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8-25 21:56:00
초침 정도는 고장난 채로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리뷰
DIRECTOR. 조희영
CAST. 공민정, 정보람, 정회린, 류세일, 유의태, 김희상, 이진하 외
SYNOPSIS. "당신은 무엇을 보는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 정호. 정호의 애인 수진. 정호를 짝사랑하는 인주. 정호의 옛 애인 유정. 수진은 정호 모르게 훈성과 비밀스런 만남을 이어가고, 인주는 시한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정호에게 품은 마음을 고백하기로 한다. 유정은 정호의 자살 시도에 대한 죄책감으로 애인 우석과의 관계가 위태롭기만 하다. 그런데, 정호는 어디로 갔고 정호를 먼저 만난 건 누구인가? 그 정호는 정호가 맞는 걸까? 보이는 것과 믿는 것 그 사이 어딘가, 다른 것으로 알려질 이야기들.
POINT.
✔️ <두 개의 물과 한 개의 라이터>, <이어지는 땅> 등을 연출한 조희영 감독의 작품입니다. 홍상수 영화 스태프로 활동했다는데, 확실히 조희영 감독의 작품을 보며 홍상수 영화가 떠올랐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자기 색깔을 분명하고 단단하게 찾아가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전작에 참여했던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안정적이면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칩니다.
✔️ 서울 배경의 사진엽서집을 보는 듯 아름다워요. 이민휘 음악감독의 손길까지 더해, 서울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화로 손꼽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반부에서 한적한 서울을 산책하는 기분이 들어 그것도 만족스러웠어요.
✔️ 특히나 마포구 일대를 배경으로 예술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같네... 하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주소가 마포구로 나와서 조금 웃겼습니다(positive).
✔️ 영화가 길고 등장인물이 많지만, 천천히 젖어 들어 보다 보면 관계도가 머릿속에 어렵지 않게 잘 그려집니다. 영화에 펼쳐지는 다양한 관계성 안에서 나 개인의 경험을 곱씹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 영화는 8월 27일 (문화의 날!) 개봉합니다.

이 영화는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대신 다양한 인물을 펼쳐 보여주고,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대신 작은 퍼즐 조각처럼 이야기를 떠 나른다. 그 세밀한 그림 퍼즐을 맞추는 것은 관객의 몫이지만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처음에는 더없이 분절된 영상들처럼 보이던 여러 사람의 이야기는 이내 연결되어 가고, 인원이 좀 많긴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도보다 훨씬 덜 복잡하기에.
느긋하게 인물들을 따라가는 전반부는 산책하듯 보았다. 필름 톤으로 보정된 도시의 골목골목, 일상의 공간과 소리와 소품들을 가만히 따라가는 시간이 꼭 휴식 같았다. 게다가 인물들의 공간은 무엇 하나 튀지 않고 일정한 결로 곱게 정돈되어 있다. 커피가 든 잔, 무심하게 쌓인 책 더미, 자잘한 오브제, 그들의 작업 도구들. 생활 노동이라는 느낌보다는 고아한 예술의 느낌이 드는 공간에서, 인물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게다가 그 공간들은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주어진 인물들 외에는 사람이 좀처럼 없는 텅 빈 공간이다. 길을 몇 번씩 돌아다녀도 앉을자리 하나 찾기 힘든 서순라길도, 연남동 인근의 식당도, 예쁜 카페에도. 다른 손님이 없고, 딱 필요한 인물들과 적당한 일상음만 있는 서울. 나는 마치 서울을 배경으로 한 꿈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시간 지나 들여다본 기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영화 속 인물들은 기억을 끄집어낸 대화를 몇 번 하는데, 예컨대 영호의 친구에게 의자를 주었다는 노인 이야기는 실화와 과연 얼마나 닮아있을까? 영호의 기억에서 얼마나 각색됐을까? 또 어떻게 변형되어 흘러갈까?
꿈결 같기도 지난 기억 같기도 한 영화. 그만큼 현실 서울과 살짝 거리감을 두고 오롯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잘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현실감이 몰려온 건 대화하는 훈성과 수진 뒤로 연신 차가 오갈 때였다. 도시의 소음이 비로소 들어오고, 그들의 대화는 내가 지금까지 이해한 두 사람의 감정선을 의심하게 한다. 과연 두 사람의 관계는 내가 이해한 모양과 같은가? 어쩌면 정반대였을 수도 있다. 꿈과 현실, 사랑과 거짓, 이해와 오해, 본 것과 못 본 것. 분명하게 다르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감각을 준다.

이해일까 오해일까
살다 보면 악다구니와 악다구니가 맞부딪치는 갈등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많은 갈등이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과 지극히 상식적인 문장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입장이나 정보량이나 시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이리저리 퉁퉁 튀면서 크고 작은 오해로 변주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렇다.
자신이 병으로 시한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인주의 입에서 나온 말이 주영에게, 또 선배에게 가 닿으며 오해는 불어난다. 자세히 묻지 않겠다는 주영의 말은 본인 말마따나 배려지만, 어쩌면 무관심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선배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며 '제가 말했다고 하지 말아요' 한 이야기는, 오해일지 이해일지 몰이해일지 모를 판단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배려하기 위한 거리 두기가 오히려 차갑게 느껴지고, 또 때로는 다정하게 굴겠다고 좁힌 거리가 오히려 부담스럽게 훅 다가오기도 하는 것. 결국 우리는 각자의 렌즈로만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한 이 과정을 몇몇 사람들의 관계에서 실험하듯 펼쳐 보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하루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이해와 오해가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누구는 보고 누구는 못 본 것
이 영화에서 이따금 등장했다 사라지는 검은 개를, 누구는 보고 누구는 못 본다. 누군가는 "넌 못 봤어."라는 말을 듣자마자 호기심을 거두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개가 잘 살고 있을지 궁금해한다. 검은 개는 자주 등장하다가 어느 순간 극 중에서 사라지는데, 영화 속 인물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 또한 어떤 이는 검은 개를 계속 신경 썼을 테고 또 어떤 이는 금방 잊었을 것이다.
검은 개는 많은 문화권에서 죽음을 상징하는데, 이 또한 상반된 두 가지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재앙과 불운으로서의 죽음, 또 다른 경우에는 영혼의 안내자, 사후세계의 인도자 같은 느낌의 안전한 죽음이다. 죽음이란 것 자체가 인간에게 재앙으로도 안식으로도 표현되는 것처럼. 꼭 오해와 오독을 거치지 않더라도, 수많은 단어들이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기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초침이 고장 나도 시계는 간다
이 영화 속 인물들 사이에 피어나는 오해는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다. 불륜과 고백과 시한부까지, 단어만 보면 아침드라마 뺨치는 도파민이 완성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엄청난 충격을 안기는 일은 없다. 마치 고장 난 초침처럼 툭, 툭 일상 감각을 두드리지만 그럭저럭 그냥저냥 일상에 녹아들어 엉킨다.
초침의 고장은 눈치채기도 쉽지 않고, 눈치채더라도 이 시계가 대체 언제부터 고장 나 있던 것인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실은 우리 사이의 수많은 대화가 그렇다는 걸, 그럼에도 우리는 조금씩 배우고 또 달라지며 나아져 간다.

모든 관계는 끊임없이 변한다. 어느 순간 어느 감정을 포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두 사람의 세계와 여러 사람이 있을 때의 세계는 또 다르고, 근거리에서 보는지 원거리에서 보는지에 따라 또 전혀 다른 그림이 된다.
똑같은 사건도 순서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예술이 도둑질이 될 수도 있고, 꿈이 현실이 되기도 하며, 사랑이 거짓이 되기도 한다. 본 것이 못 본 것이 되기도 한다.

결국 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경계를 뽀얀 햇볕으로 흩어 본다. 초침 정도는 고장 난 채로, 모든 걸 선명하게 안다는 감각 없이, 조금은 부유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게 예술이 하는 일인 것 같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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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마주하고 환하게 웃는 우리들
첫사랑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내 첫사랑이 무엇인지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한다. 글쎄. 누구였을까. 막연하게 생각이 안 난다. 이 글을 쓰며 몇 명의 얼굴이 지나간다. 가장 가까운 시기인 넌 아니고. 걔는 그런 마음이 있었을까. 지금 2022년에 뒤돌아 봤을 때 '걔는 사랑이었어!'라고 생각하면 첫사랑이 될 것이다. 어렵지 않게 한 도착점으로 향한다. 일단 이성 이전에 인간관계도 똑바로 만들지 못했던 나였기에 손가락과 혓바닥을 뽑아버리고 싶은 이불 펑펑 흑역사를 만들어 첫사랑을 떠나보냈다. 첫사랑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아마 겁나 창피해서 자기 전에 생각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이 글을 읽는 분들 역시 다 똑같을 거라 생각한다. 첫사랑은 창피한 게 매력이지.
다른 첫사랑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아니지. 그 '다른 첫사랑'은 어쩌면 지금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는 게 재밌었던 나. 내가 하는 위로가 사람들에게 닿을 때마다 짜릿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이 이유로 이 글쓰기가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울컥하는 노래 가사처럼 마음에 들어가는 문장을 쓰고 싶었던 나. 난 아직도 그것에 낭만이 생겨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뭐 지치기도 지치지만 난 이런 시간이 즐겁다.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글을 쓰는 재미는 엄청 크다. 또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는 호칭도 포기하기 싫기도 하고. 어렸을 때 순수하게 쓰는 거에 집중해서 문예부 동아리 편집장까지 했던 다. 이상한 인간관계법이 있긴 했지만 여러 사람을 감동하는 글을 쓰는 순수한 재미는 그때가 20대인 지금보다 더 반짝반짝 빛났다. '왜 항상 대비해도 창피한 흑역사가 생기는가'라는 내 삶의 과제가 있어도 이 동기부여를 포기하기는 너무나도 싫다. 역시 이 마음이 나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들 무언가에 진심일 것이다. 그래서 즐거움과 꿈에 투신하는 사람들을 보면 흐뭇하고 뿌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2021년, 일본의 여름에 영화 제작에 진심인 여학생들이 있다. 이 학생들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근데 좀 특별하다. 사무라이 액션 영화다. 이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어보자. <썸머 필름을 타고!>다.
시대극에 진심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뭔데?" "널 좋아한다고!" 모니터 안의 남녀는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선남선녀가 달달한 사랑이야기를 보여주는 걸 보니 지켜보는 우리까지 뿌듯해진다. 카메라는 모니터 밖으로 옮겨간다. 결과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감독과 배우. '이 장면은 어떻게 찍었어야 했는데-'라고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여고생 영화감독 카린은 로맨스 장르를 만드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다. 곧잘 영화를 잘 만들어서 학교 내에 인기가 있는 카린. 대중적인 장르에 사랑스러운 연출 방식까지 과연 인기가 있을 만하다. 그런데 그런 카린을 이글이글 바라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맨발이었다. 저게 영화야? 까르르 웃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뭔가 착잡한 표정으로 속상해하고 있다. 가방을 챙기고 교실을 나서는 맨발. 이런 맨발을 망원경으로 쳐다보던 킥보드. 맨발에게 '(영화 제작) 동아리 끝났어?'라고 묻는다. 맨발과 킥보드는 어디 놀러 가기로 한 것 같다. 시골의 어느 외진 곳에 가는 두 사람. 폐차가 머지않은 트럭에 도착해서 DVD를 연다. 재생한 것은 사무라이를 소재로 한 시대극이었다. 영화사에 전설적으로 남은 <7인의 사무라이>부터 갖가지 시대극을 죄다 꿰뚫고 있다. 맨발은 시대극이라는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영화 제작에 나선다. 우리의 감독 맨발은 친구 '블루 하와이', '킥보드'와 함께 길이 남을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더 상큼발랄하게
일본의 틴에이저물이다. 주인공 3인방 이토 마리카, 카와이 유미, 이노리 키라라의 통통 튀는 연기는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영화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카와이 유미가 인상 깊다. 단발 헤어스타일에 동그란 안경을 끼고 등장하는 '킥보드'. 극에서 주인공 3인방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시대극, 액션 영화를 그렇게까지 선호하지 않는 킥보드. 이 킥보드는 두 사람과 적당히 잘 어울리면서도 중후반부까지 이어지는 인물의 성격을 잘 유지해야 한다. 이 두 사람과 킥보드의 차이점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데다가 이 작품의 사랑스러움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이 인물의 기본적인 캐릭터 설정부터 시각적인 구현 방식까지 초중반부 극이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이 배우의 분위기가 아주 큰 몫을 했다.
다른 인물인 '맨발' 역시 과하지 않게 적절한 선을 잘 탔다. 사실 또래들에게 대중적인 취향으로 꼽히기엔 거리가 아~주 멀다. 지금 20대인 나 주변에도 <7인의 사무라이> 같은 작품을 본 사람은 몇 없으니까. 이걸 10대로 범위를 넓히면 더 비중이 줄어들 것이다.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인물 설정에 왠지 모르게 진심이 느껴지는 뛰어난 캐릭터성을 선보였다. 왠지 류수영 배우 닮은 외모에 귀여운 사랑이야기를 구현할 수 있었던 건 이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꿨던 매력이 큰 덕을 봤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배우들과 감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랑스러움을 영화로 잘 구현해냈다. 여러분도 10대 때가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난 가끔 그립기도 하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학교 도서관에서 한국 단편 소설 읽던 때가 정말 순수하게 재밌었던 때다. 그렇게 20대 중반이 된 나. 가끔은 뭐가 재밌는지 생각에 빠질 때 있다. 단순히 나만 그럴까? 아닐 것이다. 순수하게 무언가에 부딪히고 싶은 사람들이나 그런 게 이미 있는 분들에게 이 영화는 흐뭇한 미소가 되어줄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첫사랑
누구든 어떤 사람을 몰래 짝사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짝사랑을 할까? 사실 사랑에 빠지는데 이유 같은 건 없다. 좋으면 그냥 좋은 것이다. 영화는 이 '좋으면 좋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쭉쭉 전개한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덕질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아닌 사랑 중인 인물들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 전체적으로 '이러저러해서 너는 무언가에 푹 빠져야 함'을 중요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전반적인 영화의 목표는 그냥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려울 수도 있는 부분을 절묘하게 빗겨나가서 할 말에 잘 집중한 감독의 수가 돋보인 부분이다.
위의 문단의 예를 들어보자면, 우선 영화 제작 과정이 소상히 잘 들어갔다. 주인공은 10대 학생들이다. 핸드헬드 카메라 큰 걸 들고 다닐 리가 없다. 당연하다. 그래서 아이폰과 거치대 하나만으로 배우들의 모습을 담는다. 뭐 이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영상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건 쉽게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외에 배우들을 섭외하거나 스태프를 고용하는 방식은 유쾌하고 사랑스럽다. 가령 음향 스태프를 설득할 때 한 야구부원과 이야기한다. 왜? 야구공 던지는 소리만으로도 부원 누가 야구공을 던졌는지 알 수 있으니까. 많은 영화를 봤지만 이런 건 처음 들어본다. 이런 식으로 고등학교 야구부원과 영화 제작이 관련 있는 방식은 다른 영화와 차별점이 있으면서도 유지하고 싶었던 귀여움을 잘 소화해낸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또 영화를 본 분들에게 기억에 남을만한 것이 조명 감독을 섭외한 방식이다. 진짜 있을법한 사람에게 엉뚱한 특성을 끄집어내서 영화에 조합시킨다. 이런 영화 제작기가 소재인 작품에 스태프를 섭외하는 것은 사실 극의 배경이 될 만큼 중요하다. 근데 이 작품은 이를 괜찮게 잘 전개하니 사려 깊었던 각본의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각본에서 부분 부분 섬세한 느낌이 잘 느껴진다. 일단 라이벌로 설정된 카린과 '맨발'의 관계다. 일단 '맨발'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카린을 라이벌로 생각해서다. 일본, 10대 소재 영화. 뭔가 예상한 줄거리가 쭉- 나타날 것 같다. 그런데 후반부를 보면 단순히 그 뻔한 방식으로 인물들을 소비하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 영화가 단순히 사춘기 때 학생들이 부렸던 객기가 아니라 순수한 열정을 소재로 삼았다는 건 카린과 '맨발'의 관계 변화가 후반부에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카린과 '맨발'의 행동 근거 역시 이 영화의 배경이 학교 동아리라는 것에서도 시너지가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을 경제적으로 잘 쓴 감독의 수가 돋보인다. 이 덕분에 후반부의 장르 급변에 더 힘을 준 느낌이다. 뻔할 수도 있는 극의 이야기가 되짚어 봤을 때 살짝 신선해지기까지 하는 좋은 설정의 힘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 전반적으로 인물들의 이유와 계기에 힘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 주요하게 작동한다. 극에 나오는 방식처럼 '난 널 좋아해!'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영화구나' 느낄 수 있었던 건 짧든 길든 사랑의 모티프가 구석구석 사용됐기 때문이다. 킥보드는 무얼 더 좋아하는지. 블루하와이는 어떤 걸 좋아하는지. 맨발이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카린은 어떤 걸 이해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각본 내에서 나름의 이유를 보여주며 잘 전개된다. 계기와 원인, 이유에 물리적인 비중을 많이 할당하면 영화가 번잡해질 수밖에 없다. 왜? 10대 시절 소중한 친구관계와 꿈,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게 이 영화이니까. 그런데 정말 기본적인 설정과 '친구관계'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하고 싶은 말에 포커싱을 잘 뒀다. 이 선택과 집중이 '원래 사랑에 빠지면 그런 거지!'라는 걸 생각하게 만드니 아이디어 기획이 좋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근데 너무 갑자기야
글쓴이는 영화를 보다 중반부에서 응? 하는 지점이 있었다. 이 소재가 후반부까지 이어지고 나니 '아~'싶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중반부의 갑작스러운 전개와 엔딩의 장르 변화가 장점이었다는 건 아니다. 현실적으로, 또 사랑스러웠던 이야기가 휙 바뀌는 전개는 살짝 아쉽다. 이게 영화를 보고 나서 씨네21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감독이 이 부분을 찍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영화의 터닝포인트 두 지점이 극의 핵심이 되는 셈이다. 뭐 끝까지 다 보고 나서 뭉클해진 것도 사실이고 이것들을 위해 그렇게 설정했다는 게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주인공의 인물 특성을 그렇게 하는 게 능사였는가? 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인물들의 개성이 살짝 퇴색되는 느낌이었다. 금세 우리가 알던 일본의 로맨스 영화가 겹쳐 보인다. 보자마자 생각나는 일본 영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설정이 시대극을 소재로 했다는 참신함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또 엔딩에서 장르가 급변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쓸데없이 잘 찍어서 더 아쉽다. 어떤 인물들이 하이라이트 신에서 어떤 행동을 한다. 이 인물 중 한 인물이 이쪽에 능력이 있다는 묘사가 없다. 그래서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동아리 시절에 만든 영화를 유튜브 같은 공개적인 플랫폼이 올리는 게 아닌 한 그 부분까지 신경 쓰는 사람이 지인 외에 몇 명이나 있을까?라는 의문점이 있다. 그냥 남자 주인공이 단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설정 전부를 퉁 친 것이 된 셈이다. 또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닌 한 남자 주인공의 목표가 정말 성공할 수 있는지도 각본에 의문점이 든 부분이었다.
빛나는 청춘
뭐 이건 영화 팬으로서 나의 소견을 담은 것이다. 이 영화는 반짝반짝 빛나는 생기로 가득 차 있다. 이토 마리카와 카와이 유미, 이노리 키라라 셋의 빛나는 귀여움은 러닝타임 후반부까지 관객을 이끈다. 또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재기 발랄함만으로도 극은 후반부까지 충분히 재미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랑받는 인생도 중요하지만 무언가에 깊게 빠진 삶이야 말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일 일어나서 개봉 뭐하지 찾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장르 중 전설적인 영화(<7인의 사무라이>)같은 영화를 되짚어보고. 리뷰를 써보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고. 그런 생기가 사람에게 상처도 되지만 누군가의 동기부여로 작동하는 건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인물로 우리 삶의 열정을 되짚어볼 수 있다는 건 영화의 큰 장점이자 재미다. 다들 이 영화로 여러분의 청춘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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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이 없을 때 불안감이 만드는 모습
우리 사회에서 집이라는 것은 단순히 살아가는 공간만 의미하지 않는다. 집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투자의 대상이 되었고 부를 상징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으로 재산을 늘리려 하고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한참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부터 집값은 빠른 속도로 뛰었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하나 마련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돈을 벌어 저축해야 했다. 그렇게 저축해서 집을 사는 기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길어져만 갔다. 그렇게 집에 대한 인식이 투자의 수단으로 변하면서 절망하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집 한 채를 사기도 버거웠다. 집값이 오르면서 전셋값과 월세값도 늘어났다. 그렇게 집을 소유한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인식 전환에도 불구하고 집은 우리가 가장 편하게 쉬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집을 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집을 사지 못하더라도 전세나 월세로 지낼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더 심각한 절벽으로 떨어진 사람들은 곰팡이로 가득한 집에서 생활해야 하거나 아주 작은 평수의 공간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런 공간에서 아이를 키우고 가족과 살아가야 한다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좀 더 나은 공간으로 가고 싶지만 당장은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까. 이들은 매 순간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보증금 사기로 살 집을 잃어버린 부부의 이야기
영화 <홈리스>는 보증금 사기를 당해 집이 없는 처지에 있는 한결(전봉석)과 고운(박정연)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보증금을 잃은 후 한순간에 갈 곳을 잃었다. 찜질방에서 숙박을 해결하지만 매일 쉴 공간을 찾기 벅차 보인다. 그들에게는 갓난아이가 있다. 그래서 이 가족에게는 집이 필요하다. 당장 생활비도 부족한 그들에게 보증금이 있는 월세집은 바로 들어가기 어렵다. 초반에 영화가 비추는 이들의 모습은 무척 우울해 보인다. 그래도 한결은 배달 일을 하며 하루하루 일당을 받고, 고운은 아이를 케어하며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들은 도움받을 가족도 마땅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회제도적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마땅치 않다.
한결과 고운 부부의 고민은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겪는 주거 문제를 좀 더 극적으로 영화에 담겼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 조금씩 최악의 상황으로 빠진다. 사기를 당한 상황에서 아이가 다친다. 안 그래도 돈이 부족한데 돈이 필요한 일이 자꾸만 생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벌려 겨우겨우 하나의 상황을 해결하고 나면 그다음에 또 다른 문제가 그들의 앞에 나타난다. 그 상황에서 그들에게 집이라는 안락한 공간은 도저히 꿈꿀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꿈꾼다. 하지만 여전히 집값은 높고 은행 대출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자신만의 집을 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좀 더 공격적으로 투자를 시도한다. 코인이나 주식에 들어간 돈이 불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한 순간에 그 돈이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대부분의 자산을 잃은 그들에게 결혼이나 출산은 먼 일이다. 만약 그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다면 제대로 된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영화 <홈리스>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들이 부정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자신들 만의 집을 만들 수 있을까. 그게 가능은 한 걸까.
영화 속 주인공들은 우연히 알게 된 할머니의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 그 집에 대한 비밀이 영화에 미스터리 한 느낌을 만든다. 그들이 그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는 내내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의 집이 아니라는 불안감은 관객의 마음도, 주인공들의 마음도 오염시킨다. 이들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하지 못할 행동을 하나씩 하기 시작한다. 남편인 한결 뿐만 아니라 부인인 고운도 당장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건 합법적인 선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집은 생존을 의미하고 그 생존을 위해 마음속에 자리한 '도덕과 상식'을 포기한다.
집이 없다는 불안감을 부부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영화
이런 주인공들의 선택은 굉장히 충격적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것 이외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들은 궁지에 몰렸다. 이 가족이 꿈꾸는 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영화의 말미 이들이 할머니의 빈 집에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아주 평범한 가정처럼 편안하게 보인다. 한결과 고운은 그들의 선택의 끝이 어떤 것일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충격적인 선택을 할 때마다 무척 마음이 무거워 보인다. 아이에게 자신들의 고통을 전달하지 않고 키우고 싶은 이들의 욕심은 영화의 끝으로 갈수록 그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한결을 연기한 배우 전봉석과 고운을 연기한 배우 박정연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최선을 선택을 하지만 한가닥 남은 양심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무척 잘 표현해냈다. 영화에서 이들이 고민하고 절망하는 순간이 무척 안타깝게 느껴진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하려고 뛰는 한결의 모습, 할머니 집을 자신의 집으로 만들려고 할머니의 집을 버리며 멍한 표정을 짓는 고운의 모습은 이들의 절망감을 무척 잘 전달하고 있다.
영화 <홈리스>는 21회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CGV 아트하우스상을 수상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일처럼 현실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사지 못해 절망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한 주거 공간은 가지고 있는 돈에 비례해 그 등급이 나뉜다. 혼자라면 어디에서라도 살 수 있겠지만 아이가 있다면 어느 정도 좋은 환경이 뒷받침되는 곳을 택해야 한다. 여기에 집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사건들이 무작위로 찾아온다. 어떤 방법으로도 구할 수 없는 주거공간에 대한 고민이 이 영화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투자용으로서의 집도 요원하지만 주거공간으로서의 집에 다가서는 것도 무척 쉽지 않다. 영화 속 한결과 고운이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모습은 마치 집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의 절망감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 무척 안타깝게 느껴진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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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에는 스티브 잡스, 나이키에는 소니 바카로
8★/10★
17퍼센트. 1984년 나이키의 농구화 시장 점유율이다. 아디다스는 29퍼센트, 컨버스는 무려 54퍼센트였다. 한 마디로 그 당시 나이키는 농구화 시장에서 별 볼 일 없는 회사였다. 운동화/러닝화를 잘 만들 뿐인, 그저 그런 이미지의(‘쿨’하지 못한), 그닥 갖고 싶지는 않은 브랜드 말이다. ‘에어 조던’을 필두로 거의 모든 스포츠 분야에서 톱으로 꼽히는 오늘과는 사뭇 다른 위상이다.
모두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를 선택하기 이전의 이야기다. 영화 〈에어〉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나이키가 계약을 맺을 농구 선수를 모색하는 일을 담당하는 소니. 그는 재능 있는 선수를 알아보는 안목이 탁월하지만 몇 년째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회사의 소극적 마케팅 전략 때문이다. 나이키 구성원들은 자신이 농구화 업계 3위라는 사실이 ‘당연’하다. 톱 선수들은 영입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나마 가능성 있는 선수에게도 과감히 투자하지 않는다. 적당한 선수 몇 명과 적당한 금액으로 계약을 맺는 일을 반복할 뿐이다. 나이키 농구 부서는 패배주의적 관성에 젖은 상태다.
마이클 조던 역시 나이키가 감당할 수 없는 유망주였다. 이번에도 조던은 자연스레 나이키의 계약 제안 대상에서 제외된다. 짜증이 나지만 불가피한 현실에 체념하려던 소니. 그러나 평범한 어느 날 저녁, 선수들의 비디오 테이프를 보던 소니의 눈이 반짝인다. 그날 저녁 소니가 깨달은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마이클 조던은 가능성 있는 유망주 정도의 선수가 아닌 차원이 다른 선수라는 점. 둘째, 업계 3위 나이키가 조던을 잡으려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다. 나이키는 조던과의 계약에 성공했다. 그리고 나이키와 조던은 모두 경쟁자를 허락하지 않는 압도적 위치에 올랐다. 〈에어〉는 도대체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는지를 좇는다. 결말을 안다고 뻔한 영화라 단정 짓는 건 금물이다. 〈굿 윌 헌팅〉, 〈라스트 듀얼〉 등의 영화에서 합을 다져온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의 호흡은 여전하고, 벤 애플렉의 연출 역시 안정적이다. 무엇보다 이들에게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제 사건이 있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소니의 무모한 열정이 주변인들에게 조금씩 전염되어 끝내 조던과의 계약을 성사하는 과정은 짜릿함의 연속이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 끝내 성공하리라는 믿음, 틀을 부수는 과감한 혁신, 돈을 뛰어넘어 마음을 움직이는 진심, 동료들과의 팀워크. 조던을 향한 소니의 여정은 스포츠 그 자체다. 나이키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농구를 잘 몰라도 언더독이 승리를 쟁취하는 데서 오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를 넘어 매너리즘에 젖은 다양한 영역의 기획자, 도전자의 피를 들끓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나이키의 성공에 관한 영화이자, ‘에어 조던’의 탄생에 관한 영화이자, 스포츠와 똑 닮은 스포츠 마케팅에 관한 영화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가치를 증명해내야 하는 직장인에 관한 영화다. 〈에어〉가 어딘가에서 또 다른 기적을 꿈꾸는 모두에게 건강한 자극으로 다가갈 영화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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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가 망했다고? 왜?
우리 잡히지 말자! 리들리 스콧 감독은 낭만을 잘 살리는 감독이었다. <델마와 루이스>는 아주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가부장적인 곳에서 잡혀 살던 주인공이 한 사건을 계기로 자아를 찾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나도 그게 와닿을 시기에 그 작품을 봐서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물론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올 더 머니>나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이런 것들은 가슴이 웅장해지는 작품이겠지. 아니 사실 나는 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리들리 스콧의 감독 작품 중에 본 것 <델마와 루이스>밖에 없다. 그래서 그를 감성적으로 기억하고 있나 보다. <마션>이나 <블레이드 러너> 한번쯤 봐야 하는데 공익근무요원 일이 너무나도 힘드니 볼 틈이 없다.
근데 그런 바쁜 와중에도 최신작은 못 참는다. 후에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에 굉장히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할, <베놈 2 : 렛 데어 비 카니지>와 함께 자웅을 겨뤘던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를 다루려고 한다. 원래는 <라스트 나잇 인 소호>를 써보고 싶었지만 뭔가 극장에서 시간이 안 날 것 같아서 근래 상영작 중 좋았지만 저평가가 있었던 것을 고르려고 한다. 나는 이 영화가 러닝타임도 길고 중세 서부라는 한국인들이 접근하긴 어려운 소재임에도 훌륭한 메시지와 좋은 연기를 담았다고 생각하기에 여러분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과연 2021년의 과소평가 작품 1등으로 꼽힐만하며, 이 작품의 조디 코머는 주요 시상식의 여자 주인공 후보로 뽑힐 수도 있다는 소심한 주장을 해본다. 아마 아무도 동의 안 하겠지만..ㅋㅋ
1. 감독 리들리 스콧, 장기를 살렸나요?
물론 이 감독의 영화를 <델마와 루이스> 빼곤 보진 않은 게 맞다. 근데 (자칭) 시네필로 살고 있다는 가오는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지 않은가? 그의 대표작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리들리 스콧은 상상력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에일리언>이나 <블레이드 러너> <마션> 같은 작품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주위에 화성 갔다 온 사람 있는가? 비트코인으로 간 거 말고 실제로 화성에 간 사람 말이다. 또 실제 존재하는 에일리언 본 적 있는가? 당연히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리들리 스콧의 최고 강점은 '가상의 현실을 직조시켜 최대한으로 서스펜스를 유지시키는 것'인 것이다. 근데 이 작품은 에릭 제거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 이 원작이 되는 소설은 실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없던 현실을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13세기로 넘어가는 타임머신이 있는 건 아니라서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았던 건 아니겠지? 근데 영화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지 않아도 2021년의 현재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만들었다. (내가 아는) 리들리 스콧의 영화와는 살짝 다른 감이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묵직함이 있다.
2.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일단 주인공 자크 드 거리를 맡은 아담 드라이버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결혼 이야기>에서의 부부싸움 연기나 <인사이드 르윈>에서의 그냥 포크 뮤지션 역할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중요한 건 역시 <스타워즈> 시리즈에 나왔던 것 아닐까? 다방면의 역할을 보여주는 할리우드의 이선균 아담 드라이버는 그야말로 전천후 연기자다. 난 이런 그의 연기력이 이 작품에서 극대화됐다고 생각한다. <아네트>에서도 어마어마했고 <패터슨>도 잘했다고 들었다. 근데 두 작품을 안 본 것과 별개로 나는 이 역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난이도가 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의 핵심 키워드가 되는 사건이 있는데, 사실 극을 보다 보면 이 일이 어떤 식으로 전개됐는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결말을 예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는 것이다. 근데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인 것이 이 자크 드 그리의 캐릭터가 보통 미친놈이 아니라는 것인데, 현실적으로도 있어서는 안 될 돌아이라 내가 배우 입장이라면 이 역을 맡는 게 무서웠을 것 같다. 근데 우리의 아담 드라이버는 이를 200% 소화해낸다. 다른 주인공은 맷 데이먼이 맡은 장 드 카루 주인데 이 인물 역시 딱히 우리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자크 드 그리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가 그렇게 좋은 인간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근데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이나 <다크 나이트>의 조커같이 비현실적인 미친놈들도 연기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 이 장 드 카루 주같이 어느 정도는 현실성 있는 돌아이도 어렵다면 어렵지 않을까? 맷 데이먼은 그때는 보편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보기엔 돌아이인 그런 인물을 아주 멋지게 소화해낸다. 본 시리즈에 나왔던 샤프한 모습은 없다. 그냥 배 나온 아저씨가 보일 것이다. 근데 맷 데이먼은 나이가 들어도 역시나 연기를 너무 잘해서 포스가 흘러넘친다. 다음은 조디 코머다. 조디 코머가 맡은 마르그리트는 많은 것을 감내하는 중세시대 여자 역할을 한다. '많은 것을 감내한다'에서도 알 수 있듯 그녀는 수도 없는 개소리를 참아야만 하는데, 터닝포인트가 되는 핵심 사건을 비롯 그녀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감정적으로 참는 것이 배우로서 힘들었을 것 같다. 인간적으로 영화의 마르그리트는 살아있는 부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외에도 벤 애플랙을 비롯한 나머지 배우들도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나머지 세 배우가 워낙 탁월했기에 글을 줄이도록 한다.
3. 난이도는 어떤가요?
쉽지는 않다. 무슨 말이냐. 리들리 스콧 감독이 서스펜스를 차곡차곡 쌓은 것도 맞지만 일단 이 영화는 같은 에피소드를 세 번 반복한다. 만약 우리가 같은 말을 세 번 듣는다고 생각해보자. 솔직히 지루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나는데?'가 궁금한 분들은 긴 러닝타임을 견디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 웬만하면 극장에서 보는 게 좋은 작품인 건 맞는데 모바일 환경에서 보는 게 어마 장장한 손해를 품고 있지는 않으니 스릴러, 역사물 좋아하는 분들은 부담 없을 듯. 아, 살짝 지루할 수도 있다는 위험부담이 있기야 하지만 플롯을 성실히 따라가다 보면 이해하기 크게 어려운 작품은 아니다.
4. 왜 과소평가되었다고 생각하나요?
물론 전 세계 영화 팬들의 마음을 꿰뚫을 순 없겠지만 난 사실 되게 간단한 이유로 과소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첫 번째 요인, 같은 이야기를 세 번 반복한다. 인스타그램 쇼츠가 유행하는 세상이다. 나도 본론 결론 딱 임팩트 있게 끝나는 영화가 더 손이 갈 때가 있다. 이런 세태에 같은 과정을 세 번 반복하는 영화가 대중적인 입맛에 딱 맞아떨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두 번째. 전염병이 창궐한 세상에 인터넷이 너무나도 발달했다. 14세기 중세시대를 다뤘던 게 소수의 덕후들이 아닌 나머지들에겐 접근 난이도가 있었을지도? 또, 세 번째. 러닝타임이 길다. 솔직히 나도 극장에서 이 작품을 봤을 때 2시간 30분이라는 러닝타임에 놀랐다. <이터널스>가 아마 비슷하지 않았나? <이터널스>는 10명의 히어로들을 밸런스 있게 배치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기라도 했지 이 영화는 같은 이야기만 세 번을 쓰니 반복이 지치다면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근데 이것은 이 영화의 단점에 대한 이야기가 될 테고, 나는 14세기의 원작 소설이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단점을 충분히 감추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지점이 리들리 스콧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겠지. 이 모티브를 부담 없이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극찬받을만하다.
5. 어떤 것에 대한 영화인가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미투 운동이다. 미투 운동. 우리 사회에서 상처를 입은 이들을 위로하는 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미투 운동은 역선택을 품고 있다. 무고한 사람을 걸고넘어지면 그 사람의 마음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애 먼 사람의 삶을 망가트리는 짓은 그만큼의 대가가 치러져야 마땅하다. 근데 이런 역선택의 위험성이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면 안 되지 않을까? 이 영화의 마르그리트는 한 사건의 주인공으로서 그때의 성차별적인 행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답한다. 또 현대사회의 미투 운동을 연상케 하는 여러 말들을 통해 왜 우리 사회가 약자들의 이야기에 집중해야만 하는가? 에 대해 조명한다. 또 그녀 역시 역선택의 위험부담에 놓여 정체성을 잃을 뻔 하지만 어쨌든 당당하게 그녀의 목소리를 낸다. 우리는 이런 그녀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본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게 아닐까? 과연 현재의 우리에겐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이 사회에서 꼭 우리와 함께 양립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할까?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그런 질문들을 통해 뇌 비운 혐오가 팽배하는 우리 현실에서 그 자체를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는지를 전해주는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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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객전도가 낳은 형보다 못한 동생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런던에서 헤이그까지 킬러 ‘다리우스(사무엘 L. 잭슨)’의 경호를 맡은 이후로 보디가드 자격증을 박탈당하고 매일 밤 그의 악몽에 시달리는 ‘마이클(라이언 레이놀즈)'. 그는 당분간 휴식을 취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정신과 의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탈리아에서 안식년을 즐기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휴가 첫날 그의 앞에 다리우스의 아내 ‘소니아(셀마 헤이액)’가 등장하면서 그의 평화는 산산조각 난다. 그녀와 함께 납치된 다리우스를 얼떨결에 구해낸 마이클은 뒤이어 인터폴 요원 '바비(프랭크 그릴로)'의 강요 같은 의뢰를 받아 그리스의 갑부 테러리스트 '아리스토텔레스(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유럽 전역을 표적으로 계획 중인 테러를 막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속편의 저주'는 영화계에서 흔히 통용되는 표현 중 하나다. 센세이셔널한 평가를 받거나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한 작품들이 시리즈화될 때, 본연의 매력과 신선함을 잃어가면서 이전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이처럼 많은 속편이 저주에 시달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주객전도를 빼놓을 수는 없다. 전편에서 관객들에게 어필했던 매력을 강화하기보다는 규모를 키우거나 새로운 캐릭터를 투입하는 등의 변화를 추구한 결과 본연의 정체성을 잃고, 결국 관객들의 기대치와 만족도 또한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다. '차들이 로봇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실사로 보여주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트랜스포머> 시리즈이지만, 1편 이후 로봇의 변신이라는 핵심 테마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인간 캐릭터나 미군들의 무용담만을 늘어놓은 결과 실패를 맛봤다.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도 2편에서 신비한 동물들의 비중과 분량을 줄인 결과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고, 허당처럼 보이지만 실상 냉혹하고 천재적인 해적 잭 스패로우를 단순한 개그 캐릭터로 변질시킨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도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1편의 주역인 라이언 레이놀즈와 사무엘 L. 잭슨이 건재하고, 모건 프리먼과 프랭크 그릴로가 합류해 덩치를 불린 <킬러의 보디가드 2> 역시 실패한 속편의 전철을 착실히 따른다.
전편인 <킬러의 보디가드>를 돌이켜 보자.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버디영화다. 겉모습부터 상극인 두 주인공이 함께 여행을 떠나고, 갈등과 화해를 숱하게 반복하면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서로의 개인사와 고충을 공유하고 또 해결하면서 같은 편으로 거듭나는 버디무비의 전형을 답습한다. 전반적인 내용만 놓고 보면 제91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그린 북> 같은 작품과도 하등 다를 게 없다. 단지 그 이야기를 화려함과 잔혹함 사이를 오가는 액션과 유쾌함과 저속함을 넘나드는 코미디, 그리고 데드풀 그 자체인 라이언 레이놀즈와 걸쭉한 입담이 시그니처인 사무엘 L. 잭슨이라는 배우들의 존재감으로 포장했을 따름이다.
이때 영화는 제목대로 두 주인공 중 보디가드인 마이클을 스토리텔링의 중심에 둔다. 마이클은 전 인터폴 요원인 전 여자친구의 부탁으로 악명 높은 킬러 다리우스의 경호를 부탁받았고, 실제로도 런던에서 헤이그까지 경호의 범주를 벗어난 일은 하지 않았다. 영화의 또 다른 축이자 악역인 벨라루스의 독재자 '블라디미르(게리 올드만)'의 음모를 알아내고 그를 심판하는 것은 모두 그와 악연이 있는 다리우스의 몫이었고, 이는 마이클의 서사에 종속된 하위 플롯에 불과했다.
흥미로운 것은 마이클을 철저히 보디가드의 본분인 경호에 충실하게 한 선택이 두 가지 측면에서 영화의 재미를 끌어올린다는 사실이다. 우선 보디가드인 주인공의 시점에서 액션신을 접하기 때문에 자연히 긴박함과 긴장감이 고조된다. 언제 어디서 공격당할지 모르는 와중에 어떻게든 다리우스를 지켜야 하는 의무감이 부각된 결과다. 그렇게 쉴 틈 없이 흘러나오는 액션은 강력한 몰입감을 선사하고, 액션 영화로서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또한 이는 코미디 영화라는 측면에서도 유용하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게 직업인 사람을 보호해야만 하는 아이러니가 영화의 기저에 깔려 있기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마이클과 냉소적으로 받아치고 비꼬는 다리우스의 호흡이 단순한 말다툼을 넘어 공감 섞인 웃음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작 <킬러의 보디가드 2>에서 마이클이 더 이상 보디가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번 영화에서 마이클은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보디가드이지만, 실상은 납치된 다리우스를 구하고 유럽을 노리는 테러리스트와 그의 정보를 추적하는 등 인터폴에 고용된 첩보원에 가깝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쫓기는 입장이 아니라 전 유럽의 테러를 막기 위해 누군가를 쫓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피렌체에서의 카 레이싱 장면만 보더라도 그는 쫓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추격전 역시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다가 발각된 결과일 뿐이다. 누군가의 보디가드라는 전편과 동일한 형식의 제목을 달고 나왔지만, 내용적으로는 쉴 새 없는 입담과 허술한 듯 뛰어난 액션, 능청스러움을 한 데 묶어 마이클을 마이클 답게 만들어주는 '보디가드'라는 정체성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분명 15세 관람가였던 전작보다 더 잔혹해졌고, 헬리콥터와 추격전을 펼치거나 호화로운 요트를 박살 내는 등 볼거리도 더 많아진 액션씬은 좀처럼 이목을 끌지 못한다.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도, 예상치 못한 습격을 경계하는 서스펜스도 없으니 좀처럼 집중이 되지도 않고, 긴장감도 없다. 세계 최고의 경호원과 킬러라고 추켜 세울만한 인물을 등장시키며 어떻게든 분위기를 고조시키려 해도 이미 전편에서 주인공들의 능력을 목격했기에 이러한 노력은 역부족이다. 이에 더해 코미디의 관점에서도 등장하는 횟수에 비해 유머가 터지는 타율이 극히 낮아진다. 마이클과 다리우스가 사소한 일로도 시종일관 말다툼을 벌이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소소한 다툼 하나하나가 웃음을 자아내던 전편의 매력은 찾아볼 수 없다. 킬러와 보디가드라는, 전혀 다른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닌 채 살아온 두 사람 간의 간극과 아이러니라는 근간이 사라진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이렇듯 캐릭터, 플롯, 액션, 코미디가 모두 와해되자 <킬러의 보디가드 2>는 여러 시리즈의 속편들이 선택한 변화를 답습한다. 하지만 모든 변화는 악수로 귀결된다. 우선 악역의 스케일을 국가적 차원에서 대륙적 차원으로 확대시킨다. 전편의 악역인 블라디미르가 자국 내에서의 인권탄압 사실을 인멸하려는 독재자였던 것과 달리 새로운 빌런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전 유럽의 기반 시설을 파괴하는 테러를 준비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빈약하고 허황된 악역의 목적과 철학은 급격히 커진 스케일을 좀처럼 지탱하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를 제재하려는 EU의 경제정책이 그리스를 무시, 차별, 탄압하는 처사라면서 이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 전 유럽을 겨냥한 테러를 계획한다. 그리스야말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유럽 문명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EU의 경제 제재는 그리스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이다. 코미디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인권탄압을 용인한 독재자라는 전편의 설정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신념과 목적은 현실성과 극 내부의 논리 모두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 결과 존재감이 미약해진 빌런은 극 전체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평면적인 캐릭터 구축으로 인해 스페인 영화 <페인 앤 글로리>에서 극찬을 받은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역량을 온전히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덤이다.
또한 새로운 캐릭터들을 투입해서 액션과 코미디 양쪽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마이클과 다리우스의 관계성을 변주한다. <킬러의 아내의 보디가드(Hitman's Wife's Bodyguard)>라는 영어 제목에 걸맞게 남편보다 입이 거칠고 두 주인공보다 망설임 없이 총을 쏘는 다리우스의 아내 소니아의 비중을 잔뜩 늘린 게 그 예시다. 프랭크 그릴로가 연기한 인터폴 형사 바비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세 주인공을 매정하게 배신할 수 있는 냉혈한으로 등장한다. 이에 더해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마이클의 아버지는 마이클의 가슴 아픈 과거사를 소개하고 약간의 반전을 통해 긴장감을 더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 중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는 이는 없다. 소니아가 남발하는 19금 유머는 너무 직설적이라서 유머 같지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존재는 마이클과 다리우스의 케미스트리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액션 역시 더 과격하고 난폭해지는 것 외에 새로운 면모가 드러나지 않는다. 바비는 세 주인공을 첩보 작전에 투입시키고, 주인공들이 직면한 임신과 보디가드 자격증 회복이라는 개인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장치로 소비되는 데 그친다. 마이클의 아버지가 선보이는 반전 역시 복선과 암시가 전무한 수준이라서 전개의 편의상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사실 <킬러의 보디가드 2>는 어디까지나 재밌게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킬링 타임 영화다. 결코 작품 내적인 완성도가 만족도와 직결되는 류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지향점이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같은 재미와 쾌감을 추구한 전편과 비교할 때 거의 모든 부분에서 퇴보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고, 이러한 퇴보의 내용은 팝콘 무비로서의 장점까지 앗아갔기 때문이다. 결국 <킬러의 보디가드 2>는 주객전도가 낳은 형보다 못한 아우에 그치고 만다.
D(Dreadful, 끔찍한)
클래식한 속편의 저주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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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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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령>, 1월 18일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 영화 <유령>이 1월 18일 개봉을 확정했다. 영화에는 설경구부터 이하늬, 박소담, 박해수
배우 등이 출연한다.
<아바타: 물의 길>, 개봉 3일 만에 100만 돌파
ⓒ 네이버 영화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이 개봉 3일 만에 100만 돌파에 성공했다. <아바타 : 물의 길>은 제80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작품성을 인정 받기도 하였다.
문근영, '강수연상' 수상
ⓒ 크리컴퍼니
올해 시상식에서 영화인으로서 모범을 보인 배우 故강수연의 50여 년간 한국 영화계에 끼친 업적과
공로를 치하하고 그를 기리고자 '강수연상'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문근영 배우가 첫 강수연상을 수상했다.
해외
심은경, 일본 드라마 <백만 번 말할 걸 그랬어> 출연
ⓒ 유마니테
배우 심은경이 일본 TBS 드라마 <백만 번 말할 걸 그랬어> 출연을 확정했다. 심은경 배우는
뇌신경외과 의사 '송하영'을 연기한다. 송하영'은 '유이'(이노우에 마오)와 예상치 못한 일로
만나서, 서로에 대해 점차 알게 되고 관계를 맺어가는 역할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블랙 스완> 뮤지컬 제작 도전
ⓒ 네이버 영화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최근 인터뷰에서 <블랙 스완>을 뮤지컬로 제작하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현재 각색 작업 과정 중에 있고, 제작을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있다고 밝혔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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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드리의 솔루션북] 끝장리뷰 | 결말해석 | 상승과 하강 | 공드리월드 분석 | 해결-책(솔루션북) 상징 | 파편화된 의식의 총합
([공드리의 솔루션북](2024)은 씨네랩(cinelab) 측에서 제공한 시사회권으로 관람하였습니다)
[공드리의 솔루션북](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말하는 대로
Chapter 2 상승과 하강
00:00 공드리의 솔루션북
01:10 말하는 대로
03:12 해결-책
04:02 상승과 하강
06:04 결말해석
07:05 별점 및 한 줄 평
07:23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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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종」리뷰ㅣ쫄보기자들과 바이럴에 낚였습니다...ㅣ랑종 후기ㅣ
? "랑종" 리뷰(*스포없음)
- 랑종 정보
장르: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페이크 다큐멘터리, 오컬트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각본: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제작: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원안: 최차원, 나홍진
- 랑종 스토리 시놉시스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 낯선 시골 마을.
집 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이 곳의 사람들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은
조카 ‘밍’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날이 갈수록 이상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는 ‘밍’.
무당을 취재하기 위해 ‘님’과 동행했던 촬영팀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밍’과 ‘님’, 그리고 가족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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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한여름밤의 재즈> 메인 예고편
어느 화창한 여름 날, 휴양 도시 뉴포트로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들을 반기는 낭만 가득한 여름 바다와 감미로운 재즈 선율.
루이 암스트롱, 마할리아 잭슨, 셀로니어스 몽크, 척 베리, 아니타 오데이…
해가 지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즈 페스티벌의 막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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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메인 예고편
1995년 작가를 꿈꾸는 조안나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작가 에이전시에
CEO 마가렛의 조수로 입사한다.
출근 첫날,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 샐린저의
팬레터에 기계적으로 응대하라는 지시를 받지만,
조안나는 그들에게 진심 어린 답장을 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