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2021-05-11 11:14:52
범죄자에게 서사는 필요없다. [넷플릭스] 더 서펀트
[The Serpent] [영국 드라마 _ 실화 기반]
1970년대 동양으로 여행을 온 서양인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강도와 살인을 서슴없이 저질렀던 찰스 소브라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드.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청소년 관람불가 임에도 피해자의 가족들을 고려해서인지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은 거의 없다. 실화의 무게를 실어주기 위해서 살인과 강도를 일삼는 주인공을 미화하거나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런 특징들이 개인적으론 더 서펀트의 몰입도를 높였다.
사람을 도구로 생각하는 주인공 찰스 소브라즈는 심리조종에도 탁월한데, 외로움이나 일탈 혹은 사랑하는 마음까지도 도구로 이용해서 상대방을 무너뜨린다.
그는 자신 만으로는 사람들을 유혹하기 부족하다는 생각에 캐나다 퀘백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을 자신의 범죄에 끌어들이고 조종한다. 작품을 보는 내내 여배우의 미모에, 실제로도 저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면 여행자의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유혹할 수 있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Relative contents
-
- <너의 결혼식>과 평행 이론을 이룬다는 이 영화
만남과 기다림의 과정을 겪으며 서로에게 스며든 청춘의 모습을 그린 로맨스 영화가 2021년 봄 스크린을 물들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손편지를 매개로 무채색이었던 일상이 설렘과 행복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두 청춘의 이야기는, 불완전하지만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청춘의 시기,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그 시절 만났던 인연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입니다.
관객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실 이 아날로그 감성 무비는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 <건축학 개론>과 <유열의 음악앨범>의 뒤를 이을 레트로 멜로 영화라고 합니다. "응답하라 2003"을 외치게 만드는 이 영화는 바로 <비와 당신의 이야기>로 특히, 2018년 여름! 한국을 강타했던 멜로 영화 <너의 결혼식>과 평행 이론을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요!
과연 이 두 영화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건 '추억'에 관한 이야기다.
고등학생부터 사회 초년생까지 이어지는 두 남녀의 연대기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첫사랑’ 로맨스
<너의 결혼식>은 3초의 운명을 믿는 ‘승희’와 승희만이 운명인 ‘우연’의 첫사랑 연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승희와 우연의 서툰 모습과 그때 그 시절만 느낄 수 있는 풋풋한 감정을 그려내며 청춘들의 공감대를 제대로 저격한 영화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른 ‘우연’의 첫사랑 이야기는 다채로움을 선사하며 기존 로맨스 영화와는 또 다른 신선함을 전했는데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잊고 있던 오랜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시작됩니다. 알 수 없는 내일에 불안하고,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생기를 잃어가던 삼수생 ‘영호’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위안과 용기를 얻기 시작하는데요. ‘영호’역의 강하늘 배우는 “좋아했던 사람을 기다리면서 느꼈던 설렘과 기다림을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했다고 합니다.
2. 두 주연배우의 완벽 케미!
까칠한 성격으로 쉽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3초 만에 반하는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는 승희를 특유의 통통 튀는 매력과 사랑스러움으로 그려낸 박보영 배우와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만 때로는 서툴고 쿨하지 못한 우연 역을 능청스럽고 순수한 매력으로 소화해낸 현실 남친st 김영광 배우가 만나 완벽 케미를 뽐낸 <너의 결혼식>은 보는 것만으로도 죽은 연애 세포가 살아난다는 평을 받은 바 있죠.
그리고 <비와 당신의 이야기> 역시 청춘의 대명사 강하늘, 천우희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미생>, <청년경찰>, <동백꽃이 필 무렵> 등에서 싱그럽고 순박한 청춘을 그려온 강하늘 배우와 <멜로가 체질>, <써니>, <해어화> 등을 통해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공감을 선사해온 천우희 배우가 이번 작품에서는 보통의 청춘 영호와 소희로 분해 불완전하지만 찬란한 청춘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자신의 실제 경험을 캐릭터에 투영해 20대가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강하늘 배우와, 무료한 일상에도 밝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소희를 한층 더 사랑스럽게 표현했다는 천우희 배우의 케미가 상당히 기대되는 영화입니다.
3. 2000년대 감성 자극!
2005년부터 이어지는 ‘우연’과 ‘승희’의 이야기를 담아낸 <너의 결혼식>은 세월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포착해내기 위해 ‘공간’ 설정에 중점을 두었다고 하는데요. 옛 하숙집은 물론이고, 그때 그 시절 캠퍼스 룩과 MP3 플레이어, 공중전화, 게임기까지! 학창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 소품들과 함께 박보영 배우가 열창한 럼블피쉬의 ‘Smile Again’은 2000년대 초반 감성을 담아내며 짙은 감성을 자극했습니다.
이와 함께,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는 조진모 감독의 말처럼 가장 현실적이고 보통의 청춘의 이야기를 담아낸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의 이야기를 그렸다고 하는데요.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비주얼을 담기 위해 당시 모두에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가로본능 핸드폰부터 지금은 볼 수 없는 구권 지폐, 그리고 하나둘 사라져가는 빨간 우체통 등 시간과 추억을 담고 있는 소품들을 공수한 영화는 특히 스마트폰과 SNS가 일상이 된 관객들에게 손편지를 통해 관객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 예정이라고 합니다.
4. 대만을 사로잡다!
<니적혼례>
한국에서 28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 성공을 만들어낸 영화 <너의 결혼식>은 <니적혼례>라는 제목으로 대만에서 리메이크 되어 노동절 연휴를 앞둔 오는 30일 개봉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전 세계 10억뷰를 달성한 드라마 ‘상견니’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허광한 배우가 직진남 ‘우연’ 역으로 분해 제작 당시부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니적혼례>의 중국 개봉 소식에 한국팬들 역시 한국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콘텐츠가 가장 많이 수출되고 있는 아시아 중 특히 대만에서 한국 연예인의 인기가 뜨거운데요. 지난 2017년,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이미 대만에서 팬미팅을 갖기도 했던 ‘강하늘’ 배우와, 앞서 언급한 ‘허광한 배우’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상견니’의 한국판 여주인공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천우희 배우! 이 두 배우가 만난 청춘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한국 흥행이 확정되기도 전에 5월 7일 대만 개봉을 확정 지었습니다.
설명만으로도 청춘 서사를 써내려간 느낌인 <비와 당신의 이야기> 속 두 주인공은
12월 31일, 비가 오면 만나자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의 실제 삶에서의 12월 31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그 날을 기다리며, 영화로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
- 잘하는 것과 어떻게 하는 것과의 차이
전작의 명성을 잇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전작이 장르영화로서 호평을 받았을 경우에 영화는 새로운 과제를 하나 더 부여받는다. 전작이 가진 영화의 재미를 그대로 유지한 채 후속작만의 독보적인 강점을 갖는 것. 영화 <검은 수녀들>은 이러한 점에서 절반은 성공하고 절반은 실패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익숙함과 새로움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였으나, 장르영화의 재미는 챙겼다. 다만 이 재미를 어떻게 챙겼느냐에 관하여는 관객의 몫에 달린 듯하다.
서품을 받지 못하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악령을 퇴치하는 일에 있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유리아수녀. 그녀는 악마를 믿지 않는 담당의와 원칙을 준수하는 천주교 원로들을 뒤로하고 12형상 중 하나에 빙의된 구마자를 구해야 하는 과제에 놓인다. 구마자 희준과 유리아에게 동질감을 느낀 미카엘라 수녀는 그녀를 도와 구마의식을 돕게 되고, 수녀는 구마할 수 없다는 금기를 깨고 두 사람은 희준을 구하고자 한다.
영화 <검은 사제들>의 성공요소에는 한국에서는 잘 그려내지도,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오컬트장르를 감독의 덕심하나로 성공시켰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서양의 오컬트문화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것이 아닌 그 점 그대로 잘 표현해 냈다는 점에 관객의 마음이 동했다. 어쭙잖게 따라 하지도 않았으며, 어설프게 그려내지도 않았다. 영화 <검은 사제들>은 감독이 본인이 그려내고자 하는 장르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의 열정과 이해도가 높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 <검은 수녀들>은 전작이 가진 장점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나 이에 관점을 조금은 달리하여 전작과의 차별화를 꽤 했다. 천주교 원로회로 분하는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 짐작할 수도 있듯이 이 영화는 보수적인 집단에서의 두 여성이 연대하여 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여성서사에 가깝다. 단순히 여성 2명이 등장하였기에 여성영화라고 칭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에 참여할 수 없는 수녀'라는 설정 자체가 어떠한 제한을 가진 여성 자체를 상징하고 있고 영화 말미에 악마를 봉인하는 의식에서는 오로지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유리아의 희생이 잇따른다. 영화 <검은 사제들>이 '검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영화 <검은 수녀들>은 '수녀'에 초점을 맞추었다고나 할까.
관점을 조금 달리하여 전작과의 차별화를 꿰하였다는 점이나, 토속신앙 등 다양한 요소를 가미하여 극의 내용을 풍부히 했다거나 하는 등의 장점을 가진 이 영화는 다만 배우를 잘 활용하지 못하였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다. 송혜교배우의 전작 <더 글로리>에서의 문동은이란 역할이 수녀복을 입은 것과 채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유리아수녀는 배우의 전작에 기대며 몹시도 평면적이다. 주인공인 그녀를 제외하고도 극 중 전여빈배우가 분한 미카엘라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물들의 과거사는 거세된 편에 가깝다. 이는 극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이유일 수도 있겠으나 중요한 점은 그림자와 같은 과거사를 없애었더니 모든 인물이 평면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충분히 입체적인 역할을 그릴 수도 있었던 극 중 주인공들은 오로지 자신이 부여받은 한 가지 목적 외에 다른 관점은 골몰하지 못한다. 종이인형처럼 극 안에서 움직이는 것과도 같아 보이는 이들은 얼핏 열정적으로 보이면서도 무채색에 가까워 보인다. 어쩌면 영화 <검은 수녀들>은 이미 자신이 부여받은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였을지도 모른다.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워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부분 성공한 듯처럼 보인다. 다만 이 영화가 그리하여 매력적이냐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역할을 잘 수행한 것과, 어떻게 수행한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테니 말이다.
-
-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뭐였지? 기억이 안 난다. 분명히 방금 생각했는데 말이다. 26살밖에 되지 않은 나. 왜 군데군데 기억력에 구멍이 났을까. 이유는 모르겠다. 주치의 선생님에게 말씀드렸다. 그렇게 큰 문제인 것 같지는 않다고 말씀해주셨다. 큰 문제 아닌 걸까? 나에게 처방된 약은 안 좋은 것보다 장점을 더 가져다줬지만 이 기억력과 관련한 문제는 왠지 모르게 단점으로 느껴진다. 내가 누군지 기억에 난다. 그런데 오늘 해야 할 일이 가끔 생각이 안 난다. 플루옥세틴이라는 약이 정말 기억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걸까. 아니라는 답도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찜찜함이 남는다.
찜찜함. 오히려 이 찜찜함이 내 삶에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우울한 무언가를 분출하기 위해서. 지금의 나는 내가 느낀 걸 감상을 나누고 싶어서 쓰지만 어렸을 때는 그랬다. 이 찜찜함은 '왜 우울해졌을까'도 갉아먹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우울하지 않다는 뜻일까. '왜 그랬어?'라고 물으면 줄줄줄 나올 것 같지만 이제는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뭐였지? 분명히 기억에 남아야 할 텐데. 기억하지 않으면 나는 그렇게 멈춰 서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성공해서 누군가의 위에 남아야만 한다고 여겼던 독기가 요즘은 기억나지 않는 것이 가끔 짜증이 난다. 분명 내 인생의 모든 것이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사실인데 말이다. 내면의 분노만 기억에 남았다. 무엇이 그 일을 구성했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렇게 나처럼 내면의 분노를 지우지 못했던 인물이 있다. 이 사람은 현재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이 남자의 복수극에 동행해보자. <리멤버>다.
응어리진 채로 뱉은 넋두리
하나하나 다 잊혀간다. 뭐가 기억에 없어졌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덧 여든이다. 80대, 고령에 돌입한 한필주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 한필주의 머릿속에는 기생충이 있다. 알츠하이머라는 기생충이다. 필주의 일상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간다. 브레이크 타임. 낮잠을 자고 있던 필주. 귀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깨어나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오늘은 잊은 것이 없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 제이슨의 인사에 응답한다. 이번 주면 이 일을 그만둔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일하는 필주. 프레디란 이름으로 탈을 썼던 하루하루도 이제 빛을 발하는 때가 됐다. 자식들은 다 가정을 꾸렸다. 부인은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완벽히 혼자가 될 준비가 됐다.
혼자가 될 준비가 됐다. 책임질 것이 없다는 것은 많은 것이 열려있다는 의미가 된다. 눈이 풀려있던 필주. 갑자기 눈에 힘이 들어온다. 필주는 집 안에 있던 허름한 방으로 향한다.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를 앞에 선 필주. 한두 마디 내뱉는다. "저는 한필주입니다. 제 가족들은 일제강점기 때 모두 죽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제에게 누명을 써 몽둥이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이유로 광인이 되셨고, 누나는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일제에게 성착취를 당했습니다." 그의 손에 권총 한 자루가 쥐어져 있다. 카메라가 향하는 곳은 사진들이다. 정치인, 전직 군인, 일본인 학자 등 한필주는 오랫동안 이들을 목표로 복수극을 계획하고 있었다. 다행히 전등을 쏴서 맞출 수 있을 정도로 한필주의 기력은 충분하다. 머릿속이 채 무너지기 전에 먼저 떠난 가족들의 복수극을 실행해야 한다. 한필주는 목표를 달성하고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을까?
재미있는 영화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 재미있다. 장르적인 특성을 아주 잘 잡았다. 장르를 굳이 따지면 스릴러물에 가깝다. 어? 액션 들어가는 것 같던데? 아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한필주가 80대인걸 고려하면 빠릿빠릿한 액션이 들어갈 틈이 없다. 그 대신 스릴러물로 서스펜스를 만드는 방식이 다양한 것은 강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는 주인공 한필주의 '알츠하이머' 진단이다. 기억을 잊는 병. 이 기억이 없어지는 시기를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기서 이렇게 들어갑니다~' 말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 자체로도 서스펜스가 생길 수 있다. 주인공이 언제 기억을 잊어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시각적인 이미지와 알약이라는 소재로 짜임새 있는 묘사를 보여줬다. 이 알츠하이머라는 소재가 편의적으로 들어간 부분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지점은 한필주의 복수극이다. 주인공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인물은 가족을 죽인 친일파를 처단해야 한다. 그럼 이 복수극이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는가?를 영화 안에서 보여줘야 한다. 이를 영화는 캐릭터의 속성으로 돌파하는데, 구체적으로 이를 위해 초반부의 군데군데 삽입한 한필주의 성격 묘사나 전쟁 영웅 출신이었다는 설정이 인물을 살아 숨 쉬게 만든다. 또 복수극을 벌이면서 한필주는 자잘자잘한 문제에 부딪히는데, 이 부분을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창의적인 방식을 썼다는 것도 이 부분의 장르 특성을 강화시킨 좋은 해결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영화에서 서스펜스를 만드는 소재로는 추격극이 있다. 초반부에 피살되는 인물은 굉장히 큰 기업의 CEO로 보인다. 아마 자기가 만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재계에서 알아주는 인물이기 때문에 죽으면 엄청나게 관심이 끌린다. 이를 기점으로 정만식 배우가 맡은 형사 캐릭터가 한필주의 행보를 좇는다. 여기서 경찰 캐릭터를 단순히 권력에 굴복하거나 무능력하기만 한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은 것도 충분히 장점으로 뽑을 수 있는 부분이다. 주인공 일행을 뒤쫓는 사람의 입장이자 사건의 관찰자로서 일반 관객들을 대면하는 설정이 좋았다. 이야기의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과하지 않게 캐릭터를 직조한 것이다. 또 다른 요소로는 주인공 인규의 속사정이다. 인규는 그냥 한국의 평범한 20대다. 피시방에서 게임하는 거,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 인물이 어떻게 필주의 복수극에 동참할 수 있었냐? 의 원인이 극에서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인물이 왜 동화될 수밖에 없는지를 섬세하게 그리며 극에서 인물에게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네 가지 스릴러 요소가 극 이해를 돕는 윤활유가 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지루하진 않다. <콜래트럴>의 형식을 차용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영화 자체의 오리지널리티가 장르적인 특징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치밀하게 그린 큰 그림
그리고 영화에서 장점으로 작용했던 부분은 큰 갈래를 잘 설정했다는 부분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인공 한필주의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세팅은 주제와도 이어진다. 주인공이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또 잊어버렸는지가 영화에서 주요하게 강조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기와 관련한 무언가를 잊어버린 묘사가 관객 입장에서 '이 사람이 이런 걸 기억하고 있네'라고 두 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하이라이트 신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때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한다. 어떤 인물은 무언가를 기억하지만 다른 중요한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 대비가 악한 무리로 속해있는 빌런들의 후안무치를 두드러지게 묘사하는 효과를 낸다. 또한 이 인물이 이 일을 벌이는 동기부여의 설계는 탁월했다. 이 부분은 극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극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지점이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이 한필주의 동기부여라고 생각한다.
또 초반부의 이야기 전개가 후반부에서 잘 회수되는 부분도 각본의 큰 그림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 한필주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인물이다. 영화의 다른 한 구석에서 한필주가 그렇게 사회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럼 이렇게 우리나라를 위해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인물이 이런 곤궁한 상황을 겪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전직 군인이라는 설정은 후반부까지 무력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부분과도 이어진다. 또 하이라이트 신에서 인물의 행보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 각본의 큰 그림은 후반부에 그대로 이어진다. 가령 인규의 속사정을 알 수 있는 부분에서 3자의 인물이 끼어든다. 이 3자의 인물이 끼어든다는 암시가 초반부에 인규가 어떤 걸 확인하면서 나온다. 그리고 이 인물이 중반부에도, 후반부에도 등장한다. 그냥 단순히 떡밥 회수로 끝날 것이 아니라 인규의 동기부여와도 관련이 있으며 인물의 행보를 가로지르는 주요 인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나름 꼼꼼했던 인물 설정을 느낄 수 있다. 극에서 크게 막히는 부분이 없으니 몰입이 잘 되는 것이다.
바퀴에 칼이 꽂힌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점은 있다. 바로 각본의 섬세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선 초반부에 한필주가 얼마나 섬세한 인간인지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어떤 진상 손님이 제이슨(인규)의 4만 원을 갖고 튀게 생겼다. 억울한 인규. 이런 인규를 대신해서 4만 원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 이 설계까진 좋았다. 지갑을 놓고 간 것을 빌미로 센스를 보여주던 필주. 그런데 이 사람이 4만 원을 뺏기기 위해서 음식점에서 계산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음식점에서 뭔가 먹을 때 언제 계산할까? 바로 다 먹고 계산한다. 계산 딱 하고 일행이랑 차 타고 집에 안녕하고 사라지는 게 우리 모습이다. 그런데 이 일반적인 과정을 살짝 무시한 느낌이 있다. 물리적인 시간이 안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이와 비슷한 부분에서 경찰 캐릭터랑 한필주 캐릭터가 대면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 있고 나서 한필주 캐릭터와 경찰 캐릭터의 행보는 굉장히 편의적으로 끼워 맞춘 부분이 있다. 우리가 만약에 경찰 캐릭터의 입장이라고 봤을 때, 이 시퀀스의 후반부쯤에 그럴만한 객관적 이유를 제시하긴 하지만 이렇게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이런 김새는 느낌은 대사 작문법에도 이어진다. 군데군데 조악한 대사들이 눈에 보인다. 일단 초반부. 인규(제이슨)와 필주(프레디)가 우정을 묘사하는 방법이 없다. 핸드사인을 하고 서로 대화를 나눈다. '야. 우리 PC방 갈래? 나 롤 배웠는데.' '(음식을 먹으며) 너무 JMT야!' 전부 80대 할아버지 필주의 입에서 나온 대사다. 글쓴이는 1997년 생이다. 글쓴이의 입에서 'JMT'란 단어가 나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또 '리그 오브 레전드'를 안 한지 거의 2년이 넘어간다. 굳이 할아버지와 20대 청년과의 우정을 이런 식으로 묘사할 이유가 있을까? 굉장히 불필요한 부분이 들어간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두 사람의 우정을 묘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정을 보여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근데 그걸 어울리지도 않는 방식으로, 현실성도 느껴지지 않는 말을 하면서 보여줄 이유가 있나? 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이런 조악함은 러닝타임 도중에도 몇 번 더 나타난다. 후반부에 한필주가 복수극을 펼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직접 자기 입으로 '나는 친일파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때 인물 간이 처해있는 입장에 굉장히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거지! 이거 위해서 영화 만들었지! 그런데 그 '친일파다!'대사가 들어가니까 굉장히 작위적인 느낌이 강했다. 굳이 그 장면에서 그게 들어가지 않아도 감정적으로 들끓는데 말이다.
또 영화 극후 반부에서 이 영화의 모든 사건이 끝마무리되고 극에서 굉장히 중요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신이 있다. 여기서 나누는 모든 대화가 전부 다 사족같이 느껴졌다. 여기서 어떤 인물이 한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 영화를 봤던 모든 사람이라면 이 문장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나 쓰고 있는 글쓴이도 역사의 죄인들이 합당한 벌을 받았으면 한다. 그런데 이 말을 굳이 꺼내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는 의문이다. 이는 바로 직전 시퀀스에서 이 평가를 말했던 인물의 대사와도 어울리지 않으며 신파극처럼 느끼기도 쉬운 데다가 얼핏 보면 이 친일파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초를 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왜 이 영화를 볼까? 친일파를 처단하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왜 카타르시스를 느낄까? 현실에서 이뤄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왜? 어떤 친일파는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어 한국사회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 또 우리가 사적 복수로 누군가를 처단하는 일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대체역사물의 느낌으로 영화를 즐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평가를 굳이 입으로 말한 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선을 흐릿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친일파들은 감옥에 가서 자연사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이 평가가 전체적인 흐름을 크게 비트는 것처럼 들린다. '이 정도면 잘 만든 스릴러' '이 정도면 잘 설계한 메시지' '친일파를 잊어버리면 안 되지' 싶은 것이 '?????' 싶은 결함을 남기는 옥에 티였다.
기억에 남을 것 같아
많이 아쉽다. 기대를 아예 안 하고 갔다. 그런데 의외로 재밌었다. 올해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준비하며 일제의 만행에 대해 공부했다. 그 공부했을 때 느꼈던 화가 스르르 생각나기도 했다. 얼마 전에 어떤 정치인이 이와 관련된 망언을 했다. 이 부분도 생각났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폭력을 저질렀다. 그 타인이 누군가를 해친 것이 아닌 한 성적으로 착취하거나 폭력을 벌이는 짓이 잘하는 건 당연히 아닐 것이다. 마치 이를 합리화하는 듯한 그 국회의원의 말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그 국회의원의 말을 반박하는 것 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뿐일까? 극에서 2022년 10월 말의 대한민국을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얼마 전에 한 기업체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분이 세상을 떠났다. 이 노동자 분을 생각하게 만드는 키워드가 극에서 중요하게 쓰였다. 당연히 나 역시 화가 났던 일이기 때문에 같이 분노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을 후반부에서 중요하게 작동시키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사회에 산재해 있는 언급되지 않는 사건사고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윗 문단, 그러니까 후반부에서 대사가 아쉬웠다고 썼던 그 시퀀스를 보고 나니 상기했던 단점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쉽다. 더 꼼꼼했으면 이런 단점이 생각나지 않았을 텐데, 싶은 것이다. 이성민, 남주혁 두 배우 연기 엄청 잘했다. 이성민 배우는 <남산의 부장들>보다 더 잘했고, 남주혁 배우는 <한산>의 와키자카를 연상케 하는 뛰어난 퍼포먼스였다. 메시지도 좋고. 서스펜스 좋고. 배우 연기 잘했고. 캐릭터 캐스팅 좋았고. 그런데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 뚜렷하니 좋은 평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한산>보다 더 흥행할 수 있는 영화가 꼼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굉장히 아쉬웠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추천하고 싶진 않지만, 분기마다 한 번씩 가는 분들에겐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다.
-
- 듄, 액션은 어디로 갔는가?
드니 빌뇌브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그 느낌을 매우 좋아한다. <컨택트>와 <시카리오> 등에서 보여줬던 아름다운 미장센, 대사 없이 많은 설명을 담는 능력, 진중한 메시지 등 헐리우드의 젊은 3대 천재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만든 <듄> 시리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 감독인 한스짐머까지 합류해 기대가 컸고, 많은 유명한 SF에 영향을 준 이야기답게 무게감 있고 멋지게 담아냈다. 그리고 이번 <듄: part2>는 마치 20년 전 유행하던 블록버스터 트릴로지 무비들-<스파이더맨>, <엑스맨>,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의 2편처럼 1편보다 더 광대하고 박진감 있다.
그러나 2편에도 여러 가지 단점들이 존재했다. 1편에서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살라메)의 고난과 역경을 다루었다면, 2편은 그가 안티메시아로써의 도약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작부터 끝까지 '액션'으로 가득 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편에서는 액션의 서사나 성장이 아주 부족하거나 거의 보이지 않아, 어떤 이들은 지루함을 느낄 정도다. 영화의 완성도가 훌륭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더 두드러져 보이고 액션 매니아의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워서, <듄: part 2>를 액션 영화의 관점으로 다뤄보았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캐릭터성이 사라진 액션
액션 영화에서 무술은 한 인물의 캐릭터성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가문, 민족, 국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듄: part 2>에서는 게릴라전을 하는 프레멘을 제외하고는 딱히 특징 있는 무술을 보여주지 않는다. 즉, 액션에 캐릭터가 없다.
간단한 예를 들면, 마블의 <어벤저스>는 이런 캐릭터 액션에 상당한 공을 들인 걸로 유명하다.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위도우가 시대적으로 다른 사람이라 총 파지법이 다르다던지, 토르와 로키 등 아스가르드인들은 쓰는 무술이나 준비자세가 같다던지 하는 식으로. <샹치>와 같은 중국식 무협에서는 캐릭터의 인생철학이 캐릭터가 쓰는 무술에 담겨있고, 싸우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무술의 합으로 표현했다.
<듄: part 2>에서 엄청난 전투력을 자랑하며 공포스러운 존재인 황실친위대 사다우카가 황제 옆에서 칼을 들고 있는 모습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마지막 선을 지키던 공작 친위대가 칼을 든 모습은 서양 롱소드 검술로, 둘 구분이 거의 가지 않는다. 가문 성격이 완전히 다른 하코넨과 아트레이데스도 무술 동작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액션을 잘 짠다는 것은 단순히 합을 잘 짜는 걸 말하지 않는다. 의상, 외모, 대사 등 캐릭터를 대비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한 것 치고 액션의 캐릭터성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단 얘기다. 다만, 1편에서 처음 폴이 액션을 배울 때 했던 실수 - 목을 겨누느라 배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을 그대로 이용해서, 그보다 성장한 마무리는 칭찬할만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한 사람에게서 무술을 배운 것처럼 단조롭다.
프레멘의 무술은 단도를 주로 사용하고, 몰래 빠르게 움직여 죽이는 암살과 게릴라전에 특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군용 무술보단 잠입암살 무술인 닌자에 더 가깝고, 그 부분은 프레멘의 특징을 잘 살려서 좋다. 그러나 이는 폴이 배운 '펜싱 자세를 기본으로 한 검술'과 아주 큰 차이를 보이는데, 그렇다면 폴이 프레멘에게 인정받기 위해 수행을 할 때 무술을 배우는 장면도 있어야 했다. 물론 1편에서 무술수련을 할 때 이미 다양한 무기들로 수련을 해온 설정이 어렴풋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실제와 자료로 보고 배운 건 다르다. 영화에서는 '사막 걸음'을 프레멘인 챠니가 제대로 된 걸로 다시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액션에서도 필요했다.
그리고 폴이 하는 검술의 펜싱자세는 다른 무술과 달리 주손 주발이 앞으로 나와있는 오소독스 자세다. 그 이유는 긴 칼로 빠르게 찌르고 빠지기 위함인데, 단도를 들고 육탄전을 감안해 싸우는 <듄> 세계의 특성상 잘 맞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준비 자세만 펜싱 자세고, 싸울 땐 그냥 군용 무술이다. 즉 '귀족'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준비자세만 멋으로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액션을 죽이는 잘못된 무기들
라반은 채찍을 사용하는데, 이게 그의 캐릭터가 말랑해지는 데 한몫했다. 채찍이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고, 그 큰 덩치에 조그만 채찍을 꺼내드는 모습은 조금 코믹하다. 페이드 로타는 칼을 두 개 든 이도류지만, 액션이 그의 캐릭터성을 나타내기엔 평범했다. 그 이유도 무기 때문이다. 페이드 로타의 검은 앞이 길고 내려앉은, '정글도'로 잘 알려진 마테체의 한 형태다. 정글도는 원래 도끼와 단검의 중간 형태로, 정글에서 생존용으로 쓰는 칼이다. 실제 무기로도 자주 쓰이지만, 날 앞쪽에 무게중심이 있고 손잡이 위에 손을 보호하는 키용이 없어서 가까이에서 찌르기에 적합한 무기가 아니다. 마테체는 오히려 덩굴을 베듯 도끼처럼 내려찍는 무기다. 그런데 페이드 로타의 액션은 일반 백병전 단검술이다. 그러니 동작이 둔해지고,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오히려 예리한 단검술보단 위협적으로 내리찍는 무술을 했다면 더 맞았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프레멘의 무기, 크리스나이프도 그렇다. 크리스나이프는 샤이 훌루드의 이빨로 만든 단검으로, 날과 손잡이의 두께가 거의 같으며 역시 손을 보호하는 키용이 없다. 키용이 없는 칼은 사실 대부분 찌르는 전투용 칼이 아니다. 그런 칼로 유명한 것은 일본의 시라사야인데, 이건 칼을 들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지팡이로 위장한 칼이며 베는 칼이다.
서양의 칼에서 손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날과 손잡이 사이의 키용
영화 <듄> 시리즈의 크리스나이프
칼과 칼이 맞붙는 싸움에서 키용은 굉장히 중요하다. <듄> 시리즈에서는 칼을 칼로 막고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사실 진검이라면 날끼리 미끄러진 다음 키용끼리 부딪혀, 칼과 키용의 십자 모서리 부분끼리 엇갈려야 힘겨루기가 가능해진다. 즉, 키용이 없는 칼끼리 싸우면 금방 손가락이 잘려나간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키용이 없는 칼끼리 너무 챙챙 맞부딪힌다. 날끼리 부딪혀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 자체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판타지 액션 연출이지만, 키용까지 없는 칼로 그렇게 싸우는 건 조금 그렇다. 사실 키용은 손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칼을 뺏거나 부러트리는 등 다양한 용도로 검술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장치다. 그런데 폴과 페이드 로타 둘 다 칼에 그게 없으니, 단순하게 찌르거나 휘두르기만 할 뿐이다.
게다가 키용이 없다면 손이 미끄려져 힘을 준 찌르기가 힘들며, 오히려 내 손이 날까지 미끄러져 손이 다치게 된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 식칼로 찌르다 엄지손가락이 나간 것을 기억해 보자. 즉 <듄: part 2>의 무기들은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디자인부터 잘못되었다. 단순한 액션 고증 문제가 아니라, 이런 것들이 영화의 액션을 심심하게 만든다. 칼 디자인은 그냥 영화적 장치니까 멋으로 보자고 하기엔, 다른 부분들에서 세계관을 엄청나게 잘 만들었다고 칭송받는 소설이 원작이라 아쉬울 뿐이다.
또한 <듄> 시리즈에서는 핵무기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고대의 엄청난 무기를 발견한 것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그 핵무기의 사용 방법이나 파괴 리액션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폴은 핵무기를 군대 뒤에 산을 폭파하는 데 쓰고, 그 잔해들이 운석처럼 군대를 덮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그렇고 실제 핵무기의 가장 큰 위력은 폭발 반경에 1억 도가 넘는 순간온도와 몇천 도가 넘는 '열폭풍'이다. 수십 킬로미터 반경에 달하는 열폭풍으로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녹이고 날려버리는 것이 핵무기인데, <듄: part 2>에서는 그저 조금 센 미사일 수준으로만 보여서 너무 심심했다. 황제까지 죽이면 안 되니까 그랬다고 변명한다면, 황제는 우주선 안에 있으므로 그 정도는 견딜 수 있고 밖에 주둔한 군대를 싹 쓸어버리는 용도로 쓴다고 설정할 수도 있었다. 그게 안된 이유는, 모래벌레가 공격하는 장면이나 백병전 장면을 넣기 위해서로 보인다. 사실 애초에 핵무기를 백병전 전초전 격으로 발사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 일대가 수십 년 이상 방사능에 오염되기 때문이다.
또 샤이 훌루드는 마지막 전투에서 등장만 화려할 뿐, 구체적으로 적들을 어떻게 섬멸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깔고 뭉개는 건지, 잡아먹는 건지, 차에 치이듯 사람들이 날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매머드가 적들을 상아로 쳐내 날려버리는 모습이나 밟는 모습이 세세하게 나와서 위압감을 줬던 걸 생각하면, <듄: part 2>에서의 샤이 훌루드를 활용한 액션은 많이 아쉽다. 지하에서 나와서 군인들 수십 명을 잡아먹거나 하늘의 비행정을 통째로 삼키는 등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걸 보여줬어야 더 재미있었을 텐데.
대단하지 않은 액션 서사의 포장
사실 이게 <듄: part 2>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인데, 폴이나 페이드 로타 둘 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일을 했는데도 대단하다고 리액션을 하며 엄청난 음악을 깔아주고 있는 연출이 그것이다. 그것은 조금 과장하면, 동남아의 무술 고수라면서 손도 안 대고 제자들을 쓰러트리는 사기영상처럼 우스워 보이기까지 한다.
앞서 말했듯 <듄: part 2>에서는 프레멘이 되기 위해 폴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알기 힘들다. 거기에 폴이 프레멘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한 부분이, 고작 '미끼가 되어 방어막이 풀리는 순간을 노리도록 한 것'이라는 게 많이 의아하다. 그 정도의 전술은 미리 가르치고 시작하던지, 당연히 해내야 하는 것 아닐까? 배우는 부분이 삭제되었다면, 프레멘이 생각하지 못할 기발한 작전들을 생각하는 것이 더 대단했을 것이다. 혹은 비행정에서 무기를 사용할 때만 방어막이 풀리는 것을 프레멘들이 모르고 있었던 걸까? 그럼 폴이 직접 포를 쏴서 그 짧은 틈을 맞추는 장면을 보여줬다면 뒤에 프레멘들이 폴을 대단하게 여기고 환호하는 모습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챠니와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인지 챠니가 포를 쏴서 폴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죽었다. 웅장한 화면에 더 엄청난 음악을 깔아버려 뭔가 엄청난 일을 한 것 같았지만, 생각해 보면 별거 없는 걸 포장한 것이다. 비행정의 움직임을 미래를 봐서 예측한 것도 아니고.
거꾸로, 프레멘의 액션도 그렇다. 프레멘은 적들이 사막에서 방어막을 켜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샤이 훌루드가 방어막의 진동 때문에 미쳐 날뛰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막에서 게릴라전을 잘하는 건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수도에 들어가면 적들은 방어막을 켜고 있다. 방어막을 켠 상태에서의 검술은 일반 검술과는 달리 몸 근처에서 느리게 움직여야 한다. 방어막을 켠 적을 별로 상대해 본 적이 없는 프레멘은 그 검술을 어떻게 익혔을까? 폴이 그걸 가르쳐줬다면 더 폴의 능력을 높게 살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나오지 않았다.
페이드 로타의 액션 서사도 그렇다. 페이드 로타의 액션은 그의 캐릭터와 위압감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장치다. 등장 전부터 그를 '싸이코닉'하다고 말하거나, 칼을 점검하며 주변 사람들을 찔러 죽여보는 모습 등으로 하코넨 남작이나 라반보다 더 대단할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상은 그가 자기 혀에 칼을 가져다 대려다 피도 안 내고 그냥 옆사람을 찔러보던 장면처럼 맥이 빠졌다. 원작에서 그는,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굉장히 교활한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런 면모는 거의 보이지 않는데, 그럼 그냥 사이코패스 같은 면이라도 부각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차라리 비슷한 장면의 비교라면 <글래디에이터>의 코모두스가 훨씬 교활하고 사이코 같고 두려움의 대상처럼 보인다. <듄> 소설이 훨씬 먼저 나왔으므로 <글래디에이터>가 그것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큰데도 말이다.
원작을 살펴보니 페이드 로타의 생일 검투장면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 교활한 최면 술수를 써놓고 마치 자기가 정당하게 힘으로 이긴 것처럼 포장해서 영웅처럼 그려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폴과 싸우다 그 최면이 자기한테 걸린 거라 착각해서 스스로를 옭아매 죽게 되는 게 원래 내용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영화에선 페이드 로타의 그런 술수나 자업자득의 교훈도 없이 그냥 칼싸움해서 지는 걸로만 보여줘 페이드 로타의 서사가 사라졌다. 그러니 밋밋한 것이다. 서사를 없앴다면 액션에서 캐릭터성을 부여할 수도 있었는데, 페이드 로타는 검술을 잘해서 오만하다는 거 말고 딱히 액션에서 드러난 게 없었다. 만약 페이드 로타가 너무 검술을 잘해서 폴의 검술을 흉내 낸 설정이었다면, 관객이 이해하기 힘들게 연출을 했다.
오히려 액션의 캐릭터 서사에서는 1984년 데이빗 린치의 <듄>이 조금 더 낫다
또한 샤이 훌루드와의 액션 서사도 대단하게만 보이지 실제로 대단한지 잘 모르겠다. 1편에서 프레멘에게 신처럼 여겨지던 샤이 훌루드가 2편에서 교통수단으로 다뤄지는 게 좀 의아했는데, 원작에서도 그런 모양이다. 그 부분 묘사를 보면, 프레멘이 샤이 훌루드를 생각하는 감정이나 느낌은 모아나가 바다에게 갖는 감정과 비슷하다. 인격체 신이라기 보단 만물이 창조된 대자연으로써의 경외감 같은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이 샤이 훌루드를 타는 장면은 사실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폴이 왜 대단한지, 샤이 훌루드와의 교감이나 길들이기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서사가 전혀 없다. 이전에 <아바타>에서 나비족이 토루크를 길들이는 방식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는데, <듄: part 2>에서 보이는 샤이 훌루드와의 액션 교감 서사보단 낫다.
샤이 훌루드를 타는 것은 갈고리를 걸면 끝나는 것이고, 그 거대한 것을 손으로 버티며 조종하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쳐도 1편에선 분명 공격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는데, 그 정도의 갈고리가 걸쳐졌다고 해서 모래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친절하게 모래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태워주는 것은 왜인가. 또 갈고리를 풀면 바로 튕겨나가 떨어질 텐데 내릴 땐 어떻게 내린단 말인가. 베네 게세리트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에게도 '보이스'를 쓰는 것이 1편에 나왔었는데, 폴은 '보이스'를 이용해 남다르게 샤이 훌루드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설정이 있어도 좋지 않았을까? 마치 이 장면은 '폴이 샤이 훌루드를 타게 되어 프레멘에게 인정받았다'라는 한 문장을 대충 영상으로 멋지게 '설명'한 것뿐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특별한 교감이나 길들임 없이 되는대로 타는 설정은 샤이 훌루드의 캐릭터를 빈약하게 만들었다.
빈약한 전술
그리고 영화의 내용상으로 보자면, 황제의 군대를 잡는 마지막 전투는 전쟁액션 개연성이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아무리 멀다고 해도 언덕 뒤에서 크게 연설을 하고 온 군대가 개전 전에 소리를 지르다니, 이건 기습전에서 해선 안될 일이다. 이런 장면은 남부에서 군대가 출발하기 전에 했어야 했다. 액션에서 종종 뒤에서 기습하는 적이 소리먼저 지르고 공격하려다 소리 듣고 눈치채고 피하거나 되받아치는 장면을 많이 봤을 것이다. 기습전은 조용해야 한다.
그리고 모래 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오는 게릴라 전술은, 적들이 가는 길목을 예측하고 함정을 파서 기습할 때 쓴다. 앞에 스파이스 채굴기를 공격하는 건 그게 맞았다. 그러나 적의 진지 앞에서 모래 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온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언제부터 거기에 숨어있었던 걸까. 아니면 모래 속을 기어서 거기까지 간 걸까. 그럼 그 뒤에 단체로 백병전을 위해 달려서 뛰어오는 건 왜 그럴까.
폴이 이 전투에서 특별히 한 것은 거대한 모래폭풍 예측이다. 나머지 전술이라는 건 그냥 순서대로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전술이랄 게 없었다. 왜 이렇게 황제와 하코넨의 군대가 허무하게 당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폭풍이 먼저 수도를 감싸고, 비행정이 뜨지 못하는 가운데 익숙한 프레멘들만 자유롭게 움직이며 적들을 썰어버렸다면 모르지만 영화에선 그런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프레멘들은 애초에 방어막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냥 레이저 빔으로 쓸어버리면 그만 아닐까? 하코넨한테 고전 무기도 다 허용했던 황제인데. 왜 황제 앞까지 왔는데 사다우카는 칼로 싸우는 걸까. 멋있고 장대한 장면들을 늘어놓기 위해, 개연성을 포기한 듯 보였다.
게다가 하코넨은 프레멘을 상대한 게 처음이 아니다. 지금이 가장 격렬한 저항이라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아라키스 행성을 지배하며 그들을 상대해 왔다. 그런데 프레멘의 저항이 거세진 상황에서 채굴기의 방어인력은 왜 이리도 허술한가? 거꾸로 채굴기를 미끼로 해서 프레멘을 몰살시킬 생각은 왜 못하나? 여기선 프레멘이 폴에 대한 종교적 믿음으로 더 강해진 것처럼 보인다기보다, 그냥 하코넨 쪽이 너무나 바보같이 보인다. 황제 또한 그렇다. 황제는 은하계의 대 가문들을 사다우카의 무력과 자신의 정치력으로 조율하는 세력이다. 물론 그 뒤에 베네 게세리트가 있었다고 해도, 여기서 보여주는 황제의 모습은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허약한 모습이다. 만약 이런 의문들에 대한 해답이 원작에 있다!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 팬끼리 돌려보는 2차 창작 팬무비에 불과하다. 영화는 영화로 설명해야 한다.
--------------------------------------
3편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지만, 듄의 스토리가 현재 세계정세와 맞물리는 부분이 있어 그걸 어떻게 표현할지 아주 궁금해진다. 모티브를 따온 종족과 별개로 내용을 보자면 아트레이데스는 영국(미국) / 하코넨은 나치 / 프레멘은 유태인과 흡사하다. 현재 2편까지의 내용을 보면 영국이 유태인을 나치에게서 구해 유태인의 나라 이스라엘을 세워준 역사와 비교되는데, 그 뒤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주변 아랍국가와 팔레스타인과 끝없이 전쟁해 왔다. 이는 3편에 나올 내용, 대가문들과의 전쟁과도 연결된다.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무차별 학살하는 것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듄: part 3>가 이것을 어떻게 느끼게 만들까? 미국인과 이스라엘 인들은 그 내용을 자신들의 이야기와 연결시킬 수 있을까?
드니 빌뇌브가 소설 <듄>을 너무나도 멋지게 실사 영화로 만들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의 고질적인 약점인 빈약한 액션 서사가 더욱 두드러졌다. 게다가 그 빈약함을 영상미와 한스 짐머의 웅장한 음악이 멱살 잡고 끌고 가고 있는 모양새다. 1편보다 2편이 조금 더 완성도가 높다고 한다면, 3편은 부족함을 더 채워서 나왔으면 좋겠다. 장대한 우주 대 서사시를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
- [BIFAN 데일리] 밀실의 서스펜스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 초이스 : 장편 - <네버 파인드 미>
감독: 조시아 앨런, 인디아나 벨
출연: 조던카원, 브렌던 록 등
시놉시스: 폭우가 쏟아지는 밤, 한 젊은 여자가 낯선 집의 문을 두드린다. 홀로 살고 있던 노인은 그녀를 친절하게 돕는다. 천둥번개와 폭풍우에 집에 갇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경계심에 잠식된다.
<네버 파인드 미>는 한정된 공간에서 가질 수 있는 서스펜스를 극한으로 가져가는 밀실 스릴러 영화다. 영화에서 패트릭의 집 내부를 제외하고 등장하는 장소는 집 근처를 밖에서 찍는 정도가 전부다. 한 여자와 한 남자,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그리고 인적 드문 곳에 덩그러니 있는 집. 무척 간단하면서도 익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영화는 낯선 이에게 느끼는 미지의 경계심을 상기시키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
뭔지 모를 액체를 주시하며 긴장한 듯 보이는 패트릭의 집에 한 여자가 문을 마구 두드리며 전화를 쓸 수 있는지 묻는다. 패트릭은 처음엔 여자를 경계하는 듯하나 이내 여자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제공하며 호의를 베푼다. 그러면서 비가 많이 와 밖에 나가기 힘들뿐더러 자신은 전화를 갖고 있지 않다며 비가 그치면 함께 차를 타고 공중전화로 가자고 설득한다. 낯선 이를 경계하는 건 집주인인 패트릭만이 아니다. 여자 또한 패트릭의 말 하나 행동 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 호의들이 무척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재밌게 느껴진 건 이런 여자의 태도였다. 보통의 영화를 생각한다면, 호의를 바라며 누군가의 집 문을 두드리는 상황에서 을이 되는 건 으레 방문자의 입장이다. 더군다나 이 영화에서 방문자는 젊은 여성이고, 집주인인 패트릭은 나이가 있다고 해도 꽤 건장해보이는 남성이다. 이미 집에 들어왔고 궂은 날씨에 쉽게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남자의 심기를 거슬러 좋을 게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와의 대화에서 거침 없이 말실수를 하며 빈틈을 보이고, 결국 남자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든다. 조금 과장한다면 마치 일부러 그러려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밀실에 함께 갇혀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의로든 타의로든 의지하게 될 수밖에 없다. 카드 게임을 시작하며 서로에 대한 오해를 깨닫고 미묘한 유대감이 생기는 장면은 마치 감독이 관객과 천연덕스럽게 밀당 게임을 하는 건가 싶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낯선 이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낸 말과 실제 사이의 간극은 대화가 이어질수록 탄로 날 수밖에 없고, 서스펜스를 격화시키며 관객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관객을 밀어붙인다. 관객은 두 사람에 대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단서들을 조합해 추리를 하면서 보겠지만, 아마도 그 추리는 번번이 빗나갈 것이다.
빌드 업에 상당 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마지막에 몰아치는 십여 분 남짓의 시퀀스를 위해 존재하는 영화라 볼 수도 있겠으나, <네버 파인드 미>는 그만큼 러닝타임 내내 서스펜스를 놓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몰아붙이는 영화다. 99분의 시간 동안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부천 초이스 섹션에 선정된 이유를 톡톡히 보여준다. 조시아 앨런, 인디아나 벨. 두 감독의 이름을 미리 눈여겨봐야 함이 분명하다.
상영일정
7/2 20:00 - 21:39 CGV 소풍 11관
7/6 16:30 - 18:09 CGV 소풍 5관
-
- 믿음과 불신의 문을 열어라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종교와 신앙심에는 언제나 호기심이 많습니다. 어쩌면 신앙이 없기 때문에 그 궁금증이 더 커지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를 향한 상상은 종종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커지곤 하니까요. <헤레틱>은 저처럼 종교와 신앙에 물음표가 있는 사람들에게 꽤 흥미롭게 다가갈 스릴러 영화입니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이 <러브 액츄얼리>의 휴 그랜트라면,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한 번쯤은 볼만한 이유가 되지요.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헤레틱>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헤레틱>은 2025년 4월 2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헤레틱
Heretic
Summary
외딴 집을 찾은 신앙심 깊은 두 소녀에게 집주인은 믿음을 뒤흔드는 이야기를 꺼낸다. 무언가 의심스럽다고 느끼는 순간, 두 소녀는 꼼짝없이 집안에 갇히게 된다. 친절했던 남자는 돌변하고, 그녀들은 살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출연: 휴 그랜트, 소피 대처, 클로이 이스트
믿음을 조롱하는 궤변의 이단자
모르몬교도 '반스'와 '팩스턴'은 방문 포교를 위해 '미스터 리드'의 집을 찾습니다. '미스터 리드'는 모르몬교에 호의적인 듯이 대화에 참여하다가, 자연스럽게 두 명의 여성을 집에 가두어 버리죠. 그러고는 이 세상에 참된 종교는 없다는 주장을 피력하며, 방문 포교를 할 정도로 신앙심이 투철한 두 소녀에게 '믿음'과 '불신'의 길 중 하나를 골라야만 이 집을 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미스터 리드'는 얼핏 참된 종교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종교 비평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자신의 손아귀 안에 있는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통제가 신앙심을 만든다'는 주장의 외연을 만들어 가는 소위 '또라이'일 뿐입니다.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들의 믿음을 뒤흔드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이자, 이상적인 신념을 향한 인도자인 척하는 비겁한 감금 행위자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소녀에게 '믿음'과 '불신'의 선택지를 꺼내 보이기까지 '미스터 리드'가 펼쳐 보인 궤변의 시퀀스는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일신 종교들이 수천 년간 껴안고 있던 논리적 빈틈들을 짚어가는 장면은, 묘한 설득력을 안기기까지 했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르몬교를 각각 다른 버전의 보드게임 '모노폴리'에 비유한 대사는 놀랄 만큼 참신했습니다.
실제로 재 보진 않았지만, 체감상 십 분 가까이 이어졌던 이 시퀀스는 말 그대로 휴 그랜트의 무대였습니다. 휴 그랜트 하면 언제나 <러브 액츄얼리> 속 영국 총리의 낭만적인 얼굴이 먼저 떠올랐기에, 그가 이런 장르와 잘 어울릴지 의문도 있었는데요. 그는 이 장르의 옷을 완벽하게 갖춰 입었습니다. 비겁하고 뒤틀린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해내는 휴 그랜트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 ⊙ ⊙
'두 개의 문'이라는 영화적 장치
<헤레틱>의 핵심 설정은 '미스터 리드'의 집에 설치된 '믿음'과 '불신'의 문입니다. 어느 쪽 문을 선택해야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는 주인공 두 소녀와 관객 모두 알 수 없고, 그러한 불확실성이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죠. 하지만 그 두 개의 문은 모두 하나의 지하실로 연결되어 있었고, 어느 쪽을 택하든 두 소녀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두 개의 문을 활용한 서스펜스가 너무 빨리 끝나버린 점과 두 개의 문을 그 이상의 영화적 장치로서 활용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습니다. 중반 이후의 전개에서는 문이 하나였어도 이야기의 흐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겁니다. 이 장치를 더 유의미하게 사용하였더라면, 이야기 전개의 긴장감과 매력이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이 작품이 감각적이고 신선한 스릴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단순히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종교와 신앙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지요. '미스터 리드'가 주장하는 내용의 뼈대는 모르몬교의 '참된 교회' 교리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인상도 받았는데요. 기독교 사회에서 이단이라 불리는 모르몬교의 신자들과, 모든 종교를 부정하며 스스로 이단자가 된 사람의 대립. 이러한 구조는 믿음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는 시도로도 보입니다.
⊙ ⊙ ⊙
'미스터 리드'의 모습에서 종교와 신앙에 부정적인 감정과 깊은 의구심만을 가졌던 제 모습이 엿보여 괜히 께름칙해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무종교인이지만, 이제는 종교와 신앙을 있는 그대로 존중합니다. 아무리 신의 부재를 증명하고 종교를 부정해도, 그것을 뛰어넘는 신앙의 힘과 가치가 있음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신에게 기도한다고 해서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세상의 안위를 빌게 되는 그 행위에 기대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소녀 '팩스턴'의 대사처럼 말이지요.
One-Liner
이단자가 내뱉는 확신의 함정
-
-
- 사랑할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요즘 시대의 자만추
-
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아홉 율리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 세상으로 나온다.
파티에서 만난 만화가 악셀과 사랑에 빠진 율리에,
하지만 삶의 다른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걸 원했고 조금씩 어긋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달려나간다.
-
- 왓챠 <레벤느망> 메인 예고편
- 여자만 걸리는 병이에요, 집에 있는 여자로 만드는 병. - 갑자기 아이를 가지게 된 스물 셋 대학생 '안' 그녀의 이야기를 3월 극장에서 먼저 감상해 보세요 - 〈레벤느망〉 3월 극장 대개봉 수입·공동배급 | (주)왓챠 배급 | (주)영화특별시SMC
-
-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티저 예고편
다시 시작된 마법 세계의 혼돈!
운명을 건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본격적인 대결,
과연, 뉴트의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