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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심2025-07-15 21:20:42

피부 아래 숨겨진 본질

영화 <내가 사는 피부>(2011)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까?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과 접촉하는 우리는 때때로, 혹은 자주 겉모습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성별, 외모, 옷차림 등은 한 사람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우리는 눈에 비친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외모가 내면, 즉 한 사람의 인격에 끼치는 영향은 어떨까? 외모와 신체가 변한다고 해서 과연 그 안의 인격까지 변할 수 있을까? 영화 <내가 사는 피부>는 파격적인 전개와 소재를 통해 피부 외부와 내부의 분열, 그리고 겉모습에 쉽게 현혹되어버리곤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저명한 성형외과의 ‘로베르트’는 수년 전 아내가 교통사고로 인한 심한 화상을 입고 숨진 후, 인공 피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묘령의 여성 '베라'를 자신의 대저택에 감금해둔 채 24시간 카메라로 감시한다. 늘 피부와 유사한 모습의 전신 바디수트를 입은 채 생활하는 베라는 로베르트가 고안한 인공피부 이식 수술의 실험체다. 그녀는 로베르트가 만들어낸 일종의 피조물로, 그가 사랑했던 아내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 로베르트는 베라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지만 아내를 닮은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며 욕망하고, 끝내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품는다.

 

 하지만 영화는 12년 전 과거로 돌아가며 두 사람 사이의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뒤로 극심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딸 ‘노르마’와 함께 환자의 결혼식장에 방문한 그는 오랜만에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거워하는 딸의 모습에 기뻐하지만, 그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사라진 딸은 숲속에서 강간당한 채 발견된다. 트라우마 증상이 호전되는 듯했던 딸 노르마는 이 사건 이후 이전보다 더 심각한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다가 끝내 창밖에 몸을 던지고 만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모두 잃은 로베르트의 광기는 극에 달한다. 그는 딸을 강간한 남자 ‘비센테’를 납치해 강제로 성전환 수술을 진행하고, 그의 얼굴과 모든 신체를 바꿔 놓는다. 그리고 완전히 달라진 모습의 그에게 ‘베라’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피부는 인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외피 체계상 가장 큰 조직이다. 때문에 피부는 우리 몸에서 타인에게 가장 많이 ‘보여지는’ 곳이기도 하다. 피부는 일종의 껍데기, 말하자면 영혼이 장착한 의상으로서 세계에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이다. 어떤 이들은 다른 이의 피부를 뒤집어씀으로써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지만, 껍데기가 달라진다고 해서 그 아래에 담긴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피부는 그 아래에 본질적인 것—혈관, 피, 기관, 혹은 정신—을 숨기고 있으며, 동시에 육체와 세계를 가로지르는 경계선의 위치에 있다.

 

 이렇듯 피부는 경계선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접촉의 장이기도 하다. 우리는 피부를 통해 타인과 세계를 접한다. 타인과의 불가피한 접촉과 과격한 충돌 속에서 피부는 벗겨지고, 뒤틀리고, 찢어지고, 절개된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피부는 끊임없이 재생을 반복하며 자아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고 또 재구성한다.

 

 영화는 줄곧 피부를 ‘옷’에 비유하고 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한 옷을 필요에 따라 입고 벗는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옷을 갈아입는다고 해서 옷을 입은 사람의 인격이 바뀌지는 않는다. 옷은 입은 사람의 자신감, 태도, 체감 온도나 활동성 등에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그 아래 존재하는 정신이나 영혼을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영화 속 이전과 너무나 달라진 몸을 가지게 된 비센테가 갈기갈기 찢어버린 옷 조각들은 조각나고 뒤바뀐 자신의 피부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타의로 여성의 몸을 가지게 된 비센테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지만, 점점 새로운 몸으로 살아가는 것에 순응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에게서 아내의 모습을 보는 로베르트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하면서 ‘베라’로서의 삶과 타협해 보려고도 시도한다. 그러나 신문에 실린 단 한 장의 흑백 사진, 자신의 원래 모습이 담긴 그 작고 희미한 사진을 마주한 순간 그는 자신이 '비센테임'을 다시 상기해낼 수밖에 없다. 비록 이전과는 너무나 다른 겉모습일지언정 그 아래 존재하는 '비센테'가 '베라'로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다양한 색과 모양, 무늬를 가진 옷들만큼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역시 제각각 다양한 외형과 인격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음대로 입고 벗기가 가능한 옷과, 바꾸기 위해서는 외과적인 수술이 요구되는 피부는 다르다. 피부는 반半영구적인 것이기에 우리는 더 눈에 보이는 그 모습을 그대로 믿으려 들고 그것에 집착한다. 인간 삶에 있어 외부로 드러난 피부의 형상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그것의 내면은 표면과 일치하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와 세계를 가로지르는 이 피부의 의미와 본질은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밖에 없다. 과연 나와 네가 살아가는 피부는 어떠한가?

 

 

 

작성자 . 옹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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