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7-14 19:52:31
7월 2주차 <대사 한 줄, 영화 한 입>
<인터스텔라>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한 주의 시작을 여는
대사 한 줄🎞️, 영화 한 입🥠
안녕하세요, 씨네픽지기입니다 🐥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정말 유명한 대사죠. 이 작품을 보지 않은 분들도
이 대사만큼은 익숙하실 것 같아요.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2014)>입니다.
요즘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오디세이〉 소식을 들으며
한국에서는 외국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SF 장르가 크게 인기를 끌기 어려운 국내에서
거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
결국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우주를 관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데요, 수많은 명장면과 함께 좋은 대사들이 정말 많죠…
오늘 하루, 인터스텔라의 주인공들처럼 답을 찾을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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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할 것인가? 행동할 것인가!
1979년 12월, 서울엔 봄이 오지 않았다. 대신 2023년 극장가에 봄이 왔다. 14일 기준으로 <서울의 봄>은 750만 명을 넘었고, 천만 관객을 향해 진격 중이다. 관객 동원 수에 비례하듯 영화를 통해 12·12 사태와 관련 인물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극 중 수경사령관 이태신 수경 작전참모 강동찬, 헌병감 김준엽, 특전사 오진호 소령 등 전두광이 이끄는 하나회 세력과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는 상황. 군인으로서 해야 할 본분을 다한 이들의 모습은 인생을 살면서 한 번은 마주치는 ‘존재’ 또는 ‘행동’하는 삶에 대한 선택과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 존재할 것인가? 행동할 것인가!
영화 <서울의 봄> 스틸 / 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현대 전쟁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전략가이자 실천가 중 한 사람인 존 보이드. F-16의 아버지, ‘걸프전 승리의 설계자’로 불리는 등 전투기 조종사로 군사 전력가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직접 행동하는 삶을 실천하고, 참된 군인으로서의 길을 제자들에게 전파했다. 그는 수많은 젊은 장교들에게 앞으로 두 갈래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쪽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출세의 길이 열릴 수 있지만, 세상과 타협해야 하고, 친구들에게 등을 돌려야 한다. 다른 한쪽은 출세하지도, 좋은 임무를 맡지도 못할 수 있지만, 세상과의 타협, 친구와 자신을 배반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 / 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존 보이드는 중요한 사람이 될 것인가(또는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중요한 일을 할 것인가(또는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과 그 중요성을 설파한 것이다. 그가 이렇게 교육한 것은 군대라는 사회 내에서 계급에 따른 일이나 위치, 그에 수반된 권력이 결국 자신의 성취로 착각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 그는 의무, 명예, 조국 등 군인이라면 꼭 가져야 하는 가치가 한 번의 결정으로 자만, 권력, 욕심으로 더럽혀진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존 보이드는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충실히 해낸 인물이지만, 형식에 갇힌 관료주의와 싸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의 마지막 계급은 대령이었다. 그리고 남겨진 건 아파트 한 채와 연금뿐이었다고 한다.
| 존재하는 전두광, 행동하는 이태신
영화 <서울의 봄> 스틸 / 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은 존 보이드의 이 개념을 영화로 옮겨 놓는 듯 두 인물을 대립시킨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전두광(황정민)과 중요한 일을 하는 이태신(정우성)이 바로 그들이다. 1979년 10·26 사태가 벌어진 뒤 이 수사를 합동수사본부장 전두광 보안사령관이 책임진다. 그리고 그는 권력의 맛을 알게 된다. 당시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성민)은 이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10·26 사건 종결 후, 전두광, 노태건(박해준) 등 주요 요직을 맡은 인물을 타지역으로 내려보내려 한다. 이를 알게 된 이들은 권력을 오랫동안 장악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기에 이른다.
전두광은 물론, 하나회 멤버들은 이 모든 일이 다 조국을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행태를 보면 권력을 갖고 싶어 안달이 난 이들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쿠데타 진행 과정에서 브레이크가 걸리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전두광을 비난하다가도 어떻게든 해결되면 칭찬모드로 변경하는 이들은 권력 앞에 놓인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어찌 보면 전두광은 이들의 습성을 미리 인지하고 좌지우지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도 똑같은 인물이었으니까.
영화 <서울의 봄> 스틸 / 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그의 반대에 서서 서울을 지키는 이태신은 자리가 아닌 일에 몸을 던지는 인물이다. 그 일은 조국과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우러난다. 정상호가 전두광을 견제하기 위해 이태신을 수도경비사령관에 앉힌 것도 그 사명감 때문이다. 곁눈질하지 않고 자신이 택한 신념의 길을 오롯이 가는 그에게 권력보다 더 중요한 건 군인이 해야 할 일이다.
두 인물의 가장 큰 차이는 ‘목적’에 있다. 전두광은 권력과 존재라는 목적을 두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일을 택한다. 반면, 이태신은 명예로운 참된 군인으로서 일하고 행동하는 일을 목적으로 둔다. 일을 행함에 있어 자신은 없다. 나라와 군인만 있을 뿐이다.
| 전두광의 영화가 아니라는 미덕
영화 <서울의 봄> 스틸 / 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아수라> 이후 7년 만에 <서울의 봄>을 들고 온 김성수 감독은 관객을 1979년 12월 12일로 데려가 진압군과 반란군의 대결을 보여준다. 역사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고 상상력을 가미해 사건을 재구성한 감독은 앞서 소개한 대결 구도를 기반으로 최대한 간결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펼쳐낸다. 중요한 건 이 작품이 전두광의 영화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총소리를 들었던 그 겨울밤으로부터 44년이 지났다.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날의 사건이 한국 현대사의 운명적인 전환점이 됐는지, 가슴 속에 있던 오래된 숙제를 영화로 보여주려고 했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이 운명적인 전환점이 한 개인의 야망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하이에나처럼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고 싶은 하나회 무리들의 욕심이 서울의 봄을 빼앗은 거라고 말한다. 권력을 미끼 삼아 타협하고 몸집을 키운 한 집단의 야욕은 군인으로서의 신념을 가진 지키는 자들은 물론, 그토록 민주주의의 봄을 기다려온 국민들의 마음마저 집어삼킨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 / 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중요한 일을 하기 보다 중요한 사람이 되려는 이들이 많은 이때 <서울의 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삶의 목적을 어디에 뒀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뒤바뀔 수 있다는 걸 이 영화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존재하는 삶, 행동하는 삶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설 것이다. 그 선택에 의해 누구나 전두광이, 이태신이 될 수 있다. 선택의 순간, <서울의 봄>을 기억해 보면 어떨까!
참고문헌: 라이언 홀리데이, [에고라는 적], 흐름출판
로버트 코람, [보이드], 플래닛 미디어
평점: 3.5 / 5.0
한줄평: 권력에 취한 이들의 하룻밤에 봄날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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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볼만한 로맨스도 있다
혹시 아시는 분 있으실까 모르겠는데, 나는 로맨스 장르를 거의 보지 않는다. 내용이 뻔하기도 하고, 결말도 뻔하기도 하고, 대사가 오글거리기도 하고. 하지만 가끔은 좋은 대사가 있는 드라마라면 보기도 한다. '나의 해방일지'도 로맨스가 있는 드라마이기도 했으니까. 아, 로맨스를 안본다기 보다는 로코를 안본다고 하면 더 정확할까.
그런데 넷플릭스를 뒤지다가, 그 날따라 새로운 것을 좆고 싶은 생각보다 좀 더 예전 것들 중 안본 걸 캐내보고 싶었는데, 이 드라마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휴일에 잠잘 때 asmr같이 틀어놓을 작정이었는데, 웬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물론, 오글거리는 대사가 아주 없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극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차분한 결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1. 차분하지만 지루하진 않은
한 때 일본 영화를 많이 보던 때가 있었다. 차분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영화들도 매력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고나서부터였다. 그게 한 6-7년 전인데, 우리나라에도 이제 그런 컨텐츠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 괜히 좋았다. 은섭이 해원을 바라보는 감정도 따뜻해서 좋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놓지 않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들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흡사해서 그런 드라마를 굳이 해외에서 찾지 않아도 이제 꽤나 찾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도시에서 상처받은 해원도, 그 해원을 키워낸 그녀의 이모도, 엄마도 은섭도 모든 사람들이 각자만의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멋졌다. 그 비전들이 소소하더라도 그 소소함을 가진 그들이 너무 빛나 보여서 성공하는 법을 강의하는 사람들보다 더 눈길이 가는 등장인물들이었다.
2. 요란하지 않은 인간관계의 진득함
내가 로맨스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아주 안 보진 않는다. 나만의 로맨스를 보는 기준이 있다면, 무조건 담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대사든 분위기든. 이 드라마가 딱 그렇다. 은섭과 해원의 로맨스를 이뤄내기 위해 대단한 우연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둘의 관계를 보다 보면 그저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사랑에 빠져있는 듯한 모습인 것 같았다. 물론 은섭의 짝사랑이 먼저였고, 오래 지속되었던 것도 있지만 은섭이 그렇게 오래 좋아했으면서도 해원에게 흔한 플러팅 하나 하지 않는 그 지점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내 취향이 이상한 건지 그렇게 소심해 보이더라도 조심히 다가와 주는 사람이 참 좋다. 사람이 요란하지 않고 진중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둘 사이의 관계 말고도 모든 인간 관계들이 적당히 따뜻해서 좋았다. 드라마 상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상황이지만 딱 적당한 수준의 관심과 챙김이 보여서 훈훈해 보였던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서 선을 넘는 행보를 보이는 인물은 보영밖에 없다. 그 외에는 모든 분위기가 요란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적당히 따뜻하고 진득하다. 튀는 성격의 사람들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이야기를 보나 싶겠지만 각자의 삶을 사부작사부작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나도 내 삶을 다시 내 페이스대로 살고 싶어진다.
3.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명여
이 드라마의 문학적인 분위기를 캐리하는 캐릭터는 해원의 이모, 명여다. 은섭도 독서 모임을 주최하기는 하지만 가끔 도라이같은 소리도 문학적으로 하고 있는 명여를 보고 있자면 웃기기만 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청춘들의 로맨스는 관객들을 끌어당기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고, 명여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이야기 중추를 담당한다. 명여는 무관심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인물이고, 재능이 있지만 자기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세뇌하면서 사는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해원이 느꼈을 엄마의 빈자리를 명여가 채운 듯한 느낌이 든다. 더 이야기를 하면 드라마를 안 보신 분들에겐 스포가 될 것 같으니 이만 줄인다. 그저 명여 같은 친구, 지인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도시에서 상처 받고온 해원은 고향에서 은섭을 통해, 보영과의 갈등에 마주하는 경험을 통해, 하다못해 자신에게 무심하다 못해 무신경했던 이모와 엄마를 마주하며 자신의 상처를 직면한다. 그렇게 해원은 자신의 상처를 다독이며,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이런 지점들이 '리틀 포레스트' 영화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고향이라는 곳의 중요성은 언제든 내가 재충전하러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리틀 포레스트나 이 드라마 모두 도시에서 상처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나에게도 그런 곳이 있다. 나의 고향, 하지만 나는 내 고향에 가면 두문불출한다. 시골이라는 곳이 주는 답답함과 지나친 관심이 가끔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두 작품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시골이라는 장소가 주는 환상을 그렇게라라도 풀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총평
분명히 이 드라마는 로맨스인데, 난 참 쓸데없는 사고의 확장만 하고 말았다. 로맨스에 감동 받는 것보다, 배우들의 얼굴에 감탄을 표하는 것보다 그저 잔잔함에 꽂혀 삼천포로 빠진 것이다. 이걸 좋다고 해줘야 하나, 헛소리 작렬이라고 해줘야 하나. 나도 잘 모르겠다. 이상 의식의 흐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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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 있다면 지르자, 다만 현실은 잊지 말고
1957년 런던, 전쟁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살고 있는 ‘해리스’는 청소부로 일하던 가정집 부인의 값비싼 디올 드레스를 발견하고 아름다움에 빠진다. 이후 오랜 시간 기다려온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게 된 ‘해리스’는 이제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벌어온 돈을 모아 막연히 꿈만 꾸었던 디올 드레스를 사기 위해 파리 여행을 결심한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도 잠시, 파리의 디올 매장에서 무시를 당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1. 흔한 듯 흔하지 않은 판타지
처음엔 이 영화가 '에밀리, 파리에 가다'와 뭐가 다른 걸까 생각했었다. 파리라는 도시가 가진 상징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흔하디흔한 영화구나 라고 생각했다. 뭐, 이를테면 미드나잇 인 파리 같은 영화였달까.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나이가 들대로 든 중년과 노년 그 어딘가에 있는 여성이라는 점이 차별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여성이 젊은시절 누리지 못한 외적 허영을 충족하는 과정을 응원하게 될 뿐더러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연륜의 짬바가 참 따뜻하다고 느껴진다. 역시 인간은 해보고 싶은 걸 해보고 살아야 이후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걸 해리스 부인을 보면 느낄 수 있다. 최근 들은 어른의 말씀 중 좋은 말이 "젊었을 때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는 게 늦바람 불어 주변인에게 민폐끼치는 것보단 낫다."였는데 해리스 부인을 보면서 남편이 죽고 나서야 자아를 찾아나선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에 무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그 모습이 별거아닌 거 같아도 멋있어 보였다.
2. 겉모습과 속사정은 누구나 다르다
다분히 영화적 설정으로 배치된 러브라인이 보이지만 그 러브라인을 이어주기 위한 미시즈 해리스의 오지랖도 적당히 따뜻해서 좋았다. 패션계에 종사하는 두 남녀는 누구보다 철학을 사랑하는 반전이 눈길을 끈다. 그들은 허영과 사치의 상징과도 같은 패션계에 종사하면서도 직업과 당신의 삶을 동일시하지 않고 분리함으로써 인생의 동력을 잃지 않는 점이 그들의 멋있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설정이 참 새로웠던 것이, 겉모습이란 참 얄팍한 것이라서 해리스 부인같은 청소부도 디올 드레스를 살 수 있다는 생각들을 못하고, 모델이 철학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들을 잘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외모로 평가하는 사람일수록 당신의 얄팍함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다양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한다는 점만으로도 '에밀리 파리에 가다'와는 달리 파리에 대한 판타지 충족만 하지 않는 나름 알맹이가 있는 영화라는 인상을 준다.
3. 판타지를 쫓되, 현실도 잊지 말 것
세상엔 당신이 현실은 무시한 채 갖지 못한 것에만 몰두하며 남에 대한 부러움으로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리스 부인도 당신이 누리지 못한 화려함을 쫓아 파리에 오지만 곧 이 세계에서 당신은 청소부라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깨닫고 잠시 낙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갖지 못한 화려함의 환상에 젖어 허우적대지만은 않고 다시 노동자로서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어른으로서 파업을 주도하는(약간은 오지랖이지만) 모습은 그녀가 환상에 젖어 당신의 위치를 버리는 무모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꿈을 이루려는 행위는 고귀하지만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지르는 행위는 무모하고 이기적일 수 있다. 특히 결혼한 사람이라면 더하다. 현실의 상황을 유념하고 지를 것. 내 현실을 잊지 않은 상태에서 약간의 무모함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성취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꿈을 이룬다는 명분 하에 현실을 때려치우면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리스 부인도 파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청소부로 돌아오지만 그녀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있다. 부당함에 조금 더 소리칠 수 있게 되었고, 조금 더 자신감을 찾았기 때문인데, 이런 그녀의 모습을 통해 판타지에 젖어 현실을 대단히 뒤바꾸지 않아도 내가 조금만 바뀌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내가 판타지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판타지를 이룰 기회는 금방 사그라든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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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들릴 음악의 세계로.
TAR는 주인공의 성인 타르(TAR)이자 쥐(RAT)와 예술(ART)의 애너그램이며 이 영화의 정체성이다. 어떤 부분에서 이 알파벳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 점을 주목하며 보면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다큐처럼 느껴지는 영화의 구성은 가상의 인물을 통해 실제인 것처럼 한 사람의 성공과 몰락을 생생하게 담아내어 그 강렬한 의미를 더한다. 주변 인물의 감정이 입체적이지 않아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오로지 '리디아 타르'의 심리상태를 영화의 화면에 드러내 밀도 깊은 긴장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158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을 가득 채우는 연기가 강렬하다. 열정을 넘어선 광기를 그린 영화 '타르'는 2월 22일 개봉했다.
상당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지휘자 리디아 타르. 그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터라 강박증과 신경 쇠약을 달고 산다. 그만큼 주변에 끼치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가 되어 평생 꿈꿔왔던 과업을 행한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에 있게 되며 겪게 되는 심리적인 문제는 그녀를 파괴할 만큼 큰 파도를 밀고 들어와 내부와 외부를 장악한다. 마에스트로라는 껍데기 속에 가득 메워진 알맹이의 정체를 밝힐 음악의 시작을 여는 하나의 손짓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차별이 만연한 클래식 음악계에서 성공한 타르(TAR)는 편견에서 살아남아 그 자체의 실력을 인정받는다. (ART)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떠한 인식보다는 의무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이 그녀를 뒤덮는다. (R 전부 바뀌지 않지만 조금씩 바뀌는 세상 속에 안주하며 자아도취적인 폭력성을 주변에 내뿜는다. 욕망으로 점철된 가치관과 신념은 주변을 상처 입힌다. 예술로 포장했던 모순이 자신에게 불어닥치는 순간을 예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말러 교향곡 5번의 비극처럼 급격한 상황 변화로 인해 왜곡되는 현실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정말 제목처럼 타오르기도 하며 예술적이기도 하며 쥐새끼 같기도 한 인간 군상이 모두 드러난다.
자기도취적인 동시에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폭력성은 시간이 지나며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타르의 현실과 그녀가 비판했던 캔슬컬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놓여있었다. 얄팍한 정의감을 드러내는 현대 사회의 모순과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지점에 놓인 사람이라도 언제든지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예술가의 삶과 예술은 나누어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부합하는 지점에 도달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에 대한 대답은 오로지 관객에게 달렸다.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만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사람으로서가 아닌 음악으로 마주할 때, 느끼는 위대함은 어쩌면 불편한 것 투성이의 것들이다. 지나칠 수 없는 메시지는 저마다의 해석이 담겨있다고 해도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 묘하면서도 모순적인 이 딜레마는 영영 이해하지 못할 말들처럼 보이지만 그 한정적인 한계는 인생의 단면에 불가하다. 어떠한 선입견에 갇혀 그 안의 것을 보지 못하면 그 본질 또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모순과 딜레마를 넘어서 그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녀의 마지막 길로가 밝을지, 어둠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연주가 시작된 순간부터 목적지가 정해진 여행은 시작된다. 그렇게 시간을 다루고 있는 이들은 '사랑'을 종점으로 4분을 연주한다. 감정에 대한 해석 순환 속에서도 매력을 느끼고 그 지점에 도달하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계속해서 스며드는 따뜻함은 지휘와 맞물린다. 무엇은 지휘하는가에서 시작하는 음악의 해석은 열정적인 모습을 영혼에 담아낸다. 그렇게 편견을 소거한 음악은 위대함 그 자체이다. 미치도록 사랑하는 음악의 광기는 자신에 의해 파괴되지만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음악 자체의 위대함으로 표현한다. 감정, 음악, 그 이상의 것들은 타오르는 열정만큼이나 타르에게 전부다. 설령 단조로운 음표라 할지라도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연주하듯 펼쳐지는 영화는 이름처럼 악보 속에 남아 타올라 꺼진다. 설령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음악만큼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그녀의 곁을 지킨다. 새로운 시작이라 일컫는 우주선도 몰락이라고 할 수 있다면. 차별이 만연한 클래식 음악계의 벽을 허문 최초의 여성 지휘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는 소식에 상당한 기대를 안고 영화를 보았다. 얼마나 진취적이고 단단한 사람의 이야기일까?라는 생각으로 봤지만 그 상상을 무참히 깨버리는 소시오패스 범죄자의 몰락을 담고 있어 충격적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어려움 속에서 '최초'의 타이틀을 얻은 만큼 불합리한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편견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지휘가라는 일은 개인의 노력에 의한 성취이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야말로 영화처럼 은연중에 기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서 다뤄왔던 '연대', '희망'과 같은 일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욕망이 그릇된 방향으로 흐를 때, 권력형 성범죄는 성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또한 영화 포스터 자체도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할 수 없는 표현을 통해 편견을 소거하여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편견'에 대한 정면돌파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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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을 수 없는 운명일까
이 글은 넷플릭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구글 Chan's Note/
한때 넷플릭스와 후발주자였던 왓챠를 죽어라 비교해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같은, 혹은 비슷한 돈을 내고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 OTT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방법이 공식처럼 나돌던 시절도 있었죠. 각각의 서비스가 가진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 좋다.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넷플릭스가 가진 오리지널 시리즈의 힘 덕분에 아주 약간 더 넷플릭스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긴 합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날 때마다 저는 넷플릭스에서 가장 먼저 오리지널 시리즈를 훑어보곤 합니다. 위시 리스트는 늘어만 가고 지워갈 수 없음이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그 위시 리스트를 보면 휴가를 받았을 때 심심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오늘처럼 찰나의 시간이 날 때도 그 작품들 중 하나를 택하면 성공할 확률도 많고요.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보는 내내 마치 불교의 윤회 사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돌고 도는 같은 운명의 굴레에 갇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죠. 그 어떤 주제 의식도 없어 보일 수 있을 만큼 처음엔 이게 뭐야. 싶지만. 다 보고 나니 명작이었구나.를 깨달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기분으로 리스트 중 하나를 지워낼 수 있어서 기분 좋은 토요일입니다.
주인공이 없어 보이는데 다 주인공이네
적절한 균형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진짜 이 캐스팅 실화냐.
이 영화에는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처음에 캐스팅을 흘깃 보고는 와... 피 튀기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경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영화에 대한 내용을 상상했을 땐, 미친 연기력의 향연 같은 영화일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합니다. 마을 자체에서 반복되는 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그리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알 수 없는 힘에 등 떠밀려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운명을 살아야 하는 부속품처럼 느껴집니다.
바꿔 말하면 인물들은 이 영화 안에서 큰 조명을 받지 못합니다. 이 쟁쟁한 스타들 중 누구 하나 톡 튀게 하이라이트를 받는 일은 없다는 것이죠. 두드러진 주인공이 없어 보이는데, 다 주인공인 셈인 영화랄까요.
이야기는 정말 큰 틀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 인물들을 가지고 뜨개질을 해 갑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인물을 엮어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표현일 것 같네요.
뜨개질을 해 가는 속도 역시 정말 일품입니다. 이게 이렇게 연결된다고?라는 생각이 적절한 타이밍에 들 수 있게끔 너무 느슨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빠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속도대로 따라만 가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새 이 영화는 우리에게 끝매듭을 마무리하고 있는 시간으로 데려갑니다.
얼굴만 잘 생긴 줄 알았더니. 이것들이.
연기도 잘하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진짜.. 나쁜 역할도 이렇게 잘 어울리는구나.
우리의 마음속에는 덕질을 하게 만드는 많은 배우들이 들어차 있을 겁니다. 그들은 신체적인 뛰어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죠. 소위 말하는 것처럼 키가 크고 잘 생긴 경우를 여기서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보면 스타들의 "미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배우들의 경우 자신의 이미지가 잘 생겼다.라는 것으로 국한되어버리면. 그걸 오히려 깨기가 정말 힘들다고 합니다. 비슷한 역할만 들어오거나. 혹은 자신의 외모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오히려 힘을 더 많이 써야 된다고 하죠. (참고 1)
그랬기에 저 역시 엘리오가 더 킹 헨리 5세에서 연기자가 되었을 때 기뻐했습니다. 그의 포효 안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서겠다는 열망이 담겨있는 듯했죠. 그것을 지켜보며 저 또한 희열을 느꼈던 이유 역시 또 다른 연기자 탄생의 순간에 내가 함께 했다.라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일 테니까요.
이 영화에서는 거의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서로 자기주장을 하느라 바쁩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대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대표적인 영국 배우들은 자신의 악센트를 너무도 감쪽같이 버렸고. 세바스찬 스텐은 처음엔 못 알아볼 정도로 살을 찌운 채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어디서 봤는데 봤는데 하다가 출연 배우 리스트를 보고 그제서야 알아볼 정도로 말입니다.
자신들의 연기 리즈를 갱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 노력이 빛을 뿜다 못해 섬광처럼 쏟아져내리는 그 자리에서 저는 그들의 진정성에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과 악은 과연 무엇인가.
과연 답이 있을까?
사진 출처:다음 영화/ 빌 스카스가드조차 여기서 이런 역할이라니.
전설의 영화 타짜에서. (1편임. 2편도 3편도 아니고 1편임) 평경장은 고니에게 세상이 아름답다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고니는 마치 녹음한 것처럼 그래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평경장은 그런 세상에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며 면박을 주죠. (참고 2)
우리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쁜"것과 "착한"것이 부딪치고, 끝에는 선한 것이 이긴다.를 원하죠. 물론 저 역시도 만약 어벤저스 마지막에 벌크업한 보라돌이 농사꾼이 이겼다면 루소 형제 나오라고 소리쳤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나쁘다. 혹은 착하다.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단지 이해한다.는 말 외에는요. 그나마 이 뜨개질에서 가장 굵고 독특한 색을 가진 실에 가까운 톰 홀랜드 역시도 그러합니다. 복수 혹은 죽어 마땅한 놈이라는 이유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데. 속이 마냥 시원하지만은 않더군요. 분명 그는 감옥에서 생의 일부분을 보낼 것이고. 그 일부분 역시 순탄치만은 않을 테니까요. 이 복잡한 우리의 마음을, 마지막 부분의 내레이션이 대변한다고나 할까요.
그만 말해. 이제.
토요일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보면서 최근에 썼던 다크 히어로 관련한 글이 다시 한번 떠올랐습니다. 아주 근소하게나마 시대를 앞서간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고. 선과 악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 수 있었죠. 소비하는 책이나 영화마다 요새 제게 많은 생각을 안겨줘서 감사함과 동시에 여태 대체 어떤 우물 안에서 살았던 것일까.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러닝 타임이 두 시간이 훌쩍 넘지만. 정말 시간 순삭 하게 만드는 영화이니. 꼭 한 보셨으면 합니다.!!
참고 1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랬다고 함. 연기를 안 봐주고 자꾸 얼굴만 봐서 교정기를 끼고 연기했다고 하는데. 아니 그래봐야 교정기 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잖아.
참고 2
진짜.. 거짓말 아니라 타짜 대사 거의 다 외움.
[ 이 글의 TMI]
1.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타이밍이 왔다.
2. 이제 왜 주중에 휴일 없죠?ㅠ 추석까지 존버인가ㅠ
3. 선풍기를 꺼내야 할까.
4. 과일 먹고 싶다. (요새 과일 끊음)
5. 나중에 잠시 회사 가야 하는데. 너무 가기 싫다.
6. 요새 무가당 두유 먹고 있는데(당류 1%, 진짜 그냥 콩물) 그거 먹고 2주일 만에 식욕을 잃음.
7. 그러나 그러기엔 너는 아직도 너무 많이 먹고 있지.
함께 읽으면 좋을까?
https://blog.naver.com/virgonmalta/222244860880
엘리오, 헨리 5세로 왕위에 스스로 앉다;넷플릭스 더 킹 헨리 5세 리뷰
#악마는사라지지않는다 #로버트패틴슨 #세바스찬스탠 #톰홀랜드 #빌스카스가드 #넷플릭스 #넷플릭스추천
* 본 콘텐츠는 블로거 Rigo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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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점입가경에 흠집 내기
감독] 프리스비 코나누르Prithvi KONANUR
출연]Sherlyn BHOSALE, Neeraj MATTHEW, Rekha KUDLIGI, Bhavani PRAKASH, Ravi HEBBALLI, Nagendra SHAA, Sudha BELAWADI
프로그램 노트] 디파와 하리는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컬리지의 학생들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디파와 하리가 방과 후 빈 교실에서 장난삼아 찍은 비디오가 포르노 사이트에 유출되자 학교에서는 이들을 징계하고자 위원회를 개최한다. 그러나 위원회는 브라만 계급의 하리와 불가촉천민 계급의 디파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않고, 인권운동가인 변호사 제시가 개입하면서 사건은 또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열일곱>은 <핑키를 찾습니다>(2020)로 부산을 비롯한 유수 영화제에서 호평받았던 프리스비 코나누르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프리스비 감독은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작은 소동이 점차 사회적, 계급적, 젠더적으로 맥락화 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쌓아간다. 그 과정이 매우 현실적이어서 순간순간, 숨이 멎는다. (박선영)* * *
<열일곱>은 인도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카스트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언급될 만큼 철저하게 '인도'라는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그러나 한국 관객들은 큰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자, 서로 사랑하는 디파와 하리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둘은 12학년이다. 본격적인 대학 입시를 앞둔 나이이자, 10학년을 마치는 졸업 시험으로 이미 수험생 시절을 한 차례 겪어본 나이. 더 이상 아동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른도 아닌 나이. 그러다 보니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기는 너무 쉬운 나이.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사건을 통해 이 사각지대를 조명한다. 십대 청소년 둘의 행동 하나가 어디까지 큰 일로 번질 수 있는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폭탄 돌리기 같은 사건
사랑을 나누려고 들어간 빈 교실에서, 두 사람은 핸드폰을 주고받으며 영상을 찍는다. 서로의 모습을 담을 때까지만 해도 둘 다 별생각이 없었고, 장난치듯이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러나 별안간 다음 장면에서 두 사람은 교장실로 불려간다. 두 사람의 영상이 인터넷에 쫙 퍼졌고, 포르노 사이트에도 올라갔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두 아이의 부모님을 부르고, 위원회를 소집하여 두 아이에게 내릴 처분을 고민한다.
이 과정에서 여학생이자 카스트가 낮은(소위 '불가촉천민'이라 알려진,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이다.) 디파에게는 이전의 행실을 근거로 더 무거운 징계가 내려지고, 브라만 계급이자 남학생인 하리는 큰 징계 없이 넘어가게 된다. 디파 가족의 지인이자 인권변호사인 제시까지 개입하여 이에 이의를 제기하고, 갈등은 갈수록 고조되어 간다.
디파와 하리로서도 미래가 걸린 일이니만큼 쉽게 징계를 받아들일 수 없고, 학교 측도 이사회와 학부모들의 압박을 받고 있다. 기묘한 역학 관계 안에서 폭탄 돌리기 느낌으로 급박하게 굴러가는 동안, 이 일은 어느새 모두에게 머리 아픈 사건이 되어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지치고, 지켜보는 관객 입장에서도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싶다.
촘촘한 차별의 방향
차별은 촘촘하다. 학교 측에서는 '디파가 보인 과거의 행실'을 문제로 삼았다고 하지만, '과거의 행실'에 대한 해석부터가 물음표를 남긴다. 차별은, 특히 이렇게 오랫동안 사회 전체에 내재화된 차별은 무척이나 촘촘하고 섬세하다. 미세먼지처럼 작고 유해하게, 아주 작은 그물코까지도 다 뚫고 들어간다. 차별이 사람을 내모는 자리는 얼핏 '피해자의 자리'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그 증거다. 차별은 이따금 사람을 '가해자의 자리'처럼 보이는 곳으로도 내몬다. 온건한 반대를 할 수 없는 자리에 놓인 자들이 거칠게 저항할 때 그 행위를 '가해'라고 부르기는 너무나 쉽다.
게다가 벌써 디파와 가족을 대하는 태도와 하리의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영화에서 짚고 넘어가는 말투와 방식은 물론이고, 교감 선생님이 앉아있는 자리부터가 다르다. 계급은 결국 누가 어떤 의자에 앉느냐의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의자가 '없는' 계급을 위해 대학 입학, 정계 진출 등에 할당제를 부여하는 등,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카스트 문제에 대한 노력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휘두르는 순간 '역차별'이라는 또 다른 소리를 듣게 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은 "카스트 시스템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다이내믹으로만 존재한다"고 했다. 법적으로 카스트제가 폐지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다이내믹 안에서 차별은 일방향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이 시스템 안에서 약자가 아닐 것이다. 특정 상황 속에서 역차별 같다고 느끼는 개인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소위 '역차별'의 혜택을 받는 계층에게 화살을 돌릴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방향성을 고민해야 한다. 사회 전체에서 문제의 흐름이 어디로 가는지 살피면 차별에는 분명한 방향이 보인다. 이 영화는 그 지점을 너무나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정말 '보호'가 맞나요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고충을 앓고 있는 사회에 사는 입장에서, 디파와 하리가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라고 하더라도 공공장소인 점, 촬영물은 복제와 유포가 쉽다는 점에서 촬영은 분명 두 사람의 안위에 너무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들에게 안전한 성교육을 해주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실수인 동시에 당사자들에게 너무 큰 상처이기도 한 사건인데 아무도 두 사람의 상처를 돌보지 않는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두 사람의 손을 떠난 사건은 어느새 사회적 갈등이 되었다. 가깝게는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 흩어지고 모이던 시선, 비릿한 웃음과 경멸의 눈초리부터, 멀게는 어른들 사이의 묵직한 싸움과 각종 법률 용어로까지 번져버린 상황까지.
사건이 진행될수록 아이들은 사라지고 어른들의 욕망과 입장만 남는다. 아동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법과 제도들은 기묘하게도 아이들의 머리 위에서만 휘날리고 있을 뿐, 정작 아이들을 지켜주지는 못한다. 어른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그때그때 말을 바꾸고, 거짓말과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헤쳐 나간다. 진심 없이 성글게 적용하는 제도, 입장 없는 입장이 얼마나 유해한지를 볼 수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이 영화에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이 보인다. 아이들이다. 오직 아이들만이, 자기 안위만을 챙기기 급급한 어른들이 거짓과 위선으로 쌓아 올린 점입가경에 흠집을 낸다. 아이들이 풍선처럼 잔뜩 부풀려진 그 점입가경에 흠집을 낸 도구는, 친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꺼내든 진실 한 조각이다. 상대를 이겨먹으려는 의지가 아니라 이 일을 해결할 의지, 그뿐이다.
감독은 현재 동시대 인도 도시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담았으며, 각본을 쓰는 과정을 변호사와 함께했다고 한다. 이 세심한 노력 덕분에 영화는 현미경처럼 사회 일면을 선명하게 비추는데, 어쩐지 그 현미경 아래에는 인도 아이들만 있지 않다. 디지털 성범죄와 아동보호 문제를 아직 풀지 못한 숙제로 품고 있는 우리 사회도 보인다. 이 점입가경에 흠집을 내려는 이들에게, 참담한 현실과 함께 한 조각 희망까지 보여주는 영화였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열일곱> 상영시간표]
10월 07일 20:00 영화의 전당 소극장(GV)10월 08일 18: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GV)10월 12일 13:30 CGV센텀시티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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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퍼스트 킬> 공식 예고편
누구나 처음은 잊을 수 없는 법. 첫 희생자를 찾아야 할 때가 된 십 대 뱀파이어 줄리엣. 새로 전학 온 칼리오페를 노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칼리오페는 뱀파이어 사냥꾼. 이제 둘은 서로가 죽이기는 쉽지 않고, 빠져들기엔 너무나 쉬운 존재란 걸 알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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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천월화선: 크로스파이어> 공식 예고편
[2021년 6월 4일, 왓챠 공개]
2008년 크로스파이어 e스포츠 선수 샤오펑과 2019년 선수 루샤오베이는 게임 맵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만난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들은 크로스파이어를 통해 울고 웃으며 사랑과 우정을 지켜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