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별2021-06-29 09:52:16
나이를 먹는 즐거움을 아는 피터가 되길
오후 반차를 쓰고 다녀온 영화 《웬디》 시사회. 웬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누군가는 레드벨벳의 멤버인 웬디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앞서 엔디라는 이름은 계속해서 사용됐다. 바로 피터팬 속에서 말이다. 엄청 어렸을 때 피터팬을 동화를 접한 이후 관련 내용을 영화로 만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피터팬 탄생 110주년을 기념으로 새롭게 실사화 된 영화 《웬디》. 기대가 컸던 작품이었다.
영화 《웬디》 시놉시스
피터팬 탄생 110주년 기념,
새로운 주인공, 새로운 시각의 All New 피터팬!
기찻길 옆, 작은 식당이 세상의 전부인 소녀 웬디는 내면에 차오르는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매일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가 나타나고 웬디와 쌍둥이 형제 더글라스, 제임스를 이끌고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어린이로 살 수 있는 신비로운 섬에 도착한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웬디》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밝은데 어둡단 말이지
영화 《웬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약간 그로테스크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고 너무나도 행복한 자유의 세상을 만끽하고 있지만 그 순간 흘러나오는 bgm들은 굉장히 어둡고 서늘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긍정적이고 희망에 찬 부분과 부정적이고 암울한 부분이 함께 보여지다 보니 이 감정은 무엇일까?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신기해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이 작품이 나이를 먹는 것이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이 두가지 양면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연출적으로도 긍정과 부정의 요소를 관객이 한 순간에 느낄 수 있도록, 그 괴리감과 불편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딜가나 사회는 존재하고 위계는 생겨난다
영화 《웬디》 의 피터는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엄청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나이를 먹지 않고 언제나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살고 싶은 꿈이 있는 소년이다. 그래서 네버랜드 속에서 나름의 질서를 구축하며 아이들을 인솔하고 함께 살아간다.
영화 《웬디》 속에서 아이들이 아무리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네버랜드 속에서도 어른들의 규칙, 즉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터는 자신의 말을 듣는 아이들을 원하고 통제가 되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아무리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라면 어딜 가서나 소속과 지위를 만들고 그 속에서 위계를 만들어나간다는 인간의 본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이를 먹는 즐거움을 알게되는 날이 오길
그렇게 네버랜드에서 절대자처럼 영원한 아이로서 군림하고 있는 피터. 하지만 웬디는 피터와 함께 네버랜드에서 지내며 깨닫는다. 어린아이로서 지내는 시간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 나이들어가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고 그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새로운 나이에 접하는 경험은 언제나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고 그것들이 쌓여 소중한 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기억하며 삶을 살아가고 온전한 나를 만들어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었다.
영화 속 네버랜드는 자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들이 어린아이와 노인이라는 캐릭터로 정지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자존감을 키우고 자신의 못난 점이든 잘난 점이든 그것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나이를 먹는 것이 또 다른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피터팬의 새로운 해석이 만난 영화 《웬디》. 즐겁지만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네버랜드의 세계로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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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나와 대화의 마법
기차에서 난데없이 부부싸움이 벌어진다. 책을 읽다 봉변을 당한 한 승객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자리를 옮겨 앉는다. 옆 줄에 앉은 다른 승객과 공감의 눈빛을 잠시 주고 받는다. 하지만 남자 쪽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한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무슨 책 읽어요?’라고 묻는다. 폭풍 같은 부부싸움이 객차에서 빠져나가고 나서도 두 주인공,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의 대화는 계속된다. 그들은 식당 칸으로 옮겨 대화를 시작하고, 대화를 멈추지 못해 식사까지 함께 한다. 그러면서 또 다시 우연히도 서로와 놀랍도록 말이 잘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 제시는 셀린에게 비엔나에 함께 내려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에 공항으로 출발하자는 제안을 한다. 망설이던 셀린은 제안을 받아들인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는 이 우연한 에피소드로 문을 연다.
셀린은 처음 만난 남자를 따라 기차에서 내리고, 영화는 계획도 없이 여정을 시작한 두 사람의 끊임없는 산책과 대화 속으로 관객을 이끈다. 이렇게 시작한 영화는 이내 할리우드식 로맨스 공식을 완전히 비껴 가면서 자기만의 낭만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비포 선라이즈>는 리얼리즘 영화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판타지 같은 로맨스다. 존재 자체로 90년대의 청춘 영화이자,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에게도 이런 일이 생길 지 모른다는 몽상을 가능케 하는 영화다. 나의 어머니의 가장 큰 낭만이었고, 21세기를 사는 나의 근원 없는 향수다.
플롯은 아주 간단하다. 두 남녀가 만나서 계획 없는 여행을 시작한다. 둘은 밤새도록 비엔나 거리를 소요하며 대화를 나누고, 잠시 연인이 된다. 날이 밝으면서 영화는 끝난다. 하지만 이 하룻밤을 링클레이터 감독은 수많은 대화로 채워 넣는다. <비포 선라이즈>의 모든 시퀀스는 두 사람의 끊임없는 말소리로 구성되면서 찬찬히 길어져 3분이 넘도록 이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영화 중반에 두 사람이 대성당을 발견하는 시퀀스가 있다. 두 사람은 성당 맨 앞자리에 앉아 성당에 엮인 추억과 신에 대한 믿음, 공간으로서의 성당, 심지어는 퀘이커교 식 결혼식에 참석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대화는 ‘신이 있다면 너와 내 안이 아니라 우리 사이의 공간에 있을 거야’ 라는, 둘만의 명쾌한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다음은 강변이다. 두 사람은 시인을 만나고, 짤막한 즉흥 시를 듣고, 걷고 또 걷고, 말하고 또 말한다. <비포 선라이즈>는 이렇게 제시와 셀린이 나누는 대화로 채워 넣은 시퀀스가 비엔나의 골목길처럼 연결되어 일출에 다다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로맨틱하고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링클레이터의 이 길고 긴 대화 장면으로 이루어진 영화를 ‘아무런 내용이 없다’고, ‘지루하다’고 평할지도 모른다. 특히 흥미로운 캐릭터와 세계관을 던져 주고 영화의 성적에 따라 다음 시리즈에서 그 인물의 과거와 세계관을 확장을 맛볼 수 있는 대형 프로덕션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에게는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티켓 값을 하는’ 스펙터클을 제공해 주는 작품을 원하는 관객, 그리고 미래의 관객에게 이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단박에 가늠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포 트릴로지’가 낭만적인 영화로 회자되고 시청되는 이유는 셀린과 제시의 관계가 현실과 이상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이다. 이 점은 여타 할리우드 로맨스가 완전한 환상으로 관객을 미혹하는 방식과는 다른 특별함을 말해 준다. 바로 어떤 관객은 ‘지루함’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는 그 지점이 비포 트릴로지를 독보적으로 만든다.
<비포 선라이즈>는 ‘현실과 이상을 동시에 지닌’관계를 두 배우의 대화를 통해 쌓아 간다. 두 사람은 같은 의견을 지닐 때도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어긋난다. 예를 들어 손금을 보겠냐는 한 집시의 물음에 그러겠다고 대답한 셀린에게 자신은 그런 미신은 믿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그렇다. 두 사람은 너무 잘 맞아서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철학을 지녔고, 그것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할 줄 알기 때문에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다. 그렇기에 차이점은 논쟁이 되지 않고 되려 하룻밤 여행을 이어 나가는 동력이 된다. 이런 점들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끌리고, 관객은 제시와 셀린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 나간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가 계속될 것인지 아닐지에 대한 걱정은 무의미하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대화를 전면에 내세워 셀린과 제시를 그린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겨난다. 영상 언어를 구사하면서 말없이 주제의식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영화의 가장 주된 임무를 <비포 선라이즈>는 수행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이 질문에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시나리오에서 꺼내 입은 제시와 셀린이 답해 준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말하지만, 잔뜩 감상에 젖어 극장을 나서는 관객이 기억하는 것은 결국 쇠라의 그림이 프린트된 팜플렛을 훑는 셀린의 손가락, 전차 맨 뒷자리에 앉은 두 사람, 작은 절도를 저지르고 내달리는 순간의 짜릿함, 그리고 음악 감상실 안에서 서로를 힐끔 쳐다보는 눈길이다. <비포 선라이즈>는 대화에서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셀린과 제시인 두 배우, 비엔나를 걷고 또 걸음으로써 만남을 관계로, 대화를 캐릭터로, 비엔나를 낭만으로 변환한다. 그것이 링클레이터가 각본과 대화로 부린 마법이다.
비포 트릴로지는 ‘선라이즈’에서 끝나지 않고, <비포 선셋>을 거쳐 <비포 미드나잇>에 이른다. 뒤의 두 영화는 <비포 선라이즈>에서 생겨난 마음과 관계를 다른 도시에서 이리저리 움직임으로써 자꾸만 타임머신을 타게 한다. <비포 선라이즈>가 관객을 미혹하게 한 이유, 그리고 트릴로지로 발전하게 된 이유는 영화에서 다루기 어려운 길고 긴 대화를 매력적으로 촬영해낸 솜씨와 두 배우의 완벽한 연기에 있다. 두 사람 실제 시간과 함께하면서 자연스레 나이 든 배우들과 자연스레 변화하는 두 캐릭터의 관계를 담은 시리즈라는 매력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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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절대 내 뒷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 글을 몇 번이고 지웠다. 일 하기 싫다. 공부하고는 싶다. 근데 들인 노력에 비해 올라가지 않는 실력에 또 나 자신에게 좌절했다. 이 세상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에 앞이 깜깜했다. 나지막하게 입에서 욕을 하려다가 참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방구석에 앉아서 게임을 하지 않았다. 주체적으로 주말을 보냈고 나름 성공적이었다. 새벽 두 시에 자서 오후 4시에 일과를 시작했으니 게임만 하던 예전의 나보다는 더 발전한 셈이다. 어제는 강박인지 재미인지 나 스스로도 구분 안 될 게임을 접으려고 했다. 그럴 시간에 공부를 해서 나의 어떤 점수를 올리는 것이 도움된다는 걸 진작에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패했다. 오늘도 이랬다. 열심히 살고는 싶지만 내 생각 외의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이 다 정해져 있는 무언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이런 노력들 다 할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이 루틴의 끝이 어디쯤에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알 수 없었다. 이 수많은 뻘짓거리의 끝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돈 얼마 벌어도 결국 어떻게 쓸지 고민하게 되고 그에 따른 후회가 온다. 아빠 노트북을 사 주면 후회하지 않게 될까. 맥북을 새로운 걸로 갈면 후회하지 않게 될까. 아주 사소한 인생의 질문들이 머리 위를 뱅뱅 맴돈다. 그럴 수 있지라는 대답과 그래서는 안됐었다는 답이 나온다. 금세 나는 지금 나에게 없는 것들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얼굴도 떠오르고 어떤 물건들도 생각난다. 그게 나에게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수도 없이 되묻다 보면 한 정답에 수렴한다. 원인과 결과에 대해 머릿속에서 수천번 따진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나는 보이는 것만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만 결론을 내린다. 누가 나에게 말을 건네주어 위로라도 해주길 원하지만 사실 아무 의미 없다. 애초부터 이 지긋지긋한 루틴에는 답이 없었다. 인생은 이렇게나 뭐 같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생각 외의 너머를 알 수 있을까. 갑자기 이 세상에서 친절한 건 무엇일까, 하는 의문점이 든다. 진짜 내 편인건 과연 무엇일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인생은 이렇게 외로운 게 맞다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뒤를 돌아볼 구석이 필요하다. 내가 아는 세상은 너무나도 잔인하기 때문이다.
<하나 그리고 둘>은 영화에 관한 영화다. 주인공은 8살 소년 양양이다. 양양의 카메라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가족들의 얼굴을 찍는다. 가족 구성원들이 처한 상황은 가지각색이다. 일단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배경으로 설명되는 가족 행사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아빠 NJ의 처남 아디의 결혼식이 영화 초반에 제시된다. 평범한 가족 행사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 결혼에는 비밀이 있다. 결혼의 계기가 혼전임신인 것도 모자라 아디는 불륜 중이었기 때문에, 이 불륜의 대상이 된 여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결혼식에 개입한 것이다. 이 일로 마음이 불편해진 할머니는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영화는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느릿느릿 보여준다. 첫 번째 아빠 NJ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아빠 NJ에게 결혼식 도중 옛사랑이 찾아온다. 당연히 싱숭생숭해지는 아빠 NJ. 또 이것과는 무관하게 계속해서 벌어지는 인생의 좌절에 엄마 밍밍은 절로 떠나버린다. 딸 팅팅과 할머니 사이에도 사건이 있다. 팅팅이 버리지 않은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 할머니가 심장발작으로 쓰러진 것이다. 할머니의 건강 악화가 자기 탓일 거라 믿으면서도 한편으론 친구 패티의 전 남자 친구와 눈 맞기 5분 전에 놓인다. 아들 양양은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 게 아니면 사실 학교에서 썩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각자의 인물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엄청나게 느린 화법으로 전달한다. 아마 러닝타임 세 시간 중 거의 2시간 30분이 느린 템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위의 단락도 내용을 잠깐 요약해서 저 정도인 거지 영화 1 회독이 그렇게 쉬운 편은 아니다. 난 이 작품 초반 1시간에서 하차를 두 번이나 했다. 템포만 문제인 게 아니다. 느릿느릿한 화법에 등장인물이 많다는 것도 이것을 유발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인물의 관계 때문에 영화 안에서 갑자기 혼란스러워지는 지점이 있는데, 패티는 말랐는데 뚱보라고 불린다던가, 갑자기 느닷없이 패티가 팅팅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난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화를 내는 장면을 몇 번이나 더 봤다. 잔잔한 템포에 갑자기 화를 내니까 이건 뭐지 싶었던 것이다. 영화 자체가 하나의 키워드를 통해 줄거리를 이끄는 형식이 아닌 주인공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조명한다. 말이 영화지 다큐보다 더 심심한 영상이었다. 근데 이건 후반부 끝까지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작품의 종반부에서 모든 게 다 정리된다. 패티가 느닷없이 한 명을 죽이는데, 이는 리리와 리리의 어머니 둘 다 함께 부적절한 관계이던 영어 선생님이었다. 아무 뜬금없이 이 사실이 드러나진 않겠지? 난 살인사건과 후에 할머니가(환상이었지만) 살아 계신 듯한 연출을 보고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하나만 비틀어서 은유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딱 아는 것만 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애초부터 알 수 없다. 우리는 그걸 알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걸 다 알고 살았으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영화도 이런 우리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팅팅이 패티에게 받은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근데 그게 좋은 내용이었든 나쁜 내용이었던 팅팅이 결과를 바꿀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다른 문제. 그래서 할머니가 진짜 쓰러진 이유는 뭘까? 진짜 팅팅이 버지 않은 쓰레기 때문일까? 셰리는 재결합을 원했는데 왜 연락 없이 떠났을까?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철저하게 감춘다. 할머니가 쓰러진 이유는 팅팅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셰리가 갑자기 튀어나온 이유? NJ에게 역시 중요할 것이다. 양양은 수영을 하는 같은 반 여학생에게 마음이 있어 따라 해 보지만 물에만 풍덩 빠지고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다. 가족 구성원들은 목적에 따라 살아가지만 이 사람들에게 이 목표는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목적만큼 중요했던 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영화는 '내가 뭘 하러 온 거지?'나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와 같은 대사로 '살아있는 증거는 무엇인가?'에 대해 조명한다. 할머니 앞에서 하는 이야기들, 엄마의 실신으로 울부짖으며 했던 대사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했던 잡생각들. <하나 그리고 둘>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것에 다룬다. 마치 인생의 의미에 욕망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어쩌면 이건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가 삶의 목적이나 실패, 성공 그런 것 때문은 아니지 않은가. 난 내 원래 취지에서 굉장히 어긋난 인생을 살고 있고, 하루에도 몇 번은 후회한다. 근데 더 웃기고 슬픈 건 이런 일들이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난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원인을 찾기 시작한다. 아. 그래서 그게 그렇게 됐지. 그때 걔가 그렇게 말했을 때 이랬었으면 어땠을까. 사실 이 생각에 답은 없다. 어차피 인생은 잔인하고 목적이 분명하다고 해서 행복을 갖다 주지는 않기 때문이란 걸 우리 스스로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건 나른함에서 왔다. 공익근무요원을 하며 버티는 지루한 하루하루.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 속에 꼭 표현하고 싶은 내 마음. 토익 책을 사려다가 엄마 아빠와 맛있는 걸 먹을 때의 쾌감. 뭐 그런 것에서 나는 생의 의미를 느꼈던 것 같다. 항상 이것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 너머의 무언가를 알려줬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본다. 영화는 보이는 것 너머에 대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카메라로 사람들을 관찰한다. 가끔 내레이션도 나오고 CG도 나온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우리는 주인공의 마음을 알 거라고 믿는다. 감정이입이란 이걸 근거해서 나타난다. 내가 저랬으니까. 저 사람도 그러겠지. <이터널 선샤인>이 좋은 작품인 이유도 여기에서 온다. 우리가 아는 사랑의 의미를 공유하는 공통분모를 정확하게 건드리기 때문이다. 근데 사실 우리가 이 <이터널 선샤인>에 공감하는 이유가 찰리 카우프먼의 해설을 들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랑을 바탕으로 리액션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참 웃긴 것이다. 나는 저 사람이 아닌데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내면이 보이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영화를 보고 공감한다. 보이는 것 너머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삶도 비슷하다. 나는 내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존경하며 존중하고 또 사랑을 주려고 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앞과 뒤지 내면은 알 수 없다. 또 근데 웃긴 건 인간의 이런 속성을 우리가 모르고 있을까? 위험부담? 이미 알고 있다. 애초부터 삶이 분명하게 제시는 게 하나도 없는데도 우린 무언가를 본다고 믿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항상 쓴 대가를 치르면서, 다 알면서도 난 인생에게 계속 속는 셈이다. 삶은 이 지점에서 영화와 비슷하다. 뜬금없는 반전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예상을 뒤엎지 않은 채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목적이 애초부터 정해져 있지 않았는데 영화의 결말을 예상하다 뒤통수를 맞는 것처럼 삶은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지배받는 것투성이다.
그래서 삶이 아름답다. 또 내가 앞에서 서술한 영화를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삶이란 예상치도 못한 것에 지배받는 것이 아닌 모르는 것투성이 속에서 내가 알 수 있는 걸 넓혀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고 각자 느끼는 감상이 다르기 때문에 영화가 아름다운 예술이기도 하다. 이게 내가 살면서, 또 몇 년간의 (자칭) 시네필로서 느낀 결론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 이외의 요소로 인해 삶이 결정된다는 걸 잘 안다. 이 요소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절반쯤은 될 것이다. 근데 우리는 행복해진다. 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사실을 천천히 따라가는 예술이다. 현실과는 다르게 정해진 틀에서 보는 예술이다.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이 각자 다른 것처럼 우리는 다른 것들을 믿어 행복해진다. 어차피 불행할 것이라는 걸 다 알면서도.
그러니까 너무 애쓰지 말자. 지금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우리에겐 정말 좋을 것 같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우리 스스로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것도 우리의 극히 일부분에 대해서만 안다. 근데도 어찌어찌 살아진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자아의 특성은 반대로 생각하면 모르는 것 투성이에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니!로 귀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이유. 우리는 모든 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이 예술은 이것을 너무나 훌륭하게 구현해낸다. 특히 <하나 그리고 둘>이란 작품은 삶을 통제하는 것이 아닌 흘러가는 대로를 보여주며 삶의 본질을 그려냈다. 우리는 우리의 뒷모습을 애초부터 볼 수 없다. 근데 뒷모습을 볼 수 없어 행복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반쪽짜리 진실에 목 메달 필요 없다. 아니, 우리는 반쪽짜리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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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균열에 선 이방인들
빅토르 고라야 & 이디스 라이언스
<이어즈 앤 이어즈(Years and Years)>(2019, HBO & BBC)
* 위 작품의 장면과 결말, <잇츠 어 씬(It’s a Sin)>(2021, 영국 채널4)의 핵심 전개 포함.
2021년 공개된 리미티드 시리즈 <잇츠 어 씬>은, 8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퀴어 커뮤니티와 에이즈 위기를 다룬다. 마지막 에피소드, 에이즈에 걸린 주인공 리치 토저의 건강이 악화되자, 엄마 밸러리 토저는 아들을 외부와 단절시킨다. 리치의 베스트프렌드 질 백스터가 밸러리를 설득하기 위해 애쓰지만, 밸러리는 퀴어혐오적이고 회피적인 반응을 보이며 질의 호소와 리치의 고백을 무시한다. 리치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도,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질은 밸러리에게 말한다, ‘당신이 심어놓은 수치심shame이, 리치와 그 모든 이들을 죽인 거’라고.
부러 암울한 톤으로 소개했지만, <잇츠 어 씬>은 리치와 친구들의 하루하루에 넘쳐나던 슬픔과 기쁨, 사랑과 우정, 눈물나는 연대를 담은, 시끄럽고, 신나고, 풍부하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작품이다. 부족한 소개 대신 죽어가던 리치의 대사를 인용한다, “거짓말하기 싫어요, 왠지 아세요? 난 진짜 재밌었었거든요, 그 모든 남자들이랑.” 말하려던 건: 작가 러셀 T. 데이비스가 사회적 이슈와 긴밀하게 연결된 작품에서 메인 캐릭터의 목숨을 앗아가는 까닭은, 그저 다른 메인 캐릭터에게 동기를 부여하거나 시청자의 감정적 몰입을 유도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도록”(프랜 백스터) 돕는 스토리텔러다. 죽음이 발생하는 과정, 전후의 맥락, 당사자와 주변 인물들의 액션/리액션을 촘촘히 관찰하며 현실의 시청자가 사회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2019년, <이어즈 앤 이어즈>에서는 대니얼 라이언스가 죽음을 맞이했다. 영국 공무원인 그는 수용 가능 인원을 훨씬 초과한 알루미늄 갑판 쪽배를 타고 남자친구와 바다를 건너다 익사했다. 이 글은 대니얼보다는 빅토르에 대한 이야기다. 여러 해 난민 신분으로 유럽을 떠돌던, 불법적인 일상이라도 얻고자 약혼자와 함께 바다를 건너다 ‘어쩌자고 홀로 살아남은’, 인간보단 ‘사건’으로 그려졌을 수도 있었던 그에 대해. 그리고 그 곁에 섰던 대니얼의 시스터 이디스에 대해, 기이해져만 가는 세상을 외면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그들의 필연적인 유대감에 대해, 사심과 디테일을 얹어 적었다.
<이어즈 앤 이어즈>는 2019년 기준 근미래 영국을 배경으로, 이후 10+a년 동안 대가족이 맞닥뜨리는 변화들을 다룬다. 말하자면 SF이나, ‘매년 다시 봐야 한다’, ‘거의 다큐멘터리다’, ‘예측이 무서울 정도다’ 등의 코멘트가 붙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상당히 서늘한데, 또 그렇지만은 않다. 인류의 앞날을 비관하다가도 결국 인간을 믿는다. 그 중심에는 거의 판타지적으로 아름다운 두 인물이 있었다. ‘중심’이라고 적으니 조금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다, 그들은 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으니. 시리즈의 오프닝, 로지 라이언스의 둘째 링컨의 탄생과 더불어 메인 캐릭터-라이언스 패밀리-와 시대적 배경이 자연스럽게 소개될 때, 이디스는 일상적으로 부재하고 빅토르는 등장 자체를 않은 상태다. 이들은 ‘이야기 중간에 끼어드는’, 어떤 ‘노말’/‘스탠다드’가 아니거나 아니고자 하는 인물들이다. 이디스 라이언스는 세상의 변두리를 찾아다녔고, 빅토르 고라야는 ‘사회’에서 튕겨져 나가거나 울타리 안에 갇혀 ‘없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빅토르 고라야와 대니얼 라이언스
- “You are a beautiful person.”
링컨이 태어나고 몇 년 후, 작품 상 우크라이나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장악한다(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공개된 시리즈다). ‘숙청’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며, 성적 소수자도 그 대상이다. 우크라이나 난민 임시 거주지에서 근무하던 대니얼은, 게이라서 ‘불법인간’이 된 빅토르를 만난다. 흔적이 남지 않는 전기 고문을 당한 그는, ‘영국에 망명 신청을 했지만, 정부가 고문당했다는 증명을 요구해 진행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서 잠깐 오프닝으로 돌아간다.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던 동생 로지의 전화를 받기 직전, 대니얼은 연인 랄프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정치인 비비언 룩은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말한다, “I don’t give a f***.” “내 집 앞 쓰레기만 제때 수거 되면 족하다”는 비비언 룩이 “놀랍도록 멋지다”며 즐거워하는 랄프와, “저 사람은 괴물”이라고 걱정하는 대니얼. 이 커플은 시리즈가 시작하고 5분 만에 갈라설 조짐을 보이지만, 어쨌든 대니얼은 새해를 맞아 랄프에게 청혼한다. 수 해가 지나고, 이 부부는 ‘여전히 가족 모임에서 농담을 주고받지만 친밀한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는 관계’가 된다. 랄프는 빅토르와 같은 이들이 ‘안 보이’는 자고, 대니얼은 ‘안 볼 수 없’는 자다.
빅토르 고라야의 첫인상을 어떻게 묘사해야 좋을까. 자연스럽고 당당한 태도, 반짝이는 눈동자와 유머감각. 대놓고 던지는 플러팅에 대니얼은 당황하면서 사로잡히고,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거기엔 한 점의 위화감도 없다. 대니얼을 먼저 유혹함과 동시에 빅토르는 ‘착한 외국인’의 자격을 잃는데, 이야말로 바라던 바다. 빅토르는 자신의 처지, 대니얼의 “남자친구”(이건… 대니얼이 잘못했다.), 따위를 생각지 않고 그저 ‘나와 너의 끌림’만을 똑바로 응시한다. 누군가는 비꼬는 투로 ‘자유롭다’고 할 수도 있겠고, 비도덕적인 시작이었다고 수식할 수도 있겠으나- 두 사람의 첫 만남을 목격했다면, 그 사이 흐르는 공기가 숨막히게 특별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빅토르는 첫인상 그대로인 인물이다. “신변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고, 타인을 이용하려 들지 않으면서 호의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곧은 잣대와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며 날카롭고 유연하게 판단한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면으로 투명하게 드러나는 현자.”[Indiepost에 게시된 필자의 글에서 인용] 전개상 자세히 서술되진 않으나 단편적인 언급들로 미루어 보면, 빅토르는 어딜 가나 스스럼없이 사람들과 연결되고 커뮤니티를 만드는 이인 듯하다. ‘햇살처럼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이’, 뮤리얼의 표현대로 “아름다운 사람 beautiful person”이라고 할까. 이러한 설정은 그의 프레젠스와 엮여 버린 불행을 사적인 것으로 ‘느낄’ 여지를 완전히 걷어내려는 제스처로 보이는데, 작품은 그가 마냥 낙관하는 것이 아니라 타들어가는 속을 식히며 현재에 충실하려 애쓰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빅토르가 화면에 잡히면 빛의 아우라와 어둠의 예감이 공존한다. 전자는 인간성과 로맨스, 후자는 그 외의 것들이다.
대니얼이 빅토르와 랄프를 두고 내적 갈등을 키울 무렵, 국제 정치적 갈등도 심각해진다. 중국은 인공 섬 홍샤다오를 짓고, 미국은 그 섬이 핵 군사기지라고 주장한다. 뮤리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인 자리, 트럼프가 핵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영국에서도 사이렌이 울린다. 세계가 끝날지도 모르는 날, 누구와 있을 것인가- 대니얼은 망설임 없이 빅토르에게 달려간다. 뮤리얼의 집도 빅토르의 거주지도 카오스인데, 두 남자의 사랑만 분명하다. 이후 빅토르는 일단, ‘대니얼의 외국인 남자친구’ 위치에 있게 되는데, 작품은 그를 거기 묶어두지 않는다.
이디스 라이언스와 세계의 균열
- “Tear the world down.”
미국이 홍샤다오에 미사일을 떨어뜨리기 직전- 시청자는 이디스를 처음 만나게 된다. 오랜 부재로 존재감을 먼저 드러낸 그는, 나쁜 소식을 들고 화상 통화 화면으로 등장한다. 그의 첫인상은 강렬한 감정들로 뒤덮여, 캐릭터를 파악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가족들이 반가움을 쏟아내는 와중, 울먹이며 안부를 묻는 그의 실루엣은 이질적이다. 이디스는 ‘섬이 보이는 베트남에 시위하러 왔지만 이미 늦었다’고 설명하고, 곧 방사능에 피폭된다. 이디스의 두 번째 출연 역시 화면 속 화면이다. 그는 방송에 출연해 미국의 핵미사일 발사와 그 영향에 관해 이야기하고, 가족들은 그것을 보며 이디스에 관해 이야기한다. 빅토르는 대니얼에게 묻는다, “이디스는 어떤 사람이야?” 대니얼은 “조금 진지하다”고 답한다. 스티븐은 “어려서 갔던 여행에서, 이디스는 몰래 나가 담배를 사고 해변에서 자고 싶어했다”고 기억한다.
마침내 화면이 아닌 실물로 가족들을 만난 이디스, 그는 ‘훙샤다오 영상을 거액에 팔았다고 오해하는 무리’와, ‘정말로 거액에 팔자고 하는 무리’를 떠나 영국으로 돌아왔다. 빅토르는 그에게 “북극이 거의 녹았던데,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줘야 해요.”라고 말한다. 이디스는 시니컬한 유머를 섞어 “우리는 계속 호소해 왔고, 지금은 너무 늦었다”로 시작하는 스토리텔링을 늘어놓는다. 분위기가 가라앉고 모두 농담을 던지는 가운데, 화제를 꺼낸 빅토르만큼은 그 의미를 알아들은 듯하다. 스티븐이 “우리 태어나고 30년 정도는 살기 좋았잖아.”라며 동의를 구하자, 이디스는 “전쟁이 몇 번 있었지.”라며 쉽사리 동의해주지 않는다. 다시, 이디스는 어떤 사람인가?
비비언 룩에게 환호하는 로지 옆에서, 이디스는 삐딱하게 서서 눈을 부릅뜨고는 천천히 박수를 치며 말했다, “세상을 무너뜨려 버려. Tear the world down.” 비비언 룩의 ‘사성당’이 출마한 총선 투표, 그는 투표지 전체를 가로지르는 대각선을 긋는다. 이디스는 때로 세상을 냉소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하기에 다른 이들이 지나치는 장소를 들여다보게 되는 것에 가깝다. 이디스는 비비언 룩처럼 인간사가 굴러가는 방식을 꿰뚫어보고, 비비언 룩과 정 반대에 선다. 세계가 이미 ‘찢어지고’ 있음을 아는, 그 갈라진 틈에 빠진 것들을 테이블에 올려 놓으려는 자. 지구 곳곳의 균열을 찾아 몸을 던져 싸워 온 그는, 국가의 틀을 넘어 사유하고, 법이 아니라 정의를 따른다.
이디스는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만큼 상대방의 심리나 됨됨이도 빠르게 파악한다. 주변 사람을 아끼지만 덮어두고 응원하지는 않는다. 그는 오래 전 엄마와 형제들을 배신하고 새 가정을 꾸렸던 아버지의 장례식 뒤풀이에서, 용해된(작품에 등장한 새로운 장례법이다.) 아버지를 리쿼 샷인 양 마셔버린다. 그는 후에 빅토르를 강제 이송시킨 스티븐에게 실망하고, “스티븐은 내 우선순위가 아니”라며 칼 같이 잘라내기도 한다.
이디스는 직설적이고 시니컬하고 유쾌하다. 과감하면서도 무신경하지는 않으며, 그 섬세한 대범함을 타인에게 전염시키곤 한다. 링컨에게 처음 치마를 입히고 양갈래 머리를 해 준 이도 이디스고, “치마인지 티셔츠인지 모를” 옷을 입고 링컨이 신나게 뛰어다닐 때,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고 한 이도 이디스다. 다 아는 듯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모르겠다I don’t know”, “아마도maybe”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자만하지 않음에서 오는 자신감와 여유, 올바른 감수성을 동반한 정치적 유머로 정곡을 찌르는 이디스. 그의 농담이 낡지 않는 것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행하는 그의 삶에 닿아 있어서다. 마지막 화, 뮤리얼은 ‘세상이 이렇게 된 건, 1파운드 티셔츠에 가려진 것들을 외면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연설한다. 이디스 혼자만이 변명없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그 ‘잘못한 우리’에 미포함되는 자가 있다면 그일 터임에도.
미국 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금지하고 ‘로 앤 웨이드’ 판례를 뒤집자(후자는 작품 공개 이후 실제로 일어났고…) 이디스는 미국으로 날아가 시위대 맨 앞에 서고, 그 결과로 미국 출입금지를 당한다. 그가 “정부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가족들에게 토로하자, 대니얼은 공감한다. 빅토르가 스페인에서 (또) 추방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데, 스페인의 “극좌” 정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물어도 영국 정부는 묵묵부답이기 때문이다. 대니얼이 사랑에 빠진 후 넘나들게 된 ‘갈라진 틈’, 이디스는 오래 전부터 거기 발을 딛고 있었다.
대니얼의 죽음과 ‘탓blame’
이 시점에서 빅토르의 존재는 우크라이나에서 비공식적으로 불법이고, 곧 공식적으로 불법이 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영국, 프랑스, 스페인에서 그는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었는가? ‘망명 신청자’라는 그의 신분은 해당 국가가 정해 놓은 바운더리에서 조금만 벗어나거나, 그 법적 범위가 좁아지면 순식간에 박탈당하는 종류의 것이다. 몇 년이 흐르는 가운데, 빅토르의 거처는 내내 불안정하다. 우크라이나에서 고문당한 후 영국에 망명 신청을 하고, 영국에서 추방당하고, 우크라이나에 있다가 체포당할 뻔 하고, 국경을 넘고 또 넘어 스페인에서 다시 망명 신청을 한다. 마침내 재회한 대니얼과 그곳에 정착하기로 약속하지만, 곧 쿠데타가 발생하고 정책이 바뀐다. 프랑스의 우익 정권도, 스페인의 “극좌” 정권도, 빅토르와 같은 이들을 내친다.
대니얼은 빅토르를 영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이디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영원히 범죄자로 살게 되더라도, 살 수는 있지 않겠냐며. 이디스와 프랜은 그를 돕고, 대니얼은 빅토르를 데리러 간다. 홀로 오가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연인과 함께 돌아오기는 너무나 어렵다. (하나, 빅토르의 말대로 대니얼은 “여권을 도둑맞았다고 세관에 말하면” “Ok, this way sir.”이라는 안내를 받고 집에 갈 수 있었을 테다. 둘, 두 번째 ‘실패’는 브로커의 게이혐오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원했던 “지루한 삶”, 작품은 그 바람을 시스템의 실패와 의도적 부재가 죽이는 과정을 담는다.
대니얼과 랄프는 법이 보호하는 결혼을 했었다. 대니얼과 빅토르의 로맨스는 법적으로 (어쩌면 사회적으로도) 영원히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시간은 늘 충분치 않다. 그들의 사랑은 지속적인 싸움과 은둔, 체포와 탈출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줄곧 방법을 찾고 다음 걸음을 고민한다. 이처럼 애를 태우는 관계성은 픽션 상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 그 ‘매력’은 외국인/비백인/이방인이 ‘상대방’, ‘객체’의 자리에 위치하며 그와 관계 맺는 ‘주인공’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을 때까지만 유효하다. 그가 ‘구출’ 된다면 주인공은 (죽더라도) 영웅이 되고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야 한다. 이방인의 죽음이 주인공의 ‘동기’로 작용하는 방향도 있다. <이어즈 앤 이어즈>의 경우는 둘 다 아니다. ‘영국인을 위험에 빠뜨리고 그에게 구해지는 외국인’, ‘인간이 아닌 사건’: 빅토르는 그것들이 아니다. 작품은 처음부터 그리고 갈수록 명확하게, 그의 대상화를 거부한다.
이 연인의 장면에서 상호 또는 대니얼 단독 시선을 주로 취하던 작품은, ‘구조 작전’이 잘 풀리지 않는 동안 빅토르의 시선에 주목한다. 그는 지폐를 세는 대니얼의 손을 바라보고, 좌절하며 욕하고 벽을 치는 대니얼을 바라보고, 값을 흥정하는 대니얼을 바라본다. 빅토르는 주장도 감정도 ‘차마 강하게 꺼내지 못한다’. 그에겐 돈도, 여권도, 집도, ‘존재할 자격’도 없다. 무기력, 근심, 자책, 주저- 그가 지닌 절박함의 속성은 희망에서 절망으로, 자신의 생존에서 대니얼의 상태에 대한 걱정으로 흐른다. 소중한 이가 ‘나 때문에’ 패닉에 빠지는 모습에 힘겨워한다. 그러나 끝내는, 사랑을 붙잡는다. 쪽배에서 내리자고 대니얼을 설득하지만- 다음 순간, 바다를 건너기를 고집하는 대니얼을 바라본다. 거기엔 상대에 대한 믿음이 비친다.
이어, 작품은 시청자가 ‘항해’의 카오스와 대니얼의 죽음을 빅토르의 입장에서 겪도록 연출한다. 빅토르는 대니얼의 시체를 초점 잃은 눈동자로 응시하며, 우크라이나어로 ‘모르겠다’고 반복해 중얼거린다. 그 상태 그대로 대니얼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가족 그룹 통화 연결이다. ‘대니얼의 전화’를 받고 가족들이 쏟아내는 -다양하지만 유사하게 일상적인- 노이즈를 받아내는 빅토르의 정서는, 이질적이다. 겨우 틈을 찾은 빅토르는 바짝 마른 톤으로 죽음을 전하고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집에 왔는데, 여기가 집인가요?” 충격과 슬픔에 잠긴 가족들은 달려와 문을 두드린다. 빅토르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공포스럽다. 그것이 4화의 엔딩, 빅토르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는가, 아니면 또다른 방식으로 존재를 위협받고 있는가. 서구적 표상에 길들여져 있던 시청자는 시험/갈등에 빠진다.[참고: 러셀 토비, VULTURE]
다음 화는 이전 화와 시간적 거리를 두고 열린다. 영국 총리는 이제 비비언 룩이고, “사라진 자disappeared”들에 대한 소문이 떠돈다. 작품은 대니얼을 애도하며, 그의 죽음에 집착하는 스티븐을 조명한다. 수용소에 갇힌 빅토르를 면회하러 온 스티븐, 다소 일방적인 대화 사이에- 대니얼이 죽던 날 라이언스 가족과 빅토르의 대면이, 짧은 컷들로 나뉜 플래시백으로 끼어든다. 비난을 퍼붓는 로지와 스티븐, 엉망으로 움츠러들어 무어라 답하거나 하지 못하는 빅토르, 대사는 뮤트 처리돼 있다.(짐작 가능하고, 중요하지 않다.) 그 끝에 로지와 빅토르는 서로를 끌어안고 엉엉 울지만, 스티븐은 ‘탓’에 사로잡힌다.
우연히 “어스트와일”(‘골라낸’ 자들을 가두는 열악한 비밀 수용 시설)의 내부자가 된 스티븐은, 회사 네트워크에 접속해 빅토르를 이송자 명단에 넣어 “사라지게” 한다. 몇 년 전, 빅토르는 어쩌다 영국에서 추방당했던가, 대니얼에게 빅토르의 일터 정보를 들은 랄프가 보복성 리포트를 해서다.(규칙을 어긴 빅토르의 잘못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애초에 그 규칙은 ‘고문 증명’을 요구하는 이들이 만들었다고 답하겠다.) 두 사람의 행동은 겹쳐 보인다. 랄프는 작품이 ‘돌아보는’ 인간 유형이었다. 자발적으로 무지했던 그는 ‘행복’과 자극만을 좇았고, 안전하고 좁은 특권 바깥을 볼 의사가 없었다. 리포트 사건에 앞서, 랄프가 빅토르의 억양을 놀리듯 따라하는 컷이 있었다. 가볍게 지나가는 대사였으나, 그가 빅토르(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를 대하는 태도가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랄프는 남편에게 배신당했고, 크게 상처받았다. 그러나 ‘복수’의 구체적인 방법이 (아마 인지한 적 없었을) 특권을 이용해 누군가를 안전망 밖으로 내쳐버리는 것이라는 점이, 그 사고방식과 실행력이 무섭다. 랄프는 아마 제 행동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스티븐은 어떤가, 빅토르가 ‘대니얼의 남자친구’였을 때, 그는 친절한 지지자의 태도를 보였다. 대니얼의 죽음 후 스티븐은 균형을 놓친다. 그는 빅토르에게, “전부 당신의 탓이다, 당신은 끔찍한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동안 너무나 질렸다”고 말한다. “awful”, “bored”: 그 단어들을 빅토르에게 덧씌운다.(빅토르와 대니얼이 “boring life”를 바랐다는 점을 떠올리며 이 워딩을 씁쓸하게 곱씹게 된다.) 동생을 잃은 스티븐이 얼마나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겠냐만은- 랄프보다 훨씬 ‘똑똑한’ 그가 빅토르를 바라보았던 시선은, 어쩌면 랄프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선다. (다행히 작품은 스티븐을 버리지 않고, 후에 내부고발이라는 기회를 준다.)
‘그 모든 일들이 꼭 빅토르의 탓인 것만 같은’ 이 모호한 감각. 만약 스티븐처럼 그 ‘탓’의 감각을 지우기 힘들다면, 분석을 시도해야 한다. 왜 그의 탓인가? 그의 탓이 있다면 무엇인가? 남자에게 끌리는 것? 그래선 안 되는 이와 사랑에 빠진 것? 살아남으려고 애쓴 것? 살아남은 것? 하나하나 살피며 걷어내다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거기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허면 그 감각의 원천은 무엇인가. 로지가 사는 곳을 ‘범죄 구역’으로 지정한 시스템은 빅토르를 범죄자로 만든 시스템과 다르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감추려는 권력자들이 온갖 지표를 끌어와 ‘보호 대상’과 ‘위험 요소’를 구분하고, ‘적절’한 그룹에 성공적으로 낙인을 찍은 결과다. 또한, 너무 피곤했던, 지나치게 절망했던, 현재가 충분히 안락했던- 개인들이 그것을 의심치 않고 받아들인 결과다.
빅토르는 그 못난 만남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그저 스티븐을 ‘let go’한다. ‘당신의 탓’이라는 스티븐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대니얼의 죽음은 ‘나 때문이지만 내 탓은 아님’을 알고, 받아들인다. ‘내 존재를 골칫거리로 만든 시스템’을 인지하고, 애도에서 ‘거짓된 탓의 감각’을 분리해 낸다. “어스트와일”에서 재회한 친구가 ‘대니얼이 너를 꺼내 주지 않겠냐’고 묻자, 빅토르는 “할 수 있었다면 그랬겠지”라고 답하며 미소짓는다. 그에게 대니얼은 죄책감보다는 사랑의 기억이고, ‘내가 택한 가족’이고, 그를 살게 하는 동력이다.
이방인들의 연대와 사랑
낙인이 찍힌 당사자인 빅토르, 그리고 이디스는, ‘의심치 않는 것이 불가능한’ 이들이다. 첫 만남부터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주로 ‘대니얼이 이디스에게 빅토르와 관련해 도움을 청하는’ 식으로 연결되던 두 사람은, 대니얼이 죽은 이후 본격적으로 한 화면에 잡힌다. 거기엔 단순히 가족-지인 간의 친밀감과는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다. (대니얼-이디스의 것이 그러했듯 퀴어 피플 간의 유대도 포함돼 있을 테다.)
1화 엔딩, 까마득한 해안에 홀로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디스. 흥분과 분노로 범벅된 축제가 열리는 가운데, 빽빽한 군중 사이에서 고개를 떨군 채 멍하니 있는 빅토르가 거기 겹쳐 보였다. 하나 더: 홍샤다오에 미사일이 떨어지기 직전 화상 통화를 건 이디스와, 4화 엔딩에서 대니얼의 죽음을 전하기 위해 가족 그룹 통화를 건 빅토르가 있다. 앞서 두 장면을 각각 묘사하며 동일하게 ‘이질적’이라는 수식을 붙였다. 구도가 다른 두 시퀀스에 작품이 부러 유사한 뉘앙스를 부여했다는 해석은 비약일 테지만, 역시 겹치는 데가 있었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불운과 불안의 기운이, ‘나쁜 뉴스’가 된다. 빅토르와 이디스는 ‘분위기를 깨는 자’[Sara Ahmed]들이다.
난민인 빅토르와 피폭당한 이디스의 신체는 이디스의 조모 뮤리엘보다도 죽음에 가까이 있다. 빅토르는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하는 와중 오늘을 소중히 즐기고, 이디스는 죽음을 예감하며 세상의 그림자들을 조명한다. 이디스는 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잊지 말자는 듯 갇혀 있는 빅토르를 언급한다. 그는 ‘분위기를 깨기를 자처하는 자’, ‘비밀’을 끄집어내는 자, 자발적 아웃사이더다. 불평등하고 부당한 룰에 순응하길 거부하고, 불평하기도 전에 무너뜨릴 궁리를 시작하는 그는, 제 어머니의 딸인 동시에 누구의 딸도 아니다.
빅토르는 ‘그 자리에 있거나 언급되는 것만으로 분위기를 깨는 자’다. ‘햇살처럼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이’ 임에도 그렇다. 비자발적 아웃사이더인 그는 둘 이상의 국가가 솎아내고 감춘 그림자, 비밀 그 자체다. 그는 자신을 고발한 친부모의 아들이 아니다. 그의 가족은 그를 숨겨 준 우크라이나의 친구들이고, 대니얼이고, “너의 부모는 역겨운 사람들”이라고 해 준 뮤리얼이다. 곁에 나란히 서서 손을 내미는 이디스다. 어떤 면에서 그는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지만, ‘아웃사이더’적 판단력을 유지하는 채로다. “우릴 가둬 놓고, 전염병을 들여와 퍼지게 내버려 둬. 아주 영국적이야.”, “영국에 있는 가족들이 날 찾을 거야.”: “어스트와일”에 갇힌 빅토르가 한 시퀀스에 각각 던지는 대사다. 고향에서도 타국에서도 기득권층의 룰에 들어맞지 않는 자였던 빅토르는, 라이언스 가족relatives을 자신의 가족family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섞여 용해되지 않고 ‘당당히 아웃사이더로 남는다.’
<이어즈 앤 이어즈>에서 혁명적 변화는 한쪽이 한쪽을 구하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디스는 바깥에서, 빅토르는 수용소 안에서, ‘비비언 룩 정권 하에서 사라진 자들’에 대해 수소문한다. 빅토르가 전한 “어스트와일”이라는 이름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 스티븐에 의해 그가 “사라진 자”가 되자, 이디스와 프랜, 빅토르의 변호사 이본, 동생이 “사라진” 아흐메드, 아빠의 행동을 온라인으로 목격한 스티븐의 딸 배서니… 많은 이들이 모여 ‘빅토르를 건져내는 김에 세상을 뒤집는 작전’에 동참한다. 여기서 빅토르는 ‘구해지는 자’인 것 뿐 아니라 함께 세상을 뒤집는 자다. ‘구해진’ “어스트와일” 수용자가 카메라를 들어야만, ‘가로막힌’ “레드존” 주민들이 펜스를 들이받아야만, 그들이 “보여져야”만 혁명은 성공한다-고 작품은 말한다.
“지루한 일상”을 갈망했던 빅토르와 “지루한 일상”을 의심하던 이디스는 닮아 있었다. 빅토르는 (아마 난민이 되기 전부터) 안전망 바깥에서 살아 왔고, 이디스는 그 안팎을 오가며 균열을 가시화해 왔다. 그들은 ‘으레 그렇다고 믿어온 것들’ 너머의 세상을 꿰뚫어보며,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감시카메라 위치를 교묘하게 피해 입모양을 숨길 줄 아는’ 두 사람은, 빅토르가 대니얼의 남자친구가 아니었더라도 어디에선가 만나 ‘일을 꾸몄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디스에 대한 서술이 끝내 프랜에 닿듯, 빅토르를 설명하다 보면 대니얼을 돌이키게 된다. 그들은 연인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한다, 이방인으로 불리며, 기꺼이 이방인인 채로.
* 사라 아메드가 쓴 <행복의 약속>(2021년 후마니타스 번역본)을 읽다 쓰기 시작한 글이다. 빅토르와 이디스의 ‘이방인성’을 종합하는 데에 특히 도움을 받았다.
모든 사진 출처: H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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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의 혼인잔치: 언약(Before the Wrath/ 2020/ 미국)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
<비유의 핵심>
가나는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근처의 고지(高地) 마을.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한 예수는 그의 첫 번째 기적을 가나의 한 혼인잔치에서 일으켰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 기적과 상관이 없다. 그런데 왜 예수는 첫번 째 기적을 하필 혼인잔치에서 행했던 것일까. 아마도 예수를 신랑, 성도를 신부에 견주어 세상 끝날 예수의 재림 때에 펼치게 될 '혼인잔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현대 미국인들은 예수의 재림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심지어 그 약속 자체를 믿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통계로 영화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독교국가로 세워진 미국이 이러하니 기독교와 상관이 없는 나라들의 사정이 어떠할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세상의 끝날에 예수가 재림할 때 천국에서 벌이게 될 기쁨의 잔치를 왜 '혼인잔치'에 비유했던 것일까. 이 영화는 바로 이 질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수 당시 그의 제자들은 모두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혼인잔치'에 비유된 천국잔치가 어떤 것인지 가장 잘 이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갈릴리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 혹은 다른 나라의 성도들은 예수를 신랑으로 맞이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할 것인지 알기 위해 갈릴리 지역의 혼인풍습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다.
영화는 갈릴리의 혼인풍습에 대한 최근까지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학자들, 목회자들과 인터뷰를 함으로써 성경 본문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혼인잔치 비유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준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관객들은 다음과 같은 아리송한 성경의 내용에 대해 확실하게 이해하게 된다.
예수의 신부가 되기 위해(구원 받기 위해) 성도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재림의 때를 하나님만 안다고 하는 것인지,
하나님만 아는 그 재림(예수와 성도의 혼인잔치)의 때를 위해 성도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
휴거를 왜 '들림 받는다'고 표현하는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거절당한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많은 기독교인들은 재림의 때에 일어날 혼인잔치에 대해서보다는 고단한 세상살이에서 벗어나게 해 줄 드라마틱한 들림 받음(휴거)이 '언제' 일어나게 될 것인가에 대해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잊을만 하면 "몇년 몇월 몇일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단이 나타나 성도들을 미혹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분명히 말한다. 성도들이 이해하려고 해야 하는 것은 혼인잔치 비유의 목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집중해야 할 것은 그 일이 이루어지는 '때'가 아니라 예수의 신부가 되기위한 성도들의 '준비'라고 말이다.
인류 역사이래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는 성경이라고 하니 꼭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해도 성경에 약속된 예언 중 클라이맥스로 꼽히는 재림 때의 천국 혼인잔치가 도대체 무엇인지 쉽게 설명한 이 영화를 한번 보시기를 권한다. 콘텐츠가 생성된 지역의 문화를 알면 그 콘텐츠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진리임을 알려주는 영화이기도 하다(©2021. 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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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 듣는 오아시스
올해 깜짝 재결합 소식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던 밴드 '오아시스'가 내년 10월 한국을 찾습니다.
내한 공연 티켓팅도 벌써 이번 주로 성큼 다가왔다고 하는데요!
오아시스를 사랑하는 씨네픽 구독자 여러분을 위한 티켓팅 성공 기원 콘텐츠를 준비했습니다.
오아시스의 노래가 삽입된 영화 보고 함께 행운의 기운을 모아보아요!
줄거리
불같은 성격이지만 유쾌하고 당당한 엄마 '디안'은 거칠지만 사랑스러운 사고뭉치 아들 '스티브'가 보호시설에서 사고를 쳐 쫓겨나자 홈스쿨링을 시작한다. 엄마가 행복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들 스티브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꿈꾸는 디안. 하지만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불안정한 성격의 스티브를 돌보기란 쉽지 않다. 이때 이들 앞에 나타난 이웃집 여인 '카일라'. 카일라의 등장으로 세 사람은 유일하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작은 행복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디안 앞으로 한 장의 편지가 날아오는데…….
억척스럽지만 정 많고 속 깊은 엄마 '디안'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유별난 사고뭉치 아들 '스티브’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누구보다 따뜻한 그녀 ‘카일라’. 결핍으로 가득 찬 세 사람이 만나 하나의 소우주를 구성할 때, 그들의 세상은 비로소 시작된다.줄거리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 카오스 이론
끔찍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지닌 에반. 그에게 남은 것은 기억의 파편들과 상처 입은 친구들. 에반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어릴 적부터 매일매일 꼼꼼하게 일기를 쓴다.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예전의 일기를 꺼내 읽다가 일기장을 통해 시공간 이동의 통로를 발견하게 되는 에반. 그것을 통해 과거로 되돌아가 미치도록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첫사랑 켈리와의 돌이키고 싶은 과거,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닥친 끔찍한 불행들을 고쳐 나간다.
그러나 과거를 바꿀수록 더욱 충격적인 현실만이 그를 기다릴 뿐, 현재는 전혀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는데...
과연 그는 과거를 바꿔 그가 원하는 현재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불행한 현재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인가?줄거리
내 이름은 터키쉬. 영국 이름치곤 깬다. 비행기 사고 때 부모님도 사고를 쳐 나란 놈이 태어났다. 그 비행기 이름을 따 내 이름을 지었다. 쟤는 타미다. 총 이름을 땄다지만, 그건 순 뻥이고, 19세기 유명한 발레 댄서 이름이다. 나와는 배꼽 친구로 지금은 작업 동료다. 수컷끼리 뽀뽀하는 그런 사인 아니다. 까놓고 얘기하면 녀석은 또라이 짓을 잘한다. 방지하는 차원에서 팍팍 갈궈주고 있다. 우정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다이아몬드? 난 권투중개인이다. 권투에 울고 권투에 웃던 내가 다이아몬드가 뭔지 알게 뭔가? 벨기에산 똘삐던가?
다이아몬드 도둑인 네 손가락 프랭키(Franky Four Fingers: 베니치오 델 토로 분)는 자신이 훔친 어마어마한 크기의 다이아몬드를 뉴욕에 있는 보스 아비(Cousin Avi: 데니스 파리나 분)에게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우선 다른 자잘한 보석들을 런던에 있는 보석 장물아비 더그(Doug The Head: 마이크 레이드 분)에게 넘겨줘야 하는 프랭키에게 아비는 절대 도박에 손대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허나 프랭키가 무허가 도박 권투에 돈을 걸면서 다이아몬드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간다.
한편, 풋내기 무허가 권투 프로모터인 터키쉬(Turkish: 제이슨 스테텀 분)와 토미(Tommy: 스티븐 그레이엄 분)는 돼지 농장 경영주이자 마피아 두목인 브릭 탑(Brick Top: 알란 포드 분)과 함께 사기도박을 해서 건수를 올릴 계획이다. 하지만 4회에 무너지기로 예정되었던 권투 선수가 아일래드 집시인 원 펀치 미키(One Punch' Mickey ONeil: 브래드 피트 분)의 주먹에 쓰려지자, 그들은 미키를 임시방편으로 링에 올린다. 4회에 무너져야 한다는 약속을 받고서...
그러나 미키는 약속과는 정반대로 4회에 상대 선수를 기절시키고 만다. 터키쉬와 토미는 브릭 탑의 처절한 보복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브릭 탑은 이 두 명의 어설픈 갱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한다. 터키쉬와 토미는 이번에도 실수하면 잔혹한 살육이 기다리고 있음을 미키에게 인지시키고 또 인지시킨다. 도박 권투에 참가하기로 한 프랭키가 실종되자 사촌 아비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영국 런던행 비행기에 오른다. 아비는 그곳에서 전설적인 인물, 총알 이빨 토니(Bullet Tooth Tony: 비니 존스 분)에게 사건을 의뢰, 보석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불쌍한 프랭크는 시신으로 발견되는데...줄거리
재정난에 허덕이는 해링톤 고등학교의 캠퍼스 분위기는 유난히 음침하고 을씨년스럽다. 학생들도 학업 따위엔 의욕이 없고 교사들도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러나 주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아메리칸 풋볼팀만이 기세가 등등하다. 물론 윌리스 코치(Coach Willis: 로버트 패트릭 분)의 위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패컬티에서 펼쳐질 희대의 사건은 윌리스 코치가 드레이크 교장(Principal Drake: 베비 누워스 분)을 무참하고 처참하게 살해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해링턴 고등학교엔 일곱 명의 아웃사이더가 있다. 치어리더이자 학보사 편집장으로서 언제나 특종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미모의 딜라일라(Delilah Proffitt: 조다나 브로스터 분),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기 싫어하여 레즈비언인 척 위장하는 중성적 외모의 스토클리(Stokely: 클리어 듀발 분), 부모가 교통사고로 죽자 애틀랜티스에서 전학 온 미모의 은발 메리베스(Marybeth: 로라 해리스 분), 스포츠카 광이며 차고에서 코카인을 제조하여 교내에서 비밀리에 유통하는가 하면 미모의 영어 교사에게 미묘한 눈길을 던지는 제키(Zeke: 조쉬 하트넷 분), 머리가 비상한 모범생이지만 항상 따돌림만 당하는 외톨이 케이시(Casey Connor: 일라이저 우드 분), 풋볼팀의 스타 쿼터백으로서 화려한 미래를 보장받고 있건만 부당하리만큼 차별적으로 우월한 대우를 받는 것이 싫어 풋볼팀을 탈퇴한 스탠(Stan: 숀 웨인 하토시 분). 이들 아웃사이더들은 교직원들 사이에서 불길하고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인다는 것을 눈치챈다.
교사들로부터 미움을 사던 드레이크 교장이 살해되고 나서, 교직원들이 하나씩 사라지거나 변사체로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결속력은 점점 강화된다. 그러나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이 서서히 파국의 조짐을 노출하기 시작하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단서를 잡지 못하던 아웃사이더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면서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생물 교사인 미스터 펄롱(Mr. Furlong: 존 스튜어트 분)이 죽던 날 자칭 6인의 전사들은 케이시가 풋볼 경기장에서 찾아온 증거물이 마을을 온통 피의 파티장으로 만들어버릴 충격적인 비극의 단서가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줄거리
MI6의 최고 암살자 세바스찬(마크 스트롱)에게는 형이 있다. 문제는 그 형 노비(사샤 바론 코헨)가 잉글랜드 그림즈비 출신의 축구 훌리건이라는 점이다. 노비는 그림즈비라는 가난한 어촌 마을에서 살면서 한 남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아홉 명의 자식들과 북잉글랜드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자친구(레벨 윌슨)다. 하지만 노비에게는 한 가지가 부족하다. 바로 어릴 때 헤어진 동생 세바스찬이다. 입양된 후 28년 동안 동생을 찾아다니던 노비는 드디어 동생의 행방을 알게 된다. 그는 곧장 동생을 만나러 떠나지만, 동생이 MI6 요원이라는 사실은 물론, 전 세계를 위협하는 음모를 막으려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동행하게 된다. 누명을 쓰고 도망치게 된 세바스찬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형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줄거리
다른 아이들처럼 산티아고 뮤네즈(쿠노 베커)도 큰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게는 그러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티아고의 이런 집념과 목표 의식은 엄청난 궁핍함과 개인적인 희생을 감내하고 고향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세계 최고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룰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능하게 했다. 열 살 나이에 산티아고가 미국 국경을 넘을 때, 수중에 가지고 있던 것은 단 두 가지, 축구공과 낡은 월드컵 사진이었다. 이후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성장한 산티아고가 관심을 쏟는 유일한 대상은 축구였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또 하나의 과제는 그의 아버지에게 그가 장래 유명한 축구 스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사람 좋은 전직 축구 선수이자 스카우트 담당인 영국인 글렌 포이 (스테판 딜레인)가 로스앤젤레스 지역 시합에서 산티아고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 클럽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찾고 있는, 뛰어난 재질과 기량 그리고 스피드와 대담함을 고루 갖춘 산티아고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이제 축구의 성지나 다름없는 뉴캐슬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 구장에서 어린 산티아고는 그의 기량을 입증해서 세계에서 가장 명망 있는 축구클럽과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게임을 앞두게 된다.
인간적 고뇌와 육체적 부상 그리고 성공에 따른 세속적인 유혹은 말할 것도 없고, 진흙 구장과 매서운 바람 그리고 팀 동료들로부터의 심리적 견제를 견뎌내야만 이 화려하고 가슴 벅찬 국제 축구 무대에서 산티아고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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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도, 연기도 잘하는! 다재다능한 배우들의 영화 9선
오는 20일 개봉을 앞둔 뮤지컬 영화 <위키드>에 세계적인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가 출연해 화제가 된 바 있죠. 과연 영화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감을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 아리아나 그란데뿐만 아니라 레이디 가가, FKA 트위그스 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며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음악도, 연기도 잘하는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들의 영화, 함께 보러 가실까요?
<위키드 Wicked>(2024),
존 추 Jonathan Murray Chu
줄거리
자신의 진정한 힘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엘파바'(신시아 에리보)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 전혀 다른 두 사람은 마법 같은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마법사'의 초대를 받아 에메랄드 시티로 가게 되고 운명은 예상치 못한 위기와 모험으로 두 사람을 이끄는데…
마법 같은 운명의 시작, 누구나 세상을 날아오를 수 있어!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2017),
데오도르 멜피 Theodore Melfi
줄거리
천부적인 수학 능력의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 NASA 흑인 여성들의 리더이자 프로그래머 도로시 본 흑인 여성 최초의 NASA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 미국과 러시아의 치열한 우주 개발 경쟁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시절, 천부적인 두뇌와 재능을 가진 그녀들이 NASA 최초의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선발된다.
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800m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중요한 회의에 참석할 수 없으며, 공용 커피포트조차 용납되지 않는 따가운 시선에 점점 지쳐 간다. 한편,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는 난항을 겪게 되고, 해결 방법은 오직 하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수학 공식을 찾아내는 것뿐인데….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
세계를 놀라게 한 그녀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우스 오브 구찌 House of Gucci>(2022),
리들리 스콧 Ridley Scott
줄거리
처음부터 사랑에 빠졌던 그 이름 구찌. 내 것이 될수록 더욱 갖고 싶었던 이름,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었던 그 이름!
구찌를 갖기 위해 구찌를 죽이기로 했다.
<덩케르크 Dunkirk>(2017),
크리스토퍼 놀란 Christopher Nolan
줄거리
해변: 보이지 않는 적에게 포위된 채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위기의 일주일.
바다: 군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배를 몰고 덩케르크로 항해하는 하루.
하늘: 적의 전투기를 공격해 추락시키는 임무, 남은 연료로 비행이 가능한 한 시간.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상륙지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들판에서 싸우고 시가에서도 싸울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페어웰 The Farewell>(2021),
룰루 왕 Lulu Wang
줄거리
뉴욕에 사는 ‘빌리’와 그녀의 가족들이 할머니의 남은 시간을 위해 벌이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거짓말.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The Man Who Fell To Earth>(1976),
니콜라스 뢰그 Nicolas Roeg
줄거리
외계에서 온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정착할 수 없는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뢰그 감독의 주제적 관심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작품.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Earnestland>(2015), 안국진
줄거리
제가 이래 봬도 스펙이 좋거든요. 제 자랑은 아니지만 자격증이 한 14개?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하는건 뭐든지 잘했어요~ 근데 결국 컴퓨터에 일자리를 뺏겼죠. 그래도 다행히 취직도 하고, 사랑하는 남편까지 만났어요. 그래서 둘이 함께 살 집을 사기로 결심했죠. 잠도 줄여가며 투잡 쓰리잡 열심히 일했어요.
근데 아무리 꾸준히 일해도 빚은 더 쌓이더라고요. 그러다 빚을 한방에 청산할 기회가 찾아왔는데! 왜 행복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기는 걸까요? 이제 제 손재주를 다르게 써보려고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5포 세대에 고함! 열심히 살아도 행복해 질 수 없는 세상, 그녀의 통쾌한 복수가 시작된다!
<스윙키즈 Swing Kids>(2018), 강형석
줄거리
1951년 한국전쟁, 최대 규모의 거제 포로수용소. 새로 부임해 온 소장은 수용소의 대외적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전쟁 포로들로 댄스단을 결성하는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수용소 내 최고 트러블메이커 ‘로기수’(도경수), 무려 4개 국어가 가능한 무허가 통역사 ‘양판래’(박혜수), 잃어버린 아내를 찾기 위해 유명해져야 하는 사랑꾼 ‘강병삼’(오정세), 반전 댄스실력 갖춘 영양실조 춤꾼 ‘샤오팡’(김민호), 그리고 이들의 리더, 전직 브로드웨이 탭댄서 ‘잭슨’(자레드 그라임스)까지 우여곡절 끝에 한자리에 모인 그들의 이름은 ‘스윙키즈’!
각기 다른 사연을 갖고 춤을 추게 된 그들에게 첫 데뷔 무대가 다가오지만, 국적, 언어, 이념, 춤 실력, 모든 것이 다른 오합지졸 댄스단의 앞날은 캄캄하기만 한데…!
<싱글즈 Singles>(2003), 권칠인
줄거리
29살 나난 (장진영 분)과 나난의 친구인 워킹우먼 동미(엄정화 분). 이들은 행복한 29살을 보낼 수 있을 것인가? 며칠 있으면 새해다. 난 서른 살이 되기 전 인생의 숙제, 둘 중의 하나는 해결할 줄 알았다. 일에 성공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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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 1차 예고편
MI6를 떠난 이후 '매들린'과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던 '제임스 본드'.
어느 날 CIA요원 '펠릭스'가 찾아와 선별적 DNA 공격이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생화학 무기 유출을 알린다.
위험에 처한 전 세계를 구하기 위해 복귀하게 된 제임스 본드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MI6요원 '노미'를 만나고, 모든 사건의 배후에 운명으로 얽혀 있는 최악의 적 '사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위험천만한 위기 속, 감춰져 있던 비밀이 밝혀지면서 작전은 점점 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데..
제임스 본드의 마지막 미션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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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재개봉 예고편
줄리안, 드디어 남사친과 사랑에 빠지다?!
9년 지기 남사친 마이클의 결혼 소식을 들은 그 순간!
뭘까 이 감정은? 나 아무래도 널 사랑하고 있었나 봐!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내 사랑 되찾기
“너에게 꼭 말하고 싶어.
지난 9년간 진심으로 널 사랑하고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