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4-30 10:19:02
[킬링 이브 1,2,3]: 싸이코패스 살인마와 MI6 요원의 추격전, 그리고 러브스토리
▶싸이코패스 살인마와 MI6 요원의 추격전, 그리고 러브스토리
서로 다른 조직에서, 서로 다른 목표로 일하지만 소름 끼치게 닮은 이브와 빌라넬. 이브는 MI6 요원이고, 빌라넬은 싸이코패스 살인마다. 점차 서로를 알아가는 둘이 느끼는 감정은 공포, 분노가 아닌 사랑이다. 동료를 죽이고 가족을 해친 살인마에게 끌린다는 것, 자신을 좇는 요원에게 끌린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설정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일을 어렵지 않게 해낸다.
핵심은 파괴적 여성 욕망이다. 젠더에 따라 굴절된 불평등한 욕망 구조로 인해 여자들의 솔직한 욕망은 늘 파괴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여자들의 욕망이 기존 질서를 뚫고 나오기 때문이다. 순종하지 않는 여성 욕망, 남자가 아닌 여자를 향하는 여성 욕망이 용납되지 않은 이유다.
살인은 파괴적 여성 욕망의 은유다. 빌라넬은 〈킬 빌〉의 우마 서먼처럼, 애초부터 사회에 순순히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없는 ‘여왕벌’이다. 여왕벌이 여왕벌로서 존재하려면 자신을 옥죄는 주변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이브만이 빌라넬의 파괴를 다르게 독해한다. 이브는 빌라넬의 파괴에서 해방감, 흥분, 전율을 느낀다. 기존의 도덕률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빌라넬에게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 대신,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던 남편 대신 빌라넬을 선택한다.
다만 시즌이 지날수록 드라마의 전개가 처진다는 게 아쉬웠다. 이브와 빌라넬의 서로를 향한 ‘기괴한’ 욕망은 어느 순간부터 질질 끌린다. 둘 사이의 강렬함이 소진되니, 불필요한 캐릭터 설명과 개연성 없는 인물이 늘어난다. 시즌제 드라마의 어쩔 수 없는 한계기도 하겠지만 조금 짧더라도, 압축적으로 둘의 사랑을 진득하게 감상하고 싶었다는 아쉬움은 떨쳐지지 않는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률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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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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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증외상센터 | 키치함으로도 가리지 못한 자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동 각지의 전쟁 지역을 누비며 외상 경력을 쌓아 온 천재 외상 외과 전문의 '백강혁'(주지훈). 보건복지부 장관 '강명희'(김선영)는 공석이 된 한국대 외상외과 교수직에 백강혁을 추천하기로 결정한다. 취임 당시 공약도 지킬 겸, 백강혁의 능력을 활용해 정치적 입지도 넓힐 겸. 백강혁도 주저 없이 교수직을 수락한다. 자기 꿈이었던 중증외상센터를 만들어 보기 위해서.
백강혁은 항문외과 펠로우 '양재원'(추영우), 외상외과 간호사 '천장미'(하영), 마취과 레지던트 '박경원'(정쟁광)와 함께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만, 이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대학병원 중증외상팀은 환자를 살릴수록 적자를 늘리는 눈엣가시이니까. 백강혁의 성과가 커질수록 병원장 '최조은'(김의성), 기획조정실장 '홍재훈'(김원해), 대장항문외과장 '한유림'(윤경호)과 병원 경영진도 그를 제거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기 시작한다.
<중증외상센터>의 두 대들보
한국 넷플릭스에는 전통 아닌 전통이 하나 있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마다 히트작을 하나씩 배출한다는 것. <오징어 게임>, <수리남>, <살인자ㅇ난감> 등이 이 계보에 속한다. 물론 전통이 깨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2025년 설날에는 이 계보에 한 작품이 추가된 듯 보인다. 동명의 웹소설을 영상화한 <중증외상센터>가 예상치 못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지난 설 연휴에 공개된 <중증외상센터>는 그 이후로 넷플릭스 시리즈 부문 국내 1위를 유지했고, 1월 5주 차에는 비영어 TV쇼 부문 1위까지 기록했다. 철저히 한국을 배경으로 한 메디컬 드라마라는 점, 주지훈을 제외하면 두드러지는 유명 배우가 없다는 핸디캡을 극복했기에 더욱 놀라운 성과다.
<중증외상센터>가 사랑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익숙한 메디컬 드라마에 웹소설 특유의 분위기를 불어넣었다는 것. 원작을 먼저 접한 시청자도, 드라마로 처음 접한 시청자도 만족하는 중간선을 찾은 덕분에 <중증외상센터>는 뻔하지만 키치하다. 특히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유쾌함이 눈길을 끈다. 그 뒤로 애써 숨겨둔 한국 의료계에 대한 자조 덕분에 <중증외상센터>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각인되기 때문이다.
뻔하디 뻔하다
사실 <중증외상센터>는 게으른 작품처럼 보일 여지도 충분하다. 한국 메디컬 드라마의 클리셰를 연상시키는 대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백강혁의 설정은 <태양의 후예>를 연상시킨다. 중동 지역 용병과의 인연 덕분에 손쉽게 위기를 탈출하는 전개나, 군인 못지않은 신체적 능력을 지녔다는 설정을 보면 '유시진'(송중기)과 '강모연'(송혜교)을 하나로 합쳤을 때 백강혁이라는 인물이 탄생한 것처럼도 보인다.
주인공과 병원 경영진 간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다. 기업 시점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경영진과 의료 관점에서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인의 시각 차이는 단순히 옳고 그름을 가를 수 없기에 언제나 흥미로운 대립이다. 병원이 환자 치료를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는 당위는 원론적으로 옳지만,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원이 먼저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설득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 외의 스토리라인도 수 차례 접한 내용의 연속이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의사가 오히려 부상을 당하는 전개는 어러 메디컬 드라마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위기다. 특별한 수술 실력을 지닌 교수가 자기 뜻에 맞는 전문의나 전공의를 찾아내고, 그들을 키워나가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 플롯은 <낭만닥터 김사부>,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에서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 바 있다.
그런데, 뭔가 다르다
물론 <중증외상센터>는 익숙함에 기대기만 한 드라마가 아니다. 색다른 지점도 존재한다. 우선 가시적으로는 로맨스의 부재가 대표적이다. 백강혁은 병원 내 그 어떤 인물과도 로맨스를 펼치지 않는다. 악연에서 인연이 될 것처럼 보이던 천장미 간호사와도 철저히 동료로 남는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얼핏 애틋한 감정을 지닌 관계성을 보여주는 순간이 종종 있지만, 그들의 감정선이 로맨스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신파를 최소화하려는 노력도 곳곳에서 엿보인다. 사실 백강혁이 의사가 된 계기는 눈물 가득하게 풀어낼 수 있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병원장을 보고 감동받아서 그처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으니까. 하지만 드라마에서 백강혁은 신파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는다. 양재원을 외상외과로 꼬시기 위해 '휴머니즘'적으로 접근하거나, 마지막으로 병원장을 설득할 때 활용할 뿐이다.
환자들을 보여주는 방식도 기존 메디컬 드라마와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중증외상센터>에서 환자는 한순간도 극을 주도하지 않는다. 그저 주인공들이 새로운 지식을 배우거나 수술법을 익혀야 할 케이스 혹은 그들이 극복해야 할 역경의 기능을 맡을 뿐이다. 각 환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들의 과거사가 얼마나 불운하거나 안타까운지에 대해서 드라마는 일절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가리지 않고 강조하기
<중증외상센터>의 특징은 근본적인 차이점을 암시하기에 더욱 흥미롭다. 웹소설을 어떻게 영상화해야 하는지 일종의 교보재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웹소설 원작을 안일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 소설이나 시나리오와는 문법 자체가 다른 웹소설의 특징을 살리기보다는 기존의 틀에 맞게 각색하여 웹소설만의 분위기를 가급적 지워왔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대표적이다. 회귀물을 한국형 아침 드라마 틀에 끼워 맞춘 나머지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미래를 안다는 이점을 활용해서 회장과 대적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대신, 단순히 상속 유산을 두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재벌 가족극의 일원으로 묘사해 버렸으니까. 장단점을 떠나서 웹소설만의 매력을 거세한 셈이다. 이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기존 틀로 웹소설을 해석하다가 중심을 잃는 경우는 결코 낯설지 않다.
<중증외상센터>는 다르다. 원작의 장르적 쾌감까지도 드라마라는 매체에서 구현하려 애쓴다. 일례로 한 에피소드 안에 여러 환자와 사건을 쏟아내면서 일시정지할 틈을 안 준다. 환자가 한 번 등장하면 여러 회차에 걸쳐 그의 서사를 보여주는 기존 드라마 작법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는 대화 중심으로 사건을 간략히 서술하면서 기승전결을 짧은 분량 내에 끝내는 웹소설 작법을 드라마 작법으로 반영했다고 볼 수도 있는 사례다.
웹소설에 충실해도 충분하다
이에 더해 대리만족 서사의 비중이 큰 웹소설의 특성도 놓치지 않았다. 남성 독자가 많은 웹소설은 주인공의 사회적 성공을 통한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크다. 여러 이해관계가 뒤엉켜 복잡한 현실과는 달리 웹소설 속 주인공은 거의 즉각적으로 성장하고, 악역에게 복수하며, 사회적인 추앙을 시원하게 쟁취한다. 이러한 사이다 행보로부터 독자들은 즉각적인 쾌감을 맛볼 수 있다.
드라마 속 백강혁은 거의 완전무결한 만화적 캐릭터다. 그는 남들이 온갖 장비를 동원해도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 환자의 부상 정도를 눈과 귀만으로도 알아낸다. 민간군사기업 소속 요원들에 버금가는 신체적 능력도 지녔다. 그러다 보니 역경을 겪는 상황이 많지 않다. 혼자 힘으로도 악역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들의 계략을 손쉽게 타파할 수 있으니까. 그나마 드라마 말미에 화재 현장에서 당한 부상이 가장 큰 위기인 정도다.
사이다 같은 웹소설 특유의 분위기와 톤을 영상 매체에서도 고스란히 재현해 냈기에 <중증외상센터>는 기존의 한국 메디컬 드라마와는 차별화된다. 다른 드라마, 넷플리스 오리지널 시리와는 다른 특유의 키치함이 느껴지는 지점인 셈이다. 일종의 이정표라고 할 수도 있다. 웹소설 고유의 감성과 톤을 약화하지 않고 강조하더라도 시청자를 매료할 수 있다는, 가장 대중적인 방증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유쾌함 속 자조, 단맛 뒤 씁쓸함
다만 <중증외상센터>의 키치함이 마냥 달지는 않다. 단맛 다음에 찾아오는 씁쓸한 여운이 유달리 길다. 한국 사회의 현실이 유달리 쓴 탓이다. 사실 환자의 생명보다 수익을 우선시하는 병원 경영진이나 정치권을 비판하는 장면은 한국 메디컬 드라마에서 숱하게 등장했다. 세 시즌에 걸쳐서 중증외상센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호소한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사례도 있다.
하지만 한국 의료계는 여전히 그림자가 짙다. 아덴만 여명 작전을 계기로 이국종 교수가 각광받은 15여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중증외상이나 필수과 의료 현장 여건이 개선되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최근에는 악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강혁이라는 슈퍼 히어로를 꿈꾸는 <중증외상센터>의 유쾌함은 자조의 다른 얼굴처럼 보인다. 백마 탄 초인 외에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반어법인 셈이다.
요컨대 <중증외상센터>는 진통제다. 아픔이나 염증의 원인을 알고도 해결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니, 굳이 들여다보는 대신 백강혁이라는 초인을 내세운 메디컬 판타지로 잠시 고통을 잊게 하는 셈이다. 이에 더해 진통제 효력이 다하는 순간에는 환상과 현실의 간극을 극대화하면서 직설적인 비판보다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유쾌함 속 자조, 단맛 뒤 찾아올 씁쓸함이 곧 <중증외상센터>만의 소구력이 아닌가 싶은 이유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매체의 경계를 넘나든 키치함 가득한 메디컬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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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워내야 채울 수 있다는 깨달음!
비워내야 채울 수 있다는 깨달음! <문경>은 번아웃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이 메시지를 오롯이 전하는 영화다. 이를 위해 인물들은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걷고, 문경의 푸른 산과 맑은 계곡 등 자연을 바라보며 힐링을 얻는다.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를 토로하며,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도 한다. 그리고 관객에게 넌지시 묻는다. 함께 비움을 실천하겠냐고.
직장인들이 매일 힘듦을 겪듯 문경(류아벨)도 예외는 아니다. 예술 전시 기획 담당 팀장인 그는 팀 내 일도 잘하고 성실한 계약직 초월(채서안)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회사는 묵묵부답. 결국 초월은 계약직 만료가 되어 홀연히 사라진다.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문경은 회사 복귀 후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복잡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초월의 고향이자 자신의 이름과 같은 문경으로 휴가를 떠난다. 그곳에서 우연히 첫 만행을 나선 비구니 가은(조재경), 길 잃은 강아지 길순을 만난 그는 유랑 할매(최수민) 집에서 신세를 진다. 그리고 그날 밤 이들은 저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아픈 과거를 꺼낸다.
<문경>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진 이들이 만나 펼치는 로드무비 형식을 취한다. 도시에 사는 직장인 문경과 산 속 사찰에서 지내던 비구니 가은은 문경이라는 특별한 곳에서 조우하고 길순이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이들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점점 필연이 되어가는 과정이 펼쳐지는데, 서로 접점 하나 없는 이들이 가까워지는 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실과 부채감이 드러나면서다.
길순이가 맺어준 거나 다름없는 이들은 유랑 할매 집에서 비로소 공통점을 찾는다. 바로 자신과 가까운 이가 세상을 떠났고, 그에 따른 상길과 부채감이 마음 깊숙이 자리해 있다는 점이다. 문경은 가수를 꿈꿨던 동생을, 가은은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특히 가은은 과거 일어났던 사회적 참사를 연상케 하는 장소의 유일한 생존자로 그 죄책감에 비구니가 되기로 결심한 것. 이들이 각각 초월과 길순이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이유는 이 전사 때문이다.
유랑 할매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후 마음의 문을 닫은 손녀 유랑(김주아)을 보살피는 그는 미리 그 아픔을 알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가득하다. 손녀만 생각하면 마음이 디비진다(뒤집히다의 경북 방언)는 그의 말에는 어른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신의 책망이 담겨있다.
이런 이들의 아픔이 치유되는 곳은 유랑 할매의 집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법한 자연처럼, 이 집은 상처받은 이들을 보듬어 주는 공간으로 표현된다. 특히 툇마루에 앉아 문경은 동생, 가은은 친구, 유랑 할매는 손녀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그동안 감춰뒀던 아픔을 끄집어내고 서로 교감한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의 공감과 이해는 비로소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집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마음을 여는 환경을 조성한다. 마치 자연이란 따뜻한 품 안에서 사람으로 받은 상처, 사람으로 치유하는 격이랄까. 물질적인 것이 아닌 마음을 나누고 배려하는 행동만으로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걸 영화는 말하고 있다.
기존 힐링 영화처럼 <문경>은 자극적인 소재나 구미를 당기는 이야기들이 별로 없다. 선유동계곡, 윤필암, 고모산성, 주암정, 진남교반, 잉카마야박물관 등 문경의 아름다운 풍광이 시선을 사로잡지만, 자칫 문경시의 홍보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사찰 음식을 먹는 듯한 심심함이 영화 전반에 깔리는데, 그 맛이 나쁘지 않다. 건강하다. 장르 영화와 비교했을 때야 단점으로 각인되지만, 영화의 메시지를 도드라지게 보이기 위한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두 시간 동안의 힐링 여정은 그 의미를 더한다.
이 영화가 힐링을 전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 건 신동일 감독의 변화된 연출력에 있다. <방문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반두비> 등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이들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조망했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문경과 가은을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이어 나간다. 단, 이전과 다르게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전 서로의 다름을 첨예한 대립으로 이끌고 갔던 작품들과 달리, <문경>에서는 그 다름을 이해하는 쪽으로 가져간다. 여성과 여성의 관계, 인간과 개(동물)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확장해 공감을 통한 연대의 가능성도 펼친다. 이는 길순의 시선으로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샷만 봐도 알 수 있다.
<문경>은 소박한 이야기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담는다. 욕심 보단 비움, 인과응보 보단 인연과보(因緣果報,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원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의 철학으로 인간 세상의 모습을 담는다. 이런 이유에서 <문경>은 지금 우리 삶에 필요한 영화라고 보인다. 기자간담회에서 문경 역을 맡은 류아벨 배우는 “그냥 우리가 사는 이야기 같은 점이 좋았다”고 작품의 매력을 소개했다. 특별함은 없지만, 봐도 봐도 마냥 좋은 자연의 모습처럼, 이 영화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여름의 마지막 끝자락, 문경으로 힐링 여행을 떠나길 바란다.
사진 제공: 트윈플러스파트너스
평점: 3.0 / 5.0
한줄평: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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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으로 물드는 사랑, 영화 <로마>
- 로마 (Roma, 2018)
제작 : 멕시코, 드라마 │ 감독 : 알폰소 쿠아론
출연 : 얄리차 아파리시오(클레오), 마리나 데 타비라(소피아)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35분뛰어난 색감 구현이 가능한 컬러영화 시대에 흑백영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흑백영화인 <로마>를 보았을 때, 색을 볼 수 없으니 왠지 답답할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차례도 답답함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흑백판으로 다시 개봉된 바 있고, 이준익 감독의 <동주>와 <자산어보>는 아예 흑백으로 제작되었다. 이에 대해 두 감독은 비슷한 이야길 한다. 봉준호 감독은 “색이 없으면 텍스쳐에 더 집중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이준익 감독 역시 “현란한 컬러를 배제하면 물체나 인물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형태가 더욱 뚜렷하게 전달된다”라고 말한다. <로마> 역시 그러했다. 이 놀라운 흑백영화가 다시 컬러판으로 재상영한다고 하면 이제는 왠지 배신감이 들 것 같을 정도다.
<로마>는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의 수도, 그 로마가 아니다.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동명의 작은 지역을 가리킨다. 그곳은 멕시코 출신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자란 곳으로, 영화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의 멕시코, 즉 알폰소 쿠아론의 어린 시절이 담긴 자전적 이야기이다.
감독의 어린 시절에는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자신을 낳고 기른 엄마 ‘소피아’. 그리고 엄마 못지않게 자신을 사랑으로 보살폈던 여인 ‘클레오’. 중산층에서 태어난 그의 집에는 입주 가정부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극 중의 ‘클레오’라는 멕시코 여성이다.
가정부 클레오가 집을 이리저리 치우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네 명의 아이들과 엄마 아빠 할머니, 그리고 분명히 그들이 고용한 고용인이지만 어쩐지 가족처럼 친밀해 보이는 클레오까지. 화목해 보이는 이 중산층이 그려질 때만 해도 영화는 따스하기만 했다.
어느 날 아빠는 해외로 출장을 떠나게 되는데, 엄마 소피아가 떠나는 아빠의 등을 움켜잡고 울먹이는 게 왠지 심상치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길로 아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에게 새 연인이 생겼고, 그래서 다시는 이 가족을 보러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 관객들은 알 수 있었는데, 천진한 아이들은 미처 이 상황을 모른다. 그 모습이 너무도 마음 아팠다.
그 무렵 가정부 클레오는 만나던 남자의 아이를 갖는다. 그러나 비겁한 남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자취를 감추었다. 영화관 앞에 앉아 도망간 남자를 기다리는 클레오의 모습은 얼마 전 소피아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마찬가지로 그 남자도 돌아올 일은 없겠지. 온기가 맴돌던 집안에 남겨진 두 명의 여자.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때는 1970년대다. 가장이던 남편이 떠난 후 네 명의 아이를 홀로 책임져야 하는 그 시절 여성의 삶은 너무도 막막하다. 내 뱃속의 애를 부인하고 내뺀 그놈 앞에 유전자 검사결과지를 뿌리며 인생을 조져주겠다는 용기도 쉬이 내기 힘들던 시절이다. 소피아는 양육비도 주지 않는 남편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일을 구하고, 클레오는 비록 아빠는 없지만 뱃속의 아이를 낳을 생각으로 지낸다. 두 여성의 삶이 그 암흑 같던 시절에 얼마나 버거웠을지는 감히 헤아리기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다행으로, 그 돌풍 속에서도 아이들만큼은 아버지의 부재를 크게 실감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이유는 당연히도, 아버지의 자리를 메우는 두 여성의 눈부신 애정이 있었기 때문. 관객들은 알고 있었다. 그녀들만큼은 이 아이들, 이 집을 떠나지 않을 거란 걸. ‘부모와 아이들’로 구성되어있던 한 가족은, 그렇게 점차 ‘두 엄마(소피아와 클레오)와 아이들’이라는 새로운 가족형태로 자리 잡아가고, 고용주-고용인 관계였던 소피아와 클레오의 관계도 여성 간의 연대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자신의 물건을 챙기러 집에 들르기로 한 날, 가족은 여행을 떠난다. 물론 여기서의 가족은 엄마 소피아와 가정부 클레오 그리고 아이들이다. 제법 단단해진 엄마 소피아는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이제 아빠는 오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아이들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말. “아빠가 더는 우리를 안 사랑하세요?” 아니, 많이 사랑하시지. “그럼 언제 볼 수 있어요?” 그건 엄마도 몰라.
경제적 지원마저 끊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야 했을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당시 쿠아론 감독은 고작 열 살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왜 돌아오지 않는지, 넷 씩이나 자식을 낳아놓고도 왜 돈을 보내주지 못하는지, 아이들도 소피아도 나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비정한 남자를 대신해 그 옆에 앉아 아이들의 밥을 먹이는 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클레오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이들은 다소 파도가 거세 보이는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 위험하니 깊은 곳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은 영 듣지 않으며. 결국 아이들은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지고, 이를 지켜보던 클레오가 놀라 성큼성큼 바다로 들어간다. (클레오는 이 여행을 오기 전, 멕시코 독재정부를 타도하는 시위대가 정부의 총격에 맞아 학살당하는 것을 보고 유산을 했다.) 그녀는, 죽을 뻔한 아이를 건져내고는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때 달려온 엄마 소피아는 그녀와 아이들을 부둥켜안으며 이렇게 말한다. “클레오, 우린 너를 사랑한단다. 정말로 사랑한단다.” 유산한 클레오의 곁에 있던 것도, 그 남자가 아닌 고용주 소피아와 그 가족들이었다.
그야말로 눈물이 주룩주룩. 지켜주겠다고 맹세했던 이 두 여인의 남자들은 어디 있는가. 바닷가에서 두 여인과 아이들이 오랫동안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그들은 여지없는 분명한 가족이었다.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이런 것일까. 이 영화에는 색감뿐 아니라 음악도 없는데, 영화의 매력적인 두 요소가 빠졌다는 게 정말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이라 표현하긴 진부하고, 가족애라 표현하기엔 편협한 어떤 커다란 감정이, 오로지 이 영화를 채우는 전부다. 하지만 모자람을 느낄 겨를 따윈 없다는 거.
새소리로 지저귀며 끝나는 이 영화의 엔딩을 통해, 쿠아론 감독이 두 여인의 사랑 속에 얼마나 따뜻한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가족은 다시 그들의 일상을 영위해나간다.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바다에서 빠져 죽을 뻔한 이야기를 전하고, 클레오는 유산 후의 실어증을 극복하며, 소피아는 새로운 직장과 새로운 삶을 꿈꾸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알폰소 쿠아론이라는 명 감독을 선물해 준, 감독의 두 여인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그녀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알폰소 쿠아론이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녀들은 과연 엄마이자 아빠였고, 그 사랑은 가족애라는 개념을 넘어선 연대정신이었다. 쿠아론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묵직하고 다정한 시선은, 자신을 키워낸 여인들의 그 따스한 품에서 피어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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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롤 (2016)
-줄거리를 포함한 글입니다.-
영화 <캐롤>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우아한 시선으로 가득 채워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시선으로, 섬세한 손짓으로, 작은 표정의 변화로 뜨거운 열애의 감정과 열애가 동반하는 열병을 묘사한다. 잘 만든 영화들은 이렇듯 말하지 않는 것으로 작품을 이야기한다. 이야기꾼의 구구절절한 이야기 대신, 영상에서 보여지는 수많은 미쟝센들로 관객 각자의 감상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영상의 힘이 느껴진다. 시각적인 요소들로 이야기를 깊이 있게 전달하는 이 영화 특유의 방식뿐만 아니라, 만듦새 또한 훌륭하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붙이고,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의 여운과 깊이를 더하는 사운드, 그리고 촘촘하게 꿰어 흠잡을 데 없는 서사까지. <캐롤>은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멜로 영화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섬세한 시선과 작은 손짓까지 집중하여 영화가 다루는 사랑의 깊이와 여운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이야기의 매력 또한 깊고 진하다.
섬세한 시선과 작은 손짓까지 집중하여 영화가 다루는 사랑의 깊이와 여운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이야기의 매력 또한 깊고 진하다. 어린 여성 테레즈를 사랑하는 캐롤과 우아하지만 자신보다 연상의 여성 캐롤에게 빠져버린 테레즈. 언뜻 고등학생 소녀들의 철없는 이야기처럼 들리는 사랑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는 결말을 도출해낼 수 있고, 이렇듯 촘촘하게 꿰어낸 영화의 서사 속에서 건져 올린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는 영화의 가정(假定)을 통해 우리가 이를 수 있는 기품있는 삶의 모습을 ‘캐롤’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테레즈의 시선은 온전히 테레즈의 것이 분명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 역시 테레즈의 시선에서 캐롤을 홀린듯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또 다른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영화 <캐롤>이다.
1. 시선과 손짓, 목소리, 그 작은 뉘앙스들까지 집중하다.
영화 <캐롤>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향수를 자극하는 한편, 캐릭터들의 말보다 시선이나 손짓과 같은 비언어적 수단들을 통해 사랑의 감각, 특히 오랜 첫사랑과 옛사랑의 감각을 자극한다. 테레즈와 캐롤의 첫만남에서 테레즈가 보여준 시선,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오로지 한명을 향한 그 묵묵한 시선과 사라진 그녀를 찾는 시선과 그녀를 찾은 후에 테레즈의 얼굴레 떠오르는 미소와 애정어린 시선은 마치 오래전 첫 사랑에게 시선을 빼았겼던 우리의 한 때를 떠올리게 만든다.
시선이나 손짓과 같은 비언어적 수단들을 통해 사랑의 감각, 특히 오랜 첫사랑과 옛사랑의 감각을 자극한다.
캐롤을 위한 선물세트를 세심하게 추천해주는 테레즈의 모습, 자신이 빠져버린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재차 상관에게 선물세트의 배송여부를 묻는 모습, 캐롤과의 약속자리에서 그녀를 계속해서 힐끗힐끗 바라보는 테레즈의 모습 등, 영화의 초반에 보여지는 테레즈의 모습에선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젊은 이의 열렬한 시선을 느낄수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언젠가 우리들이 가졌을 시선이기도 하다. 이렇듯, 캐롤을 쫓는 테레즈의 시선으로 쓰여진 영화 <캐롤>은 그 시선을 따라가는 것으로 관객들이 갖고 있는 오래된 첫사랑의 기억과 감각들을 자극하는 한편으로, 영화속 테레즈의 시선을 같이 하다보면 캐롤에게 반할 수밖에 없다.
2. 열정은 열병을 동반하고
2-1. 망설이는 테레즈
이렇듯 테레즈의 시선을 따라가며 캐롤과 테레즈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 <캐롤>속 캐롤을 향한 테레즈의 열렬한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열기를 더해간다. 첫만남에서 캐롤에게 분명한 호감을 느낀 테레즈이지만, 테레즈는 다소 망설인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캐럴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캐럴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존재하는 리처드와, 리처드와 함께 하는 일반적인 삶을 두고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캐롤의 점심식사 제안을 망설이며 수락하는 모습이나, “여자를 사랑하기라도 하는”지 묻는 리처드의 대답에 아니라고 분명히 대답하는 모습을 통해서 테레즈가 주저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테레즈가 리처드와 캐럴에게 한 “결정하지 못했다”는 그 말은 리처드와의 결혼을 결정하지 못했다는 의미인 동시에 캐롤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 역시 아직 확신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2-2. 망설이는 테레즈를 이끄는 캐롤
반면, 캐롤은 테레즈를 거침없이 이끈다. 점심 약속을 사양하려는 테레즈의 말을 자르고 약속을 잡는 캐롤, 자신의 집으로 테레즈를 초대하고, 테레즈가 촬영한 사진들을 보여달라고 요청하고, 혼자 떠나는 여행에 테레즈를 데려가는 캐롤. 테레즈가 망설일 때마다 캐롤은 테레즈를 자신에게로 이끈다.
테레즈가 망설일 때마다 캐롤은 테레즈를 자신에게로 이끈다.
자신을 끊임없이 이끌어가는 캐롤을 따라가는 테레즈는 어느덧 긴장한 표정과 머뭇거리는 태도를 버리고 편안한 표정과 그윽한 시선으로 캐롤을 바라본다. 캐롤이 내민 손을 잡고, 이젠 캐롤의 세계에 흠뻑 빠진 테레즈는 더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2-3. 열정은 열병을 동반한채로
문제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진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루어질수록 위험해지는 기이한 관계다. 이 관계의 가장 큰 문제는 캐롤이 테레즈를 사랑하는 것으로 자신의 딸 린디의 양육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다. 남편과의 이별은 캐롤에게 큰 문제는 아니다. 다만, 딸과의 이별은 캐롤에게 너무 큰 문제다. 이혼 소송중인 캐롤은 소송중에 테레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이를 알아챈 캐롤의 남편인 하지의 변호인들은 캐롤의 동성애적 성향과 외도를 지적하며 캐롤에게서 양육권을 박탈하고, 접근 금지 명령을 요구한다. 캐롤은 딸의 양육권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한 통의 편지를 남겨 놓고 테레즈를 떠난다.
캐롤은 딸의 양육권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한 통의 편지를 남겨 놓고 테레즈를 떠난다.
-내 사랑에게.
세상에 우연은 없어요. 그리고 언젠가 하지도 알게 될 일이었어요.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에요. 차라리 일찍 이렇게 된 걸 감사히 생각해요. 이렇게 말하는 날 모질다 하겠지만, 당신을 납득시킬 말이 없어요. 내가 당신에게 당신은 젊기 때문에 해결책과 해명에 매달리는 거라 말하더라도 화내지 말아요. 언젠가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에요. 그날이 오면, 그곳에서 당신을 반겨줄게요. 영원한 일출처럼 우리 앞에 펼쳐진 삶을. 하지만, 그때까진 만나지 않기로 해요. 나는 해야 할 일들이 많아요. 당신은 나보다 더 많겠죠. 당신의 행복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어요. 해줄수 있는 게 이것 뿐이에요. 당신을 ‘놓아’줄게요.
3. 품위있는 삶을 위하여.
캐롤은 테레즈를 떠나보내고, 한동안 홀로 시간을 보내고 양육권 분쟁의 자리에 선다. 법정싸움은 진흙탕 싸움이다. 상대방의 변호인은 캐롤의 외도와 동성애적 기질을 문제삼아 양육권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캐롤의 변호인은 외도의 증거가 불법촬영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그간의 결혼 생활에서 남편 하지의 행실이 이혼을 초래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적정선을 모르고 서로를 끌어내리는 말들 속에서 캐롤은 모든 말들을 멈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C : “우린 서로에게 린디를 줬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왜 서로에게 못 뺏어 안달을 해야 돼? 테레즈와의 일은...내가 원했던 거야.”
C : “난 순교자도 아니고, 날 위한 최선이 뭔지도 모르지만... 내 딸을 위한 최선이 뭔지는 본능적으로 알아. 하지만, 방문권은 얻어야겠어.”
C : “날 부정하면서 살아간다면... 린디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
캐롤은 양육권 분쟁에서 한 발 물러선다. 그것은 단순히 린디보다 테레즈를 사랑하는 이유가 아니라, 테레즈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어떤 이유에서든 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캐롤은 테레즈와의 만남이 신경쇠약으로 인한 외도가 아닌, 진실한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며, 그 증명을 통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캐롤이 얻는 것은 ‘자존’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 세상이 신경쇠약이라고 함부로 단정짓지 않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하는 것. 그리고, 이 자존을 지켜내는 과정,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또 다른 존엄한 사랑의 방식임을 깨닫는다.
한편, 캐롤이 떠나고 백화점 종업원이었던 테레즈는 뉴욕타임즈에 취직했다. 캐롤의 말처럼, 테레즈는 안정적인 자리를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지금 테레즈의 이 자리가 바로 캐롤이 말한 ‘제 자리’일지도 모른다. 캐롤은 테레즈의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저녁 약속을 제안한다. 저녁 약속자리에서 만난 캐롤과 테레즈. 캐롤은 테레즈에게 잠시후에 있을 저녁 식사에 와줄 수 있겠냐고 묻는데, 테레즈의 동료 잭이 나타나서 테레즈에게 또 다른 저녁 약속을 제안한다. 캐롤은 이전과는 다르게 테레즈의 마음을 존중하며, 테레즈와의 관계에서도 한 발 물러선다. 캐롤은 이제 사랑하는 이들을 소유하는 것, 린디의 양육권을 얻는 일이나 테레즈를 자신의 곁에 두고자 하는 마음을 접어놓는다. 캐롤은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사랑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가능함을 알게 된다. 캐롤은 여지껏 이 영화에서 보여진 남성들의 ‘갖는 것’으로 얻게 되는 사랑의 방식에서 벗어나 그저 주는 것으로 테레즈와 린디를 사랑하고자 한다.
캐롤은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사랑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가능함을 알게 된다.
4. 먼 길을 돌고 돌아, 나의 자리는 당신의 곁임을.
캐롤이 자신을 사랑하고자 하는 그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테레즈는 잭의 제안을 수락하고 필의 파티에 참석한다. 그곳에는 테레즈와 같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술과 음악, 춤을 추며 젊음을 누리고 있다. 캐롤의 말처럼 그곳은 이제야 활짝 핀 꽃과 같은 젊음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테레즈에게 ‘제 자리’란 바로 그 곳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테레즈의 귀에 이들의 목소리는 소음처럼 들리며 스쳐지나갈 뿐이다. 파티에서 테레즈가 목격한 것은 그곳이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뿐이다. 한때 자신이 전부라고 말했던 리처드는 이제 다른 여자와 춤을 추고 있고, 테레즈에게 키스를 하려고 했던 대니는 다른 여자를 품에 둔 채 여전히 영화를 보며, 대사들을 필사하고 있다. 테레즈는 이 파티에서 자신의 '자리'가 그곳에는 없음을 확인하고, 캐롤에게 돌아간다.
5. 뜨겁던 열기는 다소간 식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잔열(殘熱).
두 사람은 첫 만남 때처럼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거리를 둔 채로 재회한다. 다만, 첫 만남과는 달리 먼 곳에 있는 캐롤을 응시하는 테레즈의 표정은 좀처럼 읽을 수 없다. 표정의 미세한 변화가 있 는듯 하지만, 너무도 미세해서 그것이 어떤 감정을 담은 미세한 떨림인지 추측하기 어렵다. 반면, 테레즈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는 캐롤은 테레즈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여유롭고 분명한 미소를 짓는다. 첫만남에서 테레즈가 캐롤에게 미소로 응대한 것과 반대로, 마지막 만남에선 캐롤이 테레즈를 미소로 맞이한다. 그리고 테레즈의 미소가 열정이 녹아있는 열띤 미소였던 것과 달리, 캐롤의 미소는 열병을 다 앓고 난 후 지을법한 여유로운 미소로 읽힌다.
자신을 찾아온 테레즈를 보고 짓는 캐롤의 따뜻한 미소를 통해 사랑의 잔열(殘熱)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여전히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테레즈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이유로 그 후의 이야기를 추측하기 어렵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두 사람의 뜨겁던 열정도 지나갔고, 그 열정이 가져온 열병도 지나갔다는 점이다. 즉 이제는 뜨거웠던 처음의 열기는 찾을 수 없을테지만, 엔딩씬에서 캐롤을 끈덕지게 좇는 테레즈의 시선과 그녀를 찾아 황급히 가는 그 발걸음, 자신을 찾아온 테레즈를 보고 짓는 캐롤의 따뜻한 미소를 통해 사랑의 잔열(殘熱)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여전히, 그리고 충분히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삶과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도 이런 따뜻한 잔열들이 이어지면서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두 사람의 미래가 다시 이전처럼 뜨거운 온기를 되찾지는 못하더라도, 따뜻한 잔열들로 그 관계가 계속되리라는 기대감과 깊은 여운을 남기는 멜로 영화 <캐롤>이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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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히어로의 독특한 설정을 가져가는 영화 <마녀>는 한국에서 보기 힘들던, 만화나 웹툰에 가까운 영화들로 젋은 층에게 호응을 얻으면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입니다. 실질적으로 1인 2역을 맡은 김다미가 ‘마녀’ 역을 충실히 소화해 냈다는 호평과 더불어 액션, 편집, CG기술 또한 놀라운 성과를 보인 작품입니다.
"너나 잘하세요"
-친절한 금자씨-
"니가 크거든, 내게 복수하러 오거라."
-킬 빌-
각박한 세상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이 영화 주인공 처럼!
외부 압력에 꿋꿋이 버텨내는 주인공들과 화려한 액션, 복수극으로 쌓였던 스트레스 해소해보세요!
요번주 폭염 조심하시구요. 금요일날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큐레이터 AMY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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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토대위의 완성형 오컬트,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기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출처 : 왓챠피디아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과 ‘봉길’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이 합류한다.
“전부 잘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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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2월, 오컬트를 좋아하는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던 영화가 개봉했다. 한 줌에 불과한 오컬트판에서 그저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던, 절대 기대할 수도 없었던 천만 관객이 나온 <파묘>이다. <파묘>는 시작부터 달랐다. 웰메이드 오컬트 작품을 찾아보기 힘든 나로서는 큰 감명을 받았던 <검은 사제들>을 연출하신 감독님께서 또 다시 같은 장르의 영화를 만드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오매불망 극장 개봉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메인 포스터와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단숨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도 그럴게, 예고편에 드러난 스토리가 기대했던 만큼 흥미로웠으며 포스터 디자인은 그러한 기대감을 최대한으로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출처 : CGV
각 등장인물의 시선이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었다. 수많은 디자인 요소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미니멀한 형태로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가 쉽지 않은데, <파묘>가 그걸 해낸 것이다. 한국 오컬트의 근간에 있는 '풍수지리'를 활용함은 등장인물 중 '풍수사'가 있었기에 예상할 수 있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동서남북의 개념을 메인 포스터에 적용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더욱 새롭게 다가왔던 거 같다. 보통 극의 전체적인 내용과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담으려고 하지, 디테일한 소재를 활용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점부터 나는 '아, 감독님께서 기초부터 꽉 잡고 가는구나' 싶어서 스토리에 대한 기대가 더더욱 커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처 : CGV
위 버전의 포스터 또한 너무 취향이었다. 가장 먼저 공개되었던 캐릭터 포스터처럼 미니멀한 구성임에도 여느 포스터보다도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경문이 써져 있는 얼굴을 클로즈업함으로써, 긴장된 표정과 눈빛이 강렬하게 다가오고, 스토리의 진행이 얼마나 긴박할지 은연중에 상상하게 되는 즐거움 또한 이끌어냈던 거 같다. 각 캐릭터의 얼굴 일부만을 배경으로 사용하여 영화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되, 여백을 살리는 디자인으로 타이틀 또한 각인되었기 때문에 '홍보' 포스터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고 감히 생각한다.
'파묘', 이토록 직관적인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한 것도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한국 오컬트 중에서도 특히나 '묘'와 관련된 속설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퍼져 있기 마련이다. 묫자리는 해가 잘 드는 곳으로 해야 한다, 묘가 있는 부근에서 무언가 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 등 예로부터 이어진 유교 사상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현상들을 위와 같은 미신들로 이미 인식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파묘>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공동체를 정확하게 건드렸다. 묘를 파헤쳤다고! 큰일났네, 대체 무슨 일이 생길까?
포인트1. 오컬트와 미스터리의 곁들임
오컬트는 곧 종교이자, (나에게) 종교는 곧 오컬트이다. 사람의 맹목적인 믿음과 순수한 신념은 아이러니하게도 괴기스러운 이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살린다. 장재현 감독의 연출작 중 <검은 사제들> 또한 이러한 공식을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서양 오컬트의 주요 소재인 '악마'와 '엑소시스트'를 거의 그대로 끌고 왔다는 점에서, 물론 연출은 독보적이고 완벽했지만, 여타 외국 작품들에서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를 떠나 이제는 조금 더 한국스러운 오컬트를 갈망하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파묘>가 이 부분을 완벽하게 간파한 것이다.
출처 : 왓챠피디아
한국식, 아니, 조금 더 넓게 가보자. 동양적인 오컬트란 뭘까? 개인적으로 동양의 오컬트 근간에는 '음양오행'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주의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어떠한 이상현상이나 초자연적인 일을 이해해보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바로 그 공식이다. '금, 수, 목, 화, 토'의 다섯 가지 원리에 따라 우주의 만물이 생성하고 또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보는 사주에는 수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퍼져 있는 '오행'은 스스로의 인생을 파악하기에 간단한 방법으로 일컬어진다. 예를 들어, 모 연예인의 사주에 '수'가 부족해 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승승장구했다거나 하는, 일반인들도 피해갈 수 없는 정설과도 같은 미신이다. 다른 예로 SNS에 밈처럼 퍼져 있는 일화를 보면, 문신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시선도 '사주에 ㅇㅇ이/가 부족해서 했어요'라고 하면 납득하게 된다는, 그런 우스갯소리로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출처 : 왓챠피디아
<파묘>는 한국의 무교와 연관되어 있는 여러 직업이 한 데 모인다. 직접 영가를 파악하고 굿을 진행하는 무당, 그 옆에서 경문을 외는 또 다른 무당, 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지관, 그 옆에서 마지막까지 예우를 다 하는 장의사. 어떻게 보면 모두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이들이 '묘'라는 하나의 소재로 모여 각자의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매우 매력적이다. 여러 개의 장으로 나누어질 만큼 복잡했던 <파묘>의 극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이들이 처음 묘를 보러 갈 때 끝없이 이어지는 산 속을 굽이굽이 들어간다.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를 자처하여 들어가는 모습과도 같다. 그리고 이들은 경로를 잘못 들어가게 된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초~중반부까지 이어지는 숨막히는 전개로 한 사건이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숨을 돌릴 시간도 주지 않고 후반부가 시작되며 위 나레이션이 나온다. 내비게이션 음성을 활용한 트랜지션은 정말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미스터리함을 가중시키는 데 한 몫 했다. 이대로 끝이기에는 아쉬운 타이밍이었고, 그런데 대체 일이 어떻게 꼬이려나 상상도 안 되던 시점에 '첩장'이 나온다. 그리고 이 문제상황을 발견한 인물은 다름아닌 상덕이다. 처음부터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피하고 싶어했던 상덕이 오히려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는 발걸음을 하게 된다. 수직으로 꽂혀 있는 거대한 무덤은 서양 오컬트의 '역십자가'를 떠올리게 했다. 순수한 믿음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거꾸로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죽은 자의 영원한 안녕을 바라는 무덤이 수직으로 서 있을 수는 없는 거다.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는 본능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알아챈다.
포인트2. 인상깊은 연출
출처 : 왓챠피디아
여러 등장인물 중 무당 조합이 <파묘>의 흥행을 이끌었다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현대적으로 풀어낸 무당의 모습만으로도 획기적인데, 생사가 오가는 오컬트 세계관에서 두 인물의 서사까지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병에 걸려 평범한 삶을 포기한 후배가, 선배와 같이 있기만 하면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완벽한 캐릭터 디자인은 감독의 투철한 자료 수집에서 기인했다.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무당에 관한 정보를 찾아 다니던 중, 신병을 겪고 무교에 발을 들이며 몸에 경문을 문신한 분을 뵐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봉길'의 삶은, 섬세한 고증을 통해 더욱 실감나게 구현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출처 : 왓챠피디아
이름 없는 묘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 또한 다시금 언급하고 싶다. 뱀의 움직임처럼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을 직부감으로 담아낸 쇼트와 긴장감을 더해주는 사운드가 나오다가, 한 순간 끊긴다. 적막이다. 무덤과 그 뒤쪽으로 이어지는 숲을 매우 넓게 잡은 롱 쇼트는 그러한 정적과 소름 돋게 잘 어울렸다. 광활한 풍경이 주는 압도감을 적절하게 활용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배경에서 이어지는 화림의 대살굿 씬은 컷 연결부터 사운드 디자인까지 정말 완벽했다. 새까만 재를 얼굴에 바르는 화림의 강렬한 눈빛과, 그 뒤를 받쳐주는 봉길의 기세 있는 목소리는 지금까지 접한 '굿'을 재현한 장면들 중 가장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서양의 엑소시스트와 동양의 굿은 어떻게 보면 일반인에게는 그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성립이 되는가, 하는 갑론을박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분야이기에 조금 동떨어진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파묘>의 굿 시퀀스는 매우 차별적이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온 힘을 다 해 지금의 행위에 임하고 있는지 화면 너머의 관객인 나조차도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출처 : 왓챠피디아
이외에도 정말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있는데, 첫 번째 관이 열리고 그 혼령이 여기저기 날뛸 때, 과연 전화를 하는 상덕이 진짜일까, 문 앞에서 말하고 있는 상덕이 진짜일까? 하는 나폴리탄 괴담식 공포가 그대로 매체에 드러난 경우는 처음이라 속으로 굉장히 반가웠다. 공포 장르에서도 다른 시각/청각적 요소 없이 텍스트로만 즐기는 나폴리탄 괴담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소소하게 즐기고 있던 소재가 이렇게 영화의 한 장면으로 활용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롭고 흥미로웠다.
출처 : 쇼박스
그리고 도깨비놀이! 오컬트 장르답게 생소한 옛 설화를 기반으로 호러스러운 장면을 구현한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사실 '도깨비놀이'는 정확하지 않은 출처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명확한 행위가 있긴 하지만, '대화'만으로 영가를 속여 불러온다는 방법 자체가 오컬트에서 바이블로 등장하는 분신사바/위자보드와 같은 기묘한 분위기 그 자체이기에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미스터리함에 적절한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전통적인 기괴함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이에 더해, 제한된 공간에서 어떠한 물리적 상호작용 없이 네 사람만의 대화 흐름에 맞추어 카메라가 움직이며 다이나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부분 또한 감탄스러웠다. 도깨비놀이 자체는 제주도에서 발현된 일종의 굿이지만, 모든 지역의 사투리가 활용되었다는 요소도 꽤 매력적이었다. 절대 한 데 존재할 수 없는 각자의 지역적 특징을 지닌 것들이 일상적이지 않은 목표로 모여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고 이 세상 것이 아닌 무언가를 부르고 있다, 는 모순적인 상황에 혼란한 심리가 완벽하게 작용되었다고 본다.
물론, 아쉬웠던 부분도 몇 가지 있다. 초반에 화림과 상덕의 나레이션을 통해 사건의 시작과 등장인물들의 특성을 설명했던 만큼, 이후에도 설명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이 있었다. 특히 두 번째 관이 열리고 오니가 처음 등장한 직후, 화림이 혼령과 정령의 차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상덕에게 이야기할 때, 앞으로 우리가 결말을 위해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알게 되는 중요한 장면인 거 같은데 그저 말로만 설명하는 전개가 조금 아쉬웠다. 짧은 몽타주로 구성되고 끝났던 화림의 일본 요괴에 대한 끔찍했던 일화를 조금만 더 자세히 다루었다면 훨씬 매력 있게 표현될 수 있었을 거 같아서 더욱 마음에 남았던 거 같다.
1장에서 간접적으로 다가왔던 공포 요소와 달리, 2장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오니의 모습으로 인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표했을 것이다. 현실적인 공포가 아닌 판타지물에 나올 법한 크리처의 느낌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크리처 소재를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나로서는 마음 속으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커다랗고 붉은 공으로 디자인된 <파묘>의 도깨비불은 평소에 '도깨비불'이라는 소재 자체에 큰 흥미를 가지고 어떤 장르에서 어떤 형태로 활용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던 나에게는 또 다시 실망스러운 부분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모든 이를 무력화시켰던 오니를 무찌르는 방법이 음양오행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인 '금과 목은 상극이다'였다는 게, 누구보다도 전문가인 지관 '상덕'이 마지막에서야 깨달았다는 설정까지 결정적인 단서라고 보기엔 부족했기 때문에 다소 아쉬웠다.
포인트3. 역사적 의의
출처 : 왓챠피디아
<파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탄탄한 역사적 소재의 기반 위에 오컬트를 잘 올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정기가 흐르는 산맥에 철심을 박아서 그 기운을 끊어버린다는 속설, 오랜 시간 동안 별 거 아닌 미신이라고 여겨졌으나 계속 회자되는 증거와 영화 개봉 당시 대중들의 반응으로 하여금 해당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할 필요성이 분명히 있었음을 입증했다고 본다. 당시 삼일절이 가까워지던 시기에 개봉했던 점과, 극중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이 독립운동가의 성함 그자체이며, 영화 구석구석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이스터에그를 심어 놓았다는 것이 결합되어 큰 시너지를 냈다고 판단된다.
올해로 제106주년 삼일절을 맞았지만, 일본의 만행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파묘>는 매우 직설적이고 명확한 연출로 일제강점기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의식하고 기억해야 할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독립운동과 광복을 넘어, 독재와 민주화운동까지. 말 그대로 피로 쓰여진 우리의 자유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여담으로, 명백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영화 <파묘>는 동물권에 대해 올바르지 않은 태도로 임한 사실이 있다. 제작사 측에서 피드백을 통해 자정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긴 했으나, 작품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 직접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는 부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배우가 먹어야 할 은어를 감쪽같이 젤리로 만들고 여우 또한 CG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을 뿐만 아니라 마케팅 요소로 활용했으면서, 오로지 촬영을 위해 살아 있는 은어를 대량으로 죽이고 실제 돼지의 사체를 폭력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작품을 소비해야 마땅하다고 판단된다. 이는 공포/오컬트 장르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관련 종사자와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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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4] 자살을 선택한 사람에 대한 세심한 접근
Rabbitgumi 입니다! 김혜수 배우가 주연한 영화 내가 죽던 날 을 보고 왔어요.
자살한 아이에 대한 수사를 종결시키기 위해 마무리 수사를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데요.
한 사람이 자살로 이르는 심리묘사가 탁월합니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이 자살보다는 좀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사람의 믿음과 도움을 통해 보여주려 합니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좋은 드라마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봐주세요!^^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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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벤져스 1편 삭제씬 총정리
#산돌구름 #어벤져스1 #삭제씬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4. 08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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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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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인트로
00:34 마리아 힐 & 오프닝
01:35 외로운 캡틴
03:35 캡틴과 웨이트리스
04:37 경찰 비하인드
05:23 앤트맨 힌트
06:09 너무 오랜만에 찾아왔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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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사막의 왕> 티저 예고편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있어. 바로 평범한 삶이야.”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사막의 왕〉 티저 예고편 공개! 〈D.P.〉 김보통 작가와 왓챠의 만남! 〈사막의 왕〉은 12월 16일 왓챠에서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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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티저 예고편
무너진 서울 속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이 내가 사는 아파트?..?! 이병헌 X 박서준 X 박보영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번 여름, 극장에서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