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2-25 17:07:15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 감흥 없는 번역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광풍에도 불구하고 농구와 복싱을 좋아하는 고등학교 2학년 '구진우'(진영). 어느 날, 그는 수업 시간에 장난을 치다가 걸린 나머지 벌을 받게 된다. 모범생 '오선아'(다현) 앞자리에 앉아서 특별 감시를 받으라는 것. 선아를 짝사랑하는 친구들은 진우를 부러워하지만,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진우는 그저 벌을 받아야 해서 불만스러워한다. 선아 역시 시끄럽기만 한 그의 존재를 불편해한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둘은 점차 가까워진다. 선아가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자, 진우가 자기 책을 선뜻 빌려주고 대신 벌을 받은 것. 이 사건을 시작으로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는 선아와 진우. 선아는 진우에게 공부를 알려주고, 진우는 특유의 멋모를 자신감으로 선아를 웃게 만들면서 감정을 쌓아 나간다. 하지만 서로에게 끌리는 속마음과 달리 그들은 자기 마음을 좀처럼 속 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한 채 대학생이 된다.
리메이크 대신 번역을 선택하다
국내 영화 시장에서 중화권의 청춘 로맨스 영화는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다. 비록 100만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지는 못해도, 수십만 명의 관객을 꾸준히 동원하는 흥행력은 보장되는 장르니까. 2010년대에 개봉한 <장난스런 키스>, <나의 소녀시대> 모두 4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은 바 있다. 2023년 여름에 재개봉한 <여름날 우리> 역시 40만 명을 돌파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팬데믹 이후 침체기가 길어지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처럼 꾸준한 흥행력을 과시하는 중화권 청춘 로맨스가 돌파구로 여겨졌던 모양새다. 비슷한 시기에 과거 인기를 끌었던 대만 청춘 로맨스 영화 세 편이 일제히 리메이크됐기 때문. 작년에 개봉한 <청설>과 설날 연휴에 공개된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각각 8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기록했다.
문제는 3번 타자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이하 <그 시절>)다. 대만 영화 리메이크 열풍을 이어갈 매력이 안 느껴진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 시절>은 리메이크 대신 번역을 선택했기 때문. 앞선 두 영화는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따르되 플롯이나 감성을 차별화했다. 그에 반해 <그 시절>은 배경만 한국으로 바꾸는 데서 그쳤다. 그러다 보니 원작을 이미 본 관객으로서는 굳이 번역본을 읽을 필요성을 못 느낄 법하다.
그 시절의 소녀가 뇌리에 각인될 두 가지 조건
<그 시절> 원작을 본 관객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결혼식에서 커징텅이 션자이의 남편에게 키스할 때 스쳐 지나가는 평행 세계 시퀀스다. 그들이 연애할 때 마주한 몇 차례 분기점이 등장하고, 그때마다 다른 선택을 내리면 달라졌을 현재와 미래를 파노라마로 펼쳐 보여주는 순간의 임팩트가 핵심이다. <라라랜드>에서 남남이 된 세바스찬과 미아가 과거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결말과 유사하다.
이처럼 클라이맥스가 관객 뇌리에 각인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예뻐야 한다. 예쁜 대상은 다를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의 풋사랑이 귀여울 수도 있고, 연기와 재즈에 몰입하는 두 주인공의 열정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두 주인공이 그 시기를 회상하면 다시 사랑에 빠질 정도로 강렬하게 예쁜 게 중요하다.
그다음으로는 이별에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명백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낸 과거가 너무나도 찬란하고 아름다운 나머지, 그 시절로 돌아가거나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싶더라도 그럴 수 없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제시되어야 한다. 과거는 과거에 묻어두어야만 할 때, 즉 가능성이 현실로 될 수 없는 한계와 제약이 있을 때 평행 세계는 간절한 만큼 강렬하니까.
예쁘지만, 충분하지는 않은
하지만 <그 시절> 리메이크가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다. 첫 번째 조건은 절반 정도만 갖췄다. 진우와 선아의 사랑이 시작되는 배경과 분위기는 예쁘다. 2000년대 배경의 고등학교 풍경은 관객에게 자기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교실이나 운동장처럼 한국적 배경에 맞게 바뀐 장소는 필연적으로 대만 원작보다 흡입력이 뛰어나다.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당시의 향취가 주는 아련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작 그 안에서 피어나는 풋사랑이 부자연스럽다는 것. 두 주인공의 톤이 묘하게 어긋나 있다. 진우는 너무 가볍고 동적이며, 선아는 지나치게 정적이다. 그 결과 진우에게 '그 시절의 소녀'여야 할 선아의 매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공부할 생각이 아예 없는 진우와 모범생 선아가 처음부터 잘 어울릴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두 주인공의 톤이 같은 층에서 만나지 못하니까 문제다.
이는 영화가 진우 시점에서 전개되는 데서 기인한다. 진우 관점에서의 사랑 이야기이다 보니 영화 분위기는 자연히 그의 감정선에 따라 달라진다. 그 대가로 선아의 심리 묘사가 부족할 수밖에 없고, 그 공백으로 인해 선아와 진우의 연결점도 약화다. 그렇다고 <그 시절>이 데뷔작인 다현 개인의 역량으로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 결과 두 주인공의 로맨스는 두고두고 그리울 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끝내 못 보여준다.
명백한 이유 없는 이별
두 주인공의 이별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유치함을 못 견디겠다는 선아의 말에 내포된 본 이유를 못 보여줬기 때문. 선아는 진우에게 꿈이 뭐냐고 묻고, 진우는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답한다. 실제로도 그는 학생들을 함부로 다니는 교사에게 맞서는 용기를 보여주고, 2년만 공부해서 인서울 대학교에 입학하며 자기 포부를 증명해 낸다. 이에 선아는 진우에게 반한다. 그녀에게 꿈이란 삶의 지향점이었고, 그에게는 꿈이 있었으니까.
그다음이 문제다. 대학에 들어간 진우는 선아가 말리는 일만 골라 한다. 격투기 대회에 출전하고, 취객과도 싸운다. 이에 선아는 진우에게 유치하다며 이별을 고한다. 그녀에게 유치함이란 꿈이 없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 꿈을 꾼다는 표현이었던 것. 하지만 상술했듯이 극 중 선아의 감정선이 잘 드러나지 않다 보니 유치함의 속뜻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그 결과 이별은 가슴 아프지만, 돌이킬 수 없는 분기점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에 더해 갈림길의 순간도 인상적이지 않다. 이별로 인한 진우의 흉터가 진할수록 클라이맥스에서 '그때 그랬을걸'이라는 회한의 파도가 더 강하게 밀려올 수 있는데, 정작 갈림길마다 분위기를 가볍게 전환하기 때문. 남산 데이트 직후 격투기 동아리 장면, 이별 후 입대로 이어지는 흐름이 대표적이다. 진우의 불안함과 아픔이 전해지기도 전에 유머로 상황을 무마한다. 그 대가로 파노라마 장면의 임팩트가 좀처럼 살지 못한다.
리메이크는 번역이 아닌데
사실 리메이크는 원작을 뛰어넘기 힘들다. 특히 추억이라는 최고의 아군이 함께하는 이상, 원작의 첫인상에 범접하기가 특히 어렵다. 오래전 작품일수록 관객은 그 영화의 장단점, 완성도보다는 그 영화가 남긴 추억을 간직하기 때문. 따라서 리메이크는 원작이 남긴 추억을 존중하되, 원작과는 또 다른 메시지나 의도가 담긴 포인트를 선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작 대신 리메이크를 보게 하는 소구력을 갖출 수 없다.
이 대목에 있어서 <그 시절>은 다소 안일해 보인다. 공간, 시대, 설정만 한국적으로 바꿨을 뿐, 알맹이는 원작 영화의 것을 고스란히 따왔다. 재구성 대신 번역만 한 셈이다. 원작을 재구성한 다른 리메이크 작품들과 비교하면 방향성 문제가 더 도드라진다. 일례로 <청설>만 하더라도 원작의 소재나 인물 관계는 유지하면서도 여름이라는 계절감을 강조하는 각색을 통해 원작과의 비교를 영리하게 피할 수 있는 작품이 됐다.
하지만 <그 시절>은 추억을 되살리고, 그 추억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 외에는 굳이 리메이크 영화를 보면서 예전 감성을 찾아야 하는 차별화된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한국판 특별히 모난 구석이 없지만, 되려 그래서 특별한 것 없는 하이틴 로맨스로 귀결됐다.
Poor 형편없음
원작을 읽은 이상 사족인 번역본
Relative contents
-
- 커피 오어 티 영화 후기 / 중국영화 맞아?! / 대만 로코인줄 ㅎㅎ / “스물” 느낌의 유쾌한 코믹 드라마
영화직관하는남자 영직남의 "커피 오어 티"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과 함께 윈난의 아름다운 풍경과 흥겨운 OST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중국영화, #코미디, #드라마, #팽욱창
-
-
- 영화 <웡카> 메인 예고편
달콤함 2024%? 올 겨울을 스윗하게 만들 [웡카] 메인 예고편 공개?
-
- 영화 <베테랑2> 메인 예고편
리얼 액션으로 꽉 채운 [베테랑2]🔥 (두) 찐-하고 강렬한 메인 예고편 공개 (둥)
-
- 죽음이 열어젖힌 가능성의 세계
<룸 넥스트 도어>는 죽음 앞에서 무력한 인간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주체적인 인간을 그린다. 마사는 죽기 적당한 때를 선택하고 죽기 편안한 장소를 물색한다. 마사의 몸은 오랜 항암 치료로 이미 전장이 되어버렸다. 심장이 뛰는 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암세포와 싸워야 하는데, 남은 날들을 끔찍한 고통 속에서 보내며 자기 자신을 잃어가느니 조금이라도 온전한 모습으로 존엄하게 떠나고 싶다.
죽음이 열어낸 가능성
죽음은 닫혔던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첫째는 옛 친구 잉그리드와의 재회가 그렇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젊은 날 같은 잡지사에서 일했지만 각자 종군 기자로, 작가로 바쁘게 살아오느라 소식이 끊겼다. 마사의 투병 소식은 둘을 재회하게 만들었고, 생각지 못했던 만남은 마사의 마지막 여정에 잉그리드가 동행하도록 이끈다. 또 한 가지는 남보다 못한 관계로 지내왔던 딸 미셸과의 관계다. 미셸은 아버지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방황했다. 마사는 이에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줄 수 없었고, 종군 기자로 전쟁터를 돌아다니느라 모녀 사이의 골은 더 깊어졌다. 마사의 죽음을 앞두고도 냉담했던 모녀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사의 죽음 이후에 비로소 화해의 가능성을 품게 된다.
마사에서 잉그리드, 미셸로 이어지는 관계의 대물림은 흥미롭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과거에도 같은 연인을 공유한 바 있다. 마사의 연인이었던 데이미언이 이후 잉그리드와도 연인이 됐던 것이다. 이번에도 마사는 물려주는 쪽이고, 잉그리드는 물려받는 쪽이다. 잉그리드는 마사가 죽은 후 나타난 딸 미셸과의 하룻밤을 마사의 유산이라 여긴다. 잉그리드는 친구를 똑같이 닮은 딸을 통해 친구를 느낀다. 단절되었던 세 여자가 마사의 죽음으로 인해 순차적으로 연결되고, 삶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우정의 연대는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품는다.
여성의 방식으로 전쟁을 다시 전유하기
처음 마사가 잉그리드를 집에 초대하며 대접한 것은 식탁 가득한 과일과 허브차였다. 마지막 여정을 보냈던 뉴욕 근교의 집에서도 식탁 위에는 늘 과일이 놓여있었으며, 그들은 저녁 식사로 삶은 당근을 씹어 먹었다. 캐럴 제이 애덤스의 <육식의 성정치>에 따르면 1차 대전 이후 많은 여성 저술가들이 전쟁과 육식의 상관관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쟁의 무분별한 학살은 불필요한 고통을 멈춰야 한다는 통찰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동물 사냥에 대한 인식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자연 식물식, 숲으로 둘러싸인 멋진 집의 무성한 초록, 호퍼의 그림, 그리고 고요한 아침의 새소리에 귀 기울이는 두 여자의 시간에는 생기와 생명력이 가득하다. 이는 마사가 한 평생 익숙해져야 했던 전쟁과 살육, 죽음의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다.
전쟁은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여성 종군기자는 드물었기에 마사는 남성적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만 했다. 전쟁터를 떠돌던 날들은 딸 미셸과의 관계를 단절시켰고, 연인들과의 관계 역시 전쟁의 공포를 잊을 아드레날린일 뿐이었다. 미셸의 아버지 프레드 역시 베트남 전쟁의 트라우마로 망가지면서 마사를 떠났다. 전쟁터는 마사와 타인을 단절시키는 동시에, 사랑과 애착을 갈망하게 만들었다. 마사는 딱 한 번 세상에 내어놓지 않은 허구의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이라크 전쟁에서 끝까지 남은 수사들을 취재한 후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쓴 것이었다. 또한 서점에서 읽고 싶었던 책 ‘성애적 부랑죄’ 를 발견하지만 죽기 전에 다 읽지 못할 거라며 내려놓았다. 전쟁은 마사의 삶에 줄곧 들러붙어 있었고, 그것이 불러일으킨 죽음과 사랑의 대치된 이미지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러므로 마사는 자신의 죽음 또한 전쟁이라고 선언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싸우겠다고 선언한다. 마사의 방식은 죽음을 실행하기 전까지 옆방에 머물러 줄 ‘동행’과 함께 하는 것이다. 바람이 통하고 친구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살짝 열어 둔 문, 사랑에 대한 열망, 그리고 어떠한 살육도 없는 식탁은 폭력과 단절로 상징되는 기존 남성적 전쟁의 세계를 거부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전쟁을 전유하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마사가 죽은 후에도 마사의 방 문은 여전히 열려 있으며, 죽음 안쪽으로 열려있는 문은 죽음을 삶으로부터 단절시키지 않는다.
소설가인 잉그리드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쪽이다. 마사로부터 미셸을 물려받으며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마사의 전쟁 수첩 또한 잉그리드에게 넘어가며 다시 태어날 것이다. 어둠을 선택함으로써 빛은 선명히 새어들어오고, 소멸이 예정된 마사의 몸은 세상을 향해 더욱더 활짝 열렸다. 닫힐 것 같았던 문은 닫히지 않았고, 죽음은 의외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며 순환을 예고하는듯하다.
-
- 영화 <우리들>, 우리들이 살아남은 역학관계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사회생활이란 말은 직장생활부터를 뜻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미 사회생활에서만큼은 초짜가 아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대학교(동아리, 군대 등 포함)를 지나 그리고 직장으로 발을 들여놓기 때문이다. 물론 경험이 많다고 능숙하다는 건 아니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 사춘기니까 예민할 수 있지 정도가 변두리에 있는 어른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영화 <우리들>을 보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의 지난 '사회생활'이 떠올랐다. 친구들이 생각보다 잔인하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우리들은 약점이나 빈틈을 마구잡이로 헤집을 수 있었다. 딱히 어른처럼 지켜야 할 선이나 체면이 명확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뭐든지 금방 습득했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구들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넌 키가 작잖아'하면서 놀리는 말에 할 말이 떨어진 친구가 "넌 아빠 없잖아, 아빠 없는 애잖아"라는 말을 하면서 승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아니지. 그건 아니었다. 아빠가 있고 없는 게 자랑하거나 폄하받을 일인가. 그 말을 듣고 일그러진 얼굴이 머리채를 잡으면서 제대로 몸싸움이 시작됐다. 그때, 처음 사람이 무서웠다.
알지 알지 저 표정
<우리들>에 나온 친구들을 보면 어디서 다 많이 본 광경이다. 무리를 짓고, 이간질을 하고, 약점을 공유한다. 친구와 친하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영화에서 승자를 굳이 가리자면 보라 하나다. 선과 지아를 패처럼 들었다 놨다 한다. 보라는 1등을 놓치면서 약간의 데미지는 입었을지언정 여전히 교실의 중심이다. 아이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입맛에 맞게 떠들고 다니면서 선은 거지로, 지아는 도둑으로 추락시켰다. 보라의 코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겐 나지도 않는 퀘퀘한 냄새를 맡는다. 주변에 시녀처럼 떠받드는 친구들이 맞장구를 친다.
선과 지아는 뭔가 잘못된 줄 알면서도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전학생인 지아가 선이와 절친이 되었다. 심지어 지아는 선이네 집에서 꽤 오래 먹고 자고 했다. 지아가 개학날 냉담할 줄 선이는 몰랐겠지만 관객들은 예감했을 것이다. 보라와 팔짱을 끼고 가는 그 순간부터. 친구 사이란 게 때론 연인 사이보다 무섭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 보라와 같이 다니는 게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지금에 둘에겐 중요한 문제다. 보라의 눈밖에 나는 건 왕따가 되는 지름길이니까. 왕따를 당해봤기 때문에 둘도 어쩔 수 없이 침묵하거나 동조한 순간이 있으리란 건 짐작할 수 있다. 혼자가 되는 건 말도 안 되는 비아냥거림마저 도움 없이 견뎌야 하는 괴로운 일이다. 그게 싫어서 견디게 된다. 조금 치사하고 찜찜하더라도 보라가 원하는 대로 맞췄던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의무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학교는 우리에겐 정글과 다를 게 없다. 인싸와 아싸, 순화하면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누군가는 관심의 중심에 있고 싶어 하고 그 사이에 자리를 잡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사이좋게 친하게 지내라고 말하기보다 온전히 살아남으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몸싸움은 나면 차라리 티라도 나지만 그 외의 것들은 선생님에게 말씀드리기도 어렵다. 선생님마저도 소외된 학생이 없도록 교실을 이끌기 힘들다. 교실은 결국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다.
물론 학교 밖이라고 전혀 상관없는 건 아니다. 경제적인 상황이 친구를 제약하기도 한다. 어떤 부모님들은 급이 맞는 친구들과 지내라고 아이들에게 조언을 한다. 어떤 아이들은 "너희 집은 전세야, 자가야?" 같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물어본다. 지아에게 선은 조금은 같이 다니기 쪽팔린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좁은 집에 에어콘도 없고, 핸드폰도 없고 학원을 다니기는커녕 색연필을 사거나 같이 놀기에도 돈을 걱정하는 친구였다. 집이 부유하지 않은 것도 약점이 된다.
나 역시 초등학교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가지 않았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가지 않았다. 물론 우리 집에서 생일파티를 하거나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 우리 집과 비교 대상을 머리에 남기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멋모르고 친구네 생일파티에 한 번 갔더니 불편했다. 주택인 우리 집과 달리 아파트였다. 그네가 있는 놀이터, 소파가 있는 넓은 거실, 내 방이 있는 친구들의 집. 생일이라고 맛있는 과자며, 치킨과 피자를 시켜놓고 친구들을 불러 선물을 나눠갖는 모습에 이질감이 들었다. 배배 꼬였는지 몰라도 자랑처럼 느껴졌다. 친구 자랑, 집 자랑. 나에게는 없는 것. 내가 부모님에게 요구할 수 없는 것. 게다가 생일에 초대받는다고 꼭 절친하다는 의미도 아니고. 학교에서만 친하게 지내도 되는 건 아닌가 싶고.
지금은 돌직구를 툭툭 던지곤 하지만 영화 속 선이와 초등학교 때 내가 무척 비슷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하면서 할 말은 못 하고 나중에 집에 와서 받아치지 못한 게 바보 같았다. 학교에서의 힘은 단순하다. 친구가 많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재밌거나, 예쁘고 잘생겨서 인기 있거나. 시험에서 1등을 놓친 보라가 지아가 받는 박수와 칭찬에 아쉬워하며 혼자 우는 걸 보니 그랬다. 교실엔 수많은 학생이 있지만 1-2등 사이는 경마 시합처럼 경쟁을 부추긴다. 친구가 많고 매력이 넘치는 친구들이 내심 부러웠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가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못을 박고 가면 눈물을 참느라고 고생했다. 속상하고 억울하면 눈물부터 차올랐던 건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더 속상했다. 화장실에 있던 낙서, 냉랭한 걸 넘어 심지어 역겨워하는 듯한 표정. 재수가 없다거나 말이 많다거나 표정이 이상하다거나? 이유가 뭐가 됐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상처는 받겠지만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는 거다. 내 탓만 할 필요는 없다. 특히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세상에 그런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 때문에 한 번 쓸쓸함을 느끼고 나면 쓸쓸해 보이는 사람이 저절로 눈에 들어오게 된다. 선이 자신에게 까칠하게 구는 지아가 계속 눈에 들어온 건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혼자 뻘쭘해하거나 겉돌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그 모습을 보면 확신이 생긴다. 왕따를 당하는 이유가 있다고들 하지만 완전히 동의할 수만은 없다. 이유 없는 왕따도 분명히 있으니까.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자기 자신을 과시하고 다니는 사람 말고 아무런 잘못 없이도 왕따를 겪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혼자라서 만만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남보기에는 평범하고 내가 겪기엔 다사다난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제자의 의도와는 관계없는 순도 100% 진심을 담은 글을 제출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글짓기 대회에서 '파'가 생기는 걸 조심하자고 썼다. 여러 명이 몰려다니는 친구들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대표가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을 따서 '00파'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는 파를 이끌거나, 파에 속하거나,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은 주변인이 되거나 셋 중에 하나다. 파끼리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파에서 주도권을 가진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대체로 소외된 친구)을 괴롭힐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하는 글이었다. 상도 타지 못했고 어떤 선생님이 그 글을 읽고 흥미로웠다고 얘기를 눈앞에서 듣고선 민망함에 도망쳤다. 머릿속을 그대로 보여준 기분이었다.
10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내 생각은 비슷하다. 몸싸움만이 폭력이 아니고 눈에 잘 띄지 않은 말이나 행동 역시 폭력이다.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조직폭력배같이 00 파라고 설명했던 점. '또래집단 간의 역학관계'로 바꿔서 말했으면 좀 전문성이 있었을까. 역학관계가 불균형해졌을 때 폭력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니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애초에 학교폭력 예방에 선생님들이 기대하던 답이 무엇이었을까?
초등학교가 끝날 무렵 나에게도 희한한 일이 생겼다. 5-6명과 함께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밝고 친구도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모임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더라. 좋으니 논의해보고 얘기해달라고 답했다. 그런 제안을 받은 게 신기했다. 같이 다니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논의 결과를 듣자 하니 한 사람이 반대해서 아쉽지만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거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나고 나니 궁금했다. 들어오라고 제안을 한 친구나, 반대를 한 친구나 무슨 의미로 그랬을까 하고. 아쉽지 않았다. 어쩌면 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평가 내리진 않았을까 그런 상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마음에 안 든다든지, 같이 다니면 불편하다든지 등의 이유로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생각하던 친구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윤 눈두덩이에 멍 발견)
"윤아, 너 왜 계속 연호랑 놀아."
"응?"
"아니, 연호가 계속 너 다치게 하잖아. 맨날 상처 내고 때리고, 장난도 너무 심하고."
"이번에 나도 같이 때렸는데."
"그래?"
"응, 연호가 나 때려서 나도 쫓아가서 연호(머리) 확 때렸어"
"그래서?"
"그래서? 연호가 일어나면서 여기를(눈)을 확 때렸어"
"그래서?"
"그래서 같이 놀았어."
"... 놀았다고?"
"어, 보물찾기 하러 나갔는데."
"야, 이 윤, 너 바보야? 그러고 같이 놀면 어떻게 해?"
"그럼 어떡해?"
"다시 때렸어야지"
"또?"
"그래. 걔가 다시 때렸다면 또 때렸어야지. "
"... 그럼 언제 놀아?"
"...... 어?"
"연호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호가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영화 <우리들> 중
선의 마음을 돌린 건 이 대화가 유력했다고 본다. 순수하게 서로에게 잘해주고 솔직했던 때와 다르게 지금 지아와 선이의 관계는 상처투성이에 정도를 한참 지나쳤다. 아무리 그래도 건드릴 게 따로 있지, 싸울 때 최대 약점이나 가족은 건드리지 말라는 메뉴얼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아는 보라와 지내려고 왕따인 선을 무시한다. 반면 자신이 소외되니까 선의 아버지가 알콜중독자라며 자극적인 거짓 정보를 털어놓고 왕따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선 역시 이판사판으로 지아가 전에 왕따 당한 경험이 있고 어머니가 영국에 있다며 거짓말한 것들을 떠벌린다. 어른의 입장으로도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사이가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이는 지아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았다. 지아와 함께 들였던 봉숭아 물도, 보라에게 빌려 바른 매니큐어도 다 지워진 손톱에는 봉숭아 물이 아주 약간 남아있다. 딱 그만큼의 마음만큼 지아와 함께 지내고 싶었을 것이다. 분명 둘만 있었을 때는 즐거웠던 시간이었고 이 모든 건 학교에서 보라를 사이에 두고 시작된 것이니까. 나 역시 선이처럼 맞으면 또 때려야 하는 건 물론이고 2-3배는 더 때리자는 주의였는데 윤이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선이는 지아에게 상처받으면서도 여전히 지아를 놓지 않았다. 상처를 받았다고 언제까지 얼마나 돌려줘야 하는 걸까. 그 길로 다른 친구와 놀든지, 아니면 때리는 손을 멈추고 그 친구와 다시 화해하고 놀든지. 윤이에게 배웠다.
선이에게도 선택권이 생겼다. 영화의 마지막. 피구 시합에서 팀을 짜느라 한 사람씩 골라간다. 아, 저 기분 뭔지 알지. 내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라 입이 탄다. 최후의 1인이 되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확인하고야 마니 마지막만 아니었으면 좋겠는 심정. 지아가 바로 그 찌끄레기가 된다. 찌끄레기에겐 사람들이 함부로 대한다. 선을 밟았으니 나가라며 고집을 피우고 아무도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영화 초반 선이 당했던 상황 그대로다. 여태까지 선에게 했던 걸 생각하면 지아가 그 꼴을 당하고 있어도 선이 역시 침묵해도 상관없었다. 선이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입이 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선이는 목소리를 내어서 지아가 선을 밟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살아남은 역학관계에서는 단 한 사람의 목소리가, 단 한 사람이 내 편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꼭 주류에 속하는 게 아니라, 꼭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않아도 된다. 지아 역시 깨달았을 것이다. 가장 내가 보잘것없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준 선이야말로 진짜 친구라는 걸. 고마움이라도 담았는지 두 손 모아 쭈뼛쭈뼛 서있는 지아와 전보단 당당해 보이는 선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의 일은 모른다. 둘이 이 지경까지 온 건 보라 때문이란 걸 깨닫고 보라에게 벗어나려고 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선이 지아를 위해 목소리를 냈을 때처럼 지아가 그렇게 해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선과 지아가 보라를 부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 부러워할 필요가 없단 건 쉽게 알 수 있다. 근처에 있는 친구들은 언제든지 보라를 떠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필요해서 곁에 있는 거니까. 보라보다 더 공부를 잘하고 집안이 넉넉한 친구가 생기면 바로 갈아타고도 남을 것이다. 둘이 그렇다고 보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라가 했던 일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런 사이는 누가 알아서 망가뜨리지 않아도 스스로 끝난다. 세 사람 중 한 사람만 자리를 떠나도 그 사람을 욕을 맛깔나게 하다가 들킨다든지. 어떻게 아냐고? 직접 봤으니까. 그런 싸움은 팝콘이나 먹으면서 지켜보면 된다.
그러니 선이 아버지처럼 "애들이 고민이 뭐가 있어, 학교나 가고 공부나 하면 됐지"하시는 말씀은 참 속상한 이야기다. 공부할 땐 초등학교가 평생을 좌우한다고도 하는데 사회생활은 평생 좌우하지 못하리란 법도 없다. 어떤 학창 시절도 쉽지 않았다. 학교 가고, 공부하고, 친구와 교실에서 지내는 매일이 보이지 않는 힘 사이에서 우리가 비틀거리며 고민하던 시간이었다. 잔인하고도 한편으로는 즐거웠던 시간.
-
- 할리우드를 매료시킨 K-Pop?!
K-Pop 걸그룹 영화 소니에서 제작
할리우드 리포트 Variety지는 지난 8일 (현지 시간) CGI 애니메이션 프로덕션 회사인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사가 K-Pop에 대한 영화를 기획 중이라고 단독 공개했다.
출처 : Variety
<케이팝: 악마 사냥꾼> (원제 - K-Pop: Demon Hunters)은 K-Pop 걸그룹 스타들이 공연 중에 악령을 죽이는 영화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로 오스카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거머쥔 제작사 '소니'에서, 매기 강 감독과 크리스 애펠한스 감독에 의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레고 닌자고 무비>에 크레딧을 올린 매기 강 감독은 영화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그녀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 K-Pop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혔다. 영화는 액션 어드벤처 장르로, 세계적인 걸그룹이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의 삶과 악령을 퇴치하는 비밀 요원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그 과정을 따라간다. 특히 이 영화는 패션, 음식, 스타일 그리고 음악 등 다채로운 미쟝센을 자랑할 예정이다.
매기 강 감독은 "K-Pop 장르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90년대부터 이 장르의 팬으로서, 이번 영화는 K-Pop에 대한, 그리고 그녀의 뿌리에 대한 러브레터이다. 영화는 K-Pop 전반에 대한 모든 걸 망라하며, 평생을 팬으로 살아온 자신이 보고 싶은 걸 담았기에, 전 세계 수백만의 K-Pop 팬들도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길 바란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아이돌 BTS가 빌보드 차트를 수성하고, 그래미 시상식 후보에도 오르는 이 시점에서 이 영화는 K-Pop의 높아진 위상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8년, 세계적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가상의 K-Pop 걸그룹을 선보이며, 한국 아이돌 그룹 '(여자)아이들'의 멤버 소연과 미연이 직접 참여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는데,
과연 이번 영화는 어떤 한국 걸그룹을 모델로 하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화 <미나리>의 한예리 X 작곡가 에밀의 "Rain Song"
개봉일부터 현재까지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영화 <미나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곡 "Rain Song"은 오프닝 장면에서는 악기로만 연주되고, 마지막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가사와 함께 등장한다.
곡의 작곡가이자 작사가인 'Emile Mosseri'는 이 곡이 배우 한예리를 위한 자장가가 되길 바랐다고 말했는데, 한예리는 극 중에서 이 곡을 아들 '데이빗'에게 불러준다.
"가정의 회복을 주제로 한 영화이기에 그들의 고군분투와 사랑을 더 잘 담아내고자 한국인 번역가이자 작사가 '스테파니 홍'과 함께 작업했다."고 말하며, 작곡가 Mosseri는 그가 맨 처음 작업했던 영어 가사의 노래는 정이삭 감독의 추천으로 한예리의 한국어 노래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새로운 날을 만들어가는 '비'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긴 이 곡은 한예리 특유의 유약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통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부터 한예리가 한국에서 부르고, Mosseri 작곡가가 L.A.에서 작업한 "Rain Song"을 함께 들어보도록 하자.
씨네랩 에디터 Cammie.
-
- 8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시사회에서 호평을 받았던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개봉 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전작들에 대한 다양한 오마주와 클래식한 분위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며, 실관람객들의 호평을 이끌고 있습니다.
광복절 연휴를 겨냥해 4편의 신작이 같은 날 개봉했지만, 한국 신작들을 모두 제치고 1위에 오른 작품은
<에이리언: 로물루스>였습니다.
작품은 <에이리언: 커버넌트> 이후 7년 만의 신작으로, ‘에이리언’ 1편과 2편 사이의 시간을 배경으로 합니다. 같은 날 개봉한 <행복의 나라>는 박스오피스 3위로 출발했으며, <파일럿>이 2위를 차지했습니다.
리들리 스콧 제작 · <맨 인 더 다크> 페데 알바레즈 감독의 숨 막히는 서바이벌 스릴러로 돌아오다
줄거리
2142년, 부모 세대가 맞닥뜨렸던 암울한 미래를 피하려는 청년들이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식민지를 떠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버려진 우주 기지 ‘로물루스’에 도착한 이들은 악몽과도 같은 에이리언의 무자비한 공격에 쫓기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그들의 절규를 들을 수 없는 우주 한가운데,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데... 폐쇄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압도적인 공포를 느껴라!
로맨스 영화로 돌아오는 김고은 <대도시의 사랑법>
김고은과 노상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 최근 공식 1차 포스터와 예고편을 공개했습니다.
이 영화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재희와 세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데 익숙한 흥수가 함께 살아가며 펼치는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다룹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으며, 오는 10월 2일 극장에서 개봉을 확정 지으며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 신작 <어쩔 수가 없다> 8월 17일 크랭크인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오는 17일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한다고 12일 발표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성공적인 삶을 살던 회사원 유만수가 갑작스러운 해고 이후 가족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을 준비하며 겪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병헌과 손예진에 이어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유언석 등이 캐스팅되며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8월 23일 공개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스틸 이미지가 공개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한여름, 수상한 손님의 등장으로 평온한 일상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김윤석, 윤계상, 고민시, 이정은이 주연을 맡았으며, <부부의 세계>의 모완일 PD가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
- 3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다들 주말 잘 보내셨나요?
오늘은 3월의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를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씨네픽과 함께 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콘텐츠'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
.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문폴> (NEW)
▶ 3월 16일 개봉한 <문폴>은 개봉하자마자 1위에 올라섰는데요. <투모로우>, <2012>의 감독인 롤랜드 에머리히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또한 NASA가 합류하면서 더 완성도 높은 SF 영화가 제작된 것 같습니다.
주말 동안 (3월 18일~20일) 관객 수 10만 163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3만 673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다음 주 개봉예정작인 '뜨거운 피'가 예매율이 높아 '문폴'이 1위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 줄거리
궤도를 이탈한 달이 지구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지구의 중력과 모든 물리적인 법칙이 붕괴된다. 거대한 해일과 지진, 화산 폭발, 쓰나미와 이상기후까지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모든 재난으로 전 세계는 공포와 혼란에 빠진다. 달과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단 30일. NASA 연구원 ‘파울러’(할리 베리), 전직 우주 비행사 ‘브라이언’(패트릭 윌슨), 그리고 우주 덕후 ‘KC’(존 브래들리)는 달을 막을 방법을 찾기 위해 마지막 우주선에 오른다. 인류 멸망 D-30일, 추락하는 달을 반드시 멈춰야 한다
2.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1)
▶ <문폴>이 개봉하면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한 단계 낮아진 2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주말 동안 (3월 18일~20일) 관객 수 9만 383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8만 6300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이번 주에는 2위 혹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3위를 차지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TOP5 안에 유일한 한국 영화인데 계속 순위권을 유지하길 바랍니다.
3. <더 배트맨> (▼1)
▶ <더 배트맨>의 주말 관객 수는 3월 2주차보다 약 2분의 1가량 줄어들면서 3위로 하락하였습니다. 개봉 3주차 동안 순위권에 있는 영화입니다.
주말 동안 (3월 18일~20일) 관객 수 5만 5513명을 동원됐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82만 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이번 주에도 여전히 순위권을 유지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 씨네픽의 이번 주 92회 예측 이벤트는 3월 3주 차 박스오피스(순위) 예측입니다. 한 주동안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는데요.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3월 3주 차 박스오피스 순위의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
정답자 비율
▶ 한 주동안 많은 씨네픽 유저분들이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주셨는데요. 박스오피스 1위 순위를 가장 많은 분들이 맞혀주셨고,
그 다음으로 3위, 2위 순으로 많이 맞춰주셨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 93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 <스펜서> (NEW)
▶ 3월 16일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개봉한 <스펜서>는 4위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예상보다는 낮은 성적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개봉한지 1주일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성적이 어떻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3월 18일~20일) 관객 수 2만 764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4만 3309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
왕비가 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찾기로 결심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새로운 이야기
5. <극장판 주술회전0> (▼2)
▶ <극장판 주술회전0> 마지막 5위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약 4주간 순위권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주 개봉작인 '뜨거운 피'로 인해 5위권 밖으로 밀려갈 것으로 예상해봅니다.
주말 동안 (3월 18일~20일) 관객 수 2만 1059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48만 3515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3주 연속 <더 배트맨>이 차지했습니다.
주말 동안(18일~20일) 북미 기준 주말 매출액 $36,800,000 (한화 약 447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누적 매출액은 $300,091,000 (한화 약 3647억)를 달성했습니다.
<Jujutsu Kaisen 0: The Movie>와 <X>가 등장하면서 순위에 변동이 생겼습니다. <Uncharted>는 2위에서 3위로 떨어졌고,
<Dog>는 3위에서 5위로 떨어졌습니다. <Spider-man: No Way Home>과 <Death on the Nile>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3월 18일 ~ 2022년 3월 20일)
1. <더 배트맨> 3680만 달러 (누적 3억 달러)
2. <극장판 주술회전0> 1481만 달러 (누적 1억 7698만 달러)
3. <언차티드> 800만 달러 (누적 1억 2589만 달러)
4. <X> 440만 달러 (누적 440만 달러)
5. <도그> 409만 달러 (누적 5422만 달러)
.
.
.
씨네픽의 3월 셋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3월 넷째 주도 매일 행복하고 안전한 하루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
- 남과 북의 실감나는 모가디슈 탈출기
어두컴컴한 방의 테이블에 막 준비한 음식들이 보인다. 테이블에는 컵라면과 밥, 김치, 통조림 같은 간단한 음식뿐이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다. 남한 사람들이 먼저 음식을 먹기 시작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선뜻 그 음식을 먹지 못한다. 남한 쪽 사람 중 한 명이 밥을 바꿔 먹는 걸 본 이후, 그제야 북한 사람들은 숟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독이라도 있을까 봐 먹지 못했던 북한 사람들은 의심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까지 적국인 남한을 신뢰하지 못한다. 과거, 현재 등 어떤 시기에도 이에 대한 태도는 남과 북 모두 똑같다.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 장면은 영화 <모가디슈>의 중반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 발생한 내전으로 생사를 걸고 탈출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당시 UN에 가입하기 위해 회원국인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 외교전을 벌이고 있었던 남한과 북한은 소말리아에서도 소말리아 정부의 지지를 받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때 남한과 북한 사람들의 거리감은 영화 중반에 그들이 밥을 먹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서로 같은 언어를 쓰고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 완전히 믿지 못하는 모습은 배고픔 앞에서도 상대방을 의심한다. 영화는 그 당시 남과 북의 거리감과 불신, 경쟁관계를 여러 에피소드로 일관되게 표현하고 있다.
1991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탈출기를 그린 영화
영화의 초반에는 한국 대사관 사람들의 외교전을 긴박하게 그린다. 한신성 대사(김윤석)를 중심으로 안기부 출신 강대진 참사관(조인성), 서기관 공수철(정만식)은 소말리아 대통령과 고위급 인사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선물을 소말리아 무장단체에 뺏기거나 북한 림용수 대사(허준호) 일행에게 선수를 빼앗기기도 한다. 소말리아의 고위급 인사들과 미팅을 하는 모습을 통해 소말리아의 정치적인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주요 권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말리아의 상황은 반대 세력들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결국 힘을 키운 반군은 소말리아에서 긴 분쟁을 시작한다.
<모가디슈>의 이야기는 사실 한 줄로 간단히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급작스럽게 내전이 발생한 소말리아를 탈출하는 것이 바로 그 내용이다. 실제 있었던 상황을 영화적으로 각색했는데, 여러 상황이나 인물 구도를 복잡하게 가져가지 않음으로써 영화적인 긴장감과 속도감을 잃지 않았다. 남과 북의 대립과 각각에 속한 인물들의 생각도 복잡하게 꼬아놓지 않고, 단순히 탈출에만 집중한다. 사실 한신성 대사와 림용수 대사의 관계를 조금 더 감정적으로 가져가거나 아니면 서로 완전히 믿지 못하는 존재로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두 인물은 탈출에만 집중하며 그 사이에는 어느 정도 상대방을 신뢰한다. 또한 감정적으로 가까워지기보다는 딱 서로에게 필요한 만큼 동료 정도로 묘사된다.
영화에서 가장 적대적으로 부딪히는 인물은 강대진 참사관과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이다. 각각의 정보부 역할을 하는 그들은 마치 남한과 북한의 군대로서 대리전을 펼치듯 격렬하게 부딪힌다. 두 대사가 외교적인 차원으로 서로에게 접근한다면, 두 참사관은 좀 더 적대적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실제로 격투까지 벌이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등, 이 둘이 부딪힐 때 영화의 긴장은 높아진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두 인물은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런 두 인물의 관계가 오히려 더 영화의 현실감을 높인다.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은 내전 발생 후 한국과 북한 대사관의 각기 상황이 나오고, 대사관을 습격받은 북한 사람들이 한국 대사관으로 오면서 모든 인물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 후 각 대사와 참사관은 자신의 국가와 수교 관계에 있는 나라의 대사관에 각각 나뉘어서 방문하게 되고 다시 한국 대사관에 모여 모든 인물이 한 번에 탈출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는 맨 마지막에 다시 남한과 북한이 각자의 길을 간다. 마치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긴장관계에 있다 다시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였다가 또다시 긴장관계에 처하는 것처럼 영화에서 남한과 북한 사람들은 두 갈래에서 한 갈래, 다시 두 갈래로 나뉘는 것을 반복한다. 이는 카체이싱 장면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북한 대사가 다른 길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장면이 대표적일 것이다.
영화는 남과 북의 사람들을 어떤 편견도 없이 그린다. 어디가 더 잘 살고 어디가 더 맞는 체제라는 정치적인 관점은 철저히 배제하는데, 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같은 밥과 반찬을 먹는 것처럼 그들은 그 상황에서 만큼은 똑같이 탈출만을 바라보고 있다. 같은 의미에서 마지막 자동차를 이용한 탈출 장면에서도 남과 북의 사람들은 소속 국가와 상관없이 섞여 타서 탈출하게 된다. 또한 영화에서 그들 간의 교류는 크지 않지만 중반부터 만들어져 지속되는 그들 간의 서로에 대한 신뢰는 영화 끝까지 깨지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가 된다.
높은 완성도로 만들어진 카체이싱으로 느껴지는 영화의 긴장감
영화는 다른 국가의 반응이나 남한과 북한 내부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온전히 모가디슈에서 두 대사관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집중한다. 그래서 영화 속 인물들처럼 관객들도 같이 도시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들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내부의 인물과 상황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외부에서의 도움을 기대하기보다 주요 인물들이 어떤 방법으로 탈출을 할 수 있을지에 보다 포커스를 두고 영화를 보게 만든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병렬적으로 이 얘기, 저 얘기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직선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끝까지 영화의 힘을 잃지 않는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후반부 카체이싱 장면이다. 차량 4대에 책이나 모래주머니 등을 총알을 최대한 막아내기 위해 설치하고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가는 과정을 담은 장면은 무척 박진감이 넘친다. 카메라가 차량 4대를 통과하면서 앞뒤의 상황과 차에 탄 사람들의 표정을 보여주면서 그 상황을 다채롭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상황의 긴장감까지 디테일하게 전달한다.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4대의 차량이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가면서 서로 여러 번 부딪치고, 총알을 받아내는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남한과 북한의 대사를 연기한 김윤석 배우와 허준호 배우의 연기도 좋지만 특히나 참사관을 연기한 조인성 배우와 구교환 배우의 연기가 특히 좋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지만 서로를 믿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각자의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는 두 인물은 두 배우가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적인 연기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영화 중반 두 배우가 서로 대립하며 아주 치열하게 격투를 벌이는 모습은 이제 막 만들어진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깨져버릴까 더욱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약간은 어리바리하게 나오는 서기관을 연기하는 정만식 배우나, 대사 부인을 연기한 김소진 배우의 연기도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들었다.
영화 전체를 아프리카에서 모두 촬영한 류승완 감독은 <베를린>의 로케이션 촬영을 경험을 통해 성공적인 로케이션 촬영을 이끌었고, <군함도>의 실패로 실화에서 올 수 있는 정치적 논쟁들을 어느 정도 비껴간 연출로 관객들이 영화의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냈다. 마치 1990년대 그 당시에 방문한 듯한 아프리카 현지의 모습과 여러 가지 다양한 차량들도 영화의 사실감을 높인다. 무엇보다 영화는 감성적인 신파로 흐르지 않고 그들이 탈출을 완성하는 것에만 오롯이 관심이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바로 떠오르는 영화는 비슷한 탈출 영화인 <아르고>다. 배우 벤 에플렉이 연출한 <아르고>도 훌륭한 탈출극이었지만, 영화의 긴장감과 현실성에서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또한 총기 액션의 타격감도 살아있어 전쟁영화의 분위기도 꽤 많이 포함되어 있다.
-
- 커피 오어 티 영화 후기 / 중국영화 맞아?! / 대만 로코인줄 ㅎㅎ / “스물” 느낌의 유쾌한 코믹 드라마
영화직관하는남자 영직남의 "커피 오어 티"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과 함께 윈난의 아름다운 풍경과 흥겨운 OST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중국영화, #코미디, #드라마, #팽욱창
-
-
- 영화 <웡카> 메인 예고편
달콤함 2024%? 올 겨울을 스윗하게 만들 [웡카] 메인 예고편 공개?
-
- 영화 <베테랑2> 메인 예고편
리얼 액션으로 꽉 채운 [베테랑2]🔥 (두) 찐-하고 강렬한 메인 예고편 공개 (둥)
-
- 죽음이 열어젖힌 가능성의 세계
<룸 넥스트 도어>는 죽음 앞에서 무력한 인간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주체적인 인간을 그린다. 마사는 죽기 적당한 때를 선택하고 죽기 편안한 장소를 물색한다. 마사의 몸은 오랜 항암 치료로 이미 전장이 되어버렸다. 심장이 뛰는 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암세포와 싸워야 하는데, 남은 날들을 끔찍한 고통 속에서 보내며 자기 자신을 잃어가느니 조금이라도 온전한 모습으로 존엄하게 떠나고 싶다.
죽음이 열어낸 가능성
죽음은 닫혔던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첫째는 옛 친구 잉그리드와의 재회가 그렇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젊은 날 같은 잡지사에서 일했지만 각자 종군 기자로, 작가로 바쁘게 살아오느라 소식이 끊겼다. 마사의 투병 소식은 둘을 재회하게 만들었고, 생각지 못했던 만남은 마사의 마지막 여정에 잉그리드가 동행하도록 이끈다. 또 한 가지는 남보다 못한 관계로 지내왔던 딸 미셸과의 관계다. 미셸은 아버지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방황했다. 마사는 이에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줄 수 없었고, 종군 기자로 전쟁터를 돌아다니느라 모녀 사이의 골은 더 깊어졌다. 마사의 죽음을 앞두고도 냉담했던 모녀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사의 죽음 이후에 비로소 화해의 가능성을 품게 된다.
마사에서 잉그리드, 미셸로 이어지는 관계의 대물림은 흥미롭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과거에도 같은 연인을 공유한 바 있다. 마사의 연인이었던 데이미언이 이후 잉그리드와도 연인이 됐던 것이다. 이번에도 마사는 물려주는 쪽이고, 잉그리드는 물려받는 쪽이다. 잉그리드는 마사가 죽은 후 나타난 딸 미셸과의 하룻밤을 마사의 유산이라 여긴다. 잉그리드는 친구를 똑같이 닮은 딸을 통해 친구를 느낀다. 단절되었던 세 여자가 마사의 죽음으로 인해 순차적으로 연결되고, 삶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우정의 연대는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품는다.
여성의 방식으로 전쟁을 다시 전유하기
처음 마사가 잉그리드를 집에 초대하며 대접한 것은 식탁 가득한 과일과 허브차였다. 마지막 여정을 보냈던 뉴욕 근교의 집에서도 식탁 위에는 늘 과일이 놓여있었으며, 그들은 저녁 식사로 삶은 당근을 씹어 먹었다. 캐럴 제이 애덤스의 <육식의 성정치>에 따르면 1차 대전 이후 많은 여성 저술가들이 전쟁과 육식의 상관관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쟁의 무분별한 학살은 불필요한 고통을 멈춰야 한다는 통찰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동물 사냥에 대한 인식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자연 식물식, 숲으로 둘러싸인 멋진 집의 무성한 초록, 호퍼의 그림, 그리고 고요한 아침의 새소리에 귀 기울이는 두 여자의 시간에는 생기와 생명력이 가득하다. 이는 마사가 한 평생 익숙해져야 했던 전쟁과 살육, 죽음의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다.
전쟁은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여성 종군기자는 드물었기에 마사는 남성적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만 했다. 전쟁터를 떠돌던 날들은 딸 미셸과의 관계를 단절시켰고, 연인들과의 관계 역시 전쟁의 공포를 잊을 아드레날린일 뿐이었다. 미셸의 아버지 프레드 역시 베트남 전쟁의 트라우마로 망가지면서 마사를 떠났다. 전쟁터는 마사와 타인을 단절시키는 동시에, 사랑과 애착을 갈망하게 만들었다. 마사는 딱 한 번 세상에 내어놓지 않은 허구의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이라크 전쟁에서 끝까지 남은 수사들을 취재한 후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쓴 것이었다. 또한 서점에서 읽고 싶었던 책 ‘성애적 부랑죄’ 를 발견하지만 죽기 전에 다 읽지 못할 거라며 내려놓았다. 전쟁은 마사의 삶에 줄곧 들러붙어 있었고, 그것이 불러일으킨 죽음과 사랑의 대치된 이미지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러므로 마사는 자신의 죽음 또한 전쟁이라고 선언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싸우겠다고 선언한다. 마사의 방식은 죽음을 실행하기 전까지 옆방에 머물러 줄 ‘동행’과 함께 하는 것이다. 바람이 통하고 친구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살짝 열어 둔 문, 사랑에 대한 열망, 그리고 어떠한 살육도 없는 식탁은 폭력과 단절로 상징되는 기존 남성적 전쟁의 세계를 거부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전쟁을 전유하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마사가 죽은 후에도 마사의 방 문은 여전히 열려 있으며, 죽음 안쪽으로 열려있는 문은 죽음을 삶으로부터 단절시키지 않는다.
소설가인 잉그리드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쪽이다. 마사로부터 미셸을 물려받으며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마사의 전쟁 수첩 또한 잉그리드에게 넘어가며 다시 태어날 것이다. 어둠을 선택함으로써 빛은 선명히 새어들어오고, 소멸이 예정된 마사의 몸은 세상을 향해 더욱더 활짝 열렸다. 닫힐 것 같았던 문은 닫히지 않았고, 죽음은 의외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며 순환을 예고하는듯하다.
-
- 영화 <우리들>, 우리들이 살아남은 역학관계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사회생활이란 말은 직장생활부터를 뜻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미 사회생활에서만큼은 초짜가 아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대학교(동아리, 군대 등 포함)를 지나 그리고 직장으로 발을 들여놓기 때문이다. 물론 경험이 많다고 능숙하다는 건 아니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 사춘기니까 예민할 수 있지 정도가 변두리에 있는 어른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영화 <우리들>을 보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의 지난 '사회생활'이 떠올랐다. 친구들이 생각보다 잔인하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우리들은 약점이나 빈틈을 마구잡이로 헤집을 수 있었다. 딱히 어른처럼 지켜야 할 선이나 체면이 명확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뭐든지 금방 습득했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구들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넌 키가 작잖아'하면서 놀리는 말에 할 말이 떨어진 친구가 "넌 아빠 없잖아, 아빠 없는 애잖아"라는 말을 하면서 승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아니지. 그건 아니었다. 아빠가 있고 없는 게 자랑하거나 폄하받을 일인가. 그 말을 듣고 일그러진 얼굴이 머리채를 잡으면서 제대로 몸싸움이 시작됐다. 그때, 처음 사람이 무서웠다.
알지 알지 저 표정
<우리들>에 나온 친구들을 보면 어디서 다 많이 본 광경이다. 무리를 짓고, 이간질을 하고, 약점을 공유한다. 친구와 친하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영화에서 승자를 굳이 가리자면 보라 하나다. 선과 지아를 패처럼 들었다 놨다 한다. 보라는 1등을 놓치면서 약간의 데미지는 입었을지언정 여전히 교실의 중심이다. 아이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입맛에 맞게 떠들고 다니면서 선은 거지로, 지아는 도둑으로 추락시켰다. 보라의 코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겐 나지도 않는 퀘퀘한 냄새를 맡는다. 주변에 시녀처럼 떠받드는 친구들이 맞장구를 친다.
선과 지아는 뭔가 잘못된 줄 알면서도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전학생인 지아가 선이와 절친이 되었다. 심지어 지아는 선이네 집에서 꽤 오래 먹고 자고 했다. 지아가 개학날 냉담할 줄 선이는 몰랐겠지만 관객들은 예감했을 것이다. 보라와 팔짱을 끼고 가는 그 순간부터. 친구 사이란 게 때론 연인 사이보다 무섭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 보라와 같이 다니는 게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지금에 둘에겐 중요한 문제다. 보라의 눈밖에 나는 건 왕따가 되는 지름길이니까. 왕따를 당해봤기 때문에 둘도 어쩔 수 없이 침묵하거나 동조한 순간이 있으리란 건 짐작할 수 있다. 혼자가 되는 건 말도 안 되는 비아냥거림마저 도움 없이 견뎌야 하는 괴로운 일이다. 그게 싫어서 견디게 된다. 조금 치사하고 찜찜하더라도 보라가 원하는 대로 맞췄던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의무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학교는 우리에겐 정글과 다를 게 없다. 인싸와 아싸, 순화하면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누군가는 관심의 중심에 있고 싶어 하고 그 사이에 자리를 잡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사이좋게 친하게 지내라고 말하기보다 온전히 살아남으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몸싸움은 나면 차라리 티라도 나지만 그 외의 것들은 선생님에게 말씀드리기도 어렵다. 선생님마저도 소외된 학생이 없도록 교실을 이끌기 힘들다. 교실은 결국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다.
물론 학교 밖이라고 전혀 상관없는 건 아니다. 경제적인 상황이 친구를 제약하기도 한다. 어떤 부모님들은 급이 맞는 친구들과 지내라고 아이들에게 조언을 한다. 어떤 아이들은 "너희 집은 전세야, 자가야?" 같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물어본다. 지아에게 선은 조금은 같이 다니기 쪽팔린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좁은 집에 에어콘도 없고, 핸드폰도 없고 학원을 다니기는커녕 색연필을 사거나 같이 놀기에도 돈을 걱정하는 친구였다. 집이 부유하지 않은 것도 약점이 된다.
나 역시 초등학교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가지 않았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가지 않았다. 물론 우리 집에서 생일파티를 하거나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 우리 집과 비교 대상을 머리에 남기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멋모르고 친구네 생일파티에 한 번 갔더니 불편했다. 주택인 우리 집과 달리 아파트였다. 그네가 있는 놀이터, 소파가 있는 넓은 거실, 내 방이 있는 친구들의 집. 생일이라고 맛있는 과자며, 치킨과 피자를 시켜놓고 친구들을 불러 선물을 나눠갖는 모습에 이질감이 들었다. 배배 꼬였는지 몰라도 자랑처럼 느껴졌다. 친구 자랑, 집 자랑. 나에게는 없는 것. 내가 부모님에게 요구할 수 없는 것. 게다가 생일에 초대받는다고 꼭 절친하다는 의미도 아니고. 학교에서만 친하게 지내도 되는 건 아닌가 싶고.
지금은 돌직구를 툭툭 던지곤 하지만 영화 속 선이와 초등학교 때 내가 무척 비슷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하면서 할 말은 못 하고 나중에 집에 와서 받아치지 못한 게 바보 같았다. 학교에서의 힘은 단순하다. 친구가 많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재밌거나, 예쁘고 잘생겨서 인기 있거나. 시험에서 1등을 놓친 보라가 지아가 받는 박수와 칭찬에 아쉬워하며 혼자 우는 걸 보니 그랬다. 교실엔 수많은 학생이 있지만 1-2등 사이는 경마 시합처럼 경쟁을 부추긴다. 친구가 많고 매력이 넘치는 친구들이 내심 부러웠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가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못을 박고 가면 눈물을 참느라고 고생했다. 속상하고 억울하면 눈물부터 차올랐던 건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더 속상했다. 화장실에 있던 낙서, 냉랭한 걸 넘어 심지어 역겨워하는 듯한 표정. 재수가 없다거나 말이 많다거나 표정이 이상하다거나? 이유가 뭐가 됐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상처는 받겠지만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는 거다. 내 탓만 할 필요는 없다. 특히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세상에 그런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 때문에 한 번 쓸쓸함을 느끼고 나면 쓸쓸해 보이는 사람이 저절로 눈에 들어오게 된다. 선이 자신에게 까칠하게 구는 지아가 계속 눈에 들어온 건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혼자 뻘쭘해하거나 겉돌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그 모습을 보면 확신이 생긴다. 왕따를 당하는 이유가 있다고들 하지만 완전히 동의할 수만은 없다. 이유 없는 왕따도 분명히 있으니까.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자기 자신을 과시하고 다니는 사람 말고 아무런 잘못 없이도 왕따를 겪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혼자라서 만만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남보기에는 평범하고 내가 겪기엔 다사다난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제자의 의도와는 관계없는 순도 100% 진심을 담은 글을 제출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글짓기 대회에서 '파'가 생기는 걸 조심하자고 썼다. 여러 명이 몰려다니는 친구들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대표가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을 따서 '00파'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는 파를 이끌거나, 파에 속하거나,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은 주변인이 되거나 셋 중에 하나다. 파끼리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파에서 주도권을 가진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대체로 소외된 친구)을 괴롭힐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하는 글이었다. 상도 타지 못했고 어떤 선생님이 그 글을 읽고 흥미로웠다고 얘기를 눈앞에서 듣고선 민망함에 도망쳤다. 머릿속을 그대로 보여준 기분이었다.
10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내 생각은 비슷하다. 몸싸움만이 폭력이 아니고 눈에 잘 띄지 않은 말이나 행동 역시 폭력이다.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조직폭력배같이 00 파라고 설명했던 점. '또래집단 간의 역학관계'로 바꿔서 말했으면 좀 전문성이 있었을까. 역학관계가 불균형해졌을 때 폭력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니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애초에 학교폭력 예방에 선생님들이 기대하던 답이 무엇이었을까?
초등학교가 끝날 무렵 나에게도 희한한 일이 생겼다. 5-6명과 함께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밝고 친구도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모임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더라. 좋으니 논의해보고 얘기해달라고 답했다. 그런 제안을 받은 게 신기했다. 같이 다니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논의 결과를 듣자 하니 한 사람이 반대해서 아쉽지만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거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나고 나니 궁금했다. 들어오라고 제안을 한 친구나, 반대를 한 친구나 무슨 의미로 그랬을까 하고. 아쉽지 않았다. 어쩌면 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평가 내리진 않았을까 그런 상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마음에 안 든다든지, 같이 다니면 불편하다든지 등의 이유로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생각하던 친구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윤 눈두덩이에 멍 발견)
"윤아, 너 왜 계속 연호랑 놀아."
"응?"
"아니, 연호가 계속 너 다치게 하잖아. 맨날 상처 내고 때리고, 장난도 너무 심하고."
"이번에 나도 같이 때렸는데."
"그래?"
"응, 연호가 나 때려서 나도 쫓아가서 연호(머리) 확 때렸어"
"그래서?"
"그래서? 연호가 일어나면서 여기를(눈)을 확 때렸어"
"그래서?"
"그래서 같이 놀았어."
"... 놀았다고?"
"어, 보물찾기 하러 나갔는데."
"야, 이 윤, 너 바보야? 그러고 같이 놀면 어떻게 해?"
"그럼 어떡해?"
"다시 때렸어야지"
"또?"
"그래. 걔가 다시 때렸다면 또 때렸어야지. "
"... 그럼 언제 놀아?"
"...... 어?"
"연호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호가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영화 <우리들> 중
선의 마음을 돌린 건 이 대화가 유력했다고 본다. 순수하게 서로에게 잘해주고 솔직했던 때와 다르게 지금 지아와 선이의 관계는 상처투성이에 정도를 한참 지나쳤다. 아무리 그래도 건드릴 게 따로 있지, 싸울 때 최대 약점이나 가족은 건드리지 말라는 메뉴얼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아는 보라와 지내려고 왕따인 선을 무시한다. 반면 자신이 소외되니까 선의 아버지가 알콜중독자라며 자극적인 거짓 정보를 털어놓고 왕따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선 역시 이판사판으로 지아가 전에 왕따 당한 경험이 있고 어머니가 영국에 있다며 거짓말한 것들을 떠벌린다. 어른의 입장으로도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사이가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이는 지아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았다. 지아와 함께 들였던 봉숭아 물도, 보라에게 빌려 바른 매니큐어도 다 지워진 손톱에는 봉숭아 물이 아주 약간 남아있다. 딱 그만큼의 마음만큼 지아와 함께 지내고 싶었을 것이다. 분명 둘만 있었을 때는 즐거웠던 시간이었고 이 모든 건 학교에서 보라를 사이에 두고 시작된 것이니까. 나 역시 선이처럼 맞으면 또 때려야 하는 건 물론이고 2-3배는 더 때리자는 주의였는데 윤이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선이는 지아에게 상처받으면서도 여전히 지아를 놓지 않았다. 상처를 받았다고 언제까지 얼마나 돌려줘야 하는 걸까. 그 길로 다른 친구와 놀든지, 아니면 때리는 손을 멈추고 그 친구와 다시 화해하고 놀든지. 윤이에게 배웠다.
선이에게도 선택권이 생겼다. 영화의 마지막. 피구 시합에서 팀을 짜느라 한 사람씩 골라간다. 아, 저 기분 뭔지 알지. 내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라 입이 탄다. 최후의 1인이 되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확인하고야 마니 마지막만 아니었으면 좋겠는 심정. 지아가 바로 그 찌끄레기가 된다. 찌끄레기에겐 사람들이 함부로 대한다. 선을 밟았으니 나가라며 고집을 피우고 아무도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영화 초반 선이 당했던 상황 그대로다. 여태까지 선에게 했던 걸 생각하면 지아가 그 꼴을 당하고 있어도 선이 역시 침묵해도 상관없었다. 선이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입이 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선이는 목소리를 내어서 지아가 선을 밟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살아남은 역학관계에서는 단 한 사람의 목소리가, 단 한 사람이 내 편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꼭 주류에 속하는 게 아니라, 꼭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않아도 된다. 지아 역시 깨달았을 것이다. 가장 내가 보잘것없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준 선이야말로 진짜 친구라는 걸. 고마움이라도 담았는지 두 손 모아 쭈뼛쭈뼛 서있는 지아와 전보단 당당해 보이는 선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의 일은 모른다. 둘이 이 지경까지 온 건 보라 때문이란 걸 깨닫고 보라에게 벗어나려고 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선이 지아를 위해 목소리를 냈을 때처럼 지아가 그렇게 해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선과 지아가 보라를 부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 부러워할 필요가 없단 건 쉽게 알 수 있다. 근처에 있는 친구들은 언제든지 보라를 떠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필요해서 곁에 있는 거니까. 보라보다 더 공부를 잘하고 집안이 넉넉한 친구가 생기면 바로 갈아타고도 남을 것이다. 둘이 그렇다고 보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라가 했던 일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런 사이는 누가 알아서 망가뜨리지 않아도 스스로 끝난다. 세 사람 중 한 사람만 자리를 떠나도 그 사람을 욕을 맛깔나게 하다가 들킨다든지. 어떻게 아냐고? 직접 봤으니까. 그런 싸움은 팝콘이나 먹으면서 지켜보면 된다.
그러니 선이 아버지처럼 "애들이 고민이 뭐가 있어, 학교나 가고 공부나 하면 됐지"하시는 말씀은 참 속상한 이야기다. 공부할 땐 초등학교가 평생을 좌우한다고도 하는데 사회생활은 평생 좌우하지 못하리란 법도 없다. 어떤 학창 시절도 쉽지 않았다. 학교 가고, 공부하고, 친구와 교실에서 지내는 매일이 보이지 않는 힘 사이에서 우리가 비틀거리며 고민하던 시간이었다. 잔인하고도 한편으로는 즐거웠던 시간.
-
- 할리우드를 매료시킨 K-Pop?!
K-Pop 걸그룹 영화 소니에서 제작
할리우드 리포트 Variety지는 지난 8일 (현지 시간) CGI 애니메이션 프로덕션 회사인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사가 K-Pop에 대한 영화를 기획 중이라고 단독 공개했다.
출처 : Variety
<케이팝: 악마 사냥꾼> (원제 - K-Pop: Demon Hunters)은 K-Pop 걸그룹 스타들이 공연 중에 악령을 죽이는 영화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로 오스카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거머쥔 제작사 '소니'에서, 매기 강 감독과 크리스 애펠한스 감독에 의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레고 닌자고 무비>에 크레딧을 올린 매기 강 감독은 영화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그녀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 K-Pop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혔다. 영화는 액션 어드벤처 장르로, 세계적인 걸그룹이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의 삶과 악령을 퇴치하는 비밀 요원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그 과정을 따라간다. 특히 이 영화는 패션, 음식, 스타일 그리고 음악 등 다채로운 미쟝센을 자랑할 예정이다.
매기 강 감독은 "K-Pop 장르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90년대부터 이 장르의 팬으로서, 이번 영화는 K-Pop에 대한, 그리고 그녀의 뿌리에 대한 러브레터이다. 영화는 K-Pop 전반에 대한 모든 걸 망라하며, 평생을 팬으로 살아온 자신이 보고 싶은 걸 담았기에, 전 세계 수백만의 K-Pop 팬들도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길 바란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아이돌 BTS가 빌보드 차트를 수성하고, 그래미 시상식 후보에도 오르는 이 시점에서 이 영화는 K-Pop의 높아진 위상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8년, 세계적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가상의 K-Pop 걸그룹을 선보이며, 한국 아이돌 그룹 '(여자)아이들'의 멤버 소연과 미연이 직접 참여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는데,
과연 이번 영화는 어떤 한국 걸그룹을 모델로 하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화 <미나리>의 한예리 X 작곡가 에밀의 "Rain Song"
개봉일부터 현재까지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영화 <미나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곡 "Rain Song"은 오프닝 장면에서는 악기로만 연주되고, 마지막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가사와 함께 등장한다.
곡의 작곡가이자 작사가인 'Emile Mosseri'는 이 곡이 배우 한예리를 위한 자장가가 되길 바랐다고 말했는데, 한예리는 극 중에서 이 곡을 아들 '데이빗'에게 불러준다.
"가정의 회복을 주제로 한 영화이기에 그들의 고군분투와 사랑을 더 잘 담아내고자 한국인 번역가이자 작사가 '스테파니 홍'과 함께 작업했다."고 말하며, 작곡가 Mosseri는 그가 맨 처음 작업했던 영어 가사의 노래는 정이삭 감독의 추천으로 한예리의 한국어 노래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새로운 날을 만들어가는 '비'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긴 이 곡은 한예리 특유의 유약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통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부터 한예리가 한국에서 부르고, Mosseri 작곡가가 L.A.에서 작업한 "Rain Song"을 함께 들어보도록 하자.
씨네랩 에디터 Cammie.
-
- 8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시사회에서 호평을 받았던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개봉 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전작들에 대한 다양한 오마주와 클래식한 분위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며, 실관람객들의 호평을 이끌고 있습니다.
광복절 연휴를 겨냥해 4편의 신작이 같은 날 개봉했지만, 한국 신작들을 모두 제치고 1위에 오른 작품은
<에이리언: 로물루스>였습니다.
작품은 <에이리언: 커버넌트> 이후 7년 만의 신작으로, ‘에이리언’ 1편과 2편 사이의 시간을 배경으로 합니다. 같은 날 개봉한 <행복의 나라>는 박스오피스 3위로 출발했으며, <파일럿>이 2위를 차지했습니다.
리들리 스콧 제작 · <맨 인 더 다크> 페데 알바레즈 감독의 숨 막히는 서바이벌 스릴러로 돌아오다
줄거리
2142년, 부모 세대가 맞닥뜨렸던 암울한 미래를 피하려는 청년들이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식민지를 떠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버려진 우주 기지 ‘로물루스’에 도착한 이들은 악몽과도 같은 에이리언의 무자비한 공격에 쫓기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그들의 절규를 들을 수 없는 우주 한가운데,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데... 폐쇄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압도적인 공포를 느껴라!
로맨스 영화로 돌아오는 김고은 <대도시의 사랑법>
김고은과 노상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 최근 공식 1차 포스터와 예고편을 공개했습니다.
이 영화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재희와 세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데 익숙한 흥수가 함께 살아가며 펼치는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다룹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으며, 오는 10월 2일 극장에서 개봉을 확정 지으며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 신작 <어쩔 수가 없다> 8월 17일 크랭크인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오는 17일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한다고 12일 발표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성공적인 삶을 살던 회사원 유만수가 갑작스러운 해고 이후 가족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을 준비하며 겪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병헌과 손예진에 이어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유언석 등이 캐스팅되며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8월 23일 공개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스틸 이미지가 공개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한여름, 수상한 손님의 등장으로 평온한 일상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김윤석, 윤계상, 고민시, 이정은이 주연을 맡았으며, <부부의 세계>의 모완일 PD가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