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6-11 19:26:26
광장 | '존 윅'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 뱁새
넷플릭스 <광장>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지막 광장 결투에서 승리하며 '구봉산'(안길강)과 '이주운'(허준호)을 범죄 세계의 쌍두마차로 옹립하고 규칙을 확립한 '남기준'(소지섭).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은둔한 그가 11년 만에 복귀를 결심한다. 이주운과 그의 조직 '주운'의 후계자였던 동생 '남기석'(이준혁)이 사망하자 그 복수를 하기 위해서.
범인이 구봉산의 아들, '봉산'의 인자 '구준모'(공명)로 밝혀졌어도 기준은 멈추지 않는다. 그와 봉산, 주운이 합의한 규칙대로라면 그의 복수는 정당한 처사니까. 하지만 기준의 복수극은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 이주운의 아들이자 검사인 '이금손'(추영우)과 주운의 조력자인 경찰 '차영도'(차승원)가 기석의 죽음에 개입한 정황이 밝혀짐에 따라 그의 복수극은 주운과 봉산, 두 조직의 전면전으로 확전되기 시작한다.

<존 윅>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질라
영화 장르에는 분기점이 있다. 특정 작품의 등장 전후로 장르의 트렌드는 격변한다. 2010년대 중반, 액션 영화에서는 <존 윅> 시리즈가 새로운 바로미터였다. 확인 사살과 탄창 확인을 빼먹지 않는 현실적인 액션 연출, 롱테이크로 액션 자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촬영법, 일종의 무협물처럼 현대 사회 이면에 존재하는 킬러들의 세계관을 어우르면서 액션 영화의 새로운 정형을 확립했다.
문제는 <존 윅>이라는 이데아를 모방하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뱁새들이 속출했다는 것. <존 윅>의 특유의 연출과 세계관을 빌려 쓰려던 영화 중 <존 윅> 하위 호환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근래 한국 영화 중에는 변성현 감독의 <길복순>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 사례집에 추가될 작품이 하나 더 생겼다.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실사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광장>이 그 주인공이다.
원작의 유명세와 인기는 물론, 소지섭을 비롯해 캐스팅된 배우들의 면면에 이르기까지 <광장>은 공개 전부터 화제였던 시리즈다. 그런데 정작 공개된 <광장>의 결과물은 실망스럽다. 가장 핵심이어야 할 설정에 관해 거의 설명하지 않다시피 한 결과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와 전개가 <존 윅>과 다를 바 없어졌다. 그렇다고 <광장>만의 개성적인 액션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결국 <광장>은 한국판 <존 윅>에 불과했다.

<광장>과 <존 윅>의 숱한 공통점
<광장>은 시작부터 <존 윅>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선 은퇴한 은둔 고수가 현업에 복귀한다는 전개와 그 계기가 유사하다. 존 윅은 사별한 아내의 마지막 선물인 반려견을 잃었고, 남기준은 자기 목숨과 아킬레스건을 걸고 살리려던 동생을 잃었다는 점이 차이일 뿐이다. 두 주인공의 특성도 닮았다. 둘은 각자의 세계관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하는 가장 뛰어난 킬러로 소개된다.
존 윅의 반려견을 죽인 '요제프'(알피 앨런)와 남기석 살인을 교사한 구준모의 캐릭터 성과 행적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둘 다 사소한 이유로 폭력을 저질렀다가 존 윅과 남기준을 복귀시키는 사달을 낸다. 주변 사람들이 존 윅과 남기준의 능력과 위험성을 경고하는 와중에도 말을 안 듣다가 상황을 악화하는 악수를 두는 것도, 안가에서 경호원들 뒤에 숨어 있다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것도 공통점이다.
다른 묘사나 설정도 마찬가지다. 사고 친 아들을 지키려고 휘하 조직을 총동원하는 아버지들의 존재, 주인공의 복수가 상황을 정리하는 대신 여러 조직 간의 분쟁을 촉발한다는 흐름도 동일하다. 존 윅을 암암리에 돕는 친구가 있듯이 남기준도 그에게 무기와 정보를 제공하는 조력자가 있다. 결코 어겨서는 안 되는 규칙이 범죄 조직들의 뒷세계를 지탱하는 세계관 역시 <존 윅>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제목
그에 반해 서사적인 측면에서 <광장>과 <존 윅>의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제목인 '광장'의 의미를 명확히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작 내용을 참고해 유추해 보면, 극 중 광장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범죄 조 간의 세력 전쟁을 정리하고, 정치권 및 재계와의 관계도 정립하면서 일종의 평화 조약을 맺는 의식으로써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펼쳐지는 광장 결투를 뜻하는 말이다.
이 광장 결투는 모든 인물이 남기준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고, 그의 앞에서 예의를 갖추는 이유와 직결된다. 남기준이 마지막 광장 결투에서 승자가 된 덕분에 주운과 봉산이 서울의 패권을 양분하는 세계관이 확립됐기 때문. 곧 광장 결투는 그의 입지와 명성이 완성된 계기였다. 따라서 광장 결투의 역사와 의미를 시청자에게 명확히 인지시킬 수 있다면 남기준의 복수극은 존 윅의 복수극으로부터 비로소 차별화될 수 있다.
하지만 <광장>은 정작 제목의 의미를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흑백 회상을 통해 광장 결투라는 의식이 존재한다고 짧게 짚어질 뿐이다. 광장 결투가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이주운과 구봉산이 본래 따르던 회장을 제치고 권력을 잡는 과정도, 만인이 남기준을 두려워하게 되는 사건도 광장 결투와는 별개 상황으로 제시된다. 그러다 보니 <광장>의 이야기가 배경만 한국인 <존 윅>이라 해도 억지스럽지 않다.

따로 노는 전후반
핵심 설정의 의미와 세계관의 근간이 무너지자, 극의 짜임새도 덩달아 붕괴한다.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전반부와 후반부를 이어 줄 접착제가 사라진 까닭이다. <광장>의 후반부는 남기석 사망 사건의 진짜 배후로 이주운의 아들, 이금손을 등장시키면서 복수극이 펼쳐진 초반부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존 윅> 1편과 2편을 한 작품으로 묶은 듯한 구성이다.
주운의 후계자 자리를 남기석에게 빼앗긴 금손은 아버지가 확립한 시스템에 균열을 낸 뒤 아버지 자리를 탈취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써 남기석을 죽이고 남기준의 복수극을 유도한다. 드라마는 금손의 의도를 광장에 빗대어 설명한다. '새로운 광장'을 천명하는 금손의 연설에는 은퇴하기 전 남기준과 아버지가 만든 규칙 대신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의지와 욕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광장의 의미가 불명확하다 보니 새 광장을 만들겠다는 추영우의 일성은 공허하다. 과거의 광장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보니 아버지까지 살해하기로 결심하는 그의 동기도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이에 더해 암암리에 주운을 돕는 듯 보였으나 그 이면에서 금손의 계획을 도운 차영도의 존재와 역할도 모호해진다. 애초에 광장이라는 상징의 속뜻을 알 수 없으니, 그의 욕망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동생의 복수를 원하는 남기준이 조직 간의 전쟁에 다시 끼어드는 전개가 부자연스러워진다. 그의 복수극과 이금손의 찬탈극 간에 유일한 접점인 '광장'이 실종됐으니, 복수의 칼날이 이금손에게 향하는 전개 또한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구준모의 퇴장을 기점으로 극의 몰입도와 긴장감이 급격히 무너지고, 전반부와 후반부가 지킬과 하이드처럼 따로 노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다.

무색무취 액션
세계관 구축과 스토리텔링이 한계에 부딪힌 가운데, 액션마저 돌파구가 되지는 못했다. 남기준만의 매력을 액션에 녹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액션 영화에서 액션은 그 자체로 캐릭터를 소개하는 장치다. 일례로 주짓수와 총기 액션을 결합해 이른바 '건짓수'라 불리는 액션 스타일은 아무리 급해도 확인 사살을 잊지 않는 냉정한 킬러, 존 윅의 캐릭터 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원작 속 남기준 액션도 개성이 분명했다. 핵심은 잔혹함이었다. 일 대 다로 싸울 때 그는 적들을 좁은 공간으로 유인한 뒤, 가장 먼저 싸운 사람을 잔인하게 제압하면서 남은 상대들에게 공포감을 안기고 심리적 주도권을 잡았다. 이러한 액션 스타일은 그가 성하지 않은 다리로도 많은 적을 제압할 수 있고 오래전 은퇴했는데도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인 이유를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이기도 했다.
반면에 드라마에서는 남기준만의 액션 스타일을 볼 수 없다. 그 빈자리는 <범죄도시>의 마석도처럼 괴력을 이용해 주먹 한 방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총을 여러 발 맞고도 좀비처럼 쓰러지지 않는 클리셰가 채운다. 야구방망이 하나만 들고 구준모가 숨은 비밀 안가를 습격하는 장면만이 예외다. 이처럼 일반적인 한국 영화 액션과 구분되는 장면이 적다 보니 <광장>은 동명 웹툰의 실사화보다는 <회사원> 속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걱정이 앞서는 영상화
근래 한국의 영상 콘텐츠 산업에서는 웹툰과 웹소설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영상 콘텐츠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영화나 드라마로 옮기기 좋은 웹툰과 웹소설의 수요도 증가했기 때문. 드라마의 경우 역으로 웹툰이나 웹소설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영화계에서도 <전지적 독자 시점>을 비롯해 웹툰과 웹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본격화고 있다.
웹툰 및 웹소설 영상화에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최근에는 그 반작용도 서서히 커지고 있다. 제목과 대략적인 설정만 빌린 뒤 정작 원작의 매력, 개성, 전개와는 전혀 다른 내용물을 선보이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 <재벌집 막내아들>만 하더라도 종영 후 3년이 지났지만, 이러한 양두구육의 대명사로 대중에게 각인된 상태다.
<광장>은 이러한 흐름에 기름을 끼얹는다. 단순한 서사, 어설픈 세계관, 부자연스러운 전개, 무색무취한 액션이라는 단점이 원작의 개성을 가려버린 나머지 한 회당 40분을 넘지 않는 에피소드 7개라는 구성조차 길게 느껴질 만큼 임팩트가 부족하다. 이처럼 한국판 <존 윅>이 된 <광장>의 사례만 보더라도 웹툰과 웹소설 영상화 소식에 걱정부터 쏟아지는 팬들의 반응도 이제는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닌 듯하다.

Poor 형편없음
차라리 '존 윅' 시리즈를 한 번 더 정주행하는 게 현명할지도
Relative contents
-
- “소장하고 싶은 영화적 순간”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혹시, 하루를 더 영화롭게 보내기 위해 극장에 가신 분이 계시다면 빈 손으로 극장을 나서진 않으셨는지요?
최근, 침체된 극장을 살리려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개봉하는 영화에 대한 굿즈들이 많이 제작되고 있는데요.
종이 티켓이 사라져 감에 따라, 언제부턴가 대형 극장에 자리 잡은 '포토 티켓'을 비롯하여 한정판 포스터까지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는 굿즈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았다'는 기억을 소장하고, 자신의 영화로운 기억을 간직하기 위한 기억의 조각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관객의 니즈에 맞게 극장마다 '스페셜한 굿즈'들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포스트에서는 그중에서도 '굿즈 맛집'이라고 소문난 한 극장을 소개해보려 하는데요!
바로 독립예술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들을 위한 CGV 아트하우스! 입니다.
CGV 아트하우스는 2021년 1월, <블라인드>를 시작으로
매월 다른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영화로움을 선사하고 있는데요.
특히, 아트하우스 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객을 위해 제작된 스페셜한 굿즈 '렌티큘러 포스터'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스페셜한 그림 덕분에 빠르게 소진되는 '잇템'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영화로운 순간을 소장하게 해준다는 굿즈 맛집 한 번 같이 구경해볼까요?
잇츠 CINE PICK!
블라인드 (Blind, 2007)
로맨스, 멜로, 드라마 | 네덜란드, 벨기에, 불가리아 | 103분 | 15세 관람가
감독 : 타마르 반 덴 도프 | 출연 : 요런 셀데슬흐츠, 핼리너 레인내 사랑 나를 기억해줘 네 손끝, 네 귓가에 남은 나를
앞을 보지 못하는 ‘루벤’.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고 짐승처럼 난폭해진 그를 위해 어머니는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하지만 다들 오래가지 못해 그만둔다. 새로운 낭독자로 온 ‘마리’가 첫만남에서부터 루벤을 제압한다. 마리는 어릴 적 학대로 얼굴과 온몸에 가득한 흉측한 상처와 남들과 다른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니지만 볼 수 없는 루벤 앞에서만은 자신을 드러낸다.
씨네pick : <블라인드> 속 명장면에 작품의 의미까지 담아낸 렌티큘러 포스터. 정말 완벽하지 않나요? 씨스타가 부릅니다. "있다 없으니까."
블라인드 (Blind, 2007)
드라마 | 홍콩 | 97분 | 15세 관람가
감독 : 왕가위 | 출연 : 장국영, 양조위, 장첸"우리 다시 시작하자."
홍콩을 떠나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보영’과 ‘아휘’
이과수 폭포를 찾아가던 중 두 사람은
사소한 다툼 끝에 이별하고 각자의 길을 떠난다.
얼마 후 상처투성이로 ‘아휘’의 앞에 다시 나타난 ‘보영’은
무작정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서로를 위로하며 점차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하지만 ‘보영’의 변심이 두려운 ‘아휘’와‘아휘’의 구속이 견디기 힘든 ‘보영’은
또다시 서로의 마음에 상처 내는 말을 내뱉은 뒤 헤어지는데...
씨네pick : 지금 가지 못해 더 특별한 이과수 폭포와 남미 특유의 색채가 담긴 렌티큘러 포스터는 보는 것만으로도 귓가에 Happy Together~~가 들려오는 느낌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 (Shades of the Heart, 2021)
드라마 | 한국 | 83분 | 15세 관람가
감독 : 김종관 | 출연 : 연우진, 김상호, 아이유, 이주영, 윤혜리"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어느 이른 봄,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 ‘창석’이
우연히 만나고 헤어진
여기, 길 잃은 마음의 이야기
씨네pick : 사람이 많은 공간보다는 오히려 벗어나 있는 장소. 사람이 꽉 차 있을 때도 있지만 어느 시간에는 마법처럼 비어지는 공간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김종관 감독의 코멘트에 정말 잘어울리는 포스터라 더 갖고싶은 포스터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 (Aloners, 2021)
드라마 | 한국 | 90분 | 12세 관람가
감독 : 홍성은 | 출연 : 공승연, 정다은"제가 왜 미안해야하죠? 잘못한게 없는데."
집에서도 밖에서도 늘 혼자가 편한 진아.
사람들은 자꾸 말을 걸어오지만, 진아는 그저 불편하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의 1:1 교육까지 떠맡자 괴로워 죽을 지경.
그러던 어느 날, 출퇴근길에 맨날 말을 걸던 옆집 남자가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죽음 이후, 진아의 고요한 일상에 작은 파문이 이는데…
저마다 1인분의 외로움을 간직한, 우리들 이야기씨네pick :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점점 불편해지는 현대 사람들을 위한 영화입니다. 점점 불편한 것이 많아지는 게 과연 나쁜 걸까요?
슈퍼노바 (SUPERNOVA, 2020)
드라마, 멜로/로맨스 | 영국 | 94분 | 15세 관람가
감독 : 해리 맥퀸 | 출연 : 콜린 퍼스, 스탠리 투치"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야."
오랜 시간 서로의 구세주이자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최고의 친구로 지내온 ‘샘’(콜린 퍼스)과 ‘터스커’(스탠리 투치).
기억을 잃어가는 ‘터스커’와 그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샘’은
마지막 여행을 떠나게 된다.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여행이 끝나갈수록,
그들의 감정은 점차 고조되는데…
차마 사라지지 못하고 우주를 떠돌 마음의 파편,
그곳에 가장 빛나는 사랑이 있었다.
씨네pick : 가장 찬란했던 삶과 기억.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간직하고 싶기에 여정을 떠납니다. 찬란했던 삶과 사랑을 추억하는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담긴 포스터. 참 아름답죠?
웬디 (Wendy, 2021.6.30 개봉예정)
드라마, 판타지 | 미국 | 111분 | 12세 관람가
감독 : 벤 자이틀린 | 출연 : 데빈 프랑스, 야슈아 막, 게이지 나퀸"우린 절대로 늙지 않을거야"
기찻길 옆, 작은 식당이 세상의 전부인 소녀 ‘웬디’는
내면에 차오르는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매일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가 나타나고
'웬디’와 쌍둥이 형제 ‘더글라스’, ‘제임스’를 이끌고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어린이로 살 수 있는
신비로운 섬에 도착하게 되는데…
씨네pick :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들의 세상을 담고 있는 영화 <웬디>는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 영화입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피터팬과 웬디"를 색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한 영화인만큼 '렌티큘러'라는 점이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소장하고 싶은 영화적 순간을 기록하는 굿즈"는
영화의 특별한 순간을 담고 있기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더욱 영화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 굿즈와 함께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
-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2021)
* 본 리뷰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2021)
감독: 도이 노부히로
출연: 스다 마사키, 아리무라 카스미
장르: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124분
개봉일: 2021년 7월 14일
200% 취향 일치,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
듣는 음악, 즐겨읽는 책, 신고 있는 신발, 자주 쓰는 표현법과 머릿 속 생각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일치하는 '무기(스다 마사키)'와 '키누(아리무라 카스미)'. 두 사람은 막차가 끝긴 어느날 밤 우연히 만나 밤을 새워 대화의 꽃을 피우게 되고, 소울 메이트 같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린다. 함께 전시를 보고, 밥을 먹으며 가까워진 이들은 무기의 수줍은 고백과 함께 연인이 되고, 서로에게 푹 빠져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날들을 이어나간다.
키누가 취업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무기는 키누와 함게 살 것을 제안하고, 두 사람은 꿈 같은 동거를 시작한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무기, 그리고 회계 업무를 배우기 시작한 키누는 변함 없는 관계를 유지하며 '무기'가 원하는 관계의 '현상 유지'를 이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안정적인 생활 유지를 위해 프리랜서로 일하던 무기가 영업사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한다. 더 이상의 취향 공유는 이뤄지지 않으며 대화도 사라지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반복한다. 5년의 시간이 흐른 두 사람의 연애에서 예전 같은 생명력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는데...
귀엽지만 현실적인 연인의 사랑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거짓말처럼 일치하는 취향을 가진 두 남녀의 운명적인 만남부터 풋풋하고 달콤한 사랑, 그리고 현실적인 갈등과 이별의 이야기를 담백하지만 흡입력 있게 그린다. 흔히 말하는 오글거리는 감성의 하이틴 일본 로맨스 영화들과는 거리가 있다. 본 작품은 20대 사회초년생들의 착잡한 취준 생활과 직장 생활의 팍팍함을 함께 다루며 현실과 결부된 주인공들의 로맨스 이야기에 공감을 더한다. 일본 영화이지만, 한국의 20대 청춘이 겪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스토리를 전개하기 때문에 한국 관객이라도 작품에 깊이 몰입할 수 있으리라 본다. 무기와 키누의 사랑은 분명 판타지 같은 인연으로 시작되며, 말 그대로 영화 같은 반짝이는 로맨스로 이어지지만 시간이 흐르고, 현실적인 갈등에 반복적으로 부딪히면서 우리들의 흔하디 흔한 연애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들을 보여준다. 현실적인 연애가 가진 공감의 힘은 영화에서 제법 강하게 발휘된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다하는 과정, 섬세한 연출과 표현들
영화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지는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한다. 마치 일기장의 페이지를 넘기듯 두 사람의 행복했던 시절부터 감정이 식어버린 상태로 이르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감정의 변화에 따른 장면들을 섬세하게 연출한다. 두 사람의 접점으로 상징되었던 같은 색깔의 흰색 운동화는 어느덧 회사에 나가기 위한 검정 구두로 대체되었으며 무기의 출장길에 키누가 챙겨다준 소설책은 펴지지도 않은 채 자동차 트렁크에 처박힌다. 화사했던 두 사람의 의상도 칙칙한 무채색의 의상들로 바뀌었고, 밤을 새울 정도로 꽃을 피웠던 대화는 서로의 안부 확인 정도로 그친다. 행복한 현상 유지를 꿈꾸었지만, 부딪힌 현실 앞에 결국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사소한 일상의 모습들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낸다. 특히, 두 사람이 자주 다니던 단골 빵집이 폐업했다는 키누의 문자에 '다른 빵집 가서 사먹으면 되잖아'라고 답하는 무기의 말투를 보며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 불능 상태에 접어들었음을 직감했다. 무기와 키누가 서로만을 생각했던 극 초반부와 중반부를 생각하면, 관객의 입장에서 두 사람의 끝나가는 사랑의 과정을 보는 게 퍽 안타까우면서도 마음이 찢어졌다.
그럼에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건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제목부터가 과거형이라 영화를 보기 전부터, 주인공들의 이별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꽃다발 같은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들의 이별 장면에서 의미가 나타난다. 5년의 연애 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식어버린 감정에 이별을 결심한 키누는 무기에게 먼저 헤어지자는 선언을 한다. 이날은 무기와 키누의 결혼식을 방문한 후 두 사람이 제법 행복한 하루를 보냈던 날이다. 무기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혼할 것을 제안하지만, 이별을 말하는 키누의 눈빛에 그 어떠한 주저함도 담겨있지 않다. 키누의 확신에 두 사람은 결국 이별했지만, 찝찝하거나 슬픈 이별을 하지는 않았다. 이별 후에도 함께 살던 집을 정리하기까지 3개월을 같이 보냈고, 한참 뒤에 마주쳐도 서로에게 손인사를 건네며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즉, 이들의 장기 연애는 결과적으로 가슴 한 켠에 피어난 예쁜 꽃다발로 남았다.
장기연애를 이어온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누군가가 특별하게 잘못했다고 볼 수는 없다. 연애란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대사처럼 두 사람의 뜨거웠던 사랑이 생명을 다했을 뿐이다. 하지만, 분명 두 사람은 행복한 시절을 함께했고 그 시절만큼은 서로가 누구보다 빛났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예쁜 추억들을 하나의 꽃다발처럼 가슴에 품은 채 웃으며 작별하는 것. 두 사람이 찍은 사랑의 마침표는 평생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의 상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다.
스다 마사키와 아리무라 카스미, 과몰입 부르는 풋풋한 커플 연기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최대 매력은 풋풋하고 달달한 로맨스 연기를 부담없이 펼친 두 주연배우의 완벽한 케미와 시시각각 표현되는 연애 초보자들의 귀여운 모습들에 있다. 우물쭈물하고, 수줍음도 많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에게 직진만 하는 불 타는 사랑의 모습과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달달한 연인의 모습들은 자연스럽게 관객으로 하여금 미소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결국 두 사람의 관계를 응원하게끔 만드는 과몰입을 형성하는데, 주인공들의 관계가 이별에 치닿게 되면서 안타까움이 배로 늘어난다. 귀여웠던 주인공의 케미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고, 긴장감과 건조함만이 오가게 된 관계가 찾아오니 이보다 서운할 수 있을까. 담백한 로맨스 이야기로 관객의 몰입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 두 배우의 풋풋한 현실연기와 너드 캐릭터만의 매력으로 무난할 수도 있을 로맨스 영화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영화 내용도 좋았지만, 두 배우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팬이 되었다. 로맨스 영화 기준으로는 올해 감상한 영화들 중 단연 베스트.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
- 떠나온 이들의 아름다운 견고함이 바벨탑을 세워 올리다.
브루탈리스트. 이는 건축계의 한 사조인 브루탈리즘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20세기 초부터 그 인기가 시작된 브루탈리즘은 건축에 사용된 자재들을 전부 노출시킨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이에 대해 흉물스럽다거나 아름다워야 할 건물이 그러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았었다. 하지만 현재에도 노출 콘크리트, 노출 인테리어 등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브루탈리즘의 시대적 인정을 반증할 것이다. 필자는 이 브루탈리즘을 '솔직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콘크리트, 철골, 대리석 등 사용하는 자재들을 있는 그대로, 아주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기하학적인 구조와 함께 멋스럽게 표현한 것이 마천루와 같은 건물을 휘황찬란한 유리로 꾸며낸 것만큼이나 멋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러한 점은 영화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한 인물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그의 생애 중 가장 멋있고, 사람들이 감탄하고, 좋아할 부분만을 채용하여 그를 빛내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방법으로는 그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을 즐기게 하여 관객 스스로가 인물에게서 희노애락의 복합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이름에서 드러나는 그 사조처럼 인물과 그 인물을 뒷받침해주는 시대적 배경, 영화의 서사적 구조 그리고 메시지까지 단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아주 솔직하면서도 맹렬하게 향해간다.
- 철골만큼이나 단단하지만 그만큼 차가운 영화적 구조
영화는 '서막 - 제1막: 도착의 수수께끼 - 인터미션 - 제2막: 아름다움의 견고한 보존 - 에필로그'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는 마치 한 편의 희곡을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하는데, 특히 본 작품의 유별난 특징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바로 인터미션이다. 본 작품의 경우 러닝타임이 215분인데, 본 작품만큼이나 러닝타임이 긴 작품들마저도 별개의 인터미션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본 작품에 왜 인터미션이 존재하는지는 꽤나 중요하게 보여지는데, 이에 대해 필자는 서사의 깊이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서막과 제1막은 가족들 품에서 어쩔 수 없이 도망치게 되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 작품의 주인공 "라즐로"의 고군분투 적응기를 비춘다. 그 사이에 등장하는 수 없이 많은 사건, 사고들은 관객들이 그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그의 건축가로서의 탁월한 재능까지도 엿볼 수 있게 한다. 제2막에선 "라즐로"가 "해리슨"을 만나 맡은 프로젝트를 수행해내는 과정, 그 안에서의 갈등, 그 속에 비춰지는 인간의 본질과 아이러니함을 비추면서 에필로그에선 그 이야기들을 모두 마무리하는 메시지를 남기며 정리한다. 위 설명에서 느낄 수 있듯, 각각 파트별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굉장히 많고,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들도 깊이 있으며, 이를 뒷받침해주는 영화적 미장센마저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를 모두 소화해내기엔 관객 이탈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 깊이감을 보존하기 위해 인터미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인터미션 자체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검은 화면을 유지한 채 무(無)의 상태로 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작중 "라즐로"가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와 조카딸을 데려오기 위해 필요한 사진을 스크린에 띄우고, 동시에 누군가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치는 것만 같은 ost를 사용하게 되면서 인터미션이라는 시간을 공백의 시간이 아니라 연결의 시간,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체험의 시간으로서 이용했다는 것이다.
작품의 유별난 특징은 오프닝 크레딧과 엔딩 크레딧에서도 엿 볼 수 있다. 작품이 시작되고, "라즐로"가 미국에 도착해 연줄이 있는 기회의 땅 '필라델피아'로 떠나는 버스를 타면서 타이틀과 함께 오프닝 크레딧이 시작되는데, 그 방식이 굉장히 흥미롭다. 대부분의 작품들에선 타이틀, 감독 그리고 주연 배우들, 유명 배우 몇 명의 이름들이 디졸브되는 식으로 간단하게 비푼다. 그러나 본 작품의 경우엔 로우 앵글로 저무는 석양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의 1인칭 시점을 스크린에 띄운 채 수평 방향으로 이동하는 오프닝 크레딧을 보여주게 되는데, 한 두명의 이름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스태프들의 이름을 보여준다. 또한 엔딩 크레딧의 경우, 화면이 암전된 후 등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좌측에서부터 우상향하는 식으로 엔딩크레딧을 보여주는데, 이 또한 작품의 매력이다. 이러한 특징들의 이유엔 첫 번째, 작품의 전반적인 유별난 특징, 작품이 지니고 있는 매력들을 오프닝 크레딧을 통해 암시하는 역할을 위함이고, 두 번째, 작품 내 이야기의 주축인 건축에 있어서 사선과 수평이라는 개념을 서사 내에서만 그치지 않고 작품을 구성해나가는 전반에 걸쳐 드러내고자 함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 또한 흥미롭다. 유대계 헝가리인인 천재 건축가,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부자의 이야기를 작품에선 다루게 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그들의 배경사를 빼놓고 서사를 풀어나가기엔 한계가 존재해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과거사를 스스로의 대사나 행동을 통해 드러내게 하고, 결코 플래시백과 같은 부연의 영화적 장치들을 이용하여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는 길을 달려가는 버스, 나아가는 기차, 앞으로 향하는 배 등의 수평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로우앵글과 롱테이크를 곁들여 계속해서 찍듯 이야기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아가게끔 펼친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면 그들이 앞으로만 달려나간 후 남은 그 흔적들, 그 발자취들이 곧 과거이자 역사였고, 영화는 현재와 앞으로의 지향점만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합쳐 이야기를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이처럼 영화의 본격적인 서사를 이야기하기 전부터 굉장히 많은 요소의 특징들을 캐치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고, 이들 모두는 본격적인 서사와 그 장대한 이야기들을 뒷받침해주는 데에 탁월한 역할들을 해나간다.
- 튼튼한 시멘트벽도 연약한 액체였던 것처럼 - 영화 속 주 인물
필자는 영화 <오펜하이머>를 볼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얘기까지 하는 걸 보면 영화는 그 사람을 칭찬하는 걸까 아님 다른 뜻이 있는 걸까?" 그 인물이 칭찬 받아 마땅한 장면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법한 장면들까지도 서슴없이 보여주는 인물 중심 작품들이 꽤나 존재한다. 이런 작품들을 볼 때면 필자는 위와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남았는데, 본 작품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정도 찾은 것만 같다.
필자의 답은 '인물 중심 영화라고 해서 그 인물을 예찬하기 위해서만 작품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인물을 구사하는 방식마저도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직설적으로, '브루탈리즘'스럽게 표현하였다.
1. 라즐로 토스
작중 주인공이자 유대계 헝가리인인 "라즐로 토스"는 헝가리에서도 시립 도서관을 지을 정도로 유명한 건축가였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인해 그의 프로젝트는 모두 무산되었고, 가족들과도 강제로 생이별하게 되어 도망치던 중 그의 선택으로 미국에 이민 오게 되었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한 쇼트 이후 곧바로 "라즐로"를 등장시킨다. 어둑한 어딘가, 잠에서 깬 그는 급하게 자신의 짐을 챙긴 채 밖으로 나가려 했다. 너무도 어둑해 이곳이 어디인지 쉽사리 분간이 안 되던 그때, 그는 밖으로 향하였고, 그제서야 관객들은 그곳이 이민선임을 알게 된다. 이후 카메라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여주는데, 이를 뒤틀린 채 보여주게 된다. 이는 마치 미국으로 온 "라즐로"를 향해 미국은 환한 미소보다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작품이 "라즐로"를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다.
영화는 "라즐로"가 비운의 천재 건축가로서 그의 고단한 삶을 동정 어린 눈빛으로만 담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삶에 대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의구심을 품게끔 제작되었다. 그가 미국으로 도착하자마자 한 그의 첫 행보는 다름 아닌 사창가에서의 성행위였다. 또한 이민선에서 알게 된 동료에게도 꼭 보자는 약속을 서로에게 연거푸 했음에도 그 이후 그에 대한 언급도, 만남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를 가지고 그의 인성적인 부분을 질타를 하는 것은 다소 지나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그가 무례하게 작업 인부를 쫓아낸다거나 마약에 중독된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에 대한 불쾌한 눈빛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과는 반대의 면 또한 비추는데, 그의 독창적인 브루탈리즘 건축법을 활용한 건축물들을 통해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그가 출신, 종교, 외양, 성격 등으로 천대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에게 동정심이 가게 했고, 그가 건축에 몰입하여 집착하는 모습을 통해 복합적인 감정마저 들게 했다. 이렇듯 영화는 한 인물을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직접적으로 다뤄, 한 인간에게서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감정을 느끼게 했다. 강직해보이면서도 동시에 시대적 흐름에 한없이 나약해질 수 밖에 없는 한 지식인에 대해 관객이 스스로 평가할 수 있게 했고, 영화는 그의 복합적인 면모가 어떤 식으로 그의 건축에 담겨지는지를 엿볼 수 있게끔 치밀하게 계산되어 표현했다.
2. 해리슨 리 밴 뷰런
영화 속 악역이자, 동시에 영화 내에서 가장 입체적인 면을 지닌 인물이다. 그의 첫 등장은 "라즐로"가 "해리슨"의 아들 "해리"에게 청탁을 받아 "해리슨"의 서재를 공사하던 중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마주한 아수라장이된 집에 화가 나 "라즐로"를 쫓아낸 "해리슨"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다소 다혈질적스러워 보이고,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있어보이기도 한다. 이후 "라즐로"에 대한 사회적 평판, 공사된 서재의 상태 등을 미루어 보아 그에게 사과 겸 스카우트를 하기 위해 "해리슨"은 그를 다시 찾아가게 되고, 파티 이후 "라즐로"와의 독대를 통해 그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이야기 속엔 "해리슨"도 "라즐로"가 겪은 고통과 상처를 지닌 인물임을 눈치챌 수 있다. "해리슨"이 작중 인물들 중 가장 입체적인 특징을 지닌 데에는 바로 이런 지점 때문이다."해리슨"이 없었다면 "라즐로"는 스카우트될 수도, 미국에서 건축가로서 일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한 그에게 숙식을 제공했고,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에겐 다른 직장을 추천해줬으며, "라즐로"가 다른 이들과 스타일 문제로 갈등이 있을 때면 언제나 "라즐로"를 믿어주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면만 있었다면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해리슨"이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재벌 가문에서 태어나 기업의 후계자가 된 가족경영의 수혜자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가 대사로 말했듯 전쟁 중에 선박을 만드는 사업을 했고, 더 빠르고, 더 싸게 만들어 이득을 본 자수성가형 부자로 추측된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행위를 다시 관찰하면, 다소 어색한 점을 엿볼 수 있다. 책을 좋아한다는 그의 아들의 소개와는 달리 책을 읽는 장면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라즐로"가 만들어준 멋진 서재와 독서용 의자 또한 독서용이 아니라 면도용 의자로 사용되었다. 그의 서재의 책들 또한 모두 초판본이라는 점 그리고 "라즐로"가 만든 서재에 대해 최초엔 부정적으로 생각하다 외부에서 칭찬이 일자 그제서야 "라즐로"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점 또한 그의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엔 다소 결함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게 된다. 또한 "라즐로"와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품의 중후반부 있었던 일을 미루어본다면 영화는 "해리슨"에 대한 인물 관객 평가를 입체적으로 그리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엘리자베스"가 영국에서 영어를 전공했다고 하자 그는 돌연 "라즐로"에게 그의 구두닦이 같은 영어 발음이나 고치라고 농담한다. 어쩌면 그저 웃자고 한 말일 수 있겠지만 "엘리자베스"를 처음 맞이한 자리에서 "라즐로"를 그런 식으로 비하하려는 태도 그리고 농담 후 급기야 그에게 동전을 던지고, 다시 주워달라는 그의 행동엔 그의 경박스러운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 양질의 교육, 화목한 가정의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인물로 표현된다. 영화는 그의 이러한 점을 그의 경박스러운 태도를 통해 표출시켜 했고, 이를 구체화시켜 "라즐로"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이어지게 했다. 어쩌면 이는 "라즐로"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동안 미국에서 자수성가하기 위해 지나온 세월들과 그 속의 시련과 아픔에 대한 복수의 감정으로도 보여진다. 결국 "라즐로"에 대한 자격지심은 그와 프로젝트를 재개하기 위해 떠난 이탈리아에서 그를 강간하는 것으로서 폭발하고, 이는 "엘리자베스"에 의해 고발되어 그는 행적을 감춘 채 영화 속에서 사라진다.
3. 엘리자베스 토스
서막-제1장과 제2장-에필로그를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엘리자베스"의 유무이다. 서막과 제1장에선 엘리자베스가 등장하지 않은 채 "라즐로"에게 그녀가 보내는 편지의 내레이션으로만 그녀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영화의 초반부에선 그녀가 고국에 남은 채 얼만큼 "라즐로"를 그리워하는지 그리고 그녀도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 등으로만 그녀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다. 인터미션이 끝난 직후 우린 곧바로 "라즐로"가 승강장을 찾아 "엘리자베스"와 조카딸 "조피아"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영양실조로 인한 골다공증으로 휠체어를 타게 되었고, 다리의 상태만큼이나 그녀의 표정과 몸 상태는 그간의 고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초반부 등장 방법 그리고 그녀의 전반적인 연약한 외양은 2부의 본격적인 이야기에서 역전이 되고, 어쩌면 그녀는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가장 강직한 모습을 지닌 인물로서 이후 장면들을 휩쓴다.
그녀는 사고로 인해 프로젝트가 무산되어 힘들어 하는 "라즐로"에게 방법을 제시하려 노력했고, 그간의 노력과 고생을 충분히 이해하려 했으며, 어쩌면 "라즐로"는 건축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가족과의 또다른 이별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녀만큼은 가족의 이별에 극렬히 반대했고, 가장 가슴 아파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재벌가 사이에서도 그녀의 지식 수준은 전혀 꿇리지 않았고, 오히려 "해리슨"은 그녀에게도 지적 대화에서 밀려 "라즐로"에게 느꼈던 감정을 그녀에게서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 신체적으로 매우 연약한 상태의 그녀가 보인 강직한 행보는 오히려 "라즐로"의 강직한 재능과 건축가로서의 재능에 비해 한 없이 연약하고, 나약한 내면과 비교된다. 그녀의 이러한 강인함은 결국 영화의 종반부 "해리슨"에 대한 폭로로 증명된다.
"라즐로"에게 그동안 미국에서 어떠한 상처를 받아왔고, 어떤 고통을 품어왔는지 듣게 되었고, 마침내 그녀는 "해리슨"과 그의 가족들에게 찾아가 강간당한 사실을 폭로한다. 그는 물론 그의 아들 "해리"마저도 이에 반발하여 그녀를 쫓게 되고, "해리"는 그의 아버지에게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물으려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홀연히 종적을 감춘 채 사라졌다. 이 일련의 장면, "엘리자베스"가 집에 도착해 "해리슨"에 대해 폭로하고, 쫓겨난 후 "해리"가 "해리슨"을 찾는 그 과정을 영화는 롱테이크로 촬영했고, 인물의 시점쇼트가 아니라 각 장면 속 중요한 인물이나 행동하는 인물만을 카메라 안에 담아 극의 긴장감을 더했다. 이는 마치 그 사건 속 모든 인물들을 카메라가, 영화가 감시하는 듯한 느낌을 주게 하였고, 이는 결국 답을 내릴 수없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혼란한 인물들을 대변하고, 동시에 자격지심의 폭발, 그로 인해 벌어진 폭로, 또 그로 이어진 가족들의 분열을 일련의 연장선에 두어 관객들이 직접 그들을 평가할 수 있게 촬영하였다.
- 레지스탕스의 염원이 모인 청회색 대리석처럼 모두의 염원이 모여 만들어진 인스티튜트
미국에서 고난에 빠진 "라즐로"를 빼어내 새로운 일자리, 아메리칸 드림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한 "해리슨"은 "라즐로"에게 자신의 이름을 담은 건물을 지어달라 부탁했다. 그 부탁이 바로 '밴 뷰런 인스티튜트',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건축물이다. 영화는 그 인스티튜트를 만드는 제작하는 과정부터 디자인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발표함으로써 허가받는 과정들을 모두 세밀하게 담아냈는데, 이 전 과정을 보고난 후면 이 인스티튜트는 그저 서사의 배경이나 건축물 중 하나로 소비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스티튜트를 제작하고자 처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자금을 지원했던 "해리슨"은 몇가지 사항을 첨언한다. 도서관, 체육관, 예배당, 강당이 모두 모인 공간이었으면 하고, 특히 체육관의 경우 자신의 어머니와 어린 시절 레슬링 경기를 하러 다니던 좋은 기억이 있어 꼭 포함시켜줬으면 한다는 점이다. "해리슨"이 건물을 만들고 싶어했던 최초의 이유엔 자신만의 원초적 바람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 장면들에서 "해리슨"은 "라즐로"의 건축에 대해 그리 이해한 것 같진 않지만 주위 평가에 매료되어 그를 예찬하기 바빴고, 이후 장면에서도 술을 모으던 그가 술 수집 취미에 한계를 느끼면서 하늘을 바라보고자 건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는 건축에 이해나 흥미가 다소 떨어지는 인물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가 인스티튜트를 제작하고자 한 이유는 바로 최근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고,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술 수집 취미를 말하는 대사에선 결론적으로 "해리슨"은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한 회의감을 가졌고, 그제서야 하늘을 바라볼 건물을 짓겠다고 말한 것을 미루어 보아 그는 자신만의 바벨탑을 통해 유한한 삶에 대한 욕망을 건물로써 풀고 싶어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는 "라즐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영화의 에필로그를 보면 "조피아"의 연설을 통해 "라즐로"가 어떻게 건물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라즐로"는 인스티튜트를 제작할 당시, 자신과 자신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수용된 수용소의 크기, 사이즈, 소재 등을 차용하여 제작하였고, 인스티튜트를 통해 그 당시의 고통과 상처들을 기억하고, 자신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건축에 담아 제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하나의 공통된 건물을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다른 생각, 다른 염원을 가진 두 인물이 모여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결국 인스티튜트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인스티튜트를 제작하는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화물을 옮기던 열차가 폭발하여 공사가 중단되었고, 공사 중 "해리슨"의 실종과 "라즐로"의 알 수 없는 행방으로 인해 중단되었고, "조피아"의 연설 중 그녀는 인스티튜트가 1972년까지 제작이 멈췄었다가 다시 재개되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인스티튜트 공사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중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설명하는 방법이 굉장히 인상적인데, 중단되는 이유와 그 근거에 대해서 서사적으로 꽤나 비중있게 다루면서, 이를 재개시킬 수 있었던 과정 그리고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는지 등은 다루지 않는다. 일련의 과정을 실패와 극복이라고 한다면, 보통 실패를 비중있게 다룬 만큼 극복 또한 신중히 다루지만, 영화는 그 사이를 생략시킨 후 "해리슨"의 변호사가 "라즐로"를 다시 찾는 씬, "조피아"의 연설씬을 통해 관객이 그 전 과정을 스스로 상상하게끔 했다.
인스티튜트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십자기 형상 빛 또한 이 점을 공유한다. 시민들에게 건물을 소개해주기 위해 마분지로 만든 모형 건물에 빛을 쏘아 재현하는 씬이 있으나 관객에겐 그 빛이 어떤 형상으로 그려지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이후 장면에서도 언급 정도로만 알 수 있었는데, 영화는 "해리슨"이 사라져 건물 안을 살피던 극의 종반부에서 십자가 모양의 빛 형상을 보여준다. 영화는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을 때 이의 중간부를 생략하고, 종반부에서 모든 실마리를 푸는 식으로 극을 진행한다. 건물을 제작하게 된 계기도, 만드는 과정 속 고난을 이겨낸 과정도,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형상마저도 말이다. 영화가 이렇게 생략을 한 이유엔 영화의 메시지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과거를 다루지 않는다. 과거사가 장황할 것만 같은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지만 오히려 그 과거사에 대해 씬적으로 다루지 않느다. 영화는 당시 이민자들이 겪어야 했던 적응의 시련과 고통, 차별을 담아냈고, 특히 한 명의 지식인이자 예술가, 또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이 프로젝트를 수행해내기 위해 수 많은 시행착오들 속에서 살아남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종반부 에필로그에서 "라즐로"의 조카딸 "조피아"의 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말을 전한다. "중요한 건 목적지이지 과정이 아니다." 결국 영화는 이전 배경,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통해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버티고 생존하기 위해 버티는 모습들을 보여주고자 했고, 그 속에 인간으로서 겪는 아이러니함과 복잡한 심적 요소들을 담아 인간 삶의 의미와 그 한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
- 풍자도 웃음도 감동도 <싱크홀>로 추락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통근 지옥에 시달리던 ‘동원(김성균)’은 마침내 서울 입성과 함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다. 그러나 얼마 지나니 않아 동원과 아내 '영이(권소현)'는 집 바닥을 굴러다니는 구슬들을 보면서 빌라 건물에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에 사로잡힌다. 여기에 더해 이사 첫날부터 사사건건 충돌하는 옆집 이웃 ‘만수’(차승원)'가 유발한 짜증도 그를 괴롭힌다. 애써 불안함을 가라앉히며 ‘김대리’(이광수)와 인턴사원 ‘은주’(김혜준)를 비롯한 직장 동료들을 집들이에 초대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동원. 그러나 행복한 시간도 잠시, 순식간에 빌라 전체가 지하 500m 싱크홀 속으로 떨어지는 재난이 그들을 덮친다.
한국 재난 영화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영화를 크게 삼등분했을 때, 초반부는 주인공들의 평범한 일상과 갈등을 조명하고 그 과정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앞으로 다가올 재난의 전조를 비추며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중반부에서 경고는 현실이 되고, 재난을 헤쳐나가는 사투가 펼쳐지는 가운데 일상 속 갈등들은 극적으로 해소된다. 이 과정에서 유머스러웠던 장면이 뭉클한 눈물 포인트로 전환되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는 생존자들의 행복한 엔딩을 다루는 에필로그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최근에는 이러한 공식에 생활밀착형 이슈를 더하며 사회 비판적 분위기를 곁들이기도 한다. 청년들의 취업난을 빌딩 숲 클라이밍 액션에 빗댔던 <엑시트>가 대표적이다.
<화려한 휴가>, <7광구>, <타워>를 연출한 김지훈 감독이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싱크홀>은 위의 공식에 충실하다. 평범한 소시민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동원이 첫 등장하는 순간부터 양옆에 차승원과 이광수라는, 연기력과 예능력을 모두 갖춘 배우를 붙여 놓은 것에서는 이 조합으로부터 웃음을 뽑아내겠다는 의도가 명확하게 느껴진다. 빌라 구성원의 면면을 보면 어떤 포인트에서 감동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하려는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와 홀로 집에 남은 어린 아들, 거동하기도 힘든 노모와 효성이 지극한 아들,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는 부자 관계는 등장만으로도 재난 상황이 빚어낼 감동 드라마를 눈앞에 펼치는 듯하다.
이에 더해 <엑시트>를 모델로 삼은 듯 최신 트렌드에도 발맞추는데, 특히 <엑시트>의 방향성을 뒤집는 선택이 돋보인다. <엑시트>는 날로 높아지는 취업 기준선에 맞춰서 사다리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청춘들을 그려냈기에 상승의 이미지가 지배적인 영화다. 반면에 <싱크홀>은 영화가 다루는 재난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하강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주인공들은 싱크홀로 떨어지고, 그 안에서도 진흙 더미 속으로, 더 낮은 층으로 거듭 내려간다. 그 중심에는 부동산 문제가 위치한다. 무조건 위로 올라가야만 하는 취업난 그 자체가 재난이 된 것처럼, 집이 삶의 터전이자 동시에 자산이고 인생의 보험이나 다름없는 한국인들에게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싱크홀만큼이나 무서운 재난이라는 사실을 꼬집는다. 작중 웃음을 자아내는 대사들도 대다수가 집값 변동과 관련된 자조적 표현이다.
하지만 재난 영화 공식을 충실히 따랐는데도 <싱크홀>은 또 다른 <엑시트>가 되지 못했다. 공식을 외우기만 했을 뿐,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메시지 전달에만 급급한 나머지 완성도를 놓쳐 버렸다. 특히 113분의 러닝타임 중 약 1시간가량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전개를 알리는 싱크홀이 등장하는 장면은 모든 문제를 집약하고 있디. 영화는 그 전까지의 분량을 동원은 물론 빌라에 사는 다른 캐릭터들의 사연과 집안 사정과 그들 간의 갈등으로 채운다. 길고도 긴 발단은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게 무너질 집이 어떤 의미인지를 각인시키고, 그들의 삶 속에 부동산 문제가 얼마나 큰 장애물인지를 부각하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이 그 자체로 역효과를 일으키는 한편,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각 인물들의 사연은 클리셰로 가득한 나머지 큰 흥미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너무 많은 장소와 사건, 시점을 오가다 보니 혼잡하기만 할 뿐 이야기에 몰입할 계기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또 정작 재난 상황에서 조명되는 이들의 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중심인물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연들을 과감히 쳐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엑시트>, <백두산> 같은 근래 재난 영화가 인물들의 관계와 성격 등 기본적인 스케치만 그린 후 주인공들을 곧장 재난 속에 빠뜨리면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심지어 지난한 초반부를 통해 애써 강조한 부동산 문제에 대한 비판도 기대에 비해 강렬하지 않다. 재난과도 같은 현실 속 부동산 이슈에 대한 불평을 토로하는 초반부와 tvn 예능 <바퀴 달린 집>을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장식된 에필로그 사이의 간극아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어찌나 큰 지, 싱크홀이 발생하는 순간을 묘사한 부자연스러운 CG는 마치 이 모든 재난이 예능 프로 안에서나 등장하는 판타지와 다름없음을 암시하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길고 길었던 영화의 기초공사에는 별다른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다.
또한 코미디와 재난 영화 사이에서 좀처럼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는 연출도 감상을 방해한다. 영화는 싱크홀에 갇힌 사람들을 걱정하면서 밥을 제대로 씹지도 못하는 지상의 생존자들을 보여준 직후에 진흙 통닭구이를 즐기는 싱크홀 속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그 결과 웃음을 자아내려는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이는 작품 내적으로 재난에 빠진 주인공 일행 외의 인물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의 엉뚱한 행동에 웃으려면 싱크홀에 빠진 다른 주민들의 존재를 잠시 잊어햐 하는데, 다른 주민들이 어린 아이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임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어느 순간이 되면 그들이 다시 등장해 눈물을 자아내는 장면을 만들기도 하지만, 주인공들에 비하면 명백히 약자인 이들을 침수되거나 진흙이 가득한 환경으로 내모는 연출 때문에 그마저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특히 이 대목은 영화의 주제의식에 깊이를 더할 수 있었던 기회이기에 특히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잘 다듬었다면 같은 빌라나 아파트 건물 안에서도 층층이 나뉘어 집값이 상이한 현실을 지적하고, 이에 따른 갈등이나 박탈감을 부각해 한층 입체적인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난 희생자들을 직접적,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던 <엑시트>가 잠시나마 학원에 갇힌 학생들을 재난의 또 다른 생존자로 등장시키면서 취업경쟁과 유사한 맥락에 놓인 입시경쟁이라는 사회현상까지 아울렀던 것과 비교되는 선택인 셈이다.
물론 공식에 충실한 만큼 <싱크홀>은 분명 일정 수준의 재미를 보장한다. 또 주인공들에게 공감하거나 감정 이입할 여지가 충분하기에 그들의 입장을 따라가면 무난히 즐길 만한 재난영화이기도 하다. 마침내 집을 마련한 가족, 집을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청년, 원룸으로도 만족하는 사회초년생, 월세를 내고 사는 현실을 씁쓸해하는 사람 등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재난 영화로서의 긴장감, 사회 비판 영화의 시원함, 재난을 극복하는 이들이 자아내는 감동과 코미디가 좀처럼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게 <싱크홀>은 무난함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무색무취한 여름 시즌 영화로 남는다.
D(Dreadful 끔찍한)
공식을 알아도 적용을 잘못하면 말짱 도루묵
-
- 황홀한 세계관만으로도 충분히 한 몫하는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에서도, 전 세계에서도 독자적인 세계관과 매력을 겸비한 애니메이션 제작사이다.
그래서 흔히 어떤 작품을 설명할 때 "지브리 애니메이션 같다" 라고 부르는 이들도 존재할 정도이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사슴의 왕>은 실제로 감독과 스태프가 지브리 스튜디오 출신이므로 이 말에 충분히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 스타일도 말이다.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안도 마사시, 미야지 마사유키 공동 감독 작품으로 두 감독 모두 스튜디오 지브리 출신으로 유명하다.
또한 스태프들도 스튜디오 지브리 출신이라 실제로 본 영화의 스타일을 보면 지브리 느낌이 많이 나는 편이다.
소수민족의 전사부대 외뿔의 단장 반은 유일하게 살아남아 제국의 소금 광산에서 노예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광산에 검은 맹수들이 습격해오고, 늑대에게 물리는 상처를 입었지만 버려진 여자 아이를 구해내게 된다.
한편 검은 맹수들로부터 퍼지는 전염병이 제국에 퍼지게 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여러 여정의 이야기.
제작사는 그동안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프로덕션 I.G.인데다가 두 명의 감독 또한 지브리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에서 활동해왔기 때문에 확실히 영상미와 연출은 더할나위없이 훌륭하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디자인과 세계관을 살려내는 영상미는 황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장황한 소설을 2시간 조금 안되는 러닝타임에 담는것은 역시 무리였는지, 원작의 고유 명사에 대한 설명의 미흡이라던가 일부 장면들의 인물 감정 묘사가 급진적인 부분이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래도 TVA 연계 극장판과는 다른게 원작을 안 본 관객도 즐기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며, 앞에 서술한 영상미와 연출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애니메이션임은 부정할 수 없다.영상미와 세계관의 시청각적 미(美) 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한 애니메이션.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
- ‘말 없는 사람들의 말’, 어느 다큐멘터리스트의 집념
딸이 묻는다. 왜 엄마는 영화를 어렵게 만드느냐고. 알기 쉽게, 친절하게 만들 수는 없느냐고. 엄마가 화내며 답한다. 그럼 내가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영화는 내가 목격하고 기록한 것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딸의 질문에 화를 내는 재일조선인 다큐멘터리스트 박수남은 아마도 자신이 겪고 기록한 시대가 결코 쉽고 친절할 수는 없는 시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치열하고 집요하게, 종종 ‘어렵고’ ‘불친절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10만 피트의 길이, 50시간 분량의 필름이 남았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박수남과 그 딸이 남겨진 기록과 박수남의 삶을 교차로 엮어 만든 영화다.
차별받는 재일조선인의 문제에 천착한 박수남이 최초에 선택한 무기는 ‘펜’이었다. 그러나 ‘한계’를 마주했다. 박수남이 만난 재일조선인은 침묵하는 일이 많았다.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몸을 부르르 떨 뿐 그 세월을 어떻게 다 이야기하겠느냐며 고개를 떨궜다. 박수남은 그때 결심했다. 감히 짐작할 수 없는 무수한 아픔이 만들어내는 이 떨림을 온전히 담아내는 영화에 투신하겠다고. 말 없는 사람들의 말을 영상으로 담아내겠다고.
1935년생 박수남이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를 고민했다면, 그와 다른 세대인 나는 영화를 보며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박수남을 일평생 사로잡은 재일조선인의 그 무수한 떨림이 관객의 신체에까지 도달하고 새로운 물음을 촉발한 것이다. 영화가 주장하듯 기억이 보존되는 한 가해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 영화를 통해 되살아나는 목소리들은 기억의 수명과 가해 책임의 기한을 넉넉히 늘린다. 박수남의 기록은 후대의 기억이 되었다.
영화는 지난 100여 년간 재일조선인이 겪은 문제를 폭넓게 다룬다. 고마쓰가와 사건, 침묵과 가난에 시달리는 피폭 재일조선인과 한일 양국 피폭 피해자의 갈등과 연대, 제암리 학살의 유일한 생존자 인터뷰, 위안부 공론화, 군함도……. 딸 박마의가 갈무리한 박수남의 기록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차별과 오욕으로 굴곡진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그려낸다. 더불어 그 한복판을 살아낸 박수남의 삶이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교차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부당하게 차별받는 집단의 당사자로서 차별에 맞서고 차별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서서히 깨닫는다.
148분의 긴 상영 시간 동안, 나는 박수남의 집요함에 압도당했다. 불합리한 구조적 모순과 그로 인해 생성되는 소수자 정체성에 대한 최초의 강렬한 각성이 어떻게 개인을, 집단을 추동하는 거대한 힘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생생히 목격할 수 있어서였다. 이 힘은 박수남이 자신의 집념을 타인의 아픔을 기록하는 데 썼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증폭된다. 박수남의 작업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타인의 목소리에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부여해 결국은 되살아나게 한다. 치열한 기록이 윤리와 정치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정작 박수남은 과거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보지 못한다. 건강 문제로 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는 당시의 장면을 기억해낸다. 그녀가 과거 기록한 것이 더는 보지 못하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되살려낸다. 이것이 기록의 힘이다. 박수남은 스스로 기록의 의의를 증명해낸다. 시대를 관통해 세대를 잇는 집요한 기록 의지가 내내 놀라운 힘을 뿜는다.
-
-
- 6월 개봉 예정 독립, 예술 영화 Best 7 - ( #프렌치수프 #이소룡들 #니자리 #양치기 #다섯번째방 #생츄어리 #다우렌의결혼 )
-
저희 영화등대 채널을 사랑해주시고 봐주시는 구독자 및 시청자 여러분들 모두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오랜만에 돌아온 영화등대 채널이 선정한 [6월 개봉예정 영화] 소개 영상을 준비해보았는데요. 해당 작품들은 상황에 따라 개봉 일정이 변경될수 있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정하였으니 작품성이나 별다른 기준이 없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또한 해당 작품들의 관계자나 투자 및 배급사의 어떠한 대가를 제공받고 제작된 영상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럼 바로 시작합니다.
-
- 영화 <1승> 1차 예고편
감독 송강호X구단주 박정민X팀 핑크스톰 딱 '한번'만 이기자! [1승] 1차 예고편 공개‼️
-
- 영화 <무파사: 라이온 킹> 티저 예고편
[라이온 킹] 그 이전, 위대한 운명의 이야기 세상을 뒤흔들 왕이 돌아온다? [무파사: 라이온 킹] 12월 극장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