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tive contents
-
- 거장 셋이 모이면 ‘걸작’이 나올까?
7★/10★
제약회사를 운영하며 큰 부를 모은 80대 노인. 그는 이제 물질적인 것에 더는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을 돈 밖에 모르는 속물 취급하는 게 걱정이다. 그는 ‘돈’이 아닌 ‘이름’을 남기고 싶다. 근사한 다리를 만들어 자신의 이름을 달고 정부에 기증하거나 역대 최고의 명작 영화를 만들어서 말이다.
이것이 돈을 잔뜩 투자한 영화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제약회사 회장은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큰돈을 들여 노벨상 수상 작가의 판권을 구입하고, 영화를 보지도 않고 유명한 괴짜·천재 영화감독 ‘롤라’를 섭외한다. 롤라의 제안으로 최고의 연기파 배우 이반과 월드 스타 펠릭스를 주연으로 캐스팅하기도 한다. 돈, 감독, 배우, 스타가 모두 모인 것이다.
그러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 방귀 좀 뀐다는 콧대 높은 사람들은 협력하여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대신 자신의 관점을 상대에게 관철시키는 데 더 큰 힘을 쓴다. 젊은 감독은 롤라는 리허설에서 연기 거장 이반에게 ‘안녕하세요’라는 대사만 열 번 가까이 시킨다. ‘안녕하세요’에 적합한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뿐만 아니라 크레인에 커다란 바위를 매달고 그 아래에서 두 배우에게 대본 리딩을 시키기도 한다. 압박감과 작품의 주제에 짓눌리지 않고 연기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외에도 롤라의 기상천외한 기행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반과 펠릭스도 자존심을 부리는 데서 롤라에 뒤지지 않는다. 이반은 일거수일투족을 SNS에 올리고 트로피에 집착하는 펠릭스가 가소롭다. 반면 펠릭스는 배우론 운운하며 자신을 배우 취급하지 않는 이반이 마뜩잖다. 이들은 때로는 승리하고 때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물고 물리는 기싸움을 이어나간다. 상대를 멸시하고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인물의 욕망이 블랙 코미디로 끝없이 이어진다. 정말 천재·거장들이 저럴까 싶어 무섭다가도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다.
〈크레이지 컴페티션〉이라는 영화의 한국어 제목과 시놉시스, 화려한 출연진들을 보고는 대단히 정신없으면서 혼을 쏙 빼놓는 연출일 거라 짐작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연출이 굉장히 정제된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등장인물도 별로 없어서 대부분 세 주인공이 대사와 연기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영화 속 캐릭터와는 별개로, 모두 연기력이 보증된 배우(페넬로페 크루즈, 안토니오 반데라스, 오스카 마티네즈)들이다 보니 역설적으로 관객의 집중도는 더욱 높아진다.
영화의 백미는 이들이 겉으로 표방하는 가치와 실제로 지향하는 가치 사이의 간극을 풍자하는 장면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고 주변인과 언론에도 이를 강조하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조금 다른 구석, 그러니까 그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욕망이 내재한다. 즉 이들은 자기 자신을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서로에 젖어들다가, 종종 내파된다. 〈크레이지 컴페티션〉은 이를 굉장히 영리하고 품격 있으면서도 유쾌하게 폭로한다. 어찌 되었든 이들이 결국 ‘걸작’을 만들어낸다는 점도 아이러니다. 유쾌하고 매력적인 영화다.
-
- 이건 삼식이 삼촌의 계획에 없는데
말만 하면 모든 걸 다 해결해주는 삼식이 삼촌도 이건 예상치 못했을 거다. '드라마 신인배우' 송강호 주연작이기에 '무빙'에 이어 시청자들을 단번에 끌어모을 것이라 기대했을 텐데, 생각보다 파급력이 크진 않았다.
디즈니+ '삼식이 삼촌'은 캐스팅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데뷔 이래 줄곧 스크린으로 관객들과 만났던 송강호가 처음으로 드라마, 그리고 OTT로 넘어온 데다가, '동주', '거미집' 등 각본을 맡았던 신연식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여기에 변요한, 이규형, 유재명, 진기주, 서현우 같은 쟁쟁한 배우 라인업까지 구축했으니 기대감이 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삼식이 삼촌'은 전쟁 직후 혼란의 시기였던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 배경으로, 원대한 꿈을 꾸는 '삼식이 삼촌' 박두칠(송강호)과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겠다는 청년 김산(변요한)이 함께 꿈을 이뤄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격동기 속에 살아가는 캐릭터들의 흥망성쇠에 초점을 맞췄다.
다른 작품에 비해 호흡이 매우 느린 편이긴 하나, '삼식이 삼촌' 초반부는 꽤나 매력적인 구석을 갖췄다. 삼시세끼를 배불리 먹는 게 소망이었던 박두칠의 과거 및 현재를 디테일하게 표현해 흡인력을 높였고, 삼식이 삼촌의 '장관님'이자 국가 경제 살리기 하나만 바라봤던 김산 또한 이목을 집중시켰다. 두 인물의 개성이 강렬해서인지 우호와 경계 사이를 줄타기하는 듯한 케미도 인상적이었다.
흥미진진한 서사들도 담겨있다. 3.15 부정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과 민주당 그리고 혁신당 간 진흙탕 싸움이라던지 올브라이트 재단 출신 군인들을 부추겨 정한민(서현우) 등 쿠데타를 모의하는 스토리로 담았다. 또 안요섭(주진우), 안기철(오승훈) 부자를 중심으로 이득만 따지는 청우회의 욕망과 빅픽처까지 보여준다.
하지만 회차가 진행될수록 '삼식이 삼촌'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는커녕 중도이탈하는 시청자들만 늘어났다. 빌드업하면서 나아가지 못하고 무한 반복만 이어져서다. 한 회당 러닝타임이 40분대이나 플래시백을 지나치게 남발해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방해물이 되었다.
이는 전반적인 내용을 너무 길게 늘여놓은 탓도 있을 것이다. '무빙'과 동일하게 16부작으로 제작됐으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도돌이표처럼 같은 장면만 되풀이하는 횟수가 늘어나다 보니 지루함만 가중됐다. 전체 회차를 절반으로 줄였더라면 몰입하기 더욱 쉬웠을 것이다.
끝까지 드라마를 완주한 시청자들이 버틸 수 있었던 아무래도 배우들의 연기 파티였을 것이다. 송강호는 더 이상 평하기 입 아플 정도로 강력한 존재감을 발산했고, 송강호화 합을 맞춘 변요한 또한 김산 캐릭터에 감정이입하게 만들 만큼 연기력을 뽐냈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모여있는 '삼식이 삼촌'에서 눈에 띄었던 인물을 한 명 더 꼽자면 강성민을 연기한 이규형이다. 강성민의 잔인한 외면과 불안한 내면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
-
- 생명의 불이 꺼져도 멈출 수 없는 사랑의 힘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살갗을 파고들듯 마음에 상처를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그 순간을 이들만의 사랑의 화법으로 이때까지 본 적 없었던 상상 이상의 로맨스를 펼쳐낸다. 사랑의 의미를 잃어가는 요즘과 딱 어울리는 이 영화는 어떤 색의 사랑을 띌지라도 함께하고 싶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티모시 샬라메와 테일러 러셀이 출연하는 영화 '본즈 앤 올'은 11월 30일에 개봉했다.
평온한 풍경과 그림, 그리고 적막과 함께 흐르는 피아노 소리 속 잔잔한 목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잠든 밤, 몰래 빠져나와 친구들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내면에 자리 잡아 있는 미지의 존재와 마주하게 된 매런이 본능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홀로 남게 된 매런은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알게 되며 내면에 휘몰아치는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떠난 아빠의 목소리를 노래 삼아 들으며 사라진 엄마를 찾아 떠난다. 매런은 자신과 비슷한 존재의 '이터'를 알게 된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매런은 같은 종족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된다. 종족의 이름은 ‘이터’이며 일종의 규칙으로 같은 종족이지만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과 함께하며 비밀을 공유함과 동시에 이유도 없이 찾아오는 식인성을 마주한다. 기억에 남지 않던 욕망의 기억을 떠올리며 죄책감을 느낄 새도 없이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된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다른 규격의 공간을 명확하게 했다. 서로 다른 영향력이지만 장면 장면 겹치는 사랑과 살해의 기억이 매런으로 하여금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바로잡게 한다.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지만 그가 느꼈던 따뜻한 온기는 피로 번져가도 놓을 수 없는 명확한 사랑의 형태로 바뀌고 뼈째로 집어삼켜도 괜찮을 사랑은 앞으로의 여정이 어떤 형태를 만들어갈지 궁금해지게 만든다.
카니발리즘을 통한 이야기 전개가 다소 낯설고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받아들이는 순간을 넘어 그 존재 자체의 인식에 초점이 맞춰지며 개연성을 충족시킨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에 대한 물음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핏빛으로 얼룩진 배경과 대치되는 아름다운 풍경이 대비되며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
- 〈패터슨〉이 한국에서 나이를 먹는다면
감독이 자신의 부모를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작은새와 돼지씨〉는 여간해서는 거리두기가 어려운 영화다. 가사노동을 하는 작은새와 경비원으로 일하는 돼지씨는 오랫동안 부부로 살았다. 두 딸을 낳고 키웠고, 함께 슈퍼를 운영하며 생계를 이었다. 그들이 거주하는 소박한 아파트에는 그들이 함께한 세월이 묻어난다. 작은새와 돼지씨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떳떳하게 살아온 서민 부부의 전형이다.
작은새는 수줍음 많은 다정한 여자고 돼지씨는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호탕한 남자다. 여느 부부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기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한다. 배가 볼록 나온 돼지씨가 소파에 누워 작은새에게 발톱을 깎아달라고 하는 장면, 발에 가시가 박한 작은새가 돼지씨에게 이를 빼달라고 하는 장면, 넌지시 그리고 조심스럽게 상대에 대한 묵힌 불만을 털어놓는 장면 등등. 핵가족의 형태로 살아본 적 있는 사람은 이들 장면을 변주할 자신만의 수많은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낯설고 ‘민망한’ 장면도 있다. 사랑보다는 동지애로 살아가는 수많은 평범한 부부가 한때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었음을 일깨우는 장면 말이다. 영화에는 작은새와 돼지씨가 주고받은 연애편지가 소개된다. 간드러지는 표현으로 서로를 갈구하는 두 사람에게서 우리는 그들이 함께한 세월을 상상하게 된다. 더불어 각박한 현실을 함께 해치며 삶의 토대를 다져온 그들이 지금과는 영 다른(?) 감정을 주고받은 연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감정이 여전히 그들에게 소중히 간직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맺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성찰케 한다. 오래 지속되는 관계는 어떻게든 변한다. 여기에 어떻게 깊이를 더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둘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서로를 지탱하며 버텨온 작은새와 돼지씨의 관계는 여기에 작고 사랑스러운 참조점이 되어준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에 예술이 있다. 우리는 보통 새롭고 혁신적인 예술에만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확장해주는 예술 말이다. 그러나 예술의 가치는 하나가 아니다. 작은새와 돼지씨는 일상의 감정을 승화시키는 수단으로 예술을 한다. 작은새가 자기 내면을 표현한 서예와 그림, 돼지씨가 경비 노동을 하며 쓴 시는 예술의 가치가 하나가 아님을 보인다.
〈작은새와 돼지씨〉를 보며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미국에서 버스 기사로 일하는 패터슨이다. 그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똑같은 버스를 운전하며, 같은 동료의 불평을 듣는다. 퇴근 후에는 아내의 실험적인(맛없는) 요리를 먹고, 어제 간 길로 개를 산책시키며, 어제와 같은 술집에 가서 어제와 같은 술을 마신다. 그러나 다른 것도 있다. 그는 매일 조금씩 다른 시간에 일어난다. 버스에 탄 승객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도 매일 달라진다. 동료의 불평 내용도 바뀐다. 아내는 매일 집을 새롭게 꾸미고, 그녀가 만든 머핀 위 하얀 설탕 물결도 매일같이 달라진다. 술집의 대화는 어제와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터슨은 매일 다른 시를 쓴다. 패터슨에게 시는 따분하고 지루해 보이는 일상을 평온하고 소박한 차이의 반복으로 인식하게끔 해주는 새로운 언어다.
아마도 패터슨이 한국에 산다면, 그가 나이를 먹는다면 작은새, 돼지씨와 닮은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이지만 예술을 통해 발견되지 않은 의미를 들춰내고 스스로를 빛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돼지씨와 작은새가 오래도록 예술과 함께 일상을 살아내기를, 그리하여 그들을 닮은 모든 가족의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
- 계승과 확장 사이 갈 길 잃은 정체성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국왕이자 ‘블랙 팬서’인 '트찰라(채드윅 보즈먼)'가 갑작스레 서거하자 와칸다는 위험에 빠진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비브라늄을 탈취하기 위해 와칸다를 간헐적으로 공격하고, 천재 공학도 '리리 윌리엄스/아이언하트(도미니크 손)'가 만든 탐지기까지 활용해 세계 각지에서 비브라늄을 찾기 시작한다. 이에 '슈리(레티티아 라이트)', 라몬다(안젤라 바셋)', '오코예(다나이 구리라)', '음바쿠(윈스턴 듀크)', '나키아(루피타 뇽오)' 등 트찰라의 가족과 친구들은 제각기 와칸다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선다. 한편, 마야 문명의 후예이자 해저 제국 '탈로칸'의 보호자인 '네이머(테노치 우에르타 메히아)'는 지상 국가들의 비브라늄 수색 시도를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이에 심해에 은거 중이던 그는 지상 세계와의 전쟁을 결심하고, 같은 처지에 놓인 와칸다에 동맹이 되거나 전쟁을 각오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낸다.
대서양 바다 위, 와칸다의 거대한 전함이 나타난다. 와칸다의 도발에 발끈한 네이머와 탈로칸 전사들은 이내 전함을 포위한다. 거대한 물 폭탄의 폭발을 시작으로 전함을 차지하기 위한 공성전에 돌입한 와칸다와 탈로칸의 전사들. 바다를 헤엄치듯 하늘을 날아다니며 와칸다 병력을 도륙하는 네이머 덕분에 탈로칸 군은 조금씩 승기를 잡는다. 이에 질세라 슈리와 아이언하트도 피부로 호흡하는 네이머의 약점을 공략한다. 그들은 네이머의 피부를 말려 버린 후 역습을 가한다. 비브라늄을 가진 두 강대국이 전쟁을 펼치는 사이, 대서양은 처절하게 쓰러져 간 왕과 전사들의 피로 물든다.
<블랙 팬서>의 속편이자 MCU 페이즈 4의 마지막 작품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지상에 숨겨진 국가 와칸다와 심해에 숨겨진 문명 탈로칸의 거대한 전쟁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간다. 그런데 막상 미국도 함부로 건들 수 없는 두 초강대국의 전쟁에서는 박력도, 비장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몰개성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트찰라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시도가 좀처럼 하나의 구심점으로 엮이지 않기 때문이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트찰라의 죽음으로 인해 새로운 사명을 마주한 인물들의 서사이고, 다른 하나는 와칸다와 탈로칸의 확장된 세계관이다. 전자는 시리즈를 이어갈 새로운 블랙 팬서를 소개하기 위함이고, 후자는 전편이 흑인 영화라는 정체성에 국한되어 있다는 한계를 깨기 위한 노력이다. 종합적으로는 트찰라의 존재감을 다른 방식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후계자의 성장을 통해 트찰라를 추모하면서도 블랙 팬서라는 영웅의 의미를 확대하는 것이다.
우선 영화는 트찰라의 죽음을 추모한다. 추모의 핵심은 계승이다. 트찰라가 남긴 유산을 어떻게 물려받을지가 관건이다. 사실 MCU 속 블랙 팬서는 언제나 복수와 밀접하게 연관된 히어로였다. <시빌 워>에서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트찰라는 복수를 위해 윈터 솔져를 찾아 죽이는 데 혈안이었다. 그의 아치 에너미인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도 복수귀다. 그는 자기 아버지와 자신을 버린 와칸다와 국왕인 트차카에게 복수하려 했다. 또 미국에서 성장한 흑인답게 인종 차별로 인한 피해와 억압을 되갚아 주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새로운 블랙 팬서로 거듭나는 슈리도 다르지 않다. 슈리는 트찰라의 병을 알아채지도 못했고, 인공 하트 허브를 만드는 데도 실패했다. 갑작스레 오빠와 사별한 이후로도 그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어머니 라몬다의 위로나 충고도 듣지 않은 채 왕실의 일원으로서, 또 잠정적으로 블랙 팬서의 후계자로서 주어진 책임을 외면한다. 그러던 그녀는 네이머의 테러로 어머니를 잃은 후에야 그간 거부했던 책무를 다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아픔과 상실감을 네이머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다. 직접 개발한 인공 하트 허브를 마신 슈리는 꿈속에서 어머니도, 트찰라도 아닌 에릭 킬몽거를 만난다. 세상을 파괴하겠다는 킬몽거의 야심과 슈리의 분노와 상실감이 향하는 방향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리는 결국 네이머에게 복수하지 않는다. 대신 그를 용서하고, 그와 동맹을 맺는다. 전편에서 트찰라가 남긴 메시지, 관용을 베풀 때 비로소 상실감이 치유된다는 유지를 마침내 깨달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랙 팬서>는 복수심을 어떻게 승화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트찰라와 킬몽거는 흑인, 특히 미국 사회의 흑인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그들은 피부색을 이유로 자신들을 차별한 세상에 복수할지 아니면 용서할지를 두고 격렬히 논쟁했다. 마치 마틴 루서 킹과 말콤 x가 대립하듯이. 이 맥락에서 트찰라는 한층 더 성숙해졌다. 그는 고립주의를 포기했다. 와칸다의 문호를 열고, 와칸다의 자원을 활용해 세상을 돕겠다고 선언했다. 킬몽거의 원한과 복수심에는 공감하되 보다 발전적인 방향을 찾아낸 것이다. 이는 킬몽거의 퇴장과 트찰라의 성장이 관객의 뇌리에 각인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슈리는 서로 다른 인물들의 입으로부터 트찰라의 유지를 전해 듣는다.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은 복수가 옳은 선택이 아니라며 끊임없이 그녀를 설득한다. 음바쿠는 네이머와의 전면전이 와칸다 사람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 거라며 슈리를 말린다. 리리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잃었던 라몬다도 딸이 복수심에 매몰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거라고도 덧붙인다. 나키아도 슈리가 환상 속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계속 물어보며 복수는 와칸다와 탈로칸 둘 모두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걱정한다. 슈리가 네이머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는 순간에는 라몬다의 영혼이 직접 딸을 설득한다. 그 덕분에 슈리는 복수와 용서 사이의 갈등과 딜레마를 극복하는 데 성공하고, 진정한 블랙 팬서로 거듭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는 영화의 러닝타임이 왜 161분에 달할 정도로 길어야 했는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게는 각 캐릭터의 세밀한 감정선을 충분히 묘사할 시간이 필요하다. 미처 풀어내지 못한 트찰라의 서사를 서로 다른 캐릭터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의 유지를 계승하며, 더 나아가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때문이다.
또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트찰라의 유산을 반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복수가 아닌 용서를, 폭력 대신 연대를 선택해야 한다는 그의 유지를 한 걸음 더 발전시킨다. 그 중심에는 네이머와 탈로칸이 있다. 해저 제국의 등장 덕분에 <블랙 팬서> 시리즈는 단순한 흑백 차별 너머의 메시지까지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는 서구의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하며 그 피해자들을 대변하고자 한다.
사실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국가들이 비브라늄을 탐내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몇백 년 전부터 반복되어 왔던 역사이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금과 은으로 가득한 엘도라도를 꿈꿨고, 후추를 찾아 탐험을 떠났으며, 차를 사기 위해 중국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타 대륙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를 고려하면 와칸다와 탈로칸에 묻혀 있는 비브라늄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에 숨겨져 있던 금과 후추, 차 등과 다를 게 없다. 심지어 작중 탈로칸이 마야 문명의 후손이자 콩키스타도르에게 쫓겨난 피해자들이 세운 국가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덕분에 네이머는 단순한 빌런 이상의 매력을 뽐낼 수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만행을 두 눈으로 목격한 그에게는 지상 세계를 경계할 이유와 복수를 다짐할 당위성이 충분하다. 즉, 그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역사의 반복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캐릭터다. 따라서 그는 본질적으로 바닷속의 에릭 킬몽거나 다름없으며, 블랙 팬서의 아치 에너미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더 나아가 이는 미시적이면서도 동시에 거대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토대가 되어준다. 네이머와 슈리는 어머니를 잃은 후 복수심에 불타며, 서로 피 흘리며 싸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마야인과 흑인, 곧 소수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외부의 침략을 받았던 아픈 역사를 공유한다. 그래서 네이머와 슈리의 전쟁은 한 가정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소수 문명을 물들인 피의 역사이다. 또 와칸다와 탈로칸의 동맹이 트찰라를 향한 최고의 헌사인 이유이기도 하다. 용서와 연대의 정신으로 무장해 고립주의 노선을 포기한 트찰라의 비전이 실질적으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모라는 핵심 메시지를 적절히 녹여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두 축은 좀처럼 하나의 영화로 연결되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MCU에 새로이 데뷔한 아이언하트가 스토리에 매끄럽게 녹아들지 못했다. 비브라늄 탐지기를 개발한 리리는 슈리와 네이머의 접점이다. 슈리는 리리를 보호하려 하고, 네이머는 리리를 죽이려 하면서 와칸다와 탈로칸은 충돌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아이언하트가 등장해야 할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리리가 슈리와 네이머의 접점이 될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아니더라도 비브라늄 탐지기를 만들 만큼 뛰어난 공학자라면 그녀의 역할을 충분히 다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언하트가 클라이맥스 전투에서 눈에 띄는 활약상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시빌 워>에서 블랙 팬서와 스파이더맨이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것과 명백히 대조를 이룬다. 그 결과 아이언하트의 등장은 부자연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고, 결과적으로 네이머와 슈리의 서사가 따로 노는 듯 보이게 된다. 리리 윌리엄스라는 캐릭터의 등장과 존재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그녀의 등장을 계기로 펼쳐지는 와칸다와 탈로칸의 서사가 긴밀히 엮이지는 않는 것이다. 네이머가 탈로칸의 역사를 설명하는 대목이 지나치게 길고 지루한 이유다.
두 번째로는 히어로 영화의 정체성이 약하다는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액션의 비중이나 퀄리티가 장르적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네이머의 와칸다 공격 정도를 제외하면 기계적으로 찍어낸 전투 장면이 있을 뿐, 개성적인 액션 시퀀스가 눈에 띄지 않는다. 와칸다와 탈로칸 군은 가상의 국가들이고 독특한 기술로 무장했지만 평범한 백병전으로 일관한다. 블랙 팬서에게 기대할 법한 동물적인 움직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배 한 척을 사이에 둔 전투가 양 국가의 총력전으로 묘사되는 것도 영화의 스케일에는 걸맞지 않다. 이에 더해 CG도 발목을 잡는다. 탈로칸의 경관을 보여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바닷속이 지나치게 뿌옇고 흐릿해 건물이나 사람의 구분이 어렵다 보니 바닷속 강대국이라는 느낌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아쿠아맨>의 아틀란티스를 떠올려 보면 이는 충분히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사실 <블랙 팬서>가 흑인 영화로서의 메시지와 슈퍼 히어로 영화로서의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트찰라와 채드웍 보즈먼의 존재감이 결정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이야기가 트찰라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더 바라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헌사이자, 추모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히어로 영화이자 액션 영화라는 정체성을 잃은 듯이 느껴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장르적 목표와 쾌감을 살려냈다고 보기 어렵다 보니,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는 인상적이지만, '블랙 팬서'라는 히어로를 만난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리오넬 메시가 떠난 바르셀로나 축구를 보는 것처럼. 결국 MCU의 페이즈 4는 트찰라와 채드윅 보즈먼이 떠나간 빈자리만 새삼 느끼며 아쉬움 가득하게 마무리된다.
P(Poor, 형편없음)
아무리 추모에 방점을 찍어도, 오프닝 로고가 최고의 장면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
-
- 차기작이 3개 이상인 배우 모아보기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차기작이 세 개 이상인 배우를 한번 살펴볼까 하는데요!
벌써 차기작이 세 개 이상이 뜬 배우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요?
그럼,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준혁
ⓒ 에이스팩토리
차기작 목록
<소방관>
<범죄도시3>
<비질란테>
차기작 관련 소식
<범죄도시3>
광역수사대 괴물형사라고 불리우는 '마석도'의 범죄 소탕 작전을 담은 영화로 2편의 개봉과
더불어 3편 제작 확정 기사가 났다. 이준혁 배우는 <범죄도시3>의 메인 빌런을 맡았고,
일본 배우 아오키 무네타카도 빌런을 연기한다고 한다.
<비질란테>
올해 공개 예정인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이준혁 배우는
DK 그룹의 부회장이자 '비질란테'의 설계자인 '조강옥' 역을 맡았다.
임지연
ⓒ 넷플릭스
차기작 목록
<더 글로리 파트2>
<마당이 있는 집>
<국민사형투표>
차기작 관련 소식
<더 글로리 파트2>
3주 연속 넷플릭스 전 세계 TOP 10 TV(비영어) 순위권에 등극한 더 글로리의 파트 2가 3월
10일 공개된다고 지난 18일에 공개했다. 파트 2에서는 본격적인 동은과 연진의 싸움이
시작되며, 모든 떡밥을 회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민사형투표>
드라마 <국민사형투표>는 2023년 5월 SBS에서 방영 예정인 드라마로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임지연 배우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안전국 5년 차 경위 '주현' 역을 맡았다.
장동윤
ⓒ 동이컴퍼니
차기작 목록
<롱디>
<내 남자는 큐피드>
<악마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오아시스>
차기작 관련 소식
<롱디>
영화 <롱디>는 사회초년생 도하와 인디 뮤지션 태인이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박유나 배우가 상대역으로 출연한다. 영화는 2021년에 크랭크업하였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지금 우리 학교는>의 이재규 감독이 연출하는 드라마로 정신건강의학과로 처음 오게 된
간호사 다은이 정신병동 안에서 만나는 세상과 마음 시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장동윤 배우와 더불어 박보영, 연우진, 이정은 배우가 출연할 예정이다.
전여빈
ⓒ TVING
차기작 목록
<너의 시간 속으로>
<거미집>
<하얼빈>
차기작 관련 소식
<너의 시간 속으로>
<너의 시간 속으로>는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대만 드라마 <상견니>의 리메이크작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를 그리워하던 준희가 운명처럼
1998년으로 돌아가 남자친구와 똑같이 생긴 시헌을 만나며 벌어지는 타임슬립 로맨스이다.
<거미집>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을 다시 찍으면 더 좋아질 거라는 강박에 빠진 감독이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감행하면서 벌어지는 처절하고 웃픈 일들을 그리는 영화이다. 전여빈 배우는
영화 <거미집>을 제작하는 '신성필림'의 재정 담당을 맡은 일본 유학파 여성 '신미도'역을
맡았다.
전종서
ⓒ 데이즈드
차기작 목록
<모나리자와 블러드문>
<웨딩 임파서블>
<발레리나>
차기작 관련 소식
<모나리자와 블러드문>
배우 전종서의 할리우드 첫 진출작이자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에 올라 화제를 모은
<모나리자와 블러드문>은 핏빛처럼 붉은 달이 뜬 어느 날, 위험한 힘을 지닌 '모나'가 병원에서
탈출하고 새로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판타지이다.
<발레리나>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는 이충현 감독의 영화로 전종서 배우와 두 번째 호흡을 맞추며
화제를 모았다. <발레리나>는 경호원 출신 ‘옥주’가 가장 소중했던 친구 ‘민희’를 위해 펼치는
아름답고 무자비한 복수극을 그린 넷플릭스 영화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
-
- ?씨나병의 영화정보 #12? ?영화 PPL?! 영화 성수기, 비성수기?!?
?씨나병의 영화정보 #12? ⠀ ?열두 번째 주제? ⠀ ? 영화 PPL?! 영화 성수기, 비성수기?!
-
- 영화 <행복의 나라> 티저 예고편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 든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
-
- 영화 <적호서생> 메인 예고편
인간과 요괴가 공존하는 세상. 청렴한 서생 ‘왕자진’은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상경하던 중, 여우 요괴 ‘백십삼’을 만난다.
‘왕자진’의 몸속에 있는 원혼 구슬을 얻어야만 불멸의 여우신이 될 수 있는 ‘백십삼’은 호시탐탐 ‘왕자진’을 사지로 몰아넣고 구슬을 빼앗을 순간만 노린다.
하지만 함께 악귀를 물리치고 목숨을 건 모험을 헤쳐나가면서 ‘백십삼’과 ‘왕자진’은 진정한 친구로 거듭난다.
‘백십삼’이 원혼 구슬과 우정을 두고 갈등하는 사이, 그들에게 더 큰 위험이 몰려오는데…
천 년에 단 한 번뿐인 기회
불멸의 여우신이 되기 위한 모험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