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4-26 14:31:52
직장인의 마음을 관통할 명대사, GOAT
국힙원탑 민희진 대표를 위한 명대사들
어제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 보셨나요?
3시간에 달하는 입장발표는 예술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직장인의 애환이 서려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그래서! 고통받고 있을 직장인들을 위한 혹은
공감되는 명대사. 할 말 다 하고싶은 사람 드루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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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오브 더 월드
뉴스 오브 더 월드
남북 전쟁이 끝나고 5년이 지난 1870년, 키드 대위는 텍사스주 일대를 돌아다니며 마을 주민들에게 돈을 받고 신문을 읽어주는 일을 한다. 키드 대위는 남군 출신이어서 전쟁에 진 남부를 통제하고 있는 북군의 검문에 공손하게 대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군의 총에 맞아 죽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북군은 점령군으로 남부에 진출했고, 전쟁에 참여했다 패한 남부의 여러 주를 '미합중국'의 연방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남부의 인민들은 북부가 주도하는 연방제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키드 대위가 남부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신문을 읽어주며 돈을 벌 수 있었던 건, 당시 인민 대부분이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신문을 매번 사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인민은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의 변화를 뉴스를 통해 알고 싶은데, 정보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신문을 읽는 것이고, 그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위해 키드 대위는 '신문 읽어주는 남자'가 되어 남부를 떠돌고 있었다.
키드 대위가 길을 가다 우연히 부서진 마차를 발견하고, 그 안에 있던 소녀를 보게 된다. 이 소녀는 영어를 하지 못했고, 마차에서 찾은 문서에서 소녀가 가야하는 목적지를 알게 된다. 키드 대위는 북군 기지를 찾아가 소녀가 사고를 당해 지금 혼자이며, 가족이 먼 곳에 있으니 찾아달라고 말하지만, 북군은 담당자가 없고, 최소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키드 대위는 소녀를 가족에게 데려다주기로 마음 먹는다. 소녀는 독일어를 하지만 마치 야생에서 들개처럼 자란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는 소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소녀가 백인 사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행동, 이동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무리를 보며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울부짖는 걸 보면서, 이 소녀가 어릴 때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함께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키드 대위는 소녀를 가족에게 데려다 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녀를 딸처럼 생각하게 된다. 키드 대위의 가족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그의 아내가 젊은 나이에 콜레라로 죽었다는 장면이 짧게 나온다. 고향을 찾았을 때, 친구에게 전해들은 아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키드 대위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 때문에 저주가 내렸고, 그로 인해 아내가 죽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키드 대위의 개인적 독백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미국의 역사에서 백인들이 저지른 온갖 만행을 압축한 상징적인 독백이기도 하다. 미국의 역사는 처음부터 학살의 역사였으며, 백인에 의한 다른 인종의 학살, 전쟁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했음을 의미한다.
키드 대위는 소녀를 딸처럼 여기며 보살피고, 소녀를 가족들이 있는 곳까지 데려가는 과정에서 소녀를 해치려는 백인들과 맞서 싸우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어렵게 목적지에 도달한다. 소녀를 가족에게 안전하게 데려다 준 것에 만족하고 돌아서지만, 키드 대위는 다시 소녀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발에 밧줄이 묶인 소녀를 발견하고, 다시 소녀를 데리고 나온다. 소녀를 받아들인 부부는 친부모가 아니었고, 단지 노동력이 필요해서 소녀를 받아들인 것이었고, 들개처럼 행동하는 소녀를 길들일 수 없음을 고백한다.
키드 대위는 소녀를 데리고 나와 함께 남부를 떠돌며 신문을 읽어주는 일을 계속한다. 키드 대위는 소녀의 아버지 노릇을 하고, 소녀는 들개처럼 떠돌던 삶에서 문명사회로 들어오게 된다. 두 사람은 가족을 이루게 되고, 이것은 백인이 저지른 범죄의 반성과 야생에서 고난의 삶을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과 유색인종의 화해를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이렇게 따뜻한 영화를 그저 따뜻한 마음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한계이기도 하다.
다른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백인 군인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으로 들어가 백인 문명-학살과 침략의 역사-을 거부하고, 스스로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흥행에도 성공한 예가 있었다.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백인들의 범죄를 반성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이야기는 꾸준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럼에도 백인 주류 사회는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이후, 백인이 저지른 온갖 만행에 관해서 은폐하려는 시도를 지금도 하고 있다. 이런 백인 주류 사회의 역사 은폐를 정면으로 비판한 학자가 '하워드 진'이다. 그는 '미국민중사'를 통해 미국의 역사라고 말하는 백인의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고, 미화되었으며, 진실이 은폐되었는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헐리우드가 아주 드물게 백인이 저지른 역사에서의 범죄를 자백할 때가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범죄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용서를 비는 행동과 실천은 당연히 꾸준해야 하고, 사죄와 반성의 증거를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지금도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차별 정책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심각한 사회 문제인 미국에서, 이런 영화가 한편 나왔다고 호평을 얻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물론,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보다는 좋지만, 가해자가 어설프게 화해를 말하는 건, 오히려 피해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행위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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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마냥 웃을수는 없었던 홍상수의 하루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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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홍상수
출연진 : 김민희,기주봉,김승윤,하성국,송선미
동상이몽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의 시점을 연이어 보여준다. 첫 번째 주인공은 상원이다. 상원은 여배우다. 상원은 친한 언니 정수의 집을 찾아간다. 상원은 잠을 많이 잔 것 같다. "언니. 왜 나 안 깨웠어?" "너 잘 자더라." "언니. 이런 일 있으면 다음에 좀 깨워." 영혼이 없어 보이는 투정 몇 마디를 나눈다.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둘. 하지만 서로가 이 대화는 껍데기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난데없이 시야에 들어오는 강아지. 강아지의 이름은 '우리'다. 우리야 안녕! 상원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먹이를 주는 상원. 정수는 상원에게 "먹이를 많이 주진 마라"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상원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주고 싶은 만큼 먹이를 주는 상원. 그 순간 두 사람에게 손님이 찾아온다.
두 번째 주인공은 시인 홍의주다. 홍의주는 유명한 시인이다. 폭넓은 인지도 덕에 젊은 사람들의 관심이 최근 급증했다. 하지만 홍의주가 원하는 건 넓은 인지도가 아니다. 바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삶이다. 사실 의주는 얼마 전에 '이제 술, 담배를 하다간 정말 위험하다'라는 진단을 받았다. 사력을 다해 금연에 절주 중인 의주. 이런 의주를 찍기 위해 영화과 학생 기주가 의주의 곁에 있다. 하하 호호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기주와 의주. 이 두 사람에게 낯선 손님이 찾아온다.
물안에서
글쓴이가 생각하는 홍상수의 최고 강점은 신선함이다. 홍상수는 매번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 가장 최근작 3편 <소설가의 영화> <탑> <물안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가의 영화>는 흑백과 컬러의 대비로 홍상수의 창작론과 동기부여에 다룬 영화였다. 홍상수 영화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쿠키영상에 들어갔다. 이 쿠키영상에 담긴 짧은 엔딩에 미적 아름다움을 눌러 담았다. 보통 무심하게 현상을 담았던 홍상수의 카메라가, 예전과는 다르게 극적인 연출력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탑>은 홍상수의 멀티버스 영화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건물이 단순히 주거공간으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각기 다른 세계관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러 여러 변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이 '변하지 않은 존재'가 진주인공인 영화가 <탑>이었다. <물안에서>는 영화 전부를 아웃포커싱으로 촬영했다는 점이 알려져 있다. 이 아웃포커싱은 아무 이유없이 들어간 것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어두운 분위기가 생과 사의 갈림길을 흐려놓는다는 점에서 ‘물 안’이라는 콘셉트와 어울린다. 홍상수가 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촬영으로 구현한 것이다.
본작 <우리의 하루>역시 신선하다. <낮과 밤> 이후에 오랜만에 자막으로 상황을 전달하는 장면이 나왔다. 자막이 들어가는 방식도 이후의 장면과 아이러니하다. 가령 두 번째 장면에서 시인 의주에게 손님이 인생, 사랑, 진리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 장면을 보면 의주는 거침없이 술술 대답한다. 하지만 이 장면 첫 자막에서는 ’의주의 마음이 복잡하다 ‘는 식의 대사가 적혀있다. 자막과 작중 실내 상황이 대치되는 것이다. 후반부에 정수가 고양이를 잃어버리는 장면에서는 ’정수는 고양이를 잃고 잃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라는 대사가 시퀀스의 시작이다. 영화에서 관객이 유추할 수 없는 것들을 일부러 자막으로 보여준 셈인데, 이는 홍상수의 필모그래피에서 볼 수 있었던 경향이다(대신 어떻게의 관점에서 이 연출법은 기존의 필모그래피에서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의미부여를 거부하는 것이다. 비단 자막뿐만 아니라 고양이 ‘우리’와 ‘고추장 풀어 먹는 라면’ ‘미안합니다’ 라는 대사 역시 마찬가지다. 두 주인공의 이야기 모두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받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둘이 영향을 받았다면 영화에서 의미부여를 인정한 셈이 된다. 하지만 홍상수는 이를 뒤엎는다. 작중에서 의주가 하는 말처럼 ‘네가 아는 답은 전부 오답‘이라고 영화가 연출 내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 쓸쓸함에 대하여
이 영화는 코미디로서도 탁월하다. 이 영화를 보고 2010년대 초반의 홍상수가 떠올랐다. 홍상수 특유의 19금 코미디는 물론이고 어색한 상황으로 웃기는 장면도 몇 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최고 웃긴 장면은 가위바위보 신이다. 기주봉 배우가 능청스러운 연기에 탁월한 것도 물론이지만 그 상황 자체가 워낙 재미있다. 김승윤 배우는 술자리 많이 불려 다녔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고밀도의 유머 밑에 깔려있는 그림자는 무시할 수 없다. 이전에 죽음에 대해 다룬 <강변호텔> <물안에서>는 아예 직간접적으로 죽음이 등장한다. 각각 두 영화의 엔딩이 그 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내내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하다. 바로 홍의주라는 인물 때문이다. 이 캐릭터는 욕망에 솔직하다. 딸을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가족들과 별거 중이고, 술, 담배 하지 말란 말이 무색하게 엔딩에서 치킨과 양주를 마신다. 또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가위바위보 게임’을 요청한다. 영화의 엔딩은 사실상 이 모든 것의 결과물처럼 보인다.홍의주는 영화의 모든 선택의 주체가 되어 자기 마음대로 인물들을 이끌고 있다 혼자가 된 것이다. 영화가 갖고 있는 이런 아이러니가 씁쓸하다. 영화에 내내 웃기다가도 엔딩의 홀로 있는 홍의주를 보면 그 웃은 만큼의 복잡 미묘한 감정이 올라온다.
홍상수의 하루
이 영화가 끝나고 난 후의 gv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아래에서 진행됐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질문은 영화가 다루는 몇 소재에 관한 것이었다. 우선 ‘고추장 라면’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박미소 배우는 이 장면에서 ”‘지수가 라면을 먹고 상당히 매워한다’는 부분이 그냥 각본에 있다“고 밝혔다. 극 중에 등장하는 ‘가위바위보 게임’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기주봉 배우는 “홍상수 감독이 실제로 술 마시면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답했다. 홍상수 감독의 연기 디렉팅에 대한 질문도 있었는데, 하성국 배우는 “홍상수 감독님이 정확히 원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하라고 하신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하루>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0월 11일 오후 15시 30분에 상영된다. 장소는 롯데시네마 센텀시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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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과 귀를 열어야 '붉은 하늘'도 아름답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펠릭스'(랭스턴 위벨)와 함께 뜨겁고 건조한 여름 발트해 해변을 방문한 '레온'(토마스 슈베르트). 그러나 숲 속 별장에서 예상치 못한 손님 '나디아'(파울라 베어)와 '데비트'(엔노 트렙스)를 조우한 이후 그들의 여름 계획은 점차 꼬이기 시작한다. 레온은 사사건건 펠릭스와 충돌하고, 새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한 채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 반면에 펠릭스는 나디아, 데비트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이에 더해 휴가뿐만 아니라 일도 레온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막 완성한 소설 출판을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진 레온. 산불 소식이 들려오고 소방 헬기가 오가는 가운데 그의 마음속에서도 불길이 꿈뜰거린다. 나디아를 향한 욕망, 데비트를 향한 질투, 펠릭스를 향한 분노가 점점 치솟기 시작하고, 그렇게 네 청춘의 여름은 조금씩 파국을 향해간다.
<어파이어>, 페촐트다운 신작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이른바 ‘베를린 학파’(Berliner Schule)라 불리는 감독들 중 1세대로 불린다. 이들은 외국 도시나 휴양지 등을 무대 삼아 현재 독일인의 일상적인 삶을 관찰하는 작품을 주로 만들기로 유명하다. 페촐트는 비슷하다. <피닉스>, <운디네>와 같은 작품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다룬다. 다만 차이도 있다. 페촐트의 영화는 독일 근현대사를 배경 삼아 독일인의 혼란과 상실감에 주목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어파이어>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작만큼 무겁지는 않다는 인상은 분명하다. 여름휴가라는 시간적 배경, 바닷가 휴양지라는 공간적 배경이 큰 역할을 한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삼각, 혹은 사각 관계의 청춘 로맨스라는 소재 역시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진다. 산불이라는 위협이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이 마지막에 몰린 구성도 한 가지 이유다.
하지만 주인공 레온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파이어>는 평범한 청춘 로맨스가 아니다. 독일어 제목인 <Roter Himmel 붉은 하늘>의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레온과 다른 인물의 관계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현대인의 소통에 대한 고찰과 경계, 그리고 일말의 희망까지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한 대 치고 싶은 주인공
단언컨대, <어파이어>의 주인공 레온은 끔찍한 인물이다. 첫 등장부터 그렇다. 별장을 가는 차 안. 운전 중인 펠릭스는 차가 이상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은 레온은 친구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자기 생각에 갇혀 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차는 고장 나고, 펠릭스와 레온은 짐을 지고 별장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 짧은 장면만 봐도 레온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고, 폐쇄적인지 손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첫인상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준다. 숲이 우거진 지름길을 이용해 별장으로 가려는 레온과 펠릭스. 펠릭스가 길을 하기 위해 잠시 떠난 뒤 레온은 숲에 홀로 남는다. 그곳에서 레온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헬기 소리를 듣지만 하늘에서 헬기를 보지 못한다. 멧돼지 소리도 듣지만 멧돼지 꼬리도 보지 못한다. 차가 이상하다는 펠릭스의 말을 듣지 못한(혹은 않은) 것처럼, 레온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그의 한심한 성정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벽이나 문 뒤에 숨은 채 타인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데 특출 나다. 예술학교 입시를 준비 중인 펠릭스의 포트폴리오를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지적하며 기분을 상하게 한다. 나디아에게 첫눈에 반한 뒤에는 데비트에게 괜히 시비를 건다. 정확히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나디아와 데비트가 연인 관계라고 지레짐작한다. 호텔에서는 호텔 직원의 실수를 대놓고 조롱한다.
자기 손으로 파괴하는 청춘 로맨스
사실 주인공이 짜증 나면 좀처럼 영화에 몰입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파이어>는 예외다. 페촐트는 주인공의 비 호감도를 역이용해서 평범하지 않은 청춘물을 만들어냈다. 자기만의 좁은 세상과 아집에 갇힌 한 청년이 인생을 망치는 비극을 신랄하게 보여주며 예상에서 살짝 벗어난 쌉쌀함을 안겨준다.
우선 레온은 자기 손으로 로맨스를 파괴한다. 생체발광으로 빛나는 밤바다를 보러 가자며 나디아가 호감을 보여주는데도 소통을 거부하며 스스로 가능성을 없앤다. 자기가 집필한 소설 '클럽 샌드위치'를 나디아가 엉망이라고 평가하자, 고작 아이스크림 판매원의 비평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녀가 문학을 전공하고 박사 과정 중이라는 사실을 안 뒤에는 자괴감 때문인지 그녀에게 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즐거워야 할 휴가도 망친다. 펠릭스와의 대화는 철저히 일방향이다. 펠릭스는 계속해서 제안한다. 해변에 가자고, 같이 해수욕하자고, 저녁 식사를 하자고, 지붕을 같이 수리하자고. 하지만 레온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전부 거절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도 거절한다. 나디아, 펠릭스, 데비트가 잘 어울리는 가운데, 레온은 해수욕장 인명구조원인 데비트의 직업을 평가절하하며 선민의식을 드러낸다.
보고 듣지 못한 자의 비극
커리어도 엉망으로 만든다. 소설 피드백을 위해 별장을 방문한 출판사 사장 '헬무트'(마티아스 브란트)는 갑자기 몸이 아파 입원한다. 검사 후 신장에 문제가 생겨 일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헬무트. 이에 그는 레온에게 진심으로 충고한다. 능력 좋은 편집자를 붙여줄 테니 <클럽 샌드위치>를 포기하고 잠재력을 떨칠 수 있는 새 작품을 집필하라고.
하지만 레온은 복을 걷어찬다. 헬무트가 자기와 자기 소설을 무시했다고 분개한다. 나디아가 일갈하기 전까지는 헬무트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그의 진심을 전혀 보지 못한다. 붉게 물든 하늘만 보고 산불을 알지 못하듯이, 그는 자기 앞에 있는 대상을 제대로 보거나 듣지 못했다.
대가는 처참하다. 산불에 초토화된 숲처럼 비참한 현실이 레온을 덮친다. 안전하다고 믿은 해변까지 밀고 들어온 열기와 새하얀 잿가루를 목격한 순간에는 이미 늦었다. 레온이 걷어차 버린 가능성과 잠재력은 불 속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타 죽은 펠릭스와 데비트의 모습으로 그의 눈앞에 등장한다. <어파이어>가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이름값이 어색하지 않은, 쌉쌀한 청춘 영화인 이유다.
아닌 척하며 독일 사회를 꼬집다
다른 관점에서 보더라도 <어파이어>는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실제로 <어파이어>는 곱씹을수록 묵직한 영화다. 아무리 감독의 전작보다 가볍다고 하지만, 페촐트의 통찰력마저 없어지지는 않았다. 어두운 현실을 직접 그려내지는 않지만, 가벼운 스케치와 터치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레온이 데비트 이름을 듣고는 그가 동독 출신이냐고 되묻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순간 데비트를 향한 그의 멸시는 단순한 인간관계의 범주가 아니다. 동독 주민의 2등 국민(Deutscher zweiter Klasse) 정서가 스쳐 지나간다. 레온이 데비트의 직업을 무시하는 대목도 서독에 비해 동독 지역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소득 수준이 낮다는 현실을 환기시킨다.
하필이며 펠릭스와 데비트가 산불의 피해자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피부색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펠릭스는 일반적인 게르만족이 아닌 이주민이다. 펠릭스와 데비트는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사회적 소수자,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들만 목숨을 잃은 셈이다. 그들의 운명은 바다로부터 바람이 불기 때문에 산불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레온의 말과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따라서 <어파이어>를 독일 사회의 현실과 떼놓고 볼 수는 없다. 이민자, 난민, 동독 주민 등의 불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독일 축구 대표팀은 러시아 월드컵 전후로 메주트 외질 같은 터키 출신 선수와 관련해 논란을 겪은 바 있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은 지지율 2위를 기록하고 자치단체장을 배출하며 약진 중이다. 즉, <어파이어>는 레온과 같은 무관심, 멸시와 외면이 독일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하는 영화다. 가장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거대하면서도 중요한 담론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래도 붉은 하늘은 아름답다
<어파이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레온의 실패와 좌절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레온은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변화한다. 그는 나디야가 함께 보자고 했던 빛나는 밤바다를 목격한다. 소리만 들었던 헬기와 멧돼지도, 붉게 물든 하늘로만 접한 산불의 모습도 두 눈에 똑똑히 담는 데 성공한다.
결말에서 레온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그는 자기 세계에 갇힌 채로 쓴 '클럽 샌드위치'를 포기했다. 직접 겪은 비극적인 여름휴가를 가감 없이 글로 풀어내며 새 소설을 썼다. 암 투병 중인 헬무트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웃는다. 늘 그랬듯이 뒤에 숨는 대신, 앞으로 나서서 나디아를 마주한다. 그렇게 레온은 성장한다.
레온의 성장은 단순히 한 개인, 청년의 성장이 아니다. 한 사회를 구성한 공동체의 변화 가능성과 저력을 믿는 희망 찬가일지도 모른다. 이는 산불로 물든 붉은 하늘이 단순한 재난의 전조나 위협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산불이라는 위협을 알리는 붉은 하늘을 정확히 보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새 희망이기 때문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주인공이 짜증 나는 만큼 붉은 하늘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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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을 위하여
우린 비행기가 일상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다른 것보다도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더 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일상'이란 걸 실감했다. 그렇지만 더 싸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국내를 여행하는 일은(제주도를 빼면)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여행에서의 목적은 전적으로 그 미지의 공간을 감각하는 일에 있으니까. 너무 빠르게 나아가면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고 지나친다. 효율적인 수단을 택하는 건 합리적이지만 여행의 목적으로 떠날 때 합리성만 추구하다가는 여행의 아름다움을 놓치기 일쑤다. 기억 속에 남기고 싶은 여행을 하고 싶다면 어느 정도는 비합리적이어야 한다.
하늘을 나는 일이 일상적이지 않은 시절을 산다는 건 지금 느끼긴 어려운 감정이다. 우주비행을 꿈꾸는 정도라면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볼 수 있겠으나 충분치 않다. 육지의 전장에서 말이 사라지고 나서 하늘을 활공하는 기체는 말이 되었고, 파일럿은 하늘의 기사가 되었다. 그렇게 명예를 운운하기에 좋은 비유가 생겼다. 기술의 발전 초창기엔 언제나 미지의 세계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들이 붙는다. 기존의 사회에 있었던 상징과 의미를 이어 붙인 세계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발전할수록 낭만을 잃는다. '비행정 시대에 지중해의 하늘'에서 명예와 여인과 돈을 걸고 공적과 싸우는 '한 마리 돼지'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낭만을 그리고 있다.
포르코는 비행정을 모는 조종사다. 전쟁에도 참전했던 베테랑 조종사지만 원인 불명의 마법에 걸려 이름처럼 돼지가 된다. 그는 뛰어난 비행술을 살려 현상금 사냥꾼 일을 하며 유유자적 지낸다. 고요한 외딴섬엔 파도 소리와 라디오 소리 말고는 신경 쓰일 일도 없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포르코가 만끽하는 자유의 만족감은 충만하게 느껴진다. 불행하게도 각박한 시대에 자유를 만끽하는 일은 질투를 부른다. 포르코의 활약으로 공적 연합은 번번이 인질극에 실패한다. 이익을 나누기 싫어하는 그들이 '미국인 조종사'를 부른 이유기도 하다. 값비싼 자존심을 내려놓을 정도로 공적 연합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영화는 포르코가 시시콜콜한 소동에 휘말리는 과정을 풀어낸다.
관조하듯 살아가는 포르코에겐 오래된 옛 친구들이 있다. 과거에 활약했던 인간 조종사 시절을 기억하는 친구들 사이에 우정은 있지만 감정의 교류는 없다. 이 점이 흥미로웠다. 포르코는 자신의 겉모습을 부정하지 않았다. 돼지로 변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인간 시절의 자신을 기억하는 건 옛 친구들 뿐이다. 친구들은 여전하다. 돼지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를 옛 이름으로 부른다. 기억 속의 사람을 그리워하기에 친구들은 과거의 시절로 그를 소환하고, 포르코는 그런 반응을 무던하게 밀어 넘긴다. 옛 전우 페라린은 취미로 비행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하면서도 공군을 피할 수 있는 활로를 알려준다.
영화에서 부서진 비행정의 잔해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은 처연하게 아름다웠다. 하늘로 솟구친 비행정이 보는 세상은 고요하다. 프로펠러는 작동을 멈추고 엔진도 꺼진 채 부유하며 날아오른다. 전우들을 떠나보내는 생사의 기로에서 포르코가 느꼈던 감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살아남은 자는 그 몫으로 여러 시선을 견뎌야 한다. 굳이 돼지로 변한 이유를 캐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생존자의 죄책감은 그만큼 무겁다. 현실에서는 죽어서까지 지켜야 할 명예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기에선 그러지 않아도 된다. 교훈은 삶으로 향해야 마땅하다.
지중해의 푸르른 배경과 갖가지 비행기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손이 근질거린다. 꼭 움직이는 형태는 아니더라도 뭐라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상상에 불을 지핀다. 그렇지만 비행기가 많이 나오는 지중해 배경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만들려면 조건이 주렁주렁 달린다. 아예 비현실적인 세계를 만드는 건 품이 더 커지는 일이다. 배보다 배꼽이 커질 일을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러니 무거워지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내려면 주인공 정도는 돼지가 되어야 마땅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비현실적인 이유가 있어 너무 무겁게 흘러가지 않는다. 창공에서 수없이 총알이 뿌려져도 기체는 부서지고 불에 타지만 갈등은 적당히 갈무리된다.
연극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 있다. 예컨대 아이들은 공적에게 자기들은 수영반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를 건넨다. 납치한 아이들을 험하게 다루지 않는 공적들의 모습을 보는 건 마법 같은 일이다. 비행 대회가 한바탕의 축제처럼 열리는 모습도 그렇다. 불법적인 축제까지도 얼떨결에 그러려니 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 삶에 마법처럼 좋은 일이 벌어지길 기대하는 것보다 마법처럼 나쁜 일이 사라지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거대한 쇳덩이를 타고 하늘을 난다는 낭만은 가끔 보면 정말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니 일상에 조금은 더 낭만적인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 IMDB 'Kurenai no b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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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극의 원인은 어디에 누구에게 있는가?<레이디 맥베스>
* 본 리뷰는 영화의 반전과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이디 맥베스 Lady Macbeth, 2016
영국 | 드라마 | 2017.08.03 개봉 | 청소년 관람불가 | 89분
감독: 윌리엄 올드로이드
비극의 원인은 어디에, 누구에게 있는가? <레이디 맥베스>
경건하게 울리는 찬송가와 고풍이 흘러넘치는 교회 안. 그런데 어린 신부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가득하다. 자신의 결혼식임에도 불구하고 눈치 보기 바쁜 신부 캐서린. 세상 모든 이에게 축하받아야 할 결혼식장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4면이 돌로 세워진 교회 안에서 캐서린이 느낄 수 있는 건 차디찬 냉기와 어딘가 모르게 공포스러운 바람소리뿐이다. 그래서 캐서린은 자꾸 주변을 돌아보며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려 애쓴다. 두 눈을 열심히 굴려가며 상황을 관찰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아줄 이는 없다. 오히려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남편의 옆모습에 철저한 무관심을 느끼고, 아무 감정 없이 입을 벌려가며 찬송가를 부르는 시아버지와 목사에게서 어떠한 인간적인 면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혼 생활 내내 자신의 숨통을 쥐고 흔들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만다.
이 단 한 장면에서 <레이디 맥베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결정되어 버린다. 인물들의 비열하고 저속한 속내는 어김없이 카메라 사각틀에 드러나고, 진행될 사건들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란 강한 확신과 함께. 따라서 한동안 허공을 맴돌던 신부의 시선이 최종적으로 남편에게로 향할 때, 우린 단번에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날 것임을 예상한다.
출처: 영화 <레이디 맥베스> 스틸컷
남편의 무관심은 결혼식 첫날밤을 기점으로 경멸과 조롱으로 얼룩진다. 한 침대에 몸을 뉘어 함께 자지만, 그들은 부부가 아닌 남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남편은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방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캐서린에게 그대로 자신의 분노를 지배로 치환해 행사한다. 캐서린과 함께 사는 이유는 딱 하니다. 아내를 아버지가 돈 주고 사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캐서린에게 바라는 것도 딱 하나다. 조용히 집 안에서 기생하면서 아내의 본분을 지키는 것. 여기서 말하는 아내의 본분은 '본인 아버지가 말하는 아내의 본분'을 말한다. 결국 남편에게 캐서린은 처음부터 존재 가치가 없는 존재였으며, 버릴 수 없어 마지못해 세워두는 마네킹이었다.
집 안에서 하녀(애나)의 시중을 받으며, 완벽하게 외면을 치장하고, 보기 좋은 인형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캐서린. 그런 그녀 앞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세바스찬이 등장한다. 창고 안에서 애나를 위에 매달아 놓고 성추행을 일삼는 세바스찬을 보고 캐서린은 욕망을 가감 없이 분출하는 그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 몸에 잔뜩 묻은 흙도 꾀죄죄한 얼굴도 땀 냄새도 전부 비극적인 운명을 살아야 하는 그녀에겐 금기를 깨버릴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으로 이용된다. 그것을 캐서린은 '진정한 사랑'이라 스스로 칭하며 세바스찬에게 "내 마음을 의심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억압과 무관심, 조롱에서 벗어나는 수단일 뿐이다. 자신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하는, 자유를 품은 아름다운 관계로 인식했을지 모르나, 사실 캐서린의 행위는 오직 피지배자를 향한 잔인한 지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출처: 영화 <레이디 맥베스> 스틸컷
<레이디 맥베스>의 긴장감과 재미는 캐서린의 살인보다도 그들을 조용히 따르는 두 하인, 애나와 세바스찬에게서 찾을 수 있다. 애나는 자신을 짐승 취급한 주인(캐서린의 시아버지)이 캐서린이 쓴 독으로 죽어가는 것을 방관한다. 명백한 살인임을 알면서도 두려움에 떨 뿐, 주인을 구하지 않는다. 사실 애나 역시 하인의 본분을 다하라는 주인의 강압적 명령에 세뇌된 사람이었고, 당연히 인간적 대접은 받아 본 적 없었으며 그 결과 쌓이는 울분을 한 번도 속 시원하게 털어내지 못했다. 마치, 캐서린처럼 말이다. 따라서 그녀는 이후 일어나는 2건의 살인사건의 범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한다. 주인이 죽은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충분히 증언할 수 있었음에도, 심지어 자기 목숨이 달린 일이었음에도 애나는 역시 침묵한다.
밧줄에 묶인 채 짐승처럼 대저택에서 쫓겨나는 애나와 살려고 발버둥 치는 캐서린의 차이는 신분만 있지 않다. 그 신분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결정적 마음이 애나의 결말을 비극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본질까지 가장 낮은 신분으로 취급했다. 반항과 의심, 자기주장과 자기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캐서린뿐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는 세바스찬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캐서린의 지위와 권력에 눈이 먼 하인일 뿐이다. 입어보지 못한 옷과 앉아보지 못한 의자와,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흥분한 하인. 캐서린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자부했으나, 어림도 없었던 까닭이다. 그는 캐서린이 남편의 머리를 가차 없이 막대기로 내려친 후, 혼자 주인의 시신을 땅에 묻는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주인을, 사랑하는 애인이 대신 죽였을 때 느꼈던 희열과 평생 실종된 주인 자리에서 대신 부를 누리며 살 설렘에 사로잡힌 채 말이다. 살인을 방조하고, 오히려 범죄를 덮는 일을 도우면서, 죄책감과 죄의식에 괴로워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도 자신을 하찮은 하인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 따르는 일은 당연하다는 인식과 믿음이 본인의 순수하고도 귀한 인간성마저 훼손한 것이다. 영화는 애나와 세바스찬의 결정을, 캐서린의 결정과 붙여 의도적으로 더 대비해 보여준다. 마치, 무엇이 더 잔인하고 아픈지 결정하라는 듯, 세 사람의 결정이 담인 얼굴을 계속 클로즈업한다.
출처: 영화 <레이디 맥베스> 스틸컷
세바스찬의 설렘은 예상치 못한 변수의 등장으로 끝이 난다. 캐서린 남편의 혼외자(어린 아들)가 순식간에 대저택의 주인이 되자, 그는 자신이 누린 부가 원래 제 것이었던 것처럼 캐서린을 닦달한다. 닦달에서 끝나지 않고 사랑을 빌미로 그녀를 밀어낸다. 이에 캐서린은 자기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아이까지 죽여버리고 세바스찬과 사랑을 다시금 확인한다. 자, 그녀는 총 3번의 살인을 저질렀다. 자신을 억압하고 지배한 집 안에서, 자신을 억누를 위치에 있는 남성들의 목숨을 전부 단번에 끊었다. 첫 살인부터 계획적이었고, 일방적이었다. 애나는 첫 번째 살인을 함께했고 세바스찬은 나머지 2건의 살인을 동조했다. 그렇다면, 이 비극의 원인은 누구에게 있을까?
살인을 한 3명은 모두 살인 동기가 있었다. 하지만 살아남는 인물은 오직 캐서린뿐이다.
사랑을 확인했으나, 끝까지 자기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세바스찬은 캐서린과 함께 살인을 했음을 사람들에게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부에 선택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평생 누더기 옷을 입고, 괄시와 무시가 당연한 하인이었기에 세바스찬의 고백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고 지배자들의 발아래로 추락해 철저히 무시당한다. 잠시 잊고 있었던 캐서린의 지위가 불쑥 튀어나온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녀는 자기 지위가 가진 힘을 또 한 번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세바스찬의 배신에 악에 받친 눈으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애나와 세바스찬의 살인 공조로 사건을 종결 내버린다. 실어증에 걸린 애나에게서 어떠한 반전도 일어나지 않음을 확신한 채 말이다. 모두 시아버지와 남편이 말한 '가진 자의 본분'을 너무나 잘 습득한 덕이었다.
출처: 영화 <레이디 맥베스> 스틸컷
<레이비 맥베스>의 희한한 매력은 영화 내내 캐서린만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는 점이다. 특히 애나와 세바스찬의 선택과 행동에 이상하리만큼 엄청난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 점은 꼭 생각해 봐야 한다. 세 사람은 모두 대저택 주인들에게서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오직 캐서린만 홀로 반항하고 반기를 들었고 살아남았다. 그녀만 비인간적인 상황들에 순응하지 않았고 깊은 어둠 속에서 자신이 가진 권력을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그렇게 비극의 원인인 남성 우월주의 사회를 무너트렸다. 그것도 아주 소름 끼치고 잔인한 방식으로 말이다. 알몸으로 세워두고 홀로 잠을 자던 남편의 조롱과 사고파는 물건으로 취급했던 시아버지의 경멸적 태도가 캐서린을 끔찍한 괴물로 만들었고,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상류층에게서 배운 괴기스럽고 소름 끼치는 지배력이, 그녀를 살인을 일삼아도 괜찮은 특권의식을 가진 괴물로 탄생시켰다.
<레이디 맥베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세 인물들이 전부 본인의 위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채 자기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나란 인간이 가진 고귀한 마음과 도덕적, 윤리적 아름다움이 사회에서 갖는 위치로 모두 파괴되는 순간을 맥없이 지켜보기만 했던 인물들. 따라서 소파에 앉아 가만히 관객을 응시하는 캐서린의 마지막 행보는 잊을 수 없다. 하인들마저 다 떠난 대저택에서 홀로 남아, 어떠한 후회도, 절망도 하고 있지 않음을 관객들에게까지 확인시키는 차갑고 매서운 그 표정.
그렇다.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을 힐끗대던, 두려움에 떠는 열일곱 소녀가 아니다.
앞으로도, 아닐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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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날 보기 좋은 영화 추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의 큐레이션 주제는 바로 '비 오는 날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이 게시물 혹은 씨네픽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동일 내용의 콘텐츠 게시물에
자신이 보고싶은 영화에 대해 적어주신다면 다음 콘텐츠를 올릴 때 여러분들의 댓글을 바탕으로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작해볼까요?٩( ᐛ )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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