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2-25 17:07:15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 감흥 없는 번역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광풍에도 불구하고 농구와 복싱을 좋아하는 고등학교 2학년 '구진우'(진영). 어느 날, 그는 수업 시간에 장난을 치다가 걸린 나머지 벌을 받게 된다. 모범생 '오선아'(다현) 앞자리에 앉아서 특별 감시를 받으라는 것. 선아를 짝사랑하는 친구들은 진우를 부러워하지만,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진우는 그저 벌을 받아야 해서 불만스러워한다. 선아 역시 시끄럽기만 한 그의 존재를 불편해한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둘은 점차 가까워진다. 선아가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자, 진우가 자기 책을 선뜻 빌려주고 대신 벌을 받은 것. 이 사건을 시작으로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는 선아와 진우. 선아는 진우에게 공부를 알려주고, 진우는 특유의 멋모를 자신감으로 선아를 웃게 만들면서 감정을 쌓아 나간다. 하지만 서로에게 끌리는 속마음과 달리 그들은 자기 마음을 좀처럼 속 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한 채 대학생이 된다.
리메이크 대신 번역을 선택하다
국내 영화 시장에서 중화권의 청춘 로맨스 영화는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다. 비록 100만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지는 못해도, 수십만 명의 관객을 꾸준히 동원하는 흥행력은 보장되는 장르니까. 2010년대에 개봉한 <장난스런 키스>, <나의 소녀시대> 모두 4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은 바 있다. 2023년 여름에 재개봉한 <여름날 우리> 역시 40만 명을 돌파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팬데믹 이후 침체기가 길어지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처럼 꾸준한 흥행력을 과시하는 중화권 청춘 로맨스가 돌파구로 여겨졌던 모양새다. 비슷한 시기에 과거 인기를 끌었던 대만 청춘 로맨스 영화 세 편이 일제히 리메이크됐기 때문. 작년에 개봉한 <청설>과 설날 연휴에 공개된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각각 8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기록했다.
문제는 3번 타자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이하 <그 시절>)다. 대만 영화 리메이크 열풍을 이어갈 매력이 안 느껴진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 시절>은 리메이크 대신 번역을 선택했기 때문. 앞선 두 영화는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따르되 플롯이나 감성을 차별화했다. 그에 반해 <그 시절>은 배경만 한국으로 바꾸는 데서 그쳤다. 그러다 보니 원작을 이미 본 관객으로서는 굳이 번역본을 읽을 필요성을 못 느낄 법하다.
그 시절의 소녀가 뇌리에 각인될 두 가지 조건
<그 시절> 원작을 본 관객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결혼식에서 커징텅이 션자이의 남편에게 키스할 때 스쳐 지나가는 평행 세계 시퀀스다. 그들이 연애할 때 마주한 몇 차례 분기점이 등장하고, 그때마다 다른 선택을 내리면 달라졌을 현재와 미래를 파노라마로 펼쳐 보여주는 순간의 임팩트가 핵심이다. <라라랜드>에서 남남이 된 세바스찬과 미아가 과거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결말과 유사하다.
이처럼 클라이맥스가 관객 뇌리에 각인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예뻐야 한다. 예쁜 대상은 다를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의 풋사랑이 귀여울 수도 있고, 연기와 재즈에 몰입하는 두 주인공의 열정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두 주인공이 그 시기를 회상하면 다시 사랑에 빠질 정도로 강렬하게 예쁜 게 중요하다.
그다음으로는 이별에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명백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낸 과거가 너무나도 찬란하고 아름다운 나머지, 그 시절로 돌아가거나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싶더라도 그럴 수 없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제시되어야 한다. 과거는 과거에 묻어두어야만 할 때, 즉 가능성이 현실로 될 수 없는 한계와 제약이 있을 때 평행 세계는 간절한 만큼 강렬하니까.
예쁘지만, 충분하지는 않은
하지만 <그 시절> 리메이크가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다. 첫 번째 조건은 절반 정도만 갖췄다. 진우와 선아의 사랑이 시작되는 배경과 분위기는 예쁘다. 2000년대 배경의 고등학교 풍경은 관객에게 자기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교실이나 운동장처럼 한국적 배경에 맞게 바뀐 장소는 필연적으로 대만 원작보다 흡입력이 뛰어나다.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당시의 향취가 주는 아련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작 그 안에서 피어나는 풋사랑이 부자연스럽다는 것. 두 주인공의 톤이 묘하게 어긋나 있다. 진우는 너무 가볍고 동적이며, 선아는 지나치게 정적이다. 그 결과 진우에게 '그 시절의 소녀'여야 할 선아의 매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공부할 생각이 아예 없는 진우와 모범생 선아가 처음부터 잘 어울릴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두 주인공의 톤이 같은 층에서 만나지 못하니까 문제다.
이는 영화가 진우 시점에서 전개되는 데서 기인한다. 진우 관점에서의 사랑 이야기이다 보니 영화 분위기는 자연히 그의 감정선에 따라 달라진다. 그 대가로 선아의 심리 묘사가 부족할 수밖에 없고, 그 공백으로 인해 선아와 진우의 연결점도 약화다. 그렇다고 <그 시절>이 데뷔작인 다현 개인의 역량으로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 결과 두 주인공의 로맨스는 두고두고 그리울 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끝내 못 보여준다.
명백한 이유 없는 이별
두 주인공의 이별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유치함을 못 견디겠다는 선아의 말에 내포된 본 이유를 못 보여줬기 때문. 선아는 진우에게 꿈이 뭐냐고 묻고, 진우는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답한다. 실제로도 그는 학생들을 함부로 다니는 교사에게 맞서는 용기를 보여주고, 2년만 공부해서 인서울 대학교에 입학하며 자기 포부를 증명해 낸다. 이에 선아는 진우에게 반한다. 그녀에게 꿈이란 삶의 지향점이었고, 그에게는 꿈이 있었으니까.
그다음이 문제다. 대학에 들어간 진우는 선아가 말리는 일만 골라 한다. 격투기 대회에 출전하고, 취객과도 싸운다. 이에 선아는 진우에게 유치하다며 이별을 고한다. 그녀에게 유치함이란 꿈이 없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 꿈을 꾼다는 표현이었던 것. 하지만 상술했듯이 극 중 선아의 감정선이 잘 드러나지 않다 보니 유치함의 속뜻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그 결과 이별은 가슴 아프지만, 돌이킬 수 없는 분기점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에 더해 갈림길의 순간도 인상적이지 않다. 이별로 인한 진우의 흉터가 진할수록 클라이맥스에서 '그때 그랬을걸'이라는 회한의 파도가 더 강하게 밀려올 수 있는데, 정작 갈림길마다 분위기를 가볍게 전환하기 때문. 남산 데이트 직후 격투기 동아리 장면, 이별 후 입대로 이어지는 흐름이 대표적이다. 진우의 불안함과 아픔이 전해지기도 전에 유머로 상황을 무마한다. 그 대가로 파노라마 장면의 임팩트가 좀처럼 살지 못한다.
리메이크는 번역이 아닌데
사실 리메이크는 원작을 뛰어넘기 힘들다. 특히 추억이라는 최고의 아군이 함께하는 이상, 원작의 첫인상에 범접하기가 특히 어렵다. 오래전 작품일수록 관객은 그 영화의 장단점, 완성도보다는 그 영화가 남긴 추억을 간직하기 때문. 따라서 리메이크는 원작이 남긴 추억을 존중하되, 원작과는 또 다른 메시지나 의도가 담긴 포인트를 선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작 대신 리메이크를 보게 하는 소구력을 갖출 수 없다.
이 대목에 있어서 <그 시절>은 다소 안일해 보인다. 공간, 시대, 설정만 한국적으로 바꿨을 뿐, 알맹이는 원작 영화의 것을 고스란히 따왔다. 재구성 대신 번역만 한 셈이다. 원작을 재구성한 다른 리메이크 작품들과 비교하면 방향성 문제가 더 도드라진다. 일례로 <청설>만 하더라도 원작의 소재나 인물 관계는 유지하면서도 여름이라는 계절감을 강조하는 각색을 통해 원작과의 비교를 영리하게 피할 수 있는 작품이 됐다.
하지만 <그 시절>은 추억을 되살리고, 그 추억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 외에는 굳이 리메이크 영화를 보면서 예전 감성을 찾아야 하는 차별화된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한국판 특별히 모난 구석이 없지만, 되려 그래서 특별한 것 없는 하이틴 로맨스로 귀결됐다.
Poor 형편없음
원작을 읽은 이상 사족인 번역본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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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툰 사랑을 알려줄 내 첫사랑
나만 그런가? 갑자기 아무 맥락도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가령 오늘 꿈의 내용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에게 두들겨 맞은 것이다. 오늘 일을 하며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딱히 선생님에게 대들거나 한 적이 없어 맞을 일이 없었다. 그런 트라우마가 자체가 애초에 머릿속에 없었다. 또 꿈에서 맞은 정도의 수위는 거의 조선시대 곤장 때리기와 유사할 정도였다. 무슨 선생님의 부모님 욕을 한 게 아닌 한 그렇게 맞을 일 자체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맞은 이유도 '바닥에 오줌 싸서'였다. 난 바닥에 오줌을 싸 본 적이 없어서 역시 기억에 남지 않았다. 어째 꿈도 나같이 꾼다. 당연히 다들 그렇겠지만 내일 바닥에 오줌 싸서 곤장 맞는 꿈을 꿀 거라고 생각 못했다.
사실 이건 당연하다. 우리 보편적인 인류에게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란 없으니 필연적으로 앞날을 미리 내다볼 수 없다. 그래서 다들 '이랬으면 좋겠다' 식의 바람을 자주 남기곤 한다. 그런데 이거랑 미래를 예측해서 정확히 맞춘다는 건 완전 별개의 것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삶에 운명이라는 단어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렇게 다른 무언가가 한 교차로에서 만난다'라는 건 정말 아무리 봐도 놀랄 일이다. 학교생활 동안 크게 선생님들에게 대들지 않았던 내가 그런 꿈을 꾸는 것과 유사하다. 이렇게 좋은 사람과 기회가 나에게 오다니. 사실 올 만 해서 오는 건데 나를 지나가는 수많은 것들 사이에 그가 있는 게 너무나도 신기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런 특이한 경험이 사람의 인생에 딱 한 번만 오지 않는 것 같다. 난 오늘 그런 꿈을 꾸고 어느 날 느닷없이 교실 유리창을 망치로 두들기는 꿈을 꿀 수도 있다. 또 오늘 먹었던 자장면 vs볶음밥의 기로가 내일 모래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이게 된다고?'싶은 순간은 나이를 들면 들수록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럼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또 선택해야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 중 한 명이 바닥에 오줌 쌀 확률과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 인간의 모습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는 딜레마에 관한 영화가 있다. 첫눈에 반한 한 남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첫사랑이 사라지고
여주인공 아사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쪼리 질질 끌며 길을 걷던 여름의 어느 날. 더벅머리의 한 남자가 물끄러미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낀다. 거짓말같이 시선이 이끌린 두 사람. 남자는 느닷없이 여자와 입을 맞춘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둘은 연인이 된다. 첫 번째 남자 친구의 이름은 바쿠다. 바쿠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자기 맘에 든다고 여자에게 입을 맞추는 게 뭐 보통 정적인 남자라면 불가능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걸 떠나서 확실히 개성이 강한 영혼이었던 것 같다. 톡톡 튀는 매력으로 아사코의 마음을 훔친 바쿠. 사랑이 깊어진 둘은 한적한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사랑이 사라졌다. 아무 언질도 없이.
시간이 지났다. 아사코는 여전히 사랑의 상처가 남아있다. 그렇게 지난 일에 신음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 왠지 본 얼굴이다. 바쿠다. 일하다가 바쿠를 발견했다. 말을 걸어보는 아사코. 그런데 바쿠는 자기가 바쿠가 아니라고 한다. 바쿠를 똑 닮은 남자의 이름은 료헤이다. 얼굴은 똑같은데 아무튼 바쿠가 아니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쿠와 료헤이는 얼굴만 똑같지 직업도 성격도 다르다. 그냥 바쿠가 다른 척한다기엔 360도 다른 사람이라 '아니구나' 싶기 충분하다. 그러나, 바쿠 닮은 사람을 봐서 안녕하고 끝나지 않는다. 아사코는 료헤이와도 사랑에 빠진다. 그러니까 여주인공은 얼굴은 같은데 성격과 직업은 딴판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때 겪는 아사코가 겪는 사랑이야기가 영화의 소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복을 반복하다
우리 인생은 사실 같은 순간의 반복이다. 4월의 어느 일요일에 이 글을 쓰는 나도 사실 저번 주의 반복이다. 또한 돈이 없는 지금 이 상황도 6개월 동안 반복되어 지금 7번째다. 이런 소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가지각색의 반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가 영화를 만든 것도 반복이다. 마스크 쓰고 돌아다니는 것도 반복의 일종이다.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반복되며 선택을 내려야 한다. <아사코>는 이 반복에 대해 다룬 영화다. 물론 정확하게 딱 딱 맞아떨어지는 반복인 건 아니다. 영화에서 조금씩만 변형된 채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극은 이 디테일을 굉장히 잘 살렸는데, 예를 들어 바쿠와의 데이트 장소였던 사진전이 료헤이와의 만남에서도 반복된다. 다른 것으로는 바쿠의 실종이다. 바쿠는 실종을 두 번 한다. 또 다음. 아사코도 연락을 끊고 료헤이와 거리를 둔다. 이것 역시 사랑에 실패하는 과정을 두 번 반복한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디테일을 꼼꼼히 구현해서 반복되는 인생의 과정을 묘사했다.
또 반대로 접근한 지점도 있다. 어떤 부분을 생략함으로써 오히려 삶의 반복을 구현반 부분도 있다. 구체적으로 바쿠와의 사랑이 빠지는 과정을 보면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보자마자 키스한다. 그냥 운명인 것이다. (사랑의 운명을 비유하듯 바쿠와 아사코가 오토바이 사고가 나는 신도 있다.) 반대로 료헤이와의 사랑은 썸을 타는 기간이 몇 번 있다.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근데 그 사랑에 빠졌던 근거가 뭐냐? 첫 번째 남자와 지금 두 번째가 비슷한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수동적이었던 아사코의 연장선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계속해서 나라는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때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를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아사코가 조금씩 선택을 바꾸는데, 이 선택의 차이점에 대해 눈을 부릅뜨고 본다면 감상이 깊어질 것이다. 아마 극본을 쓴 감독도 이 부분에 대해 자기의 의견을 어느 정도 넣은 듯 보인다.
하마구치 류스케 월드
물론 하마구치 류스케의 필모그래피를 전부 다 본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 개봉했던 <해피 아워>, <드라이브 마이 카>, 또 이 <아사코>만 봤다. 그런데 이 세 작품을 보면 이 사람 취향이 느껴진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확실히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한다'급의 당연한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 감독의 접근법은 확실히 다르다. <해피 아워>에서는 제목에 해피가 있지만 318분 중 300분이 불행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이 인물들이 행복한 순간을 어떻게 꿈꾸냐? 에 대한 질문은 가장 마지막 대사에서 볼 수 있다. 불행한 건 너무 복잡해서 풀 수조차 없는데 행복감은 그 친구들끼리의 모임 하나로도 예상할 수 있다.
또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도 이런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제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드라이브 마이카>는 건조한 느낌이었다. 영화에서는 다카츠키, 미사키 둘과 가후쿠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게 묘사된다. 같이 술도 먹고 차도 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미사키의 경우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미사키와의 관계성이 아예 안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극보다는 확실히 적다. 각색까지 하며 구상했던 하마구치 류스케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하마구치 류스케는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왜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자아를 탐구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내렸던 무언가가 나를 투영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사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 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가 아닐까'라는 메시지가 세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이 <아사코>에서도 아사코에서도 바쿠와의 사랑이 료헤이에게도 영향이 간다. <해피 아워>에서도 앞에서 썼듯 그냥 주인공들이 재밌어하는 일로 행복을 예상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그냥 대놓고 대사에도 나온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만 하고 마느냐? 아니다. 이걸 굉장히 신선하게 전개한다. <아사코> 역시 상상을 뛰어넘는 전개로 관계성과 자아에 대해 탐구하는 영화다.
영상미가 좋아요
이 영화 영상미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후반부에 강물을 비추는 신이 있는데 이때 그 무미건조한 카메라 렌즈와의 시너지가 기억에 남는다. 또 초반부 바쿠와 아사코의 사고 신에서도 넘어진 형태(?)를 잘 잡았다. 뭐 사실 영화 자체 비주얼도 괜찮았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신이라 할 수 있는 얼굴 클로즈업에서 전체적인 배경 색감이 괜찮았다. 촬영감독이 카메라 종류를 잘 고른 느낌이다. 뭐 단순히 미장센도 좋았지만 일단 두 남녀 주인공이 잘생겼다. 특히 카라타 에리카 진짜 미인이다.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가 여주인공의 미모였다. 수수하게 예쁜 사람 중 가장 최대치의 미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 밖에서 카라타 에리카와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너무 선남선녀라 좀 문제가 있긴 한 거 같지만 예쁜 건 예쁜 거다.(물론 남자 주인공 히가시데 마사히로도 잘생겼다.) 뭐 남자는 또 다른 문제가 있고 카라타 에리카는 복귀를 준비한다는 것 같은데 상처를 준 이들에게 충분히 뉘우쳤길 바란다. 좋은 작품으로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에도 관심이 많은 여배우로 알고 있는데 살짝 김이 새 버렸다. 데뷔작으로 칸에 입성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근데 이 배우의 잠재 가능성을 떠나서 연기는... ㅎㅎ..
어떤 걸 받아들일 것인가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는 2020년 4월이었다. 아직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던 과거. 더 큰일이 많았는데도 계속해서 머릿속을 웅웅 맴돌던 사건이 있었다. 난 어쩌면 성장하지 못한 걸까?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르고 싶어서 내 자신을 더 성장시켜야 한다고 믿었는데, 이제까지의 일들이 다 허상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반문하던 때 이 영화를 봤다.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정말 뒤통수 한 대 후려치고 싶었던 과거의 나. 세상에서 내가 내 자신을 가장 싫어해야 면죄부가 생기는 것 같았다. 영화는 이런 나(내지는 우리)에게 단적으로 뾰족한 해결책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인생의 과정을 긍정한 느낌이다. 당신은 더 나아진 선택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 격려한 느낌이 들었다. 나같이 여러번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왓챠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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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넷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시리즈의 4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트랜스포머 ONE>
<트랜스포머 ONE>의 조시 쿨리 감독이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오리지널 시리즈와 리부트 시리즈 중 어느 쪽과도 이어지지 않는 독자 세계관이라 밝혔는데요.
앞서 개봉한 북미에서는 개봉주 주말 2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습니다.
또한 영화는 크리스 헴스워스, 스칼릿 조핸슨이 캐스팅되어 화제를 모았는데요. 크리스 헴스워스는 오토봇의 리더인 옵티머스 프라임의 목소리를, 스칼릿 조핸슨은 엘리트 여성 오토봇 엘리타 원의 목소리를 맡아 새로운 매력을 선보인다고 합니다.
9월 넷째주 개봉 PICK! 시작합니다.
트랜스포머 ONE
Transformers One
개요: 애니메이션, 액션, 모험 | 미국 | 104분
감독: 조시 쿨리
더빙: 크리스 햄스워스,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스칼릿 조핸슨, 키 건 마이클 키 등
개봉: 2024.09.25.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줄거리
행성의 운명을 건 전쟁, 세상을 구할 놀라운 변신이 시작된다! 사이버트론 행성의 지하 광산에서 일하는 변신 못 하는 하급 로봇 오라이온 팩스와 D-16.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상 세계를 꿈꾸던 둘은 쾌활한 수다쟁이 B-127, 카리스마 넘치는 엘리타 원과 함께 출입이 금지된 지상에 도달한다.
지상에서 잠들어 있던 알파 트라이온을 만난 넷은 그의 도움으로 잠재되어 있던 변신 능력을 얻게 된다. 막강한 힘과 변신 능력으로 자유를 느낀 것도 잠시, 자신들의 행성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배후의 존재를 알게 되며 모든 것을 바꿀 전쟁을 시작하는데…
줄리엣, 네이키드
Juliet, Naked
개요: 멜로/로맨스 | 미국 | 97분
감독: 제시 페레츠
주연: 에단 호크, 로즈 번, 크리스 오다우드,
개봉: 2024.09.25.
배급: 마노엔터테인먼트
줄거리
25년 전 앨범을 내고 홀연히 사라진 싱어송라이터, 터커 크로우. 애니는 터커를 광적으로 추종하는 던컨과 15년째 권태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언제나 자신보다 터커 크로우가 우선인 던컨 때문에 지쳐가던 애니에게 어느 날 우연히 데모 앨범이 도착한다. 그 후 그녀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바이크 라이더스
The Bikeriders
개요: 액션, 범죄 | 미국 | 116분
감독: 제프 니콜스
주연: 톰 하디, 오스틴 버틀러, 조디 코머
개봉: 2024.09.25.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인터내셔널 코리아
줄거리
자유는 두려움 없는 자들의 것! 1960년대 미국이 격변하던 시절, ‘캐시’는 우연히 바에서 만난 중서부 오토바이 클럽 반달스의 신입 멤버인 ‘베니’에게 끌리게 된다.
이 클럽은 정체불명의 리더 ‘조니’가 이끌고 있으며, 클럽이 진화해가며 각 지역 아웃사이더들이 모이는 장소의 위험한 폭력 범죄 조직으로 변해간다. 이로 인해 ‘베니’는 ‘캐시’와 클럽에 대한 충성심 사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75분
감독: 사이토 케이이치로
더빙: 아오야마 요시노, 스즈시로 사유미, 미즈노 사쿠, 하세가와 이쿠미
개봉: 2024.09.18.
배급: CJ CGV
줄거리
운명처럼 결성된 ‘결속밴드’ 멤버들은 첫 라이브 공연 이후 결속력을 더욱 다진다. 현재는 방구석 기타리스트지만 록 스타를 꿈꾸는 봇치(외톨이), ‘고토 히토리’는 이번에는 더 많은 관객들, 심지어 학교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는데… 꿈을 향해 도전하는 소녀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번에는 학교 축제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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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영화, <코다>
오늘의 영화는 바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영화 <코다>입니다.
ⓒ 네이버 영화
정보
개요 드라마 | 미국 | 111분
감독 션 헤이더
출연 에밀리아 존스, 퍼디아 월시-필로, 트로이 코처 등
등급 12세 관람가
줄거리
24/7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 '루비'는
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간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기쁨과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다.
합창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일스와의 듀엣 콘서트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까지 얻지만
자신 없이는 어려움을 겪게 될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루비는 망설인다.<코다>의 T.M.I
ⓒ 네이버 영화
코다란?
영화 제목인 '코다(CODA)'는 Child of Deaf Adult의 약자로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청인 코다는 수어와 음성 언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농인과 청인의 세상을 연결해 주는 다리 같은 역할이라고 합니다.
배우
<코다>에서 루비의 가족인 배우 말리 매트린, 트로이 코처, 다니엘 듀런트는 실제로도 농인입니다. 말리 매트린은 농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트로이 코처는 <코다>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코다>의 감독 션 헤이더는 이렇게 캐스팅을 진행한 이유를 "농인 가족을 주연으로 내세우면서 청인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밝혔습니다.
"따뜻한 온기를 담은 OST"
ⓒ 네이버 영화
<라라랜드>에서 음악 감독을 맡으셨던 마리우스 드 브리스 감독이 <코다>에서도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였는데요. 마리우스 드 브리스 감독은 라라랜드뿐만 아니라 뮤지컬 영화 <물랑 루즈>에서도 음악 감독으로 참여해, 마리우스 드 브리스 감독이 참여한 음악 영화는 믿고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음악에 있어 신뢰도가 높은 감독입니다 . 이번 영화에서는 조니 미첼, 데이비드 보위, 마빈 게이 등 여러 팝송 명곡을 색다르게 편곡하였는데요. 영화의 따뜻한 분위기와 함께 들려오는 OST는 관객들에게 따뜻한 감성을 불러 일으키곤 했습니다. <코다>를 본 지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OST는 여전히 플레이리스트에 담아 놓고 즐겨 듣고 있는 중입니다.
"풋풋한 사랑 이야기"
ⓒ 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를 꼽자면, 바로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입니다.
2021년에 나온 영화 중에서 '여름이었다.'라는 문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싱그러운 풀과 나무, 맑은 하늘과 바다가 두 배우와 어우러져서 이들의 이야기가 더욱더 풋풋하게 느껴졌는데요. 첫사랑의 떨림과 설렘을 모두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뛰어난 음색까지 지닌 배우"
ⓒ 네이버 영화
사실 에밀리아 존스 배우는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음색이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에밀리아 존스의 노래가 영화의 첫 시작을 열어주는데, 단숨에 스크린에 집중시킬 정도로 엄청난 음색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남자 배우는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음악 영화 <싱 스트리트>의 주연 배우 '페리다 월시 필로'가 맡았는데요.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진 두 배우가 만나, 영화를 보는 내내 귀호강을 할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 음악 영화를 좋아한다?
- 성장 영화를 좋아한다?
- 잔잔하게 감동을 주는 영화를 좋아한다?
잔잔한 영화였지만, 어떤 영화보다도 마음에 큰 파동을 일으킨 영화,
지금까지 영화 <코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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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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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의 방아쇠를 당기기까지의 여정
복수극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시원하고 짜릿한 맛이 일반적이겠지만, 영화 '리볼버'는 다소 다른 결을 띤다. "탕!" 복수의 총알을 한 방 발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다양한 구성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리볼버'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갔던 전직 경찰 하수영(전도연)이 출소 후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직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무뢰한'에서 호흡을 맞췄던 오승욱 감독과 배우 전도연이 약 10년 만에 재회해 눈길을 끈다.
영화 제목만 보면 마치 총기 액션이 난무할 것 같은 복수극을 떠올리게 되고, 실제로 하수영에게 리볼버 권총이 쥐어지면서 '언젠가 저 총으로 누군가를 겨냥해 발사할 것이다'는 예상과 함께 긴장을 놓지 못한다. 그러나 보기 좋게 다른 노선을 보여준다.
교도소에 가는 조건으로 돈 7억과 서울 아파트를 약속받았지만, 출소 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하수영은 연관된 이들을 차례대로 만나며 정보를 수집한다. 정윤선(임지연), 조 사장(정만식), 앤디(지창욱), 신동호(김준한), 본부장(김종수) 등이 정보를 흘리고 이를 추적해 나가는데, 매우 저속으로 나아간다. 이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로드무비처럼 다가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하수영이 되찾기 위해 나선 7억과 서울 아파트는 본부장 말마따나 하수영이 목숨을 걸기엔 '그렇게 큰돈도 아니지만, 무시할 만큼 작은 돈도 아닌 것'처럼 표현된다. 돈 찾기보다도 하수영, 그리고 그와 얽혀있는 주변 인물들의 감정선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던 이들은 하수영과 접촉한 이후 미묘하게 관계성이 달라져 균열을 만들어낸다. 각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진 않지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장면 곳곳에 던져주며 아슬아슬한 심리전의 재미를 만든다.
후반부에 모든 캐릭터가 한 장소에 모여 갈등이 본격 발화되면서 재미가 극대화된다. 여기에 조금씩 비튼 대사와 캐릭터성이 의외의 웃음보를 자극하기도 한다. 진득하기만 했던 '리볼버'가 막판에 가면서 다양한 매력을 분출한다.
'리볼버'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무뢰한'에 이어 영리하게 전도연을 활용하는 오승욱 감독의 '전도연 활용법'이다. 2년 전 하수영을 통해 파랑과 레드가 섞인 보라, 청색과 녹색이 모호한 청록 등 도드라지는 컬러로 부각했다면, 출소 후에는 어두운 의상을 입고 마른 수건처럼 생기를 잃은 무표정의 마른 얼굴을 보여준다. 코 앞에서 휘두르는 야구 배트에도 흔들림 없는 초점 잃은 눈빛과 함께 무조건 전진한다. 전도연의 새로운 얼굴이다.
그러면서 투샷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하수영과 '무뢰한'의 김혜경(전도연)을 연상케 하는 정마담의 묘한 워맨스(?), 온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하수영과 임석용(이정재), 진짜 관계가 무엇인지 감이 오질 않는 투자 회사 대표 그레이스(전혜진)와 앤디 등이 그렇다.
그리고 이 영화는 연기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하면서 아우라를 뿜어낸다. 이들이 있어서 '리볼버'의 흡입력을 더욱 끌어올리는데, 그중 인상 깊었던 건 지창욱의 새로운 모습이다. 그간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지질함을 장착하며 새 얼굴로 갈아 끼우는 데 성공했다.
다만, 다른 텐트폴 영화들에 비해 '리볼버'가 관객들의 관심까지 명중하기엔 장르나 분위기가 선택받기엔 쉽지 않다. '크로스' 대신에 여름 대전에 내놓은 배급사의 의도를 알겠지만, 모든 관객들을 사로잡기엔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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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2021 대규모 영화로 매주 구독자 찾아간다는 약속 지켰다!
영화 <쥬만지: 넥스트 레벨>의 드웨인 존슨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레드 스패로>의 제니퍼 로렌스 출처: 네이버 영화
미국 대중 매체 버라이어티는 ‘넷플릭스가 매주 새로운 영화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고 보도했습니다.
버라이어티는 '지난 10월 스트리밍 모노리스를 통해 넷플릭스가 2021년 매주 약 1억 3천9백만 명의 구독자들에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작품 제공할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주로 오리지널 콘텐츠와 일부 화려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전했습니다. 넷플릭스는 뮤지컬, 액션, 로맨틱 코미디, 가족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71개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배우 드웨인 존슨, 멜리사 맥카시, 할리 베리, 제이슨 모모아, 에이미 아담스, 라이언 레이놀즈, 크리스 헴스워스, 린-마누엘 미란다가 지난 화요일 공개된 넷플릭스의 ‘시즐 릴’ (짧은 홍보용 비디오)에 등장해 향후 12개월 동안 선보일 각각의 프로젝트를 예고했습니다.
주목해야할 작품으로는 드웨인 존슨, 갤 가돗, 라이언 레이놀즈가 주연한 블록버스터 영화 <레드 노티스>(Red Notice) 그리고 레지나 킹, 이드리스 엘바가 출연하는 서부 영화 <하더 데이 폴>(The Harder The Fall), 조나단 메이저스의 <러브크래프트 컨트리>(Lovecraft Country), 에이미 아담스 주연의 <우먼 인 더 윈도우>(The Woman in the Window), 잭 스나이더 감독 신작 <아미 오브 더 데드>(Army of the Dead), 바네사 허진스, 앤드류 가필드 주연의 조나단 라슨 작곡가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영화 <틱,틱…붐!> 그리고 불가능해보일 정도로 엄청난 조합인 제니퍼 로렌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아리아나 그란데, 티모시 샬라메, 키드 커디, 메릴 스트립을 볼 수 있는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 등이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많은 사랑을 받은 넷플릭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그리고 <키싱 부스>가 3부작으로 올해 막을 내립니다.
버라이어티는 ‘코로나19 영향을 받지 않고 최신 영화와 프리미엄 영화를 개봉하는 능력을 갖춘 세계 최대 스트리밍 업체라는 것이 부러운 시기다’라고 전하며 ‘워너 브라더스와 같은 스튜디오들은 극장 폐쇄로 인해 돌연 스트리밍행을 결정했지만 넷플릭스는 계속해서 달려왔다’고 강조했습니다.
2019년 조지아에서 동시 촬영된 3부작 영화 <피어 스트리트>(Fear Street)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여집니다. 매체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디즈니의 폭스 인수로부터 이 영화를 구해내 올해 할로윈 시즌에 한 달 간격으로 세 편의 영화를 공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만약 코로나 바이러스가 영화를 상영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고 모든 영화들이 극장 개봉으로 진행되었다면 통념상 영화 개봉 시기마다 1년씩 간격을 두었어야 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의 <위시 드래곤>도 넷플릭스 통해 공개됩니다. 이 애니메이션 작품은 미국 아카데미에서 장편애니메이션을 수상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제작사의 새로운 작품으로 배우 존 조, 콘스탄스 우, 윌윤리, 지미 O. 양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습니다. 이에 버라이어티는 ‘소니는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재정적 손실에 따른 부담을 덜고 넷플릭스는 외부 활동이 어려운 아이들과 가족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방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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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져도 끝나지 않는 잔혹한 어른들의 게임
오징어 게임 (Squid game, 2021)
개봉일 : 2021.09.17 (넷플릭스 공개)
감독 : 황동혁
출연 : 이정재, 박해수, 오영수, 위하준, 정호연, 허성태, 아누팜 트리파티, 김주령
해가 져도 끝나지 않는 잔혹한 어른들의 게임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까지. 매번 다른 느낌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황동혁 감독의 신작 <오징어 게임>이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채 삶의 끝에 서있는 456명의 참가자와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고도 남을 천문학적인 액수의 상금 456억. 수많은 참가자들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굶거나 빚쟁이에게 찔려 죽느니 목숨 걸고 인생 한번 바꿔보자며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건다.
한 사람당 1억. 최후의 1인에겐 456억. 누가 이런 서바이벌을 벌였는진 알 수 없지만 참가자들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돈다발에 “이건 진짜다.”라는 믿음을 얻는다. 옆에 누워있는 참가자는 믿을 수 없지만 돈만큼은 착실하게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믿지 못할 경쟁자들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며 공격성을 내비치기 시작한다. 이 게임에서 죽는 게 나만 아니면 되니까. 생판 모르는 이의 목숨 vs 추가되는 1억 + 나의 생존 중 어떤 걸 선택하겠냐고 묻는다면 당연 후자가 아닐까.
<오징어 게임>은 황동혁 감독이 2008년에 구상하고 2009년에 쓴 이야기다. 당시 일본 서바이벌 물인 <라이어 게임>, <배틀 로얄>과 같은 작품들을 보며 서바이벌 물의 요소를 한국적으로 접목해 내기 위해 고민한 결과로 탄생한 것이 <오징어 게임>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약간의 각색이 더해지긴 했지만 이런 소재를 10여 년 전에 이미 모두 구상해놨다는 사실을 들었을 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쉬웠다. 그 당시에 바로 제작이 됐다면 지금보다 더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그 사이에 영화 <헝거게임>이나 웹툰 <머니게임>처럼 돈과 명예를 건 서바이벌 물들이 지나간 후라 서바이벌 물 자체의 신선함은 조금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오징어 게임>은 아이들의 게임을 재해석하는 방법으로 다른 서바이벌물들과 차별화를 둔다. ‘극한의 공포 속에서 게임 참여자들은 서로를 의지하다가도 한순간에 의심하고 배신하고 결국엔 서로를 해하게 된다.’는 서바이벌 물 특유의 심리적 공포는 똑같이 존재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다른 서바이벌 물들과 다르게 조금 더 단순하고 귀여운 게임을 반복한다. 어릴 적 골목에서 친구들과 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게임들 말이다. 9편으로 구성된 시리즈엔 총 6종류의 추억의 게임이 등장하는데, 어떤 게임이 나오는지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전부 언급하지 않겠다.
이 시리즈의 차별점이자 가장 큰 매력은 낯설고 아기자기한 세트장과 디테일한 요소들이다. 강박증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 만큼 완벽하게 딱 떨어지는 각진 물건들과 진짜 같은데 가짜 같은 공간들이 담고 있는 무게감, 그리고 눈에 딱 들어오는 일꾼들의 핑크색 슈트와 선물 상자처럼 포장된 관들. 기계처럼 움직이는 일꾼들이 만들어내는 동작의 흐름들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특히 만족스러웠다. 내용은 아름답지 않지만 눈에 담긴 세트장은 빈틈없이 마음에 들었다.
서바이벌 물 특유의 설정들과 게임의 일부로 인해 앞서 나온 여러 작품들과 비교되며 표절 논란을 함께 안고 가고 있지만 작품 자체가 완전한 표절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부분들이 있다. 장르적 특성과 플래그, 일부 장면과 소재를 모두 독창적, 독보적으로 구성하기엔 이미 서바이벌 장르가 쌓아온 이미지와 개념, 시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사람의 심리라는 틀이 있기에 앞선 작품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무조건 욕하기보단 개인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오징어 게임>은 간단한 룰로 이뤄진 추억의 게임들을 돈과 목숨을 건 피 튀기는 생존 게임의 주제로 이용하며 어릴 적 우리의 모습, 어른이 된 우리의 모습의 간극에서 오는 아이러니를 끌어올린다. 어릴 땐 친구들과 골목에서 웃으며 게임을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 인생 한번 뒤집어보겠다고 피 흘리고 절규하며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씁쓸하고 슬플 뿐이다. 그때는 술래가 되거나 게임에서 져도 딱밤 한방이나 인디언 밥 한 번이면 패자 벌칙으로 충분했는데 이 게임에서 탈락하면 무조건 죽는다. 탈락한 자는 죽는다는 게임 특성상 아무래도 잔인한 장면들이 다소 많이 등장하긴 한다. 총으로 사람을 쏘거나.. 사람의 신체가 망가진다거나. 많이 고어한 편은 아니지만 반복해서 노출되다 보면 거부감이 들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라겠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목숨을 걸고 참여하는 게임 속 약육강식의 법칙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초대장을 받고 자신의 손으로 참가를 결정한다. 사람들이 우수수 죽어 나가는 걸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갔던 참가자들은 현실에 떠밀려 대부분 다시 게임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최후의 1인이 내가 될 수도 있다며 확률을 계산하고,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이기심과 폭력성을 여과 없이 내보인다. 사람이 많아지면 당연히 무리가 생기고, 권력을 잡는 힘센 무리가, 나쁜 무리가, 그에 대응하는 착한 무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생존이라는 본능 앞에서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기 위해 어떤 행동까지 벌일 수 있는지. 추악하고 추잡한 본능의 단면을 제대로 훔쳐본 기분이었다. 근데 웃긴 건 왠지 이해가 가더라는 것이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선 충분히 그들처럼 행동했을지도..
게임의 참가자들은 게임장 입소에 앞서 똑같은 옷과 신발을 신고 이름 대신 번호를 부여받는다. 이들은 게임장의 위치도 모르고 당장 다음에 펼쳐질 게임 종목도 알 수 없고, 옆에 서있는 참가자의 이름도 알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을 컨트롤하는 사람들은 참가자들의 모든 걸 알고 있다. 이름, 나이, 사는 곳, 학력, 특이사항을 포함해 이들 인생의 대부분을 알고 참가자들 머리 위에서 이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가면에 그려진 도형과 가면의 종류에 따라 철저한 계급제로 운영되는 오징어 게임이란 작은 사회에서 참가자들은 얼굴과 몸을 속절없이 노출한 채 장난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 이 게임에선 가면에 그려진 도형의 각이 많을수록, (네모>세모>동그라미), 상급자의 개념인 듯하다. *
끝나지 않는 게임에 대한 피로도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무력한 참가자의 모습이 우리 모습과, 무한히 경쟁해야 하는 게임이 우리 사회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같이 살자”고 말할 여유도, 그런 약속을 지킬 여력도 없이 이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지쳐버린 우리들. 그리고 465명 중에 1등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최후의 1인을 가리기 위해 자비 없이 반복되는 게임들. 이 게임은 지옥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일부분을 아주 크게 확대해 놓은 듯한 모습이다.
일부 후기들에선 반복되는 잔인한 장면들, 다소 느리게 느껴지는 전개에 대한 아쉬움을 볼 수 있었는데, 6번의 게임을 지나다 보면 다소 피로감이 몰려오는 건 사실이다. 단순한 게임이지만 믿었던 이들이 서로를 배신하고, 결국엔 1명만이 남아야 한다는 룰 아래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는 긴장감과 허탈함의 반복이 주는 감정 소모가 굉장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예상은 했지만 진짜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생존 게임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함께 지쳐간 기분이었다.
이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어릴 때 친구들과 골목길에서 하던 게임들은 해가 질 때쯤, 엄마의 “얘들아, 밥 먹어~”라는 말과 함께 끝났는데, 고립된 섬 안에서 펼쳐지는 생존 게임에 참여한 이들에겐 게임을 중지시켜줄 사람이 없다. 주최자들은 “참가자 과반수가 동의하면 게임을 중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걸었지만, 참가자들은 머리 위에 쌓인 돈을 포기하지 못한다. 말려줄 사람도, 욕심을 포기할 사람도 없다.
한낮에 시작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부터 밤처럼 어두운 세트장에서 치러진 징검다리까지, 하늘은 점점 어두워져가는데 생존에 대한 긴장감을 놓을 틈이 없다. 게임 주최자들은 여러 극한의 상황들을 연출하며 참가자들을 몰아가고, 차후엔 제발 극단적인 선택을 하라며 부추기기까지 한다.
게임 안의 인물들
돈과 생존이 달린 게임 앞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변화한다. 마지막까지 남은 주인공 기훈과 상우, 새벽이 그 변화를 가장 크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새터민 새벽은 아무것도 없이 동생과 덩그러니 남겨진 세상에서 엄마를 데려올 돈을 모으기 위해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새벽은 아무도 믿지 못한다. 게임의 초반, 새벽은 어떤 무리에도 끼지 않으려 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기훈에게 마음을 열고 마지막 순간엔 기훈에게 동생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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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는 <오징어 게임>의 최고 브레인이다. 서울대 수석 입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는 정형화된 지략가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생존에 있어 가장 계산적인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왔던 인물은 상우였다. 상우는 처음 게임에서 쫓겨나왔을 때 알리에게 차비를 빌려주거나 달고나 게임 직전 우산을 고른 기훈에게 게임 종류를 말해줘야 할지. 같은 양심적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한다. 자신을 믿은 알리를 배신하고, 부상을 입은 새벽을 찌르고 끝내 마지막 게임에선 기훈에게 칼을 휘두른다. 그는 보통 선하게 설정되는 주인공(기훈)의 편에 함께하면서도 생존을 위한 이기심을 숨기지 않는다.
마지막 게임에서 상우는 기훈에게 우승을 양보하며 죽음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기훈에 대한 믿음, 사과의 의미 50%와 허공에 돈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결단 50%가 합쳐진 일부 계산적인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훈은 약삭빠르기보단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 가족도, 동료도, 어머니도, 내 인생도 챙기고 싶었기에 무엇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그는 엉망이 된 인생을 되돌리기 위해 오징어 게임에 참여한다. 그는 약자인 1번 일남과 혼자인 새벽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게임 안에서 경쟁자가 된 상우에게도 옛 추억을 얘기하며 적대감을 하나도 내비치지 않는다.
좋게 말하자면 살육 게임 안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선인. 나쁘게 말하면 바보 같은 오지라퍼. 그런 상우가 변하게 된 건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상우가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인 순간부터였다. 마지막 만찬을 끝내고 칼을 집은 상우를 경계하던 기훈은 새벽의 죽음과 함께 방어와 공생이 아닌 공격을 선택하게 된다. 6번째 게임인 오징어 게임에서 공수를 결정하라는 질문에 ‘공격’이라 답하는 기훈의 대사로 그의 확고한 심경 변화를 느낄 수 있다.
1화의 시작, 기훈과 상우가 오징어 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9화에선 어른이 된 두 사람이 생존을 건 싸움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함께 골목을 뛰놀고 서로를 의지하며 자란 기훈과 상우가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몰리게 된 걸까. 문득 슬퍼지는 장면이었다. 기훈과 상우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만 마지막 순간엔 다시 떠오른 추억과 기훈의 결단으로 둘의 사이가 잠시나마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와버린, 너무 많이 변해버린 두 사람은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지영의 말대로 “6.25이후 최대의 비극”같은 게임이었다.
게임 밖의 인물들
<오징어 게임>은 잔인하다. 자의로 참가하긴 했지만 어쨌든 돈과 생존을 필사적으로 바라는 참가자들을 마치 게임 말처럼 게임판 위에 올려두고 관찰하고, 가볍게 죽인다. 참가자들은 게임 내에서 서로의 이름과 추억을 나누며 나름의 동료애와 우정을 쌓아가지만 주최자들은 극적인 게임 연출을 위해 그 심리마저도 이용한다. 아침이 지나고 해가 져갈 때쯤, 이제 거의 끝나간다고 생각될 때쯤 주최자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과 1:1 게임을 붙여 참가자들의 작은 위로와 희망마저 빼앗는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건 게임에 함께 참여한 일남의 존재다. 구슬치기 게임을 하며 양심의 가책과 일남을 잃은 슬픔에 절어있던 기훈을 농락하듯 게임이 끝난 후 1년, 일남은 다시 기훈에게 카드를 보낸다. 일남이 게임에 참가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 삶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더 재밌을 수가 없지.”
그저 인생의 재밌는 것이 없어 참여했을 뿐, 기훈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일남을 지키기 위해 진심을 다했는데, 일남은 그저 재미 때문에 게임을 열고, 게임에 참가한다. 되짚어보면 일남은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임에도 큰 걱정 없이 게임을 해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할 땐 걱정 없는 아이 같은 표정으로 선두로 뛰어나갔고, 구슬치기 게임에선 미련이 없다는 듯 기훈에게 구슬을 양보한다. 그리고 참가자 간 큰 싸움이 벌어지던 날 밤. 일남이 높은 침대에 올라가 “그만해, 나 너무 무서워!”라고 소리치자 프론트맨은 이내 스페셜 게임의 중지를 선언한다.
일남이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목숨이 달린 게임의 승리를 기훈에게 양보할 수 있었던 것, 그가 무섭다고 소리치자 상황이 종료되었던 것은 일남은 게임에서 지더라도 생명을 잃지 않기 때문에, 통제 못할 상황에서 일남이 생명을 잃는 걸 방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6화 깐부 에피소드에서 일남이 기훈에게 구슬을 양보하며 두 사람 사이의 믿음과 우정을 보여주는 장면에 울컥하긴 했으나 차후에 일남이 보여준 그 행동이 전혀 아름다운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결국 양심을 잃어버린 기훈의 모습에 대한 만족도를 구슬로 표현한 것일 뿐, 그 구슬 안에 담긴 진심이 무엇이었을지.. 더 이상 일남의 마음을 믿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일남은 기훈을 가장 우습게 만드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오징어 게임> 속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게임에 참가하거나 게임을 진행한다.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게임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인물은 준호다. 경찰인 준호는 실종된 형이 남긴 명함과 기훈의 증언을 듣고 게임장 내부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가장 용감하고 정의로운 인물이다.
준호는 주최자, 참가자, 외부인의 삼각 구도를 만들어 이야기의 흐름을 팽팽히 당겨낸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하나도 파헤치지 못한 오징어 게임의 비밀과 프론트맨의 정체를 밝혀내고 새로운 궁금증을 떠올리게 만든다. 차후 시즌 2가 제작된다면 준호의 생존 여부가 기훈에게 가장 큰 힘 또는 변곡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주최자들을 제외하고 그 해 오징어 게임에서 생존하거나 죽는 장면을 확실히 보여주지 않은 사람은 두 사람이 유일하니 말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지킨 주인공
주최자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서로를 죽이고 탈락시키는 장면을 기대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이란 이기심과 공격성이다. 기훈은 게임 내내 동료라 생각되는 인물들을 챙겼으며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상우를 살리기 위해 게임을 중단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이 끝나고 상금을 받았음에도 죄책감과 여러 감정들로 인해 여전히 돈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일남은 남다른 우승자 기훈을 불러내 지나가는 사람들의 양심을 시험하는 마지막 게임을 제안한다. 하지만 기훈은 매번 일남과 주최자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타인에 대한 믿음과 인간성을 지키고 일남과의 게임에서도 승리한다. 그는 인간들의 밑바닥을 훑으며 즐거워하던 주최자들에게 커다란 한방을 먹이고 이 게임의 진정한 승자가 된다.
이 게임은 정말 평등한 걸까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오징어 게임>은 반복적으로 평등을 주장한다. 이들은 밖에선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모두 똑같은 위치에 놓고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라며 참가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건 전혀 평등한 게임이 아니다. 참가자와 주최자의 위치는 하늘과 땅 차이고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위계질서가 형성된다. 참가자들은 생존이 걸린 게임에서 본능적으로 서로를 해치고 죽지 않기 위해 숨는다. 목숨을 건 무한 경쟁을 끝내는 방법은 생명이 다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주최자들은 이 게임이 결국 평등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참가자들의 엎치락뒤치락 하는 모습을 하나의 내깃거리, 구경거리쯤으로 소비한다. 애초에 각자 다른 신체능력과 지능, 게임에 대한 경험치를 가진 400여 명의 사람에게 똑같은 게임을 제안하는 게 어떻게 평등할 수 있을까. 주최자로서 편의를 확보한 일남, 뽑기 게임에서 라이터를 사용한 미녀와 덕수, 일남 덕분에 게임을 통과한 기훈, 장기 적출로 미리 게임을 알았던 참가자 등.. 열심히 포장했지만 결국 평등하지 않은 게임이었다.
만약 456억을 얻을 수 있는 인생 역전의 기회가 온다면, 그 기회를 꽉 잡겠는가? 묻는다면 나는 절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일확천금의 커다란 기회라면 그걸 놓쳤을 땐 그만큼 잃는 게 많을 테니, 큰 도박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정말 내일 죽을 수도, 내일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또 다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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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아직도 학교를 결정 못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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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고려 제일검인 의적단 두목 '무치'와 바다를 평정한 해적선의 주인 '해랑'. 한 배에 운명을 함께하게 된 이들이지만 산과 바다,
태생부터 상극으로 사사건건 부딪히며 바람 잘 날 없는 항해를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왜구선을 소탕하던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왕실의 보물이 어딘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해적 인생에 다시없을 최대 규모의 보물을 찾아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라진 보물을 노리는 건 이들뿐만이 아니었으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역적 ‘부흥수’(권상우) 또한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데...!
해적과 의적, 그리고 역적
사라진 보물! 찾는 자가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