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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DAY2025-06-11 19:26:26

광장 | '존 윅'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 뱁새

넷플릭스 <광장>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지막 광장 결투에서 승리하며 '구봉산'(안길강)과 '이주운'(허준호)을 범죄 세계의 쌍두마차로 옹립하고 규칙을 확립한 '남기준'(소지섭).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은둔한 그가 11년 만에 복귀를 결심한다. 이주운과 그의 조직 '주운'의 후계자였던 동생 '남기석'(이준혁)이 사망하자 그 복수를 하기 위해서.

 

범인이 구봉산의 아들, '봉산'의 인자 '구준모'(공명)로 밝혀졌어도 기준은 멈추지 않는다. 그와 봉산, 주운이 합의한 규칙대로라면 그의 복수는 정당한 처사니까. 하지만 기준의 복수극은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 이주운의 아들이자 검사인 '이금손'(추영우)과 주운의 조력자인 경찰 '차영도'(차승원)가 기석의 죽음에 개입한 정황이 밝혀짐에 따라 그의 복수극은 주운과 봉산, 두 조직의 전면전으로 확전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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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윅>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질라

영화 장르에는 분기점이 있다. 특정 작품의 등장 전후로 장르의 트렌드는 격변한다. 2010년대 중반, 액션 영화에서는 <존 윅> 시리즈가 새로운 바로미터였다. 확인 사살과 탄창 확인을 빼먹지 않는 현실적인 액션 연출, 롱테이크로 액션 자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촬영법, 일종의 무협물처럼 현대 사회 이면에 존재하는 킬러들의 세계관을 어우르면서 액션 영화의 새로운 정형을 확립했다.

 

문제는 <존 윅>이라는 이데아를 모방하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뱁새들이 속출했다는 것. <존 윅>의 특유의 연출과 세계관을 빌려 쓰려던 영화 중 <존 윅> 하위 호환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근래 한국 영화 중에는 변성현 감독의 <길복순>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 사례집에 추가될 작품이 하나 더 생겼다.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실사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광장>이 그 주인공이다.

 

원작의 유명세와 인기는 물론, 소지섭을 비롯해 캐스팅된 배우들의 면면에 이르기까지 <광장>은 공개 전부터 화제였던 시리즈다. 그런데 정작 공개된 <광장>의 결과물은 실망스럽다. 가장 핵심이어야 할 설정에 관해 거의 설명하지 않다시피 한 결과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와 전개가 <존 윅>과 다를 바 없어졌다. 그렇다고 <광장>만의 개성적인 액션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결국 <광장>은 한국판 <존 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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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과 <존 윅>의 숱한 공통점

<광장>은 시작부터 <존 윅>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선 은퇴한 은둔 고수가 현업에 복귀한다는 전개와 그 계기가 유사하다. 존 윅은 사별한 아내의 마지막 선물인 반려견을 잃었고, 남기준은 자기 목숨과 아킬레스건을 걸고 살리려던 동생을 잃었다는 점이 차이일 뿐이다. 두 주인공의 특성도 닮았다. 둘은 각자의 세계관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하는 가장 뛰어난 킬러로 소개된다.

 

존 윅의 반려견을 죽인 '요제프'(알피 앨런)와 남기석 살인을 교사한 구준모의 캐릭터 성과 행적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둘 다 사소한 이유로 폭력을 저질렀다가 존 윅과 남기준을 복귀시키는 사달을 낸다. 주변 사람들이 존 윅과 남기준의 능력과 위험성을 경고하는 와중에도 말을 안 듣다가 상황을 악화하는 악수를 두는 것도, 안가에서 경호원들 뒤에 숨어 있다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것도 공통점이다.

 

다른 묘사나 설정도 마찬가지다. 사고 친 아들을 지키려고 휘하 조직을 총동원하는 아버지들의 존재, 주인공의 복수가 상황을 정리하는 대신 여러 조직 간의 분쟁을 촉발한다는 흐름도 동일하다. 존 윅을 암암리에 돕는 친구가 있듯이 남기준도 그에게 무기와 정보를 제공하는 조력자가 있다. 결코 어겨서는 안 되는 규칙이 범죄 조직들의 뒷세계를 지탱하는 세계관 역시 <존 윅>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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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알 수 없는 제목

그에 반해 서사적인 측면에서 <광장>과 <존 윅>의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제목인 '광장'의 의미를 명확히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작 내용을 참고해 유추해 보면, 극 중 광장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범죄 조 간의 세력 전쟁을 정리하고, 정치권 및 재계와의 관계도 정립하면서 일종의 평화 조약을 맺는 의식으로써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펼쳐지는 광장 결투를 뜻하는 말이다.

 

이 광장 결투는 모든 인물이 남기준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고, 그의 앞에서 예의를 갖추는 이유와 직결된다. 남기준이 마지막 광장 결투에서 승자가 된 덕분에 주운과 봉산이 서울의 패권을 양분하는 세계관이 확립됐기 때문. 곧 광장 결투는 그의 입지와 명성이 완성된 계기였다. 따라서 광장 결투의 역사와 의미를 시청자에게 명확히 인지시킬 수 있다면 남기준의 복수극은 존 윅의 복수극으로부터 비로소 차별화될 수 있다.

 

하지만 <광장>은 정작 제목의 의미를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흑백 회상을 통해 광장 결투라는 의식이 존재한다고 짧게 짚어질 뿐이다. 광장 결투가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이주운과 구봉산이 본래 따르던 회장을 제치고 권력을 잡는 과정도, 만인이 남기준을 두려워하게 되는 사건도 광장 결투와는 별개 상황으로 제시된다. 그러다 보니 <광장>의 이야기가 배경만 한국인 <존 윅>이라 해도 억지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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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노는 전후반

핵심 설정의 의미와 세계관의 근간이 무너지자, 극의 짜임새도 덩달아 붕괴한다.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전반부와 후반부를 이어 줄 접착제가 사라진 까닭이다. <광장>의 후반부는 남기석 사망 사건의 진짜 배후로 이주운의 아들, 이금손을 등장시키면서 복수극이 펼쳐진 초반부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존 윅> 1편과 2편을 한 작품으로 묶은 듯한 구성이다.

 

주운의 후계자 자리를 남기석에게 빼앗긴 금손은 아버지가 확립한 시스템에 균열을 낸 뒤 아버지 자리를 탈취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써 남기석을 죽이고 남기준의 복수극을 유도한다. 드라마는 금손의 의도를 광장에 빗대어 설명한다. '새로운 광장'을 천명하는 금손의 연설에는 은퇴하기 전 남기준과 아버지가 만든 규칙 대신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의지와 욕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광장의 의미가 불명확하다 보니 새 광장을 만들겠다는 추영우의 일성은 공허하다. 과거의 광장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보니 아버지까지 살해하기로 결심하는 그의 동기도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이에 더해 암암리에 주운을 돕는 듯 보였으나 그 이면에서 금손의 계획을 도운 차영도의 존재와 역할도 모호해진다. 애초에 광장이라는 상징의 속뜻을 알 수 없으니, 그의 욕망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동생의 복수를 원하는 남기준이 조직 간의 전쟁에 다시 끼어드는 전개가 부자연스러워진다. 그의 복수극과 이금손의 찬탈극 간에 유일한 접점인 '광장'이 실종됐으니, 복수의 칼날이 이금손에게 향하는 전개 또한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구준모의 퇴장을 기점으로 극의 몰입도와 긴장감이 급격히 무너지고, 전반부와 후반부가 지킬과 하이드처럼 따로 노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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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색무취 액션

세계관 구축과 스토리텔링이 한계에 부딪힌 가운데, 액션마저 돌파구가 되지는 못했다. 남기준만의 매력을 액션에 녹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액션 영화에서 액션은 그 자체로 캐릭터를 소개하는 장치다. 일례로 주짓수와 총기 액션을 결합해 이른바 '건짓수'라 불리는 액션 스타일은 아무리 급해도 확인 사살을 잊지 않는 냉정한 킬러, 존 윅의 캐릭터 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원작 속 남기준 액션도 개성이 분명했다. 핵심은 잔혹함이었다. 일 대 다로 싸울 때 그는 적들을 좁은 공간으로 유인한 뒤, 가장 먼저 싸운 사람을 잔인하게 제압하면서 남은 상대들에게 공포감을 안기고 심리적 주도권을 잡았다. 이러한 액션 스타일은 그가 성하지 않은 다리로도 많은 적을 제압할 수 있고 오래전 은퇴했는데도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인 이유를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이기도 했다.

 

반면에 드라마에서는 남기준만의 액션 스타일을 볼 수 없다. 그 빈자리는 <범죄도시>의 마석도처럼 괴력을 이용해 주먹 한 방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총을 여러 발 맞고도 좀비처럼 쓰러지지 않는 클리셰가 채운다. 야구방망이 하나만 들고 구준모가 숨은 비밀 안가를 습격하는 장면만이 예외다. 이처럼 일반적인 한국 영화 액션과 구분되는 장면이 적다 보니 <광장>은 동명 웹툰의 실사화보다는 <회사원> 속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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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앞서는 영상화

근래 한국의 영상 콘텐츠 산업에서는 웹툰과 웹소설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영상 콘텐츠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영화나 드라마로 옮기기 좋은 웹툰과 웹소설의 수요도 증가했기 때문. 드라마의 경우 역으로 웹툰이나 웹소설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영화계에서도 <전지적 독자 시점>을 비롯해 웹툰과 웹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본격화고 있다.

 

웹툰 및 웹소설 영상화에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최근에는 그 반작용도 서서히 커지고 있다. 제목과 대략적인 설정만 빌린 뒤 정작 원작의 매력, 개성, 전개와는 전혀 다른 내용물을 선보이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 <재벌집 막내아들>만 하더라도 종영 후 3년이 지났지만, 이러한 양두구육의 대명사로 대중에게 각인된 상태다.

 

<광장>은 이러한 흐름에 기름을 끼얹는다. 단순한 서사, 어설픈 세계관, 부자연스러운 전개, 무색무취한 액션이라는 단점이 원작의 개성을 가려버린 나머지 한 회당 40분을 넘지 않는 에피소드 7개라는 구성조차 길게 느껴질 만큼 임팩트가 부족하다. 이처럼 한국판 <존 윅>이 된 <광장>의 사례만 보더라도 웹툰과 웹소설 영상화 소식에 걱정부터 쏟아지는 팬들의 반응도 이제는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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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or 형편없음

차라리 '존 윅' 시리즈를 한 번 더 정주행하는 게 현명할지도

작성자 . KinoDAY

출처 . https://blog.naver.com/potter1113/223896069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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