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5-09-17 19:08:59
[30th BIFF 데일리] 박찬욱 감독 신작, 부산국제영화제서 첫 공개… 어쩔 수가 없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기자회견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아시아 프리미어로 첫선을 보였다. 기자간담회에는 박찬욱 감독과 주요 배우들이 참석해 영화 제작 과정과 현재 영화 산업의 위기, 그리고 부산이라는 도시의 의미에 대해 솔직한 소회를 밝혔다.
부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며 “부산은 바다와 도시, 골목의 정취까지 영화가 필요로 하는 모든 환경을 갖춘 곳”이라며 “영화제를 하거나 시나리오를 쓰기에도 최적의 도시”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배우는 “부산 풍경은 이국적이면서도 따뜻하다. 촬영하면서 마치 지중해 어느 섬을 보는 듯했다”고 전했다.
기자들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한국 영화의 위기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박찬욱 감독은 “종이 만드는 일을 인생 전체로 받아들이는 원작의 인물처럼, 영화도 현실적 도움은 없을지 몰라도 창작자는 삶을 통째로 건다”며 영화 제작의 의미를 강조했다. 배우들 역시 “지금 영화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업계가 어렵다”면서도 “그래도 관객이 극장을 찾는 순간, 다시 힘을 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한 배우는 “AI의 발전은 배우와 감독에게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사라져가는 제지업처럼, 영화도 근본적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이번 작품은 감독이 오랫동안 연출하고 싶었던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한만큼 미국과 정서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으나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집에 대한 집착, 가부장적 사회 구조 같은 요소들이 한국적 맥락과 잘 맞았다”며 “원작의 보편성과 현대 사회의 위기를 동시에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배우들은 이번 작품에서 박찬욱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을 새삼 실감했다고 전했다. “모니터 앞에서 작은 디테일까지 잡아내는 매의 눈을 보면서 놀랐다”, “한 테이크마다 새로운 요구를 하며 연기를 발전시키게 만들었다”는 후기가 이어졌다. 또 “극단적인 상황에 부딪히는 평범한 인물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보여줄까 고민했다”는 배우들의 연기 철학도 공유했다.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에게 특별한 당부를 전했다. “두 번, 세 번 볼수록 새로운 의미가 발견된다”, “같은 장면에서 한 번은 웃고, 또 한 번은 울 수 있는 영화”라며 극장 관람을 적극 권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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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동안 이어 온 ‘시네마’란 불가능한 작전!
<미션 임파서블>의 마지막 편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30년 동안 이어진 이 장대한 시리즈의 마무리를 본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고,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환갑이 넘은 나이에 몸을 던지는 톰 크루즈의 액션에 더 놀라웠다. 여기에 언제나 말보단 행동으로 불가능한 작전에 임했던 그의 마지막 임무라는 점은 1편부터 8편까지 극장에서 이 작품을 관람한 이로써 뭉클함도 전해졌다. 이렇듯 오만가지의 감정을 휘몰아치다 보니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이 시리즈가 그동안 무엇을 보여주고 말해왔는지, 그리고 어떤 걸 남기려는지에 대한 것. 완성도를 떠나 이 자체는 에단 헌트에게, 톰 쿠르즈에게, 그리고 시리즈의 팬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엔티티의 위협은 더 거세졌다. 디지털상의 모든 정보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이 AI는 인류 말살을 목표로 미국, 러시아 등 핵보유국의 핵 발사 시스템을 해킹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막을 수 있는 건 에단 헌트(톰 크루즈)와 IMF 요원들 뿐.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72시간이다. 에단 헌트와 요원들은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마지막 여정을 떠난다.
| 72시간 동안 해결해야 하는 2가지 숙제
에단 헌트는 72시간 동안 2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전작인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으로 시작된 엔티티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한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눠 공개한 건 시리즈 중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장대한 이야기를 이번 작품에서 마무리해야 하는 게 톰 크루즈와 제작진에게 하달된 가장 큰 임무다.
전작의 중요한 소재였던 십자가 모양의 열쇠는 빙산의 일각. 에단 헌트는 엔티티를 무너뜨리기 위해 위치가 불분명한 러시아 잠수함 세바스토폴호를 찾아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 중요한 소스 코드가 담긴 포드코바를 찾기 위해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빌런 가브리엘(에사이 모랄레스)이 가져간 일종의 AI 바이러스 포이즌 필을 회수해야 하고, 이를 포드코바에 업로드해야 막강한 엔티티를 무력화할 수 있다. 한마디로 에단 헌트는 생고생은 전편보다 더 강도가 세다.
표면적으로 가장 큰 숙제인 엔티티와의 대결과 함께 중요한 건 전체 시리즈의 마무리다. 이번 작품은 최종장으로서 그 의미를 살리고 관객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영화가 가져온 건 시리즈의 유산이다. 유독 이번 작품은 전작들(특히 1, 3편)의 장면들이 플래시백으로 소환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리즈 팬들이라면 그토록 궁금했던 ‘토끼발’(3편에서 등장)의 정체를 소개하고, 에단 헌트의 CIA 내부 침입으로 좌천된 던로(롤프 색슨)를 등장시키며, 시리즈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이 활용은 시리즈 총결산의 의미도 담기면서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에단 헌트의 역사를 곱씹게 한다.
|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
2시간 57분 동안 2가지 숙제를 차근차근 풀어가는 동안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동안 잊었던 이 시리즈의 묵직한 주제를 설파한다. 그건 바로 미래를 바라보는 시점이다. 에단 헌트는 정해진 미래를 살아가는 이가 아니다.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누명을 쓰고 죽을 위기에 놓이거나, 생명을 담보로 세상을 구하는 IMF 요원의 삶만 보더라도 그의 인생은 보통의 삶과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평범하거나 정해진 미래에 순응하지 않는다. 마치 운명 개척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매번 자신에게 닥쳐오는 변수와 위기에 대처한다. 어떻게해서든 이 불가능한 작전에 임하면서 단 1%의 성공 가능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애쓰고, 버티며 끝내 자신만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물론, 그 성공에 희생이 따른다. 그동안 그가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볼모로 삼아 악당과 한판 대결을 벌이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희생양 된 동료들이 꽤 있다. 이단 헌트는 그 부채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가면서도 끝내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이유는 그게 자신의 운명이고, 그것이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정확한 미래를 예견하는 AI가 빌런이라는 설정은, 이단 헌트를 또 한 번 시험에 들게 한다. 인간보다 더 정확도가 높은 AI의 공격은 그에게 미래와 운명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예 먹혀들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진짜 그 자체로 불가능한 작전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승부를 받아들이고, 자신과 팀, 그리고 사람들이 가진 일말의 선의를 믿으며 앞으로 계속 걸어나간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작전임에도 전편과 마찬가지로 모든 짐을 다 짊어진 채 고행의 길을 끝끝내 가는 그는 흡사 정해진 운명을 바꾸려는 구도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계획’이다. 거의 모두가 에단 헌트에게 계획이 있냐고 물어볼 정도로 잘 짜인 계획만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타개책을 만들것 이라고 믿고 있다. 그 또한 자신만의 계획은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변수에 막히고 어떻게든 타개책을 마련한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그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니까 말이다. 어쩌면 톰 크루즈는 이 시리즈를 통해 말이 아닌 자기 몸으로 변수로 둘러싸인 우리 내 인생을 논하고, 그럼에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8번을 이야기했으니 이번엔 믿어보고 싶다.
| 톰 크루즈가 몸으로 실천한 시네마란?
앞서 소개했듯이 톰 크루즈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배우다. <탑건: 매버릭>이나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에서의 그의 액션은 의미를 더했는데, 그 이유는 OTT 시대 속 위축된 극장 영화 산업 흐름 때문이다.
큰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게 더 이상 관람 기준이 아닌 세상. 톰 크루즈는 보란 듯이 자신이 생각하는 시네마를 보여준다. 그건 바로 액션이다. 전작에서는 육지에서 벌이는 액션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 영화는 바다와 하늘에서 벌이는 액션을 선보인다. 그야말로 육해공 액션 만찬이다. 다채로움과 더불어 그가 행하는 액션은 CG가 아닌 아날로그 액션이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다른데, 전작에서의 오토바이 액션 장면과 버금가는 경비행기 액션은 그 자체로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과 스펙터클함을 전한다. 도대체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매달리며 리얼 액션을 펼쳤다는 것에 경외감이 들 정도.
아날로그 액션의 대단함은 곧 데이터 로직을 기반한 엔티티를 대항한 에단 헌트만의 무기이자 OTT 플랫폼, CG에 의존하는 영화에 일침을 놓는 환갑 넘은 할리우드 노장의 무기다. 비행기에 매달린 채 일그러진 얼굴을 하며,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하려는 그의 연기는 왜 우리가 지금도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지 아주 강하게 알려준다. 관객에게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과 직업 정신도 느껴진다. 그가 영화에선 세계를, 현실에서는 영화를 지키는 구원자처럼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극 중 캐릭터와 배우가 혼연일체 한 모습을 찾기란 진짜 드물다. 예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찾아보길 힘들 것이다. 30년 동안 8편의 프렌차이즈 시리즈를 계속 만들어낼 사람은 톰 크루즈 한 명뿐이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말: 쿠키는 없다. 1, 3, 7편은 보고 가는 더 좋을 것 같다. 최종작이라는 점에서 초반 30분 동안 썰을 푸는 과정이 살짝 지루할 수 있지만,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조차 시리즈의 팬에게는 소중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점: 4.0 / 5.0
한줄평: 30년동안 행복했습니다. 에단 헌트 & 톰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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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이 되어도 계속되어야 할 드라이브를 위해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김현식의 노래가 길거리에서 들린다. 왠지 아이브와 뉴진스의 음악이 들려야 할 것 같은 길거리. 낯선 목소리에 놀란다. 요즘 걸그룹은 저 둘이 인기가 있다고 한다. 장원영과 안유진은 알아도 뉴진스 멤버 개개인은 사실 잘 모르겠다. 갑자기 내 플레이리스트를 확인했다. 죄다 듣던 곡이었다. 영화 나오는 건 제때제때 봐도 음악은 듣는 것만 듣고 있구나. 나는 20대 중반에서 후반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도 나름 젊은 사람 아닌가. 김현식과 김광석이 노래 제목으로 보인다는 것은 이런 나도 슬슬 서른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2022년이고 12월 말이다. 올해는 어떤 해인가 생각해 봤다. 나름 원하던 것들이 많이 이루어진 해였다. 그중 역시 최고는 6개월 남은 이 일상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이 노예 생활을 기꺼이 원했던 사람이다. 막상 하면 열심히 할 거야. 그런데 막상 그 중간에 들어와 보니 이런 세상 개 같은 시스템이 없다. 그러나 얻은 것도 있다. 여러모로 날 귀찮게 하던 사람들은 사실 가짜 광기였다는 걸 깨닫는 사회복무요원 생활. 난 사실 며칠 전에 내가 아는 사람의 선을 훌쩍 넘는 '돌아이'의 규격 외로 존재하는 인간을 봤다. 내 바로 옆에 심연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나서 이제까지의 인간들은 지극히 정상이었다는 느낌이 들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안전하게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특권이었다. 뒤늦게 안 사실인 셈이다.
왜 늦었을까. 아니 사실 늦지 않았다. 여기서 하는 이 생활도 내가 원했던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노트북도 원래 바꾸고 싶었다. 동아리방에서 낑낑거리며 내 전 노트북과 모니터를 연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연결이 안 됐다. 딱히 잘 보여야 할 사람이 있었나?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신형 노트북을 끌고 다니면 뭐랄까 새로운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따라오는, 뭔가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강박처럼 늘 있었다. 진작에 살 기회가 몇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지르느라 기회를 놓쳤다. 역시 인생은 필요한 것들만 먼저 사야 나중에 돈이 궁하지 않는다. 아무튼 겨울의 초입이었던 그때 노트북을 연결하기 어려운 것이 너무 짜증 나서 새로운 제품을 하나 사고 싶었다. 나의 새로운 노트북은 역시 거금을 투자한 값을 했다. 금세 영수증이 생각나서 현기증이 나지만 2015년 형보다 나은 사양과 깔끔한 화질이 만족도를 올려준다. 너무 늦지 않게 잘 산 것 같다.
이렇게 인생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어렵지 않게 들어준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가 있다. 정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억지가 아닌 선에서 다 이뤄진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 이 말이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는 물음표를 띄운 채로 살았다. 역설적으로 이 말을 그 어느 때보다도 믿던 시기는 원하는 게 이뤄지지 않았던 19살이었다. 그런데 이 역설이 오히려 굳은 믿음을 안겨줬으니 과연 절대적인 명제로 삼을만하다. 이후부터는 내 인생은 바람과 현실의 연속이었다. 갑자기 어느 날 일어났는데 내 키가 180cm이 된다던가 하는 억지만 아니면 다 이뤄졌다. 역시 인생은 말하는 대로의 연속이야. '너 마음대로 하면 돼'라는 조언은 5분도 안돼서 나에게 무색해진다. 이미 그렇게 살아도 다 살아진다는 걸 알고 있거든.
아닐걸?
영화 같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각자의 곡진한 삶이 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후회 속에서 그리워하기도 하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기도 한다. 여기에 우선순위는 없을 것이다. 불행에는 등수가 없으니까. 이런 이유로 가끔 내 목소리에 힘을 꽉 주어 '나 얼마나 불쌍한 인간인가'라는 걸 홍보하는 것이 어린애 같은 행동으로 느껴진다. 2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생기는, 다들 있는 마음속의 구멍이 인간을 더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나만 유별난 인간으로 대접받자고 구는 꼴 같거든. 흑역사를 깨닫고 발로 찬 이불들이 갑자기 생각난다.
분명히 그 흑역사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생을 살았는데 말이다. 그때 했던 찌질이 같은 행동들. 지울 수 없는 상처들. 아니지. 이 상처는 누가 나에게 준 상처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준 상처다. 물론 상대의 입장으로 받아들여도 할 말은 없다. 억울하다는 말은 내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내린 문답은 간단했다. 이런 개 같은 짓을 하고도 살아가야 한다는 게 가장 큰 형벌이었다. 그 이면에 내 우울하고 뒤틀린 사건 몇 가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나의 어떤 것도 바꿀 수는 없었으니까.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은 앞으로만 가서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애덤 프로젝트>나 <어벤저스 : 엔드게임> 같은 시간여행은 이 세상에 실존하지 않는다. <인터스텔라>처럼 소리를 못 질러서 책 몇 권 떨어트리는 것도 그냥 불가능하다.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최악의 선택지는 논외로 두고, 어쨌든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언젠가 이 길을 넘으면 다 잘 될 거야. 막연한 기대감이 생긴다. 다 잘 되겠지? 어림없다. 시간이 지나 조금씩 무뎌져도 같은 생각은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수수께끼 같은 생각들. 생각은 멈출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내 의지랑 상관없이 과거의 어떤 것에 대해 따져 묻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질문들. 잘 때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누워서 딴생각을 한다. <탑>의 건물에 손님들이 찾아왔던 것처럼 미래에 바라는 것들이 구체적인 것들로 점점 변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은 현재다. 만약에?라는 질문은 옳았다. 틀린 건 단 하나. 그 바라던 순간 외의 나머지는 전부 다 이뤄지지 않았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다시 화살표로 바뀌어 나를 공격한다. 걔보다 내가 못한 게 뭐야. 왜 나는 가질 수 없는 걸까. '이랬으면 좋겠다'가 열등감으로 바뀌는 것이 5초도 걸리지 않는다. 5초에서 한 3초만 더 붙이면 더 깊은 결론까지 닿을 수 있다. 왜 무언가를 원했나. 다신 반복하기 싫으니까. 그렇지만 어떤 것을 소모값으로 보낸다 하더라도 잃은 것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럼 나라는 인간 자체가 문제다. 소심한 모습, 나마저도 두려운 나의 눈치 없음, 가끔 찾아오는 외로움, 나쁜 말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나의 뻔뻔함.. 해가 바뀌었다. 새로운 나로 태어나기로 결심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세상에게 좋은 것을 주고 잃어버린 것만큼이나 누군가에게 강력한 어떤 것을 해도 빈 구멍은 채워지지 않았다. 인생은 그렇게 나라는 인간이 파놓은 끝없는 구덩이를 스스로 채우는 일이었다.
나니까 그런 거다. 내가 문제니까. 나라는 인간이 갖는 이 끔찍한 과거와 성격들이 나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태어나지 말 걸 그랬나. 왠지 모르게 나만 안 되는 것 같은 사랑과 연애. 어떤 사람들은 다가가기도 무서울 때가 있다. 믿음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그렇게 다가가는 법은 모르는 것이다. 혼자 생각하는 두려움. 내 마음을 알지 못해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리고 운동을 한다. 어쩌겠어. 내 인생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거 같은데. 내 마음을 물어도 나 자신의 답이 뻔해서 그냥 그렇게 클리셰를 따라간다. 하지만 이 클리세의 엔딩은 역시 비슷하다. 아무것도 나를 채울 수 없었다는 공허함과 허무함이다. 어느덧 연말이다. 새해가 돌아온다. 2023년은 다를까. 아마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년도 끝없는 외로움과 싸워야 한다. 나라는 사람이 써온 어떤 역사에 문답하며 살아야 한다. 문득 드는 생각. 이 구멍에는 끝이 없다. 영원히 반복되는 질문에 소리지르며 답하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난제다.
너니까 그런 거야.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한 남자와 그의 운전기사에 관한 영화다. 누가 봐도 사이좋은 부부. 남자는 아내를 깊게 사랑하고 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잠자리를 가졌다. 아침이 밝았다. 해외로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남자. 차로 운전하는 도중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한 남자. 느닷없이 들리는 신음소리. 아내는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이유를 묻고 싶었다. 상처를 간직하는 남자. 그렇게 아내에게 이유를 물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마음속에 찍 그어진 상처가 점점 벌어지는 남자. 남자 가후쿠는 그렇게 표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공연 기획자이자 배우인 가후쿠. 가후쿠의 고도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오지 않았다. 가후쿠가 기다렸던 고도는 영화에서 제시되지 않는다. 그 대신 가후쿠는 머릿속에서 절대 풀 수 없었던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새해가 밝았다. 뭔가 다를 거라 생각하지만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12월 23일인 어제와 1월 5일인 오늘은 그렇게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을 맞이했다. 이 <드라이브 마이 카>는 새로운 시작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읽힌다. '새로운' 시작? 그런 건 없다. 끝없는 여정 속에 놓여있는 것이 우리 인생 아닌가. 이 인생이 가진 문제들 중 2023년이 되더라도 우리가 갖고 있는 몇 개는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떤 하루를 살든 간에, 치열하게 버틴 이들은 감당해야 할 것이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인생이라는 드라이브를 아주 적절히 잘 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난 건 죄다. 그렇지만 그 죄와 함께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 인간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인생은 혼자 지나가는 오렌지색 터널이라고 했던가. 맞는 말이다. 목적지도, 쉼터도, 출발지도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느 날 터널이 끝나는 시기가 오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우리이기 때문에 생겼던 후회와 미련들, 미스터리들 모두 다 각자를 더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는 이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렇게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을 부정하지 말고 한 번 내놓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자, 다시 한번 운전대를 잡을 시기가 왔다. 졸음쉼터에서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겨보자. 너무 운전사를 미워할 필요 없다. 언제든 도착지는 있다. 그럼 위에서 누군가에게 고통받았다고 성토할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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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혼의 사무라이
황혼의 사무라이
'황혼의 사무라이'는 중의적 제목이다. 주인공 이구치가 하급 사무라이로 창고지기 노릇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해가 떨어지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황혼'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구치가 살던 19세기 중반은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사라지기 직전이어서 역사적으로 사무라이의 '황혼'이기도 했으며, 마지막 '사무라이'로 살았던 이구치가 관군의 총탄에 죽음으로써 계급으로의 사무라이는 '황혼'을 맞이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영화는 하급 사무라이 이구치의 막내딸, 다섯 살 이토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이토의 눈으로 본 세상이며, 회고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토는 다섯 살에 등장해 나중에 일흔 살의 노인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메이지 유신'을 중심으로 나이를 살펴보면, 이토는 1860년생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70년을 더 하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1930년대가 된다.
이토의 나이가 중요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역사가 매우 빠르게 군국주의화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인데,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수십 개 막부가 사라지고, 일본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이 강화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종료되는 것과 동시에 조선을 침략하고, 곧바로 식민지를 확대한다. 가장 가까운 나라가 조선이었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도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다.
이런 일본의 침략은 유럽과 미국 강대국의 폭력 앞에 무릎 꿇은 뒤, 선진문물을 수입해 빠르게 개화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발빠르게 최신 무기로 무장할 수 있었고, 여기에 자신감을 얻어 이웃 나라들을 침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지방에 남아 있던 막부의 토호세력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식민지에서 얻는 이익을 일정부분 공유하며, 일본 내부의 화합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한 것은 '메이지 유신' 이전의 막부와 관련이 있다. 형식적으로 막부는 사라졌지만, 지방의 토호세력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은 메이지 천황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막부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바뀌어 중앙 정부 또는 지방 정부에서 권력을 가진 세력이 된다. 이들 지방 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천황제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천황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지는 않았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전체주의 체제가 오래 이어져 오고 있었고, 정치적으로 기반이 약한 메이지 천황제에서 과거 막부의 전통, 사무라이의 신성화 등이 군대, 군인을 우상화하고, 군인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군국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1860년대 초, 우나사카 막부 휘하에서 하급 사무라이로 살아가는 이구치는 막부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평시에 성의 곡식창고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매우 가난해서 한달에 50석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데, 그 돈으로는 생활이 궁핍해 퇴근하고 저녁에 새장을 만들어 파는 부업을 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폐병을 앓던 아내가 사망했고,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매우 난감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다. 게다가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고, 어린 두 딸은 이제 열 살, 다섯 살이어서 그가 오로지 돌봐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함께 술집으로 몰려가 술을 마시며, 여흥을 즐기지만 이구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집안 일을 하고, 어머니도 돌봐야 하고, 아이들도 보살펴야 한다. 여기에 부업으로 새장을 만들어야 하니 그는 조금도 쉴틈이 없는 것이다.
하루는 영주가 곡식창고 시찰을 나왔는데, 이구치가 직접 보고를 하다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걸 영주에게 들키고 말았다. 다행히 영주는 덕이 있는 사람이라 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나, 영주의 부하인 관료들이 더 난리를 부리고, 이구치의 집안 어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구치의 삼촌이 그날 저녁 집으로 달려와 영주 앞에서 망신 당한 사실에 대해 노발대발 하고, 자기가 점지한 지인의 딸이 있으니 재혼하라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이구치는 어린 두 딸과 치매를 앓는 노인이 있는 집에 어떤 여자가 올 것이며, 설령 온다해도 고생만 할 뿐이니 자기는 재혼할 의사가 없노라고 말한다.
이구치는 성정이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그는 술도 마시지 않고,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폭력을 싫어한다. 그는 사무라이 계급이고, 그 자신 어려서 무술을 배워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먼저 칼을 빼는 일은 결코 없다. 더구나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가장 아끼는 보검은 아내의 병구완을 위해 일찌기 팔아버렸다. 그의 꿈은 농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구치는 운명을 잘못 타고 태어난 인물이다. 그는 사무라이보다는 농부나 학자가 되는 것이 본성에 어울리게 보이는데, 사무라이에서도 하급에 머무른 것은 그가 욕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봄이 되어 진달래가 피는 따뜻한 날, 이구치는 두 딸과 함께 들판으로 나와 나물을 뜯는다. 그때 개울에 떠내려오는 어린 아이의 시신을 보게 되고,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는 흉년으로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이구치의 가족은 근근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구치는 친구 이누마를 만난다. 이누마는 한 달 정도 오사카 막부와 쿄토의 황성을 다녀왔는데, 막부의 움직임과 황성과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얼마 전, 결혼했던 여동생 토모에가 이혼하고 집에 와 있다고 말한다. 토모에의 전 남편 코다 역시 사무라이였고, 부유한 집안이었다. 하지만 술 마시고 아내를 때리며, 학대해서 오빠 이누마가 막부에게 직접 부탁해 이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오니 뜻밖에도 토모에가 와 있었다. 이구치는 몹시 반가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토모에 처지를 위로한다. 토모에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토모에 집앞에 도착했을 때, 집안에서 싸움이 벌어져 소란스러웠다. 토모에의 전 남편 코다가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코다는 토모에보다 그의 오빠 이누마가 더 괘씸하다고 화를 낸다. 그러면서 이누마에게 행패를 부리고 싸우자고 덤벼드는데, 이때 이구치가 나서서 싸움을 말리고, 코다를 힘으로 제압한다. 코다는 화가 나서 이구치에게 정식으로 대결을 신청하고, 두 사람은 목숨을 건 싸움을 하게 된다.
이누마는 자기 때문에 코다와 싸우게 되었으니, 자기가 나서겠다고 하지만, 이구치는 이누마의 실력으로는 코다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으므로 나서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검이 아닌, 목검을 들고 코다와 맞선다. 이 시기에는 이미 사적 폭력이나 개인적 결투는 막부에서 금지하고 있었지만, 사무라이들은 목숨을 걸고 일대 일 승부를 겨루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코다는 이구치가 목검을 들고 서자 자기를 얕잡아 본다며 진검으로 달려든다. 이구치는 가볍게 코다를 제압하고, 이누마와 함께 돌아온다. 이 영화에서 사무라이가 칼을 들고 싸우는 장면은 두 번 나온다. 이구치가 코다와 싸울 때, 이때는 목검을 들었지만 사무라이의 검술이 어떤 모습인가를 짐작하는 동작이 나온다. 목검이 아니고 진검이었다면, 코다는 두세합 만에 목숨을 잃게 된다.
또 한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구치와 요고 젠에몬의 결투인데, 전혀 과장하지 않은 사실주의 형식으로 사무라이가 어떻게 싸우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사무라이의 결투는 일본 사무라이의 환상을 깨뜨리고, 막부 시대의 사무라이가 어떤 존재인가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구치가 집에 돌아오니 토모에가 보낸 편지가 있었고, 이구치는 토모에의 마음을 읽는다. 이후 토모에는 이구치의 두 딸 키야노와 이토의 '엄마'가 되어 생활의 중심이 된다. 어린 키야노에게 살림살이를 알려주고, 함께 놀아주며, 나들이도 하면서 엄마 역할을 해주는데, 이구치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다.
이누마는 이구치에게 토모에의 재혼을 거론한다. 이누마도 이구치를 좋아하는 친구이고, 토모에는 어려서부터 함께 소꿉놀이를 하던 동생이었으니 서로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 진정한 벗이었다. 이누마는 부잣집 아들이지만 가난한 이구치를 차별하지 않고 친구로 어울렸고, 나이 든 지금도 변함없이 친구로 지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누마의 인성도 훌륭하고, 토모에는 어려서부터 이구치를 좋아했었다. 다만 입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그건 이구치도 마찬가지였지만, 집안이 너무 기울어져 토모에가 자기와 결혼하면 불행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이구치는 혼인을 거절한다.
이누마는 한달 전, 에도(교토)에서 영주가 사망하는 바람에 후계자 문제로 내부 권력투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이구치에게 알려준다. 이구치는 최하급 말단 사무라이여서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자기와는 직접 문제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관리 사무장인 쿠사카가 이구치를 찾아온다. 두 사람은 우나사카 가문의 고위 관료인 호리 댁으로 찾아가 명령을 하달받는다. 요고 젠에몬이 할복하지 않아 죽이러 간 무사들이 오히려 요고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으니 이구치가 가서 요고 젠에몬을 죽이라는 명령이다.
이구치는 애써 변명하며 거절하지만, 호리는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며, 말을 듣지 않으면 무사 계급을 박탈하고 번에서 내쫓겠다고 협박한다. 하는 수 없이 승락하고 돌아온 이구치는 죽음을 의식하며 마음을 정리한다.
이구치는 몸종 나오타에게 심부름을 보내, 토모에에게 와달라고 부탁한다. 나오타의 전언을 들은 토모에는 급하게 달려오고, 전투를 앞두고 몸치장을 해야 하는 이구치의 부탁을 듣고 그의 몸단장을 돕는다. 이 과정에서 이구치는 자신이 마음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는다. 토모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어릴 때부터 늘 좋아했고, 결혼하고 싶었으며, 결혼한 이후에도 토모에를 잊지 않고 있었노라고. 지금 결투를 하러 떠나지만, 살아 돌아오면 토모에에게 청혼하겠노라고. 지난번 오빠를 통해 재혼 이야기를 들었지만,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토모에가 자신과 혼인하면 평생 고생만 할텐데, 그건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고백하노라고.
이 장면에서 이구치와 토모에의 모습은 담담하지만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어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난한 이구치와 부잣집 딸 토모에의 신분, 어릴 때부터 서로 좋아했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감정들, 체면과 권위로 살아야 하는 사무라이와 사회 제도로 억눌린 여성의 지위와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수많은 제약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믿으며 조용히 살아온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을 읽게 되면서, 시대와 역사를 떠나 인간 본연의 사랑의 실체를 만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토모에는 이미 혼담이 들어왔고, 자기도 그 혼담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불러줘서 고맙다고 담담히 말한다. 이구치는 자기가 하면 안 되는 말을 한 것 같아 몹시 당황하면서 마침 도착한 길잡이를 따라 집을 나선다.
요고 젠에몬은 상당한 실력을 지닌 사무라이다. 그를 죽이러 간 다른 사무라이들이 칼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할 정도였는데, 이구치는 내심 자신 있었지만, 그래도 긴장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요고의 집안으로 들어간다. 마당에는 먼저 들어갔던 사무라이의 주검이 쓰러져 있고, 그 주변으로 파리들이 요란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요고는 이구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고는 이구치에게 싸우지 않겠노라고, 자기는 도망갈 것이고, 도망가도록 길을 터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요고는 자기가 살아왔던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 역시 사무라이로 쇼군을 모셨으나, 그 쇼군이 다른 쇼군에게 지면서 가산이 몰수당하고, 자기 가족도 쫓겨나 낭인으로 7년을 떠돌다 어렵게 하세가와의 수하로 들어올 수 있었고, 하세가와의 은혜를 입었기에 그를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7년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딸이 병으로 죽었다는 말을 하고, 이구치 역시 자기 아내가 병으로 죽은 것을 알고 있으니, 하급 사무라이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말한다.
이구치도 아내의 병구완을 위해 명검을 팔고, 싸구려 검을 가지고 다닌다는 말을 한다. 이때 갑자기 요고가 화를 내며, 싸구려 칼로 자기를 베러 왔느냐고 소리친다. 요고의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두 사람은 결투를 하고, 이미 지쳐 있던 요고는 이구치의 칼을 맞고 죽는다. 두 사람이 싸우기 전에 나눈 대화는 하급 사무라이의 처지를 드러내는 의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의 존재가 이제 시대의 막바지에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투에서 이기고 돌아온 이구치를 맞이하는 건 토모에였다. 토모에는 이미 집안에서 재혼 혼담이 오가고 있고, 상대도 정해졌지만, 집안의 반대를 무시하고 독단으로 이구치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이구치와 결혼하고 두 딸과 행복하게 살지만, 그 기간은 불과 3년이었다. 이토의 나레이션으로 이어지는 토모에와 이구치의 사연은, 이구치가 관군과의 전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고, 토모에는 두 딸을 데리고 도쿄로 이주해 그곳에서 두 딸을 훌륭하게 키운다. 토모에가 나이 들어 숨지자, 카야노와 이토는 아버지 이구치와 어머니 토모에를 한 무덤에 모신다.
막부가 해체되고,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면서 일본은 메이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의 국가체제로 발전한다. 그 와중에 마지막 사무라이였던 이구치와 토모에의 애틋하고 깊은 사랑과 저물어가는 사무라이의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이구치의 삶을 보면서,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과 운명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역사는 거대한 담론으로 강물처럼 흘러가지만, 그 속에는 무수한 개인들의 삶이 담겨 있고, 한 평생이 들어 있고, 개인의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역사를 덩어리로만 볼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개개인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보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에 거울이 되는 장면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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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뿌리에서도 혁명은 자란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 대한 단상.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관객이 목격하기를 원한다. 더 나아가 관객이 상영관 바깥에서도 생각하기를 원한다. 우리가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길러내야 할지, 어떻게 하면 연대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든다.
-제목이 가리키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맨 땅에서 싹을 틔우지 않고 땅 속으로 뿌리부터 내리는 개체이다. 흙을 단단히 쥐고 나서, 다른 나무의 기둥을 타고 올라가며 자라나고 결국 먼저 존재하던 나무는 죽게 된다. 관객에게 이러한 제목의 의미를 먼저 알려 주는 이유 또한 연대해야 한다는 호소에 가깝다는 것을, 영화를 보는 동안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현관문 안쪽, 즉 가족 안에서 피어나는 갈등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 동시에 주인공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거리 위 시위대와 그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경찰의 모습을 관객도 함께 보게 만든다. 실제 푸티지를 보여주면 관객은 이야기에 몰입하던 것을 강제로 멈추고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이런 불편, 심지어 어떤 관객들은 일부러 피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한 이유는 이러한 구조적, 물리적 폭력이 실제로 존재함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목도하기 두려울 정도로 가혹한 실제 폭력, 권력에 부역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던 가족의 도덕적 딜레마를 함께 담아낸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서스펜스와 함께 아주 선명하고도 통쾌한 엔딩을 선보이면서 관객을 영화 바깥으로 내보낸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삶과 정치가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 미래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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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날 인터넷만 하고 사니까 이렇게 되잖아!”
7★/10★
김도훈의 칼럼 ‘가능한 임무를 찾아서’에 따르면, 톰 크루즈는 1999년 이후 ‘연기파 배우’와 ‘액션 스타’의 길 중 후자를 골랐다. 배우라면 둘 중 하나만 성취해도 대박일 텐데, 1999년의 톰 크루즈는 둘 다 잘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전자가 더 멋져(?) 보이는데도 기꺼이 후자를 택했다. 그를 향한 대중적 환호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고 모든 전문가가 ‘걸작’이라고 칭송하는데 나는 봐도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서 멋쩍은 영화가 아닌, 주요 시상식에는 초대받지 못하고 ‘배우’가 아닌 ‘스타’로만 취급는다 해도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데서 진정한 보람을 느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
사실 톰 크루즈에 대한 예찬, 상찬에는 좀 낯 뜨거운 구석도 있다. 영화가 얼마나 재밌냐를 말하지 않고, ‘톰 크루즈가 이런 액션까지 직접 촬영했다니!’만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영화 배우’ 톰 크루즈에 대한 칭찬일까 싶었던 것. 그가 오금이 저리는 액션을 직접 촬영한 게 대단한 건 맞다. 하지만 이 말만 반복하면 오히려 ‘그것 빼면 영화는 별로’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심지어 시리즈 마지막인 이번 영화에는 아예 시작부터 ‘이선 헌트’가 아닌 배우 톰 크루즈로 등장해 관객에게 별도의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의아했다. 이게 맞나?
그러나 ‘미션 임파서블’은 늘 적당함 이상의 ‘대중적 재미’를 보장해왔고, 그건 시리즈의 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호들갑을 떨 정도로 대단한 톰 크루즈만큼은 아니더라도, 영화 역시 웬만한 첩보 액션물을 훨씬 상회하여 즐거움을 선사해온 것이다. 이 시리즈의 대단함은 이선 헌트가 맞서 싸워온 적의 얼굴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가늠이 된다. 이선 헌트는 조직의 배신자, 생화학 무기, 테러리스트, 핵무기를 거쳐 마침내 인공 지능까지 때려눕힌다. 그러니까, 오랜 세월 ‘인류의 적’이 누구인지를 고발해왔다.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아카이브다. 이선 헌트가 어떤 적과 싸워 세계를, 지구를 구해왔는지만 분석해도 당대 가장 첨예한 국제 사회의 위협에 관한 이미지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에 관한 그럴듯한 아카이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시리즈 전작에서 그는 대부분 냉전 시대의 긴장을 토대로 한 무대에서 뛰놀았다. 하지만 마지막 영화인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에서는 무지막지한 인공 지능 앞에서 냉전 구도마저 우스워진다. 강대국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인공 지능을 자기 통제 아래 두려 노력하지만, 그들은 내내 역으로 인공 지능에 잡아먹힐까 벌벌 떨고 있다. 정말 언젠가 인공 지능이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는 지구인들의 연대와 같은 결과를 초래할지는 차차 두고 볼 일이다. 여하튼 영화 내내 지난 시리즈의 장면들이 삽입되어 관객의 기억과 추억을 일깨우는 건, 파릇파릇한 시절의 톰 크루즈의 얼굴에 새삼 놀라게 하는 효과와 더불어 배우 개인에 대한 헌사, 나아가 ‘인류의 적’에 대한 아카이빙의 역할까지도 수행하는 셈이다.
뜻밖의 명장면도 있다. 언제나처럼 불가능한 임무에 고군분투 중인 이선 헌트를 한 미국 군인이 습격한다. 그는 이선이 임무에 성공하면 사이버 공간이 마비되는 것을 우려하는, 초월적 인공 지능 엔티티를 추종하는 사람이다. 몇 번의 주먹질로 그를 제압한 이선이 말한다. “맨날 인터넷만 하고 사니까 이렇게 되잖아!”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비장한 임무가 자녀의 엉덩이를 때려주는 부모의 훈계가 연상되는 장면인데, 이 장면에서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커뮤니티도 좋지만 현실의 인간관계도 좀 맺어보고(모 대통령 후보님이 생각난다), 영 감을 못 잡으면 ‘어른’이 좀 훈계도 해주는 그런 사회가 필요하다고 느껴서일 듯하다. 이런 면에서 어쩌면 이 장면이야말로 인공 지능, 인터넷에 잡아먹힌 인류에 대한 가장 적확한 비판의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이선 헌트와 동료들은 끝내 인공 지능 엔티티를 램프에 갇힌 지니의 신세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세계에서도 누가 좀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제 대선이 일주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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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살과 13살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5월은 푸르른 나무들이 싹을 틔우는 계절이고, 12월은 잎을 거두고 추위를 견디는 계절입니다. 영어권에서는 'May-December'가 5월과 12월의 간극처럼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커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하는데요. 영화 <메이 디셈버>는 관용어를 사용해 제목에서부터 영화의 소재를 내걸고 시작하는 작품입니다. 5월의 남자와 12월의 여자, 그들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요? 그들의 사랑은 정말 '사랑'일까요?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메이 디셈버>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메이 디셈버>는 2024년 3월 13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메이 디셈버
May December
Summary
신문 1면을 장식하며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충격적인 로맨스의 주인공들인 ‘그레이시’와 그보다 23살 어린 남편 ‘조’. 2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영화에서 그레이시를 연기하게 된 인기 배우 ‘엘리자베스’가 캐릭터 연구를 위해 그들의 집에 머물게 된다. 부부의 일상과 사랑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엘리자베스의 시선과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의 잇따른 질문들이 세 사람 사이에 균열을 가져오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나탈리 포트만, 줄리안 무어, 찰스 멜튼
강렬한 스캔들을 둘러싼 세 인물
: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갇힌 사람
이 영화의 'May-December' 커플은 60살이 다 된 아내 '그레이시'와 36살 남편 '조'입니다. 23년 전, 유부녀였던 '그레이시'는 자신이 일하던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자 아들의 친구였던 13살 '조'의 아이를 가집니다. 감옥에서 아이를 출산한 '그레이시'와 '조'의 이야기는 뉴스 1면을 장식하는 희대의 스캔들이 되었죠. 강렬한 그들의 사랑은 이십여 년이 지나 영화화가 결정됐고, 연기 인생의 또 다른 한 획을 그을 작품을 찾던 배우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 역을 맡습니다. <메이 디셈버>는 'May-December' 커플의 이야기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엘리자베스'가 부부의 집을 찾으면서 시작됩니다. 영화는 세 인물을 가까이에서, 또 멀리서 바라볼 수 있도록 시점을 조금씩 바꿔가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리고 이십 년 전의 스캔들을 중심에 둔 세 사람을 각각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갇힌 사람으로 정의하죠.
말하는 사람은 과거의 스캔들을 '엘리자베스'에게 들려주는 '그레이스'입니다. 당시를 회상하는 '그레이스'에게는 부끄러운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36살 유부녀가 13살 소년과 사랑을 나눠 아이를 가졌는데도, 아들 친구와 바람이 났는데도, 심지어 아들의 생일 전날에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는데도요. 손자와 자식이 같은 날 졸업하는 진 광경의 자리에도 당당하게 '엘리자베스'를 부릅니다. '그레이스'는 진실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더 중요시하는 인물로 비칩니다. 그래서 언제나 태연하고 뻔뻔할 수 있었죠. 그는 자신이 순진한 사람이길 원하고, '엘리자베스'가 자신들의 사랑을 완벽한 사랑으로 보길 원하며, '조'가 영원히 이 관계를 사랑으로 보길 원합니다.
듣는 사람은 완벽한 연기를 위해 부부를 취재하는 '엘리자베스'입니다. 그는 '그레이시'와 '조' 사이에 자리 잡은 진실을 파헤치려고 노력합니다. 이를 빌미로 부부의 과거를 헤집고, 진실에 더 가까운 이야기를 들으려 애쓰죠. 그런데 단순히 취재라고 포장하기에 '엘리자베스'의 취재 여정은 다소 기만적입니다. '그레이시'와 '조'의 딸이 있는 자리에서 "배역을 선택할 때는 '도덕적으로 모호한 인물'에 매력을 느낀다"라고 말하거나, 13살에 '그레이시'를 유혹한 '조'의 매력을 가늠하기 위해 그와 잠자리를 갖는 것도 마다하지 않죠. 어느새 진실 찾기는 핑계가 되고, '엘리자베스'의 눈빛에는 야심만이 이글거립니다.
갇힌 사람은 스캔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어린 남편 '조'입니다. 영화 초반부의 '조'는 공동체의 기억 속에 남은 강렬한 이야기와는 달리 더없이 다정하고 화목한 가정의 가장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상 '조'는 그때 그 이야기 속에서 조금도 크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사람이었죠. "네가 나를 꼬신 거야", "나는 순진해"라는 '그레이시'의 함정에 빠져 죄책감과 부도덕함을 느끼고, 속죄와 책임감을 느끼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자신이 원한 삶이라고 굳게 믿으면서요. 나비의 알을 주워다가 성체로 키워 날려 보내는 것만이 유일한 감정의 배출구였습니다. 이러한 삶을 평화로운 일상으로 여겨왔던 '조'에게 '엘리자베스'의 등장은 균열이었습니다. 진실을 찾는 '엘리자베스'로 인해 마음속 물음표가 떠오른 '조'는 외면해 왔던 진실에 향한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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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모호한 회색의 스펙트럼
영화를 만든 토드 헤인즈 감독은 <메이 디셈버>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한 거대한 거부감"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세 인물의 공통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 '자기 자신'이라는 진실을 대하는 방식 말입니다. 세 인물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진실을 바라보길 거부합니다. '그레이시'는 원하는 대로만 말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가렸고, '엘리자베스'는 남의 이야기를 파헤침으로써 자기 자신을 덮었으며, '조'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숨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잘못이 있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기꺼이 들여다보려 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그랬듯이, 함부로 직시하죠. 이렇듯 세 인물의 도덕성과 옳고 그름에 관해 끝없이 생각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이런 생각에 가닿습니다. 극 중에서 나오는 '도덕의 회색지대'라는 말처럼, 바로 그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모호한 회색의 스펙트럼이 곧 인간의 본질이구나.
<메이 디셈버>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이 인간의 모호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샘솟는 질문들도 모두 비슷한 철학적 물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 36살 여인은 정말 13살 소년을 사랑했을까?
- 13살 소년은 정말 36살 여인을 사랑했을까?
- 13살 소년을 사랑한 36살 여인의 잘못은 무엇일까?
-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 도덕이 먼저일까, 사랑이 먼저일까?
- 타인의 진실을 향한 '엘리자베스'의 열망은 인간으로서의 도덕인가, 배우로서의 야심인가?
- '엘리자베스'의 선을 넘는 야심과 '그레이시'의 순진한 가면 중 어느 것이 더 부도덕한가?
질문의 답을 고민하다 보면 머릿속은 계속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정확한 답 하나 없이 모호함만이 두둥실 떠다닙니다. '누가 옳은가?', '누가 그른가?', '옳은 사람이 있긴 한가?', '옳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아, 하지만 복잡하고 모호한 인간처럼 흥미로운 것이 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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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디셈버>는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맛을 크게 살렸습니다. 가히 연기 대결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는데요. 줄리안 무어의 '그레이시'를 완벽하게 내재화해 연기하는 나탈리 포트만의 모습은 그야말로 소름 돋을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조'를 사랑의 감옥에 가두는 '그레이시'의 순진한 얼굴을 그려낸 줄리안 무어의 얼굴은 또 어떻습니까. 여기에 이 작품으로 연기상 21관왕을 휩쓴 찰스 맨튼의 활약도 빼놓으면 섭섭하지요. <리버데일>의 반가운 얼굴을 다시 만나 기뻤습니다. 쉽지 않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그에게 손바닥에 불나도록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One-Liner5월과 12월, 알과 나비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으나, 인간만은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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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시간순서대로 영화 속 설정들 정리해드립니다 | 듄 리뷰 | 듄 영화리뷰 | 듄 설명 | 듄 분석 | 듄 해석 | 듄 스토리 | EBS |
? '듄(DUNE)' 리뷰 - 영화 세계관 및 스토리 요약정리(*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동명의 원작소설 기반 분석 해석
- 베네 게세리트, 초암공사, 퀴사츠 헤더락 등 정리
- 영화 정보
장르: 스페이스 오페라
감독: 드니 빌뇌브
각본: 에릭 로스, 존 스페이츠, 드니 빌뇌브
원작: 프랭크 허버트의 듄(1965)
제작: 드니 빌뇌브, 케일 보이터. 메리 페어런트,조 카라치올로 주니어
주연: 티모시 샬라메, 제이슨 모모아 외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한스 짐머
촬영 기간: 2019년 3월 18일 ~ 2019년 7월 26일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워너브라더스
수입사: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2020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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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할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요즘 시대의 자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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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아홉 율리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 세상으로 나온다.
파티에서 만난 만화가 악셀과 사랑에 빠진 율리에,
하지만 삶의 다른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걸 원했고 조금씩 어긋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달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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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 메인 예고편
코 끝에서 시작되는 달콤한 사랑?! 삶에 치여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남자 ‘창수’(윤시윤) 낯선 이에게 받은 향수를 뿌리자마자 여자들이 달려든다?! 가족에 치여 누굴 좋아해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여자 ‘아라’(설인아) 어느 날, 매일같이 타던 버스에서 나는 향기에 두근대기 시작한다 ‘창수’에게 이끌린 ‘아라’는 영문도 모른 채 사랑에 빠지고, 서툴러도 조금씩 사랑을 키워나가던 그때! 갑작스럽게 등장한 전 애인 ‘제임스’(노상현)가 폭로한 ‘창수’의 비밀! 내가 사랑에 빠진 게, 향수 때문이라고? 2023년 2월, 마법 같은 로맨스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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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파이럴> 메인 예고편
경찰서로 배달된 의문의 소포
그리고 시작된 경찰 연쇄살인
또 다른 살인이 시작되기 전 단서를 찾고 사건을 해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