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05-06 12:54:55
[JIFF 데일리] 매혹하며 사유하게 만드는 영화들
〈사담 후세인 숨기기〉 〈연습〉 〈사회주의 리얼리즘〉

사담 후세인 숨기기
월드시네마

어느 날 누군가 평온한 시골집을 찾는다. 그는 사담 후세인으로 15만 미군의 추격을 받는 중이다. 후세인은 집 주인이자 농부인 알라 나미크에게 자신을 숨겨달라고 요청한다. 나미크는 미군의 보복과 사담 후세인의 권위, 무엇보다 가족의 안위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져 걱정에 휘말리지만 손님을 접대하는 농부의 전통에 따라 후세인에게 235일간 비밀 거처를 마련해준다. 그는 사담 후세인의 주치의, 경호원, 미용사, 운전수, 요리사 역할을 동시에 했으며 무엇보다 그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결국 미군에 발각된 후에는 8개월간 수감되어 끔찍한 고문과 성 학대로 유명한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고초를 치르기도 했다. 영화는 알라 나미크의 회고를 통해 세계를 들썩이게 한 이 모든 사건을 차근히 톺으며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려준다. 평범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사건을 홀로 마주해야만 할 때 어떤 태도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질문하는 매우 흡인력 있는 다큐멘터리다.
연습
국제경쟁

노르웨이의 급진적 기후 활동가이자 촉망받는 트럼펫 연주자 트리네는 어느 날 명망 있는 음악인에게 오디션 참석을 제안받는다. 문제는 트리네의 집에서 오디션장인 오슬로까지 1,500킬로미터가 넘는다는 점. 비행기를 타면 금방이지만 기후 활동가로서 비행기를 타지 않는 트리네는 히치하이킹으로 오슬로에 가기로 한다. 당연히 온갖 어려움과 불편함, 두려움이 수도 없이 발생하고 연습조차 여의치 않다. 트리네는 과연 오디션장에 제때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좋은 환경에서 연습하고 컨디션을 관리해온 다른 연주자들보다 잘할 수 있을까?
기존 사회의 작동 방식을 비판하는 신념을 갖고 살아가려면 결연하고 혹독한 ‘연습’이 필요하다. 트리네는 오슬로를 향한 여정 곳곳 그리고 그녀의 상상 속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트럼펫을 연주하는데, 이 장면에서 그녀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트럼펫을 연주할 수 있는 미래 말이다. 트리네에게 동의하든 그 반대 입장이든 이상과 현실, 타협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결연한 의지에서 무언가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마스터즈

1973년 칠레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아옌데가 집권하고 같은 해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의 일을 다룬 영화로, 2019년 라울 루이스 감독의 비공개 촬영본을 발견한 동료 감독이 이를 편집해 복원했다고 한다.
영화 도입부와 말미에는 당시의 혁명적 사회 분위기를 포착한 다큐멘터리 장면이 나오고 중간에는 픽션 장면이 나온다. 어딘가 관료적으로 보이는 당과 당의 신중함이 답답한 노동자 집단의 논쟁, 지식인과 소부르주아지들이 자신들이 과연 혁명의 주체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논쟁, 노동자들이 점거한 공장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을 처리하는 장면, 도둑질로 공장에서 쫓겨난 남자가 우익 폭력단에게 사주받는 장면 등 혁명 직후와 쿠데타 직전의 난맥상을 고루 볼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미공개 영상을 이어 붙였다는 점에서 영화적으로도, 혁명이 결코 하루아침에 세상을 완벽하게 바꾸지 못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다는 점에서도 ‘공백’이 많은 영화다. 그러나 이 공백은 관객에게 영화에 생산적으로 개입하기를 요청한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며 혁명의 체계 없음에 고개를 저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오히려 반대다. 혁명은 이 모든 지난한 난장을 생산적 힘으로 전환하는 역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5회 국제전주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위 영화의 상영 시간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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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을 가는 행위의 의미
영화관을 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되어가고 있는가.
그리 길지 않은 과거에 추석 특선 영화라는 개념이 있었고, 연휴에 관객을 붙잡을 가족 영화가 많았던 것 같다. 지금도 물론 가족 영화는 꾸준히 개봉되고는 있지만 현재 시점의 관객들은 그 영화가 영화관에서 볼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부터 확인하는 경향이 생겼다. 물론 이전에도 평점을 찾아보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이 단어가 이전처럼 영화를 보고자 하면 영화관부터 직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가 굳이 영화관까지 찾아가서 볼만한 가치가 있는지 찾아본다는 것이다.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에 함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OTT가 성행하다보니 새로이 생겨난 기준인 영화관까지 가서 볼 가치가 있는지 등이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방식이 영화관 독점이었을 시절과는 달리, 컨텐츠 보급이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졌으니 굳이의 영역인 영화관을 방문해서 이 영화관을 온 사람들의 시간을 아깝지 않게 해야만이 영화관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물론 누가 영화관에 오는 일을 쓸모없게 만들고 싶겠냐마는 관객이 영화관을 오기까지 결정하고 실행하는데에 이 영화가 확실하게 구미가 당기고 돈을 쓰기 아깝지 않은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할 이전보다 확실한 보증수표가 필요한 것이다.
흥행을 그나마 보증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캐스팅인가? 배우의 존재 또한 중요하지만 예전만큼 꼭 이 배우가 나와서 이 영화를 보러 간다는 인식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굳이 영화관까지 오는 이 귀찮은 일을 하는데 대배우 캐스팅 여부는 아주 약간의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흥행에 큰 지표가 되진 않는 듯하다.
하지만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 점은 오락 액션 장르는 여전히 성행하는 점이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성공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외 잔잔한 장르와 수입영화 장르는 이후에 OTT로 볼 수 있으니 영화관을 가는 것이 이득인지 아닌지를 계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영화를 보는 방식이 다양해졌지만 뭔가 영화관을 가는 이유는 무엇보다 단순해졌다. 영화관에서 생생한 음향과 큰 화면으로 보아야만 하는 영화만이 살아남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관을 가는 데에 이토록 계산적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아까도 언급했지만 OTT에 다양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볼 수 있는 컨텐츠들이 즐비하지만 그것보다도 영화관의 가격 인상도 한 몫 한 것 같다. 15000원이 넘는 돈을 주고 영화를 보았을 때 내가 돈이 아까운가를 고민하게 되는, 가성비를 따지게 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예술을 소비하는 데에 돈을 아까워하면 되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관객은 내가 돈을 쓴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컨텐츠들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미술 전시의 경우, SNS에서 공유되기 좋은 사진 스팟, 인스타핫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예전의 고루한 이미지에서 벗어났다고 한다면, 영화 산업은 형식에서 벗어나기 힘든 문화 장르이다.
요새 잘되는 영화들을 보면, 대체로 애니메이션의 급부상이 있다. 요새 기준으로 '인사이드 아웃'이 반응이 좋던데, 애니메이션 산업에는 굿즈 산업이 꽤나 잘 자리잡고 있지 않나. 다른 장르의 영화들은 굿즈 산업이 성행할 수는 없을까.
하지만 애니메이션이 아닌, 배우의 연기로 끌고 가야 하는 드라마 장르, 로맨스 장르 등 소소한 서사들은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이 아이돌 팬덤만큼의 팬덤이 있어서 굿즈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올해 '챌린저스'를 잘 본 영화 중 하나로 꼽는데, '범죄도시'의 흥행으로 생각보다 빨리 영화관에서 내려간 것으로 안다. 하지만 관객으로서의 나는 그 지점이 조금 아쉬웠고 원체 포스터를 모으지 않고 기타 굿즈를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데 뭔가 기억할만한 물건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고 싶었다. 일례로, 이전에 '슬픔의 삼각형'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영화사 측에서 레몬 사탕과 프레즐 쿠키를 증정해준 적이 있었다. 무료이긴 했지만 그 때 그걸 받으면서 뭔가 영화를 보고 영화 속 특징적 사물을 극대화해 굿즈로 승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려면 굿즈를 만들고 하는 마케팅 비용이 결국 관건이라 현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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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을 처단하는 직쏘 모방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살아가며 누구나 하나 즘은 잘못을 하면서 살아간다. 아주 큰 범죄가 될 수도 있지만 말실수를 하거나 다른 사람의 작은 무언가를 몰래 가져오는 것 같은 아주 사소한 일들도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잘못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면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잘못을 인지하고 사과를 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마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잘못을 인지했더라도 은근슬쩍 그냥 그 순간을 넘기기도 한다.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따라야 하는 법을 만들고, 그것에 위반되는지를 사법기관에 판단을 요청한다. 그리고 잘못이 있으면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이 일련의 과정은 수십 년 이상 인류가 사회에서 질서를 지키기 위해 확립한 어떤 체계다. 하지만 모든 잘못을 법이 다 잡아낼 수는 없다. 어떤 잘못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고 그 잘못을 아는 사람이 없어지면 그 잘못도 자연스럽게 묻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웅 같은 존재를 이상화한다. 경찰이나 검찰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의 잘못도 누군가가 바로 잡아 주길 원한다. 하지만 그 존재는 분명 인류가 만든 법의 테두리에서는 벗어나 있다.
영화 <스파이럴>은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 가지고 있는 잘못들을 바로잡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다. 경찰들의 잘못은 큰 것도 있고 사소한 것도 있지만 받는 형벌은 매우 가혹하다. 공포 스릴러 <쏘우>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는 극 중 유명한 연쇄살인범 직쏘(토빈 벨)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모방범을 등장시켜 비슷한 패턴의 연쇄살인을 묘사한다. 과거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희생자들은 잔인한 고문 기계에서 깨어나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테스트를 받는다. 원작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특정 신체를 절단하는 것과 목숨을 구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인데 고민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서 잔인한 결과로 이어지고 이 장면들이 그대로 화면에 묘사된다.
비리 경찰을 처단하는 연쇄살인범 이야기
<쏘우>의 스핀오프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스파이럴>은 돼지 머리 인형을 내세우는 직쏘 모방범과 그를 쫒는 지크 형사(크리스 록)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지크 형사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하지만 꽤 도덕적이고 믿을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과거 경찰서장이었던 마커스(사무엘 잭슨)의 아들인 지크 형사는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고, 새로 온 신참 파트너 윌리엄(맥스 밍겔라)만이 그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 상황에서 지크의 동료 형사들이 하나둘씩 직쏘 모방범에게 납치되어 살해당한다. 결국 연쇄살인범과 직접적으로 대결을 벌이게 되는 것 지크 형사뿐이다. 다른 형사들도 같이 추적을 해나가지만 왠지 모르게 지크와 협력하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수사를 하며 움직인다.
경찰은 사회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잡아 처벌할 수 있는 집단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도덕적인 신념은 중요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지크 형사는 도덕적인 신념이 꽤 명확한 인물이다. 주변 동료를 챙기면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동료라고 해도 동료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직언을 할 줄 아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런 성향은 그에게 동료들이 등을 돌리게 만든다. 지크 형사는 동료들이 연쇄살인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동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찌 보면 그는 경찰 내부에서 마지막 남은 최후의 보루라고도 볼 수 있다.
이전 시리즈가 그랬듯이 지크 형사는 늘 범인보다 한 발씩 늦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아주 잔혹한 묘사를 하는 시리즈의 특성을 조금은 완화시켜준다. 또한 범인의 단서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도 어느 정도는 설득력이 있다. 과거 시리즈보다 속도감은 조금 떨어졌지만 논리적 서사를 보강했고, 무엇보다 영화를 끝까지 흥미롭게 보도록 만드는 것이 있다면 바로 지크 형사 캐릭터에 대한 신뢰감 때문일 것이다. 그는 최대한 동료를 구하려고 뛰어다니고 단서를 찾아 결국 모든 살인의 범인을 찾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정의 딜레마에 빠지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그래서 긴장감이 높아진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스파이럴>은 일그러진 영웅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연쇄살인범 직쏘가 그랬던 것처럼 개인적인 원한으로 시작된 살인은 비리나 잘못함 일이 있는 경찰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형벌을 준다. 과거 언젠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고문 기계에서 눈을 뜬 순간 자신이 과거에 잘못한 모든 것을 나열하며 생각할 것이다. 거기에 살인범이 들려주는 특정 사건에서 자신의 죄를 마주하고 결국 형벌에 처해진다. 아주 잔인한 살인범의 형벌은 세상을 위한 정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반론권이 전혀 주어지지 않으므로 올바른 정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영웅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 자신이 행하는 정의에 이유와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그저 잔혹한 악당으로만 보인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
또한 연쇄살인범은 돼지 가면과 인형을 이용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스코트만 바뀌었을 뿐, 직쏘가 이용했던 방식 그대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살인범 역시 새로운 직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동일한 방식과 메시지는 <스파이럴>의 이야기가 <쏘우> 시리즈의 동어반복처럼 느끼게 한다. 이미 했던 이야기를 다른 캐릭터를 가져와 재구성하여 풀어가기 때문에 스핀오프라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리부트로 보이기도 한다.
감독 대런 린 보우즈만은 공포영화 전문 감독으로 <쏘우 2> 편으로 연출 데뷔를 한 이후, <쏘우 3>. <쏘우 4>까지 연출하여 <쏘우> 시리즈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이후 여러 가지 공포영화들을 연출하고 있지만 만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많지 않다. 이번 <스파이럴>로 다시 <쏘우> 시리즈의 연출을 맡게 되면서 자신이 가장 잘했던 영화를 다시 한번 만들어냈고, 팬들이 만족할만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기시감을 느끼게 하지만 과거 시리즈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고, 서사의 구멍도 그렇게 많지 않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스릴러로 탄생시켰다.
영화 주인공 지크 형사를 연기한 크리스 록은 <쏘우> 시리즈의 팬으로 <스파이럴>의 기획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각본 작업에도 참여하여 이 시리즈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코미디 배우로 많이 알려져 우스꽝 스러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게 되는데, 이번 <스파이럴>에서는 과거와 다르게 심각하고 진지한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배우를 비롯해 감독까지 시리즈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영화 <스파이럴>은 여러 가지 단점을 보여주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시리즈가 이어갈 동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스파이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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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_씨네픽_연말결산.zip
안녕하세요!
영화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
영화 정보도 얻고 상금도 받는 어플리케이션
'씨네픽' 입니다!
어느덧 2021년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는데요.
정말 눈깜짝할 사이 지나가버린 2021년이지만,
씨네픽의 한 해를 살펴보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씨네픽 2021 총결산.zip
과연, 씨네픽에서 진행한 퀴즈는 총 몇 개일지!
총 상금은 얼마일지! 지금부터 같이 확인해볼까요??
잇츠 CINE PICK!
우와~~ 이렇게 보니 씨네픽 2021년 한 해를 정말 열심히 달려왔다는 게 느껴지는데요!
마지막으로!
씨네픽의 2022년은 올해보다 훨~씬 풍성해질 예정이니,
상반기 update 많이 기대해주시길 바라구요~
주변에 많~~~~은 홍보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그럼! 씨네픽의 2022년을 확인할 수 있는 링크 놓고,
이만 총총 물러가보겠습니다.
씨네랩, 씨네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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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결의 사랑에 기대어
SYNOPSIS.
뉴욕 맨해튼에서 홀로 외롭게 살던 ‘도그’는 TV를 보다 홀린 듯 반려 로봇을 주문하고 그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해수욕장에 놀러 간 ‘도그’와 ‘로봇’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휩쓸려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데··· “기다려, 내가 꼭 다시 데리러 올게!”
POINT.
✔️ 대사 없는 애니메이션인데, 대사 공백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촘촘한 연출력!
✔️ 색감도 아름답고 음악도 귀에 딱 붙는 명작
✔️ 도그와 로봇의 관계가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몽글몽글... 이건, 사랑입니다
✔️ 스페인 애니 낯설다고? 배경은 뉴욕 맨해튼! 감독 오피셜, 뉴욕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자 뉴욕 오마주라고 해요. 그리고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정서가 펼쳐져요.
✔️ 칸영화제 특별 상영에서 최초 공개되어, 지금은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후보로 노미네이트! 쟁쟁한 기술력의 작품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작품을 만나 보세요
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읽는 순간, 보기도 전에 마음이 퐁당 녹았다. 따뜻한 관계와 갑작스러운 이별... 그 애틋함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 같은 건 모르니까. 뚜껑을 열어 보니, <로봇 드림>은 그런 기대를 기분 좋게 충족시키는 영화인 동시에, 뜻밖의 면면으로 기대를 기분 좋게 배반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어떤 사랑은 눈 마주치는 순간 시작된다
도그를 비롯해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동물로 표현되고 있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어렵지 않게 도그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다. 차갑고 어두운 도시의 밤, 2인용 게임도 혼자 해야 하는 도그는 외로움을 감출 수 없는 캐릭터다. 창문으로 보이는 이웃집 가족의 단란한 시간을 부러워 하기도 하고, 레토르트 식품을 혼자 데워 먹기도 하면서, 그는 외로운 생활을 채워 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텔레비전 광고 속에서 보게 된 한 마디. "외로우십니까?" 그리고 마치 홀린 듯이 '반려 로봇'을 주문한다. 그냥 지나치려면 지나칠 수도 있었을 광고를 보게 된 것, 그런 순간도 어쩌면 운명적 순간이라 할 수 있을까? 답은 광고 이후의 관계에 달렸을 것이다. 두 존재가 특별하게 맞닿는다면, 그 시작점이 어떻게 운명이 아닐 수 있겠어.
'친구'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Amigo/Amiga를 연상케 하는 (이탈리아어로 친구가 Amico/Amica이기도 하다) 로봇이 배달되고, 도그는 조립을 시작한다. 마침내 두 존재가 서로 눈을 마주쳤을 때, 둘에게는 편안한 미소가 떠오른다. 어떤 사랑은 그렇게 눈 마주치는 순간 시작된다. 당연한 것처럼, 더없이 자연스럽게.
둘은 더없이 행복하다. Earth, Wind & Fire의 명곡 <September>는 곧 둘의 주제가가 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은 도시의 주인공이다. 더이상 도그에게 어둡고 차가운 밤은 없다. "우리가 밤에 춤을 출 때 별들이 어두운 밤을 걷어가던 걸 기억하나요?" 노래 가사처럼 이제 그의 일상은 반짝거리고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리움은 사랑의 그림자
그러나 둘의 관계는 신나게 해변을 찾았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이별로 귀결된다. 이후 둘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장면 하나하나가 정서를 어찌나 고스란히 담아내는지, 내가 연애하다가 헤어진 기분이 들 정도로 도그와 로봇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꿈결에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간. 어쩌면 꿈처럼 기묘하게 정직한 것이 또 있을까? 트라우마처럼 남은 꿈에도, 무지개와 꽃으로 아름다운 꿈에도, 서로가 어른거린다. 그리움은 사랑의 해질녘 그림자가 아닐까. 사랑이 긴 만큼 더 길고 검게 늘어져, 둘을 놓아주지 않는다.
어쩌면 사랑은 돌봄의 방법을 아는 것
로봇과 도그는 서로의 유일무이한 친구로서 우정을 주고 받았을 수도, 아니면 독점적인 사랑을 주고 받는 연인 같은 관계였을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으로 받아들여도 이상하지 않거니와, 관계를 무엇이라고 명명하는지가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건 둘이 서로 함께 있는 시간을 온전히 기쁘게 즐겼고, 헤어지고서는 깊이 그리워했다는 것. 웬만한 로맨스 영화보다 깊게 그 기쁨과 슬픔을 전달한 영화는 이내 결말로 우리를 데려간다.
우리는 관계에서 배운다. 처음 로봇이 도그의 손을 너무 꽉 잡아 아팠지만, 이내 적절한 세기로 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만남을 통해서도, 만남이 지속되는 시간을 통해서도, 헤어짐을 통해서도, 헤어짐 이후의 시간을 통해서도 우리는 배운다. 도그와 로봇이 주고받는 마음과 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내 사랑의 기쁨과 슬픔 사이에 하나를 슬며시 추가하고 싶어진다. 그건 돌봄이다. 서로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아는 것. 돌봄 없는 사랑은 모래 위에 지은 성 같다.
2시간 넘는 영화가 남발하는 세상에, 100여분의 산뜻한 러닝타임 안에서 영화는 그 모든 감정들을 고스란히 쏟아내고, 별사탕을 가득 받은 사람 같은 기분이 되어 기분좋게 영화관을 떠나게 만든다.
그런데 모두가 별사탕처럼 사랑스러운 것들만 끌어안고 있는 가운데, 나는 어쩐지 도그와 로봇에게서 자꾸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를 읽어내게 된다. 동물이 숱하게 유기되고 학대 당하는 사회에 살기 때문이겠지만, 서로를 기억하고 주고받는 감정은 분명 대등함에도 불구하고 한쪽이 한쪽을 구매하는 형태로 이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점이 어쩐지 마음에 자꾸 남는다.
하긴, 반려동물과 주고받는 감정은 우정과 사랑 모두를 아우르는 커다란 마음이니, 그렇다고 해도 꼭 이상하지는 않겠다. 내게도 몇 년째 꿈결에 그리워하는 동물 얼굴들이 있으니까.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얼굴들을 생각하면, 로봇과 도그의 마음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헤어지지 말자. 이 위험한 도시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일상의 낭만과 행복을 들이마시자. 우리만의 노래를 틀자. 그리고 혹시 헤어진다면, 꼭 다시 행복해지자.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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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꽃 같은 얼굴을
극장의 존폐 위기를 말하는 시대다. 코로나19의 영향을 영화계만 받은 건 아니지만, OTT 경쟁의 시대까지 겹치면서 영화계는 예상보다도 큰 타격을 입었다. CGV는 한동안 극장을 축소 운영했고, 상상마당 시네마를 비롯한 작은 영화관들도 잠시 문을 닫았으며, 서울극장조차 역사의 이름이 되어 버렸다. 영화의 주요 수입원인 극장이 휘청거리는데 영화계가 휘청거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좋은 성적이 기대되던 영화들조차 극장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겼고, 어렵게 개봉한 영화들도 흥행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흐름이 반복되면서 제작 자체가 위축될 위기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악순환은 현재 진행형이다. 티켓 값에 포함되는 영화진흥위원회 발전기금 또한 고갈 위기라는 말이 들려온다. 여기저기서 긴급 좌담회가 열리고, 의견을 개진하고... 하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 극장가의 반등이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와중에 CGV는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식. 코로나19 이후로만 몇 번째인지. 어려움은 알겠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변방에서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CGV 이 망할 것들아... 망하지 마... 제발.
그러던 중, <태어나길 잘했어>라는 영화의 개봉 소식이 들려왔다.
포스터를 보는 순간,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포스터가 아름답기도 했지만, 강진아 배우의 옆얼굴을 보는 순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진아라는 배우를 볼 때마다 감탄한다고 꼭 힘주어 말하고 싶다. 그를 자주 본 것은 아니다. 몇 페이지나 이어지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내가 제대로 본 것은 <소공녀>와 <빛과 철> 두 작품뿐이다. 그러나 볼 때마다 기억에 남았다. 잠깐 내려와 링거를 꽂으면서도 예의상의 친절함과 싹싹함을 잊지 않는 사회인 문영의 얼굴이. 안쓰럽게 생각하지만 다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여동생에게 참다 참다 한 마디 건네는 올케 소은의 얼굴이. 평생 문영과 소은으로 살아온 사람이나 지을 수 있는 표정과 아우라를 내뿜고 있어서. 억지로 아우라를 만들어 내기도 쉽지 않지만,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건 더 어려울 것 같은데 강진아라는 배우는 늘 멋지게 해냈다. 그래서 더 길게, 더 자주 보고 싶다 생각하던 배우였다.
<태어나길 잘했어>는 그 마음을 충족시켜주는 영화다. 이 어려운 시국에 봄처럼 찾아와, 들꽃처럼 보는 이의 마음마저 다정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영화.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태어나길 잘했어' 말해주고 싶은 영화다.
<태어나길 잘했어>의 주인공은 배우 강진아가 연기하는 춘희. 걸어간 자리마다 척척한 물 발자국이 남을 만큼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을 앓고 있어, 수술을 받기 위해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어려서부터 얹혀 산 친척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서도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성실한 인물이다. 하지만 외로운 이들이 으레 그렇듯, 춘희의 성실도 바라보는 입장에서 속이 편하지만은 않다. 어느 정도 천성이기도 하겠지만, 기댈 데 없이 오래 살아온 이의 노력이기도 하기 때문에.
매일 마늘을 까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식구들이 모두 떠난 옛날 집에서도 어린 시절 쓰던 좁은 다락방에서 잠을 청하고, 그렇게 조용히 성실하게 살던 춘희의 일상에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춘희도 앞으로 나아간다.
<태어나길 잘했어>의 가장 큰 장점은 촘촘하게 설계된 인물들이다. 영화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까지 세심하게 설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세필화처럼 꼼꼼하게 그려냈다. 그 결과 생생하고 개성 있는 인물들이 가득해서, 인물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마음이 훈훈해진다. 잘 그려낸 인물은 그 자체로도 이야기를 굴러가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인물들 상당수가 이 각박한 세상을 훌륭하게 헤치고 살아가기엔 좀... 쉽지 않을 것 같은, 어딘가 어수룩하고 그래서 귀여운 사람들이다. 주황과 춘희 사이에서 오가는 연애의 스파크는 그래서 더욱 솔직하고 풋풋해 사랑스러우며, 어느 날 갑자기 보이기 시작하는 과거의 춘희와 현재의 춘희를 함께 보고 있노라면 춘희라는 인물이 잘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발돋움해 왔음이 느껴져 뭉클하다. 자기도 넉넉하지 않으면서, 마주친 노숙자의 걸걸한 태도에 겁을 먹었으면서도 그 옆에 신발을 놓아두고 가는 춘희의 다정함 또한, 인물들 사이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 사이에서 춘희의 성장은 정말, 민달팽이처럼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궤적을 남기고 일어난다. 늘 속 없는 사람처럼 미소를 짓거나 덤덤하게 대답하던 춘희가 마침내 하고 싶었던 말을 또박또박 전하는 순간, 옆얼굴임에도 불을 품은 것처럼 빛나는 눈동자에서 형형한 힘이 느껴졌다. 그건 춘희라는 인물의 성장이자, 강진아라는 배우의 빛이었다.
아쉬운 지점도 존재한다. 이야기를 나아가게 할 정도로 인물이 힘이 있지만, 정작 사건은 크게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조금 산발적이다. 과거 춘희와 현재 춘희의 교감은 기대보다 훨씬 미진하게 진행되었고, 정작 개인적으로는 크게 기대하지 않은 주황과 춘희의 연애사가 훨씬 재미있었다. (둘의 연애는 정말 너무 하찮고 너무 귀엽다.) 사건이 조금 헛도는 느낌이라, '태어나길 잘했어'라는 메시지가 의도만큼 힘 있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는 느꼈다.
아쉽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몇 번이나 손가락을 머뭇거렸다. 나는 왜 이 영화에 아쉬움을 느꼈으면서도 아쉽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가. 사람마다 취향과 기준이 다른데 좀 아쉬울 수도 있지, 그 사실을 왜 이렇게 안타까워하고 있는가. 이유가 뭘까. 이 마음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니, 이 영화의 진심에 공명하는 마음이 있었다.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 주목한 끝에 빚어진 영화라는, 이들을 안아주는 영화라는 진심이 분명하게 전해졌던 것이다. 이 영화만이 가진 힘은 인물을 촘촘히 설계했다는 것도, 배우들이 연기를 감탄 나오게 잘했다는 것도 (강진아 배우만 언급했지만 홍상표 배우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의 호연도 대단히 빛나는 영화다)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을 향한 애정에 있었다.
주황과 춘희가 처음 만난 모임처럼, 어수룩하고 상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신경림의 시 한 구절처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다정하게 보듬는 것. 그게 영화 속 인물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영화 자체와 관객 사이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민달팽이 점액처럼, 땀 찬 손처럼 끈끈하게.
모두가 오래 버텨온, 버틸 힘이 점점 사라져 가는, 어렵다고 말하는 시대다. 영화들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 어려운 때에, 봄꽃 같은 이 영화의 얼굴을 본다. 독립영화의 면면을 이뤄온 배우들의 든든한 얼굴을, 다정한 마음을 가득 담아 영화를 만든 제작진의 이름을, 영화 속 펼쳐지는 배경의 나지막하고 다정한 길거리를.
망하지 않을 거다. 힘들고 모자란 대로 끈끈한 손을 맞잡는 이런 영화가 있는 한. 이 영화 정말, 태어나길 잘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봄꽃 같은 얼굴을 마주하고 행복해지길. 태어나길 잘했다는 말을 다정하고 질척하게, 더 많이 주고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CineLab'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영화를 감상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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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건 2> 만큼 재미있고 <헤어질 결심>처럼 진하게
"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 유명 아나운서가 나에게 인사를 한다. "작가님 준비 많이 해오셨어요? 1시간 녹화가 20분이 걸렸네요? 늘 느끼는 거지만 진짜 영잘알이세요." 내가 대답한다. "아, 아닙니다. 그냥 무식하게 시간만 보냈던 것뿐인데요." 대답하자 휴대전화에 카톡 몇 개가 온다. 어느 날에 어떤 영화가 개봉한다는 누군가의 말이다. 어? '어느 날'에 개봉한다고?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라? 별 것 아니겠거니 싶어서 그냥 넘어간다.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켜 조회수를 확인해본다. 정말 감사하게도 2만이 찍힌다. 언제부턴가 바라왔던 순간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었다. 다만 그게 몇 개월째 내내 반복되고 있다는 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프로그램 담당 작가가 나에게 말을 했다. "작가님! 출연료는 다음 주에 입금될 거예요. 금액은 얼마입니다!" 엥? 출연료가 '얼마'라고? 무슨 소리야? 내가 대답한다. "그 얼마가 어느 정도 될까요?" 작가가 대답한다. "그 금액은..."
라는 꿈을 꾸었다. 그럴 리가 없지. 가끔 언제까지 이 글을 쓰는 일에 재미를 붙일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몇몇 분들의 의견에 편승해서 쓰는 글이 아닌, 내 생각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표현하는 그런 일이다. 나 자신이 '이 정도면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이라 부를 수 있지' 싶은 것들은 이미 얻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저 멀리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자서 그런 꿈을 꿨던 걸까? 어느 멀티버스 중 하나에는 내가 작가로 명성을 많이 얻은 세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이름이 알려지면 내 안에 있는 어떤 문제들은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우리)에게 알파버스의 웨이먼드가 느닷없이 나타나 "아니야"라고 답한다. 준비물은 없다. 단지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받아들일 태도만 있으면 된다. 올해 개봉작 중 또 다른 마스터피스가 등장했다. 에블린과 함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멀티버스 속으로 떠나보자.
빈 세탁기처럼 돌아가는 일상
분명히 해야 할 일이 벌어야 할 돈 말고 뭐가 있었는데 말이다. 미국으로 이민 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에블린은 일상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홍콩에서 태어난 에블린. 첫사랑이었던 웨이먼드의 설득에 넘어가 타지 생활 중이었다. 잘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패만 지속했던 그녀.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지금 현재다. 짜증이 나는 오늘. 남편 웨이먼드는 착할지 몰라도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딸 조이는 틱틱대는 일이 많았다. 아버지 공공은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어서 에블린과 함께 살고 있다. 쌓여가는 빨래물처럼 풀지 못했던 마음속 응어리가 점점 더 높아져간다. 이런 에블린의 일상은 점점 더 그녀를 괴롭하는 중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느 날. 평소처럼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남편 웨이먼드는 타향살이를 시작한 보람도 없이 갑자기 이혼 서류를 들이밀었다. 딸 조이는 여자친구를 데려와 가족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고 있었다.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 일상이다. 그런데 세상이 이런 에블린을 딱히 봐주지는 않았다. 국세청은 에블린의 세탁소에 세무조사를 예고했다. 영수증 속에 쌓여있는 에블린. 영업정지와 생계유지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신경이 예민하다. 이 빈 차를 타고 국세청이 아니라 다른 우주로 날아가면 좋으련만. 세상은 야속하게도 에블린의 일상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한숨이 가득한 얼굴. 에블린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남편 웨이먼드와 같이 있었던 에블린. 멍하니 있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남편 웨이먼드의 눈빛이 변한다. "여보. 잘 들어. 지금 당신은 위험해. 난 다른 우주에서 왔어. 이유는 묻지 말고 내가 적어 준 쪽지대로 해."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안 그래도 나사가 좀 빠져 있는 것 같은 웨이먼드. 마침내 미쳐버린 것인가? 에블린은 어리둥절한다. 금세 에블린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는 웨이먼드. 갑자기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우주 속의 에블린. 에블린은 당황한다. 웨이먼드는 이내 자기를 소개한다. 자기는 다른 우주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이며, 지금 세계가 굉장히 위험하다는 말을 전한다. 마냥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이어폰을 꽂고 겪었던 경험 때문에 안 믿기도 어렵다. 이 색다른 경험 덕에 국세청 직원 디어드리 앞에서도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지는 에블린. 에블린은 디어드리 앞에서 웨이먼드가 전한 지시사항을 수행한다. 지시사항은 그냥 헛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에블린. 그 다른 차원에서 에블린과 웨이먼드는 조우한다. 알파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세상이 왜 위기에 처했는지를 말한다. 그것은 바로 조부 투파키가 멀티버스를 싸돌아다니며 세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모든 운명의 조부 투파키는 온갖 세계의 에블린을 살해하고 있었다. 꿈꾸는 소리가 아니다. 에블린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전부 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조부 투파키를 제지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강력하고 빠르게
이 영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엄청 정신없다. 일단 핵심 키워드가 너무 많다. 가장 우선은 코미디. 두 번째는 액션. 세 번째는 가족 드라마. 네 번째는 오마주. 다섯 번째는 멀티버스 구현이다. 키워드만 다섯 가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후반부까지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영화가 운명에 관한 작품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영화는 이런 키워드를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로 사정없이 다 때려 박는다. 이렇기 때문에 아마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정신없다’라는 것에 동의하실 것이다. 단기간에 많은 정보를 쑤셔놓는 것은 도박이다. 일례로 <프렌치 디스패치>를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대사가 쉴 틈 없이 쏟아지지만 감독 웨스 앤더슨은 이런저런 설정을 무리 없이 이해한다. 특유의 섬세한 미장센을 중심으로 대사를 받아들여도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의 측면도 있다. 바로 <외계+인> 1부다. 현재의 MCU는 많은 영화들로 이뤄져 있다. 글쓴이는 다른 글에서 최동훈 감독이 마블의 영화들이 쌓아놓은 빌드업을 너무 쉽게 바라본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냈다. 이를 보여주듯 너무 많은 떡밥이 있는 <외계+인>. 산만한 줄거리 때문에 호평보단 혹평을 많이 받았다.
이 영화는 확실히 전자다. 이 영화가 이해가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의 많은 요소들은 단적으로만 휙 쓰이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는 영화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쓰이고, 또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정보가 산발적으로 와다다 쏟아지긴 해도 영화를 보는데 큰 무리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대신 중반부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집중할 필요는 있다. 영화에서 원형의 이미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 원형의 에너지가 어떤 이유로 중요한가?라는 것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일 것이다. 이때 설명이 후반부에 반복되긴 하지만 대충 보면 중반부에서 이를 놓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분들이 무언가를 마시지 않은 채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 중간에 화장실을 간다? 그럼 영화의 재미가 급전직하하는 단점이 느껴질 수도 있다. <프렌치 디스패치>가 섬세한 방식으로 영화의 이해를 도운 것과 유사하게 이 영화는 광기의 에너지로 관객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강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화는 다방면으로 강점을 가진 영화다. 일단 기본적으로 시각적인 쾌감이 엄청나다. 이 쾌감 중 하나는 액션이다. 전체적으로 액션의 비중이 가장 높은 인물은 주연 양자경이다. 우선 양자경이 그동안의 필모그래피에서 액션 연기를 펼치는 역할을 많이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상영작들을 찾아봤을 때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영화도 있다. 바로 <와호장룡>이다. 장첸, 주윤발, 장쯔이, 양자경이 출연한 이 영화. 웅장한 맨몸액션이 많은 이들에 기억에 남았다. 영화는 이 시절의 홍콩영화를 재현하듯 화려한 맨몸액션을 선보인다. 일단 양자경의 액션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 극에서 일대 다수의 연기를 펼치는 부분이 있다. 템포가 굉장히 빠르고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수직적 운동능력을 선명하게 잘 드러낸다. 이는 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에블린의 액션 신에서 싸움을 잘하는 에블린이 되는 계기가 있다. 영화는 이 에블린이 왜 쿵후의 달인이 될 수밖에 없는지 잠깐 보여주고 이를 편집술로 보여준다. 이는 편집 능력과 시너지가 있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구체적으로 상대방과의 액션 주고받기와 이 능력이 구현되기 위한 전제가 엇나가듯이 편집되며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는 멀티버스라는 키워드를 관객들에게 설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지식 안에서 멀티버스란 것은 없다. 심지어 이 멀티버스의 묘사가 이 영화처럼 이뤄진다면 좀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글쓴이는 이를 관객들에게 경제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액션을 삽입했다고 생각한다. 상황 자체를 많이 만들어서 그 룰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그럼 이야기에 통일성이 생긴다. 이런 토대의 튼튼함은 영화의 설득력으로 이어진다. ‘아. 그래서 그렇구나’라는 이해가 용이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에블린의 액션은 단적으로 시각적인 쾌감만을 전하려고 제시되지 않았다.
또 웨이먼드 역을 맡은 조너던 키 콴의 액션 연기도 굉장하다. 이 웨이먼드 캐릭터가 맡은 역할의 액션 신은 비교적 초반부에 나온다. 어떤 행동을 하고 전투를 시작하는 웨이먼드. 이때 매고 있던 가방을 휘리릭 흔들며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엥? 이거 어디서 봤는데? 갑자기 성룡이 생각난다. 역시 이 웨이먼드의 액션신에서 무언가를 오마주하고 있다. 바로 성룡의 쌍절곤 액션이다. 이는 그냥 얻어걸린 효과가 아닌 듯하다. 배우 조너던 키 쿠안이 성룡을 닮기도 했다. 또 원래 주인공을 양자경이 아닌 성룡을 계획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액션은 영화의 가장 첫 번째 액션 시퀀스이기도 하다. 가방 끈을 쌍절곤 쓰듯이 두들겨 패는 웨이먼드. 극초반부에 유약한 모습만 제시됐던 이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런 액션 신이 대비되는 느낌이 있다. 이는 앞에서 쓴 문단과 비슷한 맥락에서 좋은 효과를 낸다. 이 역시 멀티버스에 대한 설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 측면에서도 기능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다 보면 이런 멀티버스를 통한 액션신이 웨이먼드라는 인물의 통일성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영화의 연출이 멀티버스라는 모티브를 단순히 설정으로만 쓴 게 아니라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지게 설정했다. 똑똑한 연출의 힘이었다. 아, 이 두 주인공을 빼고 다른 액션 연기를 보여주는 인물들도 있다. 이 인물들의 액션도 잘 뽑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짜 웃긴다. 이런 생각을 하는게 정말 또라이같다.
타율 높은 코미디
또 이 영화는 정말 웃긴 코미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코미디로서 사용했던 소재는 두 가지다. 멀티버스를 통해 다중우주를 보여줬던 시각화와 영화의 핵심 아이디어다. 우선 이 영화가 장르적인 특성이 아닌 선에서 뽑을 수 있는 강점은 설득력이라고 생각한다. 에블린이 각각의 우주 속에 한 명씩은 있을 테니 각자가 온갖 직업을 다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직업인으로서의 광경 묘사에 있어서 구체적이지 않은 부분이 없다. 이 꼼꼼함 묘사가 ‘각종 직업의 에블린’에서 굉장히 강력한 코미디가 작동한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만약 글을 쓰는 에블린이 있다고 해보자. 그럼 글을 쓰는 특징 중 하나를 뽑아 영화에서 어떤 원동력으로 사용한다. 또 그림을 그리는 에블린이 있다고 해보자. 그럼 그림을 그릴 때 자기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그려야 하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풍부한 사람이 유리할 것이다. 영화는 탄탄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왜 멀티버스의 에블린이 필요한지를 빼먹지 않았다. 영화의 설정을 단단히 하는 연출이 코미디 소스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직업인으로서의 에블린을 가지고 코미디를 만들 때 절대 잊히지 않는 시퀀스가 있다. 바로 어떤 영화를 차용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이고, 어떤 식으로 차용했는지를 쓰면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 영화의 리뷰를 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으면 왠지 직무유기처럼 느껴진다; 또 어떤 멀티버스 중에서 우리가 아는 인간의 물리법칙 외의 것도 있다. 이 부분 역시 골 때리게 잘 설정했다. 쓸데없이 상상력이 고퀄리티라서 놀랐다.
그리고 아마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아이디어가 됐을 키워드 ‘전환’이다. 영화의 메인 세계관은 주인공 에블린이 이끄는 시간대다. 그럼 다중우주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코미디 요소를 하나씩 추가한다. 제일 첫 번째 전환 방식은 적당히 상식 선에서 상황에 안 맞는다. 그런데 이 이후부터의 이야기는 생각하는 수위를 전부 뛰어넘는다. 단 하나 빼고 전부 예상외로 흘러갔다(그리고 이 ‘예상대로 간 코미디’도 정말 웃긴다). 당연히 이렇게 전형성을 탈피한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 말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이런 이유로 구체적인 소재가 뭐였는지는 쓰기 어렵다. 단지 분명한 것은 하나하나 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관객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난 배우들이 제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웃겼을까? 자기들도 엄청 웃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저비용 고효율의 코미디 요소로 사용하는 전환이지만 이것도 단지 웃기려고만 넣은 것은 아니다. 후술하겠지만 이 작품에서 전환이라는 키워드는 영화의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지점이 있다. 우리는 (글쓴이 포함) 보통 세상 사람들을 판단하는 게 쉽다. 왜 저 사람은 저러고 있을까? 에 대해서 각자의 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세상에만 살고 있기 때문에 단면적인 모습만 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 판단의 오류를 꼬집는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신선하다고 느낄 관객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다양성에 관해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설정이 있다. 바로 딸 조이의 퀴어 설정이다. 다양성은 우리 문화예술 매체에서 참 피곤한 소재다. 이른바 PC라고 불리는 이 것은 들어가기만 하면 왓챠피디아에서 투기장이 열린다. 피곤하다. 혹자는 ‘PC 묻었네’라고 영화나 드라마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억지로 이런 코드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극의 흐름을 깨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 한 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멀티버스 안의 수많은 세상이 있다고 해보자. 거기에는 아시아 인이라는 인종이 아예 없다. 무조건 백인만 있는 우주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화양연화>를 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헤어질 결심> 역시 마찬가지다. <공조 : 인터내셔날>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매체의 다양성에만 국한 짓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웨이먼드 역을 맡은 키 호이 콴이라는 배우는 경력이 중간에 끊겼었다. 유년시절 아역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 사람은 아시아인 역 빼고는 아무것도 맡을 수 없다는 제약 때문에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끊겼었다. 할리우드라는 큰 판에 단지 인종이라는 이유로 주류에 끼지 못한다는 것, 아니 낄 기회조차 없다는 것은 많이 불공평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PC’라는 것이 무조건 예술을 해친다고 볼 수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다. 단지 레즈비언이란 이유로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 사람도 인간일 뿐인데. 역시 이런 측면에서도 이 사람들이 이런 대우를 받으라는 법은 없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이 PC라는 ‘정치적 올바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가 소수자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는 선 끝난다면 우리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그 사람의 우주를 전부 들여다봐야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당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나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살아온 인생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더 많이 써왔으면 어땠을까.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어땠을까. 막연한 질문은 끝이 없다. 이 질문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연다. 삶의 관문에서 막힐 때마다 이 지점으로 돌아와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때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되묻는다. 세상에. 내 운명이란 왜 이따위란 말인가. 지긋지긋한 멍청함 덕에 나 자신을 향해 한숨을 내뱉는다. 이 한숨은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 왠지 잔소리를 하고 싶어 진다. 에블린처럼.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 잊히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지금 현재의 우리도 각자가 생각했던 어느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글쓴이만 해도 그렇다. 지금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어렸을 때의 내가 바라왔던 모습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미련이 남는 지점이 있다. ‘그러면 안 됐는데’라는 생각으로 긴 시간 동안 후회하며 보냈다. 막상 이 글을 쓴다고 해서 그런 미련이 완벽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다. 그 선택을 했던 평행세계의 나도 맞이해야 할 필연적인 사건이 있다는 것을. 단지 그 일을 그렇게 보냈다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 가능성이란 그런 것이다. 더 이상 꿈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어떤 선택을 하든 ‘통계적인 필연성’에 앞서 지금 없는 것에 가능성을 갖고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삶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 가능성과 희망에 대해서 말한다. 아무 의미 없는 인형 눈알도, 세탁소에 찌들어 보내는 일상도, 밝게 웃는 딸의 웃음도 우리가 어떤 것을 꿈꿀 수 있는 개연성이 된다는 말과 함께 전한다.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하면 지금의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풀어야 하는 미스터리의 연속인 걸 너무 잘 아니까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 아니겠어?
메버릭의 박력을 멀티버스로
이렇게 다양한 키워드와 래퍼런스를 때려박은 이 영화. 앞에서도 썼듯 '이걸 다 머릿속에 주워 담아야 영화가 이해되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영화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력이 어마어마하다. 일단 초반부 세탁소 시퀀스부터 BGM이 들어간다.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이야기. 알파 웨이먼드가 에블린을 만나 이어폰을 꽂아주기까지 긴 설명을 하지 않는다. 바로 액션 삽입하고. 액션 중간에 코미디 요소도 있다. 다 짬뽕처럼 다 넣는다. 그 대신 이야기 전반적으로 멀티버스의 인물들마다 갖는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사실 간단하다. 후반부에 주인공 중 어떤 인물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올해 5월에 <탑건 : 메버릭>이 개봉했다.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때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가 톰 크루즈를 위시로 한 힘찬 에너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비행기로 활주로를 활공하는 듯한 갈등 구성이 영화가 다이내믹하게 느껴졌던 주요 연출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탑건 : 메버릭>만큼의 박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미지가 나오면, 바로 그다음 정반대의 무언가가 나온다. 또 그 정반대를 대칭 찍고 완벽히 반대 측면에 있는 무언가가 나온다. 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화장법이나 의상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 본 적 없는 헤어스타일을 따라와서 보여준다. 그런 이상한 코디법을 받쳐주는 미장센까지 영화는 소재 하나하나가 신선하기 때문에 딸려오는 힘찬 에너지로 2시간 20분 내로 질주한다. 이 영화가 상영관을 얼마만큼 받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탑건 : 메버릭>보다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볼 수 있는 뭉클함, 코미디 요소로만 국한 짓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탑건 : 메버릭>이 이뤘던 성취를 더 크게 돌며 이뤘다고 생각한다. 색다른 경험이다. 분명 스포일러를 없이 쓰는 것 같은데 쓸 내용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올해 말 <아바타 : 물의 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극장가의 허리케인이 되어 많은 관객을 흡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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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영화 제 8일의 밤, 실망스러운 오컬트 영화
넷플릭스에 한국 공포영화 제8일의 밤이 공개되었어요.
예고편에서 오컬트 분위기를 한껏 뽐냈기 때문에 꽤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았을텐데요.
영화는 생각보다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불교의 세계관을 가지고와서 번뇌와 번민을 요괴화 하여 전개되는 이야기인데요.
생각보다 오컬트의 분위기도 약하고 그렇게 무섭지도 않아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이성민 배우가 열연하고 있지만 나머지 캐릭터들이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네요.
보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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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다이노 특공대, 과거로 출동~!
공룡 세계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어드벤처가 시작된다!공룡 연구를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떠난 뒤 사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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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초식 공룡 스테고사우루스부터
무시무시한 지배자 데이노니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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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 빼면 시체!? 경찰대 신입생들의 캠퍼스 라이프를 그린??♀️ [너와 나의 경찰수업]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