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4-26 15:26:08
끝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아이의 마음
<프리다의 그해 여름> 2017, 카를라 시몬 감독
끝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아이의 마음
첫 장면부터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프리다는 담담하면서도 위태한 표정으로 폭죽이 터지는 하늘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긴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장면이 이렇다. 어딘가를 응시하는 프리다의 얼굴을 비추거나 프리다가 쳐다보는 대상을 비춘다. 가족 중 누구도 프리다가 외롭게 느낄만한 행동을 하지 않지만, 프리다는 그 속에서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끼고 외로워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랑받는 아이인지,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확인하고 싶어 한다. 외숙모가 머리를 빗겨주는데 그 빗을 던져버리고, 일부러 신발끈을 못 매는 척 묶어달라고 하며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기도 하고, 아나가 가져온 배추를 자신이 가져온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프리다의 이런 행동들은 아이의 사소한 장난 내지 투정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프리다의 행동이 모두 웃어넘길 정도의 것은 아니다. 프리다는 아나를 숲에 놔두고 돌아와 모른 척하거나, 아나가 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만 있는 등 종종 선을 넘는 행동을 해 아슬아슬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프리다를 미워할 만도 하지만, 아나는 프리다를 미워하지 않는다. 팔을 다치고도, 물에 빠진 후에도 오히려 계속해서 프리다의 곁에 있으려 하며 자신과 놀아달라고 말한다. 또한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가출하려는 프리다에게 자신은 프리다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나의 사랑과 관심이 프리다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한밤중의 가출을 계기로 가족들의 진심을 확인한 뒤, 프리다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보이는 듯하다. 그런데 그렇게 가족들과 화목할 것 같던 프리다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이유를 묻는 가족들의 물음에 연신 모르겠다 답하며 서럽게 운다. 이 울음은 그렇게 확인하던 가족들의 사랑을 급작스레 깨닫게 되어 터진 울음으로도 보이지만, 그보다도 엄마의 죽음을 끝내 인정하고 받아들임고 동시에 터져 나온 울음으로 보인다. 외숙모가 생리통에 힘들어하자 불안해하고,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들으며 “안 아프실 거죠?”라며 재차 되묻던 프리다의 모습에서 외숙모는 엄마처럼 아프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느끼는 안정감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가족 중 가장 서먹해 보이던 외숙모와 프리다의 관계는 어쩌면 이때부터야 비로소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고 적응하는데 생각보다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한 아이가 ‘엄마의 죽음’이라는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적응해가는 고정을 카메라에 섬세하게 담아냈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다의 그해 여름>은 아이의 마음에 폭 들어갔다 나온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불안한 시선으로 모든 것을 응시하던 프리다가 안정감 속에서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특별한 배경음악이나 인위적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장면이 없음에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프리다의 마음에 공감하며 그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이 영화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있다. 카를라 시몬 감독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 비슷하게 느낄 순간을 영화화하고 싶었고, 자신의 1993년의 여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의 배경이 된 카탈로니아의 가로트아 마을은 감독이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며, 프리다가 가출했다 돌아오면서 “너무 깜깜해서 내일 갈 거예요”라고 말하는 장면의 경우, 감독의 경험을 그대로 살린 장면이다. 감독의 이런 자기 경험 투영은 영화의 사실감을 높였다.
또한 감독은 되도록 카메라를 한 장소에 두고 촬영하며, 배우들이 카메라의 시선을 모르게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이런 점은 이 영화의 자연스러움을 배가 되게 했다. 특히나 프리다와 아나의 역할놀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장면 중 하나다. 여기서 프리다는 엄마를, 아나는 딸을 연기한다. 프리다가 연기하는 인물은 프리다의 엄마로 보인다. 엄마는 몸이 아프다며 딸과 놀아주지 않고 의자에 누워있는다. 이 장면은 프리다의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짐작하게 만들며, 둘의 역할놀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장면을 포함한 영화의 모든 장면이 자연스럽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음에도, 아이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며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그것을 보고 듣는 관객에게 몰입감을 준다. 프리다의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다 마지막 장면을 보며 그와 함께 느낀 감정은 아마도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이런 영화를 볼 때, 좋은 영화는 구태여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끼곤 한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영시코기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봉준호 다운 SF 신작 "미키 17" / 로버트 패틴슨 / 인류의 미래와 존재 윤리 / 대한민국 평행이론 / 분노 유발 가능성 주의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미키 17"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
- [영화흥신소-라떼극장] "아침엔 도시락 대신 교양을 먹어야지..."
영화 흥신소 - 라떼극장 EP.10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 "품행제로"에서 소중한 추억을 떠올려보자품행이 바닥인 문덕고 캡짱 중필
교내 불법사업과 청춘사업에 매진하는 동안
캡짱의 자리를 위협하는 라이벌이 등장하는데...세운상가 옥상에서 구매한 빨간비디오의 정체는??
-
- 영화 <65> 메인 예고편
6,500만 년 전, 지구로의 불시착 4월 20일, 지구 역사상 가장 극한의 사투가 시작된다! 서바이벌 액션 블록버스터 [65] 메인 예고편 대공개!
-
- 영화 <B컷> 캐릭터 예고편
탐정까기하려다 실수로 정치인의 B컷을 털어버린 썰?! [B컷] 캐릭터 예고편 大공개! 살기 위해 B컷을 사수해야 한다! [B컷] 3월 30일 잠금해제?
-
- [JIFF 데일리] <세 얼간이> 이후 인도 영화를 고르라면
시놉시스
2001년 인도의 어느 시골을 배경으로 한<뒤바뀐 신부들>은 같은 기차에서 길을 잃은 두 어린 신부의 모험을 그린다.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사건들과 예상치 못한 일들을 통해 두 사람은 자신과 여성성, 인생 자체에 대해 엄청난 발견을 한다.
EDITOR AMY
인도의 국민 배우이자 감독으로도 활동하는 아미르 칸이 제작하여 화제를 모은 <뒤바뀐 신부들> .
결혼식을 마치고 풀과 디팍은 발디딜 틈도 없는기차에 오른다.
기차에서 졸던 디팍은 도착지에 도착한걸 알게 되자 베일에 쌓인 신부를 깨우고 황급히 내린다.
하지만 신부는 폴이 아닌 다른 신부임을 깨닫는데..기차에 남겨진 신부 풀, 비밀을 숨기는듯한 또다른 신부 자야.
폭력적인 자야의 남편과 애타게 풀을 찾는 풀의 남편 디팍까지, 인도의 전통적인 문화를 유쾌한 코미디로 풀어낸다!
인도문화
‘인도의 결혼식’이 주 내용인 만큼 영화는 인동의 전통적인 문화와 특성을 녹여냈다.
인도의 사회적, 종교적 특성을 보여주는데 카스트제도는 물론, Pativrata라 하여 결혼한 여성은 남편에 복종하고 정절을
지킬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요구하는 힌두교 도덕관, 결혼을 할때 신부측에서 과도한 지참금을 마련해야하는 악습,
인도의 가부장적 가족제도에서 가정폭력 등 듣기만 해도 구시대적이고 무거운 내용들이지 않은가?
영화는 사회고발을 택하는 대신, 블랙 코미디를 활용하여 뒤트는 방식을 선택했다.
부패한 경찰들은 최선을 다해 돈을 뜯고, 이제 막 결혼한 커플의 남자에게 어른들은
지참금을 얼마나 받았냐며 대놓고 조롱한다. 이런 당당한 태도들이 관객을 더 웃음짓게 만든다.
과거와 현재의 여성
뒤바뀐 두 여성 풀과 자야. 그 둘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소극적이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는 풀은 본인이 살던 주소는 물론 시댁 주소도 모르는 멍청한(?) 면모를 보인다.
지식은 조금 모자랄지 몰라도 생활면에서 야무진 모습을 보이고, 반대로 금기시 되는 남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것
뿐만 아니라, 명문 대학교에 갈 정도로 비상한 머리를 지니고 있는 자야는 결혼한 남편에게 벗어나기 위해
홀로 탈출 계획을 세운다. 전통적인 여성, 현대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주체적인 여성을 제시한다.
폴과 자야, 최선책을 택해야만 할까?
두 여성은 자신이 선택한 삶에 최선을 다한다.
폴은 그토록 바래왔던 남편과 재회에 성공하고, 자야는 사람들의 오해와 의심의 눈초리를 벗겨내어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벗어나 꿈꿔왔던 대학교로 향한다. 영화는 전통과 현대 둘 중 한편에 발을 올리지
않고 공존을 택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 질문은 한국에도 대입을 해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비혼이 급증하면서 결혼과 비혼에 관한 토론이 뜨겁다.
서로가 맞다며 기혼자는 비혼자를 비난하고 기혼자는 비혼자를 비난해야만 하는걸까?
스스로 택한 삶이 얼마나 귀한지 생각해봐야한다.
어떤 선택을 하던 폴과 자야처럼 우리가 행복할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게 최선책이 아닐까.
EDITOR AMY
-
- 새장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걷는 여성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바다를 거닐던 소녀는 온전한 여성이 되어 바닷가를 떠난다. 급변하는 대만의 초상을 담아낸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해탄적일천>은 두 여성의 삶을 통해 당시 대만의 혼란스러운 사회와 여성의 성장을 그리고 있다. 엄격한 가부장제 문화와 일본 문화가 잔재하던 당시의 대만 여성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자리(실비아 창)의 아버지는 개인병원 의사로 여유 있는 중산층이다. 완고한 아버지의 의견은 집의 법이자 질서였고 자리의 오빠 자썬은 연인이던 웨이칭(호인몽)과 헤어지고 원치 않는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자리의 미래 역시 아버지의 계획 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리는 아버지의 의지를 거역하고 집을 나와 사랑하는 연인 청더웨이(모학유)에게 간다. 자리의 선택은 오빠 자썬의 선택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다. 자썬은 아버지를 맹목적으로 믿었고, 그 믿음은 편안함도 행복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학생 시절부터 연인이었던 청더웨이를 선택한 자리의 삶은 행복했을까? 더웨이의 친구 아차이는 부유한 상속자와 결혼했고, 더웨이는 아차이의 회사 대표를 맡게 되었다. 사업은 접대의 연속이었고 자리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적어졌다. 자리는 더웨이가 매일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무리하게 묻어둔 불안감은 때때로 튀어나와 더웨이를 옥죄었다. 자리의 걱정은 더웨이에게 간섭으로 느껴졌고 그는 계속 멀어져 갔다. 더웨이가 익사했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자리는 해변을 찾아간다. 경찰은 더웨이의 이름이 쓰인 약병과 칫솔 따위의 물건을 보여주며 남편의 것이 맞냐고 묻는다. 자리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일부러 아내와 남편을 떼어놓는 것 같아. 남자는 남자의 활동 장소가 있고, 여자는 여자의 활동 범위가 있어. “ 자리의 활동 장소와 범위는 더웨이의 그것과 달랐다. 자리의 장소는 대부분 집이었다. 그 외에 꽃꽂이 교실, 친구의 집 혹은 마트가 전부였다. 자리가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머무르던 부모님의 집 처마에는 새장 안에 새들이 가득했다. 새장은 아버지의 질서였고, 집을 뛰쳐나와 더웨이에게 가면서 자리는 새장을 탈출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웨이와 함께 사는 집 역시 또 다른 새장이었다. 네모난 새장 대신 네모난 철창 같은 문에 갇힌 자리에게 그곳은 집으로 느껴진 적 없었다. 안방의 침대는 부부간의 친밀한 소통이 아닌 갈등과 불안함으로 가득 찬 무대가 되었다. 집뿐만이 아니라 더웨이와의 거리가 가깝게 밀착되는 공간일수록 갈등의 강도는 거세졌다. 운전자와 동승자의 신뢰를 필요로 하는 공간인 자동차에서 갈등은 절정에 달한다. 자리의 질문은 더웨이에게 불신의 언어로 다가왔고 자신을 “믿으면 무서울 것 없”다고 말하며 난폭 운전을 하는 더웨이는 자리에게 두려움이었다.
서로에게 마음을 쓰고 있지만 어느 한 구석이 삐딱하게 잘못 놓인 전화기처럼 자리와 더웨이는 소통하지 못했고, 그런 틈을 놓치지 않는 예리한 류샤오후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틈새를 파고든다. 물질적인 풍요만 충족된 더웨이와 자리의 집은 그 옛날 자리가 도망쳐 나온 아버지의 집과 다를 바 없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한 자리는 그 문제를 어머니가 어떻게 해결했는지도 보았다. 가부장제에 꼭 맞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에 충실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자리는 남자의 마음이 언제 떠날까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성들의 역할과 공간은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달라지고 있었다. 자리는 그 변화를 온몸으로 겪는 인물이다.
넓은 공간에 홀로 서 있는 자리는 존재의 불안함을 온몸으로 내뿜으며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더웨이가 있을지 모를 공사 부지에서, 남편이 익사했는지 모를 바닷가에서, 넓은 침대에 홀로 우두커니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남겨져 있다. 더웨이를 향한 믿음은 흔들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도 흔들린다. 자리는 바다에서 건진 시체가 더웨이인지 확인하지 않고 떠난다. 그 해변을 혼자 떠나며 자리는 성장했다. 해변의 시체가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타인이 아닌 자신을 믿기로 했다는 것이다.
카페에서 웨이칭과 마주한 30대 무렵의 자리는 단단한 여성이 되었다. 13년 동안 유학을 마치고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되어 타이베이로 돌아온 웨이칭은 무대 위 피아노 앞이라는 자신의 온전한 자리를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웨이칭과 마주한 자리는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새장 같던 집과 혼란스러운 해변을 떠나 카페에서 웨이칭과 마주하여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두 여성 모두 성장의 길을 걸었다. 마침내 “자신을 믿고 자신의 방식으로 선택”한 웨이칭과 자리는 더 이상 어떤 공간에도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그곳의 주인이 되어 나아간다.
-
- 이순신의 리더십 그리고 거북선, 왜군을 박살 내다
좋은 리더는 좋은 팀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좋은 팀은 회사나 국가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런데 좋은 리더라고 하면 여러 가지 인물상이 떠오른다. 조금은 과격하지만 결과를 이뤄내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조용하지만 차분하게 천천히 일을 진척시키는 경우도 있다. 모든 리더가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좋은 리더가 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 말은 좋은 리더를 만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대로 치자면 회사에서는 팀장이나 사장일 것이고, 국가로 치자면 각 장관이나 대통령이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리더 일 것이다.
좋은 리더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역사적 인물들은 좋은 리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을지문덕이나 강감찬 그리고 세종대왕 같은 인물을 우리는 좋은 리더로 꼽는다. 한국의 역사 속 인물 중 가장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일 것이다. 임진왜란의 한가운데에서 조선의 적은 배와 무기로 수많은 왜군을 여러 번 물리친 그는 그야말로 한국의 영웅이라고 부를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산대첩, 명량대첩 그리고 노량해전까지 여러 번의 해상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얻어낸 그가 가진 리더십은 꽤나 대단했음에 틀림없다.
한국 최고 흥행 영화의 후속 편 <한산:용의 출현>
2014년에 개봉했던 <명량>은 본격적으로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영화였다. 배우 최민식의 얼굴로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가진 고뇌를 담았다. 두려움에 갇혀있는 병사들을 꺼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었던 선택들이 영화 속에 담겼고, 무엇보다 그가 사용했던 해상 전의 전략과 거북선은 스펙터클하게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클라이맥스에 신파가 너무 반복적으로 제시되며 아쉬운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1.7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 영웅 이순신과 거북선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 흥행 기록 자체가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한국 사람들에게 단순한 역사적 인물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명량>보다 앞선 시기를 다루는 <한산:용의 출현>은 한산대첩을 다루고 있다. 한산 해상 전투가 있기 전 왜군의 장수중 하나인 와키자카(변요한)가 한산도를 침략하게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와키자카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그만큼 이순신의 적이 얼마나 집요하고 치밀하게 그 전투를 준비했는지를 보여준다. 임진왜란이 막 시작되었을 때 왜군들은 이미 한양까지 점령하고 기세를 몰아 명나라까지 가려고 한다. 이순신(박해일)은 그를 돕는 장군들과 함께 한산도 앞바다에서 결전을 벌일 준비를 한다. 이순신은 수세에 몰린 조선군의 사기를 걱정하면서 내부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원균(손현주)을 설득하여 전투를 자신의 방식대로 끌어가기 위해 애쓴다.
영화는 초반에 왜군과 조선군의 첩보전을 통해 극적 긴장을 끌어올리면서 조선 내부의 정치적 갈등과 선택 그리고 그 속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비춘다. 전작인 <명량>의 이순신에 비해 좀 더 과묵해진 모습을 보이는 그는 완전한 열세의 상황에서 왜군을 막을 최선의 방법을 고민한다. 영화 속 이순신은 주변 인물들에게 결코 감정적이고 공격적이지 않다. 전쟁의 의미를 묻는 준사(김성규)에게 '의'과 '불의'의 대결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쟁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분명하게 정의하면서 아군들에게 싸울 명분을 선사한다. 영화 속 그의 말은 분명하고 단호하고 틀리지 않다. 그래서 더욱더 주변 인물들은 이순신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이순신의 리더십 그리고 거북선
<한산:용의 출현>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거북선이다. 거북선은 영화 속에 몇 척이 등장하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 등장하는 거북선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무척 단단해 보이고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 거북선은 왜군들에게는 두려운 무기다. 이순신과 거북선이 함께 만들어내는 두려움은 왜군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공포로 퍼져나간다. 적장 와키자카가 걱정하여 두려움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았지만 그 두려움은 서서히 왜군들을 사로잡아갔다. 왜군들이 왜 그렇게 거북선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영화는 마지막 해상 전투에서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순신은 수적인 열세를 그의 리더십으로 극복해나간다. 그가 가진 전략인 학익진은 바다의 성을 만드는 전략이다. 매복을 하고 있는 적을 끌어내며 전투를 벌이거나, 결정적인 순간 출정하는 거북선 등 영화의 전투 장면은 풍부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순신이라는 리더가 흔들리지 않으면서 주변의 장수들은 좀 더 사력을 다해 전투에 임하고 각자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영화 <한산:용의 출현>에는 이렇게 이순신이 가진 부드럽지만 강인한 리더십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순신 역할을 맡은 배우 박해일은 이번 영화에서 대사가 그렇게 많지 않다. 이순신의 과묵한 고뇌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가진 정적인 이미지와 잘 맞게 표현되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변요한이다. 적장 와키자카 역을 맡은 그는 무시무시하고 욕망 넘치는 적장을 뛰어나게 묘사했다. 살기 넘치는 눈빛과 액션은 영화에 극적인 긴장을 불어넣고, 마지막 클라이맥스 전투에서도 전투의 통쾌함을 배가시킨다.
무시무시한 적장을 맡은 변요한의 명연기
영화를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원래 <핸드폰>이다 <최종병기 활> 같은 영화를 통해 쫄깃한 긴장감을 영화 속에 잘 불어넣었던 감독이다. 그는 <명량>의 흥행이 성공하면서 이순신 3부작을 야심 차게 만들고 있다. 이번 <한산:용의 출현>이 두 번째 이순신 영화인데, 전작인 <명량>의 단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신파를 덜어내고 조금은 건조하게 이야기를 구성하였고, 풍부한 음악을 활용하여 영화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의 다음 영화는 <명량> 이후의 시간대를 다루는 <노량>이다. 이순신 역으로는 배우 김윤석이 캐스팅되어 있다. 이번 <한산:용의 출현>의 완성도만큼의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이순신 3부작 모두가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영화 <한산:용의 출현>은 여름 블럭버스터로 극장에서 보기에 좋은 영화다. 한국에서 자주 보기 힘들었던 해상 전투를 제대로 구성했으며, 교과서에서나 배우던 학익진의 실제 전투 모습과 거북선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객들이 기대하고 있는 요소를 충족시키는 영화다. 무엇보다 이순신의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를 볼 수 있는 영화다. 리더십의 부재 속에 있는 한국의 현재 상황에서 꽤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
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한산:용의 출현>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https://rabbitgumi.stibee.com/
-
- 유치함 속 담긴 순수함과 성장
유치함 속 담긴 순수함과 성장
영화 <28세 미성년> 리뷰
감독] 장모
출연] 니니, 왕대륙, 곽건화
시놉시스] 애인 마오의 달콤한 청혼만을 십 년째 기다린 스물여덟 살 량시아는 프러포즈는커녕, 그에게 차인 뒤 초콜릿을 먹고 수상한 능력을 얻게 된다. 다섯 시간 동안 겉모습은 그대로인 채, 마음만 열일곱 살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 열일곱이 된 작은 량시아는 지하철에서 만난 자유로운 청년 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고, 그와의 짧지만 달콤한 데이트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열일곱, 스물 여덟 두 량시아의 평화로웠던 이중생활은 점점 꼬이기 시작한다.
왕대륙이 나온다고 해서 시사회를 신청해 보러갔던 영화 28세 미성년. 사실 그동안 유행했던 나의 소녀시대, 안녕 나의 소녀를 보지 않아서 이 작품을 이을 첫사랑 영화라고 하기에 기대를 안고 찾아갔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실 첫사랑 이야기라는 프레임 속에 자아찾기 라는 의미가 더 강조된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로맨스 속 ‘자아 찾기’ 프로젝트
줄거리만 보면 28세 량시아의 사랑과 17세 량시아의 사랑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끝까지 다보면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라기 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해맑고 꿈에 부풀어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뽐내던 작은 량시아와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 10년 간 자신의 그림실력을 뒤로하고 내조에만 힘쓴 큰 량시아. 큰 량시아는 작은 량시아의 도움을 받아 과거 자신이 꿈꾸는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되고, 스스로 사랑하며 작가로 다시 성장한다.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이에게 의지하기 보다 작은 량시아와 큰 량시아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스토리 상 뻔하긴 했지만 눈물짓게 되는 작품이었다.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 보며 눈호강하다
최대한 리뷰를 할 땐 이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들은 정말 예쁘고 잘생겼다. 스토리가 뻔하다보면 지루할 수 있는데 얼굴만 봐도 재밌다. 얼굴로 관객을 영화 속으로 흡입한다. 량시아 역을 맡은 니니 배우를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는데 여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정말 예뻐서 감탄하면서 영화를 봤다. 거기에 17살 때와 28살 일 때의 목소리 톤과 성격, 걸음걸이가 모두 달라서 지금이 몇 살인지 딱 보이는 연기력으로 또다른 감탄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CG가 엄청나게 티가 나는 밤하늘의 별들과 갑자기 마오와 얀이 싸우는 이 개연성 없는 전개 속에서 당황스러움이 몰려와야 하지만 다들 예쁘고 잘생기다보니 얼굴을 감상하느라 당황스럽지 않은 것도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열린 결말로 여운을 주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홀로서기를 시작한 량시아에게 마오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알몸으로 거리를 누비며 그녀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 장면을 보며 량시아는 그저 웃을 뿐 용서를 해줬는지, 아니면 시원하게 차버렸는지 알 수는 없다.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장면으로 이 영화가 마무리 됐다면 개인적으로 28세 미성년에 좋은 평을 남기진 못했을 것이다. 사실 량시아가 마오의 청혼을 거절하고 홀로서기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책없지만 순수했던 자신과의 조우를 통해 꿈을 다시 찾고 그 꿈을 이룬 량시아를 보며 힐링을 해서 그런지 량시아를 사랑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용만 한 마오에게 돌어가는 량시아는 상상할 수가 없다. 영화지만 이대로 주체적인 모습으로 량시아라는 캐릭터가 남아있길 바란다.
영화 28세 미성년은 과거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면 아마 유치함 속에서 힐링을 선사해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량시아처럼 어렸을 적 자신과의 조우를 통해 자신의 꿈을 간직하고 이뤄나가길 바란다.
-
- 정이서의 페이스
<헤어질 결심>(2022, 박찬욱)
<사막의 왕>(2022)
<그녀의 취미생활>(2023, 하명미)
<살인자ㅇ난감>(2024)
* 위 작품들의 장면과 결말 포함.
3주 내리 <헤어질 결심>을 보러 극장으로 향하던 2022년, 나는 예감했다. 배우 정이서를 좋아하게 되리란 것을. 영화 속 하고많은 신스틸러 중 가장 눈에 밟혔던 이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망설임 없이 ‘일하는 경찰 미지’, 정이서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는 입체적일 필요가 없는 기능적 조연이었다. 고경표처럼 적극적으로 캐릭터를 어필하지도 않았고, 김신영처럼 배우 자신의 이미지를 인물에게 그대로 덧씌우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미지의 개성은 톡톡히 빛났다. 정이서는 작품이 인물에게 부여한 테두리를 철저히 지켰다. 테두리를 철저히 지키는 자, 그게 미지다. 눈치 빠르고 칼 같이 선을 긋고 제 할 일을 다하며 불쾌를 숨기지 않는. 능숙하게 일하는 제스처, 찰나의 눈빛, 독특한 효과음만으로 캐릭터가 파악되었다. 미지처럼 야무진 연기였다. 자잘한 디테일이 살아 있었는데, 그 가장자리가 깔끔했다.
<헤어질 결심>은 서래와 해준의 이야기다. 주변 인물들의 사연에 관심이 없는 영화 속에서, 미지는 사연 따위 없어서 더 매력적이었다. 화면을 벗어난 그에게는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화면에 잡히면, 해준을 뚫어져라 보면서도 곁눈질로 미지의 움직임을 붙들게 되는 것이었다. ‘오늘도 일하는 미지’ 초단편 외전 같은 것을 슬며시 그려보며, 스크린 속 정이서를 향한 갈망을 느꼈다. 유사하거나 색다른 톤의 조연도 고팠고, 제 1화자가 되어 내면을 모조리 꺼내는 역할을 맡아줬으면 싶기도 했다.
그해 공개된 리미티드 시리즈 <사막의 왕>은 그 갈망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었다. 정이서의 넘치는 재치를 비격식적이고 입체적인 모양으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상한 회사에 떨어진 ‘앨리스’ '이서'. 그는 시청자가 픽션의 세계에 입장하도록 돕는 평범한 화자다. 면접관의 질문에 허허 웃으며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죠.”라고 답했기에 회사에 최종으로 합격했다. 멍하고 느린 표현법은 뒤에서 다룰 <그녀의 취미생활> 초반의 정인과 닮은 데가 있으나, 그 기반이 다르다. 정인은 살아남기 위해 연기로 무장했다. '이서'는 특수한 상황에 던져졌고, 진심으로 얼떨떨해 하는 중이다.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다. 회사를 다니는 내내, 물음표는 크기를 달리하며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이서'는 연기를 잘 못하는 이다. ‘척’을 하면 다 티가 나고, 속마음도 대부분 읽힌다. 그것이 장면의 재미다. 알아들은 척 하는 함박웃음, 신나 날뛰는 실루엣. 은은하게 배어 있는 사투리가 맛깔나는 말투를 완성한다. 이름도 비슷한 ‘이서’는 작가가 점찍어 두고 쓰기라도 한 듯 정이서와 어울리는 캐릭터다.
납득하기 힘든 일을 반복하던 '이서'는, 팀장에게 언어폭력 섞인 질책을 듣는다. 그 순간 정이서의 신체 표현이 압권이다.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내 잘못인 것 같고, 억울한데 까닭을 모르겠고, 이 상황을 피하고 싶은데 내 의지로는 불가능하고,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 안 나오는’ 상태. 머리 꼭대기부터 혀, 발끝까지 얼어서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움츠러들어 쭈뼛거린다. 정이서는 <사막의 왕>이 다크코미디임을 잊지 않는다. 속내를 겉으로 다 드러내면서도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연기는 지양한다. 그 덕에, 월급 액수를 보고 필터없는 감탄사를 토하며 기뻐하는 씬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쯤 ‘이서’의 인물됨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그는 ‘세계’에 혼입되어 안주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의미없는 일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의미없음’의 정체를 깨달았다면, 참을 수 없다. 태도가 달라지니, 진정으로 정인이 겹쳐 보였다. 북받치는 분노와 모멸감을 다 터트리는 대신 꾹꾹 누르며 표출한다. 그의 결심이 ‘순진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서'가 “사막”을 밟고 당당하게 오피스를 퇴장하며 1화가 끝나고, 각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이서는 작품의 장르를 잊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야 한다면, 연기 톤을 바꾸어 장르를 뒤집어 놓는 데에 한몫을 한다.
<사막의 왕>은 원톱 주인공을 둔 장편 시리즈보단 리미티드 연작에 가깝다. 라스트 에피소드에서 대놓고 말해주듯- (대부분) 돈을 둘러싸고 갈등하다 언젠가 엇갈렸던 자들의 이야기다. 개중 가장 평범해 보였던 ‘이서’는, 돈을 버린 자이기에 특별했다. 그는 3화의 엔딩 무렵 자그마한 회오리를 몰고 재등장한다. 쫓아오는 엄마를 피해 낯선 차에 덥석 올라 고개를 한껏 숙이고 ‘빨리 출발하라’고 하는 이 인간을 어찌할 것이냐. 그 다급함은 진심인 것을. 그의 꽁트 같은 끼어듦과 이후의 능청스러운 태도는 서은과 해일 사이 흐르던 불안한 코미디의 기운에 안정감(?)을 불어넣는다. 얼떨결에 ‘강원도로 일출을 보러 가는 핵가족’의 그림을 구성하게 된 젊은이 둘과 어린이 하나. 그 기이한 동행을 마지막으로 셋 모두 카메라에서 벗어난다. 어쩌면 서은과 닮아 있는 ‘이서’의 눈빛을 보며, 이번엔 그 사연이 궁금해졌다. <사막의 왕>을 통해 정이서의 꾸밈없고 다채로운 표정들을 목격했고, 거대한 가능성을 확신했다.
<사막의 왕>(2022)
이듬해, <그녀의 취미생활> 포스터를 본 나는 곧 극장으로 가야만 함을 깨달았다. 저리도 사연 많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니. 본격적으로 좋아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그녀의 취미생활>은 인물을 한계까지 몰아가 폭발을 유도해 관객을 빠르고 시원하게 만족시키지 않는다. 정인이 제 페이스대로, 즐기고,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고,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하도록 돕는다." 당시 리뷰에 적었던 내용을 옮겼다. 정이서는 서두르거나 과시하지 않았다. 작품에 어울리는 저만의 페이스(face/pace)를 찾아 신중하게 자리 잡았다. 드라마틱한 ‘각성’ 연기가 요구되었다면 그또한 가능했을 터이나, 정인에게 안 맞는 옷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작품과 배우는 클리셰의 울타리에서 탈출했다.
오프닝은 정인의 뒷모습이다.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고 곧 땅으로 꺼지기라도 할 것처럼 터덜터덜 밤길을 걷는다. 몸의 피로와 더불어 과거와 생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른다. 걷는 방법을 고민해 결정한 최선의 결과물이라기보단 체화한 인물이 자연스레 발현된 걸음걸이일 테다. 정인에게 실려 있던 그늘의 무게는 날이 밝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일상적인 질책과 조롱에 그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반응하거나 들릴 듯 말 듯 ‘에’라고 답하는 정도로 존재감을 지우며 살아남았다. 조용해 보이는 그의 내면엔 톡 건드리면 터질 듯한 울분이 있고, 커다란 가위를 옆에 두고 선잠을 자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날 만큼의 불안과 공포가 있다. 그 원인은 그가 위치하는 공간과, 그곳을 채운 특정한 타인들이다.
홀로 풀숲에 숨거나 사람들 가운데 섞여 말없이 관찰하는 정인, 그의 응시는 자체로 그의 언어다. 흐엉에게 달라붙는 재순을 정인은 먼발치에서 노려본다. 입을 꾹 다물고 눈에 힘을 준다. 목표물에게 효과적으로 가닿는 감시와 경고의 응시다. 창수는 어떤가, ‘응시하지 못함’에 가깝다. 산속에서 그를 마주치자 정인은 필요 이상으로 놀란다. 상대가 몸을 기울이거나 손을 들 때마다 소스라치고, 극도로 움츠러들어 겨우 견딘다. 다음, 그다음 조우에서도 그렇다. 불투명한 창문을 사이에 두고도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하고, 입보다 눈물샘이 먼저 열린다. 창수는 정인의 숨을 틀어막고 피를 굳히는 인간이라고, 정이서가 말해주고 있었다. 관객은 정인의 수많은 사연 중 하나가 거기 얽혀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혜정에겐 자꾸 시선이 간다. 상대가 알아챘으면 하는 마음으로 훔쳐보는 듯하다.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자꾸만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건 매한가지이나, 창수에게 보이던 두려움 대신 조심스러운 호의와 관심이 감지된다. 만남 후엔 여운을 돌이킨다. 순수한 호기심과 동경, 그리고 앞으로 풍부한 정서들로 채워질 빈칸이 느껴진다. 영영 벗어난 줄 알았던 고향에 붙들린 정인에게 혜정은, 지긋지긋한 공간에 신선한 공기를 끌고 온 존재다. 웃는 둥 마는 둥, 긍정을 하는 둥 마는 둥. 그건 익숙한 가면이다. 느릿하고 분명한 말투, 배시시 흩어지는 미소는 정인의 캐릭터다. 혜정과 함께 생계 외 삶에 있는 즐거움을 경험하며 정인의 얼굴에선 점점 그늘과 주저가 걷힌다.
작품은 종종 혜정의 대사로 정인을 묘사한다. “다 알고 있는” 사람,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 혜정은 정인을 구하는 자 보다는 정인이 스스로를 구하도록 돕는 자다. 정인은 원래 품고 있던 강함을 꺼내는 법을 배운다. 혜정과 가까워지기 전 시작된 첫 번째 ‘행동’은 충동적이지만 계획적이기도 했다. 가위를 툭 떨어뜨리는 차분한 손놀림, 서늘하게 다물린 입과 내리깔린 눈꺼풀. 후에 일련의 복수를 실행하고 참을성 있게 지켜볼 때도 유지되는 온도다. 느닷없이 내려앉은 온도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나 전남편 광재를 대하며, 정인은 무표정 아래 켜켜이 쌓인 응어리 사이로 차가운 혐오를 언뜻 내비치곤 했다.
정인의 응어리는 원인을 제공한 대상과 직접적으로 부딪히며 뜨겁게 터지기도 한다. 부녀회장이 집에 찾아왔을 때, 한계에 다다른 정인은 불덩이를 내뿜는다. 정이서는 인위적으로 발산하려 애쓰기보단, 최대한으로 눌러담아 저절로 폭발하도록 유도한다. 이후 정인은, 다시는 그렇게 터져 버리지 않는다. 창수와의 독대에서 다시금 분노를 표출하나, 이번 덩어리는 서릿발 같다. 오래된 가해자를 내려다보며 열 여섯 살에 느꼈던 그대로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수 년 동안 압축된 무게를 얹어서. 모조리 쏟아내는 대신 저쪽이 알아들을 만큼만, 눈물이 흐르고 몸이 떨려도 무너지지는 않을 정도로. 그것은 상대를 겨냥한 독백, 복수의 마무리였다. 이와 같이 복수의 단계들은 대개 차갑고, 한 치의 어긋남이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불안과 공포는 필연적이다. 혜정이 재순을 ‘실종’되게 만든 것이 그러했듯, 정인이 광재에게 독을 먹이고 총을 쏘는 행위는 적극적인 자기방어다. 작품과 정이서는 그역시 놓치지 않았다.
정인처럼 절제의 미학을 체화한 영화, ‘광재의 최후’는 그것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장면 중 하나다. 정인은 공격적으로 죄다 발산하는 대신, 뿌리깊은 분노와 삶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총 끝에 단단히 드리운다. 광재는 엉망으로 망가지기보단, 그저 늘어져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된다. 정이서와 우지현, 대단한 집중력을 지닌 두 배우가 곤조 있는 연출과 만나 완성한 씬이다. 주연 배우의 무한한 잠재력을 가늠해보(지조차 못하)게 하는 작품- 우지현에게 <더스트맨>이 있다면 정이서에게는 <그녀의 취미생활>이 있다. 정이서는 능히 홀로 극을 이끌며 상대 배우와 화면을 나누거나 포커스를 적절히 넘겨주기도 했다. 거세게 덮쳐오는 파도가 되기도, 고요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흩어지는 물결이 되기도 했다.
<그녀의 취미생활>(2023)
싱그럽다. 티없이 활짝 웃는 정인을 보니 그 표현이 절로 적혔다. 비슷하게 씩 웃는데, 선여옥은 징그럽다. 한 번 더 우지현과 나란히 두어 보자. 우지현이 <그녀의 취미생활>을 통해 해냈듯, 정이서는 <살인자ㅇ난감>으로 ‘빌런력’을 증명한다. 빗물과 핏물로 범벅이 된 골목, 원피스를 입고 부드럽게 안내견을 이끄는 선여옥의 목소리는 이질적이다. 그를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입체적이라기보단 반전을 숨긴 인물, 그의 꿍꿍이가 드러나며 정이서가 보였다. 출연진을 훑어보지 않고 시청한 내게 있어서는, 하상민의 첫등장과 더불어 일종의 서프라이즈적 모먼트였다. 선여옥은 단순히 이기적인 것을 넘어 선악에 무관심하다. 제 욕망에만 충실하며 타인을 도구삼는다. 뻔뻔하고 염치없고 눈치는 있다. 괜찮은 사람인 척할 생각도 없어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정이서 특유의 미소는 음흉하게 발현된다. 딜리셔스하고 분명한 말투는 주인공과 시청자의 신경을 긁는 방향으로 던져진다. 문장을 새되고 짧게 끊어 뱉으며 분리된 음절을 효과음처럼 사용하는 정이서. 다른 인물이었다면 매력포인트로 작용했을 디테일은 선여옥과 만나 비호감의 요소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기생충>에서 거리를 두고 화면을 공유했던 최우식과의 재회다. 최근 정이서의 필모그래피에서 ‘피자 사장’을 발견한 후 해당 클립을 검색했고, ‘아!’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그게 당신이었구나. 여러 해가 지난 현재, 밀접한 긴장감을 주고받으며 훌륭한 다이내믹을 형성하는 두 배우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
“작년 여름쯤 나는 배우로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나의 이상과 실제 내 그릇의 차이가 크게 느껴져 몹시 불안했다. 그럴 때 <그녀의 취미생활>이 내게 왔다. 정인으로 사는 동안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됐다. 이렇게 한 인물에게 집중하다 보면 느릴지언정 조금씩 나갈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이 작품이 정말 소중하다.” - 정이서, [씨네21]
세 해에 걸쳐 있는 네 작품을 다루며 정이서의 일부를 담아보려고 시도했다. 정이서는 천연덕스럽고 능숙하다. 바른 중심 주위로 자잘한 디테일을 자아내, 군더더기 없는 짜임으로 완성한다. 모호하게 머물러야 한다면 그렇게 하며, 그 얼굴에 관객의 시선이 머무르게 한다. 이해력과 표현력이 뛰어난 배우인 그는, 매번 작품의 결을 찾아내 적절하게 녹아들거나 성공적으로 엇갈렸다. 그 개성을 발견했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정 반대의 모습을 꺼내며 손끝에서 빠져나갔다. 그 잠재력을 엿보았다고 여기자마자, 아직 보지 못한 깊이가 어마어마함을 깨닫게 했다. 흰 원피스와 장총이 각각 또 함께 어울리는 정이서. 그는 마치 정인처럼, 자신의 페이스대로 신중하게, 범상치 않은 걸음을 떼는 배우다.
-
- 미모와 연기력 겸비한 2세대 여배우 특집
저번 뜨거운 조회수에 이어 여배우 특집 2탄! 여돌 여배우의 전성시대!
2세대는 미모와 더불어 연기력이 뛰어나서 진정한 '믿고 보는 배우'가 아닐까 싶은데요. 씨네픽러의 원픽은?댓글로 알려주세요!
인스타그램_@cinepick
-
- 봉준호 다운 SF 신작 "미키 17" / 로버트 패틴슨 / 인류의 미래와 존재 윤리 / 대한민국 평행이론 / 분노 유발 가능성 주의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미키 17"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
- [영화흥신소-라떼극장] "아침엔 도시락 대신 교양을 먹어야지..."
영화 흥신소 - 라떼극장 EP.10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 "품행제로"에서 소중한 추억을 떠올려보자품행이 바닥인 문덕고 캡짱 중필
교내 불법사업과 청춘사업에 매진하는 동안
캡짱의 자리를 위협하는 라이벌이 등장하는데...세운상가 옥상에서 구매한 빨간비디오의 정체는??
-
- 영화 <65> 메인 예고편
6,500만 년 전, 지구로의 불시착 4월 20일, 지구 역사상 가장 극한의 사투가 시작된다! 서바이벌 액션 블록버스터 [65] 메인 예고편 대공개!
-
- 영화 <B컷> 캐릭터 예고편
탐정까기하려다 실수로 정치인의 B컷을 털어버린 썰?! [B컷] 캐릭터 예고편 大공개! 살기 위해 B컷을 사수해야 한다! [B컷] 3월 30일 잠금해제?
-
- [JIFF 데일리] <세 얼간이> 이후 인도 영화를 고르라면
시놉시스
2001년 인도의 어느 시골을 배경으로 한<뒤바뀐 신부들>은 같은 기차에서 길을 잃은 두 어린 신부의 모험을 그린다.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사건들과 예상치 못한 일들을 통해 두 사람은 자신과 여성성, 인생 자체에 대해 엄청난 발견을 한다.
EDITOR AMY
인도의 국민 배우이자 감독으로도 활동하는 아미르 칸이 제작하여 화제를 모은 <뒤바뀐 신부들> .
결혼식을 마치고 풀과 디팍은 발디딜 틈도 없는기차에 오른다.
기차에서 졸던 디팍은 도착지에 도착한걸 알게 되자 베일에 쌓인 신부를 깨우고 황급히 내린다.
하지만 신부는 폴이 아닌 다른 신부임을 깨닫는데..기차에 남겨진 신부 풀, 비밀을 숨기는듯한 또다른 신부 자야.
폭력적인 자야의 남편과 애타게 풀을 찾는 풀의 남편 디팍까지, 인도의 전통적인 문화를 유쾌한 코미디로 풀어낸다!
인도문화
‘인도의 결혼식’이 주 내용인 만큼 영화는 인동의 전통적인 문화와 특성을 녹여냈다.
인도의 사회적, 종교적 특성을 보여주는데 카스트제도는 물론, Pativrata라 하여 결혼한 여성은 남편에 복종하고 정절을
지킬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요구하는 힌두교 도덕관, 결혼을 할때 신부측에서 과도한 지참금을 마련해야하는 악습,
인도의 가부장적 가족제도에서 가정폭력 등 듣기만 해도 구시대적이고 무거운 내용들이지 않은가?
영화는 사회고발을 택하는 대신, 블랙 코미디를 활용하여 뒤트는 방식을 선택했다.
부패한 경찰들은 최선을 다해 돈을 뜯고, 이제 막 결혼한 커플의 남자에게 어른들은
지참금을 얼마나 받았냐며 대놓고 조롱한다. 이런 당당한 태도들이 관객을 더 웃음짓게 만든다.
과거와 현재의 여성
뒤바뀐 두 여성 풀과 자야. 그 둘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소극적이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는 풀은 본인이 살던 주소는 물론 시댁 주소도 모르는 멍청한(?) 면모를 보인다.
지식은 조금 모자랄지 몰라도 생활면에서 야무진 모습을 보이고, 반대로 금기시 되는 남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것
뿐만 아니라, 명문 대학교에 갈 정도로 비상한 머리를 지니고 있는 자야는 결혼한 남편에게 벗어나기 위해
홀로 탈출 계획을 세운다. 전통적인 여성, 현대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주체적인 여성을 제시한다.
폴과 자야, 최선책을 택해야만 할까?
두 여성은 자신이 선택한 삶에 최선을 다한다.
폴은 그토록 바래왔던 남편과 재회에 성공하고, 자야는 사람들의 오해와 의심의 눈초리를 벗겨내어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벗어나 꿈꿔왔던 대학교로 향한다. 영화는 전통과 현대 둘 중 한편에 발을 올리지
않고 공존을 택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 질문은 한국에도 대입을 해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비혼이 급증하면서 결혼과 비혼에 관한 토론이 뜨겁다.
서로가 맞다며 기혼자는 비혼자를 비난하고 기혼자는 비혼자를 비난해야만 하는걸까?
스스로 택한 삶이 얼마나 귀한지 생각해봐야한다.
어떤 선택을 하던 폴과 자야처럼 우리가 행복할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게 최선책이 아닐까.
EDITOR AMY
-
- 새장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걷는 여성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바다를 거닐던 소녀는 온전한 여성이 되어 바닷가를 떠난다. 급변하는 대만의 초상을 담아낸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해탄적일천>은 두 여성의 삶을 통해 당시 대만의 혼란스러운 사회와 여성의 성장을 그리고 있다. 엄격한 가부장제 문화와 일본 문화가 잔재하던 당시의 대만 여성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자리(실비아 창)의 아버지는 개인병원 의사로 여유 있는 중산층이다. 완고한 아버지의 의견은 집의 법이자 질서였고 자리의 오빠 자썬은 연인이던 웨이칭(호인몽)과 헤어지고 원치 않는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자리의 미래 역시 아버지의 계획 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리는 아버지의 의지를 거역하고 집을 나와 사랑하는 연인 청더웨이(모학유)에게 간다. 자리의 선택은 오빠 자썬의 선택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다. 자썬은 아버지를 맹목적으로 믿었고, 그 믿음은 편안함도 행복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학생 시절부터 연인이었던 청더웨이를 선택한 자리의 삶은 행복했을까? 더웨이의 친구 아차이는 부유한 상속자와 결혼했고, 더웨이는 아차이의 회사 대표를 맡게 되었다. 사업은 접대의 연속이었고 자리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적어졌다. 자리는 더웨이가 매일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무리하게 묻어둔 불안감은 때때로 튀어나와 더웨이를 옥죄었다. 자리의 걱정은 더웨이에게 간섭으로 느껴졌고 그는 계속 멀어져 갔다. 더웨이가 익사했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자리는 해변을 찾아간다. 경찰은 더웨이의 이름이 쓰인 약병과 칫솔 따위의 물건을 보여주며 남편의 것이 맞냐고 묻는다. 자리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일부러 아내와 남편을 떼어놓는 것 같아. 남자는 남자의 활동 장소가 있고, 여자는 여자의 활동 범위가 있어. “ 자리의 활동 장소와 범위는 더웨이의 그것과 달랐다. 자리의 장소는 대부분 집이었다. 그 외에 꽃꽂이 교실, 친구의 집 혹은 마트가 전부였다. 자리가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머무르던 부모님의 집 처마에는 새장 안에 새들이 가득했다. 새장은 아버지의 질서였고, 집을 뛰쳐나와 더웨이에게 가면서 자리는 새장을 탈출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웨이와 함께 사는 집 역시 또 다른 새장이었다. 네모난 새장 대신 네모난 철창 같은 문에 갇힌 자리에게 그곳은 집으로 느껴진 적 없었다. 안방의 침대는 부부간의 친밀한 소통이 아닌 갈등과 불안함으로 가득 찬 무대가 되었다. 집뿐만이 아니라 더웨이와의 거리가 가깝게 밀착되는 공간일수록 갈등의 강도는 거세졌다. 운전자와 동승자의 신뢰를 필요로 하는 공간인 자동차에서 갈등은 절정에 달한다. 자리의 질문은 더웨이에게 불신의 언어로 다가왔고 자신을 “믿으면 무서울 것 없”다고 말하며 난폭 운전을 하는 더웨이는 자리에게 두려움이었다.
서로에게 마음을 쓰고 있지만 어느 한 구석이 삐딱하게 잘못 놓인 전화기처럼 자리와 더웨이는 소통하지 못했고, 그런 틈을 놓치지 않는 예리한 류샤오후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틈새를 파고든다. 물질적인 풍요만 충족된 더웨이와 자리의 집은 그 옛날 자리가 도망쳐 나온 아버지의 집과 다를 바 없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한 자리는 그 문제를 어머니가 어떻게 해결했는지도 보았다. 가부장제에 꼭 맞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에 충실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자리는 남자의 마음이 언제 떠날까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성들의 역할과 공간은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달라지고 있었다. 자리는 그 변화를 온몸으로 겪는 인물이다.
넓은 공간에 홀로 서 있는 자리는 존재의 불안함을 온몸으로 내뿜으며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더웨이가 있을지 모를 공사 부지에서, 남편이 익사했는지 모를 바닷가에서, 넓은 침대에 홀로 우두커니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남겨져 있다. 더웨이를 향한 믿음은 흔들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도 흔들린다. 자리는 바다에서 건진 시체가 더웨이인지 확인하지 않고 떠난다. 그 해변을 혼자 떠나며 자리는 성장했다. 해변의 시체가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타인이 아닌 자신을 믿기로 했다는 것이다.
카페에서 웨이칭과 마주한 30대 무렵의 자리는 단단한 여성이 되었다. 13년 동안 유학을 마치고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되어 타이베이로 돌아온 웨이칭은 무대 위 피아노 앞이라는 자신의 온전한 자리를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웨이칭과 마주한 자리는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새장 같던 집과 혼란스러운 해변을 떠나 카페에서 웨이칭과 마주하여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두 여성 모두 성장의 길을 걸었다. 마침내 “자신을 믿고 자신의 방식으로 선택”한 웨이칭과 자리는 더 이상 어떤 공간에도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그곳의 주인이 되어 나아간다.
-
- 이순신의 리더십 그리고 거북선, 왜군을 박살 내다
좋은 리더는 좋은 팀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좋은 팀은 회사나 국가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런데 좋은 리더라고 하면 여러 가지 인물상이 떠오른다. 조금은 과격하지만 결과를 이뤄내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조용하지만 차분하게 천천히 일을 진척시키는 경우도 있다. 모든 리더가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좋은 리더가 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 말은 좋은 리더를 만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대로 치자면 회사에서는 팀장이나 사장일 것이고, 국가로 치자면 각 장관이나 대통령이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리더 일 것이다.
좋은 리더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역사적 인물들은 좋은 리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을지문덕이나 강감찬 그리고 세종대왕 같은 인물을 우리는 좋은 리더로 꼽는다. 한국의 역사 속 인물 중 가장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일 것이다. 임진왜란의 한가운데에서 조선의 적은 배와 무기로 수많은 왜군을 여러 번 물리친 그는 그야말로 한국의 영웅이라고 부를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산대첩, 명량대첩 그리고 노량해전까지 여러 번의 해상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얻어낸 그가 가진 리더십은 꽤나 대단했음에 틀림없다.
한국 최고 흥행 영화의 후속 편 <한산:용의 출현>
2014년에 개봉했던 <명량>은 본격적으로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영화였다. 배우 최민식의 얼굴로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가진 고뇌를 담았다. 두려움에 갇혀있는 병사들을 꺼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었던 선택들이 영화 속에 담겼고, 무엇보다 그가 사용했던 해상 전의 전략과 거북선은 스펙터클하게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클라이맥스에 신파가 너무 반복적으로 제시되며 아쉬운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1.7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 영웅 이순신과 거북선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 흥행 기록 자체가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한국 사람들에게 단순한 역사적 인물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명량>보다 앞선 시기를 다루는 <한산:용의 출현>은 한산대첩을 다루고 있다. 한산 해상 전투가 있기 전 왜군의 장수중 하나인 와키자카(변요한)가 한산도를 침략하게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와키자카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그만큼 이순신의 적이 얼마나 집요하고 치밀하게 그 전투를 준비했는지를 보여준다. 임진왜란이 막 시작되었을 때 왜군들은 이미 한양까지 점령하고 기세를 몰아 명나라까지 가려고 한다. 이순신(박해일)은 그를 돕는 장군들과 함께 한산도 앞바다에서 결전을 벌일 준비를 한다. 이순신은 수세에 몰린 조선군의 사기를 걱정하면서 내부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원균(손현주)을 설득하여 전투를 자신의 방식대로 끌어가기 위해 애쓴다.
영화는 초반에 왜군과 조선군의 첩보전을 통해 극적 긴장을 끌어올리면서 조선 내부의 정치적 갈등과 선택 그리고 그 속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비춘다. 전작인 <명량>의 이순신에 비해 좀 더 과묵해진 모습을 보이는 그는 완전한 열세의 상황에서 왜군을 막을 최선의 방법을 고민한다. 영화 속 이순신은 주변 인물들에게 결코 감정적이고 공격적이지 않다. 전쟁의 의미를 묻는 준사(김성규)에게 '의'과 '불의'의 대결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쟁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분명하게 정의하면서 아군들에게 싸울 명분을 선사한다. 영화 속 그의 말은 분명하고 단호하고 틀리지 않다. 그래서 더욱더 주변 인물들은 이순신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이순신의 리더십 그리고 거북선
<한산:용의 출현>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거북선이다. 거북선은 영화 속에 몇 척이 등장하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 등장하는 거북선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무척 단단해 보이고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 거북선은 왜군들에게는 두려운 무기다. 이순신과 거북선이 함께 만들어내는 두려움은 왜군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공포로 퍼져나간다. 적장 와키자카가 걱정하여 두려움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았지만 그 두려움은 서서히 왜군들을 사로잡아갔다. 왜군들이 왜 그렇게 거북선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영화는 마지막 해상 전투에서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순신은 수적인 열세를 그의 리더십으로 극복해나간다. 그가 가진 전략인 학익진은 바다의 성을 만드는 전략이다. 매복을 하고 있는 적을 끌어내며 전투를 벌이거나, 결정적인 순간 출정하는 거북선 등 영화의 전투 장면은 풍부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순신이라는 리더가 흔들리지 않으면서 주변의 장수들은 좀 더 사력을 다해 전투에 임하고 각자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영화 <한산:용의 출현>에는 이렇게 이순신이 가진 부드럽지만 강인한 리더십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순신 역할을 맡은 배우 박해일은 이번 영화에서 대사가 그렇게 많지 않다. 이순신의 과묵한 고뇌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가진 정적인 이미지와 잘 맞게 표현되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변요한이다. 적장 와키자카 역을 맡은 그는 무시무시하고 욕망 넘치는 적장을 뛰어나게 묘사했다. 살기 넘치는 눈빛과 액션은 영화에 극적인 긴장을 불어넣고, 마지막 클라이맥스 전투에서도 전투의 통쾌함을 배가시킨다.
무시무시한 적장을 맡은 변요한의 명연기
영화를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원래 <핸드폰>이다 <최종병기 활> 같은 영화를 통해 쫄깃한 긴장감을 영화 속에 잘 불어넣었던 감독이다. 그는 <명량>의 흥행이 성공하면서 이순신 3부작을 야심 차게 만들고 있다. 이번 <한산:용의 출현>이 두 번째 이순신 영화인데, 전작인 <명량>의 단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신파를 덜어내고 조금은 건조하게 이야기를 구성하였고, 풍부한 음악을 활용하여 영화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의 다음 영화는 <명량> 이후의 시간대를 다루는 <노량>이다. 이순신 역으로는 배우 김윤석이 캐스팅되어 있다. 이번 <한산:용의 출현>의 완성도만큼의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이순신 3부작 모두가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영화 <한산:용의 출현>은 여름 블럭버스터로 극장에서 보기에 좋은 영화다. 한국에서 자주 보기 힘들었던 해상 전투를 제대로 구성했으며, 교과서에서나 배우던 학익진의 실제 전투 모습과 거북선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객들이 기대하고 있는 요소를 충족시키는 영화다. 무엇보다 이순신의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를 볼 수 있는 영화다. 리더십의 부재 속에 있는 한국의 현재 상황에서 꽤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
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한산:용의 출현>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https://rabbitgumi.stibee.com/
-
- 유치함 속 담긴 순수함과 성장
유치함 속 담긴 순수함과 성장
영화 <28세 미성년> 리뷰
감독] 장모
출연] 니니, 왕대륙, 곽건화
시놉시스] 애인 마오의 달콤한 청혼만을 십 년째 기다린 스물여덟 살 량시아는 프러포즈는커녕, 그에게 차인 뒤 초콜릿을 먹고 수상한 능력을 얻게 된다. 다섯 시간 동안 겉모습은 그대로인 채, 마음만 열일곱 살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 열일곱이 된 작은 량시아는 지하철에서 만난 자유로운 청년 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고, 그와의 짧지만 달콤한 데이트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열일곱, 스물 여덟 두 량시아의 평화로웠던 이중생활은 점점 꼬이기 시작한다.
왕대륙이 나온다고 해서 시사회를 신청해 보러갔던 영화 28세 미성년. 사실 그동안 유행했던 나의 소녀시대, 안녕 나의 소녀를 보지 않아서 이 작품을 이을 첫사랑 영화라고 하기에 기대를 안고 찾아갔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실 첫사랑 이야기라는 프레임 속에 자아찾기 라는 의미가 더 강조된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로맨스 속 ‘자아 찾기’ 프로젝트
줄거리만 보면 28세 량시아의 사랑과 17세 량시아의 사랑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끝까지 다보면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라기 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해맑고 꿈에 부풀어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뽐내던 작은 량시아와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 10년 간 자신의 그림실력을 뒤로하고 내조에만 힘쓴 큰 량시아. 큰 량시아는 작은 량시아의 도움을 받아 과거 자신이 꿈꾸는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되고, 스스로 사랑하며 작가로 다시 성장한다.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이에게 의지하기 보다 작은 량시아와 큰 량시아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스토리 상 뻔하긴 했지만 눈물짓게 되는 작품이었다.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 보며 눈호강하다
최대한 리뷰를 할 땐 이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들은 정말 예쁘고 잘생겼다. 스토리가 뻔하다보면 지루할 수 있는데 얼굴만 봐도 재밌다. 얼굴로 관객을 영화 속으로 흡입한다. 량시아 역을 맡은 니니 배우를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는데 여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정말 예뻐서 감탄하면서 영화를 봤다. 거기에 17살 때와 28살 일 때의 목소리 톤과 성격, 걸음걸이가 모두 달라서 지금이 몇 살인지 딱 보이는 연기력으로 또다른 감탄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CG가 엄청나게 티가 나는 밤하늘의 별들과 갑자기 마오와 얀이 싸우는 이 개연성 없는 전개 속에서 당황스러움이 몰려와야 하지만 다들 예쁘고 잘생기다보니 얼굴을 감상하느라 당황스럽지 않은 것도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열린 결말로 여운을 주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홀로서기를 시작한 량시아에게 마오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알몸으로 거리를 누비며 그녀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 장면을 보며 량시아는 그저 웃을 뿐 용서를 해줬는지, 아니면 시원하게 차버렸는지 알 수는 없다.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장면으로 이 영화가 마무리 됐다면 개인적으로 28세 미성년에 좋은 평을 남기진 못했을 것이다. 사실 량시아가 마오의 청혼을 거절하고 홀로서기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책없지만 순수했던 자신과의 조우를 통해 꿈을 다시 찾고 그 꿈을 이룬 량시아를 보며 힐링을 해서 그런지 량시아를 사랑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용만 한 마오에게 돌어가는 량시아는 상상할 수가 없다. 영화지만 이대로 주체적인 모습으로 량시아라는 캐릭터가 남아있길 바란다.
영화 28세 미성년은 과거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면 아마 유치함 속에서 힐링을 선사해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량시아처럼 어렸을 적 자신과의 조우를 통해 자신의 꿈을 간직하고 이뤄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