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2025-08-05 13:49:30
기댈 곳이 없어 너무 빨리 자라버린
<수연의 선율> 시사회 후기

개봉 | 2025.08.06.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가족, 미스터리, 스릴러
국가 | 대한민국
러닝타임 | 108분
배급 | 싸이더스
시놉시스 |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겨진 열세 살 ‘수연’은 보육 시설을 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보호자를 찾아 나선다. 우연히 한 부부의 유튜브에서 ‘선율’이라는 일곱 살 아이를 입양해 행복하게 생활하는 완벽한 가족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의 추가 입양 계획을 알게 된 ‘수연’은 이들의 새로운 가족이 되기 위해 ‘선율’에게 일부러 접근한다. 그런데 ‘선율’의 행동이 어딘지 좀 이상하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수연의 선율>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동 복지에 관심이 있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를 6년째 이어가고 있고, 영화 속 ‘수연’과 같은 6학년 여아들을 담당하여 한 해 동안 그들의 고민과 삶을 나누며 가까워본 적도 있었기에 더욱 궁금했던 작품입니다.
본 영화의 주제를 보았을 때엔 사회 고발을 목표로 하는, 공익성이 짙은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막상 관객이 되어 영화를 들여다 보면, 물러설 곳 없는 아이에게 닥친 현실을 함께 마주하며 서스펜스를 느끼게 되죠. 완벽한 가족처럼 느껴졌던 ‘선율’의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다가길수록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은 커져만 갑니다.
고작 13살인 ‘수연’이 마주하는 거친 세계는 아주 복합적입니다.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의 죽음을 온전히 애도할 겨를도 없이, ‘수연’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지켜내야 합니다. 재개발 예정인 집을 지키기에 ‘수연’은 너무 어리고, 힘도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복지사 선생님도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합니다. 법적 대리인이 될 수 있는 어른은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냈던 친구의 엄마인데, 그마저 너무도 선명한 선이 그어진 남이란 사실을 ‘수연’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안 그래도 복잡한 상황에서 ‘수연’을 좋아한다며 따라붙는 상급생은 비릿한 눈빛을 보내오고, 현관문 앞까지 찾아와 문을 마구 두드리며 위협하죠. ‘수연’은 울타리가 필요합니다. 아무도 함부로 팔아버리거나 문 앞까지 찾아오지 못하는, 안전한 집이 필요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함께할 따뜻한 가족이 필요합니다.
최종룡 감독은 방과후 교사로서의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단선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됐다”며, 아이들의 복잡한 현실을 그리려는 의도를 밝혔습니다. 그는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캐릭터를 통해 아이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죠. 또한, 감독은 수연과 선율의 캐릭터에 대해, “환경이 그들을 단련시킨 거다”라고 설명하며,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과 그로 인한 성숙함을 강조했습니다.
본 영화를 관람하며, 위태로운 아이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관객들의 생각이 궁금해졌습니다.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입양아 학대 사건, 쏟아지는 키즈 크리에이터와 이에 대한 갑론을박 등, 영화는 현재 우리가 직시하고 답을 찾아야 할 문제들을 선명하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의 <아무도 모른다>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무책임한 어른과 위태로운 아이들의 생존을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죠. 아이를 동정의 눈으로 보기보다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관찰한 모습들을 다루고자 한다는 점도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본 영화를 관람하며 마음에 걸리는 지점들도 있었습니다. 여기부턴 관람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든지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지실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 의견을 존중합니다.
전 영화가 의도한 메시지에는 공감하지만, 일부 장면에서는 어린 ‘수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소 어른 중심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캐릭터를 조형하는 방식이 다소 관념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의 폭력과 맞선다”는 의도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아이의 경험을 그리는 방식 자체가 어른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느꼈고, ‘수연’이라는 캐릭터는 ‘아이’라기보다는 ‘조숙한 소녀’로서 일종의 상징처럼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전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언급한 “저항하는 어린이”를 느끼기보단, 물러설 곳 없는 아이가 어디까지 시달려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연’이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당차게 해결해나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어딘가 ‘수연’을 타자화하는 듯한 연출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순진하지 않다”는 메시지 자체가 불순한 게 아니라, 그 순진하지 않음, 호락호락하지 않음이 어딘가 지나치게 조숙하게 연출되었기 때문에, 심하게 말하면 조금 거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만난 6학년 아이들도 제가 가졌던 관념보다 성숙했습니다. 부당함을 표현할 줄도 알았고, 화가 나면 어른보다 살벌하게 욕을 할 줄도 알았습니다. 아이들도 우울할 때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자신과 주변에 대해 끊임없이 파악하고 업데이트하며 관계를 정립해나가더라고요. 순진하게 아무나 덜컥 믿지도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협상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수연’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전 ‘수연‘이 고등학생쯤으로 느껴졌습니다. 이게 너무 개인적인 트집으로 느껴지지 않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제가 어떻게 느꼈든, 영화가 조명하고자 한 의도까지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영화는 더 많이 제작되어야 하고,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