명확히 알겠다. 둘리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였다는 거. 그리고 둘리는 어른 되어 보면 더 재미있다는 거.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은 1996년 개봉 작이다. 시골 마을의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는 1996년 이후의 그 어느 날, 노란색 비디오로 이 영화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질리도록 돌려 보았다.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둘리도 보고, 비디오도 보고, 딱히 둘리를 되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일상에는 둘리가 가득했다. 12색 둘리 물감이나 24색 둘리 크레파스, 필통 같은 데에.
학년이 올라가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둘리는 어쩐지 촌스럽게 느껴졌다. 크레파스도 필통도. 사실 내 그림 실력에는 딱 참했던 12색 둘리 물감 대신, 나도 뭔가 좀 더 멋지게 생긴 전문가용 튜브 물감 쓸래. 둘리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좀 더 청소년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 그렇게 한동안 둘리를 잊었다. 귀여운 비눗방울 노래도. 좋아했던 색감의 그림도. 특히 볼 때마다 '작화를 간단히 했는데 색감만으로 저렇게 맛있어 보일 수 있나?' 신기해서 유난히 좋아했던 둘리 특유의 라면 그림까지.
1억 년 전 빙하는 다시 녹고, 둘리는 더 선명한 색채를 덧입고 우리 곁에 돌아왔다. 나도, 나를 둘러싼 세상도 달라졌다. 너무 어린아이 같다고 싫어했던 크레파스는 다시 비슷한 느낌의 오일 파스텔로 유행하고, 지금의 나는 둘리 굿즈 내준다면 냉큼 사러 갈 기세. 그래 우리에겐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이전에 둘리가 있었지. 이거 잘 돼서 둘리도 시즌제로 뽑아줘요. 짱구나 코난처럼 영영 다 해먹자.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 둘리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본다.
첫 번째, 어른의 눈으로 보니 더 매력적인 둘리의 모험
둘리의 모험은 당시 어린 눈에 너무 참신했다. 미래로든 과거로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타임코스모스도 신기하지만 그걸 타고 간 우주에서 버스 정류장이나 공중전화를 보는 것이 더 신기한 기분이었다. 익숙한 것들과 낯선 것들이 뒤섞여 더 독특하고 흥미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달까. 우주해충이나 가시고기도 임팩트 있는 캐릭터라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1996년 작품인데 지금 어른이 되어 보아도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불편하지 않고, 유쾌하고 다정하다.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어른의 눈으로 보니 더 재미있었다.
인터넷에서 가끔 단편적인 기억만 가지고 둘리와 친구들을 민폐 취급하는 글이 많았는데, 막상 보니 둘리와 친구들은 그런 말을 듣기엔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가진 어린이들이었다. 둘리가 저런 말도 할 줄 아는 애였구나... 둘리와 친구들은 아이의 순수함과 호기심을 가졌으면서도 묘하게 쌍문동에 거주하는 현대 서울 사람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번 재개봉은 8090 서울을 사랑스러운 감각으로 채색한 배경 위로 몽글몽글 떠오를 추억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둘리는 훨씬 더 매력적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역시...
두 번째, 별사탕처럼 통통 튀는 캐릭터 케미스트리
고길동 아저씨도 이제 희대의 빌런이라는 오명을 벗은 것 같지만, 둘리 등장인물들은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진상인지 아닌지' 평가받는 것 같다. 그만큼 둘리가 오래 사랑받고 모두가 아는 콘텐츠라는 뜻도 되겠지만, 그만큼 우리가 진상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만큼 지친 사회를 살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둘리를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니, 짧은 대사에서도 각자 성격이 확실하게 묻어나는 캐릭터들이 서로 톡톡 튀면서 펼치는 케미스트리가 그저 유쾌하기만 했다. 한때 얄미워 보였던 캐릭터조차 왜 이리 귀엽기만 한지. 고길동 아저씨는 '불쌍한 사람' 그 이상으로 다시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는 놀랍게도 둘리와 친구들과 수평적 관계를 맺는 어른이며, 툴툴대면서도 자식조카 밥 야무지게 챙기는 남성이었다. 게다가 왕년에 홍콩 영화 좀 본 K-소드마스터였고요.
다른 캐릭터들도 21세기의 시선으로 보니 더욱 독특한 매력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슈퍼스타를 꿈꿨던 마이콜은... 21세기에 활동했으면 혁오와 잔나비를 이어 인디씬의 독보적 존재감을 담당했을 텐데. 유퀴즈는 못 나와도 라디오스타에서 소소한 입담을 자랑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재발굴해 줄 필요가 있다.
묘하게 세파에 지친 어른의 시각을 가지고 있어, 볼 때마다 아동노동 근절을 외치게 만드는 또치의 '어른식' 현명함도. 성깔 있지만 의리도 있는 도우너도. 그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둘리의 MBTI는 아마도... ENFJ... 아닐까?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 구역 최강자였던 희동이도. 피지컬 공격력과 상황 판단력, 어떤 상황에도 요동하지 않는 마음을 갖춘 장군감이지 민폐 빌런이 아니다. (종종 회자되는, 희동이가 둘리와 엄마의 재회를 방해하는 장면은 이 극장판 내용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보시길.)
세 번째, 그 시절 사랑했던 면과 오늘 새로 사랑하게 된 면
그 시절 사랑했던 성우들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일도 즐거웠다. 박영남 성우는 짱구 이전에 둘리였고, 이선 성우는 뽀로로이기 이전에 또치였지. 성우 정미숙(희동이), 최덕희(도우너), 이인성(고길동), 홍시호(텔레비전 아나운서/간수) 등 익숙한 이름들의 노련한 연기 또한 반가웠다. 캐릭터도, 연기도, 그 둘이 어우러지는 놀라운 케미스트리도 모두- 그때는 좋았고 지금은 더 좋다.
엔딩 크레딧 영상도 아기자기 예쁜 데다가, 옆에 일러스트로 나름의 쿠키라고 할 수 있는 후일담이 펼쳐진다. 그러면서 “요리 보고~ 조리 봐도~”로 시작하는 익숙한 주제가의 2절까지 듣게 되었는데, “고향은 다르지만 모두가 한 마음”이라는 가사에... 어른은 울컥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고향이 다 다르네... 둘리도 기후 난민이었네... 그런데 이 우정 너무 아름답잖아... 고길동 씨를 포함하여 둘리의 모든 친구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것, 배척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둘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만으로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어른이 되고 싶어 씩씩거리던 아이들이 우주로 향했듯, 아이였단 우리들도 자라 둘리에서 새로운 것들을 본다. 둘리는 떠난 적이 없었으므로 컴백할 필요도 없다. 컴백은 내 몫이었다. 어른이 되어 둘리 앞자리를 떠났던 나의 몫. 분주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여전히 어른된 우리를 충분히 이해해 줄 만큼 다정하고 즐거운 둘리와 친구들을 만나러 가 보자.
*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은 5월 24일 재개봉합니다. 배경 하나까지 사랑스러운 추억 속 둘리를 극장 스크린으로 다시 만나 보세요!
**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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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의 마음을 관통할 명대사, GOAT
어제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 보셨나요?
3시간에 달하는 입장발표는 예술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직장인의 애환이 서려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그래서! 고통받고 있을 직장인들을 위한 혹은
공감되는 명대사. 할 말 다 하고싶은 사람 드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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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다시 보듬어보는 소중한 순간
쁘띠마망 (Petite Maman, 2021)
개봉일 : 2021.10.07 (한국 기준)
감독 : 셀린 시아마
출연 : 조세핀 산스, 가브리엘 산스
우리를 다시 보듬어보는 소중한 순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성공적인 개봉 이후, <워터 릴리스>, <톰보이>, <걸후드>까지. 일명 성장 3부작을 통해 따스하고 섬세한 감성을 가진 감독으로 인정받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새로운 영화 <쁘띠마망>.
다양성과 성장을 중심으로 한 이전 작품들보다 한층 더 깊어진 감성을 담은 <쁘띠마망>은 어린아이의 작은 손처럼 아주 부드럽고 순수하게 보는 이의 마음을 토닥인다.
영화의 주인공은 맑은 눈을 가진 어린 소녀 녤리다. 녤리는 엄마 아빠와 함께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와 외할머니의 추억이 담긴 시골집에 가게된다. 그리고 엄마의 소중한 오두막과 추억이 남아있는 숲에서 엄마와 이름이 같은 소녀 ‘마리옹’을 만난다.
녤리와 마리옹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뒤를 따르고, 손을 잡고 함께 오두막을 쌓아간다. 눈을 맞추자마자 느껴졌던 친밀감과 애정. 이 마법 같은 만남과 며칠간의 시간은 녤리와 마리옹의 마음을 조심스레 감싸 안는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울리고, 녤리와 마리옹이 서로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는 순간, 나의 마음도 자연스레 활짝 열려버렸다. 이름을 부르는 것, 사랑을 속삭이는 것, 서로의 고민을 말하는 것이, 괜찮다고 조용히 안아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새삼스레 다시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픈 마음을 숨기고 살아가는 엄마 마리옹과 엄마의 마음을 토닥여주지 못해 속상해했던 딸 넬리. 그리고 녤리의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 마리옹.
녤리와 마리옹의 우정과 세 사람 사이에 숨겨진 비밀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마음속에 담아둔 소중한 사람을 향한 사랑에서 피어난 아픔을 위로받고 싶다면 <쁘띠마망>을 꼭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작은 위로가 꽁꽁 숨겨둔 고민을 해결해 줄 수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 고민했던 위로를 전할 용기를 줄지도 모르니까.
쁘띠마망 시놉시스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 ‘마리옹’과 함께 시골집으로 내려온 ‘넬리’.
어린 시절 엄마의 추억이 깃든 그곳에서 ‘넬리’는 엄마와 이름이 같은 동갑내기 ‘마리옹’을 만나게 된다.
단숨에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끼는 ‘넬리’와 ‘마리옹’! 하지만 ‘넬리’는 이 우연한 만남 속에서 반짝이는 비밀을 알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마음이 아픈 엄마 마리옹
녤리의 엄마 마리옹은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어린 나이에 마리옹을 낳아 사랑으로 키워온 엄마. 엄마로서의 책임감으로도 벅찰 텐데, 사랑하는 엄마(외할머니)까지 마리옹의 곁을 떠난다. 언젠가 이별할거란 걸 알고 있었겠지만, 이별을 예감했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니까.
녤리는 마리옹이 많이 아파하고 있다는 걸 안다. 외할머니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 녤리는 마리옹에게 과자와 음료를 건네고, 이어서 목을 감싸 안는다. 마리옹은 녤리 덕분에 잠시나마 웃음을 짓는다. 엄마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작은 행동이 안타깝고 사랑스럽다.
엄마의 추억이 담긴 곳에서 만난, 궁금했던 시절의 엄마
외할머니와 엄마는 이 집에서 어떤 추억을 쌓았을까, 엄마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녤리는 엄마와 할머니의 사이가 어땠을지, 나와 같은 나이의 엄마는 무얼 했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마리옹은 오두막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만 해줄 뿐, 추억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마리옹은 아픈 마음도, 아프지 않았던 순간들도 모두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숨긴 채 넬리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녤리는 마리옹이 어릴 때 만들었다고 했던 오두막이, 추억이 그 자리에 남아있을지 궁금해지기라도 한 건지 마리옹이 담아준 시리얼을 비우고 혼자 숲으로 향한다. 그리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오두막 앞에서 엄마와 이름이 같은 소녀 마리옹을, 자신과 같은 나이의 엄마를 만난다.
궁금해하기만 했던 그 시절의 엄마 마리옹. 녤리는 마리옹의 뒤를 따라 외할머니와 마리옹이 함께 살았던, 지금은 비어버린 외할머니의 집으로 향한다. 흰색으로 칠해진 벽이 아닌 연녹색의 벽이 그대로 남아있는, 외할머니가 앉아 있는 따뜻한 집으로.
말할 곳이 없었던 비밀
녤리는 마리옹의 마음이 아픈 이유가 궁금했지만 답해주지 않는 마리옹을 바라보며 그저 묵묵히 기다린다. 그리고 어린 마리옹을 만났을 때,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던 마음을 털어놓는다.
“가끔은 나 때문에 엄마가 슬픈 게 아닐까 해.”라고.
가만히 녤리를 쳐다보던 마리옹은 답한다. “너 때문에 슬픈 건 아냐.”라고.
녤리는 어린 마리옹을 만나 홀로 고민했던 마리옹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위로받고, 어린 마리옹이 털어놓은 꿈과 미래를 알게 된다. 마지막 날 아침, 서로 마음을 나눈 두 아이가 팔을 활짝 벌려 모습이 찡하게 다가온다. 언제든 엄마가 떠나지 않을까,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던 녤리의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순간이다.
엄마도 나도 누군가의 딸이니까
마리옹은 이른 나이에 녤리를 낳고, 어릴 적 꿈꿨던 배우의 삶이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산다. 그녀에게 삶은 조금 벅찬 존재일지도 모른다. 엄마이면서 누군가의 딸이기도 해야 하는 삶. 마리옹은 자신의 고민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홀로 아파한다.
마리옹은 엄마(외할머니)와 이별하고 다시 엄마의 집을 마주할 수 없다며 집을 떠난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온다. 마리옹은 내가 엄마를 잃은 슬픔을 겪는 것처럼, 내가 없다면 녤리 또한 그 슬픔을 겪게 된다는 걸 깨닫기라도 한 듯 녤리에게 “먼저 떠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녤리는 “미안해하지 마.”라고 답한다. 녤리는 어린 마리옹을 만난 후, 마리옹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도 힘들 수 있고, 엄마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이자 엄마와의 이별 앞에서 큰 아픔을 겪고 있는 딸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마리옹과 녤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눈을 맞추며 서로의 눈빛 안에 담긴 마음을 확인한다. 조금 뜬금없을 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엄마와 딸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소중한 친구라는 말이 떠오르는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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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인터뷰] 영화에 녹아든 시선
*국문 인터뷰 하단에 영문 인터뷰 번역도 함께 준비되어 있습니다:)
There is also an English interview translation at the bottom of the Korean interview:)
▶Date: 5 /5
▶Interviewee : Adam Wong (A)
▶Editor/ Interviewer : 윤채원 chaewon Yoon (Y)
in 북눅 전주(Booknook Jeonju)
Y: 제일 처음 , <우리가 이야기하는 방법 (원제: The way we talk) > 이라는 제목만 보고 영화를 접했을 때는 ‘인물들이 이야기 하는 다양한 방식, 방법을 보여주는 이야기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인물이 이야기하는 방식보다는 오히려 인물들이 자신의 가치랑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에 이야기가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혹시 감독님께서 이 작품을 통해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 이야기 하고 싶었던 점은 어떤 것일까요?
A: 이 영화가 가지는 핵심 가치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예요. 사실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생각해 봤더니 지금까지 저의 모든 영화들은 항상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더라구요. 그렇지만, 특히나 이번 영화는 굉장히 사전 조사도 많이 했고, 실제 사례들에 많은 기반을 두었고,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아까 주제로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언급 해주셨는데, 소통도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사실 진정한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소통을 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 얼마나 다르고, 또 비슷한지 알아야 하고, 그것은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에요.
영화 속 세 등장인물은 모두 소통 방식이 다릅니다. 한 명은 수어만을 사용하고(Wolf), 한 명은 인공 와우와 수어를 함께 사용하고(Alan), 한 명은 인공와우(CI)를 사용하여 수어를 사용하지 못합니다(Sophie). 저는 이들을 통해 '인공 와우를 착용했을 경우 더 잘 말할 수 있다' 이런 것들에 집중 했다기보다는 그들의 정체성이 가진 가치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왜 그는 수화를 지금까지 계속해 왔는지, 인공 와우를 왜 거부하는 지에 집중했던 거죠. 울프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고, 가족들도 모두 수화를 사용하기에 어릴 적부터 그 언어에 익숙했던 반면, 소피는 후천적으로 청력을 잃게 된 케이스에다가 부모님은 모두 들을 수 있는 청인이잖아요. 그러니 그녀의 부모님은 아이가 아프다고 생각하고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도록 치료 되길 바라는 거죠. 수어를 배우는 대신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고요, 그러나 인공 와우의 문제는 안경처럼 맞춘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좋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에게는 실패 가능성이 되게 높아요. 인공 와우를 착용한다고 해도 근거리에서 들리는 소리와 원거리에서 들리는 소리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사회생활에 적응이 어려울 수도 있죠. 앨런의 경우에는 수화와 말이 모두 가능하잖아요, 그는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람들이 흔히 청각 장애인이라고 하면 수화만 한다고 생각을 하죠. 그렇지만 사실 스펙트럼이 되게 광범위하고,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들이 가진 생각들이 서로 대치하기도 해요. 이것과 관련해 그들이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어떤 탐구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회와 같이 협력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Y: 방금 이야기해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이야기하는 방법>에서도 그렇고, 이전 작품들에서도 계속해서 감독님께서는 청춘이나 정체성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루셨는데, 그런 주제들에 관심을 갖고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사실 뭐라 딱 떨어지게 설명을 할 순 없지만, 주제가 먼저 저에게 다가오고 그다음 그로부터 어떤 동기 부여가 되는 순간이 딱 찾아오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10년 전에 제가 <댄스 스트리트 The way we dance >를 만들기 시작했을 땐, 제가 가르치던 학교 앞에 있는 편의점 앞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왜 춤을 추지?’라는 생각에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진정한 나를 찾는(True self) 것이 저에게 너무 중요한 문제가 된 것 같아요. 저, 그리고 홍콩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세계에서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것이 동시대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경우, 5년 전 우연히 한 단편 영화 대본을 받았는데, 그 중, 물에서 수어를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전까지는 제가 청인이다 보니 말하지 못하는 것은 불리한 것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장면을 통해 사람들이 물 안에서 말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수화로 물속에서 훨씬 더 자유자재로 소통을 잘하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죠. 그 영화는 아직 실제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그 한 장면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우리는 흔히 그들을 청각 장애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것은 장애가 아니라 그들만의 문화인 거예요. 그래서 deaf가 아닌 대문자 D를 사용해 Deaf (고유명사)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느 날 친구, 그리고 농인분들과 같이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식사 시간에 농인 친구들에게 만약에 나중에 기술이 엄청 발달해서 하루 만에 들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지금 그대로 사는 걸 선택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미 그들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거죠. 그때 뭔가 허를 찔린 기분이었고, 마침 그 자리에 프로듀서가 함께 있었는데 이걸 장편 영화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함께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Y: 영화 속 인물의 대화나, 아이가 그리는 그림, 앨런이 찍은 사진 등 문어가 많이 등장했던 것이 인상 깊었는데, 혹시 특별히 문어를 언급하신 이유가 있는지, 혹시 문어의 움직임이 수화와 관련이 있어서는 아닌지 궁금했었어요. 저는 보면서 문어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표정도 다양하게 사용하고 손 마디마디 유연하게 활용하는 수어가 유사하다고 느껴졌거든요.
A: 문어가 영화를 봤을 때 인상 깊게 다가왔나요?
Y: 네. 사실은 며칠 전에 한 영상에서 문어는 뉴런이 다리에도 있어서 다리 8개를 다 각각 독립적으로 유연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인지 그런 문어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표정부터 손 마디까지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수화랑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상 깊게 다가오더라고요.
A: 흥미로운데요. 사실 특별한 뜻이 있던 건 아니에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를 비롯한 농인에 대한 많은 영화들에서 바다도 많이 등장하는데, 바다 또한 저는 의도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림을 그리는 장면 같은 경우엔, 소피가 아이들에게 바다를 주제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도록 한 것이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문어가 해양 생물 중 그리기 가장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나 싶어요 (웃음).
Y: 그렇군요(웃음) 아, 아까 영화 속에 세 가지 서로 다른 소통 방식이 등장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영화의 도입부터 사운드 디자인이 다양하게 구성됐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혹시 이것도 관객이 그들의 소통을 경험해보길 원했던 마음에서 기획하신 걸까요?
A: 맞아요.그냥 글로써 읽었을 때는 인물의 심리가 이해가 잘되었는데, 영화로 만들고, 혹은 대본으로 쓰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인물들을 이해하기 어려워 하더라고요. 이 기계가 왜 필요한 건지, 소피의 말에 울프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글을 총 4명이 함께 썼는데, 우리가 쓰면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던 것들이 막상 대본화가 되니까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더라고요.
자신만의 개성이나 성격을 구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건 어렸을 때부터 자라온 성장의 경험이에요. 예를 들면 처음부터 듣지 못했다던가, 아주 조금만 들렸다거나, 그러한 경험들인데, 이런 것이 단순히 이미지나 글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니까 사운드 디자인에 신경을 써서 관객이 그들과 유사한 히어링 포인트를 포착하고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Y: 사운드 디자인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해주셨는데, 사운드 디자인 외에도 이 영화를 연출하며 특별히 더 신경을 많이 쓰신 부분이 있으실까요? 물론 영화의 모든 부분은 중요하지만요. (웃음)
A: 농인의 문화가 어떤 다양한 측면에 침투해있는지 보여주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대본 구성부터 후반 작업, 촬영 등 모든 과정에서 이 Deaf 문화를 어떻게 투영할 것인가, 청인과 농인을 가리지 않고 영화를 봤을 때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자막 작업을 해야 할까 하는 지점들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 중에서도 영화 작업을 위해 조사를 하다 보니 발견한 건데, 인공 와우를 사용해도 무조건 잘 들리는 건 아니고, 그것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의 문제도 많더라고요. 조사를 하며 그런 점들을 깨닫게 되고,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사운드 디자인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던 것 같아요.
Y: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벌써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네요.. 슬슬 마무리를 해야할 것 같은데 동시대 사회에서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영화의 역할은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A: 너무 거대한 질문인걸요 (웃음) 음...사람들에게는 스토리가 필요하고, 특히 요즘 같이 복잡한 사회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스토리의 중요성이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고,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가야 되는지 의미를 찾아야 하고, 그러한 의미들이 더욱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스토리텔링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엔 극장 말고도 숏폼이나 틱톡, 유튜브와 같이 영상을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졌어요. 비록 이렇게 영화를, 스토리를 보여주는 방식은 많이 바뀌었지만 영화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엔 주말에 가족끼리 영화를 많이 보러 갔었는데 요즘은 극장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잖아요, 그런 측면에서는 한편으로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 이전보다 더 특별한 의미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Y: 공감이 가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다음 작품에서 그리고 싶은 인물이 있으신가요?
A: 아직 다음 계획은 없지만, 이 영화를 준비하며 오랜 시간 농인 문화에 대해 조사를 했고, 또 그 과정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서 다음 작품에서도 이 주제를 조금 더 이어가 보고 싶긴 해요. 한번만 촬영하기엔 자료들이 너무 아깝고 영화를 준비하며 농인에 대한 관심이나 영감이 더욱 많아져서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만 이번에는 수어 자체 뿐 아니라 수어 통역사에 대해서 조금 더 집중을 해보고 싶은데, 이번 영화보다는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입니다. (웃음)
Deaf culture은 한 가지로 특정할 수 없는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단순히 말로 분명히 표현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일까, Gv와 인터뷰를 통해 만난 그는 주어진 시간 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풍부한 이야기를 모두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짧은 시간에 아쉬워하는 사람이었고, 그러한 모습은 그가 누구보다 이 이야기에 애정과 관심을 가진 사람이란 걸 느끼게 해주었다.
그가 영화를 설명할 때 항상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는 ‘스펙트럼’ 이다. 우리의 고정관념과 달리 농인의 세계와 인생에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측면과 다양한 생활 방식이 존재하고, 그는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들을 영화에 담음으로써 단순히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세상과 협력을 해 나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지' 보여준다.
그는 5/7일 열린 GV에서 울프와 소피, 앨런의 아역을 맡았던 배우를 제외하고는 전부 농인 배우였으며 ,수어 담당 조감독과 함께 작업했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약 5년 간 그들의 문화에 대해 공부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이 그토록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에게 와 닿았던 것은, 어쩌면 농인, 그리고 사회를 향한 감독님의 세심하고 따뜻한 시선과 소통방식 덕분이 아니었을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애정을 가득 품은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영화 <우리가 이야기하는 방법>을 통해 나는 작은 일상의 가치들과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돌아보며 나는 어떠한 따뜻한 시선과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느낄 수 있을 지, 나는 어떤 존재로 타인과 소통하고 이 사회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
Y: The first thing I’d like to ask is about the title, The Way We Talk. When I first watched the film, I thought it might be about different ways of communication. But after watching it, I felt that it was more focused on how the characters explore their own identities and values. What did you want to convey through this film?
A: The central theme of this film is identity, the searching of true self After making the film, I realized that all of my past works have always been about the same topic. But this time, the film (The Way We Talk) is based it on real-life cases, and I thought it’s a good chance to me to talk about this topic that are still rarely shown in our society.
And I think communication can also be seen as a main theme because communication is very important to construct true-self, and I think true self be defined by “others’. To understand who we truly are, we need to research how we are different and similar to others—and that happens through communication.
The three main characters in the film all communicate differently. One uses only sign language to communicate other people(Wolf), another uses both sign language and a cochlear implant (CI) (Alan) , and the third uses a CI and doesn’t sign at all(Sophie). I wasn’t focused on whether someone with a CI could speak better—I wanted to highlight the value of identity. For instance, why did one character continue using sign language? Why did they refuse a CI?
Wolf was born deaf and his whole family uses sign language, so he grew up with it as his first language. Sophie, on the other hand, lost her hearing later, and her parents are hearing people. So they viewed her as “sick” and wanted her to be “restored” to her original state. That’s why she had cochlear implant surgery instead of learning sign language. But 'CI' doesn’t work the same way for everyone. They’re not like glasses that simply correct a problem—they often don’t work, or make it hard to distinguish between near and far sounds, making social adaptation difficult. Many people assume that deaf people only sign, but in reality, they have a wide spectrum. People make different choices depending on the situation, and their perspectives can even conflict with one another. I wanted to show how these characters explore their identity, and how they collaborate and communicate with society.
Y: This film, and your previous works have often deal with 'youth' and 'identity'. Did you have any special reason that you to tell these stories?
A: It’s hard to explain in a very structured way, but I think, always the topic comes to me first—and then later, some story that inspired me to develop the story. I have a moment of motivation that sparks everything. For example, when I made <The Way We Dance> ten years ago, it started with me watching some people dancing in front of a convenience store near the school where I was teaching. I thought, “Why are they dancing?” and that was the beginning.
More recently, finding one's true self has become very important. I think It’s not just about me or Hong Kong, but about the whole world. I feel that discovering our true selves is a value that we all need to reflect on today. As for this film, it started about five years ago when I happened to read a short film script. There was a scene where someone was signing underwater. As I'm a hearing person, I used to think of being unable to speak as a disadvantage, but that scene changed my perspective. Underwater, people can’t talk—but signers can still communicate freely. That struck me. That film hasn’t been made yet, but that scene stayed with me. We often refer to them as “hearing-impaired,” but it’s not really a disability—it’s a culture. That’s why I want to use a capital “D” in 'Deaf' to highlight their identity. One night, I had dinner with some Deaf friends, and I asked them: “If technology advanced and you could hear again in just one day, would you choose that?” They said no—they’d rather live as they are. That moment really struck me. My producer was there too, and we decided to make a feature film on this topic.
Y: I was really struck by how often octopuses appeared in the film—whether in the characters’ conversations, in the child’s drawings, or in the photos Alan took. I was wondering if there was a particular reason you chose to include octopuses. Was it perhaps related to sign language? While watching, I felt that the octopus’s fluid movements and expressive nature were quite similar to sign language, which also uses a wide range of expressions and the flexible movement of each finger.
A: Oh, the octopus made a strong impression on you?
Y: Yes. I recently learned that octopuses have neurons in their legs, so each arm moves independently and flexibly. And when I watched a movie, I thought moving of octopus looks like sign language, in freedom and flexibility. Especially, I thought it is similar with flexible finger moments and using facial experiences of sign language.
A: Interesting.. But actually, I didn’t include them with that intention. In the scene where Sophie teaches children, she asks them to draw the sea freely. I think the octopus is just the simplest marine creature to draw. (laughs) Also, many films about Deaf people—like those by Takeshi Kitano—often feature the sea, but actually, I'm not that intention and that's not my inspired. I was inspired this film by that earlier short film script, the one scene in that script, I felt that the ocean was a space where Deaf identities were fully expressed, a place where only they could communicate freely.
Y: I see (laughs). Earlier, you mentioned that the film features three different communication styles, and from the very beginning of the movie, I could feel that the sound design was quite diverse. Did you plan this with the intention of allowing the audience to experience their ways of communication?
A: Yes, exactly. When we wrote the script, everything made sense to us, but when we turned it into a screenplay and showed it to others, they had a hard time understanding, for example, Sophie needed the device or why Wolf was so angry at her. Four of us co-wrote the script, and what felt natural to us didn’t always translate well on screen.
We realized that each character’s upbringing—whether they were born deaf or lost their hearing later—shaped their personalities and ways of interacting. But I think just writing or showing that isn’t enough. So I paid attention to the sound design—to help the audience experience what hearing might be like for each character and to better understand them.
Y: Aside from sound design, what aspect of the film did you pay the attention to?
A: I focused on showing how Deaf culture permeates many aspects of life. From scriptwriting to post-production and shooting, I constantly thought about how to reflect Deaf culture and make it understandable to both hearing and Deaf audiences. Subtitling also was important. During our research, I learned that even with 'CI's, hearing is not guaranteed. There are many issues when the device doesn’t work properly, So that's why I put so much effort into the sound design—to show these realities clearly.
Y: As our conversation comes to a close, time has flown by so quickly. Before we wrap up, I’d love to ask—what do you think is the role of cinema in today’s society?
A: That’s a huge question! (laughs)
Umm.. I think people need stories—especially now, when the world feels more complex and unpredictable. There are more problems, more confusion. So people need meaning in their lives, and stories help with that. Cinema is one of the most powerful ways to tell those stories. Fewer people go to the theater these days. We now have short-form videos, TikTok, YouTube. Though the platforms have changed, I don’t think the storytelling power of cinema has diminished. And nowdays, watching a film in the theater has decreased, so watching a film in a theater become more special than before—maybe even more meaningful.
Y: Oh..Time's up. Last, do you have any specific characters you’d like to explore in your next film?
A: I don’t have any set plans yet, but after all the research I’ve done on Deaf culture, I feel like I want to continue exploring this topic. It feels like a waste to stop now—I’ve gained so many insights into the Deaf community. But this time, I’m interested in focusing more on sign language interpreters. And I also want to work at a slightly faster pace than with this film.
Deaf culture has various aspects that cannot be defined in one word, so it is difficult to express it clearly in words. Perhaps that is why, when I met him through an interview with GV, he was someone who regretted not being able to express or explain all the rich stories that could not be expressed in words in a given time, and this made me feel that he is a person who has more affection and interest in this story than anyone else.
One of the words he always uses when describing movies is ‘spectrum.’ Contrary to our stereotypes, there are many aspects and lifestyles that we have not thought of in the world and life of deaf people, and by including characters with such a diverse spectrum in the movie, he goes beyond simply showing their daily lives and shows us ‘how we can cooperate with this world,’ ‘how we can find our true selves,’ and ‘how we can communicate with the world while maintaining our individuality and identity.’
He said that, except for the actors who played the younger roles of Wolf, Sophie, and Alan at the GV held on May 7, all of them were deaf actors, and he worked with an assistant director, who in charge of sign language and studied their culture for about 5 years to make the film. The reason the characters in the film were able to communicate so freely, and their warm hearts touched us, was perhaps because of the director’s meticulous and warm gaze and communication style toward the deaf and society?
Thanks to Adam, through conversations with him, who was full of affection for what he wanted to say, and through the film <The Way We Talk>, I looked back on the values of small daily lives and the world around us, and thought about what kind of warm gaze and method I could use to look at and feel our society, and what kind of being I am to communicate with others and exist in this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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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어지는 빛과 외면하는 얼굴들 사이에서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 1976
-마틴 스콜세지
-드라마, 스릴러
‘트래비스 비클’은 뉴욕의 밤거리를 달리는 택시 드라이버이다. 그가 운전할 때마다, 보이는 길거리엔 자동차와 간판들에서 나오는 빛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어떤 남자에게는 그 가득한 빛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가면조차 쓸 수 없는
영화 내내, 트래비스를 한 명의 사람으로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트래비스는 자신이 모는 택시와 하나처럼, 마치 도구처럼 취급 받았다. 영화 속 유력한 대통령 후보 팰런타인은 트래비스의 택시를 타게 된다. 팰런타인을 위해 선거운동을 하는 벳시에게서 들었던 남자를 자신의 차에 태우게 된 트래비스는 신이 나서 그를 응원하며 듣기 좋은 말을 건넨다. 그러자 팰런타인은 웃으며 다음 대통령이 바꿔줬으면 하는 것을 묻는데, 정치에 대해 아는 것 없이 그저 순수한 반가움과 기쁨으로 말을 건넸던 트래비스는 당연히 대답하지 못한다.
자신은 정치에 대해 모른다며 넘어가려는 트래비스와 집요하게 원하는 것을 말하라는 팰런타인. 미묘하게 변한 강압적 분위기에 트래비스는 고민하다, 길거리의 쓰레기들을 쓸어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이 원했던 것을 트래비스가 말해줘서 놀랐던 것일까. 아니면 너도 그 쓰레기 중에 하나인데 쓰레기가 쓰레기를 쓸어버리고 싶다고 말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일까. 팰런타인의 표정은 의미심장하게 변한다. 차에서 내리며 잔돈은 넣어두라고 말하는 팰런타인. 그것은 분명 선의와 호의가 아닌 약자를 향한 강자의 멸시였다. 끝까지 가면을 벗지 않는 팰런타인과 가면을 쓸 여력조차, 아니 마음조차 없는 트래비스. 그 간극은 승객이 택시 드라이버에게 돈을 건네는 창문 하나만큼의 좁은 거리에서 이루어졌지만, 사실 그 간극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할만큼 넓었다. 그렇게 강자와 약자 간의 계급이 주는 간극ㄱ은 옳은 방향으로 가려던 한 사람의 방향을 조금씩 뒤틀었다.
빛이 보이지 않는 추락
팰런타인이 트래비스를 조금씩 뒤틀었다면, 트래비스를 끝내 추락시킨 것은 벳시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인상을 로맨틱한 독백으로 전하는 트래비스, 그 순간은 마치 꿈 속에서 천사를 본 것처럼 황홀함과 희망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트래비스의 일방적인 노력에 둘은 가까워지는 듯 보였지만 그들의 관계는 한 순간에 허무하게 끝이 난다. 그 이유는 다른 것도 아닌 영화 한 편이었다. 트래비스와 벳시는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데, 영화에는 나체의 남녀가 나오게 된다. 그러자 벳시는 영화관을 박차고 나가게 되고 트래비스를 포르노나 보는 쓰레기로 취급한다. 포르노 영화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트래비스. 평생 그런 영화만을 보아왔고 다른 영화를 볼 기회조차 없었던 트래비스는 그저 자신에게 익숙하고 재밌는 영화를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벳시는 그런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또 다른 택시를 타고 떠나버린다.
만약 트래비스가 택시 드라이버가 아니었다면 벳시가 단 영화 한편으로 트레비스를 그렇게까지 매몰차고 차갑게 몰아붙였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트래비스의 말투, 옷차림, 직업 등으로 벳시는 이미 트래비스의 가치를 단정지었고, 그 단정에 대한 확신의 근거가 바로 그 영화일 뿐이었을 것이다. 벳시가 떠나버리자 트래비스는 자신도 택시가 있다며 중얼거린다. 그리고 아마 그 순간 트래비스는 자신이 나아질 수 없는, 그리고 언제든지 대체되고, 갈아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갱단들 사이에서 아이리스를 구한 트래비스는 영웅이 된다. 그러던 중, 아이러니하게도 벳시가 다시 한번 트래비스의 택시를 탄다. 그렇게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택시는 벳시의 집 앞에 도착한다. 그리고 벳시는 택시값을 계산하려 지폐를 꺼낸다. 둘의 인연을 정리해버리는 그 지폐 한 장. 너가 아무리 발악해도, 쓰레기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듯한 조소. 지폐 한 장에는 그 조소가 담겨 있었다.
저 창문 너머에서 들리는
영화 속,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깨끗했던 트래비스. 그를 보면서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겹쳐 보였다. 언제나 웃고 행복하고자 했던 트래비스와 트루먼. 하지만, 세상은 이들을 내버려두지 않았고 철저히 도구화 했다. 세상은 이들이 대중을 즐겁게 하는 일, 그리고 사람을 나르는 일만을 하길 원했고,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희망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트루먼은 창문을 깨고 자유를 얻었지만, 트래비스는 끝내 창문을 깨지 못했다. 택시 드라이버로서 바라본 거리에 가득한 인간 쓰레기들. 그것들 중에는 펠런타인처럼 화려하고 깨끗한 외면을 가졌지만, 누구보다 지독한 것들도 있었다. 그렇게 트래비스는 거리의 쓰레기들을 쓸어버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고 단련한다. 그렇게 단련이 끝나고, 펠런타인의 유세현장에 나타난 트래비스. 그는 무언가 확신을 한 듯, 모히칸 머리를 하고 있다. 사람을 위하는 척 연기하며 단상에 선 펠런타인과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뿐인 트래비스.
하지만 서로가 받는 관심과 사랑의 총량은 펠런타인이 서있는 단상과 트래비스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차이 났다. 택시의 창문 사이보다도 더욱 멀어진 둘의 거리는 결코 좁힐 수 없었다. 사람들을 위하는 척 가면을 벗지 않는 펠런타인. 트래비스는 그를 암살하려 하지만 총도 제대로 꺼내 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실패한다. 그제서야 군중들이 처음으로 트래비스를 쳐다보게 되고, 그 순간에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트래비스는 영웅의 모습이 아닌 허중지둥 비겁하게 도망치는 한심한 쓰레기의 모습이었다.
나에게만 암흑같은
학대받는 아이리스를 위해 트래비스는 갱단을 괴멸시킨다. 그리고 스스로도 자살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총알은 없었다. 총알이 없었던 것을 알게 된 트레비스는 안심했을까, 아니면 절망했을까. 분명 절망했을 것이다. 트래비스는 자신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쓸어버려야 하는 거리의 쓰레기로 생각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희망에서 시작하여 스스로를 죽어야 할 쓰레기라고 단정짓기까지의 외로운 과정들. 이 과정들은 좁은 방, 꺼진 TV 앞에서 홀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고통과 상실의 연속들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과정들을 알아준 이는 없었다. 갱단을 소탕하고 소파 위에 쓰러진 트래비스부터 시작하여 괴멸된 갱단, 트래비스를 포위한 경찰들을 거쳐 길거리의 사람들까지 담아내는 카메라. 그 카메라가 담아내는 하이앵글은 건조하고 관조적이다.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하는 자들과 스스로는 쓰레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들. 이들 중 쓰레기는 누구일까.
트래비스는 룸미러를 통해 언제나 손님들을 쳐다본다. 그 모습은 손님들이 자신을 친구이자 한 사람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트래비스의 그런 바램에 무색하게도 그들은 아무도 트래비스를 친구 또는 사람처럼 여기지 않았다. 그들에게 트래비스는 그저 쓰레기통이었다. 택시의 뒷좌석에 자신이 들고 온 쓰레기를 버리고, 침을 뱉고, 토를 하는 인간들.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트래비스는 쓰레기들을 위한 쓰레기통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답도 하지 말고 그저 입 닥치고, 자기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라는 한 손님의 말처럼 트래비스의 인생에는 자신의 생각과 원하는 것을 이야기 할 기회가 없었다. 그저 기계처럼 택시만 모는 것이 세상이 그에게 바라는 유일한 것이며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그곳에 몸을 맡겨
트래비스가 택시를 몰 때마다 보이는 자동차들의 라이트와 가게의 간판들. 그것들이 내뿜는 빛은 흠결 없이 깨끗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흐리고 탁하다. 하지만 그 흐리고 탁한 빛들 중 어느 한줄기조차도 트래비스를 비추지 않았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는 존재하며, 그림자가 없는 빛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의 빛이 흐리고 탁함을 부정하며,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곁에 드리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림자가 다가오면 멀어지는 빛들. 그 빛들은 누군가를 외면하는 얼굴과 닮아있다.
트래비스에게 남은 삶은 그야말로 잿빛이다. 트래비스가 아이리스를 구하고 영웅이 된 것조차 그의 망상이라는 해석이 있을 정도로, 영화 속 트래비스의 남은 삶에는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길거리의 쓰레기들을 누구보다 혐오하지만, 그들에게 시선이 점점 끌리는 트래비스. 어쩌면 트래비스는 그 쓰레기들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리의 쓰레기들도 과거에는 트래비스와 닮은 눈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희망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갔지만, 수많은 멸시와 외면을 마주하고 결국, 자기혐오의 결정체가 되어 쓰레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가다 수없이 봐온 쓰레기 더미들이 내뿜는 눅눅한 비린내와 누린내마저 온기로 여겼을 것이다. 그렇게 그 온기마저 느끼기 위해 그들은 그 쓰레기 더미로 뛰어들었고, 그들은 점점 더 커다란 쓰레기 더미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겨울이 되고, 혼자서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질수록 트래비스도 점점 더 그 온기에 이끌릴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트래비스들이 고민하며 지나왔던 거리를 지나, 결국 쓰레기 더미에 몸을 맡기게 된다. 낮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뉴욕의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저 쓰레기 더미들을 불쾌해하고 흉물스럽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라. 그 길거리의 쓰레기 더미들은 만든 건 그 어떠한 것도 아닌 당신들과 우리, 그리고 나라는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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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팬들에게 준 선물들 정리! (이스터에그)
안녕하세요 마블쟁입니다!!
드디어 스포가 있는 자세한 리뷰 영상입니다!
영화 속에 들어있던 수많은 이스터에그들 중,
이번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이라고 해도 될 캡틴과 아이언맨의 떡밥 및 이스터에그 들을 자세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영상 재미있게 봐주세요~
2018. 04. 27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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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시내가 사라졌다 리뷰 -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의 진짜 윤시내 찾기 어드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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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영상은 홍보마케팅사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영원한 디바 `윤시내`가 고별 콘서트를 앞두고 사라졌다?!
전설적인 가수의 실종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한 가운데,
20년 간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로 활동해온 순이(오민애)는
`윤시내`와 함께할 뻔한 꿈의 무대도, 일자리도 잃어 좌절에 빠진다.
한편, 사람들의 관심이 고픈 유튜버 `짱하`(이주영)는
라이브 방송 중 우연히 찍힌 엄마 `연시내` 영상의 조회수가 떡상하자
대박 콘텐츠를 꿈꾸며 `윤시내`를 찾는 여정에 따라 나서는데…
동료 가수 `운시내`(노재원)와 함께 가시내, 윤신애, 윤사내까지 모두 만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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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 리마스터링으로 돌아온 판타지 마스터피스 '호빗: 뜻밖의 여정' 절찬상영중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 11월 24일 대개봉 '호빗: 다섯 군대 전투' 12월 2일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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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는 무사히 현재로 돌아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