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3-10-06 16:21:37
[BIFF 데일리] 불완전한 환경 속에서도 피어나는 꿈
영화 <알레마니아> 리뷰
감독: 마리아 자네티,후안 파블로 밀러
출연진: 마이트 아길라르,미란다 데 라 세르나,마리아 유세도,왈테르 제이
시놉시스
199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고 있는 열여섯 소녀인 로라는 학교에서 낙제를 받지만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어느 학교로 교환학생이 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자신의 언니인 홀리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서 가족은 불안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환경에서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악착같이 모아 독일로 유학 가려는 로라에게 또 다시 어려운 시련이 생기게 되는데...
로라라는 소녀는 공부는 못하지만 붙임성이 좋아 독일로 교환 학생이 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걸림돌이 있었는데 바로 자신의 언니인 홀리였다. 홀리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 로라의 가족은 홀리를 치료시키는데 몰두하느라 돈을 다 써버렸다. 그래서 집까지 팔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라는 포기하지 않고 그 시련을 자신이 독일로 가기 위한 발판이 되는데 썼다.
그래도 로라의 가족과 외할머니는 로라의 길을 열어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언니인 홀리가 막장으로 치닫는 데까지도 가족들은 로라를 보호해 주고 응원해 줬다. 또한 친구인 타티도 지지자가 되어주었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어려움을 참고 견뎌낸 로라가 필자의 기억엔 정말 대견하게 각인되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마리아 자네티인데 자신의 10대 시절에 겪었던 불안정한 상황과 가족들의 유대관계를 재구성해서 작품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청소년인 로라에게는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남자친구 사귀는 것과 운전면허 취득하는 것, 잠시 불량한 친구와 함께 어울려 보는 것 등등 그 당시 10대로서 하고 싶은 걸 모두 이루게 된다. 어쩌면 10대 청소년들 중에 꿍과 목표를 가지고 있으나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갈 때 이 영화를 보는 게 어떨까라고 생각하며 우리나라의 10대 청소년들에게도 추천해 주고 싶다. 필자 또한 청춘이기 때문에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인 것 같다. 다만 너무 성급하게 선택하지는 말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희망과 용기!
2023.10.05 (목) 20: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7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2023. 10.04 (수) ~ 2023. 10. 13. (금)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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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치 않는 진실 위로 쏟아지는 새로운 조각들
스틸워터 (Stillwater, 2021)
개봉일 : 2021.10.06 (한국 기준)
감독 : 토마스 맥카시
출연 : 맷 데이먼, 아비게일 브레스린, 카일 코탄, 디애너 듀나건, 로버트 피터즈
변치 않는 진실 위로 쏟아지는 새로운 조각들
올 10월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두근거리는 달이다. <듄>, <베놈>같은 많은 영화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영화와 함께 사랑하는 배우 맷 데이먼의 영화가 2편이나 개봉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그린나이트>를 보며 시대극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개봉 소식이 들리자마자 쭈욱 기다렸던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그리고 지금 후기를 쓸 이 영화 <스틸워터>가 2주의 텀을 두고 연달아 개봉하다니. 거의 한 달 내내 영화관에서 맷 데이먼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득 담고, <포드 V페라리> 이후로 거의 2년 만에! 스크린에서 맷 데이먼을 만났다.
<스틸워터>는 함께 사는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고향 땅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의 교도소에 갇힌 딸의 무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실제로 유학 중 살인 혐의를 받아 4년간 복역했던 아만다 녹스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한 이 영화는 추리 영화이자 주름진 가족 영화, 그리고 아버지로서, 온전한 나로서 성장을 거듭하는 주인공의 성장 영화다.
진실을 쫓는 발걸음
마르세유라는 여유롭고 맑은 도시 속에 똑-떨어진, 이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 빌 앨리슨은 딸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적은 편지를 읽고, 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말도 통하지 않는 도시와 차가운 시선들에 맨몸으로 부딪힌다. 견고하게 짜여져있던 ‘유죄’라는 벽에 조금씩 금이 가는듯 보이더니, 언제부턴가 새로운 사건의 조각들이 빌의 머리위로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언제나 내 딸은 무죄일 거라고 믿었지만 제대로 된 증거가 없어 교도소 안에 갇힌 딸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아버지 빌은 이제야 정말 아버지다운 일을 할 시점이라고 느꼈는지, 아니면 이 일을 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건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의 실마리를 붙잡는다.
완전한 진실보단 나와 우리의 평화를 위해
<스틸워터>는 앨리슨이 연루된 사건의 진실과 분명한 선과 악의 구분보다는 빌이 바라는 평화. 즉, 이 부녀 사이의 진전과 아버지의 원초적인 부성애에 집중한다.
고강도의 육체 노동직을 소화하며 어느새 거친 얼굴을 갖게 된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딸. 고된 하루를 다시 버티기 위해 손대선 안될 영역에 기댔던 아버지와 그런 그를 증오했던 딸. 사랑하는 딸을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와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었던 딸.
앨리슨의 바람대로 두 사람은 미국에 있는 스틸워터(고향)와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각자의 이유로 발이 묶인 채 긴 시간을 보낸다. 빌은 지금껏 무력하게 딸의 죄를 함께 지고 살아왔지만, 이번엔 정말 딸을 구해내겠다고 이제는 무능력하고 믿지 못할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 딸과 우리를 위해서라면 누가 범인인지, 어떻게 이 사건을 풀어가야 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앨리슨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 뿐이다.
맷 데이먼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캐릭터, 빌
주인공 ‘빌’을 맡은 맷 데이먼의 우직한 연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거칠지만 그렇다고 투박하지 않게 깊은 감정선을 파내려 가는 그의 연기와 감정의 흐름을 든든히 떠받쳐주는 멋진 목소리에 완전히 홀려버렸던 시간이었다.
130여 분의 러닝타임과 앨리슨의 사건, 마르세유에서 만난 버지니와 마야와의 에피소드를 숭덩숭덩 썰어놓은 이야기의 흐름에 다소 지루함을 느꼈다는 후기도 있었지만, 빌의 심경 변화와 앨리슨의 사건을 함께 풀어가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앨리슨의 사건만을 다뤘다면 ‘빌’이라는 캐릭터가 이만큼 빛나지 못했을 것이다.
실수와 후회를 잔뜩 쌓은 아버지,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그 밖엔 믿을 사람이 없는 딸. 그리고 낯선 나라에 떨어진 두 사람의 조력자가 되는 소중한 인연들과 이방인을 차갑게 비웃는 차별적인 시선들.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거리를 넓히고 싶었던 부녀의 틀어진 사이, 잘못된 사회의 차별과 시선, 잘못된 사랑과 극단적인 선택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사건의 전말, 빌과 앨리슨이 앞서 풀어내지 못했던 마음들을 함께 풀어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힘차게 파보길 추천한다.
스틸워터 시놉시스
진실을 파고들수록, 비밀은 깊어진다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힌 딸의 무죄를 입증할 마지막 기회를 위해 나서는 아빠 '빌'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예기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아버지의 조금 늦은 부성애
빌은 아내가 자살한 후 일과 술, 약에 홀려 긴 세월을 보낸다. 앨리슨을 보살펴준 건 빌의 어머니 샤론이었고, 그는 약 때문이었는진 몰라도 경찰에 한 번 잡혀갔던, 그리 아름답지 못한 과거도 갖고 있다. 빌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하자 샤론과 앨리슨은 술이나 약에 취한 상태냐고 묻는다. 지금껏 빌이 이들에게 어떤 가족이었는지, 이 대사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빌도 자신이 좋은 아버지가 아니란 걸 안다. 그래서 계속 일자리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술을 끊고,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 마르세유까지 앨리슨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아빠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딸의 진심을 아주 직관적으로 듣게 된다. 그는 그간의 실수를 만회하려 노력하지만 계속 꼬여버리는 사건 앞에서 짧은 절망을 느낀다. 하지만 아버지를 제외하면 기댈 곳이 없는 딸 앨리슨과 자신을 마치 아버지처럼 따르는 마야를 보살피며 조금 늦게 발현된 부성애를 불태운다. 빌은 앨리슨이 좋아하는 색과 옷 스타일 같은 작은 정보 하나조차 모르고 있는 아버지였지만, 그가 늦게나마 태워낸 부성애는 거짓이 아니었다.
간절함에 밀려 틀어진 방향성
‘어떤 방식을 써서든 앨리슨의 무죄를 입증하겠다.’는 게 빌의 최종적인 목표다. 빌은 버지니의 도움을 받아 파티가 있었던 바의 사장과 전직 경찰을 만나고, 위험한 동네인 칼리스테를 휘젓는다. 그리고 끝내 범인으로 추정되는 아킴을 지하실에 가두게 된다.
버지니는 아무 아랍인이나 잡아넣으라는 바 사장을 보고는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몸서리를 치며 빌과 잠깐의 대립구도를 만든다. 그 상황에서도 빌은 ”그저 내 딸을 위한 일“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빌이 칼리스테에서 좌절을 한 번 맛보고 버지니와 마야의 집에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결과만을 향해 돌진하던 걸음을 좀 늦췄나 싶었는데, 그는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아킴을 보자마자 다시 방향성을 꺾어 맹렬한 추적을 시작한다.
온전한 해결법이 아닌 걸 알면서도, 잘못되어 가고 있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결국 앨리슨의 무죄는 입증되었지만 잘못된 방향성을 선택한 빌은 다시 하나의 사랑을 잃고 만다. (사실 내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부모의 마음이니 그의 선택을 질타할 생각은 별로 없다. 그래도 내 자식은 지켰으니까..?)
가난한 학생과 부자 학생
<스틸워터>는 딸의 무죄를 향해 달리는 아버지의 발걸음을 중심에 두고, 사건의 일부 조건들을 겉으로 떼어내 사회에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인종차별적 행동들과 편견들을 이야기한다.
아킴이 살고 있는 동네 칼리스테는 마약거래가 빈번히 일어나는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다. 아킴은 조금 포장하자면 거친 동네, 나쁘게 말하자면 버려진 동네에 가까운 그곳에서 살아온 아랍인 청년이다. 아킴을 찾기 위해 방문했던 바의 사장은 아랍인 학생들을 보고 원숭이 놈들이라 칭하고, 누구를 감옥에 잡아넣든 어차피 언젠가 죄를 지었을 것이라며 차별적인 말들을 뱉어낸다.
앨리슨의 주변인이었던 교수 또한 앨리슨이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잘 살아온, 교육받은 학생이라 생각하고 앨리슨의 연인이었던 아랍계 학생 리나를 가난한 학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둘의 사이를 애초에 어울릴 수 없었던 사이라 단정 짓는다.
빌은 시추기의 등장으로 당장 밥벌이가 어려워진 상황에 처해있으며, 앨리슨이 어렸을 때 또한 항상 땅굴을 파며 어렵게 생활을 이어왔다. 미국 출신 백인이라는 딱지에 따라붙는 카우보이라는 조롱과 혼자 잘 살아온 이기적인 놈이라는 편견은 칼리스테에 방문한 빌을 위험에 빠트리기도 한다.
여러 인물들의 대사 속에 은근하게 녹아있던 차별과 편견, 그리고 그에 따른 위험요소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이 꽤나 많았다.
”진실은 없어요. 이야기뿐이죠.“
결국 이 사건의 마무리에 진실은 없이 떠도는 이야기와 결과만 있을 뿐이다. 리나는 살해당했다. 하지만 앨리슨이 죽인 건 아니다. 앨리슨은 벗어나고 싶다고만 이야기했지 리나를 살해한 적은 없다. 이 말들은 진실이긴 하다. 하지만 다른 진실의 조각들은 조용히 묻혀버린다.
뒤이어 어떤 이의 흔적이 나왔다. 앨리슨은 진범이 아니다. 등등 여러 이야기가 떠돌았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 당사자들만 알고 있을 뿐.
스틸워터로 돌아온 빌은 스틸워터의 모든 게 달라 보인다고 말한다. 사실 변한 건 없는데, 그의 눈엔 모든 게 달라 보이는거다. 묻혀있던 진실이 전부 밝혀진 건 아니지만 앨리슨이 아닌 다른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얼핏 모든 게 뒤바뀐 것처럼 보이는 이 사건처럼 말이다.
바뀐 건 없지만 바뀌어버린 사건. 무거운 사건을 겨우 들어옮겨 맞이한 이 결말이 마냥 시원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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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경찰을 감시하다 | 영화 경관의 피
화려한 캐스팅으로 개봉 전부터 관심이 많은 작품이었던
영화 경관의 피!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다소 아쉬운 평점을 가지고 있는데
경찰이 경찰을 감시한다는 참신한 소재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영화 경관의 피를 살펴볼까 합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범죄, 드라마, 스릴러, 느와르, 액션
감독 : 이규만
각본 : 배영익
출연진 : 조진웅, 최우식, 박희순, 권율, 박명훈
개봉일 : 2022년 01월 05일
평점 : 6.87
스트리밍 : 티빙, 넷플, 왓챠, 웨이브
기획 의도
경찰의 기준이 뒤집어진다
출처불명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고 고급 빌라, 명품 슈트, 외제차를 타며
범죄자들을 수사해온 광역 수사대 반장 강윤(조진웅)의 팀에
어느 날 뼛속까지 원칙주의자인 신입 경찰 민재(최우식)이 투입된다.
강윤이 특별한 수사 방식을 오픈하며 점차 가까워진 두 사람이
함께 신총 마약 사건을 수사하던 중
강윤은 민재가 자신의 뒤를 파는 두더지, 즉 언더커버 경찰임을 알게 되고
민재는 강윤을 둘러싼 숨겨진 경찰 조직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데
여담
영화는 일본 원작소설 경관의 피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원래는 2020년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되었다.
영화의 전반적으로 음향 문제가 발생하면서 영화를 보면서도
이게 무슨 대사인지 모를 정도로 문제가 아주 많았다.
후기 및 결말
영화 경관의 피 결말을 살펴보자면
과거 경찰들이 수사비가 없어 수사비를 스폰 받아 왔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조직이 바로 연남회였다.
연남회에서는 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은 박강윤을
쳐내기 위해 범죄를 뒤집어 씌우고 박강윤을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최민재는 연남회를 찾아가 그동안의 벌인 일들과 아버지 살인사건의 진실을
조건으로 협상하여 박강윤이 모든 혐의를 벗어던지며 교도소에 나오게 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여기서 시즌 2를 그려볼 수 있을 여지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보통 언더커버는 경찰이 깡패에 속에 들어가 언더커버 활동을 한다!
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있다면, 이번 영화 경관의 피의 경우
경찰이 경찰을 감시한다는 신선한 소재로 접근하였으나
다소 아쉬운 스토리로 우리 기억 속 저기 어딘가에 묻혀있다.
한줄평 :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따라가지 못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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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엄사는 진정으로 '존엄'한 것인가
글로벌 프로젝트인 10년 프로젝트를 아는가?
2015년 홍콩에서 시작되어 대만, 태국, 일본에서 진행된 글로벌 제작 프로젝트이며 10년 후의 각자의 나라를 감독들이 단편으로 만들어 엮은 옴니버스 영화이다.
전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이 프로젝트 중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수입 및 개봉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플랜 75>는 이 중 동명의 단편을 동일한 감독이 장편화한 영화이다.
멀지않은 미래,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75세가 되면 국가에서 안락사를 권장 및 지원하는 "플랜 75"라는 제도가 생기게 된다.
플랜 75 제도를 활용해 안락사를 준비하는 노인들과 속에서 근무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안락사, 존엄사는 현재 일부 국가에서 불치병이나 말기 환자에 한해 실행되기도 하는 만큼 현실에 대입해 많은 고찰을 하게 만든다.
동시에 국가 체제에서 엄연한 죽음을 권장하고 지원하며, 그로 인해 무언으로 안락사를 떠미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야말로 공포영화 그 자체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존엄사가 진짜 존엄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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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밤의 이별
재밌는 영화와 이야깃거리가 많은 영화는 엄연히 다르다. <미드소마>는 100퍼센트 후자인 영화로, 재밌는 영화는 사람들이 어떤 영화냐고 물을 때 “직접 보길 추천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 영화들은 선뜻 아무에게나 보라고 추천하기도 어렵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관에서 굉장히 몰입해서 이 영화를 봤는데 그럼 재밌었던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보다는 흥미로웠고, 신기함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에 대한 개인적 감상을 정리하기 위해 적어 본다.(내용 감상에 중요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제가 헤어짐을 겪은 뒤 이 내용을 구상했는데, 그 헤어짐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얻었다기보다는 그때 겪었던 감정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죠.” - 아리 애스터
가장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이별의 전조는, 많은 경우 자신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보인다. 영화 초반 전화 속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대니의 친구는 크리스티안이 그녀의 고통을 공감하고 같이 나눠질 수 있는 사람인지 되풀이 해 묻지만 대니는 회피성 대답만 반복한다. 사실 아니란 걸 알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가 겪고있는 정신적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에 또 하나의 상실을 겪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집요하게 영화는 크리스티안이, 정서가 불안한 대니가 절대 의지할 수 없는 못 미더운 사람이란 표식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난 크리스티안이 ‘나쁜 애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 기준에서 크리스티안 정도면 그냥 보통 인간이다. 그의 언행 중 무엇도 진심이 아니지만 그럴싸한 연애의 껍데기를 흉내내며, 공허한 관계를 몇 년 간 이어갈 수 있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게다가 대니의 고통은 비슷한 종류의 사건을 겪어보지 않은 인간들이 헤아리고 공감하기 힘든 종류다. 하긴, 어떤 종류의 고통인들 안 그렇겠는가만은. 대니와 크리스티안이 헤어지게 된 건 누군가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니다. 대니가 가족을 잃었을 때 그들은 이미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 돼 버린 것이다. 종종 크리스티안을 빤히 바라보는 대니의 눈빛이 이야기 한다. 그들의 관계는 이미 종료 돼 있다고.
영화 내내 클로즈업으로 잡히는, 플로렌스 퓨의 울음을 참는 혹은 울기 직전의 표정.
영화 속에서 거행되는 호르가 마을의 신성한 의식은 그 자체로 이별을 받아들이고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관계의 상실을 대면하기 직전, 오래된 연인들은 징조를 무시하고, 서로의 존재가 가진 관성 때문에 망설이고, 혼자 속으로 울음을 삼킨다. 그러다 차츰 시간이 흘러 깨어진 관계의 모습이, 더 이상 못 본 척 할 수 없을 정도로 한여름의 햇빛처럼 너무 선명해지면, 모든 것을 끝내고 감정을 정화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거다. 물론 그 사람을 태운다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오랜 연인들의 평범한 이별 이야기다. 아름답고 찬란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하나하나 돌아보면 때로는 엽기적이기도 했던 관계에 종말을 고하는 그 순간을 포착한, 평범한 이별. ‘태어나기 위해서 죽는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관계에 종말을 고하는 그 과정.
* 본 콘텐츠는 브런치 Good night and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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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공간
SYNOPSIS.
안정된 주거 환경을 꿈꾸던 레즈비언 커플 선우와 희서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작은 아파트를 마련한다. 하지만 선우가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고 다리까지 다치게 되면서 전적으로 희서가 대출금과 이자를 떠안게 되자, 둘 사이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집에서 쉬게 된 선우는 일자리를 찾지만 쉽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악취로 두 사람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PROGRAM NOTE.
한 동성 커플의 갈등이 한국 사회의 구조 안에서 발현되는 과정을 담은 <럭키, 아파트>는 한국 퀴어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품이며, 소수자를 대하는 우리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뛰어난 사회 드라마다. 제약회사 직원인 희서와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직장을 잃은 선우는 9년 차 동성 커플이다. 객관적으로 경제적 차이가 나는 상황이지만 서로 크게 티를 내진 않는다. 하지만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서, 아파트 구매 자금 대부분을 부담한 희서와 기여도가 거의 전무한 선우 사이 갈등은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아래층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는 커플의 간극을 더욱 키운다. 냄새의 근원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선우가 아파트 가격 하락의 주범으로 찍히며 동 대표 등 주민들과 갈등을 겪는 반면, 직장에서 겪는 성차별로 스트레스를 받는 희서는 커플 관계가 주변에 알려질까 두려워하며 선우의 행동을 비판하고 둘의 관계는 악화일로에 처한다. <럭키, 아파트>의 또 다른 미덕은 갈등과 배제라는 이야기 속에 사랑과 연대라는 희망의 싹을 집어넣는 점이다. 아래층에 살던 할머니의 사진을 갖고 싶어 하는 친구분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무단침입까지 감행하는 선우는 “왜 그랬냐”는 희서의 질문에 “남 일 같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감동적인 대사는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우리는 매일매일>(2019) 같은 여성주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강유가람 감독은 첫 극영화에서도 놀라운 역량을 보여준다. (문석)
몇 년 전 <이태원>을 보고 받았던 충격이 생생하다.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도 들여다볼 수도 없는 세상의 이야기를, 이토록 섬세하게 연출하여 가져다 주는 영화라니. 강유가람 감독의 이름을 그렇게 알았고, 그 후 다큐멘터리 작품만 만나다가, 첫 극영화 연출작이라고 해서 고민 없이 선택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공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영화는 희서와 선우가 나란히 앉아 있는 푸른빛 자동차에서 시작하여, 이내 푸른빛 침구와 소파가 놓인 두 사람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의 머리 아픈 과제이자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기회여서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이고, 이 영화 속에도 집값을 우려하는 사람들이나 대출이자에 한숨 짓는 희서를 통해 그런 문제의 면면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아파트에서 내게 가장 먼저, 가장 깊이 각인된 것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집안일에 필요한 도구들은 정갈하고 생활감 있는 위치에 표현되고, 운동 기구도 깔끔히 놓여 있으며, 설거지하는 선우 뒤로 걸려 있는 와인잔 같은 것들은 두 사람이 각자의 삶과 함께하는 삶, 일과 관계의 낭만까지 허투루 하는 구석 하나 없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집은 사는 사람을 드러내니까.
그런데 그 공간에 자꾸 퍼지는 냄새가 있다. 쓰레기를 비우고 박박 문질러 닦고 락스를 부어 봐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 문제를 올곧게 직면하며 정공법으로 해결하려는 선우와, 적당한 불편함을 삼키면서 피할 수 있는 갈등은 최대한 피해 가려는 희서의 방법은 냄새를 두고도 계속 부딪게 된다. 시작부터 두 사람의 갈등은 진작 지나간 일, 이미 어쩔 수 없는 일들을 논하고 있고, 우리 모두 가까운 사람과 싸워 봐서 잘 알듯 그건 필연적으로 '탓'이 된다. 쌓이는 쓰레기를 내어 버리고 바닥을 박박 문대어 닦듯, 좋지 않은 감정도 주기적으로 그래 주어야 하는데, 두 사람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
자격: 더 필요한 자에게 더 문턱이 높은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공간인 동시에 거의 어떤 정체성의 일부처럼 기능하고 있다. 어느 동네 산다는 것으로도 모자라 어느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꼬리표로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 중 일부는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를 심어주는 '부적절한' 입주자를 걸러내고 싶어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임대주택이 단지 내에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차별하면서, 차별이 아니라 차이라고 말한다든지. 이들에게 아파트는 자본으로 거래한 재화보다는 오히려 봉건시대의 성직이나 성기사직처럼 거의 부여받은 자격에 가깝다.
주거지의 위치나 입지뿐 아니라, 주거지를 획득하기 위한 과정 또한 마찬가지로 자격을 요한다. 고공행진이라는 말을 쓰기도 머쓱할 정도의 매매 비용으로 인해, 노동소득만으로 매매할 준비가 되는 사람이 거의 없이 사회에서, 빚도 재산으로 인지하는 이 사회에서, 대출 또한 일정한 자격을 필요로 한다.
사실 고정비를 줄일 필요성이 더 절실한 이들에게 이 문턱은 더 높다. 빈곤은 단순히 돈의 많고 적음 혹은 그 돈을 획득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 정도로만 얄팍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에도, 이 사회의 천민 자본주의는 너무 쉽게 문턱 아래 있는 사람을 업신여긴다. 게다가 빈곤 문제만 엮여 있지도 않다. 번듯한 직장에서 돈 잘 버는 희서는 물론, 대출 자격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선우도 배우자의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어 이 문턱 앞에서 더욱 불리하다.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행이 공짜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니, 일정한 자격이 필요하고 좋은 아파트 사는 게 잘못도 아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악의조차 없이, 타인에 의해 존재가 흐릿해지는 경험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모인 이 영화 속 인물 다수가 그렇다. 명백한 성차별 혹은 업무상 클라이언트라는 이유로 갑을 관계처럼 대우하는 의사 앞에서 표정을 마음껏 굳히기도 어려운 희서, 배우자가 있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야 하는 사람들.
가진 자가 나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숱하게 부정당하는 순간들을 마주했던 인물이지만, 모르는 척 개인정보 유출이라도 해달라는 선우까지도 타인의 존재를 흐릿하게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사회 전체가 거대한 아파트처럼, 서열화되고 파편화되고 서로를 볼 수 없는 이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타인의 존재를 흐릿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유독 중첩되어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도 떠오르게 만든다. 꼭 동성애 커플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에 질문은 자연스레 확장된다. 원가족과 연결되어 있지 않거나(혹은 그렇지 못하거나), 원가족이 찬성하지 않는 결혼으로 새 가정을 이루어 인정받지 못했거나, 1인 가정을 이루어가는 사람... 이 모두가 사후 장례나 청소조차 이루어지기 어려운 얄팍한 세상을 밟고 살아야 한다니. 최대한 모두를 촘촘히 보호할 망을 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들만 보호하는 법으로 남겨두기엔, 그 자격 부여받지 못하거나 걷어차고 나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니까. 1인 가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가족의 형태와 개념과 사회적 합의가 많이 변해 가는데, 언제까지 저출생 염불만 외고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들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사랑: 남는 건 그저 소중하게 빛나는 마음뿐
사회의 자장에서 매우 투박하게 다뤄지며 변죽만 울리는 이 문제들을 영화는 섬세하게 담아낸다. 그리고 이 문제와, 그 안에서 심화되어 가는 인물들 간의 갈등이 뒤엉키며 영화는 점점 심란하게 흘러간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사람을 피로하게 혹은 절망하게 하지 않는다. 시의적절하게 작고 소소하게 기웃거리는 희망은 마지막에 뽀얀 빛을 발한다.
아무도 이 영화에서 법과 제도를 들어엎는 식의 해결을 기대하지는 않겠지만 (이 영화의 국적이 인도였다 해도, 요즘 인도 영화도 그 정도는 안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사랑과 희망의 이름을 빌려 우리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마음을 가득 안겨준다.
희망이나 연대는 아주 거대한 단어 같지만 이 영화는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그것들을 보게 한다. 거드는 말 한 마디, 지키는 말 한 마디, 공감의 감탄 하나. 사소한 이웃의 대화. 그런 말이 놓인 자리라면 거기야말로 럭키, 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랑.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고 스러져 결국 낡은 사진으로만 남을, 그러나 그 사진이 낡아가도록 바라보는 마음. 다친 데를 감싸 주며 사는 게 결국 사랑일 것이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말과 법도에 지치고 밀려 스스로 손톱을 뜯을 때, 손톱을 뜯은 사람을 타박하는 게 아니라 그 손톱을 뜯게 된 과정이 결국 타의에 의한 상처임을 함께 아파하며 감싸 주는 것.
상처는 언젠가 낫는다. 부상도 그렇다. 다만 남는 건 그저 사랑이다.
2024. 05. 02. 21:30 CGV전주고사 3관 (상영코드 157)
2024. 05. 04. 13:30 CGV전주고사 3관 (상영코드 323)
2024. 05. 09. 20:30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상영코드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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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락한 것들에 대한 재판
한 남자가 외딴 산장 다락에서 떨어져 죽었다. 처음 발견자는 개와 산책을 나갔던 시각 장애인 아들. 집에는 엄마가 혼자 있었다. 이것은 사고일까 자살일까 살인일까.
일반적인 추리물은 사건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역학관계를 짜 맞춘다. 그러다 보니 종종 '트릭'이 얼마나 촘촘하게 잘 짜여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기가 막히게 파헤치는지에 집중한다. 거기엔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이나 고찰은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느 가난한 종이 주인의 학대를 이기지 못해 살인을 했고 감옥에 가는 게 두려워 자기가 하지 않은 것처럼 꾸몄다면, 결국 그 종이 어떻게 살인을 했는지 트릭을 찾아내는 것이 대부분의 추리물이다. 그것이 재미있고 자극적이니까. 다 해결하고 나서야 미국식으로는 잠깐 플래시백 해서 범인의 과거를 보여주며 씁쓸한 마무리가 되거나, 일본식이라면 추리해 낸 괴짜 주인공이 범인에게 일장 교훈연설을 하며 범인의 눈물을 쏟게 만들면 끝난다. 거기엔 그 사회는 왜 종과 주인이라는 계급이 존재하는지, 그들은 원래 그런 성격인 건지 다른 이유로 사이가 점점 틀어진 것인지, 사회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었는지,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그 둘의 문제에 관심은 가졌을지에 대한 전방위적인 생각은 할 겨를이 없다. 그럼 스토리가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추리 마니아들은 미스터리 커뮤니티나 방탈출 게임 등으로 아예 서사는 없애고, 트릭을 만들고 추리하는 것을 즐긴다. 그렇게 장르물을 즐기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모든 장르물은 장르성이 강해지면 사람보단 사건이 두드러지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 되면 달라진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는 처음엔 평범한 추리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부 사이 이면에 감춰진 몰락한 관계와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며 사건을 논리로만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남녀의 이념갈등에 대한 은유도 들어있다.
해부
독일인인 유명한 소설가이자 번역가 산드라(산드라 휠러)는 자신이 살고 있는 프랑스 외딴 산장에서 그녀를 찾아온 여학생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다락에서 큰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들인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은 안내견 역할을 하는 개 스눕(메시)과 함께 산책을 나간다. 음악소리는 점점 커지고, 그녀는 남편이 일부러 인터뷰를 방해하는 것 같다고 하며 인터뷰를 중단한다. 잠시 뒤, 다니엘이 산책에서 돌아오자 다니엘의 아빠, 프랑스인 사뮈엘(사뮈엘 테이스)이 집 밖 마당에 쓰러져 죽어 있다. 사뮈엘의 직접적인 사인은 길고 단단한 무언가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게 되어 두개골 손상으로 죽게 된 것이지만, 그 손상이 된 원인을 찾기가 힘들었다.
사건의 초기에는 직접증거를 토대로 추론을 해나간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교통사고 후 두개골이 골절되어 식물인간 상태로 치료받다가 폐렴에 걸려 사망한 일이 있었다고 하자. 그럴 경우 직접 원인은 폐렴이지만, 폐렴의 원인인 두개골 골절, 두개골 골절의 원인인 교통사고, 그 교통사고의 의도성까지 사망진단서에 기재하며 병인 폐렴으로 죽었지만 사인은 '병사'가 아닌 '외인사'가 된다.
<추락의 해부>에서 산드라가 사뮈엘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검사는, 어떤 방식으로 그녀가 죽여야 사망현장처럼 되는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건을 재조립한다. 산드라 측에서는 자살 혹은 사고로 떨어졌을 경우에도 그럴 수 있다며 다양한 증거들과 시뮬레이션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추리로 사건의 원인을 정말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산드라는 유력한 용의자지만 또한 그녀가 범인이라는 증거도 불충분하다. 살해에는 살해의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동기가 부족했다. 그러던 중 다니엘이 사건 당일 산책 나가기 전 부모가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는 증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다니엘이 증언과 다른 지점이 밝혀지며 사건의 해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실험
처음에 다니엘은 집 밖 창문 밑에서 부모가 일상적인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었다. 하지만 경찰들의 실험 결과, 당시에는 음악이 크게 틀어져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일상적인 목소리 톤으로 이야기를 하면 들을 수가 없었고 그건 집 안에서만 가능했다. 그제야 다니엘은 자기가 위치를 착각했다고 말을 바꾼다. 사실 정황을 보건대, 다니엘은 기둥마다 다른 테이프를 붙여놔 구분을 하는데 시각장애인인 그가 테이프를 혼동하긴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엄마가 살인자로 몰리게 되지 않길 바랐기 때문에 둘이 언성을 높여 말하는 혹은 싸우는 소리를 일상적인 대화를 했다고 말을 바꿨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에 검찰과 변호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부부관계를 해부하기 시작한다. 직접증거는 나오지 않으니, 정황증거, 즉 살인의 동기와 자살의 동기를 각각 파헤친다. 다니엘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 것을 우려했던 재판부는 다니엘이 이후의 재판은 참석하지 않기를 권고했지만, 다니엘은 부모 관계의 진실을 듣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재판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생각보다 그들의 골이 훨씬 깊었던 것이다.
부부싸움을 하는 집은 꽤나 흔하다. 부부싸움은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상처를 제일 깊게 건드린다. 부부는 위태로운 실로 연결되어 있으며,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너무 쉽게 부서져버릴 수 있다. 하지만 싸운다고 해서 그것이 살인을 했다는 증거가 될까? 사뮈엘의 녹취에 들어있는 둘의 싸움은 관계가 몰락해 가는 끔찍한 과정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정도인지는 의문이 든다.
산드라는 다니엘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된다'라고 말하지만, 다니엘이 있는 그대로 말한 것들은 다 산드라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아들 다니엘은 마지막 증언을 신청한다. 그리고 그 변론이 있을 때까지 엄마와 떨어져 있는 것을 선택한다.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이것은 다니엘이 영특하게도 엄마를 구하기 위해 한 행동 같다. 수사 초반 자신의 어설픈 둘러댐이 '경찰의 실험'으로 들통나고 엄마는 점점 살인범으로 몰렸다. 있는 증거 없는 증거 다 끌어모아 변론을 하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무언가 실험을 통해 주장을 확증받는 게 필요했다. 엄마가 가고 난 후 다니엘은 아스피린 10알을 스눕에게 먹이고, 스눕이 쓰러지자 토하게 만들어서 그 냄새와 스눕의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다며 울먹인다. 스눕이 그때도 똑같이 지금처럼 쓰러졌었는데, 아빠의 아스피린이 들어간 토사물을 먹었던 것 같다고.
사뮈엘이 토한 토사물에 아스피린이 10알 정도 있었다는 건 앞에서 볼 때 굉장히 흐릿한 기억 속에서 나온 몇 가지 이야기를 짜 맞춘 느낌이었다. 아스피린은 실제로 수십 알을 과다복용하면 인간에게도 치명적이다. 엄마가 가고 난 후 스눕에게 아스피린을 먹이는 실험을 한 것으로 보면, 다니엘은 처음부터 그날의 증언을 하려고 했다. 그럼 왜 엄마를 내보냈을까. 그날 사뮈엘이 정말로 아스피린을 먹고 토한 것인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런 심각한 일이 있었다면, 사뮈엘이 죽었을 때 바로 자살시도가 있던 사람이라는 게 생각나야 했다. 지금까지의 '사뮈엘의 자살시도' 증언이 조그만 실제 정황으로 엄마와 변호사가 말을 맞춰서 만들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감시자가 있기 때문에 엄마와 말을 맞출 수가 없다. 그러면 가짜 실험을 위해서 엄마가 주변에 없는 것이 더 낫다.
다니엘은 결국 실험으로 자신의 마지막 증언에 무게를 더했다. 아스피린을 먹고 아픈 스눕을 동물병원에 데리고 아빠와 갔다 오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자신은 자살이라고 생각한다고.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다. 사뮈엘이 자살까지 하려고 아스피린 수십 알을 먹고 토할 정도였다면, 그날 스눕보다도 아빠가 병원에 가서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굉장히 멀쩡하게 차를 운전하는 모습으로 회상씬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판결을 내리기 직전이고, 다니엘의 증언은 실험을 더해 논리보단 감성으로 참심법관들에게 전해졌다. 결국 산드라는 무죄가 된다.
다니엘은 성경에 나오는 이름인데, 특별한 지혜를 가지고 꿈을 해석하는 인물이다. 그 이름의 뜻은 '하느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이다.
관객
프랑스는 중요 형사사건에서 참심제를 하고 있다. 참심제란, 일반 시민이 단순한 의견을 내는 배심원이 아니라 형량 선고까지 내릴 수 있는 참심법관으로 임명되어 재판하는 제도다. 재판에 참심법관은 9명, 법관은 3명이 참여한다. 법률 전문가에게는 법적인 논리 등이 중요하지만, 참심제에서는 아무래도 일반 시민이 참심법관으로 참여하므로 감정이나 정황에 호소하는 것이 재판에 유리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이 재판은 치밀한 법적 공방보다는 점점 자극적인 내용으로 흘러간다. 검사는 산드라의 과거 소설들이 실제 그녀 주변에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하다며, 이와 비슷한 사건이 소설에 있었으니 그걸 그대로 실행하려 한다고 압박한다. 법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지켜보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데다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참심법관들도 혹할만한 내용이다. 재판을 참관하러 온 사람들은 사뮈엘의 죽음에 슬퍼하거나 산드라의 억울함에 안타까워하는 게 아니라, 마치 재미있는 리얼리티쇼나 미스터리 법정 수사극을 보는 듯 웃으며 관람한다. 이미 산드라의 재판은 프랑스의 구경거리다.
여기서 살인자가 되느냐 아니냐의 갈림길에 놓인 주인공들을 제외한 다른 시민들의 모습은, 범죄 콘텐츠를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닿아있다. 우리도 어느새, 이 영화를 보면서 산드라가 정말 사뮈엘을 죽였는지, 죽였다면 어떻게 죽였는지에 더 신경을 쓰며 그들의 아픔조차 즐기고 있지 않았던가.
다니엘은 마지막 증언에서 '어떻게'보다 '왜'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산드라가 살인자면 배드엔딩이고 사뮈엘이 자살이면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 반대도 아니다. 둘 다 부모사이의 관계가 몰락하면서 생긴 너무나 슬픈 결말인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옭아매긴 했어도, 만약 자살이라면 사뮈엘의 감정이 무너지게 된 것에 산드라의 책임도 있으니까.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 당사자들의 아픔이나 사건이 일어나게 된 큰 원인을 뒤로한 채 사고 자체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그 원인이 사회나 정치적인 문제라면 사건의 '왜'를 더욱 축소하고 은폐하고, '어떻게'만 말하려 하기도 한다. 만약 산드라의 변호인 쪽이 '사뮈엘은 사고사였다'라는 걸 가닥으로 잡고 주장했다면, 판결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참심법관인 일반시민이 볼 때 그런 행동은 자신의 책임을 완전히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가 아니라 왜. 이 말은 이 재판을 지켜보는 침심법관에게, 프랑스 시민들에게, 또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뱉는 따끔한 일갈이다.
이념
영화의 불어 원제인 <Anatomie d'une chute>는 중의적인 제목이다. 프랑스어 Chute는 영어 Fall에 해당하지만, Chute는 여성형 관사 une이 붙은 여성형 명사다. 즉 이 제목을 프랑스어로 들으면 여성인 산드라가 해부당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영어인 <Anatomy of a fall>에선 그 느낌이 없다. 게다가 한국어 제목인 <추락의 해부>까지 오면, Chute나 Fall이 가지는 중의적 뜻인 '몰락', '패배', '타락', '죄'등의 뉘앙스가 없어진다.
이처럼 언어가 주는 뉘앙스에 대해서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심지어 재판에서, 산드라의 변호사는 산드라에게 '진실을 전하고 싶을 때는 꼭 프랑스어로 이야기하라'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산드라는 프랑스어를 영어만큼 잘하지 못한다.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영어로 이야기하고 법관들은 통역 이어폰을 끼고 듣게 된다. 또 프랑스인인 사뮈엘과 독일인인 산드라는 서로의 언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하는데, 이것은 남녀 서로가 자신의 고유한 언어가 아닌 방식으로 서로 맞춰가며 말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언어에는 철학과 이념이 깃들어있다. 어느 한 언어로 말하는 것은 완벽하지 못하면 그 뉘앙스를 제대로 번역할 수가 없다.
언어와 소통의 어려움, 산드라와 다니엘의 관계나 재판의 과정은 가부장제와 페미니즘 간의 대립을 은유하고 있다. 마치 몰락한 가부장제를 페미니즘이 죽였다고 재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사뮈엘은 산드라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말한다. 시간, 꿈, 섹스까지도. 그는 산드라가 괴물 같다고까지 말한다. 또 산드라는 산드라 나름대로 억울하다. 산드라는 사뮈엘의 나라인 프랑스에 살기 때문에 내내 모국어인 독일어를 쓴 적도 없다. 다니엘이 시력을 잃어버린 사고는 사뮈엘의 잘못이 있다. 섹스를 거의 하려 하지 않으니 외도를 한 거라고 한다. 둘은 각자 나름대로 배려했지만 상처 입었고, 사회적으로 산드라는 점점 잘 나가고 사뮈엘은 스스로 몰락해 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이다. 산드라는 아들 다니엘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든 아빠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은 사뮈엘이 좋아서 자처한 일이었고, 소설을 포기하고 아이디어를 넘겨준 것도, 사뮈엘을 돌보겠다고 한 것도, 프랑스에 와서 산장에서 살게 된 것도 사뮈엘이 결정한 일이다. 사뮈엘은 누구의 탓도 아닌 스스로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누구보다 사뮈엘 자기 자신이 그것을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산드라에게 분노를 표출하지만, 그것은 산드라를 향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이기도 했다.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가부장제의 몰락에 대한 페미니즘의 재판처럼 보이지만, 또한 이것은 완벽한 미러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산드라와 사뮈엘은 통상적인 남녀역할이 완전히 바뀌어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면, 사뮈엘의 외침은 바로 여성들이 외치던 말이다. 여성들은 집안일에 치여, 자신이 원래 하고 싶던 꿈은 하지도 못한 채, 바람이나 피우는 남편 뒷바라지나 하고 살았다. 결국 이 영화는 가부장제를 깔아뭉개거나 페미니즘을 올려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비극을 이해하자고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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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의 해부>는,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들이 아니라 해부해야 볼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곳에 감춰져 있다고 말한다. 그곳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건의 이유들이 숨어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몰락하기 전에, 그 이유들을 조금이라도 바라볼 수 있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을까?
어떻게가 아니라 왜. 다니엘의 말이 자꾸만 귀에 맴돈다.
*개의 이름이 스눕이라고 하면, 사실 바로 떠오르는 이름은 미국 힙합의 전설 스눕독이다. 스눕독 역시 1집이 나올 당시 살인사건에 연루되었고, 살인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재판을 몇 년이나 한 끝에 무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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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죽던 날] 리뷰:주제가 쉽게 와닿지 않았던 영화, 다소 장황했고 지루했다.
#내가죽던날#김혜수#이정은
저는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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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4] (브런치작가/영화리뷰/결말x) 액션의 타격감을 업그레이드해 돌아온 시리즈-고질라vs콩
고질라 시리즈는 2편이 개봉되었었고, 킹콩 시리즈도 2편이 개봉되었죠.
이번에 개봉한 고질라vs.콩은 고질라 시리즈의 연속선 상에 있습니다.
킹콩의 앞선 두 편은 무시되거나 가볍게 처리되고 있죠.
그런데 이번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킹콩이에요.
고질라는 사람과 소통을 하긴 어려운 괴수인데 반해 킹콩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대화도 가능하죠.
그래서 좀 더 감정이입이 되는 쪽은 킹콩 쪽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영화에서는 메카 고질라가 등장하고 킹콩과 고질라가 대결을 벌여요.
이들이 싸울 때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지만 그것을 보는 관객들은 그 타격감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죠.
과거 시리즈와 비교할 때 서사는 역시 엉망이지만, 액션이나 CG는 더 좋아졌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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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드 헤어> 메인 예고편
1989년 LA, 음악 전문 케이블 방송국에서 일하는 애나는 스타 VJ가 되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볼품없는 곱슬 머리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다. 고민하는 그녀에게 특별한 미용실을 추천해 주는 동료, 애나는 그곳에서 찰랑이는 생머리로 다시 태어난다. 이후, 머리카락에 주문이라도 걸린 듯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하지만 애나는 곧 머리카락이 피를 갈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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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앵커> 티저 예고편
- 생방송 5분 전, 죽음을 예고한 의문의 제보전화? 사건 현장을 목격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완벽했던 앵커를 뒤흔든 충격적 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