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2-12 12:16:54
12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크리스 에반스, 캡틴 아메리카로 마블 복귀?

크리스 에반스가 MCU로 복귀한다는 소식입니다. 닥터 둠으로 복귀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 이어, 그 역시 <Avengers: Doomsday>에 출연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의 역할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전에 캡틴 아메리카로 출연했던 만큼 동일한 역할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다른 출연진에 대한 정보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톰 홀랜드(스파이더맨), 베네딕트 컴버배치(닥터 스트레인지), 브리 라슨(캡틴 마블), 크리스 헴스워스(토르), 라이언 레이놀즈(데드풀), 휴 잭맨(울버린) 등 MCU의 주요 배우들이 복귀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Avengers: Doomsday>와 후속작 <Avengers: Secret Wars>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어벤져스: 엔드게임> 등을 연출한 루소 형제가 감독을 맡으며, <어벤져스: 엔드게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공동 각본가인 스티븐 맥필리가 시나리오를 맡을 예정입니다. <Avengers: Doomsday>는 3월부터 8월까지 촬영이 예정되어 있으며, 북미 개봉은 2026년 5월 1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첫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 진행 중

봉준호 감독의 첫 애니메이션 영화가 현재 절반 이상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클레어 누비앙의 소설 <The Deep: The Extraordinary Creatures of the Abyss>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줄거리와 관련된 세부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심해 생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룰 예정이라고 합니다.
제작비는 약 5,200만 달러로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높은 제작비가 투입될 예정입니다. 소니 픽처스가 글로벌 배급을 담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틴 버틀러, <아메리칸 싸이코> 새로운 주인공 맡는다

<엘비스>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오스틴 버틀러가 루카 구아다니노가 연출할 <아메리칸 싸이코>의 주인공을 맡을 예정입니다.
당초 제이콥 엘로디가 과거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패트릭 베이트먼 역을 차지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해당 캐스팅은 불발되었습니다.
구아다니노의 새로운 <아메리칸 싸이코>는 2000년 영화의 리메이크가 아닌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책 ‘아메리칸 싸이코’의 소설을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며, 스콧 Z.번스(컨테이전, 사이드 이펙트)가 각본을 맡았습니다.
포켓몬, 아드만 스튜디오와의 프로젝트 공개

<월레스와 그로밋>, <치킨 런> 등 독보적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사랑받고 있는 스튜디오 아드만이 포켓몬 컴퍼니와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알렸습니다.
해당 프로젝트가 장편 영화, 시리즈 또는 다른 작품이 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드만은 “새로운 모험을 통해 포켓몬 세계에 독특한스토리텔링 스타일을 선보일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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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8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발표
제78회 칸영화제 상영작이 공개되었습니다!
특히 경쟁 부문에는 이제는 신성이라고 부르기 어려워질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아리 애스터, 요아킴 트리에,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작품부터
한국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클레버 멘돈사 필로, 켈리 라이카트 감독,
이미 거장으로 인정받는 다르덴 형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작품까지,
다양한 영화들이 선정되어 영화 팬들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경쟁 부문 외에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배우 해리슨 딕킨스과 스칼렛 요한슨의 감독 데뷔작이선정되어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 작품은 경쟁, 비경쟁 부문에 모두 공식 초청이 불발되어 아쉬움을 자아냈습니다.
제78회 칸영화제는 5월 13일부터 5월 24일까지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씨네픽지기는 칸영화제 수상 소식과 함께 돌아올게요!
**제78회 칸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THE PHOENICIAN SCHEME>, Wes ANDERSON
<EDDINGTON>, Ari ASTER
<JEUNES MÈRES>, Jean-Pierre et Luc DARDENNE
<ALPHA>, Julia DUCOURNAU
<RENOIR>, HAYAKAWA Chie
<THE HISTORY OF SOUND> Oliver HERMANUS
<LA PETITE DERNIÈRE>, Hafsia HERZI
<SIRAT>, Oliver LAXE
<NEW VAGUE>, Richard LINKLATER
<TWO PROSECUTORS>, Sergei LOZNITSA
<FUORI>, Mario MARTONE
<AGENTE SECRETO>, Kleber MENDONÇA FILHO
<DOSSIER 137>, Dominik MOLL
<UN SIMPLE ACCIDENT>, Jafar PANAHI
<THE MASTERMIND>, Kelly REICHARDT
<EAGLES OF THE REPUBLIC>, Tarik SALEH
<SOUND OF FALLING>, Mascha SCHILINSKI
<ROMERÍA>, Carla SIMÓN
<SENTIMENTAL VALUE>, Joachim TR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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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없이 밀려오다 부딪히는 파도처럼. 빅 리틀 라이즈 (2017-2019)
이렇게 여성들의 연대를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 또 있을까. 매 화마다 등장하는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는 그들이 매번 마주하는 풍경이자, 순간들이고 때로는 이들을 한 곳으로 이끌어 위로해주기도 한다.
드라마 오프닝 장면부터 오랫동안 기억해두고 싶다. <빅 리틀 라이즈> 속 이들은 모두 '엄마'라는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데,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이들의 학교를 데려다 주기 위해 차를 모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클로즈업하며 스쳐 지나가는 표정을 담아낸다. 누군가에겐 놓치기 쉬운 일상의 일부분인 순간을 이렇게 오랫동안 바라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드라마는 몬터레이에 사는 다섯 인물들(메들린, 제인, 셀레스트, 레나타, 보니) 속 관계의 매듭을 풀어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제목에서 짐작했듯이, 그들에게 '거짓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 또는 우정과 연대 그 자체이다. 이들 사이에는 '크고 작은 거짓말'들이 존재하고, 이를 대하는 각각의 다른 시선들을 따라가 보면 이들의 선택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시즌 1이 그들이 거짓말을 대하는 각자의 방식이라면, 시즌 2는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진실들을 마주하게 되는 그들의 선택이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이 다섯 인물이 지목되고, 과거 회상 방식으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되묻게 하며 시즌 1은 시작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의 진술은 이들 중 과연 누가 범인인지를 예측하는 데 있어 일종의 내기를 하는 듯하다. 다들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결코 누구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이 게임. 점점 사건에 가까워질수록 이들은 의심이 가는 행동들을 하며 걷잡을 수 없이 의심은 커진다. 시즌 1의 마지막화는 그동안의 늘어뜨린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가며 실마리를 잡고, 그렇기에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여운을 남긴다. 누구 하나가 단독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 함께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고, 더 이상의 불행을 막고, 자신을 가로막던 고리를 끊기 위해 대응했다. 속을 알 수 없는, 미궁의 인물이었던 보니가 직접적인 행동을 했던 것이 바로 <빅 리틀 라이즈>가 말하고 싶었던 바이다. 여성들의 시기와 질투보다는, 연대와 포용이 앞서는 순간들. 외부의 진술들이 그들을 내던지고 있을 때 누구보다 똘똘 뭉친 그들을,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그 순간의 시작은 어쩌면 1화에서 우연히 메들린을 도와주는 제인에서부터 이미 시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시즌 2 속 그들은 거짓말에 직면하고, 이로 인해 감당해야 할 것들을 떠안으며 혼란에 빠진다. 가정 폭력, 성폭행과 같은 과거의 트라우마들은 시간이 흘러도 그들 한구석에 자리 잡아 있고, 가끔은 갑작스럽게 일상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오는 상처 또한 절대 아물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에 맞서는 태도를 보인다. 결국 양육 재판에서 승리하고, 다시 사랑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며 기쁨을 나누기도 한다. 언제나 그랬듯, 마지막까지 이들은 함께한다. 다 같이 경찰서로 가는 뒷모습을 비추며 우리들의 시선은 멈춘다.
무엇보다 극적인 '성장'이나 희망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 좋다. 어딘가에 부딪히면 마구 부서지는 파도처럼, 그들은 수없이 무너짐과 갈등을 반복한다. 그렇지만 그들에겐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자신을 위해, 계속 나아간다. 우리가 늘 느끼고 지나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던 관계들을 담아낸, 섬세함과 온기가 가득한 작품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JW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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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치고 힘든 순간이 하이틴 영화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성적표를 받은 미국의 고등학생, 거기에 적힌 글자는 ‘C’다. 여타의 학생이라면 우울한 기분으로 게을렀던 과거를 후회하거나 부모님께 혼날 걱정을 할 것이다. 그녀는 다르다. 선생님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부모님께 성적표 공개를 거부한다. 어떻게 자신하냐는 질문엔 매 학기 선생님들을 설득해 점수를 올렸다고 당당히 말한다. 심지어 독신인 토론 선생님이 행복하면 점수가 올라갈 거란 가정하에 다른 선생님과 로맨스를 만든다, 그녀의 계획은 성공하고 훌륭한 성적을 받으며 친구들의 고마움과 인기를 한꺼번에 얻는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하이틴 영화 ‘클루리스’에서는 가능하다.
영화 ‘클루리스’는 벌써 개봉한 지 20년이 훌쩍 넘는 이야기로 제인 오스틴의 ‘에마’를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만든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하이틴 영화의 정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꼭 봐야 할 하이틴 TOP’ 순위에도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마치 하이틴 영화계의 히치콕의 ‘사이코’고 셰익스피어다. 전체적인 내용은 간단하다. 베벌리 힐스에 사는 고등학생 셰어의 학교생활과 우정, 사랑을 다룬다. 부유한 집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자란 아가씨가 변호사 아빠를 닮아 말도 청산유수인데 자신감마저 넘칠 때 벌어지는 상황들이 주요 사건이다.
클루리스 영화의 특징은 셰어라는 인물의 특징과 일맥상통한다. 주인공의 매력이 특히 중요한 하이틴 영화에서 그녀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먼저 옷을 좋아한다. 몸에 달라붙는 슬립 원피스와 노란색 체크 셋업 의상, 가죽 치마와 프레피 룩은 화려한 외모와 잘 어울린다. 영화의 분위기마저 알록달록하고 다채롭게 보인다. 유행은 돌고 돌아서 촌스럽지 않고 2020년에 유행하는 의상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셰어가 집에서 입고 있는 보라색 이너와 세트인 카디건은 요즘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디자인이다. 게다가 영화가 셰어의 독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최근 유행하는 Vlog를 보는 기분이 든다.
다음 특징은 영화 속 어떤 상황이라도 과즙미를 머금고 상큼하게 만드는 대사들이다. 아빠가 밤늦게 파티에 간 셰어에게 “몇 시인 줄 알아?”라고 묻자 그녀는 태연하게 씩 웃으며 ‘이 옷엔 시계가 안 어울려요.’라고 대답한다. 만화를 보며 의붓오빠인 조시에게 매우 실존주의적이라고 고급스럽게 말하고는 단어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또 다른 파티를 나가려고 할 때 아빠와 나누는 대사는 어이가 없어서라도 웃게 된다.
“그 옷이 뭐니!”
“드레스요.”
“누가 그래?”
“캘빈 클라인이요.”
설득력 없고 종종 이해되지 않는 그녀의 사고 회로는 당연하다는 듯 뻔뻔하고 당당하게 말하자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녀 자신도 스스로 사랑스럽고 멋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또래 남자애들은 자신보다 옷도 못 입고 멍청하다고 무시한다.
이렇게 세상을 다 알 것처럼 친구들에게 훈계하고 세상이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거라 행동하던 그녀도 사회의 벽에 부딪힌다. 맞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연결해주다가 상처 받고, 사람에 대한 그릇된 편견으로 위기에 처한다. 기어코 운전면허 시험까지 떨어졌을 땐, 자신이 몹시 작고 바보가 된 기분을 느낀다. 그녀가 영화의 첫 장면에서 말하듯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10대다.
진정으로 셰어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요소는 이 순간이다. 좌절한 순간들마저 그녀 답게 해결한다. 철없던 자신의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다툰 친구에게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물품 기부 행사를 열며 앞장선다. 그러면서 엉뚱함을 잃지 않는다. 자신의 철없음을 깨닫는 순간조차 쇼윈도를 보며 내면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저 옷이 제 사이즈가 있을까요?’라며 독백한다. 옛날 영화답게 연출도 귀여워서 셰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인정할 땐 그녀 뒤에서 분수가 튀어 오른다. 그녀와 영화는 뭘 해도 사랑스럽기만 하다.
하이틴 영화를 보는 이유는 쉽기 때문이 아닐까?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고 웃을 수 있다. 풋풋한 주인공의 로맨스에 대리 설렘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과거에 개봉한 하이틴 영화는 열이면 열 개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사랑을 이루고 우정을 얻고 성장한 주인공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마지막 장면이다. 우리의 일상도 그랬으면 좋겠다. 지치고 무기력하게 버티는 시간들이 결국엔 하이틴 영화처럼 더는 닫을 수 없을 만큼 꽉 닫힌 행복으로 끝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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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면 팔수록 현혹되는 씻김굿!
(이 글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온 몸이 아팠다. 마치 134분동안 신비롭고도 무서운 기운이 한데 몰아치는 가운데, 신명나는 굿판을 체험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파묘>는 여러모로 에너지가 상당한 작품이다. 한국형 오컬트의 길을 더 확장한 장재현 감독은 물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에 맞게 충실한 연기를 보여주는 일명 ‘묘벤져스’ 배우들은 그 에너지를 한 데 모아 도깨비불처럼 관객을 끝까지 현혹시킨다. 후반부 새로운 이야기가 다소 생경스러움을 줄지언정 이 굿판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확인할 정도. 뭐가 나온다 한들, 끝까지 파고 들어가는 감독의 뚝심은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한다.
실력 있는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미국행 비행길에 오른다. 기이한 병이 장손에게 대물림되는 집안의 의뢰를 받았기 때문. 대번 조상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낸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한다. 거액의 의뢰엔 의심과 위험이 따르는 법. 묫자리를 본 상덕은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를 보고 이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파묘를 시작한다. 그러나 예상대로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생기는 기이한 이들이 벌어지고, 결국 이들은 험한 것들과의 전면전을 치른다.
<파묘>는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 <사바하>의 장점을 고르게 가져간다. 서울 명동에서 펼쳐지는 엑소시즘, 기독교과 불교, 사이비 종교의 만남 등 이질적인 것을 붙였을 때 느껴지는 신비로움과 그로테스크함이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특히 풍수와 의례, 무속신앙과 국가를 넘은 초자연적 현상이 함께 맞물리며, 악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과 작품 전반에 깔린 기묘한 매력을 배가시킨다. 여기에 <검은 사제들> 보다 이야기 층을 두텁게 하고 영역을 확장하는 방식, <사바하>보단 더 쉽고 직관적으로 가져가려는 감독의 의도가 담기며 그 장점이 오롯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장재현 감독은 <사바하>부터 크게 전후반(전반부는 불교 후반부는 사이비 종교)을 나누어 이야기의 전복을 꾀했는데, <파묘>에서도 그 방식을 이어간다. 영화는 첩장(관이 두 개)된 묘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전반부는 파묘 이후 악의 기운을 가진 혼령의 비밀과 이를 없애려는 묘벤져스의 노력이 담겨 있다. 의뢰자 집안의 진실이 숨겨진 채로 행해지는 화림의 대살굿과 파묘, 이장 과정은 이후 괴이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을 계속 부여하며 이야기를 주시하게 만든다. 감독은 이 분위기를 계속 가져가기 위해 최대한 숨겨진 진실의 빗장을 서서히 풀어가고 혼령의 모습을 절제하면서 서스펜스와 미스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취한다. 빛과 어둠의 대비와 교차 편집을 통한 극적 긴장감도 유지해 나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두 번째 파묘 이후 이야기는 오컬트에서 어드벤처 크리처물로 장르의 변화를, 개인에서 민족으로 대상의 변화를 꾀한다. 기존 관보다 더 깊숙하게 박혀 있는 관의 봉인이 풀려 ‘험한 것’이 나오며 비로서 이 묘가 왜 생겼는지를, 산 주위에 왜 여우들(여우 음양사)이 있었는지, 그 관이 가로가 아닌 세로로 묻혔는지(쇠말뚝)에 대한 비밀이 밝혀진다. 그리고 묘벤져스는 쇠말뚝과 같은 관 속의 험한 것의 실체를 마주하면서 또 한 번 대결을 치른다.
이야기와 장르가 전복되는 후반부는 다소 당황스럽다. 일단 악의 실체가 보이는 순간, 전반부에 고조되었던 쫀쫀한 긴장감은 풀려 버린다. 장르 선택에 따른 이 결과치에 악령을 퇴치하기 위한 목적이 애국주의로 모이면서 생기는 낯간지러움이 더해진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이 생경한 이야기는 그 목적을 이해하면 달리 보인다. ‘과거의 것을 들춰서 잘못된 것을 꺼내 없앤다’는 게 실제 ‘파묘’를 하는 목적이자 필요성이다. 위험 부담을 안고도 감독이 뚝심 있게 후반부 이야기를 밀고 나간 건, 개인에서 민족, 더 나아가 우리의 땅으로 대상을 확장하며 그동안 감춰져 곪아 터진 상처와 고통, 아픔의 근원을 꺼내 없애는 의미를 담고자 했기 때문이다.
숨겨진 진실(혹은 이름)을 찾으며 개인과 사회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마주하게 하고, 결국 이 과정을 통해 얻는 작은 희망을 그린 전작들을 미뤄봤을 때 이번 이야기는 일본 제국주의라는 우리 민족의 어둡고 공포스러운 존재를 심연에서 끌어올려, 상처를 치유하고 두려움을 몰아내는 씻김굿처럼 보인다. 이에 걸맞게 영화는 음양오행이란 가장 오래되고 자연스러운 섭리로 ‘험한 것’에 대항한다. 장르 전환에 따른 낯설음을 바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영화가 품은 의미는 물론, 이야기 확장성을 위해 일정한 방향으로 ‘파묘’하는 감독의 뚝심은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한다.
관객이 끝내 설득당하는 건 배우들의 호연도 영향을 미친다.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등 각 역할에 맞게 그 선을 지키며 공조하는 연기가 돋보인다. 극중 각 영역 전문가라는 특성에 맡게 이어달리기처럼 그 순서가 되면 곧바로 바통을 전하듯 이들의 협업은 마지막까지 극적긴장감을 올린다. 특히 초반 대살굿으로 가장 확실한 인장을 찍는 김고은은 물론, 땅파먹고 산 경험을 토대로 일본의 ‘험한 것’ 을 향해 일격을 가하는 최민식, 이들과 함께 자신의 역량을 100% 표출하는 유해진, 이도현의 연기 등 이들의 앙상블은 영화에 힘을 더한다.
<파묘>에서 다룬 이야기가 어떻든간에 장재현 감독은 가장 한국적인 오컬트 장르를 길을 열어가고 있다. 후반부 봉길의 병실에서 먹을 것을 놓고, 그에게 깃든 ‘험한 것’을 불러내기 위해 구라액션을 펼치는 화림과 동료 무당인 광심(김선영), 자혜(김지안) 장면은 우리만의 엑소시즘을 멋스럽게 변형한 장면이다. 이뿐인가? 다수의 장면에서 이런 감독의 한국적인 오컬트 요소와 장면을 만날 수 있다.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런 말을 전했다. “진보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전을 하고 나아가야 했다. 이 영화가 그 결과물이다.” 감독님이여~ 그 마음 변하지 말고 한 길 우직하게 열심히 파묘하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덧붙이는 말: 영화를 본 이후에는 꼭 소금 사시 뿌리시길. 국내산 천일염으로. 그것도 씨알 굵은놈으로다가!
사진 출처: 쇼박스
평점: 4.0 /5.0
한줄평: 파면 팔수록 현혹되는 씻김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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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치의 투명함
<힘찬이는 자라서>(2022, 김은희)
<윤시내가 사라졌다>(2020, 김진화)
<세기말의 사랑>(2023, 임선애)
<살인자ㅇ난감>(2024)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23)
* 위 작품들의 장면과 결말 포함
손수현을 보기 위해 재생한 단편 <힘찬이는 자라서>, 노재원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주인공 정희의 친구의 남편 강석, 적당히 내향적이고 친절한 남자인 그는 대화의 주제가 달랐다면 예의바른 미소로 일관하다 퇴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영화가 만들어질 까닭도 없었겠지.) 정희가 쓰는 시나리오가 테이블에 올라오며 두 사람은 부딪힌다. ‘이퀄리스트’적 논리를 따박따박 나열하는 강석의 언행에 딱히 악의는 없다. 그는 모르고 또 알려 하지 않으므로 ‘억울’해 하는 게다. 강석은 현실을 반영해 구성된, 특정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인물이었다. 배우는 역할에 충실했고, 나는 강석이 밉고 갑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직설이 차라리 반가웠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저리도 솔직한 표정을 짓는 저 배우는, 주어진 대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저이가 정희의 시나리오를 이해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왠지 그럴 것 같다. 그건 노재원의 연기를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어졌다는 신호였다.
첫 만남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서서히 스며들게 되는 이도 있다. 노재원은 말하자면 후자였으나, 어느 정도 전자이기도 했다. 타 배우를 염두에 두고 관람한 작품들에서 그를 목격할 때마다, 매번 새로이 놀랐다.
자주 길을 잘못 들거나 가다 멈추곤 하는 로드무비 <윤시내가 사라졌다>. 운시내=준옥은 완벽한 두 번째 만남이었다. 반짝이는 재킷을 걸친 그가 카메라에 잡힌 순간, 노재원의 이름을 기억했고, 좋아하게 되리란 것을 예감했다. “원조 가수랑 똑같기만 하면 매력이 있나, 저는 그냥 저 마음가는 대로 부르거든요. 그래서 일이 안 들어와요.” 그 자조 섞인 담백한 대사에 준옥의 태도가 담겨 있었다. 그의 공연은 본인의 설명대로다. 힘주지 않아도 깊이가 느껴지는, 차분한 ‘엣지’를 품은 목소리. 섬세한 선을 그리는 움직임. 노재원은 단지 노래를 할 줄 아는 것을 넘어- 음으로 관객의 심장을 울릴 줄 아는 공연자였다, 꼭 운시내처럼. 무대 위의 옅은 웃음기는 후에 화장을 지우고 거울을 보며 짓는 미소와 닮아 있다. 미묘한 카타르시스. 겸손함, 당당함, 자만하지 않는 자신감. 삶의 지혜를 터득한 사람 특유의 아우라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운시내’가 노래하는 자세는 ‘정준옥’이 살아가는 자세와 닮았다. 식탁 밑에 있는 하다(=처음 보는 사람)를 동그란 눈으로 응시하다 한쪽 이어폰을 슥 빼 제 귀에 끼우는 그 독특한 붙임성. 당황한 하다가 식탁에 머리를 박자 튀어나오는 진심어린 감탄사 “아이고.” 그 마주침부터 줄곧, 하다는 무례하고 준옥은 스스럼없다. 준옥의 친절은 형식적 예의 이상이다. 어머니 뻘인 순이를 ‘친구’라 부르며 벽없이 훅 다가가는 그는 하다의 말처럼 “선을 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단 ‘선을 잘 넘는 법을 아는’ 이였다. 꿍꿍이가 없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 내면의 깊이마저 갖춘. 그 넓은 마음 씀씀이는 절로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다. 스스로 투명하므로 타인의 속도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걸까. 그는 하다의 셈과 위악을 어느 정도 간파하면서도 섣불리 평가해버리지 않고 조용히 지켜본다. 은근히 끼고 싶어하는 속내를 눈치채고 보내는 눈웃음, 삐딱한 행동을 관찰하는 진지한 눈길. 준옥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인형과 함께 모녀의 갈등을 터트린 것은 글쎄, 아마도 의도적이다. 가운데 끼어 욕을 먹고 눈치를 보며 기어이, 중요한 이야기를 던지고야 만다. 하다의 케케묵은 감정을 자꾸만 건드린다. 일부러 걸림돌이 되고 기꺼이 거슬린다. 노재원의 자잘하고 천연덕스러운 제스처들은, 준옥의 신묘한 중재자(!)적 능력을 의심케 했다.
그런 그가 살짝이라도 차가워지면 이쪽에서 눈치를 보게 되고, 단호해지면 더욱 귀기울이게 된다. 준옥의 위로는 빈말이 아니고 그의 조언은 불쾌한 맨스플레인이 아니다. 그가 ‘실패한’ 과거를 꺼내 보여주지 않았더라도 와닿았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진심을 체화한 노재원, 그가 간직한 아름다움은 드문 종류의 것이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굳이 말하자면 하다와 순이의 영화이기에, 준옥은 도중 하다에게 버려지며 화면을 빠져나간다. 화내거나 패닉하는 대신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고 마는 것마저 그답다 싶었다. 그렇게 흐지부지 퇴장하는 그를 ‘메시지의 의인화처럼 보이는 존재’라고 해버리면 편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리 갈무리하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노재원을 만나 생명력을 얻은 준옥, 그의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안 정도는 빌고 싶어진다. 한편으로는 안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그는 잘 살아가리라 짐작하게 된다. 법 없이도 살 듯한 남자. ‘관종’과 ‘짝퉁’들의 언더월드에서 운시내=준옥은, 우아한 미스핏, 골목길의 귀인,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는 도인이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2020)
여기 ‘법 없이도 살 듯한 남자’가 또 있다. <세기말의 사랑> 속 도영이다. 모순된 묘사로 들릴 것이다, 그는 회사 돈을 횡령한 범죄자이니. 가출한 조카가 위장결혼한 와이프 명의를 도용해 만든 카드값을 혼자 메꾸려다 그렇게 되었다. 앞 두 문장의 설명은 틀리지 않았으나 완전히 맞는 것도 아니다. ‘위장결혼’의 자간에는 사랑과 배려가 묵음처리돼 있다.
영미와 도영은 조금은 동족이다. 사랑하는 이의 범죄를 덮으려 밤새 부업을 하고 형까지 산 영미, 기다려달라는 영미 말을 따르다 그런 건지 뭔지 자수도 못하고 체포된 도영. 뒤늦게 꼬박꼬박 돈을 갚는 그를 미워할 수 있는 관객은 별로 없었으리라. 캐릭터의 사연도 성격도,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방식으로 풀어가는 <세기말의 사랑>, 도영의 껍질은 투명했다. 스쳐 지나갈 법한 소재를 클로즈업해 인물을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런 순간은 도영과 만나 유독 빛났다. 비엔나 소시지에는 타인에게 일말의 불편함도 남기지 않으려 애쓰는 배려심이 묻어 있었다. 모기 물린 자국에 찍은 십자가에는 살짝 엉뚱한 유머감각과 순수한 설렘이 눌려 있었다. 도영의 스크린 타임은 짧았으나, 그의 됨됨이를 파악하기엔 충분했다. 유진과 도영이 마주하는 시퀀스는 겨우 둘이었고 개중 하나는 화상면회 씬이었으나, ‘위장 결혼 상대’를 향한 도영의 사랑을 짐작하기엔 충분했다. “좋아해요”를 뱉어버리고는 웃음기가 사라지는 입가에, 호텔 창문 너머 반짝이는 관람차를 보며 (혹은 보지 못하며) 섬세하게 일그러지는 뺨에, 작품이 생략한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도영은 그럴듯하게 멋져 보이는 법을 모르는 듯한 사람이었다. 어쩐지 노재원도 그런 사람일 것만 같았다. 수줍은 손끝과 내리깔린 눈꺼풀, 자주 흐리는 말끝에 가득 담긴 진심이 그대로 전해졌다. 도영에겐 그런 드문 자질이 있었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고, 노재원은 이상한 배우다.
<세기말의 사랑>(2023)
최근 노재원은 넷플릭스를 누비며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D.P> 시즌2에 군복을 입은 실루엣을 비추었고, 최근에는 <살인자ㅇ난감>에 출연하며 ‘범위’를 증명했다. ‘하상민 역에 노재원’이라니, 뜻밖의 캐스팅이었다. <힘찬이는 자라서>까지를 포함해도, 앞뒤가 다른 하상민은 그가 이제껏 보여준 이미지와는 한참 먼 캐릭터로 느껴졌다. 허나 곧 (정이서와 더불어) 꽤나 영리한 캐스팅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노재원은 어떤 전형을 따라하는 대신 저만의 스타일로 보통의 악인을 소화했고, 결과적으로 시청자가 극에 더욱 몰입하도록 도왔다.
움츠러든 어깨, 차마 피하지 못하는 눈, 머뭇거리는 말투, 하상민은 매혹적인 젠틀맨이 되기보단 유약함과 무해함을 가장해 상대의 경계심을 해제한다. “혹시 연락을… 해도 되나?” 수락을 해도 반대로 거절을 해도 괜찮을 듯한 톤이다. 그 탁월하게 균형잡힌 딜리버리에 감탄했다. 경아에게 ‘너는 나와 동류’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건, 꾸며낸 피해 서사 자체보다는 그것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배우의) 태도이고 마스크다. 악의라곤 없어 보이는 노재원의 눈빛에, 원작의 전개를 알고 있음에도 속아넘어갔다. 거울 앞에서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하상민에게 이유있는 싸함을 느끼면서도, 거기 속셈은 없다고 믿고 싶었다. ‘이번엔 믿어봐도’ 될 법한 분위기를 풍기는, 최우식과는 또다른 방향으로 ‘위협적이지 않은 남성성’을 두른 배우. 그렇게 노재원은 성공적으로 경아와 시청자의 의심을 풀었고, 배신감을 극대화했고, 최후의 순간에는 이희준과 만나 더없이 보잘것없어졌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평범하여 더 유해한 비겁자 하상민. 송촌 앞에서 벌벌 떨고, 울며 애원하고, 먹어 들어가는 발성으로 죄를 고백할 때보다- 경아에게 욕하고, 소리지르고, 이내 이성을 잃고 목을 조를 때, 그는 가장 약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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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다행이었다, 그 직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시청한 것은. 노재원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이 작품을 최근에야 보게 됐는데, 이미 목격한 매력과 범위를 놀라운 형태로 재확인하는 경험이었다. 서완은 일단, 조심스럽고 순하고 해맑다. 날카로운 눈매와 맑은 눈동자가 안경과 만나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쭈뼛거리는 눈가와 입가, 어깨. 말투는 정중하고, 발걸음은 자유롭다. 스토리텔링을 장황하게 늘이다 끝을 흐리는 점, 몸을 슬며시 뒤트는 점, 시선을 허공이나 바닥에 두는 점, 그러한 디테일은 대사와 맞물려 서완의 ‘컨디션’을 암시한다. 허나 캐릭터성 또한 나타낸다. 그 흐름에는 개성이 있다. 다은이 떠온 “암브로시아”를 공손히 받아드는 제스처에 뱃속이 간질간질해 진 이는 (이미 배우를 좋아하는) 나뿐이 아니었으리라.
작품은 서완의 스크린 타임을 영리하게 조절했다. 은은한 잔상을 남기고 박보영과 연우진에게 포커스를 넘기며 슬금슬금 퇴장했다가, 동네 주민처럼 가끔 얼굴을 비추며 독보적인 그림자를 흘리는 서완. 인자하고 어색하게 유유자적하던 그는, 자신의 견고한 세계가 외부 자극에 의해 깨질 위기를 감지하자 공격적으로 돌변한다. 노재원은 그 간극을 설득하고, 인물의 사연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4화에선 조심스러운 선의로 주위를 밝히고, 5화에선 시청자의 심장을 잔뜩 졸인 끝에 허탈한 웃음을 선사한다. 그 다음 화에서, 우리는 서완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 그를 떠나보내게 된다.
자신이 구성한 판타지 월드 안 서완은 지쳐 있지만 단단하다. 발음과 말씨도 분명한 편이다. 그 세계가 스스로 해체되는 것을 지켜보는 서늘한 눈동자엔 공허가 있다. 고요하고 무기력한 수긍이 이어진다. 유하고 공손한 그의 언어가 날카롭게 꽂히는 유일한 대상은 자기 자신. 입원 전, 속상할 만큼 이성적인 자각을 털어놓는 상태와, 병 인지 후 조바심과 자책감에 어쩔 줄 몰라하는 상태는 닿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은의 멍든 손을 보고 제가 더 아파하는 이다.) 노재원은 누르고 파고들고 덜어냄으로써, 공시를 준비하던 서완의 마음을 드러냈다. 참고 참아 무뎌져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 성마른 입술을 통해 뱉어내는 자조에 여러 해에 걸쳐 어마어마한 밀도로 압축된 응어리가 언뜻 비쳤다. 노재원은 쌓이고 뒤엉켜 본래의 색을 잃은 인물의 내면을 신중하게 내보이는 법을 아는 배우였다.
저마다 개성있고 훌륭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로 가득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노재원은… 조금 달랐다. 무엇이 더 낫다고 비교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조금 달랐’다. 엉망으로 울게 했고, 기습적으로 웃게 했고,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그리고 서완의 마지막 순간, 노재원은 모조리 비워냈다. ‘차 한 잔’을 청하던 떨리는 목소리가, 허탈하고 자유로워 보이던 미소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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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세기말의 사랑>을 관람하며, <힘찬이는 자라서>를 돌이켰다. 노재원에게 받은 첫인상과, 현재 머릿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이미지를 번갈아 떠올렸다. 각이 예리하게 두드러지는 얼굴은 일관성을 유지하며 다채롭게 변했다. 그는 부드러운 피부를 입고 단단한 중심을 잡을 수 있었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한없이 약해질 수 있었다(하상민). 전부 내려놓거나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했다. 무던한 듯 통통 튀는 손수현, 예민함과 유함이 공존하는 노재원. 두 배우의 에너지가 보다 친밀하게 엮이는 작품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이주영, 이유영, 스치듯 화면을 공유했던 최우식까지- 관심을 보다 먼저 두었던 배우들과 노재원이 다른 세계에서 다르게 얽히는 모습을 은근히 그려보게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 남자 배우가 선뜻 내보이기 어려울 수도 있는 이미지를 노재원은 스스럼없이 둘렀다. 힘주지 않고 깊이를 담는 연기자. 노재원의 인터뷰들을 읽으며, 자주 준옥이 겹쳤다. 일에 대한 사랑과 겸손한 자신감이 진중하고 솔직한 언어에 실려 있었다.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스포츠경향]는 그는 현명한 걸음을 저답게 내딛고 있다.
“당신의 다정함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일본 TV 시리즈 <그래도, 살아간다> 속 대사다. <세기말의 사랑>, 도영을 보며 그 문장이 떠올랐다. 도영만이 아니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의 준옥,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서완, 그들은 웃는데 이쪽은 자꾸 울먹이게 됐다. 이들의 살갗에 안착한 배우가 노재원이 아니었다면 내 눈물샘이 이토록 왕성하게 활동할 일은 없었으리라 확신한다. 노재원은 이상하고 소중한 배우다. 그가 수줍게 뿜어내는 무해한 아우라에 속수무책으로 감염되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영제는 “Daily Dose of Sunshine하루치의 햇빛(멋대로 의역. 배경이 병원이니 ‘복용량’을 살려 번역하는 게 더 맞을 테다.)”. 스크린 위 노재원을 보면, 하루치의 투명함을 보충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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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과 광기의 경계
인도영화 <킬>은 '40명의 무장강도와 1명의 특수요원'이라는 광고 문구와 제목만 보자면 액션만을 위한 유치한 영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영화이며, 오히려 비슷한 류의 액션영화인 <테이큰>이나 <존 윅>보다도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이 담겨있다. 다만 주인공 자체에 대한 서사가 너무 로맨스에만 맞춰져 있고, 액션 서사를 '특공대'라는 것으로만 퉁친 점이 좀 아쉽다.
이 영화가 좁은 곳으로 공간을 제한한 단순액션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감독 니킬 나제시 바트(Nikhil Nagesh Bhat)가 자신이 직접 기차 무장강도를 당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액션뿐 아니라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심리묘사나 인도의 계급갈등 등 사회의 묘사가 탁월하다. 그리고 그 부분을 액션으로 잘 승화했다. 비단 이 영화가 인도 영화 특유의 색채 때문에 80-90년대의 홍콩영화 감성이 물씬 풍기더라도, 앞서 말한 점에서 <테이큰>이나 <존 윅>보다도 나은 점이 있다고 느낀다. 이 영화는 그 주제를 잘 나타내기 위해, 영화 중간에 제목을 넣어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죽여야만 할 때
주인공 암리트(락샤)와 친구 비레쉬(아비쉐크 차우한)는 특공대 출신이다. 이 기차에 타고 있는 암리트의 약혼녀 툴리카(타냐 마닉탈라)와 그 가족을 구하기 위해 무장강도가 나타나자 행동을 개시한다. 이때 이들의 전투 목적은 훈련받은 군인의 자세다. 적을 제압하고, 상대의 수가 많으므로 힘을 낭비하지 않으려 하는 철저한 군인모드. 그들은 자신들이 무력한 일반승객과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고, 그러기에 둘 다 아무 망설임 없이 무장강도를 상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상대들은 단순한 무장강도가 아니다. 그들은 실제 가족들이다. 가족들끼리 패거리를 이뤄 강도단을 만드는 것은 빨리 돈을 벌고 싶어 하는 하층민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탄 이 열차는 상류층이 차는 매우 비싼 열차이며, 거의 비행기 값이라고 한다. 그러니 승객 몇을 죽이면서 공포로 몰아넣고, 빠르게 내려 도망가려 한 것이다. 그들은 승객들을 공포로 몰아넣기 위해 살인이 필요했다. 그것을 주도한 파니(라가브 주얄)는 이 가족 강도단의 행동대장 격이며 잔혹하다.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농락하는 것을 즐기다 일을 그르친다. 만약 단순히 강도들이나 특공대 주인공들이 할 일만 했다면 그렇게 뒷부분처럼 참혹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죽이고 싶어질 때
영화는 중반부 파니가 암리트의 약혼자인 툴리카를 죽이면서 완전히 달라진다. 영화의 제목인 <킬>이 그제야 화면에 커다랗게 새겨진다. 암리트는 군인으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복수와 죽음의 화신이 되어버린다. 그 모습은 마치 폭풍의 신인 루드라 신이 강림한 것처럼 두렵고 잔혹하다. 칼로 찔러 제압하고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풀고 강도들에게 끔찍한 공포와 고통을 주는 것이 목적으로 바뀐다. 지금까지 강도들은 승객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끔찍하게 죽어나가는 자신들의 가족들을 보며 그들은 암리트에게 공포를 느끼고 두려워하고 울부짖는다.
그건 마치 현대 격투가와 고대 무술가의 차이와도 비슷한데, 현대 격투술은 스포츠로 만들어져 타격과 기술에 제한이 있다. 상대를 무력화시켜 승리를 거두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필요 이상으로 상대를 다치게 하거나 불구로 만들거나 죽이면 안 된다. 그래서 급소를 타격하는 등의 위험한 기술은 실전에선 유용하지만 아예 하지 못하게 가르친다.
그에 비해 고대 무술은 원래 전쟁에서 상대방을 가장 빠르게 죽이는 목적이 있는 것이므로, 눈 찌르기나 급소 타격, 관절 부러트리기 같은 위험한 기술이 주가 된다. 물론 특공대인 주인공들이 쓰는 특공무술은 그런 '죽이기 위한'무술을 가르치는 것이지만, 단순하게 감정 없이 제압하는 것과 분노를 담아 잔인하게 고통을 주며 죽이는 건 또 다르다. 그건 광기의 살인이다. 이것들의 차이는 타나카 아키오의 만화 <군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분노의 화신이 된 암리트는 이미 죽은 상대의 머리를 계속 내리쳐 으깨버리고, 칼로 찌른 몸을 천천히 반으로 갈라버리거나 일부러 잔혹하고 고통스럽게 죽이고 전시한다. 그 광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암리트의 절망과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공포와 살인의 반전
암리트가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자신이 죽인 강도들을 매달아 놨을 때 문득 에이리언이 생각났다. 그래, 에이리언은 암리트인지도 모른다. 자신은 살기 위해 했던 행동들은 동료들의 끔찍한 죽음으로 다가왔다. 이유를 모른 채 실험체가 되어 이용당하다 태어나자마자 죽어가는 자신들의 삶에서, 그저 살려고 발버둥 친 건 아니었을까? 강도들에게 괴물처럼 비치는 암리트의 모습을 보며 새삼 에이리언에게 연민을 느꼈다. 누가 누구에게 공포이고 누가 괴물인가?
또한 이 영화에서 절대강자로 등장하는 커다란 강도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약하게만 보였던 죽은 승객의 엄마들에 의해 무참히 죽는다. 여기에서는 절대 강자도, 절대 선한 자도, 절대 악한 자도 없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 안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살인을 하고 분노하며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그 힘과 공포는 계속해서 위치가 바뀌며,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은 누군가를 응원하게 된다기보다 그저 그런 끔찍한 참사가 벌어져야만 했던 기차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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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재미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짚어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영화가 주는 '과한 감성'이 맞지 않는다면 감정선이 유치하게 보일만한 연충들이 있다. 그 부분만큼은 위에서 언급했듯 딱 80-90년대 홍콩 액션영화와 비슷하다. 그리고 액션에 있어서도 주인공의 액션 무술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감정에 초점이 있고, 좁은 공간에서 사물을 이용하는 스트리트 액션이라서 최근 크라브마가나 칼리 아르니스와 같은 특공무술의 쿨하고 멋진 모습보단 더 현실적인 액션에 가깝다.
잔혹한 액션을 좋아하는 액션 팬들에겐 롯데 시네마에서만 단독 개봉하는 게 아까울 정도로 괜찮은 영화다. <존 윅> 제작사에서도 리메이크를 한다고 하니, 마치 과거 <옹박>을 뤽 베송이 재편집해 개봉해 배우였던 토니 쟈가 세계적인 액션스타가 된 일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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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에 가려진 서사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그린 나이트” 후기입니다. 난해하지만 쿠키영상이 있습니다. *아래 네이버지식백과에 나온 원작시에 대한 해설을 참고하고 영화를 감상하신다면 판타지와 원작을 비교하면서 충분히 영화를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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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푸라기 짐승들'...미쳤습니까?? 리얼 솔직 리뷰 (*스포없음)
?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짐승들 리뷰 영상 (*스포없음)
'1917'도 재미있지만, 이 영화도 진짜 재미있습니다
제가 안 이러는 거 잘 아시잖아요?-시놉시스
[사기, 배신, 살인...
모든 것은 돈 가방과 함께 시작되었다.]사라진 애인 때문에 사채 빚에 시달리며 한탕을 꿈꾸는 태영.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힘들게 이어가는 가장 중만.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기 위해 남의申 것을 탐하게 되는 연희.
인생 벼랑 끝에 몰린 그들 앞에 거액의 돈 가방이 나타나고,
마지막 기회라 믿으며 돈 가방을 쫓는 그들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한다.[“큰돈 들어왔을 땐 아무도 믿음 안돼”]
고리대금업자 박사장, 빚 때문에 가정이 무너진 미란, 불법체류자 진태,
가족의 생계가 먼저인 영선, 기억을 잃어버린 순자까지…
절박한 상황 속에서 서로 물고 물리며 돈 가방을 쫓는 사람들.
최선이라 믿은 최악의 선택 앞에 놓인 그들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한탕을 계획한다.처절하고 영리하게, 절박하고 날카롭게!
지독한 돈 냄새를 맡은 짐승들이 움직인다!-스태프
장르: 스릴러, 범죄
감독: 김용훈
각본: 김용훈
원작: 소네 케이스케의 소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제작: 장원석
촬영: 김태성
미술: 한아름
음악: 강네네
편집: 한미연
출연: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윤여정, 정만식, 진경, 신현빈, 정가람 외
제작사: (주)비에이엔터테인먼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배급사: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촬영 기간: 2018년 8월 30일 ~ 2018년 11월 30일
개봉일: 2020년 2월 19일
상영 시간: 108분#지푸라기라도잡고싶은짐승들리뷰 #지푸라기리뷰 #지푸라기짐승들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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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킹스맨 : 퍼스트 에이전트> 레거시 예고편
전 세계를 위협하는 잔혹한 전쟁 뒤에 가려진 역사상 최악의 적을 막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베일에 감춰졌던 최초의 독립 정보기관 ‘킹스맨’의 탄생을 그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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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장난 론> 메인 예고편
최첨단 소셜 AI 로봇 ‘비봇’이 모든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세상.
비봇을 갖는 것이 유일한 소원인 소심한 소년 ‘바니’에게도
드디어 ‘론’이라는 비봇이 생겼다.
그러나 첨단 디지털 기능과 소셜 미디어로 연결된 다른 비봇들과는 달리,
네트워크 접속이 불가능한 고장난 '론'
자유분방하고 엉뚱한 '론'으로 인해 벌어지는
엉망진창, 스릴 넘치는 모험을 함께하며
'바니'는 진실한 우정이 무엇인지 점점 깨닫게 되는데..
<인사이드 아웃> & <인크레더블 2> 제작진이 선사하는
새로운 우정과 특별한 모험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