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3-19 22:02:03
뿌리 없는 존재들의 콘크리트
영화 <브루탈리스트> 리뷰
SYNOPSIS.
전쟁의 상흔을 뒤로하고 미국에 정착한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미국 이민자의 냉혹한 현실 속에 전쟁의 트라우마를 견뎌내던 어느 날. ‘라즐로’의 천재성을 알아본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이 기념비적인 건축물 설계를 제안한다. 하지만, 시대와 공간, 빛의 경계를 넘어 대담하고 혁신적인 그의 건축 설계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후원자 해리슨의 감시와 압박, 주변의 비난이 거세질수록 오히려 더 자신의 설계에 집착하던 ‘라즐로’. 혁신적인 브루탈리즘 건축에 자신을 투영하던 ‘라즐로’는 결국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는데...
발 디딜 곳 없는, 소속이 불분명한 삶의 연대기 트라우마가 예술로 승화된다!
POINT.
✔️ 영화의 배경이 된 1950년대 영화처럼 비스타비전 화면비를 자랑하고, 오프닝과 엔딩에서 평소와 다른 결로 흐르는 크레디트를 볼 수 있습니다.
✔️ 서막-1막-인터미션-2막-에필로그의 구성. 215분의 긴 러닝타임이지만 인터미션까지 찬찬히 바라보게 합니다.
✔️ 거기에는 이 영화의 걸출한 음악이 일조합니다.
✔️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남우주연상, 촬영상, 음악상. 납득이 가는 수상입니다. 비록 발음이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AI의 도움을 받았다는 논란이 일었지만 그럼에도 말이에요.
✔️ 영화 바깥 작금의 미국과 유대인들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바라보면 더욱 공허하게 아름다운 영화로 느껴집니다.

소설 <GV 빌런 고태경>에는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브래디 코베 감독이 8년에 걸쳐 공들여 만든, 기적이 아닐 리 없는 이 영화를 보며 건축업자의 딸은 생각했다. "모든 (미)완성된 건축도 기적이구나..." 라즐로 토스 같은 예술적인 건축가는 아니지만, (어쩌면 그래서 가능했던) 그간 그가 지어올린 모든 건물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절로 갖게 됐다. 영화도 건축도, 누군가의 설계도에서 시작하지만 그 설계도만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 수많은 사람들과 자본이 연결되어 있는 작업이고, 중간에 좌초되기도 쉬운 만큼 어렵사리 완성된다. 그렇다면 대놓고 건축의 도식에 맞추어 쌓아 올린 이 영화는, 어쩌면 이중의 기적이 아닐까.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분한 한 남자가 배에서 내린다. 바우하우스 출신에, 내로라 하는 프로젝트를 몇 개나 진행한 걸출한 건축가, 라즐로 토스. 그가 미국에 당도하는 순간은 어둡고 축축하고 어지럽다. 웅장한 관악기와 함께 울려 퍼지는 '서곡'을 따라,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그리고 편지 속 에르제벳의 목소리가 해설처럼 덧붙인다. "None are more hopelessly enslaved than those who falsely believe they are free." 자유롭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노예 상태라는. 그렇다면 이 "자유의 나라"는 정말 자유의 나라인가.

뿌리 없는 존재들은 자유로운가
이내 그는 흩날린다. 뿌리 없는 이름과 있지도 않은 아들과 (그들 입장에서) 이교의 아내까지 맞아들여 '미국식' 가족을 꾸린 사촌의 가게 구석 창고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려다가 고래고래 소리치는 말만 듣고 쫓겨난 일터에서... 자유의 나라는 라즐로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라즐로의 작업물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명성을 얻게 된 서재 주인 밴 뷰런이 라즐로를 찾아오고, 객관적인 그의 상황은 상승세를 탄다. 그러나 라즐로를 잘 아는 에르제벳이 금방 간파하듯, 그는 일 안에서 미쳐가고 있다. 더 정확히는 일 때문이라기보다 일을 수단 삼아 "그를 벌레 보듯 하는" 나라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막연한 희망 속에서 미국에 갓 도착했을 때보다,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이는 지금 더더욱. 뒤집힌 땅에서 뿌리가 자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뿌리가 없다는 건 뭘까. 영화에서 공교롭게도 엄마 잃은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엄마가 없다는 것은 뿌리가 없다는 것과 같다는 대사가 나온다. 영화에는 대놓고 엄마 잃은 존재 셋이 나온다. 어머니와의 일화를 라즐로에게 이야기하는 밴 뷰런, 어머니 없이 숙모 에르제벳과 함께 여기까지 온 조피아, 그리고 고든의 어린 아들. 이들은 제각각의 방법으로 뿌리 없는 삶에 응전한다.
#1. 밴 뷰런: 뿌리 대신 이파리로
밴 뷰런은 부실한 뿌리를 풍성한 이파리로 승부 보려는 존재다. 이파리처럼 돈을 뿌려대며 자본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이다. 다만 그는 돈 외의 다른 수단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가 라즐로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뒤에 나올 장면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으나) 마치 스스로가 여성 혐오자임을 알지 못하는 여성 혐오자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지금 아주 미쳐 있네 저러다 잘하면 키스하겠네... 싶을 만큼 라즐로를 가까이하고 애정을 퍼붓는 듯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라즐로와 작업물에 대한 애정이라기보다, 열등감과 우월감이 뒤엉킨 자기애에 가까운 마음으로 보여서였다.
라즐로에게 찬사를 늘어놓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쉽게 탓하는, 투박하고 (부정적 의미로) 감정적인 반응. 라즐로에게 범죄를 저지를 때 내뱉는 문장을 보면 라즐로라는 개인보다 상대를 집단화해 기괴한 일반화하는 비약. 여성과 깊은 관계이고 싶은 마음과, 그 깊이까지 차곡차곡 도달하기에는 게으른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개인 혹은 집단으로서의) 여성 탓이라고 손쉽게 문제를 전가하는 일부 남성들과 같은 태도다. 생각해 보면 (상처가 있다는 점을 참작한다 하더라도) 조부모를 대한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건축을 향한 태도는 최악이다. 애당초 기획을 해놓고 중간에 돈 때문에 엎을 거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고요 이 양반아. 마구 이파리를처럼 돈을 날리지만 잘 날리는 것 같지도 않다.

#2. 조피아: 뿌리 끝까지 어떻게든
반면 조피아는 그 없는 뿌리에 천착하며, 뿌리 끝을 찾아 어떻게든 떠나는 존재이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조피아의 첫 대사는 이스라엘로 가겠다는 선언이며, 반신불수의 몸이 된 라즐로를 대신해 그의 건축물을 해설하는 엔딩에서의 확신에 찬 대사들 또한 라즐로의 건축을 유대인의 정체성 안에 꽁꽁 묶어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실제 라즐로의 삶은 아주 경건한 유대인의 삶도 아니었으며 (그는 유대인 예배당에 계속 나가기는 하지만 그의 삶이 신앙에 매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여러 번 창부를 찾고, 의료적 도움 이상으로 약물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완으로 남은 콘크리트 건축물 또한 밴 뷰런의 자본과 라즐로의 실력 그리고 뿌리 없이 흩날린 시절의 상처가 뒤섞여 만들어진 것이다. 공허하게 지어진 건축물은 조피아의 해설 속에서 유대인의 정체성 하나만으로 뭉뚱그려져 거의 황금 궁전처럼 힘차게 묘사된다.

#이파리와 뿌리 끝의 우로보로스
이런 둘의 태도는 얼핏 반대처럼 보이지만, 뿌리 끝과 이파리는 의외로 마치 우로보로스의 머리와 꼬리처럼 결착된다. 마치 자본 만능주의가 팽배한 미국 그리고 시오니즘으로 똘똘 뭉친 유대인들의 결착처럼. 이는 영화 바깥에서 "미국이 가자지구를 가질 권리가 있다"며, 가자지구를 장악해 주민들을 강제 이주 시킨 다음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네타냐후는 웃고 있었다. 이 발언으로 인해 사람들은 가자지구의 (가뜩이나 불안했던) 휴전 가능성을 더욱 낮게 점치기 시작했고, 실제로 휴전 두 달 남짓 만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공습을 재개했다. 4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역시나 "트럼프가 여지를 주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공교로운 지점은 이곳이다. 영화는 한 사회의 토착민 사이에서 벌레 취급을 받은 이민자가 또 우뚝 서서 체제를 찬양하는 모습을 이어 붙임으로써 결착된 폭력의 고리를 포착하고자 한다. 미국 사회에서 환대를 받지 못하고 폭력을 경험한 (듯한) 조피아가 시오니즘을 내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밴 뷰런'이라는 이름도 네덜란드계 이름 즉 이민자의 후손일 수밖에 없는 이름임을 깨닫게 된다. (미국의 8대 대통령 마틴 밴 뷰런의 이름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 폭력의 고리에서 미끄러진 존재들이 있다. 역시나 엄마 없는 존재들이다.
#3. 라즐로 토스: 사라진 뿌리
약간의 비약을 가하자면, 라즐로와 에르제벳의 결혼식 사진에는 엄마로 추정할 수 있는 나이대의 여성이 전혀 없다. 라즐로는 폭력의 고리에서 미끄러진 정도가 아니라, 그 고리에 납작하게 깔린다. 그가 밴 뷰런에게 폭력을 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경로로 반신불수가 되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은 채로 그는 조피아의 해석에 꽁꽁 묶이고 있다. 한번은 예술가라고 치켜세우다 유대인/이민자라고 후려치는 폭력에, 또 한번은 예술가의 정체성을 유대인의 정체성 아래 종속시키는 폭력에.
내게 이 지점은 단순히 예술과 자본의 역학 관계에서 예술이 자본의 질투를 받아 꺾였다는 느낌이라기보다, 자본과 시오니즘에 결탁된 폭력의 고리가 사람을 얼마나 잔혹하게 짓밟는지를 보여주는 느낌에 가까웠다. 건축물이 사라지지 않아 좋다던 그는 정작 콘크리트 덩어리만 공허하게 남기고 사라지고 말았다.

부재를 바라보는 존재는 어디에
영화의 주요 인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내게 인상 깊었던 인물은 고든의 아들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품에 안겨 거리의 음식을 먹거나 때론 그마저 먹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아빠의 추측과 달리 엄마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아빠가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그다지 내색하지 않으면서 자랐다. 어머니의 이름을 붙였음에도 돈과 산업재해 사이 휘청거리던 밴 뷰런의 건축지, 건축가의 자부심과 계산에 번번이 부딪히는 '벌레' 대우에 날카로워진 라즐로의 건축지와 달리, 고든의 아들에게 건축지는 이따금 아빠가 건축용 차를 태워주기도 한 즐거운 곳이었다.
고든의 아들은 아주 작게 지나가는 인물이다. 라즐로와 에르제벳, 밴 뷰런 같은 인물들마저 결말을 앞두고 제각각 황급히 사라져 버린 이 영화의 결말부에 고든의 아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상상하게 된다. 그는 영화 바깥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사라진 뿌리의 자리를 기억하며 고요하게 살아남아 자라 갈 수 있을 만큼 운이 좋다면.

다시 영화 바깥을 보자. 미국의 자본 만능주의와 시오니즘이 선으로 연결된 자리, 가자지구를 보자. 그곳에 있으나 영화 속에는 부재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팔레스타인이다. 그들 또한 뿌리를 빼앗겨 흩날리고 있으나, 고든의 아들처럼 미약한 존재감으로 보도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말하면서, 세상이 투명하게 여기는 죽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계속 뿌리를 고요하게 지켜보며 살아남아 자라 갈 수 있을까. 이번 가자지구 공습으로 인한 400여 명의 사망자 중 170여 명이 어린이라고 한다.

감독은 시오니즘과 미국 자본주의를 묶어 비판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것처럼 보이며, 실제로 그런 의도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비판으로 느껴지는 지점이 충분히 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의 부재로 도형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지점 또한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자꾸 공교롭다는 표현을 쓰게 된다. 미국과 유대인을 묶는 것은 서막-1장-인터미션-2막-에필로그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의 도식만큼이나 과하게 심플한 것이 아닌지. 뿌리 없는 존재들의 공허한 콘크리트 같은, 아름답지만 공허한 기분이 드는 영화였다.
2천여 년 전, 사람들 앞에서 콧대를 높이고 있던 고위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던진 일갈을 떠올린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이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브루탈리스트>라는 웅장한 콘크리트 회벽에는 너무 많은 뼈가 투영되어 보인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이자, 어쩐지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Relative contents
-
- 무한 긍정은 무한 연습에서 나온다
- 인생은 즉흥 연주가 많은 재즈일까, 철저히 악보와 지휘에 맞춰 연주하는 클래식일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에 따르면 J의 인생은 클래식이고 P의 삶은 재즈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죽기 전까지 나의 목표와 계획과 의도를 100% 달성할 수는 없다는 것. 야구 만화 속 주인공과 같은 실력을 현실에서 뽐내던 오타니 쇼헤이도 FA 대박 계약을 코앞에 두고 팔 부상이 재발했다. 그의 계획은 틀어지고 말았다. 일이 잘 풀릴 때에는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주는 것 같다. 얼른 산 정상에 올라 표지석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생각에 들뜨지만 등산로에서 한 발짝만 잘못 내딛어도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 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 무한 긍정의 마음가짐을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영화 <블루 자이언트>의 주인공 '다이'는 강렬하고 뜨거운 재즈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그는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고향을 떠나 도쿄에 온 '다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다이가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고향에서나 도쿄에서나 변함없이 매일매일 맹렬하게 색소폰을 연주하기 때문이다. 다이가 넘어서야 할 유일한 상대는 '어제의 나'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다이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다이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연주하는 장면이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삽입된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 영상은 다이가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가 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비교적 예상하기 쉬운 이야기와 달리 영화 <블루 자이언트>의 비주얼, 음악, 음향은 예상을 크게 벗어난다. 예상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압도적이다. 애니메이션만의 장점을 극대화해 실사 촬영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웠을 듯한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와 화면 전환, 기발한 앵글과 미장센을 구현한다. 폭발하는 재즈 사운드의 박력을 실감하게 해주는 총천연색의 화면, 동명 원작 그래픽 노블의 매력을 십분 살린 화면의 질감, 실제 재즈 연주자의 동작을 생생하게 본뜬 영화 속 캐릭터들의 연주 자세가 압권이다. 적재적소에 들어간 스틸 이미지는 편집의 리듬감을 살린다. 지나치기 쉬운 장면이지만 고기 석쇠 밑에서 다이의 얼굴을 찍는 과감한 앙각 숏도 기억에 남는다. 유리컵에 맺힌 물방울들 위에 포개지는 '유키노리'의 식은땀도 인상적이었다.다이가 테너 색소폰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에는 오직 다이의 들숨소리만 들려서 이후 이어지는 연주에 더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재즈 문외한이 들어도 바로 탁월함을 느낄 수 있는 연주는 실제로 재즈 연주자들의 라이브를 녹음했다고 한다. 특히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인 우에하라 히로미가 음악과 피아노 연주를 담당했고, 색소폰은 전 세계 연주자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거친 후 바바 토모아키가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고, 드럼은 우에하라가 이시와카 슌을 지명하여 그가 맡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 라이브 연주 장면들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 같다. (단, 필자는 메가박스 코엑스 돌비관의 Dolby Vision과 Dolby Atmos로 관람했기 때문에 다른 일반 상영관보다 훨씬 더 감흥이 컸을 수도 있다.)재즈 밴드의 연주는 "따로 또 같이"를 추구한다. 함께 연주할 때의 조화도 중요하지만 솔로 파트에서는 테너 색소폰, 피아노, 드럼 등 개별 연주자가 저마다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으로 표출해야 한다. 솔로 파트의 문제는 다른 밴드 멤버들이 도와줄 수 없고 결국 스스로 혼자 해결해야만 한다. 인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유일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재즈 밴드는 록 밴드와 달리 평생 함께하지 않는다."는 유키노리의 대사가 암시한 것처럼 주인공들이 가장 큰 공동 목표로 삼았던 'SoBlue'에서의 공연이 밴드 'JASS'의 마지막 공연이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돈을 쓸어 담으면서 공연할 수 있을 텐데 해체하다니! 최고의 순간에 미련 없이 해산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이, 유키노리, 타마다가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했고 연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진정으로 최선을 다한 사람은 후회가 없는 법이다. (끝)* 10월 11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진행된 <블루 자이언트> 언론/배급 시사회에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블루자이언트 #BlueGiant #절찬상영중 #영화리뷰 #영화추천
-
- 지친 삶속의 힐링 영화
여기! 본격 퇴사 권장 영화가 있습니다.
고단한 도시의 삶이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 사계절의
자연 속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며
지친 정신과 마음을 치료받는 힐링 영화!
무엇보다, SBS 방영 중인 '악귀'에서 너무나도 무서운 분위기 속의
미친 연기력을 보이고 있는 김태리의 힐링 가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럼, 영화 리틀 포레스트 살펴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감독 : 임순례
각본 : 황성구
출연진 : 김태리, 류준열, 문소리, 진기주
개봉일 : 2018년 02월 28일
평점 : 9.01
스트리밍 : tvN, Wavve, 쿠팡
기획 의도
"잠시 쉬어가도, 달라도, 평범해도 괜찮아!
모든 것이 괜찮은 청춘들의 아주 특별한 사계절 이야기"
시험, 연애, 취업...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은 일상을 잠시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오랜 친구의 재하와 은숙을 만난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
평범한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은숙'과 함께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게 된 혜원
그렇게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며 고향으로 돌아온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된
혜원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는데...
여담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이가라시 다스케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를
한국 버전으로 리메이크하여 만들었다.
작품은 도시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농촌에서의 힐링을 보여주며 영화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및 군위군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영화의 힐링 때문일까, 개봉해 인 2018년도 최고의 한국 영화로 뽑히기도 하였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리틀 포레스트 결말을 살펴보자면...
편지 하나만 남기고 달랑 떠나버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겨진 편지를 읽고 또 읽어보지만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다.
뭔가를 해내야 하고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갑갑한 도시를 떠나
고향에서 사계절을 보낸 혜원(김태리)은
동네 친구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에게
쪽지 하나 남기고 다시금 조용히 고향을 떠난다.
이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집에는 문이 열려있겠을 발견하고
반가운 표정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어떻게 보면 다소 잔잔한 듯
아쉬움이 많이 남을 수 있는 결말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런 잔잔한 결말이라서 더욱더 영화가 잔잔하게
끝나지 않았나 싶다.
힐링 가득, 사계절을 보내며 만든 음식을 보면서
웃음과 치료를 받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입니다!
지치고 힘든 일상을 지내고 싶은 분들에게
숲속의 초록이와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한줄평 : 퇴사각, 시골로 떠나자!
-
- 멀어지며 미어지기를 택한 마음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언제 봐도 마법 같은,『데미안』속 문장이다. '새'와 '알'은 세상 모든 성장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우리는 언제나 오늘을 사는 동시에 내일을 향한다. 삶의 여정이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는 것이기에 목적지가 저곳이라면, 지금 발 디딘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잃는 동시에 얻는다.
이 사실을 개념적으로 받아들이고 정립할 수 있는 건 시간이 꽤나 흘러서지만, 이제 막 자라는 아이일 때부터 사실 이동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딱 이맘때의 아이 '클레오'를 영화에서 만난다. 한창 자랄 일만 남은 여섯 살 과 그 아이가 훨씬 더 미약할 때부터 함께했던 유모 '글로리아'.
클레오의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그의 시점을 온전히 담고자 노력한 영화이기에, 글로리아뿐인 클레오의 세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필 때다.
*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이의 일과는 단순하다. 일어나 글로리아와 유치원에 가고, 끝나면 글로리아와 손을 잡고 조잘조잘 떠들며 집으로 돌아간다. 먹고 씻는 사이사이에 장난도 치다 보면 까무룩 잠들고. 가끔 만나는 아빠와 짤막한 인사를 나누며 또다시 글로리아와 단둘이 하루를 보낸다.
유일하게 글로리아가 없는 유치원에서의 일과는 어떤가. 요리 수업인지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선생님을 따라 달걀을 깬다. 달걀은 그냥 깨지지 않는다. 어딘가에 부딪혀야 한다. 그런데 너무 강한 힘으로 뭉개져서도 안 된다. 껍질이 파편처럼 섞이고 마니까. 하지만 아이들의 작은 손은 그 크기와 달리 어딘가 맹렬한 면이 있어서 조절을 하지 않고, 기꺼이 부딪힌다.
조각조각을 걸러내야 하는 일. 꽤나 성가신 일이 아이들에겐 당연한 과정이다. 그저 재료 속에 숨은 껍질을 찾는 데에 온 집중과 정성을 다한다. 이제 주걱으로 보올에 담긴 재료들을 힘차게 섞는다. 이때도 온 힘을 다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일러둔다. 너무 세게 하지 말라고.
이 장면은 클레오를 비롯한 우리 인간 모두의 겪어온, 겪은, 그리고 겪을 일상의 연속이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잊었을 뿐이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세계를 깨고 나왔는지를. 다만 깨고 나왔을 때의 고통과 낯섦은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어서 새로움 앞에 쉽게 움츠러든다.
잔잔하던 일상에 작은 파동이 일렁인다. 글로리아에게 일이 생긴 것이다. 그는 경제적 이민자다. 머나먼 섬에서 나고 자라 아이들까지 낳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섬보다는 도시가 훨씬 유리했다. 몇 년을 이곳 프랑스에서 보냈는데 집으로 돌아갈 일이 생겼다. 어머니의 부고.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밭의 소리와 글로리아의 무거운 목소리. 발걸음을 서성일 때마다 글로리아가 갈대 틈 사이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다. 어느 밤. 글로리아는 아이에게 조심스럽고도 덤덤하게 사실을 전한다. 아이는 잠시간 멈칫하다가도 크게 개의치 않아 보인다. 여름방학에 클레오가 섬으로 놀러 오게 해 달라는 글로리아의 부탁에 아빠가 긍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로리아는 맹세의 침까지 뱉었다. 우스꽝스러운 다짐. 궁금해진다. 글로리아는 정말 확신했을까. 클레오를 다시 보게 되리라고. 그의 눈동자에는 한치의 거짓이 없었으나, 확신할 순 없다. 클레오를 보내겠다는 아빠의 긍정은 사실 빈말이었는데 감쪽같았다.
하지만 클레오는 아빠의 빈말보다 글로리아의 맹세의 침 뱉기를 믿는다. 나름 격렬한 투쟁을 거치고 나서 클레오는 드디어 글로리아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과거는 모두 질감 덩어리가 뭉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다. 거친 파도의 바다와 들끓는 화산이 있는 섬. 글로리아처럼 보이는 여자, 지금보다 어딘가 어려 보이는 실루엣. 표정은 알 수 없다. 질감과 명암과 움직임을 느낌으로 받아들여 그의 마음을 유추할 뿐이다.
클레오는 그다지 달가운 손님이 아니다. 섬 특성상 폐쇄적인 환경이고, 외부인을 경계하는 만큼 내부인의 자부심이 굉장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리아는 내부인이지만 가족 안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외부인 같다.
특히 클레오보다 몇 살 더 많은 듯한 세자르에게 글로리아는 낯선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도 잘 모르겠던 사람이 대뜸 제 엄마 행세를 하려 들고, 게다가 생김새도 이질적인 애를 데려와선 저한테 주지도 않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붓는다. 세자르의 반항심과 반발심은 바다 위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아찔한 취미로 이어진다.
클레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관찰하고 습득해 간다. 세자르의 날 선 모습을 아이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툴툴대고 인상 쓴 얼굴을 하고서도 세자르는 클레오를 자신이 돌볼 대상임을 인지한다. 잠든 아이를 업고 집으로 걸어가는 식으로. 어쩌면 돌봄 받지 못한 자신을 클레오에게 투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 감정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건 아니다. 영화의 시선은 내내 오묘하다. 클레오와 글로리아의 깊고 오래된 사랑과 유대감을, 유모가 된 계기를 얼굴 없는 애니메이션으로 유추할 뿐이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손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그저 눈빛과 행동, 웃음으로 감각하게 된다.
클레오는 글로리아의 세계에 들어와 사진에서 보았던 추억의 대상들을 몸소 겪었다. 그의 세계는 다양하고 넓은 반면, 자신의 세계는 여전히 글로리아밖에 없었고. 환경을 바꿨지만 여전히 새는 알에서 나오지 못한 거다. 원치 않았을 테지만, 클레오의 알은 깨지고 만다. 글로리아의 손자가 태어나면서.
갓난아기는 빽빽 울고 어른들은 달려들어 그를 어르고 달랜다. 클레오는 제가 온몸으로 받던 글로리아의 관심을 모조리 '뺏겼다'. 한참 자라난 이들의 눈엔 자연스러운 흐름이나, 이제 막 세계가 깨어진 존재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다. 글로리아의 모든 관심을 저 작은 애가 앗아갔다. 단잠 자는 글로리아를 깨우려고까지 하는 저 아기는 악마처럼 보일 따름이다.
결국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클레오는 아이들이 지닌 특유의 맹목스러움을 아기에게 분출하고, 글로리아가 이를 엄하게 꾸짖는다. 집밖으로 뛰쳐나가 마구잡이로 걷던 클레오의 발걸음은 남자아이들이 깔깔대며 뛰놀고 있는 바다 위 절벽으로 향한다. 그리고 비장하게, 다이빙한다.
앞서 말했듯 어른의 세계는 이것저것 복잡하고 많은 것들이 담긴다. 글로리아는 딸과 아들이, 손주가, 마음을 나누고 있는 사람이, 공사 중인 호텔이,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어느 하나가 없어져도 상실감이 아주 클 테지만 남은 것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이의 세계엔 어느 딱 하나밖에 없어서 그 하나가 사라지면 세상을 잃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은 마지막 발악처럼 무모한 게 당연하고, 글로리아도 아이의 마음을 듣고 헤아린다. 클레오에 대한 사랑과 별개로 그를 돌보는 건 돈을 받는 일이라서 글로리아는 아이에게 큰 요구를 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장난치려 들 때도 받아주듯. 그런데 세자르에겐 어딘가 모르게 엄했다. 행동을 교정하려 들고 책임을 요구하고.
그래서 클레오를 바다에서 꺼내준 세자르에게 '엄마에게 뽀뽀해 줘'라며 사랑의 표현을 요구했다. 세자르가 뚱하게 그냥 고맙다고 말하라고 하자, 그제야 진심의 말을 전한다. 어딘가 모르게 따듯해진 찰나의 표정이 잔상에 남았고.
글로리아는 일로서 아이를 돌보는 게 익숙하더라도 가족으로서 아이를 돌보는 건 다소 서툴었던 걸까. 아무리 성인이라고 한들 언제나 부족한 면은 있기 마련이니까.
이건 평생 익숙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별.
클레오를 돌봐줄 새 유모가 생기고, 글로리아는 한 번 고향에 돌아온 이상 나갈 생각이 없다. 이곳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이 많으니까. 클레오를 덜 사랑하는 게 아니다. 세계가 다르다. 클레오에겐 글로리아밖에 없어서, 오히려 둘은 멀어져야 한다.
각자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는 어느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깨어지고 부서지며 나눠진 조각조각이 또 다른 추억을 만든다는 것을 배워야 하니까. 기억의 총합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고, 또 다음 세계를 깨고 나온다는 것을.
그렇게 클레오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던 때. 이번엔 전과 다르다. 다음을 기약하지 않고, 글로리아는 제가 오래도록 찼던 고래 목걸이를 클레오에게 둘러준다. 자신의 몸과 다를 바 없던 무언가를 떼어내는 감각. 지금 당장은 클레오가 매끈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을 테지만 느낌으로는 알았을 테다.
꽤 의연해 보이던 글로리아는 몸을 돌려 걷자마자 엉엉 울고 싶던 마음을, 끝에서야 터뜨린다. 아프다. 너무너무 아프다. 언제나처럼 목에 있던 목걸이가 사라진 무게만큼 허전하다. 우리는 그의 눈물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안다. 비워진 무게에 문득 익숙해질 것임을. 클레오가 글로리아 세계에서 완전히 제거된다는 게 아니다. 사랑스러운 일부로 존재할 테다. 다만 빈자리는 곧 새로움으로 채워지기에. 글로리아가 그래왔듯 클레오도.
-
- 세 나라 형사들의 공조보다 더 필요했던 것
누군가가 글쓴이에게 '10대 시절 중 뭐가 제일 아쉬우세요?'라고 묻는다면, 내 답은 간단하다. '모든 것이 전부 다'다. 성장했으니 후회도 하는 거겠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중 탑 3 안에 들 것은 역시 외국어를 배우는 것. 단순히 토익점수나 영어 수능 등급 때문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소통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메리트다. 일단 그리고 외국어 잘하는 게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다. 그냥 무엇이든 공부 열심히 하면 멋있지만 특히 외국어는 더 멋있는 느낌..?
외국어를 공부하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이것만 있겠어? 외국인 친구 사귀면 재밌을 것 같다. 어느 나라를 가도 날 반기는 사람이 있는 건 신기한 경험일 것 같다. 실제로 학교 다니면서 캐나다에 살지만 베트남 사람인 외국인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친구 자체가 귀여워서 아주 즐거운 기억이었다. 또 베트남과 캐나다의 문화에 대한 걸 들었던 기억도 재밌었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이렇게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그런데 만약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다른 나라의 사람과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신기한 일일 것이다. 그것도 내가 경찰이라 북한 사람과 힘을 합쳐 범죄자를 잡는 기억이라면 더 신기하겠지? 여기 남, 북한 형사가 두 번째 협동 수사로 북한의 범죄자를 잡으려고 한다. <공조 : 인터내셔날>이다.
삼국 공조
첫 번째 공조가 지니고 시간이 좀 지났다. 북한은 정부차원에서 범죄자를 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범죄자의 이름은 장명준. 북한이 아닌 해외에서 범죄행각을 지속하고 있다. 추적 중인 임철령. 추격 끝에 장명준을 포획하는 데 성공한다. FBI와의 실랑이를 잘 해결하고 그렇게 문제가 잘 해결되는 것 같았다. 미국 어느 길가에서 장명준을 검거한 채로 이동 중인 임철령. 부하 직원과 잠깐 대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폭발이 일어난다. 테러당한 수송차량. 갑자기 총격전이 일어난다. 의문의 괴한들은 장명준을 엄호한다. 수많은 FBI 요원이 사살당한다. 아수라장이 된 수송차량. 난장판이 된 틈을 타 장명준은 괴한들과 함께 탈출에 성공한다.
금세 임철령의 귀에 장명준의 근황이 들려온다. 남한으로 도망갔다는 말이 들린다. 남한이라. 임철령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명의 얼굴이 있다. 그래. 그 형은 잘 지내려나. 남한으로 돌아가 공조수사를 기획하는 임철령. 어렵지 않게 남한으로 귀환하는 데 성공한다. 형. 오랜만입니다. 강진태와 임철령은 다시 한번 더 범죄자를 잡기 위해 힘을 합친다. 그런데, 두 사람이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미국 FBI가 이 사건에 개입한 것이다. FBI의 담당자 잭은 강진태, 임철령과의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 채로 장명준을 잡기 위해 공조한다.
본분에 충실하다
5년 만에 돌아온 <공조> 시리즈의 신작이다. 장르는 역시 코미디다. 호러 영화는 무서워야 제맛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코미디 영화는 웃기면 장땡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글쓴이는 적지 않게 웃다 나왔다. 그리고 상영관 안의 분위기도 좋았다. 오히려 나를 제외한 관객들이 글쓴이보다 더 자주 웃었다. 이 영화에서 코미디를 만드는 방식은 다양하다. 일단 현빈, 다니엘 헤니 두 배우를 3초만 쳐다봐도 알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이 특징을 영화는 경제적으로 활용한다. 남북한의 긴장상태를 소재로 한 영화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코미디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인기 있는 팝 그룹이 어디야? 하면 딱 나오는 답이 있다. 근데 그 팀이 북한에서도 아예 100% 같은 맥락으로 쓰일 리는 없다. 이를 활용한 코미디도 적지 않게 보인다. 또 유해진 배우가 연기력으로 잘 살린 말장난 개그가 있다. "내가 무슨 ~도 아니고"식의 문장을 활용하는데, 이 멘트들이 걸핏하면 촌스러워질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 비슷한 말이 계속해서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질척이는 느낌이 없었던 건 이 말장난이 재미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강진태가 집안을 이끌고 있는 가장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이 부부 코미디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공조라는 점에서 한국 국정원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데, 이 감시, 감청을 코미디로 활용한다. 각본가의 근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코미디 요소 중 최고는 임윤아 배우의 존재감이다. 이 영화는 임윤아 배우가 할 수 있는 많은 자원들을 10분 재활용한다. 임윤아 배우는 극 중에서 실업자로 나온다. 그리고 자기가 미녀인 걸 알고 있다. 걸핏 보면 모순되는 설정 같아 보이지만 이 배우는 이를 잘 소화한다. 화려하면 화려한 메이크업 방식대로 아이돌 센터의 클래스를 보여줄 수 있지만 뭔가 연약해 보이는 비주얼을 가진 임윤아 배우. 감독은 이 배우의 코디 방식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 영화에서 '백수와 어울리는' 얼굴과 '역시 아이돌 센터 출신'이라는, 모순될 수도 있는 설정을 극에서 양립할 수 있게 설정했다. 극 초반, 임윤아 배우가 연기한 박민영을 유튜브 운영하는 크리에이터로 설정했다. 짤막하게 이 캐릭터가 화장하는 시퀀스를 넣는다. 그럼 딱 느끼는 건 '우와 진짜 예쁘다' 다. 이렇게 초장부터 관객에게 기선제압 아닌 기선제압을 보여준다. 이다음 장면에 가족끼리 밥을 먹는다. 뭐하고 묻냐는 진태 아내의 질문에 "유튜브를 하고 있다"라고 답하는 민영. 이어 곧 "1년 중 3만 6천 원". 두 가지 행동이 이 배우를 아주 살짝만 봐도 설득력이 있게 만들었다. 또 진태의 입에서 '임철 령이 돌아온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임철령이 나에게 빠진 것 아니냐'라고 주장하는 민영. 이 허무맹랑한 주장이 러닝타임 후반부까지 어떤 식으로 변형되는지 보면 흥미롭다. 배우의 비주얼과 연기력을 잘 꿰뚫고 있었던 각본가, 감독의 좋은 수가 돋보였다.
또 이 영화는 코미디 이전에 액션 장르의 영화다. 범죄물이기 때문에 부랑자들과의 액션이 빠질 수 없다. 이 영화의 코미디 작동법과 마찬가지로 액션 잘 찍었다. 예고편에도 나온 장면이다. 임철령과 강진태가 다시 만나 인사를 하고 악당들과 싸울 준비를 한다. 의외로 싸움 잘하는 강진태. 주목해야 할 건 이때의 임철령이다. 예전에 두루마리 휴지로도 상대를 두들겨 패버렸던 임철령. 임철령은 파리채와 '이 음식'으로 악당들을 혼내준다. 이 액션이 터무늬 없고 있고를 떠나 현빈 배우가 몸을 잘 써서 느린 연출 방식에도 생동감이 살아있다. 맨몸액션뿐만 아니라 총기 액션도 좋았다. 초반부 총기 액션은 이 영화의 스타트로 손색없었다. 전조에 차량이 전복되고 총기 액션으로 넘어가는데 이때 전환이 부드럽고 박진감이 살아있다. 이 좋은 시작은 중후반부가 되면 강점으로 작용한다. 중후반부는 액션이 주가 된다. 이 액션 신(들)에 단점도 있긴 하지만 가벼웠던 분위기를 무겁게 환기하는 좋은 연출이 주가 됐다. 아이디어가 빛났던 부분도 있고 배우들이 고생했겠거니 싶었던 부분도 있다. 특히 후반부에서 두 배우가 보여준 세 배우의 맨몸액션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레이-인남의 액션 신을 보는 것 같았다. 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을 느리게 찍고 화면을 빠르게 재생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아마 이 영화는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배우들이 어떻게 액션을 보여줄지를 다 외우고 찍은 티가 잘 난다. 사실 주요 액션신이 영화의 핵심 줄거리와 크게 관련이 있어서 풀어쓰기는 좀 어려운 감이 있다. 그런데 분명하게 서술할 수 있는 건 액션과 코미디는 확실하게 잡은 영화라는 것이다. 그런데..
잘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영화를 보면서 계속 찜찜했다. 일단 첫 번째. 이야기에 균열이 너무 많다. 일단 박민영 캐릭터다. 이 인물은 왜 아직도 취업을 못하고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이 든다. 그리고 두 번째. 유투버라는 설정은 아예 불필요했다. 그냥 없어도 된다. 3만 6천 원이라는 설정을 넣어서 후에 코미디 요소로 쓰려고 이 인물을 유투버로 만든 것 같다. 그런데 굳이 그 장면에서 180만 원이라는 코미디 요소가 무조건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돈으로 무얼 하는지도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다. 그냥 없어도 되는 수준이다. 게다가 극에서 매체를 너무 편의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장명준이 자금줄의 나이트클럽에 가서 돈을 요구하는 장면이 있다. 이것도 충분히 경찰에 신고할만한 장면이다. 그런데 그 장명준 일당이 행패만 부리고 이에 대한 책임은 없다. 임철령, 강진태가 악당들과 싸운 건 바로 뉴스에 나오는데 말이다. 또 다른 구멍은 국정원이다. 앞에서 서술한 대로 국정원이 이 영화에서 주요하게 작동한다. 이 국정원이 강진태의 집안을 도청, 감청한다. 이거 이래도 되나? 아예 민간인인데? 도청하는 대상인 강진태 가족은 과연 무슨 잘못인가? 이 도청 여부를 가지고 다른 캐릭터들이 보이는 행각도 물음표 치는 구석이 많다. 또 이 국정원 요원들이 인물들을 바탕으로 코멘트하는 장면이 있다. 아무리 코미디적 요소라지만 이 장면 자체가 아예 불필요하다. 이 코멘트가 임무에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다. 이렇게 안 넣어도 될 요소를 굳이 코미디로 살린 탓에 첩보전 양상이 몇 단계는 업그레이드돼야 할 영화의 흐름에서 집중을 깨는 악영향을 끼친다. 또한 이 국정원 캐릭터들 중 한 멤버는 뭔가 이상하다. 굉장히 감정적이다. 좀 지나칠 정도로.
두 번째. 장르에 대한 연구가 안 보인다. 뭐 영화가 장르에 대한 연구가 무조건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다. 이 영화는 그런 스릴러 영화의 고찰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으니까. 그런데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은 구석이 있다. 바로 빌런 장명준 역이다. 우리가 어떤 스릴러 영화를 볼 때 긴장감을 느끼는 방식 중 하나는 빌런의 서사를 느끼는 것이다. 아니면 악당의 캐릭터성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유감스럽지만, 이게 나의 방식이야'라고 강렬한 인상을 줬던 레이, <관상>에서 압도적인 첫 등장신으로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박혀있는 수양 대군, 손석구의 열연으로 임팩트를 줬던 <범죄도시 2>의 강해상이 그렇다. 또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방식은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의 버키나 <시빌 워>의 제모 남작을 보면서도 찾을 수 있다. 이 둘에겐 세뇌와 가족을 잃은 슬픔이라는 동기부여가 강력하다. 이 장명준은 두 예시에 끼지 못한다. 일단 초반부 차량 폭파 및 총격전 장면은 그 일당의 강력함만 느껴지지 빌런 장명준 자체에는 몰입이 안 된다. 극 중후반부까지 장명준 개인에게 할당된 액션 시퀀스도 상당히 부족할뿐더러 동기도 후반부에 잠깐만 느끼니 배우 진선규의 연기가 아니었으면 지루하다고 느낄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세 번째. 설정을 굉장히 편의적으로 활용한다. 무슨 뜻이냐면 '알고 보니' 식의 전개가 영화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나이트클럽 수색 신이 있다. 북한 사람 임철령과 남한 사람이지만 아저씨 나이인 강진태는 현실적으로 수색하기 어렵다. 그럼 누가 있어? 바로 박민영이 있다.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며 활약할 것 같은 민영. 민영은 '알고보니' 클럽 죽순이었다. 그런데 이 민영의 행보를 유심하게 보신다면 알 수 있다. 이런 식의 전개가 극 전부를 이끈다는 걸. 비슷한 맥락으로 다니엘 헤니가 연기한 잭 캐릭터에도 이런 '알고 보니'식 전개가 있다. '알고 보니' 잭 캐릭터가 과거에 어떤 부서에서 일을 했었다. 뭐 그 부서에서 일한 건 좋다. 그러나 이 설정을 굳이 그런 식으로 보여줄 이유가 있나? 싶다. 초반부에 어떤 부분을 할애하더라도 이 부분을 묘사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었다. 그냥 단순히 한 문장 하나로 퉁치기엔 더 풀었어야 했던 떡밥이 많다. 또 이 인물이 주요 범죄자를 심문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때 이 사람의 어떤 기억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의 해결책이 된다. 이게 흐름 상으로 보면 이상하다. 이 경험을 활용하는 방식도 기시감이 든다. 그냥 이 경험의 이유가 '다니엘 헤니가 잘생겨서' 밖에 없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결과를 제시하고 과정을 '알고 보니'로 퉁치니 적지 않은 코미디 요소가 의문점이 드는 것이다.
이 편의적인 설정의 정점은 세 인물의 갈등이 고점으로 치닫는 시퀀스에서도 빛을 발한다. 마치 짜기라도 했던 것처럼 이 사람들은 어디로 향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갈등 해소하기 위해 많이 가는 곳이 어김없이 나온다. 이곳에서 보여주는 모든 장면은 전부 조악하다. 또 앞에서도 언급했던 '가장 유명한 팝 그룹' 소재는 KPOP이라는 단골손님을 이제 너무 자주 봐서 질리기까지 하다. 그리고 현빈, 다니엘 헤니 두 배우의 공통점을 사용하는 방식은 <내 이름은 김삼순>을 연상케 한다. 2005년에 썼던 방식이 2022년에 고대로 이어진다. 두 인물이 그런 장점이 있어서 파생되는 코미디는 민영과의 관계에서만 써먹어도 충분했다. 그런데 2절 3절까지 쭉쭉 이어지니 안 그래도 식상한 게 두 번 반복되는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 진태가 공조수사 이전에 사이버수사대 소속이었다. 이 사이버수사대 소속이기 때문에 수사가 굉장히 용이하게 진행되는 부분이 있다. 이것도 1절만 하고 끝냈어야 했다. 수사 과정에서 충분히 장르적인 재미를 뽑아낼 수 있었을 텐데 모든 게 그냥 쉽게 사사샥 지나간다. '사이버 수사대 출신인 거 알지? 그러니까 그냥 이렇게 쉽게 지나간다 ㅎㅎ'의 전개는 극에서 한 번만 반복되는 게 아니라서 굉장히 아쉽다. 이 과정은 자체로만 보면 충분히 더 어려웠어야 했다고 본다. 또한 극초반부에서 진태가 수사를 벌이는 장면이 있다. 진태가 수사하기 위해서 어떤 기계를 들고 범죄자 소굴에 들어간다. 그 범죄자 소굴은 쉽게 진압된다. 그다음. 위조 여권 전문가를 포획하려 한다. 그런데 이때 경찰들이 너무 무기력하다. 최소한 가까이라도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후 카레이싱 액션에서도 진태가 사서 문제를 만드는 부분이 있다. 이 시퀀스 자체가 올드한 걸 떠나서 작위적이니 초반부가 몰입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 외에도 후반부 주요 인물들의 주인공 버프는 '굳이?'싶다. 두 배우 멋있는 건 알겠는데 너무 그런 멋을 추구했던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 번만 보여주는 거면 모르겠는데 이게 세, 네 번쯤 반복되니 완성도에 금이 간다.
또 그 편의성으로만 활용한 설정은 카메라 촬영 방식에도 있다. 초반부 파리채로 액션 시퀀스를 벌이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이 영화는 슬로모션을 활용한다. 이 영화에서 이 액션은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임철령의 빠릿빠릿한 무력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극 중에서 <범죄도시>의 '마석도'를 연상케 하는 세계관 최강자로 묘사되는 임철령. 강력한 모습을 보여줘야 후의 모든 액션신에 설득력이 생긴다. 그러면 행동이 재빠르거나 진중해야 한다. 이 시퀀스에서 보여준 액션 연출 방식은 촬영 구도도 뭔가 김 빠지고 재빠르지도 않다. 어떤 편집 방식을 쓰기도 했다. 이 연출 방식 때문에 임철 령이 약해 보인다. 영화의 강약 조절에 아쉬움이 생기는 지점이다.
중후반부의 긴박감으로도 숨길 수 없었던
이렇게 잘 만든 것도 있지만 단점이 그것을 상회하다 보니 재밌긴 해도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스릴러의 장르성을 좀 더 깊게 탐구했으면 이 좋은 배우들로 더 나은 결과물이 생길 수 있다는 아쉬움은 둘째로 친다. 분명히 서사가 더 들어가야 할 부분에 '너희들 이거 좋아하지?'를 의식해서 다 때려 박았으니 시각적 쾌감만으로도 영화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임윤아 배우의 미모. 현빈 배우의 카리스마. 유해진 배우의 유쾌함. 진선규 배우의 연기력. 이거 우리 이미 영화 보기 전에 다 알고 있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화려하게 제시됐다 뿐이지 영화는 이 요소를 1차적으로 활용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는 없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 남는 게 과연 뭐가 있을까?를 돌이킬 때 다 아는 걸 말할 수밖에 없다. 임윤아 배우 예쁜 거 누가 몰라? 이제 어엿한 베테랑 배우 된 거 누가 몰라? 현빈 배우 멋있는 거 혹시 모르는 사람? 심지어 조연급이었던 김원해 배우의 연기는 <아수라>에서 봤다. 이렇게 거의 대부분 아는 것들, 그러니까 배우 고유의 매력을 캐릭터 영화로 둔갑시켜 러닝타임을 끌고 가니 좀 진부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있다. 세 인물의 협동 이전에 장르 특성과의 공조가 먼저 이어졌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근본적인 기획에서도 의문이 있다. 삼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린다는 것이 영화의 제목 아닌가. 그럼 서로 의심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이 애매하게 퉁친다. 어쩌면 영화는 이걸 중심으로 뭔가를 더 전개하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헌트>에서 고밀도의 첩보전을 봤던 우리는 이 영화의 연출력에 웃음이 나긴 하지만 솔직히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명절 특수 영화 좋다 이거야. 근데 그게 과연 전부일까? 엄마 아빠 극장에 데려가서 하하하 웃는 걸로 만족하기엔 강력한 라이벌로 <육사오>가 있고, 첩보전을 보기엔 <헌트>가 있다. 관객들에게 더 넓은 선택지를 고를 틈도 없이 주요 영화관에 이 <공조 : 인터내셔날>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다. 이 외부적인 환경 세팅과 아는 맛을 골랐다는 안정적인 선택 때문에 재밌긴 해도 잘 만든 영화라고 보기는 사실 조금 어렵다고 생각한다.
-
- <해피투게더> - ‘갖고 싶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가볍지만 아팠던 사랑의 단면’
해피 투게더(春光乍洩, Happy Together)
개봉일 : 1998.08.22 (한국 기준)
감독 : 왕가위
출연 : 장국영, 양조위, 장첸, 관숙의
‘갖고 싶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가볍지만 아팠던 사랑의 단면’
“다시 시작하자” 보영의 한마디에 아휘는 흔들린다. 보영과 아휘는 연인이지만 연인이 아니다. 사랑하지만 사랑을 전부 내보이지 않는다. 수없이 깨지고 짧은 한마디로 겨우 다시 접합해놓은 사랑.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균열을 풀칠 몇 번으로 이어온, 어쩌면 지겹게도 느껴지는 사랑. 충분히 아프고 또 아팠으니 이 또한 사랑이었겠다.
1995년.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흘러가고 있던 시간을 이 영화를 통해 붙잡아본다. 저녁 8시, 도시는 바쁘게 반짝이고 보영과 아휘는 작은 집안에서 몸을 밀착한 채 춤을 추고, 사랑을 하고, 갈라서고, 다시 시작한다.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라곤 한 손에 꼽는 낯선 도시에서 다시 돌아갈 고향을 꿈꾸며 아휘는 보영을 놓지 못한다.
보영 역을 맡은 장국영과 아휘 역을 맡은 양조위의 다신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 펼쳐지는 97분의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며칠 전 4월 1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로 영혼을 탈탈 털어가며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잡아탄 택시 라디오에서 장국영의 To You가 흘러나왔고, 저녁 7시 반쯤이 되어서야 알았다. 오늘이 그날이었구나.
사실 난 장국영이라는 배우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다. 그는 내가 10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에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말하기에도 어딘가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근데 난 왜 성장기를 같이한 것도, 동시대를 살아본 것도 아닌 저 먼 곳에 있는 그의 눈을 보며 슬픔을 느끼고 있는 걸까. 기분이 묘하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시대를, 발 한번 붙여보지 못한 도시를,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랑의 형태를 내가 받아들이기 버거울 만큼 아련하고 반짝이게 표현해낸 영화였다. 갖고 싶지만 외면하고 싶었고, 가볍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아프게 가슴을 찔렀던 사랑이 속절없이 절벽 밑으로 추락한다. <해피투게더>는 그 사랑의 단편적인 조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해피투게더 시놉시스
홍콩을 떠나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보영’과 ‘아휘’ 이과수 폭포를 찾아가던 중 두 사람은 사소한 다툼 끝에 이별하고 각자의 길을 떠난다. 얼마 후 상처투성이로 ‘아휘’의 앞에 다시 나타난 ‘보영’은 무작정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서로를 위로하며 점차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하지만 ‘보영’의 변심이 두려운 ‘아휘’와 ‘아휘’의 구속이 견디기 힘든 ‘보영’은 또다시 서로의 마음에 상처 내는 말을 내뱉은 뒤 헤어지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다시 시작하자”
보영은 속절없이 깨져버린 사랑을 되돌리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다시 시작하자.”. 이과수 폭포를 찾아가다 길을 잃은 이별을 선택하지만 보영은 아휘의 앞에 다시 나타난다. 아휘는 당연하게도 보영의 한마디에 휘둘린다. 사랑하니까, 잊을 수 없으니까 다시 받아들일 수밖에, 따를 수밖에 없다.
아휘는 보영과 이별을 하고 탱고바에서 일하며 보영보단 고향인 홍콩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때 두 사람의 순간들은 흑백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아휘의 곁을 맴돌던 보영이 아휘의 삶으로 다시 들어온 순간, 화면에 청록빛의 색채가 드리운다.
보영은 아휘에게 담배를 빌리고, 아휘의 담배로 불을 붙이고, 아휘의 침대를 차지한다. 아휘는 보영을 집에 들이긴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휘둘리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자신은 소파에, 보영은 침대에. 크지 않은 집이지만 서로의 영역을 명확히 나눠 두려 한다. 하지만 보영은 아휘가 집을 비운 사이 침대와 소파를 붙이고, 좁은 소파에 누운 아휘의 옆을 파고든다.
보영과 아휘의 사이는 단적으로 말하면 갑과 을에 가까웠다. 헤어지는 것도 다시 만나는 것도 보영의 뜻이었고, 아휘는 그에 따를 뿐이다. 근데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아휘는 손을 다친 보영을 보살폈고, 돈이 없는 보영에겐 아휘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휘는 보영의 옷 안에서 여권을 발견하고 그것을 숨겨놓는다. 보영이 가진 대부분의 것들이 아휘의 영역 안에 들어온 것이다.
아휘는 보영을 보살피며 지겨울 만큼 끈덕진 사랑을 느낀다. 감기 몸살로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날에도 밥이 필요하다는 보영의 한마디에 일어나 밥을 볶았고, 밤중에 담배가 다 떨어졌다는 보영의 말을 듣고 선반에 담배를 한 움큼 쌓아놓는다. 탱고바에서 일하는 게 싫다는 보영의 말에 설거지 일을 구했고, 아픈 보영을 보살피는 게 행복했다. 손이 낫고 나의 도움이 필요 없어지면 그가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차라리 보영의 손이 낫지 않았으면 하는 슬픈 바람도 가져본다.
“넌 항상 제멋대로 하잖아.”
여러 번 깨어진 사랑에 단단한 신뢰 같은 건 존재할 수 없다. 아휘는 여권을 찾는 보영에게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여권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아휘는 처절하게 사랑의 환부를 잡아보지만, 보영은 그를 외면한다. 두 사람은 또다시 이별을 맞이한다. 몇 번째 이별이었을까.
“네가 불행한 게 느껴져.”
아휘의 친구이자 동료인 ‘장’은 어릴 때 눈이 아팠던 경험 때문에 사람의 소리에 집중하게 된 인물이다. 그는 곧 일을 관두고 세상의 끝에 있는 등대에 갈 거라는 목표를 가진 청년이다. 장은 아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목소리에 묻어나는 슬픔을 가늠해본다. 사랑하는 연인도 들어주지 않았던 아휘의 슬픔. 장은 그것을 담아 세상의 끝으로 향한다. 세상의 끝이라는 우수아이아 등대에 도착한 장은 아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녹음기를 틀어본다. 녹음기 안에 담긴 건 흐느끼는듯한 소리뿐이었다. 그 흐느낌이 말하고 있는 슬픔은 어떤 것이었을까, 장은 아휘의 흐느낌을 들으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아휘가 이별의 아픔을 담은 흐느낌을 녹음기 안에 담아내고 있을 때, 보영 또한 이별의 아픔으로 눈물을 흘린다. 보영과 아휘의 사랑은 끝났다. 아휘는 도살장 바닥에 흩뿌려진 피를 물로 씻어내며 보영의 지겨운 에피소드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젠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완전한 끝을 맞이했음을 알게 된 보영은 담배를 잔뜩 사들고 아휘의 집을 찾아가지만 아휘는 떠난 뒤였다. 보영은 담요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아휘는 보영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그대로 내려놓은 채 혼자 이과수 폭포로 떠난다. 테이블에 놓인 이과수 폭포 램프 안엔 다정하게 앉아있는 두 사람이 그려져있지만 진짜 이과수 폭포 앞엔 아휘 혼자 서있다. 반짝이는 이과수 폭포 램프를 보며 상상했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아휘는 보영을 생각하며 슬픔을 말한다.
보영과 아휘의 사랑은 서로의 스텝이 맞춰지지 않은 탱고 같았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춤을 추지만 아휘는 스텝을 자꾸 헷갈린다. 보영은 그런 아휘에게 다시 연습해보라며 홀로 연습할 시간을 주고, 다시 탱고를 춘다. 보영과 아휘는 손을 맞잡고 사랑하다가도 스텝이 엇갈리면 가차 없이 손을 놓았고, 아휘가 다시 스텝을 맞춰오면 잠시 함께 춤을 췄다가, 엇갈리면 다시 놓았다. 지금껏 아휘가 보영의 스텝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아휘가 그 노력의 끈을 놓은 순간, 사랑은 정말 끝나버린다.
사랑은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 한마디로 붙일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다. 같이 있으면 좋다고, 내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그 한마디를 왜 그리 아꼈던 것일까.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갖고 싶었던 것을 포기하게 만들 만큼 지독하게 아픈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엔 사랑하는 그가 있었다.
-
-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상영작 추천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드디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까지 단 하루만 남았죠.
전주국제영화제 예매 화력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이 영화제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요.
전주국제영화제를 가지 못하시는 분을 위해 '온피프엔'에서 온라인 영화제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예매를 놓치신 분들도 온라인 영화제로나마 즐길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모든 영화를 상영하는 건 아니고 217편 중 112편을 상영한다고 합니다.
또한 결제 및 관람은 4월 28일(목) 11시부터 가능하다는 점!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상영작 추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힘찬이는 자라서 (2022)
ⓒ 네이버 영화
SYNOPSIS'정희'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소연'의 집에 집들이를 간다.늦게 도착하는 또 다른 친구 '보영'을 기다리면서 '정희'와 '소연','소연'의 남편 '강석'은 '정희'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설전을 벌이게 된다.CINE PICK!
<소화불량>과 <작용과 반작용>을 연출한 김은희 감독.
이번에 연출한 <힘찬이는 자라서>는 여성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실제 문제를 다룬 영화이다.
파리의 책방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빈첸초'는 파리에 있는 자기 소유의 서점과 딸을 위해 일생을 바친다.어느 날, 유쾌하고 아름다운 '욜랑드'가 서점으로 뛰어들어온다.이탈리아의 영화 거장 에토레 스콜라 감독이 각본으로 참여한 작품으로친밀하고, 시적이며, 감동적인 이야기다.CINE PICK!
에토레 스콜라 감독의 작품이 원작인 영화 <파리의 책방>.
영화의 분위기에 맞는 피아노 음악과, 삽입곡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이다.
홍콩의 밤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2019년, 홍콩의 밤은 여전히 매혹적이고 아름답지만 일상의 모습은 조금씩 변해간다.감독은 코즈웨이베이 거리를 거닐며 고가도로를 따라 도시의 리듬과 분위기를 기록한다.CINE PICK!
차이밍량 감독은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감독이 직접 담아낸 2019년 홍콩의 풍경은 어떨까?
마녀들의 땅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이중 유방 절제술을 받은 후 젊은 간호사를 데리고 스코틀랜드의 전원 지역으로요양을 떠난 '베로니카 겐트'의 이야기다.수술 과정으로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게 된 그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해 묻고 맞서기 시작한다.CINE PICK!
샤를로트 콜베르 감독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약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인물과 캐릭터에 접근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본 영화는 2021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새벽 두시에 불을 붙여 (2022)
ⓒ 네이버 영화
SYNOPSIS1995년 화원여자기술학원. '서리'는 이곳에서 있었던 화재 사건과 '유림'에 대해 이야기한다.그토록 불을 두려워했지만 기어코 불을 보고자 했던 소녀에 대해.CINE PICK!
유종석 감독은 2019년 작품 <아쿠아마린>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적이 있다.
영화는 1995년 일어났던 여자 기숙학원의 실제 방화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강렬한 미장센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해왕성 로맨스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어느 공상 세계의 전자 폐기물 쓰레기장. 반식민주의 해킹 집단은 일대의 천연자원과 사람들을 착취하는 권위주의 정권을 전복하고자 한다. 탈출한 채굴 노동자와 인터섹스 도망자는 서로를 마주하고, 이들의 결합은 거대하고 신성한 전기회로에 결함을 촉발한다.CINE PICK!
미국의 시인, 음악가이자 배우인 솔 윌리엄스와 아니샤 우제이먼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영화는 SF 퀴어 뮤지컬 영화로 르완다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플라스틱의 기호학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어린 시절 장난감으로 표현한 인간의 생애CINE PICK!
라두 주데 감독은 <배드 럭 뱅잉>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감독이다. 라두 주데 감독은 "우리 삶의 본질을 말뿐만이 아니라 순수한 장난감의 이미지로 전하는 영화를 상상했습니다."라며
<플라스틱 기호학>을 표현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
-
- 감염?되면 과장 부장 사장과 직급 떼고 붙을 수 있는 바이러스?가 있다고?? '메이헴'
흥해라 이 영화
메이헴 (2017)
- 좀비처럼 일만하던 직장인으로 가득한 회사에 분노 바이러스가 퍼지고 상사의 무시와 부당한 요구에도 꾹 참던 직원들이 분노를 폭발시키기 시작하는데...Walking Dead 아니고 Working Dead
좀비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침투로 시작된 사내배틀로얄무비 이 영화 흥해라!!!
-
- 영화 <대외비> 티저 예고편
대한민국을 뒤흔들 #대외비 등장! 한 눈 파는 순간 모든 판이 뒤집힌다?
-
- 영화 <아바타 : 물의 길> 티저 예고편
“이것만은 변치 않아. 우리가 어딜 가든지, 가족은 우리의 요새야.” [아바타: 물의 길] 티저 예고편 대공개 2022년 12월, 오직 극장에서 만나요! ?❤️