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미2021-07-13 01:40:31
두 남자의 활어회 같은 입담여행, <트립 투 그리스>
그리스로 떠나는 대리만족 여행기!
제작 : 영국, 코미디 │ 감독 : 마이클 윈터바텀
출연 : 스티브 쿠건, 롭 브라이든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 103분
"소소한 행복감을 계속 선사하던 시리즈를 그리스에서 제대로 마무리한다"
-이동진 영화평론가-
영국 대표 배우 스티브 쿠건 & 롭 브라이든
환상의 팀워크로 완성한 낭만 가득 여행기
여행이 한결 다채로워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좋은 사람과 함께할 때, 그리고 여행에 대한 풍부한 교감으로 그 깊이를 확장할 때. 영화 <트립 투 그리스>의 두 남자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떠나는 여행은, 그 두 가지 여건을 충족시키는 여행이 아닌가 싶다.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은 영국의 내로라하는 배우이자 입담꾼들이다. 그들이 함께 여행을 시작한 건 <트립 투 잉글랜드>에서였다.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은 이 영화의 영감을 실제 두 배우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얻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유머와 풍부한 지식은 그렇게 ‘트립’ 시리즈가 되어, 잉글랜드에서 이탈리아로,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이번에는 그리스로까지 넘어왔다.
중년 남자 두 명이 떠나는 여행이 그리 재밌을 줄은 미처 몰랐다. 마치 다듬어지기 전의 비방용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주고받는 서로를 향한 짓궂은 장난과 성대모사 등은 기본이고, 그때 그때 여행지에서 떠올리는 노래와 상황극 등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이어진다. 감독이 영감을 받았다던 두 사람의 대화가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해박한 지식 또한 영화를 보는 재미에 한 몫한다. 두 배우의 나이는 50대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오는 동안 켜켜이 그들의 삶에 쌓여온 문화예술과 역사, 미식에 대한 잡다한 지식들은 그들이 끊임없이 농담 같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적극 활용된다. 물론 영화 촬영을 위해 사전에 전달된 상황과 정보들은 몇 가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소수의 사전 정보를 제외한다면 절반 이상이 거의 두 배우의 즉흥적인 티키타카로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의 정체성은 바로 그 날 것의 힘에 있었다. 여행지를 다니면서, 빼어난 음식을 맛보면서, 두 배우가 떠오르는 대로 아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 대화가 곧 씬이 되고 영화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트립 투 그리스>다.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그들이 가족의 구성원이자 가장이라는 느낌을 선뜻 느끼게 하는 대목도 존재한다. 스티브의 아버지는 여행 중 병세가 심해지시는데, 그때마다 아버지의 상황을 아들로부터 듣는 스티브의 모습은 영락없는 50대 가장이자,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롭도 마찬가지다. 그는 시종일관 스티브를 놀리고 개구진 성대모사를 하다가도, 아내나 딸과 통화할 때면 영락없는 애처가 기질을 드러낸다. 두 배우의 사회적인 모습과, 개인적인 면을 둘 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묘미가 더욱 짙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두 배우가 함께 ‘트립’ 시리즈로 호흡을 맞춘 지도 어언 10년. 두 배우의 어디서도 본 적 없던 활어회 같은 형태의 여행을 보고 있자니,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라는 노래의 노랫말이 문득 떠오른다.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호흡을 맞추며 보낸 두 사람의 시간 또한 커다란 의미에서 여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 드넓은 이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 오늘은 너와 함께 걸어왔던 길도
하늘 유리 빛으로 반짝여 /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 50대가 된 두 배우, 두 사람의 관록, 여행과 우정,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라는 뻔하지 않는 여행 테마, 날 것의 대화. 이 모든 요소들이 트립 시리즈를 관통하는 색이자 매력이 아닐까.
<트립 투 그리스>를 끝으로 트립 시리즈는 마무리가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 덕에 알게 된 두 배우의 남은 발자취는 두고두고 응원하게 될 것 같다. 삶이라는 여행이 언젠가 끝난다던 이상은의 노래처럼, 두 배우는 서서히 노년이 되어가겠지. 하지만 두 사람을 보고 나면 인생이든 진짜 여행이든, 끝을 향해 가는 여정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아진다.
성격도 꿈도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 메이트가 되어주었던 두 사람을 보는 103분 동안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감사하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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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잃은 딸들의 긴 우울
- 영화 <로스트 도터(2021)>는 배우 매기 질렌할의 감독 데뷔작이며, 제7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러한 권위적인 수식은 개개인의 솔직한 판단에 침묵을 강요하는 듯하여 썩 즐기지는 않으나, 영화를 감상한 후엔 각종 수상 이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로스트 도터>가 시의적절하게 제작 및 공개된 작품이라는 데엔 이견을 갖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조차 '잃어버린 딸'이라는 미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그려내니, 이 작품은 어쩌면 세상이 잃어버린 모든 딸들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리라.포스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의 캐치 프레이즈 “딸을 버렸어요. 그리고 집을 나왔죠.”는 <로스트 도터>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물론 영화계에서 신화화된 모성을 해체하려는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예컨대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2011)>를 경험했고,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역시 보았다. 다만 앞선 두 작품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모성의 불안정성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매기 질렌할의 작품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하기사, <케빈의 대하여> 혹은 <마더>에서 제시한 아들은 모두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이기도 하니 대립적 관계 형성이 더 쉬웠을 수도 있겠다만.어머니와 딸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서는 <레이디 버드(2017)> 등과 같은 영화를 통해 재현되었지만, 대개는 딸의 성장 서사를 기반으로 하는지라 세대갈등으로 해석하거나, 모녀관계는 본디 복잡하기 마련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엔딩에서 미적지근한 화해라도 내비쳤단 뜻이다(<크루엘라(2021)의 경우 생물학적 어머니와 양어머니의 구분을 둠으로써 이러한 질문을 피해 간다). 이러한 점에서 <로스트 도터>는 적지 않게 유의미한 영화이다. 딸을 버린, 아니 가정에 소원한 어머니의 시점에서 영화가 전개되며 딸인 비앙카와 마사의 서사를 삭제하였고, 주인공인 레다(올리비아 콜먼)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적절한 발화를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정을 버린 어머니에 대해 고운 눈길을 보내지 않는 사회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 시대와 사람 앞에 이러한 자신이 존재하노라고 보여주는 방법 밖엔 없다.※ 스포일러 주의레다라는 개인우선적으로 레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레다는 이탈리아 비교문학을 전공한 학자이자, 그리스의 해변가로 휴가를 보내러 온 교수이다. 젊었을 적부터 빛나는 능력을 발휘한 그는 외모 역시 아름답다고 묘사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레다가 매력적인 여성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로스트 도터>의 레다는 마흔여덟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매력적이라고 평가하며 본인 역시 반짝이는 젊은이들의 생기를 전혀 잃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레다는 한 두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다. 해변가에서 조우한 니나(다코타 존슨)와 그의 가족들과 껄끄러운 첫인상을 남겼음에도 다음 만남에서 곧바로 화해하며, 니나의 가족이 위험한 사람이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굳이 그 무리와 거리감을 만들지 않는 담대함을 보인다. 영화관에서 소동을 피우는 남자를 강하게 비난하며 안내원을 부르는 장면은 레다가 어떤 인물인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렇듯 레다는 대체로 여러 계산을 한다기보단 자신의 직감이 따르는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인지 그의 선택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레다가 늘 자상하기만 한 단편적 인물이 아님에도 짧은 휴가 기간 동안 다양한 사건에 얽히게 된 데에는 타인의 오해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지적인 직업여성이라는 데에서 오는 확실한 정체성과 마흔이 넘은, 딸 두 명을 키운 어머니라는 이미지에서 흔히 연상하는 푸근함 따위로 레다를 해석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 아니겠는가.당연하지만 시선은 언제나 주관적인 것인지라 레다 역시 해변가에서 만난 니나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딸을 사랑하고, 남편과의 관계에서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도망치고 하는 니나, 딸이 자신을 미치게 만든다고 털어놓는 니나는 레다의 젊은 시절과 몹시 유사하다. 또한 영화 초반, 해변가에서 니나는 딸을 잃어버리는데 이를 통해 레다는 오래전 바다에서 비앙카를 잃어버렸던 자신을 떠올린다.잃어버린, 아니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딸영화의 제목은 <로스트 도터>로 잃어버린 딸을 뜻한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 이 영화는 어머니의 시선에서 전개된다는 점에서 어머니가 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묻는다. 어머니란 대체 무엇이기에 그들은 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을까? 젊은 레다(제시 버클리)가 남편 조(잭 파딩)에게 숨이 막히는 듯하다고 표현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니, '어머니 됨'이란 대체 무엇이며, 레다는 어째서 모성의 거부를 외칠 수밖에 없었을까?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어머니 됨'은 기본적으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인데,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진 요즈음이라지만 이 부담은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 아무리 함께 가정을 꾸렸다 하더라도 돌봄 부담은 여성에게 부과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이미 다수의 논문에서 기혼여성들은 일과 가정의 양립에서 비롯되는 부담과 지나친 역할 요구로 인해 정신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고 밝혀진 바 있다(윤명숙, 유현경, 이수비. 2022). 영화 <로스트 도터>에서는 여성이 부딪히는 현실을 뚜렷하게 그려낸다. 레다는 남편 조와 마찬가지로 공부와 가정을 양립시키고자 하지만 뜻대로 일을 할 수 없다. 조는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으며 아내에게 가사와 양육을 미루고 출장을 가지만 레다는 출장을 가기 직전까지 가사도우미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내야 한다. 남편이 집을 비운 동안엔 둘째 딸의 울음에 몇 초만 기다려달라는 레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첫째 딸은 무한히 애정을 갈구하니 육체적/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린다. 논문, 혹은 번역과 같은 작업에 필요한 기간은 너무나 촉박하다. 모든 것이 그를 옥죄어온다. 이때 밝혀지는 한 가지 사실은, 레다 역시 그리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도 친정을 버리고 뛰쳐나온 딸 - 로스트 도터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이기지 못한 여성/어머니에게 배려와 도움을 내밀긴커녕, 억압만을 지속적으로 부여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레다의 우울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아름, 정정희(2021)에 따르면 양육스트레스가 지나치게 높아진 어머니의 경우 방임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레다 역시 한동안 가정을 떠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일시적으로 돌아간 순간에조차 잭은 레다에게 당근을 건네지 않는다. 그는 레다가 가정으로 돌아올 때 누릴 수 있을 생활의 안정을 제시하거나 양육 부담을 나눠줄 계획을 공유하긴 커녕 '자꾸 이렇게 행동한다면 아이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인 레다의 어머니에게 두 딸을 보내겠다'라고 협박한다. 비앙카와 마사는 레다만의 딸이 아니라, 본인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돌봄 노동은 여전히 어머니의 몫이다.아울러 세상이 여성을 어떻게 프레이밍하려 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은 하디 교수(피터 사스가드)와 레다가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일 것이다. 하디는 유부녀를 유혹하면서도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자 레다에게 당신이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며, 딸과 전화하는 것이 달갑지 않다고 고백하는 레다에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해선 안된다고 훈계하기까지 한다. 정리하자면, 자신은 완전무결하다고 합리화를 끝낸 하디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가정을 버리고 자신을 유혹하는 팜므파탈로서의 레다'라기보다는 '딸을 버리는 어머니로서의 레다'인 셈이다. 가족을 저버린 생활이 어떠했느냐고 묻는 니나에게 상상 이상이었다(It felt amazing.)고 대답했던 레다의 말엔 펼쳐놓기 어려운 감정과 시절이 모두 압축되어 있었으리라.길 잃은 딸들의 긴 우울레다가 젊은 자신을 회상하게 된 인물인 니나는 젊은 레다보다도 코너에 몰린 생활을 하고 있다. 남편은 집을 자주 비우고, 시누이는 니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딸은 사랑스럽지만 인형 하나에 세상이 사라진 것처럼 행동하고 니나와 분리불안이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니나는 레다에게 묻는다. 이 감정, 우울증인지 무엇인지 모를 절망감이 끝내 지나가기는 하느냐고. 레다는 질문을 들은 순간에는 답하지 않다가, 영화 후반부에서야 대답한다. 지나가지 않으리라고.실제로 레다는 영화 내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영화 내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니나의 딸 엘레나(아테나 앤더슨)가 잃어버린 인형에 대해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집착을 보인다. 영화는 이런 레다의 행동에 대해, 그리 편안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년 시절을 함께 이겨낸, 레다의 애착 인형 '미나(mini-mama)'가 비앙카와의 실랑이 사이에서 산산이 부서졌던 것이 주요한 원인일 것을 암시한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그의 과거를 니나와 라일(에드 해리스) 등과 같은 제삼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는 것이며, 레다 역시 자신의 행동을 뚜렷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학계에서 인정받는, 이토록 놀라우리만큼 똑똑한 여자가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원인은 무얼까. 사회가 여성의 우울을 너무도 오랜 기간 방치하고 개인의 잘못으로 떠밀었기 때문이진 않을까. 세상은 지금껏 여성의 심리에 대해 적절한 언술을 하지 않았다. 마련된 단어가 없으니 레다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적합한 설명을 해낼 수 없다. 목을 조르는 듯한, 숨을 쉴 수 없는 듯한 갑갑함을 남편에게 이해시킬 수 없으며 엘레나의 인형을 숨겼다가 급작스레 니나에게 되돌려주는 이유를 마련하지 못한다.그러나 니나의 질문에 답함으로써 자신의 우울이 쉽사리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낸 레다는 영화 말미에서 스스로를 껴안는 데에 성공한다. 깊게 찔리며 상처입었더라도 말이다. 딸을 잃어버리며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중압감에 시달렸던 바닷가에서 쓰러지고, 파도가 오가는 틈 속에서 눈뜨며 딸과 연락하지만 그저 그뿐이다. 그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과중한 책무를 느끼지 않는다. 과거로의 회귀를 갈망하지도 않으며 보편적 인식 속 모성애를 다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지도 않는다. 모래사장에 몰아치다가도 물러나는 파도처럼 감정과 삶은 동적인 연속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파도가 바위에 가닿고 동굴이 깎여나가는 것과 같이 인생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지점들은 언제든 있기 마련이다. 그 시점에 맞추어 마땅히 물러나야 하는 때가 다가온다면 물러나는 것이 옳은 선택일 터다. 영화 중반에 등장한 여성 히치하이커의 말처럼, 우리의 일생엔 너무나 바보 같은 의무라는 이름의 일들이 산재해 있다("We are obliged to do so many stupid things.").나는 레다의 모든 족적에 대해 '옳았다'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어머니'라는 역할을 깊은 고려 없이 무작정 관습적으로만 재생산해내고, 가정의 일엔 깊게 개입할 수 없다는 스탠스를 유지하는 사회 문화만큼은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문정(2021)은 자신의 논문을 통해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대해, 생물학적 양육과 정서적 안정을 주는 것 그 이상이라 표현했다. 어머니란 존재는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욕망하는 딸을 키워내고, 가정에 소홀하더라도 사회의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용인받는 아들을 키워내며 기존의 젠더 관습을 공고히 하는 강력한 매개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모성은 사회적 산물에 불과함에도 '본능'이란 단어와 함께 쓰이는데, 이러한 무책임한 모습은 버릴 때가 왔다(아니, 버릴 때가 한참 지났다. 지금은 21세기이다.). 올바른 양육법/어머니의 의무/모성의 바람직한 모습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으며,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다시 로크먼은 자신의 저서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을 통해 '엄마가 접하는 사회적 세계가 엄마의 행동을 형성한다'고도 썼다. 사회 관습적 어머니 역할을 거부하는 여성을 젠더 질서를 교란시키는 문제적 인물로만 낙인찍을 때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이렇게 돌이켜보아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딸들을 편안한 말로 외면하고 억압해왔는가?참고문헌김문정 "『여자의 전부』에 나타난 모성의 거부와 젠더 질서의 교란" 어문론집 85 pp.239-261 (2021)윤명숙, 유현경, 이수비 "미혼 성인자녀 둔 여성의 돌봄 부담과 스트레스, 우울의 관계 : 남편 돌봄분담 만족의 조절된 매개효과" 정신건강과 사회복지 50.2 pp.145-169 (2022) : 145.이아름, 정정희. "어머니 양육스트레스와 유아 문제행동의 관계에서 어머니 우울의 종단적 매개효과".열린유아교육연구,26(3),37-62. (2021)★★★★*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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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쓴 영화사, 다시 쓴 가족애, 깊은 심연 하나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갑자기 어느 정치인이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법명은 '예술가 법'. 작품 안 내는 예술가를 예술가로 부르지 않는 뭐 그런 것이다. 금세 대체 이 아저씨는 뭐 먹고살까? 밥은 챙겨 먹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홍콩의 왕가위에 대한 궁금증이다. 왕가위 감독은 차기작 대본을 쓰고 있다는 말만 있지 실질적으로 뭔가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걸까? 왕가위가 설마 투자 못 받아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국제적인 거장인데? 또 <헤어질 결심> 개봉 이전에 박찬욱 감독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뭐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한 사실을 좀 늦게 알아서 김이 새긴 했지만 그의 신작을 두 손 모아 참 오랫동안 바라왔다. 아. 여기에 정말 적합한 사람이 있다. 원빈 배우랑 나홍진 감독은 좀 너무한 것 같다. 농담 반 섞은 말이긴 하지만,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버티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누가 한번 물어봐 줄 사람?
근데 이런 욕심이 작품 적게 낸다고 들거나 안 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영화감독은 영화를 내면 낸 대로 차기작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드라이브 마이카>를 내고 '와 이거 뭐지' 싶었던 소름이 6개월 후의 <우연과 상상>으로 이어졌다. 6개월이면 짧은 텀이다. 그리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다른 단편도 만들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 사람 분명 열일하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홍상수 감독도 전작 <소설가의 영화>가 너무 좋았어서인지 일 좀 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또 <탑>이 개봉 예정 아닌가? 분명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나는 이 사람을 더 구박하고 싶어 진다. 이런 내 욕심이 무색하게 앞 두 감독은 굉장히 짧은 텀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거 잘 알고 있다. 영화를 만드는 건 많은 돈과 노력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홍상수 감독은 작년, 올해 해마다 두 편씩 만들었다. 이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홍콩의 왕 뭐 감독은 하나 찍는데 10년이 걸리는데 말이지. 그에 비해 2017년 데뷔, 2019년 2번째 작품, 2021년 각본 집필, 2022년 3번째 작품은 '다시 보니 선녀'가 따로 없다. 이 사람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영화를 세 편밖에 안 만든 게 아무튼 기분이 나빠서 짜증이 난다. 어쩌면 거장의 새로운 시작이 될지도 모르는 영화가 이번 주 수요일 개봉했다. 누군가에겐 어렵고 난해하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겐 이만한 장르영화가 없을 것이다. <놉>이다.
비극 속으로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주인공 O.J 헤이우드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아버지와 함께 말을 기르는 목장을 운영하던 OJ. 그렇게 별 볼일 없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부자에겐 자부심이 있다. 초창기 할리우드에 말을 여러 번 출연시켰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았던 헤이우드 목장. 지금 당장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여러 난관에 봉착해 있다. 그래도 어떡해. 일은 해야지. 아버지와 함께 목장에서 말을 탄 채로 일을 하고 있던 OJ.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이었다. 갑자기 수상한 구름이 나타났다. 하던 전화가 갑자기 끊기기 시작한다. 전화기 자체가 전원이 잘 안 돌아온다. 뭐지? 이상한 낌새에 뒤를 돌아본 OJ. 옆에서 다른 말을 타고 있는 아버지에 시선이 갔다. 말에 열쇠 하나가 박혔다. 말에서 피가 났다. 아버지가 쓰러졌다. 철렁 내려앉는 OJ. 구름은 온갖 것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쏟아진 것들 중 하나는 아버지의 눈에 박힌 동전이었다. 이 동전 때문에 피를 너무 많이 흘렸던 아버지. 준비도 안된 채로 OJ는 아버지를 떠나보낸다. 아버지가 떠나보내도 삶은 계속됐다. 참 야속하게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목장 운영이었다.
6개월.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빈자리에 신음하고 있었다. 늘 하던 일을 하던 OJ. 한 촬영장에 말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말 럭키를 끌고 갔다. 말을 들었으면 좋으련만. 지시에 응하지 않았던 럭키는 결국 일을 망쳐버렸다. 말을 반려당한 OJ. 그때 촬영장에 있던 촬영감독의 안면만 텄던 것 빼고는 소득이 없었다. 도통 되는 일이 없는 주인공. 이제 말을 그냥 팔고 싶어 한다. 잘 알던 주피터 파크에 말을 파려고 했던 OJ. 마음을 먹은 날에 고스트라는 말과 함께 밖에 나와있었다. 어두운 밤. 조용한 목장에 갑자기 이상한 물체가 목장 앞에 나타난다. 모든 걸 빨아들이는 미확인 생물체를 보는 OJ.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경제난에 시달리던 남매. 두 남매의 머릿속에 전구가 반짝인다. 이 영상을 팔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 영상이면 경제난도 해소 될 것 같았다. 남매 OJ와 에메랄드는 이 생물체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한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다. 이 UFO가 끔찍한 비극속으로 남매들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걸.
어떤 맥락에서든 읽힐 수 있는 이야기
엄청난 영화다.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려운, 설명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가장 첫 장면에 구약성서 중 하나인 나훔서의 래퍼런스를 딴 한 구절이 나온다. 이걸 보면 종교적인 영화인가? 생각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종교적인 소재가 많이 들어간다. 특히 색깔을 활용한 암시는 극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한다. 이런 상징들이 피상적으로 픽픽 던져지는 게 아니라 영화의 서사와 딱 달라붙은 채로 작동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영화사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가장 첫 시퀀스가 흑인 기수가 말을 탄 채로 달리는 여러 사진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에드워드 머이브리지라는 사람이 탄생시킨 이 영화. 이 영화의 주요한 설정은 남매가 이 연속사진에 있는 기수가 남매의 조상이라는 점이다. 이를 기점으로 영화를 운영시키는 주요 도구들을 암시하는 소재가 제시된다. 또 극에서 모든 일의 발단이 되는 ‘돈이 되는 UFO 영상’을 찍는 행위도 사실 영화의 다른 방식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인공 중 하나인 주프는 과거에 카메라 앞에서 인기를 누리던 인물이었다. 먼 범위의 무비스타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주요 인물들의 설정과 몇몇 키워드까지 이 작품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암시하는 부분도 있다. 또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동했던 부분은 두 사람이 남매라는 점이다. 이 지점은 영화 전체적으로 두 인물에게 충분한 서사를 부여한다. 부부, 연인이 아닌 남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가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런데 이 작동 원리를 구체적으로 쓰기엔 너무 어렵다. 이 작동 원리에는 인간의 어떤 행위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담겨있다. 단순히 쓰기도 어렵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영화의 전체 줄거리와도 관련이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보시는 걸 추천한다. 대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는 여러 갈래의 다층적인 이야기를 죄다 때려 박은 느낌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인공 멋있게 묘사해야지. 종교적인 상징도 때려 넣고. 성스러운 존재로 만들고. 완전 캡틴 아메리카 느낌 나게. 멋있게 영화사에 대한 이야기도 넣는 거야. 왜? 간지 나니까. 초반부에 최초의 영화를 보여주는 거지. 뭐 그런 게 아니다. 이 영화는 잘 짜인 문학작품처럼 각기 다른 결론으로 향하는 장점이 있다. 미확인된 현상에 대응하는 인간의 모습이랑 영화사, 가족애, 호러, 스릴러와 뭔 관련이 있을까? 근데 그게 또 인간의 어떤 행위와 관련이 있다고? 그걸 두 시간가량으로 만들었다는 건 사실 잘 상상이 안 될 것이다. 아마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이다. 장르적인 재미 위에 매직아이를 그려놓은 조던 필의 설계는 엄청났다. 아마 올해의 각본으로 많이 거론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야기를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어 붙였다.
솔직히 어려울 것 같긴 해
그렇게 개요가 되는 정보만 얻고 나서 관람을 추천하는 영화지만 분명하게 쓸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첫 번째. 이 영화 재미있다. 두 번째. 좀 어려울 수도 있다.
일단 왜 재미있었냐. 장르적으로도 잘 잡은 호러영화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예고편에서 UFO가 제시됐으니 이에 대한 것은 스포일러가 아닐 것이다. 이 미확인 물체에 대한 시각화와 청각화는 아주 탁월했다. 또 이 물체에 대한 질감이 몇 번 나타난다. 이 부분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한 뒷배경이 되기 충분했다. SF/호러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뭘까? 이 판타지적인 요소가 우리의 삶 속에 현실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이를 위해서 영화의 배경이 관객에게 설득이 돼야 한다. 뭐 논리적인 인과관계가 탄탄한 것도 좋은 방식이겠지만 시각적으로도 잘 구현하는 것도 다른 방안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아나 데 아르마스가 연기한 인공지능 캐릭터, <어벤저스 : 엔드게임>에서 후반부 전투신을 묘사하는 방식은 우리가 몰입하기 충분한 연출이었다. 이 말은 즉슨 장면을 구성하는 CG나 인물 설정이 뭔가 작위적인 티가 나면 관객이 몰입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를 잘 알았는지 <놉>에서 묘사한 UFO의 질감은 어디서 본 것 같다. 현실성이 있는 소재(?)로 이루어진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더 기괴하다. 이 ‘현실감 있음’이라는 표현 방식은 이 UFO의 모든 행위와도 관련이 있다. 이 UFO가 만드는 이미지가 끔찍하니까 예고에서 봤던 장면을 보더라도 더 비참한 기분이 든다. 여기서 오는 끔찍함이라는 정서는 호러라는 장르적 특성을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된다. 또 조던 필 감독이 창의성 있게 꼼꼼한 부분까지 영화에 나타난다. 그래서 다들 이 ‘창의성 있는 꼼꼼함’이 관람 후에 기억 속에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호러 영화니까 비명 소리가 들어가겠지? 어떤 비명 소리는 기억에 남을 것이다(글 쓰면서도 생각난다)
근데 장르적으로 재미있긴 하지만 좀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두 이야기가 얽힌 구성을 품고 있다. 주요 이야기는 주인공 OJ와 여동생 에메랄드의 이야기다. 또 다른 이야기는 좀 간단하다고도 느낄 수 있을 이야기다. 이 후자의 이야기는 사실 주인공 OJ의 서사와 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후자의 이야기에서 감독이 사용한 연출법이 굉장히 끔찍하기 때문에 ‘와 이거 호러영화 맞구나’ 싶은 분들이 아마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가 과연 왜 이야기 중간에 들어갔을까?”를 영화를 보시면서 생각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 영화의 주요 이야기의 원인이 되는 일이기도 하며 결정적으로 어떤 것을 암시하고 있다. 또 조던 필이 해석한 인간의 어떤 행위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이 시퀀스(들)를 삽입했기 때문에 앞에서 상기했던 ‘다방면으로 해석되는 이야기의 강점이 성립되기도 한다. 주의 깊게 보시라. 이 장면들을 넣은 건 그냥 무서운 분위기만 담기 위해서는 아니다.
또한 이 UFO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바와 비슷하게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잘 생각해보고, 어떤 것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 대한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이 UFO의 속성은 이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자연스러우며 극에서 내적인 탄력을 받는다. 그 속성에 대한 근거가 영화 전반적으로 계속 제시된다. 이 부분을 놓치지 않으셨으면 한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위에서도 썼지만 영화의 엔딩에 대해서 의문부호가 생기실 것 같다. 이 영화의 엔딩은 주요 내러티브의 한 지점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대칭을 이루는 이유는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렇게 근거를 탄탄하게 쌓아 올린 전달 방식 덕에 엔딩이 갖는 내적 논리는 사실 촘촘하게 짜여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읭? 하는 분 많을 것 같다. 근데 여기서 뭔가 엔딩을 바꾸면 오히려 이야기의 균열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공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난 것이 몇 가지 있다. 일단 두 영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E.T>와 <미지와의 조우>다. 또 일본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굉장히 잘 알려진 한 장면을 오마주 한 부분도 있다. 하이라이트에 히치콕의 영화가 생각나는 장면도 있다. 이거 해외 리뷰 기사들 찾아보면 좀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뭐 무조건 다 봐야 한다 이런 건 아니지만 극을 보고 나서 '아 조던 필 감독이 영화사에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구나'라고 생각하면 감상 후의 재미가 넓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영화사와 종교에 대한 부분도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일단 극에서 반복되는 몇 가지 색들 보고 나서 찾아보면 분명히 의미가 있다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영화사의 한 부분과 종교적인 소재가 엇갈리는 한 중간지점이 있다. 최후반부 엔딩 즈음에 나타나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관람 후에 찾아보면 꼼꼼하게 이야기를 설계했다는 것이 느껴지실 것이다. 또 특정 인물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설정된 지점도 눈에 들어온다. 영화 다 보고 나서 어디에 무언가를 검색하면 한 인물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들어올 것이다. 이 사람 유심히 보시라. 이 영화의 맥락을 풍부하게 만드는 좋은 캐릭터 설정이다.
또 감독의 전작 두 편도 보고 가면 좋을 것이다. <겟 아웃>은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전개될 것이야'라고 예상하는 걸 뒤통수 한번 퍽 치고 전개하는 작품인 <겟 아웃>. 또 <어스>는 엔딩에서 미국인이 묻는 미국이라는 정체성에 관한 영화다. 이렇게 영화들의 핵심 키워드를 전면에 제시해도 스포일러가 아닌 신기한 두 영화. 아마 두 영화의 가치는 직접 보시면서 느껴야 더욱 선명하다. 이야기 전개 방식이 주제의식과 엔딩과도 큰 연관이 있어서 무게감 있게 단점을 찌른다는 느낌이 드는 좋은 작품들이다. 글쓴이 개인적으로는 어스를 더 좋아하는,. 문제의식을 더 잘 찌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한 방식은 <어스>때보다 더 발전했다. '미국 사회에 여전히 잔존해있는 몇 가지 병폐'에 대한 이야기는 <놉>에서도 역시 제시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얄팍하게 건드리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사실 눈에 안 들어오긴 했어
사실 극에 너무 몰입하고 봐서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없다. 그만큼 영화의 연기 톤을 잘 뺐다는 말이 될 것이다. 또 각본도 잘 썼으니까 크게 이물감을 못 느꼈다는 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의 설득력이 가득 차서 외적인 것들이 눈에 안 들어오는 좋은 영화였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을 적어보면, 키키 파머는 초반부에 살짝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한 러닝타임 25분을 넘어가서는 자연스러웠다. 인물 중 무서워하는 연기는 최고였다. 니머지 두 주인공 다니엘 칼루야와 스티븐 연의 퍼포먼스는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다니엘 칼루야는 기죽었지만 내면의 토양이 단단한 인물이다. 이를 위한 준비물들을 배우는 잘 이해해서 멋지게 소화했다. 또한 스티븐 연은 극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글쓴이는 이 배우가 굉장히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어디에서 힘을 주고 빼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이 장점은 극에서 크게 관통하는 주요한 부분이다. 이 배우의 연기 덕에 호러, 미스터리, SF를 바탕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곁가지를 너무 잘 쳐냈다. 난 <미나리> 때보다 더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안 느낄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두 배우는 감독 조던 필만큼이나 훌륭한 역량을 잘 뽐낸다.
한번 더 가자
감독 조던 필은 이미 주요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다. 첫 작품 <겟 아웃>에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조던 필. 뭐 지금 12월도 되기 3개월이나 남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작품, 각본상에서 이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각본상은 아카데미 수상 유력할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헤어질 결심>이랑 경합일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미국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페널티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작년 <드라이브 마이카>도 <코다>보다 훨씬 훌륭했지만 상은 못 받았으니까. 암튼 이 이야기의 각본은 스필버그의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우주 전쟁>이나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것 보면 스필버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거나/할리우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베테랑이기 때문에 만든 영화 아닌가. 이 영화 역시 할리우드니까 상상할 수 있는 걸 넘어서 조던 필이니까 쓸 수 있는 각본이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M. 샤말란과 비교하는 것 같다. 심심찮게 '전성기의 샤말란'이 언급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난 동의하지 않는다. 난 조던 필이 샤말란보다 더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현재는 그렇다. 그리고 이 감독은 같은 피를 물려준 스필버그가 생각날 만큼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조던 필의 4번째 신작이 기대된다. 이 사람이 성장하는 시기와 내 20대가 비슷한 게 어쩌면 내 미래 세대에게 전해줄 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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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망무제(一望無際)
구구절절히 설명하면 재미가 없다. 또 과하게 친절하면 매력이 없다. 왠지 모르게 이성관계에서 적용되는 이론을 꺼내오고 싶어진다. 과연 배때지가 불러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인가. 네 연애나 제대로 하고 이런 문장을 쓰라고 하면 사실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인간관계에도 적당한 선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던 말이지만 요즘은 그 말이 맞다고 느꼈다. 오히려 아무 연락도 안 하고 지내야 그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커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 같다. 누군가가 정말 좋았다가도 ‘별 쓰잘데기 없는 소릴 하네’라는 생각이 들면 멀어지게 된다. 너무 많이 말하면 다 알아서 상상력이 줄어드는데, 적게 알면 그만큼 사람이 생각할만한 건덕지가 넓어져 관계를 오래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게 만드는 결말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는 경우가 많았나보다. 한 유령이 있다. 유령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이 유령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마음을 한번 열어보자.
간단하고 단촐하게
<고스트 스토리>는 살아있는 사람에 관한 영화다. 루니 마라와 케이시 에플렉이라는 할리우드의 빅 네임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근데 제작비는 10만 달러로 초초초 저예산 영화에 속한다고 한다. 이런 초저예산 영화의 특성만큼이나 줄거리는 소박하다. C와 M은 다정한 신혼부부다. 근데 갑자기 남편 C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M는 혼자 남겨졌다. 그렇게 C가 떠난 빈자리를 감당하며 일상을 보낸다. C는 이 빈자리를 조용히 관망하기만 한다. 유령이기 때문에 말도 무엇도 할 수 없다. 그가 떠난 빈 집에서 파이를 먹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등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다. M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이내 집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삿짐을 준비하는걸 전부 마무리한 M. 집을 떠나며 무언가 쪽지를 쓰고 벽에 묻는다. 유령이 된 C는 M이 떠난 후 벽을 열심히 파서 쪽지를 보게 된다.
줄거리를 쓰기에 간단한 구성이다. 그 덕에 영화는 딱 두 가지 상황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C와 M이 부부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C가 세상을 떠나고 M을 지켜본다는 것이다. 이 구분은 유령이냐/유령이 아니냐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안에서 중요한 건 M이 유령이 되고 난 후다. 이 작품은 M의 사후를 조명하는데, 이 과정이 영화라고 할 것도 없이 굉장히 심심하다. 솔직히 루니 마라가 파이 먹는 걸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녀가 파이를 먹는 건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파이 먹는 게 재미있는 분들은 유튜브에 '먹방' 검색하고 아무 영상이나 재생하는 것이 더 도움 될 것이다. 별 것 아닌 일상 속의 시간까지 조명하는 이 영화다. 영화는 M의 시점에서 C를 구경한다. 다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구경만 하는 것이다.
떠나간 이가 느낄 감정들에 대해
누군가의 곁을 떠난 우리. 떠난다는 건 허무함과 우울함의 연속이다. 이를 수식할 수 없을까? 아니다.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이 영화와 같이 조용하다. 바쁘게 사는 것이 그 누군가를 떠나보내기에 아주 좋은 상황이란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바쁘게 보내려고 한다. 치열했던 일상이 끝났다. 하루를 마치고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눕는다. 그러면 알게 된다. 문득 혼자라는 걸. 난 이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사람의 존재는 내 생각보다 컸었다. 그러면 무슨 행동에 전제조건이 붙게 된다. 어떤 일을 ‘그걸 이겨내기 위해’ 했었던 만큼 그 인물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는다. 그러면 일상 속에서 타인의 흔적이 강하게 박혀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이라고 파이를 혼자 먹고 싶어서 먹고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익숙한 상황을 즐기지 못한다는 그 지점은 인간에게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되게 별 것 아닌 순간에서 사람은 그제야 떠난 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외로움과 허전함이라는 감정을 묘사할 때 일반적으로 다른 영화들은 주인공이 갖고있는 정서를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보여줬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해피 투게더>의 경우 왕가위는 아휘 캐릭터가 밥알을 하나씩 하나씩 먹는 장면을 통해 주인공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반대의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 관객이 인물을 지켜보며 다양한 생각을 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롱테이크와 장면을 길게 늘이는 방식이 그 예인데, 파이를 먹는 신에서 그게 잘 드러난다. 이 장면은 4분 30초간의 한 장면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부엌 안에 덩그러니 앉아서 파이를 먹는 M. 우리는 그걸 지켜보며 다양한 생각에 빠진다.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한 부엌. 집엔 아무것도 없고 여자 혼자만 있다. 그럼 감정이입이 된다.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고독하다는 걸 나타내는 행위는 없는데도, 인물이 외로움을 느끼는 걸 지켜보는 것이다.
여태까지 없던 방식으로 삶을 돌아보다
우리는 이 외로움이란 정서를 M과 함께 공유하며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우리, 원래 둘이 있으면 뭐든 함께했다. 혼자서 먹을때도 재미있는 이야기 해 줄 생각에 행복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같이 나눌 이가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 '함께'라는 사실에 기댔다가 누군가가 나를 떠나면 그 기분을 느낄 수 없다는 씁쓸함에 외로워진다. 근데 인간에게 있어 이 시간은 점점 누적된다. 외로움에 지치면 무엇이든 하기 싫어진다. 근데 지치면 지칠수록 시간은 너무나 길어서 사람이 더 고독을 느끼게 된다. 영화로 돌아가서, 한 장면을 4분 30초 동안 본다고 가정해보자. 외로움을 느끼며 시간이 진짜 안 간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난 이 시간이 안 가는 기분이 너무 싫었다. 함께라면 이 파이가 더 맛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고개를 들었다. 금새 잊지 못했던 상처가 생각나 또 외로워진다. 그 외로움에 빠져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시간 더럽게 안 간다. 같이 하면 더 많은 걸 하면 시간을 보냈는데, 혼자서 하니까 눈이 파이 먹는 것에만 집중되는 것이다. 이는 이 정서를 100% 의도한 연출이다. 일부러 잔잔하고 조용하게 설정해서 인물이 느낀 고통을 극대화시켰다. 만약 왕가위라면 나레이션에 색감보정에 이것저것 많이 넣었겠지만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인물 하나와 파이 하나만으로도 고독감과 외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는 상실의 의미와 아름다움
감독이 설정한 이 정서를 함께 느끼다 보면 우린 알게 된다. 내가 사랑했던 타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타인의 존재감을 느낀다. 삶의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억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함께 있게 된다. 극 중 예언자의 말처럼 존재를 기억하는 데 있어 흔적 같은 건 필요 없다. 우리를 떠난 사람들의 흔적이 굳이 남지 않더라도 어쩌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아름답다. 완전하게 신선한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표현했다. 외로움은 우리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이걸 표현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명제일지도 모른다. 또 우리는 각자 다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이가 내 옆을 떠났고 그 인물이 나에게 무슨 느낌을 줬는지는 모두가 다를 것이다. 감독은 이에 대한 공감의 방식으로 색다른 방법을 택했다. 정해지지 않은 유령과도 같은 무언가를 보여줬다. 우리는 이 덕에 각자가 잃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한한 상상을 우리에게 선사한 것이다.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인간의 이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우리에게 각자가 품고 있는 정서를 드러나게 했다. 일망무제가 딱 적당한 표현이다. 우리 인생은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다. 또 영화와 예술은 이런 우리의 텅 빈 무언가를 꺼내주는 아주 감사한 매개체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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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 | '존 윅'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 뱁새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지막 광장 결투에서 승리하며 '구봉산'(안길강)과 '이주운'(허준호)을 범죄 세계의 쌍두마차로 옹립하고 규칙을 확립한 '남기준'(소지섭).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은둔한 그가 11년 만에 복귀를 결심한다. 이주운과 그의 조직 '주운'의 후계자였던 동생 '남기석'(이준혁)이 사망하자 그 복수를 하기 위해서.
범인이 구봉산의 아들, '봉산'의 인자 '구준모'(공명)로 밝혀졌어도 기준은 멈추지 않는다. 그와 봉산, 주운이 합의한 규칙대로라면 그의 복수는 정당한 처사니까. 하지만 기준의 복수극은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 이주운의 아들이자 검사인 '이금손'(추영우)과 주운의 조력자인 경찰 '차영도'(차승원)가 기석의 죽음에 개입한 정황이 밝혀짐에 따라 그의 복수극은 주운과 봉산, 두 조직의 전면전으로 확전되기 시작한다.
<존 윅>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질라
영화 장르에는 분기점이 있다. 특정 작품의 등장 전후로 장르의 트렌드는 격변한다. 2010년대 중반, 액션 영화에서는 <존 윅> 시리즈가 새로운 바로미터였다. 확인 사살과 탄창 확인을 빼먹지 않는 현실적인 액션 연출, 롱테이크로 액션 자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촬영법, 일종의 무협물처럼 현대 사회 이면에 존재하는 킬러들의 세계관을 어우르면서 액션 영화의 새로운 정형을 확립했다.
문제는 <존 윅>이라는 이데아를 모방하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뱁새들이 속출했다는 것. <존 윅>의 특유의 연출과 세계관을 빌려 쓰려던 영화 중 <존 윅> 하위 호환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근래 한국 영화 중에는 변성현 감독의 <길복순>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 사례집에 추가될 작품이 하나 더 생겼다.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실사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광장>이 그 주인공이다.
원작의 유명세와 인기는 물론, 소지섭을 비롯해 캐스팅된 배우들의 면면에 이르기까지 <광장>은 공개 전부터 화제였던 시리즈다. 그런데 정작 공개된 <광장>의 결과물은 실망스럽다. 가장 핵심이어야 할 설정에 관해 거의 설명하지 않다시피 한 결과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와 전개가 <존 윅>과 다를 바 없어졌다. 그렇다고 <광장>만의 개성적인 액션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결국 <광장>은 한국판 <존 윅>에 불과했다.
<광장>과 <존 윅>의 숱한 공통점
<광장>은 시작부터 <존 윅>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선 은퇴한 은둔 고수가 현업에 복귀한다는 전개와 그 계기가 유사하다. 존 윅은 사별한 아내의 마지막 선물인 반려견을 잃었고, 남기준은 자기 목숨과 아킬레스건을 걸고 살리려던 동생을 잃었다는 점이 차이일 뿐이다. 두 주인공의 특성도 닮았다. 둘은 각자의 세계관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하는 가장 뛰어난 킬러로 소개된다.
존 윅의 반려견을 죽인 '요제프'(알피 앨런)와 남기석 살인을 교사한 구준모의 캐릭터 성과 행적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둘 다 사소한 이유로 폭력을 저질렀다가 존 윅과 남기준을 복귀시키는 사달을 낸다. 주변 사람들이 존 윅과 남기준의 능력과 위험성을 경고하는 와중에도 말을 안 듣다가 상황을 악화하는 악수를 두는 것도, 안가에서 경호원들 뒤에 숨어 있다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것도 공통점이다.
다른 묘사나 설정도 마찬가지다. 사고 친 아들을 지키려고 휘하 조직을 총동원하는 아버지들의 존재, 주인공의 복수가 상황을 정리하는 대신 여러 조직 간의 분쟁을 촉발한다는 흐름도 동일하다. 존 윅을 암암리에 돕는 친구가 있듯이 남기준도 그에게 무기와 정보를 제공하는 조력자가 있다. 결코 어겨서는 안 되는 규칙이 범죄 조직들의 뒷세계를 지탱하는 세계관 역시 <존 윅>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제목
그에 반해 서사적인 측면에서 <광장>과 <존 윅>의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제목인 '광장'의 의미를 명확히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작 내용을 참고해 유추해 보면, 극 중 광장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범죄 조 간의 세력 전쟁을 정리하고, 정치권 및 재계와의 관계도 정립하면서 일종의 평화 조약을 맺는 의식으로써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펼쳐지는 광장 결투를 뜻하는 말이다.
이 광장 결투는 모든 인물이 남기준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고, 그의 앞에서 예의를 갖추는 이유와 직결된다. 남기준이 마지막 광장 결투에서 승자가 된 덕분에 주운과 봉산이 서울의 패권을 양분하는 세계관이 확립됐기 때문. 곧 광장 결투는 그의 입지와 명성이 완성된 계기였다. 따라서 광장 결투의 역사와 의미를 시청자에게 명확히 인지시킬 수 있다면 남기준의 복수극은 존 윅의 복수극으로부터 비로소 차별화될 수 있다.
하지만 <광장>은 정작 제목의 의미를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흑백 회상을 통해 광장 결투라는 의식이 존재한다고 짧게 짚어질 뿐이다. 광장 결투가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이주운과 구봉산이 본래 따르던 회장을 제치고 권력을 잡는 과정도, 만인이 남기준을 두려워하게 되는 사건도 광장 결투와는 별개 상황으로 제시된다. 그러다 보니 <광장>의 이야기가 배경만 한국인 <존 윅>이라 해도 억지스럽지 않다.
따로 노는 전후반
핵심 설정의 의미와 세계관의 근간이 무너지자, 극의 짜임새도 덩달아 붕괴한다.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전반부와 후반부를 이어 줄 접착제가 사라진 까닭이다. <광장>의 후반부는 남기석 사망 사건의 진짜 배후로 이주운의 아들, 이금손을 등장시키면서 복수극이 펼쳐진 초반부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존 윅> 1편과 2편을 한 작품으로 묶은 듯한 구성이다.
주운의 후계자 자리를 남기석에게 빼앗긴 금손은 아버지가 확립한 시스템에 균열을 낸 뒤 아버지 자리를 탈취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써 남기석을 죽이고 남기준의 복수극을 유도한다. 드라마는 금손의 의도를 광장에 빗대어 설명한다. '새로운 광장'을 천명하는 금손의 연설에는 은퇴하기 전 남기준과 아버지가 만든 규칙 대신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의지와 욕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광장의 의미가 불명확하다 보니 새 광장을 만들겠다는 추영우의 일성은 공허하다. 과거의 광장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보니 아버지까지 살해하기로 결심하는 그의 동기도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이에 더해 암암리에 주운을 돕는 듯 보였으나 그 이면에서 금손의 계획을 도운 차영도의 존재와 역할도 모호해진다. 애초에 광장이라는 상징의 속뜻을 알 수 없으니, 그의 욕망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동생의 복수를 원하는 남기준이 조직 간의 전쟁에 다시 끼어드는 전개가 부자연스러워진다. 그의 복수극과 이금손의 찬탈극 간에 유일한 접점인 '광장'이 실종됐으니, 복수의 칼날이 이금손에게 향하는 전개 또한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구준모의 퇴장을 기점으로 극의 몰입도와 긴장감이 급격히 무너지고, 전반부와 후반부가 지킬과 하이드처럼 따로 노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다.
무색무취 액션
세계관 구축과 스토리텔링이 한계에 부딪힌 가운데, 액션마저 돌파구가 되지는 못했다. 남기준만의 매력을 액션에 녹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액션 영화에서 액션은 그 자체로 캐릭터를 소개하는 장치다. 일례로 주짓수와 총기 액션을 결합해 이른바 '건짓수'라 불리는 액션 스타일은 아무리 급해도 확인 사살을 잊지 않는 냉정한 킬러, 존 윅의 캐릭터 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원작 속 남기준 액션도 개성이 분명했다. 핵심은 잔혹함이었다. 일 대 다로 싸울 때 그는 적들을 좁은 공간으로 유인한 뒤, 가장 먼저 싸운 사람을 잔인하게 제압하면서 남은 상대들에게 공포감을 안기고 심리적 주도권을 잡았다. 이러한 액션 스타일은 그가 성하지 않은 다리로도 많은 적을 제압할 수 있고 오래전 은퇴했는데도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인 이유를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이기도 했다.
반면에 드라마에서는 남기준만의 액션 스타일을 볼 수 없다. 그 빈자리는 <범죄도시>의 마석도처럼 괴력을 이용해 주먹 한 방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총을 여러 발 맞고도 좀비처럼 쓰러지지 않는 클리셰가 채운다. 야구방망이 하나만 들고 구준모가 숨은 비밀 안가를 습격하는 장면만이 예외다. 이처럼 일반적인 한국 영화 액션과 구분되는 장면이 적다 보니 <광장>은 동명 웹툰의 실사화보다는 <회사원> 속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걱정이 앞서는 영상화
근래 한국의 영상 콘텐츠 산업에서는 웹툰과 웹소설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영상 콘텐츠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영화나 드라마로 옮기기 좋은 웹툰과 웹소설의 수요도 증가했기 때문. 드라마의 경우 역으로 웹툰이나 웹소설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영화계에서도 <전지적 독자 시점>을 비롯해 웹툰과 웹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본격화고 있다.
웹툰 및 웹소설 영상화에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최근에는 그 반작용도 서서히 커지고 있다. 제목과 대략적인 설정만 빌린 뒤 정작 원작의 매력, 개성, 전개와는 전혀 다른 내용물을 선보이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 <재벌집 막내아들>만 하더라도 종영 후 3년이 지났지만, 이러한 양두구육의 대명사로 대중에게 각인된 상태다.
<광장>은 이러한 흐름에 기름을 끼얹는다. 단순한 서사, 어설픈 세계관, 부자연스러운 전개, 무색무취한 액션이라는 단점이 원작의 개성을 가려버린 나머지 한 회당 40분을 넘지 않는 에피소드 7개라는 구성조차 길게 느껴질 만큼 임팩트가 부족하다. 이처럼 한국판 <존 윅>이 된 <광장>의 사례만 보더라도 웹툰과 웹소설 영상화 소식에 걱정부터 쏟아지는 팬들의 반응도 이제는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닌 듯하다.
Poor 형편없음
차라리 '존 윅' 시리즈를 한 번 더 정주행하는 게 현명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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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넷플릭스 공개예정 신작추천
넷플릭스 2022년 6월!
신작 추천5편
종이의집: 공동경제구역
통일을 앞둔 미래의 한반도
'교수'라 불리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남과 북의 노련한 도둑들을 모아 희대의 인질극을 꾸민다
이 작전의 목표는 갓 찍어낸 지폐를 훔쳐 탈출하는 것인데...
감독: 김홍선
출연: 유지태, 김윤진, 박해수, 전종서, 이원종, 박명훈, 김성오, 김지훈, 장윤주, 이현우 등
장르: 스릴러, 범죄, 서스펜스, 액션
공개: 6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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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데이즈2
익숙함을 선택할 것인가
설렘을 선택할 것인가
이별을 고민 중인 세 커플이 제주도로 떠난다
그리고 서로의 연인을 바꿔 데이트를 하는데
그 끝에 그들의 곁에는 누가 서 있을까?
연출: 이재석, 문민정
출연: 이상미, 조성호, 김민선, 오진록, 이홍주, 강우석
장르: 리얼리티 웹 예능
공개: 6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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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
그는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어느날 학업과 재정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이
'이학성'에게 수학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성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데
감독: 박동훈
출연: 최민식, 김동휘, 박병은, 박해준, 조윤서, 주진모, 김원해, 탕준상 등
장르: 드라마
공개: 6월22일
예고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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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스8
출소한 후, 메트로폴리탄 거리에서 어마어마한 목걸이를
훔치기로 단단히 결심한 데비 오션
여자 7명을 모아 대대적인 강도 작전에 돌입하는데...
감독: 게리 로스
출연: 산드로 블록, 케이트 블란쳇, 앤 헤서웨이, 민디 캘링, 세라 폴슨, 아콰피나, 헬레나 보넘 카터 등
장르: 스릴러, 범죄
공개: 6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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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플레이어 원
2045년, 붕괴 직전의 암울한 세상
하지만, 암울한 현실과 달리 가상현실 오아시스(OASIS)에서는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고 상상하는 모든 게 가능하다
재능있는 게이머가 거대한 가상 현실 세계의 소유권을 얻기 위한 도전에 앞장서는데...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타이 셰리던, 올리비아 쿡, 벤 멘덜슨, 리나 웨이스 등
장르: SF, 도서원작, 액션
공개: 6월1일
예고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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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코코> 리뷰
멕시코의 전통과 디즈니 클리셰의 결합
멕시코의 어느 마을. 구두를 닦고 있었던 미구엘이라는 소년이 마라아치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원래 미구엘은 에르네스토 델라크루즈란 전설의 음악가를 동경해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대대로 신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던 가족들에 의해 음악을 금지당했단 내용이었다. 마라아치는 에르네스토였다면 바로 기타를 들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했을 것이라며 용기를 준다. 미구엘은 마침 죽은 자들의 날에 열리는 음악 경연 대회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지만 가족들에 의해 다시 퇴짜를 맞는다. 자신의 기타도 이 와중에 망가진다. 결국 미구엘은 에르네스토의 무덤으로 가 기타를 훔치기로 한다. 미구엘은 에르네스토가 자신의 잃어버린 조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에르네스토의 기타와 자신의 기타가 똑같은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타를 잡았을 때 미구엘은 사후 세계로 떨어지게 된다. 이승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축복을 받아야 했는데, 그것을 위해 미구엘은 에르네스토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헥토르라는 청년을 만나 에르네스토를 찾아간다.
'죽은 자들의 날'은 멕시코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에 실제로 있는 명절이다. 이 날에 사람들은 세상을 떠났던 가족들의 사진과 유품을 자신들의 집의 제단에다가 놓고 그들을 추모한다고 한다. 그러면 죽은 가족들이 그 제단을 방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날은 아즈텍 사람들의 제사였던 '영혼의 축제'에서 유래한다. 아즈텍 사람들은 사람의 삶이 꿈에 지나지 않고 죽음을 통해 진정한 삶을 획득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라 아즈텍 사람들도 해마다 죽은 사람들을 분류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이 때 죽은 사람들이 이승을 방문해 제물에 따라 풍요나 저주를 내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코코>는 사후 세계를 주요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음에도 이승처럼 화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오히려 영화의 사후 세계는 이승보다 더 활기차 보인다. 조그만 마을로 묘사된 이승에 비하면, 사후 세계에는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공중에 철로를 깐 전차들이 돌아다니고, 이승과 사후 세계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검문하는 경찰들로 가득하다.
죽은 자들의 날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은 분위기뿐만이 아니다. <코코>는 죽은 자들의 날이 세상을 떠난 가족을 기억하는 날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이야기 전체를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나서는 여행으로 꾸며낸다. 이승에 생전의 사진이 없으면 사후 세계에 있어도 영원히 사라진다는 새로운 설정도 추가되었다. 헥토르가 미구엘과 협력했던 이유도 미구엘이 축복을 통해 이승에 복귀할 수 있었기에 자신의 사진을 이승에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낯선 것을 통해 익숙한 것을 드러내는 디즈니의 영리한 변주가 돋보이는 모습이다. 영화 초반까지는 미구엘이 사후 세계 속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미구엘이 한계를 딛고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다가, 영화 중반에 그 전략의 실체를 드러낸다. 드디어 미구엘이 에르네스토와 만나서 그의 축복을 받으려 했지만, 미구엘에게 다른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헥토르는 분노에 차서 에르네스토에 대한 진실을 폭로해버린 것이다.
미구엘은 그 폭로를 통해 에르네스토가 헥토르의 곡을 뺏고 헥토르를 독살한 점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헥토르는 자신의 증조할머니인 코코의 아버지, 즉 에르네스토가 아니라 헥토르가 자신의 잃어버린 조상이란 것, 그리고 미구엘이 좋아했던 에르네스토의 Remember Me라는 음악이 헥토르가 딸 코코에게 들려주고 싶어했던 음악이란 것을 고백한다. 헥토르는 시간이 지나고 더 이상 가족을 내버려둘 수는 없겠다 싶어서 에르네스토한테 가족에게 돌아가겠다고 선언해버린다. 그러나 에르네스토는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에르네스토는 헥토르의 곡이 없으면 공연을 못 하는 처지였다. 그래서 에르네스토가 헥토르를 독살하고 그의 곡을 뺏어서 인기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구엘의 가족들이 음악을 싫어하고 헥토르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헥토르가 꿈을 이루겠다고 가족을 버린 것도 괘씸하겠지만, 그가 죽어서 가족들에게 돌아왔단 점이 후손들에게도 큰 트라우마가 됐을 것이리라.
가족에 대한 기억, 여성들에 대한 기억, 이름 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
그들의 한을 안 모양인지 영화는 그 속에서 소중한 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들에 대해서도 조명한다. 남편이 떠나고 난 뒤 구두 장사를 해서 미구엘의 집안을 구두 명가로 만든 마마 이멜다, 그것을 계승한 코코, 미구엘의 할머니, 그리고 그것을 계승했던 가문 속 수많은 이름 없는 여성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 중 마마 이멜다는 영화 속에서 해결사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한편 영화에는 프리다 칼로라고 하는 멕시코의 유명 화가도 나온다. 그녀는 생전에 여러 장애를 딛고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었지만, 남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의 여성 편력 때문에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다. 이 배경 지식이 프리다가 미구엘을 도와주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에르네스토에게도 남편의 모습이 보인 이상, 이제는 에르네스토에게 영원한 인생이 좌우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에르네스토가 자신의 자손이라 찾아오는 정체불명의 꼬마(미구엘)한테 어마어마한 호의를 베풀어줬던 장면은 그가 디에고 리베라처럼 여성 편력이 있었다는 점을 암시해주는 증거이다.
<코코> 속 여성들에게 보내는 찬사의 정점은 마침내 이승으로 돌아온 미구엘이 코코한테 Remember Me를 불러주는 순간에 나타난다. 마침내 헥토르가 가족을 버리고 음악을 하러 갔던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했던 바람이 가족들에게 전달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노래를 들은 코코는 노래를 부르면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찾고, 헥토르의 사진을 서랍에서 꺼내 미구엘에게 준다. 그 이후 헥토르는 다시 기억되어 사라지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당연히 가족들이 가지고 있었던 트라우마도 해결되어 더 이상 미구엘에게 음악을 그만 두란 소리를 하지 않게 된다. 한편 미구엘이 사후 세계까지 다녀오면서 겪었던 그 기묘한 여정은 헥토르뿐만 아니라 헥토르로 대표되는 수많은 이름 없는 뮤지션들, 그리고 가장이 실종된 가장을 이끌어나갔던 수많은 여성들을 다시 기억에 각인시킨다. 그리고 에르네스토를 통해 꿈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기억에 상처를 입히진 않았는지, 더 나아가서 누군가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하지는 않았는지를 자문하게 만든다.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 과연 미구엘은 행복해졌는가?
하지만 <코코>가 이름 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의 회복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미구엘의 행복에 대한 영화라면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영화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았던 장면. 미구엘과 헥토르가 에르네스토를 만나기 전, 그를 만나기 위해 음악 경연 대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 때 그는 죽은 사람의 분장을 하고 관중들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 때 미구엘의 얼굴에는 성취감이 넘쳤다. 문제는 이미 에르네스토가 꿈의 파괴적인 결과를 미구엘에게 보여준 이상, 그 성취감은 가족을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박탈이 되어야 한다. 꿈과 가족. 그 양쪽을 다 만족시키기 위해 영화는 미구엘과 헥토르의 음악을 가족과 그들을 기억하는 수단으로 바꾸는 전략을 선택한다. 그 예로 분장을 했을 때 미구엘이 불렀던 곡은 자신이 사랑에 미쳐 있다던가(Un Poco Loco), 세계가 나의 가족이라던가(The World Es Mi Familia) 하는 식으로 자신을 드러낸 곡이었다면, 이후 가족들 가운데에서 부르는 곡은 가족들에게 자신을 기억해달라던가(Remember Me), 가족들 안의 사랑은 영원할 거라는(Proud Corazon) 내용이었다.
아까도 이야기했듯 죽은 자들의 날은 아즈텍 사람들이 이승을 꿈으로, 사후 세계를 진짜 삶으로 생각했던 사고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이승에서 '가족'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미구엘이 진짜 모습인가, 아니면 비록 죽은 사람처럼 행세를 해야 했지만 처음 의도했던 대로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사후 세계에서의 모습이 미구엘의 진짜 모습인가. 영화가 지니고 있는 따뜻함은 애써 이 고민은 쓸모가 없다고 재빠르게 결론을 짓는 듯하지만, 사후 세계의 활기찬 모습, 미구엘이 처음 기타를 치면서 보여준 행복한 표정, 한때 자신을 구하러 온 마마 이멜다한테 "나는 음악을 해야 행복한데, 그걸 뺏으려고 하잖아요!"라고 일갈했었던 것을 보면 아직 미구엘 안에 있는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미구엘에게 가족들이 초반처럼 음악을 뺏은 거나 마찬가지의 상황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어른들의 비정한 세계는 에르네스토를 통해 폭로됐고, 그리고 그 모습이 미구엘을 이미 여정으로 이끈 동력으로 작용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날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지네마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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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도그로 잃어버린 몸찾는 액션 스릴러!
윤계상 배우가 주연을 맡은 유체이탈자가 개봉했습니다.
12시간 마다 유체가 이탈하여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간다는 신기한 설정인데요.
게다가 다른 사람을 옮겨다니는 사람이 기억을 잃은 상태라 더욱 긴장감을 높이죠.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긴장감은 높습니다.
핫도그와 노숙자를 통해 실마리를 찾아가게 되는데요.
근접액션, 차량 액션, 총기 액션 등 다양한 액션이 포함되어 있어 볼거리도 많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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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walke starring actor Yoon Kye-sang has been released.
It's a strange setting that the fluid escapes every 12 hours and enters another person's body.
In addition, it raises tension even more because he who move around people have lost his memories.
The movie lead the story with limited space and limited characters, but the tension is high.
the main character track clues through hot dogs and homeless people.
There are many things to see as it includes various actions such as close action, vehicle action, and gun action.
Please refer to the video for detailed re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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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토토리! 우리 둘만의 여름> 메인 예고편
아름다운 대자연으로 캠핑 여행을 떠난 ‘베가’와 ‘빌리’.
5살 나이에 딱 걸맞게 모든 게 신나기만 한 ‘빌리’와 달리,
9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베가’는
병원에 있는 엄마의 특명을 받아 아빠와 동생 챙기기에 바쁘다.
그런데 아뿔싸! 아빠가 강가 바위 틈으로 추락했다!
아빠를 구하기 위해 왔던 길을 거슬러 가보지만,
곧 드넓은 숲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모든걸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떠오른 엄마의 한마디.
“포기할 거야? 아니면 슈퍼히어로가 될 거야?”
내 안의 슈퍼파워를 깨우는 마법의 주문!
다 함께 외쳐봐! 토~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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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84 최동원> 메인 예고편
무쇠팔, 부산의 심장, 최고의 투수, 등번호 11번, 불꽃 투혼, 금테 안경
우리가 그를 부르는 이름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우승, 레전드 한국 시리즈, 기적 같은 우승
우리가 기억하는 1984년 가을
1984년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 롯데 자이언츠 vs 삼성 라이온즈
모두가 절대 강자 삼성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던 한국시리즈
“코리안 시리즈에 올라왔으니까, 제가 힘이 되는 데 까지는 열심히 해서
전 게임을 다 나가더라도 이길 수 있는 게임은 전부다 이기고 싶습니다”
한국시리즈 7차전 5번 등판, 4승 1패, 완봉승, 완투승, 구원승
전세계 유일무이 깨지지 않을 만화 같은 기록
희망, 열정, 도전, 투혼
‘기록’이 아닌 ‘기적’을 선물한 최동원 선수
눈물 나게 그리운 그 이름
무쇠팔 최동원 10주기 첫 번째 다큐멘터리
“야구가 제 인생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