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2025-04-24 12:41:58
시간의 압축 파일을 풀다.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리뷰
이 글은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한겨레
명백하게 내가 '불호'라고 외쳐야 할 작품이었다."왜?"라는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는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데다가 어떻게 타임라인이 꼬이는 것인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4화에 걸쳐 한 사건을 설명하는 동안 마치 노래방 간주 점프 마냥 겅중겅중 시간을 건너뛰어 버린다.
그런 것만 있다면 내가 억울하지라도 않지(?). 일 진행 속도가 마치 우리 부장님 수기 사인 한 번 받아내는 속도로 진행 되지를 않나(대충 매우 느리다는 뜻), 사건의 다각화는커녕 내 성격만 다각화되나(?) 싶을 정도의 집요한 원테이크로 사건을 따라가니, 이건 뭐 그냥 나라는 사람에게 안 봐도 된다고 말로 해도 충분할 것만 같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덩그러니 내 마음속 저장이 아니라 저장 공간에 덩그러니 다운되어버린 이 방대한 압축 파일은. 자물쇠가 조금씩 열리는 그 모든 순간동안 내 다리를 초조함으로 떨게 하는 대신, 두려움과 숙연함으로 떨리게 했다. 이보다 더한 공포와 숙연함을 담은 파일은 앞으로도 한동안 보기 힘들 것임을 직감한 사람의 심정으로.
사진 출처:매일 경제
네 시간가량의 작품이 던져놓은 화두들 중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어른들로 대변되는 부모의 무지(無知, 존 스노우)가 과연 면죄부가 될 것인가? 였다.
세 명의 도둑이 있는데 한 명은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 행했고, 다른 한 명은 옆의 걔를 따라왔으며 나머지 한 명은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고 행동했다 했을 때. 과연 어떤 도둑이 제일 나쁜 놈이냐.라는 문제(?)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정답(?)은 세 번째 도둑이었으며, 무지라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 것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이 예시가 아니라도 악의 평범성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으로도 알 수 있다.
물론 부모 중 자기 자식이 나쁘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식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먹고 사니즘에 집중하다 보니. 아이들은 다 커 있었을 것이고. 그런 의도로 키우려 하지 않았음에도 제이미(오웬 쿠퍼)는 "그렇게" 커 버린 채였을 테니까.
게다가 이 작품과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될 법한 영화인 [케빈에 대하여]를 보았을 때. 결과적인 참사는 비슷했지만. 과연 이 두 부모가 모두 똑같이(혹은 유사하게라도) 나쁜가.라고 본다면 당연히 제이미의 나머지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님들이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했던 제이미의 갇힌 우주를 상징하는 듯한 벽지로 둘러싸인 아들의 방에서 오열하는 아버지(스티븐 그레햄)를 보면서도 처량함이라는 감정이 불쑥 치고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래도 짧은 이 작품의 모든 시간마저도 가해자를 위해서만 할애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해자라고 해서 이런 사정이 있었습니다.라는 말조차 할 수 없게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피해자는 그저 잔인하게 살해되는 모습으로 CCTV와 수사자료 속 모습에서만 존재할 뿐. 피해자의 부모들에게는 말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물론 제이미의 아버지가 아들을 범인으로 확정 짓게 한 살해 현장에 가서 추모의 의미로 꽃다발을 놓고 오긴 하지만. 오히려 그 말할 수 없는 심정을 먼저 전달해야 했을 곳은 피해자들의 부모였다. 게다가 제이미 마저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겠다고 했지만. 피해자를 위한 사과 따위는 준비조차 되지 않은 듯 보였다.
무지를 인정하지만 의도는 없었던 부모와. 제이미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누나는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가기로 한 제이미의 결단이 얽힌 복잡하고도 떨떠름한 사건 앞에서. 나는 제이미의 아버지가 마치 스스로가 화를 내며 파란 페인트로 낙서를 덮어버린 그의 회사용 봉고차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덮으면 안 보일 수는 있지만. 신경질적인 페인트 자국 때문에 원래 있던 낙서가 더 궁금해지는 역효과를 낳는 그의 방식. 결국 해결책이 되지 못해 타야 하는 곳이 아닌 반대편으로만 탈 수 있게 되어버린 반쪽짜리 방식. 그의 눈물이 마치 그 정도의 임시방편 정도로만 보일 뿐이었다.
마치면서
사진 출처:맥스 무비
이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나니. 그제야 제목이 눈에 띄었다.
Adolescence.
한국말로 하면 청소년기, 혹은 사춘기에 해당하는 단어를 [소년의 시간]이라는 한국어로 번역해 냈다는 것이 처음에는 마더퍼커 장인을 효자로 만들어 버린 사건처럼 느껴져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시간이라는 것에 압축된 모든 감정들을 풀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필요한지를 깨닫자 아보다 더 나은 제목은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의 흐름은 담백하다 못해 건조하다고 느낄 정도였기에. 이 부조화에서 오는 복잡한 이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는 채로. 나는 단 한 사람의 관찰자가 되어, 카메라가 인도해 주는 대로 그저 넋을 놓은 채 작품을 감상해야만 했다.
이 시간에 담긴 의미를 풀어내려면. 나조차도 수많은 시간을 들여 이 드라마를 소화해야 할 것만 같다.
다음 리뷰 예고.
아마도 파과가 될 것.
[이 글의 TMI]
1. 크로와상 너무 맛있다... 버터 최고...
2. 갑자기 에어컨 켜야 할 정도로 날씨 덥다
3. 이번 달 용돈 아직 10만 원 남음 히히
#소년의시간 #필립바랜티니 #스티븐그레이 #애슐리윌터 #에린도허티 #영국영화 #추리스릴러 #넷플릭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영화꼰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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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원작 영화 '영웅' 정성화의 열연이 대단하다!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웅
(2022.12.21 개봉)
감독: 윤제균
출연: 정성화, 김고은 등
3년 전 개봉하려다가 밀렸다는 영화 '영웅'! 드디어 보고 왔습니다~
저는 뮤지컬 영웅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고, 부끄럽지만 역사에 무지한 사람인데요 ㅠㅠ
한 영화 홍보 채널에서 정성화 님 노래 부르시는 거 듣고 홀딱 반해서 바로 보러 달려간,, 그런 케이스랍니다.
미리 말씀 드리자면 쿠키 없고요. 돈 내고 다시 보러 가라면 또 볼 거 같은 영화입니다
고민 중이던 분들 바로 예매창으로 가십시오!
알고 계시겠지만 '영웅'은 안중근 의사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뮤지컬 '영웅'을 각색했다고 하는데,
뮤지컬을 안 봐서 얼마나 똑같고 다른진 모르겠어요... 한 작품으로 바라봤을 때는 배우님들의 열연이 아주 뛰어났다! 하지만 연출은 꽝이었다 ;; 싶은 정도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너무나 올드한 연출이었어요. 아무리 3년 전 개봉작이었다고 하지만
뭐 3년... 얼마나 길다고 그 감성 차이일 거 같진 않고요. 윤제균 감독님 성향 때문인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감독님의 작품 분위기를 그닥 좋아하진 않습니다.국제시장 해운대 두사부일체 등...
웃긴 장면을 보여 주는데도 분위기가 쳐지는 느낌이랄까요?물론 '영웅'의 소재가 가벼운 분위기는 아니지만요. 대놓고 코미디를 노린 씬이 굉장히 많았음에도 무거운 분위기만 이어지더라고요.
'뮤지컬 영화'인 만큼 조금 더 통통 튀는 색다른 연출을 바랐는데 말이죠. 뮤지컬 영화는 당분간 디즈니만 하는 거로 ^_^
하지만 배우들의 열연은 정말 더할 나위 없어요. 특히 정성화 님 나올 때는 뮤지컬을 화면으로 보는 줄 알았을 만큼... 전율이 엄청나고 몰입도도 굉장하고요!
아 나문희 님이 노래를 하실 줄은 몰랐는데 진짜...... 여기서 대오열했잖아요 ㅠㅠ;
역시 원로 배우신 만큼 울림이...... 짱짱!!!!!' 영웅'의 모든 노래를 라이브로 했다고 하는데 나문희 님 파트가 가장 라이브 같았어요. 연기력까지 합쳐져서 더 좋았던 듯요
김고은 님도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시는 줄은 몰랐는데, 설희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셨다고 생각해요.
디즈니에서 심청이 만든다면 김고은 님이 실사판 여주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근데 이것 역시 연출의 문제긴 하겠다만...! 설희가 파티에서 노래 부르는 씬이 있는데요.
모든 사람이 스탑되고 설희 혼자 노래를 부르거든요. 그거 완전 자스민 speechless... 인 줄 알았어요...
감독님이 감명 깊어서 참고를 많이 하셨나 하하. 구도도 비슷, 이토 히로부미 사라지는 연출도 비슷...
어쨌든!사운드 빵빵한 곳에서 한 번 더 보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요.
감독이 좀 더 젊은 감성 가진 감독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있네요 ㅠㅠ
이렇게 완벽한 배우들을 다시는 못 모을 거 같아서,,
(근데 28번 정도 울었단 게... 하핫)
그래도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인 만큼 안중근 의사에 대해 좀 더 알리기 위해 만든 거잖아요.
재미만을 추구하는 상업 영화가 아니니 참고해 주시고!
여러분도 한 번씩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역사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시간이었어요~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재관람 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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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을 계승하며 장점을 강화시킨 속편
살아가면서 잠시 목적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건 외부 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냥 그대로 별다른 것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게 되기도 한다. 어떤 집단도 마찬가지다 공통의 목표를 위해 앞으로만 달려가던 집단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보고 달려갈 때 더욱 화합하며 좋은 케미를 보여준다.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은 있겠지만 그렇게 하나의 목표가 있다는 것은 큰 추진력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집단의 목표가 없어지는 순간, 그때부터 혼란이 시작된다. 구성원들이 이탈하게 될 것이고 리더의 교체 같은 조직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강력해질 것이다. 그 혼란 자체가 당장은 좋지 않겠지만 그것이 잘 수습된다면 다시 다음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은 바다의 해적 집단과 육지의 의적 집단이 만나 하나의 목표로 달려가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에는 바다에서 난파당하고 작은 나무판자에 의지해 떠다니는 의적들이 등장한다. 의적들의 두목인 무치(강하늘)는 삶을 포기한 듯 보이는데, 죽음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그 순간에 해적들과 만난다. 해적의 두목은 해랑(한효주)이다. 의적과 해적 두 집단은 서로 활동영역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다. 첫 만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두 집단 모두 각자의 특정한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생존을 위해 물건이나 음식을 훔칠 대상을 찾아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일상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의적과 해적이 만나 벌이는 티키타카, <해적: 도깨비 깃발>
그나마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해적들과 달리 의적들은 가진 것도 삶에 대한 의욕도 상실한 상태다. 자존심이 꽤 강해 보이는 의적 무치는 해랑과 자주 부딪히고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해적의 배안에서 두 집단이 주도권 싸움을 벌이다가 우연히 발견한 지도 한 장은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준다. 보물이라는, 힘든 삶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발견한 그들은 처음에는 그것을 독점하려 애쓰지만 이내 협력을 선택한다. 영화에선 무치와 해랑의 주도권 대결이 중반 이후까지 이어지면서 이들이 보물을 찾아가는 단계 단계마다 긴장감을 만든다.
사실 영화 속 무치는 고려 말기의 무사 출신이다. 그와 함께 의적 활동을 했던 동료들도 대부분 무사 출신으로 조선 건국 이후 버림받고 떠도는 삶을 살고 있었다. 반면 해랑과 일당들은 해적 활동을 하며 오랜 시간 함께해온 인물들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나라를 위해 일하다 배신당한 집단과 나라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그들만의 싸움을 했던 집단을 서로 엮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게 만든다. 또한 그들이 찾으려 하는 보물이 고려 말기에 누군가가 숨겨놓은 마지막 물건이라는 의미에서 이미 사라진 고려의 마지막 유산을 찾는다는 의미도 있다.
영화 속 보물을 찾는 다른 인물은 고려 말기 무사 출신인 부흥수(권상우)다. 그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부상당한 동료도 죽이고 앞으로 나가는 인물이다. 어쩌면 그렇게 목표를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한축으로는 무치와 해랑의 관계 중점을 두면서 그 반대편에는 무치와 부흥수의 대립을 넣어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앞의 관계가 긍정적인 협력관계로 발전하는 반면, 뒤의 관계는 과거 청산으로서 완전한 갈등관계로 진행된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은 코믹 어드벤처 장르에 맞게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게 진행된다. 2014년에 개봉했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후속 편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모든 캐릭터를 바꾸고 시대도 조금 다르게 설정하여 이야기를 구성했다. 코믹한 요소와 캐릭터가 적절히 들어가고, 다양한 액션 장면을 넣어 꽤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전편은 이야기의 구성이나 전개에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 새롭게 개봉하게 된 <해적: 도깨비 깃발>은 과거 전편의 특징들을 그대로 가져와 계승하면서 볼거리와 CG를 좀 더 보강한 노력이 눈에 띈다.
전편과 비슷한 구도로 전개되지만, 장점이 더욱 부각된 후속 편
과거 남녀 캐릭터의 대립 관계를 그대로 무치와 해랑이 계승하고 있고, 유머를 맡았던 캐릭터 철봉(유해진)의 역할은 막이(이광수)가 이어받았다. 그래서 비슷한 느낌은 있지만 바다에서 벌어지는 액션과 육지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다양하게 섞여있어 조금 다른 박진감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는 여전히 어색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오락영화라는 특성을 감안하고 본다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등장하는 유머들도 타율이 높은 편이고, 후반부를 장식하는 볼거리들도 꽤 시원시원하게 촬영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쓰나미를 피하는 액션 장면은 어색하지 않게 연출되어있어 꽤 큰 볼거리를 선사한다.
무치 역을 맡은 배우 강하늘은 허술해 보이지만 꽤 실력 있는 의적 두목을 연기하는데 자연스럽게 유머러스한 인물을 담아냈다. 뽀글뽀글한 머리 스타일과 그의 행동이 어우러져 유머와 액션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해랑 역할의 배우 한효주는 진지한 해적 단장 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그가 평소에 맡았던 역할보다 더 과격한 액션을 선보이는 그의 힘 있는 액션 연기가 돋보인다. 반면 막이 역할을 맡은 배우 이광수도 그가 가진 특유의 유머를 선보이고 꽤 타율도 높다. 하지만 영화 내내 그의 캐릭터는 배신과 알 수 없는 행동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특히 영화의 후반부 펭귄과 대화하며 벌이는 장면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지 의문이 든다. 영화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괴상한 장면으로 느껴진다.
영화를 연출한 김정훈 감독은 과거 <탐정:더 비기닝>과 <쩨쩨한 로맨스>를 연출했던 감독이다. 모두 유머 코드가 들어가 있는 영화이고 특히 <탐정:더 비기닝>은 심각한 분위기와 캐릭터 유머 코드가 들어가 있었던 영화다. 그래서 이번에 그가 연출한 <해적:도깨비 깃발>은 그의 연출 스타일과 잘 맞는 영화였던 것 같고, 실제로 결과물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전편의 성공적인 부분을 잘 계승하면서 속편만의 매력을 잘 살려냈다.
결국 영화 속 의적과 해적은 그들만의 공통 목표를 찾아내 더 강력한 하나의 집단이 된다. 주요 캐릭터들이 겪는 일련의 과정들을 극장에서 직접 관람하면 좀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꽤 큰 규모의 한국 오락영화가 명절을 맞아 극장에서 개봉하게 되는데, 오랜만에 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한 한국 영화가 개봉을 하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유쾌하게 가족들과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설 명절에 흥행에 긍정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해적: 도깨비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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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좌수사 이순신 그의 난중일기
책 한 권을 빌렸다. 바로 호란과 임진왜란에 대해 조사한 책이었다. 갑자기 자타공인 역덕이 되고 싶은 나. 냅다 깊게 파는 나의 역사덕후적 호기심이 빛을 발한다. 아니. 역사 이야기 능수능란하게 푸는 사람들 멋있지 않아? 어느 년에 뭐가 일어났고 어떤 것 때문에 발생했고 이런 거 줄줄줄 설명하면 왠지 모르게 멋지다. 역사가 약하다는 말은 사실 거의 모든 것이 약점이라는 말을 한 누군가의 명언이 생각난다. 그래. 맞는 말인 것 같아. 왠지 이 부분을 파면 다 잘 풀릴 것 같다.
풀릴지 안 풀릴지는 미래의 내가 아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싶다. 어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굴러다니는 짤들 보다 책으로 읽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지 아닐까? 반지성주의가 판치는 이 시대 지성에 그나마 다가가는 것이 민주사회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믿는다. 이 영화라는 문화예술도 사실 이 '지성'이라고 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를 봐도 역사적 맥락과 관련 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시대극 만들기 좋다. 위대하고 극적인 인물이 많이 나와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이 시대극 만들기 좋은 한국사를 소재로 했다. <외계+인> 1부에 이은 여름 대작 두 번째, <한산 : 용의 출현>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 1달 후의 조선으로 가보자.
해저 괴물 복카이센
문제가 뭘까? 다 알 것도 같았다. 일본의 장수 와키자카는 해저 괴물 거북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전쟁. 이웃나라 조선은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전쟁에 대한 대비가 단 조금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아쉽다. 갑자기 느닷없이 나타난 이순신이라는 존재에 머리가 아프다. 와키자카는 해저 괴물 복카이센이 전장을 휩쓸고 있다는 말에 여러 번 생각을 되뇌인다. 할 수 있어. 전염병 같은 두려움만 이긴다면.
‘해저 괴물 복카이센’을 이끌던 장수의 관점으로 돌아간다. 전쟁 중이었던 해전. 거북선이 일본의 배에 부딪혔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조선의 거북선. 일본의 배와 조선의 거북선이 붙은 상태에서 백병전이 열렸다. 거북선에서 배를 이끌던 장수 나대용은 방패 하나와 무기를 들고 들이받은 배의 일본 장수 둘을 제거하려 배의 위로 올라간다. 조총이 빗발치던 전장. 방패로는 한계가 있었다. 왼쪽 허벅지에 총알이 박힌 나대용. 위기의 순간, 일본 장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날아온 화살이 나대용을 구해줬다. 나대용을 구한 사람은 이순신이다. 처절한 전투 끝에 부하를 구한 이순신. 그렇게 임진왜란의 어느 전장을 보여주고 카메라는 1달 후를 비춘다. 이순신은 전투에서 생포한 포로들을 심문하다 왜나라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예감한다. 이순신은 열세의 전장을 뒤집어 조선을 구할 수 있을까?
자주 봤었지
사실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다들 알고 있다. ‘우리에겐 12척의 배가 있소’부터 시작해서 우리 역사에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낸 이순신 장군. 우리나라의 위대한 전쟁영웅 하면 늘 들어가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이라는 소재는 적지 않게 사용됐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들어갔던 것이 <명량>이다. 또 내 나이 또래라면 다들 기억하는 <불멸의 이순신>도 있다. 굳이 영상매체가 아니더라도 한능검이나 교과서에서도 임진왜란 이야기는 자주 본다.
전쟁영웅의 이야기라 봐도 봐도 좋은 이야기겠지만 이는 곧 창작의 어려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떻게 관객에게 어필하지?를 생각해보자. 여러분과 내가 각본가라고 해보자. 이야기를 2시간가량으로 구성하고자 하면 뭔가 신선한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1)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일으킴 2) 한산도, 노량, 명량 해전에서는 조선이 승리한다" 같이 두 결론을 내고 논리관계를 만든다는 것 자체도 충분히 어렵다. 근데 이에 틀어맞게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난이도가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기 전에 이런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거 또 봤던 이야기 하는 거 아닌가? 또 전작 <명량>에서 흔히 말하는 ‘국뽕’ 마케팅은 이런 우려에 부채질을 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단점들을 적당히 잘 보완했다.
좋은 기획
일단 영화는 조선의 관점에서 풀지 않는다. 전적으로 일본 장수 와키자카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영화의 간단한 배경과 결말은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바로 한산도 대첩은 조선의 압승으로 승리한다는 것이다. 보통 어떤 일의 긴장감은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느껴진다.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에서 버키와 캡틴이 맨몸액션을 벌인다. 둘 다 호각세의 능력자들이기 때문에 합을 주고받는 것이 어떤 결론으로 향할지 예상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결과를 알 수 없음’의 서스펜스를 과감히 포기했다. 그 대신 후반부 하이라이트 신을 위해 최대한 반대편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이 기획하고 싸운 전쟁영화임에도 주인공이 두 명이 되는 셈이다. 그것도 물리적인 분량은 와키자카 쪽이 더 많다.
이렇게 되면 갖는 이점이 생긴다. 앞에서 썼듯 왜 나라의 관점에서 이순신의 지략가적 면모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 덕에 같은 소재의 전쟁영화가 있더라도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보다 신선하다고 느끼기 쉬울 것 같다. 구체적으로 써보자면, ‘반전’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일어나는 게 반전이다. 당시 일본의 관점에서는 이 전쟁이 불가사의했다. 조선은 거의 준비가 안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는 대사도 나온다("전쟁은 금방 끝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전쟁 준비 잘해간다. 이를 일본 관점에서 풀어가니 그 준비성이 더 도드라진다. 그렇게 일본 장수 와키자카의 관점에서 철저한 전쟁 서사를 묘사하면 '와 이걸 어떻게 이기지?'싶은 의문점이 든다. 또 이순신에 대한 정보가 일본 내부에는 거의 없다 보니 와키자카에 몰입하게 된다. 마치 <어벤저스> 시리즈의 '타노스'같은 느낌? 영화 전체적으로 이순신을 깨러 가는 느낌이 강하다. 영화는 이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하는 의문과 이순신에 대한 미스테리를 후반부의 해전 신을 위해 쓰고 있다. 이야기 구성에 있어 보다 신선한 접근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초중반까지 일본 내부의 권력투쟁과 첩보 대결만 봐도 이야기 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이는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이 영화가 전작 <명량>과 다른 지점이 있어 비교당할 이유가 없는 것이 이 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또 '의'를 표현하기 쉬운 것도 이 영화의 형식의 강점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일본 관점에서 전개해야 내적 논리의모순을 관객이 알 수 없다. 이를 통해 일본의 입장에서도 명분 없는 침략전쟁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용이하다. 일단 영화 초반부에 왜 '의'가 중요한지 제시된다. 다른 측면에서 우리는 이 전투의 결과를 알고 있다. 이 '의'라는 것이 어디 쪽에 있는 걸까? 쉽다. 이순신에겐 있고 일본의 장수들에게는 없는 것이 이 '의'일 것이다. 흰 종이에 붓 한번 살짝 찍어보자. 그럼 그 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의와는 거리가 먼 일본 내부의 상황을 조명하다가 조선을 쨘하고 보여주면 두 나라의 내부 상황이 대조적으로 보일 것이다. 일본 장수들이 하는 말을 잘 보면 거의 명분이 없다. 누가 싫거나. 그냥 꼴 보기 싫어서. 아래 군사들 죽든지 말든지 알바 아니니까. 거의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의가 없는 왜의 명분과 이에 물든 일본 장수들의 냉정함이 더 도드라지는 것이다. 전작 <명량>이 민족주의(속칭 '국뽕')를 위해 영화 전반적인 장면을 희생한 것과는 다르게 뾰족한 기획을 통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특별한 무언가를 위한 발상이 아니라 '이런 영화를 만들 거야!'라는 아이디어에 기반한 좋은 선택이었다.
이를 위해서
이 신선한 방식의 이야기를 위해서라면 역시 배우들이 영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일단 박해일-변요한-김성규-박지환 네 배우의 극 이해도가 굉장히 뛰어났다. 일단 박해일 배우는 한국영화의 지난 역사를 말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기라성 같은 배우들'할 때 그 '기라성'을 담당하고 있는 박해일 배우. <살인의 추억>, <국화꽃 향기>, <연애의 목적>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그중 올해가 그의 경력 중 최고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영화에서도 그의 전성기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상대역의 변요한 배우가 섬뜩한 연기를 워낙 잘해서 좀 심심하다고 느끼는 분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박해일 배우가 연기를 잘했다고 느낀 것이, 1) 가벼워 보이지도 않으면서 2) 뭔가 고뇌하고 있는 내면을 묘사하고 있으며 3) 조선 내부의 상황으로 인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심리상태까지 극의 배경이 되는 좋은 연기를 수행했다. 비교적 와키자카에 비해 물리적 비중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의 존재감이 후반부까지 느껴지는 이유는 박해일 배우의 눈빛, 표정, 발성이 이 영화에 잘 어울리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헤어질 결심>과 <명량>까지 참 좋은 배우다.
다음은 변요한 배우다. 앞 문단에서도 썼듯 이 와키자카가 영화의 진주 인공이다. 물리적으로 분량이 아마 제일 많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박해일 배우는 잔잔한 파도처럼 극을 이끈다. 이와 대조적으로 변요한 배우는 감정적으로 화려한 연기를 보여주머 이야기를 전개한다. 일단 갖고 있던 감정선이 다양했다. 전쟁 준비는 또 착착 잘 되어가고 있다. 근데 반대쪽에서 승전보를 울렸던 이순신에게 묘한 열등감을 품고 있다. 또 이순신이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다. 자신감까지 있다. 선조의 입장 변화를 위시한 조선의 내부 상황이 시끄럽기 때문이다. 또 일본 내부에서 권력 교통정리가 안 됐다. 이를 묘사하는 연기까지 해야 한다. 이렇게 전반부의 감정연기를 넘어가면 하이라이트가 있다. 중반부가 넘어가서 이순신과의 한바탕에서 이 사람의 처지는 여러 번 바뀌게 된다. 이때 분출했던 감정표현들이 선명해서 기억에 남는다. 자기가 주체로 이끄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던 한 인간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변요한 배우는 정말 열 일했다. 아마 이 배우의 최고작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김성규-박지환 배우도 기억에 남는 연기를 했다. 두 배우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조연이다. 이 역할을 살리는 좋은 연기였다. 일단 김성규 배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범죄도시> 시리즈였다. 그리고 <악인전>에서도 봤었다. 이 두 작품만으로도 연기 정말 잘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악인전>에서는 뭔가 난잡한 이야기 톤 사이에서도 빛났던 기억이 있다. 이때 단순히 연기만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건 똑똑한 배우라는 점이다. 이 준사라는 캐릭터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임진왜란이 왜 일어났고, 어떤 점에서 이순신이 전투를 승리할 수 있었는가?를 묘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리액션 연기가 좋아야 한다. 몸짓 하나, 눈빛 하나가 무언가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박지환 배우 역시 뛰어난 연기였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장이수 캐릭터로 유명한 이 박지환 배우. 솔직히 영화 보면서 '내 아임다' 생각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영화는 전반적으로 이 캐릭터를 경제적으로 활용한다. 이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연기만 딱 잘라서 보여준 느낌? 이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았던 게 아닐까 싶었던 캐릭터 연출법이었다.
단점이 없지는 않아
영화가 개봉하기 이전에 시사회 평을 몇 개 봤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명량>의 단점을 극복했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기대 좀 하고 갔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극복하긴 했다'다. 영화에는 엄청 큰 단점은 없다. 그 대신 아쉬운 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역시 극 중에서 옥택연-김향기 배우가 연기하는 임준영-보름 역의 서사 전부다. 난 이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일단 영화 안에서 스파이가 있어서 얻는 이점이 있다. 그런데 이 스파이가 단지 <명량>의 프리퀄이라고 해서 이런 이야기를 할당받는 게 그게 완성도에 도움이 되는가? 는 의문이다. 조선 측의 특정 인물과의 대비를 이루기 위해? 굳이? 일본의 스파이가 있는 것까지 대칭을 이룰 필요가 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중반부까지 이순신-와키자카의 전략적 선택이 재밌다가 임준영이 나오면 산만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는 배우의 퍼포먼스와도 연관이 있다. 음.. 잘 모르겠다. 이 배우를 캐스팅한 게 좋은 선택인지. <외계+인> 1부의 썬더가 생각나는 연기였다.
그리고 후반부 하이라이트 해전 신에서 CG 티가 난다. 아마 바다와 실제 배에서 찍으면 다칠 수도 있으니 그랬던 건 이해한다. 그런데 사람이 없는 신 정도는 실물로 찍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초중반부는 일본의 관점에서 전개하지만 중후반부는 조선의 학익진과 거북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그래서 전반부의 살짝 느리더라도 신선한 템포가 후반부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오잉? 호기심이 가는 이야기가 식상한 촬영기법으로 치환되니 뭔가 김샌 느낌이 든다.
그리고, 영화 전반적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질척임이 있다. 분명 전작에서의 '국뽕'요소를 많이 뺀 것도 안다. 불필요한 사족 많이 쳐냈다. 근데 살짝 유치하고 예전 느낌이 나는 연출법이 장면 장면마다 보인다. 완성도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은 아니나 확실히 아쉬운 지점이다.
그래도 좋았어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영화 좋다. 잘 만들었다. 일단 두말할 필요 없는 후반부 해전 신은 쾌감이 대단하다. 부분 부분마다 꼼꼼하게 동선을 잘 짜 놔서 보는 맛이 있다. 이 액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운드와 표정이 될 것이다. 적의 변수에 당황하는 일본군, 급변하는 전쟁 상황, 포격 소리까지 CG를 많이 사용한 만큼 소리에 집중해야 현실감이 든다. 이 현실감은 유효하게 작용한다. 후반부 전투 신에서 우리나라 말도 자막처리를 할 정도로 집중했던 소리 연출은 러닝타임의 반을 할애한 만큼 제 몫을 다한다. 티켓 가격이 많이 오른 극장가 이 액션신만 봐도 가격 값을 한다.
또 영화에서 묘사하는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극에서 나오는 군사집단은 이순신의 수군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중반부를 넘어가면 특별한 존재들이 조선의 땅을 지키며 왜적과 항전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주인공이 이순신 장군인 것도 맞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을 말하는 것도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전개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제목이 한산이다. 이 한산도대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싸워온 만큼 이들을 조명하는 것도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좋은 방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가볍지 않은 톤으로 배우들의 연기까지 깔끔하니 임진왜란의 무게감에 잘 어울리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극장가, 두 번째 여름 대작으로 부모님과 함께 가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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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시끄러운 폭탄은 러닝타임 안에서 터진 듯
단란한 한 때
잘 지내고 있었다. 강도영은 어느 곳에서 강연하고 있다. 왜 강연을 하고 있을까? 탁월한 리더십으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부하 군인들을 살린 공이 있던 남자 강도영. 강도영은 전직 해군 부함장으로서 역할을 다했기에 높은 덕망을 쌓고 있었다. 어디론가 향하는 강도영. 강도영에겐 옛 전우들이 있다. 사실 전우들이 그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전우는 술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전우는 가족들이 있지만 옛 기억의 트라우마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속이 편하지는 않은 강도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 남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일상 속에서 갑자기 사건이 터졌다. 갑자기 떠들썩한 뉴스. 뉴스에서는 한 가정집이 폭탄 테러를 당했다고 전한다. 뭔 일이지?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차가운 목소리로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한다. 저기 강도영 씨. 전우 중에 누구 알지? 그 사람 집에 폭탄 넣어놨어. 다음은 놀이터니까 그런 줄 알아. 뭔 소리야? '전화를 건 누군가'가 뉴스를 확인하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바로 찾아보기로 한다. 옛 전우가 있는 집 쪽에 폭탄테러가 터졌다는 말이 어렵지 않게 들린다. 금세 테러범은 뭔가 한이라도 맺힌 듯 다음 타깃을 지정한다. 그 타깃은 놀이터와 축구장이다. 두 장소에 폭탄이 설치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놀이터에 강도영의 부인인 장유정이 폭발물 제거 팀으로 참여하고, 축구장에는 그 어떤 지원도 없다. 선택의 딜레마에 놓인 상황. 강도영은 폭탄 테러 앞에서 사람들과 가족을 구할 수 있을까?
제목이 '데시벨'인 이유
일단 영화 제목은 '데시벨'이다. 이 제목을 설정한 이유는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왜? 당연히 소음의 정도에 따라서 폭탄이 발포되는 설정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건 신선했다. 보통 폭탄테러라는 설정이면 그냥 폭탄만 펑 터지는 것만 있지 여기에다가 부차적으로 뭔가를 붙인 경우는 거의 못 봤다. 그래서 이 소재가 영화에 가져다 줄 신선함은 분명한 이점이다. 아니 소리를 활용해서 폭탄이 터진다면 신선하잖아? 초반부는 이 설정에 힘을 얻고 질주한다. 아직 흑막이 왜 소리를 활용해서 폭발물을 설치할지 이유가 제시될 때도 아니다. 오케이. 강도영이 축구장이랑 놀이터 사이에서 고민하는 설정 자체도 좋았다. 이렇게 서사가 앞으로 전개될 일만 남았는데? 데시벨이라는 키워드 안에 숨어있는 인물들 간의 속사정을 알 수 있겠지?
이 궁금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인물들 간의 속사정은 있다. 흑막이 왜 폭탄 테러를 벌였는지. 목표를 뒀던 대상들을 왜 그렇게 설정했는지. 강도영은 과거에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딜레마는 무엇인지. 이 인물이 폭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는지. 폭탄을 제거할 수 있나 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 서스펜스 묘사까지 나름 잘 담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게 없다. 왜 소음을 활용한 폭탄을 사용했는가? 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 대한 설명이 아무것도 없다. 그냥 폭탄이 터지고 수습하고 이 내용의 반복이다. 그래서 이 '데시벨'과 관련한 소음 폭탄이라는 세팅이 사실 시한폭탄과 차이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키워드로 작동하는 주요한 소재를 설명하는 것을 공란으로 쳤기 때문에 빈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더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적당히 불필요만 하면 좋았을 텐데 이것들이 어떤 것으로 구성됐는가?를 본다면 더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것들
일단 초반부다. 놀이터와 축구장 두 장소에 폭탄이 설치된다. 당황하는 강도영. 강도영은 축구장으로 향한다. 축구장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카메라는 축구장 안에 있는 다른 손님으로 향한다. 축구장 안에는 한 부자가 있다. 축구장 구경에 여념이 없는 부자. 아버지가 어떤 일인지 좌석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아버지는 전직 해군 부함장 강도영을 만난다. 어? 유명인이네? 아버지의 직업은 기자다. 대박! 기자라는 직업적인 특성이 영화 안에서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강도영은 아버지 오대오를 보자마자 말한다. '축구장에 폭탄이 있어요' 당황하는 오대오. 오대오는 갑자기 마음을 먹고 어떤 행동을 한다.
이 장면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 일단 첫 번째. 강도영과 오대오는 처음 보는 사이다. 처음 보는 사이에 '축구장에서 폭탄테러가 있으니 뭔가를 해보세요'라고 말한다라. 그리고 이 행동을 한다. 그런데 이 행동이 영화 서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나? 그것도 아니다. 흑막이 폭탄을 터트리는 것과 이 행동은 아무 관계가 없다. 또 이 상황 바로 직전에 흑막이 주인공에게 '남에게 알리면 폭탄이 터진다'라고 말한다. 그럼 이 상황이 굳이 필요가 있는 것일까? 싶다. 영화 초반부에 제시되는 어떤 상황이 정리되고 난 후, 대오와 도영은 같이 차를 탄다. 단순히 정상훈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활용한 코미디로 장면을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SNL>를 위시로 한 여러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봐왔던 것이다. 그래서 코미디가 웃기지도 않거니와 식상하게까지 느껴진다. 아. 이 인물의 부부로 나오는 캐릭터도 왠지 익숙한 느낌이다. 부인이 맡은 캐릭터는 김슬기 배우가 맡았다. 김슬기 배우가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알린 계기가 뭘까? 역시 <SNL>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봤던 김슬기 배우의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 이렇게 기존의 이미지와 중복되는 설정을 두 번이나 보기 때문에 이 두 인물에 관한 내용이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대오의 직업과도 관련이 있다. 대오는 기자다. 대오가 기자이니 만큼 이 이야기에 주요하게 작동할 수 있다. 이건 당연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테러가 벌어지는데. 그런데 사람이 직업적 특성을 발휘해야 할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다. 폭탄테러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게 생긴 피해자한테 그 와중에도 녹음을 하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도 코미디를 위해 넣은 것 같았는데, 이 장면이 들어간 것이 이야기 전개에 있어 좀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든다. 뿐만 아니라 기자로서의 직업적 특성이 이 외에 작동하는 부분이 있나? 없다. 딱 한 번 있다. 극후반부 이 모든 이야기가 정리되고 누군가와 질의를 한다. 이때 한 번 직업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과도 연관이 있다.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인물을 기능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와 관련한 것은 흑막과도 이어진다. 흑막이 어떤 것에 불만을 가지고 복수극을 계획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굳이? 싶은 부분이 있다. 이는 흑막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되겠지만 결정적으로 대오라는 인물에 대한 성찰 부족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극에 주어지는 몇몇 설정만 잘 활용해도 흑막의 복수극은 성공하고도 남았다.
무리수
그리고 흑막의 범죄 방식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첫 번째. 폭탄을 설치하는 위치다. 축구장부터 시작해서 후반부까지 폭탄을 설치하는 위치를 보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은가? 에 대해 의문이 든다. 뭐 모든 영화에 현실성을 따지는 일이 이상하게 드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이 부분이 '어떻게 물리적으로 가능했나' 싶다. 장기간에 걸쳐 준비했다는 말이 나오지만 글쎄? 과연 시간을 오래 들인다고 해서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했을까? 아무도 없는 어떤 공간에 가서 천장에 쥐도 새도 모르게 카메라를 달고, 지하로 내려가 폭탄을 설치하는 일이 저렇게 쉬울 수 있을까?
또 흑막이 폭탄 테러를 벌일 때 인질로 삼는 대상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흑막은 폭탄 테러를 다섯 번 정도 했다. 한 번은 영화의 어떤 사건을 겪고 거동이 힘들어진 약자다. 나머지 세 번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다. 아이들이 과연 무슨 잘못을 해서 테러의 희생자가 되는 걸까? 영화에서 지배계층의 아둔한 선택에 대해 비판하는 듯한 톤과 이 피해자 세팅은 뭔가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 무리수인 설정은 영화의 쿠키 영상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에도 통한다. 쿠키영상은 과거 시점이다. 영화의 가장 첫 번째 시퀀스에서 제시되는 한 에피소드의 끝마무리쯤으로 보이는 영화. 이 쿠키영상은 영화에서 제일 불필요한 사족같이 느껴진다. 사실 내용은 별거 없다. 이 영화의 주요 인물들끼리 '형이라고 불러!'라고 부르는 부분이다. 다만 문제는 영화의 흐름과 좀 안 맞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영화의 핵심 인물을 더 입체적으로 그렸다면 이에 이입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피상적으로만 이야기를 보여준 감이 있어 이에 대한 내용이 그 전 장면에서 보여준 뭉클한 하이라이트와 안 맞는 것이다.
볼만할지도 몰라
뭐 그렇게 단점만 늘어놓은 영화지만 나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일단 흑막 연기를 맡았던 이종석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뭔가 파리한데 그 안에 광기가 서려있는 내면 연기를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 인물의 광기로 설명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 이를 위해서 액션부터 시작해 눈빛 하나하나까지 극의 분위기를 설정하는 좋은 연기였다. 또 이상희 배우의 연기도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장유정이라는 캐릭터는 강도영보다 더 강단 있고 씩씩한 인물이다. 이를 위해 두려운 것도 없이 당당하게 맞서는 연기를 보여줬다. 후술 하겠지만 인물 간의 전체적인 대사 톤이 잘 안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희 배우의 뚜렷한 발성이 들릴 때마다 기대가 되는 느낌이 있다. 또 차은우 배우도 연기를 잘했다. 솔직히 차은우 배우 캐스팅에 이름 뜰 때만 해도 별로 기대를 안 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주제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본인을 활용하는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세팅이 차은우, 이종석 두 배우가 맡은 캐릭터가 형제라는 것이었다는 왓챠피디아의 누군가가 생각난다.
또 폭탄을 활용한 사운드 연출도 좋았다. 쾅! 소리에 현실감도 있고 크기 조절도 잘했다. <늑대사냥>이 영화 내내 귀 따가운 사운드 연출을 들려준 것에 비하면 이 부분은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극에서 사소한 서스펜스를 유지할 수 있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사운드가 단점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것이다. 이는 김래원, 이종석, 이상희 같은 베테랑이 아닌 배우들이 아니면 대사 전달이 떨어진다는 치명적인 단점과도 이어진다. 여러모로 아쉬운 퀄리티에 아주 큰 구멍이 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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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섭섭하게 끝난 그들의 복수극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대와 불안함 속에 <더 글로리>의 남은 이야기를 기다렸다. 권선징악을 향해 맹렬하게 질주하는 복수극의 끝, 동은과 그녀의 조력자가 되찾을 행복, 죄책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다섯 악인의 발악이 궁금했다. 걱정했다. 출생의 비밀을 둘러싼 친부와 생부의 대립. 복수의 칼날 앞에서 맥없이 당하기만 하는 평면적인 악역. 주제의식을 강조한다 해도 과해 보이는 적나라한 가혹 행위 묘사. 1부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단점이 더 커지면서 마무리를 방해하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베일을 벗은 <더 글로리>의 모습은 반반이다. 기대도 우려도 절반만 충족하고, 절반은 덜어냈다. 주제의식은 일관성을 잃지 않았다. 모든 일의 시발점이었던 연진은 "그 누구도 옆에 남지 않는" 고통을 맛봤다. 사라, 혜정, 재준도 욕망에 매몰돼 차례대로 파멸했다. 중심 내용을 변주하지 않고 묵직하게 끌고 가며 복수극은 나름대로 깔끔하게 끝맺었다. 그러나 달콤한 복수의 끝은 쌉쌀했다. 동은의 복수에 담긴 쾌감이 온전히 살아있냐고 묻으면 그렇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개다. 우선 파트 1에서 부각되지 않았던 로맨스가 극에 잘 녹아들지 못했다. 또 느리고 우연에 기대는 전개 때문에 복수의 칼을 제대로 갈지도 못했다.
신뢰를 불신으로 바꾼 동은의 복수
동은의 목적은 명백했다. '연진에게 직접 복수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킨다. 딸과 남편을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에게 그녀가 버림받게 만든다.' 동은이 선택한 방법도 간접적이다. 그녀는 굳이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대신 훌륭한 조력자의 손을 빌린다. 연진, 명오, 혜정, 사라, 재준의 손이다. 동은의 사주대로 명오가 연진을 협박하자, 연진은 명오를 폭행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 대가로 연진은 동은이 조작한 증거에 걸려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살인죄의 누명을 쓴다. 사라도 동은의 덫에 빠진다. 그녀가 마약사범이라는 사실은 온 세상이 안다. 동은에게 약점을 잡혀 친구들을 이간질하던 혜정은 사라의 연필에 목이 꿰뚫여 말을 할 수 없다. 하나같이 몰락하는 친구들을 조롱하던 재준도 혜정의 활약 덕분에 시력을 잃는다. 동은이 심은 자그마한 불신의 싹 때문에 그들은 자승자박한다.
이러한 전개는 작위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다섯 친구가 힘을 합쳐 문동은에 맞설 생각을 하지 않는 건 비상식적이다. 연진만 동은의 어머니를 조종해 동은을 괴롭히려 할 뿐, 다른 이들은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동은의 계략에 걸러 무너진다. 그러나 이들이 몰락하는 과정은 고구마가 아닌 사이다다. 그들 내부의 갈등은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준, 사라, 연진이 혜정과 명오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다섯 사이에도 돈과 지위로 쌓은 벽이 있다. 그런데 혜정과 명오가 동은의 칼이 된 순간, 이 벽은 무너진다. 시청자가 좁게는 동은의, 넓게는 혜정과 명오의 처지에도 공감하며 위계가 역전되는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이유다.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욕망이 영리하게 투영한 결과인 셈이다.
시원함을 넘어 스산한 '그들의' 복수
<더 글로리>의 사이다는 단순히 시원하지 않다. 스산하기까지 하다. 한 장면 때문이다. 동은의 협박을 받아 마치 윤소희의 혼이 접신한 것처럼 굿을 펼치던 무당. 그녀는 갑자기 진짜로 윤소희의 영혼이 보이는 듯한 말들을 늘어놓다가 벌전을 받아 목숨을 잃는다. 윤소희의 죽음과 관련해 동은도 모르는 사실에 대해 말하던 걸 보면 이때 무당은 실제로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벌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정작 동은은 그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녀는 신이 자신을 돕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절, 교회, 점집 등 종교적인 장소에서 신을 대신해 직접 협박하고 벌을 준다. 복수극의 끝에 ‘영광’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은의 생각과 달리 신은 그녀를 도왔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무당이, 왕년에는 놀라운 신기를 보여줬던 무당이 돌풍이 부는 기이한 상황에서 급사했으니. 신을 믿을 수 없는 사람도 '신'이라는 존재 말고는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졌으니. 윤소희의 모습을 빌어 하늘이나 신이 천벌을 내리고 권선징악을 행한 장면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신은 왜 이 순간에 동은의 복수를 도왔을까? 드라마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답은 하나다. 연대다. 소희의 시신이 아직 병원 냉동실에 있다는 걸 알고 난 뒤, 동은은 자기뿐만 아니라 소희의 복수를 위해서도 온몸을 던졌다. 밀려 있던 시신 안치 비용을 내기 위해 병원을 찾은 것만 보더라도, 그녀의 복수가 개인적인 만족감 그 이상의 것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연대는 <더 글로리>가 학교 폭력 외의 '악'을 처단하는 드라마인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형태의 악행에 시달린 피해자가 등장하고, 그들과의 연대가 동은의 복수를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정폭력과 살인범죄의 피해자인 '현남'과 '여정'과 대화할 때는 언제나 따뜻하고 웃음이 꽃핀다. 이는 동은의 빌라 월세가 더 싸고, 각자 삶을 살 것처럼 보였던 이들이 다시 손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더 글로리>는 큰 고통을 겪은 피해자가 연대하고 서로 아껴줄 때 권선징악이라는 신의 위로와 도움에 가까워진다고 말하는 듯하다.
최소한의 역할만 해낸 로맨스
하지만 동은의 복수극은 못내 아쉽다. 더 짜릿할 수 있을 텐데 싶은 실망감이 남는다. 특히 로맨스가 부자연스럽다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 미련은 주여정이라는 캐릭터의 역할로부터 비롯된다. 여정은 동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조력자다. 그의 직업, 집안, 재력과 사회적 지위 등은 동은의 부족함을 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가 없었다면 동은인 버려진 장례식장 건물을 통째로 구입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연진이 시술받는 동안 그녀의 표피를 떼내지도 못했을 터. 뒤집어 말하면 여정은 '그가 없어도 동은의 복수극이 과연 성공했을까?'라는 의문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이때 로맨스는 도구적으로 소비되는 주여정 인물을 극에 자연스레 녹여내는 도구여야 했다. 그가 자기만의 복수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게 그 일환이다. 복수의 열망이 있었기에 설령 동은이 자기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도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로맨스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기인한다. <더 글로리>는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동은과 여정이 한 장면에 등장하면 드라마는 순간적으로 뻔한 로맨스 작품이 되어 버린다. 분위기에 맞지 않는 달달한 OST의 사용이 대표적이다. 이는 로맨스와 역사적 비극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은 작가의 전작, <미스터 션샤인>과 대조된다. 그 결과 몰입감이 떨어진 <더 글로리> 속 로맨스는 자꾸만 '앞으로 가기'를 누르게 만든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로맨스는 극의 메시지를 극대화하는 역할에는 충실하다. <더 글로리>는 많은 복수극과 달리 해피엔딩으로 끝맺는다. 복수를 끝내고 허망해하는 동은. 하지만 그녀에게는 새로운 삶의 이유가 생긴다. 주여정이다. 동은과 달리 여정은 아직 아버지의 살인범에게 복수하지 못했다.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여정을 보면서 그의 엄마는 동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동은은 계속해서 살아갈 이유를 찾고, 그동안 못 누린 행복을 누릴 기회를 잡는다. 즉, 동은과 여정의 로맨스 덕분에 동은도 해피엔딩을 누릴 수 있고, 여정도 트라우마를 극복할 새 기회를 잡았고,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는 마지막까지 강조될 수 있다.
우연과 운에 의존한 전개
마지막으로 2부의 전개가 1부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운과 우연에 의지한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동은의 엄마인 정미희의 재등장이 대표적이다. 2부에서 그녀의 활약은 눈부셨다. 바둑을 잘 못 두는 연진이 예상치 못한 신의 한 수를 뒀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 때문에 동은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과정을 자세히 보면 의아한 대목이 많다. 학부모들이 외관부터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이 명백한 정미희의 요구에 굴복하는 것이나, 그 대가로 거액의 명품 가방 등을 건네는 것 모두 쉽사리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학생들이 얼마 되지 않는 선물도 학교 선생님에게 주기 어렵다는 걸 고려하면 더욱 이상하다. 동은이 정미희와 모녀지간이라는 점을 이용한 복수의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소 작위적으로 상황을 조성했다고 보이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2부에서 조연 캐릭터가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활용되는 듯한 인상이 짙다. 물론 조연이 본래 극 중 사건이나 계기를 만드는 장치이기는 하지만, 우연적인 전개가 반복되자 그들의 역할이 도구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례로 동은의 동료 교사인 추 선생은 몰카 범죄자였던 것으로 밝혀진다. 이는 놀랍지 않다. 이미 1부에서 그가 추잡한 인물이라는 점이 꾸준히 암시됐으므로. 하지만 그의 실체는 재준과 도영이 갈등을 빚으면서 조명 밖으로 밀려난다. 그는 단지 재준과 도영의 대조적인 부성애를 강조하고, 이들의 갈등을 키우며, 주먹다툼을 벌이는 계기로 활용될 뿐이다. 이 장면 이후 추 선생은 조용히 모습을 감춰버린다.
여정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복수를 끝마친 동은이 자살하려는 순간 등장한다. 동은의 자살을 막고, 여정을 도와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그런데 이 장면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작중 동은과 여정의 어머니는 별다른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장면 역시 동은과 여정의 로맨스를 다시 이어주고, 아직 남은 복수가 있다는 걸 상기시키기 위해 여정의 엄마라는 캐릭터를 수단으로 활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복수극 아니라 블랙코미디인 현실
최근 <더 글로리>만큼 많은 이슈를 낳은 작품은 찾기 힘들다. 요즘 따라 길거리에 많은 정당 현수막이 <더 글로리>를 활용한 세태만 보더라도 그 파급력을 느낄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학교폭력을 넘어 교사 폭력도 이슈화되는 걸 보면 <더 글로리>의 메시지가 때마침 우리 사회에 필요했던, 시의적절한 울림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연출을 맡은 안길호 PD의 학교 폭력 논란은 <더 글로리>의 현실성을 역설적으로 방증한다. 학교 폭력 가해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피해자는 오랜 기간 가슴속에 응어리를 품고 살다가 힘겹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현실. 연진과 동은이 드라마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손수 증명한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비록 몇몇 대목의 완성도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더라도, <더 글로리>가 오래도록 기억될 드라마라는 사실에 이견이 없을 이유다.
A(Acceptable, 무난함)
어쨌든 무사히 항해를 마쳤다는 안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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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아들의 두려움과 엄마의 조롱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독] 아리 에스터 Ari ASTER
출연] 호아킨 피닉스 Joaquin PHOENIX, 네이단 레인 Nathan LANE, 에이미 라이언 Amy RYAN
시놉시스
'보 와서먼'(호아킨 피닉스)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철없는 남자다. 그는 아파트를 떠나 어머니 '모나'(패티 루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려 하는데, 이때 모든 상황이 엉망이 된다. 고립되고 부상을 입는 등 갈수록 기이해지는 충격적인 그의 여정이 시작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옛날 집에 도착하게 된 보는 끔찍한 기억들과 추악한 비밀을 마주한다.
'아리 에스터'다운 난해함
자기만의 개성과 세계관을 고스란히 품은 <유전>과 <미드소마>로 이름을 알린 아리 에스터 감독. 그의 작품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연출 면에서는 점프 스케어를 지양한다. 기괴한 영상미와 음악을 통해 분위기를 고조하고, 이를 통해 관객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 내재된 집착을 공포와 미스터리의 소재로 사용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수많은 상징 덕분에 곱씹어 보는 재미도 있다. 종합하면, 난해하다.
세 번째 장편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도 마찬가지다. 장르는 달라졌다. 호러가 아니라 판타지나 심리극에 더 가깝다. 그러나 난해함은 여전하다. 성기 괴물과 같은 비현실적 이미지가 가득해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를 구성한 5개 챕터 사이의 연관성은 눈에 띄지 않는다. 코미디, 연극, 로드무비, 심지어 좀비 영화(?)까지 섞여 있다. 그런데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마지막까지 숨통을 조여 오는 이야기의 힘이 그만큼 강렬하다.
의외로 단순한 얼개
하지만 첫 두 장면에 집중하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얼개는 의외로 단순하다. "제 입장에서는 단순하다고 생각한다"는 아리 에스터 감독 말대로다. 영화는 엄마 뱃속에 태아인 보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보. 그런데 이때 분만실 상황이 심상치 않다. 엄마는 아들이 울지 않는다고, 아들을 받을 때 간호사가 실수한 거 아니냐고 화낸다. 보를 울리려는 간호사에게 아들을 폭행한다고 소리 지른다.
영화는 곧장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보는 정신과 상담을 받는 중이다. 의사와 상담을 할 때 그와 그의 어머니 관계가 썩 좋지 않다는 게 드러난다. 아버지는 이미 죽었고, 어머니 집에 찾아가는 걸 꺼리는 보. 가끔은 어머니가 죽기를 바란다는 심정도 들켜 버린다. 여기까지만 봐도 이 이야기의 주제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억압적인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아들에 대한 영화라고.
안 그래도 영화는 주제를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다. 상담을 마친 보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도 힌트를 준다. 한 남자아이가 광장 분수에서 놀고 있다. 보가 그 옆을 지나갈 때 아이의 어머니는 화를 내며 아들을 낚아챈다. 아이의 장난감은 그대로 분수에 버려진다. 보가 집 앞에 도착했을 때도 똑같다. 엄마에게 혼나며 쫓기는 아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관건은 집착하는 어머니를 아들이 떨쳐낼 수 있느냐다.
뒤틀린 모정의 파노라마
이런 관점에서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일종의 정신 치료기처럼 보인다. 특히 영화의 각 챕터는 보의 정신 상태를 각각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가 죽거나 자기가 죽음에 가까운 충격을 받으면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보. 그때마다 그는 자기도 미처 몰랐던 현실과 욕망, 상상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성장한다.
첫 번째 챕터는 보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 그는 어머니의 치마폭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엄마 회사가 만든 냉동식품을 먹으며 엄마 회사가 지은 건물에서 산다. 또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지도 못한다. 엄마 생일에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 그는 성인답지 못하게 우유부단하다. 이는 그의 눈에 마약 중독자와 강도가 가득한 세상은 항상 위험하고, 보호막이었던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에 그가 정신을 못 차리는 이유다.
두 번째 챕터에서 보는 모성애의 실체를 마주한다.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본가로 향하는 보. 도중에 그는 '로저(네이단 레인)'와 '그레이스(에이미 라이언)' 부부 집에 잠시 머문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이 가족. 그러나 속은 썩었다. 뒤틀린 모성애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파병 나간 아들이 죽은 이후로 그에게만 집착한다. 잘못된 모정은 둘째 딸 '토니'(카일리 로저스)의 죽음을 초래한다. 엄마의 사랑을 잃은 그녀는 오빠를 미워한다. 오빠 방을 칠한 하늘색 페인트를 마시고 죽을 정도로.
세 번째 챕터는 연극이다. 이 연극은 보 자신의 이야기다. 정확히는 자기가 누릴 수도 있었던 이야기다. 엄마의 죽음을 해방으로 받아들였을 때 펼칠 수 있는 이야기다. 뒤틀린 모성애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남자.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시련을 겪어 가족을 모두 잃지만, 끝내 다시 재회하는 해피엔딩. 보는 자기가 자기 삶의 운전자가 되는 삶을 꿈꾼다.
마지막으로 그는 장례식이 열린 엄마의 집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그는 마침내 온전히 주체적인 성인이 되는 듯 보인다. 그는 첫사랑인 '일레인'(파커 포시)을 만난다. 엄마 회사 직원이었기에 늦게나마 장례식에 온 일레인. 보에게 그녀는 언제나 소중한 존재였다. 그녀가 준 사진을 항상 간직하며 잊지 않았다. 죽은 엄마의 침실에서 그녀와 섹스하면서 그는 엄마에게서 벗어나 자기가 본 연극처럼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원형에 가까운 정신과 치료기
아리 에스터는 이러한 보의 모험을 프로이트적의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원형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발달 과정을 '리비도(성욕)'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한다. 프로이트에게 리비도는 단순한 성욕 이상이다. 성적 에너지이자 동시에 정신 활동의 에너지다. 따라서 리비도를 제대로 다루는 것은 성욕 통제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 인간이 정상적으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특히 프로이트는 부모 자식 관계와 이성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유아기가 되면 아이는 자기 성기를 쾌락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때 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아버지에 대한 적의를 품지만, 그 욕망을 억압한다. 그 과정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생긴다. 참았던 욕망은 사춘기를 맞이해 이성에 대한 성욕에 눈을 뜨면서 풀려난다. 이렇게 성적인 충동을 적절히 통제하고 해소하는 법을 배워야 정신적으로 성숙한 인격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리비도가 정상적인 과정으로 발달하지 못하면 고착하거나 퇴행하며 정신적인 문제를 낳는다. 바로 보가 겪는 문제다. 보의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두 가지를 제거했다. 아버지와 애인이다. 그녀는 보의 아버지가 섹스 중에 죽었다고 이야기한다. 유전병인 심장병이 도져서 죽었다고. 또 보가 크루즈 여행 중 일레인에게 반해 사랑에 빠진 걸 싫어한다. 실제로 자기 회사에 일레인이 취직했는데도 보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 결과 보에게는 온갖 문제가 생긴다. 작중 등장하는 대부분의 초자연적인 이미지가 그의 성욕과 관련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선 이웃과의 소음 문제가 있다. 조용히 잠자던 보에게 옆집 이웃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소음을 줄이라고 윽박지르고 보복까지 한다. 보가 일레인과 마침내 섹스할 때 큰 음악을 틀고 하는 걸 고려하면, 소음은 정상적으로 승화되지 않는 성욕으로 인한 문제라 해도 무리가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극을 보며 자기도 주도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에 빠진 보. 하지만 이내 그의 상상은 물거품이 된다. 가정을 이루려면 섹스를 해야 하는데, 아버지처럼 심장마비로 죽을 거라는 두려움이 그를 덮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엄마가 진실을 숨겨둔 다락방에서 성기 괴물을 본다. 이 괴물 역시 어머니가 만든 존재나 다름없다. 자기 성욕에 대한 두려움이 투영된 존재가 그 괴물이기 때문. 길거리에서 벌거벗은 채 칼로 보를 찌르는 남성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두려운 아들과 비웃는 엄마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보의 정신 이상을 치료하는 이야기다. 일레인과의 섹스를 통해 그는 자기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지극히 원형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아리 에스터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반전을 주며 영화 장르를 하나의 블랙 코미디로 전환한다.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살아 돌아오자 보는 모든 상황이 각본이라는 걸 깨닫는다. 엄마가 그를 집으로 부른 것부터 엄마가 죽었다는 뉴스, 장례식과 일레인이 늦은 밤에 찾아온 것까지. 그를 집으로 이끈 죄책감도 모두 다 모나의 계획이었다. 동시에 이는 엄마의 복수나 다름없다. 아들의 정신과 상담 내용까지도 입수한 그녀는 자기가 준 사랑을 회수하지 못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챕터인 재판장에서 모나의 의도는 더 분명해진다. 이 재판은 정당하지 않다. 철저히 보를 공격하고 굴복시키기 위한 장이다. 재판 증거는 철저히 보의 잘못된 행동, 어머니를 실망시킨 일로 가득하다. 보의 목소리는 어머니의 변호사 앞에서 묵살된다. 그의 변호사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가 떨어져 죽는다. 결국 보는 타고 있던 보트의 모터가 폭발해 죽는다. 사인은 폭사가 아니다. 익사다.
그런 보를 보면서 모나는 눈물을 흘린다. 단지 슬픔 때문은 아니다. 이 모자 관계는 집착, 가스라이팅, 속박, 폭력으로 점철됐다. 어머니는 아들이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려고 하면 구속했고, 아들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자라지 못했다. 결국 이 재판은 어머니의 조롱이다. 아무리 아들이 자유로워지고 싶어도 절대 자기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조롱.
이는 익사의 이유이기도 하다. 초반부에 상담사는 약을 먹을 때마다 항상 물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보는 물에 집착한다. 그런데 정작 그는 바다에 빠져 죽는다. 의미심장하다. 프로이트는 아이가 아직 어머니의 몸과 자신의 몸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를 '대양적 느낌'이라고 지칭했다. 이렇게 보면 물은 모성애다. 적어도 문제지만, 너무 많아도 문제다. 영화가 양수 속에 있는 보로 시작해 바다에 빠져 죽은 보로 끝나는 이유다.
이토록 불쾌한 블랙 코미디라니
그런데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장르 전환은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관객은 모나가 아닌 보의 입장에서 결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보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여줬다. 그가 바라보는 왜곡된 세계부터, 그의 희망까지 전부 다. 그런데 정작 마지막 순간 그를 조롱한다.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으로 포장된 그의 희망과 상상은 다 부질없고, 그는 죽는 순간까지 어머니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
그 순간 관객은 난 데 없이 함께 조롱의 대상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관객은 보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해 그의 모험을 3시간 동안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대신 그 안에서 익사하는 결말은 불쾌할 수밖에 없다. 블랙 코미디라기에는 차마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보가 자기 자신을 유머 대상을 삼으면 모를까, 피폐하고 나약한 보가 조롱의 대상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 지점은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독특한 이유이기도 하다. 애초에 아리 에스터는 보는 사람을 불쾌하고 찝찝하게 만드는 데 특별한 재주를 가졌으니까. 제목에 담긴 언어유희를 생각하면 철저히 계획된 블랙 유머이기도 하다. "소년은 두렵다(Boy Is Afraid)”라고도 읽을 수 있는 제목은 모든 남성이 품고 있는 두려움을 영화 시작 전부터 드러내고 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못 만든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긴장감을 고조하는 연출.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원형적 이야기를 아름다운 이미지로 색다르게 보여준 스토리텔링. 5개 챕터로 쪼개진 심리 서사극. 마지막 순간 모두의 예상을 엇나가는 반전까지. 아리 에스터에게 박수를 보내기 충분하다. 단지 블랙 코미디에 같이 웃느냐, 웃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물도 적당히 마셔야 살 수 있다
상영일정
6/29 13:00 - 15:59 한국만화박물관
6/29 19:00 - 23:19 부천시청 잔디광장 / 어울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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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 [라이온 킹]의 전설이 다시 시작된다! "무파사, 이제 너의 시대야" 세상을 뒤흔들 전설적인 왕의 탄생🌠 그 거대한 여정의 시작을 확인하라! 🎞️[무파사: 라이온 킹] 파이널 예고편 공개 위대한 전설 [라이온 킹] 이전의 이야기🌅 [무파사: 라이온 킹] 12월 18일 IMAX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