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혁2021-07-04 21:09:41
#발신제한 / HARD HIT, 2021
눈물은 스팸 신고하셨죠?
블로그에는 1년 전에 어떤 글을 올렸는지를 알려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서, 느끼는 건 작년보다 극장에 볼게 그래도 많아졌다는 것이나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영화 <발신제한>은 2달 만에 국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간 국내 영화라는 점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평가나 네이버 평점이 이와 다르게 반대로 흘러가니 뭔가 싶었습니다.
이런 양가감정을 품고서 보고 온 <발신제한>은 앞서 말한 들려오는 평가나 네이버 평점에 이해를 못 하면서도 이해를 갔는데요.
'과연, 어땠길래?' - 영화 <발신제한>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들이 보채는 바람에 일어난 "성규"는 그날 아침 중요한 계약에 차질이 생길 전화를 받게 됩니다.
이에 일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주려는 가운데 자동차에 모르는 전화기에 벨 소리가 울립니다.
전화를 받자 "좌석에 폭탄이 있다"라는 말과 함께 똑같은 전화를 받은 직장 동료의 차가 폭발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는데요.
그러나 이 충격으로 아들의 다리가 피가 흐르고, "성규"는 협박범의 요구에 맞게 돈을 준비하지만 뜻하지 않게 경찰들의 추격까지 받게 되는데...
눈물은 스팸으로 걸어두었겠죠?
1. 간단한 메커니즘에서 뿜어내는 강속구
야구에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야구'라는 게임에서 '투수'는 '타자'의 타이밍을 뺏어야 하기 때문인데요.
이를 빼앗는 방법에는 투구 동작을 빨리 가져가거나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지는 제구력과 수싸움, 그리고 방망이를 돌리기도 전에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가는 빠른 공이 있습니다.
투구 동작이나 제구력과 수싸움은 웬만한 프로들도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 익힐 수 있는 것이라면, 빠른 공은 재능으로 배워도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발신제한>의 초반 30분은 간단한데도 관객들에게 깊은 몰입감을 안겨줍니다.
놀란보다 놀라운 초반부
이야기 구조가 복잡한 "크리스토퍼 놀란"과 비교하자면, 비약인가 싶겠지만 영화 <발신제한>의 초반부는 이 말을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
좌석에 폭탄만 있을 뿐인데, 여기에 카체이싱까지 간단한 구조임에도 관객들에게 간단하지 않는 이야기로 세뇌시키고 혼을 쏙 빼놓습니다.
물론,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과다출혈"이나 "경찰"의 행정 혹은 대응에 있어 맞지 않는 개연성도 존재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게 관객들을 정신없이 몰아친 <발신제한>은 잠시 영화의 템포를 늦춥니다.
2. 스스로 위력을 줄인다.
앞서, 야구를 빗대어 말했는데 저렇게 번번이 공을 칠 수 없는 이유를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데이터가 쌓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1~9번까지 타자들의 순서가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2번째 타석에서는 그 느낌이 달라집니다.
적어도, 이전 타석에서 하지 않았던 것을 복기하면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나 눈으로 향하던 공에도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을 테니까요.
이에 당황한 투수는 억지로 공의 스피드를 억지로 줄여 제구력을 택하고 당장의 제구력은 잡힐 겁니다.
하지만, 공의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겁니다.
영화 <발신제한>도 빨랐던 템포를 줄여 이야기를 쌓으려 하지만, 이는 앞서 언급한 "과다출혈"이나 "경찰"의 행정 혹은 대응에 있어 맞지 않는 개연성을 관객들의 스트라이크 존을 좁히는 실수가 됩니다.
배우들의 연기력만으로 해결되지 않아요.
이에 관객들은 <발신제한>에게 이런 문제에 초래한 것에 늦춰진 템포에 지적하겠지만 큰 문제는 쌓이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발신제한>은 이야기에 있어 문제들이 이미 지적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크게 부각되지 않는 이유에는 영화가 캐릭터들을 비추는 시점을 과하게 '클로즈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상황을 보는 것보다 캐릭터들의 얼굴을 먼저, 보는 것으로 논리적으로 정리하기보다는 캐릭터들의 감정에 같이 휘몰아치기에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죠.
그러다가, 템포도 늦춰지고 카메라도 멀어지니 안 보였던 문제들도 점점 떠오르게 됩니다.
어디까지나 제구도 공을 100%로 던지다는 전제로 강력한 것인데, 스스로 위력을 줄이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겁니다.
3. 때론 깜짝 등장도 필요하다.
그리고 투수에게 있어 "퀵모션", 흔히 주자에게 "도루"를 내어주지 않는 단축 동작은 또 하나의 문제를 안겨줍니다.
조금만 늦거나 느린 변화구를 던지면 주자는 뛸 테니 이를 내어주지 않으려면 던지는 모션을 빠르게 하거나 생략을 하는데요.
하지만 평소에 공을 놓는 위치나 동작들이 달라지면서 공의 위력은 또 달라지는데요.
그런 점에서 영화 <발신제한>에서 "지창욱"분이 맡은 "진우"의 등장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영화에서 내내 모습을 감췄던 그가 포스터에서는 이미,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마케팅과 영화적 재미는 공존할 수 없는가?
앞서 호평받은 초반부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캐릭터들의 "클로즈업"이 관객들의 감정까지 휘몰아치게 만들었는데, 그 시작에는 그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마치, "플레이볼"을 외쳐 경기를 진행하는 심판 같은 존재로 그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발신제한>의 상황도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을 텐데 이미 포스터에서 누가 맡는다고 나왔으니 맥이 빠지니 역전할 수 있는 게임을 일찍 감치 포기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4. 마지막은 너무 사족이다. 그치!
이에 다음 투수가 공을 이어받지만 상황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공을 잘 던져도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 점수는 타자들의 방망이에서 나오니까요.
앞서 영화의 문제들을 가려주었던 "클로즈업"은 "플래시백"과 함께 과한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신파로 소비되고 맙니다.
극 중 "진우"가 "성규"에게 "늘 상관없는 사람들이 다치는 거야"라는 대사처럼 단순한 악만을 표현해도 좋았을 텐데, "플래시백"은 앞선 대사와는 영화를 다르게 만들어 버리거든요.
그래서 똑같다는 건가요?
결국, "플래시백"은 "신파"도 있겠지만 이들을 동일시하게 만들고 논리적으로 '누가 더 나쁜지?'에 대한 인지부조화도 생깁니다.
관객들에게 앞선 대사와는 다른 영화의 인상도 만들었지만, 후반부 장면에 맞게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런 말도 안 할 겁니다.
영화의 엔딩은 이를 깔끔하게 정리도 못하니 관객들로서는 혼란스러움만 가중되는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이 일을 더 심각하게 만든 극 중 경찰의 대응도 아쉽습니다.
너무 멍청하게 표현한 거 같은데, 등본만 띠어도 가족관계, 다 확인되고 사진도 나올 텐데 그걸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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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사랑의 속성을 깨달아 글로 쓴다고 쳐도 그게 나와 뭔 상관이 있는가? 싶다. 사랑과 연애라는 키워드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결국 '과연 나는 대체 뭘 하고 살았는가'라는 질문으로 결론을 낼 수 있다. 말 그대로, 과연 나는 뭘 하고 살았을까? 자기 계발이랍시고 동분서주했던 건 기억에 남는데 누구를 사랑해보거나 받았던 적은 없다. 170 좀 안 되는 작은 키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남들 바지통 줄이거나 화장 처음 시도해볼 때 나는 방구석에 누워서 정말 아무것도 안 했으니 그때 치러야 했던 대가를 26살의 내가 치르고 있는 것이다. 영화와 책으로 채울 수 있는 인생의 유효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인 건 맞는데 정작 실전에는 약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위로를 하면 행복해지는 나. 사랑에 치인 지인들에겐 대체 뭐라고 말하지? 지인들에게 알맹이 없는 공수표로 보이지는 않을까? 언젠가 나도 누군가를 사랑할 날이 올 텐데. 내가 주변 지인들에게 하는 말처럼 익숙한 것에 섬세한 걸 놓치고 살면 안 될 텐데. 막상 내가 그런 입장이 되면 나 역시 그럴 것 같아서 가끔 두렵기도 하다. 근데 뭐 어떤 영화의 제목처럼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되는 게 사람 심리겠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 영화가 있다. 등장인물을 실제로 만나면 단 1마디도 섞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안녕, 이방인? 주인공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방인(Starnger)이 Closer가 되다
부고 전문 기자 댄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길을 걷고 있다. 사람 바글바글한 미국. 남자는 왠지 반대편에 머리가 붉은 여자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서로의 눈을 마주치게 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눈빛을 마주칠 때, 앨리스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지만 남자와 여자는 이 계기로 서로 대화하게 된다. 무슨 일 해요? 남자는 부고 란 담당 기자라고 한다. 빨간 머리의 여자는 낯을 그렇게 가리는 타입이 아닌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사고 난 곳 근처를 산책하는 두 사람. 댄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한다. 어느새 직업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는 두 사람. 남자는 '내가 글재주가 없어 부고란의 기자가 되었다'란 말을 한다. 그렇게 하나, 둘 대화를 나누며 친구가 된 주인공. 잠깐 만난 사이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시간이 지나 댄은 앨리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소설에 들어갈 이미지를 찍기 위해 아나의 스튜디오를 찾은 댄. 댄은 아나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아나를 꼬시려고 노력하는 댄. 어찌어찌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댄은 아나에게 앨리스가 온다고 말한다. 아. 이 댄이라는 놈은 애초부터 아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댄과 앨리스는 연인관계였다. 여자 친구가 있는데도 아나에게 꼬리를 친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시작부터 15분까지의 이야기다. 15분만 봐도 정신 나갈 것 같은 전개다. 글로 풀어써서 그렇지 실제로 보면 주드 로가 맡은 댄이 정말 신기할 정도로 뻔뻔하다. 영화는 댄만큼이나 뻔뻔하다. K-아침 드라마에 나올법한 이야기를 시종일관 밑어붙힌다. 눈치가 없는 게 너무 당연해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다. 아마 사랑의 극단적인 예를 모아놨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세상 찌질이 같은 (우리) 이야기
이름은 그 사람을 규정하는 정체성의 의미와도 닮아있다. 만약 누군가의 이름을 속여서 타인의 마음을 얻는다고 하면 그건 '자기 정체성을 숨긴다'라는 뜻과도 닮아있다. 자기 정체성을 숨겨서 얻고 싶은 게 뭘까? 사랑은 타인에게 내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애초부터 애정이나 관심이 없으면 남이 있건 말건 신경 쓸 일이 없다. 근데 굳이 그렇게까지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이유는 그 사람을 괴롭혀서라도 찌질한 내면을 해소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영화는 사랑의 극단적인 상황을 맞물려놓고, 어떤 행동의 원인을 '이름을 속여서 사람을 꼬시는'정도의 덜떨어짐으로 귀결짓는다. 그렇게 해서 상대에게 내 존재를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다. 이 '남을 흔들어 내가 통제할 수 있음'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행위는 극 내내 제시된다. 극단적인 상황의 연속이라 '난 적어도 저러지 않지'라고 생각하기 쉽다.(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행동의 한 방향만 틀면 우리 모습이라 딱히 반박하기 어렵다. 극본은 인물 간의 갈등과 사랑의 속성을 비틀며 '네 사랑 이야기도 이의 일부다'라고 지적한다.
나는 상상했었지 너의 곁에 있는 날
이 지구 상에 있는 수많은 사랑 노래들은 헤어진 전 연인과의 재회를 바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옛사랑과의 재회는 기적 같은 일이 맞다. 그 사람과 함께 있던 행복한 시간이 다시 오길 바라는 것이다. 아프기도 아프지만 행복했던 시간도 있으니 '조금만 더 성숙했다면' 더 나았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근데 가끔 우리는 솔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 다시 만나고 싶은 걸까? 그 사람에게 오롯이 나라는 존재가 유일무이하다는 짜릿함때문은 아닐까? 그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채워진다는 착각은 참 사람을 비참하게도 만든다. 사실 애초부터 그런 건 없는데 말이다. 원래 우리 다 외로운 존재라서 사랑을 찾고 있는다. 이미 다 알면서 사랑에 빠지는 게 우리 인간이라는 걸 모두 다 알면서도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영화는 이 사랑의 단맛과 짠맛을 같이 느끼게 해 준다. 그 사람 잘 알거라 생각했다. 이름을 집요하게 묻고. 그 사람의 행동의 원인을 다 알 거라고 믿고. 행복 회로가 돌아가서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내가 딱 아는 사람이 있다는 그 오해가 우리를 기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사실 어떤 것의 진위여부도 확신할 수 없는 게 결국 우리가 아는 사랑의 속성이었다. 영화는 잔인할 정도로 이 착각에 대해 집요하게 판다. 이 사람이 나쁜 놈인걸 아는데 '차 좀 타 줘 자기야'라고 말하는 이중성이 모든 인물에게 다 나타난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끔. 그래서 영화는 '결별-재회'의 모티브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로맨스 영화계의 불닭볶음면
난 기본적으로 매운 걸 못 먹는다. 설사가 심해서도 있고 땀이 많이 나서도 이유가 된다. 근데 그렇게 매운 걸 알면서도 가끔 당길 때가 있다. 이 영화는 불닭볶음면 같은 영화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두 번 물어도 사랑에 빠질 수 없었던 나'의 이야기나 <라라 랜드>의 꿈과 사랑의 역설에 대한 이야기는 로맨스 영화계의 정석 같은 느낌이다. 미워도 꼭 잘됐으면 하는 마음. 그래도 그 사람 덕에 행복했다는 고마움을 일깨워는 육개장 같은 영화인 셈이다. 이 영화는 어디에도 없는 매움으로 가끔 생각나게 만든다. 그리고 또 이런 영화도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하다는 느낌을 들게 만든다. 그렇게 나에게 상처 준 이가 미워서 거리를 둔다 치자.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필요하다. 뭐 다른 즐거운 기억 그딴 거 필요 없다. 영화는 이 사랑에 의한 마음의 흉터를 색다르게 묘사한다. 그러려면 또 잘 안다는 착각 속에 빠져서 오해하고, 또 싸우고, 찌질해지고, 타인을 안다고 믿었지만 결국 아니었고. 그렇게 지루한 과정의 연속인 게 인생의 과정 아니겠어? 지나간 인연에게 바치는 감사함은 분명히 아니지만 영화는 다른 측면에서 우리의 시야를 넓게 도와준다.
무려 18년 전 영화
이 영화를 다시 보며 느낀 게 있다. 나탈리 포트만이 정말 미인이라는 것이다. 머리색을 빨간색부터 분홍색까지 가지각색으로 헤도 소화하는 소화력이 대단하다. 주드 로도 새삼 미남이란 것을 또 느꼈다. 이 두 배우의 젊은 시절 비주얼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가치는 충분할 듯. 또 18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캐릭터 설정을 창의적으로 잘했다. 어떤 이들에게 대입해도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정도다.
사랑에 실패할 예정인 모든 이들에게
우리가 세상을 떠날 거라는 건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한다 쳐도 그게 성공이 아닐 수도 있다. 영원한 건 없으니까. 그래도 항상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바보 같은(나 포함) 것이 우리 모습 아닌가. 이런 우리에게 상처의 치유와 화풀이에 대해 세 번 네 번 생각하게 만든 로맨스 영화다. 본 적이 없는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드린다.
#왓챠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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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썬더볼츠*>: 공허한 우울의 미로에서 널 구할 결심
어벤저스는 아이언맨으로부터 시작해 아이언맨으로 끝났다. 남아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점이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어벤저스와 타노스의 핑거 스냅으로 인한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든 어벤저스와 타노스의 핑거 스냅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CIA 국장으로 있는 발렌티나 알레그라 드 폰테인의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어벤저스는 안 옵니다“
맞는 말이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이 영화는 어벤저스에 대한 영화가 결코 아니다. 어벤저스와 옷깃 한 번 스쳐봤을까 싶은 나머지 사람들의 이야기다. 엔드게임 이후 여러 시리즈와 영화를 개봉하며 빌드업을 쌓아온 마블의 첫 완성작이라고 볼 수 있는 썬더볼츠. 이들의 이야기는 무엇으로 시작될까.
공허함이라는 미로에 빠진 기니피그
IMDB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짙게 깔려있는 공허함이라는 감정에서 시작한다. 공허함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날 괴롭히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옐레나가 느끼는 공허함도 그러하다.
아이언 슈트와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와의 독특한 부자 관계를 가진 아이언맨, 페기 카터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가슴속 깊이 지켰던 캡틴 아메리카,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로키와 얽힌 사연을 가진 토르까지. 어쩌면 이들이 겪었던 것도 일종의 공허함의 범위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어벤저스도 이러한 인간적인 문제들을 겪고 극복하며 진짜 히어로로 각성했다.옐레나를 포함해 이번 썬더볼츠의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게 이 영화의 포인트다. 어벤저스는 각자 지닌 문제를 스스로 극복했었다. 하지만, 썬더볼츠의 구성원들은 대단한 기술 능력을 얻거나 새로운 깨달음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인간적인 방식으로 상실과 결핍 그리고 공허함에 직면하며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각자의 감정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함께 위로한다. 옐레나를 선두로 썬더볼츠 인원들은 밥의 깊은 내면에 들어가 그를 그의 우울의 방에서 꺼내고자 애쓴다. 힘을 내야 해 따위의 위로가 아니다. 그 사람의 내면 깊은 곳을 살핀다. 거기서 같이 싸우고 같이 상처 입으며 우울의 미로에서 다 같이 나오려고 한다.
IMDB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각자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지니고 있고, 투덜거리면서 때로는 우울하다고 이야기하는 형 누나들이 두 팔 걷어 도와주는 모습이랄까. 나도 그랬었지, 너도 그랬었구나 하며 도와주는 모습에 가까워 보였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줬던 감동과는 달리 좀 더 와닿는 감동이 아닐까 확신한다. 특히, 썬더볼츠가 우울의 미로와 방을 도장 깨기 하는 장면은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이다.
위는 영화 내적으로 바라봤을 때의 이야기다. 사실 공허함이라는 것을 주인공들만 느끼진 않을 터다. 그 주체를 마블과 마블 팬들로 바꿔서 이야기하는 것도 어색하진 않다. 마블은 아이언맨부터 시작해 어벤저스 엔드게임까지 다시없을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지금의 썬더볼츠 까지, 스파이더맨을 제외하면 마블은 매 작품에서 혹평을 받았다.
관객 기대치에 못 미치는 영화로 하향곡선을 5년 이상 타왔다. 얼마 전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역시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으니까. 마블 역시 과거의 영광과 비교되는 현재 위치에서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다양한 시도는 하는데, 팬들이 좋아하지 않으니 말이다.마블뿐만 아니라 마블 팬들도 나름 공허하지 않을까. 높아진 진입장벽은 늘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 이로 인해 일반 팬들에 대한 마블의 외연 확장은커녕 팬층 자체가 얇아졌다 과하게 해석하면, 지난 10여 년 동안 일 년에 한두 번은 마블 영화를 보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을 관객들이 현재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까.
오죽하면, 속는 셈 치고 또 본다는 말이 나올까. 더 이상 새로운 추억거리가 쌓이지 않으니 이건 이거대로 기분이 상하는 일이다. 이런 팬심을 아는지, 썬더볼츠의 엔딩 크레딧에선 셀프디스와도 같은 내용의 장면들을 넣어놨다.(물론, 극의 내용에 따른 극안에서의 반응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완성도와 평가를 제쳐두고 마블 팬들의 마음이 어떤지 감독은 공감하고 있다는 것 같기도 하다.IMDB
이런 측면에서, 썬더볼츠는 마블과 팬들에게 은유적인 영화다. 이를 드러내는 또 다른 장면이 있다. 옐레나와 기니피그 장면이다. 미로에 갇힌 기니피그는 등장인물들을 의미하기도 하면서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한 복선이자 마블과 마블 팬들까지 투영한 장치로 보였다.
썬더볼츠 주인공 각자가 결핍과 공허라는 미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마블 역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발버둥 치고 있지만 여전히 같은 자리를 멤돌 뿐이며. 새로운 마블을 관람한 팬들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들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옐레나에 의해 실험실 미로에 갇힌 기니피그가 구출되는 장면에서는 소박한 희망도 엿볼 수 있었다. 옐레나를 선두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썬더볼츠가 결성되는 모습을 통해 이 영화, 썬더볼츠가 어벤저스라는 과거의 영광이라는 미로에서 마블과 마블 팬들을 꺼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감독의 소박한 희망 말이다.
마블이 지금까지 실험해온 엔드게임 이후의 여러 영화들처럼 그저 실험적인 시리즈로만은 남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물론, 미로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했는지 아닌지는 온전히 관객들이 평가하겠지만.마블, 부활했나?
아무리 좋은 영화라고 해도. 보는 사람에 따라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썬더볼츠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으로 이야기가 나오지만, 높아진 진입장벽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계속 심해질 거다. 이제 마블 영화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몇몇 캐릭터의 쓰임이 아쉽다. 태스크마스터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블랙 위도우>편에 처음 등장하며 나타샤 로마노프와 대등한 수준으로 그려졌었는데, 극 초반에 너무 쉽게 사망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유를 잘 모르겠다.IMDB다음은 레드 가디언이다. 시종일관 영화의 분위기 메이커로 그려진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따지면 드렉스와 비슷한 인물이다. 힘도 세고, 나름대로 개그를 시전하는 모습까지. 하지만, 썬더볼츠에서 계속 ”위 아 썬더볼츠“ 라고 힘주어 말하는 역할과 일부 코믹한 내용을 빼면 역시 어떤 맥락에서 이 캐릭터를 이해해야 할지 갸우뚱하게 된다. 그저 재미만 있으면 되는 건가? 아니면, <블랙 위도우>에 등장했고 거기서 옐레나와의 관계는 다 설명했으니까 이 캐릭터는 이 정도로 사용해도 된다는 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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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도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태스크마스터 말고 고스트가 극 초반부에 사망했다고 한들, 영화의 큰 흐름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태스크마스터 만큼 고스트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는 답변을 내놓기가 어려운 애매한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센트리. 밥이 센트리로 잘못 각성하는 부분에서 센트리 능력에 대한 설명이 부실했다.
검은색과 어둠을 특징으로 하는 센트리라서 그런 능력이 나온 것이라는 추론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정도로 퉁치려고 한 거라면 감독의 섬세함이 아쉬워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밥의 가정불화 문제가 타노스 이상의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센트리로 각성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이게 맞나 싶다.
이런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소소하게 재미있는 장면들도 많았다.
특히, 여러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극 초반 옐레나의 실험실 액션 장면은 누구나 알 수 있듯 올드보이의 장도리씬을 오마주 한 것으로 보인다. 마블에서 올드보이를 오마주 했다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버키가 오토바이를 타고 유도탄득 한 손에 들고 질주하는 장면은 터미네이터를 떠올리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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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버키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흡족했다. 그리고 스타크 타워를 향해 운전하는 버키에게 레드 가디언이 계획이 있냐고 묻는 순간에 타고 있는 차량을 냅다 건물 입구로 박아버리는 장면은 다크나이트 조커의 스쿨버스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짭-캡틴 아메리카 존 워커 전투씬의 한 장면은 스티브 로저스와 윈터 솔저가 도심에서 싸우는 장면을 오마주 했고. 센트리가 총알을 막는 장면에서는 매트릭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총알 멈추는 장면이야 많이 재생산된 거라서 이제는 오마주라고 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스타크 타워에서 엘리에베이터로 움직이는 장면은 어벤저스 모습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상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이번 작품만으로는 과거의 추억과 영광을 원하는 마블을 구하기엔 힘에 부쳐 보인다. 그리고 마블 팬들을 새로운 챕터로 확실하게 이끌어 갈지도 확신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블이 조금은 정신 차린 건 아닐까 하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썬더볼츠이자 새로운 어벤저스가 어떤 이야기를 그려 나갈지 기대되는 작품이긴 하다.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기존 히어로 영화답지 않은 서사와 연출이 돋보인 영화였다. 속 시원한 재미는 없을지는 몰라도 깨알 재미는 충분하니 극장에서 보기에는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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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마주할 나의 상처에 붙이는 마블식 반창고 한 장
갈 수록 높아져만 가는 전체 시리즈의 진입장벽, 반복되는 히어로물 특유의 클리셰들과 서사로 지쳐가던 관객들의 흥미도는 마블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크나큰 숙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숙제를 풀기 위해 채택한 방법은 좀처럼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실망한 관객들은 마블에서 등을 돌린 지 오래됐다. 수많은 선택과 그 선택이 낳은 실패와 실망에 맞아보고 나서야 드디어 마블은 무언가 깨달은 듯, 영화 <썬더볼츠>를 개봉시켰다. 꽤 비장하게 말하고자 하는 이유는 영화가 지난 몇 편의 작품들과는 달라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본 작품을 모두 관람한 후 마블이 앞으로 어떠한 선택을 해나갈지 결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썬더볼츠>는 특이하게도 액션이 주(主)인 작품이 아니다. 어쩌면 액션 보다는 감정, 위로, 용서, 후회와 같은 인간의 정서가 지배하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실망스러웠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액션씬들이 유달리 흥미롭게 여겨질 정도로 매력 있었다고 보기란 어렵다. 또한 이런 액션씬들 만큼이나 전반적인 소품과 각종 의상들,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기 위한 몇몇 개의 유머씬들 또한 충분히 재미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의 본 작품의 특출난 장점 내지는 특징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화 <썬더볼츠>를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여 더욱 좋은 작품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감정의 영화'라는 마블이 이전에 사용한 적 없는 장르를 감행했음에도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인상 깊게 다가왔을까?
최근 히어로물 관련 텐츠들을 종합적으로 놓고 보면 공통으로 포착되는 점은 바로 영웅의 불완전성이다. 요즘은 슈퍼맨처럼 완전무결한 영웅 서사보다는 현실적이고 고통을 느낄 수 있으며 정서적 불안에서 오는 심적 고뇌 그리고 이를 극복해가는 입체적 서사를 더욱 선호한다. 근래 히어로 장르 내에서 영화의 첫 장면부터 완벽하고 대단했던 인물이 끝날 때까지 그 모습을 이어 나가 결국 순전히 비열하고 악독하기만 한 악당을 물리치는 작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이던 인물이 세상에 복수심과 혐오감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려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어 나가면서 영웅뿐만 아니라 악당에게도 소위 '당위성'을 부여한다.
영화 <썬더볼츠>도 이 당위성과 정당성에 집중하여 히어로로 비는 인물이 왜 히어로가 되었는지, 처음부터 히어로가 아니었던 인물들이지만 영웅이 되고자 선택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비춘다. 이 지점들을 지루하거나 매우 흔한 방식이 아니라 마블이 그동안 해오던 방식인 몇몇 볼만한 액션과 유머씬을 통해 해결했다는 점이 본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이 설득이 대단히 자연스러웠고, 몇 군데에서는 어색함이 다소 느껴지기도 하였으나 그럼에도 본 작품이 관객을 도중에 유기시키지 않고, 본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끝까지 친절히 설명하고자 노력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작품을 모두 보고 난 후 생각해 본다면 영화 속 진정한 악당은 "센트리"도 "발렌티나"도 아니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나의 진정한 악당은 나의 내면 속에 있는 어둠, 공허함, 나의 어떠한 선택도 믿어주지 않고 감싸주지 않으려 하며 나의 성장을 방해하는 이 녀석이 우리의, 영화의 진짜 악당일지도 모른다. 작품 속 "센트리"의 가장 강력한 능력은 대단한 힘이나 비행 능력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트라우마와 어둠 속에 스스로를 가둬놓는 능력이다. 그 능력으로 인해 작 중 영웅들도 고통과 고뇌의 시간을 겪게 되고, 아픔을 직면한다. 이를 이겨내는 방식 또한 영화는 제시한다. 물리적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신'급의 빌런과 힘만 조금 센 영웅들의 끝마무리는 육체적 싸움이 아닌 서로의 상처를 안아주는 위로로 정리된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보면 작품 속 어려서부터 최고 정예 스파이로서 훈련받아 왔지만 사실상 능력적으로는 크나큰 메리트가 없는 인물인 "앨레나"가 작품의 가장 큰 비중을 가지고, 가장 큰 능력을 갖 인물처럼 보이는 이유도 자신의 아픔을 직면하여 이를 이겨낼 용기가 있고, 자기뿐만 아니라 곁에 본인처럼 힘들어하는 이들을 보듬어줄 힘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단순히 히어로물이라고 해서 싸우고, 죽이고, 폭력을 가해서 정의를 실현하려 하지 않는다. 마치 그런 추세는 지났다고 말하듯 본인들이 새로운 추세를 이끌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장담은 필자에겐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마블의 페이즈 1, 2, 3, 4 때의 작품들과 요즘 마블 작품들을 모두 비교해 본다면 분명 기술의 발전, 영화 산업의 급성장을 통해 액션이나 CGI 기술 등으로 볼거리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화려한 볼거리를 이용해서도 관객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부족했던 것인가. 이번 작품, 영화 <썬더볼츠>를 통해 하나쯤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마블 영화, 히어로물 영화라 하더라도 현란하고 휘황찬란한 스크린 속 볼거리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볼거리들로 어떻게 관객들을 설득하고, 동화시키며, 그들의 감정을 어떻게 이용할 지에 대한 구상 내지 서사적 구조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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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고 느리고를 떠나서 그 기억은 오래 남아있다.
시놉시스
스메라기 하지메는 남들보다 빠른 사람이었다. 시험을 볼 때나 달리기를 할 때도 먼저였으며 어른이 된 후에 교토의 우체국에서 직원으로 일한다. 한편 초소카베 레이카는 남들보다 느린 사람이었다. 시험을 볼 때도 달리기를 할 때도 느렸으며 모기도 잡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잘할 수 있는 건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 둘의 만남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게 되는데... 과연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
둘의 인연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스메라기 하지메와 초소카베 레이카는 어린 시절에 만났던 인연이다. 하지만 스메라기 하지메는 초소카베 레이카를 잊고 지냈고 교토에서 쭉 살았다. 초소카베 레이카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교토로 여행을 가다가 연쇄 추돌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자신은 병원에서 입원했으며 그때 스메라기 하지메를 만났는데 스메라기 하자메의 다정함에 살 용기를 얻는다.
시간이 흐른 후에 초소카베 레이카는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지만 스메라기 하지메는 그 기억을 잊고 살았는데 둘이 다시 만난 건 우체국에서 우연의 사건들의 연속에서 시작되었다. 그 우연의 사건들은 손님이 왕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대학교수가 스메라기 하지메가 일하는 우체국에 와서 난동을 부린 것과 사쿠라코라는 여자 버스킹 가수가 스메라기 하지메에게 도시락을 건네고 오는 순간부터였다. 사실은 초소카베 레이카가 그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우표를 사러 갔었는데 스메라기 하지메는 단순히 손님으로 본 것이다.
스메라기 하지메가 좋아한 사쿠라코라는 여성의 본심은?
사쿠라코라는 버스킹 여자 가수를 좋아하느라 정신이 팔린 스메라기 하지메는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주겠다며 애정 공세를 펼치는데 사실 사쿠라코의 이면에는 남자들을 등쳐먹고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 협박하고 거금을 뜯어내는 나쁜 여자였다. 그런 사쿠라코에게 넘어가버린 스메라기 하지메를 구하기 위해 초소카베 레이카는 뒤에서 사진을 찍으며 미행했다.
미행을 당한 걸 들킨 사쿠라코는 초소카베 레이카에게 왜 미행을 했냐며 따지는데 둘은 주점에 가서 얘기를 나눈다. 그런데 싹수가 없는 사쿠라코에게 초소카베 레이카는 스메라기 하지메를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경고를 하고 내일 만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쿠라코가 스메라기 하지메를 찌질이라며 비아냥 꺼렸기 때문이다. 또한 40만 엔의 거금을 스메라기 하지메에게 뜯어내려고 했었고 자신은 이제 데뷔를 한다며 거만하게 굴었다.
갑자기 시간이 멈춰버린다면?
이 영화에서는 판타지적인 요소도 들어가 있는데 바로 이름의 획이 길거나 느린 사람들에게 신들이 시간을 되돌려 주려고 시간을 멈추어준다는 것이다. 스메라기 하지메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죽으러 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멈춰버리자 그게 마음대로 안됐다고 한다. 초소카베 레이카와 버스 기사만 시간이 멈춘 걸 인식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스메라기 하지메의 아버지도 두 번이나 겪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정작 자신은 가족을 사랑했고 버리고 간 게 아니라는 스메라기 하지메의 아버지는 시간이 또 한 번 멈추자 자신의 아들과 아내에게 할 일을 하고 사라진다.
스메라기 하지메에게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스메라기 하지메의 사진이 사진관에 떡 하니 붙어있는 걸 보고 스메라기 하지메는 의심을 품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항상 7시 정각에 일어나 출근을 하던 그가 알고 보니 하루 건너 뛴 월요일에 일어났고 사쿠라코에게 줄 40만 엔이 전자레인지에 있었고 자신은 피부가 새빨개 탄 채로 있었는데 그건 시간이 멈춘 날에 초소카베 레이카가 자신을 기억하게 만들려고 스메라기 하지메가 자주 타는 버스에 가자 40만 엔이 든 봉투를 훔치려는 괴한을 막고 3시간이 되는 거리를 버스 기사에게 가달라고 한다. 그곳은 스메라기 하지메가 초소카베 레이카를 기억할 만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초소카베 레이카는 멈춘 스메라기 하지메를 끌고 가 해변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이 영화는 대만의 영화 진옥훈 감독의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원작을 하고 있다. 남들보다 빠른 남자와 남들보다 느린 여자가 어린 시절에 만났지만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여자와 그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딱히 로맨스 장면이 크게 나타나지 않지만 그때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고마운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남들보다 빠른 남들보다 느린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기억을 훑어보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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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기에 있다 I am Here 범죄 스릴러 속 휴머니즘
불량 남녀와 브라더를 감독했었던 신근호 감독이 12일 개봉을 앞둔 ‘나는 여기에 있다’로 새 작품을 내놓았는데,
주연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하는 VIP 시사회 이벤트에 선정되어 서울에 다녀왔다.
공항에서 티켓팅을 한 뒤 브릿지 연결 없이 버스 이동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제주항공은 최근 국내선 항공의 운항 편수를 102편으로 늘렸는데, 제주 도민들의 도외 지역으로의 이동을 편리하게 돕고자 만들어진 제주항공은 해외 운항 노선 또한 늘려가며 사업을 확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요금 금액대와 상관없이 포인트 적립이 모두 이루어지고, 마일리지 좌석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적립한 포인트 사용이 비교적 쉬운 편으로 포인트로 티켓 구입 시 부족한 포인트는 현금으로 즉시 보충할 수 있다. 포인트 구매 시 공항 이용료나 유류할증료 부분은 포인트로 구매가 불가하며, 별도로 결제를 해야 한다.
다만 적립된 포인트는 유효기간이 있어 그 기간이 만료되면 사라지니 이 점, 참고하시길 바라고요.
드디어 제주 땅을 벗어난 비행기는 제주의 전체적인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고도에 진입했는데,
예전에 비해서는 건물들이 무척이나 많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휴양지라는 이미지가 강한 곳이다.
비행기는 순항을 하며 1시간여를 상공을 날아 서울 김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서울 관광을 다닌 뒤 시사회가 진행될 건대입구 롯데시네마까지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갔다.영화관으로 들어가니 입구 쪽에서 바로 시사회 티켓을 배부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현장 티켓 수령은 별다른 기다림없이 바로 진행된다.
연락처 뒷자리와 이름, 선정 채널 등을 이야기하니 티켓을 나눠준다.
좌석은 임의 배정이다.
VIP 시사회라면 당연히 무대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오던 뷰피였지만, 단순 영화 상영만을 두고도 시사회 진행이 되는 자리에 몇 번 참석하고 나니, 참석 신청에 신중이 기해지던 차에 감독과 배우들의 무대 인사가 함께하는 작품을 만나게 되어 신청 후 선정되기를 무척이나 바래오던 차에 선정이 되어 더욱 소중하고 값진 순간으로 만날 수 있었다.
영화관 내에서뿐 아니라 영화 상영 전 영화관의 한쪽 공간에서는 출연 배우들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오랜만에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될 조한선과 정태우 배우 등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을 프레임 안에 담기도 했다.
이제는 중견 배우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두 배우의 연기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기념 사진 촬영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가 좌석을 배정받은 2층으로 올라가 무대인사를 기다리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품은 고조된 분위기 가운데 있었다.
요즘 한국 영화의 흥행 실적이 저조한 편인데, 이 작품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러닝타임은 82분으로 억지로 스토리를 질질 끌고 가지 않으며 포인트를 잡으며 깔끔하게 진행되어 가는 작품이었던 터라 짧은 시간 집중해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으셨던 분들에게도 괜찮을 듯싶었다.
7시가 되니 신근호 감독과 조한선, 정진운, 정태우, 노수산나 배우들이 무대로 와 인사를 했다.
범죄, 액션, 스릴러 장르의 ‘나는 여기에 있다’는 2023년 4월 12일 대개봉 예정으로 경찰과 범죄자가 동일한 공여자로부터 장기를 기증받은 스토리가 가미되었다.
장기를 기증받은 후 예전 성격이나 생활 패턴이 아닌, 공여자의 성격과 생활 습관으로 반응하며 지내는 경우가 종종 의학계에 보고되곤 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언급됩니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 말미에 그러한 실제 스토리를 감안해 만든 작품은 아님을 밝히는 문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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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 라이브즈 | 현생과 전생 사이에서 부유하는 인생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2살의 '해성'(유태오)는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를 갑자기 잃는다. 그녀의 가족 모두가 뉴욕으로 이민을 떠났기 때문. 이후 12년이 지나도록 해성은 현생을 열심히 살아간다.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에 가고, 취업을 걱정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 편에는 나영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는 SNS를 통해 나영을 찾기로 결심한다.
한국을 떠나 12년 간 뉴욕에서 살아간 나영. 노벨 문학상 수상을 꿈꾸던 소녀는 여전히 작가의 꿈을 안고 살아간다. 어느 날, 나영은 SNS에서 어릴 적 풋사랑의 주인공이었던 해성이 자기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에게 연락한다. 그렇게 가까스로 닿은 인연을 또 다른 12년 간 간직한 두 남녀. 마침내 해성은 나영을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다. 스쳐 지난 수많은 "만약"의 순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공식을 거부하다
바에 나란히 앉은 세 주인공. 그들의 대화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두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인공 셋을 관찰하며 그들의 관계를 유추한다. 그 내용은 마치 관객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듯하다.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동양인 남녀를 커플 비슷하게 생각한다. 조용히 옆에 앉아 있는 서양인 남성은 친구 내지는 가이드일 거라고 여긴다. 추측은 계속 바뀌지만, 그들의 의견은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의 구도 안에 갇혀 있다.
대부분의 로맨스 영화라면 평범한 순간이다. 애초에 로맨스 장르의 틀은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해피엔딩이든 배드엔딩이든 그 결말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속내용도 새로운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사랑의 힘으로 현재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와 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셀린 송 감독의 첫 장편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알 수 있다. 위의 오프닝 시퀀스는 선전포고였다는 것을. 실제로 <패스트 라이브즈>의 끝은 전혀 다르다. 로맨스 영화에 기대하는 바를 완전히 벗어나는 감성의 여운을 선사한다. 그 중심에는 전생과 이민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이는 <패스트 라이브즈>가 신인 감독 작품인데도 아카데미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기시감 가득한 시작
초반부는 익숙하다. 해성과 나영의 유년 시절을 보여준다. 초등학교에서 성적을 두고 다투던 라이벌. 그와 동시에 단순한 친구 이상의 호감을 지닌 두 베스트 프렌드. 그들의 풋사랑은 나영이네 가족이 모두 이민을 가면서 자연히 깨진다. 그렇게 둘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 노벨 문학상을 꿈꾸던 소녀 나영은 미국에서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 공대생이 된 해성은 취업하기 위해 분투한다.
길이 갈린 두 친구가 재회한 계기도 익숙하다. 해성이 군대에서 훈련을 받던 중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린다. 그는 나영의 아버지가 유명 영화감독이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SNS에서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그의 노력 덕분에 나영도 해성이 자기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에게 연락한다. 그렇게 그들의 인연은 12년 만에 극적으로 이어진다.
이 빌드업은 익숙한 그림을 연상시킨다. 해성과 나영은 곧 재회할 것이다. 같이 살던 옛 동네에서 추억을 공유하며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이 반가움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성인이 됐으니, 이성적인 감정으로 커질 것이다. 물론 현생은 그들을 편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원거리 연애라는 제약도 있고, 취업을 비롯한 미래의 문제가 그들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은 끝내 해피엔딩에 도달할 것이다.
두 번의 변곡점
그런데 <패스트 라이브즈>는 예상된 그림을 자꾸 벗어나며 관객과 밀당을 벌인다. 해성과 나영은 재회하지 않는다. 둘은 영상 통화만 나눈다. 그조차도 오래가지 않는다. 서로에게 빠져들고, 서로의 존재가 너무나도 익숙해지려는 찰나에 그들은 교류를 끊는다. 온라인상의 관계가 오프라인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자 그들도 서로의 관계를 스스로 정의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성과 나영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물론 다시 예상대로 되돌아오기는 한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한 나머지 뉴욕에서 재회한다. 해성과 데이트를 즐기며 혼란스러워하는 나영. 해성을 질투하는 나영의 남편 '아서'(존 마가로). 조심스럽지만 자기 마음을 숨기지는 않는 해성까지. 로맨스에서 빠질 수 없는, 삼각관계라는 익숙한 풍경이 마침내 펼쳐지는 듯 보인다.
이 기대는 한 번 더 깨진다. 셋이 오프닝 시퀀스의 술집으로 향하자 긴장감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작은 불꽃만 튀어도 터질 것만 같다. 하지만 해성과 나영은 아서를 빼놓은 대화 끝에 서로를 사랑한 게 아니라 어린 시절이 그리웠을 뿐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렇게 영화는 불륜도, 운명적 사랑도 아닌 오래되고 특별한 우정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로맨스 영화의 공식을 오가는 작법 덕분에 <패스트 라이브즈>는 기술적으로 퍽 흥미롭다.
전생과 현생 사이에서
물론 혹자는 <패스트 라이브즈>의 시나리오를 비판할 수도 있다. 확실한 맛이 아니라며 게으르거나 흐릿하다는 지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개의 변곡점을 잇는 멋진 선 덕분에 <패스트 라이브즈>의 변주는 더욱 아련하다. 영화는 나영의 대사를 통해 거듭 '인연'을 강조하고, 그 결과 '전생(Past Lives)'이라는 제목에도 새로운 의미가 깃든다.
아서에게 나영은 말한다. 부부로 맺어지려면 전생에 8천 겁의 인연을 맺어야 한다고. 1겁이 10년의 28 제곱이니, 부부의 연이 얼마나 특별한 지를 강조하는 고백인 셈이다. 이는 해성과 노라의 관계에도 해당이 된다. 1만 킬로미터가 넘는 공간과 수십 년의 시간 차이를 뛰어넘을 정도로 끊어지지 않는 사이니까. 그들 스스로도 본인들의 전생을 궁금해할 정도로. 이 특별함은 아련함이 되고, 몽글몽글한 감정은 스크린을 휘어잡는다.
그 특별함은 결말에도 더 힘을 싣는다. 아무리 과거의 인연이 질기더라도, 부부의 연은 결국 나영과 아서의 몫이다. 전생의 인연이 더 강렬해 보여도 현생의 인연보다 진하지는 못하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미 전생의 인연은 전생이 아닐 테니. 현실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논리적으로 귀결되기에 <패스트 라이브즈>는 오히려 더 감성적이다. 해성과 나영의 인연을 일반적으로 풀었다면 판타지겠지만, 그 길을 가지 않았기에 울림이 더 깊다.
돌풍의 원천
이 지점에서 <패스트 라이브즈>의 또 다른 특이점도 엿볼 수 있다. 전생과 현생의 개념을 공간적으로 시각화한다. 그래서 해성과 나영이 결코 연인이 되지 못할 인연이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암시한다. 그들의 현생은 따로 있다. 나영은 미국, 해성은 중국에서의 삶과 관계가 그들의 현생이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어린 시절은 이미 떠난 보낸 한국에서의 삶이다. 즉, 한국이라는 장소와 그곳에서의 시간이 그들의 전생인 셈이다.
이는 나영과 해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이민자에게 미국은 현생이고, 떠나온 고국은 전생이나 다름없다. 장소뿐만 아니라 그곳에서의 사람과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민자라면 누구에게나 나영과 해성 같은 사랑이나 우정이 있었을 테니. 인연과 전생, 윤회라는 개념에 착안한 점도 나름 신선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이를 이민자의 삶에 결부시켰기에 보편적인 공감대를 자아내지 않았을까 싶다.
나영에게 해성은 고국과 전생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다. 반면에 아서는 미국에서의 정착과 현생을 뜻한다. 이때 끝내 아서를 택한다는 것은 모든 이민자가 결국 미국에서의 삶과 가치,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수용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즉, 지극히 미국적인 이야기이자 결말인 셈이다. 그래서 <패스트 라이브즈>가 유독 미국에서 반응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뻔한 말도 이토록 감성적일 수 있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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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당신이 놓쳐선 안 될 독립영화 - 리뷰는 없지만 강추하는 7 편? ( #로그인벨지움 #십개월의미래 #비밀의정원 #좋은빛좋은공기 #최선의삶 #혼자사는사람들 #빛과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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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영상들의 통합본입니다!
수요일 저녁 2021년을 빛낸 독립영화 극영화부문 5작품 업로드 되니 많.관.부!
여러분들은 어떤 독립영화가 인상깊었나요? 자유롭게 댓글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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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마지막 기대작 준비.. [ 오징어 게임 시즌2 | 공식 메인 예고편 ] 리액션 & 리뷰 Squid Game Season 2 Official Trailer | Re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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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지막 초기대작 오징어게임 시즌2 메인 예고편 감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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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인터셉터> 공식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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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야와 마녀> 메인 예고편
마녀지망생 ‘아야’의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모험이 시작된다!
‘동료 마녀 12명을 완전히 따돌리면 아이를 찾으러 오겠다’는 수수께끼 같은 편지와 함께 성 모어발트의 집에 맡겨진 아야.
10살이 된 어느 날, 아야는 갑자기 찾아온 마법사 벨라와 맨드레이크를 따라 미스터리한 저택에 발을 들이게 된다.
순간이동할 수 있는 문부터 비밀의 방까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되고,
아야는 벨라를 돕는 조건으로 마법을 배우기로 한다.
하지만 마법은 알려주지 않고 잔심부름만 시키는 마녀 벨라.
벨라를 골탕 먹이기 위한 마녀지망생 아야와
말하는 고양이 토마스의 아주 특별한 주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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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범도 화들짝 놀라는 전쟁 같은 사랑
"나는 상상했었지 나의 곁에 있는 널~" 나는 아이패드로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보고 있다. 그 전설적인 듀엣 송 <사랑보다 깊은 상처>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엄청 어렸을 때다. 2010년대쯤 자료화면으로 풋풋했던 박정현과 임재범이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때는 가사가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내가 변했다고 백날 웅변해도 그 사람이 뇌가 있는 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노래를 비롯한 많은 대중가요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사랑은 참 여러모로 사람들을 얄궂게 만든다. 사랑이 없었으면 이 많은 사람들이 아플 일도 없고 꿈꿀 일도 없을 것이다.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일도 아닌데 사람을 행복하게도 우울하게도 만든다. 거의 자연재해와 걸맞은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사랑의 속성을 깨달아 글로 쓴다고 쳐도 그게 나와 뭔 상관이 있는가? 싶다. 사랑과 연애라는 키워드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결국 '과연 나는 대체 뭘 하고 살았는가'라는 질문으로 결론을 낼 수 있다. 말 그대로, 과연 나는 뭘 하고 살았을까? 자기 계발이랍시고 동분서주했던 건 기억에 남는데 누구를 사랑해보거나 받았던 적은 없다. 170 좀 안 되는 작은 키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남들 바지통 줄이거나 화장 처음 시도해볼 때 나는 방구석에 누워서 정말 아무것도 안 했으니 그때 치러야 했던 대가를 26살의 내가 치르고 있는 것이다. 영화와 책으로 채울 수 있는 인생의 유효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인 건 맞는데 정작 실전에는 약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위로를 하면 행복해지는 나. 사랑에 치인 지인들에겐 대체 뭐라고 말하지? 지인들에게 알맹이 없는 공수표로 보이지는 않을까? 언젠가 나도 누군가를 사랑할 날이 올 텐데. 내가 주변 지인들에게 하는 말처럼 익숙한 것에 섬세한 걸 놓치고 살면 안 될 텐데. 막상 내가 그런 입장이 되면 나 역시 그럴 것 같아서 가끔 두렵기도 하다. 근데 뭐 어떤 영화의 제목처럼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되는 게 사람 심리겠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 영화가 있다. 등장인물을 실제로 만나면 단 1마디도 섞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안녕, 이방인? 주인공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방인(Starnger)이 Closer가 되다
부고 전문 기자 댄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길을 걷고 있다. 사람 바글바글한 미국. 남자는 왠지 반대편에 머리가 붉은 여자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서로의 눈을 마주치게 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눈빛을 마주칠 때, 앨리스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지만 남자와 여자는 이 계기로 서로 대화하게 된다. 무슨 일 해요? 남자는 부고 란 담당 기자라고 한다. 빨간 머리의 여자는 낯을 그렇게 가리는 타입이 아닌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사고 난 곳 근처를 산책하는 두 사람. 댄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한다. 어느새 직업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는 두 사람. 남자는 '내가 글재주가 없어 부고란의 기자가 되었다'란 말을 한다. 그렇게 하나, 둘 대화를 나누며 친구가 된 주인공. 잠깐 만난 사이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시간이 지나 댄은 앨리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소설에 들어갈 이미지를 찍기 위해 아나의 스튜디오를 찾은 댄. 댄은 아나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아나를 꼬시려고 노력하는 댄. 어찌어찌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댄은 아나에게 앨리스가 온다고 말한다. 아. 이 댄이라는 놈은 애초부터 아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댄과 앨리스는 연인관계였다. 여자 친구가 있는데도 아나에게 꼬리를 친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시작부터 15분까지의 이야기다. 15분만 봐도 정신 나갈 것 같은 전개다. 글로 풀어써서 그렇지 실제로 보면 주드 로가 맡은 댄이 정말 신기할 정도로 뻔뻔하다. 영화는 댄만큼이나 뻔뻔하다. K-아침 드라마에 나올법한 이야기를 시종일관 밑어붙힌다. 눈치가 없는 게 너무 당연해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다. 아마 사랑의 극단적인 예를 모아놨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세상 찌질이 같은 (우리) 이야기
이름은 그 사람을 규정하는 정체성의 의미와도 닮아있다. 만약 누군가의 이름을 속여서 타인의 마음을 얻는다고 하면 그건 '자기 정체성을 숨긴다'라는 뜻과도 닮아있다. 자기 정체성을 숨겨서 얻고 싶은 게 뭘까? 사랑은 타인에게 내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애초부터 애정이나 관심이 없으면 남이 있건 말건 신경 쓸 일이 없다. 근데 굳이 그렇게까지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이유는 그 사람을 괴롭혀서라도 찌질한 내면을 해소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영화는 사랑의 극단적인 상황을 맞물려놓고, 어떤 행동의 원인을 '이름을 속여서 사람을 꼬시는'정도의 덜떨어짐으로 귀결짓는다. 그렇게 해서 상대에게 내 존재를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다. 이 '남을 흔들어 내가 통제할 수 있음'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행위는 극 내내 제시된다. 극단적인 상황의 연속이라 '난 적어도 저러지 않지'라고 생각하기 쉽다.(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행동의 한 방향만 틀면 우리 모습이라 딱히 반박하기 어렵다. 극본은 인물 간의 갈등과 사랑의 속성을 비틀며 '네 사랑 이야기도 이의 일부다'라고 지적한다.
나는 상상했었지 너의 곁에 있는 날
이 지구 상에 있는 수많은 사랑 노래들은 헤어진 전 연인과의 재회를 바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옛사랑과의 재회는 기적 같은 일이 맞다. 그 사람과 함께 있던 행복한 시간이 다시 오길 바라는 것이다. 아프기도 아프지만 행복했던 시간도 있으니 '조금만 더 성숙했다면' 더 나았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근데 가끔 우리는 솔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 다시 만나고 싶은 걸까? 그 사람에게 오롯이 나라는 존재가 유일무이하다는 짜릿함때문은 아닐까? 그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채워진다는 착각은 참 사람을 비참하게도 만든다. 사실 애초부터 그런 건 없는데 말이다. 원래 우리 다 외로운 존재라서 사랑을 찾고 있는다. 이미 다 알면서 사랑에 빠지는 게 우리 인간이라는 걸 모두 다 알면서도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영화는 이 사랑의 단맛과 짠맛을 같이 느끼게 해 준다. 그 사람 잘 알거라 생각했다. 이름을 집요하게 묻고. 그 사람의 행동의 원인을 다 알 거라고 믿고. 행복 회로가 돌아가서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내가 딱 아는 사람이 있다는 그 오해가 우리를 기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사실 어떤 것의 진위여부도 확신할 수 없는 게 결국 우리가 아는 사랑의 속성이었다. 영화는 잔인할 정도로 이 착각에 대해 집요하게 판다. 이 사람이 나쁜 놈인걸 아는데 '차 좀 타 줘 자기야'라고 말하는 이중성이 모든 인물에게 다 나타난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끔. 그래서 영화는 '결별-재회'의 모티브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로맨스 영화계의 불닭볶음면
난 기본적으로 매운 걸 못 먹는다. 설사가 심해서도 있고 땀이 많이 나서도 이유가 된다. 근데 그렇게 매운 걸 알면서도 가끔 당길 때가 있다. 이 영화는 불닭볶음면 같은 영화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두 번 물어도 사랑에 빠질 수 없었던 나'의 이야기나 <라라 랜드>의 꿈과 사랑의 역설에 대한 이야기는 로맨스 영화계의 정석 같은 느낌이다. 미워도 꼭 잘됐으면 하는 마음. 그래도 그 사람 덕에 행복했다는 고마움을 일깨워는 육개장 같은 영화인 셈이다. 이 영화는 어디에도 없는 매움으로 가끔 생각나게 만든다. 그리고 또 이런 영화도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하다는 느낌을 들게 만든다. 그렇게 나에게 상처 준 이가 미워서 거리를 둔다 치자.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필요하다. 뭐 다른 즐거운 기억 그딴 거 필요 없다. 영화는 이 사랑에 의한 마음의 흉터를 색다르게 묘사한다. 그러려면 또 잘 안다는 착각 속에 빠져서 오해하고, 또 싸우고, 찌질해지고, 타인을 안다고 믿었지만 결국 아니었고. 그렇게 지루한 과정의 연속인 게 인생의 과정 아니겠어? 지나간 인연에게 바치는 감사함은 분명히 아니지만 영화는 다른 측면에서 우리의 시야를 넓게 도와준다.
무려 18년 전 영화
이 영화를 다시 보며 느낀 게 있다. 나탈리 포트만이 정말 미인이라는 것이다. 머리색을 빨간색부터 분홍색까지 가지각색으로 헤도 소화하는 소화력이 대단하다. 주드 로도 새삼 미남이란 것을 또 느꼈다. 이 두 배우의 젊은 시절 비주얼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가치는 충분할 듯. 또 18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캐릭터 설정을 창의적으로 잘했다. 어떤 이들에게 대입해도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정도다.
사랑에 실패할 예정인 모든 이들에게
우리가 세상을 떠날 거라는 건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한다 쳐도 그게 성공이 아닐 수도 있다. 영원한 건 없으니까. 그래도 항상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바보 같은(나 포함) 것이 우리 모습 아닌가. 이런 우리에게 상처의 치유와 화풀이에 대해 세 번 네 번 생각하게 만든 로맨스 영화다. 본 적이 없는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드린다.
#왓챠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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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썬더볼츠*>: 공허한 우울의 미로에서 널 구할 결심
어벤저스는 아이언맨으로부터 시작해 아이언맨으로 끝났다. 남아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점이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어벤저스와 타노스의 핑거 스냅으로 인한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든 어벤저스와 타노스의 핑거 스냅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CIA 국장으로 있는 발렌티나 알레그라 드 폰테인의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어벤저스는 안 옵니다“
맞는 말이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이 영화는 어벤저스에 대한 영화가 결코 아니다. 어벤저스와 옷깃 한 번 스쳐봤을까 싶은 나머지 사람들의 이야기다. 엔드게임 이후 여러 시리즈와 영화를 개봉하며 빌드업을 쌓아온 마블의 첫 완성작이라고 볼 수 있는 썬더볼츠. 이들의 이야기는 무엇으로 시작될까.
공허함이라는 미로에 빠진 기니피그
IMDB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짙게 깔려있는 공허함이라는 감정에서 시작한다. 공허함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날 괴롭히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옐레나가 느끼는 공허함도 그러하다.
아이언 슈트와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와의 독특한 부자 관계를 가진 아이언맨, 페기 카터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가슴속 깊이 지켰던 캡틴 아메리카,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로키와 얽힌 사연을 가진 토르까지. 어쩌면 이들이 겪었던 것도 일종의 공허함의 범위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어벤저스도 이러한 인간적인 문제들을 겪고 극복하며 진짜 히어로로 각성했다.옐레나를 포함해 이번 썬더볼츠의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게 이 영화의 포인트다. 어벤저스는 각자 지닌 문제를 스스로 극복했었다. 하지만, 썬더볼츠의 구성원들은 대단한 기술 능력을 얻거나 새로운 깨달음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인간적인 방식으로 상실과 결핍 그리고 공허함에 직면하며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각자의 감정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함께 위로한다. 옐레나를 선두로 썬더볼츠 인원들은 밥의 깊은 내면에 들어가 그를 그의 우울의 방에서 꺼내고자 애쓴다. 힘을 내야 해 따위의 위로가 아니다. 그 사람의 내면 깊은 곳을 살핀다. 거기서 같이 싸우고 같이 상처 입으며 우울의 미로에서 다 같이 나오려고 한다.
IMDB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각자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지니고 있고, 투덜거리면서 때로는 우울하다고 이야기하는 형 누나들이 두 팔 걷어 도와주는 모습이랄까. 나도 그랬었지, 너도 그랬었구나 하며 도와주는 모습에 가까워 보였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줬던 감동과는 달리 좀 더 와닿는 감동이 아닐까 확신한다. 특히, 썬더볼츠가 우울의 미로와 방을 도장 깨기 하는 장면은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이다.
위는 영화 내적으로 바라봤을 때의 이야기다. 사실 공허함이라는 것을 주인공들만 느끼진 않을 터다. 그 주체를 마블과 마블 팬들로 바꿔서 이야기하는 것도 어색하진 않다. 마블은 아이언맨부터 시작해 어벤저스 엔드게임까지 다시없을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지금의 썬더볼츠 까지, 스파이더맨을 제외하면 마블은 매 작품에서 혹평을 받았다.
관객 기대치에 못 미치는 영화로 하향곡선을 5년 이상 타왔다. 얼마 전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역시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으니까. 마블 역시 과거의 영광과 비교되는 현재 위치에서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다양한 시도는 하는데, 팬들이 좋아하지 않으니 말이다.마블뿐만 아니라 마블 팬들도 나름 공허하지 않을까. 높아진 진입장벽은 늘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 이로 인해 일반 팬들에 대한 마블의 외연 확장은커녕 팬층 자체가 얇아졌다 과하게 해석하면, 지난 10여 년 동안 일 년에 한두 번은 마블 영화를 보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을 관객들이 현재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까.
오죽하면, 속는 셈 치고 또 본다는 말이 나올까. 더 이상 새로운 추억거리가 쌓이지 않으니 이건 이거대로 기분이 상하는 일이다. 이런 팬심을 아는지, 썬더볼츠의 엔딩 크레딧에선 셀프디스와도 같은 내용의 장면들을 넣어놨다.(물론, 극의 내용에 따른 극안에서의 반응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완성도와 평가를 제쳐두고 마블 팬들의 마음이 어떤지 감독은 공감하고 있다는 것 같기도 하다.IMDB
이런 측면에서, 썬더볼츠는 마블과 팬들에게 은유적인 영화다. 이를 드러내는 또 다른 장면이 있다. 옐레나와 기니피그 장면이다. 미로에 갇힌 기니피그는 등장인물들을 의미하기도 하면서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한 복선이자 마블과 마블 팬들까지 투영한 장치로 보였다.
썬더볼츠 주인공 각자가 결핍과 공허라는 미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마블 역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발버둥 치고 있지만 여전히 같은 자리를 멤돌 뿐이며. 새로운 마블을 관람한 팬들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들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옐레나에 의해 실험실 미로에 갇힌 기니피그가 구출되는 장면에서는 소박한 희망도 엿볼 수 있었다. 옐레나를 선두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썬더볼츠가 결성되는 모습을 통해 이 영화, 썬더볼츠가 어벤저스라는 과거의 영광이라는 미로에서 마블과 마블 팬들을 꺼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감독의 소박한 희망 말이다.
마블이 지금까지 실험해온 엔드게임 이후의 여러 영화들처럼 그저 실험적인 시리즈로만은 남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물론, 미로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했는지 아닌지는 온전히 관객들이 평가하겠지만.마블, 부활했나?
아무리 좋은 영화라고 해도. 보는 사람에 따라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썬더볼츠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으로 이야기가 나오지만, 높아진 진입장벽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계속 심해질 거다. 이제 마블 영화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몇몇 캐릭터의 쓰임이 아쉽다. 태스크마스터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블랙 위도우>편에 처음 등장하며 나타샤 로마노프와 대등한 수준으로 그려졌었는데, 극 초반에 너무 쉽게 사망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유를 잘 모르겠다.IMDB다음은 레드 가디언이다. 시종일관 영화의 분위기 메이커로 그려진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따지면 드렉스와 비슷한 인물이다. 힘도 세고, 나름대로 개그를 시전하는 모습까지. 하지만, 썬더볼츠에서 계속 ”위 아 썬더볼츠“ 라고 힘주어 말하는 역할과 일부 코믹한 내용을 빼면 역시 어떤 맥락에서 이 캐릭터를 이해해야 할지 갸우뚱하게 된다. 그저 재미만 있으면 되는 건가? 아니면, <블랙 위도우>에 등장했고 거기서 옐레나와의 관계는 다 설명했으니까 이 캐릭터는 이 정도로 사용해도 된다는 건가 싶었다.
IMDB
고스트도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태스크마스터 말고 고스트가 극 초반부에 사망했다고 한들, 영화의 큰 흐름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태스크마스터 만큼 고스트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는 답변을 내놓기가 어려운 애매한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센트리. 밥이 센트리로 잘못 각성하는 부분에서 센트리 능력에 대한 설명이 부실했다.
검은색과 어둠을 특징으로 하는 센트리라서 그런 능력이 나온 것이라는 추론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정도로 퉁치려고 한 거라면 감독의 섬세함이 아쉬워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밥의 가정불화 문제가 타노스 이상의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센트리로 각성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이게 맞나 싶다.
이런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소소하게 재미있는 장면들도 많았다.
특히, 여러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극 초반 옐레나의 실험실 액션 장면은 누구나 알 수 있듯 올드보이의 장도리씬을 오마주 한 것으로 보인다. 마블에서 올드보이를 오마주 했다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버키가 오토바이를 타고 유도탄득 한 손에 들고 질주하는 장면은 터미네이터를 떠올리게도 했다.
IMDB
모처럼 버키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흡족했다. 그리고 스타크 타워를 향해 운전하는 버키에게 레드 가디언이 계획이 있냐고 묻는 순간에 타고 있는 차량을 냅다 건물 입구로 박아버리는 장면은 다크나이트 조커의 스쿨버스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짭-캡틴 아메리카 존 워커 전투씬의 한 장면은 스티브 로저스와 윈터 솔저가 도심에서 싸우는 장면을 오마주 했고. 센트리가 총알을 막는 장면에서는 매트릭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총알 멈추는 장면이야 많이 재생산된 거라서 이제는 오마주라고 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스타크 타워에서 엘리에베이터로 움직이는 장면은 어벤저스 모습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상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이번 작품만으로는 과거의 추억과 영광을 원하는 마블을 구하기엔 힘에 부쳐 보인다. 그리고 마블 팬들을 새로운 챕터로 확실하게 이끌어 갈지도 확신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블이 조금은 정신 차린 건 아닐까 하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썬더볼츠이자 새로운 어벤저스가 어떤 이야기를 그려 나갈지 기대되는 작품이긴 하다.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기존 히어로 영화답지 않은 서사와 연출이 돋보인 영화였다. 속 시원한 재미는 없을지는 몰라도 깨알 재미는 충분하니 극장에서 보기에는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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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마주할 나의 상처에 붙이는 마블식 반창고 한 장
갈 수록 높아져만 가는 전체 시리즈의 진입장벽, 반복되는 히어로물 특유의 클리셰들과 서사로 지쳐가던 관객들의 흥미도는 마블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크나큰 숙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숙제를 풀기 위해 채택한 방법은 좀처럼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실망한 관객들은 마블에서 등을 돌린 지 오래됐다. 수많은 선택과 그 선택이 낳은 실패와 실망에 맞아보고 나서야 드디어 마블은 무언가 깨달은 듯, 영화 <썬더볼츠>를 개봉시켰다. 꽤 비장하게 말하고자 하는 이유는 영화가 지난 몇 편의 작품들과는 달라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본 작품을 모두 관람한 후 마블이 앞으로 어떠한 선택을 해나갈지 결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썬더볼츠>는 특이하게도 액션이 주(主)인 작품이 아니다. 어쩌면 액션 보다는 감정, 위로, 용서, 후회와 같은 인간의 정서가 지배하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실망스러웠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액션씬들이 유달리 흥미롭게 여겨질 정도로 매력 있었다고 보기란 어렵다. 또한 이런 액션씬들 만큼이나 전반적인 소품과 각종 의상들,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기 위한 몇몇 개의 유머씬들 또한 충분히 재미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의 본 작품의 특출난 장점 내지는 특징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화 <썬더볼츠>를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여 더욱 좋은 작품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감정의 영화'라는 마블이 이전에 사용한 적 없는 장르를 감행했음에도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인상 깊게 다가왔을까?
최근 히어로물 관련 텐츠들을 종합적으로 놓고 보면 공통으로 포착되는 점은 바로 영웅의 불완전성이다. 요즘은 슈퍼맨처럼 완전무결한 영웅 서사보다는 현실적이고 고통을 느낄 수 있으며 정서적 불안에서 오는 심적 고뇌 그리고 이를 극복해가는 입체적 서사를 더욱 선호한다. 근래 히어로 장르 내에서 영화의 첫 장면부터 완벽하고 대단했던 인물이 끝날 때까지 그 모습을 이어 나가 결국 순전히 비열하고 악독하기만 한 악당을 물리치는 작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이던 인물이 세상에 복수심과 혐오감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려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어 나가면서 영웅뿐만 아니라 악당에게도 소위 '당위성'을 부여한다.
영화 <썬더볼츠>도 이 당위성과 정당성에 집중하여 히어로로 비는 인물이 왜 히어로가 되었는지, 처음부터 히어로가 아니었던 인물들이지만 영웅이 되고자 선택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비춘다. 이 지점들을 지루하거나 매우 흔한 방식이 아니라 마블이 그동안 해오던 방식인 몇몇 볼만한 액션과 유머씬을 통해 해결했다는 점이 본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이 설득이 대단히 자연스러웠고, 몇 군데에서는 어색함이 다소 느껴지기도 하였으나 그럼에도 본 작품이 관객을 도중에 유기시키지 않고, 본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끝까지 친절히 설명하고자 노력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작품을 모두 보고 난 후 생각해 본다면 영화 속 진정한 악당은 "센트리"도 "발렌티나"도 아니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나의 진정한 악당은 나의 내면 속에 있는 어둠, 공허함, 나의 어떠한 선택도 믿어주지 않고 감싸주지 않으려 하며 나의 성장을 방해하는 이 녀석이 우리의, 영화의 진짜 악당일지도 모른다. 작품 속 "센트리"의 가장 강력한 능력은 대단한 힘이나 비행 능력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트라우마와 어둠 속에 스스로를 가둬놓는 능력이다. 그 능력으로 인해 작 중 영웅들도 고통과 고뇌의 시간을 겪게 되고, 아픔을 직면한다. 이를 이겨내는 방식 또한 영화는 제시한다. 물리적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신'급의 빌런과 힘만 조금 센 영웅들의 끝마무리는 육체적 싸움이 아닌 서로의 상처를 안아주는 위로로 정리된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보면 작품 속 어려서부터 최고 정예 스파이로서 훈련받아 왔지만 사실상 능력적으로는 크나큰 메리트가 없는 인물인 "앨레나"가 작품의 가장 큰 비중을 가지고, 가장 큰 능력을 갖 인물처럼 보이는 이유도 자신의 아픔을 직면하여 이를 이겨낼 용기가 있고, 자기뿐만 아니라 곁에 본인처럼 힘들어하는 이들을 보듬어줄 힘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단순히 히어로물이라고 해서 싸우고, 죽이고, 폭력을 가해서 정의를 실현하려 하지 않는다. 마치 그런 추세는 지났다고 말하듯 본인들이 새로운 추세를 이끌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장담은 필자에겐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마블의 페이즈 1, 2, 3, 4 때의 작품들과 요즘 마블 작품들을 모두 비교해 본다면 분명 기술의 발전, 영화 산업의 급성장을 통해 액션이나 CGI 기술 등으로 볼거리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화려한 볼거리를 이용해서도 관객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부족했던 것인가. 이번 작품, 영화 <썬더볼츠>를 통해 하나쯤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마블 영화, 히어로물 영화라 하더라도 현란하고 휘황찬란한 스크린 속 볼거리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볼거리들로 어떻게 관객들을 설득하고, 동화시키며, 그들의 감정을 어떻게 이용할 지에 대한 구상 내지 서사적 구조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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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고 느리고를 떠나서 그 기억은 오래 남아있다.
시놉시스
스메라기 하지메는 남들보다 빠른 사람이었다. 시험을 볼 때나 달리기를 할 때도 먼저였으며 어른이 된 후에 교토의 우체국에서 직원으로 일한다. 한편 초소카베 레이카는 남들보다 느린 사람이었다. 시험을 볼 때도 달리기를 할 때도 느렸으며 모기도 잡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잘할 수 있는 건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 둘의 만남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게 되는데... 과연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
둘의 인연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스메라기 하지메와 초소카베 레이카는 어린 시절에 만났던 인연이다. 하지만 스메라기 하지메는 초소카베 레이카를 잊고 지냈고 교토에서 쭉 살았다. 초소카베 레이카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교토로 여행을 가다가 연쇄 추돌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자신은 병원에서 입원했으며 그때 스메라기 하지메를 만났는데 스메라기 하자메의 다정함에 살 용기를 얻는다.
시간이 흐른 후에 초소카베 레이카는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지만 스메라기 하지메는 그 기억을 잊고 살았는데 둘이 다시 만난 건 우체국에서 우연의 사건들의 연속에서 시작되었다. 그 우연의 사건들은 손님이 왕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대학교수가 스메라기 하지메가 일하는 우체국에 와서 난동을 부린 것과 사쿠라코라는 여자 버스킹 가수가 스메라기 하지메에게 도시락을 건네고 오는 순간부터였다. 사실은 초소카베 레이카가 그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우표를 사러 갔었는데 스메라기 하지메는 단순히 손님으로 본 것이다.
스메라기 하지메가 좋아한 사쿠라코라는 여성의 본심은?
사쿠라코라는 버스킹 여자 가수를 좋아하느라 정신이 팔린 스메라기 하지메는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주겠다며 애정 공세를 펼치는데 사실 사쿠라코의 이면에는 남자들을 등쳐먹고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 협박하고 거금을 뜯어내는 나쁜 여자였다. 그런 사쿠라코에게 넘어가버린 스메라기 하지메를 구하기 위해 초소카베 레이카는 뒤에서 사진을 찍으며 미행했다.
미행을 당한 걸 들킨 사쿠라코는 초소카베 레이카에게 왜 미행을 했냐며 따지는데 둘은 주점에 가서 얘기를 나눈다. 그런데 싹수가 없는 사쿠라코에게 초소카베 레이카는 스메라기 하지메를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경고를 하고 내일 만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쿠라코가 스메라기 하지메를 찌질이라며 비아냥 꺼렸기 때문이다. 또한 40만 엔의 거금을 스메라기 하지메에게 뜯어내려고 했었고 자신은 이제 데뷔를 한다며 거만하게 굴었다.
갑자기 시간이 멈춰버린다면?
이 영화에서는 판타지적인 요소도 들어가 있는데 바로 이름의 획이 길거나 느린 사람들에게 신들이 시간을 되돌려 주려고 시간을 멈추어준다는 것이다. 스메라기 하지메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죽으러 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멈춰버리자 그게 마음대로 안됐다고 한다. 초소카베 레이카와 버스 기사만 시간이 멈춘 걸 인식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스메라기 하지메의 아버지도 두 번이나 겪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정작 자신은 가족을 사랑했고 버리고 간 게 아니라는 스메라기 하지메의 아버지는 시간이 또 한 번 멈추자 자신의 아들과 아내에게 할 일을 하고 사라진다.
스메라기 하지메에게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스메라기 하지메의 사진이 사진관에 떡 하니 붙어있는 걸 보고 스메라기 하지메는 의심을 품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항상 7시 정각에 일어나 출근을 하던 그가 알고 보니 하루 건너 뛴 월요일에 일어났고 사쿠라코에게 줄 40만 엔이 전자레인지에 있었고 자신은 피부가 새빨개 탄 채로 있었는데 그건 시간이 멈춘 날에 초소카베 레이카가 자신을 기억하게 만들려고 스메라기 하지메가 자주 타는 버스에 가자 40만 엔이 든 봉투를 훔치려는 괴한을 막고 3시간이 되는 거리를 버스 기사에게 가달라고 한다. 그곳은 스메라기 하지메가 초소카베 레이카를 기억할 만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초소카베 레이카는 멈춘 스메라기 하지메를 끌고 가 해변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이 영화는 대만의 영화 진옥훈 감독의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원작을 하고 있다. 남들보다 빠른 남자와 남들보다 느린 여자가 어린 시절에 만났지만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여자와 그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딱히 로맨스 장면이 크게 나타나지 않지만 그때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고마운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남들보다 빠른 남들보다 느린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기억을 훑어보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